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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선자치 2기 1돌…성과와 과제](中)지역이기주의 갈수록 기승

    자치의 부산물로 자치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지역 이기주의가 민선 2기 들어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체장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무위로 그치기일쑤고 여기에 소지역 이기주의마저 확산,자치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대구 달성군은 민선 2기 출범과 함께 25년 숙원사업인 군청사 이전사업에착수했다.남구에 있는 청사를 달성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여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청사이전 문제가 본격 거론되자 군의회에서 관련예산을 삭감하는 등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리 지역이 아니면 안된다’는 각 읍면의 지역이기주의가 빚은 결과다. 온천개발을 둘러싼 경북 상주시와 충북 괴산군,보은군간의 갈등도 민선시대지역이기주의의 한 단면에 다름아니다. 상주시가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남한강 상류인 화북면에 문장대 온천관광지 조성을 추진하자 괴산군을 비롯,남한강수계 주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괴산군은 온천이개발되면 강의 오염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반발하고 있고 상주시는 이를온천개발지와 20㎞ 떨어진 속리산 집단시설지구의 상권 보호를 위한 술책이라며 맞받아치고 있다. 지역이기주의에 밀려 자치행정 자체가 실종된 경우도 있다.부산 사하구에서는 2개 병원이 올해 장례식장을 신축했으나 인근 주민들이 주거환경 악화와교통난 가중 등을 이유로 반대,개장을 못하고 있다.사하구는 주민 설득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자 병원측에 개장의 불가피성만을 통보한 뒤 아예 손을 떼버렸다. 경북도청 이전문제도 서로 ‘우리 지역이 아니면 안된다’는 각 시군들의지역이기주의에 부딪쳐 결국 수억원의 용역비만 날린채 흐지부지됐다. 이기주의를 부추기는데는 지역언론이 큰 몫을 차지한다.지하철 건설 등 국비지원사업과 대기업 빅딜 등 해당지역의 이해와 관련된 사안마다 지역언론이 가세,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같은 지역이기주의는 ‘내고장 사랑’과 ‘지역이기’를 제대로 구별하지못하는데서 비롯된다. 경북 영진전문대 지방자치연구소 김진복(金鎭福)소장은 “생산적이고 건전한 경쟁이 내고장 사랑이라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자세는 지역이기”라며 “이 둘은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려는 자치단체의 노력은 아직은 미미하다.지역이기주의를 해소시킬 목적으로 결성된 광역행정협의회와 시·도분쟁조정위원회는 오히려 지역이기에 밀려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실정이다.자치단체들이주민반발을 의식해 행정협의회를 기피하고 있는데다 협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지방의회가 반대하거나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강제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영남대 우동기(禹東璂·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이기는 국가 균형발전의 저해는 물론 결국 새로운 지역갈등을 야기시킨다”며 “자치단체 또는 주민들이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건전한 경쟁마인드를 갖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외언내언] 북한주민 강제이주

    북한은 지난해부터 평양과 지방도시 거주자 200만명을 지방과 농촌으로 강제이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4월2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배포한 자료에 의하면 인구가 361만명인 평양의 경우 98년부터 5년에 걸쳐 100만명을 단계적으로 줄이고,지방은 2001년까지 100만명을 농촌으로 이주시키는 ‘주민재배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이번 주민 강제이주 사업은 전체 주민의 8%에 해당하는 숫자로 북한정권수립 이후 최대규모의 강제이주라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이주 대상자는 무직자와 범법자 등 성분 불량자와 지방출신자,농촌연고자로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강제이주를 모면하기 위해 자살을 하거나 이혼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으며 이주자와 토착민간에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또한 뇌물수수 등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당과 행정간부를 폭행하는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金日成 사후 金正日정권 구축과정에서 부패척결과 사상검열을 통해 적발된 주민들이 퇴출대상이 되고 있어 북한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은 현재 남한 출신자와 해외이주자,북송 일본인 가족 등에 대한 동향파악과 사상검열을 강화하고 있어 강제이주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더욱이 90년대 이후 극심한 식량난과 함께 폭력,밀수,매춘,뇌물수수등 각종 사회범죄와 비리가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강제이주 대상자는 전체주민의 10%를 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장애인·난쟁이 등 정부차원의 사회복지 대상자를 산간 오지로 이주시키는 비인도적 정책을 추진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약 30%의 주민 재배치 사업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사회주의 지상낙원을 입버릇처럼 외쳐왔던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거주의 자유마저 박탈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공민은 거주·여행의 자유를 가진다”는 북한 헌법 제75조 규정은 사문화된 채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이어지고 있는 주민강제이주 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북한판 사회주의의 허구는 물론 비인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따라서 북한당국은 주민들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열심히 일한 대가만큼 살아가는 인간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북한 사회주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청수 논설위원
  • MBC 5부작 특집다큐멘터리 ‘통일’

    통일 이후 남북의 통합과정에서 벌어질 일을 가상으로 엮은 MBC 5부작 특집다큐멘터리 ‘통일’(연출 박신서,정호식,김학영)이 오는 11일∼15일 밤11시 방송된다. 흡수냐 무력이냐 등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통일의 방식은 논외로 건너뛰었으며 통일 한국이 독일,예멘,베트남 처럼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다는 전제에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가상시나리오의 시작은 북한최고인민회의의 무조건 통일선언.역대합실에서 TV를 보던 남한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북한주민들도 기쁨에 들뜬다.그러나 낭만적인 축하분위기는 잠시.이질적인 두 체제가 통합하는 길목마다 경제,사회,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실향민들은 서둘러 고향땅을 밟으려하지만 북한주민의 대거 남한이주를 우려한 정부는 당분간 휴전선 철책을 유지한다. 2∼4부는 통일이 말처럼 간단하지도,감상적이지도 않음을 갖가지 가상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이는 80여개 통일관련 연구소와 귀순자 100명의 인터뷰를토대로 했다.이와함께 1부에서는 외국의 사례와 통일의 순기능등을 짚어보고,5부에서는 통일비용 산정과 부문별 통일준비를 점검한다. “통일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과정으로 접근해야 하며 빠른 통일보다는바른 통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박신서 책임프로듀서의 설명이다.李順女 coral@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건국이후 인구변화(대한민국 50년:19)

    ◎49년 첫조사 20,188,641명… 96년엔 갑절로/55년 간이조사 전에는 추계… 정확성 의문/6·25전쟁기간 150만명 희생… 사망률 4%/60년대부터 공업·도시화 영향 대규모 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49년 5월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회 인구조사’였다.이 때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으로 파악됐다. 한국전쟁 중인 50년과 51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발표가 남아있다.50년 2천35만6천명,51년 2천44만1천명이었다.그런데 이 인구조사 발표는 실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49년의 조사를 토대로 각도 도지사의 보고에 의한 추계였다. 52년과 53년에는 내무부의 추계가 남아있다.52년 2천52만6천명과 53년 2천1백54만6천248명이었다.53년의 인구가 전년도보다 1백만명 이상 급증한 것은 배급을 늘리기 위한 유령인구 때문으로 추측된다.54년 보건사회부의 인구통계는 2천1백91만3천명이었지만 이도 실제조사가 아니라 전년도에 기준한 추계이다.결국 정부가 발표한 50년부터 54년 사이의 인구 수는 정확하지 못하다. 55년 제1회 간이 총인구조사가 실시됐는데 상주인구가 2천20만2천256명이었다.이는 현역 군인과 형무소 수형자 등을 뺀 숫자이다.한국전쟁 시기의 인구 증가율은 1.1%였다.그러나 한국전쟁후 베이비 붐이 일어 55년 이후 66년까지 인구 증가율은 2.8%를 기록했다.그러다가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된 66년부터 85년까지는 1.7%로 떨어졌다. ○증가율 2.8% ‘베이비 붐’ 정부 수립후 인구의 변동은 경제문제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1인당 국민소득은 44.5달러에 불과했다.따라서 국민총생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액 1억7천9백59만3천달러는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부족했다.한국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인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산시설은 ‘저고용­저소득­저고용’의 악순환 고리를 이어갔다.폭발적인 인구문제의 해결은 60년대 경제개발을 통한 지속적 성장 밖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 결과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인구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우선 한국전쟁은 일시적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를 초래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 중 사망자는 약 1백만∼1백5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인구의 사망률은 1천명당 36∼47명,즉 4% 안팎으로서 평소 한국인의 사망률인 평균 2%의 2배나 됐다.이같은 현상은 60년과 66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각각 30∼49세 및 35∼49세의 연령층에서 과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반면 전쟁기간 동안의 0∼9세의 영아 및 아동의 사망자 가운데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았다.이것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들과 아이들의 경우 전통적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아를 되도록 보살핀 때문으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45만∼72만명 월남 추정 전쟁기간 중의 출생률은 극도로 저하돼 같은 기간의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인구의 절대 감소현상을 초래했다.이때의 출생률은 평상시보다 1%나 낮아졌으나 인구 증가율이 당시에는 1년에 1천명당 23명으로 늘어났었던 데 비해 전쟁기간 중이었던 49∼55년 사이에는 연평균 1천명당 11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변동의 또다른 충격은 인구의 대규모 이동현상이다.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월남인구의 추정치는 45만∼72만명에 이르고 있다.반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강제로 납치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넘어간 이들의 수도 대략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것은 60년대부터인데 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물론 공업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화의 결과였다. 61년 이후 인구 분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지역은 수도 서울이었다.서울은 정부수립 직후인 49년에는 전인구의 7.1%를 차지했고 11개 시·도 중 인구 수로 따져 9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75년에는 이미 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90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또 오늘날에는 전인구의 22%가 넘는 1천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 ○86년 도시인구가 65% 그러나 서울과 부산,그리고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는 전국 인구에 대한 구성비에 있어 감소 추세를 보였다.인구이동을 도시와 농촌으로 구분하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55년 25%에 불과했던 것이 80년에는 57%,86년에는 65%에 달해 도시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70년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어느 정도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농촌인구가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특히 마산 울산 포항 등의 새로운 공업도시와 수도권의 성남 안양 수원 등에는 우리나라 전도시의 평균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수립후 49년 첫 인구조사에서 남한의 인구는 2천18만8천여명이었으나 96년 조사된 인구는 4천6백43만4천여명으로 50년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日 전쟁 동원 인구 해방후 엄천난 逆유입/日帝와 美 군정 시기의 인구/도시주변 戰災民으로 반공체제 정착 큰 역할/46년 1,936만명 조사/이듬해 국민등록 실시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특히 37년 이후의 전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경험했다.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촌을 떠나 일본과 만주 등으로 이주했다.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 기간동안 이른바 노무 동원 또는 강제 징용 등에 의해 북한의 광공업지역과 일본으로 동원됐다.39년에서 해방 전까지의 기간에 국내외에 걸쳐 전시체제와 관련한 유동인구는 약 7백만명으로 45년 현재 국내 총인구 수의 약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인구이동 규모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일제 말기의 인구이동 현상은 해방직후에는 역으로 대규모의 인구유입 즉 귀환을 초래했다.여기에다 남북 분단의 체제대립적 성격을 반영하는 이른바 월남민들이 발생했다.해방 직후 남한사회는 단기간 안에 엄청난 인구유입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첫째는 유입인구가 자신의 성장지역인 농촌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지역의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상당수가 도시 주변에 전재민(戰災民)으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이는 해방정국의 사회적 불안정성과 긴장을 높이는 주요한 변수가 됐다. 둘째는 유입인구가 계급적 성격과 사회적 경험 등에 따라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정치적 격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해방 직후 월남민들이 우익세력의 선봉대였으며 남한사회가 반공체제로 귀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역사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미군정청에 의해 46년 8월25일 실시되었다.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은 제외됐다.이 통계는 44년 조선총독부의 국세(國勢)조사 인구에 미군측이 파악한 식량배급 인원과 외부로부터의 유입인구를 고려해 작성됐다.이 때 조사된 남한 인구는 총 1천9백36만9천270명이었다.따라서 이 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군정청은 이어 47년 국민등록을 실시했다.등록 인구는 총 1천9백88만6천234명.다음해 다시 실시한 국민등록에서는 2천2만7천393명의 인구가 등록됐다.미군정청이 실시한 국민등록은 의식주 및 생활 필수품의 확보와 배급계획의 수행,앞으로의 선거 등을 대비한 것이었다.
  • 동북아 경협 학술대회 정우식 박사 발표 요지

