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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印尼 무장독립단체에 한국인 1명 피랍

    인도네시아 최동단 이리안자야에서 목재공장을 운영 중인 한국 코린도그룹(회장 승은호) 직원 12명이 16일 현지 무장 독립운동세력들에게 납치돼 17일 현재까지 풀려나지 않고 있다. 코린도측에 따르면 이리안자야 머라우케시 북쪽 300㎞ 지점 밀림에서 권오덕차장과 현지인 직원 11명이 무장 독립단체 자유파푸아운동(OPM) 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 코린도 관계자는 “권차장 등이 벌목작업을 마치고 트럭을 타고 현장 사무소 쪽으로 이동하던 중 활과 칼 등으로 무장한 OPM 요원들에게 저지당한 뒤 납치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코린도는 피랍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전 이현 목재사업본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책팀을 구성,직원들이 잡혀 있는 OPM 근거지로급파해 인질석방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들의 구체적인 요구조건과 인질들의 안전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연합
  • “”朴 전대통령 DJ납치 무마…다나카 당시 日총리에 거액 전달””

    1973년 8월 김대중(金大中)납치사건과 관련,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일본총리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해 정치적 타결을 끌어냈다고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73)전 니가타(新潟)현 의회 의원이 10일 간행된 문예춘추(文藝春秋) 2월호에폭로했다. 그의 기고문에 의하면 73년 10월초 이병희(李秉禧) 당시 무임소장관이 니가타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 다나카 총리와의 면담을 주선해주도록 요청했다는 것. 기무라씨의 주선으로 그해 10월 이 장관은 다나카 총리의 도쿄 메지로다이(目白台) 자택을 방문했다.기무라씨는 이때 이씨가 가져온 커다란 종이 가방 2개를 보았는데 가방 2개를 합쳐 최소한 4억엔 정도는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총리의 면담은 5분간 이루어졌는데 이씨는“하나는 사모님께”라며다나카 총리에게 2개의 종이백을 내밀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도함께 전달했다.다나카 총리는 편지를 읽은 뒤 이씨에게“답장을 써줄까”하고 물었으나 이씨가 거절했다. 다나카 총리는 의자에서 일어나“오히라군에게 한개 전해줘야 겠구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오히라는 당시 외상인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로 이씨가 말한 사모님은 오히라씨를 지칭한 것. 김대중씨는 수일 후인 10월26일쯤서울 자택 연금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11월2일 김종필(金鍾泌)총리가 일본을 방문,다나카 총리를 만나 정식으로 김대중사건을 사과했다. 도쿄 연합
  • 칠레軍政, 반체제 인사520명 고문후 水葬·火葬

    [멕시코시티 연합] 칠레의 군정시절(1973∼1990) 실종된 반체제인사 가운데 520여명이 고문 끝에 살해돼 바다에 수장되거나 안데스 산악지역에 유기되고 일부는 화장됐다는 충격적 보고서가 제출돼 실종자유족들과 국민들을 경악시키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동안 실종자 행방 확인에 미온적이던 칠레 군부가 가톨릭 교회 및 인권단체들과 공동으로 6개월간의 조사 끝에 작성,지난주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 인권단체와 실종자 유족은 군부의 잔혹행위 시인과 확인으로 군정피랍자 및 실종자들의 행방이 드러나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표정이었으며,현재 납치와 살인 혐의로 조사가 진행중인 군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처벌을 더욱 거세게 요구했다. 라고스 대통령은 이날밤 칠레 방송매체를 통한 발표에서 “보고서에언급된 180명 가운데 130명은 칠레 전역의 호수와 강 또는 바다에수장됐고 나머지는 산악지역에 함부로 버려져 산짐승들의 먹이가 됐다”고 밝혔다. 라고스는 이어 “아직 600여건의 실종사건이 미완으로 남았듯이 우리는 많은 시신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는 피노체트군정이 저지른 만행에 ‘진정한 공분’을 느끼며,나머지 사건 해결을위해 군부의 ‘결단과 용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들은 군정시절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죽음의 특공대’ 등 군경 정보기관에 납치돼 희생된 반체제 인사는 3,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이들의 행방과 관련자들의 처벌을 강력히요구하고 있다.
  • 눈높이 낮춘 오페라 ‘마술피리’ 20일부터 예술의전당서

    그동안 ‘고고한’자세를 지키던 오페라가 살짝 몸을 낮췄다.뮤지컬배우를 투입하고,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지루하고 어렵다’는 이미지를 훌훌 날려버리겠다고 나섰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20일부터 2월4일까지 오르는 ‘마술피리’는가족오페라의 정착을 가늠케 하는 무대이다.어린이와 부모가 모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연극적 요소를 강화해 역동감 넘치는 무대를연출하는 데 중점을 뒀다.주역 급에는 남경읍 이미라 조승룡 등 간판급 뮤지컬배우가 캐스팅됐고 밤의 여왕 역은 소프라노 최자영 이하영,타미노 역은 테너 양인준이 출연한다. 화려한 원색 계열의 무대장치와 의상도 볼거리.시냇물 나무 뱀 등을특수의상을 입은 출연자가 표현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극 전개에 강약을 조절해 드라마틱한 재미도 한층 강화했다. 연주는 24명으로 구성된 부천시립청소년관현악단이 맡아 생생한 선율을 들려줄 계획이다. ‘마적’으로도 알려진 모차르트 원작 ‘마술피리’는 밤의 여왕의딸 파미나가 고승 자라스트로에게 납치당하지만,이집트 왕자타미노와 새잡이 파파게노가 마술피리와 방울의 힘으로 구해내고 결국 파미나와 타미노가 축복 속에 결혼한다는 줄거리. 서곡과 합창,일부 아리아를 과감하게 바꾸거나 빼버려 원래 2시간30분인 것을 1시간35분으로 대폭 줄였고 노랫말과 대사도 모두 구어체우리말로 옮겨 공연한다. 문호근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은 “그동안 오페라의 예술성만 강조하는 바람에 오락성은 묻혀 있었다.앞으로 오페라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장르로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람료도 R석 2만원,S석 1만5,000원,A석 1만원으로 낮게 매겼고 어린이를 데려온 어른에게는 20% 할인해 준다.(02)580-1300허윤주기자 rara@
  • ‘남북2001’ 전망/ 전문가 대담

