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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이후 납북자 217명

    정부는 무역상 장세철씨,김동식 목사를 비롯해 해경 863함 승무원 2명,천왕호 어부 30명 등 총 34명의 납북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통일부가 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70년 이후 납북자는 해상조업 중 어부 178명,해군 승무원 20명,해경 863함 승무원 2명,해외납북자 12명(서독 7,노르웨이 1,오스트리아1, 중국 3명),국내해안에서 납북된 고교생 5명 등 총 217명으로 밝혀졌다. 이는 통일부가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서 70년 이후 납북자가 184명으로 보고했던 것에 비해 숫자상 33명이 늘어난 것이다.그러나 올해귀국한 봉산 22호 납북어부 이재근씨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34명이 납북억류자로 새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75년 8월25일쯤 납북된 천왕호 선원의 경우 작년까지 김두익씨1인만이 납북자로 공개됐으나 올해 들어서는 나머지 선원 30명이 납북자 명단에 처음으로 포함됐다.또 중국 단둥(丹東)에서 활동하던 사업가 장세철씨는 지난해 9월17일,중국 옌지(延吉)에서 선교활동을 해온 김동식 목사는 지난 2월1일 북측에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95년 7월 중국에서 활동하던 안승운 목사가 납북된 이후 해외 납북사실이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사설] 평양의 北美회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부장관이 23일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만났다.사흘로 예정된 그의 방북 일정 첫날 두사람의 회동이 성사된 것이다.양측의 이같은 적극적 자세로 미뤄 볼때 당초 일반적 관측보다 빠른 속도로 북·미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즉 이번 회담 후에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방북이 성사되면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 증진에 탄력이 붙는 등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지형이 상당히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우리는 평양 북·미 회담이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고,평화를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몇가지 고비를 넘겨야 한다.북·미간에는 북한미사일문제나 테러 지원국 명단 해제조치에 필요한 북측의 ‘요도호’ 납치범 추방문제 등 난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미북·미관계 개선이라는 큰 물줄기는 잡혔다고 본다.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행을 계기로 연락사무소보다 한 단계 진전된 외교대표부 개설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회동이나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지난번 방미는이를 재확인하는 징표와 다름없다. 그러한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북한이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확실히 등장하는 기회로 삼기를 당부한다.이왕 국제사회를 향해 빗장을 풀기로 했다면 문호를 보다 ‘통 크게’ 활짝 열어젖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그러기 위해선 미사일개발 ·수출 등 이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을 북측 스스로 제거하는것이 바람직하다.북측이 당면한 오늘날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는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진전이 상호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선(善)순환’모델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북측이 대미 관계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남북간에 이미약속한 각종 합의 이행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우리는 일부 관측통들이 제기하고 있는 그 같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바란다. 행여 북측은 이번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계기로 독일·영국 등 유럽 주요국가들이 앞다퉈 대북관계 개선 의사를 밝힌 사실을곡해해서도 안될 것이다.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ASEM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남한이 측면지원한 결과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북·미관계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균형있게 굴러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관건임을 거듭강조하고자 한다.
  • 스칼라피노 버클리대교수 본지 단독인터뷰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 버클리대 명예교수(81)는 21일 대한매일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향후 남북관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상호교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그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빌 클린턴미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잇따라 예정돼 있어 북미관계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면서 그러나 북한의 테러활동 중지 여부 등이 장애요소로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는현재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한반도 및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다음은스칼라피노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 이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이 이뤄지는 등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최근 발표된 북미 공동성명을 보면 북미관계에 특별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않았다.그렇지만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북미관계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클린턴 대통령은임기내 마지막 업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좋은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반면 북한의 테러활동 중지와 미사일 개발프로그램 중단 여부 등이 관계 정상화로 가는 길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의 급진전 등을 북한의 대외개방 선회로 볼수 있는가. 현재의 북한 변화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을원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북한은 국가의 규모·문화적 토대 등이중국과 달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우선 사기업과 농업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적 부문에 대한 광범위한 개방프로그램을 확대 추진해야 한다.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집권하게 된다면 대북(對北)정책 기조에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나. 