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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학규, 日총리에 “평창 지원해달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일본 방문 이틀째인 28일 간 나오토 총리 등 정계 지도자들과 잇따라 만나 한·일 관계 발전 방안을 밝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당부했다. 손 대표는 간 총리와 만나 “지난해 발표한 담화문과 조선왕실의궤 반환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밝혔다. 이어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원전 안전 대책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면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일본 국민의 저력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남북 문제에 대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직분을 다할 수 있게 지원하지만 인권과 핵, 미사일 개발 문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고 표현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민생회담에 이어 대표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에서 외교적 입장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은 차기 대선을 향한 입지 굳히기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간 총리는 담화문 평가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북핵·납치 문제 해결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요청한 데 대해서는 “일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게 말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손 대표는 전날 도쿄 한 식당에서 수행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청와대 회담에서 당장의 성과는 없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회담 무용론을 반박했다. 한편 손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28일 일본 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북한이 모든 잘못을 사죄하고 대화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이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100억대 부부 살해극’ 아들이 방조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100억원대 자산가 남편 살해사건을 경찰로부터 송치받아 수사한 끝에 ‘아버지의 살해와 어머니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아들 김모(35)씨를 구속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4월 16일 밤 어머니 A(58)씨가 조카사위 장모(32)씨 일행을 시켜 가출한 아버지(58)를 집으로 끌고 와 살해한 뒤 어머니가 자살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서 김씨는 “어머니의 살해 계획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변명했으나 검찰 조사 결과 아버지의 재산목록과 가치를 미리 확인하고 상속 재산을 엑셀 파일로 저장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어머니와 함께 범행을 준비한 뒤 자신은 사건 당일 범행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은 또 이번 사건이 알려진 것처럼 ‘A씨가 가정폭력을 못 이겨 남편을 납치 감금해 살해한 뒤 자살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된 A씨가 남편에 대한 원한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살인방조 혐의로 구속한 조카사위 장씨 등 3명은 A씨의 거짓말만 믿고 고모부를 강제로 데려온 것뿐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아들 김씨는 아버지가 살해되고 어머니가 자살할 것을 알면서도 100억원대 재산에 눈이 멀어 패륜적 범행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만취한 엄마가 잃어버린 아기, 밤새 지킨 충견

    만취한 엄마가 잃어버린 아기, 밤새 지킨 충견

    엄마가 술에 취해 잃어버린 아기를 밤새 개가 지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철없는 엄마는 러시아 사라토브에 사는 올가(22)라는 여성. 올가는 지난 금요일(현지시간) 생후 3달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로트와일러 종인 라다와 함께 인근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한가로운 산책도 잠깐. 공원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올가는 술한잔을 하게됐고 아기와 개를 공원에 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올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올가의 엄마는 “올가가 아기를 놓고 온 것을 알고 공포에 질렸다.” 며 “아기가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 납치해 갔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급하게 공원을 찾은 올가. 그러나 아기는 원래 두고 온 장소에 그대로 있었고 그 옆에는 자신의 개 라다가 호위하듯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다소 젖은 상태였으나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고 날씨가 따뜻해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인근 주민은 “개가 낯선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밤새 지키고 있었다.” 며 “따뜻한 날씨와 개의 보살핌이 아기의 목숨을 구했다.”고 밝혔다.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6·25 전쟁 61주년] “남편 납북 61년… 전화벨 울리면 그이 왔을까 가슴 떨려”

    [6·25 전쟁 61주년] “남편 납북 61년… 전화벨 울리면 그이 왔을까 가슴 떨려”

