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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D-6] 대북정책 공방전

    8일에는 ‘대북 정책’이 선거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전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총선후 방북추진’ 등의 기습 발표가 도화선이 됐다. 한나라당은 과거에 비해 유연해진 대북정책 공약을 내놓았다.“대북정책은 어느 한 정권의 전유물이 되거나 당리당략에 좌우돼서는 안된다.”면서 ‘초당적 대북정책기구’의 구성을 제안했다.“그래야 대북정책을 놓고 상대방을 ‘반통일세력’이나 ‘친북좌경세력’으로 비난하는 국론분열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박근혜 대표는 “남북접경지대에 평화구역을 설치해 이산가족 상설면회소·평화공원 등을 조성하고,비무장지대의 자유무역화,개성공단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남북 상호간에 분명한 룰과 원칙을 확립하고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맞서 열린우리당은 “올 상반기에 시범지구가 개소되는 개성공단 내에 제2이산가족 면회소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또한 삭감된 남북협력기금을 확충해 이산가족 상봉에 쓰기로 했다.정동영 의장은 “납북된 국군포로를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북측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상봉이 성사되도록 적극 추진하고 제3국에서의 상봉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이념을 계승하는 ‘적자 정당’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한나라당과 공조해 대북송금 특검을 추진해 햇볕정책을 짓밟고 민주개혁세력을 분열시킨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호남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없다.”면서 “햇볕정책을 끝까지 살려나갈 민주당을 도와달라.”고 호소해왔다. 한편 박근혜 대표의 총선후 방북추진은 열린우리당의 집중공세를 받기도 했다.정동영 의장은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한·러 정상회담과 네덜란드 총리의 방문도 취소됐는데 국가원수가 정상외교를 할 수 없도록 묶어놓은 채,야당대표가 북한에 가서 외교를 하겠다는 것은 3·12 쿠데타로 권력찬탈을 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북한에 가기 전에 탄핵을 철회,대통령의 외교권을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지운기자 jj@˝
  • [총선 D-7] 외교·안보·통일분야

    (공통질문)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역학관계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열린우리당 지금껏 대미관계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친미·반미 2분법이 아니라,전통적 한·미관계가 가장 중요하다.한·미관계는 포괄적·역동적으로,한·중 관계는 동반자적으로,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한·러 관계는 보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자민련 한·미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안보는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중국과는 경제적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민주노동당 중국이 미국을 곧 따라잡을 것이다.구한말 상황과 너무 유사하다.어느 한 편을 들면 맞아죽는다.그러므로 미국 일변도 또는 한·미·일 공조는 중국과의 관계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 자주국방 노력과 함께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역시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하다.50년 이상 우리 안보를 지켜온 유일한 동맹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깊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민주당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하되 미국만 의존해서는 북핵문제 등의 해결이 힘들기 때문에 중국·러시아 등과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공통질문)이산가족 상봉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밝혀달라. ●자민련 상설 면회소를 설치,상봉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지속적으로 만나고 결국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국내에 잔존하고 있는 냉전적 사고를 불식시키는 한편 조금만 벗어나면 방해놓는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나라당 상설 면회소를 설치하고 상봉 숫자를 확대해야 한다.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민주당 면회소를 하루 속히 설치해야 한다.비무장지대에 이산가족이 한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평화마을을 조성해야 한다.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대책을 갖고 있다. ●열린우리당 금강산에 상설 면회소 설치를 현재 추진중인데,이것이 실현되면 상시 상봉이 가능할 것이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계승한다고 하는데,일각에서는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이 늦어지고 핵문제도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건전한 비판이지만 대안은 못된다.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이 더 이상 불안지역이 아니고 투자안전지대라고 알려지면서 투자가 늘었고 경제성장이 이뤄졌다. 이라크파병과 관련한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명확히 해달라. ●열린우리당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된 이후 파병장소가 바뀌는 등 심각한 사정변경이 생겼다.따라서 17대 국회에서 파병부대 성격 등과 관련,재론할 여지가 있다. 한국의 대 일본정책,한·일FTA 등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은 무엇인가. ●자민련 일본의 우경화나 군사대국화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설혹 일본이 군사대국화하더라도 견제세력으로서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데,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민주노동당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의 3분의2밖에 안된다.북한은 절대 공격 못한다.미군이 있으면 군비경쟁이 심화돼 불필요한 무기구입에 예산낭비만 된다.미국은 무기를 팔더라도 절대 핵심부품은 주지 않는다.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가장 큰 취약점을 뭐라고 보나. ●민주당 야당의 반대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것과 보수사회의 반대를 무마시킬 노력도 충분하지 못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자민련의 복안은. ●자민련 우리는 현금지원은 절대 반대한다.또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도 명확히 해야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분단도 가르지 못한 ‘쌍둥이 얼굴’

    제9차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남측 가족 100명이 29일 오후 금강산 김정숙휴양소에서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반세기 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났다. 이날 상봉에서는 남측의 유창근(75) 할아버지가 지난 71년 독일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노무관(당시 보사부 노동국 소속)으로 일하다 본국 귀환을 한 달 앞두고 북측으로 간 동생 유성근(71)씨를 만났다.성근씨는 한국에 있던 부인과 딸을 초청,여행하던 중 동베를린을 통해 입북했다.당시 자진 입북설이 나오기도 했으나 북한을 선택할 특별한 이유가 없어 정부는 납북으로 결론냈었다. 성근씨는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 할말이 많은 듯 “형님에게 할말이 많지만,차차 하자.”며 오열하는 형을 달랬다. 또 87년 1월 납북된 ‘동진 27호’에 타고 있던 12명 선원 중 한 사람인 양용식(47)씨가 남측의 아버지 양태형(78)씨를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박록삼기자 youngtan@˝
  • “누님들 달동네 전전” 마지막 왕손 이 석씨

