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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예멘 외교관 가족 피랍 이모저모

    ◎피랍인질 대부분 무사히 석방/알하다 등 소수부족 대정부협상 위해 잦은 납치극/에멘 고위층 협상진행… 통일이후 납북갈등 심화 주예멘 외교관가족 피랍 이모저모 허전 주예멘 1등서기관 가족의 피랍사건 3일째인 7일 외무부와 주예멘 대사관은 예멘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가며 이들이 하루빨리 구출될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외무부는 일단 범인으로 추정되는 알하다 부족이 예멘정부측에 대한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외교관 가족을 납치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멘은 90년 통일이후 내전 등 혼란속에서 반정부적인 소수 부족들이 주로 외국인들을 납치해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수단을 사용해왔으며 예멘내 갈등요인은 주로 ▲부족간 갈등 ▲부족과 중앙정부의 갈등 ▲옛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이 통일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 등으로 분석된다. 최근 4년동안 예멘내에서 납치된 외국인 수만 해도 1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허서기관 가족의 피랍사건이 있었던 5일에 또 다른 부족이 사나 시내에서 프랑스 여성관광객 3명을 납치했다가 부족장의 중재로 2시간만에 석방하기도 했다. ○…예멘당국도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고위층이 직접 나서 납치범들과 교섭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범들은 정확한 요구사항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최근 알하다 부족은 같은 부족 소년을 강간한 3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요구를 정부측에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박희주 주예멘대사는 “예멘에서는 납치사건이 많으나 국민들이 이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면서 “이곳에서는 범인을 알하다 부족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며,예멘에는 큰 부족이 3개 있고 그 밑에 작은 부족이 여럿있는데 알하다는 작은 부족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북한이 연루돼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현지에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현재 김학용 대사 등 공관원 3명을 예멘에 상주시키고 있으며 최근 대사관의 철수 또는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은 오랜 내전과 종족간 반목,영토분쟁 등으로 숱한 분쟁을 겪어온 나라. 인구는 94년 현재 1천6백10여만명이다. 한국은 85년 북예멘,90년 남예멘과 수교를 맺었다. 북한은 63년 북예멘,68년 남예멘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유공,삼환,현대 등 우리기업이 마리브유전개발에 공동참여하고 있으며 우리 교민은 13명이다. 이슬람문화권인 예멘은 1918년 오스만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 북예멘이 왕국으로 독립했으며 1839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된 남예멘은 1967년 남예멘인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90년 5월 남북협상으로 통일을 이룩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나 94년 내전으로 심한 혼란을 겪었다.
  • 김정일은 간첩 남파 중단하라/김학준 인천대 총장(특별기고)

    북한의 권력층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대남정책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지난 20일 우리의 공안당국에 의해 발표됐다. 북한이 직파한 부부간첩,그리고 그들을 통해 드러난 고정간첩 등은 북한의 권력당국이 여전히 대남 적화 전략에 매달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정치는 탈이념 탈냉전의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됐다.아무리 짧게 잡는다고 해도,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기폭제로 삼아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세계는 교류와 협력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 유일한 예외지대가 한반도임을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게 여겨왔다.한반도에는 북한의 교조주의적 공산집단이 엄존함으로 말미암아 여전히 냉전적 이념대결이 지속됐던 것이다.그것 뿐만이 아니다.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때때로 군사적 긴장마저 조성했던 것이다. ○대북 유화정책에 찬물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에 대해 ‘유연한 정책’을 써왔다.북한 권력당국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모색해 왔을 뿐만 아니라 북한 동포들을 상대로 식량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우리의 그러한 노력은북한의 권력당국을 어떻게 해서든지 협상으로 불러내 이성적 대화로써 한반도 상황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성취하겠다는 민족적 충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당국은 우리로부터 얻어갈 것은 모두 얻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간첩들을 끈질기게 남파시키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었다.때로는 무장간첩을 남파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독침간첩을 남파시키기도 했다. 간첩의 남파로써 북한의 권력당국이 얻고자 하는 것은 새삼 따질 필요조차 없이 명백하다.군사기밀의 획득과 민심의 교란 따위일 것이다.거기에 더해,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시켜 사상적 오염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을 것이고,궁극적으로는 북한문제와 통일문제에 관해 친북적 논리가 확산되도록 유도하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북한당국의 그러한 시도에 대한 경계심을 언제나 굳게 가져야할 것이다.북한의 권력 당국이 대남 적화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직시해 안보태세에 소홀함이 없도록,그리고 사상의 전선에 허점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깨달아야 한다.아무리 많은 간첩을 남파시켜 이른바 남조선 해방의 거점을 여기 저기에 확보하고자 한다 해도 한국 시민의 굳은반공 의지 앞에 좌절하고 말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안보태세 재점검 계기 김정일이 권력 승계를 공식화한 뒤 서방세계는 그의 대내외 정책이 비록제한된 범위 안에서라고 해도 현실주의적 노선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간첩 남파는 그러한 기대를 사라지게 할 뿐이며,그렇게 되면 될수록 김정일정권의 고립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우리는 김정일에게 간첩남파를 전면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그리고 김정일이 이른바 남조선 해방의 헛된 꿈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한다. ○납치 고교생 빨리 송환 바야흐로 21세기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이제 남북관계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돼야 할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그 전환은 우선 김정일의 현실인식 전환으로 시작돼야 한다.개혁과 개방만이 파산에 직면한 북한을 살릴수 있으며,또 자신이 그 길에 들어설 때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권력 당국에게 촉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등학생 시절에 납북 당한 세사람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라는 것이다.소년을 납치하여 이른바 이남화 교육의 도구로 써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도적이다.
  • 납북 고교생 송환협조 요청/정부,유엔에 진정서 제출 적극 검토