    “그날 몸을 던져서라도 나도 함께 데려가라고 매달렸어야 하는 건데…. 내무서 앞에 끌려나온 남편 모습을 보니 정신이 핑 돌면서 가슴이 울렁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 24일 서울 청량리동에서 만난 김항태(83) 할머니는 말문을 열자마자 흐느꼈다. 주름이 조글조글한 손으로 가슴팍을 연신 내리쳤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듯 보였다. “그때 내가 임신 1개월째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 남편은 우리 딸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갔으니…. 딸은 남편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생명줄이야.” 결혼 1년 5개월 만에 스물두 살의 새댁은 남편을 북으로 떠나보냈다. 할머니의 남편 김재봉(91) 할아버지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말 강화군 교동도의 신혼집에서 인민군과 마을 좌익 청년들에게 잡혀 북한 황해도로 끌려갔다.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 전쟁통에 홀로 낳은 딸이 올해로 환갑이 됐다. 4년 전부터 할머니를 괴롭히는 고관절 디스크의 고통은 가슴을 까맣게 태운 그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그냥 끊어지는 전화가 오면 남편이 나를 찾아 전화한 게 아닐까 싶어. 그런 전화가 올 때면 가슴이 떨려.” 북녘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올해로 아흔 살이 넘었을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아직 체념하지 않았다. ●서울 수복 직후 남편과 생이별 할머니는 남편과 헤어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충격으로 날짜 감각을 잊은 채 멍하니 보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할머니는 국군이 서울을 되찾은 지 며칠 뒤라고 기억했다(1950년 9월 28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했다).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서울도 되찾아 조만간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북으로 간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쾅, 쾅쾅’ 그날 새벽녘 귓전을 울리는 굉음에 놀라 잠에서 깼다. ‘북한군이 다시 내려온 건 아닐까….’ 정신을 차려 보니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집 대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미처 몸을 숨길 새도 없이 거센 발길질에 대문이 부서졌다. 십수명의 정체 모를 청년들이 들이닥치자 무서움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들은 내무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반동 세력이니 내무서로 함께 가야겠다.’면서 다짜고짜 남편의 팔을 붙들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남편의 가슴팍에 내무서원은 기다란 총부리를 들이댔다. 남편은 그렇게 내무서로 끌려갔다.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정신을 차려 보니 희뿌옇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이튿날 정신을 차리고 내무서 앞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포승줄에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다른 마을 청년들과 함께 매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방안 끝에서 끝을 가리키며) “그때 남편이랑 같이 붙들려 간 사람들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될 거야. 두 줄로 섰으니 한 스무명 정도….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죄 끌고 간 거지.” 내무서원들은 남편과 청년들을 교동도 항구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울먹이며 남편의 뒤를 따라갔지만 함께 배에 오를 수는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 순간이 진짜로 마지막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남편이 탄 배는 건너편 황해도 연백군이 바라다보이는 교동도 항구를 떠났다. 배를 타고 30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를 건너가는 남편의 뒷모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김 할머니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소식은 남편이 끌려간 지 이틀 만에 보낸 작은 쪽지 한 장이었다. 함께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면 서기와 이웃 청년 2명이 풀려 나오면서 전해준 것이었다. 손바닥 반만 한 작은 종이엔 ‘내 걱정하지 마세요. 배 타고 건너와 잘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 김재봉’이라고 쓰여 있었다. 단정하게 또박또박 적힌 이 세 문장이 60년이 넘도록 김 할머니 가슴에 박혀 있다. 조심스레 쪽지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작은 종이 쪼가리, 귀퉁이가 다 닳도록 만지고 보면서 35년을 간직했는데, 80년대 중반에 이사하다 모두 태워버렸어. 그때는 ‘어차피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인데 갖고 있은들 뭐하나’ 이런 심정이었지.” ●쪽지 35년 간직하다가 불 태워 할머니가 여전히 잊지 못하는 남편 김 할아버지는 서울농고를 졸업하고 교동도 금융조합(현재의 농협) 서기로 입사한, 똑똑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사랑방에 둘러앉아 시국 토론도 하는 열혈 청년이었다. 전쟁 전에는 뜻 맞는 마을 청년들과 청년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념 대립이 팽팽하던 전쟁 직전, 남편은 좌익 세력의 표적이 됐다. 공산당이 득세한 교동도에서 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원 가입도 거부했다. 할머니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동네 빨갱이들이 명부를 들고 다니면서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으라고 했는데 그게 공산당 가입 명부였다.”면서 “교동도에는 빨갱이들이 많았는데, 그게 다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공산당에 넘어갔던 탓”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자상함은 한도 없었다. “이 양반은 이렇게 내 가슴을 아프게 하려고 그랬는지 그렇게도 별났다. ‘김치도 맛있다, 빨래도 잘 넌다’ 하면서 항상 칭찬해줬다. 무거운 것도 하나 못 들게 했다. (주먹 쥔 손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탕탕 내리치면서) 그런 말을 바로 엊그제 한 것 같고, 아직도 생생한데….” 할머니는 또다시 한참을 울었다. 남편이 북으로 간 뒤에도 김 할머니는 교동도를 떠나지 못했다.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농사일로는 커 가는 딸과 생활하기가 벅찼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딸에게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딸이 10살이 되던 1961년 서울로 왔다. 외삼촌이 살고 있던 답십리에 방을 구했다. 다른 환경에서도 남편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딸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이 조용해지면 방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남편과 함께 자식 기르는 재미로 살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았으니…. 죽어야 잊지 그전엔 못 잊어.” 80년대 중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자 남편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납북자는 대상이 아니었다. 북한에서 납북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북에서 저렇게 뻗대니 어떻게 햐. 절대 용서가 안 돼.” 할머니는 남편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을 저몄다. 인고의 세월은 끝이 없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방문 상봉이 합의되자 김 할머니는 다시 가슴이 뛰었다. 불편한 다리로 이북5도청에 마련된 이산가족 민원 창구를 찾았다. “교동도 지도를 가져가 여기서부터 저기로 내 남편이 끌려갔다고 그렇게 설명을 했는데…. 내 절절한 심정을 이해나 해줄는지. 못 만나게 할 거면 살아 있는지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北서 납북자 인정 안 해줘 분통 “몇 년 전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편을 꼭 찾아주겠다며 걱정 말라는 서신도 보내왔는데 결국 허사였어. 내 남편은 납치돼 간 건데 정부에서 책임지고 찾아줘야 해.”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결기가 느껴졌다. “60년 동안 남편이 딱 한 번 내 꿈에 나온 적이 있어. 교동도 안방 아랫목에 앉아 내 이름을 부르기에 화들짝 놀라 깼는데 꿈이지 뭐야. 꿈인 걸 안 순간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뒤로 꿈에도 한 번 안 나오니 야속한 사람이지. 내 마음에는 그 사람의 사랑이 불에 넣어도 안 탈 거 같고 물에 넣어도 안 떠내려갈 거 같고 그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 가슴을 후비는 탓이리라. 김 할머니 눈가에 다시 이슬이 맺혔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北 교화소 한끼에 밥 2~3숟가락”

