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한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지정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적자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입하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자산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763
  • 각계50인이 말하는 통일 해법­전망

    ◎평양정권 돌발 변수 대비하라/다각적 대화창구 구축 급선무/인적교류 활성화로 동질성 회복부터/「흡수」보다 협상통한 다단계 통합 추구/인권문제 지속적 거론 북한체제 변화 유도/빠르면 2010년께 「우리는 하나」 가능성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을해년이 지나가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병자년새해가 밝았다.이 아침 국토분단의 고통속에 보낸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보며 새로운 반세기를 향해 통일의 염원을 되새긴다.서울신문사는 새해 아침 각계인사 50명으로부터 통일문제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설문형식으로 이뤄진 이 조사의 문항은 다음과 같다.①한반도의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는지.②통일의 형태는 어떤 것이 될 것인지.③통일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④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시급히 착수해야 할 일은. ◇구종서(삼성경제연구소 상무·정치학박사)=①늦어도 2000∼2010년.②북한 자체붕괴후 한국이 흡수하는 독일식 통일이 될 것이다.③북한을 흡수한 뒤 신속한 재건과 남북 균형발전을 이룰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교류 확대,북한개방화가 불가피하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한다. ◇홍세표(한미은행장)=①10년안.②북한의 체제가 완전 붕괴되거나 또는 현저히 약화된 뒤 독일식 흡수통일.③북한체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통일에 대비한 각종 제도정비와 통일기금 조성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 정책당국자간은 물론 주민들의 사고방식의 차이 및 불신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적 또는 경협차원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수환(LG상사 사장)=①2000∼2010년쯤.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 주도하의 독일식 통일.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을 조성해야 한다.④남북 경제협력 확대 등을 통해 상호이익을 넓혀나가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윤명환(46·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광원)=①북한은 2005년 길어도 2010년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②악화되고 있는 북한 경제사정 때문으로 결국 독일식으로 흡수,통합될 것같다.③피폐해지고 있는 북한경제를 떠맡아야 하므로 경제성장과 국력배양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④민간 기업체나 문화단체들은 상호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도록노력한다. ◇정진관(39·인천시 시의원)=①2000년대나 가야.②경제력을 비롯,국력이 월등하게 앞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나 협상에 의해 평화통일 될 것으로 생각한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시켜야 한다.④남북간 경제협력 등을 확대해 신뢰 회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대주(전경련 전무)=①2010년.②북한이 붕괴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③남북한을 모두 먹여살리기에 충분할만큼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④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배옥(39·농어민 후계자 전북 완주군협의회장)=①2010년쯤.②독일식으로 우리가 북한을 흡수해 통일하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생각한다.③비뚤어진 이데올로기에 혼을 빼앗긴 북한 동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도록 민족 동질성을 회생시켜야 한다.④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권오진(54·경북 경산시의회 의원)=①2005년 이후.②북한 내부의 동요가 가속화되고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과 같은 흡수통일이다.③남북사회의 크게 다른 제도를 정비해 통일에 대비한다.④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박맹우(45·경남도 조직진단 담당관)=①북한체제가 금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②우리가 흡수,통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③통일과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연구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④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비해 국방력·경제력·정치력 등 총체적인 국력을 배양해야 한다. ◇최인훈(소설가·59)=①예측하기가 어렵다.②가급적 빨리,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기 바란다.③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정치적 부패의 척결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민주화다.④사회 민주화 부문에서 얼마나 뚜렷한 실질적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박완서(소설가·64)=①6·25체험 세대가 다 사라진 20년이나 30년후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②평화적 협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③북한경제의 재건을 도와 북한을 우리의 대등한 대화상대로 끌어올리자.④우리가 쌓아올린 부를 공정 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정책이 시급하다. ◇이만익(56·화가)=①지금으로부터 10여년 후.②무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며 상호 대화를 기초로 하되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할 것 같다.③남북한간에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무엇보다 정부당국간 대화채널의 유지가 중요하다. ◇조흥동(54·한국무용협회 이사장)=①4∼5년안.②북한이 붕괴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③민족간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④정부당국뿐 아니라 민간차원등 다각적인 교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윤형주(48·가수)=①차기대통령이 선출되고 2년쯤 지난 뒤에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②엄밀히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아니더라도 독자성을 가진 우리 형태의 통일이 될 수도 있다.③남북간의 언어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합동연구가 필요하다.④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기구가 설립되어야겠고 양쪽 주민의 의식을 계도해나가는 정부차원의 쌍방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박상희(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미주철강산업 대표이사)=①2000∼2010년쯤.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④남북경협 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이재기(공군준장)=①두 체제가 공존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통일은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고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하고 남북한간 상이한 각종 제도의 정비방안을 연구해야 한다.④남북경협확대,남북당국간 신뢰회복,각 분야의 인적교류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 ◇임영보(63·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 감독)=①북한이 자유와 개방으로 나선 뒤에도 상당기간이 흘러야 하므로 2010년 이후.②한국이 국력을 바탕으로 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③경제력뿐 아니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한다.④북한이 자포자기 하지 않도록 도우면서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허재(30·기아자동차 남자농구단 선수)=①2000년쯤에는 통일에 가까운 평화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완전한 통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②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③분단의 장기화에 따른 이질성 극복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④대화의 기회를 가능한한 넓혀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윤길중(38·동아증권탁구팀감독·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코치)=①2000∼2010년.②잦은 교류에 따라 북한이 자체 붕괴돼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의 형태를 띨 것이다.③통일기금 마련을 위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④종교·체육·이산가족등 활발한 민간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박철순(40·프로야구선수)=①2010년까지.②남북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이상적으로 보인다.③50년 이상 분단에 따른 국민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며 경제력 부흥이 뒤따라야한다.④남북당국 사이의 신뢰회복과 대화채널이 다양하게 열려야 한다. ◇김정태(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①2010년 이후에 가야.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의 주도로 독일식 통일이될 것이다.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 조성부터.④남북경협 확대가 시급하다. ◇김시준(43·어민후계자 제주도협의회장)=①당장 실현되기 어렵고 빨라야 홍콩이 중국에 흡수되는 97년 이후라야 가능할 것 같다.②남·북한 최고책임자간 협상이나 대화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될 것이다.③민족동질성 회복운동에 노력해야 한다.④이산가족 상호 방문이나 종교·학술분야,경제인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신정식(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①20 10년이후.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창식(29·신촌 그레이스백화점 기획실 주임)=①2010년 이후 ②경제력에서 앞선 남한이 주도하는 독일식의 흡수통일 ③독일이 「통일비용」으로 쩔쩔매고 있듯 우리도 장담할 수 없다.경제규모를 배가시켜야 한다 ④경제인의 교류부터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김철길(57·서대문구 연희동 실로암약국 주인)=①당장 통일은 어렵다고 본다 ②북한이 붕괴되면서 남한의 체제에 흡수통합될 것으로 본다 ③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안보교육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④남북한 당국간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대화의 채널을 우선 복구해야 한다. ◇강승수(28·서울마포경찰서 조사계장)=①북한의 체제변화에 따라 이번 세기안에 통일될 수도 있다 ②독일식 흡수통일도 좋지만 남북협상에 따른 평화통일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③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④북한주민들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남한 사회를 알려야 할 것이다. ◇권재철(34·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①금세기안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본다 ②협상에 의한 평화적 방식의 통일 ③거리감이 생긴 언어를 통일하는 방안도 생각할 때이다 ④경제인·종교인 등의 교류 뿐만 아니라 노동자단체의 상호교류 또한 하루빨리 성사돼야 한다. ◇이재성(25·서울대 계산통계학과 2년)=①2010년쯤 이뤄질 것으로 본다 ②남쪽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쪽의 계획경제가 혼합된 「시장개혁주의」형태가될 것이다 ③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선행돼야 하며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 ④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적 화해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송보경(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①통일은 교역이 활발해질 때 가능하리라고 본다 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바람직스럽다 ③우리 체제가 저쪽보다 인간적이라는 자긍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하는게 필요하다 ④통일 이후의 혼란에 대비,신문과 방송등 언론매체에서 신문보내기운동과 라디오보내기운동을 펼치는게 중요하다. ◇김은영(58·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①2000∼2010년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 ④남북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주인(전헌정회장)=①2000∼2010년쯤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하다 ③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된다 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계륜(국민회의 국회의원)=①북한내부의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통일은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②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민족통일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남북연합,연방제,완전통일등 3단계 방식이 바람직하다 ③남북간 상이한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④이산가족교류등 남북간 왕래가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최한수(건국대교수)=①2000∼2010년 쯤에는 남북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 ②북한붕괴뒤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다 ④남북 당국간 신뢰회복과 대화채널 복구가 중요하다. ◇김문섭(19·서울대 신문학과 1년)①2000∼2010년쯤이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 ②「연방제」형태가 될 것이며 흡수통일이 될 가능성은 없다 ③남북간 교류확대로 상호신뢰 회복을 한뒤 정부차원의 협상을 강화해야 한다 ④학술·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민간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박갑수(통일원 정보분석실 과장)=①주변국의 개입이 없다는 가정아래 빠르면 2000년대초,늦어도 2010년 안에 ②북한붕괴후 중국·일본의 방해가 없을때 독일식 흡수통일 ③북한주민을 먹여살릴 경제력과 외세의 개입을 막을 군사·외교력을 고루 갖춰야 ④남북간 대화채널을 복구한 뒤 신뢰회복을 위한 장치마련과 경제협력의 동시 추진. ◇이수택(외무부 특수정책과장)=①북한체제의 개방이나 변화에 따라 2000∼2010년쯤 가능 ②남북대화의 진전으로 평화통일도 가능하나 북한붕괴에 따른 독일식 통일에도 대비해야 함 ③자유민주주의체제가 세계사의 대세라는 관점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통일교육을 강화 ④남북경협 확대를 통해 상호이익과 신뢰를 축적. ◇김종호(신한국당 정책위의장)=①2000∼2010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 ④남북 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증진.법과 제도의 정비. ◇정상대(신한국당 조직국장)=①2010년 이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간 각종 채널을 통한 대화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확실한 힘의 우위 확보가 가장 필요 ④동독인권에 대한 서독의 지속적 관심이 동독변화를 자극했듯이 북한인권 문제를 꾸준히 거론, 국제적 압력 수단으로 활용. ◇김점선(37·주부·강서구 화곡1동)=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하는게 바람직하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④남북 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채널을 복구해야 한다. ◇신웅식(변호사)=①3년안에 통일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돼 7년안에 이루어질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면 한국은 좋든 싫든 통일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③평화적이고 안정된 통일을 원하면 북한을 개방화시키고 남북간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④경제협력과 다방면의 인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정치·군사·외교 문제에서는 일관되고 우월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장기욱(민주당 국회의원)=①오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남북대화에 의한 평화통일이 돼야 하며,될 것으로 믿는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간에 서로 다른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④우리가 먼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통일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게 될 것이다. ◇최상용(고려대교수)=①전적으로 북한의 체제유지능력에 달려있다.체제유지능력이 무너진다면 의외로 빨리 통일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②협상이나 전쟁에 의한 통일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국현실에 맞는 「변형된 독일형」의 가능성이 높다.③통일과정중 소요될 경제력의 확충.④「평화공존형 통일」의 전략을 세워 하나하나 가능한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철승(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자유민주총연맹 총재)=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②북한체제 붕괴로 인한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남북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통일기금 조성등의 사전준비를 해야한다.④이산가족 상봉등 인적교류의 확대와 남북당국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마련 및 대화채널 복구 등이다. ◇강홍빈(서울시정책기획관)=①2010년 이전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북한 사회가 붕괴된 뒤 한국 주도의 독일통일방식이 될 것이다.③통일 이후 주택·고용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이들에 대한 재교육기관 양성과 통일기금조성이 시급하다.④남북경협확대와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송월주(61·조계종총무원장)=①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것이 대업을 이루는 지혜라 여겨진다.②우리가 주도하는 흡수통일이 바람직하나 이번 세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③자유민주주의 체제속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신심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이해가 앞서는 정치회담보다 비정치적인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한성희(41·동대문시장 의류자재상인)=①마음먹고 순리를 따르면 금세기 안에 통일도 가능하다.②서로의 불신을 허물고 서로를 인정하여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이 바람직하다.③경제협력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도해야 한다.④독일의 예처럼 통일자금마련과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한경직(93·영락교회 목사)=①종교의 자유가 북녘땅에도 충만하게 될 때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것이다.이는 2010년이 지나야 가능하리라 본다.②꾸준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③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충분히 깨닫게 해야 한다.④분단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우선이다. ◇김상균(대법원 법원행정처 판사)=①북한이 교조주의적으로 굳어가고 있어 언제쯤 통일될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점진적인 방식이 바람직하다.③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거창한 것보다는 법조계 인사 교류와 같이 각 분야에서 서로를 알기 위한 「작은 걸음의 정책」을 펴야 한다. ◇김문하(중앙대 총장)=①2000년대를 향한 통일의 이정표는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길을 확보하는 데서 찾아야한다.②민족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평화적 통일이 되야 한다.③민족적 신뢰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한 사회개방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④진정한 의미의 평화통일은 민족의식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 주변4강의 남북한 정책/미·러 전문가의 교차 분석

