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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연에도 골든타임, 마흔다섯 전엔 끊어야 합니다”

    “금연에도 골든타임, 마흔다섯 전엔 끊어야 합니다”

    19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40대 초반에 끊었다. 평생을 폐렴 환자 치료에 전념해온 호흡기내과 분야 권위자인 정기석(61)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담배와 20년 넘는 질긴 인연을 끊지 못해 이어갔던 경험이 있다. 2016년 첫 차관급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 교수는 “45세 이전에 담배를 끊으면 위험도가 차츰 줄어든다”면서 “이후에 끊으면 늦으니 꼭 45세 전에 끊으라”고 조언했다. 담배를 끊은 지금 60대 정 교수는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 최근에는 근육 운동도 시작했다. 정 교수는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배는 몇 년을 피웠나요. “40대 초반에 담배를 끊을 때까지 20여 년을 피웠죠. 흔히 말하는 ‘헤비 스모커’는 아니었어요. 그때는 담배를 주고 받는 문화가 있었어요. 처음 만나 악수하고서는 ‘담배 한대 피우시죠’ 라고 하는 게 흔한 인삿말이었죠. 의사들은 담배를 안 피울 거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의사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담배가 어떤 건 줄 아니까 겁이 나서 적게 피우는 것뿐이지요. 예전에는 병동에서도 의사들이 담배를 피웠어요. 맡은 환자가 사망하면 허무한 마음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고는 했죠. 마흔이 넘어가면서 이렇게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일을 많이 하다가는 내 몸이 망가지겠다 싶어 굳게 결심하고 끊었어요.” -어떻게 끊었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먼저 담배를 사서 포장을 벗기고 밖으로 나가 흡연구역을 찾은 다음 불을 붙이죠. 이 긴 과정에서 하나만 안 하면 담배를 피울 수 없어요. 담배를 끊으려면 먼저 주변에 금연 사실을 알려야 해요. 그래야 담배를 꺼내 물을 때마다 눈치가 보이죠. 그런데도 끊지 못하는 것은 심리적·물리적 의존성 때문이에요. 뇌에는 니코틴 수용체가 있어요. 그 수용체를 자꾸 자극해줘야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그 수용체가 남들보다 더 과한 자극을 요구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담배를 끊기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게 바로 중독이죠. 물리적 의존성이 있는 사람은 약의 도움을 받아 담배를 끊을 수 있어요. 호흡기질환 환자 중에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요. 몇 번을 이야기해도 끊지 않으면 ‘내가 내 밥그릇 차는 권고를 계속하는 데도 안 들어주실 겁니까’라고 해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면 환자들이 수긍해요. 온 국민이 담배를 끊으면 호흡기내과 의사들은 일이 없어 상대적으로 힘들어지겠죠. 전 세계 인구가 담배를 끊으면 병의 3분의1은 없어질 거예요.” -금연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까. “45세 전에는 끊어야 해요. 담배를 끊고서도 그동안 피운 담배로 인한 위험은 상당히 오랜 기간 남아요. 하지만 45세 이전에 끊으면 위험도가 차츰 줄어들어요. 그 이후에 끊으면 소용이 없고요. 피부에 찰과상이 생기면 금방 회복되잖아요. 하지만 깊게 파인 상처는 좀처럼 낫질 않아요. 20갑년(하루 한 갑씩 20년 흡연) 정도 되면 그동안 담배로 쌓인 폐병 위험이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담배를 피운다고 다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하던데요. “10명 중 7명은 담배를 피워도 담배와 관련된 병에 걸리지 않아요. 그 7명 안에 들 자신이 있으면 피워도 돼요. 찻길을 건널 때 좌우를 둘러보잖아요. 헌데 그렇게 둘러보지 않아도 사람이 건너면 운전자는 서요. 그렇다고 좌우를 살피지 않고 건널목을 건너는 일을 평생 반복하면 언젠가 한 번은 차에 치일 거예요. 항상 위험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여야 해요. 특히 건강은 언제나 위험이 발생할 확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해요.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지 않잖아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먹어도 큰 상관은 없어요. 병에 잘 안 걸려요. 그럼에도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것은 혹시라도 병에 걸릴 확률을 줄이자는 것이지요.” -담배로 생기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은 어떤 병인가요. “폐암보다 고통스러운 COP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낸 적이 있었어요. 요즘은 폐암 생존율이 높지만, 그래도 많이 악화한 환자는 몇 년 안에 사망하고는 해요. 그러나 COPD는 그렇지 않아요. 대신 숨을 못 쉬는 고통을 굉장히 긴 시간 느끼다 사망하죠. 삶이 시나브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마지막에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요. 숨을 내쉬지 말고 연속으로 다섯 번 들이마셔 보세요. 그리고 그 상태로 말을 해보세요. 숨이 차서 말을 잘 못할 거예요. COPD 환자들의 상태가 그래요. 폐가 짓눌려 있는 거죠. 우리나라 COPD 환자의 80%가 담배를 피운 분들이에요. 가장 큰 단일 원인이 담배예요. 간은 잘라내도 재생이 돼요. 하지만 폐는 손상을 입으면 아물면서 굳어버려요. 복구가 안 돼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호흡기 감염병이었죠. 호흡기내과 교수가 본 메르스는 어땠나요. “평생 호흡기 감염을 보아온 의사인데도 두려웠어요. 이렇게 강한 병원체를 본 적이 없었죠. 폐렴 사망률이 높다고 하지만 메르스보다는 낮아요. 의사들은 병원에서 늘 병균을 대하니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아요. 그런데 메르스 때는 우리도 메르스에 걸리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아무리 슈퍼박테리아라도 단시간에 사람을 이 정도로 많이 죽이지 못해요. 그 정도로 놀라운 병이었어요.”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장이 되셨죠. “가자마자 홍역을 치렀어요. 2016년 4·13총선 날 아침 새벽에 문자가 왔는데,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메르스 의심환자가 서울 모 병원에서 도주했다는 거예요. 의심환자가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상황이었어요. 경찰이 출동해 폐쇄회로(CC)TV로 추적해 결국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찾아냈죠. 메르스를 잡으려고 그 고생을 했는데, 환자가 도주한 상황이었으니 매우 긴박했죠. 그 해에는 지카바이러스도 유행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첫 환자가 발생해 공포가 컸죠. 서아프리카에 에볼라이바러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비판을 받아서인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카바이러스 때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전 세계를 향해 과하게 겁을 줬어요. 국회도, 언론도 난리가 났었죠.” -감염병이 대유행한다면 또 호흡기 질환일 텐데요. “제일 걱정이 인플루엔자 변형이에요. 인플루엔자 유전자가 크게 바뀌면 막아내질 못해요. 이런 바이러스를 철새가 옮기기 시작하면 세계 곳곳에 퍼질 수 있어요. 결국은 호흡기 쪽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일으킬 거예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기침 예절만 잘 지킨다면 상당한 예방 효과가 있을 거예요. 메르스도 기침을 통해 퍼졌으니까요.” -정신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화가 나고 흥분될 때는 ‘화를 내면 내가 지는 거다’라고 암시를 걸어요. 화를 낼 때 머리가 어질어질하기도 하잖아요. 온몸이 긴장하기 때문이에요. 마음의 평화를 외치며 되도록 화를 내지 않도록 마음을 관리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많이 하더라도 마음이 따라가지 않으면 건강해질 수 없어요. 한마디 할 때 세 번을 생각하고 될수록 말을 적게 해야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내가 뱉은 말로 후회하는 일도 줄일 수 있어요.” -어떤 운동을 하고 있나요. “등 근육이 잡힐 정도로 근육 운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 들여 만든 근육 사진도 올리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 많이 먹고 관리를 소홀히 하게 돼요. 정형외과 의사들 말을 들어보면 요즘은 90대도 발목이 부러져서 온 데요. 근육이 없으면 넘어질 때 발목이 지지대 역할을 하지 못해 옆으로 바로 쓰러져버려요. 그러면 고관절이 골절돼요. 정형외과를 찾는 노인 중 발목이 부러져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운동을 많이 해서 발목에 힘이 있다는 거예요. 넘어질 때 발목에 힘을 주다 보니 발목이 먼저 꺾이는 거죠. 근육을 강화하는 가장 쉬운 운동은 앉았다가 일어서기예요. 집에서 팔굽혀펴기만 해도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어요. 건강을 지킨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나를 아끼고 몸가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자중자애’(自重自愛)라는 말이 있죠. 건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새길 말이 아닌가 합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살인죄 재소자도 런던 브리지 흉기 난동범 제압에 앞장

    살인죄 재소자도 런던 브리지 흉기 난동범 제압에 앞장

    살인죄 재소자도 지난해 11월 런던 브리지에서의 흉기 난동을 제지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 15년 전 영국 헐의 한 바 앞에서 전직 소방관 배리 잭슨(당시 33)을 살해한 혐의로 최소 17년형을 선고받고 2015년에 수감된 스티브 갤런트(42)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는 특별 허가를 받아 재소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인 ‘러닝 투게더’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원생 잭 메릿(25)과 곧잘 어울렸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29일(이하 현지시간) 우스만 칸이 이 프로그램이 진행된 피시몽거스 홀에서 흉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갤런트와 가까웠던 메릿,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자 사스키나 존스(23)가 그의 흉기에 스러졌고, 다른 세 명이 다쳤다. 그런데 갤런트는 다리 위에서 칸을 제지하기 위해 용감하게 몸을 던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세 명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 공영 PA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극적인 그날”이라고 입을 뗀 뒤 피시몽거스 홀의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뭔가 잘못 됐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친 사람들을 봤다. 칸은 손에 커다란 두 흉기를 든 채 로비에 서 있었다. 그는 명백하게 위험한 인물이었다. 해서 난 망설이지 않았다.” 공무원 대린 프로스트는 나중에 갤런트로 확인된 남성이 나무 의자로 칸을 물러서게 한 뒤 칸이 가짜로 판명된 자폭 조끼를 보여주자 의자를 던졌다고 증언했다. 프로스트는 그 뒤 피시몽거스 홀에 전시됐는데 자신이 들고 나온 외뿔고래 엄니를 갤런트에게 건넸는데 이 때 칸이 흉기들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갤런트에게 달려드는 장면을 목격했다.갤런트는 나중에 프로스트가 엄니를 건네지 않았더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죽임을 당했거나 최악의 경우가 닥쳤을지 모른다며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갤런트는 또 소화기를 뿜어내 칸을 제지하는 데 도움을 준 전과자 존 크릴리와 처음에 루카치라고만 알려진, 다섯 번이나 흉기에 찔리고도 칸을 제지하는 데 거들어 “지독한 용감함”을 보여준 셰프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갤런트는 재판 도중 자신은 여자친구가 잭슨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공범과 함께 보복 살해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누구도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피해자 가족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한다. 내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 행동에 대해 가혹한 징계를 받는 게 마땅하다. 일단 벌을 달게 받겠다고 인정했으니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감옥에 가면 자기 결정권이 없어진다. 미래는 다른 이들의 결정에 의존하게 된다. 당신 스스로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은 사회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중의 하나가 된다.” 2022년이면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그는 “다시는 폭력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경영학 학위를 공부하고, 러닝 투게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2016년에 처음 만난 메릿과 존스의 죽음은 “감내하기 어려운 타격이며 상실감이 무한하다”고 말했다. 이어 메릿은 “롤모델이자 친구”였다고 털어놓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괴롭힘금지법에도 여전한 갑질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괴롭힘금지법에도 여전한 갑질

    “얼굴 x같이 생겼네. 너 그럴 거면 나가. 회사 왜 다녀?” “능력 없는 니가 살길은 시집가는 게 제일 빠른 길 아니겠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회사 내 폭언과 모욕, 갑질은 여전하다.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226건을 살펴본 결과, 11.9%인 27건이 모욕과 관련된 제보였다고 5일 밝혔다. 직장갑질 119가 공개한 모욕과 갑질 사례를 보면 한 직장인은 “회사를 다니면서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상사가) 지나가는 고등학생 데려다 일 시키는 게 낫겠다며 소리를 질렀다”고 털어놨다. 또 “비속어를 달고 사는 상사도 있다”며 “나를 불러세운 뒤 ‘얼굴 x같이 생겼네’ ‘너 회사 왜 다녀’라고 소리쳤다”고 덧붙였다. 다른 모욕 사례에서는 “나 때는 말야,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어”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상사가 니 친구야?” “너 진짜 또라이 같아” “기대해 지옥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같은 막말을 들어야 했던 직장인도 있다.또 다른 직장인 제보자는 “‘상사한테 뭐라고 입 놀려 고자질했냐’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냐’라는 폭언을 듣고 충격에 과호흡이 생겨 병원에 다녀왔다”며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제자신이 밉고 우울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괴롭힘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업무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괴롭힘이 심화하고 있다”며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 근무가 어려운 상황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생각한 응답은 39.2%에 불과했다. 반면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60.8%로 나타났다. 또한 법 시행 전후 교육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직장인도 68.8%로 나타났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예방교육이 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정다은 수입, 궁금하지만 터치 NO” 조우종이 전한 정다은 근황

    “정다은 수입, 궁금하지만 터치 NO” 조우종이 전한 정다은 근황

    방송인 조우종이 아내 KBS 정다은 아나운서의 수입에 대해 언급했다. 3일 오전 방송된 KBS 쿨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는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조우종과 빅데이터 전문가 전민기 팀장이 함께 하는 새 코너 ‘검색N차트’가 진행됐다. 이날 DJ 박명수는 조우종에게 “부인 잘 계시냐. 정다은 씨가 저희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고정 게스트로 나오셨기 때문에 항상 궁금하다”며 정다은 아나운서의 안부를 물었다. 이에 조우종은 “잘 계신다. 요즘 개인 활동도 많이 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박명수가 “아내가 많이 벌어오는 게 본인한테 도움이 되시죠?”라고 묻자, 조우종은 “아내가 벌어오는 것에 대해 전혀 터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말을 들은 박명수가 “터치하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벌어오는 게 낫죠?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묻자, 조우종은 “솔직히 얼마를 버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걸 어디에 쓰는지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냠냠 남도’ … 꾸미지 않은 멋이다