    2000년 한반도에는 지난 50년 동안 유지돼온 ‘남북대결’구도가 ‘남북공존’ 구도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대변혁이 일어났다.6·15 남북정상회담이 변혁의 진앙지였다.한반도는 물론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남북 정상의 첫 만남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의 성과는 무엇일까.또 올초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답방 이후 한반도에는 어떤 변화의 물결이 회오리칠까. 임혁백(任爀伯)고려대 교수와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대담을 통해지난해의 성과를 진단하고 올 한해를 조망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임혁백 교수 우선 지난 한해를 정리하는 뜻에서 6·15 선언의 의미를 대략 세가지로 나눠 짚어보도록 하죠.6·15선언은 세계사적 의미에서 냉전체제가 진정으로 종말을 고한 대사건이었습니다.러시아 붕괴 이후 전세계적으로 냉전시대는 청산됐지만 유독 한반도에서만 냉전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민족사적으로는 반세기에 걸친 분단체제가청산되고 민족공동체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민주화,산업화와 더불어통일된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근대화의 세가지 요건을 갖추게 된것이죠.마지막 과제이자 미완의 과제이던 ‘통일된 국민국가형성’이 완수된 것입니다.마지막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이 내세운 햇볕정책의 승리를 의미합니다.야당총재 시절부터 추진해온 대북포용정책이 결실을 얻었고 이것이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어요.김 대통령 개인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만 한국민에 대한 보상이기도합니다. 더불어 탈냉전,평화구축 지속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라는성격을 띠고 있어요. ■이종석 위원 6·15선언은 그 이전과 이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있는 전환점입니다.이후 장관급회담이 4차례나 이어졌고 국방장관급 회담 개최로 인민무력부장이 한국에 왔습니다.또 경의선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이 과정에서 몇가지 중요한 합의가 도출되기도 했죠.정치외적으론 이산가족 상봉이 수요자 중심으로 제 궤도를 찾은 것도 이전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올해도 지난해의연장선상에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와 비슷한 속도가 꾸준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방한은 막힌 부분을 풀게 하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한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 경제입니다.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경제라는 지렛대’가 약해지면서 비용문제가 난관으로 대두한 것이죠.최소 비용지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도출이 필요합니다. ■임 교수 빠르거나 느린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서로맞춰서 가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지요.그동안 대북 비판론자들은 속도가 좀 나면 ‘너무 빨리간다’고 불안해 하고 그래서 일정을 조정하면 ‘뭐하냐’는 반응을 보여왔던 것이 사실입니다.무책임한 비판이 난무했다는 뜻입니다.대외적으로 미국의 부시 행정부 출범은 남북관계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북한이 대북 강경책을 펴는 미국과의 대화보다 대남 협력 및 협상을 중요시하게 될 테니까요. ■이 위원 전력지원문제도 한번 짚고 넘어갈까요.북한에서는 식량난,에너지난,외화난을 ‘3난’이라고 지칭합니다.전력지원은 인도주의적차원에서의 식량제공과 달리 우리 정부가 무엇을 받아올 것인가가 중요합니다.북한의 지하자원을 가져오고 전기를 송전해주는 구상무역형태나 평화분야에서 어떤 진전을 얻어내는 등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 경제가 어렵지만 전력지원은 신뢰구축의 중요한 단계라는 겁니다.먼 미래의 경제공동체 건설이 아니라 현단계에서 가능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북한이 한걸음 더 나오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임 교수 전력지원을 포함한 경제지원은 단기적,중장기적 차원에서평화를 위한 ‘대가성 비용’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서울에서 지하철 1㎞를 건설하는 데 대략 700억원이 드는데 경의선 복원비용은 2,000억원 안팎입니다.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극단적으로 이 정도 비용에 대한 지불의사가 없는 사람은 평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중장기적 경협을 위해서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남한이 이를 떠맡을 능력이 없습니다.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 등을통한 컨소시엄 구성이 필요합니다.이런 기구들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합니다■이 위원 화제를 남북관계가 일회성 이벤트냐는 일부의 비판으로 돌려보도록 하죠.결론적으로 비록 이벤트로 시작했지만 정례화,제도화로 정착될 겁니다.남측의 평화증진과 북의 경제적 이유가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죠.‘끌려간다’는 지적도 있는데 관계개선에는 단기적으론 한쪽이 양보하거나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이산가족 상봉이나 장관급 회담 등은 남북공존의 큰 틀 속에서 봐야 합니다.올상반기까지 이 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이후에는 보다 광범위한교류가 가능할 겁니다.특히 군사부문에서 긴장완화의 진전이 더디다는 지적은 상당히 유감스런 부분입니다.국방장관회담과 경의선 복원공사 착공 등은 상당한 진전임을 강조하고 싶군요. ■임 교수 군사부문에서 긴장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 위원의 말에공감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이벤트성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50년 만의 상봉자체가 전세계적인 이벤트이자 드라마이며 온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또 하루빨리 면회소 설치 등으로 제도화돼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만전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군사적 신뢰구축을 포함,지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방향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믿습니다. ■이 위원 새해 남북관계의 화두로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일은 김 대통령이 임기안에 반드시 이룰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은 더 오랜 시간과 신뢰구축이 필요한 사안입니다.평화협정 체결이야말로 냉전체제 종식의 마지막 안전판이라고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올해 4자회담 성사문제가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정전협정의 사실상 당사자들인 4자간평화협정체결을 통해 남북간의 평화협정이 존재토록 하는 방법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임 교수 미국 부시 공화당 정부의 출범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도중요합니다.미국 외교의 특징은 초당적,연속적 외교로요약할 수 있습니다.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내 온건파이므로 클린턴 정부의대북기조가 어느 정도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만 국무장관에파월 전 합참의장이 임명되는 등 국무부를 국방부가 장악하는 경향으로 볼 때 북한문제에 안보적 시각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을 희생양으로선택,긴장을 조성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 위원 동의합니다.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나타날지는좀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북한에 상당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겁니다. 하지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공항에서 몸수색을 당하는 치욕 뒤에도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미국에 보낸 것을 보면 북한이 보다 유연하게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자질구레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미국에 대북강경론이 득세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이 오히려 더 유연해질 것이고 이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임 교수 덧붙인다면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 사법부에 의해 선출된약점을 가진 대통령입니다.돌파구를 대외관계에서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붕괴시킨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이어동북아의 마지막 냉전체제를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할 수있을 겁니다. ■이 위원 부시 행정부의 출범이 북·중관계에 미칠 영향도 만만찮습니다.92년 한·중수교 이후 소원해진 두 나라 사이가 김 위원장의 지난 5월 비공식방문 이후 상당히 복원된 듯한 느낌입니다.북한이 먼저복원을 시도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설명하고 사전에 통보하는 성격이 강합니다.공화당 정부의 출범에 북한과 중국 양국이 초긴장상태입니다.이 때문에 새해에 북·중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북·미수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이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 미국과 중국간 ‘거중조정’을 맡을 유일한 대안은 김대중 대통령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임 교수 최근 중국을 방문,전문가들과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돌아왔습니다.물론 남·북,북·중관계가 초점이었죠.이들은 기본적으로한반도 평화정착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통일한국은 반드시 중립국이어야 한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통일한국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치우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주한미군철수 주장을 한목소리로 폈습니다.중국은 북한보다 한국을 더 중시하지만 결코 북한을 버릴 순 없을 것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이 위원 북·중관계와 함께 북·일관계가 개선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일본 내부의 여론은 ‘선(先) 납치의혹 해소,후(後) 북한 미사일문제 해결’로 모아집니다.북한 장거리미사일의사정거리에 들어있는 일본으로선 심각한 사안이며 두 문제가 풀려야수교할 수 있다는 것이죠.두 나라의 수교는 북한의 의사가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용의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임 교수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국내의남남갈등으로 인해 왜곡되거나 뒤틀리는 것이 문제죠. 또 ‘퍼주기식지원’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처럼 대북정책의 성공은 경제개혁및경제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얼마전 열린 국제세미나에 참석했던 외국의 석학들이 외국에서 적극적으로 지지받는 햇볕정책이한국에서 비판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합니다.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50년 만에 대결에서 공존으로 바뀐 만큼 올해는 국민적 합의기반을 조성하는 정부의 노력과 이를 수용하는국민들의 이해가 상승작용을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정리 노주석 전경하기자 joo@
  • 조선족 연수생 3명 피랍