    ◎「한반도 안정」전제로 상호견제·실익추구/미서 본「러」정책/존 스타인브루너 미 브루킹스연 외교정책 실장/핵연료처리·군축문제에 적극 개입/남북 긴장완화 따른 반대급부 기대 한국의 통일은 냉전종식이 불러올 필연적 사건으로서 강하게 기대되고 있다.그러나 이 통일이 성취될 방식에 대해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결코 괜한 걱정이 아니다.그 과정은 우아할 수도 있고 아주 난폭할 수도 있다.과연 어떤 모양새로 현실화되느냐 하는 두 한국정부에 의해 주로 결정되겠지만 주변 주요국의 행동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가질 시각과 취할 정책을 언급할 미국인은 당연히 이를 상당한 거리와 익숙치 않는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분명 이런 자세는 정통적인 설명을 위한 기본이라고 할 수 없으나 유익한 통찰을 예기치 않게 선사할 수도 있다.러시아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훑어보는 방식 대신 사태의 건설적 진전에 관심을 가진 사려깊은 러시아 관리의 속마음을 추론해보는 쪽으로 나가겠다. 예전의 단골손님 같은 국가인 북한의 운명에 관심이 아니 갈 수 없다.오랜 냉전기간의 교제에서 앙금이 쌓여 있긴 하지만 해묵은 책임감 같은 걸 느낀다.어쨌든 북한이 어떻게 되는가에 러시아는 연루되어 있다. 북한을 들여다볼수록 정치·경제적 입장이 아주 취약함을 재삼 인식하게 된다.고립,독재적 통제,고집스러운 자립주의의 긴 역사로 북한사회는 그들을 삼켜버릴 수도 있는 냉혹한 국제화에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다.옛 소련을 조각내버린 정보·생활태도·기술·경제관행의 거센 물결이 걷잡을 수 없는 영향력과 함께 북한에 침투할 것이다.지도층이 뜻한대서 이 물결이 막아지는 것은 아니다.그러한 시도는 오히려 내부붕괴를 재촉한다.또한 이 물결을 허용한다 할 때도 서툰 솜씨로 그랬다간 똑같은 결과를 자초한다. 군사적 상황은 이 정도로 시급하진 않으나 취약함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한반도의 외형적인 힘의 균형이 언급될 때 흔히 북한의 우세가 부연되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실제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대대적인 도발을 당하지 않는 한 한·미는 강제적 통일로 나갈 군사력사용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혹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엉킬 경우 대규모 군사행동이 그대로 현실화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본질적으로 약체인 몸을 지금까지 대외에 구사한 솜씨는 아주 인상적이다.그들은 영변에서 핵물질제조단지를 세워 세계의 핵확산통제에 심각한 위협을 준 뒤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지렛대로 활용했다.북·미기본합의는 피할 수 없는 통일과 국제적 투자의 과정에 미국이 중재역을 맡도록 하는 동기부여적 바탕을 제공한 측면에서 눈여겨봐야 한다.앞으로의 대략적 방향과 구체적 일정을 잡는 실질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며 새 지도층이 내부에서 인정받는 대안적 기초를 제공한다.새 지도층은 김일성과 같은 개인적 카리스마를 흉내낼 수 없는 대신 국제투자의 중개자로서 가난한 국민대중에게 물질적 혜택을 줄 수 있다.이같은 투자허용에 안보적 이유를 매단 만큼 국제투자가 필시 동반할 기존질서 파괴적 시장체제의 강도를 강제로 약하게 할 구실도 있다. 북한은 자신의 통일전략에 러시아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고 환영하지도 않을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는 앞으로 분명히 문제가 될 핵연료처리와 재래식 군사력규제 등 두 사항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나 북한에 새로 건설될 원자로에 사용될 핵연로는 국제사회가 직접 보유하도록 기본합의는 분명히 요청하고 있다.새 원자로는 기존 것만큼은 사용후연료에서 플루토륨을 추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상당량을 뽑아낼 수 있다.새 원자로를 건설한 장본인인 국제컨소시엄이 연료보유·통제를 직접관장하지 않는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일 터다.그런데 이같은 컨소시엄 직접관장은 원자로의 국제판매에 새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이란 원자로건에 즉시 적용된다. 한반도의 전반적 상황을 지배하는 논리는 기본합의정신을 확대,군사분계선상에 대치해 배치되어온 재래식군사력의 위험한 집중을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미국은 원자로거래의 필수적 보완으로 이를 주장할 것이며 북한도 이 점에 큰 이익이 걸려 있다.경제투자에 대한 시급성 때문에 북한은 지금 같은 군사투자를 지속할 수 없으며 투자해본댔자 대치군사력인 한·미연합군에 실제적 경쟁상대로 클 가능성도 희박하다.상호군축협상을 통해 두 한국은 상호안정적인 한반도전역 병력재배치를 꾀하면서 주변강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할 것이다.이같은 재조정이 완성되기 위해선 러시아의 관여가 요청된다. 한반도의 이 군축·재배치는 거시적으로 시베리아상황과 연결된다.러시아는 이 시베리아에 중국과 상호안정적이며 상호규제된 병력이 배치되길 원하고 있다.만약 한반도문제의 한 과정으로 이것이 실현된다면 국제안보가 보장되는 것이다. 결론으로 사려깊은 러시아 관리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한국통일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제기될 보다 넓은 국제현안에 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러」서본 미정책/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북한의 몰락보다 점진적 변화 유도/대북관계 급격한 개선 주변국 경계 전세계적인 냉전시절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일차원적이고 경직돼 있었다.북한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아니라 국제적으로 고립시켰고 군사·정치·경제적인 압력을 가능한 한 많이 가하려고 했다.미국은 북한이 남한을 무력침공하는 것을 포함해 어떤 도발도 할 수 있다고 상정했다.그리고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도발을 저지하려고 했다.주한미군은 북한의 그런 도발에 대한 강력한 억지수단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미국내에서는 북한정권의 종말을 가속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미국은 수십년간 자기의 외교정책에 눈엣가시로 여겨지던 김일성정권을 멸망시키고 싶었다.미행정부내에서는 김일성정권의 멸망시나리오를 작성해놓고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이들을 남한에 흡수통일시킬 수 있을까 하는 방안에 몰두했다. 이런 중에 핵문제가 전면에 부상했다.북한이 진정 핵무기개발을 원했을까.나는 아마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물론 북한은 핵무기개발에 나설 초기의도를 가졌고 그런 뜻을 외부세계에 내비췄다.하지만 그들은 대규모 핵무기개발에 착수할 돈·기술·전문가·실험장등 필요한 요건을 갖고 있지 못하다.그럼에도 미국이 핵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내 한반도의긴장을 냉전이후 최고로 고조시켰다. 왜 미국이 이같은 길을 택했을까.몇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첫째 미국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스탈린식 정권을 없앨 구실이 필요했다.마땅한 구실을 찾던 차에 핵문제가 제기되자 그걸 확대시킨 것이다.지난 1991년 걸프전 승리 뒤 미국은 자기의 힘으로 얼마나 손쉽게 적대적이고 위험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승리감에 도취됐다.그리고 새로운 희생물을 찾고 있었다. 냉전의 승리감에 도취된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은 더 새로운 승리를 갈구했다. 물론 이런 측면이 있다 해서 북한핵문제가 안고 있는 본래의 위험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시간이 지나면서 미국내 여론은 북한핵문제가 극동,나아가 미국의 안보에 위해가 된다는 점에 공감했다.북한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핵개발에 성공할 경우 핵개발의도를 가진 다른 여러 나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지적됐다.전세계적인 핵비확산체제는 붕괴되고 핵비확산체제의 연장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에 큰 파급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지적됐다.그러나 미국은 열띤 토론과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북한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신드롬에서 벗어났다.북한은 위협이 먹혀들지 않는 나라라는 점도 깨달았다.강경정책은 오히려 전세계 핵비확산체제를 위협하고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는 점을 미국은 깨달았다.아울러 북한정권의 성급한 붕괴는 한국에도 짐을 안겨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한국정부도 이 결론에 동의한다.통일독일이 명백한 전례다.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는 대신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하도록 유인책을 쓰기로 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에 빨리 진출해 그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선도역할을 하고 싶어한다.미국의 이런 계산은 북한이 옛 적대국과 관계개선을 원하는 징조가 포착되며 더 구체화됐다.클린턴행정부의 이같은 방향전환이 시작되자 미국내에서는 북한붐이 일어났다. 클린턴대통령은 새로운 대북한정책을 매우 유연하고도 의욕적으로 펴나갔다.북한의 핵개발의도를 저지키는 대신 미국은 김정일이 원하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다.안보공약·내정불간섭·외교관계수립·경제지원 등등.이번에는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경쟁에서 승자가 된 것이다.그러자 한국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한국은 미국의 자신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며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너무 열을 올린다고 생각했다.러시아 역시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신이 가졌던 영향력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다.중국도 북한에서 벌이는 미국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한국·러시아·중국이 가진 이러한 우려는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남북한을 포함,한반도주변 4대국의 이해와 우려는 모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증대시키는 데 그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미국과 북한의 관계증진은 한반도의 안정·평화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아울러 북한의 점진적 변화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따라서 한반도문제의 모든 당사국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펴고 있는 이 유연책을 환영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북 남한총선 전략적 이용 가능성/「평통」내년 북한정세 분석 요지