    ‘냠냠 남도’ … 꾸미지 않은 멋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갯것들이 익어 갑니다. 뭍의 산물은 거개가 자취를 감췄지만 바다 먹거리는 지금이 한창입니다. 전남 장흥으로 갑니다. 맛으로 이름난 남도에서도 ‘맛의 방주’라 부를 만한 곳입니다. 포실하게 살이 오른 ‘바다의 꽃’ 굴이며 지쳐 누운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 웰빙 먹거리의 상좌 자리를 꿰찬 매생이 등이 이 계절의 대표 먹거리들이지요. 여기에 남도 고유의 발효차 청태전으로 입을 가시고, ‘한국관광의 별’로 떠오른 편백나무 숲의 청신한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맑게 할 수 있습니다. 힘찬 새해를 여는 여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장흥의 맛은 직선적이다. 에둘러 돌아가는 법이 없다. 식재료를 이리저리 섞어 내는 조미의 힘보다,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식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 전능한 이가 ‘맛의 방주’를 만들어 제철 식재료로 채운다면 장흥산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장흥의 물산은 계절에 따라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한겨울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해산물은 단연 굴이다. 전설적인 플레이보이 카사노바가 즐겨 먹었다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정력 식품 중 하나다. 장흥에서라면 다른 식재료를 넣고 조리하는 것보다 굴 자체를 직화로 구워 먹는 직선적인 조리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 장흥에서 굴구이로 이름난 곳은 용산과 관산 등 두 곳이다. 두 지역의 거리는 멀지 않지만 먹는 방식은 꽤 다르다. 먼저 ‘용산의 맹주’ 남포마을. 소나무 몇 그루 있는 소등섬이 바다 위에 달처럼 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 바다에서 ‘돌꽃’ 석화(石花)가 난다. 남포마을 굴은 ‘한정판’이다. 11월 말부터 3월까지 잘해야 석 달 남짓 채취한다. 나머지 기간에는 마을 사람 누구도 굴을 채취하지 않는다. 당연히 굴구이 집들도 문을 닫는다.남포마을에서 파는 굴은 사실 ‘못난이’다. 자연산이어서 그렇다. 알도 잔 편이다. 굴 껍데기에는 뻘이 묻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잘 씻어서 낸다고 해도 그렇다. 하지만 자연산을 선호하는 이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맛도 좋거니와 뻘을 조금 먹는 것 정도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반면 양식으로 키워 낸 굴은 뻘에서 채취한 굴에 비해 알도 크고 모양도 예쁘다. 종패를 넣어 키운 양식 굴구이 집들이 늘어선 곳은 관산읍 죽청마을 일대다. 현지인들조차 두 지역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린다. 양식을 선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당연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것이다. 맛의 차이가 경미한 만큼 기왕이면 알이 굵고 깔끔한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굽는 방식도 약간 다르다. 남포마을에는 장작을 때 굽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집이 세 곳 정도 된다. 화덕이나 드럼통 등 불을 피우는 형태만 다를 뿐이다. “용곤이 아재네 집”(공식 상호는 석화일번지)은 드럼통, “수정이네 집”(남포수산)은 황토 화덕을 쓰는 식이다. 편리하기로는 사실 가스불을 따를 수 없다. 깔끔하고 화력도 고르다. 장작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참나무 장작을 구해야 하고, 연기도 많이 난다. 재가 날릴 때도 있다. 한데 정감 넘치는 분위기라면 단연 장작불이다. 맛 역시 장작불이 구이에 가깝다면, 가스불은 찜에 좀더 가깝다. 장작불로 구울 때는 순서가 있다. 먼저 굴은 센 불에서 구워 먹는다. 이어 중불에 토종닭을 굽고, 마지막으로 숯불의 열기를 이용해 삼겹살까지 구워 먹는다. 굴은 껍데기에 묻은 뻘이 회백색으로 마를 때쯤 먹는 게 좋다. 완전히 익히기보다 약간의 수분이 남을 정도라야 특유의 향과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굴구이는 치장하지 않은 자연의 맛이 일품이다. 처음엔 쌉싸름했다가 곧 달달해진다. 그네들 말로 “달보드레”하다. 여기에 짭조름한 맛이 더해지며 별다른 양념 없이도 달게 넘어간다.낙지 역시 장흥산 스태미나 식품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지쳐 누운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속담의 주인공이다. 장흥은 우리나라 낙지 생산 1번지다. 국내 최대 낙지 산지인 전남에서도 40% 정도가 장흥산이라고 한다. 장흥산 낙지는 머리가 작다. 발은 오종종하고 길다. 몸 맛은 씹을수록 쫄깃하다. 낙지는 한 마리를 둘둘 말아 통째 먹는 게 최고다. 현지인들은 발을 쑥쑥 훑어 바닷물만 덜어 내고 먹는 방식을 선호한다. 뭍에서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초고추장이 곁들여져야 수월하게 먹을 수 있다. 통째 먹는 게 불편하면 ‘탕탕이’를 먹으면 된다. 낙지를 잘게 “쪼사”(잘게 자른다는 뜻의 사투리) 소고기 육회 등을 얹어 먹는 방식이다. ‘낙지삼합’도 요즘 인기다. 낙지와 키조개, 돼지고기를 한 번에 즐기는 요리다. 먼저 날것으로 낙지를 먹고 키조개는 약간 익혀 먹는다. 이어 식기 아래 깔아 둔 돼지고기가 익을 무렵 통통하게 익은 낙지 다리와 달보드레한 키조개, 기름진 돼지고기를 하나로 묶은 뒤 입에 날름 털어 넣는다. 겨울철 참살이 식품의 상좌 자리는 매생이 몫이 아닐까 싶다. 매생이는 12∼2월 추운 겨울에 잠깐 나타나 담백한 제 몸 맛을 알려 주고는 금세 사라지는 해조류다.매생이가 많이 나는 곳은 내저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매생이 양식이 시작됐다는 곳. 매생이는 파도가 잦아지는 굽은 곳, 바닷물과 민물이 몸을 섞는 기수역에서 잘 자란다. 항아리 형태의 내저마을 앞바다는 이 같은 조건의 최적지로 꼽힌다. 예전에는 매생이 양식발을 설치한 시기에 따라 채취 시기가 달라졌다. 초사리나 뻘벗기(가장 먼저 채취한 매생이), 두사리(20일쯤 지난 뒤 채취한 매생이), 홀치기(마지막 채취한 매생이) 등 불리는 이름도 달랐다. 요즘은 이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채취 작업이 고된 데다 일손도 달리기 때문이다. 한 번에 양식발을 거둬들인 뒤 채취하면 끝이다. 장흥에선 국물이 안 보일 정도로 걸쭉하게 매생이국을 끓인다. 매생이 올이 드러날 정도로 성기게 끓인 도회지의 매생이국은 댈 게 못 된다. ‘무산김’도 겨울이 제철이다. 무산김은 ‘바다의 제초제’라 불리는 염산을 쓰지 않고 양식한 김을 일컫는다. 김으로 만든 요리는 김국 정도가 유일하다. 이름 그대로 멸치 등으로 낸 육수에 말린 김을 설설 풀어 내는 단순한 요리다. 단품 메뉴보다는 시원한 입가심용으로 즐겨 먹는다. 예전에는 ‘소울 푸드’라 할 만큼 쉽게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몇몇 식당에서만 김국을 낸다.청태전은 요즘 장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전통 녹차다.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라는 뜻의 이름이 독특하다.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을 중심으로 발달한 발효차로,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쉬이쉬이’ 겨울도 푸르다 입만큼 눈도 즐거운 장흥 이제 ‘식후경’을 말할 차례다. 장흥엔 ‘2019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여행지가 있다. 편백숲 우드랜드다. 2015년 토요시장에 이은 두 번째 별이다. 편백숲에선 한겨울에도 초록빛 샤워를 할 수 있다. 여기에 힘찬 해돋이를 마주할 수 있는 정남진 전망대와 회령진성,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 등의 명소들을 돌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진다.①편백숲 우드랜드는 삼림욕을 겸한 산림휴양지다. 40~50년 된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100㏊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삼나무도 섞여 있어 ‘피톤치드의 보고’라는 상찬을 받는다. 정확히는 편백나무가 70%로 주종을 이루고, 삼나무가 30%가량 섞여 있다. 편백숲은 주민들의 울력으로 만들어졌다. 1969년부터 우목리 등 인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노동력을 보태 우드랜드를 조성했다. 우드랜드에 들면 수직으로 높지거니 솟은 편백나무의 기세에 우선 놀란다. 한낮에도 어둡게 느껴지는 편백숲에서는 나무의 정령들이 날아다닐 것만 같다. 모든 게 삭아 내린 한겨울에 초록빛 나무와 마주하다 보면 눈이 저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숲에 들면 나무의 향기와 청량한 공기가 동시에 밀려든다. 두 팔 벌려 마음껏 초록빛 샤워를 즐긴다. 삼림욕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 싶다. 우드랜드가 깃든 곳은 억불산(518m)이다. 산세가 여인의 고운 치마폭을 닮았다는 곳으로, 장흥의 대표적인 관광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정상까지는 무장애 데크길이 이어져 있다. 이른바 ‘말레길’로, 편백숲 사이에 목재데크를 깔아 장애인, 노약자 등 관광 약자들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했다. 지난해 우드랜드가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기까지 말레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전해진다. 말레길은 ‘소금집’ 옆에서 출발해 억불산 정상까지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리저리 돌아가는 방식으로 나무데크의 경사도를 낮췄다. ‘말레’는 호남 지역에 전해 오는 옛말로, ‘대청마루’를 뜻한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말레’이니, 이해와 소통을 기원하는 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길이는 약 4㎞다.말레길 초입의 ②‘소금집’은 일종의 찜질방이다. 겨울 추위를 녹이기 좋다. 소금 마사지방, 해독방, 편백 반신욕방, 황토방 등 치유시설과 소금램프, 편백 반신욕기 등 체험물품, 풍욕장 등을 갖추고 있다.장동면의 ③해동사(海東祠)는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안 의사와 전혀 연고가 닿지 않는 곳에, 그것도 다른 성씨의 문중에서 이를 세우고 관리해 왔다는 게 놀랍다. 나라 안에서 안 의사를 모신 사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의외다. 게다가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 의사 기념관과 해동사의 경도가 126도로 같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기막히다. 안 의사의 위패와 영정 등을 모신 해동사는 1955년 조성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던 혼란기에 안홍천이란 장흥 지역 유지가 세웠다. 안 의사는 순흥 안씨, 안홍천은 죽산 안씨다. 순흥 안씨에서 떨어져 나온 성씨가 죽산 안씨라고는 하지만 혈연이라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당시 장흥의 재력가였던 안홍천은 안 의사의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사재를 털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도 죽산 안씨 문중에서 해마다 음력 3월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올해는 안 의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해다. 장흥군에서는 ‘해동사 방문의 해’ 등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일 년 내내 이어 갈 계획이다. 해동사 편액에 적힌 ‘海東明月’(해동명월) 글씨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사당 내부엔 안 의사 영정 2점과 친필 유묵 복사본이 보관돼 있다.④정남진 전망대는 장흥의 랜드마크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는 정남진 해변에 세워졌다. 전망대는 탁월한 해돋이 명소다. 소록도, 거금도 등 다도해의 섬들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관산읍 삼산리에 있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회진포구에 닿는다. 장흥 출신의 많은 문인이 ‘장흥 문학의 자궁’이라 표현했던 포구다. 키 낮은 집들 너머로는 장흥 바다가 부드럽게 능선을 그리고 있다. 이 일대의 바다 물빛이 참 곱다. 청잣빛 바다다.회진포구 뒤편 언덕에 ⑤회령진성이 있다. 남해 일대의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1490년(성종 21)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이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조선수군 함대를 이끌고 출정한 곳이기도 하다. 1597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회령포에서 12척의 배와 수군을 모아 임금의 교서를 들고 충성을 결의하는 군례인 ‘숙배’ 행사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회령진성 아래 조성된 12척 배 조형물은 이를 상징하고 있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낙지는 회진면 대리의 수산물어판장(867-5024)에서 싸게 살 수 있다. 매일 아침 8시쯤 경매가 이뤄진다. 보통 세발낙지 한 마리에 2000~3000원 선이다. 초고추장만 사 가면 그 자리에서 싱싱한 낙지를 맛볼 수 있다. 매생이죽, 떡국 등을 맛보려면 내저마을 인근의 대덕시장으로 가야 한다. 바다횟집(867-2332) 등 식당들이 몰려 있다.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청태전은 안양면의 다예원(863-8758), 상선약수 마을의 평화다원(863-2974) 등이 알려졌다. 김국은 맛보기가 쉽지 않다. 진선식육식당(863-6668) 등에서 기본 반찬으로 김국을 낸다.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함께 먹는 ‘장흥 삼합’은 이미 장흥 식도락의 ‘전설’이 됐다. 만나숯불갈비(864-1818), 탐마루(862-8292) 등이 알려졌다.
  • ‘냠냠 남도’ … 꾸미지 않은 멋이다

