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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영 육군이병 수류탄에 폭사/서울 가양동서

    지난 19일 수류탄과 K2소총 및 실탄을 들고 경기도 파주군에서 육군 모부대를 탈영한 뒤 인질을 잡고 경찰에 저항하던 이정민(20) 이병이 20일 하오 2시30분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올림픽대로 진입로 입구에서 경찰의 총에 왼쪽 허벅지를 맞고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수류탄이 터져 그자리에서 숨졌다. 군은 숨진 이 이병이 『부대고참들의 구타가 심해 견딜 수 없었다』고 인질로 잡고 있던 김종식(김종식·29·건축업)씨에게 말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부대관계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탈영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 이병은 19일 하오 8시50분쯤 소속 부대에서 탄약고 경계근무를 서다 탈영,문산 통일전망대 이웃에서 김씨의 갤로퍼를 납치했었다.
  • 급변하는 성도 곤명시(운남성을 가다:5)

    ◎외국인투자액 3년새 25배 급증/매년 12% 고성장속 마약·매춘 오명/일년내내 봄날씨… 관광객 연 백40만/도심 새벽까지 불야성… 부녀자 인신매매 극성 운남성의 성도 곤명시의 하루는 두번 시작된다.상오8시를 전후해서 각기 직장에 출근하면서 공식적인 하루가 시작되지만 퇴근이후 또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하오5∼7시쯤이면 시내의 인도를 온통 노점상들이 차지한다. ○인도 노점상으로 가득 각종 물건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들로부터 구두닦이,점치는 사람,즉석 건강진단에 나선 병원의사와 의학도,맹인안마사들까지 저녁이면 거리는 커다란 장터가 된다.새벽 1∼2시까지 미용실겸 안마시술소의 불빛과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전거길을 달리는 시민들의 자전거 행렬로 곤명의 밤은 쉼이 없다. 일년내내 봄날씨가 계속된다해서 「상춘지성」이란 별명을 가진 이곳 곤명은「공산당 지배하의 딱딱한 도시」라는 인상이 전혀없이 자유로워 보인다.「서남지역의 진열장」이란 별명답게 중국과 운남성의 고민과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마약·매춘·에이즈의 오명과 몇해째 계속되는 12%가 넘는 경제성장률,외국투자의 급증,연 1백40만명이상의 국내외 관광객…. ○차량 연 1백50% 늘어 92년 등소평의 외국투자 제한해제등 전면개방이 시작되면서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91년까지 53㎦였던 도시면적은 몇년사이 1백6㎦로 팽창했으며 자동차는 해마다 1백50%씩 늘고 있다. 외국인투자도 91년 합작기업 35곳,투자액 2천3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엔 6백70곳,5억8천만달러로 기업수는 19배,투자액 25배나 뛰어올랐다. 홍콩·대만기업인들의 투자가 전체투자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미얀마·싱가포르·태국이 투자순위 6위안에 들어있다.이곳엔 태국과 라오스·미얀마영사관이 있고 베트남도 70년대말 관계악화로 철수했던 영사관의 재개설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창문을 여니 신선한 공기와 함께 모기와 파리가 들어온다」는 등소평의 말처럼 부작용도 긍정적 면과 함께 커가고 있다.직업을 위해 농촌을 떠나온 연 30만∼40만명의 유동인구에 따른 부작용은 마약·매춘·치안악화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유동인구중 등소평의 고향인 사천성출신이 80%이상이며 택시 살인사건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게 시 관계자 설명이다.이 때문에 단기체류 노동자에 대한 거주지등기와 증명이 올부터 의무화됐다. ○홍콩·대만기업 대부분 연간 수백명의 여성이 곤명등지에서 납치된다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85년부터 성 전체에서 단지 수백명의 여성이 납치됐다가 구조됐을 뿐』이라는 성부녀연합회 왕의명회장의 답변에서 인신매매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김용반점,금화대주점,곤명반점등 별4개의 호텔주위에선 밤은 물론 낮에도 어렵잖게 낯선 남자에게 눈짓하는 「수상한」 여인들에 부딪치는 것도 「신선한 공기」와 함께 들어온 불청객임은 물론이다. ○이농인구 30∼40만 78년 문화대혁명이후 이곳에 온 첫 외국인이었던 미국인 엘리자베스 부즈씨의 표현처럼 이곳은 더이상 『도시전체가 황토빛 느낌』도 아니고,『차를 이따끔씩 구경할 수 있는 널따란 대로에서 중국인 친구들과 유유히 이야기하며 자전거를 모는 즐거움』도 더이상 누릴 수없다.그녀가 영어를 가르쳤던 곤명대학의 붉은 진흙벽돌 담벼락도 이젠 모두 콘크리트로 바뀌었다.우중충한 중국옷대신 갖가지 산뜻한 옷을 차려입은 시민들은 「모기와 파리」는 아랑곳않은채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곤명이 당·송시대 이래 초웅·대리시등을 통해 미얀마 북부와 인도·아라비아까지 중국 차와 도자기등을 실어나르는 주요 무역로의 위치를 되찾고 있음을 반가워한다.왕곤명시장도 『국경무역과 상호 교차투자,인적인 교류와 원자재의 물물교역등 동남아와의 경제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경제 도약단계에 있다』고 말한다.93년부터 운남·사천·귀주·광시·티베트등 서부지역 5개성이 매년 8월초 곤명에서 동남아회사들을 겨냥한 교역회를 열고 있다.지난해엔 5천4백여명의 외국바이어들이 참가,1억5천만달러의 교역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당나라 때부터 다마로라 불리며 북쪽의 실크로드 못지않게 번성한 무역로였던 곤명루트는 지금은 아름드리나무와 트랙터·가전제품등을 가득 싣고 베트남·미얀마등 국경지역을 오가는 일본제 대형화물차들이 대신한다. ○대동남아 교역 가속화 이강 시정부 비서장은 『이곳과 미얀마북부 라시오시사이의 2∼4차선도로는 2차세계대전당시 일본군과 싸우던 중국군에 무기와 전쟁물자,증원군을 지원하던 「아시아전선의 생명선」 버마(미얀마)로드 또는 스틸웰(장군)로드로 미국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다.프랑스인들에겐 1백년전 「대인도차이나 식민지건설의 영광」이라는 전설로 남아있는 곤명에서 하노이까지의 협궤철도는 제대로 연결이 돼있지 않지만 실제 주요 수송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비서장은 『이곳은 운남성 뿐 아니라 아직 미개발상태에 있는 동남아 북부의 개발을 촉진하고 중국의 개방성과와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역할을 하며 발전할 것』이라며 자신있게 진단했다.
  • “옴교 사린 대량생산 기도”/화학반 책임자 진술