    정부는 남파 부부간첩단 사건을 통해 78년 8월 실종됐던 고교생 3명이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들의 송환을 위한 유엔차원의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78년 8월 전남 홍도 해수욕장에서 실종됐던 고교생 3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돼 북한에서 남파간첩들을 교육하는 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부간첩단 사건을 통해 밝혀졌다”면서 “정부는 이들의 송환을 위해 유엔의 개입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 이한영씨 남파간첩이 살해/부부간첩 통해 확인

    ◎78년 실종 고교생 3명도 납치/특수공작조가 숨겨둔 독침·무전기 수거 지난 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1동에서 발생한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인 귀순자 이한영 피살사건은 북한이 남파한 특수공작원 2명의 소행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78년 8월5일 전북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실종된 군산상고 1학년이었던 김영남군과 5일후에 전남 홍도해수욕장에서 실종된 천안농고 3학년 이명우,천안상고 3학년 홍건표군 등 2명도 피서중 북한 공작원들에게 끌려간 것으로 확인됐다.이들은 대남 침투 및 복귀 안내를 담당하는 조사부(현 작전부) 소속 김광현(59·자수간첩) 등 3명에게 납북됐다. 안기부는 20일 남파부부간첩 최정남을 조사한 결과 귀순자 이씨가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전문 요원 최순호와 20대 남자 2명으로 구성된 특수공작조 ‘순호조’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순호조’는 사건 발생 1개월 전에 남파됐다. 이들은 북한에 돌아간 뒤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다시 남파되기 위해 얼굴을 성형수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간첩 최정남은 남파되기 전 공작지도부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특수공작조가 심부름센터를 이용한 사실이 탄로났으므로 대상자를 접촉하려 할 때는 심부름센터를 이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 “비상시에는 특수공작조가 귀환 전 신림동에 묻어둔 공작장비를 발굴해 사용하라”는 명령도 받았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이에 따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드보크’를 발굴,분당구 서현동에 있는 ‘학술외국어학원’의 주소가 인쇄된 편지봉투 안에 든 독침 10개와 지난 1월20일자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싸인 무전기를 등을 수거했다. 안기부는 “드보크에서 나온 증거들이 귀순자 이씨의 피격사건에 대한 간첩 최정남의 진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귀순자 이씨는 지난 2월15일 하오 9시52분쯤 서현1동 현대아파트 418동 1401호 현관 앞에서 남자 2명이 쏜 권총에 머리와 가슴을 맞아 숨졌다. 78년 8월 전북과 전남의 해수욕장에서 납북된 고교생 3명은 현재 대남교육교관 등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가족들은홍도해수욕장에서 발생한 6명의 익사사건때 함께 숨진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이와 홍은 지하당 구축과 공작전술 연구개발 등을 주임무로 하는 사회문화부에서 남한 실상과 말씨 등을 가르치는 ‘이남화교육’교관으로 활동중이다.이는 ‘마’교관,홍은 ‘홍’교관으로 불린다. 이같은 사실은 간첩 최정남과 95년 10월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이 “이와 홍으로부터 이남화교육을 받았다”는 진술에 의해 밝혀졌다.
  • “북에 있다니… 빨리 돌아왔으면”/납북고교생 3명 가족 표정