    마지막 왕손 이석(63·본명 이해석)씨의 서울 가회동 거처마련을 위해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검토(서울신문 3월20일자 보도)중인 가운데 국내에 살고 있는 의친왕(義親王)의 아들과 딸들이 여전히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친왕은 13남 11녀 등 모두 24명의 자녀를 뒀으며 현재 10명만 국·내외에 생존해 있다.이 가운데 이석씨의 넷째누님인 해경(74·미국 컬럼비아대학 아시아도서관학과 관리원)씨를 비롯,장(66·여),해란(59·여),문길(59),정길(57),민(49)씨 등 6명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살고 있는 4명의 처지는 한때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비참하기 그지없다.이씨의 큰누님 해원(83·서울 강동구)씨는 천호동 달동네 단칸셋방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고 있다.해방 이후 은행장을 지낸 남편(이승규)이 6·25 때 납북된 이후 강릉에서 살다가 2000년 천호동으로 옮겨왔으나 끼니조차 걱정할 정도다. 강동구 명일동에 사는 셋째누님 해춘(79)씨의 삶도 어렵긴 마찬가지다.시내버스 운전사인 아들이 부양하고 있다. 막내 여동생 해연(55)씨의 처지는 그나마 나은 편.경기도 광릉에서 농원을 경영하는 남편(박기수)과 함께 살고 있다. 이씨는 전주시의 도움으로 5월부터 한옥거주집이 마련될 예정이지만 그동안 집도 절도없는 신세로 전전긍긍해왔다.이씨는 “누님·여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사는 게 마지막 소망”이라며 “프랑스처럼 왕손이 사는 마을을 관광차원에서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
  • “국군포로 아버지유골 고향에 묻어주세요”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골을 고향땅에 묻어주세요.” 국군포로인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중국 옌지에 숨어있다는 탈북자 백영숙(여·48)씨가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를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보냈다.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도 청와대 민원실에 접수했다.최 대표는 9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 97년 사망한 영숙씨의 아버지 백종규(당시 69세)씨 자료를 2002년 말부터 국방부와 국정원에 제시했는데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영숙씨와 백씨의 유골이 한국땅에 오도록 해줄 것을 촉구했다. 최대표에 따르면 영숙씨는 2001년 4월 아들·딸과 탈북했으며 뒤늦게 탈북에 합류한 남편과의 갈등 등으로 수차례 입·탈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가 탈출한 2002년 3월에는 고향인 함북 온성으로 가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4월 재탈북했고,그해 6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가 지난해 4월 세번째 탈북에 성공했다.다시 허베이성 인신 매매단에 끌려갔다가 현재 탈북지원단체인 두리하나 선교원의 도움 속에 은신해 있다고 한다. 영숙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잊지 못하던 고향은 ‘경북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라며 아버지 백씨의 증명사진을 최 대표를 통해 보내왔다.지난 98년 탈북한 국군포로 장모(78)씨는 백씨의 증명사진을 본 뒤 “함북 온성군 상하리에서 같이 살았던 국군포로 백씨가 틀림없으며 그의 딸 영숙씨와도 잘 아는 사이”라고 증언했다.또 대전 현충원에 위패가 있는 군번 ‘1504895번’의 ‘일병 백종규’의 주소와도 일치한다. 최 대표는 “일병 ‘백종규’씨의 동생 백청장(61·인천 거주)씨와 유골의 유전자를 감식하면 금방 결과가 나올 것”이라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김수정기자 연합 crystal@˝
  • [사설]주목되는 군사회담 개최 합의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6일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폐막됐다.미진하지만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내다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진일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특히 지난 2000년 9월 국방장관회담 이후 지지부진하던 군사당국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군사당국자회담은 철도·도로연결 등 교류·협력사업에 따른 실무협의를 맡는 기존 대령급 회담과 달리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을 쌓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특히 남북은 장성급이 참여할 군사회담을 통해 단기적으로 꽃게조업으로 인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제3국의 불법 어로를 차단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수 있다.이를 위해 오는 5월 꽃게잡이 철이 본격 시작되기 전 첫 회담이 열려야 한다.합의사항의 제때 이행이 절실히 요구된다. 쟁점인 북핵과 관련,“2차 6자회담이 결실있는 회담이 되도록 협력한다.”는 합의 문구가 남북회담의 유용성을 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수준의 수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절충한 결과라고 여겨진다.제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오는 3월 갖기로 이견없이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면회소 건설에 따른 상봉 정례화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생사확인 사업이 차후 과제로 넘겨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북한의 요청에 따라 봄철 비료 20만t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인도적 차원의 적절한 결정이었다.가뜩이나 지난해 핵문제 여파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38%나 줄어드는 등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하다는 전언이니 시비 철에 맞춰 제때 보내주기 바란다.˝
  • 北 “日납치자 가족 송환 용의”

    |도쿄 황성기특파원|북한이 납북됐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의 나머지 가족들을 돌려보낼 뜻을 지난해 7월 말 일본 내 북한 지원단체를 통해 일본 정부에 전달한 데 이어,지난달에도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북한은 지난달 20∼21일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 한 호텔에서 일본의 ‘납치구출의원연맹’ 사무국장인 자민당의 히라사와 가쓰에이(平澤勝榮) 의원 등과 만나 “(일본에 돌아간 납북 피해자의)가족들을 보내줄 용의가 있다.”며 협상을 계속하자고 요청했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죄한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며 (일본으로 돌아간)납북 피해자 5명을 북한으로 보내면 가족과 함께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북한은 “(가족들로부터)북한에 남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실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일본으로 가라고 명령할 순 없지만 가도록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자리엔 일본측에서 히라사와 의원 등 4명이,북한측에서 정태화 외무성순회대사(차관급)와 조·일교류협회 부회장인 송일호 외무성 부국장,노정수 외무성 제1차관보 등 5명이 참석했다.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북한이 남은 가족들을 돌려보낼 의사가 있다면 공식 외교채널로 연락해올 것’으로 보고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뉴스플러스/한나라, 귀환 납북자 보호법 제출

