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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북한이 국가인가/장수근 국제전략연 연구위원(남풍북풍)

    「과연 북한이 국가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지난 6월 어린 남매와 함께 북한탈출에 성공,9일 기자회견을 가진 정순영씨(37)는 요즘 북한에선 먹을 것이 없어 늙은 부모를 내쫓거나 어린 아이들을 길거리에 내다버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증언했다.또 11일 예성강을 건너 강화도로 헤엄쳐 탈출한 최승찬씨(29)도 개성에서 하루에 한두명씩 굶어죽는 것을 목격했으며 자신도 『배가 고파 왔다』고 말했다. 정여인은 그녀의 고향인 강원도 통천은 식량배급이 끊긴지 벌써 2년째라고 밝혔다.배급 말고는 달리 식량 구할 길이 막연한 통천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옷가지를 싸들고 두메 산골로 찾아들어 식량과 바꿔오고 있다고 한다.대개는 옷가지를 팔아 장만한 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어렵게 구한 식량으로 술을 빚어 파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도 있다는 것이다. 정여인의 이같은 증언은 지금으로부터 46년전으로 되돌아가야 이해가 되는 얘기다.한국전 당시 북한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말할 것도 없고 남한으로 밀려든 피란민들 역시 요즘 북한주민들처럼 지니고 온 옷가지중 성한 것을 골라 농민들에게 주고 쌀로 바꿔 먹었다.그게 지금으로부터 46년의 일이다.그런데 북한에선 46년이 지난 오늘에도 반세기 전에 있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여인이 살던 23구의 인민반에서 굶어죽은 집이 두집.모두 죽은지 사흘만에 발견됐는데 집안을 통틀어 뒤져봐도 옥수수 한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이런 판국에 당간부란 자들은 매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한다고 한다.그것도 1천원을 1주일 기한으로 빌리면 이자로 5백원을 내야하는 고리채 놀이를.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늘상 배곯고 허기진 것은 주민들 뿐이다.주민들의 궁핍이 이 지경인데도 북한 지배계층은 나몰라하며 김일성·김정일부자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평양방송은 김일성사망 2주기에 즈음,『혁명의 성산인 백두산이 수령님을 잃은 애석함과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치며 울었다』고 나발을불어댔다.정말 평양방송이 전한대로 백두산이 울부짖었다면 김일성을 잃은 슬픔에서가 아니라 그를 원망하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피맺힌 울음 때문이었을게다.
  • 국내 석탄산업/부와 침

    ◎66년­10여년 전성기 연탄파동으로 주춤/73년­12월 석유파동… 제2 부흥기 구가/88년­「합리화 정책」으로 다시 쇠락의 길로 모든 산업은 시대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석탄산업도 굴곡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시대인 1930년대.철도로 연결된 평양인근의 사동탄광이 국내 최초로 개발되고 남한에서는 문경탄전의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에도 장성과 도계의 삼척탄좌 매장량이 풍부한 것은 알았지만 수송수단이 없어 개발은 엄두도 못냈다.그러다 묵호∼철암간 철도와 묵호항 건설이 병행되고 일본으로 수출 길이 열리면서 이곳 탄전이 빛을 본다. 해방이후 일본인들이 물러가자 국내 탄광은 시련을 겪는다.수송수단이 충분하지 못해 장성·도계의 탄은 해상을 통해 겨우 주소비지인 경인지역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1956년 철암∼영주간 영암선이 개통되며 국내 석탄산업은 66년까지 제1의 전성기를 맞는다.10년사이 공급량은 무려 5배 늘어난다.특히 60년대 전반에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에너지 자급자족 계획이진행되면서 석공은 당시 매출액이 국내 1·2위를 다툴 정도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66년 연탄파동이 일어나면서 석탄산업은 하강국면을 맞는다.연탄수용가인 대도시에 연탄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값이 치솟는 등 파동이 일어나자 정부가 에너지정책을 석유로 전환했기 때문이다.2백여개에 이르던 광산이 50∼60여개로 줄어든다. 제2의 부흥기는 73년 12월 석유파동이 일면서 찾아왔다.유가가 폭등하면서 석탄수요가 급증,광산촌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70년대 두차례 파동을 겪은 석유가 80년대들어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88년 정부가 경제성있는 탄광만 육성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석탄산업은 다시 쇠락의 길을 걷게 돼 오늘에 이른다. 제3의 부흥기가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석공은 현재 1억3천4백만t의 가채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30년정도 쓸수 있는 물량이다.현재 전세계적으로 연료로는 석유와 가스를 쓰고 있지만 30년과 50년이 지나면 소진되고 만다.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에서 석유와가스사용이 보편화되면 고갈속도는 훨씬 빨라진다. 석탄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유일의 에너지원이다.태평양전쟁은 석유공급 중단을 우려한 일본이 미국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에너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부분이다.대체에너지가 개발되지 않으면 석탄은 다시 빛을 보게 될지 모른다.