    ◎북 노동력 유입 정책 대응 긴요 ‘제5회 동북아 경제협력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29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한국 미국 일본 몽골 등 4개국 28명의 경제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여기서 ‘노동력 역내 이동과 통합:남북한’이란 주제로 북한의 경제개방의 파장과 전망,남북한 통일뒤의 경제구조의 변화 등에 대해 발표한 정우식 박사(50·미국 콜로라도대학 경제연구소)의 글을 소개한다. 중국 북동부와 몽고를 포함한 전소련연방의 극동지역을 망라한 극동아시아의 경제통합 경향은 이웃하는 모든 나라에 새로운 정치경제적 영향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북한경제의 변화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북한으로 부터 2백만명 이상의 노동인력이 남한으로 이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같은 노동력 이동은 남한경제에 여러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북한노동력의 이동에 따른 남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노동시장,산업구조,수출입구조 등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공업 경쟁력은향상 우선 노동시장을 보면 북한은 미숙련 단순 노동자로 추정되기 때문에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반면에 산업생산량의 증가에 힘입어 남한내의 고급 노동인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따라서 임금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올라갈 것이다.따라서 소득분배불평등의 심화가 더욱 크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또한 점차 미숙련 노동자의 실업 역시 증가하여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미숙련 노동자들의 고용비중이 큰 경공업산업,서비스산업은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전제 산업에서 이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국내 임금상승으로 수출경쟁력을 상실한 경공업제품의 경쟁력은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변화는 이미 구체적으로 파악되고 있다.이처럼 사전에 예상된 구조변화는 남북통일이 남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사전에 수립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미시적인 접근방식으로 우선 기초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각 산업 노동수요와 현재 나타난 부족한 인력을 결합하여 산업의 총수요를 유효화하고 이중 얼마가 유입된 노동에 의해 대체될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그 다음 산업별 생산함수를 이용하여 생산량을 예측하고 산업별 연관효과의 변화를 추출해낼수 있다. ○산업별 수요 재조정을 미시적인 결과를 종합하면 전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나타나는 바 이는 곧 물가와 총생산 그리고 수출량을 변동시켜 거시적인 분석을 통해 재조정해야 한다. 이렇듯 남북한의 통일은 남한경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다.여기에 북한이 내부적 갈등이나 외부적인 힘에 의해 급격하게 붕괴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남한은 북한 안전적 변화를 이룩하도록 힘써야 한다.
  • 연세대 통일연 세미나 구성렬 교수 주제발표 요지

    ◎통일후 노동시장 단기통합 부적절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원장 이영선 교수)은 10일 연세대 알렌관에서 독일의 킬 세계경제연구소 클라우스 디터 슈미트교수 등을 초청,‘독일통합과정에 비춰본 한국경제 통합전략’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이날 연세대 구성렬 교수(경제학과)는 ‘남북한 노동시장 통합에 관한 정책제안’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발표내용 요약은 다음과 같다. 북한은 곧 정치·경제적 체제의 급작스런 붕괴에 직면할 것이고 남한에게는통일이 강요될 것이다.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통일은 북한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면서 남북한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것이다.경제통합의 과정은 생활필수품의 이동이 이뤄지고 난뒤 가격의 동등화가 이뤄질 것이다.북한의 식량공급제도 폐지에 이어 생필품 시장은 통합될 것이다. ○탈계획경제 시간 필요 체제통합은 북한 경제의 사유화와 시장화를 필요로 한다.하지만 통합 과정의 장애물들 때문에 시장통합의 속도는 가변적이다.집단생산제도의 철폐와 사유화 작업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노동시장의 통합은 북한주민들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고 계획경제를 없애야 하는 만큼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 당시에도 현재와 같은 남북한간 생활수준 차이가 계속된다면 북한주민들의 남한 대량유입이 예상된다.가장 큰 이유는 가족상봉이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인데 있다.북한 주민들의 남한 이주는 임금격차와 고용의 기회,생계비 차이에 달려 있다. ○북 주민 대량유입 예상 집단생산체제에 있는 북한 주민들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면 절반정도가 실업상태에 빠질 것이다.북한 주민들의 남한 이주는 남한이 수용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2∼4배일 것으로 예측된다.남한 자본의 북한 유입이 없다면 남한 근로시장 수용능력의 7배에 달할 수도 있다.까닭에 통일이후에 노동시장의 급작스런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주민들에게 체제적응기를 줘야 한다. 북한주민들의 성급한 남한으로의 이동을 막기 위해 일정기간 이주 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사유화 및 재산 분배과정과 연계시킨다면 효율적일 것이다.통일한국은 독일처럼 고임금 정책을 채택할 수 없을 것이다.남한 국민에 비해 절반수준인 북한 주민들의 생산성을 감안해 그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줘야 한다. ○북 산업구조 재조정을 이와함께 이주를 최소화하려면 가까운 미래에 남한을 따라잡을수 있다는 기대감을 북한 주민에게 심어줘야 한다.기대감을 충족시키려면 북한 주민들의 소득상승율을 사전 예고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북한의 생산성은 산업구조 재조정과 생산체제의 개혁으로 제고할 수 있다.또 임금보조금도 보장돼야할 것이다.남한 기업이 북한에 진출을 권장하기 위해 기업들에 대한 재정적인 인센티브제도의 도입도 바람직하다.대규모의 공공투자 프로젝트는 시장경제제도의 도입을 뒷받침할 수 있다.북한의 생산성제고를 위해 과감한 산업구조 재조정작업도 필요하다.이렇게 해서 비효율적인 남북간 주민 이동과 불필요한 사회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 시집 ‘북한기행’

