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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기업 임가공 상담회/23일 심천서/섬유­완구 대상

    국내 중소기업인 20여명이 오는 23일 중국 심천에서 북한 기업인들과 만나 임가공 교역을 위한 상담회를 갖는다. 20일 대한무역진흥공사는 홍콩의 대북한 중개 전문업체인 키마텔의 주선으로 오는 23일 심천에서 3박4일 일정으로 남북 기업간 임가공 상담회를 갖기로 했다.북한측 접촉상대는 대외경제위원회 또는 삼천리 총회사로 알려졌다. 이번 상담회는 섬유와 완구 등 10개 품목을 대상으로 남한에서는 1개 품목당 2∼3개 업체씩 모두 20여업체가 참여할 예정이다.
  • 고위층 2세들(북한 특권층 심층해부:6·끝)

    ◎몰래 「독선생」 모셔다 불법 과외/대부분 김일성 종합대 “특혜 진학”/동창·성분 좋은 집안끼리 혼인/부모지위 이용 돈벌려다 망신/나이 어리고 일선경험 적어 걸출한 인재 안나와 북한에서 출세를 하려면 일단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공산당원이 돼야 한다.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김정일을 비롯,정무원 부부장급(차관) 3분의 1이상이 이 대학 출신이란 사실에 의해 시사되고 있다.따라서 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은 여간 치열하지가 않다.그래서 권문세도가에선 몰래 「독선생」을 모셔다가 하는 불법과외가 성행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특권층자녀에게 김일성 종합대학 진학시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다.일종의 특례입학인 셈인데 흔히 「5과대상자」로 불리는 특권층의 자녀는 항일 빨치산 유자녀나 대남사업(남한침투간첩) 희생자 유자녀와 함께 입학이 우선 보장된다.이들에 대한 특례입학은 김정일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인데 5과대상자들은 커트라인이 50점일 경우 30점만 얻어도 입학이 허가된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입학경쟁률은 공과대학이 평균 7대 1,의과대학은 10대 1을 웃돈다.북한에선 대입시험에 낙방할 경우 자동적으로 군에 입대하기 때문에 재수생은 없다.그러나 성분이 좋은 집안의 낙방생 자녀는 군복무중에 다시 시험을 쳐 대학에 입학하기도 한다.따라서 북한 특권층자녀의 대부분은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으로 봐도 된다.이들은 결혼도 동창끼리 많이 하며 괜찮은 집안끼리 혼맥이 엮어지기도 한다.바로 허담의 아들과 중국광주무역대표부대표 최충남의 딸이 맺어진 경우가 그 예다.그러나 특권층자녀중 세인의 시선을 끌 만큼 걸출한 인재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상태다.그 이유는 대체로 2세의 나이가 어린데다 일선경험이 일천한 때문으로 분석된다.하지만 북한사회의 특성상 향후 이들이 각 분야의 요직을 차지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이른바 핵심계층이 아닌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이 주요포스트에 앉을 경우 체제도전의 우려가 있고 정권유지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많아 자리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부모의 지위를 이용,큰 돈을 번 특권층2세가 적지 않다.그러나 대개는 뒤끝이 안좋았다.박성철 부주석의 장남 박춘식이 대표적인 예다.그는 아버지를 등에 엎고 만년보건회사를 차려 많은 외화를 벌었다.하지만 박성철이 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이를 주관한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을 비판했다가 김정일의 노여움을 사 중앙검찰소에 체포되면서 추풍낙엽이 되고 말았다.당시 박성철 부주석은 이 사업을 총화하면서 이 행사로 말미암아 북한경제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고 지적,이를 주관한 사로청을 호되게 비판했다.사로청으로부터 이같은 보고를 받은 김정일이 대로한 것은 물론.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당에서 직접 조직한데다가 수령의 권위와 위신을 세계에 자랑하는 계기가 됐는데 돈 좀 썼다고 시비를 걸고 나선 게 괘씸했기 때문.분을 삭이지 못한 김정일은 수령의 권위를 훼손시켰다는 죄목으로 박성철에게 3개월의 사상검토를 명했다.동시에 부주석의 권리정지와 가택연금을 부과했다. 이 일로 박성철이 톡톡히 망신을 당한 것은 물론.또 당과 정무원은 이때다하고 외화불법낭비혐의로 그의 장남 박춘식을 체포,6개월간 비틀어 짰다.내로라 하던 박성철의 날개가 하루아침에 떨어지자 직전까지 그에게 아부하던 검찰소가 들고 일어나 박춘식을 체포한 것.93년12월 박춘식이 이렇게 몰리자 평양시 동대원구역 당조직부장직에 있던 그의 동생 박춘원 마저 많은 여자를 다치고 외화를 착취한 혐의로 해임,철직되어 검찰로부터 닥달을 당했다. 북한에선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면 그와 그 가족은 물론 범법자라도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된다.그러나 한번 김정일의 눈밖에 나면 그의 운명은 끝이 난다.김정일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 6·25 45돌/진상 규명 서적출간 활발/주목받는 국내외 3개역저

    ◎일 공산주의자가 본 북침설의 허구­한국전쟁/미 육군 작전상황 기록한 공식전사­밀물과…/미 정책결전과정 분석한 「한국전쟁과 미국」도 나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룬 서적들이 많이 나와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이런 흐름의 하나로 6월 들어 「6·25」를 분석한 국내외 역저 몇권이 선보였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책들이 국내 학자가 쓴 「한국전쟁과 미국」,미 육군성에서 낸 「밀물과 썰물」,그리고 일본 저널리스트의 저서 「한국전쟁」등이다. 「한국전쟁」(한국논단 펴냄)은 「6·25가 미군과 한국군이 일으킨 북침」이라는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의 주장이 허구로 가득 찬 것임을 그들의 문서를 통해 입증했다.지은이 하기와라 료(추원료)는 이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공문서보관서에 소장된 「북한문서」1백60만쪽을 2년 반에 걸쳐 열람했다.이와 함께 「6·25」 당시 조선인민군 중장이었던 유성철,옛소련 공산당 간부 허진등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뒷받침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49년 초 중국공산당에게 조선계 군인 3만여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인다.50년 6월23∼24일에는 인민군 전체 7개 사단중 5개 사단이 38선에서 수㎞이내에 집결한다. 지은이는 인민군 2사단,3사단,6사단등에서 낸 작전명령,병력배치도,작전일지등 각종 자료를 이용해 남침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예컨대 6사단 문화부(정치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보낸 극비문서 「전시 정치 문화사업」에는 38선 인근에 집결해서부터 남진명령의 접수,진공,점령지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행동지침이 5단계로 분류돼 자세히 지시돼 있다.지은이는 이밖에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사실과 북한 주둔 소련군의 쌀 수탈등 만행도 공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지은이는 공산주의자.하기와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특파원을 지낸 기자 출신으로 지금도 일본 공산당에 몸담고 있다.그는 책을 쓴 이유를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진로에도 중대한 연관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과 미국」(평민사 펴냄)은 국방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전쟁연구회 회장인 김철범박사가 저술했다.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19 45년부터 53년 「6·25」종전까지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이다.지은이는 당시 미국의 정책은 장기적인 점령아래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하자는 국무부측과,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해 조속한 철군을 주장한 군부가 대립했던 것으로 보았다.새롭게 「관료정치적 모델」을 분석틀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이에 견줘 「밀물과 썰물」(대륙연구소 출판부 펴냄,모스맨 지음)은 「6·25」과정 중에서 50년11월∼51년7월 부분을 다루었다.미군의 대규모 작전은 물론 대대 단위의 부분적 전투도 상세하게 소개·분석했다.미 육군의 공식 전사로서 객관적인 사실 기록에 치중했다.재무부장관을 지낸 백선진 예비역 육군소장이 우리말로 옮겼다.
  • 북입장 최대 배려… 사실상 무상 제공/대북 쌀지원 방식과 과제