부시 공화당 후보의 대북정책 노선은 강경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부시 후보가 당선되더라라도 대북정책의 기조에는 큰 변화가없을 것으로 본다.클린턴정부보다는 더많이 상호주의에 입각해 대북정책을 수행하겠지만,기본적으로는 남북화해를 추구하는 클린턴의 대북정책과 같은 틀 안에서 추진될 것이다. ◆오는 30∼31일 이틀간 베이징(北京)에서 북한과 일본간에 수교협상이 열릴 예정인데. 북한과 일본 양국은 오랫동안 관계 정상화를 위해 대화와 협상을 꾸준히 해왔다.시작은 그리 쉽지 않을 수 있다.북한은 일제 식민지 통치 36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일본은 요도호 납치범 송환을 요구하는 등 양국관계에 적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탓이다. 그러나 남북간의 상호교류가 활성화되고 북·미관계가 크게 진전된다면 일본도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 북한과의 수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일본이 북한에 대해 식량지원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일 수교협상도 좋은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보완할 점이 있다면.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어 매우 환영할 만하다.다만 앞으로 군사적·전략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경제및 문화적 측면에서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 등을 통해 남북간에 신뢰감을 형성한 뒤 군사적·전략적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김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및 인권투쟁에 몸바쳤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특히 대통령 취임 후 실시한 대북(對北) 포용정책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다.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그의 정책을 지지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던 덕분이다.따라서 향후 남북관계는 후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것으로 본다. ◆노벨상 수상 이후의 남북관계에 대해 전망한다면. 남북관계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싶다.남북관계의 진전은 시기적으로 바람직하지만 한국이 남북간의상호교류를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한다.이 길은험난하고 오래 걸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북간 상호교류를 활성화하려면 정치 부문보다 경제·문화적인 측면으로 접근,남북간에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해야 한다.남북간의화해·평화무드 조성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그렇다고 불가능한일도 아니다. ◆스칼라피노 교수 약력▲1919년 미국 캔자스주 출생 ▲1948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1949∼1990년 UC버클리대 정치학과 교수 역임 ▲1978년 UC버클리대 부설동아시아 문제 연구소 설립 및 소장 역임 ▲현재 미 버클리대 명예교수.미 학술원 회원,미 백악관 자문위원▲북한 4차례 방문(89,91,92,95년)▲‘한국의 공산주의’ 등 아시아 정치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관한 저서 38권▲아시아 정치에 대한 논문 및 기사 500여편khkim@
  • 올브라이트 美국무 방북회담 의제·전망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시 논의될 북·미 현안은 12일 발표된 양측 공동성명에 철저히 기초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을 전제로 한 올브라이트 장관과 북한 최고위인사간 대화는 풀기 쉬운 수교 전단계 공관 설치에서 시작해 북·미 3대 현안인 미사일,핵,테러지원국 제외 등에주안점이 놓일 것이다. ◆미사일 협상 미국이 국가안전과 국방목표를 논할 때 가장 주안점을두는 분야다. 미국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사일에 관해 투명성이 보장되는 미사일기술관리수출규제제도(MTCR)에 가입하는 것을 목표로한다. 공동성명은 일단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규정했지만 미국은 회담 진행시 뿐만 아니라 평시의 유예,더 나아가 영구유예를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것은 미사일 계획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최대한 논의진전을 늦출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상황은 북한이 유예의 기간 뿐만 아니라 대상도 단거리와중장거리 등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대응해올 것으로 보인다. ◆핵투명성 북한이 공동성명에서 “94년 제네바 합의를 재확인한다”고 한 만큼 일단 핵투명성에 있어서는 한숨은 돌린 셈이다.미국은 현재 북한이 핵무기 개발 중단과 관련된 조치들을 대체로 이행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국제사회 역시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제2,제3의 금창리 시설과 같은 의혹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며이를 위한 포괄적 제도를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북한으로서도 다얻었다고 생각되는 경수로의 건설 지연이나 중유의 공급 지연과 같은난관을 방치하려는 장치를 논의하고 싶은 상황이다. ◆테러지원국 제외문제 이미 합의됐던 외교공관 설치가 이번 방문에서 이뤄진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수는없다.중국과의 수교에서도 미·중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는데 6년의세월이 필요했던 만큼 연락소가 설치된다 해도 수교의 전제조건인 테러지원국 제외가 당연히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측은 테러지원국에서 제외되기 위한 북한측의 선결과제가 있음을누누이 강조해 왔으며,어떤 형태로든지 70년 요도호 납치 적군파들의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북·미가 이미 수교를 전제로 한 만큼 이 문제는 드러내놓고 밀어붙이기 어려운 북한의 사정을 감안,이번 방문으로 획기적 조치가 이뤄지기보다는 이면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hay@
  • 모리 “日, 北과 97년 비밀협상”

    [도쿄 AFP 연합]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가 일본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21일 모리 총리가 북·일 수교 걸림돌 중 하나인 일본인 납치 의혹과 관련,북한과 비밀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한사실을 스스로 밝힌 것은 ‘분별 없는 행동’이었다고 일제히 비난했다. 모리 총리는 20일 서울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97년 11월 자민당 총무회장 당시 여3당 대표단장으로 북한을 방문,“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일본인들이 북한 외부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가장하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며 북한과의 밀거래설을 털어 놓았다. 모리 총리는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 입장을 고려,실종된 일본인들이베이징이나 방콕 등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이른바‘제3국 발견안’을 제안했으나 북한측이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모리 총리의 발언을 1면에 싣고‘부적절한 언급’이었다고 비판했다. 유력 일간지 아사히(朝日)신문은 모리총리의 발언이 북한과의 협상에 중대 타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납치의혹 해결에 또하나의 장애”라고 공박했다.