    ◎대서방 유화·대남 강경기조 지속할듯/내부결속 강화속 소규모 도발 소지도 헌법상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총장 박상범)가 내년도 북한정세 및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보고서를 내놓았다.민족통일연구원·세종연구소·농촌경제연구원·국방연구원·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등의 연구진을 동원해 집대성한 이 보고서는 새해 통일정세 전망과 대북정책 추진방향을 총체적으로 점검했다.보고서 요지를 간추린다. 북한지도부 변화나 민중봉기에 의한 폭발적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김정일이외의 대안부재 ▲폭력적 억압기구건재 ▲시민사회 미발달등으로 그 개연성은 높지 않다. 다만 북한경제사정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사상최악의 95년 수해라는 추가적 재앙으로 96년도 춘궁기 식량난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 대남전략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흡수통일에의 두려움과 체제유지를 위한 적대적 관계라는 기조를 지속할 것이다.단기적으로는 식량난,장기적으로는 경제회생을 위해 대남접근을 개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북한 식량난이 남한의 4월총선과 시기적으로 겹쳐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이 경우 95년의 쌀공급 논란이 더욱 증폭된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남북간 갈등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북한은 남한을 배제한 가운데 대미 평화협정을 체결키 위해 북·미간 상설안보협의체구성과 남북군사공동위 병행추진을 미국측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새해에도 북한의 「대서방 유화,대남 강경」이라는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북한은 경수로공급협정 타결의 여세를 몰아 북­미연락사무소 개설등을 성사시켜 대미 관계를 조기에 다듬고,이를 바탕으로 대일 수교교섭에 전력을 기울려 배상급등 자금유입에 정권의 승부를 걸 것으로 예견된다. 결론적으로 96년도 남북관계는 95년의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그 현실적 전개는 극적·동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수재로 악화된 식량사정으로 인한 북한의 절망적 도발 가능성은 부정할 수없으나 그 개연성은 높다고 평가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이 결정적 파멸을 각오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다만 대내적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대미전략적 공세로서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소규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 정책은 북한이 대남정책·전략에 있어서 긍정적·현실적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서두르지 말고 오히려 「선의의 무관심」자세를 견지해야 한다.쌀지원은 당국대 당국간 통로를 통해 문을 열되 협상과정은 적십자사 등 인도적 기구를 통해 진척돼야 한다.북한의 개혁·개방정책 진도에 따라 경협수준을 높여가되 경협을 위한 국내법 및 제도적 정비 등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북한은 대미·대일 관계 진전을 위한 분위기 조성,춘궁기의 어려움등에 따라 경제지원 획득을 목적으로 특사회담이나 적십자회담등 사안별 회담을 제의할 가능성도 있다.남북대화는 북한측 제안이 있을 경우 임하되 ▲상호주의 ▲당국회담 ▲한반도내회담개최 등의 원칙을 관철시켜야 한다.특히 남한의 총선을 염두에 둔 북한의 양보요구에 대해서는 불가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 북한관련 문서귀중…현대사 재조명붐(새로쓰는 한국현대사:50·끝)

    ◎미 문서보관서 자료엔 우리가 몰랐던 사실 많아/자료 지속적 발굴… 잘못된 역사기술 바로잡아야 □좌담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정박 김학준 단국대이사장·정박 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 서울신문이 광복 50주년을 맞아 올해 마련한 특집 연중 기획시리즈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연말로 마감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현대사를 당대사라는 이유로 흔히들 기억되는 역사로 착각해 왔습니다.그러나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국 등지에서 발굴한 새로운 자료들을 통해 복원해 본 한국 현대사는 결코 기억의 역사만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이 시리즈가 거둔 역사재정립 성과와 발굴자료의 사료적 가치를 평가하는 전문학자들의 정담을 주선했습니다.꼬박 한해에 걸쳐 시리즈가 나가는 동안 자료발굴에 협조한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 등 외국기관과 미공개 자료를 선뜻 내놓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올해는 해방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이에 맞춰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활발했습니다.한국 현대사 부문은 외국에서 쌓은 연구업적이 훨씬 많습니다.외국 학자들은 자료를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수준높은 연구를 이루었기 때문이죠.그래서 거꾸로 국내에서 그들의 연구성과를 들여다 공부하는 학문적 역조현상이 벌어졌습니다.그러나 올해는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국내에서 많았고 그 가운데서도 저는 서울신문의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가 특히 좋았습니다.이 시리즈는 내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새 자료를 많이 발굴하고 기사로 살려낸 점이 아주 돋보입니다. ▲김용호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지난 1년동안 매주 월요일에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기사를 볼 때마다 감회가 깊었습니다.시리즈를 통해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서보관소에서 새 자료를 발굴했고 자료가치에 대한 주의도 환기시켰어요.학문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웠습니다.이제 해방 전후에 활약한 인물들은 70세를 넘는 고령이 됐습니다.그들의 생생한 체험과 그들이 보관한 자료가 유실되기 전에 언론계와 학계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서울신문은 이런 점에서 아주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한국현대사는 격동기였고 굴곡이 심했기 때문에 신문사로서는 기획물을 내기가 주저됐을 겁니다.그런데도 1년에 걸쳐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증언을 채록해 이처럼 성공적인 연재를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현대사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제가 자료평가를 맡으면서 특별취재팀과 접촉이 잦아 알게 된 사실인데요.해방직후 미군이 인천항으로 입국할 때 환영나갔다 일본경찰에 피살된 권평근사건 관련자료,47년 트루만대통령특사로 웨드마이어중장이 내한했을 때의 포스터등 독자들이 제공한 자료가 적지 않았습니다. ▲김이사장=우리 모두 동의했듯이 이 시리즈는 참으로 시의적절했습니다.사실 이제까지 우리 언론계나 학계에서 한국현대사를 다룰 때 부분적인 병폐가 있었습니다.자료의 수집이나 검증을 게을리하고 풍설·가설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쉽게 해석한 점이 그것이죠.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자료를 철저히 발굴하고 실증적·학문적 검증을 거친 뒤에야 역사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그래서 저는「새로 쓰는 한국현대사」가 철저한 자료 발굴과 검증을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자 이제는 서울신문이 발굴한 주요 자료를 하나하나 평가해 볼까요. ○재미있는 일화도 확인 ▲김연구원=시리즈를 쭉 보면서 느낀 점은 역시 한미관계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겁니다.한미관계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정리해 볼만한 자료가 많았어요.현재 학계에 소개된 미국쪽 자료는 미군정기에 한정돼 있고 이후시기 것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대한민국 출범이후 자료들을 여럿 찾아냈습니다.예를 들면 1954년 작성된 미 국무성 자료 중에 「다스카보고서」는 학계의 통설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그동안 경제사학자들은 당시 한국정부가 환율 실세화를 반대했고,미국은 이를 촉구한 것으로만 알았지요.그러나 보고서에는 한미 양국이 실세화를 미리 합의한 바탕에서 그 조정폭을 놓고 논의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구체적인 자료인 회의록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김교수=50년대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을어떻게 봤는가 하는 구체적인 자료로서 조인트위카가 몇번 소개됐고,정책수립처의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50년대 한국정책 수립에 관계된 자료들을 살펴 볼 수 있었던 것도 성과였지요.또 CIC의 개인조사 기록철이나 CIA의 정보평가 보고서들을 통해서는 정계인사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전 당시 전쟁포로문제를 다룬 POW문서도 귀중한 것입니다. ▲김연구원=현대사 연구자들이 지금까지는 미 국립문서보관소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었는데 서울신문이 그 산하에 있는 대통령기념도서관 문서들도 자주 공개해 자료발굴 통로를 다양화한 점도 의미가 큽니다. ▲김이사장=아주 좋은 지적입니다.우리가 미국에서 자료를 발굴할 때 대부분 워싱턴에만 매달려 왔습니다.그러나 이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서울신문이 이번에 부분적으로 넓히긴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예컨대 해방에서 한국전 휴전에 이르는 시기가 바로 트루먼대통령 집권기 아닙니까.제가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있는 트루먼대통령기념관에 갔을 때 많은 것을 느꼈어요.미국학자들은 지금도 트루먼대통령 당시 문서를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 학자는 볼 수가 없습니다.이제는 미국 내에서 한국현대사와 관련된 기념관·연구소를 조사하는 범위도 확대해야 하겠고,러시아·중국쪽 문서 발굴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서울신문사에 건의할 게 있습니다.이러한 일을 일단 시작했으니까 그 폭을 더욱 넓히는 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드립니다. ○박헌영간첩사건 흥미 ▲김교수=북한 관련 자료들도 새롭고 귀중한 것이 많았다고 봅니다.예를 들면 북한의 토지개혁과 관련해 소련이 미리 각본을 짜놓고 진행함으로써 상당히 신속하게 이룰 수 있었다는 내용의 자료라던가,박헌영간첩사건과 관련한 이사민보고서,빨치산이 간행한 신문 「승리의 길」,남한출신 정치인들의 50년대 북한생활을 보여주는 일본 도쿄대 동양학연구소 책자 등등 다양합니다.이 자료들은 공산당 활동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것들입니다.저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의 북한자료 개발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연구원=무엇보다 독자와 학자들의 관심을 끈 부분이 북한관련 자료 발굴 소개였던 것 같습니다.방금 예를 든 것말고도 북한이 1947년 청진·나진·웅기 등 3개 항을 소련에 양도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 3종을 미국에서 발굴해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적이 있죠.이밖에 50년대 북한 권력의 부패상을 그들 스스로 보여준 「김열 출당조치」자료와 1955년 노동당중앙위 결정서도 상당히 흥미있는 것입니다.북한관련 자료는 한국전 때 미군이 평양에서 압수한 이른바 「노획문서」가 그동안 주종을 이루어 왔습니다.그런데 서울신문의 북한 현대사 자료 공개는 「노획문서」라는 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됐습니다.다시 말해 북한자료를 넓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도 큰 기여였습니다. ▲김이사장=지금까지는 시리즈가 거둔 성과를 주로 얘기했는데 물론 아쉬운 점도 있고 서울신문에 바라는 것도 있을 겁니다.저로서는 서울신문이 앞으로 이 작업을 계속해 주기를 원합니다.단발성으로 끝내지 말고 제목 그대로 한국현대사를 새로 쓴다는 뜻에서 이 작업을 이어나가 달라는 말입니다.그리고 새 연재를 시작할 때는 신문사하고 학계가 기획에서 부터 발굴조사,자료해석에 이르기까지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그래야 자료발굴도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고 해석도 학문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그리고 이번 연재물을 꼭 책으로 내서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관심많은 국민이 두루 읽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하겠습니다. ▲김교수=저도 제안이 있습니다.이번에 제3공화국 탄생까지만 다룬 게 아쉽습니다.적절한 시기에 제3공화국 이후도 계속 연재해 주길 바랍니다.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한 것은 큰 성과지만 전문가 의견을 좀더 체계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리고 새 자료를 다른 자료와도 비교하는 작업도 필요하고요. ○객관적 역사접근 중요 ▲김연구원=우리가 민족통일을 생각할 때 민족 동질성 회복을 생각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르는 전제가 역사경험에 대해서 함께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지금까지는 한국 현대사라고 했을때 대한민국사를 중심으로 이해해 왔지만 통일의또 한편인 북한 현대사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들의 일차자료를 발굴해 민족이 동질적인 역사이해를 갖게 해나가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김이사장=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현대사를 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요.한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이해당사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자기 입장에 불리한 기사가 나가면 항의나 불만토로,심지어는 음해가 뒤따릅니다.따라서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료의 수집·해석·기술에 이르기까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편견에 사로잡혀서도,고의를 갖고 접근해서도 안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합니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거둔 성과를 다시 한번 치하하면서 앞으로 더 좋은 연재물을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 미 북한 식량난 왜 부풀리나/일촉즉발의 폭동위기등 과장첩보 흘려