    【도쿄=강석진 특파원】 옴진리교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도쿄경시청 합동수사본부는 18일 교단 화학반 책임자인 쓰치야 마사미(토곡정실·30)로부터 도쿄지하철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 사린 살포사건의 사린은 자신의 연구동에서 만들었다는 진술을 받아 냈다. 쓰치야는 경찰조사에서 도쿄지하철사린사건 직전 피살된 교단 「과학기술성 대신」 무라이 히데오(촌정수부)의 지시에 따라 야마나시현 가미구이시키촌 제7사티안 옆 자신의 연구동에서 사린을 제조,무라이에게 전달했으며 『사린을 대량 생산하려 했으나 도중에 사고가 생겨 신자들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해 제7사티안을 지난해말 폐쇄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지난해 6월27일 7명이 사망하고 2백명이 부상한 마쓰모토시 사린사건 발생전인 지난 4월에도 무라이의 지시로 사린을 제조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송치된 아사하라교주는 검거된지 사흘째인 18일에도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혐의사실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아는 것을 내가 다 알지는 못한다』고 자신의 지시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사린사건에 관여한 교단간부들이 속속 체포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 상오에는 지난 2월28일 발생한 도쿄시내 메구로공증사무소의 가리야사 무장납치사건의 주모자로 특별수배를 받아온 마쓰모토 다케시가 경찰에 검거됐다.
  • IPI의 대북언론자유 촉구(사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북한의 개방과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대북결의문을 채택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16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결의문의 내용을 보면 ▲모든 언론인의 자유로운 출입국과 여행을 보장할 것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사소통의 자유를 허용할 것 ▲이산가족의 편지왕래를 허용할 것 등이다.IPI가 북한의 언론과 인권에 관심을 갖고 개선을 촉구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결의문은 북한당국에 대한 세계여론의 첫경고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에 언론자유와 인권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언론」과 「인권」이라는 개념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자유는 물론 주민일반의 인권도 처참한 상태지만 북한전역에는 12개의 「정치범」수용소가 있고 이들 수용소에는 북한공산독재체제가 용납하지 않는 15만여명의 「정치범」이 갇혀 인간이하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북한이 납치해간 남한사람도 휴전이후만 4백38명이나 된다.북한당국은 이들의 송환은커녕 생사확인을 위한 서신교환마저 거부하고 있다.우리는 차제에 납북인사들의 송환을 강력히 촉구한다.이들의 송환이 이산가족의 재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한반도상황에서 이산가족문제만큼 절박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IPI대북결의문이 채택된 날 우리정부는 「북한인권대책실무회의」를 신설하기로 했다.북한의 인권문제에 정부가 적극 대처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북한당국으로서는 공산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언론과 인권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자유세계와 언론 특히 같은 동포로서 우리는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북한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붉은 귀족」들은 IPI의 대북결의와 북의 인권에 대한 우리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 「배교자처단조」 4명 구속/영생교 신도 소문종씨 살해 암장