  • 김대통령 기자간담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30여분 동안 계속된 이날 간담회는 수상자로 확정된 뒤 사실상 첫 대(對)국민 접촉이기도 했다. 간담회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시종 화기애애한 가운데진행됐으며, 김 대통령의 표정도 여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김 대통령은 입장할 때,출입기자들이 서서 박수로 환영하자 “이렇게 기자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가 다 있다”며 “항상 기자들의 박수속에 국정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처음부터 분위기를 유도했다. ■모두발언 김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노벨평화상 수상 소회와 큰틀에서 앞으로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밝혔다. 먼저 지원해 준 인사들과 국민,세계에 감사한 뒤 지난 73년 도쿄 납치사건과 신군부에 의한 사형선고 등 지나온 고난의 순간을 상기하면서 신앙의 힘과 정의필승(正義必勝)의 역사의식이 온갖 고초를 견디게 한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의 화합의 정치를 시작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남북관계 진전,경제적 세계강국,서민생활 보호 등5대 과제를 간략히 소개한 뒤 국민과 언론의 협력을 당부했다. ■질의 응답 김 대통령은 ‘수상사실을 사전에 단 1초라도 먼저 알지못했느냐’는 질문에 “1초의 10분의 1도 먼저 몰랐다”며 “아내와같이 TV를 지켜보다 확정되는 순간,약간 창피하지만 껴안고 좋아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또 “막상 받고보니 꿈만 같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낀다”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은 따면 끝나지만,노벨상은책임이 더 무거워진다’는 한 인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기자들이 “노벨상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물으면서 “노르웨이 라프토 인권상 상금도 5만달러나 된다”고 하자 “몰랐다”며 “참 희소식”이라고 좌중을 웃겼다.이어 경제에 관한 질문에는 “외환위기도 극복한 나와 정부를 믿어달라”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남북관계 질문에는 “남북 정상회담도 계기가 된 만큼 김정일(金正日)위원장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털어놓았다. 김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녹차와 떡을 제공했다. 양승현 김상연기자
  • 특별기고/ 온갖 고난 딛고 꽃피운 ‘民族花’

    지난 10월13일 오후 6시,새천년 첫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그 시각,얼마쯤의 긴장과 설렘으로 TV화면을 응시했다.오슬로 현지 생방송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음성과 자막을 접하는 순간,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처럼 고난과 영광이 양극을 치달으면서 극적인 절정을 인류 앞에 보여준 예가 얼마나 있었을까. 이미 알려진 대로,노벨평화상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특히 북한과의 평화·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수상이유로 들었다.김 대통령이 지난 1986년부터 계속후보 명단에 올랐던 점을 상기한다면 한참 늦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세계의 언론과 지도자들이 환영과 축하의뜻을 표시했다.수상자 개인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우리 나라,우리 민족의 자랑이 된다는 말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그런 영광과 축복의 시간에조차도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극에서 도사렸던 그분의 지난날의 비극적 고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대통령 당선이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그분이 온 세계의 축하에 젖어 있을 때도 나는 그러했다.민주주의와 인권,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오랜 싸움과 그 과정에서 그분이 겪은 박해와 수난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납치와 사형판결 등 몇 번에 걸친 죽음의고비,여러 해 동안의 감옥생활,그리고 수도 없는 연금과 온갖 탄압―이런 절망적 국면을 그분은 초인적으로 극복하였다.뿐인가,그런 참담한 시기에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의지를 더욱 다져왔던 것이다. 이번 수상이유에 명시된 “남북한간의 적대관계 해소와 냉전 종식의희망을 싹트게 한 공로”도 따지고 보면 지난 6월 어느날의 평양 방문에서 갑작스럽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이미 1971년 대통령선거의후보시절부터 남북 교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했고 그후로도 3단계 통일방안 등을 정립함으로써 매우 전향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심지어 ‘용공’ 모략에 크게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관철시켜 남북간 평화정착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오랜 연구와 집념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그분의 공헌은 오래전부터 전세계가 찬탄해온 바였다.아마도 정치적,지역적 사정 때문에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이 점에 대해서만은 공감을 할 것이다. 노벨평화상위원회측은 “민주화와 인권옹호에의 공헌을 한반도의 긴장완화보다도 우선적으로 평가했다”고 언명하였다.동시에,북한 지도자들,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공로’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대목도 포함되어 있었다.이 점도 소홀히 넘겨서는 안되는 ‘유의사항’일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 당사자의 노력을 온 세계가평가하고 지지했다는 데에 이번 수상의 의미가 있다고 할진대,앞으로남북관계에 있어서 그러한 나라 안팎의 성원과 기대에 부응할 만한가일층의 진전이 착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내정치면에서도 지금까지의 경색국면이 여야간의 좀더 너그러운도량으로 해빙이 되었으면 한다.그러자면 집권당을 이끌고 국정의 최고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위상에 걸맞은 큰틀의 정치,포용의 정치를 펼쳐나갔으면 좋겠다. 이번 김 대통령의 수상을 통하여,우리는 진한 감동과 아울러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싸워온 끝에 마침내 노벨평화상의 수상자가 되어 온인류의 갈채를 받게 된 그 인생역정을 그저 한 개인의 휴먼스토리로서 지나칠 수만은 없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대로 표현하자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로 세계의 공인을 받았다.수상은 영광이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나 김 대통령은 국내외의 성원과 기대에 훌륭한 보답을 해주리라고 확신한다. ■ 韓 勝 憲 전 감사원장·변호사