    한나라당은 28일 귀환 납북자가 남한 사회에 신속히 적응,정착할 수 있도록 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귀환납북자 보호정착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 탈북 국군포로 부부 北送위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 정부는 위조여권을 이용해 한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지난 17일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공안 당국에 긴급 체포된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사진·72)씨 부부 귀국을 위해 중국 당국과 교섭에 나섰다.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 이준규(李俊揆)총영사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용일씨가 국군포로 출신임이 거의 확실해 중국측에 전씨의 신변안전보장과 한국 귀국을 요구했다.”고 밝히고 중국 당국과 그의 귀국 교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총영사는 “중국 정부에 탈북자 전씨가 국군포로라고 전달한 이상 양국간 외교 마찰을 일으키면서 북송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씨의 강제북송 가능성을 일축했다. ‘전씨 부부가 국경지대인 투먼(圖們)의 탈북자 수용소로 압송됐다.’는 보도와 관련,주중 한국대사관측은 “아직 중국 정부로부터 그의 소재지를 통보받지 못했지만 투먼 수용소로 압송됐다고 해도 북송이 아닌,행정처리를 위한 조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씨 부부가 북한 송환 대기소로 알려진 투먼의 탈북자 수용소로 압송됐을 경우 강제 북송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씨는 지난 9월15일 탈북,대리인을 통해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국내 입국 의사를 밝혔으나 입국 조치가 지연되자 저장성으로 이동,부인 최은희(68)씨와 함께 위조여권을 소지한 채 항공편으로 입국하려다 체포됐다. 이와 관련, 대사관측은 “전씨 대리인으로 나선 K씨가 여권과 다른 이름으로 활동해 신분이 불확실했고 전씨가 국군포로 명단에도 없어 확인 작업이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대사관측은 이날 전씨의 자필 이력서와 국방부에 제출한 신분확인 요청서류 등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전씨측에서 주장하는 주중 대사관의 ‘문전박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사관측은 전씨에게 신원조회 등을 위해 베이징에서 기다리거나 베이징 총영사관내 탈북자 수용소에 들어오라고 제의했으나 전씨가 브로커 등의 사주로 위조 우대여권으로 성급하게 귀국하려다 체포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전씨 신분 확인 과정에서 정부의무성의 때문에 전씨의 남한행이 좌절됐다.”고 분노했다. 전씨의 입국을 후원해온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에 따르면,경북 영천 출신인 전씨는 지난 51년 군에 입대했으며 6사단 19연대 3대대 2중대 2소대에서 복무하다 53년 7월 강원도 금화군 제암산고지 전투중 북한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6·25전쟁 기간 북한에 억류된 사실이 공식 확인되고 구체적인 생사 여부와 신원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1186명으로 지난 1994년부터 올 9월까지 탈북을 통해 귀환에 성공한 국군포로는 32명이다. oilman@
  • [나의 건강보감] 백낙환 인제학원 이사장

