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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3·1절 기념사로 본 新한·일관계

    이명박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천명했다. 지난달 25일 취임 직후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신(新)한·일 관계 구축 의지를 거듭 피력한 것이다. 이날 3·1절 기념사에 담긴 ‘이명박 실용외교’는 ‘미래’와 ‘세계’에다 시공간의 축을 설정했다.‘미래 지향’과 ‘열린 민족주의’가 키워드다. 우선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이 대통령은 ‘과거’보다 ‘미래’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다.”고 피력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민족’보다 ‘국제’를 우선했다.“남북문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후쿠다 정부의 한·일 관계는 야스쿠니 신사·교과서·독도로 집약되는 3대 갈등에 발이 묶였던 노무현-고이즈미 체제 때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한·일 정상간 빈번한 방문외교가 펼쳐질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이뤄진 정상회담에 이어 두 정상은 4월 하순 도쿄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갖는다. 후쿠다 총리는 특히 오는 7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G8(선진 8개국) 정상회의에도 이 대통령을 초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세 차례 한·일 정상회담이 올해 개최되는 셈이다. 이미 지난달 회담에서 두 정상이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한 만큼 하반기 추가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앞서 노무현 정부 때 한·일 갈등을 촉발한 3대 현안을 양국이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특히 이들 3대 갈등이 모두 일본측에 의해 촉발됐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가 선결돼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서는 일본 정부의 기류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나 독도 영유권 문제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장기 과제다. 이는 결국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미 안보동맹 업그레이드와도 맞물린 사안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및 한국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와 맞물려 동북아의 신안보질서가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일본의 군사대국화 속도와 이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이 갈릴 전망이다. 신 한·일관계는 북핵 6자회담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본은 그동안 일본인 납치 문제 선(先)해결을 주장하며 북핵 6자회담의 진전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가급적 북핵과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분리한다는 자세를 견지해 온 정부로서는 새로운 한·일 관계 추진이 북핵 6자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英 해리왕자 아프간 최전선 정찰중

    英 해리왕자 아프간 최전선 정찰중

    “영국 해리 왕자님은 지금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정찰중.” 영국 찰스 윈저 왕세자의 둘째아들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23)윈저 왕자가 10주째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인 헬만드주에서 군복무 중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있다. BBC, 가디언,CNN 등 외신들은 지난 28일(현지시간)영국 국방부 관료의 말을 인용 이렇게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에 따르면 해리왕자는 10주 전인 지난해 12월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 배치됐다. 탈레반의 거점인 헬만드주는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최고 지도자 등 탈레반 지도부의 은신처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토군의 집중 공습지 중의 하나다. 해리왕자는 이곳에서 아프간에 파견된 7800여명의 다른 영국 군인들처럼 정찰, 공습작전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리왕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최전선에서의 군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나흘 동안 사워를 못한 적도 있고 일주일 동안 옷을 빨아 입지 못한 적도 있다.”며 “보통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원했던 군복무를 마침내 하게 됐다.”며 “조국을 위해 동료 병사들과 작전에 참여하게 돼 너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이튼스쿨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리왕자는 원래 이라크 복무를 강력히 원했지만 군당국이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 위험이 높다고 보고 만류해 성사되지 못했다. 해리왕자의 아프간 배치사실이 언론에 노출됨에 따라 영국 국방부는 해리왕자가 탈레반의 공격목표가 될 것을 우려해 즉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영국군은 해리왕자가 최고 6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할 때까지 비밀로 하기로 언론들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의 폭로 전문사이트인 드러지리포트가 이를 공개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해리왕자의 군복무는 영국 왕실의 전통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에 따른 것이다. 해리왕자의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는 2차세계대전 때 운전병으로 군복무했으며 삼촌인 앤드루왕자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닻올린 李정부] (2) 주요 강대국 외교 어떻게