    “北 교화소 한끼에 밥 2~3숟가락”

    지난 3월 문을 연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센터에 현재까지 23건의 북한 인권 침해 관련 진정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21일 북한정치범수용소 피해자와 KAL기 납치 등 납북 피해자, 교화소 등 구금시설 고문 피해자, 이산가족 등 718명이 개소 이후 23건의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과 관련한 상담 요청도 100여건에 달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진정을 낸 신고인과 참고인 등을 통해 객관적인 사례를 수집 중”이라면서 “앞으로 국제사회와 공조 방안을 마련하고 정책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센터 개소 100일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에도 10여명의 탈북자들이 센터를 찾아 한국의 교도소와 같은 북한 내 교화소의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해달라며 진정을 냈다. 북한인권침해피해자모임 소속인 이들은 자신들이 복역했던 함경북도 전거리 교화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폭로했다. 이들은 “전거리교화소는 끔찍한 노동과 굶주림으로 가득찬 ‘인간 생지옥’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침해피해자모임에 따르면 교화소 내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수감자들은 대부분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한끼에 2~3 숟가락 수준인 30g의 밥을 제공받았다. 또 교화소 관리자들은 수감자들끼리 서로의 생활을 감시해 비판하게 하는 방법으로 수감자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2009년 탈북한 김광일(43)씨는 “교화소를 나온 지 5년이 넘었지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생활 때문에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면서 “원래 키 175㎝에 72㎏이었던 체격이 교화소를 나올 때는 영양실조에 걸려 45㎏에도 못 미쳤다.”고 주장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美·日 “北도발 저지·비핵화 협력”

    미국과 일본은 21일 북한의 도발 저지와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 등을 양국의 안전보장 ‘공통전략목표’로 상정하고 이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최근 논란이 된 주일 미군 후텐마 비행장을 오는 2014년까지 이전키로 한 시한을 공식 폐기하고 이전 시기를 연기하기로 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일본 마쓰모토 다케아키 외상,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이날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 회담)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은 우선 공통전략목표와 관련, 일본의 안보 확보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 및 안정 증진, 미·일 양국의 비상상황 대응능력 향상 등에 이어 한반도 문제를 중요 정책 협력사안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도발 저지와 함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비롯한 북핵 문제에 대해 6자회담 및 비가역적인 절차를 통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북한의 비확산, 탄도미사일, 각종 불법행위와 일본인 납치 등 인도적 사안 등과 관련한 문제 해결, 유엔 안보리 결의 및 6자회담 합의문의 완전한 이행과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자살폭탄테러에 이용될 뻔한 9세 소녀 극적 탈출

    자살폭탄테러에 강제 투입될 뻔한 9세 파키스탄 소녀가 극적으로 탈출해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AP통신 등 해외언론이 20일 보도했다.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 도망친 소하나 자바이드(9)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집 근처인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북서브의 로워디르 지역으로 강제 이송됐다. 당시 소녀가 탄 차에는 남자 2명과 여자 2명이 앉아있었으며, 로워디르에 도착하자마자 폭탄이 달린 조끼를 강제로 입히려 했다. 자바이드는 “학교에 가는 길에 여자 두명이 다가와 강제로 차에 태웠다. 난 기절했고 눈을 뜨자마자 울자 여자들이 다가와 쿠키 등 먹을 것을 나눠졌다.”면서 “이후 나에게 조끼를 입히려 했는데, 조끼가 나한테 맞지 앉자 다른것을 입히려 했다.”고 증언했다. 현지 경찰은 무장단체가 자살폭탄테러를 위해 소녀를 이용하려 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소녀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해 납치된 지 3일 만인 20일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지 경찰은 “대부분의 무장 세력이 자살폭탄테러에 어린 남자아이들을 이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소녀를 이용하려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바이드는 운 좋게 살아 돌아왔지만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자살폭탄테러에 이용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설] ‘김수철 대책’ 1년간이나 공회전 어이없다