    ‘냠냠 남도’ … 꾸미지 않은 멋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갯것들이 익어 갑니다. 뭍의 산물은 거개가 자취를 감췄지만 바다 먹거리는 지금이 한창입니다. 전남 장흥으로 갑니다. 맛으로 이름난 남도에서도 ‘맛의 방주’라 부를 만한 곳입니다. 포실하게 살이 오른 ‘바다의 꽃’ 굴이며 지쳐 누운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 웰빙 먹거리의 상좌 자리를 꿰찬 매생이 등이 이 계절의 대표 먹거리들이지요. 여기에 남도 고유의 발효차 청태전으로 입을 가시고, ‘한국관광의 별’로 떠오른 편백나무 숲의 청신한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맑게 할 수 있습니다. 힘찬 새해를 여는 여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장흥의 맛은 직선적이다. 에둘러 돌아가는 법이 없다. 식재료를 이리저리 섞어 내는 조미의 힘보다,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한 식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마 전능한 이가 ‘맛의 방주’를 만들어 제철 식재료로 채운다면 장흥산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장흥의 물산은 계절에 따라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한겨울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해산물은 단연 굴이다. 전설적인 플레이보이 카사노바가 즐겨 먹었다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정력 식품 중 하나다. 장흥에서라면 다른 식재료를 넣고 조리하는 것보다 굴 자체를 직화로 구워 먹는 직선적인 조리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 장흥에서 굴구이로 이름난 곳은 용산과 관산 등 두 곳이다. 두 지역의 거리는 멀지 않지만 먹는 방식은 꽤 다르다. 먼저 ‘용산의 맹주’ 남포마을. 소나무 몇 그루 있는 소등섬이 바다 위에 달처럼 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 바다에서 ‘돌꽃’ 석화(石花)가 난다. 남포마을 굴은 ‘한정판’이다. 11월 말부터 3월까지 잘해야 석 달 남짓 채취한다. 나머지 기간에는 마을 사람 누구도 굴을 채취하지 않는다. 당연히 굴구이 집들도 문을 닫는다. 남포마을에서 파는 굴은 사실 ‘못난이’다. 자연산이어서 그렇다. 알도 잔 편이다. 굴 껍데기에는 뻘이 묻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잘 씻어서 낸다고 해도 그렇다. 하지만 자연산을 선호하는 이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맛도 좋거니와 뻘을 조금 먹는 것 정도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반면 양식으로 키워 낸 굴은 뻘에서 채취한 굴에 비해 알도 크고 모양도 예쁘다. 종패를 넣어 키운 양식 굴구이 집들이 늘어선 곳은 관산읍 죽청마을 일대다. 현지인들조차 두 지역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린다. 양식을 선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당연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것이다. 맛의 차이가 경미한 만큼 기왕이면 알이 굵고 깔끔한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굽는 방식도 약간 다르다. 남포마을에는 장작을 때 굽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집이 세 곳 정도 된다. 화덕이나 드럼통 등 불을 피우는 형태만 다를 뿐이다. “용곤이 아재네 집”(공식 상호는 석화일번지)은 드럼통, “수정이네 집”(남포 수산)은 황토 화덕을 쓰는 식이다. 편리하기로는 사실 가스불을 따를 수 없다. 깔끔하고 화력도 고르다. 장작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참나무 장작을 구해야 하고, 연기도 많이 난다. 재가 날릴 때도 있다. 한데 정감 넘치는 분위기라면 단연 장작불이다. 맛 역시 장작불이 구이에 가깝다면, 가스불은 찜에 좀더 가깝다. 장작불로 구울 때는 순서가 있다. 먼저 굴은 센 불에서 구워 먹는다. 이어 중불에 토종닭을 굽고, 마지막으로 숯불의 열기를 이용해 삼겹살까지 구워 먹는다. 굴은 껍데기에 묻은 뻘이 회백색으로 마를 때쯤 먹는 게 좋다. 완전히 익히기보다 약간의 수분이 남을 정도라야 특유의 향과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굴구이는 치장하지 않은 자연의 맛이 일품이다. 처음엔 쌉싸름했다가 곧 달달해진다. 그네들 말로 “달보드레”하다. 여기에 짭조름한 맛이 더해지며 별다른 양념 없이도 달게 넘어간다.낙지 역시 장흥산 스태미나 식품의 대표 주자 중 하나다. ‘지쳐 누운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속담의 주인공이다. 장흥은 우리나라 낙지 생산 1번지다. 국내 최대 낙지 산지인 전남에서도 40% 정도가 장흥산이라고 한다. 장흥산 낙지는 머리가 작다. 발은 오종종하고 길다. 몸 맛은 씹을수록 쫄깃하다. 낙지는 한 마리를 둘둘 말아 통째 먹는 게 최고다. 현지인들은 발을 쑥쑥 훑어 바닷물만 덜어 내고 먹는 방식을 선호한다. 뭍에서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초고추장이 곁들여져야 수월하게 먹을 수 있다. 통째 먹는 게 불편하면 ‘탕탕이’를 먹으면 된다. 낙지를 잘게 “쪼사”(잘게 자른다는 뜻의 사투리) 소고기 육회 등을 얹어 먹는 방식이다. ‘낙지삼합’도 요즘 인기다. 낙지와 키조개, 돼지고기를 한 번에 즐기는 요리다. 먼저 날것으로 낙지를 먹고 키조개는 약간 익혀 먹는다. 이어 식기 아래 깔아 둔 돼지고기가 익을 무렵 통통하게 익은 낙지 다리와 달보드레한 키조개, 기름진 돼지고기를 하나로 묶은 뒤 입에 날름 털어 넣는다. 겨울철 참살이 식품의 상좌 자리는 매생이 몫이 아닐까 싶다. 매생이는 12∼2월 추운 겨울에 잠깐 나타나 담백한 제 몸 맛을 알려 주고는 금세 사라지는 해조류다.매생이가 많이 나는 곳은 내저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매생이 양식이 시작됐다는 곳. 매생이는 파도가 잦아지는 굽은 곳, 바닷물과 민물이 몸을 섞는 기수역에서 잘 자란다. 항아리 형태의 내저마을 앞바다는 이 같은 조건의 최적지로 꼽힌다. 예전에는 매생이 양식발을 설치한 시기에 따라 채취 시기가 달라졌다. 초사리나 뻘벗기(가장 먼저 채취한 매생이), 두사리(20일쯤 지난 뒤 채취한 매생이), 홀치기(마지막 채취한 매생이) 등 불리는 이름도 달랐다. 요즘은 이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채취 작업이 고된 데다 일손도 달리기 때문이다. 한 번에 양식발을 거둬들인 뒤 채취하면 끝이다. 장흥에선 국물이 안 보일 정도로 걸쭉하게 매생이국을 끓인다. 매생이 올이 드러날 정도로 성기게 끓인 도회지의 매생이국은 댈 게 못 된다. ‘무산김’도 겨울이 제철이다. 무산김은 ‘바다의 제초제’라 불리는 염산을 쓰지 않고 양식한 김을 일컫는다. 김으로 만든 요리는 김국 정도가 유일하다. 이름 그대로 멸치 등으로 낸 육수에 말린 김을 설설 풀어 내는 단순한 요리다. 단품 메뉴보다는 시원한 입가심용으로 즐겨 먹는다. 예전에는 ‘소울 푸드’라 할 만큼 쉽게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몇몇 식당에서만 김국을 낸다.청태전은 요즘 장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전통 녹차다.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라는 뜻의 이름이 독특하다.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을 중심으로 발달한 발효차로,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 쉬이쉬이 겨울도 푸르다 이제 ‘식후경’을 말할 차례다. 장흥엔 ‘2019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여행지가 있다. 편백숲 우드랜드다. 2015년 토요시장에 이은 두 번째 별이다. 편백숲에선 한겨울에도 초록빛 샤워를 할 수 있다. 여기에 힘찬 해돋이를 마주할 수 있는 정남진 전망대와 회령진성, 안중근 의사를 배향한 해동사 등의 명소들을 돌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진다.①편백숲 우드랜드는 삼림욕을 겸한 산림휴양지다. 40~50년 된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100㏊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군데군데 삼나무도 섞여 있어 ‘피톤치드의 보고’라는 상찬을 받는다. 정확히는 편백나무가 70%로 주종을 이루고, 삼나무가 30%가량 섞여 있다. 편백숲은 주민들의 울력으로 만들어졌다. 1969년부터 우목리 등 인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노동력을 보태 우드랜드를 조성했다. 우드랜드에 들면 수직으로 높지거니 솟은 편백나무의 기세에 우선 놀란다. 한낮에도 어둡게 느껴지는 편백숲에서는 나무의 정령들이 날아다닐 것만 같다. 모든 게 삭아 내린 한겨울에 초록빛 나무와 마주하다 보면 눈이 저절로 정화되는 듯하다. 숲에 들면 나무의 향기와 청량한 공기가 동시에 밀려든다. 두 팔 벌려 마음껏 초록빛 샤워를 즐긴다. 삼림욕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 싶다. 우드랜드가 깃든 곳은 억불산(518m)이다. 산세가 여인의 고운 치마폭을 닮았다는 곳으로, 장흥의 대표적인 관광 아이콘 가운데 하나다.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정상까지는 무장애 데크길이 이어져 있다. 이른바 ‘말레길’로, 편백숲 사이에 목재데크를 깔아 장애인, 노약자 등 관광 약자들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게 했다. 지난해 우드랜드가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기까지 말레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전해진다. 말레길은 ‘소금집’ 옆에서 출발해 억불산 정상까지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리저리 돌아가는 방식으로 나무데크의 경사도를 낮췄다. ‘말레’는 호남 지역에 전해 오는 옛말로, ‘대청마루’를 뜻한다. 방과 방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말레’이니, 이해와 소통을 기원하는 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길이는 약 4㎞다.말레길 초입의 ②‘소금집’은 일종의 찜질방이다. 겨울 추위를 녹이기 좋다. 소금 마사지방, 해독방, 편백 반신욕방, 황토방 등 치유시설과 소금램프, 편백 반신욕기 등 체험물품, 풍욕장 등을 갖추고 있다.장동면의 ③해동사(海東祠)는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안 의사와 전혀 연고가 닿지 않는 곳에, 그것도 다른 성씨의 문중에서 이를 세우고 관리해 왔다는 게 놀랍다. 나라 안에서 안 의사를 모신 사당이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의외다. 게다가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 의사 기념관과 해동사의 경도가 126도로 같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기막히다. 안 의사의 위패와 영정 등을 모신 해동사는 1955년 조성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던 혼란기에 안홍천이란 장흥 지역 유지가 세웠다. 안 의사는 순흥 안씨, 안홍천은 죽산 안씨다. 순흥 안씨에서 떨어져 나온 성씨가 죽산 안씨라고는 하지만 혈연이라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당시 장흥의 재력가였던 안홍천은 안 의사의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사재를 털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도 죽산 안씨 문중에서 해마다 음력 3월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올해는 안 의사 순국 110주년이 되는 해다. 장흥군에서는 ‘해동사 방문의 해’ 등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일 년 내내 이어 갈 계획이다. 해동사 편액에 적힌 ‘海東明月’(해동명월) 글씨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사당 내부엔 안 의사 영정 2점과 친필 유묵 복사본이 보관돼 있다.④정남진 전망대는 장흥의 랜드마크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는 정남진 해변에 세워졌다. 전망대는 탁월한 해돋이 명소다. 소록도, 거금도 등 다도해의 섬들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관산읍 삼산리에 있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회진포구에 닿는다. 장흥 출신의 많은 문인이 ‘장흥 문학의 자궁’이라 표현했던 포구다. 키 낮은 집들 너머로는 장흥 바다가 부드럽게 능선을 그리고 있다. 이 일대의 바다 물빛이 참 곱다. 청잣빛 바다다.회진포구 뒤편 언덕에 ⑤회령진성이 있다. 남해 일대의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1490년(성종 21)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이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조선수군 함대를 이끌고 출정한 곳이기도 하다. 1597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회령포에서 12척의 배와 수군을 모아 임금의 교서를 들고 충성을 결의하는 군례인 ‘숙배’ 행사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회령진성 아래 조성된 12척 배 조형물은 이를 상징하고 있다. 글 사진 장흥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낙지는 회진면 대리의 수산물어판장(867-5024)에서 싸게 살 수 있다. 매일 아침 8시쯤 경매가 이뤄진다. 보통 세발낙지 한 마리에 2000~3000원 선이다. 초고추장만 사 가면 그 자리에서 싱싱한 낙지를 맛볼 수 있다. 매생이죽, 떡국 등을 맛보려면 내저마을 인근의 대덕시장으로 가야 한다. 바다횟집(867-2332) 등 식당들이 몰려 있다.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청태전은 안양면의 다예원(863-8758), 상선약수 마을의 평화다원(863-2974) 등이 알려졌다. 김국은 맛보기가 쉽지 않다. 진선식육식당(863-6668) 등에서 기본 반찬으로 김국을 낸다.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함께 먹는 ‘장흥 삼합’은 이미 장흥 식도락의 ‘전설’이 됐다. 만나숯불갈비(864-1818), 탐마루(862-8292) 등이 알려졌다.
  •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길