  • 金대통령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16일 기자간담회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국정운영 구상의 밑그림을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 회견 의미 화합의 정치를 첫 목표로 경제적 세계강국 건설,남북관계 진전 등 5대 국정운용 방향 제시는 노벨평화상의 정신을 국정에구현하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다.5대 목표가 수상자 선정 이유로 제시된 민주주의와 인권,남북 화해·협력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때문이다. 화합의 정치 실현은 국민 대통합과 사회통합,지역갈등 해소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한다.모처럼 형성된 국민적 환영분위기를 국가발전의 동인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또 서민생활보호 약속 역시 소외계층에 대한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면서도 경제강국과 연결된 목표로 여겨진다. 김 대통령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이후 구체적 구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그 방향은 노벨평화상의 정신과 위상에 걸맞게 전개될 게 틀림없어 보인다. ■ 모두 발언 73년 납치,81년 사형선고를 받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다행히 죽지않고살아서 대통령도 되고 평화상도 받는 영광을 얻었으니 말할 수 없이감사하다. 평화상 수상자가 된 뒤 많은 생각을 했으며 ASEM때문에 워낙 바빠 별 구상을 못했지만 무엇보다 화합의 정치를 하겠다.둘째는인권과 민주주의에 약간의 공헌을 한 것이 수상의 원인이었다.앞으로평화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지않게 한국이 인권,민주주의의 국가가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셋째로 가장 큰 수상 이유가 남북관계의 진전이다.넷째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적 경제강국이 돼야겠다.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국민과 더불어 노력하겠다.4대 개혁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 짓고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명공학을 ‘3위1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다섯째는서민 생활을 안정시켜 누구도 생계를 거르지 않고 의료와 교육을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겠다.서민을 포함해 모든 국민을 평생 재교육시켜새로운 정보화시대에 맞는 고급인력으로 양성하겠다. ■ 일문일답■수상 발표순간 어떤 생각을 했나. 막상 상을 받고 보니 꿈 같기도하고,정말 책임이 무겁구나 하는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수상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남북정상회담이 평화상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는 미안하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그 문제는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사직동팀 해체가 평화상 수상과 관련 있나. 노벨상과는 직접적인관련이 없다.사직동팀에서 그동안 일한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개인적으로 감사히 생각한다. ■평화상 수상이후 경제와 민생 등 내치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높은데 향후 구상은. 경제문제는 이미 우리정부가 12가지 목표를 발표한 대로 오는 12월까지 금융과 기업문제를 마무리 짓고,나머지 공공부문과 노사부문은 2월까지 마무리 짓는다.어려운 점이 상당히 많다.구체적인 것을 예시해서 손에 쥐어주고,뭘 하려는 것인지 알게 하는 등 매월 국민에게 보고하겠다.여러분께 말씀하는데 어렵지만 해낼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외부 문제도 있다.물가,미국증시,대우,반도체가격 등. 그러나 이것도 변화한다.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으로 삼고,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국민들에게 책임지라고만 말하지않는다.국민들이 금모으기 심정으로 노력하면 정부는 살려내겠다. ■야당이 사정정국 도래와 당적이탈을 주장하고 있는데. 사정정국은전혀 근거없는 소리다.그런 말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그런 짓 한다면 노벨평화상 준 데 대해 도리가 아니다.당적문제는 여러가지 면이있다.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전 수상소식을 알았는지와 노벨상 상금의 용처는. 정말 몰랐다. 상금이 10억원이 된다는 데 이건 사실대로 말해서 내가 받은 형식이지만 우리 국민이 지원해서 받은 상금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쓰지않고 우리 국민과 남북한 민족을 위해 뜻있게 쓸 작정이다. 양승현 김상연기자 yangbak@
  • [한반도를 평화중심지로] (3)金대통령 민주·인권 장정

    젊은 세대들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대장정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30년이 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지만,국내언론에 ‘김 대통령의 진실’이 제대로 보도된 적이 없는 까닭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97년 대통령 선거때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꼭한번만이라도 공정한 보도 속에서 선거를 치르고 싶다”고 했을 것인가.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 김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인권신장과 민주주의를 위한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朴正熙)정권하에서 ‘3선 개헌’과 ‘10월 유신(維新)’ 반대 투쟁에 앞장서다가 73년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79년 10·26사태 이후 신군부가 집권한 뒤 ‘5·18 광주민주항쟁’ 연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그 때마다 집권층은 온갖 회유와협박으로 유혹했으나,한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굴하지 않은 민주주의 신념 때문이었다. ■국내 인권신장 노력 김 대통령의 그러한 신념은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사상전향 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서 제도를 도입했으며,국가보안법의 확대해석과 남용을 금지시켰고,대폭적인 사면·복권을 단행함으로써 마침내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그들의 희망대로 북송되기에 이르렀다. 또 노조의 정치 참여와 전교조가 합법화됐으며,재소자의 인권을 위해미결수의 경우 사복차림으로 재판을 받도록 조치했고,가족간 유대를위해 ‘부부 만남의 집’ 운영 및 모범 재소자의 외출·외박제를 도입했다. 나아가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 및 청소년 인권 보호를 위해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가정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방지특례법 등을 제·개정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제주 4·3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등을 제정한 것은 인권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 덕목임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다. ■국제무대에서 인권외교 이러한 인권의 지평은 국내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무대로까지 확대된다. 지난해 뉴질랜드 APEC정상회의 때는 동티모르 사태를 회담 의제에포함시켜 끝내 한국군 파병으로 연결지었다.또 지난달 뉴욕 밀레니엄정상회의와 한·미,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연금중인 미얀마 아웅산수지 여사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촉구를 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담는 일을 주도했다. 김 대통령은 수상후 노르웨이 NRK 국영 TV와의 회견에서 “인권은오늘날 국제정치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이같은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향후 전망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김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은 국내외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이다.그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인권법 제정과인권위원회 설치,그리고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가 속도를 더할 것으로관측된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 권리를 보장할 ‘외국인근로자보호법’ 제정 역시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사우디여객기 한때 피랍