    ◎대선 앞둔 클린턴정부 외교치적 겨냥한듯 북한의 식량난을 둘러싸고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남북관계의 한쪽 당사자인 우리측이 신중한 관망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측이 오히려 그 심각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제 북한주민이 과연 굶주리므로 죽어가고 있을까.또 이 순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에 나서야 하는 가등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사실 미국측은 북한이 식량난으로 붕괴가 임박했다는 첩보를 흘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이를 테면 최근 워싱턴발 외신은 식량배급이 끊김으로써 북한이 일촉즉발의 주민폭동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보도가 『상당히 과장됐다』(송영대 통일원차관)는 입장이다.한마디로 외부로부터 식량지원이 없으면 내년 3월쯤 수십만명이 아사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일부 외신,특히 미국언론의 보도는 북한 식량난을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긴 하나 당장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북한이 세계식량기구(FAO)가 권장하는 2개월 비축분보다 많은 6개월 분량의 전쟁비축미를 전혀 풀지 않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북한의 「구걸외교」도 재고량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수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언론에 북한 식량난이 실상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리 정부내에서 상당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말하자면 우리측이 대북 지원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압력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행정부가 북한핵문제 해결등 한반도 안정을 가장 큰 외교 치적으로 내세우리라는 점을 감안한 분석이다.때문에 내년 1·4분기에는 우리측으로선 곤혹스런 상황전개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남한으로부터 식량을 얻어내기 위한 북한의 의도적 긴장조성과 연락사무소 개설등 미·북 관계개선 코스를 가기 위한 미국측의 분위기 조성 움직임이 맞물릴 공산이 큰 탓이다.
  • 북,우성호 선원 세뇌… 선전에 이용/납치·송환과정서 드러난 속셈

    ◎우리 정부 배제… 유엔사에 일방 통보/「판문점 송환」 정전체제 무력화 겨냥 「86우성호」의 선원과 유해가 7개월만에 돌아왔다는 흥분이 점차 가라앉으면서,정부내에서는 우성호의 납치와 송환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측의 저의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이 커져가고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이 순진한 우리 선원들을 잡아가 북한내부와 남한,국제사회에 대한 선전의 도구로 철저하게 이용했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판단이다.때문에 선원들의 송환이 대북 쌀지원 대화의 속개로 연결되기는 힘들다는 시각이다. 우선 북한은 김부곤 선장 등 생존선원 5명을 억류하는 동안 북한의 방송에 출연시켜,김영삼 대통령과 남한의 체제를 비판하도록 강요했다.방송내용을 입수한 우리측 기관이 놀랄 정도로 억류선원들의 대남 비판은 격렬했다. 어느 나라나 선원들의 생활은 대체로 어렵고 힘든 것이 실정이다.따라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을 수 있다.북은 이러한 점을 이용,이들을 북한주민용 선전도구로 사용한 것이다.특히 『남측이 사과만하면 당신들을 돌려보내려 했는데 남측이 이를 거부,당신들을 버렸다』고 이간질하는 교묘한 심리전을 펴기도 했다. 북한은 또 선원들이 언젠가는 남한으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한듯 하다.그 때를 대비해 선원들에게 북한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융숭한 대접을 한 것으로 보인다.북한측은 이들을 처음 3개월동안 억류했던 남포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했고 또한 평양과 원산·묘향산등 「대외 선전용 장소」를 보여주기도 했다.귀환당시 선원들은 북한의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히 귀한 옷인 양복차림에 점퍼와 여행가방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26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한 직후 북한쪽을 향해 『남포만세,평양만세』등을 외치며 두팔을 치켜올려 보는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7개월여에 걸친 협박과 회유,그리고 처절한 세뇌의 강도를 그대로 나타내주는 장면이었다. 송환과정에서도 북한은 일방적인 선전술을 이용했다.지난 22일 별안간 방송을 통해 송환사실을 일방적으로 알렸다.판문점에 상주하는 우리측 연락관에게는 송환절차와 월경루트를 알리지 않았다.유엔사 정전위측에 월경루트만을 일방통보했을 뿐이다.북한이 판문점 송환을 선택한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선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또 북에서 남으로 판문점을 일방통행하는 것을 관례화함으로써 정전체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그러한 암시의 배후에는 미국과의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그들의 상투적인 주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한줌의 북한흙/반영환 논설고문(외언내언)

    고향을 떠난 사람에게 한 줌의 고향땅 흙은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고향의 풀 나무,바람과 햇볕,그리고 이웃들의 푸근한 얘기들을 담고 있다.고향이 가지 못할 곳이라면 그 흙이 전하는 정한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조국을 떠난 사람에게는 고국의 흙이 그대로 고국의 상징이 된다.외국에서 오래 살던 사람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는다.고향에 묻힌다는 건 곧 어머니의 품에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흙의 상징성은 본향이다.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 않았는가.「풍기는 흙 냄새에 귀 기울이면/뉘우침의 눈물에서 꽃이 피누나/마지막 돌아갈 이 한줌 흙을/스며서 흐르는 산골 물소리」(조지훈의 「흙을 만지며」).1930년대 식민지 조선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광수의 소설 「흙」은 살여울이라는 농촌을 지켜나가는 한 젊은이의 삶을 담고 있다.이 소설은 학생들의 농촌운동의 교본이 된다. 북한땅의 흙 3백여t이 배에 실려 처음으로 수입된다.9개도 2백여 지역에서 채취된 북한 흙은 이북5도민회를 통해 실향민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한다.신청자는 이미 6천여명.고향의 흙냄새를 맡아 보려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실향의 설움을 살다 돌아간 부모님 묘소에 바치겠다는 것.이 통한의 아픔을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들 외에 누가 짐작인들 할수 있겠는가.고향의 흙을 움켜쥐고 망향에 눈물지을 실향민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북녘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3일의 약속」만으로 월남한 1세대들은 이제 고령이 되었다.생전의 귀향에 조바심하는 그들에게 북한은 내왕은 고사하고 편지왕래마저 굳게 거부하고 있다.실향민들에게 한 줌의 고향흙은 고향의 부활이며 실체이다. 연전에 대전 엑스포때 백두산 천지물을 길어다 천지 모형에 채우고 한라산 백록담 물도 부어 합수시킨 일이 있다.통일을 고대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의식이었다.북에서 온 한봉지의 흙이 실향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달래주었으면.
  • 우성호 선원/“북서 남한비난 회견 강요”/5명 어제 귀환

    ◎2명 총격사망… 1명은 병사/20년만에 처음 판문점 송환 【판문점=구본영 기자】 지난 5월 30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나포당한 뒤 7개월간 억류됐던 우성호 선장 김부곤씨(34·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1048)를 비롯한 선원 5명과 사망선원 3명의 유해가 26일 하오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선원들은 이날 하오 4시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군사정전위 회의실과 유엔군측 일직 장교회의 사무실 사이 통로를 이용,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했다. 선원들은 군사분계선 전방 2∼3m 앞까지 북한군의 인도를 받았고 군사분계선상에서 우리측에 인계됐다. 우리측에서는 군정위 소속 베이커 중령과 유엔사 경비대대 소속 최병혁 소령,이준구 남북회담사무국 연락부장 및 연락관 2명이 선원들을 인수했다. 사망한 선원 3명의 유골은 북한적십자사 요원으로 보이는 3명의 남자로부터 군사분계선상에서 대한적십자사 요원 3명에게 넘겨졌다. 지난 75년 이후 북한에 나포당한 17척의 선박에 승선했던 선원 1백50명 가운데 판문점을 통해 선원들이 송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사측과 북한군측은 이날 상오 10시 군사정전위 소장급 회의에서 유엔사측 옴스 대령과 조선인민군대표부 박임수대좌가 참석한 가운데 선원송환절차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송환에서 북한측은 선박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선장 김씨(34)는 송환직후 판문점 남북회담사무국 전방연락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5월30일 항해미숙으로 북한 영해를 침범해 도주중 북한경비정의 총격을 받아 선원 2명이 사망하고 1명은 북한 억류중 병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9월25일 평양에서 납치된 우성호 선원들이 우리측 당국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것과 관련,『북한측에서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귀환자 명단 ▲생존자=김부곤(선장·34·인천) 이병소(기관장·38·〃)박재렬(선원·44·〃) 윤경순(선원·35·여수) 김우석(선원·36·하동) ▲사망자=심재경(선원·35·여수) 신흥광(선원·37·인천) 이일용(선원·59·마산)
  • 긴장속 분계선서 북 보도진에 포즈/우성호 선원 귀환 이모저모

    ◎“이 은혜 잊지 않겠다” 북측에 작별인사/“살이서 떤난 사람이” 유골 붙잡고 오열 ○…북한측은 우성호 선원들을 송환하기 직전인 26일 하오 3시56분 신흥광씨(37)등 사망한 선원 3명의 유골을 든 인도관계자들을 먼저 판문점 군사정전위 본회의실 근처로 내보내 송환에 대비. 이어 하오 3시58분 박재열씨(44)등 생존선원 5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판문점 북측지역인 판문각계단을 걸어내려오기 시작.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넘기전 북측관계자들로부터 무언가 귀띔을 받은뒤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일제히 북측을 향해 돌아서 북측 보도진과 배웅나온 관계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기도. 이어 북측을 향해 『남포엄마만세!』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 일부선원은 『저희를 아는 모든 분들 안녕히 계십시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남북회담사무국 전방사무소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 대기중이던 유족들은 하오 4시20분쯤 유골이 도착하지 일제히 오열. 유족들은 흰보자기에 싸인 유골들을 보자 제대로분향도 못한채 유골을 부둥켜안고 이름을 외치기도. 우성호 피격 당시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심재경씨의 누나 영희씨는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렇게 죽어서 돌아왔느냐』며 말을 잇지못했다. 북한에서 조사를 받다 병사한 것으로 보도된 선원 이길룡씨 유족들은 『평소 그렇게 건강했는데 병사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망연자실한 표정. 선원 박재열씨는 가족들에게 『다시 고향에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도 『(북측이) 고향에서 설이라도 지낼 수 있도록 하기위해 돌려 보내준 것 같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 선원들은 『처음엔 남포의 어느 여관에선가 3개월동안 조사를 받았으며 이후 원산 송도원 휴양소로 옮겨 줄곧 지내다 마지막 일주일은 평양에서 지냈다』며 『가혹행위등 고생은 없었으며 식사나 잠자리도 괜찮았다』고 설명. ○…이날 판문점을 거쳐 송환된 우성호 선원 5명과 유해 3구는 하오 5시45분쯤 경찰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서울 종로구 평동 서울적십자병원에 도착. 선장 김부곤씨(34) 등 생환자 5명은 상기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린뒤 병원로비에서 기다리던 가족들과 약 1분간의 포옹으로 상봉의 기쁨을 대신하고 입원실로 직행. 이들은 『살아 돌아와 기쁘다』면서 『지난 22일 고향으로 가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정말 고향땅을 밟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기쁨을 표시. ○…심재경(35),신흥광(37),이일용씨(59)의 유해가 안치된 영안실에는 유가족 20여명의 통곡소리만이 흘러나올 뿐 생환자들이 도착한 로비의 들뜬 분위기와 극명한 대조.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심씨의 형 태욱씨(39)는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자신을 위해 결혼도 안한 채 외항선을 타며 가족을 이끈 동생의 죽음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하기도. ◎선장 김부곤씨 회견/북여관서 조사받아… 가혹행위 없었다 북한에 억류된지 7개월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한 우성호 선장 김부곤씨(34)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밖 남쪽에 위치한 남북대화사무국 전방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랍경위와 북한에서의 생활 등에 관해 설명했다. ­나포경위는. ▲항해미숙으로 북한영해를 침범했다. ­도주했나. ▲항해중 앞을 분간하지 못했다.북한경비정이 갑자기 나타났다.그래서 도주하기 시작했다.경비정이 총을 쏘며 정지명령을 내렸으나 계속 도주하다 잡혔다. ­억류기간중 대우는.가혹행위는 없었나. ▲구타등 가혹행위는 없었다.식사도 괜찮았고 여관에 죽 머물러 있었다.처음 한달간은 선원들이 분리되어 조사받았다.조사기관이나 조사원들 이름은 모르겠다.한달이 지난뒤 두명이 같이 있게 해주었다. ­지난 9월25일 북한방송에 출연한 것은 강압에 의한 것인가. ▲북한당국이 (남한이)우리를 헐뜯는다고 해서 시킨대로 한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을때 「감사합니다」라고 한 것은 시켜서 한 일인가. ▲아니다.북측이 대우를 잘해 주어서 스스로 한 것이다. ­북한체류중 방문한 곳은. ▲남포·평양·원산·묘향산에 갔었다. ▷86우성호피랍 일지◁ △5·27 16:00=제85·86 우성호 산동반도앞 해상에서 중국어업지도선에 피랍 △5·29 15:00=제86우성호 벌금고지서 갖고 인천을 향해 출발 △5·30 12:40=서해 북방한계선 북방해상서 총격 납치됨 △5·30 17:10=북한 「중앙방송」,정체불명 선박 나포 발표 △6·13=대한적십자사 송환 위한 판문점 접촉 제의 △6·15=북,판문점 접촉 거부 △6·19=베이징 1차쌀회담 송환 요청,북한 「당국 조사뒤 가능」언급 △9·20=북한 「중앙통신」송환시사.사상자 발생 시인 △9·27=베이징 3차쌀회담 송환합의 못봐 △12·22=「중앙통신」,26일 판문점 통한 송환 발표 △12·26=송환
  • 파리 7대학 한국학 과장 최승언 교수(세계속의 한국인:5)

