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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정부관리 등 11명 44년만에 대만 방문/여객기피랍 등 논의

    【대북 AFP 연합】 중국 반관기구인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관계자 6명과 5명의 정부관리로 구성된 중국대표단이 그들의 대만상대기구인 해협양안교류기금회(해기회)와 중국인 납치범 문제와 기타 쌍방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관해서 5일동안 회담하기 위해 17일 대북에 도착했다. 이 회담은 지난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이래 대만에서 개최되는 국·공대표간의 최초의 회담으로서 양 기구의 부비서장(사무차장)들이 수석대표로 돼있는데 리 칭­핑 해기회 부비서장은 『그들의 방문은 전례없는 일이며 앞으로 이곳에서 열릴 회담은 44년만에 이루어지는 양 지역간의 주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에어 프랑스기 피랍/2시간만에 풀려나

    【니스 로이터 AFP 연합】 10일 프랑스 파리를 떠나 니스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항공사 소속 A320 국내선 여객기를 납치하고 리비아로 갈 것을 요구했던 알제리인 범인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에어프랑스사가 밝혔다. 에어 프랑스 관계자들은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 1백23명은 여객기가 니스공항에 착륙한후 모두 석방됐으며,2시간동안 인질로 잡혀있던 승무원들도 무사하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또 범인이 이날 여객기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하며 리비아 트리폴리로 갈 것을 요구했으나 칼만 소지하고 있었으며 폭탄은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 비서 근로자 피랍설/외무부 “사실 아니다”

    외무부는 10일 하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한국인 건설기술자 8명이 회교반군에게 납치됐다는 외신보도에 대해 『현지에 확인해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민다나오 섬에서 댐공사를 하는 신성건설의 마닐라지사와 현장사무소등에 알아보니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외신이 건설기술자가 납치됐다고 보도한 이달초엔 공사중단으로 현장에 기술자들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이날 『1주일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백30㎞ 떨어져 있는 민다나오 섬 코타바토지역 피키트 마을의 댐공사 건설현장에서 한국건설기술자 8명이 회교반군에게 납치됐다』고 보도했다
  • 이란기 피랍… 이라크 착륙/승객 등 38명 탑승

    【바그다드·테헤란·니코시아 AP AFP 로이터 연합】 승객과 승무원 38명을 태운 이란 석유부 소속 항공기를 29일 공중납치해 이라크 남부 바스라항에 착륙시킨 범인이 착륙 몇시간만에 이라크당국에 투항하면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이라크관리들이 이날 밝혔다. 이라크 관영 INA통신은 항공기 납치범이 이란 국내항로를 운항하던 이란 석유부 소속 포커 F­27기를 납치한지 6시간만인 이날 하오3시45분(현지시간)쯤 투항해 자신의 아내와 자녀 5명의 망명도 함께 요청했다고 전했다.
  • 독 기민당 대선후보/하이트만 사퇴파문/동독출신 파격 발탁 후유증

