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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벙커C유 유출,남한강 오염/여주/유류탱크에 주유하다 2t 넘쳐

    ◎군청직원 3백명 긴급 제거작업 【여주=김동준기자】 1일 상오7시50분쯤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삼한콘크리트(주) 유류저장탱크에서 벙커C유 주유작업도중 기름2t(10드럼분)이 넘쳐 흘러 남한강 지류로 흘러들어가는 사고가 발생,여주군청 공무원 3백여명이 긴급기름제거작업을 폈다. 이날 사고는 서울 서초구 우정석유소속 유조차에 싣고온 벙커C유를 저장탱크에 옮겨넣다 운전사 이선재씨(36)가 탱크가 가득 찬 것을 모른채 그대로 주입시키면서 넘친 기름이 주변 농수로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사고가 나자 환경청과 여주군청직원들이 긴급 출동,기름제거작업에 나섰으나 이날 내린 빗물에 기름이 급속히 확산되고 기름방제도구가 없어 그대로 하천을 타고 하류로 흘렀다.
  • 노 대통령­부시 오늘 정상회담/한반도 핵·남북한 통일등 논의

    ◎워싱턴서 단독­확대회담 두차례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1일 하오(한국시간 2일 상오)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미공군기지에 도착,국빈자격으로서의 미국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노대통령은 2일 상오 백악관에서 거행되는 미정부의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부시대통령의 환영사에 답사를 한뒤 곧 이어 약 1시간동안 부시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갖는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국제정세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정세 전반에 대해 간략히 의견을 교환한뒤 유엔가입 이후 북한의 개방촉진 및 이를 통한 남북한의 조기통일방안,미일 등 우방의 대북한정책방향,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 서명과 핵재처리시설 포기 등을 포함한 한반도의 핵문제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특히 이 자리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민주적·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통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주변국들은 지원국의 입장에서 통일여건 조성에 최선의 협력을 해줄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두나라 정상은 회담에서 북한의 핵안전협정 부가입과 핵재처리시설 건설은 한국 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나아가 인류문명 자체에 대한 위협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한의 핵안전협정서명 및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 수용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호준특파원】 2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대통령간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남한의 미핵무기 철수문제가 주요의제로 논의될 것이라고 미국의 동아시아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버클리대)가 1일 말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두 대통령이 이번회담에서 미핵무기 철수를 한국정부가 선언할 것인지,아니면 철수 후에도 미정부가 핵무기의 존재를 긍정도 부정도 않는(NCND)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의 문제까지도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노대통령의 방미를 맞아 아시아협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제 미국의 NCND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남한의 지상 핵무기문제는 이제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비무장지대에 집중 배치돼 있는 남북한의 군사력을 감축,문자 그대로의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드는 군축방안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건축물 불법 용도변경/식당주인등 15명 구속/검찰

    ◎팔당유원지 일대 주택을 주차장으로 개조 【성남=한대희기자】 수원지검 성남지청 민병현부장검사는 1일 경기도 하남시 팔당유원지에서 팔당수원지를 더럽히거나 불법으로 건축물을 용도변경해 무허가로 영업을 해온 올림픽가든 주인 박종옥씨(48·하남시 덕풍3동316의24)등 15명을 식품위생법·도시계획법·건축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청기와집 업주 이금분씨(37·여·하남시 덕풍동)등 15명을 같은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구속된 박씨는 당국의 허가없이 지난 90년8월30일부터 지난달 19일까지 남한강 주변 팔당유원지인 하남시 덕풍동38의1 건평 1백98㎡주택을 음식점으로 불법용도변경하고 토지 1백80㎡를 형질변경,주차장으로 사용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구속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올림픽가든=박종옥 ▲소양강=우종길 ▲스태파노=김성기 ▲대명가든=이옥순 ▲미래도=정진석 ▲다윈조기집=권영수 ▲숲속집=우제민 ▲솔밭집=명성철 ▲아룡네=최상오 ▲영산강=김원종 ▲강변가든=조만주 ▲이동횟집=송내희 ▲이회장=최봉기 ▲이화장=정건배 ▲청가든=이석묵
  • “동북아 신질서 구축” 한미협력 조율/한·미·가 정상 뭘 논의하나

