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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차절도 백41명 구속/범죄에 이용 28명도/경찰,일제단속

    경찰청은 12일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에서 도난 차량및 차량이용 범죄 일제검문검색을 벌여 차량을 이용한 강도·부녀자납치·성폭행 등 관련자 49명을 붙잡아 2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도난차량 1천2백33대를 회수하고 차량절도범 2백52명을 검거해 1백41명을 구속했다.
  • K­1R/「다규멘터리­음향실록 50년」 방송

    ◎일천황 항복선언에서 무궁화호 발사음까지/현대사 큰획 그은 2백여소리 집대성/8·15당시 경성거리 국민의 「만세함성」 생생/이승만·김구 귀국연설­이승만 하야성명도 광복 50년사에 점철된 수난과 환희의 파노라마가 생생한 음향으로 되살아 난다. KBS­1라디오가 오는 15일 상오 8시35분부터 82분동안 방송하는 광복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음향실록 50년」.이 프로그램은 화면이나 내레이터의 상황설명 중심으로 이끌어오던 기존 TV의 역사다큐방식과는 달리,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최대한 살려냄으로써 청취자들에게 역사를 음미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19 45년,『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히로히토 일본왕의 떨리는 목소리와 감격에 찬 해방의 함성에서부터 95년 무궁화호 위성발사순간 카운트다운까지 우리 현대사를 관통한 2백여 굵직한 사건의 소리가 집대성된다. 『국내 최초의 음향 다큐멘터리라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귀로듣는 현대사」가 될 것입니다』 「음향실록…」을 준비해온 KBS 라디오2국 김선옥 부주간은 『3년전 이프로를 기획한 이후 일본 NHK와 미국 VOA(미국의 소리 방송),리버티뉴스 등에서 자료를 수집했다』면서 정치적 이유 등으로 그동안 TV에서 스쳐가는 화면으로만 제공됐거나 아예 방송에 싣지 못했던 민감한 사건들도 이번 실록에 실었다고 밝혔다. 이승만 박사와 김구씨의 귀국연설,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김대중씨 납치사건후 동교동 기자회견,『저는 어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며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74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의 기자회견,79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후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의 발표문 등 우리 역사의 큰 물길을 낸 정치인들의 사건 당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이와함께 이 음향다큐에는 역사와 함께한 민중들의 치열한 소리가 담겨졌다.8·15당시 경성거리 국민들의 『만세』함성을 비롯,4·19 경무대앞 발포순간 흩어지는 시위군중들의 절박한 고함소리와 총소리,쓰러지고 잡아들이는 둔탁한 몸싸움 소리가 원음 그대로 나와 청취자들을 다시 현장으로 끌어 들인다.이는 80년 5월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도 이어진다. 『버러지 같은 놈…』(박정희 저격사건이후 김재규 관련 발표문 가운데 ),『처음엔 달래서 주고 그 다음엔…』(88년 광주청문회서 정주영씨 정치자금 관련 발언),『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79년 국회에서 제명된뒤 김영삼 신민당 대표의 국회연설 가운데)등 정치인들의「어록」도 흥미로운 부분. 86년 아시안게임,88년 서울올림픽과 지방자치시대를 알리는 서울시장후보들의 TV토론현장의 소리,무궁화호위성 발사음이 말미를 장식한다. 현장음으로만 전달되는 음향다큐멘터리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민중의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음악도 간간이 넣었고 전두환전대통령의 백담사행을 묘사하는 부분에는 목탁소리를 삽입,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했다.현장소리만으로 역사적인 상황·배경의 이해가 어려운 경우 성우 김도현씨와 국사편찬위원회 이원순위원장의 간단한 설명을 곁들일 계획이다.
  • 「중기지원 특별법」 검토/김 대통령 지시

