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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日 아베 총리 사의 표명을 보는 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취임 1주년을 코 앞에 둔 퇴진 발표다. 불과 사흘전 미군 지원을 위한 테러대책특별법을 연장시키지 못하면 총리직을 버리겠다고 배수진을 친 뒤라서 그의 결정은 더욱 뜻밖이다. 하지만 그의 퇴진은 늦은 감이 있다. 지난 7월 자민당 사상 최악의 참의원 선거 참패로 정권은 사실상 끝이 났다. 국민의 선택은 아베가 아니었는데도 정권에 집착해 총리직을 고수했다. 등 돌린 민심을 읽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상처만 더 입고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자민당이 만든 연금제도의 부실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각료의 불법 정치자금이 속속 밝혀졌는데도 그는 공허한 개헌과 개혁을 외쳤다. 게다가 미 의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하는데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외면한 동아시아 외교를 복원하려고 애는 썼지만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강경책을 접지 않아 결국 일본의 외교 고립만 심화시켰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총리까지 오른 그는 납치 해결에 한치의 진전도 보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가 선출되는 대로 퇴진하겠다고 말했다. 새 총리가 이달 말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만큼 자민당은 곧 후임 총재를 뽑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총리직에 오를 자민당 총재가 누가 되든 일본에 거는 국제사회의 기대를 잘 읽었으면 한다. 아베 총리가 1년간 보여준 편협한 외교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일본이 더불어 살아가야 할 나라는 동맹국 미국만이 아니다.
  • 아베 사퇴 왜

    아베 사퇴 왜

    |도쿄 박홍기특파원|‘전후세대의 첫 총리’라는 수식어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 1년도 못 채운 채 초라하게 추락했다. 아베 총리는 ‘7·29 참의원 선거’의 참패에 따른 당 안팎의 사퇴 압력에도 “정치 공백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총리직을 버텨왔다. 또 지난 9일 오는 11월1일 시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에 “총리직을 건다.”며 정치적 배수진을 칠 만큼 강경한 입장을 취했었다. 그랬던 아베 총리가 12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표명했다.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정권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더이상 곤란한 상황”, 즉 정치적 구심력을 잃었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참의원의 1당인 민주당을 비롯, 야당의 반대에 밀려 테러특별법의 연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수로 밀어붙였던 참의원 선거 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당내에서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최대 개혁인 우정민영화에 반대, 탈당했던 히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상의 복당에 따라 고이즈미의 개혁 노선을 추종하던 의원들은 ‘반개혁적’이라며 아베 총리를 노골적으로 비판해 왔다. 안팎의 시련이 만만찮았다. 특히 참의원 선거의 참패를 반전시키려던 제2기 내각도 잇단 각료들의 정치자금 문제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엔도 다케히코 전 농림수산상은 취임 1주일 만에 국고보조금 부정 수령으로 물러났다. 인적쇄신이라는 역전의 명분도 자리를 잃었다. 아베 총리를 간판으로 내세워 중의원 선거를 치를 경우, 정권을 내줄 가능성도 있다는 자민당 내의 기류도 사임을 재촉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도련님’의 한계를 드러내듯 민심의 바닥을 읽지 못했다. 정치적 모토인 ‘전후체제의 탈피’를 위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 교육기본법과 교육관련 3법 등의 개혁법도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나아가 다수의 힘에 의한 독선적인 국회운영과 끼리끼리의 ‘친구정치’도 국민들을 식상하게 했다. 물론 5000만건이 넘은 연금납부 기록분실 사태는 아베 총리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취임 초기 65%의 지지율은 최근 20∼30%대에서 오르내리는 처지였다. 결국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외할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이 아버지인 최대 정치명문가라는 발판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납치문제 등 ‘일본판 북풍’을 앞세워 총리에 올랐지만 민심과 괴리된 정책 탓에 제대로 야심을 펴보이지도 못한 채 불명예 퇴진하는 꼴이 됐다. hkpark@seoul.co.kr
  • 대북강경책 누그러질까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물러나도 일본의 향후 대외관계 큰 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누가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변화가 올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총리 후보군의 정치적 경륜이 높은 탓에 가급적 외교적 마찰을 피할 듯싶다.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이 차기 총리에 선출되면 강한 일본으로 대표되는 ‘주장하는 외교’를 편 아베 총리의 외교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소 간사장은 역사 문제 등에 대해서 한국이나 중국을 자극하는 ‘망언’을 자주 한 경력이 말해주듯 집권에 성공할 경우, 한·중 관계는 매끄럽지 못할 것 같다. 미국과의 관계는 아베 총리와 같은 노선이기 때문에 동맹관계 역시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대북 관계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강경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아소 간사장이 차기 총리가 되더라도 국내 정치 장악력이 나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강력한 외교를 펴는 데에는 일정 정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와 각을 세워온 다니가키 사다카즈 전 재무상이 집권할 경우엔 외교 노선이 다소 바뀔 수 있다. 대 한·중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적지않다. 장관 취임 전까지 아베 총리를 비판해 온 요사노 가오루 관방장관이 집권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경 일변도의 대북외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중진의원들이 지지하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집권하게 되면 변화의 수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대 한·중 관계 중시파인 만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한 유화파인 탓에 유연한 대북외교를 전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는 아베 총리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노련한 실리 외교는 한국을 고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외교소식통의 분석이다. 아베 총리의 납치 피해자 문제를 앞세운 대북 강경노선은 여러 사정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hkpark@seoul.co.kr
  • 살인(殺人) 독수리에 비상(非常) 동원령