    ◎통일여건 조성 주도적 역할 모색/「북한 핵위협」 제거도 중요의제로 노태우 대통령의 29일 미국·캐나다 순방 등정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구축에 따른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분명히 다져두려는데 있다. 노 대통령이 오는 7월2일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의제는 대충 4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것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구축과 한미관계 ▲북한의 핵개발 문제 ▲경제관계 등이 될 것이다. 첫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구축과 관련,노 대통령은 21세기의 개막을 앞두고 이 지역에 안정과 평화의 확고한 기틀이 마련될 수 있도록 미국의 관심을 제고시킬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7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의 외교노선이 유럽·동구·중동 등지에 편중되어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같은 입장을 뒷받침했다. 최근 남북한을 포함한 미·일·중·소 등 주변국들의 관계는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어 동북아지역의 군사안보적인 세력균형 등 질서재편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한미 우호협력관계를 「중심축」으로 하여 이같은 질서재편에 대응할 것을 주문할 것으로 관측된다. 가령 일·소·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적절히 견제한다든가 남북한 통일 이후의 이 지역의 세력균형에 대해 한미 양국이 동일한 시나리오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 관해 깊숙하게 논의될 공산이 크다. 동북아의 급격한 질서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한미 안보협력체제의 중요성이 증대된다는 인식 아래 한국방위비 분담의 단계적 확대,그리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역할 등이 재확인될 것 같다. 아태지역협력과 관련해서는 오는 11월초 서울에서 열릴 아태각료회의(APEC;미·일·캐나다·호주·뉴질랜드·한국 및 동남아연합6개국)를 모체로 발전시켜 나가자는데 양국 정상이 의견을 같이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관해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제조 준비의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가장 선결문제』(27일 간담회)라는 인식 아래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측은 북한이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핵사찰을 받는 것은 물론 핵연료재처리시설 제거 등을 통해 핵무기개발의사를 완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도 이같은 입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핵사찰 수용의사를 밝히면서도 「남한내의 핵철수」를 주장,연계시키려 하는데 대한 쐐기를 어떻게 박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 한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국제적 압력이라는 「채찍」에 상응한 「당근」 구상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무조건적인 핵개발포기를 받아들일 때는 워싱턴­평양 관계개선의 복안이 제시될 것 같다. 이 복안에는 미·북한접촉창구의 격상·인적교류 확대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데 노 대통령은 미측의 「당근」 복안에 대해 동의를 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경제관계에 관해 노 대통령은 국제자유무역 질서유지와 함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조기 타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동북아의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통일여건을 조성하고 나아가 통일 후의 장기적 비전을 논의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한미간의 경제관계는 간단히 언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7월3일 캐나다도 방문,멀로니 총리와 한·캐나다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데 여기서는 양국간의 실질협력문제가 중점 논의될 것 같다. 특히 캐나다의 풍부한 자원 및 첨단기술과 한국의 생산기술 및 기능인력의 결합문제가 비중있게 논의될 것이며 한국민의 캐나다 이민확대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는 7월23일 런던에서 열릴 서방선진국(G­7) 회담에 캐나다가 미국과 함께 참석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사찰문제 등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크게 강화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노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그 형식이 26년 만에 처음인 국빈방문(State Visit)으로 이뤄지고 그 배경에는 한국의 민주화·경제발전·북방정책의 성공이 깔려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동북아의 새질서 구축에 따른 한국의 주도적 역할,남북한통일여건의 조성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평가된다. ◎「워싱턴 대좌」 미국의 입장/“추가감군·UR협조등 구체 제기/남북한 교차승인 문제는 거론 안해” ▷미 정부 고위관리 배경 설명◁ 노태우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은 한국의 국가원수로는 26년 만에 처음 갖는 것이다. 노 대통령 재임중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뤘다. 그는 87년 대통령당선과 더불어 정치민주화를 추진했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지자제 선거도 실시했다. 외교적으로 한국은 노 대통령 북방정책의 결과로 소련과 동구를 포함한 약 1백50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게 됐으며 유엔가입 목표도 곧 실현될 전망이다. 지난해 남북한은 3차례의 총리회담을 통해 분단 후 가장 진지한 대화를 가졌다. 지금은 대화가 중단됐지만 재개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남북한 주민이 모두 받아들이는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지지한다는 것이 미국정부의 정책이다. 경제분야에서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큰 발전을 이루어 세계 16번째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미국에는 7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 되었다. 한미 경제관계는 지난해에 문제가 좀 있었으나 최근엔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시장개방과 관련하여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들이 많다. 급속히 경제세력화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과의 쌍무관계에서 국제적인 개방기준을 따라야 함은 물론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도 다자간 국제교역의 틀을 만들려는 미국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그래서 노 대통령 방문 중 토의될 문제중의 하나는 한국의 추가시장개방 노력이 될 것이다. 경제문제의 비중이 날로 중대되고 있지만 양국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안보문제다. 안보 분야에서 우리는 강력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있지만 우리의 대한 방위공약은 불변이다. 한국정부 당국과 추가감군 논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 변화에 적응하는 안보관계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다. 북한군은 서울에서 불과 30∼40마일 떨어진 비무장지대에 전진 배치돼 있으며 무기현대화 사업을 추진중이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강렬한 우려와 토의의 대상이다. 두 대통령은 이러한 양국간 문제를 검토하며 지역 및 세계정세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일문일답◁ ­노 대통령은 오늘 서울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중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영변에서 아주 적극적인 핵개발 활동을 벌여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약 10년 동안 알고 있었다. 과연 거기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상상할 수밖에 없다. 이 의문과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 기초가 되는 핵연료재처리 시설을 완성하려고 드는지에 관한 의문은 해소되어야 한다』 ­북한의 유엔가입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은. 『우리는 한국의 유엔가입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유엔가입도 환영한다』 ­남북한 유엔가입 문제와 함께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예정인가. 『교차승인은 유엔가입과 별개의 문제다. 교차승인에 관한 논의가 과거엔 있었으나 이번엔 의제가 아니다』 ­50년 이후 미국은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한국은 왜 시장개방에 소극적인가. 『한국의농업개혁·금융시장 자유화·상품수입시장 개방은 중요한 관심사로 논의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개방에 적응하기 위한 조정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는 또 교역을 발전시킬 법률구조에도 관심이 있다. 예를 들면 지적소유권 보호의 일환인 특허비밀협정의 조속타결을 원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는 핵무기가 한국에 없다고 보장할 용의가 있는가. 『특정지역내 핵무기에 대해선 그 유무를 시인도 부인도 않으며,또한 핵 비확산조약에 서명한 국가에 대해선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세계정책이다. 이 정책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밝혀왔다』 ­이번 회담에서 나올 것은 무엇인가. 『지금 한반도에선 남북한 유엔가입,한·소,한·중 관계의 급진전 등 중요한 사태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지역의 국제관계와 안보문제의 양상이 급변하고 있는 파열점이랄까,과도기 같은 곳에 우리는 서 있다. 이런 토대에서 두 대통령은 소련 문제,한반도 안보환경 개선방안 등 두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문제 전반에 관한 정책협조를 논의할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한국의 병력 증강이 예상되는가. 『우리는 한국정부가 주한미군 지원비 증액논의에 호응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선 한국정부가 화학무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주요 무기 수출국이다. 우리는 군비통제체제를 조성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며 또한 북한이 이에 호응하기를 바란다』
  • “앞으로의 선거 돈안드는 방법모색”/노대통령기자간담 1문1답 요지