    ◎“대기업 어음결제 기간 대폭 단축을”/30대그룹 총수와 오찬간담 김영삼 대통령은 9일 『중소사업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정책이나 제도의 틀을 뛰어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이같은 정책추진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도 검토하라』고 경제부처에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최종현 선경그룹,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30대그룹 총수및 박상희 중소기협중앙회 회장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중소사업자 지원을 제조업체 중심에서 유통업,서비스분야의 영세업자까지 확대하고 ▲중소기업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근로자 추가도입대책을 강구하며 ▲중소사업자의 합병·전업 등 구조개선 노력을 세제·금융면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배석한 홍재형 경제부총리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에게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대기업이 협력중소업체에 대해 우선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기술및 자금지원과 적정한 납품가격의 책정등을 추진하고 기계류·부품등 자본재를 구입할 경우,중소기업제품을 우선 구매토록 해달라』고 대기업 회장들에게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중소기업에 대해 가능한한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하거나 어음결제기간을 최대한 단축토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은 가급적 중소기업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남북문제는 서두르지 않고 인내로 대처하겠다』고 말하고 『불법노사분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며 법을 지키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치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향후 국정운영방향에 대해 『누가 뭐라해도 원칙에 입각해 올바른 길로 가겠다』면서 『취임직후 5년동안 단 한푼도 안받겠다고 밝힌 약속을 앞으로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정치자금 단절의지를 거듭 밝혔다.
  • 안목사·우성호 선원 송환 안되면 대북 쌀지원 재검토 방침

    ◎10일 3차 쌀 회담때 송환 강력 촉구 정부는 안승운 목사가 북한측에 의해 납치된 사실이 중국정부의 조사에 의해 최종확인될 경우 오는10일 북경에서 열릴 쌀관련 3차 남북당국자 회담에서 안목사의 송환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정부는 또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지난번 1,2차 회담에서 조기송환 의사를 시사하고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는 우성호 선원들의 송환을 거듭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일 이와관련,『우성호 선원송환등 인도적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따라 향후 북한에 대한 추가 쌀지원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조순시장 신당불참 시사/야권 미묘한 파장

    ◎“뜻밖의 악재”… 외부인사 영입 차질 우려­신당/“포청천이 DJ사당 심판” 환영 분위기­민주 조순 서울시장의 신당불참 시사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김대중씨의 가칭 「새정치국민회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미 약속이 돼있다』고 자신감을 보인 반면 민주당 이기택총재측은 『포청천이 DJ사당을 심판했다』며 반겼다. 조시장 만들기의 산파역을 했던 신당측은 조시장의 멈칫거리는 행보가 당의 면모를 새롭게 하기 위한 외부인사 영입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사태가 의외로 심각성을 더해가자 김대중 상임고문은 2일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조시장의 참여시기와 형식 등에 관해 전략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조시장과의 물밑접촉 사실을 밝히는등 직접 진화에 나섰다.김고문은 『참여문제는 조시장이 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며 『최근 조시장과 만나 창당에 관한 양해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김고문이 조시장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했기에 이같은 말을 하는게 아니냐』고말한뒤 『조시장을 비롯해 단체장의 거취는 창당대회를 전후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서울시장 선거때 조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배기선씨는 『조시장의 성격으로 봐서 당체제가 정비되기 전까지 자신의 거취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은 신당에 동참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총재측은 조시장의 신당불참 시사를 「너무도 당연하고 당당한 처사」라며 환영했다.이기택 총재는 『서울시민들이 교통문제와 대형사고·공해 등에 시달리는 마당에 시장이 제위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반긴뒤 『민주당 후보로 뽑힌 시장이 신당에 간다면 서울시민들은 이를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목사 납치/북 상사원 2명 개입/범인 5명

    ◎납치당일 북 삼봉으로 이송/연길 공안국/“안씨 납치범들과 돈거래”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 연길시 공안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9일 실종된 안승운씨(49·학원운영·순복음교회 목사)는 용정시 개산둔으로 납치된 뒤 이곳에서 당일 북한의 회령군 삼봉으로 이송됐다고 2일 밝혔다. 수사에 참여했던 이 관계자는 『연길공안당국은 이번 사건을 북한상사원 2명 등 5명이 관계한 납치사건으로 결론짓고 이를 중앙기관에 보고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9일 연길시 빈관에서 안씨를 데려간 2명의 청년 및 1명의 여자운전수를 비롯,용정시에 머물고 있던 북한상사원 2명등이 이 사건에 개입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상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사건정황에 대해 이 관계자는 『안씨는 납치범들과 면식이 있었으며 또 이들과 돈거래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미 이번 사건은 중앙의 관할 아래 재조사가 완료됐으나 한국및 북한관계를 의식해 후속 조치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중대사관측은 중국측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므로 아직 발표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 “쌀­남북관계 개선 연계”/정부,10일 북경 3차회담때 북에 통보