    ◎콜 총리 지도력 흠집/반발불구 독단지명 당갈등만 부추겨/단일후보 다시거론 선거 악영향 우려 그토록 짧은 기간동안에 그토록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부른 사람도 독일정치사상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그의 등장 자체가 파격적이었던만큼 그의 사퇴도 전격적이었다.25일 집권 기민·기사연합의 차기 대통령후보직을 전격 사퇴한 스테펜 하이트만 작센주법무장관(49)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지난 9월14일 집권 기민당의 베를린 전당대회에서 콜총리에 의해 연방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방정치인에 불과했던 그의 후보지명은 동서독간 내적 통일 촉진을 위해 동독출신 인사가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콜총리의 독단에 의한 것이었다.기민당내에서조차 심한 반발이 있었던만큼 야당인 사민당이나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이 독자적으로 대통령후보를 내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명직후부터 그가 대통령후보로 적합한지에 대한 회의와 그의 견해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하이트만은 『독일이받아들일 수 있는 외국인의 숫자는 한정돼 있다』는 말로 「인종주의자」란 비난을 샀고 『사회에서 여성이 맡아야 할 역할은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란 말로 「남성우월주의자」란 비난을 받았다.또 『독일인들은 새로운 역사의식을 갖고 유태인 대학살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해 국내외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난을 불렀다. 하이트만을 후보로 지명한 것부터 독일을 보수화시키려는 콜총리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비판자들의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하이트만의 견해는 매우 보수적이다.그에 대한 비판이 이같은 보수적 시각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동독출신 정치인사였다는 점도 큰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콜총리는 하이트만의 후보직 사퇴발표후 『지난 몇달간 하이트만에 대해 참기힘들만큼 부당한 비방이 있었다』는 말로 동독출신 인사를 용납치 않으려는 서독측의 배타성을 꼬집었다. 아무튼 하이트만의 전격적인 후보사퇴는 하루전인 24일까지도 그를 적극 옹호해온 콜총리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입히게 될 것 같다.당장 집권 기민당이 하이트만의 후보추대를 둘러싸고 두 진영으로 갈라짐으로써 콜총리의 지도력에 생채기가 나게 됐기 때문이다. 기민당은 사민당에 단일후보 추대문제 논의를 다시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사민당은 요하네스 라우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총리를 대통령후보로 내세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기민당의 새 후보로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로만 헤르초크 독일헌법재판소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헤르초크는 서독출신.단일후보 추대가 결렬된 것이 동독출신 인사에 대한 콜총리의 고집에서 비롯된만큼 그가 후보로 추대된다면 콜총리는 약속을 저버리는 셈이 되며 이는 내년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정치관측통들은 말하고 있다.
  • 공조경찰서 “물먹이기”/박희준 사회부기자(현장)

    『두 경찰서간의 수사공조체제는 고사하고 사후 연락만 잘 됐더라도 인력과 수사비용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25일 상오 11시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계.지난달 14일 발생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부 배모씨(42)납치사건을 40여일 동안 수사해온 강남경찰서 수사팀은 범인들이 이미 하루전인 24일 새벽 붙잡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동안의 탐문수사내용을 토대로 김포,인천,산청등 전국을 뒤지고 있을 시각,비슷한 지역을 돌며 수사를 벌인 인천 서부경찰 수사팀이 한발앞서 24일 상오 5시쯤 산청군 시천면의 한 여관에서 범인들을 검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아쉬움은 범인체포의 「전리품」을 빼앗긴데 대한 섭섭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범인이 검거된뒤 30여시간이 지난뒤 에야 검거사실을 알게 됐다는 현실이 더욱 서글프게 와 닿았다.40명의 수사팀은 범인이 잡힌줄도 모르고 지난 밤에도 추위에 떨며 범인들이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리산자락의 남원,구례,하동일대를 샅샅이 뒤지는 헛수고를 했던 것이다. 수사팀의 한 형사는 범인들이 압송돼 인천 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24일 하오 윤곽이 드러난 범인의 공개수배및 전단배포 등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모습을 상기시키며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또다른 경찰관은 『검거와 동시에 수사중단지시만 내렸어도 이같은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라며 일선경찰의 보고체계및 전달망의 허점을 꼬집었다. 전국 경찰의 수사를 총괄하는 경찰청 정해수 형사국장 역시 검거 26시간만인 25일 상오 7시30분쯤 검거사실을 보고 받았고 30분뒤 수사중단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쓸데없는 인력낭비를 줄이고 민생치안에 집중해도 체감치안이 좋아질지 걱정이 앞서는데 이렇게 너나없이 실적에만 신경쓰고 있으니…』 실적위주의 경쟁에만 집착하는 경찰의 집단이기주의를 자조하는 한 경찰의 독백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주부 납치범 2명 영장/현대아파트사건/5차례 납치·강도행각

    ◎도피 도와준 애인 등 3명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부납치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25일 조심환씨(24·인천시 남구 연수동 16 연수 2차아파트 105동 1302호)와 조창영씨(25·경기 구리시 교문동 339의 39)등 24일 인천서부경찰서에 검거됐던 5명의 신병을 넘겨받아 조씨등 주범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 혐의(특수강도)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들의 도피를 도운 조씨의 애인 강홍련씨(22·인천시 금곡동)등 2명을 도피방조 혐의로,인천시 만수동 동아아파트 강도 사건과 관련된 이성복씨(25)를 강도미수 혐의로 각각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씨등 2명은 지난달 14일 상오 3시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김모씨(43·사업)집에 복면을 하고 들어가 흉기로 가족들을 위협,1백82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친뒤 김씨의 부인 배모씨(42)를 승용차로 납치,트렁크에 태우고 다니며 몸값을 요구하는등 지난 8월부터 5차례에 걸쳐 같은 수법으로 1억2천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턴 혐의를 받고 있다.
  • 중­대만 공식회담/새달 대북서 열듯