    등장인물 미노 : 15세이르 : 15세 장소 멕시코 남동부 치아파스에서부터 시작된 철길 위의 화물 기차. 캘리포니아주 근방의 국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무대 정중앙에 화물 기차의 트레일러가 놓여 있다. 트레일러의 양 측면에는 상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가 부착돼 있으며, 상부에는 화물을 싣기 위해 이용하는 핸들과 레일이 튀어나와 있다. 기차는 관객석을 마주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가정한다. 처음 넓고 메마른 땅 위 철길을 달리는 화물 기차. 미노와 이르, 트레일러 상부 핸들에 허리를 묶은 채 기차가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앉아 있다. 불그스름한 노란색 조명이 두 아이의 머리 위로 비춰진다. 노을이 지고 있다. 철길 위 기차 소리만이 옅게 울린다. 주변을 둘러보던 미노, 대뜸 질문을 던진다. 미노 어디쯤일까? 이르, 대답하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다. 지친 모습이다. 정적, 그리고 기차 소리. 미노 응? 여기는 어딜까? (사이) 너도 몰라? 이르…그게 중요해? 미노 중요하지. 그걸 알아야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잖아. 이르, 대꾸하지 않고 허리에 맨 밧줄을 만지작거린다. 미노 이르, 나 지도 좀. 이르 네가 꺼내. 미노 꺼내 줘. 미노, 이르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이르, 마지못해 트레일러 측면 사다리 쪽에 매어 둔 가방으로 손을 뻗는다. 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받지 않는다. 미노 얼마나 남았어? 이르, 미노를 흘겨보며 느리게 종이를 펼친다. 이르 터널 세 개, 아니, 두 개. 미노곧 있으면 이 길도 끝이네. 이르 아쉽냐? 미노 조금. 넌 어때? 이르, 다시 입을 다물고 철길로 고개를 돌린다. 미노 아쉽지 않아? (사이) 아니면 설레나? 이르 (기가 차다는 듯이) 대체 설렐 게 뭐가 있는데? 미노 앞으로 펼쳐질 일들 말이야. 너도 여기까지 와 본 건 처음이잖아. 이르 자꾸 종알대지 말고 조용히 해. 너 그러다가- 미노 (이르가 주의를 주는 모습을 따라하며) 떨어져, 중심 잃어, 터널한테 잡아먹혀! (미어캣처럼 허리를 곧게 피고 목을 늘여 먼 곳을 바라본다.) 터널 나오려면 한참 멀었겠다. 순간적으로 크게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급하게 밧줄을 묶은 핸들을 그러쥔다. 미노,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노 이르, 터널한테 잡아먹힌 사람 본 적 있어? 이르 (밧줄의 매듭을 확인하며 건성으로) 응. 미노 어떻게 생겼어? 이르 납작해. 미노 또띠야처럼? 이르, 불편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입을 다문다. 미노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말을 잇는다. 미노 우리 할머니 또띠야 진짜 맛있는데. 할머니는 맨날 일하러 다녔거든. 화요일이면 집에 오는 길에 꼭 옥수수 가루를 한 봉지씩 사 왔어. 만드는 방법도 다 기억해.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엉기지 않게 물을 조금씩 넣고- 이르 우리 놀러 가는 거 아니거든. 미노 알지. 우린 순례자들이잖아. 이르 …순례자? 미노 그래. 야수의 등허리에 올라타서 국경을 넘나드는 순례자.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뎌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근사하지 않아? 이르 (심드렁하게) 그래. 참 근사하다. 미노 미국에도 또띠야가 있을까? 맛있는 게 엄청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이) 없어도 괜찮아. 만드는 방법 기억하니까. 옥수수 가루 두 컵에 소금 한 꼬집, 한번에- 이르 (말을 가로채서 빠르게 읊는다.) 엉기지 않게 물 조금씩 넣어서 납작하게 눌러 굽는다고. 알았어. 미노 외웠네? 다행이다. 이르 그게 왜 다행이야? 미노 네가 꼭 먹어 봤으면 좋겠거든. 우리 할머니 또띠야는 그냥 시장에서 파는 거랑 달라. 이르 (건성으로) 그래. 미노 진짜야! 이르 알았다고. 둘이 투닥거리는 사이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미노, 푸르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La Llorona. 미노눈물 많은 여인아, 하늘빛 옷 입고 눈물 많은 여인아, 또다시 흐느끼네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미노, 노래를 멈춘다. 이르, 미노를 쳐다본다. 이르 왜 멈춰? 미노 그냥. 이르 다음 가사 몰라? 미노 알아. 이르 뭔데? 미노, 대답하지 않는다. 이르, 나머지 가사를 채워 노래한다. 이르 고달픈 삶에 길을 잃어도 사랑만은 그대로 그대로 머무리라 미노 이 노래 어디서 배웠어? 이르 그냥. 지나다니다가. 미노 나는 할머니가 알려 줬는데. (사이)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나중에 할머니도 미국으로 오시라고 해. 미노 그럴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니야. 이르 뭐가? 미노 우리 할머니는 올 수 있어도 안 와. 이르 왜? 미노 싫어하거든. 이르 미국을? 미노 엄마를. 이르 엄마가 돈 보내 줬다며. 미노 맞아. 덕분에 먹고살 수 있었지. 그래도 할머니는 날 두고 간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이르 엄마랑은 언제 헤어졌는데? 미노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돼서. 이르 그럼 얼굴도 모르겠네. 미노, 품속에서 너덜너덜한 사진 한 장을 꺼내 이르에게 내민다. 미노 우리 엄마래. 이르, 사진을 받아 들고 여자의 얼굴과 미노를 번갈아 관찰한다. 이르 어, 닮았네. 그… 입꼬리가 닮았어. 눈매도. 미노 안 닮았어. 이르 아니야, 여기 보면- 미노 할머니가 그랬어, 하나도 안 닮았다고. 이르 …야, 그래도 너 먹여 살리려고 그 먼 길을 간 거잖아. 곧 있으면 같이 살게 될 거고. 난 너 같은 애 처음 봤어. 미노 나 같은 애? 이르 가족 찾으러 가는 애들 중 절반은 전화번호 하나 없이 떠나. 끊긴 연락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그런데 넌, 너희 엄마가 코요테를 고용했다며. 널 미국으로 보내 달라고. 미노 응. 이르 넌 운이 좋은 애야. 이르, 사진을 돌려주려 한다. 미노, 고개를 내젓는다. 이르, 사진을 지도에 끼워 가방에 넣는다. 미노 그러면 너는? 이르 나는 뭐? 미노 운이 나빠? 가족이 없어서? 이르 그건 아닐걸. 미노 왜? 이르 아직 안 죽었잖아. 미노, 이르의 말을 곱씹는다. 이르, 손가락으로 기차 위 쌓인 먼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노 죽으면 운이 나쁜 건가? 이르 (건성으로) 몰라. 미노 혼자 다니는 거 안 무서웠어? 이르 그냥 그랬어. 미노 나쁜 사람들 많이 만났어? 이르 응. 미노 그럴 땐 어떻게 했어? 이르 …맞았어. 미노 그런데도 안 무서웠어? (대답이 없다.) 대단하다. 나는 혼자 있으면 무섭던데. 이르 다 컸는데 뭐가 무섭냐? 미노 혼자 지내 본 적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이르 곱게도 자랐네. 미노 할머니 보고 싶다. 이르 치아파스에 계셔? 미노 아니. 떠나셨어. (사이) 아주 멀리. 어색한 정적. 기차 소리. 미노 이르, 넌 미국 도착하면 어디로 갈 거야? 이르, 미노를 무시하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다. 미노, 그런 이르를 지켜본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미노, 달빛에 의지해 철길을 살핀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끝에 터널을 발견한다. 미노 터널이다. 이르, 급하게 허리에 묶은 밧줄을 풀고 상부에서 내려간다. 미노도 뒤이어 내려간다. 이르는 트레일러 왼쪽의 사다리를, 미노는 오른쪽의 사다리를 끌어안는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다 둘을 삼킬 것처럼 울린다. 이르 (큰 소리로) 미노, 꽉 잡아! 미노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응! 터널. 암전. 과거 미노 아저씨! 트레일러 위로 불이 들어온다. 미노, 앞서 핸들에 매달아 두었던 작은 가방을 끌어안은 채 움직이지 않는 트레일러 상부에 앉아 있다. 관객석을 향해 브로커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중이다. 미노 아저씨, 우리 엄마랑 통화해 봤어요? 우리 엄마 목소리 어때요? 저는 못 들어 봤거든요. 집에 전화기가 없어서요. 그래도 편지로 자주 이야기했어요. 제 이름이 그대로라서 다행이래요. 트레일러 아래로는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르, 무대 상수에서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미노 할머니가 엄마한테 그랬나 봐요, 이름 바꿔버릴 거라고. 근데 안 바꿨어요. 우리 할머니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왜 안 바꿨을까요? 이르, 이윽고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잡히고 만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이르, 엎드린 채 몸을 웅크린다. 여러 발들에게 걷어차인다. 미노 제 이름, 원래는 까미노로 지으려고 했대요. 길 말이에요. 한참 이르를 짓밟고 때리던 무리가 떠난다. 이르, 겨우 몸을 일으켜 걷는다. 무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갈라지는 목소리로)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이르의 걸음이 느려진다. 이르 저, 물 한 잔만. 한 모금만…. 이르, 끝내 주저앉고 만다. 그때 살짝 열리는 문 하나. 틈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이르를 비춘다. 손 하나가 컵을 내민다. 미노 길은, 어디서든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이르, 컵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 물을 마신다. 문이 닫힌다. 미노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랬어요. 이르, 비운 컵을 문 앞에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닫힌 문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느리지만 보다 힘찬 걸음걸이. 미노 아저씨.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요? 이르, 무대를 거닐다 다시 기차 곁으로 돌아온다. 트레일러 위로 오를 기회를 엿보던 찰나, 미노의 말을 엿듣는다. 미노 우리가 아니라, 나만 가요? 이르 (불쑥 끼어들며) 쟤 이틀도 못 버틸걸요. 미노, 이르를 내려다본다. 이르 저런 애들 많이 봤어요. 금방 떨어져 죽어요. 아니면 터널한테 잡아먹히든가. 미노 (다시 관객석을 향해) 나 혼자 가요? 이르 (다급하게) 저 이거 탄 적 많아요. 저번엔 소노라까지도 갔어요.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미국이에요. 저랑 가면 쟤 미국 도착할 수 있어요. 미노 (이르를 향해) 내 이름은 미노야. 이르 쟤가 미국 가야 아저씨도 돈 받는 거죠? 그렇죠? 미노 미노라니까. 이르 제가 같이 탈게요. 보름이면 가요. 미노 …같이? 이르 같이. 같이 타게 해 주세요. 물이랑 먹을 것도 조금만요. 이르, 간절하게 관객석을 바라본다. 미노,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르의 표정이 환해진다. 금세 트레일러 상부에 오르는 이르. 미노, 이르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미노몇 살이야? 이르 열다섯. 미노 이름은? 이르 …이르. 미노 ‘걷다’ 할 때 그 이르? 이르, 고개를 끄덕인다. 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암전. 다시 현재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차의 소리는 처음과 같이 옅다. 불 들어오면 두 아이, 여전히 사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다. 이르, 조심스럽게 트레일러 상부로 기어 올라가 반대쪽에 있던 미노에게 손을 뻗는다. 미노, 이르의 손을 잡고 올라온다. 이르, 미노의 허리부터 핸들에 묶는다. 매듭이 튼튼한지 수차례 확인하고 나서야 제대로 앉는다. 미노, 그 모습을 지켜본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르 (허리를 묶으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터널 하나. 이제 하나 남았어. 미노, 말이 없다. 이르 왜 그래? 배고파? 미노 아니. 이르가방에 크래커 조금 남았을 거야. 물도. 그거 먹어. 미노 괜찮아. 이르 곧 도착하잖아. 아낄 필요 없어. 미노 배 안 고파. 이르 그럼 왜 그래? 설마 너, 진짜 아쉬워서 그래? 미노 (말 돌리며) 그 코요테 아저씨는 왜 멕시코에 사는 걸까? 미국을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이르 (가방 속에서 물병을 꺼내 내밀며) 미노. 미노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 미국이 그렇게 멋지고 살기 좋은 곳이면, 그 아저씨는 왜 계속 코요테로 사는 걸까? 이르, 미노를 흘겨보다 물을 마신다. 이르 (물병을 가방에 넣으며) 모두가 같은 꿈을 꾸지는 않아. 미노 그럼 코요테들은 무슨 꿈을 꾸지? 이르 아무 꿈도 안 꿀걸. 미노 왜? 이르 머리에 든 게 돈밖에 없으니까. 미노 너는 코요테 아저씨가 싫어? 이르 응. 미노 나는 좋았는데. 이르 그 아저씨가 잘해 줬어? 미노 아니. 이르 그런데 왜? 미노 코요테니까. 이르 브로커들이 멋있어 보이디? 미노 브로커를 코요테라고 부르는 게 멋있어 보이는 거야. 이르 그게 그거지. 미노 엄연히 달라. 다시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이르, 경직돼 핸들을 붙든다. 흔들림이 잦아들자 허리 매듭을 확인한다. 미노, 아무렇지 않게 말을 잇는다. 미노 진짜 코요테들은 평생 가족들이랑 무리 짓고 산대.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댔어. 이르 사람보다 낫네. 미노 그치? 나도 코요테로 태어날걸 그랬나 봐. (사이) 너, 진짜 코요테 본 적 있어? 이르 아니. 미노 나도. 이르 늑대랑 비슷하게 생겼대. 미노 그건 알아. 이르 그럼 대충 짐작되잖아. 미노 늑대도 직접 보진 못했단 말이야. 이르 직접 봤으면 아마 밥이 됐을 거다. 대화가 끊긴다. 이르, 미노의 눈치를 본다. 이르 (달래려는 듯이) 넌 운이 좋은 애니까 늑대를 만난 적이 없는 거야. 걔네 엄청 사납댔어. 미노 정말? 이르 그래. 미노 (시무룩해져서) 그럼 평생 못 보겠네. 다시 정적. 기차 소리. 이르, 떠오른 것이 있는 듯 미노의 어깨를 붙잡는다. 이르 미노, 늑대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어. 미노뭔데? 이르 상상. 미노 상상? 이르늑대를 봤다고 상상하는 거야. 미노 (실망하며) 뭐야. 이르 처음엔 그렇게 시작해야 돼. 자, 말해 봐. 늑대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미노 음… 털이 많아. 이르 그렇지. 미노 갈색. 그리고 검정색. 회색도. 이르 배 쪽에 있는 털은 흰색이랬어. 미노 (점점 신이 나서) 꼬리가 복실복실해. 이르 귀는 삼각형이야. 미노 주둥이가 길어. 이르 눈이 날카로워. 미노 밤엔 막 등불처럼 빛나고. 이르 엄청 빨라. 미노 그리고 높은 소리로 울어. 두 아이들, 동시에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다 웃음이 터진다. 이르, 재빠르게 표정을 굳힌다. 이르 아직 안 끝났어.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다 상상했어? 미노 응. 이르 눈 감아 봐. 미노, 눈을 감는 척하다가 슬쩍 뜬다. 이르, 미노의 눈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덮는다. 이르 아까 말한 걸 되새겨 봐. 털이랑, 꼬리랑, 귀, 주둥이, 눈…. 미노, 얼굴을 찌푸리며 머릿속으로 늑대를 만들어 낸다. 이르 어때? 그려져? 미노 …늑대다! 이르 그래. 늑대는 어디 있어? 미노 끝없이 펼쳐진 들판. 이르 거기서 뭘 하는데? 미노 달리고 있어. 바람을 거스르면서. 이르 맞아. 늑대는 달리는 중이야.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온몸의 털이 춤을 추지. 갈색, 검정색, 회색…. 여러 색들이 한 데에 섞여서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어. 그렇게 달리다 햇살 아래 멈춰 서면, 털 한 올 한 올이 타오르는 것처럼 번쩍여. 미노, 탄성을 터트린다. 이르 늑대는 왜 멈췄을까? 미노 어, 사냥을 하려고? 이르 그렇지. 털만큼이나 번쩍이는 매서운 눈이 사슴을 발견했거든. 미노 사슴아, 도망가! 이르 쉿. 사슴은 풀을 뜯느라 바빠. 늑대가 자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있다고. 늑대는 몸을 낮춰서 살금, 살금, 살금, 다가가다가…. 이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큰 소리로 미노를 놀랜다. 미노,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다. 허리에 묶은 밧줄이 미노를 다시 트레일러 위로 앉힌다. 미노 (꿈에서 깬 듯이) 나, 늑대를 봤어. 이르 그래. 그렇게 상상하는 거야. 미노,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미노 진짜로 봤어. 이르 알았어. 진짜 본 거 맞아. 미노 코요테는? 코요테도 볼 수 있을까? 이르 그럼. 미노 코요테가 될 수도 있고? 이르 뭐든 할 수 있어. 미노, 한껏 신난 모습으로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상상 속에 빠진다. 이르, 미노를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날이 밝기 시작한다. 마지막 터널이 안개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르, 터널을 발견하고 미노의 옆구리를 찌른다. 미노,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낸다. 이르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터널. 두 아이들, 밧줄을 풀기 시작한다. 겹쳐 묶은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터널을 보며 허겁지겁 매듭을 푼다. 이윽고 트레일러 측면으로 내려가 사다리에 몸을 밀착시킨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르 (소리친다.) 미노! 꽉 잡아야 해!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르, 위를 올려다보자 막 매듭에서 풀려난 미노가 몸을 일으키고 있다. 중심을 잡으려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이르 뭐 해! 내려가! 미노, 이르의 외침에도 꿈쩍 않고 트레일러 위에 꼿꼿하게 서서 터널만을 바라본다. 이르 너 미쳤어? 얼른 내려가라니까! 미노 (나직하게) 나, 정말 됐어. 이르 미노! 내려가! 미노 코요테가 됐어. 이르 미노! 미노, 터널을 끌어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린다. 이르, 눈을 질끈 감는다. 기차의 소리가 귓등을 때린다. 마지막 터널. 암전. 기차 소리가 끊긴다. 침묵 끝에 헤드라이트를 닮은 불이 트레일러 위를 비춘다. 미노가 앉아 있다. 미노, 널브러진 밧줄을 만지작거리며 노래한다. La Llorona의 멜로디. 미노 고달픈 삶에 길을 잃고도 사랑이 그대로 그대로 머물까? 눈을 가린 여인아, 뒤늦은 후회로 눈을 가린 여인아, 손을 내밀어도 죽음의 기차 위에 선 아인 잡을 수 없었다네 계절이 가도 푸른 소나무 그대로 머물 수밖에 마지막 기차 소리 점점 커졌다가, 불 들어옴과 동시에 서서히 잦아들어 옅게 깔린다. 이르, 다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트레일러 위로 올라간다. 미노, 멀쩡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르 너… 너 괜찮아? 미노,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이르, 혼란스러운 표정. 이르 너 정말로-. 미노 이르, 미국이야. 두 아이들, 얼마 남지 않은 철길을 멍하니 응시한다. 미노 나 가방 좀. 이르, 얼떨떨하게 사다리에 묶여 있던 가방을 풀어 미노에게 건넨다. 미노, 망설이다가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지도를 꺼내 펼치자 엄마의 사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르에게 내민다. 이르, 어리둥절하게 받아든다. 미노 뒤에 봐. 이르, 사진을 뒤집는다. 낯선 주소가 쓰여 있다. 기차, 서서히 멈춘다. 이르, 급하게 짐을 챙긴다. 이르내려야 돼. 미노 이르. 이르 지금 안 내리면 붙잡혀. 얼른 내려야 돼. 지도와 사진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사다리를 타는 이르. 한 발짝씩 아래로 내딛다 끝내 뛰어내린다. 두 발이 땅에 닿는다. 이르 미노. 얼른 내려와. 미노 이르, (긴 사이) 난 못 내려. 이르의 얼굴에 서서히 깨달음이 번진다. 이르 …언제부터? 미노 그게 중요해? 이르, 대답하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한다. 미노 있잖아,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상상하는 거야. (트레일러 끝 모서리에 걸터앉는다.) 이르, 나에 대해서 아는 거 뭐 있어? (대답이 없자) 어서. 이르 (훌쩍이며 천천히 나열한다.) 치아파스랑, 또띠야랑… 할머니. 까미노. 열다섯 살. 미노 엄마도. 이르, 미노의 가방에서 사진을 꺼낸다. 사진과 미노를 번갈아 본다. 미노 찾아갈 수 있겠지? 이르, 사진을 품속에 넣는다. 미노 자. 이제 눈 감아 봐. 이르,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미노 어때? 그려져? 고개를 젓는 이르. 미노 아니야. 할 수 있어. (사이) 하나씩, 하나씩. 멈추지 말고. 이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 주변을 빙 둘러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미노, 이르를 지켜본다. 미노 모르는 게 있을 땐 채워 넣으면 돼. 늑대가 되어서, 코요테가 되어서. 이르 (중얼거린다.) …미노가 되어서. 이르, 멈춰 서서 품에서 사진을 꺼낸다. 뒷면에 적힌 주소와 눈앞의 집을 번갈아 본다. 도착이다. 미노, 허공에 대고 문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이르, 따라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미노, 트레일러 상부에서 일어난다. 미노 (기대에 찬 얼굴로) 누구세요? 이르, 한참의 고민 끝에, 이르 저는, 암전. 막.
  • 가수 양준일 “한국서 난리났는데 서빙하면 어떡하냐더라”