    ◎평화체제 전환 문제도 타진/반응따라 「8·15제의」내용 수정 정부는 오는 10일 북경에서 재개될 쌀관련 제3차 남북당국자회담에서 대북 쌀 추가지원이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한의 호응과 사실상 연계되어 있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할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정부는 특히 광복 50주년인 올 8·15를 맞아 준비중인 획기적 대북 제안 내용도 북경회담에서의 북한 반응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같은 방침에 따라 정전협정을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에 의한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 등에 대해 북한의 반응을 일차 타진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일 이와 관련,『우리측의 대북 쌀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피랍된 우성호 선원의 송환을 지연시키며 안승운목사 납치사건까지 자행하는 등 기대에 반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북한에 제의할 내용에 상당한 변화를 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이 준비하고 있는 평화체제 구축방안은 남북 당사자 해결원칙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미·북간 평화협정 체결 방식과는 전혀 궤를 달리한다』면서 『북한이 남북 당사자간 해결원칙만 수용한다면 우리측은 구체적인 평화체제 전환방식에는 융통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북경회담에서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는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 북측이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경우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키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틀내에 있는 화해공동위나 군사공동위 등의 가동을 북측에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중임을 시사했다.
  • 북한은 무엇을 원하는가(사설)

    그동안에도 우리는 북한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최근 행동은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다.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도 북한에는 통하지 않는 절망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이인모 노인송환등 최대한의 호의로 대해왔다.힘의 우위에 있으면서도 양보와 관용의 화합자세를 견지했다.최근 아무 조건 없이 15만t의 쌀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선의가 마침내 북한의 호응을 얻어낼 것으로 믿고 기대했다.특히 쌀제공에 대해선 대남비방중지와 대화호응등 북한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알았고 기대했으며 믿었다. 그러나 당장의 북한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대남비방 계속은 물론 중국서 돌아오던 우성호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우리 선교목사를 납치해갔다.한국인 차장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KEDO 대표단 입북을 거부하는가 하면 김일성 사망 1주기 참석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장로를 불법적으로 판문점을 통해 내려보내며 협박도 했다.모든 것이 적대적이고 도발적이다.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동을 북한은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반드시 호응을 보일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기대는 문자그대로 기대요,희망에 불과한 것인가.북한은 절대 우리가 원하는 그런 반응을 보일 상대가 아닌 것을 기대에 집착한 나머지 잘못 보고 있거나 고의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심각한 자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북한의 행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여전히 인내심을 잃지 않고 신중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광복 50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번 새롭고 획기적인 대북제의를 준비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도 하다.거듭 촉구하거니와 화해와 공존을 원한다면 이번에는 북한도 응분의 호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 미,우편폭탄 테러범 「킬고어」 지목

    ◎76년 교도소 탈출뒤 잠적한 폭탄전문가/FBI “수범 비슷” 잠정결론… 수사 활기 지난 17년동안 투명인간같은 우편폭탄 테러 활동으로 미국의 공권력을 비웃어 온 유너바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떠올랐다. 유너바머(Unabomber)란 주로 폭탄테러대상이 된 「대학」과 「항공산업」의 머릿글자를 따서 수사팀이 붙인 이름.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있는 미연방수사국(FBI)유너바머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8년 이후 사제폭탄을 우편으로 발송,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유너바머가 지난 76년 교도소를 탈주한 뒤 행방이 묘연해진 폭탄전문가 제임스 윌리엄 킬고어(48)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FBI에 따르면 킬고어는 70년대 중반 미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신문재벌의 상속녀 페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주도한 자유공동전선(SLA)의 일원.허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78년 감옥에서 도망친 뒤 지금껏 행적이 오리무중인 폭발물 전문가이다.탈주시기와 첫 범행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을 비롯,허스트 사건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존사회체제에 불만이 많은 이상주의자라는 점,그리고 폭탄발송에 사용한 나무상자나 목재폭탄 등과 관련있는 오리건주의 목재중개상 아들 출신이라는 점 등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 FBI는 그동안 우편폭탄 발송지역이 주로 새크라멘토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북부지역이었다는 사실에 비춰 인근 오리건 출신인 킬고어가 미서부지역 일원에 은둔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78년 첫 폭파사건을 시작으로 올들어서는 지난 4월 새크라멘토의 목재회사 간부를 폭사시킨 것까지 16차례나 유너바머 관련 사건이 발생했지만 FBI는 정확치 않은 몽타주만을 갖고 있을 뿐 아무 단서를 찾지 못했다.지난 6월에는 LA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를 폭파하겠다는 위협으로 미전역을 긴장시킨 바있다.
  • 독 검사/60년 나치전범 체포 지원

