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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장군인 침투사건/북,남한서 날조주장

    북한은 최근 발생한 임진강 무장군인 침투사건과 관련,대남 흑색 방송인 「민민전 방송」을 통해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왜곡 선전을 시작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 한·가 첨단산업기술 협력기반 구축/양국 정상회담의 성과

    ◎5개협정 체결… 농업·학술교류 확대될듯/유엔서 중견국가 위상강화 공조 굳건히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열린 한·캐나다 정상회담은 합의가 안될 게 없는 듯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10개항으로 정리된 회담 결과는 실질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협력분야도 정치외교·경제통상·문화학술·인적 교류 등 폭이 넓었다. 한국과 캐나다가 가까워지는 속도가 피부로 느껴지는 이유는 최근 양국의 이해관계가 너무 일치하기 때문이다. 크레티앵 총리는 지난 93년 집권이래 미국 일변도의 국가경제구조를 탈피하는 것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남한의 1백배에 이르는 세계 제2위의 광대한 영토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 한나라와의 무역이 전체의 75%에 달하는 등 대미의존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 캐나다의 현실이다.때문에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김영삼대통령의 세계화전략 추진으로 활기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를 가장 좋은 동반자의 하나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양국간 교역량과 인적교류가 지난해에 비해 각각 60%,1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사실에서도 두나라의 관계 발전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두 정상은 2000년까지 양국간 1백억달러 교역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김대통령과 크레티앵 총리는 93년 11월 시애틀의 APEC회의에서 만나 「특별동반자관계」구축에 합의했다.이번 오타와 정상회담에서는 한걸음 더나가 「포괄적 특별동반자관계」로 진입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경제적 이익만 함께 하자는 차원에서 벗어나 「모든 분야에서 의논하고 상의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와 캐나다는 총 경제규모가 비슷하다.두나라는 유엔 기구개편 등 국제문제에 있어 목소리를 높이려는 「중견국가」(Middle Power)의 선두에 나서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우리와 캐나다,호주,싱가포르 네나라가 「G­7」과 비슷한 「G­4」를 결성하자는 구상도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의 성과중 산업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한 것도 주목된다.양국간 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설치,정보통신과 환경·생명공학·에너지·생산기술·화학·신소재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협력을 본격화하자는 구상이다.김대통령의 오타와 방문을 계기로 한·캐나다 민간기업간 11개 협력 약정이 맺어졌고 생산기술연구원 등 관련연구기관 사이의 업무협력 약정도 4개가 체결됐다. 산업협정과 함께 농업협력양해각서,취업관광프로그램 양해각서,국립공원관리협력 양해각서,사회보장협정체결 의향서 등 5개의 협정이 한꺼번에 맺어진 것도 양국간 「포괄적 특별동반자관계」를 제도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 예상된다. 한·캐나다 정상간의 깊은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으므로 북한핵문제와 유엔,APEC 등 지역및 국제정치문제에 있어 양국간의 공조 확립은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과제는 양국간 심화되는 관계를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김 대통령 만찬답사 요지 한세기전 귀국에서 온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양국 국민간의 우정은 한국 국민이 시련의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더욱 굳건해졌습니다.6·25전쟁 때 2만6천여명의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으며 그중 5백16명의 장병이 고귀한 생명을 바쳤습니다. 양국간의 우의는 이처럼 오랜 유대와 숭고한 희생위에서 깊어져 왔습니다.2년전 총리 각하와 함께 우리 두나라 관계를 「특별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한 이래 양국간 교류와 협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두나라는 이제 중요한 교역대상국이 되었으며 여러 분야에 걸친 협력의 강화로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아시아·태평양지역이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감에 따라 캐나다와 한국간의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한국은 상호보완적 산업구조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양국간의 협력전망은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번에 양국 정부간에 체결될 제반협정을 바탕으로 양국간의 교역이 더욱 확대되고 산업과 기술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합니다.특히 정보통신,우주항공,환경등 첨단분야에서 양국간에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교육문화,관광,안보분야에서도 우리 두나라가 교류와협력을 확대시켜 나감으로써 동반자 관계의 기초를 튼튼히 다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7만여명의 한국 교민은 양국간의 우호협력을 증진시키는데 훌륭한 가교역할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 북,대남 용어혼란 전술/혁명투쟁→변혁운동… 거부감 불식 노려

    ◎선동방송도 93년보다 4배 늘려 북한이 우리측 문민정부 출범후 통일논의의 확산,민주화 조치등 국내정세 변화에 편승해 국민들의 대북 경계심 이완과 남한 혁명역량 강화를 위해 「대남 용어 혼란전술」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안전기획부는 19일 언론사 북한담당 기자들을 초청한 북한정세 설명회에서 북한이 최근 ▲남조선 혁명투쟁→남조선 변혁운동▲대중투쟁→대중운동 등으로 과거 사용해오고 있던 혁명용어를 유연한 용어로 은폐,우리측의 거부감을 불식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또 ▲자주를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 안보체제 와해로 ▲평화통일을 현정권 타도 및 용공정권 수립후 합작통일로 ▲민족대단결을 연공 및 반정부세력과의 단결로 ▲법·제도적 장벽철폐를 국가보안법 폐지 및 안기부 해체로 각각 본뜻과는 다르게 변질시키는 용어혼란 전술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남한혁명을 선동하는 방송횟수를 93년 2백회에서 95년 9월 현재 8백여회로 대폭 증가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노사분규 부추긴 일 없다”/5·1동맹 구속자 주장

    서울경찰청이 지난달 4일 노사분규를 유도하고 반국가단체를 구성,남한조선노동당 전위활동을 해왔다고 발표한 「5·1동맹사건」(본보 9월5일자 22·23면 보도)으로 구속된 국승룡씨(26)등은 13일 『노사분규를 부추기거나 고의로 위장취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국씨등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5·1동맹은 남한조선노동당의 전위조직이 아니며 ▲모금활동은 구속자들에게 영치금을 보내고 형편이 어려운 구속자가족을 돕기 위한 활동이었고 ▲신문에 독자투고를 한 것은 당시 사건의 의문을 풀기 위한 활동이었으며 ▲재소자를 상대로 주체사상을 교육한 사실이 없고 ▲92년 남한조선노동당사건 당시 수사기관으로부터 수배되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 산성비·대기오염/중부지역 침엽수 고사위기/서울시립대 조사

    ◎잎 덮고 있는 왁스 녹아내려 피해 확산/서울 남산·인천·안양·부평 등 극심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침엽수가 산성비와 대기오염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특히 지난 92년 이후에 더욱 급속도로 피해정도가 심해져 이 정도라면 멀지않아 고사할 위기에까지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대 이경재(환경생태연구실)교수팀이 지난 91,92년과 금년에 3차례에 걸쳐 소나무·독일 가문비나무·전나무등의 잎을 싸고 있는 왁스(Wax)의 농도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잎을 덮고 있는 왁스는 내부 기관을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처음 나올 때는 양이 많다가 조금씩 침식돼 일정기간이 지나면 말라 낙엽으로 변하게 된다.그런데 최근 산성비와 대기오염의 영향으로 이 왁스가 녹아내려 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팀이 중부지역 14개소를 표본으로 잎에 붙은 물방울의 접촉된 각도를 통해 왁스의 양을 측정한 결과 지난 91년과 92년의 1년 사이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92∼95년 사이는 급격히 떨어진 현상을 나타냈으며 3년 이상된가지에는 잎이 붙어있지 않았다. 『최근 아황산가스의 농도는 줄었다고 하지만 다른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는 증가해 결국 식물에 대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이교수는 주장했다.지역별로 각 수종이 공통적으로 우심지역은 대도시 주변인 서울지역의 시립대,남산,보라매공원과 인천,안양,부평,남한산성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종별로 피해가 심하게 나타난 지역은 소나무가 인천 부평지역에서 1년된 잎까지 현격하게 말라가는 상태고 서울시립대,남산,보라매공원,금곡릉,용평,오산 등지가 위험한 지역으로 조사됐다. 또 전나무는 남산,인천,남한산성,용평,성환이 고사의 위험에 놓여있는 가운데 중부의 전지역이 위험수위에 다다라 있는 상태다.독일가문비는 지역별로 기복이 심하다.인천,용평은 역시 우심지역인 반면에 양평,서울시립대부근이 피해를 입고 있지만 금곡릉,오산등은 아직 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교수는 이들 피해지역의 침엽수는 1년생 잎을 조사한 것으로 영국의 3년생에도 못미치는 심한 왁스농도의 저하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들어 대기오염이 급속도로 증가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오염상승이 계속된다면 멀지않아 침엽수가 자생하지 못하는 위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산성비와 대기오염은 아황산가스,먼지등은 줄어든 반면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탄화수소,오존등과 중국의 오염된 공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 한반도내 적대성 상존 입증/3년만의 북한군 침투