    살인(殺人) 독수리에 비상(非常) 동원령

    『살인 독수리를 잡아라』-. 이런 색다른 「캠페인」이 궁벽한 시골에서 벌어지고 있다. 군인과 경찰은 물론 예비군까지 동원된 「비상동원령」에 얽힌 「살인독수리」의 전말. 경남 김해군 장유면 율하리 구관부락 주민들은 요즘 독수리의 횡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구관부락은 총 48가구 주민에 해발 700m의 산골짜기. 독수리한테 닭은 물론, 개, 염소등 가축들을 약탈당하기 일쑤. 지난해 11월19일에는 이마을 박종의(朴鍾義)씨의 장남 수남(壽男)군(3)이 집뒤뜰에서 놀다가 실종된 사건까지 일어났다. 신고에 접한 경찰은 처음에 타방사람의 유괴이거나 무지한 나병환자들의 납치가 아닌가보고 수사를 폈으나 2개월 남짓 수남군의 행방은 오리무중. 지난 7일 하오, 마침내 마을뒤 구랑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김용덕군(20)에 의해 수남군은 비참한 시체로 바위틈에서 발견됐다. 시체를 조사한 경찰은 수남군의 시체에서 왼쪽 눈이 빠졌으며 왼쪽턱과 엉덩이에 독수리의 부리에 쪼인듯한 구멍이 뚫렸고, 왼쪽 어깨와 허벅지의 살점이 거의 뜯겨진 점등을 들어 독수리의 횡포로 사망한 것이라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같이 일개 부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살인 독수리」는 거의 날개가 1m. 날개를 활짝 펴고 날면 마치 L19 정찰기 정도는 될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근 마을은 물론 멀리서도 포수들이 「독수리 소탕작전」을 자원, 연일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으며, 군·경·예비군까지 동원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별 무성과. 김해엽우회에서는 86명의 수렵사를 동원, 독수리 소탕작전본부까지 설치하는등 부산을 떨고 있다. [선데이서울 71년 1월24일호 제4권 3호 통권 제 120호]
  • 성스러운 테러/테리 이글턴 지음

    테러가 과연 성스러울 수 있을까.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시즘 문학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자신의 저서 ‘성스러운 테러(서정은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에서 신화와 프로이트, 니체와 서구의 다양한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서구 문명사에서 테러를 고찰한다. 나아가 9·11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서문을 통해 몇년 전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매혹된 국악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이글턴은 6·25전쟁도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글턴은 테러리즘 혹은 공포정치가 사실상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강조한다. 테러리즘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처음 나타났는데, 이런 점에서 테러리즘과 근대 민주주의 국가는 쌍생아로 볼 수 있다는 것. 얼굴없는 적이 국가주권에 가하는 위협이 아니라 국가가 자신의 적을 향해 행사하는 공적 폭력이 바로 테러리즘이라는 얘기다. 서구 국가들은 테러 방지라는 구실 아래 점점 더 스스로의 자유를 박탈하게 됐다. 서구인들의 일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서구의 자유를 질투해 서구인을 살육한다고 믿지만, 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서구가 자유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에 대처한 결과, 양편 모두는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경험하게 됐다는 것이 이글터의 논지다. 우리도 ‘납치’와 ‘살해’란 탈레반의 테러가 남긴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글턴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는 터번을 두르고 큰 칼을 휘두르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을 살육하는 설화 속 악당도, 인질을 보며 기뻐하는 가학적 도착증 환자도 아니다. 현대의 테러리스트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극단적인 것은 그들이 더 악하거나 병든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나 무고한 사람의 목숨말고는 쥐고 싸울 게 없는 정치·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테러가 긴 역사를 지닌 정치적 항거의 방식이자 새로운 질서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양가적이면서도 모순적인 행위임을 상기시킨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북·일 “국교정상화 협의 계속”

    |도쿄 박홍기특파원|북한·일본은 6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틀째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갖고 앞으로 국교정상화를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북한측 대표단의 김철호 외무성 아시아국 부국장이 밝혔다. 그러나 주요 의제였던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기존의 입장을 고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김 부국장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납치 문제와 관련,“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납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며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어 일본측의 납치문제 진상규명 요청에 대해 “북·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여서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북·일 관계가 원만해져 신뢰관계가 구축될 경우에나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 측의 이같은 입장에 따라 앞으로 일본 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 부국장은 또 “국교정상화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향후 성의를 갖고 빈번히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역설했다.hkpark@seoul.co.kr
  • 北·日 국교정상화 실무회의

    |도쿄 박홍기특파원|6자회담 합의에 따른 북한·일본 국교정상화 실무그룹 회의가 5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6개월 만에 이틀 일정으로 열렸다. 송일호 북한, 미네 요시키 일본 국교정상화 담당대사는 이날 몽골 정부의 영빈관에서 만나 일제강점기 당시의 ‘과거 청산’에 대해 논의했다. 납치문제는 6일 다루기로 했다. 송 대사는 회의에 앞서 “앞으로 성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미네 대사는 “납치·핵과 미사일이라는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불행한 과거를 청산, 국교정상화를 실현한다는 기본 방침에 따라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일 베트남 하노이 회담과는 달리 납치문제 등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측은 과거 청산과 더불어 경제적 지원을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측은 최근 아베 신조 총리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 북·일의 국교정상화를 이뤄나갈 것”이라는 발언과 관련,“총리의 발언에 변화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논평한 만큼 회의장 분위기도 예전과는 달랐다. 일본 측은 납치문제와 관련된 모든 피해자의 즉시 귀국과 진상조사, 지난 1970년 일본 여객기를 납치한 이른바 ‘요도호사건’의 범인 송환 등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는 “기본 방침을 유지하면서 유연한 자세로 사태를 타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hkpark@seoul.co.kr
  • “北 테러지원국 해제 민감한 절차 진행중”