    자신의 삶을 두고 그는 “외길이었다”.고 했다.자기 일에 일가를 이룬 그 연배의 한국인들 거개가 외길의 삶을 살았지만,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가 말하는 ‘외길’이 평생 한 가지 일만 했다는 일반적 의미보다는 ‘그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할 만큼 비장한 삶이었으며,그 길에서 우람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의미임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지금이야 병원이다,학교다 일이 많아 환자 보는 일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의사잖우.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정에는 참 무심했어.66년 미국에서 외과의사 연수 마치고 돌아와보니 아,집사람하고 애들이 세간을 팔아서 연명하고 있더란 말이야.기가 막히지.그렇게 살았어.” 학교법인 인제학원 백낙환(78) 이사장.주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70대 철인'이라고 말한다.전국 5개 백병원(서울·상계·일산·부산·동래백병원)과 김해 인제대학교를 일군 입지전의 주인공인가 하면,스스로는 결핵과의 사투에서 승리한 부도옹(不倒翁)이기도 하다.“해방 직전인 44년에 경성제대 의예과를 들어갔는데 1학년때 덜컥,폐결핵에 걸린 거야.당시엔 그 흔한 스트렙토마이신도 없었어요.그때 박병래 선생님이라고,성모병원장하셨던 분인데,그 분이 폐에 기흉(氣胸·폐 안의 공기 주머니)을 만드는 방법으로 치료해 주셨어요.폐결핵 걸리면 여지없이 죽는 때였거든.” ●4시 기상… 하루라도 못뛰면 좀이 쑤셔요 6·25때는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혀 낙동강 전선의 안동 야전병원으로 배속받아 이동하던 중 강원도 원주 부근에서 탈출해 구사일생했는가 하면 전쟁통에 아버지와 백부가 납북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하는 대중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이를테면 그의 노래인 셈인데,두 분이 이미 유명을 달리 했음을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신산(辛酸)의 삶에 그는 치열하게 부딪혔다.52년 군의관으로 제대한 그는 납북된 백부 백인제 박사가 해방 전 지금의 백병원 자리에 개원한 ‘백인제 외과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이곳이 지난 4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공익의료법인으로 설립된 재단법인백병원으로,지금 인제학원의 모태가 된 곳이다.그러나 말이 쉬워 입지전이고,부도옹이지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는 법.그는 여든을 지척에 둔 지금도 새벽 4시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벽달리기로 일과를 시작한다.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삼청공원 구간이 그의 조깅 코스.이젠 새벽 달리기가 체질화해 하루라도 못뛰면 좀이 쑤실 지경이다.벌써 40년째인 이 운동도 절박한 필요성에서 시작됐다.“꿈은 크고,할 일은 태산 같은데 심신이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면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의사는 여간한 마음으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그런데 백병원 초창기에 전 1인 3역,4역을 했어요.진료해야지,여기다 원장 행정업무도 만만찮아.또 사무장 일도 내 몫이고 당직까지 해야 했거든.이러니 몸이 배겨내나.그러다가 60년대 초 하루는 병원 식구들하고 도봉산 망월사라는델 갔지.지금 가보면 베이비코스야.그런데 너무 숨이 차 죽겠더라고.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맘먹고 달리기도 하고 등산도 하고 그랬어.”그 사이 달리기에 재미가 붙어 외국엘 가도 신발과 운동복은 반드시 챙겨가는 필수품이 됐다.얼마나 달리기에 빠졌나 하면 한번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달리다가 그만 미로에 들어 길을 잃고 정신없이 헤맨 적도 있다. ●주말마다 등산… 요즘엔 북한산 즐겨찾아 달리기와 이력이 엇비슷한 등산도 빼놓을 수 없다.“처음엔 남산을 오르내렸지.오전에 병원일 마치고 서둘러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어.남산이 저래봬도 꽤 가파르거든.그러다 보니 운동도 정리가 돼요.평일엔 달리길 하고,주말엔 산엘 오르는데,한가지만 하는 것보다 그게 매번 새로워서 좋아요.”요즘엔 집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북한산을 즐겨 오른다.정릉에서 보국문을 거쳐 태고사쪽으로 빠졌다가 거기서 요기와 독서를 하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식이다.예전엔 계곡에서 등목도 하곤 했다. 그의 운동은 결코 허섭한 마구잡이가 아니라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다.인제학원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당사계(仁堂四戒)’가 그것이다.그의 아호(仁堂)를 따 이름붙인 사계는바로 ‘소식(小食)’‘다동(多動)’‘금연’‘절주’를 이른다. 사계가 우리 국민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그는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생활습관병(성인병)의 상당수가 질정없이 먹어대 몸에 과잉 열량이 축적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암과 뇌졸중,고혈압 같은 순환기질환,당뇨병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 질환”이라고 지적했다.해방 전 중학교 4학년(지금의 고1) 때부터 중년을 넘길 때까지 ‘골초’로 불릴 만큼 담배를 즐겼으나 위궤양을 앓으면서 끊었고 평생 술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다동은 그가 일상생활을 통해 보여주듯 많이 움직이라는 뜻이다.그는 지금도 월요일에 서울 백병원에서 전체 회의를 주재한 뒤 다음날 부산으로 가 이틀 가량 부산·동래백병원과 인제대 업무를 처리하고 올라와,상계 백병원으로 출근하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그를 ‘한국에서 가장 바쁜 70대 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젊은 사람도 나동그라질 이런 일량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열정과 체력 때문이다.최근에는 맏딸인 인제대 보건대학원의 백수경 교수가 늘 동행해 보좌하지만 “아직은 아버님을 대신할 일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소식·多動·금연·절주' 반드시 지켜야 건강 그래도 그는 의사다.그 나이에 다른 운동이라면 몰라도 달리기가 좀 무리 아니냐고 묻자 “동물의 생명은 움직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인간의 노화를 막고 건강을 지키는 것은 놀라운 명약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역설했다.그의 얼굴에 “뜻을 가진 대장부는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며 노익장(老益壯)을 역설한 옛사람 마원의 기세가 홍조로 어렸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언탁기자 utl@ ■새벽달리기 이렇게 하세요 그는 새벽에 달린다.“새벽길을 달리는 기분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어.기분 좋거든.” 더러는 새벽운동이 해롭다고도 하지만 그는 체질화되면 도리없다며, 또 막상 해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다고 했다.“달리기는 전신에 고루 효과를 미치는 좋은 운동입니다.근력은 물론 심폐기능 강화,내장근육 단련 등 효과가 한둘이 아니지요.사람이 나이들면 근육이 위축돼 체격이 왜소해지는데 그 때도 운동 말고 다른 묘책이 없죠.” 요즘 그가 뛰는 거리는 2㎞ 안팎.10여년 전만 해도 3∼5㎞를 뛰었으나 나이들면서 체력이 달려 조금 거리를 줄였다.“젊은 사람들은 거리가 좀 짧다고 여기겠지만,운동은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적당하게 오래 하는 게 훨씬 좋아요.” 이런 에피소드도 소개했다.“YS가 대통령일 때 청와대에서 한번 뵐 기회가 있었어요.이런저런 얘기 끝에 조깅이 화제가 됐는데,그 분께 물었더니 매일은 아니지만 약 3㎞ 정도씩 뛴다고 해요.그래서 ‘나이에 비해 운동량이 많은 것 같으니 좀 줄이라.’고 얘기해 줬어요.나중에 주치의 얘길 들으니 그래선지는 몰라도 2㎞ 정도로 줄였다고 해요.그 정도면 충분하거든.” 그는 YS보다 한 살 위다. 운동을 오래할 요량이라 뛰는 속도도 빠르지 않다.성과에 급급하지 않기 때문이다.1시간 정도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준비운동과 본운동,마무리 운동을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이다.그렇게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몸이지만 기분도 상쾌해져 하루가 가뿐하다.그의 건강론이기도 한 ‘심신불이(心身不二)’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다.‘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평범하지만 값진 가르침이다. 일산백병원 스포츠의학과 양윤준 교수는 “사람마다 체력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고혈압이나 당뇨,고지혈증 등 순환기계의 문제만 없다면 최대 맥박수인 분당 150의 60∼80% 정도인 90∼120이 적당하다.”며 “노약자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약간 힘든 정도’로 운동하되 중요한 것은 운동을 자신의 몸 상태에 맞추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 “매순간 산소같은 방송역할에 최선”EBS 이사장 오른 방송인 김세원