    ◎따뜻한 가슴으로 그린 ‘분단 현실’/고목밑에/녹슬은 철모하나/…패랭이꽃 한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남은 ‘풍요의 비극’ 북은 ‘빈곤의 비극’ 현실 통탄 〈…비애의 절정을 딛고 선 보릿고개는/해발 1만 미터 상공에서 /이지러진 속세의/비운을 탄식한다/고개 너머엔 무엇이 기다릴지/허망한 꿈을 안고/타박타박 무거운 발길이/허기진 세상/가파른 황톳길을 덮고 있었다〉(‘원산가는 길목에서 만난 보릿고개’중에서)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65)가 최근 북한의 모습을 한권의 시집 ‘북한기행’(문학사상사 펴냄)에 담아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 교포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 시집 출간을 위해 서울에 왔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기관지 ‘민족문학’의 주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억을 헤아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이끌어가는 ‘1급문인’.특히 이번 시집은 분단 52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을 서정적인 시어로 고발한 ‘기행시집’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모두 4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서 김씨는 분단현실이 낳은 북한의 참혹한 정황과 정경을 이데올로기를 넘어 따뜻한 시인의 가슴으로 그린다.시인은 남한에는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북한에는 ‘빈곤과 굶주림의 비극’이 휩쓸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그리고 ‘죽음 아니면 통일’을 목청껏 외친다.〈…가슴에도 걸려 있는 가시철망을 거두어/용광로에 처넣어 쟁기를 만들고/가벼운 저 구름 하­얀 넋이 되어/남과 북 훨훨 거침없이 날아봤으면…〉(‘녹슨 철보망 앞에서’)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의 한은 상감령 마루 전투에서 산화한 병사의 영혼에도 어김없이 깃들여 있다.〈포탄에 허리 잘린/고목 밑에/녹슬은 철모 하나/뚫어진 탄구멍을 비집고/패랭이꽃 한 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휴전선 상감령 마루에서’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병사의 소망과 그리움이 마침내 풀꽃이 되어 통일의 넋으로 피어있음을 시인은 절절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김씨는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우리말을 아름답게 구사하고,민족전통의 원형을 살려내 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원로시인 구상씨는 그를 탁월한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그의 시편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심미적 정서의 표상인 ‘멋’과 ‘한’의 가락이 배어 있다.그는 긍·부정간의 이념적 당위성이나 선입견 없이 오직 사무사한 시심으로 노래한다”는게 구상시인의 말이다. 전남 곡성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부모를 따라 중국 길림으로 이주한 김씨는 57년 첫 시집 ‘변강의 마움’을 낸뒤 25권의 우리말 시집과 두권의 중국어 시집을 냈다.이번에 나온 ‘북한기행’은 88년과 89년에 각각 나온 장편서사시 ‘동틀 무렵’(동광출판사)과 ‘샛별전’(을유문화사)에 이어 한국에서 펴낸 세번째 작품집.중국의 ‘계관시인상’과 극소수의 문인에게만 주어지는 ‘국가특수공헌상’을 수상한 김시인은 지난 91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수여하는 제2회 ‘한국해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 강원대암·사명산­경기 화악·석룡·축령산/‘희귀식물’집단서식 확인

    ◎대암산 고산지대 천연늪 ‘희귀식물도감’/5개산 조사서 멸종위기 식물 다수 발견 강원도 대암산 용늪과 사명산,경기도 화악산 등지에 멸종위기에 놓인 희귀식물이 상당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 환경관리청(청장 주수영)은 19일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과 양구군 사명산,경기도 가평군 화악·석룡·측령산 등 5개 지역의 자연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끈끈이주걱과 금강애기나리,금강초롱 등 상당수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대암산 용늪은 해발 1280m 높이에 3,15㏊ 넓이로 펼쳐져 있는 남한에 하나밖에 없는 고산지대 천연늪으로 이번 조사에서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비로용담,처녀치마 등이 발견되었다. 강원도 양구군의 사명산에서도 멸종위기의 금강애기나리 태백제비꽃 금낭화 큰앵초 한국특산종인 산앵도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 가평군 화악산에서는 특정 야생식물인 금강초롱과 희귀종인 닻꽃 털댕강나무 등이,석룡산 일대에서는 금강초롱 금강애기나리 도라지모시대 등이 살고 있다. 측령산에서는 금강제비꽃 금강애기나리 모데미풀 만주바람꽃 홀애비바람꽃 등 북방계 희귀식물과 남방계 희귀식물인 자주과불주저미 등이 함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북한흡수 통일 비용 1조불/미 국제경제 전문가 전망

    ◎난민남하 차단·대규모 대북투자 필요/외국자본·공공차관 도입책 마련돼야 【워싱턴 연합】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할 경우 통일비용으로 10∼25년에 걸쳐 1조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미국 국제경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마커스 놀랜드씨가 전망했다. 놀랜드 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7∼8월호)에서 만약 북한이 붕괴되고 남한의 북한 흡수 방식으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진다면 북한주민의 대량 남하가 촉발될 것이며 이들을 북한에 묶어두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대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그 비용은 비록 10∼25년에 걸쳐 분할투입된다 해도 1조달러는 족히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는 ‘북한이 이럭저럭 넘어가려는 이유’란 기고문에서 낙관적 시나리오가 전개된다 해도 북한인들의 대남이주 의욕은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며 그 잠재력은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휴대하고 하루 32㎞를 걸을수 있다고 가정할 때 북한주민의 40%가 걸어서 단 5일이면 비무장지대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한은 북한난민의 대량남하를 막기 위해 비무장지대를 난민차단벽으로 계속 유지하든가,북한 주민이탈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대북투자를 실현하는 등 두가지 방법중 택일할 수 있을 것이나 전자의 방법은 비무장지대를 뚫고 남하를 강행하려는 북한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등의 정치적 난관을 수반하는 것으로 쉽사리 선택될 수 없다.그렇다면 한국은 국민의 조세부담을 최소화 하면서 북한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자본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외국자본 특히 외국 민간자본의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놀랜드 연구원은 말했다.민간자본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 차관과 같은 공공기금의 지원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 미 21세기에도 초강대국으로 남을까/폴 브래켄(지구촌 칼럼)

    미국은 최근에 떠오른 태평양지역의 강대국이다.1846년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한뒤 캘리포니아·아리조나·뉴 멕시코주 등 미 남서부의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게 됐다.이 전쟁기간동안 동부지역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영국통치하의 오레곤·워싱턴주 등 북서지역으로 이주해 왔다.‘오레곤 산길’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개척자들의 이주로를 통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은 미국의 세력팽창을 가져왔다.미국이 태평양상에서 존재를 드러낸 것은 1847년 이후였다. ○미 냉전시대 세계 지배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새로 획득한 이 해안 지역으로부터 확대됐다.1850년대 미국은 일본에 국제무역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했다.급기야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필리핀을 첫 해외식민지로 삼기에 이르렀다.미국이 아시아에 군사적 발판을 마련한 이후 미국은 1백년동안 아시아에서 최대 군사강국이 됐다.1930년대 많은 사람들은 영국이 아시아에서 최대 군사강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최대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모두 틀린 생각이었다. 미국은 유럽에서 나치제국을 멸망시키는 동시에 일본을 패배시킴으로써 아시아에서 군사적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이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냉전시대에 미국의 위치는 확실했다.유럽에서의 군사적 균형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지원하는 소련사이에서 항상 찾아야 했다.소련은 한 곳외에 다른 곳에 위협을 줄만한 경제적·기술적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유럽에서처럼 도전이 없었다.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과 중국 모두를 지배했다. 사실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와 한국에서의 분단상황은 미국의 힘에 대한 제약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들은 제한된 도전들이었다.이는 여론이 미국은 이곳에서의 분쟁을 기본적 전략변화가 일어나는 수준으로까지 확대하지 말도록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상황이 달라졌다면 의심할 바 없이 미국은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곳에서의 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태평양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에 역사가준 교훈을 무엇일까.다른 강대국과는 달리 미국은 적은 비용으로 태평양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다.태평양을 향하는 대륙 강대국이 되기 위한 1846년의 미국의 팽창은 쉬운 편이었다.멸망해가는 멕시코제국과 세계 수많은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영국과 싸웠기 때문이었다.이후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라는 약체 국가들과 국경선을 사이에 두게 됐다. ○소의 미사일위협 못느껴 역사적으로 미국은 국경선 너머로 외국의 군사적 위협에 한번도 처해 보지 않았다.미국의 안보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때 안전했다.이는 안보는 의당 그러려니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미국의 도시에 소련의 미사일 위협이 나타날 때인 냉전시대 전까지 미국은 전쟁이 미국의 영토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냉전시대에서 조차 소련의 미사일 위협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결과적으로 이는 국민들의 인식에 안보에 대한 개념을 깎아내렸다. 영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없는 미국의 안보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자.한국은 1950년이후 분단됐다.한국은 수도 서울에 불과 80㎞ 떨어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60만 병력과 대치해 있다.빈번한 남북한간의 충돌은 한국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있다.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침략이 가능하며 이는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은 1930년대 일본의 대규모 공세에 시달렸으며 유혈 내전도 치렀다.일본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금도 미국에 의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베트남은 수십년동안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다. ○미 낙관주의 지나쳐 이 모든 것이 미국과는 다른 안보개념을 나오게 하고 있다.미국에서는 자기 집이나 가족방위처럼 대상이 분명한 방위가 아닐지라도 국민적 여론을 일으킬 필요가 있으며,여론을 일으킬 높은 명분이 필요하다.일본에 대한 전쟁은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보복과 악마로 비쳐지는 군사정권을 파괴하고자 하는 필요성에서 출발했다.냉전시대에 공산국가들은 미국에 자신들이 미국은 아닐지라도 미국의 원칙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악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결집력을 과장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아직도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위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미국의 국가이념은 낙관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는 자유스런 안보의 역사에서 비롯되고 있다.미국이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역사적 경험으로 고통을 받았다면 외교정책의 본질이 숙명론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아시아에서 전략지역이 변화하고,중국이 점차 힘이 세지고,일본이 서서히 군사력을 증대시키고,한국이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모종의 해결방안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미국의 입장은 많은 새로운 위험을 안게 할 것이다.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보다 부유해지고 힘이 강력해지는 상황에서 미래를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이는 시간이 지나야 판명될 일이다. 미국이 태평양 강대국으로의 부상은 약 1세기전부터 시작된 최근의 일이다.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력은 떨어져 나갔다.대만같은 곳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 결단력을 시험하고 있다.특히 이러한 도전들은미국에게 20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태평양 강대국으로 남아있게 될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 “통합모델 제시”… 제1기 남북통합교실을 마치고