    서울지검 강력부(김승년 부장검사)는 16일 영생교 신도 소문종씨(소문종·당시 24세)를 납치해 폭행하고 암매장하는데 가담한 박삼용(42) 이충은(32) 이하준(30) 정광조(32)씨등 4명을 살인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범행을 주도한 지성룡(40)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박씨등이 소씨의 손과 발을 묶고 6∼7시간 이나 때려 위독한 증세를 보이는데도 계속 구타한 것으로 미루어 「소씨가 죽어도 좋다」는 살해 의도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 사채업자·병원장 등 포함/청부폭력·살인 12명 구속/서울지검

    서울지검 강력부(김승년 부장검사)는 10일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회사를 빼앗은 민수진(43·여·사채업)씨와 서울 서초구 제일그린병원장 이석우(32)씨,폭력조직 「강남쌍택이파」 행동대장 조원미(33)씨 등 5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와 함께 청부살인등을 한 「서울 광주파」행동대장 김우경(32·서울 은평구 대조동)씨와 강옥주(33·술집경영)씨등 7명을 살인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민씨는 93년 8월 대전엑스포 공식상품인 공기청정기등을 생산하는 삼손엔지니어링에 김모씨(40)와 함께 투자해 회장직을 맡고 김씨에게 사장,의사 이씨에게 부사장 자리를 주어 회사를 운영하다가 경영상태가 어려워지자 조직폭력배 조씨를 끌어들여 김씨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로 납치,협박해 회사 경영권을 독차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의사 이씨는 개인병원 개업을 준비하다가 조직폭력배를 통해 알게된 민씨로부터 병원시설 투자금 4억∼5억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김씨를 납치·감금·협박하는데 낀 뒤 1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배 김씨는 지난해 8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점쟁이 민모씨(23)와 김모씨(38)로부터 『가족들을 못살게구는 오빠(29)의 팔·다리를 못쓰게 해주면 사무실을 차려주겠다』는 부탁과 함께 30만원을 받은 뒤 강학원(26·구속)씨등 한패 4명과 민씨의 오빠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 매니저 살해혐의/2명에 사형구형

    서울지검 홍효식 검사는 10일 연예인 매니저 배병수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용철(21)·김영민(23)피고인에게 강도살인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광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들은 평소 배씨에게 앙심을 품어온데다 3천여만원의 신용카드 빚까지 지게되자 배씨를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지적,『치밀한 준비끝에 범행을 저지른 뒤 사체를 유기하는 등 범행의 동기와 수법이 잔인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한편 탤런트 최진실(27)씨는 재판부의 강제구인으로 이날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와 『오랫동안 배씨를 매니저로 삼고 함께 지내왔으나 피고인들이 배씨를 살해한 동기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 남한 공산당 막바지 투쟁(새로 쓰는 한국현대사:18)