    지난해 6월 7일 서울에서 8세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발생한 뒤 학교의 허술한 안전관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교육과학기술부는 부랴부랴 이른바 ‘김수철 대책’을 내놓았다. 치안상태가 열악한 전국 초등학교 1000곳을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지정해 청원경찰을 배치하겠다고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빗발치는 여론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임이 드러났다. 청원경찰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각 시·도 교육청에 떠넘기며 흐지부지되기 시작했다. 두 달여 뒤 슬그머니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들어 민간경비 및 배움터지킴이로 대신하려 하고 있다. 결국은 청원경찰을 배치한 학교는 한 곳도 없다. 김수철 대책이 1년간이나 공회전한 현실이 어이없다. 청원경찰 배치를 위한 25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부끄럽다. 국회도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에는 눈에 불을 켜고,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 안전을 지킬 예산에는 무신경하니 무책임하다. 지금도 제2, 제3의 김수철이 아이들을 노린다. 고작 250억원 예산과 아이들의 안전을 맞바꾸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교과부와 교육청은 책임 떠넘기기를 계속하며 예산 확보나 대안 마련에 관심이 없다. 확실한 책임의 주체도, 대안 마련 기관도 없이 김수철 대책이 잊혀 가고 있어 안타깝다. 여론이 빗발칠 때 면피성 정책을 낸 뒤 유야무야하는 것은 무책임 행정의 전형이다. 이런 나쁜 행정은 교과부는 물론 전 부처에서 근절해야 한다. 김수철 사건 이전부터 활용 중인 배움터지킴이나 민간경비로는 학교 보안 확보가 어렵다. 흉악범죄 예방에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평균 50대 이상에 최고 77세까지인 이들을 학교에 배치해 30대 안팎의 건장한 범죄자들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겠나. 박보환 국회의원이 “공익근무요원을 활용하는 대안이라도 검토하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2000여명의 공익요원이 학교와 교육청에 근무 중이지만 이들은 사무보조가 대부분이다. 예산이 문제라면 우선 공익요원들을 학교안전지킴이로 활용하라.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확보한 뒤 청원경찰을 배치해 아이들의 안전을 강화하라. 아이들 안전 확보가 시급하다.
  • ‘낚시왕’ 에이브람스의 마법…스필버그에게 바친 오마주

    ‘낚시왕’ 에이브람스의 마법…스필버그에게 바친 오마주

    J J 에이브람스는 미국 할리우드의 알아주는 이야기꾼이다. TV시리즈 ‘앨리어스’(2001~2006년, 연출·제작·각본) ‘로스트’(2004~2009년, 제작·각본) ‘프린지’(2008~2009년, 제작·각본)는 물론, 영화 ‘아마겟돈’(1998년, 각본) ‘미션 임파서블 3’(2006년, 연출·각본) ‘클로버필드’(2008년, 제작)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년, 연출·제작)까지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슈퍼8’ 카메라로 찍은 좀비영화 그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을 잡는다고 했을 때, 영화팬의 기대치가 한껏 치솟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올여름 극장가의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슈퍼에이트’가 16일 개봉했다. 1980년대 스필버그 사단이 만들었던 ‘E.T.’(1982년), ‘구니스’(1985년)의 정서를 ‘클로버필드’의 감각으로 버무려 재창조했다. 에이브람스가 제작자로 나선 스필버그에게 바치는 오마주(헌사·獻辭)이기도 하다. 그의 장기는 여전하다. ‘로스트’에서 검은 연기로 괴물의 존재를 은근하게 흘리고, ‘클로버필드’에서는 실루엣만 보여주다 끝낸 탓에 네티즌들은 그를 ‘떡밥의 천재’ ‘낚시의 제왕’으로 부른다. 에이브람스는 이번에도 중반까지는 부지런히 떡밥을 흘린다. 영화 초반에는 괴물과 마주쳐 경악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구겨진 순찰차를 통해 어렴풋이 괴물의 정체를 짐작하게만 할 뿐이다. 약 올리듯 조금씩 몸뚱이 일부를 드러내 관객을 애달프게 하더니 영화가 시작한 지 80분이 흐르고서야 전신을 드러낸다. 영화 무대는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소도시 릴리안. 엄마를 사고로 잃은 조이(조엘 코트니·큰사진 오른쪽)는 감독 지망생인 찰스(라일리 그리피스)의 영화에 특수효과 겸 분장 담당으로 합류한다. ‘슈퍼 8(㎜)’ 카메라로 찍는 좀비영화다. ●80년대 ‘E·T’ ‘구니스’ 정서 재창조 앨리스(엘르 패닝·작은사진 왼쪽·13) 등 친구들과 밤에 몰래 기차역에서 촬영하던 중 미 공군 화물열차가 갑자기 선로에 뛰어든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열차에서 빠져나온 ‘그것’은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납치하는 한편 자동차 부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것’을 회수하려고 군병력이 투입되면서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엘르 패닝 등 아역 연기 돋보여 미국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언론들은 ‘클로버필드가 E.T.와 만났을 때’라고 평했다. 영화깨나 본 관객이라면 더 많은 영화가 떠오를지 모르겠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스탠 바이 미’(1986)를 생각할 테고, 동네 친구들의 아찔한 모험담은 ‘구니스’와 겹쳐진다. 외계생명체와의 공생 혹은 화해의 메시지는 ‘E.T.’와 ‘미지와의 조우’(1977)를 떠올리게 한다. 아역배우 발굴에 빼어난 선구안을 지닌 스필버그와 에이브람스는 이번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꼬마’들을 캐스팅했다. 다코타 패닝(17)의 동생 엘르는 언니 못지않은 연기력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도도한 매력을 드러낸다. 깜찍함의 종결자였던 언니와 달리 엘르는 차가워 보이지만 넋 놓고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성숙함을 지녔다. 엄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하지만, 앨리스의 등장으로 설레는 주인공 조를 맡은 조엘 코트니의 눈빛도 심상치 않다. 북미에서는 지난 10일 먼저 개봉했다. 10~12일 3968만 달러를 벌어들여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끌어내리고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쿵푸팬더2’가 3주째 박스오피스를 평정한 한국에서 어떤 성적표를 거둘지 궁금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자 초등학생 성폭행 ‘김수철 사건’ 1년 지났지만…