  • 귀순 개성주민 최승찬씨 문답

    ◎“식량난 극심… 북한은 하나의 큰 감옥”/생활고 못견뎌 탈북 결심/“먹을것 없어 부모가 자식 죽이고 자살” 소문 11일 새벽 강화도로 귀순한 북한 주민 최승찬씨(29)는 귀순 9시간만인 이날 상오 11시 30분부터 30여분간 국방부 청사 의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문일답을 가졌다.최씨는 깡마른 체구에 초췌한 얼굴이었으며 53시간 남짓 굶은 상태에서 탈출을 감행한 탓인지 기자들의 질문에 힘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언제부터 탈출을 결심했나. ▲6월부터이다. ­탈출동기는. ▲먹고 사는 것은 물론 북한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못돼 내려왔다.북한은 사람을 개·돼지처럼 취급하고 통제돼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다.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잘 사는 남한으로 가자고 결심했다. 한시라도 살지 못할 데라서 살 곳을 찾아왔다. ­남한이 잘 사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군대에 있을 때 KBS­1TV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데. ▲개성에 있을 때 산 밑에 살았는데 매일 1∼2명씩 굶어 죽은 사람을 묻는 걸 봤다.옆마을에서 부모가 먹을게 없어 어린 아기를 목졸라 죽이고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쌀을 주지도 않고 죽물(죽)도 없고 남새(채소)도 없다.장사수완이 없는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데 그것도 못하게 통제한다 ­수영은 잘 하나. ▲좀 한다. ­오면서 뭘 먹었나. ▲바닷게를 잡아먹었다.그런데 지금 배가 아프다. ­북한에서 무슨 일을 했나. ▲노동자였다. ­가족관계는. ▲처 김옥순(26)과 딸 최미라(2)가 있으며 부모님도 개성에서 따로 살고 있다.〈황성기 기자〉 ◎「필사의 탈출」 어떻게 했나/계곡물 마셔가며 산길로 예성강 도착/튜브 감고 6시간 수영… 남한 초병 보자 “살았다” 11일 새벽 강화도로 귀순한 북한 주민 최승찬씨(29)는 극심한 생활고 끝에 남행을 결심하고 사흘전인 8일 하오 개성시 운학2동 집을 나섰다. 개성시에서 그가 남행출발지로 선택한 예성강 하류까지는 10㎞ 남짓. 여행을 위한 통행증이 없는 최씨로서는 개성시를 빠져나가는 일 조차 모험이었다.더욱이 예성강에서 강화도까지 바다를건널 때 필요한 자전거 튜브 3개를 몸에 지닌 그는 보안요원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개성시 벽란도를 거쳐 골목길로만 돌아 9일 새벽 개성을 벗어났다. 그는 일단 큰 길을 피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산으로 길을 잡았다. 동이 트면 숲 속에 꼼짝도 않고 숨고,어둑해져서야 산을 탔다.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비상식량 마저 준비하지 않은 최씨는 극도의 굶주림을 계곡의 물을 마시며 이겨내야 했다. 장마기간이지만 최근 며칠동안 날씨가 쾌청해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개성에서 예성강까지는 자동차로는 불과 10㎞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없는 산길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20㎞의 산길을 꼬박 이틀을 걸어 10일 밤에서야 예성강 하류 당두포리 근방에 도착했다.곳곳에 초소와 AK 소총으로 무장한 북한군인들이 보였으나 다행히 반달의 어둠이 깔린데다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어 연안까지 내려가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48시간 이상을 굶어 탈진상태였지만 사력을 다해 자전거 튜브에 공기를 불어넣었다.바닷물이 밀려들고 있었다.튜브 3개를 몸에 감고 예성강으로 뛰어들었다. 북방한계선 근방에 북한군이 설치한 철책 등 장애물을 피하며 남으로 남으로 헤엄쳤다.3년전 제대했던 특수부대(38항공여단)에서 체력이 단련되기는 했으나 굶주림과 피로함,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6시간 정도의 수영은 그를 빈사상태로 몰아넣었다. 강화도 해안에 닿은 듯 했다.순간 해병 초병근무자들이 쏘는 서치라이트의 강렬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손을 흔들어 귀순의사를 표시했다.혹시 북한 땅일지 몰라 이름을 묻는 군인에게 「한성호」라는 가명을 댔다. 꿈에도 그리던 남한 땅임을 확인한 최씨는 『나 좀 어떻게 해주소.3일동안 굶었습니다.배고파 죽겠소』라고 외쳤다.〈황성기 기자〉
  • 북 민간인 한강 헤엄쳐 귀순/29세 최승찬씨