    ◎남·북 이질감 대화로 녹였다/서로간의 무지·무관심이 화합의 장벽/남북한 주민 모두가 적응훈련 필요/공통의 목표찾아 서로 접근해 나가야 통일 앞당겨 중앙대학교 민족발전연구원 산하 체제적응연구센터가 통일시대에 대비,사회통합과 체제통합의 모델을 정립한다는 취지로 지난 3월 문을 연 「제 1기 남북통합교실」이 14일 종료식을 가졌다.매주 토요일 3시간씩 9주간 진행된 남북통합교실에서 10명의 북한 귀순자들은 「남한사회 적응프로그램」에 따라,20명의 남측 수강생들은 「남한주민의 북한 바로알기프로그램」에 따라 서로를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체제적응연구센터 소장인 이상만 교수(48)와 김수행 연구부장(40·북한 기업인 출신),김남준 대외섭외부장(35·북한 군인출신),수강생으로 참가한 강철환씨(30·북한 정치범수용소출신)등 4명은 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남북통합교실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상만 소장=수고 많으셨습니다.귀순자들의 남한사회 정착과 적응을 돕기위한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북한 관련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남북한 사람들이 직접 부딪히는 실질적 체험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김남준 섭외부장=처음하는 사업이어서 어려움이 많았지요.적합한 강사를 섭외하고 수강생을 모으는 일이 어려웠습니다.유관기관으로부터 많은 오해도 받았습니다.「정부가 알아서 할텐데 왜 앞서가느냐」는 식이었지요.그러나 이제는 통합교실의 필요성을 인정,2기 수강생을 주선해주는 등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김수행 연구부장=처음에는 남쪽 수강생들은 귀순자들이 무섭게 생기지 않았을까 겁을 내기도 했고 북쪽 수강생들은 무슨 효과가 있을까,북의 정보만 얻어가려 하지 않나 반신반의했었지요.실제 기업체 사원이나 대학생 등 남쪽 수강생들이 어느 정도 이같은 욕심을 가졌을 것입니다.그러나 함께 토론하면서 모든 의심들은 사라졌습니다. ▲강철환씨=결국 벽을 허문 것은 대화였습니다.장영철씨도 처음에는 동독에서 유학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상당히 고자세를 보였습니다.하지만 동학(같은 반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대화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지요. ▲김연구부장=수업을 통해 느낀 것은 남쪽 수강생들이 통일문제에 관한 토론에 약하다는 점입니다.통일에 대해 추상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지요.그러다 보니 귀순자들을 접했을때 이질감을 갖게 됩니다.북한 사람들의 관습과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소장=가장 큰 논란이 컸던 것은 「우리」라는 개념이었습니다.여만철씨의 딸 금주양이 첫 토론시간에서 「귀순자를 우리의 일부로 보느냐」는 문제를 제기해 격론이 벌어졌지요.「형·아우 이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씨=북쪽 수강생들에게 「우리」라는 개념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귀순후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그들은 내가 북한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라는 틀속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나도 똑같이 남한사람으로 모든 것을 느끼고 싶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이성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연구부장=「형·동생 이론」은 남·북이 서로 우월의식을 갖고있음을 뜻합니다.북한 주민의 의식속에는 「통일은 곧 신분상승의 기회」라는 등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통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통일이 되면 최소한 일선 공장의 작업반장이라도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지요.한편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경제적·문화적으로 혜택을 베풀어주기만 한다고 생각합니다.서로 자신을 형이라고 생각하는 우월감이 근본적인 견해차를 만들어 냅니다. ▲이소장=하지만 형·오빠라는 단어가 있어 30명의 남·북 젊은이가 9주만에 「우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습니까.(모두 웃음) ▲이소장=통합교실은 단기적으로 이탈주민의 체제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일후의 「사회적 정서통합 통일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1기 통합교실은 이질화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성과를 거뒀습니다.앞으로 정부 등에서의 재원을 지원하면 남쪽 사람들이 사회주의체제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캠프를 설치하는 등 단계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김섭외부장=1기 통합교실을 통해 사회적응이 북한주민뿐 아니라 남쪽주민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소장=적응은 한쪽의 문제가 아닙니다.통일 독일의 이주민 문제를 실제로 다루었던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소장인 게르하르트 미셀스씨는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인 지점까지 도달할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공통의 목표를 찾아 서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연구부장=학생들도 이같은 인식을 갖고 자신부터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지금은 어느 누구도 통일모델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어느 체제에 적응할 것인가」「누가 누구를 적응시킬 것인가」하는 원초적인 문제들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강씨=서로간의 이해와 지식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요.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누군가 도와주려고 할 때 괜찮다는 뜻으로 『일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합니다.남한에서는 이 말이 건방지다고 느껴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요.또 남한에 처음와서 당황했던 것 중의 하나가 남한의바른인사 습관이었습니다.북한에서는 간부들에게나 인사를 하지 그외 사람들에게는 인사를 거의 하지 않거든요. ▲김섭외 부장=「남북통합교실」은 이같은 무지와 무관심을 해소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최종적으로는 통일후의 사회통합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초가 되고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산파가 되어야 합니다. ▲김연구 부장=통합교실에서의 「실험결과」를 정리해서 이질화를 나타내는 현상들을 분류한 뒤 각각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해야 통일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현재로서는 자료의 축적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강씨=「남북통합교실」을 통해 남한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남북이 같은 민족이고 통일후 함께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이 교실이 남·북 화합을 위한 출발점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정리=이지운 기자〉
  • 귀순아들 권유로 「동토의 땅 탈출」/북 가족 감격의 「서울재회」

    ◎94년 탈북 홍진희씨 일가 셋 입국/외화벌이 지도원 등 2명도 함께 지난해 1월 귀순한 북송 재일교포 2세 홍진희씨(28·고려대 중어중문 1년)의 일가족 3명과 탁영철씨(25·신의주 경공업대학 기계학부 5년)등 북한 주민 2명 등 모두 5명이 29일 하오 5시10분 대항항공 602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순했다. 귀순자는 홍씨의 어머니 주영희씨(49·가내협동조합중앙회 농장원),여동생 경화씨(26·비닐신발공장 노동자),남동생 진명씨(20·농장원)와 탁씨,최명동씨(51·군부대 소속 외화벌이지도원) 등이다. 이미 귀순한 탈북자의 나머지 가족이 북한을 탈출,잇따라 귀순한 것은 처음이다. 주씨 가족의 귀순은 서울에 있는 큰 아들이 눈물겨운 뒷바라지를 한 끝에 이뤄졌다.이날 공항 입국장에서는 홍진희씨가 북한을 탈출한 지 4년3개월만에 만나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주씨는 『무사히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특히 지난 2월 중국에 머물때 북한 공안요원들의 감시를 따돌려 준 중국 교포들에게감사한다』고 말했다. 주씨는 특히 『지난해 12월 함경남도 단천의 한 아파트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하루에 평균 2∼3명씩 목격했다』고 폭로,북한의 식량사정이 크게 악화됐음을 증언했다. 주씨 일가족과 함께 이날 귀순한 탁씨는 『재학 중인 신의주 경공업대학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국의 KBS 사회교육방송을 청취,남한 실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면서 『이 사실이 사회안전원에게 적발돼 신변에 위협을 느껴 탈북했다』고 말했다.한편 최씨는 언어 장애를 겪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씨는 61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으나 첫 남편과 사별했고 93년 3월 맏아들 진희씨가 중국으로 탈출한 뒤 직장에서 쫓겨나 94년 1월 함남 허천군 상남리의 외딴 산촌으로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했다.주씨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96년 7월 재혼한 뒤 단천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재혼 한달만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 연길에 갔다가 맏아들이 외화벌이 요원때 알고 지내던 조선족 동포를 만났고 그를 통해 96년1월 한국에 귀순한 맏아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진희씨는 그때 어머니에게 탈북을 권유했고 이후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으며 탈출계획을 세웠다. 주씨 일가족은 북한의 최대 국경일인 김정일의 생일 하루 전인 지난 2월15일 함남 단천에서 회령 부근의 상봉으로 이동,17일 밤 두만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진희씨가 부쳐준 2천만원을 탈출자금으로 사용,중국의 연길·심양·청도 등지를 거쳐 탈북 31일 만인 지난 3월20일 홍콩으로 밀입국해 망명을 신청했다. 이들이 망명한 뒤 우리 정부는 홍콩측과 두달여에 걸친 망명협상 끝에 무사히 귀순시켰다.
  • “통일한국 외자 2조4천억불 필요”/독지「25년간 소요자본」전망