    “北 테러지원국 해제 민감한 절차 진행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4일(이하 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미 정부 부처들이 북한을 궁극적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해 ‘민감한 절차’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시 부대변인은 “미 정부 내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삭제 문제를 논의해 왔다.”고 확인하면서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북한이 법률적 요건을 충족하고 북한 비핵화가 더 추진되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KAL기 폭파·日人 납치 해명 관건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당국자도 이날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 폐기를 거듭 약속함에 따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는 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삭제를 위해 해결할 현안들이 있지만 그렇게 광범위한 내용이 아니며, 탑승객 및 승무원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개입 해명을 포함한 몇몇 사안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제네바 실무회의에서 “북한이 명단에서 해제되기 전에 해결돼야 할 몇몇 현안이 남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세계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은 KAL 사건 이후 어떠한 테러행위에도 개입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 없다.”고 기술, 테러지원국 해제의 길을 열어 놓았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으로, 이론적으로는 정책결정만 내려지면 당장 내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6개월간 테러행위를 지원한 사례가 없으면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불능화 이행 진척 여부 변수 이 소식통은 “하지만 의회에 삭제 사유를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 불능화 이행이 어느 정도 진척돼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또 올해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포함돼 있어 이에 대한 북한측의 납득할 만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5일 몽골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성과를 얻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dawn@seoul.co.kr
  • ‘피랍희생’ 불가피성 주장 파문