    [닻올린 李정부] (2) 주요 강대국 외교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인 25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갖고 미·중·러시아 특사들과 잇따라 만나는 등 실용외교의 고삐를 당겼다. 전통적 동맹강화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발전을 축으로 국제적 활동공간을 넓혀 나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실용외교’가 변화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경계 및 의구심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입장을 짚어봤다. ■ 한·미 관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25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화기애애한 면담 분위기는 향후 한·미관계의 방향을 가늠케 한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동안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서 향후 한·미동맹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라이스 장관도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화답하며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강화에 높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미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국에 10년 만에 보수 성향의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미국은 그동안 불편했던 양국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며 공개적으로 환영의사를 밝혀왔다. 우선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 등에서 공조체제를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책조율이 노무현 정부 때보다는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의 보수 대 보수 조합은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기면 ‘11개월짜리’에 그칠 수 있다. 더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전시작전권 이양시기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조정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대통령은 4월 중순쯤 미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회담장소로는 워싱턴 근처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상은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공동선언’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동맹관계를 비롯해 북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 진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 추진, 한·미 FTA 등 한·미간 현안들을 두루 협의하며 양국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 한·미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미간 기조 및 정책 조율도 관심사다. 부시 대통령은 내년 1월 임기내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워낙 강하다. 이같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대북정책과 어떻게 맞아떨어질 지 주목된다. 한·미 관계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우선 한·미 FTA 비준동의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의 쇠고기 수입 재개 요구를 어떻게 푸느냐가 핵심이다. 워싱턴의 한·미관계 전문가들은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쇠고기 문제와 한·미 FTA에 대한 해법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도 양국간에 쟁점으로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미국은 이미 합의한대로 2012년 4월17일부터 이양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명박 정부는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kmkim@seoul.co.kr ■ 한·일 관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이 이명박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한·일 시대’,‘미래지향적 우호·협력관계’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껄끄럽던 한·일 관계와 대비, 부각시키려는 ‘의도’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이 지난 25일 이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좋은 관계를 쌓아 가고 싶다.”며 당면 과제로 한반도의 비핵화, 납치, 미사일 문제 등을 예로 들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주일 한국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을 “동료”,“이웃”이라며 친근감을 내보였다. 한·일 관계는 사실상 양국 정상의 신뢰회복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과거사에 대해 더이상 사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인 ‘열쇠’는 일본 쪽이 쥐고 있다. 지금껏 역사를 둘러싼 충돌과 갈등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등 정치인들에서 비롯된 까닭에서다. 독도·배타적경제수역(EEZ), 교과서 왜곡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나아가 2010년 일본의 한국 강제병탄 100주년을 어떻게 정리하고 갈 것인지도 양국의 숙제다. 때문에 지난 2005년 중단된 셔틀 외교의 재개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일단 후쿠다 총리가 취임식에 참석, 정상회담에서 셔틀 외교의 물꼬는 텄다. 이 대통령도 셔틀외교를 약속했다. 후쿠다 총리는 오는 7월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개최되는 서방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 의장국 자격으로 이 대통령을 특별초청할 계획이다. 일단 정상들이 만날 기회는 예전에 비해 늘어날 듯 싶다. 대북 정책에 대한 한·일 양국의 대응 방향도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대북정책의 엇박자를 비난해왔던 터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유화책을 폄으로써 북핵뿐만 아니라 납치문제를 더 꼬이게 했다는 주장이다. 그런 탓에 이 대통령의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북한에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해석에서다. 한·일 양국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남아 있다. 지난 2004년 11월 끊겼지만 양국 정상 모두 희망하는 만큼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hkpark@seoul.co.kr ■ 한·중 관계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분명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한·일 동맹의 강화를 외교의 주요 축으로 삼은 데 대해 26일 베이징의 한 외교 관련 인사는 중국 외교가와 학계의 반응을 이렇게 정리했다.“노무현 정부에서 한때 ‘소홀’했던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예전처럼 복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설명에도, 그는 “모두들 동맹강화의 정도를 주시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형성된 경계감을 설명했다. 또 다른 한 전문가는 “특히 노무현 정부가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의 중재 역할을 누구보다 지지하고 협조해온 전례가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후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명백하게 비교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과 미·일의 관계에 거리가 생긴 만큼 한·중 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외교가 제로섬 게임은 아니지만 사안과 때에 따라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중국 학계 등에서 이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강화 그 자체는 아니다. 미국 주도로 한·미·일 전선이 형성돼 중국의 행동반경을 차단하고 봉쇄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외교 고문’으로 알려지고 있는 왕지쓰(王輯思) 베이징대 교수는 “현재 미국 내부에는 미·일 동맹을 아태지역정책의 주축으로 삼고 이를 통해 중국을 이 질서에 편입되도록 하는 것이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미, 한·일 동맹의 강화를 언급하자 중국 학계와 언론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가장 큰 이유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중 관계의 현안은 이같은 ‘오해’의 해소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양국 관계를 한단계 격상시킬 것을 제안해놓은 상태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된 ‘전면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중국으로서 최고 외교 단계를 뜻하는 ‘전략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외교관계에서 전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나라는 현재 러시아와 일본뿐이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한국과 중국은 새로운 역사상의 시점에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며 “한·중 관계는 새로운 형세 아래에서 틀림없이 새로운 국면을 통해 새로운 단계로 격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두나라는 연내 ‘차관급 전략대회’ 개최를 준비 중이다. 한국이 지난 수년간 중국에 요구해왔으나 중국이 이를 피해온 것이다. 올해 최대 3차례 정도 예상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서 이같은 사안들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jj@seoul.co.kr
  • “브라운 총리 나를 살려주세요”

    “브라운 총리 나를 살려주세요”

    지난해 5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재무부 청사에서 납치됐던 영국인의 동영상이 아랍계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BBC는 당시 영국인 5명을 납치한 무장그룹이 10개월 만인 26일(현지시간) 인질 중 한 명의 동영상을 공개하고 이라크인 수감자 9명과 인질들의 교환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라크 시아 이슬람 저항’으로 자처하는 무장그룹은 아랍계 위성방송 알 아라비야를 통해 동영상을 내보냈다. 동영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피터 무어’라고 밝힌 영국인은 가족들을 보고 싶다면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에 납치범들의 요구를 수락하라고 호소했다. 미국 컨설팅사 베어링포인트 직원이었던 무어는 수염을 기르고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다. 그는 “이는 단순한 교환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동료를 석방시키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8개월 가까이 구금돼 있다고 말해 이 비디오는 지난달쯤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영상을 내보낸 알 아라비야 방송은 비디오를 ‘이라크 시아 이슬람 저항’에서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영국 외무부는 비디오를 본 사실을 확인했지만 동영상에 나타난 인물이 무어라고 단정하지 않고 5명의 인질 가운데 하나라고만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이명박대통령 오늘 취임] 경협으론 北 안열려 韓·日 전략적 공조를