    [카이로 AFP AP 연합] 승객과 승무원 103명을 태우고 런던으로 향하던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소속 여객기를 공중납치했던 무장괴한들이 14일 밤 여객기가 바그다드에 착륙한 뒤 승객 전원을 석방하고 이라크 당국에 투항했다. 이집트와 사우디 항공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다를 이륙한 사우디아라비아 항공보잉 777-200여객기는 이날 오후 무장괴한에 의해 납치돼시리아의 다마스쿠스 국제공항에 잠시 기착한 뒤이라크의 사담 국제공항에 착륙했다.납치범인 사우디인 2명은 여객기가 사담 공항에 내린 뒤 이날 오후 11시 20분(한국시간 15일 오전 5시20분) 승객 103명 전원을 석방하고 투항했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김대통령 연대기

    ▲1925년 12월3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출생 ▲43년 목포상고 졸업 ▲48년 목포일보 사장 ▲51년 흥국해운 사장 ▲54년 5월 3대 민의원출마(낙선) ▲61년 5월 5대 민의원 보궐선거 당선(강원도 인제) ▲63년 7월 민주당 대변인 ▲68년 5월 신민당 정책위의장 ▲70년 1월 신민당 7대 대통령후보 지명 ▲71년 4월 대통령 선거 낙선 ▲71년 5월24일 교통사고,25일 8대 의원 당선(전국구) ▲73년 8월8일 일본 망명중 중앙정부 요원에 납치,강제 귀국후 가택 연금 ▲76년 3월 긴급조치 9호위반 5년형 확정 투옥 ▲80년 2월 사면 복권 ▲80년 9월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81년 1월 무기감형,82년 3월 무기에서 20년 감형.12월 미국 출국 ▲85년 2월 귀국,가택연금 ▲87년 12월 13대 대통령 낙선 ▲92년 12월 14대 대통련선거 낙선 ▲95년 정계복귀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 당선 ▲2000년 6월13일 남북정상 역사적 만남
  • [사설] 한반도 평화 위한 세계의 축복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노벨위원회는 “김 대통령이 한평생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 그리고 아시아의 인권을 위해 기여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김 대통령은 지난 40년 정치권력의 탄압과 ‘색깔론’음해를 무릅쓰고 민족 화해와 통일 방안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왔다.그같은 노력이국제적으로 공인돼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이다.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 자신의 영광만 아니라 7,000만 겨레의 영광으로 남북이 다같이 기뻐할 일이 아닐 수 없다.노벨 평화상은 오늘날 한반도에서 조성되고 있는 평화에 대한 전세계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우리나라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들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고루 미치도록 하고싶었고, 통일을 이루어 7,000만 민족이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 함께 등장하도록 하고 싶었으며,한국이 세계의 당당한 선진국이되어 5,000년 역사의 결실을 이루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김 대통령이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세번째 도전했다가 실패한뒤 처절한 심경으로 정계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서 1993년 12월에쓴 회고록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서 한 말이다.그러나 놀라운일이 아닌가.그는 통한(痛恨)속에 ‘과거형’으로 털어놓았던 자신의꿈을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한평생 자유와 민주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정치 지도자라는 사실은 온 세계가 알고 있는 바다.‘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나라의 혜택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는 꿈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함께 김 대통령이 국정지표로 내세운 ‘생산적 복지’속에 반영돼 있다. 통일을 향한 김 대통령의 열망은 또 어떠한가.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6·15공동선언’을 이끌어 냄으로써 지난 55년 동안불신과 적대로 일관하던 남북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노벨 평화상을 통해 전세계가 담보해준 한반도의 평화는 진전이있을 뿐 후퇴는 없을 것이다.우리가 전세계와 함께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한다.또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남긴다(遺芳百世)”는 말도 있다.전남 무안군 외딴 섬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 대통령은 ‘목포상고’졸업이 최종 학력임에도 초인적인 각고면려(刻苦勉勵)를 통해 한나라의 대통령이 되었고 세계적인 정치지도자로 공인 받고 있다.문자 그대로 향기로운 이름을 역사에 남긴것이다.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김 대통령이 살아온 역정은 고난과시련,위해(危害)의 연속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핍절(逼切)한 것은 신체적 위해다.1971년총선 당시 박정희(朴正熙)정권의 ‘교통사고 위장 살해 기도’,1973년 8월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납치와 태평양상의 수장(水葬)미수,그리고 19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에 의한 사형선고 등이 그렇다.그러나 하늘의 도우심과 국민의 지지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거듭되는 투옥과 가택 연금,망명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뿐만 아니다.박정희정권 이래 역대 정권이 그를 표적삼아 집요하게 펼쳐온 ‘지역감정’공세는 또 어떠한가.그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어떤 것이다.오죽하면 “강원도 출신만 됐더라도 이미 대통령이 됐을텐데…”라는 한 유권자의 탄식에,김 대통령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한숨을 내 쉬었겠는가. 그러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이겨내지 못하면 ‘인동초’가 아니다.김 대통령은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마침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그리고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사실 이 두가지 과제는아무나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김 대통령이 평생 자신을 박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했을 때많은 국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김 대통령이 ‘용서와화해의 사람’임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나쁜 정치’는 용서 할수 없지만,‘나쁜 정치를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게 그의철학이다.“용서는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단언한다.김 대통령의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물론여야, 지역간에도 화해와 협력의 따뜻한 바람이 힘차게 일었으면한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李姬鎬여사 내조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이여사는 지난 38년 동안 영광과 절망의 순간순간을 김대통령과 함께 해온 평생 내조자이면서 동지였다.