    아프간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피살된 것과 관련,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측 관계자가 “구한말에 미국 선교사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했다.”며 선교 중 사망의 불가피성을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또 피랍자들이 석방된 뒤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들이 위험지역 선교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는 등 잇따라 태도를 바꿔 비판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이슬람 지역 선교 재개 시사 샘물교회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권혁수 장로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기독교에서의 선교 활동 중 순교는 우리나라에서도 모두 경험했던 일인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를 비난한다.”고 말했다.그는 “구한말 미국 선교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대학·병원들을 세운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면서 “이제 우리가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 나라에 들어가 봉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밝혀 샘물교회 측이 이슬람 지역 선교를 재개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이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교황 중심의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개별 교회 단위의 봉사 활동이 진행돼 성과는 많아도 세간의 평가가 늘 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그는 “현재 대다수 언론이 박은조 목사의 설교 가운데 일부만 발췌해 ‘심성민 형제 같은 순교자가 3000명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왜곡 보도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무슨 말을 해도 비난밖에는 돌아오지 않아 일절 대응을 하지 않겠지만 일단 사태가 진정되면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랍 석방자의 어머니 조모(53)씨가 한 선교협회에서 간증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등 간증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계 안팎에서는 ‘신앙 간증은 개인이 선택하는 자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피랍자 가족과 석방자들은 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하느님 덕택 석방” 자제 목소리 김종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선교와 간증은 자기 신앙의 확신을 통한 구원으로 상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느님 덕분에 석방됐다.’는 식으로 간증하는 것은 사회의 일반적 사고와 일치하지 않는 한국 교회의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윤형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도 “한국 교회의 잘못된 선교 활동이 문제되고 있는 만큼 피랍 석방자 및 가족들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강을 회복한 뒤 간증 활동을 하는 것은 피랍 석방자들에게 득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성남 류지영 이경원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경북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586-1 봉양마을 주민들에게 두봉(78·본명 렌 뒤퐁) 주교는 ‘웃기는 괴짜 할아버지’로 통한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여는 맘씨 좋은 푸른 눈의 프랑스 선교사. 목사님이나 스님이나 거리낌없이 방 안에 들어가 허물없이 이야기를 꺼내도 껄껄 웃으며 들어주는 외국인.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문화마을에 두봉 주교는 없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분위기 메이커’인 것이다.2004년 11월 이 봉양마을에 왔으니 올해로 4년째.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며 거침없이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두봉 주교에게 한국은 ‘하느님이 명령한 선교 임지’에 앞서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땅’이다.1954년 11월 한국 땅을 밟은 뒤 53년간 단 한번도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은 채 서슴없이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두봉 주교. 그에게 과연 한국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이곳까지 왔습니다.” 왜 이토록 한국을 고집하느냐는 물음에 ‘능력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침을 따른 선교사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쩔 수 없는 선교사의 사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대답에 ‘한국은 나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절절한 심중이 읽힘은 왜일까. 프랑스 오를레앙,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전설로 유명한 그 고장에서도 한참 벗어난 궁벽한 농촌 마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두봉은 저 멀찍한 한반도의 부름에 이끌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형제, 아니 사촌형제 두 명까지 모두 7형제가 한 집에서 살며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냈던 두봉은 형제 중에 유일하게 ‘성소’의 뜻을 밝혀 신학자, 목회자의 길을 밟았다. 한국이라는 동양 끝 저쪽 나라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채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쌓았던 그가 털어놓는 한국과의 인연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를레앙 신학교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병영생활을 하던 말미에 한국전쟁이 터졌다.“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료들이 거의 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가 한국에 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그였다. 당시만 해도 ‘위험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신학생인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참에 6·25전쟁으로 성직자들이 거의 전멸하디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지원을 요청해 5명의 신부가 배정됐던 것. 휴전 한 달 전인 1953년 6월 발령을 받아 교육을 받고 일본을 거쳐 인천 땅을 밟은 게 1954년 11월. 처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그에게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묻히겠다.”는 변함없는 소신을 준 것은 과연 믿음일까, 삶일까. 전쟁의 끝자락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폐허만 눈에 띌 뿐” 어느 한 곳 번듯한 게 없었던 한국 땅. 용산 성심여자고등학교 터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거처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를 맡은 게 한국 사목의 시작이다. ‘두봉’(杜峰)이란 이름은 당시 대흥동 본당 주임이었던 오기선 신부가 지어준 이름. 두봉 주교의 프랑스 이름자에 맞춰 지었다고 하는데 두봉 주교는 “중국의 두보와 같은 성씨”라며 은근히 이름 자를 치켜세운다.“두견새가 큰 봉우리에서 우니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중등학교 시절 ‘가톨릭노동청년회(JOC)’활동을 했던 때문일까,‘눈에 밟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전 선화동 다리 밑에 50명쯤 되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집을 나와 움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전 JOC 청년회원들이 1년 넘게 같이 어울리며 살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은 지금도 감동으로 남아 있다. 당시 대전 MBC 라디오를 통해 진행한 ‘5분명상’ 프로그램은 대전 지역 가난한 이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돼 초대 교구장을 맡을 무렵 “바늘방석에 앉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두달 뒤 주교서품을 받았는데 주교 서품 때 응당 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주교라면 12사도 후손의 반열에 오르는 천주교의 큰 명예인데 굳이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마다한 까닭은 무엇일까.“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지 서민인 내가 무슨 문장을 가져.” 한사코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외국인 사제는 한국인 뒷바라지만 하면 됐지 뭐 교구장 자리까지 차지하느냐.”며 안동교구장 자리를 고사했지만 교황청의 내리누름에 밀려 할 수 없이 눌러앉았다. 지난 1990년,22년 만에 안동교구장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한국인 사제를 교구장으로 임명하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 교황청에 탄원을 낸 인물이다. 전통 문화의 고집이 센 ‘유림의 땅’ 안동에서 22년간이나 큰 탈 없이 천주교 교구장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안동지역 최초의 문화회관을 만든 것을 비롯, 함창에 상지 여중·고를 세운 일, 한국 최초의 전문대학인 가톨릭상지대학을 설립한 일…. “지금 생각해도 그 의롭고 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도 안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유별난 지역이었지요. 그런데 유림들은 양심에 따라 인간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더군요. 천주교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나의 가치관이 잘 맞았지요. 내가 부딪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1979년 ‘안동농민회사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잊지 못할 큰 사건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영양군이 알선한 불량감자씨를 심은 농민들이 감자농사를 망쳐 피해보상을 받았는데 보상운동에 앞장선 오원춘이 정부기관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사실을 안동교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들고 일어서 전국에 폭로한 것.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교구장 두봉 주교의 출국명령을 내렸지만 로마 교황청이 나서 추방명령이 철회됐다. 두봉 주교에게 ‘한국 농민사목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젠 한국인 사제가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탄원이 받아들여져 교구장에서 은퇴한 게 1990년. 