    ◎“개성서만 매일 1∼2명 아사”/예성강∼한강하류 10㎞ 튜브 이용 도강 북한주민 최승찬씨(29)가 11일 새벽 서해 강화도 북장곶 돈대 한강하류지역으로 헤엄쳐 귀순했다.최씨는 귀순동기를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감옥같은 통제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남으로 넘어왔다』고 밝혔다.〈관련기사 5면〉 국방부는 이날 상오 2시 45분쯤 최씨가 한강하류에서 헤엄쳐 오는 것을 해병 2사단 소속 손동현 상병(22)과 석상범 이병(21)이 발견,구조했으며 현재 군 당국 등에서 최씨의 귀순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날 상오 서울로 옮겨져 국방부 청사내 의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귀순전 주거지였던 개성에서 매일 1∼2명씩 굶어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것을 봤다』며 『옆마을에서는 부모가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해 극심한 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전했다. 이어 『남한이 살기좋다는 것은 군대에 있을때 KBS­1TV를 통해 알고 있었으며 지난달부터 탈출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또 군의한 관계자는 『최씨가 군 당국 조사과정에서 올들어서만 북한주민 30여명이 굶어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8일 하오 8시 개성시 운학2동을 출발,10일밤 걸어서 예성강 당두포리에 도착한 뒤 길이 2m가량의 자전거 튜브 3개를 묶어 몸에 감고 군용 구명동의를 착용,10㎞남짓 헤엄쳐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 정 회장,정씨 귀순뒤 만나… 족보엔 이름없어/현대그룹측 반응

    ◎친척여부 확인중… 사실땐 남한정착 돕겠다 ○…현대그룹은 귀순 북한주민 정순영씨가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정주영 그룹명예회장의 친척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정명예회장이 정씨 귀순직후 안기부 주선으로 만났으나 친척인지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정회장이 족보를 확인해본 결과 정씨의 이름은 없었다』고 밝혔다. 정회장은 89년 당시 북한을 방문했을때 북한측이 친척이라고 내세운 30여명의 주민을 만났으나 그중에 정씨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룹관계자들이 말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러나 정회장은 정씨가 친척일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귀순기자회견장에도 여동생 희영씨와 사촌여동생을 보내 환영의 뜻을 표시하도록 했다』고 전하고 『정씨가 실제로 명예회장의 친척인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중』이라고 설명. 그는 『그가 명예회장의 친척으로 확인될 경우 그룹이 그의 남한정착을 도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두사람의 나이차가너무 큰 탓인지 정씨가 명예회장과 면담하면서 어른들의 이름을 제대로 대지 못해 친척관계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아 명예회장이 매우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상오 서울 계동 본사로 출근해 15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인들을 만나는 등 업무를 본뒤 모처에서 점심을 들기 위해 퇴근했으며 귀순한 정씨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그룹관계자는 전언. ○…정명예회장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최근들어 『북한을 방문하면 고향에 들러 아들인 정몽구 그룹회장을 친척들에게 소개하고 고향과 가까운 금강산개발사업 등 대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현대그룹은 이에 따라 94년이후 두차례에 걸쳐 방북허가신청을 냈으나 당국은 『그룹총수의 방북은 당분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허가해주지 않았다는 것. 이같은 분위기속에 정씨가 귀순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정명예회장과의 인척관계를 밝히자 현대그룹은 정명예회장의 방북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는분위기.