    ◎군강경파 입김 추정… 평화노력에 찬물/대통령 외유중 아군경계능력 시험한듯 17일 새벽 북한군 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하려다 사살된 사건은 대립 차원을 넘어 적대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물론 이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북한쪽에 있다.우리의 평화 노력에는 아랑곳 없이 북한은 무력에 의한 대남적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평가다. 북한군의 침투는 지난 92년 5월22일 중서부전선인 철원지역에서 북한군 3명이 아군과 총격전 끝에 전원사살된 이래 3년만이다.새정부 출범 직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북한은 얼마전까지 적어도 겉으로는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 왔다.최근 우성호문제 등으로 다시 꼬이긴 했지만 남북관계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그런대로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이번 북한의 무장군인 침투는 「예상밖의 사건」으로도 받아들여 진다. 국방부고위당국자는 사살된 북한군이 잠수복에 검은색 오리발을 착용한 것으로 미뤄 특수전부대 소속 병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현장에서는 오리발 1쌍과 총번이 없는 M­16 소총 2정및 수류탄 1발이 비닐봉지에 싸인채로 발견됐다.따라서 사살된 병사 말고 도주한 북한군이 적어도 1명 이상은 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오리발에는 「ROCKET」라는 표시가 돼 있고 「MADE IN JAPAN」이라고 새겨져 있었다.이는 지난 92년 사살된 북한군이 착용한 오리발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북한군은 과거 남한 깊숙히 침투했던 공비와는 임무 성격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우리측의 판단이다.전방의 아군 병력및 무기체계 비치현황을 탐지하고 유시시 침투로 확보를 위한 정찰조로 보인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캐나다및 유엔 순방으로 우리군에 특별경계 강화 지시가 내려져 있는데다 한미간 연례 군사훈련인 「독수리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우리군의 비상시 경계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지적이다.어찌보면 통상훈련의 성격도 짙다는 것이다.북한의 특수전 부대는 대략 10만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북한 김정일이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에서 보수·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뒤에 나온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의 방향을 감지케 해주고 있다.군총참모장에 기용된 김영춘(73·차수)과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조명록(71·차수)등이 대표적인 보수·강경파로 꼽히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 주요일지 ▲58년2월16일=부산발 서울행 KNA기 및 탑승자 34명 간첩에 의해 납북. ▲68년1월21일=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 청와대기습위해 서울침투,29명 사살·1명 생포·1명 자폭. ▲70년4월4일=격열비열도 간첩선 침투,사살 17명. ▲75년9월11일=전북 고창 2명 침투,사살 1명. ▲76년6월19일=중동부전선 3명 침투,전원 사살. ▲79년10월11일=동부전선 비무장지대 3명 침투,1명 사살. ▲80년3월23일=한강하구에 3인조 수중침투,전원 사살. ▲80년11월3일=전남 횡간도에서 무장간첩 3명사살. ▲81년6월21일=충남 서산서 무장간첩선 격침,사살 9명·생포 1명. ▲81년7월4일=임진강 상류 1명침투,사살. ▲82년5월15일=동해안 2인조 출몰,사살 1명. ▲83년6월19일=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침투,전원사살. ▲84년9월24일=무장간첩 1명 대구에 출현,시민3명 살상후 음독자살. ▲85년10월19일=부산 청사포 간첩선 침투,격침. ▲86년8월5일=중부 비무장지대안 선제사격,쌍방 8백여발 총격전. ▲87년11월21일=중부비무장지대에서 총격도발,아군 1명 부상. ▲89년10월14일=북한 경비정 1척 연평도 서남방 해역 침투후 도주. ▲90년6월7일=북한군 3명 대성동지역 군사분계선 80m월경. ▲92년5월22일=중서부전선 3명 침투,전원사살.
  • 정부 “남북대화­민간 경협 연계”/「신변보장협정」없인 확대 안해

    ◎“실리 챙기며 남한 교란” 북 전술 대응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한 당국간 관계의 개선 추이에 따라 현재 진행중인 민간차원의 남북경협 수준 확대 여부를 결정짓는등 앞으로 남북대화와 경협을 연계하기로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당국과의 경협에는 계속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측 민간기업에게는 대북 투자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북한측의 자세가 우리측의 내부를 교란하면서 실리만을 취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분석된데 따른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16일 『현재 진행중인 수준의 남북경협은 중단할 생각이 없지만 통신 및 신변안전보장 등 국민을 보호할 장치가 없이 경협수준을 확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이는 북한이 경제공동위등의 개최를 통해 투자협정 및 신변안전보장 협정 체결에 응하지 않는한 대규모 경협확대조치등을 취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정부는 또 북한이 최근 직간접 경로를 통해 우리측에 5백만달러로 정해진 대북 투자상한선의 철폐를 요구해 온것과 관련,당국간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엿보이지 않는한 불응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면 이는 고스란히 투자리스크로 연결되며,대북 투자를 위해 북한에 들어간 우리측 기업인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등을 비롯,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조만간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다음달 8일로 발표 1년을 맞는 남북 경협 활성화조치의 실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갖고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 확대 연계방안등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한국 전쟁의 평가(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0)