    ◎「한국학 불모지」서 한국어 심기 15년/69년 석사취득후 도불… 학부부터 다시 공부/정식교수론 단 한명… 불 교육계에서도 인정/부친은 문학평론가 최재서씨… 누님도 미서 한국학 가르쳐 서울과 파리의 거리는 1만4천여㎞(8천7백12마일).비행기를 타고도 14시간을 쉬지않고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머나먼 거리다. 그런 파리에서 두나라 사이를 가깝게 하는 가교역할을 하면서 프랑스와 세계에 한국을 심는 사람이 있다.파리7대학의 한국학과 최승언(50)학과장.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파리시내를 수놓은 지난 19일 파리동쪽에 위치한 파리7대학의 강의실.12명의 프랑스 학생의 파란눈은 최교수의 한국어강좌에 집중됐다. 최교수가 「너」와 「당신」의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자 「합니다」와 「하십니다」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날카로운 학생들의 질문도 이어졌다.파비앙 뷔트군(20)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를 『희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뷔트군의 말처럼 한국은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에서 희귀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직은 먼나라다.88서울올림픽과경제성장으로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지리적 괴리만큼 아직도 여전히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심지어 3개월이상 머물려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체류증에 국적을 「북한」으로 기재해 발급해주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수업태도 진지 이런 한국의 불모지 프랑스에서 최교수는 외롭게 한국과 한국어를 심어 나가고 있다.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몇군데가 있지만 모두 더부살이를 하는 상태다.동양학연구소(INALCO)에서는 일본·한국학과이고 리옹대학과 보르도대학에는 한국어 강좌만 개설돼 있을 뿐이다. 파리7대학 한국학과는 독립된 과로서는 유일한 교육기관이고 현재 한국인 정식교수는 최교수 혼자다.그의 실력은 한국인 사회만이 아니라 프랑스 교육계에서도 그대로 인정받고 있다. 파리4대학의 로제총장이 아는 한국인 교수의 이름은 최교수밖에 없고 파리7대학의 드동데 문과대학장은 『최교수의 실력은 탁월하다』고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그의이런 실력은 남들과는 전혀 다른 학문적 역정에서 비롯된다.최교수는 박사논문을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대학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서울대불문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받고 69년 프랑스에 도착해 툴루즈대학에서 3년동안 박사과정을 밟다가 다시 대학교 학생생활로 불어를 처음부터 공부했다.학위만 받으면 열리는 순탄한 대학교수의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바닥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서울대 교수직 사양 『박사과정에 있으면서도 교수의 강의를 듣고 노트 필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논문을 쓰고 불문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프랑스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괴심 때문에 대학교 학부생활을 다시 하게 됐다』고 최교수는 설명한다.요즘도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박사논문을 써내 당당히 대학교수가 되는 적지않은 유학생들에게도 그의 이런 「용기있는」 행동은 귀감이 될 것 같다. 예비교수에서 대학생이 된 그는 프랑스학생들과 함께 밤새워 공부하고 치고박고 싸우기도 하면서 학사와 석사·박사학위를 받아냈다.지난 79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파리에 도착한지 꼭 10년.그만큼 그의 학위는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문학적인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를 완벽히 이해하는 몇 안되는 불문학자 가운데 한사람이다.또 이런 실력이 프랑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동료 프랑스인 교수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이다. 최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뒤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로 초빙됐으나 개인적인 이유등으로 서울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지난 82년부터 이국땅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이런 보기드문 경력등으로 파리교민사회에서 그는 「기인」으로 꼽힌다.교수로서의 권위보다는 학자로서의 「최교수」일 뿐이다.번드르한 각종행사에 초대받아도 가지 않고 교수로서의 직업에만 충실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런 행동에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부친 최재서(1908∼1964)씨의 영향이 많았던 듯하다.최교수는 주지주의적 비평을 시도,한국문학사에 과학적 비평방법을제시한 최재서씨의 4남2녀중 막내이다.바로 위 누님 양희씨(62)도 미국 캔버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어학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학생유치 적극 활동 그의 수업법은 독특하다.언어학이나 문학을 가르치기 보다는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예를들어 『설렁탕 한그릇 주세요』라는 표현이 학생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한다.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입에서는 한국어가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 최교수는 학생들의 문학이나 언어학적 소질이 자신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학생들에게 한국과 한국어 이해능력을 심어주는 데 중점을 둔다.이를 테면 학생들의 소질에 날개를 달아주는 보조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의 숫자가 88서울올림픽이후 한때 30여명까지 올라가 한국학 붐이 잠깐 일어났었으나 오래지않아 시들어버렸던 일도 있었다.그래서 단 2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바로 옆의 중국학과나 일본학과 학생의 숫자가 1백명정도씩으로 북적대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장서 2만3천권 소유 그래서 최교수는 적극적인 학생유치에 나서 동양학부 학생들에게 2개 언어를 배우도록 했다.상대적으로 학위받는 데 많은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배려도 하는 등 학생들이 한국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런 노력탓에 이제는 한국학을 배우는 학생은 1학년에 30여명을 비롯해 모두 60여명.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한국학을 부수적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적지 않아 최교수는 안타까워한다. 동양학을 배우는 학생들의 최대관심은 동양문명의 발상지인 중국에 있고 그다음이 경제대국인 일본이다.최교수는 『경제력이 학생들마저 불러모으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학의 전파는 국력과 직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최교수가 중국학과나 일본학과에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점이 있다.한국학과는 유일하게 자체 도서관을 갖고 있고 소장 장서만도 2만3천권에 이른다.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올해부터는 한국국제교류재단측이 한해에 5만달러씩(약 4천만원)지원,큰 도움을 주고 있다.5명의 학생들에게 1인당 5천달러씩의 장학금도 줄 수 있는 부유한 학과가 됐다.국립인 프랑스 대학에서 장학금은 거의 생각할 수 없어 한국학과의 장학금은 앞으로 한국학 희망자들을 더욱 늘어나게 할 것으로 최교수는 기대한다. 최교수가 파리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안타깝게 여기는 일이 있다면 한국인 입양아 문제다.한국인 입양아는 프랑스에만 모두 1만명 가까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한국인 입양아들이 한국학을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게 있어왔지만 3년전부터 부쩍 늘었다. 이제는 프랑스인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한국인의 모습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학년에 3∼4명씩 된다.프랑스인 부모들이 『너의 모국은 한국이니 한국을 알아야 한다』며 한국학을 공부하도록 권유한다는 것이다.모국찾아주기의 배려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한국어를 배우는 일이 모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영어를 배울 때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특히 어려서 입양된 학생들의 경우 이런현상은 심할 수 밖에 없다. ○“한국전문가 양성” 자부 최교수는 이들에게 경제학이나 지리학등을 복수전공으로 택하도록 권유한다.한국학과 경제학을 함께 공부하면 프랑스에서는 한국경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3백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득실대는 프랑스에서 한국을 공부하면서 취업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은 한국전문가가 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한 프랑스인 한국전문가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면 한국과 유럽의 거리는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다. ▷최승언 교수 신상메모◁ ▲45년 서울출생 ▲63년 경기고등학교 졸 ▲67년 서울대 불문학과 졸 ▲69년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69년 프랑스 툴루즈대학 박사과정 ▲73년 툴루즈대학 언어학 학사 ▲75년 툴루즈대학 언어학 석사 ▲79년 툴루즈대학 문학박사 ▲80∼81년 서울대 조교수 ▲82∼88년 파리7대학전임강사 ▲88년∼현재 파리7대학 한국학과장 ▲역서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강좌」
  • 서울신문 선정 1995년 10대뉴스/국내

    ▷노·전 전대통령 구속◁ 노태우 전대통령이 11월16일 대통령재직 중 기업인들로부터 거액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착복한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12월4일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12·12사건 관련,군사반란죄로 전격 구속됐다.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 2명이 구속기소되면서 정경유착 등 고질적인 비리를 척결하고 12·12에서 5·18에 이르는 정권찬탈의 역사를 단죄하는 계기가 됐다. ▷대구지하철공사장 폭발◁ 4월28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해 등교길의 학생과 출근길의 시민 등 무려 1백1명이 숨졌다. 인근 백화점 공사장에서 가스관에 구멍을 뚫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구멍으로 새어나온 가스가하수관을 타고 지하철 공사장으로 흘러들어가 폭발이 일어났다. 우리사회에 만연한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를 보여준대표적인 사고였다.▷북에 쌀 15민t 무상제공◁ 정부는 6월17일부터 나흘동안 북경에서 북한과 차관급 쌀회담을 열고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정을 돕기 위해 북한측에 쌀 15만t을 전량 무상제공키로 합의했다.그러나 첫 선적분을 싣고 청진항에 들어간 씨아펙스호에 북측이 인공기를 강제로 게양한 데다 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 등으로 남북간 대화가 중단됐다.북한은 올 7,8월 계속된 홍수로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 전세계에 구호를 요청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서울의 대표적인 삼풍백화점이 영업중 붕괴한 사고는 우리 건설문화의 총제적 비리와 부실공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적인 인재(인재)였다.이 사고로 사망 4백58명,부상 9백33명,실종 1백4명 등 1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냈다.1백여명은 시신도 찾지 못했으며 그나마 생존자들도 그때의 악몽에 시달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등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김대중씨 정계 복귀◁ 지난 7월18일 김대중씨가 정계복귀를 공식선언하며 정치권에 재진입했다.92년12월 14대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한 뒤 2년7개월만에 복귀한 그는 곧바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치권을 민자당(현 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의 4당체제로 만들고 3김시대를 재현했다.이에 앞서 2월9일에는 김종필전민자당대표가 탈당을 선언한 뒤 3월30일 자민련을 창당했다. ▷대입·교육제도 대폭 개편◁ 「5·31 교육개혁조치」로 불리는 교육개혁위원회의 「신교육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은 열린 교육사회와 평생학습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국공립대의 본고사 폐지 및 97학년도부터 종합생활기록부 도입 등을 통한 입시제도 개선과,초·중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설치,중·고교 96학년 학군내 복수지원을 비롯한 학습자의 교육선택권 확대 등을 통해 종래의 교육틀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선단체장 34년만에 부활◁ 시장·도지사를 주민 손으로 뽑는 지방자치선거가 34년만에 부활됐다.민선단체장선거는 지난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으나 지난해 「6·27」지방선거에서 되살아났다.선거결과 15개 시·도지사중 민자(현신국) 5,민주(현국민회의 포함) 4,자민련 4,무소속 2명이 당선됐고 기초단체장도 민자 71,민주 84,자민련 23,무소속 52명이 당선돼 여당이 참패했다. ▷강택민 중국가주석 내한◁ 올해 우리 외교분야의 가장 큰 성과라면 강택민중국주석의 방한을 꼽을 수 있다.중국은 북한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그동안 중국은 「정치 북한,경제 남한」이라는 이중적인 대한반도 정책을 추진해왔다.그러나 중국은 지난 11월13∼17일 강주석 방한을 통해 이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고 할 수 있다. ▷“반란 응징” 5·18특별법 제정◁ 지난 11월24일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지시에 따라 「역사바로잡기」가 시작됐다.신한국당(옛 민자당)은 내란·반란죄등을 저지르고 집권한 전두환·노태우씨등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음을 명확히 하는 특별법안 제정에 착수했다.이 법안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19일 신한국당·국민회의·민주당 합의로 통과돼 내란과 군사반란에 대한 사법적 단죄의 근거를 마련했다. ▷구 조선총독부 중앙돔 첨탑 철거◁ 지난 8월 15일 광복절 50주년 경축 기념식 행사의 하나로,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옛 조선총독부건물의 중앙돔 첨탑이 세동강이 난채대형 크레인에 의해 제거됐다.일제 통치 36년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해체는 조선조 정궁인 경복궁 복원계획에 따라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이루어진것.우선 건물의 상투격인 중앙돔이 철거되고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들어가 1년간에 걸쳐 모두 헐리게 된다.
  • 95 북한 10대 뉴스/내외통신 선정