  • 정씨 “정주영 회장은 먼 친척”

    ◎정 회장 4촌 대부분 북 거주… 회견장에 여동생 참석 귀순한 정순영씨는 9일 자신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먼 친척』이라고 밝혔다. 또 정씨의 귀순회견장에는 정회장의 친여동생인 정희영씨와 사촌 여동생 정옥영씨 등이 참석했으나 이들 역시 정씨와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친척』이라고만 말했다. 정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다.증조부가 갑오년의 변란을 피해 조부 3명을 데리고 함경북도 길주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정회장의 조부는 6남1녀를 뒀으며,정회장의 아버지 등 직계를 제외한 5명의 숙부와 1명의 고모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지 못해 지금도 4촌들 대부분은 북한에 살고 있다.지난 89년 정회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통천에 들러 4촌 형제를 비롯한 60여명의 친척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월남한 정회장과 동생 6명 중 한명은 죽고 나머지는 정회장과 함께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남아있는 친척은 4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귀순한 정씨도 그 중의 한명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주병철 기자〉
  • “출신성분나빠 차별겪어 탈출”/귀순 북 미용사 정순영씨 일문일답

    ◎부모 간첩누명뒤 실종… 남편에 이혼당해/정주영 명예회장 89년 방북때 처음 만나 북한에서 미용사로 일하다 귀순한 정순영씨(37)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출신성분 문제로 극심한 차별을 겪다 이를 견디지 못해 탈출했다며 귀순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증언했다. ­귀순동기는. ▲8살때 부모가 간첩 누명을 쓰고 보위부에 끌려가 행방불명이 된 뒤 이웃에 홀로 사는 할머니 손에서 컸다.22살때 보위부원과 연애결혼했으나 남편이 내 부모의 성분 문제를 들추며 이혼을 강요해 6년만에 이혼한 뒤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 왔다.그러나 자녀들 역시 성분 문제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는데다 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던 차에 남한에 귀순한 사람들이 잘 산다는 얘기를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 ­탈출은 어떻게 했나. ▲지난 5월20일쯤 식량을 구하겠다는 구실로 함경북도 청진의 통행증을 발급받아 아들과 딸을 데리고 열차로 고향인 강원도 통천을 출발,원산을 거쳐 양강도 혜산에 도착한 뒤 지난 6월4일 국경경비대의 허술한 감시를 틈타 압록강을 건넜다.그 후 중국의 조선족 아주머니를 만나 몸을 숨기는 등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품에 오게 됐다. ­남한이 잘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스라이터·속옷·식료품 등이 많이 들어오는데 한국상표가 붙어 있어 남한이 세계에서 열손가락안에 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씨의 아들에게)어머니가 남조선으로 가자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어머니에게 남한이 정말 잘사느냐고 물었다.남한이 잘 살고 할아버지가 도와줄 것이라고 말해 쉽게 가겠다고 승락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관계는. ­여덟살때 부모를 잃었는데 친척중 많은 사람이 남조선으로 월남했다는 말을 들었다.그러던 중 지난 89년 1월에 보위부에 불려 갔더니 정주영회장이 북한에 오는데 맞을 준비를 하라고 해 정회장이 친척인줄 알았다. ­89년 정회장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했나. ▲특별히 한 말이 없다. ­남한에 와서 정회장을 만난 적이 있나. ▲한번 만났다.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물어 본 뒤 알았다고만 했다.〈주병철 기자〉
  • 김일성 사망 2년과 북한/평통간담회 중계

    ◎「유훈통치」 한계… 총체적 난국 장기화/최저생계도 보장못해… 밀수품 거래 등 성행/식량난 해결뒤 내년 7월께 권력 승계할듯 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는 김일성사망 2주기를 맞아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한 가운데 북한문제간담회를 가졌다.8일 상오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이날 간담회는 「김일성 사망 2년­북한의 현황과 김정일 후계체제 전망」을 주제로 북한의 현실과 장래를 집중 조명했다.이날 안병준 교수(연세대)와 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안병준 교수=북한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이후에는 더이상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지 못하고 한국과 평화·협력에 대해 협상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때문에 그때 가면 북한이 남북대화 또는 4자회담을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북한당국은 미국만이 자기체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붕괴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북한붕괴는 경제→정권→체제→국가붕괴로 이어질 것이며 이것이 완성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러나 미국실무자들은 정권붕괴는 곧 체제및 국가붕괴로 돌발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을 지연시키는 것을 이른바 「연착륙」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며 오로지 자기 조건하에서 남한과의 경제협력만을 원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을 추진하며 한국과는 당국자회담을 회피,자기 체제의 정당성을 보호하고 대내결속,단결 및 안정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김정일이 국가주석·당총비서등 권력의 공식 승계를 97년까지 지연시키고 있는 것은 김일성 후광만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경제난을 타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업적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현재의 식량난을 다소 해소한 뒤에 97년7월8일이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유석렬 교수=오늘날 북한의 고민은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취해진 변화가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남한 및 서방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이 북한의 당면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러한 변화가 북한사회를 개방시켜 체제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주민의 최저생계보장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으며 암시장 및 밀수품거래가 성행하고 있어 식량배급을 통치수단으로 하기 곤란한 상황이다.정치적으로는 유훈통치에 의존하고 있으나 김정일의 카리스마와 통치능력 부족으로 정치권력이 이완되고 있고 군사적 권위체계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 정권은 총체적인 난국을 가까운 시일내에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주변국들이 북한을 연착륙시킨다는 명분으로 적극 돕거나 개혁·개방을 서두르는 등 획기적인 자기 변신을 하지 않는한 김정일체제의 총체적 난국은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지연되는 실제 이유는 체제유지를 위한 당면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또 후계정권이 출범하기 위해서는 군부가 아닌 당·정중심의 평시체제가 갖춰져야 하고 김정일의 업적이 인정되면서 북한의 장래가 약속돼야 할 것이다.따라서권력승계는 가까운 시일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적다.〈정리=구본영 기자〉