    ◎장기저리… 무연탄·철광석으로 상환/「민족내부거래」 국제 인정여부 관심 남북 당국간 북경 쌀회담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대북 쌀지원 제공의 방식과 이에 따른 문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 양측은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단 외형적인 「유상 제공」에 잠정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그 상환방식은 장기저리로,그것도 무연탄이나 철광석등과 바꿔받는 구상무역 형식에 합의했다. 형식은 「유상」이지만 이는 내용면에서 사실상의 무상제공을 뜻한다.결국 우리측이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의 체면을 최대한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측은 지난 91년 북한에 쌀 5천t을 제공할 때 이미 유사한 선례를 남겼다.당시 우리측 민간기업인 천지무역이 북한으로부터 시멘트와 무연탄을 받기로 했으나 북측이 이를 아직까지 보내지 않음으로써 쌀값 12억7천2백만원을 정부측이 남북협력기금으로 천지무역측에 보전해준 전례가 있는 것이다. 국가간 식량의 대량거래는 무상으로 원조하거나 특혜조건으로 양도할 경우에는 잉여농산물 처리에관한 국제적 규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다만 유상으로 제공할 경우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물론 유상으로 수출할 경우는 일반적인 재화나 용역의 거래와 동일하게 세계무역기구(WTO)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즉 국제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거나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거래로 제소당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91년 우리측이 북한에 쌀 5천t을 보낼 때도 미국의 도정협회가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측은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내의 내부거래로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나아가 향후 남북간 직교역의 확대에 대비해 이번 쌀공여문제를 남북간 민족내부교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수송방식에선 우리측은 「주해로 종육로」를 희망하지만 북측이 원하는 대로 전량 해로수송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체제우월성을 일관되게 선전해온 북한으로선 남한쌀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북한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자세이고,우리측은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대국적으로 이를 양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문점을 통한 육로수송은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상징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전면 양보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우리측이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데도 북측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굳이 부인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북 대남정책 어찌될까/경수로 이은 변화… 한국위상 안정기미/“미·일과 관계 개선용” 일부선 신중론 북한의 대남정책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북한 대외정책의 기본전략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미국을 발판으로 국제사회 무대에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일본의 자본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보자는 것이다.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와의 관계는 배제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3일 콸라룸푸르에서 끝난 미북 준고위급회담에서 한국형경수로를 수용했으며,『남한 기술자의 방북에 대해 관여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곧이어 북경에서도 우리정부 당국자와의 「쌀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정부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을 담당해온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워싱턴이나 도쿄로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아무리 남한을 배제하려 애써도,남한의 승인이 없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경수로 사업도,일본과의 국교정상화도,일본 쌀의 반입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굴복한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이 당국자는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이 남한정부의 실체를 인정하고,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은 그에 따른 갖가지 실리적 반대급부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술적인 변화』라고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분석했다.이 당국자는 『당초 북한이 당국자간의 쌀대화에 나왔을 때,일본쌀을 받기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회의가 들었으나,예상외로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면서 『쌀 지원이 이뤄지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할만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좀더 신중한 입장을 가진 당국자들도 있다.『북한이 남한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정책에 약간의 변화가 왔지만,이는 어디까지나 미·일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형식적 변화일 뿐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주장이다.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에 대한 또다른 시각은 전력이나 식량 사정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일관된 전략이나 전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좀더 냉혹한 분석이다.한 당국자는 『일본에서 30만t의 쌀을 가져간다고 해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남한에서 주는 쌀이라고 마다할 형편이 못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의 경제력 비교/GNP 기준 남한이 17.8배 앞서/북 식량난 극심… 수요량 38% 부족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94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7%로,한국은행이 지난 90년부터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추정통계를 작성한 이래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했다. 한국은행은 19일 지난 해 북한의 경상GNP는 2백12억달러,1인당 GNP는 9백23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남한의 경상GNP는 3천7백69억달러로 북한의 17.8배,1인당 GNP는 8천4백83달러로 북한의 9.2배이다. 북한은 지난 90∼93년에도 각각 3.7%,5.2%,7.6%,4.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90∼94년의 경상GNP는 연도별로 2백31억달러,2백29억달러,2백11억달러,2백5억달러,2백12억달러이다. 90∼94년 사이에 남·북한의 경제력은 경상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한이 북한의 10.9배에서 17.8배로,1인당 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5.5배에서 9.2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북한의 지난 해 무역규모는 수출 8억4천만달러,수입 12억7천만달러,합계 21억1천만달러이다.남한은 수출 9백60억1천만달러,수입 1천23억5천만달러,합계 1천9백83억6천만달러로 각각 북한의 1백14.3배와 80.6배,94배에 이르렀다. 지난해 북한의 쌀 등 곡물 생산은 전년보다 다소 증가하긴 했으나 전체 수요에는 크게 미달해 우리와 일본에 대한 쌀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작년 북한의 쌀생산량은 93년보다 18.5% 늘어난 1벡50만ⓣ에 이르고 쌀을 포함한 전체 곡물생산량은 전년보다 6.2% 증가한 4백12만5천t을 기록했다.그러나 전체 수요량 6백70만t에는 38.4%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북한은 현재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북경회담­이모저모/남북 대표단 숙소 오가며 극비리 진행/북,25만t이상 요구… 막바지 진통 겪어/농림수산부 북에 보낼 쌀 도정준비 분주 ○…남북한 대표단의 북경 쌀회담은 19일 양측 대표단이 묵고 있는 샹그릴라호텔과 북경호텔을 오가면서 극비리에 진행. 전날 양측 대표단은 이틀동안의 회의결과를 종합하고 각기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는등 19일 회담을 위해 밤늦도록 대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석채 재정경재원 차관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등 수석대표등의 주도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도 양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인도방법과 절차를 논의하느라고 마라톤회의를 벌였다고 회담주위 관계자가 전언. 특히 북한측은 쌀의 인도물량에 대해계속 불만을 표시했으며 『북한은 우리가 부담할수 있는 최대규모인 25만t을 훨씬 능가한 엄청난 규모의 쌀을 요구,협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담장 주변인사가 지적. ○…황병태 주중대사도 지난18일 하오,북경특파원들에게 결과를 설명해 주겠다고 했던 것은 이날 중으로 결과가 나올수 있을것이라는 예상때문이었다며 변명하면서 막판 협상이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암시.주중대사관측은 지난18일 상오 북경특파원들에게 이날 하오 결과를 설명해줄테니 참석하라고 통지했으나 7시간가량 기다리게 한뒤 『아직 회의가 진행중이어서 해줄 말이 없다』며 결과설명을 유보하기도. ○…농림수산부는 19일 북경에서의 남북한 차관급 쌀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5만t(34만7천섬)의 쌀을 우선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에 보낼 쌀의 도정·포장·국내 수송 등의 준비작업으로 분주한 모습. 농림수산부는 이날 상오 이상길 식량관리과장의 주재로 포장재를 발주하는 조달청 관계자,포장재 생산업체들로 구성된 폴리프로필렌(PP)공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쌀 공급에 따른 우선 해결 과제인 포장재의 제조능력·표시방법·가격 등 포장재의 조달 문제를 집중 논의.
  • 절차·방법(대북 쌀 지원)

    ◎15만t 수송 수개월 걸린다/89∼94년산 일반미로… 통일미 제외/국내여분 감안 7만여t 추가 수입 남북한간 차관급 쌀회담이 매듭됨에 따라 정부는 구체적인 쌀전달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아직 회담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북한이 요구한 쌀 15만t의 정확한 제공절차 등은 더 지켜봐야 한다.그러나 규모로 볼 때 한꺼번에 모두 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정부와 계약을 한 3백93개의 도정공장중 가동할 수 있는 곳은 2백33개이고,보관중인 정부미의 생산연도는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북한에 제공할 쌀을 가공할 수 있는 도정공장은 이보다 적어지게 된다. 하루 8시간을 가동할 때 한개의 도정공장에서 가공할 수 있는 쌀의 양은 15t,12∼13시간을 가동하면 20∼25t가량이다.전체적으로는 5천t을 가공,포장하는데 10일쯤 걸린다는 것이 농림수산부의 계산이다.여기에 항만노무자 등의 인력을 감안한 하루 선적가능물량은 8백t정도이므로 15만t을 북한에 모두 전달하려면 최소한 몇달이 걸리게 된다.우리나라가 지난 91년7월 민간차원의 물물교환형식으로 북한에 5천t의 쌀을 제공할 때도 양곡창고 출고에서부터 목포항∼나진항의 수송과정을 거쳐 북한에 전달되는데 22일이나 걸렸다. 북한에 쌀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림수산부가 시·도에 출고지시를 내려야 한다.전국에는 9천여개의 정부미 양곡창고가 있으며,시·도에서 보관 및 관리를 대행하고 있다.북한에 보낼 쌀의 종류가 정해지고 출고지시가 내려지면 쌀의 생산연도 및 보관창고를 감안,지역별로 쌀을 수집해 도정공장에서 가공하게 된다.포장규격은 우리의 경우 40㎏이나,북한의 요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포장지에 어떤 표식을 할 것인지의 여부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결정되어야 하나 지난 91년의 경우처럼 북한의 요구를 수용,아무 표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우리나라의 정부미에는 「정부양곡」이라는 표시를 한다. 정부미는 89∼94년산 일반미와 90∼91년산 통일미가 있다.통일미는 쌀과자나 술 등의 가공용이므로 일반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확실하다.올 양곡연도가 끝나는 오는 10월말 기준 정부미의 재고량은 올해 수입할 35만6천섬(5만1천t)을 포함,7백1만1천섬(1백1만t)이다.비상시의 국민 2개월 소비량인 식량안보용은 6백만섬이므로 수치적으로 북한에 줄 수 있는 쌀의 여력은 1백만섬(15만t)가량인 셈이다.정부는 올 의무수입물량인 5만1천t은 북한에 제공할 물량에 포함시키지 않을 방침이다.민족간 내부거래이기는 하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때 수입물량의 산정기준인 국내 소비량을 남한만의 소비량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대신 의무할당량 외에 추가로 7만여t을 수입할 방침이다.이는 안보비축분을 제외하고 모든 여분을 없애는 것도 불안하지만 외국산 쌀을 포함시키는 것이 정부부담이 적어지는 이유에서다.15만t을 모두 국내산으로 채울 경우 2천억원정도의 정부부담이 생긴다.그러나 그 절반인 7만여t을 수입미로 할 경우 정부부담은 1천3백억원정도로 줄어들게 된다.국내외 쌀값은 4∼5배정도 차이가 나는 탓이다. 운송수단은 선박수송으로 이뤄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정부 관계자는 『1차로 5만t을 전달할 경우 10t짜리 트럭 5천대분이나 되므로 육상수송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해상수송을 할 경우 5천t짜리 선박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회담 이모저모/보도진 닥치자 장소옮겨 극비진행/물량·인도방법 중점일사천리 절충 북한에 대한 쌀제공과 관련한 남북한 대표단의 북경회담은 17일 하오 북경호텔에서 개막된 뒤 이날밤 샹그릴라호텔로 장소를 옮겨 18일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비공개회의로 진행.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수석대표로 남북한 관계부처 관리들로 이루어진 둘째날 회담에서 양측은 쌀제공의 양과 인도방법등에 관해 집중 논의.이날 상오까지도 회의속도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고 밝히던 회담장 주변 소식통들은 하오가 되자 『세부항목에서 약간의 의견차가 있어 길어지고 있다』면서도 19일중으로는 양측이 북경에서 서명한 뒤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발표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언. 이에 앞서 17일 회담때는 회담장소를 숨기려는 대표단과 이를 추적하는 기자들간에 숨막히는 숨바꼭질이 계속됐다.첫회담장인 북경호텔을 찾아내지 못했던기자들이 2차회담장인 샹그릴라호텔을 알아낸 뒤 현장에 도착한게 하오 7시40분.일본기자들이 제일먼저 밀어닥치자 북한측관계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곧이어 한국기자들이 닥치자 그때까지 남아있던 한국대표단은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양복으로 얼굴을 가린채 제지를 뿌리치며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는 모습.현장에서 통일원 관계자는 이날 하오 어떤 이야기가 오갔냐는 질문에 『나는 회담장엔 들어가지 않아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모른다』며 시침.또 이곳에서 쌀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대표단의 수는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대규모인 것으로 확인.17일 저녁 예약만 해놓고 기자들에게 들켜 결국 무산됐던 샹그릴라호텔 2층 로터스룸의 원탁식탁에는 16개의 의자가 준비돼 있었으며 호텔관계자도 모두 16명분의 식사를 준비했었으나 이날10시쯤 취소를 알려왔다고 귀띔. 한편 남북사이의 쌀 제공협상과 관련,막후 중간역할을 했던 한 조선족 거물실업가는 18일 『북한은 이미 일본·미국등과 1백40만t규모의 쌀을 원조·도입등의 방식으로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고 주장. 이 조선족실업가는 북한은 현재 3백만t규모의 쌀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북한은 『남한이 제공할 것으로 보이는 5∼30만t 규모는 너무 양이 적으며 생색내는데 그치는 양』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면서 남북사이의 논의는 쌀의 제공 양과 관련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
  • 전망·대책(대북 쌀 지원)