    [이명박대통령 오늘 취임] 경협으론 北 안열려 韓·日 전략적 공조를

    이명박 제17대 대통령이 25일 5년 임기를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실망이 컸던 반작용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역사인식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문제며 한·일간 외교문제로 삼을 생각은 없다.”는 그의 발언이나 북핵 문제에 대한 한·일간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던 점 등은 “노무현 정권과는 다르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일본으로선 무엇보다 새 정부의 한·일 관계 및 대북정책이 최고의 관심사다. 한·일 관계는 노무현 정부 때 지나치게 냉각됐지만 사실 한·일 관계가 그렇게까지 갈등 관계가 될 이유는 없다. 다만 넓은 의미에서 역사인식을 둘러싼 문제들은 당장 해결되기 어렵다. 물론 돌발사태에 따라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양국 정부가 갈등을 얼마만큼 예방·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진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개혁에 쉽게 응할 리도 없고 아무리 경협을 앞세워도 한국의 영향력이 개혁을 이끌 만큼 크다고 여겨지지도 않는 까닭에서다. 노무현 정부가 초기에는 대북정책에 관해 일본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으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인해 일본 국내 여론이 나빠졌고, 대북정책도 강경 쪽으로 선회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노무현 정부는 일본에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한·일관계 개선도 포기했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냉각되는 데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큰 몫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안에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높이도록 돕겠다.)이라는 정책목표에서 잘 보여주듯 남북경협을 북한 핵포기와 연계시키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북핵문제를 기본적으로 6자회담에 맡겨놓았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서 방한한 일본 국회의원단에게 북핵문제에 대한 한·일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북핵 문제는 북·미 양자의 문제’라는 방침에 따라 한·일 양국을 배제하려는 북한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활용 가능한 모든 방안을 동원해 북핵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 경협이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바꿀 만큼 큰 협상력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김정일 체제 유지가 발등의 불인 북한에 개방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압박해도 어렵다는 얘기다. 대북정책의 한·일 공조와 관련, 일본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전략적으로 한국의 대북정책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전임 아베 정권 때부터 추진해온 대북 강경일변도 정책이 예상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후쿠다 정권은 국내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북정책에 대해 확고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같은 일본 정부나 여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래서 한·일 양국 정부가 합리적인 전략적 대북정책을 함께 만들고 전개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정치학 교수
  • “韓·日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중요”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22일 한·일 관계에 대해 “과거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며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 관계의 구축을 강조했다. 후쿠다 총리는 이날 오후 관저 회의실에서 24일 한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35분간의 공동 인터뷰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 용의와 관련,“한국민의 심정을 이해하며 소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후쿠다 총리는 오는 25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정상회담을 갖는다. 대북정책과 관련,“여러 문제가 있지만 끈기 있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서 대화 중시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2년 9월) 평양선언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며 평양선언에 무게를 뒀다. 납치문제도 빨리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후쿠다 총리는 2004년 11월 이후 중단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해 “조속히 타결하고 싶다.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개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hkpark@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곤혹스러운 상태가 지속되다

    조선이 후금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1630년 무렵부터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까지 후금이 요구했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들과의 교역에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도( 島)의 한인들을 받아들이지 말고 그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후자는 후금이 조선을 ‘평가’하는 핵심 관건으로 사실상 명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인조정권은 곤혹스러웠다. 정묘호란 당시 조야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루어졌던 화친은 ‘명과 조선의 부자(父子) 관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후금과의 형제 관계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북경으로 가는 육로가 끊긴 상황에서 조선과 명의 관계는 가도와의 왕래를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바로 거기에 조선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도는 모문룡 시절이래 내내 조선를 들볶았고, 조선 또한 ‘부자 관계의 상징’인 가도를 외면하지 못했다. ●영원한 애물단지, 가도 후금도 한동안은 양측의 관계를 묵인하는 듯이 보였다. 조선을 거쳐 가도에서 들어오는 명나라 물자가 필요했던 데다, 수군이 없는 상황에서는 가도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금이 1629년 기사전역(己巳戰役),1631년 대릉하 전투 등을 통해 명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본토 방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명은 가도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다시피했고, 그 때문에 가도의 고립과 곤궁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럴수록 가도의 한인들은 조선에 더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가도를 이미 ‘손안에 들어온 물건(掌中之物)’이라고 여겼던 후금이 조선에 대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의 지원만 없다면 가도의 한인들은 대거 후금으로 투항할 것이고, 가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가도가 무너진다면 후금은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뒤를 돌아보아야 할 걱정(後顧之憂)’ 없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산해관으로 나아가 명과 최후의 결전을 벌일 수 있었다. 후금이 조선을 공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에 대한 공격을 구상하면서 후금은 명이 자신들의 배후를 역습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하지만 산해관 바깥이 후금군에 의해 봉쇄된 상황에서 명의 육군이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명이 조선을 지원하려 할 경우 천진(天津)이나 등래(登萊)에서 수군을 동원할 것이고, 명 수군은 분명 가도를 중간 거점으로 삼아 조선을 지원하거나 요동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이 후금의 판단이었다. ‘가도를 내버려 두라.‘는 후금의 압박 속에서도 조선은 끝내 가도에 대한 은밀한 지원을 멈추지 못했다. 명과의 ‘부자관계’를 차마 끊지 못한 데다, 유사시 명의 지원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거점’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 사정에 정통한 후금 조선은 가도에 대한 지원을 은밀하게 한다고 했지만 후금은 그 전말을 거의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 주된 이유는 조선 사람 가운데 후금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1632년 12월, 철산(鐵山)의 아전 이계립(李繼立)은 조선이 가도의 한인들에게 물자를 대주고 있다는 사실을 용골대에게 밀고했다. 후금 자체가 본래 첩보 활동에 뛰어난데다 청북 지역에 대한 조선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같은 사정은 함경도 쪽에서도 비슷했다. 조선의 북변 거주자들과 호인들 사이의 교통을 통해서도 조선 정보가 새 나가고 있었다. 누르하치가 요동을 장악하기 이전부터 두만강 부근에서는 번호(蕃胡)라 불리는 호인들과 조선인들의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번호들이 국경을 넘어와 조선인들을 납치해 가기도 했고, 그들 자신이 조선으로 귀순하기도 했다. 물론 강을 건너 여진 지역으로 도망가는 조선 사람들도 있었다. 누르하치가 두만강 유역의 번호들을 모두 평정한 뒤에도 양자의 접촉은 끊이지 않았다. 실제 1629년 11월의 ‘양경홍(梁景鴻) 역모’는 이 같은 접촉 배경에서 빚어진 사건이었다. 양경홍은 북인의 잔당으로 인조반정을 맞아 한옥(韓玉), 신상연(申尙淵), 이극규(李克揆), 정운백(鄭雲白) 등과 함께 경원(慶源)으로 귀양갔다. 양경홍 등은 현지에 살던 양사복(梁嗣福) 양계현(梁繼賢) 부자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이용하여 후금군을 끌어들여 모반을 시도했다고 한다. 양계현은 젊었을 때 포로가 되어 여진 지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물이었다. 공초(供招) 과정에서는 ‘정운백이 한윤(韓潤)에게 서신을 보내, 만약 오랑캐를 이끌고 오면 마땅히 앞장서 인도하고 투항하겠다.’고 했다는 진술이 나와 수사 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윤은 이괄(李适)과 함께 반란을 주도했던 한명련(韓明璉)의 아들로 당시 후금에 망명 중이었다. 우습구나 삼각산아 (笑矣三角山) 옛 임금은 지금 어디 있나 (舊主今安在) 지난번에 강도 만나 (頃者遇强盜) 강화도에 가 있다네 (往在江華島)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양경홍이 지었다는 시의 내용이다. 반정으로 쫓겨난 지 6년 이상이 지났지만 인조정권을 ‘강도’로 표현할 만큼 적개심이 여전히 높다.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지만, 조선 조정은 이 사건 이후 후금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함경도 주민들의 동향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후금은 실제로 평안도와 함경도 등지에 살던 불평 불만자들을 끌어들여 조선어 역관으로 활용했다. 양계현은 부친 양사복이 처형된 뒤에 후금으로 귀화하여 조선을 왕래하는 역관이 되었다. 양계현을 통해 조선의 민감한 내부 사정이 후금에 알려졌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1630년대 조선을 드나들면서 악명이 높았던 중남(仲男), 정명수(鄭命壽) 등도 비슷한 계기로 역관이 되었다. 후금은 이래저래 조선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후금, 명을 흉내내기 시작하다 명을 능멸할 정도로 힘이 커진데다 조선 사정까지 훤하게 알고 있었던 후금의 요구 수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1632년 9월, 용골대는 추신사(秋信使) 박난영(朴蘭英)을 만났을 때 홍타이지의 ‘불만’ 사항을 전달했다.‘조선은 명의 사신이 오면 모든 관원이 말에서 내려 영접하면서 왜 후금 사신에게는 말 위에서 읍(揖)만 하느냐?’는 힐문이었다. 이제 후금 사신도 명 사신과 동동한 수준으로 영접하라는 요구였다. 1632년 10월에 왔던 후금 사신 만월개(滿月介)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평양에 이르러, 조선이 후금에 보내는 예단(禮單)의 수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뒤 다시 명을 거론했다.‘명에는 봄가을의 사신말고도 성절사(聖節使)까지 보내면서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는 더 나아가 ‘명 사신들을 접대할 때는 금은으로 된 그릇을 쓰면서 후금 사신들에게는 사기 그릇을 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곧 이어 서울로 향하던 후금 사신 소도리(所道里) 일행은 봉황성(鳳凰城)에 이르러 ‘명사 수준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조선 국경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비변사는 ‘부자관계와 형제관계가 같을 수는 없다.’고 설득하는 한편, 만월개 일행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 어떻게든 명과 후금 사이에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1632년 무렵, 조선이 취한 대외정책은 일견 절묘했다. 명과 후금 모두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름대로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은 삼국 관계에서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이나 후금 어느 한쪽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조선은 곧바로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다.1632년 명에서 일어난 공유덕(孔有德)의 반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공유덕의 반란’ 때문에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다시 위기를 향해 치닫게 된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阿 에이즈 고아돕기 오토바이 여행