    ◎병석 노모 충격 받을까 알리지도 못해 지난 78년 8월 전남 홍도 해수욕장에서 실종된 고교생 3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돼 북한에서 남파 간첩들에게 남한 말과 행동을 가르치는 ‘이남화’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자 여태껏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려온 가족과 이웃들은 생존 사실에 환호하면서 이들의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다. ○…지난 78년 8월 10일 납치된 것으로 밝혀진 홍건표씨(38·당시 19세·천안상고 3년)의 아버지 홍사운씨(70·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대영주택 102호)는 아들이 홍도로 여행을 떠난뒤 소식이 끊겼으나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며 지금까지 실종신고만 하고 사망신고는 하지 않은채 20년을 기다려왔다.홍씨는 “아들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잔치를 벌일 생각이며 생전에 아들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아들의 송환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홍건표씨와 함께 홍도 해수욕장에서 납치된 이명우씨(38·당시 19세·천안농고 3년)의집에는 형 이성우씨(51)가 교통사고를 당해 불편한 몸으로 홀로 집을 지키며 동생의 생존사실을 축하해주려 찾아온 이웃들을 맞았다.성우씨는 이웃들에게 부친이 암으로 임종 당시 동생 생각에 눈을 제대로 감지못했으며 어머니조차 2년전 돌아가셨는데 이제야 생존 소식을 듣게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납치당시 군산기계공고 1년생이던 김영남씨(36)의 어머니 최모씨(70)는 3년전 부터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딸(38) 집에서 지내고 있으며 아버지는 84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군산 집에 거주하는 큰형(51)과 둘째형(49)은 “지난 92년 동생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안기부 직원을 통해 처음 들었다”며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충격을 줄까봐 이를 알리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아직도 영남이가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북,억류주민 2명 송환/어제 판문점통해 인도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21일 북한군에 납치된 대성동마을 주민 홍승순씨(68·여)와 아들 김용복씨(40)가 이날 상오 11시50분쯤 판문점을 통해 한국 정부측에 인도됐다고 발표했다.〈관련기사 22면〉 유엔사 김영규 공보관은 이날 “송환에 앞서 실시된 현장조사에서 납북자들이 ‘분명하게 표시되지 않은 지역의 군사분계선을 우연히 넘어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유엔사는 사건 발생 초기 주민과 경비병 등의 진술에 따라 피납된 것으로 발표했으나 ‘군사분계선이 명확히 표시돼 있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라고 밝혀 ‘북한군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 영농작업 중이던 주민 2명을 강제로 납치했다“는 당초 발표를 뒤집었다. 유엔사는 그러나 “주민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들의 진술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미 평화협정 노린 ‘기획납북’/북한군 주민납치­북의 도발 의도

    ◎정전협정 무력화·군대응태세 시험/남혼란 조성·북 불만 희석 노림수도 17일 비무장지대 남쪽지역에서 발생한 북한군의 대성동마을 주민 납치사건은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군사적 긴장상태를 고조시켜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실현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번 납치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말하자면 기존의 통일전략 연장선상에서 납치극이 자행됐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납치장소로 유엔사 통제관할지역인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내의 대성리마을을 택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미국과 직접 접촉하면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군의 대응태세를 시험해 보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7월16일 중동부전선에서의 포격전 이후 한동안 유화제스처를 견지해온 북한이 일정한주기를 갖고 우리 군의 대응태세를 타전했을 가능성도 있다는게 군 관계자들의 해석이다.북한군 12명이 무장을 한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사실이 의도적인 도발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연말 대선을 앞두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최근 총비서로 오른 김정일이 식량난 등 북한의 내부불만을 타개하기 위해 ‘위기 조성용’ 전략으로 남한주민 납치극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하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납치한 주민을) 돌려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납치극을 자행한 점 등 비춰 금명간 돌려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 납북 제헌의원 ‘영혼장례식’

    ◎독립운동가 구중회 선생 100세 맞아 임진각서 “아버님께 올리는 우표없는 이 편지가 바람타고 훨훨 날아서라도 북쪽의 아버님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0일 낮 12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6·25전쟁때 납북된 독립운동가이자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이었던 구중회 선생의 영혼장례식이 치러졌다.가족은 선생이 살아 있을 것으로 믿고 이제껏 제사도 지내지 않다가 100세가 되는 올해 영혼장례식을 치르게 됐다. “아버님을 그토록 기다리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던 날 저희 형제들은 아버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아버님 전상서를 읽어 내려가는 둘째 아들 자호씨(58·서울예술단 이사장)의 주름진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189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선생은 3·1운동 당시 24명의 결사대를 조직,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석방된 뒤 주시경 선생이 운영하던 조선어강습원에 다니다가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1926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고향에서 조선어강습 야학당을 운영하는 등 교육을통한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해방후 경남 창녕에서 제헌의원으로 당선됐다.하지만 50년 7월 서울 장충동 집에서 인민군에게 납치돼 북으로 갔다. 가족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선산 부인 허점분씨의 묘에 선생을 합장키로 했다.
  • 남북협력 디딤돌 놓는다(사설)