    ◎“중소의 핵 사정권”… 「한반도 비핵화」는 무의미/선거구별 당리당략 버리고 여·야 합의 희망/「2백만호 건설」 공기 늦더라도 안전에 중점 노태우 대통령은 6·29선언 4주년과 미국·캐나다 방문을 이틀 앞둔 27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국정전반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6·29선언의 마지막 약속사항인 지방의회선거를 잘 마무리해서 기쁘시겠습니다. 『기쁘기보다는 더 잘 하라는 국민의 채찍으로 받아들입니다. 무엇보다 6·29선언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한 것은 사실입니다. 두 차례 지방의회선거는 일부 지적이 있었긴 합니다만 냉정하게 보았을 때 과거에 비해 깨끗하고 공명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거에 따른 정치적 비용을 줄이면서 나머지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매듭지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한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광역선거 개표초반에 민자당이 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느꼈습니까 ○지자제선거 마쳐 홀가분 『확실히 옛날 부재자투표결과와는 달랐지요. 부재자투표자의 대부분이 군복무자라고 볼 때 우리 군이 선거에 대해 얼마나 중립적인가를 실증해준 것 같아 어느 면서는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실 생각입니까. 『미국의 외교관행이 유럽이나 중동,동구에 편중되고 있음을 여러분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태평양국가로서의 시각조정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세계정치,경제의 중심지가 아태지역이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동북아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동북아에 대한 현재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두고 21세기를 맞아도 될 것인가를 지적할 것입니다. 소련의 극동정책변화,21세기를 앞둔 한국의 통일,전후 미국의 도움으로 초강대국으로 돼 있는 일본 등에 대해 미국으로서 결산을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편에서 부시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입니다』 ­대통령임기 1년 전에 민자당의대권후보를 뽑겠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는데 좀더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헌에 그 절차와 시기·방법 등이 명시된 것을 바탕으로 외국의 사례도 참고해서 내 임기 1년 전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차기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자당에 대해 선거구제의 검토를 여러번 지시했는데 현행 제도에 무슨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거구제 여·야 합의를 『선거구제엔 장단점이 있습니다. 여당내에서는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야당도 내부적으로는 같은 현상입니다. 소·중·대선거구 가운데 대통령 입장에서 꼭 이것이라고 못을 박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상황은 오늘 내일 따라 변할 수도 있으니까. 선거구 문제도 민자당이 그리고 여야가 잘 상의해서 가장 바람직한 제도를 찾아야겠지요.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너무 당리당략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정치상황이란 오늘 내일따라 비뀔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각제개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까. 『내가 내각제에 대한 얘기를 하면 언론과 정치인이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우리 정치가 권력구조에 대해 논의한 방식이나 수준이 그렇게 높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혼란이 생기면 나라에 도움이 안 되는 만큼 가능하면 이 문제에 대한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내각책임제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미 여러 차례 밝한 바 있습니다. 개헌은 어느 제도든 국민이 원해야 하지 국민이 바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번 광역의회 선거에서 지방색이 또 문제되니 내각제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를 두고 국민들이 생각을 해보겠지요』 ­차기 대통령은 통일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된다고 보십니까. 『나는 임기중 통일의 기반을 닦고 다음 대통령이 통일을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통일에 대비해 필요한 자격과 요건이 구비돼야 하며 나 이상으로 통일을 깊이 생각하고 필요한 능력을 축적해 나가리라 봅니다. 그런 분이 나라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바 입니다』 ○통일 자질 갖춘 인물 많아 ­그런 자질을 가진사람이 여권내에 있습니까. 『여권내에서 없다면 야권에서 찾으라는 얘깁니까(웃음). 그런 사람이야 많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의 가시화시기는 14대총선 이전이 좋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이후가 좋다고 보시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임기 1년 전쯤 되면 총선일정과 혼란스럽게 중복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후보자가 정리되고 가닥이 잡힌다는 뜻입니까 『가닥도 잡히고 총선스케줄과 중첩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도시아파트 부실공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그나마 일찍 발견돼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일로 인해 2백만호 주택건설의 대역사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서는 무리가 있으니 공기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도록 해 나가겠습니다』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핵사찰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됩니다만 최근 미국내 학계 등에서는 남한내에도 미국의 핵무기 배치돼 있다며 이의 철수문제가 거론돼야 한다고주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과 관련한 위험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미 중 소가 같은 생각입니다. 한반도만의 비핵지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중소의 핵이 충분한 사정거리에 있는데 설령 남한에 핵이 있다고 치더라도 빼버린다고 비핵지대화가 되겠습니까. 진짜 비핵지대화를 만들려면 한반도뿐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나라,나아가서는 세계 각국의 비핵지대화가 필요하며 이 문제는 이미 핵을 보유한 나라들이 논의해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캐나다 방문에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습니까. ○캐나다와 경협 큰 기대 『캐나다는 국토가 넓고 풍부한 자원과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정말 큰 나라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는 경제협력면에서 전망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의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관계책임자의 인책을 생각하고 계시니까. 『고약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내무부 장관이 감독책임자 등에 대해 인책할 일은 하게 될 것입니다』
  • 좌경 지하조직 「자주대오」 적발/사병·대학생등 10명 구속

    ◎“군내부에 주체사상 전파” 기무사 군국기무사령부는 27일 충북 청주대 지하이념조직인 「자주대오」사건과 관련,육군 모 부대 소속 송재봉 이병(23) 등 현역사병 및 방위병 9명을 검거,이 가운데 송 이병 등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구성 등)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4명을 훈방했다고 발표했다. 기무사에 따르면 송 이병 등은 청주대에 재학중이던 88년 9월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한 남한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자주대오」라는 교내지하단체를 조직,50여 회에 걸쳐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해왔으며 군 입대 후에는 동료장병들에게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등 이른바 「군사투쟁」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기무사는 지난 11일 치안본부와 합동으로 「자주대오」에 대한 수사에 착수,현역군인 9명 외에 민간인 8명도 검거했으며 민간인 유정원씨(25·여·청주대 사회학과 4년) 등 5명은 경찰에 의해 구속되고 1명은 불구속,나머지 2명은 훈방됐다고 밝혔다.
  • 전대협 간부 2명 입북위해 출국/성용승군·박성희양

    ◎관광객 위장,베를린 잠입/“7월 중순 「평양 핵문제 국제회의」 참석할듯”/안기부 국가안전기획부는 「전대협」이 북한과의 치밀한 사전연락 아래 이 단체 간부인 남녀학생 2명을 오는 7월 중순 평양에서 열리는 「핵문제 국제회의」에 참가시키기 위해 몰래 출국시켰다는 정보를 입수,이들의 행적 등을 추적하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안기부가 내사를 벌이고 있는 「전대협」 간부는 성용승군(22·건국대 행정학과 4년)과 박성희양(21·경희대 작곡과 4년)으로 이들은 「전대협」의 지시에 따라 지난 24일 관광객으로 가장,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한 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91서울범민족대회준비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현재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베를린에서의 일정을 마치면 북한에 들어가 7월 중순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핵문제 국제회의」에 참석,「남북 동시 핵사찰」 「남한에서의 핵무기 철수」 등을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범민족대회」관련행사의 하나인 「통일대장정」에도 참가,북한의 대학생들과 함께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행진한 뒤 8월12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전대협」은 이날 『성군 등 「전대협」 대표 2명이 지난 24일 하오 9시30분 서울을 출발,일본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베를린에 머물고 있으며 오는 7월20일 이후 베를린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대협」 산하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원회」(위원장 한철수·경희대 학생회장)의 한 간부는 『성군 등은 7월14∼15일에 열릴 예정인 「남북청년학생해외통일대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가하고 같은날 7일과 20일 두 차례 열릴 예정인 「범민족대회」 예비실무회담에 남한쪽 「범민련」 대표자격으로 북한 및 해외동포 대표들과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 유엔가입신청서/당사국협의 거쳐 처리/유엔 안보리의장

    방한중인 호세 아얄라랏소 주유엔 에콰도르 대사는 26일 남북한의 유엔가입신청서 처리문제와 관련,『남북한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는 대로 안보리 이사국들과 협의를 가진 뒤 당사국들과도 협의를 거쳐 처리방식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이 유엔가입신청서를 제출할 오는 8월 한 달 동안 유엔 안보리 의장직을 맡을 아얄라 랏소 대사는 이날 상오 이상옥 외무장관을 예방,유엔가입 절차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 “한국 비핵화 선언을”/미 국제전략연 부소장