    ◎북 주민 대거 남하막게 적극 지원해야 【베를린 연합】 오는 2000년 한반도 통일이 이뤄진다면 향후 25년간 총2조4천억달러의 외국자본이 통일비용으로 투입돼야 할 것이라고 독일의 경제전문주간지 「비르트샤프트 보헤」가 30일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미 워싱턴 국제경제연구소 마르쿠스 노랜드 연구원의 「한반도 통일비용」 관련 논문을 인용,『한반도 통일이 성사되려면 국내는 물론 외국자본에까지 의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대규모 자본투입에도 불구하고 사태악화를 막기가 힘겨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랜드 연구원은 『2000년 통일이 이뤄지면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북한의 12배에 달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의 대규모 남하가 우려된다』면서 더욱이 한국인구의 약 절반 규모인 2천3백만명의 북한주민중 약 40%는 도보로 5일이면 휴전선에 도달할 수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주민의 『대규모 이주사태를 막으려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한국의 6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한국은 『25년간 1조2천억달러를 북한에 지원하고 외국자본도 2조4천억 가량은 들여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랜드 연구원은 또 2000년부터 25년간 통일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주간지는 반면 독일의 경우 서독인구의 4분의1에 불과한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이 통일직전 서독의 25%에 이를 정도로 조건이 좋았으며 때문에 동독재건을 위한 막대한 재원에도 불구,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1%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북 주민을 로봇으로 착각말길/척 다운스(해외논단)

    북한 지도자들이 북한 주민들을 자신들의 로봇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북한체제 붕괴라는 사태에 대응할수 없을 것이라고 척 다운스 미국기업경제연구소(AEI)아시아연구실부실장이 최근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그의 기고문을 요약한다. 최근 북한에서 일가족 17명이 남한으로 탈출한 것을 보면서 한국사람들은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스탈린주의 국가가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김경호씨(61)는 지난해 뇌졸증을 앓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15명의 가족과 북한 안전요원을 이끌고 지난해 10월26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그의 일가족은 무려 27일 동안 낯선 중국땅 3천200㎞를 여행해 조선족의 인도를 받아 홍콩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많은 사람들중 한사람이다.그는 남한출신이란 죄아닌 죄로 북한당국에 의해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회령으로 강제이주 당했다.그 목적은 그들이 남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기 위함이지만 그들은 다행히도 미국의 뉴욕에 사는 그들의 친척인 최영도씨와 연락이 닿아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일가 17명 탈출의 함축 이들의 탈출 성공은 한반도에서 정치적 상황이 어떤가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했다.중풍을 앓는 사람이 5명의 어린이와 임산부까지 포함한 인원을 탈출시킬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북한을 탈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서울의 한 전문가는 그러나 이들의 탈출은 특이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북한이 붕괴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무리라고 말한다.전후 북한으로부터의 탈출자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1990년에 최다수를 보인뒤 계속 증감을 거듭,현재는 다소 줄어든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미국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친척이 없었다면 탈출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그들은 또 앞으로 중국이 이같은 탈출을 좌시할 것 같지 않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과의 연결망은 확고하게 보이며 이들의 탈출을 도운 사람들은 금전적인 유혹에서라기 보다는 민족적 동질감에서 그랬다고 보인다.탈북가족 17명에게는 금전적인 후원이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그리 이상스러워 보이지 않으며 그 돈은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동독이 쓰러져갈때 서독은 동독으로부터의 탈출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1인당 7만달러나 쓴 것으로 집계됐다.그같은 사업은 『인간교역』이라고 알려졌다.김씨 가족의 탈출을 위한 한사람당 비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들리는 또 다른 형태의 회의는 북한 사람들이 로봇이라는 것이다.이 견해는 북한사람들이 세뇌됐기 때문에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 이론은 빌리 브란트의 동독접근책과 유사한 북방정책이 없이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생활의 이점이나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분단된 한국에서의 상황은 과거 분단됐던 독일의 상황과 유사하다.동독에도 독일의 TV방송이 전달되지 않는 지역이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지역에도 입을 통해서 뉴스는 전달됐다.그리고 독일을 통일할 사람들에게 투표의 기회가 왔을때 그 지역의 사람들도 자유에 대한 강한 선호를 나타냈다. 인민들을 자유롭게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찾고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 보편화된 서양 사상이다.북한인들이 보안체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은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 ○「자유」갈구는 보편사상 북한체제가 진리를 억압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비교적 정확한 뉴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더욱 넓게 퍼져나갈지 모른다.한국인구의 10%가 넘는 5백만명이 북한에서 태어났다.그들은 북한에 있는 친척들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그들이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 교류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믿기는 어렵다. 북한 지도자들이 북한 주민들은 노예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한다면 그들은 북한의 붕괴나 붕괴로 이어질 주민들의 대이동이라는 사태를 대비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한 북한 지도자들은 또 주민들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강한 요구에도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미 기업연 아시아연구실 부실장/정리=최철호 기자〉
  • 한국사회문화연 통일세미나 주제발표 요지

    ◎김정일 승계시기 내년말 유력/경제난 해결책 못찾아 주석취임 미뤄 한국사회문화연구원은 17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통일이 왜 안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다음은 방찬영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장,안두순 서울시립대교수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김정일정권의 변화 가능성과 북한체제의 향방(방찬영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장)=김정일은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체주의적 통제와 억압」을 강화할 것이고 또 군부의 역할을 보다 강화시키고 있다.북한은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 등 새로운 지도적 인물이 없으므로 김정일체제는 지속될 것이다.만약 김정일정권의 경제관리 불능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파국에 의해 체제가 일시적으로 붕괴한다면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의 붕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반대로 김정일체제가 어떤 정치적·군사적 집단의 거사에 의해 붕괴한다면 북한체제는 일시적 주권의 붕괴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새로이 정권을 쟁취한 인물이나 집단이 북조선의 당면한 경제·사회적 난국을타개하기 위해 남한과의 상호협력과 화해를 제의하게 될 수도 있다.이와 같은 사태가 발전한다면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을 여는 기회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언제 김정일이 당총비서및 국가주석으로 승계할 것인가를 전망하기 의해서는 지금까지 김정일이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의 승계를 지연시키게 된 배경과 그 사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김정일의 주석및 당총비서직의 승계를 지연시켜온 가장 결정적인 이유중의 하나로 태양과 같은 김일성의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가 국가주석과 총비서를 승계할 경우 북조선사회가 당면한 경제적·사회적 난국과 침체를 치유하고 개선할 구체적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는데 있다.지난 95년 8월 북한이 겪은 극심한 홍수는 경제난을 가중시키는데 기여했다.이런 점으로 미루어보면 승계가 내년 말까지 연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북통일의 사회경제적 비용(안두순 서울시립대 교수)=통일비용은 소모적인 경비가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위한 투자다.통일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첫째,정경분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부·기업·민간부문간의 분업체계를 통해서 동시다발적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해야 한다.둘째,준비없는 상황에서 통일이 다가오면 과도기를 설정하고 이 과도기동안 북한전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위기관리는 물론 체제전환준비와 남북한주민들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기간을 주어야 한다. 경제특구방식이 채택될 경우 한시적인 이주의 자유제한,보호주의산업 육성,마셜플랜식의 대규모 원조계획 등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된다.정치적으로 1국가1체제로 북한을 즉시 포용해야 하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적응을 위한 과도기를 설정하고 이 기간에는 북한 전역을 하나의 경제특구처럼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하여 대규모 개발계획을 시행해야 한다.구체적인 조치로는 남북경계선의 점진적 개방,북한경제의 한시적인 보호,인민재산에 대한 구 소유권의 포기와 북한주민들의 생활기반 조성,북한주민을 위한 대규모 원조계획 수립,북한재산 소유권 처리를 위한 기구 설립 등이다. 통일비용의 시산으로 인하여 공연한 오해와 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는 해소되어야 한다.충분한 이해가 없는 국민에게 엄청난 통일비용 금액만 제시하는 것은 통일에의 거부감을 유발시킬 위험이 있다.통일비용은 경제논리 이전의 것으로 통일이라는 고유가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출하겠다는 기본자세가 필요하다.
  • 「조선족문제 어떻게 풀까」 연재를 마치고/전문가 초청 좌담회