    이 순간 내가/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9명 이사중 남자들 제치고 이사장에 EBS(교육방송) 이사장 김세원(58)씨를 인터뷰하면서 내내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나 궁금했는데 말미에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별 생각없이 어떤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피천득의 ‘이 순간’을 암송했다. 김 이사장은 80년 초 MBC의 ‘FM 가정음악실’을 시작하면서 시를 한 편씩 읽었다고 했다.그 후 20여년간 방송에서 낭송한 시가 줄잡아 7300편.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가 ‘이 순간’이니 그의 마음이 오롯이 투영됐을 것이다.‘이 순간’에는 이 순간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삶을 즐기고,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지난달 25일 9명의 EBS 이사 중 호선(互選)을 통해 남성을 물리치고 이사장에 뽑힌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 이사장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2학년 때인 1964년동양방송 성우 1기로 입사한 뒤 40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했다.70년대 ‘밤의 플랫폼’(동아방송) ‘안녕하세요 김세원이에요’(MBC)‘김세원의 영화음악실’(KBS),80년대 ‘FM 가정음악실’(MBC)을 거쳐 90년대부터 지난 5월까지 ‘노래의 날개 위에’(KBS)를 진행했다.그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목소리 덕분.심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저음이면서 정확하고,지적이면서 편안하고 감미롭다.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누군가가 ‘안개낀 날의 수은등 같은 목소리’라고 표현했는데 한동안 그대로 인용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는 목소리뿐 아니라 ‘이 순간’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항상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했지요.당연한 얘기이지만,방송인으로서 청취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정직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이다. “저 때만 해도 여성들은 결혼만 하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이제 여성들도 못할 일이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후배들에게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어요.기회가 왔는데 준비가 없어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도 TV다큐 내레이션 맡아 김 이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고,임화의 시 ‘인민항쟁가’에 곡을 붙인 월북 음악가 김순남(1917∼1983)씨다.‘해방공간의 가장 탁월한 천재 음악가’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 아내와 해방둥이인 두살배기 딸 김 이사장을 남겨두고 1948년 월북했다.그가 작곡한 노래는 88년 올림픽 때에야 해금됐다.그 후 그의 ‘자장가’는 신영옥·김신자가,‘산유화’는 조수미 등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언제 절실하게 느꼈을까.“6·25가 나서 엄마 손을 잡고 피란을 가는데,다른 애들은 아버지가 무동을 태워 가는 거예요.피란 시절,학교에 다닐 때도 선생님이 호구 조사를 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납치 또는 납북되셨는지 물었는데,‘지게꾼’이라거나 ’미국으로 유학가셨다.’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연좌제에 대한 공포로 숨을 죽이며 살다가 88년 납·월북 예술인 작품 해금조치 이후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그 때 아버지 친구에게 들었던 말들이 지금도 뇌리에 각인돼 있다.“순남이는 예술가야.” “순남이는 불의를 보고는 못 참아.” 90년대 초에는 베이징을 여러차례 드나들었다.아버지의 교향악곡 악보를 찾기 위해서였다.김순남은 53년 모스크바 유학 중 소환당한 뒤 ‘사상문예투쟁’에 휘말려 숙청됐지만 김일성이 “재주가 아깝다.”며 처형은 하지 않아 주물공장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북에서 결혼도 했지만 여자 쪽에서 아이를 낳지 못해 사내 아이를 입양해 키운 것으로 전해들었다.김 이사장은 그 사내가 미공개 악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사본이나마 입수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40년 방송경험 살려 봉사할 것” 월북 예술가의 딸이 보는 북한은 어떨까.‘경계인’ 송두율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버지는 자유주의자요,이상주의자인데 남에서는 좌익 음악가로 배척당하고 북에서는 부르주아 음악가로 숙청당했습니다.아버지는 정말 절망하셨을 거예요.90년대 초 모스크바에 갔을 때 처음으로 붉은 깃발을 봤는데 아버지를 기만한 깃발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김 이사장은 햇볕정책,북한에 퍼준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노 아이디어’라고 했다.북한이 아버지를 홀대했고,아버지의 좌절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요즘도 TV 다큐 프로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현역인 그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방송이 너무 오락성과 상업성에 치우쳐 있어요.방송의 역할을 새겨야 합니다.EBS가 대안 방송이 될 수 있습니다.산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EBS의 1년 예산이 1000억원 정도인데 300억원만 수신료와 방송발전기금 등 공적 자금이고 700억원은 자체 광고수입입니다.전체 운영예산을 늘려야 할 뿐 아니라 공자금의 비율을 대폭 높여 공영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남편 강현두(66) 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월남한 집안.친어머니(82)를 모시고 산다.쌍둥이 남매(34) 중 아들은 영국에서 미디어 법을 공부하고 있고,일간지 기자인 딸은 해외연수 중인 언론인 가족이다. 황진선기자 jshwang@
  • 김우중씨가족, 北형제 상봉 거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측 가족들이 오는 20∼25일 제8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해 북측 가족이 낸 만남 신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7일 “김 전 회장 가족들은 북측의 형 윤중(78)씨의 만남 요청에 대해 김 전 회장 등 가족들이 해외에 체류 중이며 너무 바쁘다는 이유 등을 들어,나머지 가족도 상봉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면서 지난 4일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생사주소확인 회보서에 이같은 상봉 거부 이유를 적어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2001년 5월 외화도피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로 수년째 외국도피 중이며,교육부 장관을 지낸 형 덕중씨도 해외에 머물고 있다. 앞서 김윤중씨는 지난달 중순 북측 적십자회를 통해 자신의 본적지를 제주도 제주군 애월읍 하귀리로 적시하면서 남측의 아버지 김용하(103),어머니 김평아(102),형 대중(82),동생 관중(72),덕중(70),우중(68),성중(65),영숙(여·64)씨와의 상봉을 신청했다.윤중씨는 가족과 헤어질 당시 서울여자의과대학 병원 의사였으며,아버지 김용하씨는 제주도 지사를 지낸 이듬해 터진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남북한 적십자사는 7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갖고 금강산에서 만날 이산가족 각 100명씩의 명단을 교환했다. 이도운기자 dawn@
  • NGO / 보수단체 ‘대표주자’ 바뀐다