    ◎승자·패자 없는 싸움… 이념 대립속 갈등 심화/“삶의 공동체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 규정 새로쓰는 한국현대사 한국전쟁은 3년하고도 32일을 더 끌었다.단일지역의 국지전 치고는 길고도 지루한 전쟁이었다.제2차세계대전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의 전쟁이었지만 전비는 엄청났다.미국은 2차대전 당시 유럽에 투하한 분량보다 더 많은 폭탄을 좁은 한국땅에 쏟아부었다.그래서 한국전쟁은 1·2차세계대전 다음가는 전쟁으로 기록된다.끔찍한 전쟁이 분명했다. ○5백여만명 사상 그러나 전쟁은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성급하게 미봉되었다.이는 1953년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이제 전쟁은 끝나고 내 아들은 돌아오게 되었다는 그의 말은 세상인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휴전은 영원한 평화를 위해 끝난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어떻든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허리를 다시 가른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제2분단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그 이상한 전쟁은양극화한 이데올로기 대립속에 골 깊은 갈등만을 표출했을 뿐이다.실리 없는 싸움으로 끝난 이 전쟁에서 2백10만∼2백50만명의 전투요원이 숨지거나 부상했다.이 가운데 공산군의 인적 피해가 1백42만명으로 유엔군에 비해 더 컸다.몰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유엔군사령부의 유엔보고서,「군사정전위원회편람」 및 「조선전사」 등이 제시한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그러나 공산군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설득력을 갖는다. 한국전쟁의 비극성은 실제 전쟁을 치르는 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이념적 갈등이 빚어낸 더 크나 큰 비극은 전투와 직접 연관성이 없는 비전투지역에서 일어났다.그것은 남북 민간인의 희생이다.전쟁중에 3백1만∼3백67만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보았다.이는 당시 전체인구의 10%정도에 버금하는 숫자다.전쟁의 장외에서 한국인의 희생이 얼마만큼 처절했는가를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민간인의 희생은 남북한이 상대방 지역을 점령 내지 장악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민간인의 희생유형은 사망·학살·부상·행방불명 등으로 되어 있다.이 가운데 학살은 전쟁으로 비롯된 비인도적 만행이었다.북한의 실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남한에서는 12만8천9백여명이 학살되었다.행방불명자로 구분한 민간인 30만3천여명의 일부를 학살로 본다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그리고 남한에서 8만4천5백여명이 납치되어 북한으로 끌려갔다. 한국전쟁은 직접적인 인명피해 말고도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피난민은 45만∼1백만명으로 어림된다.우리 민족이 혈연공동체를 중심으로 정서적 유대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월남은 삶의 공동체를 무너뜨린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러니까 한국전쟁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삶의 공동체까지 파괴시킨 반민족적 사건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산업시설도 예외가 아니어서 1950년6월25일 이후 약 10개월간에 걸쳐 42%가 파괴되었다.그 피해액은 1953년7월 기준 4천1백12억환에 달했다.특히 경인지구와 삼척지역의 공업시설은 개전 3개월만에 회복불능상태의 피해를 입었다.여기에 5백72억환에 이르는 교통·전력시설의 파괴가 맞물려 돌아갔다. 전선은 전선대로 오래 버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요요전쟁」이라 부를 만큼 오락가락을 거듭했다.전선이 이동할 때마다 한국민의 고향을 짓밟아버렸다.이에 따라 농업기반도 황폐화했다.휴전이 성립될 무렵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전체인구의 25%를 차지했다.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전쟁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꽤나 오랜 기간을 비참한 생활고에 시달렸다.1인당 국민소득이 전쟁직전 9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졌으니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북측 소득 30%선 하락 북한의 피해 역시 심각했다.자업자득인 것이었지만 북한의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1949년도 국민소득의 6배에 이르렀다.이로 인해 북한의 경제발전은 5∼6년이 지연되었다.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3년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소득을 30%까지 떨어뜨려놓았다.이외에 5천개의 학교,1천1백68개의 병원과 휴양소,6백75개의 과학연구기관과 도서관이 파괴되었다.특히 전쟁말기에는 공산측을 휴전협상테이블로적극 끌어들이기 위한 유엔군의 집중폭격을 받았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한 내전으로 시작되어 국제전으로 발전했다.그리고 한반도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총력전성격으로 전쟁이 수행되어 많은 인적 희생과 물질적 손실을 가져왔다.그 원인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통해 무력으로 남한 흡수를 시도한 데 있다.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일단 수포로 돌아가면서 두 정치세력은 민족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잔인한 전쟁으로 치달은 까닭도 여기 있다. 그러니까 전쟁은 남북간에 고도의 적대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전쟁을 통해 형성된 적대감은 이념대립을 보다 부추겨 정치·경제·군사·외교분야에서 비타협의 갈등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그 갈등은 타민족 국가간의 대결양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것이었다.그래서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하기는커녕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교류협력마저 실현을 보지 못했다. ○남북간 적대감 고조 남북 정치상황 역시 전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남한에서 지지기반이 취약하던 이승만대통령은자신의 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그는 적극적인 휴전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반공포로를 과감히 석방함으로써 이미지를 개선해나갔다.이는 장기집권의 기반이 되었다.특히 북한은 전쟁 중반기에 부수상 겸 외상 박헌영등 남로당계열 숙청에 나서 휴전이후 이를 실현했다.이와 더불어 연안파와 소련한인파를 숙청,일인독재체제를 갖추고 이른바 주체사상에 의한 우상화의 길을 재촉했다.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전쟁을 통해 새롭게 정립한 한·미관계다.물론 전쟁 내내 한·미간의 불협화음이 따라다니긴 했다.휴전회담이 막바지에 접어든 1953년6월17일 이승만대통령이 북한 출신 반공포로 2만6천명을 석방한 사건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이는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어 미국은 이승만을 구금,한국을 미국 군사정부 아래 두고 휴전에 동의토록 한다는 작전까지 추진했다.이승만대통령의 모험은 그해 봄부터 요구해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을 핵으로 한 친서방화와 친국제연합화를 추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따라서 국내 정치와 경제에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 역시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군사대국자리를 굳혔다.또 미국을 정점으로 서방진영의 군사동맹을 강화시켜 냉전시대를 마감하는 데도 공헌했다.그럼에도 전쟁의 무대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아직도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승만­로버트슨 회담 문서/이 대통령,한·미 방위조약 체결 강력 요구/미측선 「유엔군이 한국군 관할」 동의얻어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미끼로 심각한 줄다리기외교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발굴한 국무성문서에 따르면 휴전회담을 놓고 한·미간에 상대방을 서로 윽박지를 만큼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19 53년7월27일 휴전회담이 성사되기 이전인 6월25일 한국을 방문한 미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개인사절 월터 S 로버트슨과 이승만대통령과의 회담문서.당시 국무장관 덜레스의 서신을 휴대한 미 국무성 차관보 로버트슨은 이를 이승만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회담은 로버트슨 도착 당일부터 시작했으나 아무 진전이 없었다.이때에 일부 미군 고위지휘관이 한국군에 대한 보급지연과 같은 압력수단을 제시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런데 7월1일 로버트슨이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메모 한쪽을 받는 것으로 회담은 활로를 찾았다.이승만의 메모는 미국과 어떻게든 합의를 보겠다는 것이었지만 전제조건은 물론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메모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요구사항을 담았다.정치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함께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싸울 것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이같은 보장이 없다면 휴전이후 전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국을 협박하면서 자신은 휴전을 결사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할 길이 없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휴전을 거부하지 않고 한국군을 유엔군 산하에 두겠다는 동의를 얻어냈다.한국은 3월4일 로버트슨으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초안을 받았고 휴전 이후에 이를 성사시켰다.
  • “북 군비증강 지속… 냉전체제 여전”/김 대통령 NYT회견 요지

    ◎“쌀 운반선 인공기 게양 강요·선원 억류 유감/주한미군 역할 중요… 한미행협 개정 꼭 이뤄야” 김영삼 대통령은 캐나다와 유엔방문에 앞서 14일 청와대에서 뉴욕타임즈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도쿄지국장과 90분동안 회견을 갖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북한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다음은 뉴욕타임즈가 15일자(현지시간)에 보도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김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발언은 한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가 강경해 졌으며,올해 봄만 하더라도 공중에 걸려있던 대화에 대한 희망을 대신한 환멸과 불만의 정도를 강조하고 있다.지뢰와 철조망,대전차 장애물과 비밀땅굴의 무인지대인 남북한 사이의 경계선은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적군들이 가장 큰 규모로 집결·대치해 있는 곳이다.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남북한간의 경계선이 더이상 10∼20년 전처럼 제3차 세계대전의 잠재적 지뢰선으로 보이지 않지만 미군과 핵무기까지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전장이다. 김대통령의 언급은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냉전은 아직 살아있을뿐아니라 언제든 실제전으로 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분위기는 아주 최근 깜빡거렸던 낙관론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지난해 김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주석과 정상회담을 준비했었는데 김주석이 갑자기 사망했다. 올봄 북한은 북한의 쌀부족을 완화시키기 위해 쌀선적을 요구함으로써 예상치 못했던 신축성을 보였다.한국은 북한으로 쌀을 운송하기 시작했으며 평화의 과정이 쌀부대 위에 건설될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다.그러나 북한은 강제로 남한의 쌀운반선 하나에 인공기를 게양시켰으며,간첩 혐의로 또하나의 선적 승무원들을 억류했다.게다가 북한은 올해초 공해에서 잡은 어선(우성호)과 선원을 계속 붙잡고 있다.김대통령은 북한은 쌀을 받으면 우성호를 풀어주고 한국정부에 대한 비방 방송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강경노선 배경의 한 원인은 한국정부가 북한에 대해 너무 약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북한의 반응을 가늠하는 것은 북한지도자들이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북한방송들은 남한이 교묘하게 분위기를 해치고 있으며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돌파구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인 김대통령은 북한의 침입과 전쟁을 막는 3만7천명의 미군 역할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미군과 군사기지가 어떻게 한국법률 아래서 다뤄지는지를 규정한 문서인 주둔군 지위협정의 개정을 요구했다.한국과 일본은 지금 모두 주로 미군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 때문에 주둔군 지위협정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한국과 일본정부는 모두 미군기지 유지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보도된 미군범죄에 대한 반감과 협정 개정 요구는 그에 대한 불확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 팔당호 유입 하천/대장균 과다 검출/가평천 등 9곳 조사

    【수원=김병철 기자】 수도권의 상수원인 팔당호로 흘러드는 북한강과 남한강지천의 하천에서 1백㎖당 최고 1억6천만마리의 대장균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남한강의 양평대교와 여주대교부근,북한강의 가평천·조종천·묵현천 등 9개 지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팔당 유입하천의 병원성 세균분포」에서 밝혀졌다. 조사결과 지난해 8월 남한강 양평교 아래 강물에서 1백㎖당 최고 1억6천만마리의 대장균이 검출되는 등 연 평균 1천1백90만여마리의 대장균이 나왔다.여주대교 아래 강물에서는 최고 9천2백만마리,연평균 1천1백90만마리의 대장균이 검출됐다. 북한강지천인 가평천에서도 1백㎖의 하천수에서 최고 3백50만마리(연평균 87만4천마리)가 검출됐으며 가평 조종천에서는 최고 1백60만마리,남양주 묵현천에선 54만마리의 대장균이 각각 검출됐다. 다행히 살모넬라와 콜레라 등 전염성이 강한 세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 “일본은 「과거」 충분히 반성해야”/김 대통령

    ◎“역사왜곡 망언 거듭” 강력비난/“북한과의 직접 쌀교섭 통일위해 행위” 김영삼 대통령은 14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한·일 합방발언과 관련,『분단의 원인은 식민통치때문』이라면서 『나는 근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일본은) 과거 역사인식만은 분명히해야 하며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충분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홍구 총리 초청으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전 국무위원과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날 상오에 있었던 「뉴욕타임스」와의 회견내용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배석했던 송태호 총리비서실장이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근래 일본은 한국의 어깨 너머로 북한과 쌀교섭을 하는 등 우리 통일을 방해하는 자세를 취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을 거듭하고 있다』고 최근 일본 지도자들의 발언과 행태에 대해 강경한 언급을 했다고 송실장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아직도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한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대통령은 『휴전 이후 8만 건 이상의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고 휴전선에는 북한의 군사력이 밀집돼 언제든지 남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도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또 『한·미 행정협정은 오래 전에 제정·개정돼 상황이 많이 변했다』면서 『변화에 따라 고치는 것이 한·미 관계에 좋다』고 말했다.
  • 김정일 군 간부 환심사려 벤츠 선물/귀순 최주활 상좌 일문일답