    ◎들뜬 「코리안 드림」 잠재우기 선결 과제/국제법 등 무시한 감상적 접근은 부작용만 불러/입국제한 강화… 자치구 경제활성화 방안마련을 많은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취업사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조선족 사이에 반한 감정도 일고 있다.「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등 시민단체들은 1만여 피해가구가 모두 3백3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이에 정부는 종합대책을 마련,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취업사기를 뿌리뽑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피해 조선족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펴고 있다.지난 6일부터 6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족문제 어떻게 풀까」 시리즈를 마치면서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유병랑 법무무 출입국관리국장,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등 관계 전문가 3명을 초청,조선족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아봤다. ▲김교수=조선족 사기 피해사건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중국동포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외교경로와 국제법을 무시한 감성적인 접근법은 오히려 우리 정부와 중국에 있는 동포들의 입지를 좁게 할 우려가 높습니다.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여 중국동포 문제를 민족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다 보면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이총장=전적으로 동감입니다.중국에 있는 조선족은 우리와 같은 민족임에는 분명하지만 엄연한 중국 공민,즉 중국인입니다.일부에서 「중국교포」등으로 잘못 표현하고 있는데 「중국동포」「조선족 동포」가 적절합니다. ▲유국장=현재까지 모두 17만명의 중국동포가 국내에 입국했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이 가운데 4만5천여명이 지금도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며 또 이들 중 대부분이 비자의 방문기한이 지난 사람들입니다.상당수가 불법체류자라는 뜻입니다. ▲김교수=지금가지 3차례 중국 용정(용정)등의 농촌지역을 방문했습니다.그때마다 확인한 것은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식당 종업원에게 「한국에 한번 오라」는 흔한 인사말을 건네면 이 말을 믿고 빚을 얻어 초청을 기다립니다.이에 중국의 조선족 자치구 고위 간부들도 한국 방문을 주선하겠다며 우리 돈으로 1인당 2백만∼3백만원을 받는 취업사기를 저지르고 있습니다.물론 일을 추진하지도 않고 피해자들이 항의하면 한국측에 잘못을 전가합니다.그럼에도 중국동포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그들의 말을 믿습니다. ○입국 희망자 60만 넘어 ▲이총장=「한국에 가면 팔자가 핀다」는 「코리안 드림」이 만연해 있습니다.사기를 당한 사람도 많지만 큰 돈을 번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그런 탓에 지금도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오겠다는 사람들이 60만 명도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무작정 입국 문호를 개방할 경우 국내 노동 인력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예상됩니다. ▲김교수=동감입니다.현재 정부에서 입국제한 완화조치를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입국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즉 입국은 강화하되 중국동포들이 중국 현지에서 자생력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조선족 자치구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유국장=최근 중국 조선족 자치주를 방문했을때 자치주의 고위 당국자로부터 자유시장경제의우수성을 배울수 있도록 입국 제한을 완화하고 산업연수생의 수도 늘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현재 정부도 이같은 방향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물론 얼마나 늘릴 것인가는 관계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산업연수생 소협의회」에서 정할 문제입니다.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동포도 우리와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궁극적인 대안을 찾아야 하지 현재처럼 일부의 「졸부」를 양산하는 정책을 펴서는 곤란합니다. ▲김교수=조선족 문제를 풀기에 앞서 근본적인 발생 원인부터 조명해야 합니다.같은 조선족이라도 경제력과 상황의 지역차가 큽니다.즉 연변은 주로 함경도 지방에서 건너간 사람들이고 흑룡강성 주변은 일제 때 남한에서 건너간 이주민,요령성은 평안도 사람들이 많습니다.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내에 온 모국 방문단은 주로 흑룡강성 사람들이었습니다.이들은 요령성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그러나 연변은 사정이 다릅니다.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했고 살기도 어렵습니다.결국 이들이 「코리안 드림」의 막차를 탄 셈입니다.이 결과 이들의 약점을 노리는 사기가 극성이고 피해의 충격도 매우 큽니다. ○연변일대 경제 좀먹어 ▲이총장=연변에 가면 노래방,가라오케 등이 성행인데 대부분 초기에 한국에 와서 떼돈을 벌어간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입니다.큰 돈을 벌었으나 돈을 쓸줄을 몰라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합니다.이 점이 연변 일대의 경제를 좀먹고 해체위기까지 몰아가고 있습니다. ▲유국장=최근 조선족의 자치경제가 해체되고 있습니다.조선족의 농지는 방문 자금을 마련하느라 팔리고 있고 한족에게 대리경작도 시키고 있습니다.조선족 자치주에 한족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이에 중국 정부는 이탈자가 많은 조선족 연수생 보다 묵묵히 일만 하는 한족 연수생의 비율을 늘려 달라고 요구합니다. ▲김교수=중국 정부의 조선족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방조입니다.우리 국민인데 너희(한국)가 왜 간섭이냐는 식입니다. ▲유국장=「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에서 접수한 피해사례 660건에 대해 전국 검찰에서 철저한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혐의가 드러난 50명에 대해서는 출국 금지조치를 했습니다.엄정한 형사처벌과 함께 민사 변제를 권유하고 있습니다.중국 공안당국에서도 2천명에 달하는 밀항자들을 적발했습니다. ▲김교수=중국 동포들은 자본주의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어떻게 하면 쉽게 일하고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궁리합니다.때문에 국내에 취업할 경우 여자는 식당,남자는 건설현장의 단순 노무자로 일합니다.이들이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할 일도 없고 직장도 없습니다.돈은 벌었으나 삶의 터전이 없어졌으니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방황합니다. ○피해 변제방안 찾아야 ▲이총장=중국 조선족 자치구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수익성 보장이 어려워 민간기업은 나서지 않습니다.중국동포 취업사기와 관련,단순한 사기범들을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 변제방안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피해도 구제하고 재판의 편의성을 위해 피해자들만이라도 입국시키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유국장=정부는당면과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검찰수사를 할 방침입니다.언론이나 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입국 특례방안을 검토해 봤으나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사기피해를 입은 중국인은 중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일면 상대적으로 영리한 사람들입니다.이들에게 헤택을 주는 것은 형평의 원리에도 어긋납니다. ▲김교수=무엇보다 한국은 불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중국의 모든 동포들에게 인식시켜야 합니다.허황된 「코리안드림」을 잠재우는 것이 시급합니다.중국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우리 동포문제에 대해 2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습니다.사기피해는 한국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면서도 중국동포는 엄연히 중국국민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보다 냉정히 중국동포에게는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우리도 실익을 거둘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 어둠의 공화국(이철수 대위의 증언:4)