    ◎「국대안반대투쟁」선동… 미군정 곤경에/UN임시위 입국에 다급… 「2·7폭동」결행/경찰서 공격·수송기관 파업… 빨치산운동 계기로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조사부 〃) 해방공간에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그 얼굴을 달리했다.이는 공산주의 운동의 강력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투쟁은 극렬쪽으로 치달았다. 1947년의 공산당 투쟁은 남로당이 전해 가을에 주도한 국대안반대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3·22총파업과 7·27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박헌영이 이끄는 남한 공산주의자들이 몰락이냐 재기냐의 기로에서서 선택한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다시 말하면 전해의 투쟁전략,신전술에 따른 9월파업과 10월 폭동에서 잃어버린 입지를 생존차원에서 만회하려는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어떻든 그 결과는 남로당,즉 남한 공산당의 붕괴를 자초했다. ○전국적 동맹휴학 지시 우리는 여기서 47년부터 유혈 폭력화되기 시작한 남한 공산주의자들의 일련의 조직적 투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그 하나가 미군정 법령 102호로 발효된 「국립서울대학교 창설에 관한 법령」이 도화선을 이룬 국대안반대투쟁이다.이 사건은 조선공산당의 조종을 받은 학원내 세포들이 전국적인 동맹휴학을 선동한 46년 9월에 일어났다.미군정이 국립 서울대학교을 창설하면서 미군정법령 102호를 통해 직접적인 학원 간섭의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서울대 상대 공대 사범대 학생들이 동맹휴학에 들어간 것이 시발이 되었다.이어 9월5일 서울대 이공학부 교직원 38명이 총사직을 결의했고 1947년으로 접어들면서 반대투쟁을 본격화함으로써 군정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 국대안은 일부 여론에서도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이처럼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된 것은 조선공산당의 역할이 컸다.그리고 그 배후에는 소련이 버티고 있었다.당시 북한에 주둔했던 소련군 사령부 교육담당관 니콜라이 그즈노프 소좌가 남로당 위원장에게 내린 지령이 바로 그 사실을 입증한다.그 내용은 『소련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남조선 인민들은 남로당의 계획밑에서 광범한 혁명을 일으킬 임무가 있다.남조선에 있는 모든 학교에서는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이며 맹렬한 투쟁을 일으키는데 있어 제 1차로 동맹휴학을 합법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76명 피검… 지방당 타격 「국립서울대학교 창설에 관한 법령」발표는 1차 미·소 공위 결렬후 미군정의 정책에 정면 반대하는 소위 신전술을 폈던 조선공산당에게 호기로 작용했다.그래서 좌익학생단체인 민주학생연맹(민학련)과 학원내 당 세포를 통해 국대안 반대투쟁을 대대적으로 벌일 것을 지시했던 것이다. 1947년에 접어들면서 미·소 공위재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남로당은 공위에서 소련의 입장을 우위에 두기 위해 당세확장에 나서는 한편 정치투쟁을 보다 강화했다.미군정도 이에맞서 2월 한달동안 좌익계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자 남로당은 3월10일 전평과 지방당을 조직적으로 가동시켰다.이것이 바로 3월 22일 서울 부산 광주 인천 부평 대구 등 주요도시와 공업지대에서 24시간 파업에 들어간 3·22총파업이다. 남로당은파업을 통해 노동자 권리보장과 박헌영 체포령 취소,구속 전평간부 즉시 석방,좌익신문 정간 취소 등을 구호로 내걸었다.이 파업으로 2백 76명이 피검되는 등 남로당은 지방당 조직이 큰 피해를 입었다.설상가상으로 우익으로부터도 종전보다 더 심한 공격을 받는다.남로당으로서는 이 3·22파업의 후유증 청산이 절실했다.그래서 남로당은 후유증 청산과 5월21일 재개된 미소공위에서 유리한 입지확보를 노려 당원 5배가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공위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자 공위의 성공을 확신했던 남로당은 당황한 나머지 공위 진전을 위한 군중동원을 기도하기에 이른다.이는 7월27일 전국에서 열린 「미소공위경축 임시정부 수립촉진 인민대회」로 나타났다.전국적으로 열린 인민대회에서는 모두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결정서를 채택했는데 미소공위에 직접 전달되었다.이 결정서는 반탁진영 때문에 공위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과 실력으로 우익 테러를 분쇄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또 미소공위 협의 대상에서 민전이 가장 적합한 단체라고 강조한 결의서는 임시정부 수립에서 반탁진영을 제외시킬 것과 국호는 인민공화국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당시 소련대표 스티코프는 이에 보조를 맞춰 8월 1일 덕수궁 석조전 회의실에서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가졌다.그는 이 회견에서 『공위의 급속추진을 고대하고 있는 조선인민들의 간절한 요청을 달성하기 위해 공위 본회의에서 반탁투쟁위원회에 가입한 소수정당 및 단체문제로 업무의 지연을 일으킬수 없으므로 1백47개 정당,단체에 대한 개별 조사를 시작할 것을 제의했다』고 밝혔다.이 개별조사 대상 정당 및 단체문제는 미소공위 결렬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남로당의 7·27투쟁은 일사분란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공산당은 아무런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남로당의 몸부림 무위로 미소공위가 결렬되고 한국문제가 유엔에 이관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1948년 1월8일 서울에 들어오면서 남로당은 다급해졌다.남한만의 단독선거는 곧 남로당 거점 상실을 의미한 상황에서 극렬 저지투쟁은 최선책일 수 밖에 없었다.2월7일 민전과 전평을 내세워 전국에 걸쳐 조직적인 폭동 파업을 결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미국 버클리대 교수를 역임한 R A 스칼라피노는 자신의 저서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이렇게 전한다.『엄청난 폭력을 수반한 파업이 일어나자 수송기관들은 태업에 들어갔고 숱한 경찰서가 공격을 받았다.정부관리들이나 보수파의 지도자 가운데 5명이 죽고 13명이 부상,납치됐다.파업 참가자 가운데 28명이 죽고 10명이 부상당했으며 1천4백89명이 체포됐다』. 미군정의 마지막해 1948년의 2·7폭동은 남로당이 무장투쟁 전술을 도입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7폭동은 각 지방에 「야산대」라는 무장게릴라 조직(빨치산)을 만들어낸 계기가 됐던 것이다.거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던 제주도 4·3사태도 그 흐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그러나 남로당의 저지투쟁은 무위로 끝났고 마침내 제주도르 제외한 남한 전역에서 5·10선거가 치러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CIC문서 발굴/“하지가 박헌영에 도망칠 시간 주었다”/“체포땐 미소공위 재개에 걸림돌”판단/46년 10월 월북… 남로당 「10월 폭동」지령 해방정국에서 남한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한 박헌영은 미군정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존재였다.그래서 체포령을 내렸지만 실제 붙잡지 않고 쫓아버렸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찾은 주한미군사령부 방첩대(CIC)문서를 통해 밝혀냈다. 이 문서는 1946년 11월 12일 한미공동소요대책위원회 13차회의에서 보고된 「박헌영의 구속영장에 관한 장택상의 진술」.의장(김규식을 지칭)이 박헌영을 체포하는데 경찰이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 답변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장택상은 여기서 박의 체포명령은 결코 못 받았다고 전제하면서 얼마후 CIC의 니스트 대령으로부터 찾아보라는 말은 들었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하지 장군으로부터 니스트 대령의 하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한 장택상은 하지 장군이 박에게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벌어 준 것으로 보았다.따라서 박이 체포령을 피해 도망갔는데 이 대목은 하지장군과 러치 장군,맥그린 대령 등이 증명할 수 있다고 장택상은 덧붙였다. 미군정 최고책임자 하지가 박헌영 체포를 지연시킨 까닭은 아마도 소련을 의식한 배려로 풀이될 수 있다.박헌영의 체포는 자칫 미소공위 재개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 박이 숨어버린다면 공산당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든 박헌영은 그해 10월초 체포령을 피해 북으로 넘어갔다.그동안의 증언을 종합하면 박은 38선이 가까운 해주에서 남한공산당을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소위 국대안반대투쟁과 10월 폭동을 해주에서 지령함으로써 하지가 노린 공산당 무력화 노력은 실패했던 것이다.
  • 조선도공 비문 왜곡/사가현에 정정 요구