    여자 초등학생 성폭행 ‘김수철 사건’ 1년 지났지만…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김수철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약속했던 안전대책은 공수표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 문제를 놓고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가 이뤄진 탓이다. 각 학교에 배치된 공익근무요원을 안전 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이 교과부로부터 제출받은 ‘학생안전강화학교 청원경찰 배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청원경찰이 배치된 학교는 전국적으로 단 한 곳도 없다. 앞서 교과부는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여자 어린이가 납치·성폭행당한 김수철 사건 직후 인적이 드물고 치안이 열악한 지역의 초등학교 1000곳을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지정, 청원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교과부가 앞장서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청원경찰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각 시·도 교육청에 떠넘긴 것. 인건비는 고용 주체인 교육감·교육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유다. 교과부는 올해 학생안전강화학교 600곳을 추가로 지정하고 있지만, 각 교육청에서는 여전히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다. 대신 학교에서는 청원경찰보다 인건비 부담이 덜한 민간경비(662명)와 배움터 지킴이(637명) 등을 경비 인력으로 대체 활용하고 있다. 청원경찰이 무기까지 소지할 수 있는 전문인력인 반면 민간경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교보안관이나 배움터 지킴이는 자원봉사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청원경찰과 달리 사고가 났을 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또 이들 경비 인력은 주로 퇴직자 등으로 어린이 안전을 책임질 신체 능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체 경비 인력 1299명의 평균 연령은 57.3세이다. 특히 대전(66.7세)과 충북(62.6세), 서울(61.7세) 등 3곳은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는다.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충남도 51.4세다. 70대 경비 인력도 수두룩하다. 박 의원은 “청원경찰 1인당 인건비가 연평균 250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총 250억여원의 예산과 어린이들의 안전을 맞바꾼 꼴”이라면서 “인건비가 문제라면 각급 학교에 배치된 공익근무요원을 안전 인력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전 7시 50분) 한적한 시골마을에 수상한 세 남자가 떴다. 그 이유는 바로 2010년 설 명절을 앞두고 병원을 찾은 동수씨가 암 중에서도 까다롭다는 ‘소세포폐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픈 동수씨와 그를 위해 모인 형 광수씨와 동생 현수씨. 하루하루 소중하고 애틋한 삼형제의 동거 이야기를 함께한다. ●동안미녀(KBS2 밤 9시 55분) 경합 심사 과정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나고 만다. 다름 아닌 소영과 진욱에게 악감정이 있는 안정남이 소영의 옷에 표를 주었기 때문이다. 승일은 경합 이후 윤서에게 프러포즈하지만 현이에게 가식적인 그녀의 모습을 알게 된다. 소영은 승일을 찾아가 당당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몽땅 내 사랑(MBC 밤 7시 45분) 김 원장과 혜옥, 그리고 영옥은 승아(윤승아)가 소개팅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김 원장과 영옥은 승아와 소개팅한 남자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승아가 다시 한번 만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소개팅 남자를 집으로 부른다. 한편 옥엽은 승아를 위해 소개팅남을 완벽하게 멋있는 남자로 변신시키는데…. ●일일연속극 불굴의 며느리(MBC 밤 8시 15분) 연정과 순정, 그리고 혜원은 금실을 앞세워 지은의 집으로 간다. 영심은 가출해 바닷가에 앉아 술에 취한 채 노래한다. 마침 바다를 찾은 신우는 영심을 미친 여자 취급하고, 영심은 신우의 차를 홍구의 차로 착각해 뒷자리에 누워 잠이 든다. 혜자의 생일날, 지은은 홍구를 졸라 만월당으로 찾아 간다.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풍족한 삶의 터전을 사람들에게 내주었던 전남 구례. 어느 길과 어느 마을을 가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정겨운 인심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곳이다. 구례의 땅과 물에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얻었고, 그 산과 강의 멋스러움에 취해 풍류를 노래한다. 모자란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 구례로 함께 떠나 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어느 늦은 밤. 귀가하던 한 여성이 인적 드문 산 중턱으로 끌려갔다. 오랜 시간 끝에 풀려나온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은 좁은 승용차 안에서 그녀를 묶고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칼로 위협하는 것은 물론 차 안에서 불을 피우는 섬뜩한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살벌한 납치사건의 숨겨진 전말을 공개한다.
  • 사상초유 ‘개 납치사건’발생… “대출 안해줘서”