    보수단체의 ‘간판’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대표적 보수단체로 꼽혔던 자유총연맹 등이 반공 이미지 탈피에 나서면서 영향력이 위축되고 있는 반면 북핵저지시민연대와 자유시민연대,민주참여네티즌연대 등이 최근 ‘반핵반김 자유통일국민대회’를 구성,활동하면서 보수단체의 신흥 중심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하는 집회를 주도해 위세를 떨쳤다.광복절인 지난달 15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국민대회’에서는 북한 인공기를 소각해 북한의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거부 소동을 촉발시킨 데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이 대회에 참가한 북한 기자와 유혈 충돌을 빚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보수진영의 재집결인가 이들 단체는 지난 3월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회원 1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핵반김·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를 개최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당시 보수진영에서는 이들의 집회를 보수진영의 재집결이라고 평가했다.이어 지난 6월21일에도 ‘반핵반김·한미동맹강화 국민대회’를,광복절에는 ‘8·15 국민대회’ 행사를 각각 개최하는 역량을 과시했다. 특히 광복절 행사에서 인공기를 소각,북한측이 남한당국의 사죄를 요구하며 유니버시아드대회 불참을 선언하는 소동으로 번졌다.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로 북한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결국 지난달 24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미디어센터 앞 광장에서 ‘김정일 타도,북한 주민 구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북한 기자와의 유혈 시비를 야기했다.이들은 또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충돌사태의 원인제공자로 자신들을 지목하자 이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서울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회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기자 테러만행 규탄대회’를 열고 북한 기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촉구하기도했다. ●기존 보수단체와의 차별성 이들은 반공활동 등을 표방했던 자유총연맹과 재향군인회 등과 노선을 완전히 달리한다.주로 반핵과 반 김정일을 표방하고 있으며,햇볕정책에도 강한 반감을 표시한다. 이 때문인지‘보수 원조’를 표방하는 자유총연맹은 지난 3월과 6월에 있었던 반핵·반김 집회에는 참여했지만 8월 집회에는 불참했다. 자유총연맹 관계자는 “우리는 극우가 아닌 개혁적 보수를 지향한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집회에는 참여하겠지만 과격한 주장으로 이념분열을 심화시키는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신흥 보수단체 중 가장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민주참여네티즌연대는 지난 2000년 젊은 네티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인터넷 독립신문 대표인 신혜식씨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신 전 대표는 독립신문을 통해 “정부가 국가를 좌경화로 운영하고 있다.”며 강도높게 비난하는 등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준호 현 대표는 지난달 20일 노 대통령의 ‘인공기 소각 유감’ 발언과 관련,청와대 앞에서 항의의 표시로 인공기를 두 차례 불태우다 모두 11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았다. 과소비추방운동본부 박찬성 사무총장이 대표로 있는 북핵저지시민연대는 지난해 10월 북한 핵개발저지와 핵문제의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발족했다.이 단체에는 전몰군경유자녀회와 대한무공훈장회,납북자가족협의회 등 28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무리한 햇볕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며 북한 핵폐기촉구 10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자유시민연대는 지난 2000년 11월 진보단체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며 월남참전전우회와 대한참전단체연합회 등 50여개 단체가 참가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출범 초기부터 참여연대와 전교조 등 진보 단체의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보수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해왔다.또 이라크 파병 반대에 맞서 정부의 파병안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말 없는 다수를 대변 이들 단체의 활동으로 국내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이 표면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실제 지난 3·1절 행사와 8·15행사 등에서는 충돌 우려가 현실화하기도 했다. 자유시민연대 관계자는 “그동안 진보단체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앞으로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말 없는 보수세력의목소리를 담아 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들 보수단체는 지난 대선을 전후로 만들어지기 시작해 한총련 합법화와 이라크전 참전논쟁,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 첨예한 보혁 갈등현안에 힘입어 급속히 세력을 키우고 있다.”면서 “진보단체를 견제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와 같은 국제적인 체육행사장에서 무책임한 행동을 해 불미스러운 일을 야기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韓·日 6자회담 공조 확인

    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은 22일 오후 외교부 청사에서 가와구치 요리코 일본 외상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지난 13·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3국 북핵정책 협의회를 통해 합의된 공동 대응방안에 이견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윤 장관은 “중국·러시아와도 협력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지적했고 가와구치 외상은 “참여국들이 북한에 명확한 입장을 전달,북한이 오해할 소지를 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가와구치 외상은 “일본인 납북과 북한의 탄도 미사일 문제도 포괄적 해결 관점에서 제기할 것이지만 이는 북·일 양자회담에서 교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방일영 前 조선일보 회장 별세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의 부친인 우초(愚礎) 방일영(方一榮) 전 조선일보 회장이 8일 오전 2시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80세. 평안북도 박천 출신인 고인은 조선일보가 폐간된 지 2년 뒤인 1943년 4월 당시 사장이던 할아버지 계초(啓礎) 방응모(方應謨)의 비서로 조선일보에 입사한 뒤 조선일보사를 56년간 이끌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 경영인의 한 사람이다.고인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방응모 회장의 뒤를 이어 1953년 사장에 취임,지난 93년 회장직을 물러날 때까지 조선일보를 한국 굴지의 신문으로 자리매김시켰다.회장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다가 99년 지병으로 은퇴했다. 6·25전쟁 중 30살의 젊은 나이로 사장 자리에 앉은 고인은 사옥이 불타는 등 열악한 상황에서 스스로 윤전기를 손질하고 사채를 얻으러 다니는 등 회사 재건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후 탁월한 경영능력과 인력관리를 통해 조선일보의 성장을 일궜다. 고인은 1963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이사장,1969년 아시아신문재단(PFA) 부이사장,1976년 IPI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했다.또 방일영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등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도 힘써 82년과 99년 각각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한편으로는 80년대 신군부와 유착해 조선일보를 키웠으며,코리아나호텔 설립에 특혜 의혹을 받았다는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족은 장남인 방 사장과 차남 용훈(勇勳)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 5남 1녀.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장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가릉동 선산.(02)760-2091∼2(서울대병원),(02)724-5110(조선일보사). 이종수기자 vielee@
  • [폴리시 메이커]통일부 윤미량 이산가족1과장

    ‘1&1(원 앤드 원)’ 통일부 윤미량(사진) 이산가족1과장이 추구하는 정책의 목표다.한 사람이라도 더,하루라도 빨리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다짐이다. 윤 과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1∼7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줄곧 직·간접적으로 담당해 왔다.지난해 10월 이산가족 주무 과장이 된 뒤에는 직접 금강산 상봉 현장도 방문하고 있다. 윤 과장의 이산가족 정책은 ▲현재의 제한된 상봉 채널을 최대한 활용하고 ▲앞으로 만남의 채널을 더욱 다양화하는 것이다. 윤 과장은 최근에는 비동수(非同數)·비동시(非同時) 상봉 추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북한의 이산가족 자원이 적기 때문에 남측 가족이 더 많이,더 자주 가야 한다는 것이다.또 금강산에 남북이산가족 면회소가 건설되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영상 상봉’도 추진할 계획이다.어렵지만 국군포로나 전시납북자들을 이산가족상봉 행사 때마다 드러나지 않게 포함시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윤 과장은 “6·15 이후 남북의 1399가족,7109명이 상봉했고,1만7000명이 생사를 확인한 뒤 서신을 교환했다.”고 밝히고 “아쉽지만 지난 85년 일시적으로 65가족이 상봉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윤 과장은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7차까지 진행되면서 차츰 덜 민감해지고,덜 이벤트적인 행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북한측도 다른 경협사안과 비교할 때 이산가족 문제는 비교적 유연하게 다루며 협조도 잘 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산가족 정책의 핵심은 공정성이다.윤 과장은 “1,2차 때 상봉가족을 선정하면서 정책적 배려를 했다가 부작용이 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기회균등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강영훈 전 총리도,심지어 이산가족을 이끌고 금강산에 오가는 적십자사 서영훈 총재도 아직 상봉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산가족 보도와 관련,윤 과장은 “다른 정책에 비해서 언론의 협조를 많이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윤 과장은 그러나 “노인들은 마음이 약해서 신문에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좋은 소식이 나오면 정말로 믿다가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날 때 쇼크를 받는 경우가 많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희망했다. 윤 과장은 남북적십자회담의 대표도 맡고 있다.여성이 적십자회담 대표에 임명된 것은 30년 회담역사상 윤 과장이 처음이다.올해 43세인 윤 과장은 마산여고,중앙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87년 행정고시 30회에 합격,통일부에 들어왔다.또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가 있는 영국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윤 과장이 특별히 연구한 분야는 여성학. 윤 과장은 이를 북한 여성 연구에 접목시켜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북한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납북자 가족송환 日 “이럴까 저럴까”