    올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북한 뉴스로는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발생시키며 북한 전역을 초토화시켰던 수해사태가 꼽혔다.내외통신이 연말을 기해 선정한 「95 북한 10대 뉴스」에는 분단 반세기만에 최초로 남한 쌀 15만t의 대북 지원에 합의한 「남북한 쌀회담」,「북­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경수로협상 타결」등이 상위 순위에 올랐다.북한 관련 10대 뉴스와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최악의 수해◁ 지난 7월말부터 8월 중순에 걸쳐 신의주 등 서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피해 등 북한사상 최대의 수재로 기록됐다.유엔인도국 조사단이 북한 전국토의 75%가량이 수해를 입었다고 유엔본부 외교단에 보고한 이번 수해로 북한은 전세계를 상대로 긴급 구호요청에 나서야 했다. ▷남북 쌀회담◁ 남북한은 6월17일부터 4일동안 북경서 차관급 쌀 회담을 열고 북한측에 쌀 15만t을 전량 무상제공키로 합의했다.남한 쌀 2천t을 실은 씨 아펙스호가 6월25일 청진항에 첫 입항,남북화해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그러나 뒤이어 터진 씨 아펙스호 인공기 강제게양 및 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등으로 남북관계의 새 앙금만 남겼다. ▷경수로협상 타결◁ 지난해 10월 채택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협상을 진행해오던 양측은 12월15일 협정문에 서명했다.그동안 큰 입장차이를 보이던 경수로 건설공사내용중 ▲송배전 시설과 핵연료 가동공장 건설비용은 북한이 부담하고 ▲경수로 발전소 부지내 도로 건설과 모의안전시험대 등은 KEDO가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86우성호 억류◁ 5월30일 북방한계선 북방 16마일 해상에서 항로를 벗어난 한국선박 86 우성호가 북한경비정에 피랍됐다.북한은 남북 북경쌀회담서 우성호의 인도적 송환에 응할 뜻을 비췄다.그러다가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듯 9월20일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화국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는등 우여곡절 끝에 12월22일 대남방송을 통해 12월26일 생존자 5명과 사망자 3명의 시신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무장간첩 남파◁ 9월 남파간첩 대동 월북과 운동권 포섭 등 지하당 구축임무를 부여해 김동식(33·본명 이승철)과 박광남(가명·31) 등 2명의 무장간첩을 제주도를 통해 침투시켰으며 이들은 10월24일 중부 내륙지대인 부여에서 1명은 사살되고 다른 1명은 생포됐다.북한은 지난 10월17일에도 임진강에 인민무력부 소속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려다 1명이 사살되는등 대남 적화적략을 포기치 않았다. ▷노동당 창당 50돌◁ 지난 45주 당창건 행사에서 외국대표단을 대거 초청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내 행사에만 치중,당연히 예상됐던 중앙보고대회를 생략한 채 이례적으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와 백만군중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진우 사망◁ 혁명 1세대 간판이자 군부의 대부이며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 2인자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2월 폐암으로 사망함으로써 북한권력층의 변화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김일성 시신 영구보존◁ 지난 6월 당중앙위·당중앙군사위·국방위 중앙인민위 공동명의의 결정서를 통해 김일성이 집무실로 써오던 금수산의사당을 새롭게 단장,「금수산기념궁전」으로 성역화하고 이곳에 그의 시신을 안치해 영구보존한다고 발표했다. ▷신년사 공동사설로 대체◁ 김일성이 새해 첫날 발표해오던 신년사를 올해는 김정일이 이어받지 않은 채 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이란 새로운 형식으로 대신함으로써 김일성의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평양 체육­문화축전◁ 지난 4월말 김정일 체제의 위상 확립과 외화획득을 위해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 축전」이라는 일대 정치쇼를 연출했으나 기대에 못미친 빚잔치로 끝났다.
  • 서울신문 발굴「한국합동군사원조 자문단 국가팀 회의 자료」를 보고

    ◎전문가 진단/김광운 국사편찬위 연구원/“한국정정 불안” 미 직접개입 주장/북한 위협·반미운동 확대 우려 1960년대초 대한민국의 역사는 독재정권의 몰락,사회개혁을 내건 장면정권의 무능,군사 쿠데타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였다.「3월위기설」,「4월위기설」이 계속 유포되면서 민심이 크게 동요하던 이 때는 북한당국이 남한을 무력공격하기에 가장 적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 8월 23일 구정권 청산과 사회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장면정권은 계속되는 민주당내의 내분과 경제난의 악화 및 대중차원의 통일운동,반미운동의 대두에 적절한 대응을 못하면서 무능을 드러냈다.북한당국은 남한정세에 편승해 평화통일 선전공세를 강화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자 했다.장면정권은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대해 『북한의 지시에 의한 것』 또는 『미국을 반대하는 자는 공산주의자들 뿐』이라고 대응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사태발전은 미국에게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미국은 한국상황에 적극 개입해 대통령 특별전문위원회(Presidential Task Force)를 가동시키며,획기적인 대책을 강구해 나갔다.그 구체적 결과물이 「장면정권 평가보고서」,「팔리보고서」,「로스토우보고서」,「맥카나기보고서」,「중앙정보국보고서」,「국무부보고서」 등이었다. 지금까지 이 주제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미국 행정관료들이 작성한 「콜론보고서」등의 분석을 통해 미국과 장면정권 및 군부와의 관계에서 주로 경제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그 결과 대사관을 포함한 일반행정관료와 중앙정보국(CIA)이 사태 추이에 깊게 관여한 것과는 달리 주한미군사령부는 장총리의 『국군의 10만감병』주장에 대하여 『국내상황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좌익학생들이 활개치도록 방치하고 있다』며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고 결론지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공개된 일부의 사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미국이 한미관계에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 부분은 북한의 평화통일 공세와 대남도발 가능성에의 대처였던 것이다.이 부분을 보완할 때만이 사실의 전체 윤곽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활동한 미국의 행정부 계통의 관리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합법정부』였던 장면정권을 지지했다.맥카나기 대사,마샬 그린 대리대사,그레고리 헨더슨 정치참사관 등은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결코 배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부에서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위협과 반미운동의 확산에 적극 대응해 나갔던 것으로 자료는 밝혀주고 있다.현지의 미군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의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등 때문에 공산주의 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현재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한 위에서 『강력한 정부의 수반이 요구되고 있으며,만약 필요하다면 우리의 군사적 경제적 공헌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 한다』며 한국의 상황을 북한과 연관시켜 직접 개입을 주장하면서 모종의 대책을 준비해 나갔던 것이다.
  • 두만강 개발사업 협정조인 공식 보도(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14일 두만강지역개발사업(TRADP) 제6차 계획관리위원회(PMC)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지난 6일 3건의 협정서들이 조인됐다고 공식 보도했다.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북한을 비롯한 두만강지역개발계획 관련 위원회 대표단장들이 6일 유엔본부에서 ▲두만강지역개발사업 및 동북아개발을 위한 협의위원회 창설을 위한 협정문 ▲환경원칙에 관한 양해각서 ▲두만강개발조정위원회 창설에 관한협정문에 각각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그러나 TRADP 사무국 소재지 선정과 관련,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사실을 비롯,한국측 대표단의 참가 사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지난 2일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두만강지역개발사업 제6차회의에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우를 단장으로 한 경제대표단을 파견한 바 있다. ◎러 파견 벌목공 자격요건 강화 【내외】 러시아 벌목장에 파견되는 노동자들의 「자격요건」이 크게 강화됐다. 귀순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볼목노동자 자격요건의 강화는 구소련 붕괴후 점증하고 있는탈출자의 방지를 위해 내려진 「김정일 지시」에 근거하고 있다. 김정일은 『소련이 망하고 한국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는 러시아는 이제 적대지역과 같다. 따라서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곳이다』고 하달했다. 이에따라 93년 벌목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업무가 행정위원회에서 「노동당」으로 이관됐으며 6단계의 신원보증을 받도록 하는 증 파견절차가 대폭 강화됐다. 6단계 신원보증이란 러시아에 벌목노동자로 나가기 위해서는 단위 초급당비서­세포비서­담당보위지도원­거주지 인민반장­기업소 담당안전원­거주지 담당 안전원의 확인 및 서명을 받도록 한 것이다.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지위 확고 【내외】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 4주(12.24)를 앞두고 있는 북한은 14일 『군최고사령관으로서의 김정일의 지위는 확고하며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평양방송을 통해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취임은 『혁명위업 계승에서 가장 뜻깊은 역사적 사변』이라고 선전하고 『전당,전군,전민이 김정일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치고있다』고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이어 북한군은 김정일만을 믿고 따르며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관철해 나가고 있다면서 김정일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영원불멸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방송은 지난 10월 당창건 50주년 기념 군열병식에서 북한군 원수 및 차수,장령들이 김정일을 옹위하여 도열한 것은 『김정일의 권위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보여주는 화폭』이라고 선전했다. ◎시아누크 “남한과 외교관계 수립안해” 【내외】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은 최근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중앙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라오스를 방문중인 시아누크는 지난 9일 라오스주재 북한대사 김응조와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관계에 대해 『공화국(북한)만을 인정하며 남조선과 그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입장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 입장을 영원히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8)