    조선족 산업연수생 3명이 행방불명된 데 이어 이들을 납치했다며 고향 가족에게 돈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5일 경기도 화성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3일 밤과 24일 새벽,화성군봉담읍 A컨테이너 공장에서 산업연수생으로 근무중인 조선족 김모씨(30)의 중국 헤이룽장성 고향집에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김씨를데리고 있으니 중국인민폐 7만위안(한화 1,000만원 상당)을 준비하라”며 3차례에 걸쳐 협박했다. 또 같은 공장에 근무하는 조선족 차모씨(37)의 헤이룽장성 집에도같은날 협박전화가 한차례 걸려와 같은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김씨와차씨는 23일 근무를 마친 뒤 또다른 조선족 동료 김모씨(33)와 함께숙소에서 사라졌으며 다른 김모씨의 중국 집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협박전화를 건 남자는 중국어를 사용했으며 통화도중 가족들에게 김씨,차씨와 통화토록 해 납치 사실을 확인시켰다고 밝혔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올브라이트 “아직 장관은 접니다”

    [워싱턴 AFP 연합]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새 국무장관에 기용된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이 미국의 새외교 사령탑에 지명되자마자 업무 인수인계에 바짝 열의를 보이자 19세기 유명한 시를 인용,점잖게 일침을 가해 워싱턴 외교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의 열의를 이해하면서도 후임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가 국무장관에 발탁된 지 하루만에 바로 자신의 집을 방문해 3시간 넘게 업무 인수협의를 하는가 하면 지난 18일 이후 거의 사흘동안 국무부를 방문해 외교업무 현황파악에나서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그같은 심사의 일단을 지난 21일 국무부 기자단을 위한 한 리셉션에서 조심스럽게 내비치며 파월 국무장관 지명자를 점잖게 놀려 장내 웃음이 터져나왔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822년 클레먼트 무어가 지은 ‘산타 클로스의 방문’이라는 크리스마스 시를 풍자적으로 개작,파월의 순록들이올브라이트의 비행기를 강제로 납치하려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돌아가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시로 읊어 기자단의 폭소를 자아냈다. “ 파월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승강기를 통해 들어왔어요.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있었지요.그의 신발은 새 군화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내가 말했지요.잠깐만 아직도 국무장관은 저예요.내가 돌아오면 그때 비행기와 사무실을 비워드리지요.지금은 아니예요.제발 가주세요.나는 웃으면서 말했지요. 파월은 잠시 멈칫 하더니 이렇게 말했어요.조금 있다 다시 오지요...”
  • ‘南北협력시대의 한반도-과제와 전망’ 세미나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가 주최하고 대한매일이 후원한 ‘남북협력시대의 전개와 한반도 평화-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세미나가 21일 제주도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렸다.참석자들은 주변 4강의한반도 정책과 이들 국가들과의 바람직한 외교관계 설정 문제에 대해열띤 토론을 벌였다.미·일·중·러에서 참석한 학자들의 발제 및 토론과 전직 주중·주일 대사 등 직업외교관들의 견해도 발표됐다. 세미나의 주제 발표와 토론내용을 간추린다. ◆ 남북협력과 평화를 위한 미국의 역할. (金 鴻 洛 美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교수). 미국은 현 남북관계에서 군사안보 분야의 남북한간 교섭과 합의가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중지 문제가 완전히해결되지 않았고 긴장완화의 신뢰조치 마련이나 군비통제·축소 등에 대해 구체적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요하다.주한미군은 평화공존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기습공격이나 우발적 사고로 인한 한반도의 전쟁에 대한 억지력으로 기능해야 한다.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힘의 공백은남북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해 북한의 체제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줄 수 있다.미·일 수교로 북한은 주권국가로서 정통성을 대외적으로 증강할 수 있고 정상적 외교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그러나 북·미 국교정상화는 미국에 공화당 정권이 수립돼 앞으로 상당기간 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보수·건설은 남한의 경제원조만으로 불충분하다.북한이 IMF나 세계은행에 가입하고 이들로부터 필요한 경제원조를얻으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즉 미국과 북한의 국교정상화는 북한의 경제회복과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 남북관계의 변화와 한·중 관계. (權 丙 賢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전 주중대사). 중국은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한반도·동북아 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환영하고 있다.경제발전을 위해 주변지역의 안정과 평화가 긴요하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유지’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뒀다.한·중은 98년 1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한반도정책에 대한 공조를 더욱 강화했다.4자회담을 통한 평화협정체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반대 등의 입장도 같다.한반도 비핵화,평화·안정유지에 대한 공동노력,대화를 통한 자주적 평화통일실현에도 입장이 같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중국과 한반도정책의 공조는 불가결하다.두나라 관계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한 청사진 구상과 구체적인 협력 프로그램의 마련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와 한·중, 북·중관계는 ‘제로섬게임’에서 벗어나 상생관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중국 이외의 한반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주변강국의 신뢰 확보도 빼놓을 수 없다.미·일관계가 소홀해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미·일에 한·중관계 발전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비춰지지 않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 북·일수교가 한반도의 평화정책에 미치는 영향. (이즈미 하지메 日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 북·일 관계진전을 위한 현안은 과거청산, 미사일 등 북한의 ‘직접적인군사위협’, ‘납치의혹’ 해결 등 3가지로 요약된다.북한의 전향적인 자세를 유도하기 위해 일본은 과거 청산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은 북·일관계를 ‘가해자-피해자’의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100년의 숙적’으로 규정한다.북한은 ‘보상’명목의 일본의 대규모경제원조 의사를 확인한 뒤에야 납치의혹,미사일문제 등 현안에 대해태도변화를 보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직접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반면 과정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일본총리의 비밀서한 전달, 밀사파견 같은 방법은 일본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북한의 양보를 위한 거래수단으로 수십만t규모의 전략적 원조는 필요하다.전략적 원조는 미국과 협조아래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동결을 위한 비용분담이란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다. 식량지원의 경우 밀·옥수수·감자 등은 쌀에 비해 비축이 어렵기때문에 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갈 확률이 높다.반면 ‘잉여미’ 지원은엘리트와 군부가 독점할 가능성이 높다. 북·일정상화는 북한의 자세변화가 최대 변수다. ◆ 한·러관계, 발전과 전망. (河 龍 出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올해로 수교 10주년을 맞는 한·러 관계는 건실한 기초 위에 있다기보다 이제 상호인식의 단계를 겨우 마쳤다.양국이 경제위기를 거치고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제관계에서는 소원해진 반면 군사관계에서는 장관급 회담과 참모총장 회담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90년대 초 러시아는 친서방 정책을 취하면서 북한을 잃고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서 시종일관 배제되었다.90년대 후반부터 고위 정치인과 정부 인사들이 평양을 자주 찾기 시작하면서 양국관계는 정상화됐다. 러시아는 통일 한국의 군사적,안보적 자세에 대해 장기적 전략과 관심을 갖고 있다.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러시아의 역할은 일단 4자회담당사자들이 러시아의 건설적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한반도와 주변의 안정적이고 폭넓은 평화안보체제를 위해서러시아의 참여는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시작되는 남북한의 직접 접촉은 다른 주변국에 비해양측과 균형적 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에 많은 역동적 역할을 부여했다.특히 가시화된 남북한의 철도연결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의미,남북한과 러시아에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줄것이다. **“남북정상회담 '한국식 통일모델' 제시”.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에서는 김세택(金世澤) 전 오사카총영사,최성(崔星) 청와대 외교안보비서실 국장,황유복(黃有福)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 교수,김승채(金昇采) 고대 평화연구소 연구원 등이 나서 열띤토론을 벌였다.토론 내용을 간추린다. [김용제(金龍劑) 건국대교수]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식 통일모델’의창출 가능성에 희망을 주었다.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러시아 등 4강국의 한반도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남북간의 새로운 외교경쟁도 예상된다.미국과는 북한에 대한 접근 방법과속도에 대한 조율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김영수(金英秀) 서강대 교수] 미국은 통일한국에 대한 기득권 및 영향력 유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때문에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경계의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미국이 실용주의적 측면에서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한반도 통일문제의 주도권은 남북 당사자에게 돌아오기 어렵다.한반도통일문제와 관련,4강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과도한 의존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석규(金奭圭) 전 주일대사] 북한의 의도를 알기 어렵지만 체제유지에 대한 미국의 보장과 한국·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 확보는북한이 얻고자 하는 확실한 눈앞의 목표다.북한도 경제난 해결을 위해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고 일본도 북한과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동북아국가의 일원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윤덕민(尹德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미·일동맹 등 일본의 안보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당장 주일미군 주둔지속에 영향을 주는 것도 하나의 예다.일본도 북한을 ‘연착륙’시키자는 페리프로세스에서 소외되지 않기위해 발언권 확보에 노력해나갈 것이다. [김창진(金昌珍)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한국이 그동안 ‘냉전체제아래의 아태국가의 일원’이란 이미지를가졌다면 이제 ‘지역협력시대의 유라시아국가의 일원’이란 새로운 이미지 창출의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 공동번영을 구체화하기 위해 통일한국의 국제적 조건을위한 대외의식과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한막스 평통 러시아협의회장] 최근 10년동안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정책은 불안정한 성격을 갖는다.그동안 한반도의 핵문제와 관련한모든 교섭에서 러시아는 제외됐고 북한과의 관계도 축소됐다.반면 한국과 러시아는 경협 등 많은 분야의 협력 가능성을 갖고 있고 러시아의 민주주의의 증대에도 기여해 나갈 수 있다.이 과정에서 러시아 거주 고려인들은 중심적 몫을 맡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귀포 이석우기자 swlee@
  • 23일 개봉 ‘6번째 날’