    가수 양준일 “한국서 난리났는데 서빙하면 어떡하냐더라”

    가수 양준일이 31일 팬미팅을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갑작스런 인기에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양준일은 이날 서울 광진구 능동로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2019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진행은 팬미팅 진행자이기도 한 작사가 김이나가 맡았다. 양준일은 무대에 올라 수많은 취재진을 보며 “저 보러 오신 게 맞냐. 저 지금 너무 놀랐다. 3~5명 올 줄 알았다. 정말 이렇게 많이 올 줄, 이런 게 처음이다”라며 깜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이어 “너무 감사하다. 머리 속에 있는 나의 이미지가 아직 조금 헷갈리는 상태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냥 (식당) 서버였는데 여러분들이 저를 이렇게 보러 왔다는 것 자체가 좀 믿겨지지 않는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양준일은 지난 1991년 데뷔해 히트곡 ‘가나다라마바사’, ‘리베카’ 등의 히트곡을 남겼지만 2집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V2로 활동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 등 유튜브를 통해 그의 음악이 새롭게 조명되며 시대를 초월한 가수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날 2회에 걸쳐 팬미팅을 연 양준일은 한국에 팬미팅을 하러 온 것에 대해 “사실 제가 대한민국을 굉장히 좋아한다. 가수 활동을 안 할 때도 영어 공부 가르치면서 한국에 있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며 “그런데 돌아갈 때는 한국에 다시는 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리고 대한민국에 있으면서도 대한민국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다가가기 힘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다가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미국에 갈 땐 몸이 떠나가면서 영영 떠나갈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안 살고 있단 것이 오히려 낫다고 제 자신을 설득한 것 같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가맨’에 돌아온 것 자체도 굉장히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양준일은 유튜브로 시대를 초월한 가수로 새롭게 조명된 뒤 JTBC 음악예능 ‘슈가맨’에 출연해 50대란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춤솜씨로 각광받았다. 그는 ‘슈가맨’ 출연에 대해서는 “전화가 왔고, 원래 제가 전화를 안 받았고, 다른 서버가 전화를 대신 받았는데 대한민국에서 난리가 났는데 서빙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짜증을 내더라. 형 전화받으라고 짜증을 내더라.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스튜어디스 분들이 다 알아보고, 제가 아이와 타고 있어서 맨 마지막에 내리는데 비행기 마무리하시는 청소하는 분들이 다 알아보시더라. 이게 무슨일이지 생각했다”며 “저도 설마했고, 그 분들도 설마 했다. 사실 아직까지 적응 중이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러왔다는 것 자체가 쇼크다”라고 놀라워했다. 한편 양준일은 데뷔 30여년 만에 최초로 광고모델로 발탁되어 롯데홈쇼핑 광고를 촬영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공수처 표결 직전까지 서로 맹공

    공수처 표결 직전까지 서로 맹공

    국회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30일 본회의에서 표결하기 직전까지 여야는 극한 대치를 이어 갔다. 공수처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자유한국당은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 균열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한국당은 이날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의 양심에 호소하며 공수처법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용기 있게 행동해 달라”며 “헌법 사상 최악의 법이 20대 국회를 통과하는 데 협조한다면 역사가 여러분을 어떻게 기록할지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하라”고 말했다. 실제 4+1 협의체 소속인 바른미래당 당권파 의원 일부는 공수처법에 거듭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은 페이스북에 “여권과 일부 의원이 검찰개혁을 위해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은 검찰개혁과 무관하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바른미래당 당권파인 김동철, 주승용 의원도 공수처법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28일 4+1 협의체의 공수처법에 대해 수정안을 낸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권은희 의원은 무기명투표를 요구했다. 4+1 협의체 소속 의원들이 무기명투표를 하게 되면 눈치를 보지 않고 ‘권은희안’에 찬성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한국당을 향해 “권은희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최악의 공수처를 막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권은희안’에 대해 “실질적 기능을 거의 못 하는 공수처를 만드는 법”이라고 평가하며 4+1 협의체의 공수처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권 의원의) 수정안은 차라리 공수처 무효법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며 “공수처를 무력화하면서 정치 소용돌이에 빠지게 하는 안이기 때문에 공수처법으로서의 역할을 못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는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검찰을 견제해 국민을 위한 검찰로 바꾸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두 손 이식 일년 뒤 “캔의 차가움 느끼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두 손 이식 일년 뒤 “캔의 차가움 느끼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아들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진짜로 껴안아보고, 손을 맞잡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영국 렌프류셔주 로크위녹에 사는 코린 허튼(48)은 지난 1월 두 손을 이식하는 수술대에 올랐다. 2013년 폐렴과 패혈증을 앓아 두 손과 두 발 모두 잘라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녀에게 두 손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도 헤어졌다. 그런데 이식 수술을 받겠다고 결심한 뒤에도 맞춤한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맞춤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달려가 보면 혈액형이 맞지 않거나 피부 조직이 완전히 다르거나 손 크기가 다르거나 해서 헛물을 켠 것이 십수 번이었다. 그렇게 5년을 기다린 끝에 리즈종합병원에서 사이먼 카이 박사 집도로 12시간 수술을 받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두 손을 동시에 이식한 것은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녀가 처음이었다.그런데 손끝까지 감각이 돌아오는 데 또 일년이 걸린 것이다. 이제는 아들 로리(11)의 손을 맞잡거나 컵을 쥐었을 때 차가운 느낌을 체감하고 있다. 여느 어머니라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을 일을 일년의 노력 끝에 해냈다. 자선재단 ‘당신의 발 찾기(Finding Your Feet)’를 만든 코린에게는 세상을 얻은 것이나 진배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거나 목욕 시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아들의 손을 맞잡고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처럼 어쩌면 그들 자신을 떠들썩하게 흥분시키지 않는 자그마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 많은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진정 뭔가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코린은 면역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처음 6개월은 꼼짝없이 병원 침상에 누워 지냈다. 하지만 지난 5월 무렵부터 “거의 새것 같은” 두 손이 의수보다 낫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주 기초적인 일조차 남의 손을 빌어야 했지만 갈수록 나아졌다. 지금도 주로 의수를 쓰지만 이따금은 새 손으로 직접 운전해보기도 한다. 또 최근 반년 동안 심리치료도 받고 있다. 오른손은 거의 쭉 펼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왼손은 조금 더 사용해 구부린 것을 펼 필요가 있다고 했다.더욱 좋은 신호는 손으로 차갑고 뜨거운 것을 분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엄청난 순간이었다. 갑자기 주스 캔을 만지니 차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에는 손끝으로 느꼈는데 이제는 온손으로 느낀다.” 올해는 재활에 더욱 집중했던 만큼 새해부터는 절단 장애인과 가족을 돕기 위해 만든 재단 ‘당신의 발 찾기’ 일 등 다른 이를 돕는 데 더 열중하겠다고 다짐했다고 BBC가 전했다. 내년 3월에 하프마라톤 대회를 열 계획이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일이 긍정적인 삶을 지키는 데 비결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은 날 주저앉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내 다리를 되찾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 스스로를 많이 생각하지 않을수록 스스로 더 낫게 여기게 되더라.” 코린은 또 “기증자 가족이 ‘이제 당신이 손들의 주인이네요.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 살아주세요’라고 말하더라”면서 “하지만 난 (두 손을 기증한) 그녀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구속 보단 제구” AL 타선 잠재울 류현진의 무기