    ◎과도정부­통치권 한계… 과거청산·개혁에 실패/제2공화국­시위 잇따라 사회 대혼란… 「5·16」 초래 1960년 봄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종말을 고한 제1공화국에 이어 과도정부가 탄생 했다.그러나 과도정부는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국민들이 열망한 과거청산과 정치혁신을 실현하는데 실패 했다.그래서 약체 정권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군에 정권을 빼앗기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1960년 4월 21일 제1공화국의 운명이 황혼을 맞고 있을 때 이승만대통령은 자신이 평소 신뢰감을 갖고 있던 전 서울시장 허정을 만났다.이승만은 정부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무부장관직을 수락하도록 부탁 했다.당시 장면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한 상태였다.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허정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직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자유당 세력들도 특별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허정이 수반을 맡아주기를 사실상 희망하고 있었다. ○허정 내각제 개헌 추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다음날인 4월27일 대통령서리에 취임한 허정 외무부장관은 우선 내각제 개헌을 떠올렸다.이 내각제 개헌은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학생들의 강력한 요구였고 민주당의 오랜 강령이기도 했다.허정은 취임초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 내각책임제 개헌실현의지를 밝혔다.허정은 이 회견에서 내각제 개헌을 다짐하면서 개헌을 이루어낸 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약 했다.국회는 4월29일 민주·자유 양당 4명씩과 무소속 1명으로 개헌특위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면서 공법학회는 개헌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내오기도 하고 개헌특위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도 들었다.마침내 개헌특위는 5월9일 개헌요강 작성에 대체로 합의한 뒤 6월10일 본회의에 상정했다.전문 103조로 돼 있던 제1공화국의 헌법중 무려 52개 조항을 고친 이 개헌안은 재적 2백11명중 찬성 2백8표,반대 3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허정 과도정부는 5월2일 첫 국무회의를 열고 혼란상태의 정국 수습과 경제위기 타개책을 내놓았다.부정선거 관련자 엄중처벌및 경제사범 엄단,경제적 민주화 지향,중소기업 육성의 재정적 뒷받침,악질 세무관리 엄단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조직적 권력을 갖고있지 못했던 과도정부의 통치권에는 한계가 뒤따랐다.특히 군부의 부패 척결과 관련해 허정은 미국과 주한미군사령부의 견제 탓에 끝까지 숙군작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미8군 사령관 C B 매그루더는 허정에게 『한국군의 재편은 현존하는 불안정과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연기돼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숙군에 제동을 걸었다. 4·19가 요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선거부정의 주요 음모자로 9명의 전직 각료와 15명의 자유당 간부를 3·15선거에서의 불법행위로 구속하는 것으로 그쳤다.이어 자유당에 선거자금을 불법 제공한 은행장들도 구속하고 정치·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정치깡패의 두목들도 우선 잡아들이기는 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과 연결돼 있었던 이들의 처리문제는 다음 정권과 군사정권으로 넘어갔다.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에 대한 처벌방침도거듭 밝히고 개인 18명과 기업가 66명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제2공화국 출범 때까지 아무것도 매듭지은 것이 없다.결국 당시의 정치구도나 법적 기본구조를 깨뜨릴 의지도,능력도 없었던 과도정부는 다음 정권에도 큰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부정축재 84명 처벌못해 제4대 국회는 내각제 개헌을 끝으로 해산 했다.그리고 나서 새 헌법의 절차에 따라 19 60년 7월29일 실시한 제5대 민의원 선거와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일단 권력을 잡았다.민주당은 민의원 2백33석중 1백75석,참의원 58석중 31석을 차지했다.나머지 의석은 민의원의 경우 무소속 46석,사회대중당 4석,자유당 2석,한국사회당 1석 및 기타 군소정당 5석 순이었다.참의원의 경우는 무소속 20석,자유당 4석,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민족진보연맹이 각각 1석등이었다. 그러나 무소속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당 공천 탈락자이고 이들 중 다수가 국회개원과 동시에 민주당에 재입당 했다.민주당은 명실공히 실세가 됐다.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분당론까지 제기됐던 민주당 계파는 여전히 복잡했다.당선자 1백75명 가운데 장면 중심의 신파 78명,그에 반대하는 구파 83명,중도파 14명등 팽팽한 구도를 보이자 신·구파가 각각 당선자대회를 갖는등 치열한 집권경쟁을 벌였다. ○장면내각 민주신파 일색 우여곡절 끝에 8월19일 민의원에서 장면총리 인준투표가 실시됐다.결국 찬성 1백17표,반대 1백7표,기권 1표로 신파일색의 장면내각이 출범했다.장면총리는 구파측에 대해 5명 정도의 인선을 제의했지만 구파의 거절에 부닥쳐 8월23일 신파측 일색의 불안정한 새 내각이 출범했던 것이다. 장면 내각은 이전의 과도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선 자유당 시절 부정부패의 원흉들을 처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집중적인 지탄을 받고있던 경찰에 먼저 화살을 돌려 81명의 경찰서장을 포함한 2천2백13명의 경찰관을 파면시켰다.그 결과 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의 기능을 상당기간 약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설상가상으로 61년 1월 한국정부에 대해 환율인상을 요구해왔다.장면 내각은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61년 1월 달러당 6백50환이었던 환율이 1천환으로 평가절하 됐다.이어 2월에 1천3백환으로 다시 평가절하된 판에 미국은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고 나섰다.그 대가로 장면정권은 3천5백만달러의 원조를 받았지만 이 협정은 미국 원조자금이 전체예산의 52%를 차지하던 한국 정부예산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 행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주재 미국인 교육자와 기술자들도 모두 한국정부로부터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미국은 이것 말고도 61년 1월 「외자도입촉진법」 제정을 채근했다.이 법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 대해 연간 20%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이 투자회사들은 한국내의 보유자산에 대해 아무런 세금을 내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이에따라 미국자본의 한국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장면 정권은 이무렵 「데모규제법」등의 제정을 추진했는데 1960년 7·29총선에서 참패한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반대투쟁을 벌였다.이는 극도의 사회 혼란상을 초래 했다.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의무보다 권리를 더 중시하는 각종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이와 맞물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5월13일 평화통일 구호를 내걸고 「남북학생회담 환영및 통일촉진대회」를 열었다. 1961년 시국위기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가운데 이 학생집회가 열린 것은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5월16일 군사 쿠데타 3일전의 일이었다.물론 제2공화국이 약세의 틈을 보여준 데서 비롯한 쿠데타로 평가되지만 국민들에게도 얼마간은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군사자문단 「국가팀 회의자료」/“미군철수땐 한반도 적화” 예측/북의 혼란책동 선전공세 면밀 분석/팸플릿 제작 등 심리전 대응책 제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장면정권 시절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회의자료를 미국 케네디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입수했다.이 자료는 19 60년 12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합동군사원조자문단(JMAAGK)의 국가반(Country Team)회의자료로 당시 혼란을 틈타 고조된 북한의 선전에 대처하기 위한 주한미군사령부의 대처방안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회의자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일상적인 참석자 외에 주한미군 참모장인 에머리 워첼중장과 본드 장군등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회의주제는 「북한의 선전효과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가능한 대처방안 강구」.회의에서 주한미군측은 『북한측의 선전공세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고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정책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때문에 공산주의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했다.워첼장군은 『군사적인 견지에서는 이승만 정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돼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남한의 군사적·경제적 소유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한다』고까지 발언했다. 회의자료에는 미군이 철수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전 한국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한 대목도 들어있다.워첼장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전한반도를 공산주의자들이 석권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북한인들이 자유선거 실시에 동의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결국 미국공보원(USIS)의 전문가 팀이 대한민국 정부와 공동으로 북한의 선전위협에 대응하는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다.자료에 따르면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사령부가 함께 북한선전에 대응하는 팸플릿을 만들고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특히 주한미군사령부는 공산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원과 기구정비를 준비했는데 이는 한국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했을 가능성을 함축했다.
  • 「북한군 이상동향」 우리측 대응은

    ◎한­미 방어력 증강… 북위협 만반대처/미­인도·태평양 항모전투단 한국행/한­전군훈련 강화… 신제공작전 수립 미국이 내년초 인도양과 태평양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1개 항공모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정례적인 순항훈련을 넘어서 최근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군사위협에 쐐기를 박으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미 군당국도 다량의 미그기와 전폭기·장사정포를 휴전선 근처에 계속 증강·배치시키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을 심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항모전투단은 1척의 항공모함과 구축함·잠수함·최신예 전투기 등을 갖춘 탁월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어 유사시 투입되는 미 본토병력과 함께 한반도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항모전투단은 정례적으로 인도양 등을 거쳐 우리의 동해에서 순항훈련을 하고 있으나 지난해 연말 북한 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훈련시기를 조정,우리나라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따라서 내년초의 항모전투단 파견도 북한의 위협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군의 대비태세도 최근 부쩍 강화되고 있다. 이달초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통해 동계작전태세 강화지시가 내려진데 이어 겨울철,특히 야간전투에 강한 북한군의 기습에 대비해 야간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군은 올들어 저고도 비행기인 AN­2기를 이용한 특수부대의 훈련을 크게 늘려 남한과 유사한 지형의 함경북도에서 공중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이들 특수부대는 유사시 후방이나 산악지역에 침투,공군기지등 주요시설 파괴 및 후방지역 혼란등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특히 총경비국의 인민경비대 10개 여단을 인민무력부 소속으로 전환시켜 정규군화 하는 점도 위협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우리 군당국을 긴장하게 하는 북한의 군사동향은 황해도 태탄 등 휴전선에서 불과 30∼40㎞ 떨어진 예비기지에 배치하는 미그기 등 공군기의 지속적인 증강이다.지난 10월말 85대에서 이달초 95대로,최근 다시 20대를 늘려 1백15대가 됐다.이들 비행기는 발진에서부터 수도권 진입까지 5∼6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다 유사시 임무가 8분거리에 있는 주력기 투입 때까지 아군의 전투기나 주요시설을 「가미가제」식으로 파괴하는 데 있어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공군은 이날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야간 저고도 항법장비인 「랜턴」을 장착한 우리 공군기와 함께 미군의 U­2기를 동원한 한·미 공중감시활동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유사시 다단계 공중전략인 「신방어 제공작전」의 수립이다. 이 작전은 1단계로 일본의 미 공군기지에서 미군의 최신예 F­15기 등을 긴급발진시켜 적의 방공망 등 사전에 계획된 목표물을 초토화시킨 뒤 2단계로 우리 공군기가 적기를 무력화하고,마지막 단계로 적 후방에 대한 공격을 하는 개념이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부대이동이나 철책제거 등 전쟁발발의 뚜렷한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북한이 「이판사판식」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한국과 미국의 군 수뇌부는 이같은 상황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 항모전단 1월 파한/북의 군사동향 위협적 수준 판단