    【워싱턴=김호준 특파원】 미국이 한국에 지상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정부는 한국과 이의 즉각적인 철수계획을 협의,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내주 워싱턴회담 때 기본적인 철수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미국의 저명한 한국문제 전문가인 윌리엄 테일러 박사가 주장했다. 테일러 박사는 25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게재된 「한국의 비핵화를 선언할 때」라는 기고문에서 『미국은 당분간 동북아에서 특정지역내 핵무기 존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 정책을 견지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고 전제,한국내 핵무기가 철거될 경우 미국정부가 아니라 한국이 과거상태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지상핵무기가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의 국제안보담당 부소장인 테일러 박사는 최근 북한외교부장 김영남이 『미국이 남한내 미군 핵무기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북한내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동시 사찰을 주장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 기회를 즉각 포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최대 낙차·최장 지하물길/강릉수전 준공

    ◎공비 1,200억 들여 5년 만에 가동/용량 8만2천㎾… 연 1억8천만㎾ 발전/남한강 물이 15㎞터널 거쳐 동해로 빠져 국내에서 낙차가 가장 크고 긴 수로터널을 이용한 강릉 수력발전소가 25일 강원도 명주군 선산면에서 준공돼 본격가동을 시작했다. 총 8만2천㎾의 설비용량을 가진 이 발전소의 낙차는 서울 남산의 거의 2배에 가까운 6백40m. 이는 국내 최대의 낙차인데 지금까지 최대의 낙차댐이었던 청평수력발전소의 4백72m보다 1백68m나 높다. 이 발전소의 또 다른 특징은 섬진강댐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유략 변경식이라는 점이다. 서해로 흐르는 남한강물을 긴 수로터널을 만들어 동해로 흐르도록 건설됐다. 용평스키장 부근인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에 높이 72m의 댐을 축조한 뒤 이 댐에 가둬진 물을 고루포기산(해발 1천2백38m)과 대관령 부근의 제왕산(8백40m) 오봉산(5백41m) 등 험준한 산줄기의 지하에 뚫어진 수로터널을 통해 동해쪽 발전소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수로터널의 길이 또한 국내에서 가장 긴 15.65㎞. 고루포기산을 기준으로 할 때 지하 6백m 깊이에 뚫어진 이 수로터널의 직경은 소형승용차 두 대가 비켜 지나갈 만한 3.8m로 하루 35만t의 물을 통과시킬 수 있다. 벽은 방수콘크리트로 만들어 누수를 막았다. 물이 떨어지는 낙차가 너무 커 이로 인한 압력으로 터널이 무너질 위험에 대비,압력을 조절하는 특수장치가 꼭대기에 부착돼 있다. 이 부분의 설계 및 건설이 공사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는 게 한전측의 설명이다. 조그마한 오차도 없이 터널을 뚫는 작업과 6백4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의 압력을 견딜 기계설비 제작이 최대 관건이었다는 것. 결국 이 부분만은 우리 기술로 해결할 수 없어 부분적으로 일본 발전소 건설 전문회사로부터 기술을 들여오고 자문을 받아 공사했다. 터빈 등 주기기공급자는 한국중공업이며 설계는 한국전력기술과 삼안건설기술공사,터널굴착 등 토목공사는 대림산업이 맡았다. 이 발전소의 평균이용률을 25%로 볼 때 연간 발전량은 1억7천9백78만2천㎾H로 강릉·동해·속초 등 영동일대 11개 시군에 공급된다. 이같은 발전량은 해마다 석유27만배럴,약 5백40만달러어치의 유류대체 효과를 거두게 된다. 8만2천㎾ 규모의 설비용량은 한강수계에 있는 의암(4만5천㎾) 춘천(5만7천6백㎾) 청평(7만9천6백㎾) 팔당(8만㎾) 등 보다도 커 수력발전소 치고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국내에는 전체발전비중의 6.8%를 차지하고 있는 총 28개의 수력발전소(총 1백44만4천5백㎾)가 있으며 이중 규모로 볼 때 강릉수력의 설비용량은 8위. 지난 86년 1월 공사를 시작한 이 발전소 건설에는 총 1천2백56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고 연인원 1백30만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공사기간을 5년으로 잡으면 총 7백80만명의 인력이 이번 공사에 투입됐다고 볼 수 있는 엄청난 역사였다.
  • 모택동,김일성의 남침 “원칙적 지지”(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1)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미 뉴욕주립대)의 추적/“아시아 공산화 기회” 판단/한국군 38선 돌파에 파병 결심/“10월15일 15개 사단 투입” 스탈린에 통보/낙동강전투 때 인천상륙 예상하기도 1950년 6·25 동란 발발 당시 북경정부는 중국의 국가안보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유엔군의 반격이 개시되기 전부터 한국전 개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미 뉴욕주립대의 진겸 교수가 주장했다. 중국계인 진 교수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 대외관계 역사학회 제17차 연례회의에서 발표한 「한국동란중 중국의 목표변화」라는 연구논문에서 최근 공개된 중국 자료를 통해 베일에 싸였던 모택동의 개입결정과정을 소개했다. 이 논문의 요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해디 트루먼 미 대통령은 남한 구출 결의를 즉각 천명하는 한편 대만해협에서 중국군를 견제하기 위해 미 제7함대를 이 수역으로 급파했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모택동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충격과 더불어 몇 가지 심각한 도전을안겼다. 첫째,아시아 태평양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인 미국의 강경대응은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국제전선의 취약지대」라고 믿어온 북경 공산정권의 전반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둘째,7함대의 대만해협 이동은 중공당 군부가 1949년 가을 이래 준비해온 대만 해방계획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셋째,북한군과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군사대결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한국전은 중공당 최고의 과제인 아시아 공산화와 관련,중국 혁명의 영향확대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모택동과 중공당 지도부가 한국전에 대해 가졌던 인식은 미군 축출에 실패하면 중국에 위험하고 성공하면 아시아 공산혁명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복합적인 것이었다. 최근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김일성은 정확한 남침일자 등 세부계획을 중국에 알려주지 않았지만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의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원칙적으로 이를 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중공당 지도부는 북한의 남침 전부터 남북한간에 군사대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한국전 발발 5일 후인 1950년 6월30일 중국정부 총리이며 중공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주은래는 김일성과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전쟁자료 수집을 위해 대부분이 군사정보요원으로 구성된 일단의 중국 외교관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7월7일과 10일 주은래는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 관련 군사대비 문제에 초점을 맞춘 2개 회의를 주재했다. 이 두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즉 인민해방군의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 산하 13군단을 동북국경방위군으로 즉각 개편,필요할 경우 한국전 개입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7월13일 중앙군사위는 동북국경방위군 창설 명령를 공식하달하고 인민해방군에서 가장 유능한 지휘관 가운데 한 사람인 15군단장 등화를 13군단장에 임명했다. 또 동북군구 사령관이며 정치위원인 고강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업무를 지원토록 했다. 이리하여 8월초까지 25만명 이상의 중국군 병력이 한·만 국경에 포진했다.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을 때 중국군 간부들은주은래에게 북한군 후방에 대한 미군의 기습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미군 상륙이 가능한 지점으로 군산과 인천을 지적했다. 유엔군 증강과 더불어 중공당 지도부는 한국내 군사상황의 악화를 우려,한국전 개입 준비를 서두르면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9월15일)하기 1개월 전인 8월에 이미 북한군 지원을 위한 9월초 파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8월말까지 훈련과 그밖의 다른 개입준비를 마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고강은 준비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해주도록 건의했다. 중국은 또 파병 전에 소련의 협조와 김일성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했다. 두 개가 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9월17일 중앙군사위는 파병에 대비,한국의 지형을 조사하기 위한 일단의 군 장교들을 북한에 파견했다. 9월20일 주은래는 중국의 한국전 개입 기본원칙을 수립,모택동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정부는 또 한국전 개입시의 중·소 협조 가능성을 소련과 협의했다. 중국과 소련은 쉽게 일반적인 이해에 도달했다. 중국 지상군이 한국전에 투입되면 소련은 공군을 보내 중국군에 공중우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군 파병에 관한 최종결정은 10월1일과 2일 사이에 이뤄졌다. 이에 앞서 9월30일 한국군 제3사단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진격했고 다음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10월1일 김일성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 예지량과의 긴급회담에서 중국군 개입을 요청했다. 김일성은 또 부총리 박헌영을 모택동에게 보내 이같은 요청을 거듭했다. 10월2일 모택동은 중앙군사위 이름으로 13군단에 대해 임전태세를 완료하고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전쟁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날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소위 「중국의용군」 파병결정을 통보했다. 당시 모택동의 계산은 중국의 병력과 소련의 무기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중국군 12개 사단을 10월15일까지 북한에 투입,38선 이북에서 방어태세를 취하며 소련 무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스탈린에게 말했다. 또 1951년 봄엔 중국군 24개 사단을 추가 파병하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해 미군을 섬멸하겠다는 것이었다. 10월3∼5일간 중공당은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모택동의 파병결정에 대한 지도부내 이견을 해소하고 팽덕회를 중국 인민의용군 총참모장으로 선임했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6·25와 동북아 새안보질서」 국제학술회의