  • 북한의 정책노선 딜레마/“경제난 타개” 제한적 자본주의 실험

    ◎체제붕괴 우려해 시장개방에 한계 과연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반세기 가까이 북한을 철권통치했던 김일성의 사망 2주기(8일)를 맞이하면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김일성의 유산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의 상속자 김정일에 의해 충실히 계승되고 있다.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등 그의 생전의 노선이 「김일성 없는 북한」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이는 『김일성만 죽으면 북한도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하게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철옹성처럼 변화를 거부하던 북한체제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무엇보다 눈에 두드러지는 변화는 조심스럽지만 폐쇄와 고립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다. 서방자본과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물론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라는 좁은 울타리내이긴 하다. 경수로 건설 예정지인 함남 신포에 수차례에 걸쳐 남한 기술진을 포함한 외부 관계자들을 불러들인 사실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이중적 노선은 주변국과의관계에서도 나타난다.종래 「철천지 원쑤」로 간주했던 미·일과는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남북대화는 계속 거부하고 있다.이른바 「통미봉남」 노선이다. 이같은 양면성이야말로 김정일체제의 본질이자 한계다.김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주체사상과 같은 「혁명위업」 계승을 부르짖어야 하나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선 이를 청산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자력갱생 위주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해야 한다.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대외개방은 물론 부분적이나마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올들어 북한이 자본주의적 영농방식을 「실험」하고 있다는 첩보도 정부당국에 의해 입수된 바 있다.북한의 일부 지역에서 10가구를 한묶음으로 토지를 분배한뒤 생산과 처분을 자율화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북한」이 중국 수준의 시장사회주의로 전환할 기류는 아직도 엿보이지 않고 있다.중국은 지난 70년대 공산당대회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사회주의 경제의 「보완수단」으로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경제·무역·농업등 3대 제일주의를 외치면서도 여전히 제한적인 개방에 머무르고 있다.체제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나마 구조적 체제개혁이 뒤따르지 않는한 부분적 개방의 효과도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김정일 스스로 필승불패로 규정한 「우리식 사회주의」의 장래가 결코 장미빛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구본영 기자〉
  • 남한TV 북한서도 본다/KEDO·북 원칙합의

    ◎신포파견기술자 위성방송 수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은 지난달 대북 경수로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 우리 기술자들이 함경남도 신포지역에 상주하게 되면 이들이 무궁화위성을 통해 남한 TV위성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는 7일 『북한측과 통신의정서 협상시 경수로 사업이 본격화돼 우리 기술자들이 신포에 상주하게 되면 무궁화 위성을 통해 남측 TV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양측이 격론끝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구본영 기자〉
  • 「김일성 없는 한반도」 2년(사설)

    8일로 김일성사망 두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그때보다 더 나빠진 북한내 상황과 남북관계를 보고 착잡한 심경을 금할 길이 없다.김일성 없는 한반도에 금방 화해와 교류가 싹트고 통일의 길이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낙관론이 얼마나 단견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지난 2년 북한은 생존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몸부림쳐왔다.그러나 극심한 식량난 속의 아사자 발생과 탈북현상의 가속화가 보여주듯 체제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김정일은 아직 공식적인 권력승계도 못한 채 사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이른바 「유훈통치」로 북한을 이끌어가고 있다.경제파탄을 비롯한 북한의 내부사정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남북관계 역시 2년전보다 경색됐다.북한은 김일성사망 이후의 「조문파동」에 대한 사과를 대화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며 「남한당국 배제」논리를 합리화하고 있어 당국간 대화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그동안 우리는 3차례의 북경쌀회담,쌀15만t 지원,4자회담 제의등 관계개선노력을 부단히 전개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주민을 상대로 대남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이 94년 제네바 핵 합의를 기점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여 각각 연락사무소개설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은 지난 2년간 북한의 변화 가운데 가장 특기할 일일 것이다.평양은 미·일등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체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것 같다.이유야 어떻든 근자에 북한이 대외개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북한의 변화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남북화해·교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국가적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북한의 곤궁을 도울 수 있는 건 결국 동족밖에 더 있는가.북한은 부질없는 적화통일의 망상에서 벗어나 남쪽의 동족과 무조건 화해해야 한다.우선 우리가 제안한 4자회담에 호응하여 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터야 할 것이다.