정년을 15년 앞둔 채였다. 고양시 행주외동의 조립식 가건물인 행주공소에서 능곡성당 신부를 도와 성직자와 수도자 신도들의 피정 지도를 14년간 하다가 지난 2004년 안동교구의 주선으로 이곳 봉양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향격인 안동 지역에서 살게 해달라는 주문이 받아들여져 이곳에서 살게 됐는데 너무 잘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한다.“사는 집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진다.”며 한사코 번듯한 집을 마다했던 그다. “한국 천주교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중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은 나의 모범 선배”라는 두봉 주교. 그 10명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사목표어는 만들지 않았지만 마음속 표어는 있지 않으냐는 짓궂은 물음에 마지못해 떠듬떠듬 말한다.“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기도 많이하고 남과 함께 살다가 주님의 뜻이 뚜렷해지면 주님 뜻대로 하겠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아주 바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고추며 가지며 텃밭에서 손수 키운 푸성귀들을 주섬주섬 챙긴 주교가 거실 벽에 걸린 문구를 가리킨다. 두봉 주교 은퇴 후에 안동교구 사제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목표어란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1949년 오를레앙 대신학교 철학과 졸업 ▲1951년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신학과 졸업 ▲1954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신학교 대학원 신학과 졸업 ▲1953년 사제 서품 ▲1954∼1955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1955∼1965년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 ▲1967∼1969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 임명. 주 교 서품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훈장 ▲1990년 안동교구장 사임, 은퇴 ▲1991∼2003년 행주외동 행주공 소 피정 지도 ▲2004년∼ 봉양문화마을 거주
  •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전문가 ‘결산 대담’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전문가 ‘결산 대담’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의 아프간 피랍사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지만 아무래도 그 중심엔 우리 개신교의 무리한 해외선교가 있다. 서울신문은 이번 피랍사태를 계기로 네 차례에 걸친 시리즈를 통해 해외선교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을 짚었다. 그 결산으로 신학자와 현장 목회자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에 나선 채수일 한신대 교수(선교학)와 류상태 한국종교자유정책연구원 지도위원은 개신교계가 철저한 신학적 반성을 토대로 선교의 정체성 찾기와 대안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피랍사태로 노출된 해외선교 문제점 ●류 위원 교회가 주관하는 해외봉사 활동도 결국 궁극적으로 선교의 방편임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놓고 볼 때 근본적으로 선교와 봉사는 분리할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이번 피랍사태는 특히 ‘모든 사람이 복음을 나눠야 한다.’는 근본적인 교리 지상주의가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사례로 기록된 셈이다. ●채 교수 피랍사태 내내 단기선교와 봉사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아프간이라는 이슬람 지역 특성상 피랍자를 보호하기 위해 봉사로 몰아갔지만 근본적으로 봉사는 곧 선교임을 부정할 수 없다. 봉사를 내세운 의도된 선교는 신학적 오해에서 생긴 것이다. 봉사를 통해 개종과 세례로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선교가 아니라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바꿔야 한다. 이번 분당 샘물교회의 봉사도 결국 개종과 세례의 프로그램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해외선교 기승의 근본 원인 ●채 교수 해외선교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진입이라는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다.90년대 이후 성장이 지체된 한국 교회가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아나섰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선교를 받았던 피선교지 한국 교회들의 ‘빚진 복음을 더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복음 부채의식’이 세계에서 두 번째의 선교강국으로 치달았고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졌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굳이 현지에 가서 교회를 짓고 복음을 뿌리는 우월감 내지는 선민의식에 대한 반성이 없었던 점이 유감스럽다. ●류 위원 솔직히 1970년대 이전까지는 해외선교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군사문화와 경제적 논리가 보수 주류 교회의 입장과 상통했다. 한국 경제가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교세도 수직상승했고 그 여세를 몰아 해외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때 우리 교회들의 심각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론적 기반 없이 상승세만 좇다 보니 성수대교 붕괴처럼 지금 와서 교회도 무너지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의 위기를 맞는 것은 경제의 거품이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교회의 세가 약해지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바른길로 갈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채 교수 성서 안에는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입장의 이야기가 공존한다. 구약을 보면 타 민족·문화에 대한 배타적·공격적 입장과 타 문화를 수용하는 공생적 선교모델이 모두 들어 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우리 보수 교파에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라 이름을 알게 하고 신앙고백하는 것을 복음전파로 보고 있다. 이 단순한 복음의 포괄성이야말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교조적으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한다. 예수님의 보편적인 사랑, 즉 인간평등과 자유실현이란 가치의 존중을 선교의 완성으로 보는 시각이 존중돼야 한다. ●류 위원 한국 교회들의 성경 해석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마태복음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의 절대적 선교 명령을 따르면 결국 교리적 선교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강력한 말을 했다고 하지만 정말 예수와 사도 바울 당대에 그렇게 말을 했는지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신학적 과제가 주어졌다. # 단기선교를 포함한 해외봉사와 NGO활동 어떻게 봐야 하나 ●채 교수 기본적으로 해외에서의 NGO 활동은 적극 권장해야 한다.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를 포함해 많은 NGO들이 보편적 가치에 충실한 운동을 해왔고 진행중이다. 다만 단기선교의 효과는 신뢰할 수 없다. 단기선교에 나서는 교회측이나 목회자·선교사·신도들 입장에선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지에서 얼마나 진정한 의미의 선교를 할 수 있고 선교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기선교보다는 충분한 사전준비와 현지 사정을 숙지한 중장기 선교나 현지 교회, 주민들과 협력체제를 갖춘 자립선교로 나아가야 한다. ●류 위원 순수한 의미의 해외봉사 NGO 활동은 문제되지 않지만 비기독교권에서의 기독교단체 활동은 문제의 여지가 많다. 한국 개신교의 80%가 보수적 교리주의를 따르고 있는 형편에서 순수 봉사를 기대하긴 어렵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선교를 안 하고 봉사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직무유기다. 봉사의 순수성과 열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도외시한 채 무리하게 행동으로 옮긴다면 문화적 폭력과 무엇이 다를까. 기독교 NGO와 해외봉사단체는 상대방이 환영하면 어디든 가야 하지만 원치 않으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 # 아프간·파키스탄 등 위험지역 선교금지 파장 ●채 교수 탈레반의 민간인 납치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탈레반이 종전 계속해온 납치극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인데도 종교적 색채가 너무 많이 부각된 감이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누적돼온 반기독교 정서가 이번 사태로 집중됐다고 할 수 있다. 탈레반 측에서 한국 개신교 활동 금지는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협상 제안이었고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도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석방과정에서 몸값 논란이 있긴 했지만 정부 입장에서야 자국민 구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류 위원 선교금지에 관한 한 한국 주류 개신교들이 맞닥뜨린 정체성의 핵심사안이란 점에서 섭섭함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식의 합의가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는 게 교계의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종교침해로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해외선교와 관련해 참된 성경해석 논의를 차분히 진행시켜야 한다. # 개선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채 교수 거듭 말하지만 선교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16∼19세기의 유럽·미국식 선교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교를 위장한 사업이나 지나친 식민지 의식에 대한 수정작업도 따라야 한다. 우리 교회들의 선교가 대부분 국내 교파를 그대로 옮겨간 교파이식 형태에 치우쳐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다. 선교사 교육수준과 해외선교 비용도 문제다. 개신교회들의 활동을 상호 조정하면서 선교사 교육이며 현지 자립 프로젝트와 관련한 정보교환을 담당하는 해외선교봉사국 같은 기구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류 위원 보수적 한국 주류 개신교 입장에서 볼 때 뼈를 깎는 반성은 사실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위험지역에서의 성급한 행동의 반성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선 교회와 신도들의 의식을 깨우려는 진보적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역할이 크다. kimus@seoul.co.kr
  • 이지영씨 등 3인이 전하는 피랍생활