    【사가현(일본) 교도 연합】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꽃피운 조선도공 이참평(1579∼1655)의 비문이 당시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어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을 방문중인 한국의 향토사학자 대표단은 2일 일본 사가현 아리타시에 있는 이참평의 비문에 적혀 있는 『조국을 등지고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부분은 당시 전쟁에서 패배해 후퇴하는 왜군이 조선인 기술자를 대거 납치해간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용씨를 단장으로한 한국 사학자대표단은 다케히코 가와구치 아리타시장및 사가현 관리들을 만나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이참평이 1598년 왜군에 의해 끌려온 것으로 비문 내용을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 국교생 납치살해범 검거/30대/“인신매매 위해 여자인줄알고 납치”

    ◎검찰,20대 공범 추적 【목포=박성수 기자】 지난달 18일 전남 순천시 서면에서 순천 동산국교생 김삼중군(11)과 하모양(13·중1년)을 납치,김군을 살해하고 하양을 13일동안 끌고 다닌 범인중 1명이 1일 전남 목포에서 붙잡혔다. 목포경찰서는 이날 하오 7시55분 항동 신영장여관 앞길에서 범인으로 수배된 성태수(36·여수시 호명동 1368)를 붙잡고 공범 서동원(26·광양시 옥룡면 용곡리 265)를 쫓고 있다. 성씨는 『인신매매를 위해 김군과 하양 모두를 여자로 알고 납치했으나 김군이 남자임을 알고 거추장스러워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찔러 살해했으며 하양도 나이가 어려 팔 수가 없어 데리고 다녔다』고 진술했다.
  • “반외세론 한계”미·아세안과 관계개선(종전20년/베트남의오늘:상)