  • 지방자치시대 새 문화현상/유적박물관 건립 붐

    ◎지역의 역사적 특성부각… 애향심 고취/관광사업과 연계 소득증대 “일거양득”/충북 단양·강원 양양·경기 연천 등 사업 구체화 전국 여러지역의 문화유적보존운동이 유적박물관건립과 같은 실체로 떠오르고 있다.현재 유적박물관 건립을 구체화한 지역은 충북 단양,강원도 양양,경기도 연천 등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움직임은 중요문화유적을 영구히 보존하면서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리기 위한 지방자치시대의 문화현상으로 풀이 된다. 충북 단양군은 오는 97∼99년까지 1백50억원을 들여 수양개 선사 유적박물관을 세우기로 했다.그 후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후기 구석기유적 바로 이웃인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산24의1 언저리 2만평.수양개유적박물관 규모는 유적및 유물전시관,생활사전시실,세미나실을 포함한 연건평 1천5백평의 3층건물로 되어 있다.그리고 2만평 부지에는 야외 선사유적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단양지역은 남한강 수계의 석회암지대.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선사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한데유적과 동굴유적이 널려있다.그동안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를 비롯,매포면 금굴,가곡면 구낭굴 등의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었다.이 가운데 대표 유적은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유적.지난 81∼85년 수양개유적을 발굴한 충북대박물관은 긁개,슴베찌르개,주먹도끼 등의 석기와 집터를 찾아낸 바 있다. 수양개유적 출토유물은 모두 3만여점.이 가운데 2만5천점은 충북대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단양 수양개유적물박물관은 수양개유적출토유물과 구낭굴에서 나온 사람 뼈화석,꼬리원숭이 화석을 포함한 각종 동물화석들을 꿰맞추어 전시할 계획.동물화석은 꼬리원숭이 이외에 사슴·곰·호랑이·시라소니·오소리가 들어있다.그리고 최근 충북대가 수양개유적 제2지구에서 발굴한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의 유물도 전시물로 채택했다. 강원도 양양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유적지에 선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오는 99년까지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산리선사박물관(3백평)을 세우고 밖에 야외전시장(3백평)을 꾸밀 계획이다.서울대박물관이 지난 81∼87년 발굴한 오산리유적에서는 14기의 집터와 각종 토기·뼈낚시·돌톱·흑요석연모,점토제 인면상 등이 출토되었다. 경기도 연천군은 연천읍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에 선사유적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이미 4천평의 땅을 확보했다.앞으로 1만평의 땅을 더 사들여 한탄강유역 관광과 연계한 유적공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약42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러한 유적박물관건립 붐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지역의 역사적 특성 부각 말고도 관광과 연계한 지방자치시대의 지역소득 증대 목적이 그것이다.〈황규호 기자〉
  • 남한인구 4천5백40만 북의 2배/96 유엔인구보고서

    ◎세계인구는 58억4백10만명 96년 현재 남한의 인구는 4천5백40만명으로 북한 인구 2천4백30만명의 2배가량이다. 30년 뒤인 2025년에는 남한과 북한의 인구는 5천4백40만명과 3천3백40만명으로 늘면서 남·북한 인구비율이 1.5 대 1로 격차가 크게 줄어든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5일 세계인구의 날(11일)을 앞두고 펴낸 한글판 「96년도 세계인구보고서」는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 전체인구가 96년 6천9백70만명에서 2025년에는 8천7백80만명으로 26%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엔은 2000년까지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남한 0.9%,북한 1.6%로 북한의 인구증가가 남한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다.이 기간 도시인구 성장률은 남한이 2.1%,북한이 2.3%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은 올해 현재 세계인구는 58억4백10만명이며 오는 2025년에는 82억9천4백30만명으로 42.9%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조명환 기자〉