    ◎병력 70% 전진 배치… 93년 미그21기 생산/군 간부 「외화벌이 밀수」 성행… 50%는 착복/인민군서 25개사 운영… 남한쌀 군량미 비축 가능성 귀순한 북한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소속 최주활상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와 자유총연맹,함북도민회 회원 등 3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또박또박하고 침착한 말투로 김일성 사후 북한내부의 권력상황,첨단무기실태와 전쟁준비 실상 등을 1시간 40여분동안 낱낱이 폭로했다.최상좌의 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린다. ◇귀순동기와 과정 ­귀순동기는. ▲해외공관 무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반인민적,1인 독재의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지난 5월 27일 중국에 무역실무대표단으로 파견돼 연길등지에서 남한 실업가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됐고 지난 6월19일 잦은 접촉을 이유로 북한 당국으로부터 『승인없이 남한인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소환명령을 받고 귀순을 결심했다.북한에 소환되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하고 게다가 김정일 체제가 몇년 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차라리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지난 82년 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본국의 긴급 명령으로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비밀자료를 수집하다가 추방당했는데 이후 3∼4달동안 제대로 인사조치도 안해주는등 조국이 「쓴 웃음」으로 대해 불만과 회의를 품었다. ○망명자는 3대를 멸족 ­귀순경로는. ▲혼자 무역실무 대표단을 이탈해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동포의 도움으로 동남아로 탈출,귀순하게 됐다. ­귀순하기전 가족과 상의했나. ▲북한에 2남1녀를 두고 있어 귀순을 결심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북한에서는 귀순자나 망명자 가족들에게 「3대를 멸족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가족들을 「관리소」라고 부르는 정치범수용소에 뿔뿔이 흩어지게 한뒤 굶어 죽게 만든다.북한에 남은 가족도 기자회견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처리될 것이다. ­군인 신분으로 연변에서 남한의 기업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가능한가.최근 자진월북한 것으로 북한에서 보도한 안승훈목사에 대해 아는 바는. ▲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연변에서 무역실무대표단 활동을 벌였다.북한에서 군인출신이 남한인을 만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있다.내가 접촉했던 남한 기업인들은 나를 북한 축산총국 융성회사 직원으로만 알고 있다.안승훈목사에 대한 것은 내가 북한을 떠난 뒤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연변에서 나를 감시한 조선인민정찰국 요원 리봉식의 기본 공작임무가 남한사람을 만나 월북하도록 포섭하는 것이다.남한의 장교급이상 군인을 월북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리봉식이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자 대신 안승훈목사를 납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일성 사후 변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년3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김정일은 국가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자질인 군사및 경제분야의 분석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군사전문가들이 쓴 책을 보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군사지침을 발표하는 실정에서 알력이 심한 군부내의 세력들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같다.국가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태에 몰린 현 상황에서 주석직을 승계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또한 성격이 조급하고 변덕스러우며 사생활이 문란한 점도 지도자로서의 자질과는 거리가 멀다. ○군 요직에 자파 속속 배치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지도체제 구축정도와 군부내 최근 동향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려해도 군에서 받쳐줄 사람이 없다.김정일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인민군 작전국장 김명국대장,보위국장 원응희대장,3군단장 장성우대장 등 군부내에서 총애하는 인물들을 요직에 배치했다.그러나 상당수 군간부들이 속으로 김정일에 반대하고 있다.김정일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최근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호화주택을 건설해 자기 이름으로 군고위간부들에게 선물하고 올들어서는 20여명의 군단장급들에게 3∼4년밖에 되지 않은 고급 벤츠 승용차를 최신형 벤츠로 바꿔주기도 했다. ­최근 남한측에서 북한에 지원한 15만t 규모의 쌀이 군량미로 쓰이지는 않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일부는 인민들에게 배포가 되었겠지만 군량미나 비상시 예비용으로 비축됐을 가능성이 크다.최근 강원도,양강도,함경도 등에서는 지난 93년 12월부터 쌀배급이 아예 없어 14∼15세 아이들이 당이나 군 간부 집을 전전하며 동냥을 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얼굴이 붓고 굶어죽는 노인들도 많았다.북한 당국은 오래도록 「자력갱생」을 외쳐왔기 때문에 남한에서 쌀을 지원받은 사실을 극비로 하고 있다.당국의 감시가 심하지만 당시 쌀 수송에 관여했던 노동자 등을 통해 결국 남한에서 쌀이 온 사실을 입에서 입을 통해 알게 될 것이고 북한주민들은 고마움도 느끼고 적대감도 해소될 것이다. ­현재 인민군의 외화벌이 상황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인민군은 경제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피복 등을 자체적으로 충족시키려고 외화벌이에 나서 현재 인민군 산하에는 25개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특히 융성무역회사는 종업원 수만 2천명이 넘고 신진합작회사·수산기지·일본수출공사 등을 갖고 있다.그러나 외화벌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군고위간부들이 돈을 가로채며 비리를 일삼고 있다.7백만원을 벌어들이면 3백만원쯤은 간부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실제로 올해초 함경북도 6군단이 아편밀수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수익의 50%를 관련자 40여명이 5만∼10만달러씩 착복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김일성배지 아직 착용 ­아직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는가. ▲공식적으로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직원들에게는 김정일배지를 비공식적으로 지급했으며 이 배지들이 외부로 유출돼 일부는 김정일배지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군내부의 세대교체를 둘러싼 원로·신진 세대간 갈등은. ▲김정일은 군내부 원로들을 잘 우대해주는 한편 신진세력들에 대해서도 군사칭호등을 격상시키는등 양쪽으로부터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군사동향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은. ▲김정일은 현재 국방공업건설에 주력한다는 방침아래 러시아제 탱크와 각종 신형무기를 모방,생산하고 사정거리가 다양한 로켓을 양산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로켓 개발은 평양시 부근 「돼지공장」이라 불리는곳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또 사정거리 50㎞로서 서울에 직접 사격할수 있는 1백75㎜ 주체포와 함께 93년부터는 사정거리 1천㎞의 로켓도 생산하고 있다.80년대 후반에는 각종 러시아제 전투용 경비행기를 자체 생산했고 93년에는 비밀리에 미그21기의 시험생산을 하는등 전쟁준비에 필요한 무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현재 2천만 인구 가운데 정규군만 1백20만에 이르고 교도대·노농적위대 등 전체 인민을 전투병력화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이와 함께 80년대 중반부터 「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계화군단을 7개나 증강했고 93년에는 남한의 특공대에 대비해 양강도·황해도 등지에 3개의 군단을 새로 편성했다. 북한군은 현재 각 10만명씩으로 이뤄진 4개 군단을 휴전선 부근에 두고 서해와 동해에 각 1개 군단씩 두고 황해도와 개성주변에 기계화군단을 배치하는등 무력의 70%를 평양 이남지역에 전진 배치하고 있으며 전시에 대비,훈련의 60∼70%를 야간에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첫째,북한의 현 정세가 극도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혼란을 겪고 있어 북한 주민들사이에는 『차라리 한번 싸워보고 죽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김정일이 이같은 혼란한 민심을 이용,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한미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미군이 철수한 뒤 전면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일부 장성들은 우선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주타격대상으로 삼아 수천명을 사살,미국내 반전 시위가 거세게 일도록해 한미간 군사동맹체제를 깬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셋째,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 특정지역을 타격하면 이를 계기로 핵무기를 동원,전면전을 일으키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인민군 병사들은 일단 전쟁이 나면 남한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해외로 도피할 것이기 때문에 손쉽게 무력적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색무기개발 상당히 진척 ­북에서 느끼는 한국군에 대한 생각은. ▲장성급 등 군 고위간부들은 남한군이 현대 과학기술을 도입,최첨단 무기를 갖추는등 발전상을 잘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병사들은 한국군이 미군의 괴뢰군이며 전투력도 보잘 것 없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상황은. ▲핵무기개발 상황은 북한내 최대 극비사안의 하나이기 때문에 나도 알 수 없다.그러나 평북 영변군 원자력연구소 감찰과에 근무하는 처남에게서 지난 88년 김정일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 결과를 둘러보고 상당히 만족,1대에 30만달러짜리 최고급 버스 2대와 모피코트를 선물한 사실을 알았다.이같은 사실로 미뤄 김정일의 관심속에 핵무기 개발사업이 상당히 진척한 것으로 보이지만 핵무기가 『있다』,『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현황은. ▲독가스를 비롯한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봐서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지난 74년 러시아 부무관으로 활동했던 김종찬씨가 화학무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그후 김씨가 훈장을 받는등 초고속 진급을 한 적이 있다. ◇체제몰락 가능성 ­4∼5년뒤에 북한체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떤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가. ▲현재 북한의 경제는 더이상의 후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이다.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개방은 불가피하며 남한과의 경제교류도 점점 더 활발해질 것이다.이런 개방움직임을 통해 자연히 북한 인민들사이에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널리 파급될 것이고 군부내 불만세력들이 이를 틈타 개혁 쿠데타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쿠데타 일으킬것 ­기존 대미자주화노선에서 최근 대미·일 실용외교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한 군부내 강경파의 반응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는 미국이 남·북한 등거리정책을 펴 남한내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미군이 철수한뒤 쌍방이 군대를 일정수준으로 감소하고 동시투표를 실시하면 사상교육이 잘된 2백50만 북한당원을 동원해 북한 대통령을 당선시킨다는 것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고려민주연방공화제의 기본 구도다. ­군수산업이 침체되고 대외교역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진·선봉지역을 특수구역으로 개방한의미는. ▲군수산업과 민간산업은 전혀 별개로 운영되며 군수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군수산업의 침체는 사회주의경제이론 자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개인의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또 그동안 질적 개선없이 양적 팽창에만 치우쳐 외국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대외교역 약화의 원인이다. ◎「김정일의 군 장악 여부」 정부측 평가/“군 간부들 겉으론 충성­속으론 불만”/올 시찰 13차례… 반대세력 조직화 시기상조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최고 권력자가 그 권좌를 움켜쥐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모택동의 어록으로 병영사회인 북한체제에 꼭 어울리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맥락에서 13일 귀순,기자회견을 가진 북한군 상좌 최주활씨가 김정일의 북한군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귀순자중 최고위계급 상좌(중령과 대령사이)인 그는 『김이 북한군부를 제대로 장악치 못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당총비서·국가주석 취임등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증언을 계기로 북한전문가 집단에서 소수설에 그쳤던 김정일의 「권력기반 이상설」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지금까지는 경제난등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김정일이 당·정·군을 대체로 원활하게 통제하고 있다는게 중론이었다. 최씨의 회견을 지켜본 정부의 한 북한전문가는 『김이 북한군을 외형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군심」은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우선 김일성과 같은 세대인 「빨치산 1세대」와 당시 「소년병」이었던 「혁명 1.5세대」가 김정일을 마음 속에서 애숭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군경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구 유학을 다녀와 해외사정에 밝은 상당수 고급장교들도 내심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게 다수 귀순자들의 증언이었다.실제로 고급장교 일부가 지난 92년 4월25일 인민군창설 기념식때 김일성부자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음모했다가 발각돼 처형당한 기록도 있다.소련판 웨스트포인트격인 「푸른제 종합군사대학」 유학파인 안종호상장등 소장파 군관들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그가 군통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금년들어 김의 23차례 「현지지도」 가운데 군부대 시찰이 13번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김이 최근 각종 행사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당비서등 당직은 제쳐두고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이라는 군직함만을 사용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북한군부내 반대세력이 아직 조직화되지는 않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김정일이 당 지도부와 공안기관을 통해 군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생전의 김일성이 북한의 군사력을 인민무력부·호위총국·사회안전부·국가안전보위부 4각 편제로 상호견제토록 교묘한 장치를 해놓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김정일 군 장악못해 승계 지연/귀순 최주활 상좌 회견