    당신과 똑닮은 ‘또다른 당신’이 눈앞에서 당신의 아내 혹은 남편과 감쪽같이 키스를 나누고 있다면? ‘007 네버다이’를 만들었던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이 복제인간 ‘클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물을 찍었다.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따뜻한 가장과 복제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며 1인2역하는 ‘6번째날’(원제 The 6th Day·23일 개봉)이다. 레이저 면도기에 다마고치처럼 키가 자라는 인형이 인기폭발인 ‘가까운’ 미래.수수한 점퍼차림의 아놀드는 아내와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전직 전투기 조종사 아담 역이다. 전투기 탑승을 위해 안구와 지문 검사를 받은 생일날 밤,그의 행복은 산산조각난다.불법복제된 또다른 아담에게 속수무책으로 가장의 자리를 뺏긴 채 음모의 배후자인 마이클(토니 골드윈) 일당에게 납치된다. 복제양이 현실이 된 마당에 영화속 기술도 진일보할 밖에.‘데몰리션 맨’에서 실베스타 스탤론의 가상섹스가 화제였던 게 엊그제같은데,이번엔 단추만 누르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홀로그램 미녀가 등장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6번째 날’에서 아놀드는,죽음을 정복하려는 욕망의 윤리성과 가족애를 블록버스터급 액션에 버무려 단숨에 웅변하려 했다.하지만 그가 늙은 걸까.어째 액션에 힘이 빠져보인다.또 아쉬움.DNA복제의 윤리성을 놓고 구구하게 설명하려는 배려는 오히려 SF액션스릴러의 긴장감을 꺾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황수정기자
  • 백문일의 국제경제 읽기/ 亞경제‘3등석 증후군’ 신음

    ‘이코노미 클래스(3등석) 신드롬’.여객기 3등석에서 장시간 비행하면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승객이 혈액응고로 숨질 수 있다는 신종 증후군이다.좌석이 넉넉한 ‘일등석’ 또는 ‘이등석’과 달리 비좁은 3등석 승객에게만 주로 나타난다. 기상조건이 나빠 기체가 요동치면 안전벨트를 오래 착용해야 하기때문에 발병 확률은 더 높다고 한다.물론 건강한 사람에게는 드물게나타나지만 항공사는 이륙전 증후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줘야 한다. 실제 28세의 한 호주 여성은 지난 10월 호주 항공기를 탄 뒤 이같은 증후군 때문에 폐에 피가 뭉쳐 사망했다.호주 변호사들은 같은 사례들을 수집해 프랑스항공,뉴질랜드항공,브리티시항공,호주 콴타스항공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3등석 증후군에 빠졌다.경제적 재도약을 꿈꾸지만정치·사회적 혼란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돌지 않는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설상가상으로 미국경제의 후퇴는 기체를 마구 흔드는악천후로 작용,이들에게 안전벨트라는 족쇄를 채우고 있다. 한때 동남아시아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은 중증 상태다.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필리핀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3.3%로 전망했으나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2% 미만으로 점친다.인도네시아와 태국은 1% 안팎의 제자리 성장이 예상된다.이들 인구의 25%인 8,500만명은 절대 빈곤층으로 경제회생의 걸림돌이다. 태국은 반(反)부패위원회를 구성,부패 일소를 추진하고 있지만 ‘멍키 비즈니스’로 불리는 승려(몽크)들의 각종 비리로 불교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승려들이 여자를 납치해 매춘을 일삼는가 하면각종 강간과 살인에 연루돼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다. 필리핀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이 문제다.올해 5% 성장이 예상되지만 정정 불안으로 경제는 엉망진창이다.인도네시아는 32년간의 독재정권이 청산됐음에도 와히드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부족,97년보다 심각한 외환위기가 우려된다.한국도 구조조정과 정치적 안정이 선결되지 않으면 내년에 5%대 성장은 장밋빛에 불과하다. 1등석 승객인 일본도 안전하지 못하다.소비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국민성과 은행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 기업들은 자금난과 저성장이라는‘이중고’에 시달린다. 미국의 법률사무소들은 개인 및 기업의 파산과 관련한 소송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20∼30% 늘 것으로 본다.아시아 스스로 3등석의 족쇄를벗지 못하면 내년에 증후군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해답은안정 뿐이다. 백문일 국제팀 기자 mip@
  • [부시시대 美國](3)대외정책 바뀌나