    【대북 AFP 연합】 중국과 대만은 회담장소와 항공기납치범 인도를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는 공식회담을 내달 북경 대신 대북에서 열 가능성이 있다고 연합보가 24일 보도했다.
  • 불법이민 등 현안 논의/중국,대만에 회담제의

    【북경 교도 연합】 중국의 관변단체인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는 20일 민항기 납치범의 송환 문제를 포함한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달 대만측 협상 파트너인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에 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해협회가 불법 이민과 어로분쟁및 최근 잇따르고 있는 민항기 납치범의 송환 문제를 의제로 다음달 8일과 11일 북경이나 하문에서 두 단체간의 회담을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두 단체는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을 통해 지난 40여년간 계속된 양측간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비정치적 분야에서 보다 긴밀한 교류관계를 열기 위한 일련의 합의사항을 채택한 바 있다. 당시 회담은 민간 차원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으나 두 단체 모두가 사실상 정부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놓인 단체라는 점에서 사실상 중국과 대만 정부가 대화 통로를 열었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 의류업자 납치 감금 물품대금 돌려달라 “협박”

    서울방배경찰서는 20일 장양기씨(39·의류하청업·양천구 신정동 946)와 김형만씨(29·신정동 1188)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장씨등은 자신의 회사로부터 3천8백만원어치의 의류를 납품받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T어패럴(대표 김명식·38)이 부도를 내자 지난 9월18일 하오6시30분쯤 폭력배 3명을 동원,회사대표 김씨를 납치해 강서구 화곡동 Y여관에 감금한뒤 『납품대금을 주지않으면 돌려보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있다.
  • 정인보선생/해방전후 국학부흥­교육에 진력(다시 새기는 그 충절)

    ◎18세 상해 망명… 신채호 등과 항일투쟁/국학대학 설립… 민족사관 정립에 큰공 의에 철저한 인생을 살았던 위당 정인보선생은 말을 타고 총칼로 일제와 싸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붓과 펜으로 싸운 정신적 독립운동가였다. ○서울 종현서 출생 선생은 1893년 5월6일 서울 종현(지금의 명동성당부근)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정은조씨와 어머니 달성 서씨의 독자로 태워나 후손이 없는 큰집의 양자로 들어간다.1910년 17세때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난곡 이건방선생으로부터 한국화한 양명학을 배워 학문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11년과 1912년 두차례 망국의 한을 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동북성 회인현 흥도촌과 유하현 삼원보등지에서 활동하는데 이곳에서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있던 이회영형제를 만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평땅 4백∼5백섬거리 전답을 팔아 신흥강습소등 이회영형제의 독립군양성소를 위한 군자금으로 지원한다.선생은 1913년 중국 상해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일제와의 투쟁을 다짐하는 박은식·신규식·신채호·김규식등많은 청년애국지사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이들과 비밀결사인 동제사를 조직했다. 선생은 1922년 4월부터 연희전문학교의 초빙을 받아 조선문학론과 한문을 강의한다.그후 중앙불교전문학교·협성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학및 동양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 얼을 환기시켰다.또한 동아일보·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며 민족사관 정립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선생은 일본인들의 왜곡된 학설에 철저히 반론을 전개해 주목을 끌었는데 우리 고대사의 심층연구를 위해 안재홍·신채호·문일평·손진태선생등과도 힘을 합쳤다. ○일경에 검거·고초 선생은 1926년의 6·10만세운동을 지원했고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창립,현충사를 중건했으며 고전을 소개하는 「조선고전해제」를 동아일보에 실었다.이후 같은 신문에 「단군 개천」「5천년간의 조선의 얼」을 연재했으며 실학연구를 위한 학문행사를 주도했다.1937년 「경훈훈민정음서」「훈민정음운해해제」등을 저술,국어보존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고 일어교육만을 강요,연희전문학교에서 선생이 강의하던 조선문학과목은 폐지됐다.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1940년 10월 중동학교안에 소위 「5인 독서회」가 조직된다.노국환·조성훈·황종갑·이기을·유영하등은 역사연구를 명분으로 선생을 비롯,김성수·송진우등으로부터 국제정세등을 들기를 요청해와 이들과 접촉을 갖는다.독서회 운동이 한창 추진되고 있을 때 황종갑의 편지가 일제의 검열에 발각되면서 선생도 적지않은 고초를 당했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기에 이르자 선생은 병을 핑계로 휴직을 한뒤 1943년 가족을 이끌고 전북 익산군 황화산으로 들어가 산중생활을 한다. 2년후인 1945년 마침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게되자 선생은 서울로 귀환,일제하의 식민정책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연면하게 이어온 국학을 부흥·발전시키기 위해선 일제로 인해 단절된 우리 얼을 선양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국학대학을 설립한다. ○1950년 납북 국학발전에 몸바치고 있던중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돼 감찰위원회가 구성되자 선생은 여러 인사의 천거와 이승만초대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으로 새 정부의 감찰위원장에 취임,관기확립및 부정부패 일소에 나섰다.그러나 선생은 취임 1년이 지날즈음 자신의 의지가 이루어 질 수없음을 깨닫고 감찰위원장 자리를 떠났다. 다시 국학대학장에 돌아온 선생은 더욱 우리 얼을 밝혀 내는데 정진했으며 국학대학장을 그만 둔 뒤 서울 회현동에서 역사연구와 집필생활을 하다 6·25전쟁을 맞았다.미처 피란가지 못한 선생은 1950년 7월 북한으로 납치돼 한동안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그해 11월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대마도의 오사키항/박성수(일본속의 한국문화:9)