    ◎92년 장성급 쿠데타 실패/경제 파국 북한 4∼5년내 붕괴/93년부터 함경·강원 일부 식량 배급 중당 지난달말 제3국을 통해 귀순한 북한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최주활상좌(46)는 13일 상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정일이 북한 군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아직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상좌는 또 『지난 92년에는 장성급들이 주도하는 군 쿠데타도 있었다』고 폭로하고 『정치혼란과 경제파국으로 인한 민심 동요로 4∼5년 내에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상좌는 이날 회견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이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한 뒤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승계,새로운 정치강령과 국가 방향을 제시할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상좌는 또 『지난 92년 장성급이 쿠데타를 시도하려다 발각돼 처형당했고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군간부들이 겉으로는 복종을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김정일에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상좌는 이어 『더 이상 수습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개방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남한이나 서방측과의 인적·물적 교류로 「맑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자유주의 사상이 급속히 확산,4∼5년 이내에 체제전복 세력이 용단을 내리고 결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좌는 그러나 『김정일이 체제 유지가 안될 바엔 혼란한 민심을 이용해 전쟁을 결심할 가능성도 높다』며 『이미 군사력의 70% 쯤을 평양이남 지역에 전진 배치해 놓고 있다』고 폭로 했다. 최상좌는 일부 북한 군내부나 주민들사이에도 『굶어 죽으나 싸워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진데 빨리 한번 싸워보기나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특히 전쟁발발시 남한 국회의원이나 군고위급 인사들은 해외로 도피해 손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최상좌는 북한측이 동독붕괴 직후 구소련의 미그 21기의 조립·설계문건 복사본을 입수,최근 자체 시험생산을 마쳤고 지난 2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비행기 기술진 30∼40명이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다고 밝혔다. 최상좌는 최근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강원도와 함경도 등 산간지방에서는 지난 93년 12월부터 식량배급이 중단돼 14∼15세 어린이들이 당이나 군 간부집을 찾아 다니면서 동냥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면서 『남한이 지원한 쌀의 상당량을 군량미로 비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 「영향공작」에 놀아나는 서방인/윌리엄 테일러(해외기고)

    ◎평양서 세뇌당해 실상 못보고 「체제미화」 앞장 북한의 선전내용은 일면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빤하다.그러나 일면 매우 교묘하기도하다.그리고 최근들어 외국인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선전내용들은 더욱더 교묘해지고있다.스티브 그레인 기자가 지난 9월 20일과 26일자 미 월스트리트저널지에 연이어 게재한 「변화하는 북한 외국인 투자가들을 유혹하다」,「특파원수첩:북한,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주체사상은 굳건하다」는 기사들은 평양의 교묘한 선전에 녹아난 서방기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지난 10월 6∼7일 서울에서 발표된 셀리그 헤리슨박사의 두편의 논문,「미­북핵합의」및 「평양에서 바라본 한미동맹」또한 그렇다. 북한관리들은 장미빛 환상에 젖어 그들사회의 황폐한 현실을 은폐하는데 도가 텄다.북한체제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외국인은 그 누구나 북한의 정보원및 왜곡된 정보,이상사회에 대한 오도된 환영에 의해 쇄뇌당했다고 보면 틀림없다.서방인들은 오직 주체의 독재자가 원하는 것만을 듣고 볼뿐이다.네번을 방북해 모두 1개월을 북한에서 보낸바 있는 나는 이를 안다.첫번째 방북때 북한관리들은 나를 현혹하기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나는 그들이 말하는 장미빛 환영속에 가려진 거짓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그레인은 이같은 사기에 놀아나 현실을 왜곡한 북한을 그리고 말았다.경제개혁에 대한 약속및 우수한 노동력,풍부한 천연자원에 매혹돼 수많은 해외 투자가들이 북한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그의 기술은 완벽히 틀린 것이다.믿을 만한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경제특구인 나진·선봉지구를 개발하기위해 필요한 40억달러이상의 외화가운데 2억달러정도를 계약했을 뿐이다.게다가 실제 집행된 돈은 계약금액의 10%에 불과한 실정이다.이러한 사실은 곧 서방자본이 북한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 환상임을 입증한다. 아울러 북한은 풍부한 자연적 하부구조라든가 국제결제를 위한 법적인 체계,안정적인 에너지원 공급방안등 서방의 자본을 유치해 경제특구를 개발하기위한 기본 요건을 갖추지못하고 있다.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지도자가 지금의 북한체제 쇠퇴의 근본적인 요인이 되고 있는 주체사상의 중심이데올로기,즉 배외사상과 고립주의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잘 훈련된 고도의 풍부한 노동력은 북한이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자랑하는 강점의 하나이지만 북한은 풍부한 노동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리자들이 북한의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고있다.북한의 법에 따르면 투자가들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 하는데 있어 복잡한 협상과정을 거쳐야한다.게다가 관리자들은 노동자를 감시하고 그들의 이념적 순수성을 고취하기위한 국가기구인 노동당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이미 북한에 공장을 설립한 한국과 일본의 투자가들은 노동자들이 정치집회나 재학습에 참여하기위해 수주 또는 몇 개월씩 아무런 통보도 없이 결근한다고 불평한다.이에따라 외국인 사업가들은 필요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해야하는데 이로인해 값싼 노동력의 이점은 반감되고있다.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해볼때 북한에서의 장미빛 투자열망은 공허한 것일뿐이다. 또한 주체사상이광범한 외국자본과 투자를 받아들이는데 융통성이 있다고 한 그레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마비된 경제회생을 위해 북한은 북동부의 외진 곳 두만강지구에 외국인투자를 원하고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사상이 북한지역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한 조치이다.평양은 결코 외국인의 대화와 움직임을 감시할 정부정보원의 동행없이 외국인의 여행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그레인은 또 20년전 남한의 정치·경제상황과 북한의 현재를 비교했는데 이 또한 비현실적이다.20년전 남한에는 강제노동이나 정치법 수용소가 없었다.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이에 반해 현재의 북한은 완전한 독재국가이며 인권 자유 개인적 활동등이 도외시되고있다. 평양의 선전선동은 악명이 높다.선전은 북한주민이 남한정부및 민주주의에 대해 믿는 온갖 거짓을 만들어낸 토대이다.스티브 그레인은 북한주민들이 외국인과 기꺼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쓰고 있으나 그는 자신이 철저히 속고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북한주민들은 자신및 가족의생활과 생명에 대한 위협때문에 그들의 당노선과 다른 어떤 정치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해리슨박사는 북한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개탄한다.그들은 핵합의가 미국의 남한에 대한 일방적인 우호관계를 시정하기위한,또한 북한이 소련과 중국과의 특수한 유대관계를 상실함으로서 초래한 전략적 약점를 보완하기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북한이 실제 미군의 남한주둔에 반대하지않고 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고립화시키고 미국과 남한,미국과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파괴하려하고 있다.북한의 지도자들은 「유화공세」를 시작했으며 일부 언론인들이 이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과 남한의 고급지들은 일부 언론인이 무엇을 쓰는지,왜 그러한 기사를 쓰는지 직시해야한다.
  • 북한내 저항·비판세력 대두/권 안기부장 국감답변