    *NMD 구축 '부시외교' 첫 시험대. 조지 W 부시 새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세계 각국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부시는 그동안 대화와 포용을 중시했던 클린턴 대통령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힘을 바탕으로 한외교 및 안보 정책을 펴나갈 것을 공언한 바 있다.경쟁 또는 적대 국가들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러시아와의 관계는 부시 당선자가 국가미사일방어망(NMD)체제에 대한 최종 입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보인다.부시는 선거 전부터 “미국이 가능한 빨리 최선의 대안에 입각한 효과적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우리의 미사일 방어는 미 50개주는 물론 우방과 동맹,해외주둔 미군을 불량국가의 공격이나 우발적 발사로부터 보호하도록 고안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는 미사일 구축을 위해 필요하다면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도 파기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했다.즉 힘을 기본으로 한 외교·안보 및 국제경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ABM 협정의 수정이 순탄치않을경우 일방적으로라도 밀고나가겠다는 방침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중동 중동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즉 친 이스라엘 정책은 계속된다는 뜻이다.부시 후보는 계속되는 중동사태때 이스라엘이 미국의 전략적 맹방임을 공언해왔다.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의중동정책이 더욱 강경해지고 아랍권과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분쟁이 이웃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은 절대 용납치않겠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목표다.다만 외교경험이 적은 부시로서는 향후 1년정도까지는 내치에 힘을 쏟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중동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정치·경제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맹방관계를 유지하겠지만 통상분야에서는 세계 양대 경제권을 형성하며지속적인 마찰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이미 EU는 미국 정부의 수출보조금 지급 행위에 대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제재를 가하겠다고벼르고 있으며 미국은 그같은 제재의 실행이 곧 전면적인 무역전쟁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 부시의 대통령 당선으로 중국과 미국간에는 안보와 외교 문제를 둘러싸고 앞으로 다소나마 긴장과 마찰이 예상된다.부시 외교팀은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고 안보상의 위협과 많은 내부적 문제들을 지닌 잠재적인 경쟁국,심지어는 적국으로까지 보고 있다.NMD 개발을 강행해 중국으로부터 큰 반발이 불가피하다. 또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타이완에 방어용 무기를계속 팔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마찰요인을 안고 있다.그러나 경제와통상 문제는 안보 문제와는 별도로 발전시킨다는 분리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을 상대다.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해온포용정책의 큰 틀은 유지돼겠지만 북한이 한국에 대한 무력도발을 감행하거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강행할 경우 ‘당근’보다 ‘채찍’이 동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남북화해가 지지부진해져도 대북경제 지원강화 등 기존의 제재완화 조치들을 거둬들일 가능성이 있다.공이 북한쪽에 넘어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부시가문의 代 이은 ‘충신' 체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의 반쪽 승리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인물로는 단연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가 꼽힌다. 이는 체니가 단순히 부통령이라서가 아니다.행정과 군경험이 부족한부시로서는 체니의 풍부한 정·관·재계의 경험이 뒷받침될 때만이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원래 체니는 선거 전 부시의 부탁을받고 부통령 후보를 극비리에 물색했었으나 결국 자신이 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된 것도 이 점을 고려해서다. 체니는 91년 이라크와의 걸프전 당시 국방장관으로서,차기 내각에서국무장관으로 내정된 콜린 파월 합참의장과 함께 전쟁을 성공적으로수행했다.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국방전문가 체니는 부시의 보잘 것 없는 군경력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체니의 행정경험은 군경력 못지 않다.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닉슨행정부에서 하급 및 중급 관리로 일했으며 포드 전대통령 집권기간인75년에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될 정도였다.78년부터는 와이오밍주 하원의원으로서 10여년간 의정활동도 겸비했다. 때문에 부시는 앞으로 6,300여명의 임명직 공무원의 인선작업을 체니에게 일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감각도 뛰어나 국방장관을 그만둔 뒤 95년부터는 거대 석유시추사인 홀리버튼의 대표이사로 취임,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발휘했다. 그러나 체니가 부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는 배경은 무엇보다체니의 충성심에 있다.부시 전대통령에 이어 2대에 걸쳐 심복 역할을할 수 있는 것도 부시 가문과의 인연 때문이다.벌써부터 ‘부시는 내치(內治),체니는 외치(外治)’라는 공식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다. chungsik@
  • 金대통령 ‘오슬로 구상’ 뭘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언제쯤 풀어놓을까. 김 대통령은 오슬로나 스톡홀름 방문 중 국내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박준영(朴晙瑩)대변인 등 청와대 참모들도 “대통령이귀국하면 각계 인사들을 두루 만난 뒤 국정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지난 8일 출국할 때 “밖에서도 국정의 중요 사항은 차질 없이 챙기고,귀국 후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해 ‘밑그림’을 대강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방문 중에도 김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국내 경제문제였다.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 등으로부터 매일 국내 상황을 보고받고지시사항을 꼼꼼히 챙겼다는 전언이다. 진념 재경부장관을 비롯한 경제팀 교체 여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이다. 어쨌든 김 대통령의 구상은 연말쯤 당정개편으로 이어질 것 같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김 대통령이 출국 인사말에서 ‘여러분이바라는 국정개혁’을 강조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개혁’에는 ‘쇄신’보다 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니냐”고 말해 김 대통령이 모종의 결단을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오슬로 구상’을 풀어놓기 앞서 각계 인사들을 두루접촉할 계획이다.김 대통령은 출국 전 민주당 최고위원들과 만났을때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도 만나 의견을 들은 뒤 최종 결심을 할 것으로예상된다. 그러나 시기는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여권 핵심 관계자는 “임시국회 상황에 따라 국정개혁 단행 일정은 유동적일수밖에 없다”며 당정의 면모 일신을 위한 개편이 내년 초로 미뤄질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또 “내각 개편은 당과 청와대 보좌진 개편 후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단계적 개편 가능성을 시사하기도했다.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金대통령 행보 결산. [스톡홀름 오풍연특파원] 스웨덴을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노벨재단 방문,팔메 전 총리 부인 접견 등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문 성과]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져올 유·무형의 파급효가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 같다.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성과 가운데 국가 이미지의 국제화를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면서“앞으로 대외관계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초청 인사로 동행한 손병두(孫炳斗)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우리기업들이 노벨상 이미지를 상품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재단 및 국왕 방문] 김 대통령은 오전(이하 현지시각) 노벨재단을 방문,올해 노벨상 수상자 12명과 환담했다. 김 대통령은 마이클 솔맨 노벨재단 사무총장에게 ‘노벨상 100주년기념전시회’에 출품할 ‘옥중 서신’ 원본과 수의(囚衣) 등을 전달했다. [팔메 여사 접견] 김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오후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고(故) 올로프 팔메 전 총리의 부인 리스벳 팔메여사와 그 가족을 만났다. 김 대통령은 89년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팔메 여사를 만나 80년 구명운동에 대해 뒤늦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팔메 여사는 94년 아·태재단 창설때 방한했다. 팔메 여사는 99년 ‘옥중 서신’ 스웨덴판(版)의 서문을 썼으며,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결정된 뒤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대부’격인 팔메 전 총리는 73년 김 대통령의도쿄(東京) 납치사건때와 김 대통령이 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운동에 적극 나서는 등 김 대통령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김 대통령과 팔메 전 총리의 인연은 팔메 총리가 86년 2월 영화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다 암살당할 때까지 돈독하게 이어졌다.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설] 金대통령의 ‘평화 메시지’