    1997년 8월19일은 남북 분단사에서 오래오래 기억해 두어야할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100명이 넘는 한국의 기술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해 함경남도 신포에서 경수로건설 착공식을 갖는다.실로 역사적인 일이다. 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 3년여를 소모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남북간에,북한과 국제사회간에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하나의 원칙이 이행되는 순간이었다.비록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북한사회가 열리는 신호이고 그것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커다란 발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본공사가 본격화하면 최고 5천여명의 한국 기술진이 북한에 머물게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한 전문가의 계산으로는 2004년 경수로 2기가 완성될 때까지 남북한에서 연인원 1천만명이 이 공사에 동원될 것으로 보고 있다.수많은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자고 먹으며 일하게 된다. 신포는 분단 이후 최초의 본격적인 납북협력의 무대다.지금까지만도 남북간에 합의한 각종서류가 1천쪽이 넘는다고 한다.경수로가 완성되기까지 6∼7년동안 남북간에 필요한 각종 합의사항들은 앞으로의 남북협력과 교류의 제도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 사업으로 해서 남북간에 민간용 직통전화가 개설되고 우편물교환이 이루어졌으며 통관과 노무문제에도 합의해야 했다.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접촉은 불가피하게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고 경수로사업의 미래가 꼭 밝은것 만은 아니다.신포가 북한의 베를린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북한이 가지게 되면 그나마 열린 문이 다시 닫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예측이 불가능한 남북문제의 특이성으로 해서 남북간에 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수로 건설비의 분담문제도 아직 아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일본은 ‘의미있는’ 만큼을,미국은 ‘상징적’인 부담을 한다는 지극히 애매한 얘기만 돼있을뿐 구체적인 합의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한·미·일 3국간 힘겨운 줄다리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첫삽질이 시작됐듯이 공사비 줄다리기도 끝내는 해결될 것이다.분담금 싸움보다 경수로 지원에3국 모두 더 큰 국가적 이해가 걸려있는 것이다. 경수로사업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확보에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것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남북은 역사적인 이번 경수로사업 완성에 장애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간 인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건설공사 기간동안 신포에 체재할 한국과 국제관계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보살펴 주어야할 것이고 한국민들은 이번 일에 국민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남북간 도발과 비방을 삼가는 일부터 실행에 옮겨야 한다.
  • 납북 안 목사 조기석방 요청/유엔인권 판무관실에 제기

    정부는 지난 95년 7월 중국 연길시에서 납북된 안승운 목사의 조기석방을 위한 대책의 하나로 지난달말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에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 남북적 오늘 3차접촉/북경서/곡물 5만t 추가전달 방안 협의

    남북한은 23일 상오 중국 북경 차이나월드호텔에서 남북적십자대표 3차접촉을 갖고 민간차원의 2차분 대북식량지원 전달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한적은 이번 접촉에서 옥수수 기준 곡물 5만t을 오는 10월말 추수기전까지 전달하는 방안을 북한측에 제시하고 현재 식량위주로 된 지원품목을 옥수수를 비롯한 식량과 의약품과 농기구,비료,의류 등으로 다양화하는 문제를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적은 특히 민간차원의 지원확대를 통해 적십자채널을 유지함으로써 남북적십자사간 현안인 이산가족 서신교환,납북자 송환 등의 계기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병웅 사무총장 등 한적대표단과 최경린 서기장 등 북적대표단은 22일 상오 항공기 편으로 각각 서울과 평양을 출발,이날 낮 북경에 도착했다.
  • 김 대통령­하시모토 정상회담 의미·내용

    ◎대북공조엔 일치… 어업협정 평행선/대북식량­4자회담전 대규모 지원 유보/어업협정­독도문제·EEZ 이견 못좁혀 하시모토 일본총리는 23일 밤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인도적 식량지원을 재개할 뜻을 시사했다.「한국의 요청이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식량재개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김영삼 대통령도 명백한 언급은 않았지만 일본측의 인도적 지원재개를 양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일본은 곧 세계식량계획(WFP)등을 통한 인도적 대북지원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지난해 8월이후 일본인 여중생의 납북사건,그리고 북송 일본인처의 일본방문 문제로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북한에 대한 지원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미국은 물론 EU까지 대북지원에 나서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북한지원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관측된다.때문에 김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의견을 떠본 것 같다. 한국정부도 인도적 대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일본의 동참을 막을 이유가 없다.다만 정부차원의 대규모식량지원은 4자회담과 남북 긴장완화에 맞춰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측은 이에 동의하고 있다.김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식량난이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들며 한미일 3국간 공조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하시모토총리는 이날 어업협정 개정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배타적 경제수역(EEZ)선포 1주년인 7월20일까지 어업협정 개정시한이라도 합의하자고 요청했다.김대통령은 그러나 『실무협의를 계속하자』는 원론적 답변을 했다.EEZ,독도문제까지 포함,어업협정개정을 놓고 양국간 「평행선」이 이어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어 한일청소년 포럼과 역사공동위 등 미래지향적 노력들이 결실을 맺고 있는 점도 평가했다.제1차 역사공동위가 금년안에라도 열릴 것을 희망했다. 김대통령은 하시모토 일본총리와 5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올해는 1월말 벳푸에 이어 5개월만에 재회동이다.두 정상이 모두 뉴욕 일정이 빠듯한 관계로 많은 현안이 논의되진 못했지만 일미방위협력 등 한일간 결론지어야할 현안은 더 남아있다.
  • 이한동·이수성/2룡의 「소주회동」