    ◎호치민대 미국학강좌 개설 2년째/“자주통일 위업” 민족자긍심 드높아/150만 보트피플·사회­자본주의 접목따른 과제 산적 75년 4월 30일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베트남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해병 11명을 태운 헬기가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을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처절했던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동안 베트남은 수백만명의 보트피플 문제와 이웃 캄보디아 점령으로 국제적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빈곤탈피를 위한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과거의 적(적)미국과도 화해를 이룩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다.변화하는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국이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했다』­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 당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방장관은 미국이 베트남전을 비극적으로 마감할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꼽았다.사실 베트남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베트남전 당시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수행의 가장 큰 대의명분이었음은 물론 지금까지도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해방 20주년」을 맞는 베트남에서는 현재 자신들의 위대한 민족민주주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준비가 한창이다.특히 올해는 공산당 창당 65주년,건국 50주년,건국의 영웅이며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5주년등 갖가지 행사가 겹치는 탓에 나라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호치민 전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으며 붉은색 베트남기와 다채로운 경축 깃발이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를 뒤덮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명백한 패배로 끝난 전쟁에 대한 앙갚음으로 전후 19년간 목조르기식 경제제재를 가하는 바람에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면치 못하면서도 베트남인들은 단결된 민족적 의지로 거대한 나라 미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했다는 자부심만은 종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갖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민족주의적 열정도 경제난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앞에서는 더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같다.지난 86년 12월 6차 공산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본뜬 「도이 모이」(쇄신)정책을 채택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은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그 결과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면서 지난해에는 8.9%라는 고도성장을 이룩하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가져다 준 혜택을 실감하면서 베트남인들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베트남인들은 이제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해 더이상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고있다.도 무오이 서기장 등 베트남지도자들도 과거에 자신들을 괴롭혔던 국가의 국민들에 대해 한결같이 『과거는 과거일뿐 우리는 과거에 얽매일 수 만은 없으며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의 협력강화와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92년 7월 우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지난 78년 12월 캄보디아침공으로 빚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했으며 중국과는 이미 91년 11월 관계를 정상화했다.이와함께 베트남은 빠르면 올 7월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 외무장관 및 확대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아세안에 가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베트남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해초 미상원의 대베트남 금수조치 해제결의안 가결을 이끌어낸 데 이어 올해 1월 미국과 상호연락사무소를 개설함으로써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또 과거의 「적」인 미국을 배우려는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 호치민 시립대학에서는 공산정권수립후 최초로 지난해부터 미국학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적극적인 경제개방정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서구식 다당제 정치개혁을 거부한채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지난 90년 이후 동구에 밀어닥친 민주화 물결에 대해서도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들이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제대로 사회주의를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의 이같은 경직한 태도는 90년 당시 열린 당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베트남의 옐친」이라고 불렸던 찬 수안 바크라는 개혁파 정치국원을 축출한 이래 일체의 정치개혁 움직임을 용납치않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은 시장경제 도입과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부합될수 없는 상반된 국가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달성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이와함께 공산화 이후 1백50여만명에 달했던 「보트 피플」은 아직도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으며 남·북간의 경제력 격차에 따른 남북갈등과 자본주의를 이미 경험한바 있는 남베트남인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국민통합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 아르헨군/“반체제 집단학살” 공식사과/76∼83년 군정과오 첫인정

    ◎군 사령관/“1만여명 실종 책임질 시점”/“2천여명 수장” 퇴역군인 폭로… 대선정국 파문 【부에노스아이레스 AP 로이터 연합】 아르헨티나군은 25일 지난 70년대 군부에 의해 수천여명의 반체제 인사들이 납치,살해된 「더러운 전쟁」에 대해 20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공식 사죄했다. 마르틴 발사 아르헨티나 군사령관은 이날밤 TV 시사토크쇼 「뉴타임」에 출연,발사 사령관은 이날 『당시 군은 테러범들을 합법적 수단으로 솎아내는 법을 몰랐으며 정보를 얻기 위해 살인 등의 불법적 수단을 사용했다』며 『이제 책임을 질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76년부터 83년까지 아르헨티나군부의 통치기간중 1만여명이 실종됐으며 이들 대부분은 납치돼 고문을 받고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 지난 70년대말 군정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는 피랍 재야인사 2천여명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라 플라타강에 해상투기했다고 이 사건에 관여했던 한 퇴역군인이 25일 폭로했다. 아르헨티나의 클라린지는 이날 육군하사관 출신인빅토로 이바네스의 말을 인용,지난 76∼78년 3년동안 그가 근무했던 육군소속 「캄포 데 마요」부대 비밀형무소 안에 2천3백여명의 피랍인사들이 헬기와 수송기편에 실려 라 플라타강에 공중투하됐다고 말했다. 이바네스의 이같은 발언은 대선을 앞둔 아르헨티나 정국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나부터 개혁해야 사회병리치유”/공동체의식개혁국민협 김지길상임회장

    ◎“「공동체의식」 가꿔 도덕성 회복해야”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의 개혁」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22일 하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공동체 의식개혁 실천 범국민 출범대회」의 대회장인 김지길목사(72)는 우리 사회의 개혁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공동체 의식개혁 국민운동 협의회」(공개협)의 상임의장으로 이날 행사를 주관한 김목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인 「공동체운동」의 활성화를 이룩하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으나 국민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호응을 얻어낼지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공개협은 93년 6월에 설립된 순수 민간 사회운동 단체로 전국 14개 시·도에 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은 15만명에 이르고 있다. 지난 2년동안 이날 대회를 준비해온 공개협은 이번에 선정한 1백대 과제를 한권의 책자에 담아 각급 학교와 관공서등에 널리 보급함으로써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최근 온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김성복과 박한상의 부친 살해사건,지존파와 온보현의 부녀자 납치살해사건 등도 따지고 보면 「나만을 생각하는 사회풍조」가 빚어낸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우리의 도덕성은 우리 선조들이 활용했던 품앗이·두레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면서 『공동체 의식의 정착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자위대 58명 옴교 신자”/사린제조·납치가담 가능성/일경

    【도쿄 교도 연합】 일본 독가스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옴진리교 신자 중에는 58명의 전·현직 자위대원이 포함돼 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이 교단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22일 보도했다. 육·해·공 각 부대에 소속돼 있는 이들 자위대원은 옴진리교 입적을 위한 훈련과정에서 군의 전문지식에 관한 질문을 받았으며 이들 가운데는 약품 및 화학부 소속 대원들도 포함돼 있고 몇명은 옴진리교 가입 전 낙하산병으로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들은 또 일본 경찰당국이 이들 전·현직 자위대원들이 사린가스 제조와 납치 및 기타 각종 특수임무 수행에 가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 테러대응 세계공동의 노력을(사설)