    노벨 평화상 수상식 참석을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를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낮 현지의 한 소년으로부터 ‘평화의 횃불’을 증정받았다.수상식 공식 행사의 한 순서였다.김대통령은 소년에게서 받은 그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그 순간 김대통령의 가슴 속에 온갖 감회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 미수,납치·살해 위기,사형선고 등 다섯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년의 감옥생활,10년이 넘는 망명과연금의 고통을 딛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40년 동안 줄기차게 쏟아온 노력이 마침내 전세계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마당에 어찌 감회가 없었겠는가.김대통령이시상식 연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말한 것도,그런 절절한 감회의 결정(結晶)일 것이다. 노벨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은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적 잔재를 녹이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다”고선정이유를 밝혔다. 김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라 할지라도 위원회의 결정에 더이상 보탤 말이 없을 것이다.굳이 덧붙이자면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 그리고 우리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남은 인생을 헌신하겠다는 그의 굳건한 결의와 ‘평화의 메시지’에 다 함께 힘을 보태주자는 말밖에 더 있겠는가. 김대통령은 인권 존중과 사회정의 구현에 있어 민주주의가 지닌 힘을 강조하고,그가 국정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과 ‘생산적 복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국민들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현지의 ‘대서특필’을 감격 속에 받아들이면서도,한편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상황에 곤혹감을 느낄 것이다.세계적인 정치지도자의 발목을 계속 잡아서 무슨이득이 있는가, 여야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깊이 자성해 볼 필요가있다고 본다. 김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은 수상이유에 대한 앞으로의 헌신이 의무로 발생한다”고 선언하고,그가 상을 받은 이유를 위해 헌신할 것을거듭 다짐했다.그러면서 그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도하는 미얀마의민주화 운동과 동 티모르의 독립에 대한 전인류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평화의 사람 김대중,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는전세계에 큰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 납북자문제 北과 인내심 갖고 대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처음으로 성사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가족상봉과 해결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산물로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상처를 상징하고 있는 이들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해법을 살펴본다. 2차 이산가족 방문(11월30일∼12월2일) 때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짐으로써 남북의 납북자 문제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납북어부 상봉은 북한을 꾸준히 설득,납북자를 이산가족의 틀에 넣어 상봉부터 시키자는 우리 정부의 신중한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가능했다. 그러나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과 ‘비전향장기수북송’과 맞먹는 피랍자 송환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고민도 크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는 다른 남북 현안들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를 해나간다는 전략이다.특히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의 우선순위도 높게 잡고 있다. 납북자란 넓은 의미에서 분단 이후 한국국민으로써 북한에 억류돼사망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북 당시의 신분,납북지역,시기,상황 등에 따라 세분되며 이를 유형별로 보면 ▲국군포로 ▲한국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 ▲납북어부 ▲외국에서 강제납치된 민간인 ▲항공기 피랍자 ▲북송 재일교포 ▲북파공작원 등으로 나뉜다. 납북자에 대한 정의는 관계기관마다 다르다.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군포로의 경우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공식확인한 국군포로는 351명에 불과하다.북파공작원은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차이때문에 전체규모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납북억류자 현황자료에서 정전협정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90명이며 이 중 13%인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에는 어부(3,692명),69년 KAL기 피랍에 따른승무원과 승객(51명),함정 피랍군인 및 경찰관(22명)등이 포함돼있다. 북한은 납북자의 북한거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납북자가아니라 공화국을 동경해 자진 월북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겐 공식적으로 ‘의거입북자’‘의용군’‘통일의 역군’‘통일용사’ 등으로 호칭한다.납북자들은 대부분 대남선전에 활용된다.납북자를 회유,협박해 자진월북했다는 기자회견을 시키고 월북자들의 생활상을 TV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체제에저항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납·월북자 22명 수용확인)하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의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정전협정체결 이후 포로교환을 통해 남으로 갈 사람은 다 갔으므로 법적으로 국군포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납북자 가족도 상봉신청하면 만남 기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6일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규정된절차에 따라 상봉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북측과 납북자의 상봉확대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한적과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별도 생사확인과 면회소를 통한 상봉기회가있을 때에도 포함시키는 등 납북자 가족 상봉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납북자 상봉을 이산가족 해법과 별도 의제로 풀어나가자’는 일부주장에 대해 박총장은 명분론적인 접근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납북자들이 ‘왜 북한땅에 있느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가족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다. 2차 상봉에서 납북자 가족상봉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질문에 박총장은 ‘북에 납북자는 없다’는 북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측도 인도적인 문제에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며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적이 북측과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지난 6월 말 1차 적십자회담때.비공식적인 입장 전달 수준에 그쳤지만 북측은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그뒤 9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다시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북측 반응이 많이 누그러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군포로의 상봉문제에 대해선 “국군포로의 가족상봉 문제도일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사회담을 통해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방장관급 회담 등 다른 정부채널에서 해결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전협정후 끌려간 사람들 이산과 별개”.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취급해선 안됩니다” 87년 백령도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이자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인 최우영(崔祐英·30·여)씨는 “납북자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납북자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범위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최씨는 “이산가족들 중에는 6·25 때 자진 월북한경우도 있지만 납북자는 모두 정전 이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북에끌려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납북자가 이산가족과 같이다뤄지면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처럼 가족간에 일회성 만남은 가능하겠지만 남쪽으로의 송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최씨는 “지금까지 남북간에 있었던 300회 이상의 협상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 정부는 92년에는 이인모씨,올해는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북으로 보내 주면서도 남측의 납북자 생환에 대해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최씨는 또 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정책기구나 전담부서의 필요성을강조했다. “우리 정부에는 납북자 문제 담당직원이 통일부 인도지원국 사무관 한명이 고작”이라면서 “지원정책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는 지난 9월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생환한 이재근씨에게 탈북자에 준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최씨는 “통일이란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먼저 사람의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근래 남북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도 더 잘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납북자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金삼례씨 납북아들 강희근씨 13년만의 재회