    ◎전기 하루 5시간 공급… 밤이면 “암흑세상”/군서 중동에 무기팔아 군수품 자체 조달/나진·선봉지역 이주하려 뇌물 제공 만연/제대준비 군인들 식량약탈·도둑질 등 행패 잇따라 ▷전력난◁ 북한의 전력사정은 북한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요즘 북한 전 지역에 「전깃불」이 공급되는 시간은 잘해야 하루 24시간중에 다섯시간 정도이다.평양도 마찬가지다.중심구역만 불이 오고 나머지는 다 「새까맣다」.야간비행을 해보면 남한은 완전 「불바다,불천지」이고 북한은 암흑세상이다.내가 살던 평안남도 온천은 김일성·김정일의 특가(별장)가 있어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온천에서 가까운 황해남도 과일군의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력사정이 가장 안좋은데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3시간 정도만 불이 들어온다.그곳 주민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일을 한다.비행사들은 과일군에 「미개도 정전군 등잔리」라는 별명을 붙였다.전깃불이 안 들어오니 텔레비전을 볼래야 볼 수도 없고 냉동기(냉장고) 등이 아예 필요도 없다. 전기공급이 안되니 공장또한 가동되지도 않는다.그래도 군수공장,강철공장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공장에는 전기가 공급되지만 강철공장의 경우 전압이 낮아 「전기로」가 10개라면 그중에 3∼4개만 가동된다.심지어 전기기관차같은 것도 1시간 정도 잘 가다가 정전돼 3,4시간 연착되기 일쑤다.기차가 「가다 서다,가다 서다」한다는 뜻이다. ○TV·냉장고 쓸모없어 공장이 가동된다고 해도 본래의 물건을 생산하지 않는다.가령 농기계공장이라면 농기계 대신 장사할 수 있는 물건들,즉 구멍탄 집개·자전거 등을 만들어 판다.공장 자체가 장사를 해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공장원들에게 노임도 주고 중앙당에 올리기도 한다는 말이다.그래서 북한사람들 사이에 「북한도 자본주의 다 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석유사정만 나쁜게 아니다.석유가 없으면 대체에너지인 석탄이라도 많이 캐야 하는데 이 또한 그렇지 못하다.북한 텔레비전을 보면 전기를 이용한 기계로만 석탄을 캐는데 그것은 텔레비전의 선전일 뿐이다.북한의 탄광은 일제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이 곡괭이로 석탄을 채취한다.굴이 무너져 숱한 사람들이 죽지만 「동발목」(갱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모자라 일손을 놓고 있다.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한뒤 북한은 탄광에서 쓸 나무조차 모자란다.북한주민들 사이에 나도는 「개 팰 나무도 없다」는 말은 북한의 다급한 사정을 잘 말해준다.나무가 없어 굴을 뚫을 수도 없고,먹을게 없어 배가 고픈 노동자들은 일을 안한다.연형묵 전 총리가 90년 초 『전력난을 뚫자면 탄광이 잘돼야 한다』며 90년초 탄광에 간 일이 있다.하지만 연총리가 갱안에 들어갔는데도 탄부들은 일을 하기는 커녕 담배만 피우고 앉아있었다.탄부들은 연총리가 당황하면서 『왜 일 않는가』라고 묻자 『죽으러 갱도에 들어가는가.당신이나 한번 직접 해보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북한 군의 돈벌이◁ 경제사정이 나쁘자 중앙당은 군대도 자체 외화벌이를 해 일정액을 올려보낼 것을 독려하고 있다.인민무력부산하 「2경제위원회」에서 무기개발및 군수품조달등을 맡고 있고 「15국」은 러시아제를 토대로 개발한 각종 무기를 외국에 수출한다.자동소총,자동권총,14.5㎜ 고사총,박격포,자주포,미사일 등이 이란과 이라크,리비아,시리아,이집트,짐바브웨 등 북한의 영향권에 있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에 팔려 나간다.무기를 팔지 않고는 1백만명이 넘는 인민군대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인민무력부는 쌀·간장·된장 외에 군복·신발·속내의 등 모든 군수품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북한군의 또다른 외화벌이수단은 금광개발이다.사금을 줍고 금을 캐는데 군인들이 동원된다.인민무력부의 연간 금 생산계획은 20t이다.각 군단별로 생산량을 배당한다.공군사령부의 배당량은 2t.실제 각 군은 금을 캐기 위해 병사들을 동원한다.「외화벌이 부대」가 따로 있지만 정식명칭은 아니다.임시적 개념의 비편제 부대인데 각 연대·중대·소대별로 1명씩 뽑아서 사단에 올려보내면 사단에서는 각 부대에서 올라오는 500∼600명정도의 병사들을 모아 금광을 개발하고 사금을 채취한다. ▷북한 군의 부패상◁ 북한 군의 식량배급 사정은 사회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어렵고 또 사단장·경리사관·부소대장 등 지휘관들이 층층으로 떼먹다보니 부족할 수 밖에 없다.군인들은 누구나 제대와 함께 2만원을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다.빈털털이로 나가봐야 직업도 마땅치 않고 제대후 장가라도 가려면 군대내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 재대하려는 것이다.3원50전,5원,7원 정도의 하전사(우리의 하사관 이하) 월급으로 「제대준비」을 제대로 하려면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다.하전사들은 17세에 입대해 27살에 제대한다.장교들은 장교들대로 자식들 옷을 해 입히고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도둑질을 한다.쌀은 제대로 준다.그러나 부식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참모부 군관들에게는 하루 700g,하전사들에게는 800g을 준다.한끼에 250g으로 밥을 하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다.그런데 도처에 날치기 도둑놈들이 판을 치니,제 양대로 배급될리 없다.지난 2년 동안 조종사들은 그래도 1년치 식량을 제 규정대로 받았다. ○군서도 외화벌이 독려 북한주민들은 군대를 「공산군」이라고 부른다.공산군이라는 게 남한에서 빨갱이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이제는 북한주민들이 그런 의미로 쓴다.군인들이 물을 마시자고 민간인 집을 찾아가면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는다.물 먹자고 민간인 집에 쑥 들어와서는 뭐 있는가 쓱 한번 보고,눈들이 어찌나 빠른지,집주인이 자기를 당해내지 못하겠다 싶으면 아무 물건이나 갖고 도망친다.자칫 붙잡으려 하면 집주인이 칼에 찔려 죽든,돌에 맞아죽든 죽기 십상이다.이러한 살인죄로 총살 당하는 군인이 많다. 군인들의 도둑질은 식량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필요할 경우 공군사령부 참모부는 각 구분대(연대 이하 대대 중대 소대등의 개념) 단위로 시멘트·철근·나무 등의 필요량을 할당한다.이 때문에 일선 부대들에선 「군대가 젖짜는 암소냐」고 불평한다.지휘관들은 할 수 없이 밑의 하전사들에게 『무조건 만들어 오라』고 시키는데 하전사들은 『맨주먹 가지고 어디가서 사오란 말이냐』고 불평하면서 낮에는 공장기업소나 살림집들을 정찰하고 밤에는 옮겨온다.도둑질이라고 안하고 「옮겨온다」고 한다. ○금 캐는데 병사 동원 과거에는 하전사들도 잘 먹어서 그런 현상이 없었는데 기름기없이 소금에 밥만 먹다보니 식량약탈과 도둑질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쌀은 주는데 기름같은 것은 적게 나오고 고추장은 생각도 못한다. 군인들의 행패는 끝이 없다.얼마 전 한달에 한번씩 나오는 총정치국 통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소개하면서 민간인들에게 군인들이 차를 세우라면 무조건 태워주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고속도로에서 군인들이 두패로 나뉘어 차를 세웠다.50m앞에 두,세명이 손을 들고 50m 뒤에서 30명정도가 돌멩이를 들고 뒷짐을 지고 있었다.그런데 운전수가 그대로 도망치니까 돌을 들고 있던 30명이 화물트럭 앞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차가 서자 운전수의 머리를 시동기로 때려 죽인 다음 자기들끼리 목적지까지 간 뒤 차를 벼랑에서 굴려버렸다」.이 군인들은 「노동군대」에 갔다.가면 1년간 죄수생활이다.몽둥이 주먹 노동으로 단련시킨다.말 안들으면 법보다 주먹이 먼저다. ○제대시 2만원 목표 ▷나진·선봉 개발◁ 북한은 나진·선봉만 개발하게 되면 북한에서 1개 도가 1년동안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수 있는 돈이 나온다고 말한다.1년에 40억달러에 이르는 돈이 저절로 들어온다고 선전한다. 그런데 선봉군당 조직비서(군수급)를 지낸 가까운 친척에 따르면 북한은 나진·선봉을 개발하면서 성분이 나쁜 불순분자들은 모두 추방시키고 이곳에는 주로 보위부 성원들이나 계급적 토대가 좋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있다.당 일꾼이라도 경제분야에 밝은 사람만 배치한다.나진·선봉은 아주 특별한 곳이어서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그곳에 들어가면 잘산다고 하니깐 모든 주민들은 누구나 가고싶어 한다.그러나 보위부의 검열이 있어야 가능하지,희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예를 들면 내가 그곳 주민의 아들이라면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친척들의 방문도 허용되지 않는다.평양시보다도 대우를 잘해줄 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 맞추기 위해 매달 봉급도 달러로 준다고 한다.즉 외국사람에게 북한이 아주 잘 사는 걸로 보여야 하니까 먹고 입고 쓰는데 「부러움 없도록」 생활수준을 높여준다는 말이다. ○성분 좋은 사람들 이주 때문에 몇년전부터 평양에 사는 사람들도 나진·선봉에 이사가기 위해 「작전」을 편다는 말이 나돌았다.군대에 복무중인 사람들은 미리 제대해 나진·선봉지역에 있는 탄광에라도 가려고 난리다.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해도 안한다.그곳이 연고인 사람들은 모두 귀가해서 노동자라도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만 10년동안 군사복무했으니 대학도 필요 없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며 뇌물작전을 쓰는 것이다. 아무튼 선봉지구를 국제적으로 지원해줄 경우 북한체제는 승승장구할 것이다.외국의 지원이 없으면 아마 북한주민들 자체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자꾸 식량등을 지원해주니 문제다.
  • 주공 김동규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10월께 주택 1백만호 건설 돌파”/엄격한 설계기준·시공사 선정… 부실공사 방지/마이너스옵션제·주부모니터제 “호평”… 미분양 크게 줄어/주택정보·금융업 등 진출… 사업영역 다각화 대한주택공사 직원들은 요즘 한결같이 『일할 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윗사람 눈치 볼 필요없이 자기 권한 안의 일에 충실하고 그에 대한 책임만 분명히 지면 되기 때문이다. 주공의 신나고 보람찬 근무 분위기는 지난 94년 2월 김동규 사장(64)이 부임하면서 부터 싹텄다. 관계와 재계,정계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김사장은 『처음 이곳에 와보니 경영이 너무 중앙집권화돼 사장 한 사람의 지시와 결재에만 움직이는 지극히 보수적인 조직이었다』며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본부조직을 축소하고 지방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조직개편과 함께 사장결재사항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부사장과 본부장들도 모두 자기 결재권의 절반씩을 하부조직에 위임,이제는 실무진의 자발적이고 책임감 있는 근무 틀이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1일로 주공창립 34주년 기념일을 맞은 김사장으로부터 회사현황과 미래비전 등을 들어 보았다. ○고객요구 즉각 시정 ―창립일을 축하합니다.지난 34년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건설에서 보여준 주공의 역할은 정말 컸습니다. 『주공은 지난 62년 창립이래 주택 1백만호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오는 10월쯤이면 대기록이 달성될 전망입니다.이는 우리나라 총 주택 건설호수의 11%로 국민 주거생활 안정에 주공이 기여한 바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자만하거나 만족하지 않습니다.건설시장의 개방과 본격적인 지방자치제의 실시 등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적극 대처하고 있습니다.21세기의 새로운 생활공간을 창출하는 선도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노력도 계속될 것입니다』 ―21세기의 비전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수립했습니까. 『단순한 주거공간개념의 주택건설에서 탈피하고 풍요로운 생활공간의 창출을 통해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생활방식의 다양화와 삶의 질 추구 등 미래사회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국민 정보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주택정보사업,사업기획·설계·감리 등의 엔지니어링사업,할부금융을 포함하는 주택금융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해 나갈 계획입니다.비전 실천전략으로는 「경영이념」과 「사원정신」을 새로 제정,시행하고 있습니다.기본전략은 21세기를 대비한 사업의 고도화 및 영역확대,고객지향적 마케팅체제 구축,미래지향적 조직과 인사제도 개선,경쟁력 우위의 연구기술력 확보,신바람나는 공동체 실현 등 5가지로 정했습니다』 ―민간 건설업체들은 부실공사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많습니다.그러나 주공이 부실공사를 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는데요. 『부실공사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주공이 지은 집이 튼튼하다는 것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다만 건설대상이 서민주택이고 원가를 절감하려다 보니 좋은 내부 마감재를 못쓰는 점이 아쉽습니다.우리는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설계기준의 엄격한 적용과 구조체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철근 콘크리트아파트의 내구연한은 65년입니다.일본 등선진국 아파트의 수명과 같은 수준으로 설계하고 있지요.시공업체에 대해서는 3번 이상 경고를 받으면 아예 입찰자격을 안줍니다.반면 정기적인 종합평가 결과 우수업체에 대해서는 지명경쟁 입찰권을 부여합니다.특정 업체를 지정해서 입찰권을 주어 수의계약 할 수 있는 혜택을 주지요.이 때문에 업체들도 우수시공업체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분양가 자율화 빨라 ―민간업체들의 주택 품질경쟁이 치열합니다.주공도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는 신경을 써야 할 텐데요.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됐습니다.주공도 좋은 품질의 집을 짓기 위해 입주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설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거실이 넓은 부부용 주택이나 방 숫자가 많은 부모동거형 주택 등 5개 유형을 개발해 기호에 맞는 집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독신자나 자유직업인 등을 위한 원룸주택도 개발했습니다.도배나 싱크대,각종 전열기구 등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마감재는 「마이너스 옵션제」를 도입,입주자가 원한다면 마감재값 만큼 빼주고 기호에 맞는 것을 쓰도록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주부모니터제를 도입해 수요자의 요구사항을 조사하고 불편한 점을 곧바로 시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분양가 자율화에 대한 주공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분양가 자율화는 시점만 남았습니다.시장경제원리에 맞게 언젠가는 돼야 하지요.그러나 아직은 물가를 제외하더라도 시장경제에 문제가 많습니다.정부에서 주택가격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실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주공의 입장에서는 질 좋은 서민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적어도 서민들의 주택문제가 거의 해결될 단계까지는 주공주택에 대해서는 자율화를 할 수 없습니다』 ○순환재개발 확대 ―올해의 중점 추진업무는 무엇입니까. 『주공은 매년 6만∼7만호의 주택을 건설·공급함으로써 국민의 주거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올해에도 총 6만호의 주택을 전국에 걸쳐 고루 건설하고 있습니다.소요 사업비는 3조4천억원입니다.주택 유형은 공공임대주택 1만5천호,공공분양주택 3만호,근로자주택이 1만5천호입니다.중점 추진업무는 우선 부실시공 근절을 위해 설계는 물론 현장에 반입되는 건설자재의 철저한 품질관리와 시공과정의 감리감독을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또 노후·불량주택이 밀집된 대도시지역의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올해에는 6개지구 6천7백호의 재개발사업을 추진중입니다.환경보존운동에 부응키 위해 환경친화형 주거단지 모델개발 및 생태조경 설계개발 등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연구개발 부문에서도 국제적 규모의 주택종합연구센터 건립을 추진,주택전문기관으로서의 중추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 신림지구에 국내 처음으로 순환재개발방식을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어떤 방식입니까. 『재개발구역 인접지 또는 그 구역의 일부에 주택을 건설하거나 사업시행자가 보유중인 임대주택 등을 활용,공사중에 주택이 철거되는 주민들의 임시거처로 제공하면서 재개발구역을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입니다.이는 재개발사업 시행때 주민의 주거가 안정돼 철거민과 세입자의 이주문제등으로 인한 사업지연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이주대책에 소요되는 제반 경비도 크게 절약되고 공기단축,건설원가절감 등의 효과도 있습니다.내년까지 대도시를 중심으로 10여개의 재개발사업을 벌이는 데 이같은 방식을 확대 추진할 계획입니다』 ―주공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얼마나 됩니까. 『전반적인 부동산경기 침체와 실수요 감소 등으로 주공의 주택 미분양도 많습니다.민간 건설업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지난 연말에는 1만9천6백호나 됐습니다.그러나 정부의 주택시장안정대책 발표와 자체적 분양촉진 노력으로 현재는 9천호로 줄었습니다』 ○북한 연구팀도 가동 ―한양을 인수한 뒤 경영정상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까. 『지난 93년5월 한양의 법정관리 신청당시 중단됐던 아파트 1만8천가구의 입주예정자 보호와 5천여 하도급 및 자재납품업체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주공이 한양을 인수했습니다.주공은 한양 인수이후 중단된 공사재개와 체불 자재납품대,하도급대,노임문제 해결에 주력했습니다.또 주공의 발주공사 중 매년 3천억∼5천억원의 물량을 한양에 배정하고 운영자금 지원 및 신용장 개설 등 영업활동에 필요한 보증을 섰습니다.지금은 한양 스스로도 외부 수주증가 및 경영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적자폭이 매년 크게 감소되고 있습니다.적자폭이 올해 7백억원으로 줄고 완전한 경영정상화는 2∼3년안에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연구팀을 신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해 최근 북한연구팀을 가동시켰습니다.자료수집에 어려움이 많습니다.북한의 주거상태,소유형태,주택보급률 등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통일이 되면 주공이 할일이 많을 전망이어서 내부적으로 착실히 준비중입니다』 김사장은 서울대 법대(56년)를 졸업하고 이듬해 고등고시 행정과(8회)에 합격했다.공직생활은 재무부를 거쳐 대부분을 상공부에서 보냈다.상공부 동력국장·기획관리실장·중공업차관보 등을 역임했다.82년 대우로 옮겨 건설담당사장을 2년간 지냈고 정당에 투신,12·13대(서울 강동)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인터뷰=육철수 기자〉 ◎1백만호 건설하기까지/62년말 마포 450가구 첫 입주/미 원조기구 지원… 6층짜리 연탄보일러/75∼78년 잠실단지 세계 10위권 도약 계기 지난 62년 무주택 국민의 주거복지 향상과 공공복리 증진을 목표로 설립된 대한주택공사는 오는 10월 「주택건설 1백만호」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주택 1백만호는 우리나라 총 주택의 11%이며 부산과 대구시의 총 주택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 물량이다. 한줄로 쌓아 올리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3백5개(2백70만m) 높이에 해당한다.건설에 동원된 연인원은 남한 인구의 5.7배인 2억4천67만명이나 된다. 주공주택 1백만호 건설은 질적인 면에서 국내에 아파트문화를 처음으로 도입,도시민의 주거문화를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위주로 바꾸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임대주택을 민간기업에 앞서 도입,도시 저소득 영세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14만여호를 건설·공급함으로써 공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주공의 첫 사업은 국내 아파트의 효시로 불리는 서울 마포아파트단지.62년12월 4백50가구가 첫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64년까지 총 6백42가구를 건립했다.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주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아파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처음에는 수세식화장실,중앙집중난방방식,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0층 아파트로 구상됐다.그러나 미국 원조기구(USOM)측이 공사비가 비싼 철근 콘크리트아파트의 건설을 반대하고 국내의 전력과 연료사정 등을 고려,6층 연탄보일러 아파트로 변경 시공됐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포아파트는 번화가인 명동을 옮겨놓은 듯했고 이를 소재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는 91년 재건축의 물결에 휩쓸려 숱한 영광을 뒤로 한 채 재건축사업 1호로 철거됐다. 지난 94년 11월 「폭파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철거된 남산 외인아파트도 주공이 70년대 초에 지은 것이다. 71년부터 79년까지 26만6천평 대지에 7천9백6가구가 건설된 반포아파트단지는 과학적인 종합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또 다른 주공의 자랑거리로 꼽히고 있다. 또 75년부터 78년까지34만4천평에 1만9천1백80가구를 건설,10만여명의 인구를 수용한 잠실단지는 주공을 당시 세계 10위권 주택업체의 대열에 올려 놓기도 했다.
  • “북,24시간내 서울 함락”/귀순 이철수 대위 회견