  • 강원도 건봉산 일대를 가다/DMZ 생태계 보존 캠페인

    ◎6·25로 파괴된 산림 금단의 세월속 제모습/활엽수 빽빽… 산양 등 희귀종 출몰/「지뢰지대」 팻말 사이 초롱꽃 활짝/“성인병에 특효” 엄나무 통째로 베어가 수난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사천리 고진동계곡은 DMZ 남방 한계 철책선을 넘어 공동경비구역안까지 자락을 길게 드리우고 있다.고진동계곡을 품에 안은 건봉산(해발 911m)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그러나 산세가 험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럽다.건봉령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숨가프게 오르다 보면 군 막사가 들어선 야트막한 언덕턱이 시야를 채운다.독도다.산 초입에 위치한 건봉사에서 수양을 마친 스님들이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 이 곳에서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살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을 따라 계곡이 펼쳐진다.하지만 숲에 가려 계곡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들린다. 계곡은 북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철책선은 계곡을 두쪽으로 갈라 놓았다.철책선 바깥쪽 공동경비구역은 야생 동물의 낙원이다. 산양과 멧돼지,오소리가 목을 축이기 위해 하루에도 두세번씩 찾아온다. 특히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은 남한지역에 겨우 몇십마리만 남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이다. 최근 학계조사팀은 고진동계곡 공동경비구역안에 산양 십여마리가 살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철책선을 지키는 한 초병은 며칠째 산양 두마리가 건너편 숲에서 내려와 물을 먹고 갔다고 귀띔했다.출몰지점에 카메라 앵글을 맞춰 놓고 한낮을 기다렸지만 허탕을 쳤다. 안내장교는 고진동계곡은 물론 건봉산의 반대편의 오소동 계곡에서 지난 해말 호랑이와 곰을 목격했다는 보고를 받고 수색작전을 펼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는 그렇다 하더라도 곰이라도 봤으면 했지만 기대에 그쳤다. 고진동계곡은 경사가 급하고 길이가 짧다.굽이치는 계류가 휘감아도는 곳에는 여지없이 집채만한 웅덩이들이 형성돼 있다. 물이 맑고 한여름에도 수온이 20도를 넘지 않는다.그래서 깊은 계곡에만 산다는 산천어를 비롯,버들가지,금강모치,미유기같은 희귀어종의 서식처로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췄다. 잉어과에 속하는 버들가지는 휴전선 이남에서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서만 발견된다.고진동 계곡은 분포지의 상류이므로 보존가치가 높다.메기과의 미유기와 금강모치도 우리 나라에서만 나는 고유어종이다.지리적으로 격리된 상태에서 조상종으로부터 어떻게 진화됐는지를 규명하는데 중요 어종이다. 계곡의 중·하류 수역에는 동해로 유입되는 다른 하천에는 살지 않는 피라미와 퉁가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로 관찰된 적은 없다. 금강산의 말산으로 일만이천봉의 한 봉우리에 속하는 건봉산은 백두산∼금강산∼태백산을 잇는 척량산맥의 허리이다.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혼재돼 있고 야생 동·식물의 분포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몇 안남은 곳이다. 취재팀은 6·25 전쟁통에 파괴됐던 산림이 40여년의 세월동안 빠른 속도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진동계곡의 비경을 더듬으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는 동안 신갈나무,가래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류에 속하는 활엽수림이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다. 동부전선 산악지역특유의 수종인 상수리,피나무,물푸레나무,생강나무도 촘촘하게 서 있었다. 