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여사는 이화여고와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 유학까지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귀국후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중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사별한 채 전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김대통령과 운명적인‘만남’을 했다.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62년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재선,3선 의원으로 성장한 김대통령은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이어지는 형극의 길을 걷게된다.당연히 이여사의 삶도 암울한 시련의늪으로빠져든다.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접하고,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여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자식들에게 엄친(嚴親)노릇도 해야 했고,감옥에 간 동지들의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여사는 김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는 측근들이 감히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귀띔해 줬고,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을자세히 읽고 김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자 등 이 사회의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관심과 사랑을 바쳐왔다.이여사의 이런 노력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金대통령 관련 주요서적

    ▲준비된 대통령(상·하)=97년,실록극화,금파원,김 대통령 일대기 만화▲대중경제론=86년,김대중,청사 ▲행동하는 양심으로=87년,김대중,금문당,김대통령의 입장과 행동 연대기적 서술 ▲KIM DAE-JUNG=92년김병국,일월서각,김 대통령 영문판 일대기 ▲든든해요 김대중=98년김옥두 나남출판,97년 집권 드라마 ▲김대중 사건의 진상=87년,김대중씨납치사건진상조사위원회,삼민사 ▲나의 삶 나의 길=97년 김대중,산하,사진과 함께보는 김대중의 자전적 이야기 ▲김대중어록=87년,김충식편저,월출 ▲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92년,김대중,청도,러시아 외교대학원치학 박사 학위논문 ▲김대중 그는 누구인가=87년,김형문 편저,금문당,정치역정 기록 ▲신김대중 1993=92년,민족공동체연구소,정치이력 정치관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정책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외신이 본 金대통령

    미국의 CNN과 일본의 NHK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13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긴급 주요뉴스로 다루고 김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일본의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저녁 “노벨 평화상에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라는 제하로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다. 오슬로 현지의 평화상 발표 모습을 생중계한 CNN은 “아시아의 넬슨만델라로 불리는 김 대통령이 150명이나 되는 경쟁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면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그의 적극적인 노력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전했다. CNN은 또 “김 대통령이 98년 취임 이후 대북 관계개선을 주요 국정목표의 하나로 추진해왔고 결국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얻었다”면서 서울의 축하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했다.특히 평양을방문중인 마이클치노이 홍콩지국장을 연결,향후 ‘남북관계’진전에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김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긴급 뉴스와 호외 등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날 호외를 발행,신주쿠(新宿),긴자(銀座)등 도쿄 주요 거리에서 배포했다.고베(神戶) 신문 등 지방지도 호외를 발행했다. 교도 통신은 노벨 위원회의 발표와 동시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긴급 기사로 보도한 뒤 김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과 민주화 투쟁의 발자취 등을 소개하는 기사 등을 지방지 호외용으로 타전했다. NHK도 매 뉴스 시간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머리기사 등으로 자세히 보도하면서 “최근 한국내 보수파들의 저항에 직면해있던 김대통령이 이번 평화상 수상으로 자신의 통일정책을 가속화하는계기가 마련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영국은 BBC 방송과 일간지 가디언,인디펜던트,이브닝 스탠더드 등의인터넷판을 통해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을 긴급 외신으로 보도하고김대통령의 정치인생을 소개했다. AP통신은 “김대통령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목숨을 걸고 투쟁한 한국의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한국인들이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기뻐하며 환호하고 있으며 이번 수상을계기로 한반도 평화 정착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서울분위기를 전했다. AFP통신은 김 대통령의 출생에서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고난과역정을 별도의 기사로 소상히 다뤘다.특히 1973년 도쿄에서 중앙정보국에 의해 납치돼 대한해협에서 수장될 뻔한 사건과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반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은 것도 전했다.김 대통령이 숱한 암살기도와 망명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대통령이 됐으며 이후 한국의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햇볕정책’을 추진,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DPA통신은 김 대통령이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불리는 이유를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그의 경력 때문이라고 소개했다.이같은 노력으로 김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국·내외의 존경을 받아왔으며박정희와 전두환 두 군사정권의 희생자로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촉진에 기여한 노력들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평화상을 13일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백문일기자 mip@
  • 北·日 30일 수교협상 재개

    [도쿄 AFP 연합] 북한과 일본은 오는 30일부터 3일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또다시 수교협상을 벌인다고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일본 관방장관이 12일 밝혔다. 지난 92년 이후 중단됐던 수교협상이 지난 4월 재개된 이래 양국간회담은 이번이 세번째가 된다.앞서 두차례의 회담에서 양측은 일제식민통치 보상,북한 요원에 의한 납치의혹을 받고 있는 일본인 10명의 소재 파악 등 핵심 쟁점에 관해 이견을 보였다.지난 8월 열린 2차 회담에서 양측은 10월에 다시 회담을 갖고 쟁점 현안에 대해 합의점을 모색키로 했다. 북·일 수교협상은 지난 91년 1월 시작됐으나 북한에 납치된 의혹이 있는 일본 여성에 대한 정보 제공을 북한이 거부해 이듬 해 11월 성과 없이 무산됐으며 북한이 미국에 미사일 개발 동결을 약속한 이후지난해 4월 재개됐다.