    ◎“남북한 체제 안정돼야 대화 활성화”/상호 안보이익 존중… 교우승인 유도를/군축 실효성 확보엔 국제적 보장 긴요 한국정쟁연구회(회장 김철범·국방대학원 교수)와 미국 피츠버그대학 리지웨이 국제안보문제연구소는 2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국전쟁과 동북아 신안보질서」라는 주제로 제3차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6·25전쟁 41주년을 맞아 열린 이 학술회의에서 소련과학아카데미의 보리스 자네긴 교수는 「한국전쟁」은 동서냉전의 시작을 의미했으나 걸프전은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이른바 「남북냉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 일리노이대의 고병철 교수는 침체상태에 있는 남북대화가 다시 활성화되려면 남한의 민주화와 정치적 안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국내 상황이 보다 향상돼야 하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적·지역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했다. □한국전쟁의 재고찰과 걸프전 이후 전환하는 국제정세(보리스 자네긴·소과학아카데미 미국 및 캐나다문제연구소)=한국전과 걸프전 사이에는 피상적이긴 하지만 의미있는 유사점이 있다. 이 두 전쟁은 모두 분단된 민족끼리의 충돌로서 모두 분단된 민족끼리의 충돌로서 시작됐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규모로,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쟁에 개입했다. 또 두번 다 이들의 개입이 국제연합기구(유엔)에 의해 합법화됐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유사점은 이 전쟁들로 인해 국제관계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됐으며 국제정치에 있어서 지정학적 세력을 새로 고정배치시켰다는 것이다. 이 전쟁들의 중요한 차이점은 한국전은 두 개의 사회체제와 이념의 갈등을 반영한 것이었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참전한 자본주의 「서방측」과 중국과 소련 등이 참전한 공산주의 「동방측」간에 전쟁이 수행됐으나 걸프전은 그렇지 않았다. 걸프전은 선진국과 그들의 원자재 공급원이었으며 이제 막 현대화되기 시작한 후진국간의 오래된 갈등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북쪽(선진국)은 남쪽(후진국)과의 대결에 있어서 소련의 능동적인 역할로 강화되고 있다. 남쪽과 북쪽 대결은 오랜기간 동안 동서반목에 의해 가려져왔다. 이제 소련이 개발도상국(이라크)에 대한 전쟁에서 서방측에 가담함으로써 남쪽과 북쪽의 대결은 보다 뚜렷하고 중요하고 위험스럽게 됐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남북한관계(고병철·미 일리노이대 교수)=침체상태에 있는 남북대화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남북 각자의 국내상황과 국제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국내상황에 있어서 남한의 민주화나 정치적 안정이 어느 정도 이룩되면 남북한이 대화를 보다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그같은 민주화나 안정으로 인해 서울정권의 정통성이 강화되면 동시에 서울은 대화에 있어서의 계산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대담해질 것이고 서울정부를 성실한 대화상대로 다루기를 꺼려하는 북한의 태도도 변화할 것이다. 또 악화일로에 있는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서울과의 협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부적으로 보면 「교차승인」의 실현은 하나의 촉매로서 작용할 것이다.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북한과 일본이먼저 수교하고 한국과 중국이 그 다음에 수교하는 것이다. 이 북­일,한­중 수교가 미국­북한간 관계정상화를 가속화시킬 것은 뻔한 이치다. 일본과 미국이 남북대화 진전을 대북관계 진전의 주요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것은 교차승인이 단지 남북대화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교차승인 자체로써 이미 남북대화는 활성화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군비통제에 대한 전망(안병준·연세대 교수)=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과정은 우선 쌍무적이어야 하고 거기서 나오는 어떤 결과라도 주변 강대국들과 유엔의 국제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남북 양측의 주장 가운데는 중요한 유사점도 있는가 하면 근본적인 차이점도 있다. 양측은 아직도 서로 대화함으로써 상호이익을 도출해내려는 진지한 의지가 없다. 남북한이 상호 정치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면 다른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쉬울 것이다. 남북 양측이 상호반목의 요인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대체로 평양이 외국군대와 자국군대의 존재에서 나타나는 대결의 징후에 보다 관심이 있는 데 반해 서울은 적대감과 불신의 존재에서 나타나는 대결의 원인에 보다 관심이 있다. 결과적으로 전자는 군사적 위혐을 제거하는 일에 모두하고 있는 한편 후자는 정치적 위협을 제거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이 대조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정치체제를 반영한다. 북한은 남한의 합법성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합법화시키고 있으나 남한은 경제발전·민주화·국제화 등으로 자신을 합법화시킬 수 있다. 남북한은 서로의 안보이익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긴장의 원인과 징후들을 제거해야 한다. 남한의 몰락은 결코 남한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독과 달리 남한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북한을 적절히 흡수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른 주변국들의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 □90년대 한반도의 군비통제­문제와 전망(김병기·미 조지타운대 교수)=남한 당국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 대부분의 군사분야에있어서 양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소련이 미그27이나 스커드B미사일 같은 첨단무기들을 계속 북한에 공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우위에 있다. 전략적 수렁에 빠져 있는 소련이 서울과의 관계개선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이 지역에서 미국과 경쟁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카드라고 간주하고 있는 한 주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무기공급은 계속될 것으로 볼 수 있다. 군비통제의 과정에 있어서 80년대에는 비록 아무런 합의도 없었지만 과거로부터 진전된 변화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원래 1987년 이후의 제안에 기초해 북한은 외국군대와의 합동군사훈련의 제한,특히 군사분계선에서의 제한은 물론 금지까지 요청했다. 북한은 이밖에 비무장지대에서 군인과 무기들을 제거함으로써 평화구역을 설정하고 민간인들에게 국경을 개방하는 것,(존재하지는 않지만)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콘크리트장벽의 제거,직통전화 복구,군사분계선에서의 도발 금지 등을 제안했다. 남한은 북한의 이같은 제의에 대해 대체적으로 협상에 응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북한은 실질적인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임수경양 석방문제를 대화지속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앞으로 군비축소 성사는 북한정권이 남한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 그 근본적인 정책을 어떻게 수정해 나가는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북한,“일방적 핵사찰거부”/노동신문/주한미군 핵무기 제거돼야 수락