    ◎왜구 본거지… 고려이래 약탈 일삼아/우왕때는 연27회 침범… 논의 벼까지 베어가/진노한 세종은 배 2백20척 동원,정벌 나서 일기도의 가쓰모토(승본)항도 왜구의 소굴이었으나 그보다 더 우리를 괴롭힌 곳은 대마도의 오사키(미기)항이었다.오사키항은 대마도의 윗섬과 아래섬을 갈라 놓고 있는 바다,아사마(천모)만에 있는 아주 작은 어촌이었다.백제산성을 보고 나서 이 모사키마을을 잠깐 둘러보았으나 그 옛날 조선 세종때 우리 정벌군이 이 마을을 공격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언제 그랬나 할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단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이 이곳의 옛 호주 하야타(조전)가에 보존되어 왔다는 조선국고신이라는 문서 한장이었다. 「병조봉교피고이라 위승의부위」운운하는 우리나라 관이임명장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5백년전인 연산군때(1503년)것이다. ○벼슬 주어 달래고 왜구가 하도 심하니까 창무책의 하나도 대마도 왜인들에게 관직을 주어서 우리나라에 오면 쌀도 주고 장사도 할수 있게 해 준 것인데 이들을 가리켜 수직위인이라 했었다. 유명한 신숙주(1417∼1475)의 「해동제국기」를 보면 대마도의 지도를 그려놓고 모두 82개에 달하는 포구가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신숙주의 지도에는 대마도가 마치 등을 구부린 송충이처럼 그려져 있는데 보기에도 징그럽다.이 송충이의 털구멍마다 왜구의 소굴이 박혀 있어서 제각기 마음 내키는대로 우리나라 남해안은 물론 동·서해안까지 왕래하면서 약탈하였으니 견딜수가 없는 일이었다.우리나라 연해안을 약탈한 왜구의 소굴은 대마도에만 있지 않았다.멀리 구주땅의 여러 포구에서도 왜구떼가 몰려왔으니 이들 송충이의 공격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왜구는 고려말에 극성을 이뤄 그때문에 실제로 고려가 망하고 말았다.눈물의 왕 공민왕(1352∼1374)재위 23년동안에 크고 작은 왜구가 1백15회나 들락날락하였고 경상·전라도는 물론 경기·황해·강원·평안·함경도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심지어는 고려의 서울 개경근처까지 쳐들어와 수도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다음 우왕(1375∼1388)때에 이르러서는더욱 심하여 재위 14년동안에 왜구가 3백78회나 쳐들어 와 연평균 27회라는 이분야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이무렵 우리나라 연해안의 여러 고을들은 『황량하게 텅 비었다』고 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불상·범종 훔쳐가 왜구가 어떻게 우리나라 고을들은 습격하였는가 하면 왜구는 처음부터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기분나쁘게 바닷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상륙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약탈하였다.말하자면 치고 달리기 작전을 폈던 것이다.마치 서양의 바이킹같은 강도행위를 자행한 것인데 이때문에 영국같은 나라에서도 왕조가 교체되는 정변을 겪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성계가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특세하더니 끝내는 정변을 일으켜서 조선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러면 대마도 왜구들은 무엇을 약탈하여 갔는가.