    은행 대출을 요구하며 은행 관리자의 애완견을 납치한 남성에게 징역 2년형이 내려졌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12일 보도했다. 폴란드 출신 이민자인 가브리엘 래드지코우스키(29)는 자신의 예전 이웃이자 영국 로이즈 은행의 관리자인 사라 릴리(28)가 자신에게 은행대출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분개해 범행을 계획했다.가브리엘은 서머셋주에 있는 릴리 집 담장을 부수고 그녀의 애완견인 요크셔테리어 종 ‘빌보’를 납치했다. 그런 뒤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 “500파운드를 내놓으면 개를 풀어주겠다.”고 협박했다. 가브리엘은 ‘마틴’이라는 가명을 썼지만, 예전 이웃으로서 목소리를 알아챈 릴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추적이 시작됐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가브리엘은 납치한 개를 연못에 던지고 도주했지만, 지나가는 행인이 이를 발견하고 개를 구출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릴리는 법정에서 “나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애완견이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가족과 같은 개를 납치한 뒤 죽이려고 한 그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사건을 검토한 재판관 마이클 롱맨은 “가해자의 범행은 지극히 계획적이었으며, 피해자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면서 그에게 2년형을 선고했다. 이어 “가해자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공범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130억 상속받은 美 유명 ‘견공’ 사망…돈은 어디로?

    130억 상속받은 美 유명 ‘견공’ 사망…돈은 어디로?

    130억원의 유산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개가 사망해 앞으로 남겨진 거액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2007년 미국 호텔업계의 거물 리오나 헴슬리의 타계로 1200만 달러(약 130억원)의 유산을 받은 말티즈 종 암컷 애완견 ‘트러블’은 지난해 12월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헴슬리 부부가 기부한 재산으로 설립된 동물보호재단인 ‘리오나 앤드 해리 헴슬리 챌리터블 트러스트’(HCT) 대변인 아일린 설리번은 9일 성명을 통해 “트러블이 지난해 12월 13일 죽었다.”고 밝혔다. 설리번은 “트러블은 화장됐고 유골은 개인이 보관하고 있다.”면서 “트러블이 남긴 재산은 모두 재단으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헴슬리가 타계한 뒤 유족들은 그가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며 뉴욕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은 트러블의 유산을 200만 달러(약 21억원)로 대폭 삭감했었다. 이후 트러블은 플로리다에 있는 헴슬리 호텔 지배인의 보호를 받으며 호화로운 여생을 보냈다. 트러블은 매년 10만 달러(약 1억원)를 썼는데 미용에 8000달러(약 860만원), 사료에 1200달러(약 130만원), 그리고 나머지는 납치 및 살해 위협에 대비한 경호 비용 등에 모두 지출됐다. 트러블은 매일 은식기나 도자기 접시에 담긴 헴슬리 호텔 주방장이 요리한 신선한 닭고기와 야채를 먹었고 다이아몬드가 박힌 개목걸이를 착용했다. 헴슬리는 재산 대부분을 개들을 위한 복지 사업에 써달라며 헴슬리 채리터블 트러스트에 기부할 만큼 생전에 개를 좋아했고 트러블을 자식처럼 아꼈다. 그러나 그는 고용인들에게는 가혹했고 탈세 혐의로 1년6개월간 복역하는 등 ‘비열함의 여왕’(Queen of Mean)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헴슬리는 트러블이 죽으면 자신과 나란히 뉴욕 외곽의 ‘슬리피 할로우’ 가족묘에 묻어달라는 유언도 남겼으나 동물의 묘를 허용하지 않는 묘지의 원칙에 따라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됐다. 사진=CBS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성김과 부친 김재권씨 문제는 별개 DJ가 둘과의 관계 공개 말라고 했다”

    “성김과 부친 김재권씨 문제는 별개 DJ가 둘과의 관계 공개 말라고 했다”