    영국의 윌리엄(사진 왼쪽) 왕자와 해리(오른쪽) 왕자가 아프리카 지역 1000마일(약 1610㎞)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자선 캠페인을 준비 중이라고 영국 일요신문 메일 온 선데이가 17일 전했다. 에이즈에 걸린 아프리카 레소토의 고아들을 돕기 위한 행사다. 군복무 중인 두 왕자는 동시에 휴가를 얻을 수 있는 6월쯤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해리의 여자친구 첼시의 집이 있는 레소토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왕자의 한 친구는 “아프리카 상황에 밝은 첼시가 두 사람의 여행을 조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두 왕자는 지난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오토바이로 이 대륙을 종단한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찰리 부어맨의 ‘롱 웨이 다운’ 여행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여행은 작전명 ‘ER+퀸’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작전처럼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두 왕자가 자선기금을 모으기보다 경호비용으로 국민 세금만 축낼 것이란 비난도 나오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아프리카 오지 여행자들이 자주 납치범들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왕자는 TV 방송 제작진은 물론 경호원 최소 6명 이상을 대동해 국민 세금 10만파운드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림 하다드 지음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아랍·중동 지역에서의 분쟁은 끊이지 않지만 그 실상은 온전하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몇몇이 죽거나 다쳤다는 등 희생자의 숫자만 나열된 채 현장의 아픔과 목소리 그리고 이것들을 있게 한 원인은 번번이 묻혀 버리곤 한다.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는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을 실상 그대로 세상에 전한 기록이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슬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하고 8명을 살해한 행위를 빌미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습,33일간 레바논인 5000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고 인구의 25%를 이재민으로 만든 전쟁의 생생하고 입체적인 증언이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해 일간지 ‘데일리스타’ 기자로 일한 저자가 쏟아내는 증언들은 절규에 가깝다. 60년간 계속되는 중동분쟁을 관통하는 정치, 사회, 종교적 요소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영혼을 얼마나 무섭게 파괴해 가는지를 현지인들의 목소리에 얹어 실감나게 전한다. 살면서 세 번의 이스라엘 침공과 내전을 겪어야 했던 체험을 기자가 아닌, 두 아이의 어머니 입장에서 풀어낸 것이 큰 특징.“‘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폭탄이 우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열세살 난 생존자 누르 하셈이 말했다. 살아난 그녀의 어머니는 누르의 세 남동생을 찾으러 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주변의 누구도 차마 누르에게 말하지 못했다. 남동생 셋이 죽었다고….” 저자 자신의 헤즈볼라에 대한 감정 변화를 통해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아랍의 증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점도 흥미롭다.“헤즈볼라는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이런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거지? 도대체 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했냐고. 레바논 상황이 막 다시 좋아지려는 이때에 왜? 왜? 왜?”“이스라엘의 공격은 헤즈볼라와 상관없다. 그것은 순수한 증오일 뿐이다. 순수한 복수심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왔다.” 어느 종파와 정치 세력에 치우치지 않은 채 레바논에 고통을 가져다준 시오니스트, 혹은 기독교도 레바논인들에게 원망을 사는 헤즈볼라에게도 마음의 문을 여는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내 소중한 아이들아,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고 믿자. 잊지 마라,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 말이다.” 1만 5000원.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탈레반 前사령관 만수르 체포