주로 곳간에서 먹을 양식을 퍼가거나 곳간에 식량이 없으면 논의 벼를 베어다가 배에 싣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왜구는 식량만 가져가는 예절바른 도적이 아니라 부엌의 그릇은 물론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 제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의 불상과 범종까지 들고 달아났다.대마도에 원통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서는 본존이 고려불이라고 버젓이 자랑하고 있다.부처님만 고려제가 아니라 대웅전앞에 걸어놓은 범종까지 우리나라 것이니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다. 훔쳐온 것을 훔쳐 왔다고 이실직고할 그들이 아니다.고려왕이 바쳤다느니 조선왕이 하사하였다느니 그럴듯하게 둘러대기 마련이니 도적질당한 놈만 억울할수 밖에 없다. 왜구들은 물건만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납치하여 팔아 먹었다.이런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오사키 어부들은 우리를 낯선 이방인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의 후손들인지를 너무나 잘알고 있다.15세기말 성종때의 학자 성현(성현)이 쓴 유명한 「용재총화」에 보면 왜 세종 원년(1419)에 우리나라가 대마도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고려말에 특히 왜구가 잦았는데 우리나라 연해에 진(군사기지)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심했다.태조가등극한 이후에는 주요한 포구에 만호를 두어 수군을 상주하게 하였더니 잠시 잠잠해졌었다.그러나 그뒤 다시 왜구가 침노하여 와서 세종이 삼군에 명하여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 ○1만7천명 출정 이처럼 세종대왕의 대마도 정벌은 왜구의 발본색원을 노린 일대 영단이었다고 할수 있는데 병력은 총1만7천명,배는 2백20여척이었다.총사령관 이종무가 중군장을 겸임하고 좌우군장이 그를 보좌하였다.공격목표는 바로 이 오사키항이었는데 길잡이가 대마도 사람이었다.우리 함대는 마산포와 거제도를 출발하여 그날로 이곳 오사키에 도착하였는데 처음에는 선발대 10척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도적질 하러 떠난 자기네 배가 돌아오는줄로 알고 술과 떡을 들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탄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고 헤어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을 알고 놀랐다.잇따라 수백척의 배가 들어오니 모두 기겁을 하고 산으로 달아났다.바로 그 현장이 오사키항인데 향토사학자 영류씨는 웃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여유를 보였다.그렇다.지금은 서로 웃으면서 그날을 회상할수 있으나 이곳에서 전사한 좌군장 박실을 생각하면 반드시 웃을 일만은 아니다.박실 장군은 우군장과 중군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총사령관 이종무의 큰 실수였다.만일 그가 박실의 좌군을 지원했더라면 대승을 거두어 왜구를 발본색원하였을 것인데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때문에 그뒤에도 왜구는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임진왜란을 당하고 말았다.
  • “중 여객기 납치범 기체와 함께 인도”/대만 내무부