    ◎서로 호형호제 하며 “뭉쳐봅시다” 한마음 과시/이 대표 겨냥 “대통령병 환자 후보돼선 안된다” 신한국당의 이한동·이수성 고문이 21일 저녁 서울 삼각지 차돌백이집에서 소줏잔을 함께 기울이며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은 우선 이한동 고문이 납북당한 이수성 고문의 부친을 겨냥한듯이 「사상 검증」을 제기하면서 발생했던 오해부터 풀었다.이어 이수성 고문이 『「형님」과 나는 인간적 신뢰관계』라고 말하자 이한동 고문은 『인간적인 신뢰에는 정치적 신뢰도 포함된다』면서 「아우님」과의 우의를 과시했다. 두 이고문은 또 『형님이 대통령이 되면 저는 글이나 쓰겠습니다』『아우님이 대통령이 되면 나는 (국회)의장이 되어 보필해야지』『홍구(이홍구 고문)형님도 꼭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시간이 안돼 안타깝습니다』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회창 대표를 겨냥,『「권력의 화신」이나 「대통령병 환자」가 후보가 돼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적어도 우리 두사람은 국가의 장래를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뭉칠 것』이라고 몇차례씩 강조했다. 이날 회동이 두사람간의 연대가능성을 열었지만 박찬종 고문,김덕룡 의원과의 공조확대로까지 이어지는 「반이」전선이 구축질지는 불투명하다.박고문과 김의원은 「아마추어 배제론」을 내세우고 있다.이수성 고문도 원칙없는 연대에는 부정적이다.정치인들로서는 드물게 대중식당을 이용한 이날 회동은 두사람의 털털한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 서울말 배우며 자본주의 훈련/귀순자 「남북 통합교육」 첫 수료

    ◎엄청난 남북격차 정신적 충격 극복/남북한 경제·의식차이 등 토론통해 익혀/여만철씨 딸 금주양 등 10명 9주교육 끝내 『남한이 왜 이렇게 잘 살게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서울말 배우는 것도 재미 있었어요』 14일 하오 2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남북통합교실」제1기 수료식.귀순자 10명은 수료증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남북통합교실」은 중앙대 체제적응연구센터(소장 이상만)가 지난 3월22일 통일에 대비,사회통합과 체제통합의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개설했다.귀순자들은 남한사회 적응 프로그램에 따라 매주 토요일 3시간씩 9주간의 수업을 마쳤다. 94년 3월 일가족 4명과 함께 귀순한 여만철씨(51)의 딸 금주씨(23·중앙대 유아교육과 3년)도 수료증을 받았다.금주씨는 『귀순자 대부분이 처음에는 엄청난 남북한의 경제적 차이를 보고 자신이 초라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면서 『바로 이 점이 남한사회 적응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를 원하는 귀순자에게는국가에서 주는 특혜도 부담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여씨는 그러나 『무릎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를 입은 내 모습에 아직도 가끔씩 놀란다』고 겸연쩍어했다. 북한군 사병출신으로 95년 귀순한 한용수씨(22·서울시지하철공사)는 『납북의 이질감 때문에 적응이 힘들었으나 이번 훈련이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한씨는 지난해 7월 첫 월급을 받아 서울 방배동 광명선원 스님인 양아버지에게 여성용 모시내의를 선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북에서 모시내의를 본 적이 없어 남자만 모시내의를 입는 것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강사로는 김일성대 교수였던 조명철(38)씨와 북한군 장교 출신인 김남준씨(36) 등 남한사회에 잘 적응한 귀순자들이 나섰다.수업은 「남북 경제생활」「남북주민 의식차이」 등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택해 토론식으로 진행됐다.수업에는 표준말 배우기 시간도 있었다. 연구센터는 남한 사람의 북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남한 주민의 북한 바로알기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20명이 귀순자들과 함께 수료증을 받았다. 연구센터는 연간 4회에 걸쳐 40명의 귀순자를 교육시킬 예정이다.이날 수료증을 받은 귀순자들은 2기 교실에 강사로 나선다.
  • 이씨 승강기 내리자 괴한들 덮쳐/이한영 피격­피습 순간