    “통일되면 오거라,이 에미는 꼭 기다릴 테니…” 13년 만에 재회한 납북 아들에게 김삼례(73)할머니가 남긴 작별 인사였다.2일 오후 남행(南行) 비행기에 오르고서도 눈물은 하염없이흘렀다.평양 땅을 언제 다시 밟을 것이며 아들 희근이가 언제 남으로돌아올지 막막해서였다. 김 할머니가 조기잡이 어선 동진호 갑판장이던 강희근씨(49)의 납북(87년 1월)을 안 것은 꼬박 1년 뒤였다.“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다”며 가족들이 쉬쉬 했기 때문이다. 한의 세월을 보내던 지난 6월27일 손자 현문(16·교동종고 1년)이가 “약주만 드시면 서럽게 우시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보낼 때만해도불가능처럼 여겨진 상봉이었다.그런 탓인지 지난달 30일 고려호텔 상봉장에서 만난 희근씨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물은 첫 마디가 “현문이는요”라는 남쪽 아들의 소식이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재회의 2박3일간 김 할머니는 아들로부터 못다한효도를 받았다.북한에서 새로 맞은 며느리 김용화씨로부터 수박색 한복을 선물 받고 손자 현민(13)이도 만났다.북의 손자가 절을 하고 지팡이를 선물할 때는 울컥 눈물도 쏟아졌다.이틀째인 1일에는 생일상도 차려 받고 네 식구가 오순도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들은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다.어떻게 지냈느냐는 어머니 말에 희근씨는 “훈장,시계도 받고 지금은 공업직물공장에 다니고 있다”며“두달 전에는 노동당원도 됐다”고 칠순의 노모를 안심시켰다.김 할머니를 취재하던 북한 기자는 동진호사건이 ‘납치’가 아님을 계속강조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별의 날이 밝았다.고려호텔을 떠나기 전 20분간의 짧은 만남에서 희근씨는 “현문이 공부 좀 시켜주세요.아빠 걱정 말라고 해요” “울지 말고 얼굴 한번 대보세요.얼굴…”이라고 울먹이며 노모의 볼을 비비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김포공항에서 “아들을 만나 너무 좋았지만 우느라고얘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움을 털어놓고 허위허위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집으로 향했다.차창 밖의 낯익은 풍경을 바라보며 남의 논 짓고 엄마도 없는 손녀(20)와 손자를 키우며 살아온 13년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 김 할머니였다. 전경하 홍원상기자 lark3@
  • 2차 남북이산상봉/ 동진호 갑판장 상봉 전말

    2차 이산가족 상봉에 납북자 가족이 포함된 것은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계속된 장관급·적십자 등 공식회담과 비공식 접촉을 통해남북이 절충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지난 9월 열린 대한적십자사의 방문단 대상선정 인선위원회에서 2명의 납북자 가족을 방북 후보자 200명에 포함시켰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에서 이산가족이라는 정부의 생각을 반영한 정책적 고려였다.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0여명의 납북자 가족들 가운데 ‘70세 이상·직계 우선’기준을 적용해 선정한 것.이어 북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동진호 갑판장으로 지난 87년 납북된 강희근씨의 어머니 김삼례씨가 최종 선정됐다.나머지 한사람의 생사확인은 북측이 알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납북자 가족상봉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측에 따로 공식 협조요청은 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각종 회담과 접촉을 통해 이들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왔기 때문에 남북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언론들은 강씨 모자의상봉사실을 지난 9월 2차 방문단인선 때부터 알고 있었으나 보도를 자제해 왔다.“보도되면 만남이깨지고 다른 납북자들의 상봉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를 받아들여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한시적으로 보도를 자제키로 했던것이다.그러다 2일 아침 북한 평양방송이 이를 먼저 전하면서 이같은걱정이 사라지자 보도를 시작한 것이다. 이석우기자. *어선 동진호 납북사건. 지난 87년 1월15일 발생한 ‘동진27호 납북사건’ 때 승선 인원은갑판장 강희근씨를 포함,12명이다.당시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납치돼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노동신문은 조선중앙통신을 인용,“조선인민군 해군 경비정이15일 오전 11시43분 경 우리나라 서해 장산곶 서북쪽 영해 깊이 불법침임한 남조선 선박 1척을 단속했다”고 16일 보도했다.북한 적십자회는 동진호가 납북된 지 6일만인 1월21일 “조사후 돌려보내겠다”는 송환의사를 밝혔으나 김만철씨 일가가 탈북,귀순하는 바람에 송환이 취소됐다. 최여경기자 kid@
  • 중국서 막바지 촬영 영화 ‘무사’여주인공 장즈이

    “말이 위치를 잡고난 다음엔 움직이지 말란 말야!” 지난 28일 영화 ‘무사’(싸이더스우노 제작)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중국 요녕성흥성.북경에서도 6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 해안가 토성 세트장이 ‘다혈질’ 김성수 감독의 고함에 대번 썰렁해진다.계속된 NG때문이다.그러나 잠시뿐.고삐를 틀어잡고 제법 다부진 품새로 말을 타고있던 장즈이(章子怡·20)가 주위를 쓱 둘러보고는 배시시 웃는다.볼우물이 쏙쏙 패이는 말간 웃음.썰렁해진 세트장 분위기도,영하 10∼20도를 밥먹듯 오르내리는 맹추위도 순식간에 달래놓는다. 다시 큐사인.시치미 똑 떼고 그새 위엄넘치는 명나라 공주로 돌아가더니 불호령을 친다.“(중국어로)여기서 내가 목숨끊는 것을 보겠느냐? 아무도 나서지마.혼자 나갈거야!”[포위당한 성안에서 혼자 원나라 병사들에 맞서러 나가며]‘무사’에서의 역할은 원나라와의 대결 와중에 적군에 납치되는 명나라 공주 부용이다.한족 피난민을 이끌고 대륙을 횡단하는동안 고려의 무사 여솔(정우성),최정(주진모)과 삼각관계가 된다. “제일 힘든 거요? 말도 못하게 추운 날씨요.다음은 무서운 감독님이구요”촬영에 합류한 것은 지난 9월초부터다.그날 이후 쉬는 날이라곤 단사흘뿐이었다.그런데도 한점 피곤한 기색이 없다.일일이 통역이 따라붙는 인터뷰에도 인상 한번 구기는 법이 없고. 이력으로 따지자면 그는 아직 솜털 뽀송뽀송한(?) 병아리 배우다.데뷔작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은 장이모우 감독의 99년작 ‘집으로 가는 길’.국내에선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에서 저우룬파(周潤發)의 상대역으로 나와 얼굴이 알려졌다.최근엔 쉬커(徐克)감독의 ‘촉산정전’도 찍었다.김성수 감독이 “총명한 배우”라고 침이마르게 칭찬하더니,당차긴 당차다.기라성같은 감독들을 놓고 또박또박 작업스타일을 품평까지 한다.“보통 감독들은 머릿속에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꼭 들어맞는 연기를 주문해요.그런데 김성수 감독은 달라요.그때그때 현장에서의 디테일을 중시하고 배우들의 감정변화를 존중하더라구요.연기자 입장에서 볼때 배우와 상의할 줄 아는 감독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그가 캐스팅된 건 지난해 말쯤이었다.북경을 들른 싸이더스우노 차승재 대표가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난 뒤였다.귀띔하자면,그의 몸값은 1억6,000만원.왜 한국영화를 선택했는지,불쑥 물어봤다.준비하고 있었던 듯 태연히 되돌려주는 대답.“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게 이유였죠.다양하고 폭넓은 영화를 찍고싶다고 늘 생각해왔으니까.지난봄 북경전영학교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렸는데,거기에 김감독의‘태양은 없다’가 폐막작으로 상영됐어요.폭발력과 힘을 느꼈고 마음을 정했죠”북경 출신인 그는 현재 중국 국립연기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한국스태프들과 한솥밥을 먹고 지낸지 석달여.“불고기를 질리도록 많이먹었다”고 엄살피우는 얼굴위로 ‘리틀 공리’란 별명이 오버랩돼지나간다. 종일 불어대는 바닷가 흙바람,토성 사이로 듬성듬성 자라난 풀,멀리막사에 나부끼는 찢어진 깃발.세트장 주변이 온통 모노톤으로 황폐한 느낌인데,천연색으로 도드라지는 건 딱 두가지.유난히 파란 하늘과장쯔이의 미소다. 중국 흥성 황수정기자 sjh@. * ‘무사’어떤 영화인가. 김성수 감독의 ‘무사’는 촬영과정에서부터 여러 기록을 만들고 있는 스펙터클 무협액션이다.현장에 동원되는 스태프가 많게는 300여명.대륙을 횡단하는 중국 올로케이션에는 촬영용 차량이 50대가 동원되고,100여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한다. 중국의 유명 스태프들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시네마스코프(가로·세로의 비율이 2.35대1)화면으로 선보일 영화는 볼거리가 풍성하다.3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흥천의 해안토성 세트는그중에서도 압권.실제 오래된 토성을 옮겨놓은 듯한 세트는 미술을책임진 중국의 후오팅샤오 감독 덕분이다.그는 ‘현위의 인생’ ‘패왕별희’ ‘시황제 암살’ 등에서 미술을 맡았다. ‘패왕별희’의 여성 프로듀서 장시아가 무려 10개월동안 발굴한 촬영지들도 영화의 스케일을 키운다.내몽고밑 회족 자치구에서 사막과황무지,협곡,구릉,석산,갈대숲 등이 장대한 화면을 만든다.음악은 ‘에반겔리온’의 일본인 작곡가 사기스 시로우 작품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원이몰락하고 명이 건국되던 혼란기인 14세기.명나라 사신으로 간 고려의 아홉 무사가 원·명의 갈등에 휩쓸려 역경을 헤쳐나가는 줄거리다.장중한 액션 사이사이로 멜로적 색채가 가미된다.총제작비는 52억원.이달 20일쯤 크랭크업되는 영화는 내년 상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다. 황수정기자
  • MBC ‘이제는‘ 내년 봄개편때 부활