    【대북 DPA 연합】 대만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대만으로의 중국여객기 납치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앞으로는 이들 납치범을 비행기와 함께 본토로 인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대만 내무부의 한 고위관리가 16일 밝혔다. 이 관리는 이날 대륙위원회에서 중국비행기 납치문제에 관한 회의가 있은 직후 이같이 밝히고 이에 관한 최종결정은 오는 18일 회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백명탄 중국여객기 추락/올 2번째/위구르 우룸치부근… 다수 사망

    【북경 교도 연합】 중국 서부 신강 위구르 자치주의 우룸치에서 중국 국내선 여객기 1대가 13일 추락,승객 일부가 사망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사고 여객기는 중국 북방항공공사 소속의 MD­82여객기로,요녕성의 심양을 출발,북경을 거쳐 이날 하오 3시(현지시간)쯤 최종 목적지인 우룸치 공항에 접근해 착륙을 시도하던중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은 현지 관리들로부터 『일부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됐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북경 라디오 방송은 이 여객기에 승무원을 포함,모두 1백명가량이 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북방항공공사는 하루전인 12일에도 소속 여객기 1대가 대만으로 공중피랍되는 사건을 겪었다. 중국내 항공기 추락사고는 올들어 2번째이지만 지난해에는 모두 5건의 대형사고가 발생,3백10명이 사망하는 중국항공 사상 최악의 해를 기록했었다. 근년들어 중국 민항기의 추락사고나 납치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것은 경제발전에따라 항공운송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불구,공항 시설과 관제·경비조치등은 미흡한 것이 주요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아르헨정부,전대통령 고소(지구촌단신)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 아르헨티나 정부는 12일 지난 70년대 군정당시 반체제인사 1만여명을 상대로 한 납치기도와 학살 등 이른바 「추악한 전쟁」을 일으킨 호르헤 비델라 전대통령을 인권유린 혐의로 재고소했다.
  • 피랍여객기 처리 대만,전면재검토

    【대북 로이터 AFP 연합】 대만정부는 12일 올해들어 7번째로 중국여객기가 대만으로 납치된 사건이 발생하자 여객기납치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수정을 검토키로 했다. 제이슨 후 대만 정부대변인은 『연전 행정원장이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대로 즉시 여객기납치사건을 다루는 현행 정책을 전면 재평가,검토할 것을 관계당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 PLO 파타요원 이스라엘서 체포/살인혐의 5명

    【예루살렘 로이터 AFP 연합】 이스라엘군 당국은 12일 자국민을 납치,살해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산하 기구인 파타소속원 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 파타소속원은 이스라엘군 당국에 체포된 뒤 조사과정에서 지난달 29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을 납치한 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으며 이는 파타 지도부의 지시를 받지 않은 독자적인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이 이끄는 단체 소속의 팔레스타인인이 지난 9월13일 워싱턴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 살인혐의로 이스라엘 당국에 검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불 정부­회교과격파 “긴장”(특파원코너)

    ◎영사 납치 등 무장활동에 “보복단속” 프랑스 경찰이 9일 프랑스내 알제리 이민사회의 회교구원전선(FIS)동조세력에 대한 일제 단속에 나서 회교과격파 세력과 프랑스간에 긴장의 파고가 일고 있다.이는 알제리에서 FIS의 무장단체가 지난 9월 프랑스 기술자 2명을 살해하고 10월 30일 프랑스 영사 3명을 납치한데 따른 보복 조치다. FIS의 간부등 88명을 전격 체포한 이번 일제단속과 관련,프랑스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는 『우리 영토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프랑스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파스쿠아 내무장관은 따로 『종교를 이용,프랑스의 국기를 흔드는 정치적 운동을 프랑스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전격적인 국내 회교주의자 일제 검거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프랑스내에서의 폭력적 회교주의 운동의 싹을 자르겠다는 예방조치이자 회교주의운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프랑스가 반민주적인 알제리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91년 12월 총선거 1차투표에서 회교주의자들의 정당인 FIS가 압도적으로 승리,집권을 눈앞에 두게 되자 알제리 군부는 92년 1월 이른바 「합법적 쿠데타」로 국가최고위원회를 만들고 2차투표를 못하게 만들었다. 이때 프랑스는 알제리에 회교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꺼려 음성적으로 군사정부를 지원했다. 프랑스내 회교계 이민은 3백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알제리인이 80만명으로 제일 많으며 결집력도 가장 강하다. 이번 조치는 알제리의 FIS에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자극,알제리내 프랑스 거류민의 안전을 더욱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불씨 안은 「정상화 합의」/여·야총무 국회협상 안팎