    독가스와 폭탄에 의한 테러가 4월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일본에선 도쿄에 이어 요코하마에서 또 지하철독가스 테러가 발생했으며 미국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탄차테러를 당해 많은 희생자가 났다.충격적이고 개탄스런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탈냉전후 세계의 대국적질서는 평화구도를 지향할 것이나 문화·인종·종교차원의 불화·갈등에 따른 군소분쟁및 테러는 오히려 증대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 있어왔다.중동및 옛공산권지역등의 분쟁은 이미 그런 예측을 뒷받침하는듯 했다.최근 일련의 테러도 같은 범주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계되는 것은 테러수법이 갈수록 잔인해지고 독가스같은 무차별적 대량살륙 수단까지 동원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종교적 광신주의 목적을 위한 테러까지 등장한 것은 불길한 조짐이 아닐수 없다.오클라호마시티의 폭탄차테러는 중동서 시작된 테러유형이다.93년 뉴욕 국제무역센터 테러나 이번의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일본에서 시작된 독가스테러 유형이 세계로 확산된다면 사태는 심각하다.우리는 어떤 목적이나 수단의 테러도 단호히 반대한다.테러는 무고한 인명을 무차별적으로 볼모 혹은 희생의 제물로 삼는 독선적인 반인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 공적이기 때문이다.그동안의 대표적인 테러수단은 항공기납치 혹은 폭파였다.세계적인 강력·공동 대응결과 다행히 최근엔 억제되는경향을 보이고 있다.대신 폭탄차및 자살테러 유행에 가공할 독가스 수법이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폭탄이나 독가스테러에 대해서도 항공기 납치·폭파테러에 대한 경우와 같은 유엔중심의 강력한 세계공동 대응책 강구가 시급하다.KAL(대한항공)기 공중폭파및 외국방문 국가원수에 대한 폭탄테러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그것은 남의 일일수 없다.적대적인 북한은 사린 등 독가스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북한테러 가능성에대한 경계를 새로이 하는 경각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대만,대중 실무협상에 정부관리 첫 참석

    【홍콩 연합】 대만은 중국과의 실무협상에 처음으로 행정원 대륙위원회를 비롯,내정부·농업위원회 등의 정부관리들을 참석시키기로 하고 명단을 확정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17일 보도했다. 확정된 명단은 대륙위원회 문교처 학술문화과장 왕소용,경제처 경제무역과장위립지,농업과장 임벽운,법정처 내정국방과장 채생당,기획처 연구·여론조사과장 하무천 및 내정부와 농업위원회 등의 실무관리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5월초 대북에서 개최예정인 양안간 최대 협상창구인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간의 제8차 실무협상부터 참석하기 시작한다. 이들 정부관리는 제8차 협상에서 3대 주의제인 ▲비행기 납치범과 ▲불법입국자 인도및 ▲어업분규 협상에 2∼3명씩 참석하며 주의제들 이외에 ▲경제와 ▲문화교육협상이 개시돼도 참석한다.
  • 과학적 추적·공조수사의 개가/국교생 유괴범 검거 안팎

    ◎범인 전화발신지·음성 면밀히 분석/서울­전남 경찰청 협조… 수사망 좁혀 20대 부부의 국민학교어린이 유괴사건이 발생 33시간남짓만인 12일 하오10시50분쯤 모두 해결됐다. 경찰의 피랍 어린이및 범인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범인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겨다니기에 바빴고 경찰은 도망가는 범인의 전화발신지 등을 추적하느라 경찰과 범인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드라마가 펼져졌다. 경찰의 이번 개가는 범인의 전화발신지와 음성내용을 정확히 분석해 수사의 방향을 좁혀나가는 과학수사,그리고 서울과 광주경찰서사이의 완벽한 공조수사로 이루어졌다. 경찰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외아들이 납치됐다』는 어머니의 전화신고를 받은 것은 11일 하오22시20분.경찰은 신고즉시 유괴된 어린이가 TV광고 모델이어서 그 유명세를 고리로 잡고 가족들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유괴사건이라고 보고 우선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여 나갔다.그러나 주변인물가운데는 별다른 혐의자를 찾지 못하게 되자 단순납치사건으로 판단하게 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잠복근무에 들어가 12일 새벽부터 유괴된 어린이의 가족들에게 걸려온 3차례의 전화내용을 녹취한 끝에 범인이 25세가량에 전라도사투리를 많이 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러고는 관할전화국에 발신지추적을 의뢰,범인의 행적지를 쫓기 시작했다.마침내 이날 하오5시2분쯤 범인이 4번째 통화한 장소가 전남 보성의 한 공중전화부스임을 알아냈다.귀중한 단서를 잡은 서울중부경찰서는 곧바로 서울지방경찰청을 통해 전남경찰청에 공조수사를 의뢰했다. 이같은 공조수사로 하오10시50분쯤 보성을 거쳐 진주에 갔다 서울로 올라오던 범인을 동광주톨게이트에서 잡는데 성공했다.
  • 하교길 여 국교생 유괴/20대 검거/사업자금 3천만원 요구