    【도쿄 AFP 연합 특약】 북한은 미국이 남한내에 핵무기를 유지하는 한 일방적 핵사찰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이 19일 보도했다.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이날 도쿄에서 수신된 방송을 통해 노동신문을 인용,『미국이 남한에 핵무기를 유지하면서 핵무기를 갖고 있지도 않은 북한에 대해 핵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산적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일본이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는 것은 아시아국가로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던 입장을 망각한 수치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신문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라 핵안전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핵사찰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러나 문제는 북한과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남북한·미 3자회담/미측서 긍정적 반응/방미 한시해 주장

    【로스앤젤레스=홍윤기 특파원】 북한의 한시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미국 장로교의 교계 인사와 전·현직 고위관리,전직 군장성들과 만나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안에 대해 설명했으며 한·미·북한간의 3자회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고 주장했다. 한 부위원장은 16일 하오 「북부조국 미국방문대표단 남가주환영위원회」가 주최한 환영만찬회에 참석,환영사에 대한 답사를 통해 『북한은 중국이나 소련과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를 건설해놓았기 때문에 원자탄으로도 분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제조할 능력도,의사도,필요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일·영·불 등의 다국적 기업들이 남한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침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 박노해씨 2차공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과 관련,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단체 중앙위원 박기평 피고인(33·필명 박노해)에 대한 2차 공판이 17일 상오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동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검찰의 직접신문과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벌였다.
  • “김일성,소와 한달간 6·25남침 계획”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증언/대독 전쟁경험 풍부한 소 장성들 고문단에 참여/“서울 전격 점령하면 상황 끝”… 예비병력 안갖춰 북한의 김일성은 지난 50년 3월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스탈린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 후 약 한달간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작성에 들어갔으며 이 작업에 전쟁경험이 풍부한 소련 장군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쟁 전후 북한군 작전국장이었던 유성철씨는 지난 5일까지 재소 교민신문 고려일보에 연재한 자신의 회상록 「피바다의 비화」에서 김일성의 소련 방문 직후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간 극비리에 작전계획이 작성됐으며 소련군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전쟁 발발 직전까지 모두 3천여 명의 공작대를 남파시킨 전 강동학원 원장 박병률씨(86)는 16일 유씨의 6·25증언이 가장 정확한 진실이라고 확인했다. 다음은 6·25전쟁에 관한 유씨 회상록의 요약이다. 『6·25 전쟁 작전계획은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에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작전계획에는 총참모장 강건,포병사령관 김봉률,포병참모장 정학준,공병국장 박길남,동신국장 이용인,공군사령관 한일무,해군 참모장 김원무,병기국장 서용선,후방국장 정목,정찰국장 최원,작전국장 유성철(필자),작전부국장 유상렬 등이 참여했다. 소련 고문단에서는 바실리예프 중장,포스트니코프 소장 및 기타 장군들과 영관급이 작전계획 작성에 주동 역할을 했다. 이 작전계획 작성을 위해 독소전쟁 등 경험이 풍부한 소련 고문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실리예프 중장 등이 구 고문단과 신속히 교체된 것이다. 작전계획의 실천을 앞두고 비밀을 보장할 목적으로 훈련형식을 취하면서 병력을 38선에 집결시켰다. 집결이 완료된 후 기동연습에 관한 명령서를 무전으로 공개적으로 전파했는데 국방군 참모본부는 아마도 이 같은 북의 기만에 떨어졌으리라고 믿어진다. 이 작전계획의 기본 약점은 미국이 손쓸 사이없이 불의의 공격으로 서울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예비 병력을 준비하지 않은 데 있다. 또한 서울함락 후 박헌영의 지도하에 있는 남로당원 10만명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지리산 후격대들이 후방에서 세찬 공격작전을 펼 것을 기초로 해 작성된 것이다. 서울은 전쟁개시 3일 만에 함락됐으나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지리산 유격대의 활동도 없었다. 인민군은 한 달 동안에 남한의 90%를 점령하고 남한인구의 92%를 장악했으나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하게 됐다.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김일성의 지시로 박헌영과 함께 북경을 방문,원조를 요청하게 됐다. 우리 일행을 접견한 모택동은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키로 결정했음을 알리고 팽덕희 장군이 전선을 지휘하고 후방은 중국 동북정부 주석 고강이 책임지게 됐다는 것과 이들 두 동지가 손을 잡으면 조선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는 최종발언에서 전쟁은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펼쳐 보이면서 미군과 괴뢰군(국군을 지칭)을 각각 분리하여 격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는 이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다리를미군이라고 가정하고 다른 다리를 괴뢰군이라고 하자. 먼저 괴뢰군을 포위 섬멸하고 다음에 미군을 포위 섬멸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미군이 맥을 추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 다리를 들고 다른 다리로 툭툭 뛰면서 설명했다. 모의 이러한 말에는 김일성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모가 김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50년 10월19일 저녁 8시쯤 중국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여러 지점을 통과,조선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피아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어느 쪽에서도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나 1953년 7월27일 비로소 남북 인민들이 그처럼 고대하던 휴전을 맞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은 악명높은 소위 「사상검토」를 통해 민간인을 휩쓸고 뒤어어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일성에게는 세 가지 「흑색」 명단이 작성되어 있었다. 첫 명단에 든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부류였고 제2명단에는 무기징역을 받을 사람들이 들어 있었으며 제3 명단에는 소련으로 가기를 원하면 보내도 좋다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필자는 제3명단에 들어 있어서 소련으로 나올 수 있었다. 김일성은 6·25전쟁에 참가한 장군들 중 남일·이권무·김창봉·김광협 대장,무정 중장 등 모두 44명을 처형하거나 숙청했으며 이 가운데 필자를 비롯한 이상조·강상호 중장 등 16명의 장군이 탄압을 받고 소련을 위시한 외국으로 망명했다』
  • IAEA 빈이사회 폐막 이모저모