    지난해 7월19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23명의 납치사건 주모자인 만수르 다둘라 탈레반 전 최고사령관이 파키스탄에서 마침내 체포됐다. 이에 따라 한국인 인질 2명의 목숨을 빼앗고 남은 21명을 44일 동안 억류했던 희대의 인질극 전모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파키스탄 보안 당국은 11일 만수르 다둘라가 최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퀘타시의 그왈 이스마일카이 마을에서 보안군과의 총격전 끝에 다른 반군 5명과 함께 붙잡혔다고 밝혔다고 AP,AFP,BBC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만수르는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AP는 한때 만수르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며 이후 부상이 심각해 위독하다고 전했다. 발루치스탄주의 경찰서장 사우드 고하르는 이날 AFP에 “만수르가 마을의 한 가옥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 가옥을 급습한 결과 만수르와 함께 다른 5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미군의 공습 당시 숨진 탈레반 사령관 물라 다둘라의 동생인 만수르는 아프간 정부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레반에 의해 납치됐던 이탈리아 기자와 맞교환돼 지난해 5월 풀려났다. 그후 형에 이어 총사령관직에 오른 그는 아프간 정부와 나토군의 공격이 가장 극심한 헬만드주와 칸다하르주 등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탈레반의 강경 투쟁을 주도해왔다. 특히 만수르는 아프간 정부의 감옥에 수감돼 있는 탈레반 조직원들과 맞교환을 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외국인들은 무차별적으로 납치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한국인 납치극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는 당시 아프간과 한국정부는 물론 적신월사를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이고 탈레반의 건재를 온 세상에 과시함으로써 탈레반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하지만 탈레반은 지난해 12월 만수르를 내쫓았다. 탈레반 최고지도자인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탈레반의 내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며 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만수르는 음모라고 주장하며 불복 의사를 밝혀 탈레반 지도부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내기 바둑서 3억원 잃어…” 감금·고문 혐의 납치범 구속

    서울 중부경찰서는 5일 내기 바둑으로 3억원을 잃자 돈을 뜯어내기 위해 같은 기원에 다니는 건설업자를 납치·감금하고 고문까지 가한 이모(49)씨를 강도상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5시쯤 경기 수원시 H기원에서 건설업자 최모(57)씨를 차에 태워 납치하고 현금 67만원과 신용카드 2개 등을 빼앗은 뒤 6일 동안 모텔에 감금한 채 “3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분당 여중생 납치범 3명 검거

    경기 분당에서 여중생을 납치, 몸값 1억원을 요구한 일당 3명이 사건 발생 20여시간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여중생 A(14·중2)양은 무사히 구출됐다. 분당경찰서는 5일 오후 1시53분쯤 부천시 원미구 상동 테크노파크 지하주차장에서 A양 납치사건의 용의자 함모(30)씨를 검거, 인질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찰은 함씨가 서울XX허 XXXX호 흰색 로체승용차를 몰고 테크노파크 인근 도로에서 갑자기 U턴을 하며 달아나자 용의 차량임을 확인, 추격전 끝에 테크노파크 지하 주차장에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함씨를 검거했다. A양은 로체승용차에 타고 있었으며 외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씨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돈이 필요했고 인터넷 관련사이트에서 대구에 사는 공범 권씨 등을 만나 범행했다.”고 말했다. 다른 공범은 게임비와 생활비 마련을 범행동기로 진술했다. A양은 지난 4일 오후 7시쯤 분당구 B중학교 앞길에서 학원으로 가다 차량으로 납치됐다. 범인들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으로 이동한 뒤 A양의 휴대전화를 이용,A양의 아버지에게 1억원을 요구했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미스·한국반공연맹」송해영(宋海暎)양-5분데이트(133)

    「미스·한국반공연맹」송해영(宋海暎)양-5분데이트(133)

    매끈한 피부에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송(해영양·25). 한국반공연맹 총무부「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는 상냥하고 친절한 아가씨. 66년에 덕성여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했다니까 벌써 직장생활 5년이 넘는「베테랑」이다. 성격이 명랑하고 온순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물론 직장 동료들에게도 대단한 인기. 일요일과 수요일엔 빼놓지 않고 교회엘 나가는 독실한「크리스천」이다. 「보이·프렌드」는 아직 없고 직장 일이 끝나면 집으로 직행하는 것이 거의 고정된 일과. 집에선 주로 책읽기·음악듣기로 시간을 보낸다. 책은 대개 동서고금의 명작소설과 그때 그때 인기있는「베스트·셀러」들을 읽고 있고 음악은 조용한「클래식」을 좋아한다고. 『결혼은 내년 봄쯤 하고 싶어요. 성실하고 이해심 깉은 남성이면 좋겠어요』 저녁에 직장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때면 어쩐지 허전해져서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솔직한 고백. 아버지는 6·25때 납치 되셨고, 집에는 홀어머니 김진(金鎭·49)여사와 오빠 한분 그리고 남동생등 모두 네 식구. 그녀의 타자 솜씨는 1분동안 1백40자를 거뜬히 쳐 내는 정도. [선데이서울 71년 5월 23일호 제4권 20호 통권 제 137호]
  • [부고] 팔레스타인 초강경 지도자 하바시 사망