    억압적 권위주의 정권아래 가려지거나 왜곡돼온 현대사를 재조명해오피니언 리더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불러모았던 MBC-TV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10월22일 ‘고문,끝나지 않은 전쟁’편으로막을 내린 ‘이제는…’이 2001년 버전으로 되살아난다. MBC측은 회사의 공영 이미지를 대변했다는 상징성과 그간의 사내외호평 등을 감안,이 프로를 2001년에 연장 방영키로 했다.이에 따라‘이제는…’은 3월말∼4월초 봄편성에서 부활해 1차 아이템 15편을내보내게 된다. 지난해 9월12일 ‘제주 4.3’으로 테이프를 끊은 이래 ‘이제는…’은 현대사의 민감한 부분을 끊임없이 건드리며 잇단 안타를 터뜨려왔다.‘여수 14연대 반란’‘박정희와 핵개발’‘일급비밀!미국의 세균전’‘94년 한반도 전쟁위기’‘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등.10년 전만해도 지상파에서는 상상조차 못했을 사안들이다.‘○○사단의 사라진 작전명령서’‘…세균전’등을 통해 6·25전후 양민학살 및 세균전 의혹의 진원지로 미국을 지목했으며 ‘…방화사건’에서는 광주사태에 관한 미국의 역할을 들춰내 보수회귀 분위기에 쐐기를 박기도했다.‘땅에 묻은 스캔들-정인숙 피살사건’‘KT공작의 실체­김대중납치사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전태일과 그 후’등으로는 현대사 수레바퀴에 짓밟힌 피해자들을 위무했다. 방송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PD연합회의 ‘이달의 PD상’,시청자연대회의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등을 휩쓰는 등 반응도 좋았다.평균시청률은 99년도분 13편이 8.3%,올해 15편이 7.2%. 일요일 밤11시30분의 교양프로치곤 선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은 한계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왜곡된 역사 핵심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지기보다 상반되는 당사자 넋두리의 평면적배열에 그치곤 했던 밀도 문제는 제작진 내부에서도 자성한다.말할수없던 시절 내내 침묵하다가 이제 말할 수 있게 되니까 입을 연다는방송 맥락 자체도 김빠진다.지상파 방송이 행한 ‘오욕의 과거사 정리’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방송의 책무라 할 동시대 역사에 대한 올곧은 비판과는 동떨어져 보인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2001년분 제작을 맡은 김채훈CP도 이를 상당히 의식한 듯 했다.김씨는 “한·미,한·일,남북관계 등을 축으로 놓되 시점을 보다 가깝게가져와 현대사에서의 미국,북한 내부의 권력관계와 인맥,재일교포 인권문제 등 발언의 파급효과가 큰 아이템을 다루는 데 주력하겠다”고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북한도 관계정상화에 소극적이진 않아”

    마키타 구니히코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장은 “일본은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현안들의 적절한 해결책을 이끌어내면서 교섭을 진행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한반도 문제를 총괄하는 마키타 국장과의 면담은 지난 14일 도쿄 외무성 집무실에서이뤄졌다. ■북·일 수교교섭 전망은. 지난 10월말 3차 회담에서 심도있는 협의를 가졌다.그러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으며 입장조율의 어려움으로다음 회담일정도 정하지 못했다.일본은 국교정상화와 미사일 발사및 개발 중지,경제보상,일본인 납치의혹 등을 한꺼번에 타결할 생각이다.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일본 태도는. 북·일관계는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비정상관계로 남아 있다.그러나 일방적으로 국교정상화로 가는 것은 적당치 않다.일본인 납치의혹,일본영토 위로 쏘아 올린 미사일발사 실험 등으로 북한에 대해 감정적으로 복잡하다.미사일문제는국제문제이며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지역평화와 안정에위협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북한도 관계정상화에소극적인것은 아니다. ■국교정상화 전 북한에 대한 투자나 경제지원은. 없을 것이다.민간차원의 투자나 진출 등은 별개다. ■일본인 납치의혹은. 북한은 전면부인하고 있지만 방치할 수 없다. 한국정부가 지난 6월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면서 납치의혹 혐의자인신광수씨를 송환한 것은 유감이다.북한은 요도호 납치범을 보호중인데 ‘범인은 (송환돼)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북·일 정상회담 계획은. 정상이 만나는 것은 필요하지도 모른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필요성을들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검토할 단계는 아니며 기회도오지 않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s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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