    성김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부친 김재권씨의 전력을 놓고 야권 일각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주일공사 시절 김대중 납치 사건에 깊숙이 간여한 김씨의 아들이 주한 미 대사의 직분을 수행할 자격이 있느냐는 게 요지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집필한 소설가 유시춘씨는 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성김과 부친 문제는 별개로, 밖에 알리지 말라는 게 김 전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자서전을 쓸 때 성김 부친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뭐라 말했나. -2008년인가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1년 전쯤 자서전 대표 집필자로 참여했는데, 다른 경로로 성김 내정자의 아버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김 전 대통령께 자서전에 담을지를 물었다. 김 전 대통령도 그때 처음 성김이 김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연좌제는 이미 사라졌고, 성김 본인의 의지나 책임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인 만큼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느냐. 내 아들도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느냐.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지금 6자회담이라는 좋은 일, 평화 프로젝트를 위해 힘쓰고 있는데 재를 뿌리면 되겠느냐. 결코 언론이나 밖으로 알리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김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나. -그렇다. 나와 비서 2명만 알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결코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왜곡된 이미지를 항변하는 과정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남의 자식, 원수의 자식까지 배려하는 분이셨다. →개인적으로 성김이 주한 미 대사로 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나. -기본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판단이 맞다. 내가 1기 국가인권위원을 했다. 본인의 행위가 아닌 친지나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연좌제 폐지는 헌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다만 이 일이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것은 맞다. 특히 군사정부 아래에서 모진 고생을 하고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은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행위가 아닌 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정서적으로는 어려운 문제다. →반대할 일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반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김씨가 납치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고, 미국으로 쫓겨가지 않았더라면 성김이라는 평화 특사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역사의, 운명의 아이러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女초등생 납치미수 40대 징역형

    인천지법 형사7단독 박원철 판사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납치하려 한 혐의(미성년자 약취미수)로 기소된 A(49)씨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박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학원에 가려는 초등학생 여아를 끌고 가려다 미수에 그쳤지만, 당시 피고인의 태도를 고려할 때 더 중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밝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수교 121년만의 첫 한국계 주한 美대사 Sung Kim

    수교 121년만의 첫 한국계 주한 美대사 Sung Kim

    서재필이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얻은 때가 1890년 6월 19일이다. 이로써 서재필은 첫 한국계 미국인이 됐다. 그로부터 121년 만에 한국계 미국인이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기 주한 미국대사에 성김(51)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를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요청한 것으로 지난 3일 확인됐다. 성김은 1970년대 중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1980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재미교포 1.5세다. 성김이 한국 정부의 임명동의에 이어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해 8월쯤 22대 주한 미대사로 부임할 경우 1882년 양국 수교 이후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미국대사가 서울에 오는 셈이다. 성김의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다. 1960년생인 그는 부촌인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은석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1994년 미국에서 작고한 그의 아버지 김재권씨는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재권씨가 당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성김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간 것도 이 사건의 여파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납치사건의 핵심인물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자서전을 통해 김재권씨가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성김이 6자회담 특사로 임명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 진영에서는 내부적으로 적절성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대통령 자서전을 정리한 유시춘씨는 2009년 한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 “성김이 당시 (납치)사건에 관여했던 김재권(일명 김기완) 주일공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미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련 내용을 자서전에 몇 줄 담을까 생각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성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과거 아버지 얘기를 거론하는 것은 교포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유씨는 밝혔다. 충북 음성 출신의 김재권씨는 1958년 부산발 서울행 경비행기에 탔다가 탑승자 30여명과 함께 괴한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된 뒤 20여 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는 얘기도 있다. 성김은 또 방송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인기를 모은 가수 임재범씨와 사촌지간으로 알려졌다. 성김의 어머니 임현자씨가 임재범씨의 아버지 임택근(79) 전 MBC 전무와 남매지간이라는 것이다. 성김에겐 임재범이 외사촌 동생이고, 임재범에겐 성김이 고종사촌형인 셈이다.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성김 내정자가 어린 시절 성북동에 살 때부터 친구로 지냈고 그가 미국으로 간 뒤에도 꾸준히 교분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성김이 결혼할 때는 부인과 어학연수원을 함께 다닌 정 수석이 함을 지기도 했다고 한다. 성김은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6자회담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북한을 10차례 이상 방문했다. 2006년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에 의해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전시전작통제권 전환, 북핵문제, 한국 대선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2008년 상원 인준을 거쳐 ‘대사’(ambassador) 직함을 얻은 이후 6자회담 특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졌다. 그는 윗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성의 소유자다.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발언을 절제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등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성김이 조지 W 부시 정부 에 이어 오바마 정부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는 것은 이 같은 장점 때문이다. 물론 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전문성도 신임을 받는 주요한 이유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성김에게 의존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를 “성”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성김은 한국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원어민만큼의 완벽한 어휘는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 등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를 쓴다. 그는 “한국말을 할 때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긴장이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는 2남 3녀 중 넷째다. 어머니는 LA에 살고 형제들도 모두 미국에서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다. 성김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 한국 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성김은 누구] ▲1960년 서울 출생 ▲1975년 미국으로 이민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 졸업 ▲로스앤젤레스 검사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미 국무부 대사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 최초의 한인 미국대사 오는 성김, 개인사 화제