  • 北美 주요 합의 사항별 점검

    ◆평화협정 이행=북·미는 공동 코뮈니케에서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수립을 위해 4자회담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 했다.이는 두나라가 4자회담이란 마당(場)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기존의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임을 약속한 것이다.또 4자회담이 평화체제로 가는데 중요한 메커니즘의 하나가 됐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확보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시도도 이를 위해서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평화체제 수립논의가 4자회담이란 ‘다자협의 채널’을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은 남북관계 및 동북아지역 안보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수립문제는 정치·군사적인 신뢰가 구축되고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확립된 뒤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관계의 최종 단계에서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핵·미사일 기본합의=북한과 미국간 갈등의 중심에 있어온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문제는 기존의 협약이 재확인됐다. 핵은 지난 94년 맺어진 제네바 기본 합의문에 명시된 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다.합의문대로라면 국제기구의 확인이 북한핵의 투명성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미사일에 관한한 북·미는 이번 성명으로 모두 세번째 발사 유예선언을 하게 된 셈이다.북한은 관련회담이 열리는 한 발사실험을 하지않기로 통보했음을 공동성명에서 밝히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발사실험을 폐기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미사일의 경우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에 필요한 미 의회 동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항이니만큼 그 효과는 가질 수 있다. 또한 용어 사용에서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고이전보다 포괄적으로 명시해 미사일 억제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보인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적대관계 해소=북·미 양측은 공동 코뮈니케에서 적대감을 떨쳐버리기로 했다고 공언했으나,이른 시간내에 양측의 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는 힘들 것이란 시각이 더 많은 것 같다.양측 사이에놓여있는 걸림돌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걸림돌은 크게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느냐 여부와,북한이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포기하느냐 여부 등 두가지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요도호 납치범인 일본 적군파를 추방해야 하는 껄끄러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미사일은더욱 어려운 문제다.북한은 미사일을 체제유지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있다.북한의 미사일 포기는 결국 군사강국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천재지변적(?) 사건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양측이 미사일 문제 등에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과거의 합의를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를 두고 힘겨운 씨름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한다”고평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경제교류 협력=북·미 양측의 합의대로 가까운 시일안에 경제 무역 전문가들의 상호 방문이 실현되더라도 이는 상징적 의미에 그칠 뿐,본격적인 경협의 신호탄 역할을 하기엔 이르다는 게지배적인 관측이다.경협 활성화를 위해 먼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지금과 같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법률상 미국 기업의 대북 투자와 수출입이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이번 북·미 코뮈니케에 양측이 이처럼 실효성 없는 상호방문 문제를 명기한 것은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와 맞물려 경협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어렵게 되자 ‘만만한’ 아이템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연기자
  • ‘北·美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급 대담

    *李 鍾 奭[세종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全 寅 永[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클린턴 미대통령 면담 등 일련의 사건은 55년간 지속해 온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정상화를 향한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북한 전문가인 서울대 전인영(全寅永)교수와 세종연구소 이종석(李鍾奭) 연구위원의 긴급 대담을 통해 향후 한반도 냉전해체와 평화정착,동북아 정세에 미칠 파장등을 조명해 보았다. ◆ 조명록 방미 의미와 성과. ◆이위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선 두가지 방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남북한간에 군사적 긴장완화 및 평화구축 등 제반 교류협력이 하나고 국제적으로 군사적 긴장 대결의 핵심인 북미간 대결구조를 완화시키는 것입니다.북한 조명록 부위원장의 방미는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문제가 국제적 해결과 남북관계 해결이 동시 진행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한반도의 냉전해체는 남북관계 개선만으로 해체되는 것이 아니고 북미 적대관계 해소가 병행돼야 종합적인 완결판이 됩니다.북한도과거와 같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차원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북한은 현재 대남,대미,대중 관계라는 3개 중심축을 동시에 가동하고 있습니다.군사 문제 모두를 미국과 풀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전교수 조명록 부위원장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것은 정말 이변입니다.1950년 10월과 2000년 10월이 이렇게 차이가 있을 수 있는지 참 놀랐습니다.1950년 10월엔 미국과 우리가 북진했고 상당히 긴박했었는데 이제는 북한 사람이 군복을 입고 미국에 가서 클린턴을 만나다니….미국도 실세가 오니 대접이 다르지 않습니까. 북한으로서는 클린턴이 이제 물러나는 것이 좀 아쉬울 겁니다.북미관계를 보면 주로 미국 정책이 독립변수고 북한은 종속변수였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을 안 받아 준 것 아닙니까.지금 미국의 제일큰 관심사는 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것입니다.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는 것이구요.그래야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기름도 받고차관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래서 그런지 북한도 이번협상에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조명록 부위원장을 보내고 특히 조부위원장이 군복을 입고 간 것으로 그네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북미 관계정상화. ◆전교수 북미간 수교도 머지 않은 장래에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 수교 조건도 본격 논의되고 있습니다.미국으로선 북한 미사일개발문제가,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 등이 최대 관심사입니다.북한이미사일문제에 대해 부담스런 요구를 할 때 미국은 돈도 많이 필요하고 의회에 의결도 거쳐야 하는 등 난처할 수 있습니다.미국과 북한은 많이 협상해 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미국은 휴전협정 때부터 북한과 협정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이위원 테러 지원국이 해제되면 정상국가 복귀와 경제문제에 도움이 됩니다.이것은 초보적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미사일개발에 대해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지요.조명록 방미는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고 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 등의 후속적인 조치와 추가 협상 등을 통해 마무리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조부위원장의 방미로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곧장 평화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고 ‘포괄적 협상’이란 물꼬가 터지는 것입니다. ◆ 남북관계 전망. ◆전교수 북한이 그동안 학수고대해 왔던 북미 관계가 개선됐을 경우 남북관계도 적지않은 영향이 예상됩니다.