    이지영씨 등 3인이 전하는 피랍생활

    납치된 다른 인질들에게 석방 기회를 양보한 것으로 알려진 이지영(37)씨는 귀국 사흘째인 4일 큰 오빠 진석(40)씨에게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납치됐다 가장 먼저 풀려났던 김경자(37)·김지나(32)씨도 이날 경기 안양시 샘안양병원 지하1층 샘누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간에서의 피랍 상황과 심경을 밝혔다. 이들은 “이번에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팀원들이 유서를 써두고 갔다. 아프간으로 떠나기 직전 교회에 제출했으며 자율적으로 썼기 때문에 팀원 중 절반 이상이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3명으로부터 아프간 피랍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동굴생활 며칠뒤 민가로 이동 피랍된 지 5일이 지난 7월24일 이씨는 심성민·김지나·김경자씨 등과 함께 동굴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탈레반은 피랍자들에게 위협을 가한다거나 폭력 등은 행사하지 않았다. 단지 “너희가 무슬림이었다면 풀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폭력이나 협박이 있었던 다른 그룹과는 달리 이씨의 그룹은 탈레반과 비교적 사이가 좋았다. 며칠간의 동굴생활 뒤 탈레반이 피랍자 4명을 데리고 다른 주거지인 민가로 이동했다. 동굴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환경이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갑자기 탈레반 쪽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라고 말했다. 평소 피랍자들과 머물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탈레반에서 꽤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직접 찾아와 요구했다. 이씨는 그 사람이 탈레반의 지도자격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사람은 “인터뷰를 하라.”고 말했고, 이씨는 전화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 인터뷰를 한 다음날 탈레반이 심씨를 끌고 나갔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당시 이들은 심씨가 살해됐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심씨가 탈레반과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탈레반은 심씨에게 남성용 차도르를 씌운 뒤 숙소를 빠져나갔다. 탈레반은 심씨가 한국에 갔다고 말할 뿐이었다. ●“구토·감기증세에 탈레반이 약 챙겨주기도” 심씨가 끌려나간 직후 이씨는 구토와 감기 증세로 며칠을 앓았다. 탈레반은 감기약을 가져다 주며 나름대로 신경을 써줬다. 감자, 사과주스, 콜라 등의 음식도 챙겨주기도 했다. 그 뒤 몸 상태가 호전됐다. 그리고 석방 얘기가 나왔는데 이씨는 김경자씨와 김지나씨에게 “나는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언어가 통하니까 먼저 나가라.”고 말하며 양보했다. 당시 이씨는 가족에게 죄송스러웠으나 ‘내가 남아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안양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한국인 피랍사건 탈레반 배후 사살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이 한국인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 사령관 등 16명의 무장대원을 사살했다고 AFP통신이 4일 아프간 정부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아프간군은 한국인 23명이 납치됐던 가즈니주 카라바흐 지역에서 전날 밤 탈레반 소탕작전을 벌였으며, 수시간에 걸친 교전 끝에 납치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로 지목된 물라 마틴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주 경찰서장은 “이 지역 탈레반 사령관인 물라 압둘라 잔과 함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 인물로 꼽히는 물라 마틴 등 모두 16명의 무장대원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제메라이 바샤리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도 “마틴은 한국인 납치사건을 주도한 배후 인물”이라며 그가 사살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미군 주도 연합군 측은 반군 “몇 명”이 사망했다고만 밝혔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선교 위해 출국전 유서 썼다.”

    4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됐다 가장 먼저 풀려난 김경자(37)·김지나(32)씨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들의 기자회견과 치료에 대한 브리핑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네티즌 92% “피랍자 등에 구상권 행사하라”

    네티즌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됐다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구상권 행사 방침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난달 30일 자사 이용자를 대상으로 ‘정부는 아프간 피랍 사태 해결의 제반 비용에 대해 피랍자와 교회 측에 구상권을 행사할 방침입니다.당신의 의견은?’이란 설문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중간집계 결과는 찬성 의견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4일 오후 1시 현재 총 8만 9452명이 조사에 참여한 가운데 92.27%인 8만 2541명이 ‘찬성한다.’고 답했다.5706명(6.38%)이 반대했으며,‘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1205명(1.35%)이었다. 같은 시각 이 설문조사에는 1만 4577개의 의견이 달려,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알 수 있게 했다. 의견의 대부분은 ‘찬성’측 입장을 반영하고 있었다.xxxx2007이란 네티즌은 “일본도 이라크 피랍인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했었다.”며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국민 모두가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티즌 ccm6126은 “구상권이 아니라 국가위상추락과 전국민이 받은 스트레스까지 포함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보였다.이에 limbyongsob란 이용자도 “구상권 행사는 물론 국민들에게 위자료까지 배상해야 한다.”라고 맞장구쳤다. brisk826은 “피랍자들은 항공료랑 병원비만 내도 된다.”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들을 보낸 교회한테는 모든 것(석방비,공무원 다녀온 비용,군부대 조기 철수로 인한 제반 비용,앞으로 한국인들 외국에서 핍박받을 정신적 피해보상 등)을 다 받아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난 7월 28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네티즌청원’에 등록된 ‘아프간 피랍자 구출비용 청구하라.’라는 대정부 건의글에는 17일 오후 1시 현재 4만 4127명이 서명한 상태다.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나라는 국민을 지킬 의무는 없나!세금은 어디에 쓰려고….이럴때 쓰지.”,“피랍자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분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될까.”,“탈레반 납치범들이 나쁜 x들이지 봉사하러 간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가.”는 등 반대 의견도 눈에 띄었다. 탈레반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가 지난 2일 귀국한 한국인 19명 등은 현재 경기도 안양시 샘안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서울광장] 북·일 외교의 진화 보고 싶다/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북·일 외교의 진화 보고 싶다/황성기 논설위원