    ◎국교없던 이스라엘에 비밀자료 제공/아르헨 잠복 아이크만 체포… 62년 처형 한 독일 검사가 지난 60년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크만에 대한 자료를 밀반출하도록 용인함으로써 아이크만 검거를 비밀리에 도와줬다고 독일의 데어 슈피겔지가 29일 보도했다. 이 잡지는 당시 독일 헤센주 수석검사였던 프리츠 바우어가 그의 사무실에서 한 모사드 요원이 6백여만명의 유태인을 강제수용소로 수송한 아이크만에 대한 자료를 촬영토록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슈피겔지는 바우어의 사무실에서 아이크만의 자료를 빼낸 전 모사드 요원인 미카엘 마오르의 말을 인용,그가 미리 바우어의 사무실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료 밀반출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바우어가 아이크만이 아르헨티나에 잠적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흘렸으며 당시 독일에서 열린 전범재판을 준비토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옛서독과 이스라엘간에는 국교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바우어의 이같은 행동은 극히 위험했다는 것이다.이스라엘은 바우어의 사무실에서 빼낸 자료를 근거로 지난 6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잠적해 있던 아이크만을 이스라엘로 납치,62년 사형시켰다.
  • 안목사 입북 결론/교포부부 “30대 2명이 끌고 갔다” 증언

    ◎주중 한국대사관 대응책 마련 착수 【북경=이석우 특파원】 주중 한국대사관은 안승운씨(49·순복음교회목사)가 자의에 반해 납치됐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에따라 안씨의 자유의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들어갔다고 대사관의 한 관계자가 30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연길에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조윤주영사의 조사보고를 종합해본 결과,안씨가 자의에 반해 강제 납북됐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이에따라 안씨의 자유의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구체적인 외교대책 마련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주중대사관의 안씨 납북에 대한 공식 결론에 따라 북한에 대한 쌀제공으로 완화기미를 보이던 남북관계는 또다시 경색의 위기를 맞게됐다. 주중대사관측은 이날 지난 9일 안씨의 납치정황에 대해 『안목사와 조선족인 강미자씨 부부등이 안목사의 하숙집을 구하기위해 연길시 빈관의 방을 보고 나오는데 빈관 입구에서 기다리던 30대 후반인 두명의 남자가 안목사를 데리고 갔으며 분위기가 강압적이고 이상해 강미자씨 부부가 택시를 타고 이들을뒤쫓아 가다 놓쳤다』고 밝혔다. 한편 주중대사관측은 중국공안당국에서는 아직 이 사건을 조사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연길시 공안당국도 『이 사건은 일체 상부에서 발표할 것이다.발표시기도 상부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 대사관측에 대해서도 사건 전모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않고 있는 상황이다.
  • 중,「태자당」 실세 왕병 전격체포/전부주석 왕진아들