전체적으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좋아졌습니다.하지만 제주도 회담이후 속도가 많이 늦춰졌고아직 핫라인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습니다.우리는 또 군사적 문제 해결을 원하는데 북한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에 만족하고 우리를 골탕 먹일 수도 있다는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저쪽은 항상 선별합니다.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대로 큰 계획을 갖고 일을 진행시킵니다.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더욱이 여론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김정일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통일도 할 수 있고 수교도 할 수 있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위원 북미 관계 개선은 양국의 적대관계가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북 관계에도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북한은 남한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나아가 국제사회와의 관계증진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체제유지를 위해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시도할지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관계를 악화시켜 지금까지의 성과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동북아 정세 변화. ◆이위원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주변국들의 입장과 대응 전략도 다양한 것 같아요.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불안정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기 때문에 북미관계 개선을 환영할 것입니다.러시아도 마찬가지지요.북한이 미국과 군사적 유착하는 것이 아니고 정상국가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은 미묘합니다.원칙적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지지하지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일본 정치권에서는 환영하지만 언론과 시민사회에서는 아직 문제를제기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일본 외교가 대미 추종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상당 부분 따라갈 것으로 생각됩니다.북한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북일 관계의 족쇄도 풀어질 것입니다. 특히 일인 납치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경우 북일 관계는 급격히 진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교수 중국은 어쨌든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아직까진 북한에 어느정도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한편 북한이 잘못된다면 자기네 부담이 늘어날 것도 알고 있습니다.이런 측면에서 남과 북이 대화를 해서 풀라고 말한 적도 있는 것처럼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에대해 반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약 미국이 이쪽에서 패권을 차지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이미 너무 힘을 많이 잃었다.러시아는 4자회담 실시도 환영했습니다.북한과 한국이 자기네 나라 문제를 가지고 하는 것 가지고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 않습니까.러시아는 단지 6자회담도 병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 4자회담에 대한 영향. ◆이위원 북미 관계 개선으로 앞으로 4자회담도 변화가 불가피합니다.한반도 주변 4국의 입장과 구상이 서로 틀리기 때문이지요.남한은 2+2에,북한은 북미 협상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4자회담의 궁극적 목적은 ‘원인·해결 방식’으로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에 있습니다.북한이 4자회담을 더 활용해서 평화협정을 위해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판을 치울지 고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교수 4자회담 자체가 출발부터 상이한 목적으로 시작한 만큼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 않아요. ◆ 정부의 향후 과제와 대응. ◆이위원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정부도 과거와 다른 대응 전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남북관계 개선만 몰두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복잡한 변수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남북관계 개선은 북미관계 진전으로탄력을 받을 것입니다.남북,북미 관계는 보완 관계지 결코 대체 관계로 보면 안됩니다.북미관계 진전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북미관계가 진전된다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며 북일관계 개선 가능성도 높다는 이야기가 됩니다.하지만 북한이 주변국과의 관계 증진에 있어서 우리와 조율하지 못할경우 ‘부적합한 상황’이 도래할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외교적으로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따라서 한반도 평화에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선 남한은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과 공고한 협력체제를 일구면서 남북 신뢰구축을 병행해야 합니다. 그동안 남북관계라는 단순한 변수만을 생각했다면 이제 국제관계라는 보다 복잡한 변수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북한이 정상국가로서주변국가와 관계를 맺게 되면 변수가 다양해지고 자칫 부작용도 나올 수 있습니다.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대북정책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입니다. ◆전교수 역시 대미외교가 중요합니다.미국처럼 영향력이 큰 나라는없지 않습니까.요즘 미국과 소원했습니다.매향리 사건,기지촌 여자살인사건,폐기물 유출 사건 등의 문제로 우리나라에게 야속함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예전에는 정부가 다 알아서 덮어줬는데 말입니다.한미 공조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중요합니다.한·일 공조체제도필요하고 중국에게도 잘 해줘야 합니다. 밉든 곱든 북한과도 링크가 잘 돼서 더이상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잘관리해야합니다. 정리 오일만 홍원상기자 oilman@
  • 美 셔먼 조정관 문답

    다음은 미국의 웬디 셔먼 대북정책조정관이 조명록 부위원장과 빌클린턴 대통령의 회담 뒤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요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 친서의 성격은. 한 국가의 원수가 다른 국가의 원수에게 보내는 것으로 예상되는 종류의 서한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변화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는데 이제 북한에 뭔가 진짜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나. 김 위원장이 고위 관리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자신의 구상들과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힌 것 자체가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및 안정을 이룩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하는 중요한역사적 조치다. ■클린턴 대통령이 적군파 항공기 납치범과 피랍 일본인 등 일본의관심사를 특별히 제기했나. 클린턴 대통령은 국제 사회의 관심사를 폭넓게 이야기했으며 여기에는 일본도 분명히 포함됐다. ■클린턴 대통령 또는 조 부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를 거론했나. 오늘 회담은 앞으로 이틀 동안 본격적인 회담과 토론에 들어가기위한 총괄적이고 서론격인 회담이었다. ■북한이 적군파 요원들을 인도할 의도가 있다고 보나. 우리는 북한이 해야 한다고 믿는 사항에 대해 매우 솔직히 토의해왔다.그들이 여기에 머무는 동안 이들 조치에 대해 계속 토의할 것이다.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논의도 있었나. 앞으로 이틀 동안 정상화와 외교대표부(Diplomatic Representative)를 포함한 전체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본다. ■이번 회담이 앞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나.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미사일방위에 대해 검토할 때 북한의 위협이우려의 하나였음은 분명하다.그러한 우려는 아직도 남아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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