    ◎“병행”“노력” 문맥 곳곳 마찰소지/개혁입법등 이견 여전… 향후운영 큰 부담 국회가 파행의 불씨를 여전히 간직한채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여야는 10일 총무회담에서 민주당이 주장해왔던 안기부법·국가보안법·통신비밀보호법등 개혁입법을 새해 예산안과 병행통과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데 합의했다.다만 국가보안법은 대내외사정등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가 어려울 경우 내년 첫 임시국회에서 재론키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과거청산문제도 지난 국정조사대상이었던 12·12사건,율곡사업,평화의댐등 3대 의혹사건을 이번 회기내 마무리 한다는데 합의했다.또 민주당이 집착했던 김대중납치사건및 내란음모조작사건은 특위구성 보다는 일단 정부측에 성의있는 조사활동을 촉구한다는 선에서 타결됐다. 협상과정에서 민주당은 개혁입법과 김대중씨 사건등 과거청산문제의 예산안과의 연계투쟁방침에서 일보 후퇴했고 민자당은 절대 불가방침이었던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등을 심의할 수 있다는 융통성을 보인 것이다. 이같은 합의문내용 문맥만으로 보면여야가 그동안 국회정상화의 걸림돌이었던 과거청산이나 개혁입법을 이번 회기내 공동노력을 통해 풀어나간다는데 합의한 것처럼 보인다. 민자당은 야당의 주장을 어정쩡한 상태로 수용하는 선에서 국회로 끌어들였고 민주당은 일단 국회공전의 책임에서 벗어나 단계적인 주장관철을 위해 우회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국회공전이라는 여론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같은 합의를 도출해 내기는 했지만 합의문맥 대목 대목마다 또다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소지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우선 개혁입법의 처리를 「예산안과 병행통과 될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대목을 두고 민주당에서는 『반드시 같이 처리한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반면 민자당은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개정법안내용에 있어서도 안기부법의 경우 민주당은 수사궈네정보조정궈네보안감사권·예산회계특례법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안은 이부분에 대해 일부 문제점을 개선한 만큼 폐지는 불가하다는데 한치의 양보가 없는상황이다. 과거 청산문제도 김대중씨 사건은 무난히 넘어갔지만 율곡비리등 3대의혹사건 마무리문제는 쉽게 해결돌 사안이 아니다.민자당은 이를 『국정조사보고서를 채택하는 선에서 마무리』(김영구총무)하는 절차상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민주당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의 증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이 구체적인 방향설정이 없는 어정쩡한 합의는 여야각당 내부에도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민자당은 일단 위기는 모면했지만 쟁점사항 타결과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민주당의 연계투쟁전략에 휘말릴 부담을 안고 있다. 민주당도 그동안 병행→연계→병행통과를 오가던 당론결정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복잡한 당내사정에 부담을 안고 있다.이날 총무회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소속의원들이 일단 합의사항을 추인해 주었지만 향후 당론관철에 있어서는 강경대응해야 한다는 발언 일색이어서 당지도부로서도 강경노선 선택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김대식총무도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의원들의 항의에 대해 『이번 단계는 이정도 수준이지만 마지막 단계의 수단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밝혀 민주당이 예산연계투쟁을 마지막 카드로 활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따라서 국회는 11일부터 예결위활동과 상임위활동,과거문제처리에 착수할 것이지만 활동과정에서의 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각당의 자존심과도 맞물려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 국회 오늘부터 정상운영/개혁입법·예산안 병행처리/여야총무 합의

    ◎12·12등 3대의혹 조사도 매듭짓기로 여야는 10일 국회에서 총무회담을 갖고 11일부터 국회를 정상화시켜 예산결산위원회와 각 상임위활동에 착수하고 개혁입법과 민생관련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여야는 현재 정치특위에 계류중인 안기부법·통신비밀보호법·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이 예산안과 병행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이번 회기내 처리가 어려울 경우 내년도 첫 임시국회에서 재론하기로 했다. 여야는 또 12·12,율곡사업,평화의 댐 건설 등 3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무리짓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국회정상화의 가장 큰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김대중씨 납치사건과 내란음모사건에 대해서는 우선 정부측에 성의있는 조사를 촉구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여야는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해 국회내에 국제경쟁력강화및 경제제도개혁특위를 구성키로 했으나 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는 문제는 추후 협상을 통해 논의해나가기로했다. ◎의사일정 확정 여야는 11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10일 하오 수석부총무접촉을 갖고 다음과 같이 의사일정에 합의했다. ▲11월11∼17일=상임위및 예결위활동(예산심사,법률안등 안건심사) ▲11월18일=본회의(92년도 예산결산,92년도 예비비지출 승인 등) ▲11월19∼27일)=상임위(법률안등 안건심사),예결위(94년도 예산심사) ▲11월29일∼12월2일=본회의(94년도 예산안,기타안건) ▲12월3∼14일=상임위활동및 법률심사 ▲12월15∼18일=본회의 안건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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