    ◎경제난 가중·남한 성장에 동경심/특수부대 12만명 훈련 2배 강화 권영해 안기부장은 11일 북한은 최근 외국 유력인사등을 초청,대대적인 선심공세를 펴거나 경쟁심·명예욕 등을 자극,북한의 입장을 지지·대변토록 해 대외적 체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영향공작」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부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고 문익환 목사와 안호상 대종교총전교,문선명 통일교교주,황석영·임수경씨 등을 환대한 것이나 카터전미국대통령 방북때 미국 CNN­TV에 독점취재권을 부여한 것,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를 수차례 초청,김일성부자를 칭송케 한 것』 등을 예로 든 뒤 『북한은 이같은 공작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앞으로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권부장은 『이같은 공작은 표면적으로 조평통,해외동포원호위원회 등의 명의로 이뤄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통일선전부,사회문화부 등 노동당 대남공작기구가 관장하고 있다』면서 『국내외 및 해외동포사회 각계 인사와 언론이 주대상』이라고 밝혔다. 권부장은 이와 함께 『최근 전국대학원리연구회,대한전자공학회 등 국내 민간단체들이 자신들의 주가를 높이기 위한 대북접촉 경쟁과정에서 북측의 경비까지 부담하는 이기적 발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은 이런 경쟁적 대북접촉을 이용,통일전선 공작차원의 선전에까지 이용하고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최근의 북한동향과 관련,권부장은 『북한은 부분적인 개방정책과 외자도입을 통해 경제개발을 시도하고 있으나 지난 87년부터 93년까지의 제3차 7개년계획기간 동안 7.9%의 성장목표치에 훨씬 못미치는 마이너스 1.8%의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면서 『이런 사정과 남한 경제성장의 동경심 등으로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사회비판 세력이 대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노동당 창건 50주년 행사에서 대대적인 군사퍼레이드를 벌인 것도 이같은 상황에 대한 지도부의 위기감의 반영이며 김정일의 위상제고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부장은 이어 『북한의 구조가 붕괴되거나 대폭적인 변화가 없이는 경제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분석한 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경제침체에도 불구,전력의 65%를 평양이남에 전진배치하고 특히 소형잠수함,공기부양정,AN2기 등 기습공격무기 등을 집중배치하는가 하면 12만명의 특수부대 요원을 대상으로 한 군사훈련을 2배 정도 강화했다』고 말했다.
  • 대북투자 상한선/북한,철폐 요청

    북한이 최근 방북한 독일 연립여당 관계자를 통해 남북경협시 5백만달러 대북 투자상한선의 철폐를 우리측에 간접 요구해온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지난달 12일부터 16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온 페터 람자우어 독일 연방하원의원은 9일 기자와 만나 『방북중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장이 남한당국이 남측 기업에 한 프로젝트당 5백만달러 이상을 북한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불만을 표시했다』면서 남한정부가 이 투자상한선을 철폐하도록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독일 연립여당인 기사당 소속의 람자우어의원은 이미 북한의 이같은 의사를 우리측 관계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남한 기업의 진출이 없는 현상황에서 북한이 추진중인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의 서방자본 유치가 한계에 부딪힌데 따른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그러나 이에 대해 북한이 당국간 경협은 외면한 채 우리측 민간기업으로부터만 투자를 유인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보고 북한이 경제공동위등을 통해 투자보장 협정등의 체결에 응할 때까지 5백만달러 투자상한선을 고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자연 휴식년제 5년째… 「설악」의 두 모습

    ◎등산길 “중병” 휴식구간 “울창”/등산로­인파에 나무뿌리 노출… 곳곳 쓰레기/휴식구간­원시림 복원속 희귀식물 등 회생 5부능선까지 곱게 물들어 만산홍엽의 절정을 이룬 설악산이 수많은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그러나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일부 등산코스는 어느덧 원시림의 자태를 찾아가고 있어 현행 등산로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남한 제1의 명산 설악산의 두 모습을 르포로 구성해본다. 10월 초순의 설악산은 뼈대를 자신만만하게 드러내고 있는 기암괴봉과 절정에 이른 단풍 옷을 껴입은 능선,능선과 능선 사이 고적한 계곡,높고 맑은 하늘이 얽혀 가을 한복판에 접어든 명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내설악·외설악·남설악을 합쳐 3백73㎦에 이르는 설악산을 들여다 보면 군대의 행군같은 등산객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곳곳이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지난 8일 낮 12시쯤 설악산의 정상인 1천7백8m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인 오색코스 매표소 앞은 원색 차림의 등산객들로 시장터처럼 붐비고 있었다.이날 설악산을 찾은 6만명 가운데 1만4천여명이 이곳을 통해 대청봉을 올랐다. 예상했던대로 5㎞의 이 구간의 대부분은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잘 닦인 비포장 길 같았고 어떤 곳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너비가 5m이상 될만큼 훼손돼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으로 흙이 파여 곳곳에 나무 뿌리가 드러나 있는가 하면 이들 뿌리를 지팡이로 쓰려고 서슴없이 꺾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5부능선까지 내려와 곱게 물든 단풍을 기념품 삼아 꺾기도 하고 계곡에서 음식을 먹어가며 노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친 발길을 쉴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담배꽁초는 물론 사탕이나 초콜릿 봉지,나무젓가락,심지어는 쓰레기 비닐봉지등으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자연을 보존한다는 취지로 지난 91년부터 등산로를 폐쇄하고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대청봉∼권금성간 8㎞ 등산로. 북동쪽으로 난 이 구간 초입은 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죽이 수북이 덮고 있어 아주 보기 좋았다.만경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칠성봉∼집선봉∼권금성 구간은 불과 5년의휴식에도 불구하고 원시림의 원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등산로 같으면 손길이 닿아 벌써 따갔음직한 빨간 마가목 열매가 그대로 달려 있었고 한해에 8㎝정도 자란다는 단풍나무도 40㎝남짓 크기로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덮고 있었다.금강초롱도 사람의 발길에 채이지 않아 보라빛 꽃자태를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길도 몇년째 낙엽이 쌓이고 쌓여 어떤 곳은 길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기고 나는 짐승들의 움직임도 어느곳보다 활기찼다. 나무와 풀은 물론 바위·흙까지도 자연의 휴식이 왜 필요한지를 실감케 하는,세계적 자연보존지구 설악산의 두 모습이었다.
  • 휴전협정의 뒤안(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9)