    팔레스타인 초강경 지도자로 유명한 인민해방전선(PFLP)의 창설자 게오르게 하바시(81)가 숨졌다. AP통신과 알 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하바시는 26일(현지시간) 오후 8시15분쯤 망명 중이던 요르단 암만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3일간의 애도기간을 갖는다고 선포했다. 현재 이스라엘 땅이 된 팔레스타인 마을 리다에서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하바시는 의사 겸 시인에서 저항운동가로 변신,68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거점으로 PFLP를 창설한 인물이다. 특히 그의 주도로 70년 9월 서방 여객기 3대를 동시에 공중납치, 폭파한 ‘검은 9월’ 테러는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으로 남았다. 그는 중동평화 협상을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 전 자치정부 수반과 오랜 라이벌이었다. 이런 전력 덕분에 하바시는 이스라엘에서는 악질 테러리스트로, 팔레스타인에서는 독립운동가로 통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보성 연쇄살인 어부 사형 구형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24일 전남 보성에서 여행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어부 오모(71)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오씨의 결심공판에서 “죄질이 극히 불량한 데다 증거를 은폐하려 했고,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오씨가 자신이 살해한 여대생 소유 디지털 카메라가 증거로 제출되고 오씨 소유의 선박 엔진소리가 납치살해 피의자의 119신고 당시 녹음기록에서 발견됐는데도 범죄사실을 계속 축소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씨는 지난해 추석연휴기간인 9월25일 조모씨 등 여성 2명을 자신의 어선에 태워 바다로 나간 뒤 살해한 혐의로 같은 달 29일 경찰에 구속됐다.순천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열린세상] ‘대일외교’ 새 정부에 거는 기대/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대일외교’ 새 정부에 거는 기대/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냉각상태에 놓여있던 한·일관계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이 당선인은 차기정부의 대외정책의 방향으로 한·미동맹의 강화와 함께 일본과의 실용적인 차원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자민당의 최고 실세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데 이어 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특사단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해 양국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정지 작업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내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일관계의 극적인 개선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의 잇따른 돌출로 난기류 속에 휩싸여 있다.2005년 봄 이래 독도 영유권,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하였고 정상 간 셔틀외교마저도 중단되었다.2006년 10월 아베 정권이 출범한 후 다소 관계복원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기도 했으나 위안부의 강제성 논란으로 감정 대립이 재차 표면화했다.2007년 가을 근린외교 중시를 표방하는 후쿠다 총리가 등장한 이래 한·일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으나 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는 여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후쿠다 정권 이후 중·일관계는 오랜 교착상태를 깨고 급속한 해빙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중·일협력의 시대가 개막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냉전체제 종결 이후 한·일관계는, 특히 정치 안보적인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변수들의 출현으로 인해 구조적인 이완 현상을 겪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일관계는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커지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탈냉전으로 말미암아 공산권에 대항하는 자유진영 내부의 결속 메커니즘은 더 이상 한·일관계에서 통용되기 어렵게 되었다. 급부상하고 있는 대국 중국의 존재는 한·일 양국으로 하여금 대중 관계를 중시하는 대신 상호 간의 외교적 비중을 상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북한 문제를 접근하는 한·일 간의 근본적인 시각차와 더불어 핵, 미사일, 납치 문제를 둘러싼 대북 정책의 온도 차이도 한·일관계를 이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이래 한국의 정치사회 민주화는 당당하고도 강한 대일 외교를 요구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수 색채가 강화되고 있는 일본은 국력에 걸맞은 ‘주장하는 외교’를 추구하고 있어 양국이 대립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증대했다. 이러한 구조적 배경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빈발하는 역사마찰과 그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양국관계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은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빈발하는 역사마찰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상호협력을 통해 상생과 공영의 길을 추구할 여지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역사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도출할 묘수는 당분간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묵은 과거사 마찰격화로 실용적인 국익 추구 및 대일정책 공조가 도외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향후 대일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예방외교와 신중한 접근을 통해 역사문제의 쟁점화를 최소화하는 한편 경제, 문화, 대북문제 등 실질적인 차원의 굳건한 대일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과 더불어 대일 공조체제를 하루빨리 복원시키고 정체상황에 빠져있는 한·일 FTA 교섭 타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일정상 간 셔틀외교를 정상화하고 정치지도자 간의 의사소통의 통로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 긴요하다. 양국 지도자 간의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긴밀한 전략 대화의 강화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 대일 외교의 첩경이 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5) 후금,조선을 떠보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5) 후금,조선을 떠보다