    ◎인도적 배려… 북 화해 자세 유도/남북관계 전반에 긍정적 변화 예상/요구전량 제공… 일 등거리외교 견제 대북 쌀지원 성사가 초읽기에 들어감으로써 향후 남북관계 전반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당국자간 비공개 쌀회담은 금명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양측이 그간 대한무역진흥공사와 삼천리총회사를 통한 준당국접촉에서 쌀의 인도시기와 양에 대해서 거의 의견접근을 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식량난이 주민소요를 우려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점도 성사가능성을 높게 해준다.특히 북한은 오는 7월8일 김일성 사망1주기 이후 예상되는 김정일의 「대관식」을 위한 최소한의 무대장치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도 남한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당장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포괄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요컨대 이번 북경회담에서는 ▲우성호 선원 석방문제 ▲경수로부지조사단 파견문제 등 다른 현안도 자연스레 거론은 되겠으나 구체적인 합의는 대북 쌀지원문제에 국한될 것이리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북경대좌는 요식절차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이후 1년만의 첫 공식대좌인데다 합의의 모양새는 향후 남북관계의 기상도를 좌우할 터이기 때문이다. 우리측이 회담대표로 남북기본합의서 틀안에 있는 경제공동위 남측위원장인 이석채 재경원차관을 선택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통해 즉각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낙관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회담대표로 차관급이긴 하나 공식당국인지에 대해 다소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내보낸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당국배제전략이 아직 불식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는 북한이 일본등 제3국과 민간단체로부터 곡물을 제공받기 위한 여건조성용으로 마지 못해 이번 회담에 임하고 있다는 관측과도 무관치 않다.즉 이번 회담이 북한에 국제적 구호를 받기 위한 징검다리만 놓아준채 남북대화분위기 마련에는 별다른 기여를 못하고 일과성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실제로 일본 연립내각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30만t정도의 재고미를 북측에 제공할 복안을 갖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우리측으로선 남북관계의 장기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쌀카드로 남북 등거리외교를 펼치려는 일본 정계 일각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어차피 얼마간의 모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측이 북한이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쌀 15만t을 전량지원하되 이를 단계적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북한을 남북간 화해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한 쌀 협상/두대표는 누구/남측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84년 수해때 북한쌀 수용 기여 북경 남북 쌀회담의 우리측 대표인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50)은 능변에 설득력이 강하다.해박한 경제지식과 지금도 삼국지를 줄줄 외우는 기억력을 자랑한다.북한의 전금철이 고도로 훈련된 회담꾼이라면 그는 천재형 경제전문가다. 한이헌 경제수석비서관과 함께 행정고시 7회출신.경제기획원출신으로 5공시절 청와대에서 전두환 전대통령의 총애아래 실세 경제비서관을 지냈고 6공 들어서도 사회간접자본(SOC)투자기획단 부단장과 예산실장을 지냈다.문민정부 들어서도 예산실장 자리를 고수하다 농림수산부차관을 거쳐 초대 재정경제원차관으로 복귀했다.84년9월 우리나라에서 수해가 났을 때 전두환전대통령을 설득해 북한이 제공하는 쌀을 받기로 결정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남북 쌀문제와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이번 남북 쌀회담에 우리측 대표로 낙점된 것은 농림수산부차관으로서의 경험과 이런 인연,재경원차관이 남북경제 공동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는 점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다.그의 탁월한 대인설득력도 고려되었음직하다. ◎남북한 쌀 협상/두대표는 누구/북측 전금철 아태평화위부위장/대남접촉 20여년… 협상 전문가 북경 남북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인 전금철(60)은 지난 72년 남북조절위 북측 대변인을 맡는 등 20여년간 각종 남북대화에 참여해 온 협상전문가. 현재 김용순이 위원장인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의 관영매체들이 보도할 때 정무원 부부장보다 먼저 호명하는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차관급 이상의 지위로 추정되고 있다. 92년말 연형묵 총리의 해임 직후부터 2년간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한때 숙청설이 나돌았으나 「평양축전」을 앞둔 올해 3월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85년과 88년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단장을 맡은데 이어 지난 90년 범민족대회준비단장으로 임명돼 이 대회를 사실상 주도. 노동당에서 대남사업 전담부서인 통일전선부 부부장직을 같이 맡고 있는 그는 남북대화석상에서 비교적 억지 주장이 적은 인물로 손꼽힌다.지난 47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박사 학위를 받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한 치밀한 성격의 대남 전략가로 알려져 있다. □남북 쌀관련 일지 ▲59년9월=북,사라호태풍 이재민에 쌀3만섬 등 제공용의 표명 ▲62년1월=북,풍랑만난 남한 어민에 쌀 등 지원 제의 ▲67년1월=김일성 매년 쌀2백만섬,전력10억 KWH 등 대남 제공 용의 밝힘 ▲77년1월=남,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대북 식량제공 용의표명 ▲84년9월=북적,쌀 5만섬 등 대남 수재물자 제공 ▲90년7월=「사랑의 쌀」8백t(1만가마)북한 반출 ▲91년4월=남 천지무역상사와 북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 쌀 직교역 합의 ▲95년3월7일=김영삼 대통령,베를린 외교3단체 연설중 대북곡물제공 용의표명 ▲95년5월15일=김영삼 대통령,IPI서울총회 개회연설중 곡물지원 용의표명 ▲95년5월25일=북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일본방문중 남한쌀 수용의사 표명 ▲95년5월26일=나웅배 부총리,조건없는 곡물지원 제안 ▲95년6월6일=송영대 통일원차관,북측에 공식적 회신촉구 ▲95년6월12일=김영삼 대통령 재차 조건없는 쌀제공의사 발표 ▲95년6월17일=남북차관급 쌀회담 북경개최
  • 대북 쌀 제공/성사여부 결정적 분기점/북경의「남북 준당국접촉」안팎

    ◎경수로 타결 등 주변정세 긍정적 변화/북의 「당국간 대화」 기피가 막판 걸림돌 대북 곡물지원 성사여부가 결정적 분기점을 맞고 있다. 금명간 차관급 수준의 당국간 접촉이 성사될 듯한 긴박한 분위기다.남북이 이미 북경에서 준당국차원의 접촉을 갖고 공식 대좌를 갖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르는 점도 현상황의 급박성을 말해준다. 미·북간 경수로협상이 타결되는등 남북한을 둘러싼 주변 정세는 일단 대북 쌀지원에 유리한 국면이다.또 북한의 식량난이 주민들에 대한 내핍 강요로는 감내하기 힘든 한계상황이라는 점도 성사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체면과 당국간 대화 기피증이 한가닥 걸림돌로 남아 있다. 다만 북경에서 북한의 무역상사인 조선삼천리총회사나 전금철 아·태 평화위원회 부위원장등이 우리측 준당국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한무역진흥공사측 인사들에게 민간차원의 곡물제공을 요청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통일원은 이를 명쾌하게 확인해주지 않고 있으나,익명을 요구한 다른 부처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의중을 떠보는 차원에서 유사한 막후접촉이 진행됐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송영대 통일원차관은 이날 『지난달 26일 우리측이 조건없는 대북 곡물제공을 제의한 이후 아직 북측으로부터 전혀 공식적이고 직접적인 반응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막후접촉 그 자체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정부의 자세는 크게 두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째 북한의 태도가 아직 순수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즉 북측이 남북 등거리 외교차원에서 북한과의 수교협상을 서두르려는 일본으로부터 쌀을 지원받기 위한 여건조성용으로 남한과의 접촉설을 퍼뜨린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나아가 선명회등 우리측 민간종교단체를 이용해 실속만 차리고 체면이 구겨지는 당국간 공식 접촉을 회피하려는 속셈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식량난이 갈데까지 간 최악의 상황인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엔 북측도 당국간 곡물제공 협의에 응하리라 보기 때문이다.일본측과 우리 민간단체들이 조금만 더자제해준다면 그 개연성은 상당히 높아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일본측에 최근까지 수차례나 외교경로를 통해 남북관계를 위해서 우리쌀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마찬가지 맥락에서 선명회측의 추가 곡물지원에 대한 승인도 일단 유보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잇다. 정부가 이날 민족복리 증진과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선 일본쌀보다는 우리쌀이,민간차원보다는 당국차원의 곡물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
  • 경수로 협상 타결 62.6%가 “만족” 응답