    ◎미·유엔군,중공군 개입으로 확전전략 수정/군사분계선·포로문제로 2년남짓 줄다리기 1950년 6월25일 새벽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은 19 53년 7월27일 상오10시 유엔군과 공산군측 대표가 판문점에서 휴전 조인식을 가짐으로써 형식적인 종지부를 찍었다.전쟁 발발 만 3년1개월2일만이었다.전선에서의 공방만큼이나 휴전을 이루어내기 위한 협상전도 치열했다.유엔군과 공산군측은 장장 2년여에 걸쳐 험난한 설전을 계속했던 것이다. ○중공군 46만명 손실 그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거지로 마감했던 휴전회담의 결과는 개전 이전보다 한국의 영토를 조금 더 확보하는 것으로 그쳤다.그러나 휴전회담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꿈꾸었던 대다수 한국민들의 의지가 도외시됐다.휴전회담에 따라 종결된 「승리없는 전쟁」에서 비롯된 분단과 갈등이라는 후유증은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은채 중병으로 번져있다. 휴전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51년 5월 하순 중공군이 총공세에서 실패,열세에 빠지면서부터다.중공군은 이때쯤 한국전 개입이후 46만명에 달하는 병력손실을 입었다.더이상의 공격작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그럼에도 미국과 유엔군은 당초 38도선 이북의 공산군을 격멸한다는 목표에서 후퇴했다.중공군 개입에 부닥치자 전략을 「명예로운 휴전성립」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미국은 5월31일 소련문제 전문가 케넌을 시켜 소련의 유엔대표 말리크에게 협상의사를 타진했다.이어 유엔사무총장 T 리는 6월1일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따라 어떤 형태의 협상을 통해 한국문제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미 행정부의 주장을 반영한 성명을 내놓았다.「대략 38도선에 머무는 휴전이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회복한다면 유엔은 주목적을 달성할 것」이라는게 그 내용이었다. 그와 동시에 애치슨 장관도 맥아더 청문회를 통해 같은 견해를 공식으로 밝혔다.6월22일 미 국무부의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말리크에게 리의 호소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그 다음날 말리크도 마침내 유엔 라디오방송을 통해 휴전을 제의해왔다.이 제의에 대해 중공은 25일,북한은 27일 각각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이처럼 한국전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입장이 협상쪽으로 기울면서 한국정부는 범국민적인 휴전반대운동을 벌여나갔다.6월5일 국회가 휴전반대 결의를 표명하자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38도선 휴전반대 국민궐기대회」가 일어났다.특히 6월30일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원산항 앞바다에 정박한 덴마크 병원선에서 휴전회담을 열자는 제의가 나오자 변영태 외무부장관은 이날 즉각 5개항의 휴전조건 5개항을 발표하는 것으로 맞섰다. ○남한선 휴전에 반대 한국정부의 이 휴전조건은 중공군의 완전철수와 북한군의 무장해제,유엔이 북한공산당에 대한 제3국의 원조제공을 차단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사실상 휴전반대를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가운데 공산군측은 7월3일 회담개최에 동의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공산군측은 회담장소를 원산대신 개성으로 바꿔 제의해왔다.유엔군측이 이를 받아들여 7월8일 개성의 연락장교단 예비회담을 열었다.그리고 7월10일 상오11시 개성시 고려동 내봉장에서 그리도 지루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채 첫 회담에 들어갔다. 그러나 회담은 처음부터 암초에 걸렸다.전세가 불리했던 공산측은 현 상황에 관계없이 군사문제 일체를 전쟁전의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입장이었다.이에반해 유엔군은 군사적 문제만을 의제로 삼자는 제안을 내놓았다.공산측은 또 외국군 철수를 고집해와 5개항의 의제합의는 10차회담에서 겨우 이끌어냈다.그러나 군사분계선 설정을 놓고 공산군측은 종래 주장대로 38도선을,유엔군측은 쌍방 전투부대의 현 접촉선을 양보하지 않았다. 교착상태의 협상은 8월22일 공산측 대표 이상조가 38도선 안을 수정할 뜻을 비치면서 진전기미를 보이는듯 했다.그러나 공산측이 돌연 개성폭격 사건을 조작하는 통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유엔공군이 회담장소를 폭격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은 날조로 증명됐지만 결국 회담중단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10월말까지 대 공세에 나서 임진강 북쪽 연안∼역곡천∼중강리∼금성천변까지 장악했다.이로써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변경한다는데 공산측도 동의했다.10월25일 휴전회담이 재개됐다.11월27일 마침내 대치중인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결정하는 소위 11·27합의가 이루어졌다.그러나 이 합의는 30일 이내에 휴전협정 조인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이는 미국의 의도였지만 조기 종전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개성 폭격사건 날조 그 다음 협상에서 공산군측의 유엔군 인원교체와 장비보충 금지,비행장 복구문제는 줄곧 협상을 가로 막았다.유엔군 수뇌부는 공산군의 공군력 증강을 막기위해 북한의 비행장 복구에 대해 크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해가 바뀌었다.그래도 유엔군 인원교체와 장비보충 문제는 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유엔군측은 미국정부의 훈령을 받아들여 결국 비행장 복구문제를 공산측에 양보했다.인원교체에 대한 공산측의 완강한 반대와 송환 거부 포로문제 처리에 막힌 회담은 결국 그해 9월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그로부터 10개월후인 1953년 7월10일 판문점에서 재개된 휴전회담은 종전과는 달리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7월19일 양측은 그동안 대립했던 포로송환 문제등 모든 부분에서 최종 합의를 보았다.곧이어 20일 양측 참모장교들은 휴전협정 세부사항과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마침내 27일 상오10시 판문점에서는 두 개의 서류가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휴전협정과 비무장지대에서 중립국송환위원회로 송환 거부포로의 인도를 인정하는 간단한 보조협정이 그것이었다.유엔군측 수석대표 해리슨과 북한의 남일은 휴전 조인식 내내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두 사람은 각각 9부의 서류사본에 서명한후 교환하고 상대방의 사본에 서명했다.조인식이 끝난 것은 10시12분이었는데 불과 12분이 걸렸다.그러나 양쪽의 포병사격과 해·공군 작전은 휴전 발효시간인 그날밤 10시까지 계속됐다. ◎미 방첨대 보고서/미·북한,휴전회담중 비밀교섭/박진목 등 3명 남북한 오가며 「특수 업무」/“전쟁 수행 능력 한계” 북한측 입장 전해와 한국전쟁을 일단 끝낸 휴전회담에도 미국과 북한의 비밀교섭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정황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으로부터 입수한 문서군(Record Group) 319상자 방첩대(CIC)보고서에서 확인됐다. 1951년 12월7일에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박진목(당시 39세)등 3명이 등장한다.박은 본래 공산주의자였으나 보도연맹에 가입,무사히 자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후 안동전선에 참가했다.그이후 춘천에서 이탈,대구에서 머물다 어떤 경로를 통해 월북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에서 돌아온 박은 CIC요원을 만나 북한은 남침전쟁을 통해 조기승리를 예상했지만 유엔의 참전은 의외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해주었다.또 중공군이 개입해도 더이상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는 사실과 중공군 개입은 국제공산주의의 역량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1951년 1월 공산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하자 박은 서울시인민위원회로 이승엽을 찾아가 만났다.박은 그해 7월28일 미군의 배려로 다시 월북했다가 40일만에 남하해 미군 CIC로 연행되어 간첩활동에 대한 신문을 받는 것으로 돼있다.미군 CIC는 박의 효용성을 인정,1천만원을 제공하고자 했고,또 다른 인물 최익환(당시 56세)은 미 국무부 요청으로 평양에서 업무를 수행중이라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어떻든 이 CIC 보고서는 박진목의 말 그대로 북한이 도발한 전쟁이 더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는 당시의 현실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이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재촉한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 한·미 동맹관계 현안토론 경남대 국제학술회의