    “구속 보단 제구” AL 타선 잠재울 류현진의 무기

    “구속 낮다” 질문에 자신의 강점 어필제구 되는 6개 구종… 타자 교란시켜 어려서부터 제구 강조한 아버지 영향송재우 “류, 커맨드 좋아 적응할 것” “투수는 구속보다 제구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지난 28일(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자신의 제구력으로 아메리칸리그(AL)의 강타선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류현진은 이날 열린 입단식에서 한 기자가 구속이 빠르지 않다는 단점을 언급하자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가운데 던지면 홈런을 맞을 수 있다. 스피드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며 던졌고 지금도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단점에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의 성공 비결이었던 장점에 더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류현진이 새로 둥지를 튼 AL은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NL)에 비해 타자 친화적인 구장과 공격적인 성향으로 인해 타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류현진도 그동안 NL 구단들을 상대로 통산 111경기에서 50승 29패 평균자책점 2.86로 강했지만 AL 팀을 상대로는 통산 15경기에 등판해 4승 4패 평균자책점 3.84의 성적으로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 지난 8월 뉴욕 양키스와의 맞대결에서 4와3분의1이닝 7실점으로 올해 가장 부진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과거 성적에 비춰보면 류현진의 AL행에 물음표가 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토론토가 속한 AL 동부지구는 DJ 르메이휴(양키스·0.327), 라파엘 데버스(보스턴 레드삭스·0.311) 등 AL 타율 상위 10명 중 4명이나 포진해있을 정도로 강타선으로 유명하다.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의 장점으로 물음표를 자신있게 지우겠다는 태세다. 스트라이크존의 보더라인을 넘나드는 류현진의 제구력은 올해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32로 전체 1위에 오르는 무기가 됐다. 류현진은 올해 탈삼진이 163개로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280개(전체 7위)의 땅볼을 유도해 뜬공 대비 땅볼 비율이 1.11(7위)에 달할 정도로 타자들을 잘 유인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90.7마일(시속 145.9㎞)로 빠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과 완급조절 덕분이었다. 타자들은 류현진의 공을 방망이의 중심에 제대로 맞추기 어려워했고, 류현진은 위기 때마다 병살을 유도해내며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야후스포츠 캐나다’의 앤드류 주버 기자 역시 지난 28일 “류현진이 전통적인 무기(구속) 없이도 성공했다는 게 인상적이다”면서 “그는 핀포인트 제구력으로 직구, 커터, 싱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까지 6구종을 던지는데 5가지 구종을 각각 최소 12% 비율로 구사하면서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고 분석했다. 이어 “류현진은 공짜 출루에도 인색해 볼넷 비율이 3.3%로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류현진은 한국 무대에 있을 때부터 제구력을 강조해왔다.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피홈런에 대해 질문이 나올 때면 류현진은 “볼넷보다는 차라리 홈런이 낫다”는 말을 종종 꺼내기도 했다. 이러한 류현진의 모습은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단련시킨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류현진은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홈런을 맞더라도 볼넷을 주지 말라. 볼넷은 최악이다’라는 말을 노래삼았다”면서 “어린 시절에도 홈런을 맞으면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들었지만 볼넷을 허용한 날이면 어김없이 호된 꾸중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 위원은 29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류현진이 워낙 커맨드가 좋은 선수라서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을 것”이라면서 “아메리칸리그에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경기 표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속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천재형 투수인 류현진이 작년부터 상대 타선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는 느낌이 있다”면서 “본인이 지난 2년 동안 보인 모습만 유지한다면 큰 문제는 안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라이드온] 날렵한 외모, 역대급 스펙… 2030 홀린 ‘차도남 K5’

    [라이드온] 날렵한 외모, 역대급 스펙… 2030 홀린 ‘차도남 K5’

    기아자동차 중형 세단 ‘K5’는 ‘양카’(양아치차)라는 씁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난폭하게 운전하는 자동차는 어김없이 K5’라는 경험이 사회 곳곳에서 누적돼 생겨난 은어다. 그런 K5가 지난 12일 멋스러운 외모에 스포츠카의 주행 감성을 탑재하고 돌아왔다. 2015년 이후 4년 만에 출시된 3세대 모델이다. 신형 K5에 대한 자동차 시장의 반응은 초반부터 예사롭지 않다. 차량 디자인이 극찬을 받은 데 이어 엔진 성능과 첨단 기능까지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고객층은 ‘2030세대’다. 사전계약에서도 고객 1만 6000여명 가운데 20~30대가 53%로 절반이 넘었다. 신형 K5가 10년 묵은 ‘양카’라는 오명을 털어내는 것은 물론 ‘숙적’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제치고 중형 세단 왕좌에 등극하는 기분 좋은 사고를 치게 될까,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조롱의 대상으로 남게 될까.#잘생겼다멋스러운 디자인, 타이거페이스 진화파나메라 닮아 ‘조선 포르쉐’ 별칭도 신형 K5는 날렵한 스포츠 세단의 모습을 갖췄다. 전면부 그릴은 신형 쏘나타보다 얇게 디자인됐다. 날카로운 그릴 패턴은 ‘샤크 스킨’(상어 껍질) 직물을 모티브로 한다. 하이브리드 모델의 그릴은 돛단배 모양으로 만들어져 상대적으로 순한 이미지를 가졌다. 기아차 측은 ‘타이거 노즈’(호랑이 코) 디자인이 ‘타이거 페이스’(호랑이 얼굴)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푸조 ‘508’, 쉐보레 ‘카마로’의 얼굴과도 조금 닮았다. ‘√’ 모양의 주간주행등은 ‘하트비트’(심장박동)를 형상화했다. 후미등에도 같은 디자인이 적용됐다. 사이드미러에서 시작되는 측면 크롬 몰딩은 트렁크 위를 지나 반대편 사이드미러까지 끊이지 않고 선으로 쭉 연결됐다. 루프라인은 트렁크 끝에 닿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트렁크와 뒷창문이 함께 열리는 패스트백 차량 같은 느낌을 줬다. 이런 옆 모습이 독일 포르쉐의 ‘파나메라’를 닮았다는 이유로 신형 K5를 ‘조선 포르쉐’라고 칭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다. ●10년 묵은 ‘양카’ 이미지 훌훌 후미 램프는 요즘 유행하는 좌우로 길게 쭉 이어진 형태로 디자인됐다. 또 램프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어 뒤에서 봤을 때 더 입체감이 들어 멋스럽다. 점등 패턴은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점선 모양이 적용됐다. “신형 K5의 절취선 모양 후미등보다 현대차 ‘더 뉴 그랜저’에 적용된 한 줄로 길게 이어진 램프 디자인이 더 낫다”는 지적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램프의 점선 굵기가 바깥쪽으로 갈수록 더 두꺼워져 입체감과 원근감, 속도감을 준다는 점에서 디자인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뒷범퍼 아래 크롬으로 꾸며진 장식용 머플러는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다.#똑똑하다‘테마형 계기판’ 환경따라 배경 변화창문 열고 닫는 것도 음성으로 제어 신형 K5의 실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디자인됐다. 디지털 계기판과 앰비언트 라이트, 그리고 아날로그 감성의 클래식한 나무 재질 마감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맑음, 흐림, 비, 눈 등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배경이 바뀌는 12.3인치 테마형 계기판도 최초로 적용됐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 그랜저나 쏘나타에도 탑재되지 않은 신형 K5만의 품목이다.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실내 10.25인치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와 공기조절 장치는 비대칭 형태로 운전자 쪽을 향해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둘 사이에 작은 가림벽이 설치돼 경계가 더욱 명확해졌다. 그래서 운전석에 앉으면 배려받는 느낌이 들었고, 조수석에 앉으면 나만의 공간에 앉아 있는 듯했다. 변속기는 전자식 변속 다이얼이 장착됐다. 콘솔박스 바로 앞에 있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은 기기를 세워서 거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미세먼지 센서가 포함된 공기 청정 시스템도 최초로 탑재됐다. 신형 K5에 장착된 첨단 기능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음성 인식 차량 제어’ 기술이었다. 한층 개선된 ‘카카오i’가 탑재되면서 공조장치를 작동하는 것은 물론 음성으로 창문을 열고 닫는 것도 가능했다. 또 뉴스, 날씨, 주식, 환율, 운세 등 포털사이트로 검색할 수 있는 웬만한 정보는 모두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아차가 신형 K5 슬로건으로 ‘플레이 인터랙티브’(상호작용하라)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집안의 조명, 가스 밸브 등 사물인터넷(IoT) 기기의 동작을 차 안에서 제어할 수 있는 ‘카투홈’과 키·앉은키·몸무게를 설정하면 최적의 시트 포지션을 맞춰주는 ‘스마트 자세 제어’, ‘내비게이션 무선 업데이트’ 기능 등도 적용됐다.#잘 달린다1.6 터보, 스포츠카 같은 경쾌한 질주커브길도 쏠림 없는 안정적인 코너링 기아차는 지난 12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서울 비스타홀에서 신형 K5 출시 행사에 이어 미디어 시승행사를 열었다. 시승은 비스타홀에서 출발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자유로를 타고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의 한 카페까지 가는 편도 81.5㎞ 구간에서 진행됐다. 시승 차량은 1.6 가솔린 터보 모델이었다. 운전석에 앉으니 D컷 운전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원형 운전대의 밑동을 깎은 D컷 운전대는 운전대가 무릎이나 허벅지에 닿지 않도록 고안된 운전대로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에 주로 적용된다. ●승차감 보단 성능 기아차가 신형 K5 라인업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난 1.6 터보 모델을 시승차로 내 놓은 이유는 확실했다. 스포츠 모드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니 마치 스포츠카로 변신한 듯 우렁찬 엔진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달려나갔다. 서스펜션(현가장치)도 더 단단하게 세팅돼 커브길을 급격하게 돌 때 몸이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지 않았다. 다만 승차감은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지닌 다른 차량만큼 안락한 편은 아니었다. 똑같은 1.6 가솔린 터보 엔진이 장착된 쏘나타 센슈어스를 몰았을 때와 비교하면 신형 K5의 움직임이 조금 더 가볍게 느껴졌다. 신형 K5 1.6 가솔린 모델에는 스마트스트림 G1.6 T-GDi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27.0㎏·m, 복합연비는 13.8㎞/ℓ다. 판매가격은 개별소비세 5% 기준으로 트렌디 2475만원, 프레스티지 2760만원, 노블레스 2955만원, 시그니처 3200만원이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울산시장 당내 경선 의혹’ 임동호 압수수색 당일 출국

    ‘울산시장 당내 경선 의혹’ 임동호 압수수색 당일 출국

    울산시장 당내 경선을 포기하는 대가로 청와대로부터 고위직을 제안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검찰 수사를 받는 중에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24일 임 전 최고위원의 주거지와 차량을 압수수색했다. 그는 앞서 두 차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으며 이날 압수수색에 참관한 뒤 외국으로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행선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임 전 최고위원을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참고인으로 보고 있다. 임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2월 울산시장 출마를 선언했으나 송철호 현 시장이 단독으로 공천받았다. 검찰은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일본 고베 총영사 자리를 내주겠다고 언급하며 경선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수석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 전 수석의 후보자 매수·이해유도 혐의 수사를 위해 임 전 최고위원에 대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이익을 받거나 의사표시를 승낙한 사람 역시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임 전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경선 포기 대가로 고위직을 제안받은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고위원이 될 때부터 총영사 얘기는 있었고 2017년 7월쯤 임 실장, 한 수석,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사적으로 만날 때 그런 얘기가 오갔다”면서 “이후 ‘총영사보다는 공공기관이 낫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는데 저는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조커’ 따라하기/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커’ 따라하기/손원천 문화부 선임기자