    ◎갤럽 전국 1천22명 여론조사/긴장완화 도움 76.8%… 교류촉진 75%/“김 대통령 협상결과 수용 잘했다” 73.9% 우리 국민의 62.5%는 미국과 북한간의 경수로협상타결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지난 14일 전국의 20살이상 성인남녀 1천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결과 「매우 만족한다」 10.9%,「대체로 만족한다」 51.7%로 집계됐다.「매우 불만이다」는 4.7%,「대체로 불만이다」는 27.8%로 만족하는 편이 불만을 가진 편보다 2배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북한 경수로건설에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매우」가 9.6%,「어느 정도」가 42.6%로 조사됐다. 「별로」는 39.9%,「전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3%였다.중심적 역할수행을 전망하는 쪽이 그렇지 못한 쪽보다 10%쯤 더 많았다. 또 「경수로협상타결이 남북간 긴장완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19.6%가 「크게 도움이 될 것」,57.2%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해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응답자가 76.8%를 차지했다.반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20.5%,「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은 1.7%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기술진등 남한사람의 방북으로 남북간의 교류가 촉진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18.9%가 「크게 도움이 될 것」,56.1%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22.2%,「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은 1.8%였다. 김영삼대통령의 경수로협상결과 수용발표에 대한 평가에서는 응답자의 19.6%가 「매우 잘한 일」,54.3%가 「대체로 잘한 일」이라고 답했다.「잘못했다」는 평가는 22.3%로 나타나 김대통령의 결단에 동의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경수로협상과정에서 김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자세가 적절했는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적절했다」가 58.3%,「적절하지 못했다」가 38.0%로 집계됐다.
  • 광복50년­한국안보의 좌표와과제/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 발표전문요지

    ◎남북 비공격적 방어취한뒤 군축·재통일 시도를/안보전문가 교류 촉진… 신뢰구축 여건 창출해야/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 비슷… 분단영구화 우려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황병무 국방대학원교수)는 16일 국내외 학자를 초청,서울 힐튼호텔에서 「광복 50주년 한국안보의 좌표와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17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에서 배리 버전 교수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영구화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으며,보른 몰러 박사는 한반도 통일이 국가연합­연방국가­완전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간추려 본다. ◇「공동안보와 비공격적 방어:한반도에의 적실성」(보른 몰러 덴마크 코펜하겐대 평화·분쟁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공동안보의 군사적 의미는 비공격적 방어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이는 문자 그대로 상대국에 대한 위협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국의 안보를 고려하는 것이다.한반도에이를 적용시킬 경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군사적 대치는 남북한 모두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고 미국 역시 방어력 군사력으로만 남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방안보다는 덜 매력적이지만 다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남북한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여기서 불개입이란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군이 철수하고 유엔군이 이를 대신해 주둔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나는 ▲72년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상호간의 신뢰구축과 안정을 도모하고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며 ▲선제공격의 준비태세에 대한 옵션을 제거하고 ▲공격능력을 줄여가며 ▲일반군축을 시도한 뒤 마지막으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을 위해 재통일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나는 한반도의 통일이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그리고 완전한 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군사신뢰 구축과 군축」(제임스 매킨토시 캐나다 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남북한 안보관계의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있어 신뢰구축은 단순한 신뢰구축 수단을 적용하는 것 이상의 것과 관련되어 있다.신뢰구축은 기본적인 안보개념의 변화과정을 촉진하는 활동이다.신뢰구축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본적인 조건들이 일치해야 한다. 비록 북한이 남한에 대해 중요한 문턱을 넘어서려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서 이런 조건들은 신뢰구축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이는 현재 의미있는 신뢰구축이 남북한간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남북한간 그리고 지역전문가 그룹과의 상호작용의 기회를 촉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 과정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촉발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복합적인 신뢰구축 협정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신뢰란 안보개념에 있어 장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감축협정을 무익하게 추구하는 것이나 전후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투명성 보장수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 및 국가안보의 패러다임과 중급국가들의 안보기획에 주는 의미」(배리 버전 영국워윅대 국제관계학과교수)=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는 탈냉전시대의 정치·군사적 안보복합체의 형성이란 관점에서 볼때 문제지역의 하나이다.전반적으로 힘의 수준은 극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힘의 분포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으며 강한 민족주의를 보이고 있다. 또 국제제도는 취약한 반면 중국과 대만,남북한간의 심각한 대립을 포함해 역사적 반목,국경분쟁,문화적 분열등을 많이 보이고 있다.더욱이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과 군사현대화에다 몇몇 국가는 필요할 경우 핵보유국이 될 능력을 지니고 있다.이렇게 볼때 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과 상당한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지역상황의 취약성 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나갈 때 분단이 고착화,영구화될 것이다.최악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사이에 말려드는 것이다.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군사적인 세력균형체제로 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으로 지역국제사회의 구축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야 한다.이를 위해 중국의 행동을 온건화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일본에 대한 나쁜 역사적 기억을 고무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미국이 아시아 안보에서 발을 빼거나 훨씬 더 이기적 자세를 취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또는 미국을 계속 붙들어 맴으로써 이 지역의 국제사회 구축을 지연시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 한통 노조 농성 북서 조종/박홍 총장 주장

    ◎지방선거 목표 총파업 계획” 【춘천=조한종 기자】 서강대 박홍 총장은 14일 한림대 수요세미나에 참석해 「세계화 대비 인성 및 사상교육」이란 주제강연에서 『이번에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성당과 사찰에 들어간 것은 북한이 조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북한의 정보를 구하는 루트를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공산세력이 이미 남한내 학생,노동,재야,언론에 깊숙이 침투해 각종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정치를 잡기위해 6·27선거를 기점으로 본격화되는 지자제를 목표로 27일전에 남한내 동조세력을 규합해 연대 총파업을 주도하고 오는 8월15일에는 요인암살 및 중요 기물파괴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총장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사상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대학내 주사파들이 지난 해에 비해 양적으로는 줄었지만 질적으로는 각계각층에 더 깊숙이 침투해 각종 파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전국대학 학생회장의 90%가 주사파』라고 주장했다.
  • 한반도 통일여건 진단과 전망/한·러·일·중 4개국의 시각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난 50년을 뒤돌아 보고 한국통일의 현단계와 전망을 짚어 보는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12∼14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과 프레스센터 공동주최로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한국을 비롯,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재조명」「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세계속의 통일한국 위상」등 3개 주제로 나누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이 세미나의 「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주제 회의에서 발표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의 시각을 요약 소개한다. ◎미국/북한은 계몽적 협상대상/대화로 평화적 해결 희망/톰 레이드 워싱턴포스트 동경지국장 미국인들이 한국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를 일반 대중과 학자,그리고 관리나 공무원들의 입장으로 구별해 말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선 일반인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단지 한국인들로 알 뿐 남한인으로 알고 있지 않다.이것은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즉 이들은 한반도의 분단이 일시적인 상태로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통일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학자들은 대개 통일방식과 통일 후의 형태와 관련해 대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국을 바라 본다.그럼에도 양측 모두 남한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국가이며 합법적인 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는 측과 무모한 독재국가로 보는 측으로 양분된다.전자의 경우 북한이 통일 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며 후자는 한반도 통일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국가가 더 크고 부유한 민주국가로 흡수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 민감한 한국통일 문제에 대해 통일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관리나 외교관 가운데 한국의 영구분단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한국문제에 대한 논쟁은 대 북한관계에서 시작된다.현재의 클린턴 정부처럼 북한을 이란과 쿠바처럼 계몽적인 협상이나 강·온 정책을 병행해야 할 나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적으로 간주하는 주장이 그것이다.이들 관리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는 편인데 클린턴 정부측의 견해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측이고 또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측은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경도돼 있는 분위기다. ◎러시아/파격적인 경제계획 수립/안정된 국제환경 조성을/세르게이 곤차로프 역사학자 러시와와의 관계에 있어서 남한은 북한보다 빠른 발전상황을 보여왔다.현재 러시아와 남한은 연대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그 예는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 문서자료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것과 관련한 신사협정이다. 러시아와 남한간의 관계수립과 발전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주었지만 기대했던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남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 있어서 러시아는 혁명적이고 폭력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고 평화로운 과정을 택한다.북한과의 정상관계를 유지하고 남한과의 연대를 진척시킴으로써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상황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의 다른 주요세력들과는 달리 한반도 통일의 결과에 대해 우려할 것도 잃을 것도 없다.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통일한국이 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경제 군사적인 역할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또 남북한 경제교류가 빠르게 발전한다면 중국에 행해지는 남한 투자의 몫이 북한쪽으로 기울게 된다.미국에 있어서도 한반도 통일은 남한내 군사주둔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려운 과업을 제기하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일본과 미국간의 안보 유대의 재평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는 그 모든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형편이다. 한반도 통일의 전개는 무엇보다도 남북간 정치·안보 대화를 비롯한 경제 문화 인도주의적 교환에서부터 남북한과 지역내의 주요국들을관련시키는 파격적인 경제 사회적 계획들을 이행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한반도 주위의 안정적인 국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북동아시아에서의 다각적인 안보계획을 점진적으로 전개하는 조치가 동시에 진행돼야만 한다. ◎일본/남한 여유자본 많지 않아/통일후 재건비 준비해야/다오카 순지 아사히신문 아에라지 부편집인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대체로 독일 통일에 대한 것과 비슷하며 일본의 안보 이해관점에서 볼 때 그런 형태의 한반도 통일은 3가지의 긍정적 측면이 있다. 우선 일본이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이웃국가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일본의 고도로 조직화된 운송 시스템이 상당한 부담과 혼란을 겪게 되고 한·일 합동전쟁 노력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 특공대의 공격을 예상해야 하며 일본으로 이주하는 한국민들의 처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일본내 미군에 상당량의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왔다는 측면에서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은 두번째 한국전쟁의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겐 훨씬 더 반가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일을 독일과 비교할 때 통일 후 한국이 더 어려운 측면이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우선 통일후 남한인 2명이 북한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정도의 인구비율이 큰 문제점으로 작용할 것이며 남북의 극심한 빈부격차도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 뻔하다.이와 함께 가장 심각한 문제랄 수 있는 것은 남한이 북한을 재건립하는데 이용가능한 여분의 자본을 적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통일전 서독이 세계 최대의 차관 대여국이었던데 비해 남한은 현재 1백억달러가 넘는 채무가 있음을 볼 때 심각성을 더해 주며 일본 투자가와 금융가들이 통일 한국이 겪어야만 할 경제적 난관에 대해 가장 우려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만일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다면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의 산업이 남한의 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불평많은 실직자가 될 것이므로 통일직후 북한내에서 신속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또 일본 측에서도 통일후 거대한 양의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형편으로 일본이 얼마나 「과거의 북한」을 돕기 위해 부담을 질 것인가는 두 국가간의 우호적 관계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미 북 핵타결 긍정적 효과/신뢰 쌓아 점진적 교류를/구오시민 인민대 명예교수 중국은 한반도와 가까운 이웃이다.북한과는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한국과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양국 국민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긴 역사를 갖고 있다.한때는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서로를 지원했다. 한국과 중국은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지난 3년동안 모든 측면에 있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경제분야에서는 서로 매우 보완적이며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다.양국 교역량은 지난 92년 50억6천만 달러에서 94년 1백17억2천만 달러로 늘어났다.이제 중국은 한국에 있어 3번째,한국은 중국에게 6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또 한국이 중국에 투자한 액수는 17억 달러,투자종목은 2천개가 넘는다.중국은 한국의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가가 되었다.양국 국민간 교류나,문화·교육·과학·기술 분야의 협력과 교류도 빠르게 늘어 났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라지고 평화 및 안정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의 꾸준한 입장이다.중국은 한반도 국민들과 선린관계 및 우호관계를 오래 갖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중국 인민은 반세기 전의 분단 때문에 한반도 국민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의 자체 노력으로 통일이 실현되기를 원한다.중국은 양쪽이 참을성있고 진실한 대화와 조언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현존하는 문제를 해소하기를 바란다.또 양쪽이 과거의 증오심을 버리고 서로 신뢰를 향상시킴으로써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평화통일 이루기를 희망한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기초적 합의에 서명한 뒤 한반도 상황은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비록 큰 차이가 몇가지 남아 있긴 하지만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현재 남북 양쪽도 평화통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싶은 공통 희망을 갖고 있다.한반도 상황은 완화된 상태로 유지될 것이며 점진적 통일은 시대의 추세가 될 것이다.
  • 3당사국 손익(경수로 타결)