    |도쿄 황성기특파원|북한의 피랍자 가족 송환 타진을 1일 첫 시인한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북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일본 정부의 당혹스러움을 응축한 한마디이다.북·일 정부간 공식 채널이 완전히 죽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단체를 통해 가족 송환같은 중대한 문제를 타진한 북측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간 채널 이용에 당혹스런 일본 정부 북한은 왜 정부간 채널을 통하지 않고 친북 지원단체에 메시지를 전하는 우회로를 택했을까.북·일 관계소식통은 “강경파에게 무시될 것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아베 신조 관방부장관을 비롯,일본 정부 내 강경파에 의해 제안이 묵살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북한이 민간단체의 간접 공표를 통해 송환제안의 기정사실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자칫 수면하에 잠복할 뻔했던 송환 의향 전달은 일본의 비정부조직(NGO)인 ‘레인보 브리지’의 1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화됐다. 잔류 가족을 북에 두기보다는 돌려보냄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많다고 판단한북측이 별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송환시킴으로써 얼어붙은 북·일 관계 타개를 적극 시도하겠다는 시그널로 풀이되는 대목이다.이날 니혼 TV에 출연한 북한 전문가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교수도 “북한이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하스이케·지무라 두 가족의 자녀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선별 송환 수용 여부 고심중 오코노기 교수는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11월의 총선(10월의 중의원 해산을 전제로)이라는 정치일정도 하나의 변수”라면서 다자회담이 시작되는 시점에 잔류가족의 송환문제가 나온 것은 북측으로 볼 때는 시간계산을 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낙승이 점쳐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자민당 총재)의 자민당 총재 재선이 반대세력의 총결집으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납치문제의 ‘제한적 해결’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적잖은 득점요소이다.여세를 몰아 중의원 선거에서도 여당 승리의 동력으로 삼을 공산은 충분히 있다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부담도 있다.일본 정부는 가족 전원의 귀국,사망했다고 전한 피랍자의 안부확인,150개항에 이르는 질문에 대한 회답 등 3가지를 납치해결의 전제로 삼고 있다.일부 잔류가족의 송환만으로 납치문제를 마무리짓겠다는 것 아닌가 일본측은 우려하고 있다.그래서 고이즈미 총리는 31일 “잔류가족의 전원 귀국을 요구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또 하나의 변수는 피해자 가족모임이다.20년간 결속해 온 이들 가족이 “전원 귀국을 원한다.”고 일부 송환을 거부할 경우 정부가 무시하기 힘들다.납치 피해자나 북한 내 가족 입장에서 본다면 우선 한명이라도 귀국시키고 봐야 한다는 인도적 의견도 제기있다.일본 정부로서는 선택에 적잖은 어려움을 안게 됐다. marry01@
  • “납북日人 가족 송환 교섭중”고이즈미 日총리, 본지 보도 간접시인

    |도쿄 황성기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얼굴) 일본 총리는 31일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을 인도할 의향이 있다는 이날자 대한매일 보도와 관련,“보도가 있건 없건,가족을 전부 돌려보내도록 (교섭)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4면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일본 국내단체로부터 북한측 의향을 전달받았느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그동안 북한에 체류 중인 납치 일본인 가족들의 송환을 놓고 두 정부간 물밑 접촉이 계속돼 왔음을 시인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대한매일 보도의 사실 관계를 일본 정부가 확인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일본 정부는 몇 차례나 수면 아래서 교섭하고 있기 때문에 확인한다,안 한다는 문제가 아니다.(가족을 일본에)돌려보내도록 지금까지도 (교섭을)진행해 왔고,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매일 보도 이후 일본 정부가 북한 당국과 접촉했는지 여부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그러한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보도되든지 되지 않든지 교섭한다.”고 덧붙여 송환을 둘러싼 일본정부의 의지가 확고함을 밝혔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격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피랍 가족의 송환 문제가 벼랑끝 외교를 펼쳐 온 북한의 대화 노선으로의 변화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납치 사건은 양국간의 인도상의 문제로 핵과는 떼내어 결단할 수 있다.”면서 핵과 납치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을 보였다.앞서 대한매일은 31일자에서 일본과 한국 내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북한이 일본 내 단체를 통해 “일본에 돌아간 하쓰이케 가오루(45) 부부와 지무라 야스시(48) 부부의 북한 내 가족을 조만간 돌려보낼 뜻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같은 의사를 일본 내 북한 지원단체에 전달했으며 이런 피랍 가족 송환 의사는 31일 중 일본 정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 정부는 부인했다. 한편 ‘북한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 요코타 시게루(70)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서 귀국한 비정부조직(NGO) 회원이 29일 밤 ‘중대한 정보가 있으니 하스이케 등 세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단체는 ‘레인보 브리지’로 대북 지원을 해온 단체로 전해졌다.레인보 브리지는 1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세한 경위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marry01@
  • “49년‘국회프락치사건’ 대표적 왜곡사건이지”/오늘 55주년 제헌절맞는 제헌의원 김인식 옹