    ◎소음권총 쏘고 도주… 이씨 쓰러지며 “간첩”/아파트 옆집주민 비디오폰 통해 피격순간 목격/머리·가슴에 총상… 구급차 도착땐 이미 의식불명 북한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씨는 15일 하오 서울에서 손윗 동서 오주성씨(33)와 저녁식사를 한 뒤 임시로 머물던 경기도 분당의 선배 김장현씨(44) 아파트로 돌아오다 현관 문앞에서 습격을 당했다. 이씨가 아파트 14층에 도착한 시간은 하오 9시50분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 김씨의 1402호 문으로 향하는 순간,복도에서 대기하던 건장한 체격의 괴한 2명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미처 초인종을 누를 시간도 없었다. 범인들 중 한명은 바바리 코트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이씨의 머리를 겨누었다.소음기가 달린 권총이었다.이씨는 순간적으로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명은 이씨를 엘리베이터 왼쪽 벽쪽으로 거세게 밀어붙이며 머리 등을 내리쳤다.이씨는 『여기서 당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격렬히 저항했지만 살상무기를 갖춘 고도로 훈련된 범인들의 상대가 못됐다.단지 몇초간 실랑이했을 뿐 이씨는 곧 콘크리트 바닥에 내던져졌고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권총 2발이 발사됐다.소음기 탓에 총소리는 없었지만 이씨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괴한들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시동을 건채 대기하고 있던 다른 공범 1명과 함께 범행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시끄러운 소리에 1402호 김씨의 부인 남상화씨(42)와 맞은 편 1401호 주인 박종은씨(46)는 각각 비디오폰을 통해 이씨의 피격 순간을 지켜보았다.하지만 두려워 즉각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했다. 범인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간 뒤 남씨와 박씨는 문밖으로 달려나왔다.이씨는 『누가 이랬느냐』는 남씨의 물음에 손가락 두개를 펴보이며 『간첩,간첩』이라고 말했다.구급차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다. 지난해 11월부터 김씨의 집에서 지내온 이씨는 이날 하오 9시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남씨에게 『지금 막 집으로 출발했다』고 핸드폰으로 알려왔다.그 무렵 남씨에게는 『예전에 이씨와 함께 근무했던 「모 여성지」 기자』라며 이씨의 귀가시간을 확인하는 괴전화가 걸려왔다.10일전에도 전화국 직원이라며 가입자와 설치장소를 묻는 수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상오에는 수화기를 들면 응답없는 전화가 여러차례 걸려왔다. 이씨는 이에 앞서 이날 하오 7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노보텔앰베서더 호텔 커피숍에서 동서 오씨를 만났다.이들은 평양냉면과 이북만두로 저녁식사를 한 뒤 하오 9시쯤 식당을 나왔다.식사중 황장엽비서의 망명과 관련해 어머니와 이모(성혜림씨) 이야기를 많이 했던 이씨는 여흥이 남았던지 『소주나 한잔 더 하자』고 청했으나 오씨는 『몸이 피곤하다』며 거절,헤어졌다. □테러·피습 일지 ▲78년 1·7월=최은희·신상옥 부부 홍콩서 납치. ▲79년=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유럽연수중 노르웨이서 북에 납치. ▲82년2월=최재근 주 우간다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으로부터 총격받아 부상. ▲86년1월=도재승 주 레바논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에게 피랍. ▲94년10월=대우 강대현씨 알제리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에게 피살. ▲94년10월=한국전자계산 강상보씨 홍콩에서 강도와 경찰의 총격전 도중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 ▲95년3월=이수존 주 대만대표부 서기관 괴한으로부터 피습받아 목에 자상 입음. ▲95년7월=순복음교회 목사 안승운씨 중국 연길서 북한요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납북. ▲96년8월=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원장 박병현씨 중국 연길서 괴한에게 테러당해 사망. ▲96년10월=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영사 피살. ▲97년2월=김정일 전 동거녀 성혜림씨 조카 이한영씨 권총 피격.
  • 기대 못미친 귀국 보따리/북 황장엽 방일 결산

    ◎4자회담 무산에 대부분 비공식 접촉/“북­일 관계 개선 공감” 양측 의지만 확인 일본을 방문중인 북한 노동당 황장엽 비서가 기대했던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채 11일 귀로에 오른다. 황비서의 방일은 잠수함 사건 사과 표명후 북미관계,북일관계가 빠른 속도로 해빙을 향하고 있을때 성사돼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황은 당초 불교단체의 초청으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을 표면적인 목적으로 내세웠다.그러나 그의 방일에는 북일 양측이 모두 양국접근의 「좋은 기회」로 삼으려 한 흔적이 엿보이고 있다. 북한 정보에 밝은 일본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올해 71세로 같은 나이의 원로인 양형섭은 미국에,황장엽은 일본에 보내 일거에 북한 지원 분위기를 고양시키려 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양의 방미는 4자회담 설명회가 북한측의 불참으로 자꾸 연기되면서 성사되지 않았고 황도 설명회문제와 방일기간중 보도된 20년전 일본인 소녀(당시 13세)의 납북사건으로 자민당 고위관계자와의 공식면담이 무산되고 말았다. 또 황의방일에 자민당의 신진 실세들이 뒤를 봐주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야마사키 다쿠정조회장은 공식면담등이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당이 주도해 북일관계 정지작업을 펼쳐 나가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이들은 황에게 이같은 입장을 설명하는 서한을 보내 황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일본도 황의 방일목적인 식량지원 요청에 간접적으로 부응했다.일본은 한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직접 약속은 하지 않았다.하지만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등은 황의 방일기간동안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모색이라는 형식으로 식량지원에 나설수 있음을 밝혀 긍정적 시그널을 보냈다. 결국 황의 방일은 두가지 사건,즉 설명회 연기와 일본인 납북사건으로 자민당의 요인 면담에 실패했지만 양측이 접촉에 열의를 갖고 있음은 충분히 확인됐다.4자회담 설명회가 열리는 등 상황변화가 오 되면 북일 양자관계는 다시 접근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 788명 성탄절 가석방/법무부