    ◎경수로 협상/한·미·북 모두 밑지지 않았다/중심역할 확보… 남북대화 재개 물꼬­한/가장 우려했던 핵동결 유지에 만족­미/부대시설·기술교육 추가지원 따내­북 콸라룸푸르 「준고위급회담」결과 한·미·일 3국과 북한「4자」 모두가 대체로 「밑지지 않은」 협상결과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한국은 그동안 북한이 거부해온 한국형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 「한국형경수로를 제공한다」고 명기되지는 않았지만 「두개의 냉각제 유로를 가진 1천㎿급 가압경수로 2기」「현재 건설중에 있는 것」등 울진 3,4호기의 특성을 명기,북한측에 족쇄를 채우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에 발표된 합의문으로 지난해 10월21일 제네바 합의 이후 계속되어온 경수로형 논쟁은 종결됐다.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확보됨에 따라 경수로 사업 발주자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주계약자가 될 한국전력을 통한 남북간의 접촉이 「어쩔 수 없이」 활발해지는 상황이 전개될 전망이다.특히 우리 정부는 국제적 관행에 따라 추가지원을 협의하기로 되어 있는 경수로 부대시설을 남북경협과 연계시킨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 다만 우리 정부로서는 경수로 부대시설의 일부 추가 지원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양보로 비쳐지는 데는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정부의 조바심은 곧바로 북한의 성과로 연결된다.북한은 애초부터 이번 회담에서 한국형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우회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경수로 부대시설 추가지원을 얻어내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결국 북한은 경수로 건설부지 정리와 기술 교육등의 추가지원을 얻어냈다.그러나 북한이 당초 요구했던 항만·도로 건설이나,송·배전 시설망의 개설등 10억달러 규모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을 계속 유지시키는데 만족하고 있다.미국은 이번 회담을 시작하면서부터 북한의 핵동결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회담 중반에 북한이 경수로 부대시설 추가지원을 요구하며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핵연료 재장전등을 위협하고 나섰을 때 미국으로서는 가장 큰 위기감을 느꼈을 만 하다. 한편 일본측도 이번 콸라룸푸르 준 고위급회담 기간중 한·미·일 3자협의를 통해 자국의 입장을 반영시키려 노력해왔다.일본은 협의 기간중 대체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북,왜 한국형 받았나/김정일의 대내 업적 부각용 관측도/경제난에 밀려 수용 불가피 북한이 콸라룸푸르 미­북 「준고위급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를 수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북한은 이번 회담이 타결되기 전날까지도 대외적으로는 한국형 경수로가 『실체도 없는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런 북한이 사실상 한국형 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규정한 이번 공동발표문에 합의한데는 몇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북한의 내부적인 분위기 조성용인 것 같다는 지적이다.다음달 8일 김일성 사망 1주기를 맞아 북한은 김정일이 국가주석직을 공식승계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렇다면 그에 앞서 김정일의 업적 가운데하나로 손꼽히는 미­북합의를 빨리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북한은 특히 경수로에 이어 중유와 10억달러 상당의 부대시설까지 미국으로부터 「쟁취」했다고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외교부의 온건세력이 군부 강경세력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북한은 극심한 에너지 난에 시달리면서도,지난 2년간 해군과 공군의 훈련횟수를 오히려 증가시켰었다.다시 말해 평양당국은 군부의 뜻을 충분히 수용,사기를 올려주는 한편 한국형 경수로 수용이 체제 붕괴 요인이 되지 않음을 설득한 것 같다. 세번째로 장기간의 협상기간을 이용해 북한은 경수로 건설을 위해 북한으로 건너갈 한국 근로자와 물자에 대한 「봉쇄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북 양측은 북한에 넘어갈 한국근로자의 숫자에까지 합의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이 경수로건설 지원과 관련,그만큼 남쪽 인력과 물자 유입에 신경을 썼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의 심각한 식량·전력난을 비롯한 경제난이 경수로 협상 타결의 근본적 이유였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더 이상 체면만 생각할 처지가 못되는 경제사정 때문에 경수로 협상을 빨리 마무리함으로써 중유의 조기공급과 경제 제재 추가완화등의 과실을 따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2003년까지 북 신표에 원전 건설/내년부터 공사… 우리 인력 5천명 참여/소요경비 40억달러 70% 한국이 부담 한국표준형원자로가 언제쯤 어떤 절자를 밟아 북한땅에 자리잡게 될 것인가. 북·미경수로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우리측의 대북 경수로지원사업의 후속시나리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제네바기본합의문과 올해 발족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정치부 085 086 한국표준형원자로가 언제쯤 어떤 절자 북한땅에 자리잡게 될087 것인가. 088 북·미경수로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우대북 경수로지원사업의 089 후속시나리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지난해 제네바기본합의문090 과 올해 발족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하지만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상정할 경우 주계약자로 선정된 한국전력공사가 늦어도 2001년이면 북한의 함남 신포에 한국형 1호기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그동안 한전측이 원전건설의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국내 원전건설기간인 10년을 6∼7년이로 대폭 단축했기 때문이다.이는 내년부터 기초토목공사를 시작해 99년쯤 핵심부품을 북한에 들여보내는 순조로운 공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줄잡아 35억∼4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우리측은 이중 70%를 부담토록 되어 있다.나머지는 미국과 일본등이 부담한다.우리가 부담할 몫은 한전이 정부보증으로 차관을 도입하는등 몇가지 재원조달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물론 북한측의 입장에선 핵동결의 대가로 경수로를 무이자 상환조건으로 제공받게 된다.정부로선 민족발전공동계획에 따라 석탄이나 철광석등 원자재로 장기간 시차를 두고 현물상환받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수로지원과정에서 남북간 인적 교류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기초부지정리를 포함해 설계·시공·운전등 단계마다 적게는 2천여명에서 많으면 5천명이상의 우리측 전문인력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발전소건설이 끝나도 이를 운전할 상당수 우리측 핵심기술진이 상주요원으로 북한에 남아야 한다.또 1천3백여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운전요원을 우리측이 남한으로 불러 고리나 울진에서 연수교육을 시키는 것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 남한기술자 북입국 개의않겠다/경수로회담 김계관 북대표 회견

    ◎경수로 어디서 만들었는지 중요치 않아/남북대화 재개 분위기 마련되기를 바라 콸라룸푸르 준고위급회담의 북한대표인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은 13일 하오 토머스 허바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와 공동언론발표문을 공개한뒤 북한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사실상 한국형 경수로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경수로형과 주계약자는 KEDO가 정하기로 했다.KEDO 설립협정에 한국표준형경수로를 제공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한국형을 받아들인 것인가. ▲경수로형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인 문제가 설계와 기술이 누구의 것이냐 하는 점이다.우리는 이번에 미국의 설계와 기술을 개량한 형으로 명기했다.설계·기술이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하지,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인가는 중시하지 않는다.주계약자 선정등은 미국이 KEDO와 해야될 일로서 그들이 하게 내버려 둘 것이다. ­북·미연락사무소 개설 시기와 대사급 수교로의 발전 전망은. ▲북·미연락사무소는 제네바합의에서 실무적인 문제가 해결되는대로 개설하기로 했다.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현재 영사관과 주택등이 아직 미결인 상태다.그러나 이런 것은 시간을 요한다.집 잡는 것이 간단치 않다.대사급 수교 얘기를 하기는 시기상조인 것같다. ­경수로 건설을 위해 남한 기술자가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접수할 수 있는가. ▲미국과 KEDO가 조직한 사업이므로 그들의 사업조직에 관계하지 않겠다. ­경수로 부대시설은 어떤 것을 얻었는가. ▲이번에 부지의 조사·정리에 합의했다.그밖의 문제는 일이 시작되면 더 논의될 것이다. ­남북대화 재개 전망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자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다.그러나 현재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김일성주석 사망 당시 남조선 당국이 범한 대죄로 북남대화에 가로놓인 걸림돌이 그대로 남아있다.경수로 사업 과정을 통해 대화분위기가 마련되기 바란다. ­향후 경수로 사업 이행 전망은. ▲합의문 이행과정에 난관이 계속 있을 것이다.이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따라서 조·미 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북한기업의 참여는. ▲가격결정과 자금상환,기술 도입 문제등에 참여할 것이다.
  • 제헌국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2)