    ◎부패·납치사건 개입 혐의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전국가 부주석 고 왕진의 아들이자 중국해양직승기(헬리콥터)공사 총경리(사장)인 왕병이 경제분야의 불법행위및 지난 6월24일 심천경제특구에서 발생한 심천기업인 진현선 납치사건에 개입한 혐의로 이번주 전격 체포됐다고 홍콩연합보가 29일 북경발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의 말을 인용,당고위층의 명령에 따른 이같은 조치는 당·정·군 고위간부들과 원로들의 자제 등을 일컫는 「태자당」의 각종 범죄행위들을 척결하려는 당고위층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천동휘집단공사 동사장(이사장)인 진현선 본인도 태자당의 일원으로 왕진에 앞서 국가 부주석을 지낸 고 오란부의 손녀사위로서 왕병이 비교적 신속하게 체포된데는 진현선의 가족배경도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그의 체포 소식은 또 등소평 사후를 앞두고 강택민 당총서기의 권력기반 강화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중,“북한에 주권차원 대응”

    ◎중앙 공안당국서 재조사… 결과 내주 발표/안목사 납북 【북경=이석우 특파원】 중국은 안승운씨(50·순복음교회 목사·연길시 학원운영)실종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납치로 최종 확인될 경우 북한측에 주권침해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임을 알려왔다고 주중 대사관측이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측은 또 중국당국의 조사결과가 나오면 중국과 공동으로 북한측에 안씨의 자유의사 확인을 위한 송환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혀 이 문제가 한국·중국과 북한사이의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황병태 주중대사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중국 당국이 이 문제를 중시하고 있으며 보통문제(개인적인 단순 실종사건)가 아닌 차원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공식 통보해 왔다』고 27일 밝혔다. 황대사는 이날 『우리 대사관측은 이번 사건을 유인을 통한 납북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전제하고 『지난 26일 조상훈정무공사가 직접 외교부를 방문,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입장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해 중국측도 이번 사건을 중시하고 있으며 일반 단순사건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중국 공안당국은 이미 연길지방 경찰차원에서 조사가 끝난 이번 사건을 중앙으로 이송해 정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중 대사관측은 중국당국의 이번 사건에 대한 최종 결과는 다음주 초쯤 나올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투자인협의회 회원사 대표등 연변지역 거류 한국인 70여명은 지난 26일 연길시 민관에서 안승운씨 실종사건 대책위를 구성한데 이어 이날 박동규연길시장을 만나 한국거류민들의 신변 보장과 사건진상에 대한 조속한 결과발표를 촉구했다.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연길 공안당국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범인중 한명을 검거했으며 이 범인이 이번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이미 모두 진술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쌀 회담 예정대로/정부방침 정부는 순복음교회 안승운목사의 납북과는 관계없이 다음달 10일 북경에서 열리는 남북간 당국자회담에 참석하고,쌀지원도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27일 『안목사의 납북은 외교적으로나 인도적으로나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남북관계와 북·중 관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한편,북한조선 중앙TV는 지난 25일밤 납북된 안목사가 기차에서 내려 꽃다발을 받는 장면을 방영했다.그러나 안목사의 목소리나 특별한 제스처는 방영되지 않았다고 정부 당국자가 밝혔다.
  • 안목사 납북경위 파악/중국 공안당국과 협조

    【북경=이석우 특파원】 황병태 주중대사는 26일 순복음교회 안승운목사 실종사건과 관련,『현재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볼때 납치로 추정된다』면서 『중국당국이 조사결과가 나오는대로 즉각 통보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황대사는 연길공안당국에서 범인 2명을 체포했다는 일부 소문에 대해 『중국 관계당국에 사실여부 확인을 요청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주중대사관의 한 관계자도 연길공안당국에 범인체포와 조사결과에 대한 확인요청에 대해 『조사결과를 이미 상부에 보고 했다.내용은 규정상 밝힐 수 없다』는 회답만을 받았다고 말했다.
  • 선관위 「전국구위장」 유권해석 신당·민주 표명