    외교란 게 처음도 끝도 명분과 실리를 좇는 생물체다. 그제 제네바에서 끝난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도 그렇다.1년 전만 해도 소망만 했지, 상상은 못했던 핵불능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퇴행과 진화를 반복하는 생물체처럼 양국은 핵이란 밧줄을 밀고당기다가 종국에는 비핵화와 수교라는 목표점에 도달할 것이다. 제네바 회의는 그런 점에서 6자회담의 앞날, 북·미관계의 진전에 낙관적 믿음을 던진다. 5일부터 북한과 일본이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같은 회의를 가진다. 지난 3월 베트남 하노이 1차 회의는 납치문제로 고성만 주고받았다.2차 회의도 비슷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렇지만 이전과 비교해 여건과 징후가 좋다. 먼저 북·미 관계 순항이란 여건의 변화가 있다. 언제까지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는 없다.”고 외치기엔 일본이 디딜 수 있는 지형은 갈수록 좁아진다. 미국의 잰 발걸음을 따라가거나 늦추기엔 일본의 힘이 달린다. 국제정세란 엄혹하고 카멜레온처럼 자주 색깔을 바꾼다.5년 전만 해도 북한에 접근하려는 일본의 발목을 미국이 잡아채지 않았는가.2002년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일 수교협상이 열렸다. 그해 9월 김정일·고이즈미 두 정상이 합의한 평양선언 1항의 실천이었다. 협상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북·일 협상 직전 미국은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평양에 보낸다. 그가 귀환길에 들른 도쿄에서 풀어놓은 보따리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 EU)개발 의혹이었다. 전세계가 깜짝 놀라고 2차 핵위기가 시작됐다. 테이블에 재를 뿌린 협상이 잘될 리 없었다. 혹시 제지당할까 봐 북·일 정상회담을 합의해 놓고 발표 며칠 전에서야 미국에 통보한 일본이다. 당시 고이즈미의 국교정상화 의지는 강했다. 그런 고이즈미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는 두 손 들었다. 납치문제까지 엉기면서 미국의 의도대로 북·일관계는 빙하기에 접어든다.2·13합의는 해빙기로 가는 전환점이었다. 북한을 대하는 미국이 변했고, 북한도 미국을 믿기 시작했다. 지금 부시의 핵해결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이 대북 수해 지원의 운을 떼었다. 좋은 징조다.2004년 8월 이후 제재의 끈을 조이기만 했던 일본으로선 주목할 만한 변화다. 그렇다고 아베 신조 총리의 강경책이 뿌리부터 바뀌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그것을 판단할 첫 무대가 울란바토르 회의다.6자회담의 5개 워킹그룹 중 유일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게 북·일 실무그룹이다. 이번 회의조차 진전이 없으면 북한보다는 일본쪽이 욕을 먹기 십상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5년간 주도한 ‘북조선 봉쇄작전’으로 얻은 것은 별달리 없다. 일부 납치피해자와 그 가족을 데리고 온 공은 고이즈미 총리의 몫이다. 목줄 죄기로 끄떡할 북한이 아니라는 사실은 북·미관계의 역사에서 학습해야 한다. 핵을 제거하자는 6자회담 내 워킹그룹에서 납치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울란바토르에선 허물어진 양국의 신뢰를 쌓는 게 급선무다. 납치는 별도의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교섭대표도 격상해 풀어야 할 문제다. 북한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아베 총리가 지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 아니라면 국교정상화의 조건으로 내건 납치해결이란 외통수도 물리는 게 좋을 것이다. 안보와 납치해결이란 명분과 실리를 챙길 만한 이니셔티브가 아직도 아베 총리에겐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정부 “아프간 체류 한국인 철수 안해”

    탈레반이 인질 석방 조건으로 내건 ‘8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체류 중인 모든 한국 민간인 철수’ 약속을 어겼다며 아프간 한국 대사관 등 한국 관련 시설물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가운데 현재 아프간 현지에는 건설업체 등 기업인 70여명 등 한국인 100여명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당국자는 3일 “여권법 개정에 따라 지난달 아프간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되면서 선교 및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120여명은 이미 철수한 상태”라며 “그러나 건설업체 등 기업인 70여명과 대사관 직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교민 등 100여명은 별도의 허가를 받아 현지에 계속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탈레반의 주장과 달리 모든 민간인 철수는 합의사항이 아니다.”면서 “따라서 현재 체류 중인 기업인 및 대사관 관계자의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납치단체와의 합의조건에는 모든 민간인 철수가 아니라 기독교 선교단을 보내지 않는다는 ‘선교 금지’ 조항이 들어 있으며, 선교인들은 모두 철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탈레반 대변인 격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2일 밤(현지시간) 연합뉴스와 간접통화에서 “한국은 석방합의 조건으로 8월까지 아프간의 모든 한국 민간인을 철수하겠다고 했지만 오늘이 9월2일인데도 아직 일부가 남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약속을 어겼다면 카불의 한국 대사관을 비롯해 한국이 지원한 교육시설까지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납치·사망 손배금지 각서 요구