    ◎내각­대통령책임제 공방… 대통령제로 결말/여·순 발란 등 소용돌이속 국가보안법 통과 우리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호칭이 등장한 것은 19 48년 7월 12일이다.국가의 기본골격인 헌법이 이날자로 제정되면서 대한민국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그 헌법은 5·10 선거에 의해 개원한 국회가 제정했는데 초대 국회를 제헌국회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다. ○과도입법의원 맹활약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 개원되었다.제헌국회는 물론 민주주의 방식의 첫 대의기구다.미군정 아래서 개원되었던 절반의 대의기구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염두에 두면 사정은 약간 달라질 수 있다.그러나 제헌국회는 과도입법의원의원선거를 통해 민주주의 예행을 거친 국민들이 확실하게 뽑은 1백98명의 선량들이 참여한 국민의 대의기구였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15명이 국회에 진출,제헌국회개원에 깊숙이 간여했다.그들의 경험이 그만큼 존중되었던 것이다.특히 경기도 광주에서 경선 상대가 없이 무투표 당선된 신익희의 역할이 컸다.그는 미군정과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국회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데 전면에 나섰다.국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국회운영에 관한 규칙법안이 이 위원회에 위임되었다. 이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제헌국회는 5월 31일 역사적 개원을 맞았다.제1차 본회의는 당시 최고령자였던 임시의장 이승만의 사회로 열렸다.국회의장단 선거에서 1백88표라는 압도적 표수로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했다.부의장에는 신익희(76표)와 김동원(77표)이 선출되었다.이날 서울 시내에는 경축 꽃전차가 거리를 누비는 가운데 하오2시 제헌국회 개원식이 베풀어졌다. 국회에는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가 설치되었다.이 위원회는 먼저 헌법학자 유진오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선임했다.유진오 전문위원은 내각책임제 및 양원제,3권분립을 중심으로 한 안을 내놓았다.그리고 법전편찬위원회(위원장 김병노)가 작성한 헌법초안을 비롯,임시정부헌장,과도입법의원 제정의 약헌,구미 각국의 헌법을 참고로 기초에 착수했다. 내각책임제안은 곧 바로 이승만의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12일 양원제를 단원제로 하는 등 약간의 수정을 가한 내각책임제 헌법안을 이의없이 채택했다.이승만은 마침내 분노하고 말았다.6월15일 기초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내각책임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책임제로 번안해줄 것을 요구했다.그러면서 측근을 시켜 국회가 내각책임제를 계속 밀고나가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은근히 위협해왔다. 그래서 이승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그를 제외시킨 정치문제논의는 무의미할 정도로 당시 정치상황에서 이승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했던 것이다.유일한 정당이었던 한민당이 먼저 굽히고 들어갔다.이로써 6월22일 제17차 기초위원회에서 내각책임제 헌법안은 대통령책임제헌법안으로 번안하기에 이른다.이어 6월 23일 제17차 국회본회의에 대통령책임제 헌법안이 상정되어 20일간에 걸쳐 17차례의 토론을 벌였다. ○헌법안 20일간 격론 대통령책임제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한 것으로 되어있다.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명의의 헌법 전문은 단기 4281년 7월 12일이라고 분명히 적었다.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12일 자정을 약간 넘긴 0시28분에 제3독회를 마쳤다.그렇게 해서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되었다.기초과정부터 풍파를 일으킨 제헌국회의 헌법제정은 파란만장한 헌정사의 장래를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정부조직법은 7월 16일 제31차 본회의에서 제정되었다.17일 공포된 헌법절차에 따라 7월 20일 제37차 본회의에서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8월 3일 제37차 본회의는 이범석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가결시켰다.그리고 이승만의 대통령선출에 따라 신익희가 의장으로 선출되는 동시에 김약수가 부의장이 되었다.이어 8월 5일 제40차 본회의에서 김병로 대법원장 임명 요청을 동의함으로써 정부수립을 위한 기본조치를 매듭지었다. 제헌국회에서 원내 세력판도의 윤곽이 드러난 시기는 의장단 선거를 전후해서다.이승만의 의장피선은 초당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었지만 2명의 국회부의장 선출에서는 그 색깔이 드러났다.신익희와 김동원의 부의장 피선은 원내세력을 국민회와 한민당이 주도했다는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이 때부터 각 정파 및 무소속의원들은 지연·인연을 따라 독자적 원내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급진적 이론파였던 성인회를 비롯,동인회,청구회가 연합하여 이른바 소장파 그룹을 만들었다.이 그룹은 한민당·이정회와 정립하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이는 10월 13일 긴급동의로 제출한 미군철수 결의안과 한미간의 여러 협정에 극력 반대하는 것등으로 나타났다.특히 미군철수 결의안은 북한 최고 인민위원회가 미·소 정부에 두 나라 군대 철퇴를 요구하는 서신을 보낸 직후에 나왔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전후하여 남한 도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1948년 10월부터는 국군에 침투했던 남로당 세포조직에 의한 무장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10월 2일 제주도군 경비1대대의 반란,10월 20일 제40연대의 여수·순천 반란,11월 20일 대구 제60연대 무장반란이 그것이다.엄청난 사상자를 낸 가운데 곧 진압되었지만,그 잔여세력들은 산으로 들어가 유격전을 벌였다.유격전은 북한의 강동정치학원 정치·군사훈련을 받은 요원들에 의해 강화되었다. ○농개법 등 획기적 조치 그래서 국회는 11월 21일 공산주의 활동을 불법화하는 준엄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당시 상황에서 국가 보안법 제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이에 앞서 9월 7일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1949년 2월 3일에는 농지개혁법을 통과시키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이들 법률의 내용과 집행을 둘러싸고 상당한 혼란과 대립도 뒤따랐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이다.국회안에서 소장파 그룹을 형성했던 노일환,김약수,김옥주등 13명의 의원들이 1949년 5월 20일부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실로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는 제헌국회의 얼룩이었다. ◎하버드대 소장 「사찰요람」/「국회 남노당 프락치사건」 북노당도 개입/당시 부의장 김약수 「배후 조종자」 분류/전 북노당 고위간부 “남북 합작” 증언 1949년 5월 20일 제헌국회의원 노일환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함에 따라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을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경우도 없지않다.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새로운 자료들과 증언을 통해 이 사건 배후에는 남조선 노동당(남로당)뿐 아니라 북조선 노동당(북로당)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친연구소에서 입수한 사찰요람에 따르면 당시 국회 부의장으로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김약수는 「이 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분류했다.이 문서는 그가 1947년 조선공화당을 조직,서기와 선전부장이라는 당직을 맡았던 사실도 들추어냈다.그리고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주한미군 정보처(G­2)의 주간정보보고서는 제헌국회 개원초기 이들이 들어가 있던 무소속구락부를 반우파적 집단으로 평가했다. 이어 주간정보보고서는 무소속구락부가 앞으로 좌익성향 구성원들의 집합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미 군정의 예측은 어느 정도 적중되어 국회활동을 통해 미군철수 결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출하는 등 북한의 주장을 동조하고 나섰다.국회 프락치 사건에연루한 이들은 주로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어 모두 3차례에 걸쳐 13명이 붙잡혀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만난 전 북로당 고위간부의 증언에서 북로당도 깊이 개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이 증언에 따르면 북로당원 성시백(김삼룡·이주하와 함께 6·25가 일어난 1950년 6월 27일 서울에서 처형되었음)이 관련되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남로당과 북로당의 공작이 횡적으로 들어갔는데 그에게 포섭된 인물은 황윤호(진양출신),김옥주(함양출신),강욱중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나왔다.
  • 노사분규 배후 선동 좌익조직 15명 구속/경찰청

    ◎「남한 프롤레타리아」일당 적발/서울·울산·마창지역 공단침투/「노동학교」개설… 혁명투쟁 교습/사업장 잠입한 조직원 1백여명 추적 경찰청은 9일 서울과 경인,마산·창원,울산지역 등 전국 주요공단의 산업체 노동조합과 학생운동권등에 침투,좌익 지하혁명 조직을 구축해온 이른바 「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 동맹」 총책 김성식(36·한양대 중퇴)·부총책 강진관(29·서울신학대졸)·서울지역위원장 문순덕(29·여·광주여고졸)씨 등 15명을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93년9월 경기도 가평군 새터의 한 민박집에서 경인지역공단을 중심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지하당의 창당을 위해 지난 87년 조직된 「노동자계급투쟁동맹」의 「비상핵심 맹원대회」를 갖고 이적단체인 「남한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동맹」을 결성,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전·선동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총책 김씨의 지시로 「지하철노조」와 「마·창노련」「현총련」「현대정공노조」「조선노협」「부양노련」 등 전국 주요공단,대규모 노동단체 및 노조의 핵심 간부들과 만나 이른바 「제2노총」의 추진상황과 올해 임금투쟁 현황을 점검하고 노사분규를 배후에서 선동해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등 「공산당 선언문」의 내용을 실은 기관지 「인민과 함께,1호」 1만2천5백부를 만들어 같은달 13일 경희대에서 열린 「94전국노동자대회」 행사장과 「경동산업」「영창악기」「진도」「한국중공업」「대림자동차」「지하철노조」등 서울·경인지역과 마·창,울산지역 등 주요공단의 산업체 노동조합에 우송·살포해 사회주의 혁명투쟁을 선동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한국통신 노조에 대한 살인적 탄압」이라는 글을 실은 기관지 「인민과 함께,2호」의 필름원판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깃발아래 단결·조직·투쟁하라」「임박한 전투,혁명의 깃발을 사수하라」등 각종 문건 1천여종,디스켓 2백여개,컴퓨터 5대,분쇄기 1대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경찰은 구속된 15명 말고도 서울,인천,마·창지역의조직원 1백여명과 노동단체 및 대규모 사업장에 침투한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하고 있다. 대부분 공원과 중·고교 졸업자인 이들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4등에 합법을 위장한 공개거점인 「노동자정치활동센터」「서울노동자학교」「노동자선동단」등을 조직하고 91년3월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지하당 결성을 목표로 기관지 「진군의 함성」「노동자선동단신문」 등을 제작·배포해 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서노협 구로지구 교육부」에 침투해 「노동자정치학교」를 개설한 뒤 「투쟁의 머리끈을 과학으로」라는 기치아래 구로공단과 성수공단 지역 나우정밀·주식회사 태광·갑일전자·아남산업·풍성전기 등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의식화 작업을 벌여 노사분규를 배후 조종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는 10여명 단위로 「철의 조직」「강철노동자」「빨치산」 등 3개 산악훈련팀을 편성해 4박5일의 일정으로 「선전하라 사회주의,조직하자 노동자군대」등의 구호아래 「지리산 피아골」등 「빨치산 전적지」를 순례하면서 유격훈련과 야간행군,선동훈련등 빨치산식 산악훈련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북­일/2월부터 성항서 극비 「쌀접촉」