    ◎무기수 4명 등 장기수 32명 포함 법무부는 23일 성탄절을 맞아 무기수 4명과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장기수 32명 등 모범수형자 311명을 24일 상오10시 전국 교도소 등에서 가석방한다고 밝혔다. 모범 소년원생 428명과 모범감호자 49명도 각각 가퇴원·가출소돼 모두 788명이 석방된다. 가석방 대상자에는 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6년9개월여를 복역한 박모씨와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징역1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올해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한 납북어부간첩 김모씨 등이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천안개방교도소,청주여자교도소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2개월여동안의 「사회적응 훈련과정」을 마치고,검정고시에 합격하거나 각종 자격증을 딴 135명도 가석방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 “우리 군을 믿는다” 백령도 주민 차분/현지 르포

    ◎“우왕좌왕 하면 북한 돕는 셈”/조업 등 일상적 분위기 유지 【백령도=김학준 기자】 4일 하오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북한의 보복위협발언으로 전군에 비상이 걸린 것과는 달리 이곳 주민은 일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한의 상투적인 발언으로 우리가 우왕좌왕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결과입니다』 납북간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때마다 파급효과가 대표적으로 거론되온 지역 치고는 다소 뜻밖이라는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군의 경계태세를 믿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도발행위도 물리치겠다는 각오로도 보였다. 주민은 북한이 만일 국지적 도발을 감행해올 경우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것으로 알고 이같은 사실에 대비해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축협 백령지소장 박신범씨(46)는 『이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백령도주민만큼 군·민이 따로 없는 철저한 안보의식으로서 무장된 지역도 없다』며 『만일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해올경우 그것은 곧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북한은 6·25이후 서해5도 부근에서 크고 작은 수백건의 군사적 도발을 저질러왔다. 올 들어서만도 3차례나 북한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측 함장과 대치하는 등 20차례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주민은 그때마다 군이상의 전의를 보였으며 이에 따른 안보의식만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최근에는 지난 89년4월 군인가족 등으로 창설된 여자예비군까지도 모임을 갖고 이번 사태와 관련,적극적인 대책을 마련중이다. 특히 4일 북방한계선 북측 작전구역내에서 미그기가 수십대 출현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해군과 공조체제 아래 해상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휴가를 나간 사병도 속속 자원귀대하고 있다. 조업나가는 어선을 선단으로 편성,어업지도선과 함께 출어하도록 하고 규정된 조업구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
  • 북 해군 서해 활동 강화/국방부 발표

    ◎군경 도발·테러 대비 특별경계령 국방부는 3일 백령도 등 서해 5도 부근 해상에서의 북한 선박활동이 빈번해지고 있는 북한군의 이상징후를 포착,북한의 「대남보복」발언과 관련해 긴급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서해 5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등에 특별경계령을 하달하는 한편 해군 함정의 즉각 대응기동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 선박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 포착됐다』면서 『이들 선박이 어선인지 군함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북한 해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해군은 서해 함대사령부에 6개 전대 3백25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를 전방지역에 배치하고 있다. 이와 관련,이양호 국방장관은 『백령·연평·우도등 서해 5도는 38선 이북에 위치,유사시 아군의 지원이 가장 어려운 만큼 북한의 기습도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며 『서해 5도등에 대한 북한의 국지적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북한은 지난 62년 연평도에서 아군 초계정에 포격을 가해 국군 3명이 전사한 것은 물론 어선 등의 납북 등 6·25전쟁 이후 서해 5도에서 수백건의 크고 작은 도발을 저질러왔다. 이장관은 서해 5도는 물론 군사분계선이나 후방지역에서 예상될 수 있는 북한의 기습적인 도발에 대한 유형별 대책을 수립,철저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북한의 위협이 제기된 이후 나타난 북한군의 동향을 철저히 감시하고 특히 대표적인 도발징후로 꼽힐 수 있는 예비전력인 기계화군단의 전방이동 등 이상징후를 예의주시하라』고 시달했다. 이장관은 이날 상오 전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김동진 합참의장등 군 수뇌부가 배석한 가운데 강화된 군사대비태세 및 통합방위대비태세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이같이 지시했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2일 하오 8시30분을 기해 전 군에 군사대비태세 강화지시를 내린데 이어 하오 10시 합참을 통해 정부 각 관서 및 지방자치단체까지 적용되는 통합방위태세 강화지침을 시달했다. ◎항만 등 경계강화 경찰청은 3일 북한의 보복위협과 관련,전국 경찰에 「대테러 대비태세 강화」 지침을 하달하고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대 테러 첩보수집활동 ▲요인보호 활동 ▲공항·항만 보안활동 ▲국가 중요시설 및 주한외국공관 경계활동 등을 강화했다.특히 국제적으로 테러 용의자로 분류된 3천600여명에 대한 입국을 철저히 차단키로 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국내에는 해외 테러단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계,테러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외국인 우범자 80명이 장기 체류중이다.
  • 북 연루 드러나면 남북관계“최악”/영사 피살­정부의 분석과 대응