    ◎신당­“동조의원들 탈당계획 차질”/민주­“당연한 결정” 환영… 「호적」정리 기대 24일 중앙선관위가 지구당을 가진 전국구의원이 지구당 해산절차를 밟더라도 의원직을 자동 상실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자 내심 「의원직 유지」 결정을 기대해온 신당추진세력은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신당 참여의원들의 조속한 당적 정리를 촉구해온 민주당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전폭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내 좋은 대조를 보였다. 선관위의 이번 결정은 신당창당작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신당측이 전국구의원의 거취문제와 관련,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신당은 선관위 결정이 전해지자 『동조의원들의 탈당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무척 당황하는 표정들이다.도덕성 시비까지 불러일으키며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탈당을 미뤘던 명분이 순식간에 없어졌기 때문이다.당초 신당은 선관위쪽에서 긍정적인 해석이 나오면 발기인대회에 즈음해 동조의원들의 집단탈당을 감행할 계획이었다.박지원대변인은 『유감스러운 해석이지만 결과적으로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수용의사를 밝혔다.이같은 아이디어를 냈던 신기하의원도 『선관위가 그렇게 해석을 한 이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김대중고문도 박대변인의 보고를 아무말 없이 듣기만 했다고 한다.신당은 김고문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어 탈당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지만 선관위의 결정으로 또다시 쏟아질 비판여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지원 의원 등 5명 지구당을 가진 신당참여 전국구 의원은 박지원의원등 5명이다. ○…민주당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선관위 해석을 계기로 신당이 편법으로 전국구의원을 민주당에 남겨두려한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신당측의 「파렴치한 행위」를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한다는 방침이다.그럴 경우 호된 비판여론에 눌려 신당측의 전국구의원들이 민주당에 도저히 남아 있지 못하고 「호적」을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이규택대변인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 당연한 결정』이라며 『새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우리당에 남아당무를 방해한다면 국민이 이를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미 20대초반 여인/두아들 살해 시인/1급 살인죄 평결

    【유니온(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AP 로이터 연합】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법원의 배심원들은 22일 자신의 두 아들을 차에 태운채 호수로 밀어 넣어 살해한 수잔 스미스(23)여인에게 1급 살인의 유죄를 평결했다. 이 사건을 맡은 윌리엄 하워드 판사는 12명의 배심원들이 24일 다시 회의를 열어 피고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할지,전기 의자에 의한 사형을 선고할지에 대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잔의 3살과 14개월된 두 아들이 지난해 10월25일 실종된 이후 수잔은 그녀의 두 아들이 흑인 남자에게 납치됐다고 신고했으나 11월3일 자신이 차의 좌석에 아이들을 묶은채 호수로 밀어 넣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 병원장 딸 납치 범인 3명 검거

    【광주=최치봉 기자】 병원장 딸 납치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 동부경찰서는 20일 정경채(25·광주시 북구 우산동),강정환(25),김순임(41·여)씨 등 3명을 붙잡아 특수강도 및 약취,유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납치된 병원장딸 23시간만에 탈출

    【광주=최치봉 기자】 병원장의 딸이 전직 운전사에게 납치,감금됐다가 23시간만에 탈출했다. 지난 18일 하오 9시쯤 광주시 동구 모소아과 의원에 지난해 운전사로 일했던 정경채씨(25·광주시 북구 각화동) 등 20대 남녀 3명이 찾아와 원장 이모씨 부부를 위협,현금과 수표 4백만원을 빼앗은 뒤 때마침 귀가한 이씨의 딸 이모양(22·H대 2년)을 자신들이 타고온 광주8너 2532호 흰색 다마스승합차로 납치해 광주시 서구 화정동 모호프집에 감금했다. 이어 범인들이 이양의 손발을 묶어 호프집방에 감금하고 떠나자 이양은 19일 하오 8시 15분쯤 묶인 밧줄을 풀고 탈출해 집으로 귀가했다.
  • 「5대 개혁과제」 복귀용 구호 인상/DJ 회견 내용속의 「비논리」