    ◎쌀제공 둘러싼 북­일 비밀접촉 내막/정식루트 대신 사조직 가동… 일제외교 흡사/이성록비자 이례적 조기 발급… 고위관리 개입 다음은 일본시사주간지 아에라(아사히신문 발행)가 보도한 북한과 일본간의 쌀제공을 둘러싼 비밀접촉내막. 북한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은 5월26일 연립여당 정책책임자들과 조찬회를 가졌다.이 자리에는 자민당의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가토 고이치 정조회장,구보 와타루 사회당서기장,하토야마 유키오 신당 사키가케 대표간사 등이 참석했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김용순 노동당중앙위원 겸 서기의 친서 4통을 전달했다.김은 노동당 중앙위원 직함 외에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그리고 통일전선부와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의 부책임자는 이종혁이라는 인물이 맡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싱가포르에서는 북·일 회담이 극비리에 열렸다.북한에서는 이종혁이,일본에서는 호리 고스케 자민당 정조회부회장과 다케우치 유키오 외무성 아시아국심의관이 참석했다.이 회담은 김용순­이종혁 라인과 가토 고이치 사무소와의 특수관계가 배경이 돼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당사자들은 북한 관계자들을 만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 3월말 일본 연립여당 대표단이 북한을 공식방문했을 때 요시다 다케시 신일본산업사장이 「중의원 의원 가토 고이치 사무소 요시다 다케시」라는 명함을 갖고 북한을 방문했었다.그는 가토 사무소와는 아무 관계없는 사람으로 가토 사무소 책임자인 사토 사부로씨의 동행 부탁을 받고 평양에 갔으며 사토 자신도 자민당 대표단 일원에 끼였다. 사토씨는 지난 26일의 연립여당 당국자들과 북한 이성록 일행과의 조찬회에도 참석했으며 일조우호학술문화페스티벌 협의를 이유로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이성록 일행을 영접한 사람은 요시다 사장이었다. 이성록 일행의 입국 비자는 단 며칠만에 나왔다.북한인사에 대해서는 통상 수주,경우에 따라서는 한달 이상이 걸렸던 것에 비해서는 이례적이다. 가토 사무소의 이같은 행동과 도쿄 전일공호텔 조찬회에 이르기까지의불투명한 움직임에는 문제가 있다. 북한의 통일전선부와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의 정체는 알려진 게 없다.가토사무소라는 사적 조직의 움직임은 뭔가 국민을 속이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과거 중·일 전쟁 당시 정식 외교루트를 배제하고 일본육군이 중국의 유력자,각종 조직과 모략적 접촉을 했던 것과 유사하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같은 움직임에 외무성 심의관이라는 정부 외교당국자마저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외교당국자가 정체불명의 북한 공작담당자와 마주친 것은 만일의 경우 발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는 것이다. ◎대북 쌀지원 관련 「경고 메시지」 왜 나왔나/북·일 물밑대화 제동… 북한에 직접대화 촉구/인도적 차원·남북한 관계개선 의지 분명히 8일 정부가 대북 쌀제공과 관련해 남북 당사자원칙을 강력히 천명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밝힌 대북 곡물제공문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윈칙은 한마디로 「선 한국곡물 제공방침」으로 요약된다.이는 『일본이 곡물을 먼저 지원할 경우 한일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그의 강도높은 대일 경고 메시지에서 감지된다. 이같은 정부의 원칙 천명에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곡물제공이 남북 당국간 관계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리측의 희망이 담겨 있다.반면 이례적인 대일 경고메시지는 일본등 제3자가 개입함으로써 그같은 우리의 전략이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쐐기를 박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우리측은 지난 26일 대북 곡물제공 제의를 하면서 남북 당사자간 절차협의 이외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은 우리의 선의에 아무런 직접적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북한지도부로선 남한쌀을 받을 경우 체면이 구겨진다는 차원을 넘어서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면 자칫 체제동요가 가속화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김일성 사후 남북 당국간 대화기피 자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일단 한국쌀보다는 일본쌀을 얻어내는데 주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쌀을 겨냥,일본등 제3국이나 국제민간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손을 벌리는 이중적 자세를 보여 왔다.이를 테면 북한이 쌀문제 회담을 북경에서 갖되 정부간 협상이 아닌 「공사나 공단차원」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이를 말해준다.또 북한이 조건없는 곡물 공여의사를 표명한 한국측과 직접 교섭할 의사가 있다고 연막을 치면서도 쌀원조는 일본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서한을 일본 정부측에 보내왔다는 외신 보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 북한의 이같은 자세는 쌀제공등은 민족복리 차원에서 민족내부 문제로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제사회에서의 대북지원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방침과는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측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김태지 주일대사를 통해 「선한국쌀 후일본쌀」원칙을 전달했음에도 일본측이 북한과 물밑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바로 이 점이 이날 강력한 대일 메시지를 표명케 한 직접적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 대북 식량지원 성사되려나/북 「쌀회담 우회수용」과 정부 입장

    ◎「한국 쌀 반입」 알려지면 체제동요 우려/제3국통해 민간차원 지원 희망하는듯/정부 “당국간 협의 필수”… 평양직접반응 기대 대북식량지원의 성사여부가 중대한 분기점에 처한 것 같다.북한이 공식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제3자인 일본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이 5일 『한국과 쌀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는 뜻을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김태지 주일대사등 외교채널을 통해 북한의 이같은 의사를 간접확인했다는 후문이다.이에 따라 현충일인 6일 나웅배 통일부총리·송영대 차관등 당국자들은 구수회의를 갖는등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식량부족 적발한듯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쌀문제와 관련,남북 당국간 회담에 응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다.이가라시를 통한 간접적 의사표시를 북한이 한국쌀을 수용하겠다는 공식반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측은 대북쌀제공과 관련,당국간 최소한의 절차협의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송 차관은 6일 남북직통전화와 편지·방송통지문등 구체적 통보수단까지 제시하면서 『직접적 반응을 기다리겠다』고 밝히는등 자세를 분명히 했다. 물론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이 내핍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우리측의 식량지원을 무조건 거부할 수 만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북한 곡물사정은 90년대 들어 줄곧 생산량이 연간 수요량을 밑돌고 있다.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백81만t(90년)·4백43만t(91년)·4백27만t(92년)·3백88만t(93년)·4백13만t(94년)인데 비해 연간 총수요량은 대략 6백72만t이었다.해마다 2백만t이상씩 쌀이 부족한 것이다.북한은 부족분을 해외도입으로 채우려 하지만 만성적 외화부족으로 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적 식량난 강조 어쨌든 우리측은 이번에 일본채널을 통해 식량문제에 대한 북한당국의 절박감을 재확인했다.북측은 최근 노동신문을 통해 「식량위기로 세계 수억인구가 굶주리고 있다」면서 식량난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임을 강조,우리쌀을 받기 위해 은근히 명분을 축적하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식량난이절박하다 해도 우리측에 공식적인 SOS를 보낼 가능성은 여전히 작은 것으로 보인다.북한당국의 자존심이라는 걸림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화 나설지 미지수 더욱이 북한당국은 남한쌀 제공사실이 북한주민에 알려지면 체제동요가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은 가능한 한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으로,그것도 제3국을 통해 우리쌀을 받아들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대북쌀지원 실현여부는 북측이 우리당국과의 직접대좌를 언제쯤 결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국교생 「살신효심」/아버지 구하려다 아들도 함께 익사

    【충주=김동진 기자】 6일 하오 6시 쯤 충북 충주시 단월동 단월강에서 다슬기를 잡던 이명환씨(41·충주시 연수동 삼정아파트 104동 506호)가 3m 깊이의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아들 종환군(12·충주 남한강국교 5학년)이 발견,구하러 들어갔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사고가 난 곳은 홍수 때마다 바닥이 파여 수심이 깊은 데다 수년전에 골재채취를 하고 마무리작업을 하지 않아 익사 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경찰은 숨진 이씨가 사고 직전 술을 마셨다는 일행의 말에 따라 술에 취해 다슬기를 잡으러 들어 갔다 웅덩이에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 권총탈취범 승용차 수배/광주/출동경관 피습… 이틀째 의식 불명