    ◎나훗카 등 인근에 북 공관원 50여명 상주/수차례 보복 다짐… 살인 전문가 소행 추정 정부는 1일 저녁 잇따라 발생한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최덕근 영사의 살해사건과 프놈펜의 호텔업자 김상렬씨 총격피습 사건에 대해 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번 두사건에 북한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에 따라 당혹감과 분노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8일 동해안에 잠수함을 통해 남파시킨 무장공비들이 사살되자 『백배,천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거듭 공언한뒤 2일 판문점에서의 장교접촉에서도 보복을 재다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프놈펜 경찰당국의 수사결과 이번 사건이 북한의 범행으로 드러날 경우 남북간의 긴장관계는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심화될 전망이다.또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치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외무부의 서대원 대변인은 2일 사건발생 사실을 전하면서 『이번 사건의 범인이 북한인이라는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두사건이 북한인의 소행이거나 북한의 사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일단 분석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우 러시아 극동함대의 본거지로 90년에 들어서야 외국인에게 개방된 특수한 지역이다.이 때문에 북한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을 두지 못하고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나홋카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었다.그러나 92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의 총영사관이 들어선 뒤에는 이 지역에서 북한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최근 이같은 이유로 나홋카의 북한 총영사가 본국에 소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나홋카의 북한 총영사관에는 18명,블라디보스토크 농업대표부에는 8명,하바로프스크 경제·임업대표부에는 20명,아르촘 농업대표부에는 6명 등 모두 52명의 북한 공관원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근무하고 있다.북한의 공관원들은 이 지역 고려인들의 각종 행사에 공동으로 초대되기 때문에 최영사가 주로 대 북한 정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최영사가 1일 밤 자동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가는 짧은 순간동안 잔인한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빠져나간 수법으로 미뤄볼 때 고도로 훈련된 전문살인범의 소행일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한 고위당국자는 『최영사를 살해한 범인이나 김씨에 대한 피습자가 누구냐보다는 그 배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북한의 사주로 러시아의 마피아가 범행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특히 피살된 최영사의 오른쪽 옆구리에 검은색 흔적이 발견돼 북한의 공작원이 주로 사용하는 독침 만년필에 찔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캄보디아도 지난 5월까지 북한과만 수교관계를 유지해온,동남아 지역의 북한 거점이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의 활동이 어느 나라보다 활발한 곳이다. 정부는 러시아와 캄보디아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정부의 자체조사단도 파견했다.그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는 또 한차례 거대한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외교관 등 피습 일지 ▲78년 1,7월=최은희·신상옥부부 홍콩서 납치. ▲79년=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유럽연수중 노르웨이서 북에 납치.▲82년 2월=최재근 주 우간다 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으로부터 총격받아 부상. ▲86년 1월=도재승 주 레바논대사관 서기관 무장괴한에게 피랍. ▲90년 8월=김영호씨 등 현대건설 근로자 3명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에 억류됐다 9일후 석방. ▲92년 9월=김의웅씨 등 (주)대우 근로자 4명 이란 마약 밀매단에 납치됐다 한달만에 풀려남. ▲94년 10월=(주)대우 강대현씨 알제리에서 회교원리주의자들에게 피살. ▲94년 10월=한국전자계산 강상보씨 홍콩에서 강도와 경찰의 총격전 도중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 ▲95년 3월=이수존 주 대만대표부 서기관 괴한으로부터 피습받아 목에 자상 입음. ▲95년 7월=순복음교회 목사 안승운씨 중국 연길서 북한요원으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납북. ▲96년 8월=기아자동차 기술훈련원 원장 박병현씨 중국 연길서 괴한에게 테러당해 사망. ▲96년 10월=최덕근 주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영사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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