    ◎서방대표,“남·북한 모두 실익 거뒀다”/우리측,“「결의안」은 북한의 지연전술 저지책”/북,“미서 한반도핵·사찰수용 연계처리 타진” ○…북한에 대한 핵사찰문제가 포함된 11의B의제를 다룬 13일(하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북한의 핵안전조치협정 체결촉구와 이행에 관해 각국이 쏟고 있는 지대한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호주를 비롯,전례없이 많은 29개국이 발언. 각국 대표들은 한결같이 『7월 중순 실무협상에서 IAEA표준협정 초안을 확정짓고 9월 총회에 상정,동의받기를 원한다』는 북한의 통고를 환영하면서도 북한이 이사회의 서명을 받고 즉시 서명,이 협정을 발효시켜 협정상의 의무를 이행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번 회담의 결과에 대해 한 서방이사국 대표는 『한국은 1백1%,북한은 1백2%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표현하면서 한국은 북한이 9월 총회에서 핵확산금지조약에 동의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 성과이며 북한은 대부분의 이사국들이 핵사찰수용 촉구결의안을 제출하려는 움직임을 막은 것이 성과였다고 평했다.한국 대표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측 지연전술을 저지하기 위해 결의안 채택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의안 통과보다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하고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토록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며 『북한이 이사회에서 협정초안협상과 9월 총회에서의 동의일정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에 만족한다』고 표현. ○…발언신청자가 크게 붐볐던 이날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1∼2분씩 발언을 했는데 우리측 대표인 이장춘 주오스트리아 대사는 제일 마지막으로 등단,10여 분 간에 걸쳐 북한의 성실성을 촉구해 진충국 북한대표가 항의를 하기도. 각국 대표들은 북한에 대해 조속한 협정체결과 협정상의 의무 이행을 촉구했는데 각국 대표의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본 대표=9월 총회에서 동의를 받으면 지체없이,그리고 조건없이 서명을 할 것인가. 또 서명한 후 협정을 즉각적으로 발효시킬 것이다. ▲소련 대표=핵확산금지조약의 서명을 9월 총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북한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미국 대표=북한이 미국에 대해 핵 불사용을 보장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보장하라는 말인가. ▲중국 대표=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 빠른 시일내에 협정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 대표=북한의 일련의 태도로 볼 때 9월 총회 때까지 동의하겠다는 배경에 의구심을 안 가질 수 없다.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회의와 의구심은 가지만 북한이 동의하겠다고 이번 이사회에 제의했기 때문에 일단 지켜보기로 하겠다. 또 북의 유엔가입 결정을 환상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오는 변화로 생각,환영한다. 북이 외부세계와의 화합으로 변모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국제법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준수하기를 기대하며 국제의무의 불이행으로 초래될 불이익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 대표(발언권 신청)=남한 대표가 길게 연설했는데 한번 질문하겠다. 남한이 진정 핵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왜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대표=이 자리는 각국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지,당신의 질문에 대해 토의하는 자리는 아니다. ○…진충국 북한 외교부 순회대사는 13일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할 경우 북한의 대IAEA 핵안전협정 체결이 가능한가를 북한측에 최근 문의했었다고 말했다. 진 대사는 이날 IAEA 이사회에서 북한입장을 해명하는 연설을 마친 뒤 빈 주재 일본 및 기타 외국특파원들과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대미 핵협상과 상관없이 IAEA와의 핵안전협정을 체결하려는 이유를 질문받고 이같이 답변하면서 미국이 최근 평양에 「영향력 있는 대표단」을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달말에도 국제안보문제대표단을 파견,북한과 협상을 계속할 것이다. ○…이번 이사회에서 한국측은 기자들에게 한국측의 기본전략을 「결의안 상정·채택」이라고 시종일관 밝혀오다 결의안 상정이 마지막날 유보되자 『우리의 목표는 결의안 채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의무를 지워주자는 것』이었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9월동의 의사 천명」,「사무총장의 성명」을 큰 성과로 평가. 이장춘 대사는 『아직도 일부 이사국들이 북한의 7월 협상과정을 지켜본 뒤 그 내용이 흡족하지 못할 경우 7월 임시이사회를 열어결의안을 채택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 이 대사는 현지 취재기자들이 회의 첫날부터 결의안이 이번에 상정될 것 같지 않다는 질문에 『두고 보라』고만 대답해 「결의안 강행」 「결의안 유보」 등 혼선을 빚은 것과 관련,『초대된 손님이 음식을 잘 먹으면 됐지 부엌에서 생선비늘을 털어내고 배추를 다듬는 과정까지 지켜볼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냐』며 보도 태도에 불만. 특히 한국기자들이 북한의 진충국 순회대사에 대해서만 큰 관심을 갖고 자세히 보도한 것과 관련,『진 대사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 “안보환경 호전” 예측은 아직 금물/「탈냉전이후의 동북아」 세미나