    【광주=김병철 기자】 3일 상오 5시 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산성로터리 앞길에서 광주경찰서 중부파출소 소속 조항용(39)경장이 절도신고 전화를 받고 나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3명에게 야구방망이 등으로 온몸을 맞아 중상을 입고 공포탄 2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과 신분증,10만원권 자기앞수표 10장 등 1백만원을 빼앗겼다. 조경장은 피습된뒤 도로변에 쓰러져 있다 승용차를 타고 지나가던 50대 남자에 의해 발견돼 성남 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서울 가락동 경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이날 상오 4시55분쯤 파출소에서 5㎞ 떨어진 H휴게소 주인 김모씨(40·여)로부터 『20대 남자가 휴게소앞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동전을 털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조경장 단독으로 현장에 보냈으며 50대 남자도 조사하지 않고 그냥 돌려 보내 초동수사의 허점을 드러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경찰서는 범인들이 타고 달아난 경기2느 67XX호 흰색 승용차를 수배하는 한편 경기지역 자판기 절도 전과범 1백53명과 남한산성 아베크족 상대 전문털이범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사고현장에서 1백80m떨어진 아리리오 식당 주차장앞에서 조 경장의 수첩과 범행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회색 야구방망이 1개를 발견,정밀감식을 의뢰했으며 조 경장이 빼앗긴 수표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범인들이 조 경장의 신분증과 권총을 이용,경찰관을 가장한 제2의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 5·10 총선거(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1)

    ◎최초의 민주·자유선거… 공산진영 저지투쟁/우익 “승리” 평가… 남북협상파선 “무효” 주장 해방정국이 종지부를 찍은 그 대미는 19 48년 5월10일의 5·10선거로 장식됐다.그만큼 해방정국에서 5·10선거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시사했다.해방이후 늘상 그랬던 것처럼 5·10선거에서도 숱한 대립과 희생이 뒤따랐다.그러나 5·10선거는 이 땅에서 치러진 최초의 민주주의 자유선거로 기록되고 있다. ○단선·단정에 강력 반발 미군정의 5·10선거 준비는 공산주의 세력의 극한 저지투쟁과 남북연석회의등 단선·단정 반대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추진됐다.1948년 3월1일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통해 선거를 5월9일 실시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미군정은 남한 단독선거를 공식화했다.이어 이틀뒤인 3일에는 행정명령 제14호를 통해 선거를 관장할 국회선거위원회를 발족시켰다.여기에는 김법린 노진설 이갑성 백인제 최두선 등 15명의 위원이 참여했다.3월17일 마침내 전문 57조로 된 국회의원선거법을 미군정법령제175호로 공포했는데 이 법은 전년도 9월3일 공포한 입법의원선거법을 기초로 제정된 것이다. 이 선거법은 선거권을 만21세,피선거권을 만 25세로 규정했다.그리고 임기 2년의 국회의원을 2백개의 소선거구에서 뽑도록 규정한 선거법은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 2백명 이상 추천만 받으면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이를 토대로 국회의원선거법 시행세칙은 3월22일 공포됐다. 미군정이 결정한 선거일정은 사실상 빠듯한 것이었다.그래서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준비를 이유로 선거일을 5월24일로 연기해 줄 것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요청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소관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군정에 넘겨 선거일은 5월10일로 최종 결정됐다.미군정은 행정명령 제20호를 통해 이를 정식으로 공포했다.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5·10선거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적지않은 갈등을 겪었다.그 첫째 이유는 자신들을 「미 제국주의의 도구」로 비난하는 공산주의자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또 미군정하인 만큼 위원단이 선거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따라서 위원단과 미군정 사이의 입장차가 실제 표출됐다. 이같은 상황은 하지 사령관이 마셜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48년 3월17일자 비밀보고에서도 드러나고 있다.여기서 하지가 「유엔한국임시위원단내 시리아,오스트리아,캐나다 대표가 소련의 변호자 또는 유화주의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비난한 대목이 보인다.또 「이들은 공산주의자의 대변자와 동조자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남조선내 총선 반대파의 대표행세를 하고 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미 대외문서철·1948년). 위원단은 자유로운 선거분위기와 관련해 3월17일 제26차 전체회의에서 하지에게 보내는 비공개 건의문을 채택했다.그 내용은 경찰의 선거간섭금지,청년단체들의 선거방해에 대한 철저한 단속,정치범 특사등을 포함한 17개항목으로 돼있다.위원단은 또 자유로운 선거분위기가 이루어질 때만 선거를 감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현지조사에 나섰다.그 결론은 4월28일 「출판 집회와 같은 민주주의적 자유가 인정되고 존중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남조선에 실질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 만족한다」는 것으로 나왔다.그리하여 5·10선거를 감시할 것을 결의했다. 선거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돼 3월30일부터 4월9일까지 유권자 7백83만7천5백4명이 등록을 마쳤다.이에맞서 좌익의 파괴공작도 심화됐다.남로당은 대중선동,항의시위,파업,협박,파괴,방화,살인,폭동등 모든 선거를 총동원해 선거를 방해했다.미군정도 선거촉진위원회를 조직해 대대적인 선거홍보를 벌이면서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등 각종 사회단체를 통해 선거인 등록 독려에 나섰다.미군정은 4월16일 극좌 계열의 선거방해를 막기위해 18∼55세 남자들의 의무봉사단체인 향토보위단도 조직했는데 주로 시민들과 청년단체 회원들을 참여시켰다.이 향보단은 5월22일 해체될 때까지 선거와 관련한 좌익 반대투쟁 저지임무를 맡았다. ○좌익 일제히 선거 불참 그러나 선거에서 좌익은 선거저지를 위한 투쟁에만 총력을 기울였을 뿐 선거자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이는 4월16일 후보자 등록 마감결과 철저히 나타났다.모두 48개의 정당과 사회단체 또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입후보자 9백48명은 모두 반탁·반공·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우익세력이었다.남로당의 「민전」산하단체와 남북협상파는 선거에 불참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5·10선거가 다가왔다.북제주군 2개구를 제외한 총 1백98개의 선거구에서 등록 유권자의 95.2%인 7백3만6천7백50명이 투표에 참여한 선거가 실시됐다.개표결과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2백35명의 후보자중 55명의 당선자를 냈다.이어 한민당이 91명의 후보자가운데 29명,대동청년단이 87명중 12명,민족청년단이 20명중 6명을 당선시켰다.무소속도 4백17명이 입후보해 85명이 당선되는 등 모두 1백98명의 선량이 탄생했다. 선거기간중 좌익의 반대를 위한 반대투쟁은 극한으로 치달았다.선거당일만 해도 투표소,경찰서 습격과 경찰관,선거위원등에 대한 테러로 경찰 5명,공산주의자 9명,우익인사 4명등 모두 18명이 피살됐다.제주도에서는 3개 선거구가운데 북제주 2개 선거구에서의 폭동때문에 투표를 무효화하고 49년 5월10일 재선을 실시할 정도였다. ○무기르성명에 격분 선거결과는 이들 반대투쟁을 벌인 소련과 남·북조선의 노동당,남북 협상파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었다.미군정 당국과 우익측은 선거의 성과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간주한데 비해 민전과 남북협상파인 한독당 신진당등은 일제히 5·10선거의 무효성명을 냈다.선거결과에 대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평가도 엇갈렸다.위원단내의 시리아대표 무기르는 의장자격으로 선거결과도 나오기전인 5월13일 위원단 공보 제59호를 통해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풍파를 일으켰다.그는 이 성명에서 투표당일 일부 투표소에는 향보단원과 경찰제복의 청년단체들이 투표자들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가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시리아 대표 무기르의 성명은 위원단의 다른 대표들뿐만 아니라 하지와 그의 정치고문 제이콥스의 격분을 샀다.제이콥스는 5월13일 마셜 국무장관에 보낸 무기르 성명에 대한 논평에서 무기르를 호되게 비판했다.제이콥스는 『위원단 내부에 조선이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집단이 있다』고 위원단의 일부 대표들의 태도를 보고할 정도로 무기르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미 대외문서철·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6월25일 채택한 결의에서 5·10선거의 유효성을 인정했다.이 결의서는 『5·10선거는 십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실시되었다』고 최종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1948년 미 대외문서철」/UNTCOK대표 6인 「소 동조자」로 활동/무기르의장 “5·10총선 자유제약” 성명/미 군정,“한국을 소 위성국화 기도” 분석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 시리아 대표인 얀신 무기르(Yansin Muguir)가 1948년 5월13일 5·10선거 최종결과가 나오기전에 의장자격으로 발표한 선거 유효성 문제제기 성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특히 UNTCOK 자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 5월14일 긴급소집한 41차 전체회의에서 그의 해명을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미국 연락장교 비망록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비망록에 수록된 이날 전체회의 기록에 따르면 무기르가 「의장자격으로 UNTCOK 공보지(제59호)에 5월13일 발표한성명은 어디까지나 사견」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되어있다.「전체적으로 선거는 원활하고 능률적으로 수행되었다」고 선거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투표자들의 자유에 일정한 제약을 주었다」는 그의 성명은 여러 대표들을 격분케 했다는 것이다. 무기르의 성명은 다른 대표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단독 발표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됐다.그래서 UNTCOK 전체회의는 무기르의 성명을 전적으로 개인책임으로 돌렸다.이렇듯 UNTCOK가 비난을 받지 않도록 조치한 일련의 내용들이 연락장교 비망록 참고자료에 들어있다.UNTCOK는 아마도 당시 한국의 선거이후 분위기를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한국언론의 사설들이 「5·10선거는 살인적 분위기에서 단행된 애국적 열성」이라고 다루는 등 선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때에 나온 하지 장군 정치고문 제이콥스의 논평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안에 공산주의 집단이 있다」는 내용도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1948년 「미 대외문서철」에 따르면 무기르의 성명은 UNTCOK사무국 비서인 슈미트(네덜란드인)가 작성,무기르를 내세워 이용한 것으로 돼있다.이 문서철에서는 무기르와 슈미트,역시 사무국 비서인 밀러(호주인)와 엔게로스(네덜란드인)등을 호주대표 잭슨과 캐나다대표 패터슨의 교사를 받는 인물로 분석했다.그리고 이들의 목적은 UNTCOK 활동이 실패로 돌아가 한국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어떻든 공산주의 손길이 유엔 서방측 요원에까지 뻗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그러고 보면 1950년부터 일기 시작한 미국의 공산주의자 적발·추방 바람,이른바 매카시즘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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