    하교길 여자 국민학교생을 유괴해 3천만원을 요구하던 납치범이 하루만에 붙잡혔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12일 김경봉씨(27)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혐의(유괴)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씨 부인 박성애씨(25)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김씨는 11일 하오 1시30분쯤 서울 L국민학교 앞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 학교 2학년 이모(8)양을 납치,로열살롱 승용차를 이용해 광주로 끌고 가 3천만원을 요구하다 하루만인 12일 하오 10시50분쯤 호남고속도로 동광양 톨게이트에서 불심검문 끝에 붙잡혔다. 이양은 이날 우산을 갖다주러 온 어머니를 기다리다 김씨에게 납치됐으며 경찰이 김씨를 검거할 때 함께 있었다. 김씨는 이날 경찰에서 『제과점을 하다 실패한 뒤 빚을 갚고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 일 진리교 간부 체포

    【도쿄 로이터 연합】 일본 경찰은 12일 옴진리교(진이교)내 자치성의 장으로 확인된 니미 토모이쓰(31)씨를 신도 납치 및 감금혐의로 체포했다고 관계자들이 밝혔다. 니미씨는 지난해 10월 교단을 탈퇴하려는 29세의 여자 신도를 납치,감금하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경찰은 지난주에도 「의약성」장으로 알려진 하야시 이쿠오 박사(48)와 방위청장 기베 데쓰야(39)및 비서진의 한 사람인 이시카와 고이치(26)등 3명을 체포한 바 있다.
  • 병원약관 편파적/환자 의무 “과당부과”

    ◎수술/일단 서명하면 피해자 구제절차 “산넘어 산”/입원/“진료결과 무조건 따르라”일방통행식 조항 병원을 찾는 소비자들은 수술이나 입원을 할 경우 「환자」라는 약자의 입장에서 병원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해 제시하는 약관에 서명을 함으로써 비로소 수속을 마칠 수 있다.「입원서약서」「수술서약서」라고 불리는 이들 약관은 병원마다 임의로 정해놓았을 뿐 아니라 병원측 의무는 배제한채 소비자(환자및 보호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침해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어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소비자보호원이 서울및 부산 광주 등 5대 광역시 소재 51개 병원(종합병원 21개 병원30개)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수술약관의 경우 이미 지난 90년 약관심사위원회(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무효로 심의·결정이 난 조항을 그대로 싣고 있는 병원(18개)도 있었다.즉 「수술후 후유증이나 합병증에 대해 민·형사상 일체의 소제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으로 이미 서명한 소비자는 의료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아예 제소를 포기하거나 약관무효소송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또「수술관련 분쟁 발생시 의료심사조정위원회 조정을 우선 신청할 것을 약정한다(의료법 제54조 2항에는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는 조항도 마찬가지.의료심사조정위원회나 법원중 소비자가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해야 함에도 법원제소권을 제한,소비자는 준조정전치주의에 적용을 받아 법원민사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입원약관도 각 조항마다 「이의없이」 또는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를 배제하고 있다.즉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수술여부 선택의 권리가 있음에도 「병원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수술은 언제든지 이의없이 감수하고 진료업무에 개입치 않겠다」거나 「진료시나 수술전·후에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해 병원과 병원직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치 않는다」는 내용을 약관에 넣고있다. 이밖에도 「병원의 비품 기물 파손시 이의없이 변상한다」「환자의 현금 귀중품이 분실돼도 병원에 전혀 이의제기 않는다」「미납치료비의 채권을 제3자에게 임의로 양도해도 이의를 제기치 않는다」고 돼있으며 「진료비 연체시 어떠한 법적조치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없다」고 항변권까지 제한하고 있다. 병원이용약관은 또 「환자의 검사기록및 방사선필름 등 사본 교부의무」등 병원측 의무사항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아 의료법상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의료서비스와 관련한 소비자불만은 해마다 늘어나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경우 수술·진료과오,의료비 과다지급 등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상담건수가 지난 90년 4백3건에서 지난해에는 1천85건에 이르렀다. 소보원 거래개선국 이강현 국장은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선진 외국처럼 소비자와 의료진을 모두 보호하는 의료사고보험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의 신속·공정한 제정과 정부차원에서 표준약관을 마련,병원마다 준수토록 하는 방안을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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