    ◎구축함 6척·신예기80대 포함/우리 공군 초계비행 3배 강화 북한의 미그기 전진배치 등 최근의 위협적인 군사동향과 관련,미국이 한반도 전쟁억지를 위해 내년 1월쯤 대규모 항공모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항모 전투단 파견은 북한의 남침위협이 고조될 때면 있어 온 것으로 미국이 최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한 증거로 풀이되고 있다. 16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북한의 심상치 않은 군사행동을 주시하면서 한반도의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비,유사시 한반도에 조기 전개되는 증원전력(FDO) 가운데 1개 항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이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구축함 6척 ▲공격용 핵 잠수함 1∼2척 ▲각종 지원함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항공모함 1척에는 80여대의 최신예 미공군 주력기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연말 북한 핵위기 때에도 1개 항모 전투단을 동해에 전진배치시키는 등 북한의 남침위협이 고조되면 FDO 전력을 전진배치하고 있다.한편 한·미양국은 최근 FDO의 규모를 종전보다 갑절 늘린 2개 항모 전투단과 2개 군단으로 각각 강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한·미 군수뇌부는 북한의 최근 위협적인 군사동향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참은 겨울철 야간전투에 강한 북한군의 남침위협에 맞서 동계작전태세를 강화한데 이어 동계야간훈련을 강화했다.또 비무장지대(DMZ)와 전방초소·해안 및 강안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국지적인 도발과 테러에 대비,러시아의 알파부대와 기술·정보 교류를 강화하고 있으며 내년 3월 2개 군단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동훈련인 「호국 96」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군도 이날 김홍래 참모총장 주재로 주요 지휘관회의를 열고 공중감시활동을 2∼3배 늘리는 등 즉각 대응태세를 강화하고 개전초기 적의 공군을 무력화시키는 「신방어 제공작전」을 구축키로 했다. 공군은 공중초계비행활동을 3배이상 늘리고 일부 전투기에 야간저고도 항법장비를 장착,적의 야간기습 침투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KFP항공기인 F­16의 비상대기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각 전투기 대대의 비상대기조도 늘리기로 했다. 신방어 제공작전을 통해 개전 초기 일본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에서 최신예 주력기로 적기를 무력화시킨 뒤 우리의 초계비행기 등으로 적의 공중전력을 격멸하는 다단계 작전을 구사키로 했다. 한편 합참은 『북한은 휴전선 3개 예비기지에 배치한 미그기 등의 숫자를 지난 10월말 85대에서 95대,1백10여대로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올들어 북한은 특수부대의 훈련을 크게 강화,저고도 침투용항공기인 AN­2기를 2백40여차례 비행시켜 남한의 지형과 비슷한 함경북도에서 공중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안기부 국회보고 「북한군 동향」 요지

    ◎전쟁물자 3개월분 지하갱도 비축/군용기름 3배 늘려 96동계훈련중 안기부는 15일 국회 정보위에서 최근 북한의 전투기 전방배치등 일련의 군사동향이 우리의 안보상황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보고 했다.권령해안기부장은 『최근 북한의 군사·대남책동을 볼때 금년 겨울과 내년 춘궁기가 한반도 위기관리의 중요한 기간이라고 종합평가를 내렸다』고 밝혔다. 다음은 권부장이 보고한 북한의 군사특이동향 및 정부의 대책 요지이다. 【전투기의 전방추진배치】 10월중 4백20여대 이상의 전투기·폭격기·수송기·헬기등이 전·후방기지로 재배치되면서 90여대 이상의 항공기가 비무장지대(DMZ)40㎞ 내외의 태탄(황남),누천리(황북 인산),구읍리(강원 통천)등 3개 예비기지로 추진 배치됨.이 가운데 IL­28폭격기 1개연대는 의주에서 태탄으로 추진됨으로써 서울까지 도달시간이 종전 30분에서 5분으로 줄어들게 되었음.또 MIG­17기 7연대를 누천리와 구읍리로 전진 배치시켰는데 이는 구형기인 MIG­17기로 1차공격을 감행한뒤 이어 MIG­29기등 최신예기로 2차공격을 가하려는 전술로 보이며 종전 8분에서 6분이면 서울을 공격할수 있게 됨. 【전쟁지휘체계 보강 및 후방 전쟁준비태세 강화】 최근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국경경비총국을 무력부 산하로 이관하여 준군사력인 경비대 병력을 평시에도 무력부장이 직접 장악하도록 하는등 전시 지휘체계화 함.국경에 배치되어 있는 4개 경비여단을 근간으로 정규군단 1개를 새로 만들어 북부지역의 경비 및 방어능력을 강화했음. 【전쟁물자 비축상황】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기관·기업소별 연간 소비재 사용량의 50%를 비축하도록 하고 도입 유류의 일정량을 군수용으로 우선 공제토록 하고 있음.비축물자는 유류 양곡·동·알코올·질안 등 공업원료와 의약품·소금을 비롯한 생필품등 30여종의 물자를 전쟁예비로 지하갱도에 비축.전국적으로 2백여개의 지하갱도에 3개월간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물자를 채우고 있으며 현재도 비축용 갱도를 계속 건설하고 있음. 【군사훈련】 북한군은 12월 1일부터 내년 4월까지 96동계훈련을 진행중이며 지난 11월에는 군부대에 평소 공급하던 양보다 3배에 가까운 유류를 공급했는데 이는 전례없는 공급량 확대라는 점에서 경각심이 요구됨. 【북한사회 동향】 최근 평북·함남·양강도 등지에서 약 1백여명의 범죄자에 본보기식의 「공개 총살형」을 집행했는데 이는 긴장된 총동원태세를 견지하려는 저의를 보여 주목됨. 【대남전략】 최근 남한의 정국이 혁명전략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당 및 당간부에게 「남한의 정치는 상당기간 표류할 것이며 부정축재사건,5·18특별법에 대한 여야공방으로 한총련등에 의한 가두투쟁이 확산되고 통치위기가 심화될 것이며 남침시 남한 주민의 20∼30%가 북한에 동조할 정도로 친북세력이 증가되고 있다」고 대남정세관을 교육하고 있음.또 남한사회는 패배주의적 사고에 젖어있어 대포 한방이면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재벌과 국회의원등 사회지도층이 앞다투어 해외로 도피하게 될 것이라고 교육하고 있음. 【내년도 대남전략 전망】 우리의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현정부를 부도덕·반민주·반통일로 부각시키기 위해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임.특히 통치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심지어 대통령에 대해 「처단·제거」「청와대 폭파」등 위협선동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 예상됨.특정사안에 대해 대남선동을 격화시킨 이후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진 과거행태가 있었다는 측면에서 대통령의 신변위협에 대한 경계가 요망됨. 【대남전략에 대한 평가】 북한지도층이 국제정세와 우리 국내정세가 그들의 대남혁명 정세에 유리하게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국상황에 처한 그들 체제의 총체적 난관과 남침을 위해 강화된 군사력등 복합적 요소가 결합될 때 무력도발의 가장 큰 잠재적 위험요인이 될 것임.특히 북한의 최근 동계훈련은 훈련중 공격작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보시간을 더욱 단축시키게 된다는 측면에서 경계가 요망됨.결국 북한은 경제파국 위기에서도 전쟁준비만 강화하는 기이한 체제를 지속하고 있고 전쟁준비는 이미 완료된 상태로서 김정일의 의지에 따라 대남도발을 감행할 위험한 상황임. 【정부 대책】 북한의 대남비방 위협이 폭주하고 있고 부대이동과 관련한 통신활동이 증가되고 있는등 이례적인 움직임과 관련,북한의 동태를 예의 추적·감시하고 있음.이를 위해 안기부 및 군등 안보기관이 총동원되어 있고 미국등 우방국과도 긴밀히 협력을 하는 한편 군도 이미 동계작전 태세에 돌입,대북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음.정부는 지난 1일 「통합방위 중앙회의」를 대통령이 주재,관련사항을 점검·대비토록 했고 북한의 동계훈련에 대응하고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으로 취약해진 전투력의 보전을 위해 육·해·공군의 실전적 훈련강화와 함께 충무계획의 미비점을 점검·보완할 예정임.
  • 대북경수로 협상 타결이후(사설)

    지난 9월30일부터 뉴욕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에 진행돼 온 대북 경수로공급협상이 원만히 타결돼 서명절차만 남겨놓았다고 한다. 공급협정은 본래 올 4월까지 끝내기로 돼 있었던 것인데 북한측의 추가 요구로 그동안 협상이 지연되긴 했으나 뒤늦게나마 타협점을 찾게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또 한고비를 넘기면서 다시한번 생각해두지 않으면 안될 대목이 있다.4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거금을 들여가며 북한에 경수로를 공급하는 본뜻이다.그것은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간 화해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시간은 우리편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그래도 답답한 구석들을 보게될 때마다 안타까울 때가 없지 않다. 이번 협상내용만해도 남한측 전문가와 기술자들이 북한에 들어가는데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들어가면 반나절 길인 것을 해로와 공로로 국한시켜 놓은 것이 한 예다.해로는 동해안 항구에서 신포로 선박을 이용해서,공로는 북경을 통해 들어가도록 하고있다.북한측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이런 것들이 과민이고 편협이다.육로로 들어가도 자동차편으로 곧장 가면 그만인 것을 북한사람들이 보면 무엇을 본다고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경수로가 완성되자면 줄잡아도 연인원 1천5백명이상의 우리 전문가들이 신포를 드나들어야 하는데 그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인가. 이번 협상을 통해 얻은 하나의 부수효과는 한국의 양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측이 확인했다는 점이다.이제까지 북한은 미국과만 짜면 모든 일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북한측의 이런 확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한반도문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들인 것이다.남북간의 모든 문제는 92년 남북합의서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북한측은 다시한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수로공급은 남북화해의 길이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어야 하는 것이다.
  • 「남북대화 추진방향」 남북회담사무국 토론회

    남북회담사무국은 13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4주년을 맞아 회담사무국 회의실에서 「중장기 남북대화 추진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두명의 주제발표자는 북한과의 대화원칙은 견지하되,성급한 대화추진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순원 선임연구원­현대경제사회연구원/“경수로사업 통한 당국간대화 역점을” 남북관계의 경색에도 불구,물자교역은 증가추세를 보여 한국은 북한의 3대 무역국으로 자리잡았다.남북교역에서 반출이 적은 것은 북한교역상품의 경쟁력 부족 및 경화결제 능력부족,남한상품 반입억제정책 때문이다.경제교류협력증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은 남북한 당국의 각종 규제와 제한 등 정치적 요인이다.경제적으로는 ▲간접교역방식과 대금결제방법의 문제 ▲시설기자재 반출에 대한 제한과 기술자 현지 지도 부재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분쟁해결절차등 제도적 장치미비 ▲북한의 열악한 투자환경등이다. 북한의 경제난 심화는 경제교류협력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북·미,북·일 관계의 개선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책의 일관성과 남북대화재개를 위해서는 정부가 여론에 이끌리기 보다는 여론이 정부정책을 지지할 수 있도록 여론형성을 적극 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대북접촉에서 비밀유지와 공개원칙간에 적절한 조화 및 정부와 기업의 협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상호노력이 필요하다. 남북관계개선과 북·미,북·일 관계개선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미·일의 태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또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에 대한 대비책과 아울러 남북관계개선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미,북·일간의 관계급진전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긴요하다. ◎허문영 책임연구원­민족통일연구원/북미·북일관계 급진전에도 대비책 세워야 남북기본합의서를 우리정부는 화해·협력시대 관계를 규율하는 문서로 인식한 반면,북한은 체제유지와 남북한관계 주도권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정권이 공식출범후 3년정도 지났을 때 지도층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5년정도 지났을 때 북한주민의 불만이 확대돼 새 정권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북한은 당분간 당국간 대화에는 냉담한 태도를 지속할 것이나 민간 경제교류·협력에 대해서는 적극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 정부는 한반도문제의 국제화 비중을 낮추고 북한의 개방지향정책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되,남한 배제정책에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경수로 지원사업을 통해 변형적인 당국간 대화를 추진하고 경제교류를 통해 경제인 중심의 대화를 추진함으로써 신뢰구축과 평화상태를 조성하고,장기적으로는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공동선언에 기초해 당국간대화를 추진함으로써 평화체제 전환에 남북한이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한다.성급한 대화제의는 전술적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염려가 있다. 정상회담은 북한내부정리가 마무리되고 북·미간 합의사항이 이행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선제의해 남북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평화체제 전환문제는 「선평화체제기반조성,후남북평화협정체결」 및 「당사자해결원칙」을 견지하는 등 의연하게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