    ◎한반도 비핵지대화등 구체 논의 가능성 커져/미·소·중·일 세력균형의 「신열강시대」 본격화 미소의 신 데탕트선언,중소정상회담,일북 수교원칙합의,한소 수교 등 최근 2∼3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같은 동북아 질서의 지각변동은 향후 한반도의 안보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남북관계에는 어떻게 작용하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탈냉전시대에 있어 동북아질서는 결국 미·소·중·일 등 4강이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면서 세력균형을 형성하는 새로운 열강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과정에서 비핵지대화 논의 등 한반도의 안보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논의들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대한 독자적 대책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13일 민족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전환기의 동북아질서와 남북한 관계」란 세미나에서 박영규 민족통일연구원 국제연구실장은 이와 관련,「미소의 대동북아 정책과 동북아 군사질서 재편가능성」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의 기본입장 변화,소련의 획기적인 양보,그리고 지역분쟁과 영토문제 등 역내 국가간의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는 한 동북아 및 아태지역에서의 군사질서 재편은 가까운 시일내에 커다란 진전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핵무기의 감축 및 제거와 함께 아태지역의 비핵지대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미국의 동북아 군사력 재편과 미소간의 군사적 절충,그리고 미·북한 접근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군이 결정된 현상황에서 미국은 고립된 북한에 긴장완화의 명분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 및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가 미소간에 동북아 군사문제의 일환으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남한내에서는 현실적인 안보상황이 변화된 것 같은 환상이 너무 빨리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남한내의 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남한의 안보정책 수립 및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소련의 대아태지역 평화공세 강화,한중수교 및 한중,일소 관계증진에 따라 향후 북한의 대미·일 평화공세가 강화되고 이러한 외교공세의 일환으로 대남평화공세 역시 일층 거세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남한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림으로써 남한의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박경서 중앙대 교수는 질의를 통해 『동북아질서 개편에 있어 한반도의 핵문제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에 있어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며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핵철수 주장의 이면에 중소의 요구가 반영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을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종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군축협상 또는 핵 논의라는 단어만 나오면 움츠러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핵협상에 과감히 응해 그 내용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종욱 서울대 교수는 또 「동북아질서와 중일의 역할」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미국은 현재 전략군과 해외고정배치병력을 위주로 하는 방어전략을 수정,기동력에 의존하는 신속대응전략 개념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한편,대외적으로 동맹국가들에 대해 방위분담금 증액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동북아에서의 긴장이 완화된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가 불가피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데 이의가 없으나 이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좋아진다는 낙관적인 예측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아시아에서의 냉전체제의 와해는 오히려 안보문제의 중요성을 보다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과 일본이 모두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에 세력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스스로의 안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통일독일의 출현이 나토라는 안보체제의 테두리 안으로 실현됨으로써 주변국가들의 의구심을약화 또는 해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한반도의 경우에는 통일한국을 견제할 수 있는 다자간 동맹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 모두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의 이점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의철 민족통일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한반도의 주변 4강이 만일 한반도의 통일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통일외교가 어떻게 추진되어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중국의 경우 단기적 측면에서 통일한국의 출현이 달갑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에서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적 발언권을 높이려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통일한국의 출현을 필요로 하는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시베리아 북한벌목장 취재기:5·끝

    ◎북 인부들,「김일성 주도의 통일」 안믿어/북한체제 우위 거론안해 되레 “이채”/서울에 대한 호기심·동경으로 가득 『서울서 오셨다고요. 정말 서울서 왔습니까』 서울사람을 처음 보는 북한 인부들은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바로프스크와 체그도민을 왕복하는 침대열차는 언제나 북한 인부들로 북적거린다. 기자가 철로 연변의 북한 벌목장을 찾아 이 기차를 탔을 때도 적지 않은 북한 인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찻간에서 만나는 북한 인부들은 서울서 온 기자의 모든 것에 대해 거의 무한대적인 반가움과 호기심을 드러내곤 했다. 이들은 처음 기자들 본 순간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낯선 듯한 느낌을 갖는 듯 곁눈질과 함께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내오곤 했다. 그러나 곧이어 기자가 『북한에서 오신 분들 아니냐』면서 말을 건네자 바짝 다가서서 어디서 왔으냐,정말 서울서 온 사람이냐고 마치 동물원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온몸을 훑어내리곤 했다. 그 시선에 적대감은 없다. 그냥 신기해 못살겠다는 표정이 눈길과 눈길 사이에잔뜩 묻어나올 뿐이다. 옷자락을 만져보기도 하고 어떻게 이곳을 올 수 있었느냐를 궁금해한다. 이들은 아마도 한국과 소련의 수교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 벌목인부들은 남쪽 기자 일행과 대화를 나눌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저 반갑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남쪽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고,또 그래서는 뭔가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해 보였다. 이에 비해 자신을 체그도민에 근무하는 무역일꾼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기자의 침대칸까지 따라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자신의 여권까지 보여주는 이 청년은 『소련과 중국의 석유공급 거부로 북한에 몇십년 만에 모내기를 위해 소가 등장했다』고 북한 실상을 전해주었다. 그는 남한이 잘살게 돼 소련과도 수교가 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체제로는 더 이상 『인민의 생활향상을 꾀할 방법이 없다』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남북한이 같이 잘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는그의 표정에는 가끔 열등감이 엿보인다. 약간의 적대감 같은 것도 있어 보였다. 간간이 그는 인민들이 나서서 휴전선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북한식 통일논리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남북한간 통일논의의 이니셔티브가 이미 남한 쪽에 있음을 부인하진 않았다. 시베리아에 나와 있는 벌목장의 사람들마저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북한인들처럼 이미 북한의 체제우위나 자신들의 주도에 의한 통일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은 흥미있는 발견이었다. 체그도민 벌목사업본부의 박춘송 안전부장도 기자 일행에게 통일논의 같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면서 『당신의 기사가 통일에 방해가 되지만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씨의 이 말은 시리즈를 다루는 동안 가장 어려운 주문이 돼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때로는 본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것이 통일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체그도민이나 철로 연변에서 본 북한 벌목인부들의 모습은 모스크바의 빈민가에서 만나는 월남인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를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들 만큼 이들의 모습은 평양 시가지에서 우리 기자단이 봐온 시민의 모습과도 너무 다르다. 박춘송씨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인들이 벌목한 벌목량은 4백만㎥였다. 한때 북한 인부들은 최고 5만명이 시베리아 산림지대에 나와 있을 때도 있었다. 벌목장에 침을 놓으러 다닌다는 하바로프스크 거주동포 이 모 여인(59)은 벌목인부들의 상당수가 고환이 붓는 병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병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름의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데 따른 병인 것으로 본인들이 알고 있고 또 그렇지 않겠느냐고 풀이했다. 고환이 붓는 병이 나타날 만큼 생리적 문제가 심각하다면 여기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소련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이 넓게 퍼져 있었다. 이는 소련의 북한 인부 철수론 주장자들이 내세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체그도민행 기차에서 만난 칼리나씨(53·틔르마 거주)는 『여자를 강제추행한다는 소문은 있지만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북한인들이 개를 사러 다니고 헌 텔레비전을 사러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으며 비교적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온순하다』고 말했다. 체그도민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체그도민서 본 벌목인부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난 기자에게 서울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면서 통일이 되거든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혹시 통일이 되면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면서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틔르마역에서 내리는 그들에게 만화주간지 한 권을 건네자 『이런 것 가져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가 다시 플랫폼 쪽 창문으로 다가와 손짓 발짓으로 만화책을 달라고 해 건네주었다. 그 사이 간부들과 상의해 입장을 바꿨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남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다시 온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서울에 대한 무제한의 호기심과 동경,통일로 북한사람들도 같이 잘살자는 것이 시베리아 북한 벌목현장의 대남관이었다. 이미 그들에게 남한을 통일시켜 잘살게 해주겠다는 낡고 오래된 김일성식 대남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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