    209명 가운데 단 둘만 남았다.제헌절 55돌을 맞는 제헌국회 의원은 김인식(金仁植)·정준(鄭濬) 옹뿐이다.그나마 17일 국회에서 열리는 제헌절 행사에는 김옹만 참석한다.정옹은 요즘 당뇨 증세 등으로 거동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헌절을 하루 앞둔 16일 국회에서 만난 김옹은 참으로 정정했다.1913년생이니 올해 만 90세다.160㎝ 가량의 땅땅한 체구였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이를 가늠키 어려웠다. “감회가 어떠십니까.”하고 물으니 세상을 뜰 걱정을 먼저 했다.“죽고나서가 걱정이지.다들 돌아가시고….한 분은 병석에 있지.나마저 가면 어찌되나 몰라.또 어떤 왜곡된 말들이 나올지 말야.살아있어도 이렇게 말들이 많은데…” ●“어떤 일들이 왜곡될지…” 김옹은 ‘왜곡’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을 꼽았다.“반공주의자 아니면 당선이 안 되던 시절이야.그런데 무슨 빨갱이라고 몰아붙여.당시 한민당에서 무소속이나 다른 당 의원들이 말을 안 들으니까 만들어낸 사건이야.” 김옹도 이에 연루될 뻔했다고 한다.“나중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만하자고 해서 흐지부지됐더랬지.나도 문턱까지 가지 않았드랬어.내래 황해도 해주 출신인데 무슨…” 그러고 보니 거센 이북 사투리가 더욱 강하게 들린다.“고향 땅에서 공산당들이 하는 짓거리를 두 눈으로 다 봤지 않았겠어.그래서 월남한 거이지.남로당 조종을 받았다는 게 말이 되나.” 그는 지금도 월북한 의원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했다.모두 납북됐다는 주장이다. 제헌 국회의 총 의석수는 300석이었다.이 가운데 실제 선거가 치러진 곳은 198곳.북한 몫으로 100석을 남겨 놓았고,제주는 4·3사건으로 인해 3개 선거구 가운데 2곳에서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이후 제주와 기타 보궐선거 등으로 11명의 의원이 추가로 선출돼 209명을 제헌의원이라고 했다.공식적으로는 6·25 때 10명이 학살당하고,51명이 납북된 것으로 돼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 국회 프락치 사건을 통해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가 와해된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 ‘소장파 전성시대’로 불린 제헌 국회에서 소장의원들은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통일운동과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으나 이 사건으로 소장세력이 무력화하고 친일파가 득세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발의 김옹은 국가보안법을 발의한 주인공이다.“정권을 절대로 공산당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국보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없애면 안돼.햇볕정책? 김정일은 말을 듣지 않아.김대중 정권부터 북한에 말려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질 않아.불안해.” 김옹은 여러차례 이 말을 강조했다.인터뷰 도중 제헌절을 앞두고 문안 인사차 찾아온 김두관 행자부장관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제를 돌렸다.“요즘 정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그랬더니 “오늘날 정치인들 물질 만능에 휩싸여서…”라고 했다.아마도 최근 여권의 대선자금 파문을 지칭하는 듯했다. ●적산가옥,국회 결의로 거절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헌의원들 집이 없어 되겠느냐고 했다는 거라.적산가옥을 하나씩 주라고 했어.국회 사무총장이 보고하더라고.그런데 우리가 반대했지.아,국민이 먼저 잘 살아야지.국회에서 결의해서 안 받았어.국방장관이 의원 개개인에 지프차를 준다고 했어도 그거 안 받고 걸어다녔어.제헌의원들은 그렇게 살았어.” 그가 소개한 제헌 국회의 또다른 사례.“제헌 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잖아.그런데 5·10선거에 당선된 뒤 연장하자는 주장이 있었거든.그러나 ‘그래서야 되겠느냐.헌법 만들고는 물러나야 한다.’고들 했지.(의원을)정 또 하고 싶으면 선거해서 다시 들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정치 행태로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도 금방 눈에 띄었다.“그 때도 한민당에서 다른 의원들 불러다 입당하라면서 술대접도 하고 춤도 추고 그랬다.”는 것이나,김옹 자신도 “고향사람에게서 5만환이라는 ‘거금’을 받아들고 선거를 치렀다.”는 사실이 그랬다.40년대 말에도 돈 없이 선거 치르기 어렵고,정치판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마지막 제헌동지회장 국회수첩 뒷부분에 보면 ‘국회 유관단체’란에 ‘제헌동지회’가 등재돼 있다.김인식 옹이 회장이고,정준 옹이 감사로 돼 있다.이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제헌동지회는 아마 사라질 것이다.19대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옹은 이제 임기가 끝나면 20대 임기를 ‘무기한’으로 할 계획이다.더 맡을 사람이 없어서다. 김옹은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귀향한 뒤 45년 대동청년단 서북사무처장을 맡았고 인천 옹진을에서 당선됐다.와병 중인 정옹은 1915년 생으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으며,김포에서 당선된 뒤 3·4·5회 4선을 지낸 데 이어 MRA(세계도덕재무장)세계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지운기자 jj@
  • 이산가족 500명 추석 상봉 / 서울·평양 교환방문 합의

    남북한은 오는 추석(9월)에 즈음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남과 북 각각 400∼500명으로 크게 늘려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실시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29일 금강산 해금강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위원장과 두 차례 개별만남을 통해 이같이 제안했으며,장 위원장은 “그렇게 해보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밝혔다. 서 총재는 “북측이 인원수가 적어 어렵다면 남북이 상봉자 수를 똑같이 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입장도 개진했다.”고 말했다.서 총재는 또 전쟁 중 납북되거나 실종된 이정순(당시 서울신문)·이길용(동아일보)·방응모(조선일보)씨 등 언론인 225명의 명단을 북측에 전달하고 이들의 생사와 안부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금강산 면회소 건설 규모와 관련,장 위원장은 “6·15 공동선언 3주년을 기념,면회소가 통일의 상징적 건물·거점으로서 역사적인 큰 건물로 지어져야 한다.”면서도 그동안 주장해온 2만평 규모를 다소 축소할 수 있다는 융통성을 보였다. 한편 남측 가족 475명과 대한적십자사 요원 등 7차 이산상봉 2진 556명은 30일 예정된 북측 가족 100명과의 상봉을 위해 30일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를 출발한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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