    세밑,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때다. 저마다 선연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요즘 말로 ‘원 픽’쯤 되려나. 개인적으로는 영화 ‘조커’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포스터에도 쓰였던 그 장면. 긴 계단을 내려오던 조커(호아킨 피닉스 분)가 부러져라 허리를 젖히며 웃어대던 그 장면 말이다. 세상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하고 통쾌했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타악기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리듬은 고조되는 흥분의 불쏘시개로 모자람이 없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인물처럼, 아웃 포커싱된 채 우주인처럼 서 있던 두 형사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각별했다. 이른바 ‘N차 관람’을 통해 다시 확인한 그 장면은 들인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한 컷 한 컷 완벽한 프레임을 선사했다.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영화팬들 사이에서 그 장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이어졌다.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건 계단을 오르기는 죽을 만큼 힘들지만 타락하는 건, 혹은 추락하는 건 너무 쉽다는 걸 말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삼이사들의 팍팍한 삶이 그 장면에 그대로 담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다리 아래에서 꾹꾹 눌려지내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폭동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미국 사회 전체가 전전긍긍했겠지. 한데 타락했기 때문이라고만 보기에는 내려오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타락에 이르는 과정이 그리 쉽지도 않았지만, 설사 타락했다고 해서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 같지는 않다. 자신감이 듬뿍 얹힌 그 발걸음을 설명해 주는 단어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변화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릴 때 찾아온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과도 맥이 통한다. 조커는 다 버렸다. 본인이 원했건 그렇지 않건. 버려야 할 것들에 집착했다면 조커는 변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지도 못했다. 카드나 화투를 쳐 본 사람은 안다. 조커의 역할을. 뭔가 큰 게 떴을 때, 한결 더 폭을 키워 주지만, 조커 자체로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조커는 그런 카드다. 그래서 조커에는 어딘가 결여와 결핍의 이미지가 늘 따라다닌다. 영화 속 조커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가 그 자체로 중요한 인물로 변한 건 가진 걸 버렸을 때부터였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스스로를 비우기 시작한다. 여름 내내 치열하게 키워 낸 잎들도 아낌없이 버린다. 스치기만 해도 살갗을 찢을 만큼 혈기방장했던 억새도 한여름이 지나면 속을 비우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이쯤 되면 나무나 억새의 처세술이 사람보다 낫지 싶다. 비우는 시기를 놓쳐 애써 쌓아 올린 명망을 잃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니 말이다. 세밑이라고 달라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긴 레이스와 다름없는 인생에서 그저 작은 매듭 하나가 묶여졌을 뿐이다.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이나마 특별해진 건 조커를 닮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악당 노릇까지 따라하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그가 그 자체로 완성된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버려야 할 건 과감히 버렸던 그 결단만은 따라잡고 싶다. angler@seoul.co.kr
  • “논리력 감퇴” 유시민 공격에 진중권 “쓸데없이 인신공격”

    “논리력 감퇴” 유시민 공격에 진중권 “쓸데없이 인신공격”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튜브 방송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논리적 사고력’을 거론하며 비난하자, 진중권 교수가 이를 맞받아쳤다. 진중권 교수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중권의 논리적 사고력은 그 동안 살아본 경험까지 보태져 10년 전보다 낫다”고 밝혔다. 유시민 이사장이 전날 유튜브 방송에서 “진중권 교수의 장점은 논리적 추론 능력과 정확한 해석 능력이었다. 진중권 교수 스스로 자신의 논리적 사고력이 1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감퇴했는지 자가진단 해 봤으면 한다“고 말한 것을 맞받아친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이 분, 왜 이렇게 과잉반응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쓸데없이 인신공격을 하시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중권 교수는 이어 “유시민 작가,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저게 다 자신의 발언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유시민 작가의 일관된 삶의 태도의 발로라 이해합니다”라면서 “이 분, 60 넘으셨죠?”라고 묻기도 했다. 이는 유시민 이사장이 2004년 한 강연에서 나이가 들면 사람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나는 6대에는 가능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부터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노인 폄하 논란에 휩싸였던 것을 상기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진중권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표창장 위조 의혹과 관련해 유시민 이사장이 최성해 동양대 총장과 통화한 것에 대해 “취재가 아닌 회유”라고 주장하며 유시민 이사장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진중권 교수는 최근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학에 사표를 낸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피곤한 연말, 주변에 선을 그어라

    피곤한 연말, 주변에 선을 그어라

    송년회와 연말 업무에 찌든 직장인들지인보다 내 상태를 먼저 생각하고나를 희생한다면 적당한 선 그어야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의 직장인이라면 연말 송년회 때문에 불편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몸이 피곤한 건 물론 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거나 짜증이 나고, 더 나아가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위 ‘그놈의 인관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돼 새해를 맞는다. 이는 아마 전세계의 공통 현상일테다.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에 게제한 글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연말에 살아남는 법을 6가지로 정리한 내용이다. 첫째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라’다. 가장 기본이지만 맘대로 잘 안되는 부분이다. 연말이면 몰리는 일과 각종 송년회로 낮밤이 바쁜 경우가 많다. 해당 글에 등장하는 힐링 전문가인 에밀리아 오르티즈는 ‘계절의 변화와 관련된 우울증의 일종인 계절적 정서 장애는 1000만 명의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자연과 매한가지로 가을의 수확 이후에 오는 겨울은 사람에게도 에너지 사용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휴식기’다. 연말의 과중한 약속이 예상보다 큰 정신 소모를 가져올 수 있는 이유다. 매일 같은 시간에 휴대전화 알람을 맞추고 ‘마음아 어떻니’라고 묻는 것도 정신을 쉬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NYT는 제언한다.둘째는 ‘연말 행사에 제한을 두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정신적 여유에 맞게 행사 수를 제한하라는 충고다. 거절할 모임이라면 빨리 알리는 게 낫다. 마지막까지 기다리다 취소하면 행사 주최자도 곤란하다. 거절 하기가 힘들다면 ‘예의 바르게 행동하되, 지나치게 설명할 필요 없다’는 원칙을 상기하자. 행사에 가기로 했다면 제한 시간을 정하는 것도 좋다. 컨퍼런스 전문가인 제니퍼 루돌프 월시는 “나는 항상 6시부터 8시까지가 아주 재미있다고 말한다. 평생 제2의 장소로 끌려간 적이 없으며, 만족하며 떠난다”고 말했다. 셋째는 ‘친구 및 가족과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범주까지 친해지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나의 욕구다. 스스로에게 신체적, 정서적, 지적으로 어느 정도를 공유했을 때 편안한 지를 물으라는 의미다. 만일 특정인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무시해선 안 된다. 특히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수용하기 위해 내 감정을 희생한다면, 경계선을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넷째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라’다. 미국 역시 가족이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모양이다. 사례로 등장하는 카우프만은 “우리 가족은 소위 ‘버튼’을 제대로 설치하는 사람들이고 어떻게 정확히 누르는지 안다”고 표현했다. 상처는 열리고, 또 다시 열린다. 이런 상처들을 치료할 수단이 필요하다면 쉬는 기술, 대처하는 기술, 혹은 가족의 특정 구성원에게서 지지와 사랑을 얻는 법 등을 찾아야 한다. 적어도 숨을 쉴 공간이 필요하고, 일례로 산책을 하는 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다섯째는 ‘술을 재평가하라’는 것이다. 만일 즐거움과 술이 동의어라면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술이 불안을 줄이기 보다 늘리며,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방해하고 감정의 신진대사를 구속한다는 게 디지털 복구 플랫폼인 템페스트의 CEO 홀리 휘태커의 평가다. 그는 “가족 사이에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목표는 그 상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술이 큰 도움은 안 된다는 뜻이다.여섯번째는 ‘호기심으로 새해를 맞이하라’였다. 희망찬 2020년을 맞도록 도전해보자는 의미다. 다만 거창한 것을 찾을 필요는 없는 듯 하다. 알레한드르 가족이 일례로 등장하는데 남편은 멕시코인, 엄마는 과테말라 출신이다. 이 가족은 모두 빨간 속옷을 입거나 12개의 포도를 먹고 카운트다운 직후 각각 소원을 비는 전통을 함께 즐긴다. 가족 게임 등을 하며 한해를 정리하고 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라는 의미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文 “한중일 자유무역 수호해야… 3국 만큼 가까운 이웃 없다”

    文 “한중일 자유무역 수호해야… 3국 만큼 가까운 이웃 없다”

    “한중일, 분업과 협업으로 서로 성장 도와”“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 낫다” 속담 인용“한중일 FTA 진전시켜 자유무역 확대하자”“5G로 세계 디지털 무역 자유화 선도 희망”“철도·경제공동체·평화안보체제로 사업 확대”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자유무역질서를 수호해 기업활동을 돕고 함께 성장하는 상생 발전이 지속되어야 한다”면서 “한중일 만큼 가까운 이웃은 없다”며 3국간 협력을 강조했다.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기조연설에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세계에서 우리만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가까운 이웃이 없고, 우리는 함께 협력하며 ‘풍요로 가는 진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날 비즈니스 서밋에는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참석했다. 이날 오후 아베 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것이어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언급은 특히 시선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무역장벽을 낮추고 스스로를 혁신하며 세계시장을 무대로 성장해왔다”면서 “자유무역은 기업이 서로를 신뢰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안전장치”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지난 10월 우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을 타결하면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과 한중일 FTA 협상을 진전시켜 아시아의 힘으로 자유무역질서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3국이 개방하고 활발히 교역할 때 찬란한 문화가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의 당, 일본의 나라·헤이안, 한국의 신라 시대에 확인했다”고 3국 간 자유무역과 교류협력 확대를 거듭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자유무역질서 강조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지난 7월부터 대한국 수출규제를 벌이고 있는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3국 간 “동북아 평화를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동북아에서 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에너지공동체·경제공동체·평화안보체제를 이뤄낸다면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는 더욱 많아지고, 신실크로드와 북극항로를 개척해 진정으로 대륙·해양의 네트워크 연결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중국의 일대일로, 일본의 인도·태평양 구상, 한국의 신북방·신남방 정책은 대륙·해양을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 모두의 평화·번영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평화가 경제가 되고, 경제가 평화를 이루는 평화 경제를 아시아 전체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역설했다. 또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시작된 아시아의 세기는 상생의 아시아 정신으로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라면서 “경제인들이 앞장서 주신다면 경제에서 시작된 3국 간 상생의 힘이 아시아와 세계에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시작된 1999년에 비해 3국 간 인적교류는 4배, 교역은 5배, 투자는 12배 증가했다”면서 “철강·조선에서 첨단 IT로 산업을 고도화했고, 분업·협업으로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고 돌아봤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상생의 힘으로 글로벌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의 파고를 함께 넘을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며 공동 번영을 이루는 새로운 시대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우리는 5G 통신을 선도하며 디지털 무역에 따른 데이터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3국 간 전자상거래 공동연구가 전자결제와 배송 등 제도 개선과 소비자 보호와 안전으로 이어져 세계 디지털 무역 자유화를 선도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거대 시장을 기반으로 첨단산업을 키우는 중국, 전통적인 기술혁신 강국 일본, 정보통신 강국 한국이 힘을 합치면 제조업 혁신 뿐 아니라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헬스케어 같은 신산업에서 최적의 혁신 역량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공동 연구개발과 국제표준 마련에 함께 하고 혁신 스타트업 교류를 증진해 3국이 아시아와 함께 성장하는 구심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영유아 돌연사 방지 매트 만든 20대 “다음 목표는 로봇 피부”

    영유아 돌연사 방지 매트 만든 20대 “다음 목표는 로봇 피부”

    앱으로 움직임 감지… 수십명 관리 가능 아픈 할머니 욕창 예방 매트 개발서 시작 작년 2명이 시작, 내년 日에 수만대 수출 “더 많이 도전하도록 규제 과감히 풀어야”“영유아 사망률 1위인 질식사를 매트 하나로 막을 수 있습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계의 대표 청년 창업가로 꼽히는 장세윤(26) 마이다스 H&T 대표는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유아 돌연사 방지 매트’를 이렇게 설명했다. 장 대표가 개발한 이 매트는 아기가 몸을 뒤집거나 호흡이 이상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람을 주고, 매트 옆 센서 불빛이 빨간색으로 바뀐다. 여러 매트를 앱으로 관리할 수 있어 일반 가정뿐 아니라 아기가 수십명이 넘는 보육원에서도 쓸 수 있다. 매트에는 몸에 맞게 탄력적으로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신소재 전극으로 만든 압력 센서가 깔려 있다. 가격은 개당 20만원 선이다. 장 대표는 “아직 국내에서 팔진 않지만 내년에 일본 제약회사에 수만대를 공급하는 계약이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포스텍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창업했다. 처음엔 2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인턴까지 총 16명의 직원을 둔 사장님이다. 장 대표가 회사 문을 연 이유는 병석에 오래 누워 계신 할머니를 위해서였다. 영유아 매트를 만들기 전부터 ‘욕창 예방·관리 매트’를 개발해 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하루 종일 누워 있어 욕창에 걸린다. 특히 노인들은 피부 탄력과 회복력이 떨어져 잘 낫지도 않는다. 장 대표는 “할머니가 욕창으로 고생했는데 이를 해결할 매트를 만들고 싶었다”며 “매트에 통신기기를 연결해 병원에서 환자의 움직임, 매트와 밀착한 부위 등을 데이터로 관리할 수 있어 욕창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매트는 내년 1월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임상 전단계 실험에 들어간다. 장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스타트업 창업을 꿈꿨다. 특허청이 2009년 시작한 차세대 영재교육 프로그램인 ‘포스텍 지식재산 영재기업인 교육원’의 1기 수료생이다. 장 대표의 다음 목표는 로봇도 사람처럼 촉각을 느끼는 ‘로봇 피부’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로봇이 반도체 제조 등 섬세한 작업에 투입되는데 아주 작은 물건을 잡고 옮길 때 스스로 힘을 조절할 수 있는 피부를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더 많은 스타트업 성공 사례가 생기기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규제 완화를 꼽았다. 그는 “재정 지원은 상당히 늘어났다”며 “문제는 규제다. 4차 산업혁명 기술 발전을 이끌 청년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이규성, ‘이룸’에서 개명한 사연 “초 2학년 때 별명이...”

    이규성, ‘이룸’에서 개명한 사연 “초 2학년 때 별명이...”