    ◎김정일­“한밤기습,새벽에 점령 확인토록”/북,미그29 등 전투·폭격기 전진배치 북한은 개전 24시간 안에 서울을,7일만에 남한을 완전 점령하는 3단계 남한점령계획을 수립,전쟁연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해 10월 2백70여대의 항공기를 황남 태탄,황북 인산 및 강원 통천 등 전방기지에 전진배치하고 조종사의 가족까지 모두 이주시킨데 이어 최신예 미그 29기 1개 대대를 평북 순천에서 평남 온천기지로 전진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그 19기를 몰고 23일 귀순한 북한 공군 이철수대위(30)는 28일 상오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대위는 『북한군은 개성∼문산∼서울을 주 타격방향으로 설정,개전후 1단계로 24시간 안에 서울∼한강선을 점령하고 2단계로 대전을 정복하며 3단계로 부산까지 점령한다는 전략을 수립,전쟁연습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위에 따르면 김정일은 지난 94년 4월 인민무력부 작전요원들에게 『북한 인민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공격을 개시,순식간에 남조선을 점령해 아침에 깬 인민들이 남조선 점령상태를 확인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대위는 『북한은 지난 14일과 16일 2차례 평남 온천군 석다리사격장에서 러시아제 미사일을 개량해 개발한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시험발사했으며,이 미사일은 전파방해를 받지 않고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신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개전시 한국 공군의 야간공격에 대비,기존 활주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짜 활주로를 설치,온천비행장의 경우 지하에도 비행장을 설치,이곳에서 이·착륙훈련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일반주민들의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군부대에는 식량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특히 조종사는 평시 8백50g,훈련시 9백50g 등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지난해 남한쌀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남한쌀로 지었다는 밥도 먹어보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이후 군에 대한 배려를 눈에 띄게 증대시키고 있으며 올해 7차례 군부대를 직접 방문,자신에 대한 군의 절대충성을 유도하며 전쟁준비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황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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