    최초의 한인 미국대사 오는 성김, 개인사 화제

     서재필이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얻은 때가 1890년 6월19일이다. 이로써 서재필은 첫 한국계 미국인이 됐다.그로부터 121년만에 한국계 미국인이 주한미국대사에 내정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기 주한미국대사에 성김(51)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를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요청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성김은 1970년 대 중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1980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재미교포 1.5세다. 성김이 아그레망에 이어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해 8월쯤 22대 주한미대사로 부임할 경우 1882년 양국 수교 이후 129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미국대사가 서울에 오는 셈이다.  대사는 외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애국심과 충성심이 남달라야 한다. 그런 자리에 한국계 미국인을 내정했다는 것은 미국 주류가 한국계 미국인을 이방인이 아닌 보편적 미국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성김의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다. 1960년생인 그는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은석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1994년 미국에서 작고한 그의 아버지 김재권씨는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재권씨가 당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성김은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6자회담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북한을 10차례 이상 방문했다. 2006년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에 의해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전시전작통제권 전환, 북핵문제, 한국 대선 등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다. 2008년 상원 인준을 거쳐 ‘대사(ambassador)’ 타이틀을 얻은 이후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졌다.  그는 윗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성의 소유자다.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발언을 절제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성김이 조지 W 부시 정부 때에 이어 오바마 정부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는 것은 이같은 장점 때문이다.  물론 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전문성도 신임을 받는 주요한 이유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성김에게 의존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를 “성”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성김은 한국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네이티브 한국인’만큼의 완벽한 어휘는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 등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를 쓴다.  그는 2남3녀 중 넷째다. 어머니는 LA에 살고 형제들도 모두 미국에서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다. 성김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 한국 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외삼촌은 60∼70년대 아나운서로 명성을 떨쳤던 임택근 전 MBC 전무다. 그의 아들인 가수 임재범씨와는 외사촌 간이 되는 셈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10대소녀 18년간 감금한 ‘두 괴물’에 467년형

    10대소녀 18년간 감금한 ‘두 괴물’에 467년형

    미국서 10대 소녀를 납치해 18년간 성노리개로 삼은 남성이 최종 431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도라도 카운티 법원은 지난 2일 제이시 두가드(31)라는 여성을 납치해 18년간 성폭행해온 필립 가리도(60)에게 431년 형, 이를 묵살한 그의 부인에게는 36년형을 선고했다. 피해자 제이시의 어머니는 이날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 “딸아이는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그들과 연관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표했다.”고 말했다. 제이시는 11살때인 1991년, 가리도 부부에게 납치된 뒤 18년만인 2009년 극적으로 풀려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가리도 부부 집 창고에 갇혀 가리도의 두 딸을 낳기도 했으며, 2008년 8월 가리도가 두 딸을 데리고 무허가 전단지를 배포하다 경찰관에게 적발되면서 감금사실이 드러나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가해자인 가리도가 성폭행 전과가 있는 가석방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소홀해 이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지난해에 두가드에게 2000만 달러(당시 기준으로 약 245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현재 두가드는 두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인근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18년 간의 악몽같은 생활과 두 딸을 길러야 하는 고통 등을 낱낱이 밝힌 두가드의 자서전이 곧 출간될 예정”이라면서 “‘괴물’같은 성폭행 납치범의 431년형이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사진=위는 제이시 두가드, 아래는 가해자 필립 가리도와 그의 부인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1998년 중령 납북 후 귀환”

    지난 1998년 당시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중령 한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가 같은 해 말 귀환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30일 “1998년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던 정보사령부 소속 중령 한 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가 그 해 말에 귀환한 것으로 안다.”면서 “1999년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내용의 최근 법정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도 “4명이 납치됐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한 명이 납치됐다 귀환한 사안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MB ‘아덴만 영웅’들 청와대 초청 격려

    “우리 국민은 작년에 있었던 상처를 여러분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제 우리 군은 어느 때 어디서든지 생명을 위협하는 곳에서는 ‘여명작전’과 같이 완벽하게 우리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 영웅’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고 격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지난 1월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청해부대 최영함 소속 특수전(UDT/SEAL) 대원 등으로 최근 수개월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 대통령은 무공훈장과 무공포장, 대통령표창 등을 수여해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원들의 공로를 평가했다. 이에 대원들은 최영함 모자와 군함의 취역기를 이 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우리 군은 새로운 군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도 새롭게 신뢰받는 군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조영주 대령을 위시한 전원이 우리 군이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는 것에 기여했으며, 300여명 모두가 다 훈포장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1진에서 5진까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고 7진도 여러분의 전통을 이어받아 국제사회에서 가장 용감한 부대로 인정받고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최영함 함장인 조영주 대령은 “군인으로 본분을 다했을 뿐인데 과분한 환영을 해 주신 대통령께 감사한다.”면서 “앞으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적이 넘볼 수 없는 부대로, 싸우면 이기는 부대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 따로 일정을 잡아 격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에는 김관진 국방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이희원 안보특보, 정진석 정무수석, 홍상표 홍보수석 등이 참석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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