    ‘위험지역으로 선교 활동을 떠나는 선교사의 준비사항:(1)출국 전 영문 유언장을 작성한다.(2)본인의 사망, 부상, 납치 등 어떠한 경우에도 선교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아프간 탈레반의 한국인 피랍사태 이후에도 위험지역 선교 활동을 계속 펼쳐 나갈 방침을 천명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 선교사 위기관리 기구와 위기관리 지침서(안)’를 만들어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는 아프간 피랍사태를 계기로 한국 선교사 위기 관리가 필요하다며 2004년 작성한 위기관리지침서를 이 같이 업그레이드해 지난달 31일 협의회 사이트를 통해 공개했다. 앞서 선교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주요 기독교계 선교책임자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아프간 피랍 사태 사후 대처 방안을 논의한 뒤 “정부가 탈레반과의 공식 합의에서 이슬람권 국가에서의 기독교 선교 활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에 합의한 것에 대해 우려한다.”며 이슬람권 국가의 선교 활동을 계속해 나갈 방침임을 밝혔다. 이 지침서가 선교협의회 홈페이지(www.kwma.org)에 오르자 “상대가 원하지 않는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정신적 폭력이다.”,“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더 이상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등의 네티즌 비난 댓글 500개가 쏟아졌다.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손해배상청구 금지’ 규정이다. 지침서는 출국 전 준비사항 중 하나로 ‘선교사는 본인의 사망, 부상, 납치 기타 어떠한 경우에도 선교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선교단체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출국전 준비 사항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규정도 있다. 지침서는 ‘자신의 인적사항, 재산과 물품, 자녀의 양육권자, 시신과 유골처리 방법, 매장 희망지 등에 관한 내용과 유언장을 영문으로 3부 작성한다.1부는 본인 보관,1부는 선교단체 보관,1부는 선교지의 팀장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관시킨다.’고 명시했다. 피랍됐을 경우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부분도 명시돼 있다. 지침서 위기관리 기본정책 부분은 “우리는 몸값이나 기타 갈취를 위한 금전적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는다.”고 분명히 했다. 한편 이날 오전 19명의 피랍 석방자들이 입국한 인천공항 입국장 주변에서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 구절이 적힌 푯말을 들고 나와 일제히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형제, 자매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고개 숙이지 말라.”며 ‘응원’을 보냈다. 반면 한 남성은 이들을 향해 계란을 투척하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제지당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최연소 이영경씨의 피랍생활

    “탈레반이 소지품을 다 뺏아 갔는데 아빠가 준 신용카드는 돌려 달라고 해서 가지고 있었어요. 힘들 때마다 신용카드를 보며 아빠를 생각했어요.” 피랍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이영경(22·여)씨는 2일 샘안양병원에서 아버지 이창진(51)씨를 만나 악몽 같은 피랍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직까지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탈레반’의 ‘탈’자만 나와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양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씨는 어학연수를 다녀 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프간 봉사활동을 떠났다. 지난해에도 샘물교회 청년회 일원으로 인도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아직 정신적으로 충격이 많고, 말하는 것도 앞뒤가 잘 안 맞아서 오락가락하는 것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씨의 아버지를 통해 피랍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탈레반은 7월19일 봉사단원 23명을 납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명씩 나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당시 탈레반은 피랍자들을 분산 수용하면서 “서울에 보내 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봉사단원들은 이 말을 믿고 나이가 어린 이씨를 가장 먼저 가는 팀에 넣어 주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가장 먼저 떠난 4명은 제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게 됐다. 피랍 생활 동안 내내 풀어 주겠다는 거짓말을 수백차례 들었다. 매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에 풀려 나기 전 날에 민가에서 잘 때도 ‘이번에도 또 거짓말이겠지.’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그는 적신월사 쪽에 인도되고 나서야 ‘아 진짜구나.’하고 생각했다. ●“첫날 소지품 모두 빼앗겨” 탈레반은 납치하자마자 소지품을 모조리 다 빼앗았다. 이씨는 디지털 카메라와 MP3 등을 모두 빼앗겼다. 탈레반의 협박에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 “아빠가 준 신용카드는 돌려 달라.”고 했고, 탈레반도 잠시 그를 보다가 신용카드만은 돌려 주었다. 신용카드는 이씨의 아버지가 여행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비상금’으로 준 것으로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억류 내내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신용카드를 보며 아버지 생각을 했다. ●동굴과 움집에 가둔 후 밖에서 지켜 피랍생활 내내 4명은 산속에 있는 움집이나 동굴에 재우고 먹을 것은 빵과 홍차, 끓인 물 등을 주었다. 함께 있던 피랍자가 황달기가 있자 포도 등도 제공했다. 먹을 것은 항상 그 수준이었고, 동굴이나 움집 같은 곳에 살다 보니 온 몸에 벌레가 물어 성한 곳이 없었다. 동굴에 있을 때 탈레반들은 안에서 감시하는 것은 아니었고 움집이나 동굴에 가둔 뒤 밖에서 지키는 식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밤에 이동할 때는 오토바이에 태우고 데리고 다녔다고 이씨는 전했다.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 딱 하루 풀려 나기 전날 밤에 민가에 데려 가서 재웠다. 대화는 탈레반이 영어를 못해 손짓과 몸짓으로 했다. 피랍 내내 ‘죽이겠다.’는 협박보다는 반항하거나 도망을 갈까봐 거짓말하면서 주로 회유를 많이 했다. 안양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귀국] ‘몸값’ 누가 거짓말하나

    탈레반에 억류됐던 한국인 인질 21명의 석방과 관련, 한국정부가 탈레반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탈레반이 그동안 여러 차례 거액의 몸값을 받고 납치한 인질들을 풀어준 전력이 있어 이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1일 탈레반 지도자위원회의 한 고위 인사가 로이터통신에 “몸값으로 2000만달러(약 187억원) 이상을 받았으며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통신망을 재정비하여 더 많은 자살 공격을 위한 차량을 사들일 예정”이라고 주장해 몸값 논란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탈레반측이 몸값을 받았다고 직접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몸값 논란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 됐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의 대면접촉에 참여했던 아프간 정부 관리도 이날 미국의 abc방송에 “1인당 5만달러씩 모두 95만달러의 몸값이 지불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 (AIP)에 “그런 주장은 탈레반을 헐뜯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송민순 외교부장관도 그런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정부와 탈레반의 대면접촉에 중재역할을 했던 아프간 부족원로 하지 자히르도 돈이 건네지지 않았다고 밝혔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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