    우리나라를 비롯,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호주 등 6개국 학자들이 참가해 한·미 동맹관계의 관련 쟁점들을 토론하는 국제학술회의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미육군대학 전략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지난 5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개막돼 7일까지 열린다. 7일 「21세기의 통일한국과 미국」이란 제목의 분과회의에서 발표될 3편의 주제발표문을 요약한다. ◎군비통제 미 역할/“한·미 동맹 강화만이 군비경쟁 억지”/이춘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반도의 군비통제에 대한 한미동맹의 역할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연구 주제였다.한미동맹의 주요 목적과 역할이 군비통제라기보다는 전쟁억지에 있었기 때문이다.한미동맹은 주로 한미동맹의 전쟁억지 기능 또는 미국이 한국의 군사화에 어떻게 기여했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군비통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사실 1950년대 및 1960년대 한국과 북한은 스스로 군비경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였다.당시 한반도에 군비경쟁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실상 전적으로 미국과 소련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말엽 이후 미국의 안보약속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고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북한의 경우 자주국방은 한국보다 빠른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북한의 군사력이 급격히 증강하는 동안 한국은 스스로 군사력을 늘릴 수 없는 처지였고 미국은 한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았다.한국이 스스로 국방력을 갖추기 시작한 1970년대에도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군사력을 제공하지 않았고 한국의 방위산업을 제어하였다.즉 미국은 한반도의 군비경쟁을 통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국제질서의 도래는 한미동맹의 목적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미국은 냉전의 주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계를 맞이했으나 한국 및 동아시아 주변국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특히 19 90년대 한국은 경제력 및 기술의 발전을 통해 스스로 군비증강을 이룩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한미동맹관계는 바로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화 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미국은 이 지역에안정화 세력으로 존재함으로써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군비경쟁을 전개할 수 있는 국가들의 군비경쟁 의욕과 필요성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안보동맹의 지속은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는 물론이거니와 한반도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억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한국은 미국의 안보개입이 불투명할 경우 스스로의 힘으로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고 있다.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북한의 무력적인 반응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또한 중국과 일본은 미국이 빠져나갈 경우 생기게 될 힘의 공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중국 및 일본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한미동맹의 유지인 것이다. ◎통일과 미의 전략/“미는 한반도 통일위해 적극 나서야”/에드워드 E.올슨 미 해군대학원 교수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미국의 정책은 불확실하지만 다른 정책을 통해 그 정책의 대강을 연역해내는 것은 가능하다.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모호하다.한국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국이 남한정부를 위해 남한에서 수행했던 여러가지 역할들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분단의 영속화에 기여하고 있다.미국은 현상유지를 우선하고 있는 듯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종식은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유리하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해냈으며 한국 역시 냉전유산인 분단을 종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현재의 관점은 기껏해야 복합적인 것이다.더구나 그것은 한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최상의 방안을 제시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의 의지 결여가 이러한 대안들의 실행을 가로막고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강대국이 남북 양측에 통일을 추구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떠맡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냉전의 유산인 분단을 종식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려를 낳을 수 있는 접근들은,관계국들에 의해 결정된 것은 보다 창의적인 정치일정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그것의 한 부분으로 미국은 비록 그것이 한국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보다 혁신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역학/“평화정착은 내실있는 남북대화로”/제임스 E.굳비 미 카네기맬론대 교수 한반도 안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실있는 남북대화다.남북대화를 위한 상호간의 기대는 91년과 92년에 걸쳐 남측과 북측에 의해 합의된 사항들에서 이미 제기되었었고 94년 10월의 미국과 북한과의 기본합의사항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되었었다. 미·북 기본합의의 결정들은 한반도에서의 핵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으나 이는 이 결정들의 만족할 만한 이행이 곧 재래식 무기 감축을 포함한 남북간의 안보문제에 관한 대화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진 것이었다.물론 동북아시아의 지역적 특수성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겠지만 상호신뢰 구축의 다양한 경험들은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 볼만한 분석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독일에서 동방정책과 함께 양독의 내부관계 개선을 위한 독일정책이 동시적으로 수행되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명확하게 정리된 한국정책이 수행될 여지가 있다. 한국정책의 결정적인 부분은 오판에 의한 전쟁 방지와 방어위주 군사력을 갖춘 상대적으로 안정된 남북관계를 위한 명확한 사찰방법과 제재조치에 의해 추진되는 재래식 군사력의 재편성일 것이다.이것이야말로 한국정부가 말하는 평화체제의 모습일 것이다.
  • 6일 상위(국정감사 중계)

    ◎화폐제조·관리 자동화시스템 확대­조폐공 사장/북­일 수교협상 「북 미사일」 연계 촉구하라­외통위/산업인력 수요따라 학과별 정원 배정을­교육위/농안기금 650억 목적외 사용 추궁­농림수산위 ▷재정경제위◁ ○…조폐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의원들은 화폐유출사건과 만성적인 노사분규등을 집중 거론했다.특히 야당의원들은 조폐공사의 노사분규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공사를 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재검토하라고 거세게 요구,여야간에 설전을 벌였다. 유준상·김원길·박태영·이경재 의원(국민회의)등은 『조폐공사 조폐창은 시궁창처럼 엉망진창』이라고 힐난하면서도 『그러나 공사의 공익사업장 지정은 노사간의 대화보다는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원천 봉쇄,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처사』라고 주장했다.이에 정필근의원등 민자당의원들은 『이 문제는 당정간에 협의가 끝난 만큼 재정경제원에서 따져야 한다』고 제동을 걸어 실랑이를 벌였다. 장재식 의원(민주)은 『공사소유 부동산중 36%가 비업무용인 것으로 판명됐다』며 『정부투자기관이 과다한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임춘원 의원(신민)은 『화폐유출에 이어 우표손지마저 유출돼 시중에 고가로 매매되거나 국제우표 전시회에 출품되는등 국가적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고 수표와 유가증권등의 대형 유출사고도 우려된다』면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민태형 조폐공사 사장은 『공익사업장 지정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조폐사업은 국가 신용질서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제도적인 장치마련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민사장은 화폐유출사건의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공정 자동화 확대 및 공정관리 전산화,화폐제조시설의 일원화 등 새로운 생산체계 및 관리시스템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담배인삼공사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외제담배 판매의 급증 및 홍삼전매제 폐지에 따른 대책등을 추궁했다. 김영태 담배인삼공사 사장은 외제담배의 시장잠식에 대해 『과거와 같이 소비자의 애국심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품질로써 경쟁할수 밖에 없다』면서 『기존 제품의 전반적인 품질개선과 함께 경쟁력있는 신제품 개발을 적극 추진중』이라고 밝혔다.▷외무통일위◁ ○…주일대사관(대사 김태지)에 대한 아주반의 감사에서는 쌀지원 문제와 북·일수교 교섭문제에 대해 질의. 이만섭 의원(민자)은 「대북한 쌀지원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다 초연하고 의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면서 「김 대사가 일본의 2차 쌀지원에 대해 불쾌감을 표명했다는데 너무 성급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의. 감사반은 가운데 유일한 야당의원인 손세일 의원(국민회의)은 「북한 김용순이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대해 일본에 대해서는 해명했는데 한국에 대해서는 해명했느냐」면서 「북한과 일본이 수교교섭을 진행시키려 하고 있는데 주일대사가 일본정부에 대해 적어도 북한이 남한정부를 인정한 위에 수교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문. 단장을 맡은 구창림 의원(민자)도 질의에 나서 「북·일 수교교섭에 대해 정부는 늘 한반도 평화와안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추상적인 기준만을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불분명하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 등을 거론하라」고 강력히 요구. 김태지 대사는 「북한이 쌀 배분결과를 일본측에 일부 설명한 것으로 보이나 아직 공식으로 통보받은 내용이 없다」고 밝히고 「남북한 쌀지원과 일본의 대북한 쌀지원은 성격이 달라 똑같이 비교할 수 없다」고 답변. 이날 감사는 그러나 의원들이 쌀지원,북·일 수교교섭과 관련된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사전준비 부족과 김대사가 질의의 초점에 적확하게 답하지 않는 등 질의응답이 지루하게 진행. ▷교육위◁ ○…경북대·부산대·영남대·전남대·전북대·창원대·충남대·충북대등 8개 국책공과대학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예산집행 과정에서의 유용 여부와 대학별 민간 투자액 확보 등 자립계획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김원웅 의원(민주)은 「국책대학이 예산을 유용하거나 남용했더라도 예산집행을 감독·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서 「교육부와 학계·지역인사로 구성된 「중간평가단」을 구성할 용의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협 의원(국민회의)은 「기업들의 대응투자를 전제로 선정된 국책공과대학임에도 기업들의 투자실적이 저조한 것은 대학들의 자립계획이나 실천의지가 부족한 것 때문이 아니내」고 따졌으며 구천서 의원(민자)은 「산업인력의 수요를 전공별로 감안해 학과별 정원을 배정할 계획은 없느냐」고 질의. ▷농림수산위◁ ○…농수산물 유통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불량 종구마늘 수입으로 인항 농민피해 등 무계획한 농산물 수입과 농안기금의 목적외 사용 등을 집중 추궁했다. 정태영 의원(자민련)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고추·마늘·땅콩·팥·녹두 등 5개 품목에 대한 수입물량 중량 요구에 앞장서 시장접근물량(CMA) 시행 첫해부터 최고 6배까지 늘려 수입하고 있다』면서 『유통공사가 농수산물수입공사냐』고 질타. 박경수 의원(민자)은 『유통공사가 중국산 불량 종구마늘을 수입해 농민들에게 공급하는 바람에 스폰지마늘 1만9천4백55t과 벌마늘 4천3백24t이 발생, 모두 3백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냈다.』고 주장. 김장곤 의원(국민회의)는 『지난 92년부터 94년까지 유통공사가 관리해온 농안기금 6백50억원이 노량진 수산시장과 해태산업·조선맥주·한국냉장 등에 전용됐다』고 공개하며 농안기금의 목적외 사용문제를 지적, 이어 한국냉장에 대한 감사에서는 축산물 수입 위주의 사업과 부실채권 증가 등 방만한 「주먹구구식」 경영이 도마위에 올랐다. 오장섭 의원(민자)은 『한냉의 부실채권 총액이 54억6천8백만원이고 이 가운데 회수가능한 액수는 15억6천4백만원으로 37.7%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정부투자회사가 자금운용을 부실하게 사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행위』라고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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