    이규성이 개명한 사실을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는 ‘까불지 마’ 특집으로 배우 서현철, 이규성, 가수 김종민, 보이그룹 SF9 멤버 다원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스페셜 MC는 보이그룹 세븐틴 멤버 승관이 맡았다. 이날 이규성은 “본명이 이룸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안영미는 “나 오늘 룸 잡았어, 할 때 룸”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이규성은 안영미의 말에 공감을 표하면서 “이름을 들으면 이런 별명들이 나온다”며 “이 별명들 때문에 바꿨다”고 개명 이유를 전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별명이 ‘룸살롱’이었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규성은“‘이룸’이란 이름이 기대를 주는 게 있더라. 귀엽고 아이돌 느낌이 나고 잘 생긴 것 같은 이름인데 제가 이렇게 생기다보니까 이규성이 낫겠다”고 했다며 “가족, 친척들은 ‘룸아’라 부른다”고 말했다. 사진=MBC ‘라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Focus人] “겨울은 대목이죠”, 불(火)끈한 소방관 부부의 ‘희로애락’

    [Focus人] “겨울은 대목이죠”, 불(火)끈한 소방관 부부의 ‘희로애락’

    “100명 소방관 중 10명 정도가 여성 소방관이고 그 10명의 여성 소방관 중 9명이 소방관 남편을 평생의 반려자로 택합니다. 소방관 부부가 될 확률이 90%가 넘는 셈이죠. 지금은 여성 소방관이 임용되기 전 6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데 그 기간에 이미 커플들이 만들어지게 돼 소방서에 ‘대기’중인 기존 총각들은 사실상 선택의 기회가 없게 됩니다.” 양천소방서 현장대응단 16년차 소방장 이영섭(42), 동작소방서 구급대원 14년차 소방장 전순미(42). 동갑내기 이들 부부가 한 평생 연을 맺고 시민의 안전과 구조를 위한 헌신의 삶에 함께 하고 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120% 만족한다는 이소방장은 “빨리 결혼하고 싶어 여러 번 소개팅을 했다. 할 때마다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내가 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밥을 사면 본인이 커피를 샀다. 그 모습에 반해 이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인 전소방장은 “외모적인 것 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믿음직스런 전화 통화 목소리에 반했다. 여섯 분의 시누이가 있었지만 문제되지 않았다.”며 결정적 계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참혹하고 안타까운 현장을 제일 먼저 접하는 이들 부부. 그런 모습들을 보며 충격과 눈물로 때론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극한의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직업을 잘 알고 있어 큰 위로가 되고 있다는 이들 부부. 이들의 일에 대한 보람 또한 남다를 터. 심정지 환자를 현장에서 응급처치한 후, 그 환자가 후유증 없이 심정지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었을 때 비로소 받게 된다는 ‘하트세이버 배지’. 이소방장은 13개, 전소방장은 8개나 받았다. 이 부부가 무려 21명의 위급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이소방장은 “저 덕분에 살았다며 고맙다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응급처치를 잘 해준 시민들의 덕이 크다며 전 오히려‘그분들이 살아줘서 고맙다’란 말을 전하고 싶어요.” 라고 겸손해했다. 올해로 결혼 13년차. 소방관 부부로 연을 맺고 살다 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데 입을 모은다. 딸, 아들 하나를 둔 이들의 불(火)끈하고 화(火)끈한 소방서 안팎의 희로애락을 들었다. 다음은 그들과의 일문일답.(Q)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이소방장) 원래 꿈은 체육교사였는데 잘 안됐다. 교회 청년부 친구가 당시 대학생이 군복무 대신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의무소방제도가 있는데 내가 소방관에 잘 어울릴 거 같다고 준비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결국 소방관이 됐고 너무 잘 맞고 행복하다. / (전소방장) 응급처치학 전공을 전공했다. 병원과 소방서 어느 곳이나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결국 현장에서 시민들을 살리는 사명감으로 소방서의 구급대원이 돼 보자고 마음먹고 들어오게 됐다. (Q)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이소방장) 큰 반대는 없었지만 오해는 있었다. 매형 중 한 분이 학교 교사인데 중앙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일과 후 소방관들과 축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소방관들이 경기에 졌다. 그때 매형이 느끼셨던 소방서 내 군대 같은 무서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던지 그런 걱정을 조금 하신 거 같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 (전소방장) 일반직 공무원인 오빠의 반대가 심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가 배운 전공도 이 분야고 이 일이 제 적성에 맞는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Q) 군대 같은 상명하복 분위기,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는지(전소방장) 남자들이 많다 보니 여성들만의 ‘수다’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혼자 있어서 좀 답답했다. 병원에 있을 땐 그런 소소한 얘기들을 많이 나눴었는데 그런 부분이 좀 어려웠다. 하지만 소방서엔 남성들이 많아 홍일점 대우도 받고 배려도 많이 해주는 편이다. (Q) 소방관을 남편으로 선택할 때 고민은 없었는지가족 분들이 제가 소방관이지만 남편은 다른 일반 직장인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조언도 하고 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결혼할 때 남편의 직업은 크게 상관없었지만 여섯 분의 시누이들이 있었다. 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속상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Q) 부부싸움, 누가 먼저 불을 끄는 편인지(이소방장) 아내가 먼저 한다. 저는 성격이 못돼서 싸우면 드러눕고 말도 안하는데 아내는 먼저 말 걸어주는 편이다. 후배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웬만하면 구급대 여직원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내가 하는 일이 피로도가 높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집안일을 남자가 더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전소방장) 부부싸움의 여파가 일주일 동안 지속된 적이 없었던 거 같다. 하루 안보고 나면 언제 부부싸움을 했나 생각할 정도로 그냥 풀어진다. (Q) 3교대 근무체제, 육아의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이소방장) 아내가 육아휴직 마치고 출근하던 날이 생각난다. 애들 저녁상 차려주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제가 우니깐 애들도 옆에서 ‘아빠 왜 우냐’고 해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저희 같은 소방관 부부는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애들 키우기가 어렵다. 어느 날은 아이가 ‘오늘은 엄마 근무야, 아빠 근무야’라고 묻기도 한다. 애들도 엄마랑 있을 때와 아빠랑 있을 때의 태도가 조금씩 다르다. 아내는 아이들이 저랑 있을 때 제 말을 좀 더 잘 듣는 걸 목격하고 당황해하기도 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 (전소방장) 직장일을 마치고 주부이자 엄마로 돌아와 아빠 없이 아이 둘을 돌보게 되는 상황이 되면 힘들 때가 많다. 남편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혼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불만스럽단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거 같다. (Q) 부부 소방관의 장점은(이소방장) 아무래도 맞벌이 부부라 외벌이 부부보단 수입면에선 좀 낫지 않나 싶다. 또한 상대방의 일을 잘 아니깐 힘들 때 서로를 이해해 주는 측면이 높고, 조언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거 같다. 한 예로 일반직 남성이 여성 소방관과 결혼해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왔는데 본인이 힘든 것만 생각하고 똑같이 일하고 들어온 아내의 힘든 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분을 봤다. 저희 부부는 그와 달리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런 점이 장점이라 생각된다. 전국에 계신 남녀 솔로 소방관분들, 집 밖에서 배우자를 찾지 말고 저희 소방 조직 내에서 찾으시고 한 가정을 이루신다면 저희와 같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Q) 두 분 모두 참혹한 현장을 많이 보셨을 텐데(이소방장) 구조대 생활하면서 참혹한 현장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 걸 제 스스로 되뇌면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으로 받는 외상스트레스를 운동을 한다거나 다른 즐거운 것들을 찾으면서 풀어왔던 거 같다. / (전소방장) 저도 구급대원이니깐 그런 끔찍한 사건 현장을 최초로 목격하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그런 모습들이 자꾸 상기되거나 할 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남편, 동료들에게 말하고 풀어버리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안타까운 사연(이소방장) 스스로 소방관이 체질이고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달 전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건물 입구 회전문에 15개월 정도 되는 아이의 머리가 꼈는데 엄마는 비명을 지르고 아이 아빠는 머리를 빼기 위해서 문을 벌리려고 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현장을 수습한 후에도 현장의 시각적, 청각적 잔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날은 자면서도 가위에 눌렸고 정말 많이 힘들었다. 16년 동안 소방관 생활하면서 머릿속서 떠나지 않는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었던 거 같다. / (전소방장) 교통사고로 아이가 많이 다친 상황이었다. 저도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는 엄마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울면서 응급처치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Q) 안전에 대한 의식도 다른 가족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지(이소방장) 남들이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 제가 사는 곳이 10층인데 1층 공동현관문이 열린 채 혹시라도 어느 집에서 화재라도 나게 되면 굴뚝 효과로 연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직접 내려가서 닫고 오는 경우도 많다. / (전소방장) 아이들이 무단횡단으로 다치는 경우가 많다. 아들과 딸에게 횡단보도 건널 때 절대 뛰지 말고 주변을 살피면서 건너가라고 항상 얘기해 주는 편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더 잘하는 거 같다. 횡단보도에서 건널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손드는 것보다는 남들이 먼저 간 다음에 그 뒤에 가면 된다’고 라고 할 정도다. (Q) 친한 주위 분들께서 걱정도 많이 할 텐데(이소방장) 누님, 매형, 처가 식구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온다. 화재나 큰 사건이 나면 괜찮은지 물으시고 늘 저희를 기억하게 된다고 말씀하셔서 늘 감사하고 고맙다. 친구들한테도 전화가 많이 온다. 처음엔 저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전화를 하다가 지금은 “너 거기 출동했냐. 사건은 잘 해결됐냐.”라고 사건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물어본다. / (전소방장) 얼마 전에 알고 지내는 동네 아이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다 버스기사가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제가 생각났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깐 주위에서 저를 걱정해 주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비록 힘들지만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됐다. (Q)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만 했더라면(이소방장) 학생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심정지가 오거든요. 대학생들 두 명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토하다가 호흡이 멎고 심정지가 왔는데 신고도 늦었고 주위 분들의 응급처치도 없어서 사망했다. 너무 꽃다운 나이에 그런 일을 당해 너무 안타까웠다. / (전소방장) 이미 몸이 너무 굳어서 응급처치도 소용없다고 설명하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 살려달라는 경우가 있었다. 심폐소생술만 잘했더라도 좋았을 텐데. 보호자가 너무 원하면 심폐소생술 하면서 병원을 가기도 하는데, 너무나 명백하게 몸이 굳어있거나 사망 증후군이 보이면 보호자에게 단호하게 설명한다.(Q) 주취 신고자들이 신고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이소방장) ‘내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는 신고가 와서 긴급 출동했는데, 알고 보니 주취자가 자신의 신발을 다리로 착각해서 신고한 케이스였다. 어떤 분은 ‘내 자식이 죽었다. 호흡을 안 한다’고 신고해서 심정지로 판단하고 신호까지 위반해 가면서 출동했는데 결국은 자식이 강아지였다. 심폐소생술을 해달라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 (전소방장) 얼마 전 동료 직원이 주취자에게 폭력을 당했다. 예전 같으면 주취자에게 맞아도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는데 지금은 폭력사건에 대해서는 절차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를 한다. 그런 경험을 한 번 겪게 되면 비슷한 현장에 나가게 될 때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도 언제 손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환자를 보기도 한다. (Q) 출동 중 당황스러웠던 기억(이소방장)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방차가 출동하면 오토바이 타는 분들이 소방차 사이사이로 가로질러가서 소방차들의 간격을 띄어놓기도 했다. 특히 교차로를 지날 때 소방차끼리의 줄이 끊어지면 다른 차선의 차들은 소방차가 모두 지나간 줄 알고 급히 지나가다가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저 사이렌 소리가 내 가족을 구하러 가는 소리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 (전소방장) 골목길에 불법 주차를 할 경우 응급차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차를 멀리 주차하고 들것만 끌고 가는 상황도 많아요. 촌각을 다루는 심정지 상황의 경우엔 정말 안타깝다. 그런 차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Q) 소방관 국가적 전환 법안이 통과될 예정인데(이소방장) 대통령께서 공약하셨듯이 소방관의 자긍심을 높여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갑을 손수 구입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국가직이 되면 장비들이 똑같이 지급되고 인원 충원도 많이 된다고 하니 소방관의 피로도가 지금보다 덜하게 될 거 같다. 아무래도 국민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한다. / (전소방장) 서울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이 지방 소방관보다 낫다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소방관이 국가직이 돼서 누구나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Q) 힘든 겨울이 시작됐는데, 소방관에게 겨울이란(이소방장) 겨울은 대목이다. 그만큼 화재 출동이 많다. 늘 긴장의 연속이다. 구급대원들 또한 밖에서 응급처치하면 추위와 싸워야 한다. / (전소방장) 응급환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겨울엔 난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얼마나 추웠을까’ 그 상황을 실제로 접하게 되면 마음이 너무 안타깝다. (Q) 가족, 부모, 친지 등에게 한 말씀(이소방장) 장모님께 처음 인사드리러 갈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제 키가 작다고 뭐라 하셨던 그 부분이 많이 서운했는데 지금껏 살아오다 보니깐 귀한 따님을 제게 주셔서 오히려 늘 감사한 마음이다. 또한 저를 늘 응원해주시는 여섯 누님과 매형들께도 감사드린다. 응원해주시는 만큼 행복한 가정 꾸려나가겠다. / (전소방장) 여섯 시누이와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자주 만나고 얘기 나눈다. 항상 응원해주시고 걱정 많이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Q) 앞으로의 각오와 소망(이소방장) 국가직이란 타이틀을 허락해 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린다. 귀한 직분을 허락하셨으니깐 지금보다 더 열심히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안전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 (전소방장) 국가직 되었다고 축하한다는 분들이 많다. 책임감 더 주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가운데에서도 국민들의 안전 세이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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