    후금군이 침략해 오고, 사신을 보내 배를 빌려달라고 요구하자 조선의 위기 의식은 높아졌다. 조정은 김시양(金時讓)을 도원수로, 이완(李浣)을 평안병사로 임명하여 서북으로 내려보내고 전국에 징병령을 내렸다. 하지만 후금과 맞설 수 없는 처지에서 계속 강경책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선은 다시 기미책(羈策:오랑캐를 다독이는 정책)으로 돌아갔다.1631년(인조 9) 7월, 조선의 ‘태도’와 ‘능력’을 확인한 후금은 서쪽으로 명 원정길에 올랐다. ●때 아닌 斥和·主和 논쟁 1631년 6월13일, 배를 빌려줄 수 없다는 통고에 불만을 품고 호차 중남 등이 뛰쳐나간 직후 입직 포수(砲手) 이덕탁(李德卓)이 승정원에 나타났다. 그는 ‘오랑캐 사신들은 우리의 허실을 엿보기 위해 왔으니 그냥 돌려보내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며 빨리 그들을 억류하고 싸울 준비를 하라고 강조했다. 18일에는 후금군의 침략 소식에 놀라 이원익이 조정으로 달려왔다. 이원익은 당시 이미 은퇴한 데다 여든다섯의 고령이었다. 그는 인조에게, 하삼도의 군병을 동원하여 민심을 소란케 하지 말고 어영군(御營軍)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정병을 평안도로 내려보내라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도 선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후금군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이덕탁의 건의를 계기로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지평 심연(沈演)은 식량을 주지도, 회답사(回答使)를 보내지도 말고 후금을 공격할 계책을 의논하라고 촉구했다. 사헌부의 다른 신료들도 심연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들은 ‘정묘호란 이후 오랑캐와 서로 왕래한 것은 화호(和好)를 굳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지금 그들이 이유 없이 쳐들어와 맹약을 어겼다.’고 지적하고, 더 이상 미봉책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홍문관 신료들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오랑캐가 부모의 나라를 짓밟고 가도를 공격하려 한다면 갓을 쓰고서라도 달려가 구원해야 한다.’며 강약과 승패는 따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부 신료들은 ‘조정이 아예 안주 이북의 방어를 포기했다.’고 통탄하고 군사를 총동원하여 싸우자고 주장했다. 삼사(三司) 신료들은 이참에 후금과의 우호관계를 끊고 척화(斥和)의 길로 나아가라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비변사(備邊司)의 입장은 달랐다. 비변사는 ‘후금과의 화의(和議)를 언제까지나 믿을 수는 없지만, 싸우려 해도 병마가 모이지 않고 군량도 제대로 댈 수 없는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후금을 다독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조는 비변사의 의견에 동조하여 박로와 오신남(吳信男)을 회답사로 임명하여 심양으로 보냈다. 화친을 계속 유지하려고 결심한 것이다. 삼사 관원들은 굴욕적인 사신 파견을 당장 중지하라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조, 훗날 대비 강화도 정비 ‘올인´ 조선이 기존의 화친 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자 후금군은 철수 길에 올랐다. 당시 후금군은 조선군이 쉽게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1629년과 1630년 이른바 기사전역(己巳戰役) 당시 만리장성의 외곽을 넘어 북경을 비롯한 명의 심장부를 유린했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잘 훈련된 병력이 많은 것은 물론, 실전 경험까지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다. 6월28일, 후금군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보고가 조정으로 전해졌다. 철수 소식을 들은 인조는 신료들에게 강화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 인조는 후금군이 쳐들어 왔던 직후 강화도로 피란할 계획을 세웠었다. 또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삼남에 독운어사(督運御史)를 파견했다. 혹시라도 강화도의 군량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미리 양곡 운반을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후금군이 물러가자 본격적으로 강화도를 재정비하려는 깜냥이었다. 인조는 강화도에 10만 군사가 먹을 수 있는 양곡을 비축하라고 지시했다. 강화 읍성(邑城)과 갑곶성(甲串城)을 개축하고, 화기와 각종 장비들을 미리 옮겨 놓으라고 했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방물(方物)을 목면으로 바꿔 강화로 수송한 뒤, 나중에 군량 마련을 위한 자금으로 쓰려는 계획도 세웠다. 또 강화도 연안의 병력 주둔지에 큰 창고들을 지을 것을 주문했다. 측근들을 강화도로 보내 방어 상태와 시설 등을 수시로 점검했다. 인조가 강화도 정비에 ‘올인’ 하는 자세를 보이자 우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우선 조정에서 방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청북(淸北)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높았다.1631년 7월, 영유현령(永柔縣令) 정기수(鄭麒壽)가 상소했다. 그는 ‘청북은 포기할 수 없는 조종(祖宗)의 강토인데 조정에서는 청북을 지키려 하기는커녕 사람들을 지역에서 빼내려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청북 사람들은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에게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모두 싸우다가 죽으려는 결의가 넘친다.’며 조정의 지원을 촉구했다. 우의정 이정구는 다른 측면에서 인조의 ‘강화도 정비론’에 반대했다. 그는 서울이 팔도의 근원이며, 근원이 흔들리면 민심이 무너져 변경이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하고, 먼저 서울 서쪽의 방어 태세를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이정구는 또한 강화도는 들어가려고 원하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요새로 정비하려면 너무 많은 비용 때문에 불가능하고, 섣불리 강화도 정비에만 몰두하면 원망이 일어나 민심을 동요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강화도 주변의 연도(沿島) 방어에도 신경 쓸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인조는 이정구 등의 경고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인조뿐 아니라 당시 많은 관인들이 ‘후금군은 수전(水戰)에 약하기 때문에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도는 안전하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1636년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 인조는 강화도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후금 수군은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강화도를 함락시켰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집착할 때,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후금군, 대릉하성 공략 나서 조선 조정이 위기의식 속에서 강화도를 정비하는 데 골몰하고 있던 1631년 7월, 후금은 다시 명에 대한 원정에 나섰다. 이번 원정의 공격 목표는 대릉하성(大凌河城)과 금주(錦州) 등지였다. 모두 영원성과 산해관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명군의 전초 기지였다. 홍타이지는 원정 시작에 앞서 소규모 정예 병력을 수시로 대릉하 주변으로 보냈다. 명의 장졸들이나 민간인들을 납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단순히 ‘인간 사냥’이 아니라 명군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정찰의 일환이었다. 당시 후금의 정탐(偵探) 능력은 탁월했다. 이미 건주여진 시절부터 명 관인들은 누르하치의 간첩 활동과 정보 수집 능력에 경계심을 드러낸 바 있었다. 명 관인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건주여진인은 간첩 활동에 가장 뛰어나다. 내응하는 자들 때문에 견고한 성도 앉아서 무너지고 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홍타이지는 ‘인간 사냥’을 통해 명의 총병(總兵) 조대수(祖大壽) 등이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여 산해관 바깥에 대릉하성을 비롯한 여덟 개의 성을 수축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후금군이 공격해 오기 전에 공사를 마치려고 밤낮으로 독려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홍타이지는 원정을 결심하고, 후금에 귀순한 몽골의 여러 패륵(貝勒)들에게도 동참할 것을 명령했다. 마침내 8월5일, 홍타이지의 대군은 대릉하 부근까지 전진했다. 대릉하 원정에 앞서 조선에 병력을 보내 위협하고, 배를 빌려달라고 한 것은 사전 정지작업이었던 셈이다. 받아들이기 곤란한 요구를 내세워 조선의 반응과 능력을 시험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서정(西征)하는 동안 조선이 배후에서 공격해 올 우려가 없다는 확신이 생기자 비로소 군대를 움직였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씨줄날줄] 포카혼타스/황성기 논설위원