    ◎정국 위기론­뚜렷한 근거없이 아전인수식 진단/민주당 내분­상당부분 자기책임… KT에 떠넘겨/통일의 주역­지역 등권론 외치며 민족통합 될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18일 기자회견내용은 2년7개월만에 대국민약속을 뒤엎고 정계에 복귀,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해야만 하는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기에 미흡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반응이다.「솔직하고 진솔한 자세」를 다짐했지만 정작 회견의 많은 부분은 아전인수식 변명으로 일관한 인상이 짙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은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사죄대목은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한마디로 넘어가고 은퇴당시와 현재의 상황변화가 엄청나 번복이 불가피하다는 점만 강조했다.현상황을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하는 그는 『은퇴당시 기대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말하자면 정부와 야당인 민주당이 모두 잘못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그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정계복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의 인식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곧바로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 민주당의 난맥상과 관련,김이사장은 「9인9색」의 계파정치를 문제삼았다.그러나 그 원인의 대부분을 그 자신이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즉 은퇴이후에도 권노갑 부총재를 대리인으로 하여 당무에 대한 수렴청정을 계속해왔으며 이것이 곧 이기택총재의 지도력 약화,민주당의 분란으로 연결돼왔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김이사장측이 이총재와 당을 흔들어 내분을 일으켜놓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한지붕밑 아홉가족」이 된 것도 김이사장의 원격조정을 위한 「분리·견제」전술의 결과라는 주장이다.또 총재를 「얼굴사장」으로 격하시키고 「오너」가 설쳐댄 결과 이총재가 대통령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따진다. 경기지사 선거패배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서울에서 승리한 것은 오로지 김이사장의 공로이고 경기도 패배는 이총재만의 책임이라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며 책임을 묻더라도 당헌·당규절차에 따라 전당대회를 통해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전당대회에서의 폭력사태등 불상사가 우려된다고 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일체 생략한 채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5대개혁과제에도 모순이 적지 않다.우선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표방했지만 정국을 「후(후)3김시대」로 역류시킨 그가 과연 이런 역할을 자임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또 개혁과제로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지역등권론을 들고나와 지역분할구도를 더욱 강화시킨 그가 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체적으로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개혁과제는 앞으로의 추진과정을 지켜봐야겠으나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구호에 불과한 인상이라는 게정치권의 중론이다. ◎「대권 4수의 길」 DJ의 정당편력/87년 평민당 창당… 두번째 대권도전 고배/「꼬마 민주당」과 합당… 92년 대선 패배후 은퇴 「대권4수」의 길로 다시 들어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40여년동안 숱한 정당생활을 거쳤다. 김이사장은 30살 때이던 지난 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원내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김영삼대통령이 25살의 나이로 최연소 당선기록을 세운 때였다.58년 4대 총선에 민주당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고 5대 때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5·16으로 며칠만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정당에 참여한 전력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광복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익정당인 신민당에 잠시 참여했다.좌익에 환멸을 느껴 탈퇴했지만 이 경력은 그에게서 평생 「색깔론」의 꼬리를 떼어놓지 못하게 한 빌미가 됐다. DJ(김이사장)는 첫 소속정당인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장 면박사의 총애를 받아 민주당 구파의 맥을 잇게 된다.60년 신구파의 대립으로 구파가 분당,신민당을 창당할 때 그는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5·16」으로 정치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과 63년 민주당 재창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65년에는 민주당이 윤보선총재가 이끄는 민정당과 통합,민중당을 창당할 때 합당 중재역을 맡았다. 그는 67년 양대 선거에 대비해 야권 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당과 신한당이 통합된 신민당에 참여했다.김대통령과의 경쟁은 원내총무 경선에서 처음 시작됐고 그는 패배했다. 이어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선 첫 패배를 맛보게 된다.72년 유신이후 망명생활을 하다 73년 일본에서 납치사건을 겪고부터 「재야」에 몸담게 된다.80년 「서울의 봄」 때도 김영삼총재의 신민당에 입당하지 않고 재야에 남아있었다. 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뒤 무기징역,20년형으로 감형되는 과정을 거쳐 82년 도미,민주화 투쟁을 계속했다. 3년 뒤인 85년 2·12 총선 직전 귀국,김대통령과 함께 민추협공동의장 자격으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재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87년 이른바 「이민우구상」 등과 관련,김대통령과 함께 신민당의 대다수 의원들을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문제로 김대통령과 결별,제갈길로 나섰다.이 때 평민당을 창당,대선에 두번째 도전해 다시 실패하지만 이듬해 여소야대 정국아래 제1야당의 총재가 됐다.그러나 90년 「3당통합」으로 하루아침에 소수야당의 총재로 전락했고 몇차례의 재야인사들을 흡수하면서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었다.이어 14대 총선에 대비,이기택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당,이총재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듬 해인 92년 대통령선거에 세번째 도전하게 되지만 또다시 패배한 뒤 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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