    1995년 미국 월트 디즈니사의 ‘포카혼타스’는 17세기 초 영국의 아메리카 개척시대에 백인과 토착민 인디언과의 사랑을 다룬 장편 만화영화이다. 말이 개척이지 인디언 입장에선 개척자는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빼앗으려 불쑥 깃발을 꽂은 침략자나 다름없다. 영국인 정착촌을 세우는 데 간여했던 존 스미스와 접촉하는 인디언 대표 격이 바로 알공킨 부족의 추장 딸 포카혼타스이다. 그녀는 영국군에게 납치되고 우여곡절 끝에 영국인과 결혼해 아들까지 낳고는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22세에 사망한다. 영화는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대립하는 침략자와 토착민 사이에 미모의 포카혼타스를 내세워 평화와 화해의 가교로 활용한다. 공동감독인 마이클 가브리엘과 에릭 골드버그는 영화 속 포카혼타스를 늘씬한 키, 길게 늘어뜨린 까만 생머리에 찢어진 눈, 납작한 코를 가진 동양적 외모의 소유자로 그렸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아시아, 인디언 계열의 미인상이 포카혼타스로 집약됐는지는 모르지만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동양계 여배우들의 모습은 포카혼타스와 비슷하다. 한국계로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입양아로 커플이 된 순이나,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의 부인 알렉스 킴도 포카혼타스와 닮았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포드 슈퍼모델 오브 더 월드’에서 동양계로는 첫 우승한 강승현(21·동덕여대 모델학과 3년)씨도 포카혼타스 같은 외모를 우승의 1등공신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포드 대회는 엘리트 대회와 함께 세계 양대 에이전시가 개최하는 세계 초일류 모델대회다. 브룩 실즈, 킴 배신저, 나오미 캠벨을 배출했다. 슈퍼모델로 뽑히려면 체형, 얼굴, 워킹 3박자가 세계적 트렌드에 맞아야 하는데 강씨는 10대 중반 같은 동안(童顔), 서구화한 체형의 동양인을 선호하는 세계 모델계의 조류에 적합했다고 한다. 한국에선 일자리가 없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까 걱정하다 마지막으로 두드린 문이 포드 대회였다는 강씨. 세계와 한국의 눈높이에 그만큼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녀의 발탁은 한국 시장을 넓히려는 세계 명품 업계가 한국인 모델에 주목했다는 의미도 있어 마냥 좋아할 뉴스만도 아닌 듯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토요영화] 끝없는 모험

    ●끝없는 모험(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 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 하지만 피고인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그들은 범죄자로 이곳에 섰지만, 재판 도중 낙서를 즐기는 등 계속 딴짓거리에만 열중한다. 이 와중에 그들의 과거사가 플래시백으로 전개된다. 리노 마사로(리노 벤추라)와 자크(자크 브렐) 등이 무리지어 다니는 5인조 갱단은 정치적 범죄단으로 변모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명가수 조니 할리 데이와 라틴 아메리카의 한 대사를 납치한다. 이후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을 잡으려는 무리와 숨바꼭질 같은 게임을 벌인다. 그들을 추적하는 이들은 게릴라단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까지 가세해 더욱 복잡한 양상이 된다. 잘도 도망쳐 다니던 갱단은 결국은 게릴라단에 납치되고야 만다. 어쩌다 빠져나왔다가 또다시 잡힌 이들은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은 프렌치 누아르 장르에 재치와 비틀기를 가미해 새로운 느낌의 코미디 영화 ‘끝없는 모험’(1972)을 만들어냈다. 그저 멋진 생을 꿈꾸던 갱들이 뜻밖의 걸림돌들을 맞닥뜨리면서 벌이는 소동은 우스꽝스럽고도 이채롭다. 그들의 낙천적인 면모들이 더러 황당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바탕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13세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를 찍은 것으로 유명한 ‘신동’ 감독 클로드 를루슈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한국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1966년 영화 ‘남과 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사상 최연소 수상했고, 같은 작품으로 이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의 주목을 받은 감독은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1995년 ‘레미제라블’,2007년 ‘역의 로망’ 등을 선보이며 변함없이 건재함을 입증해왔다.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영상앨범 산(KBS1 밤 12시25분) 북섬과 남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족 언어로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 불린다. 뉴질랜드 남섬의 관광지 중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밀포드트랙. 그러나 이에 버금가는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는 산이 있다. 소리없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 블랙피크로 향한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BC 146년 로마가 마침내 오랜 숙적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공화정을 깨부수고 승리를 쟁취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광기로 인해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는 네로 황제를 거쳐 로마제국 최대의 반란인 유대인 봉기, 기독교를 도입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중소기업UP 한국경제UP(YTN 오전 10시40분)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중소기업. 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세계가 인정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술과 매출의 발전은 물론 깨끗한 작업환경과 편안한 복지로 일할 맛 나는 일터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 그 현장을 찾아간다.   ●그래도 좋아(MBC 오전 7시50분) 효은은 산부인과에서 임신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는다. 명지는 갑자기 나타난 준배에게 가진 돈을 몽땅 쥐여주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말자며 도망치듯 돌아선다. 그러나 준배는 그런 명지를 비웃으며 변함없이 그녀 주위를 맴돈다. 한편 석빈은 윤사장에게 한강제화로 옮기기로 결심한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오후 7시20분) 경표가 납치됐을 때 쓰인 주사약이 백회장 납치에도 쓰였다는 걸 알게 된 영림은 준철에게 백회장을 지켰어야 한다고 말한다. 준철은 짚히는 사람을 물어보지만 영림은 말하지 않는다. 한편 병실에서 경표는 은애에게 백회장이 영림만을 기억하는 건 주사약 때문이라며 백회장을 원망 말라고 조언한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KBS2 밤 11시5분) 남편 월급만으론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끌어 쓰더라도 지연은 딸 예나의 뒷바라지만큼은 최고로 해주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피겨스케이트를 타다 다친 예나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해 보험금을 받게 되고, 며칠 후 지연도 음주운전 차에 치여 보상을 받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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