동행한 이은복(53·한서대 식물분류학 전공)교수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기후특성상 활엽수림대이지만 유교에서 비롯된 뿌리깊은 존송사상과 화전이 횡행하면서 활엽수가 크게 줄고 소나무숲이 인위적으로 형성됐었다』면서 『전쟁으로 산림이 크게 훼손됐고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덕에 원래 주인인 활엽수가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능선을 따라 군데 군데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을 가리키며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가 세탈(빗물에 산정상 부근의 흙과 함께 흙속의 자양분이 산 아래로 쓸어내려가는 것)현상으로 토양이 척박한 능선에만 일부 남아있다』며 『10∼20년 뒤에는 능선지역도 본래대로 활엽수가 재점령할 것』으로 내다봤다. 계곡을 끼고 앉은 숲어귀에서 청호반새 한마리가 불쑥 날아올라 건너편 숲으로 사라졌다.붉은 색 부리에 하늘색 깃털의 청호반새는 이름 그대로 계류에 사는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다.이밖에 노랑할미새,휘바람새,노랑턱멧새,어치 등도 관찰됐다. 「미확인 지뢰지대」라고 적힌 팻말이 박혀 있는 길가에는 연두색 초롱꽃이 피어 있다.꽃잎과 꽃받침이 각각 5장이라 5수성식물에 속하는 이 꽃은 「녹색천지」인 주위의 풀들과 뒤섞여 언뜻보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개를 숙인 채 핀 모습이 영낙없이 촌색시를 연상케 했다. 계곡 건너편 언덕 위에는 박쥐나무가 손짓했다.끝이 세갈래로 갈라진 채 바람끝에 살랑거리는 잎은 이름처럼 거꾸로 매달린 박쥐가 날개짓을 하는 모습이다.3∼4㎝ 길이의 노란 꽃은 8장의 꽃잎을 벌린 채 지면을 향해 축 늘어져 있다. 목련과에 속하는 함박꽃나무는 「북한목련」으로 통한다.개화기의 뒤끝이지만 자태는 그윽하다.10m 가량의 큰 키에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는 수십송이의 새하얀 꽃이 노란색 암술을 빨간 꽃밥으로 떠받치고 있고 이를 6장의 꽃잎이 다시 감쌌다. 수십송이가 한데 모여 마치 흰솜을 뭉쳐놓은 듯한 형상의 조팝나무도 계곡의 신비를 더해준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반도 중부 이북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금강제비와금마타리도 바위틈에서 목격됐다.개화기가 아닌데다 평범한 외양때문에 언뜻 보기에 잡풀처럼 보여 놓치기가 쉽지만 우리나라 특산의 고산식물들이다. 고개를 드니 20m를 웃도는 키가 훌쩍 큰 나무 한그루가 시야를 꽉 채웠다.낙엽활엽수의 일종인 엄나무였다.잎의 끝부분이 5∼9개로 갈라졌고 가지에는 가시가 무성했다. 가지를 대문에 걸어놓으면 귀신을 쫓는다해서 사랑받던 나무다.하지만 최근 성인병에 특효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교수는 『어린 가지를 잘라 닭백숙 요리에 넣어 삶거나 심지어 개두릅이라 불리는 새순을 나물로 무쳐 먹기 위해 나무를 통째로 베어가는 일이 흔하다』고 일러준다. 털조록싸리,다래꽃,지느러미 엉겅퀴 등 제 철을 맞은 식물들도 특유의 자태를 뽐내며 건봉산을 수놓고 있었다.건봉산은 철책선의 긴장이 무색하게 이제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건봉사/생태계 복원 비밀 담은 현장/6·25로 사찰·주변 생태계 전소… 최근 재건/화재전 주종이룬 소나무군락 자취 감춰 서울에서 진부령을 넘어 통일전망대쪽으로 20여분 달리다 보면 「금강산 건봉사」라는 팻말을 만난다. 건봉산의 초입에 위치한 건봉사는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세워진 고찰이었지만 6·25 때 전소됐다.지난 94년 민통선지역에서 풀렸고 재건작업이 한창이다. 건봉사를 생태학자들이 주목하는 까닭은 사찰과 함께 불에 탔던 생태계가 어떻게 복원됐는지를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웃한 고성산불 피해 지역을 되살리는 해법도 이곳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건봉사터 일대 곳곳에서는 자연의 신비로운 치유력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빽빽한 신갈나무 군락을 사위에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건봉사의 식생이 건봉산의 일반적인 생태와 많이 달라진 점이 관찰됐다.건봉산의 고진동 계곡과도 차이가 났다. 불에 타기 전 사찰 주변에는 소나무를 주종으로 잣나무,전나무 등 침엽수와 주목,신갈나무 등의 활엽수가 드문 드문 섞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소나무 군락은 찾아볼 수 없다.다만 40여 그루의 큰 소나무들이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을 대변해줄 뿐이다. 더군다나 건봉사 경내의 생태계도 상당 부분 훼손됐다.사찰 재건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찰 입구 계류변에서 자라던 달뿌리풀 군락,경내 평지의 개망초와 잡초는 자취를 감췄다.개망초는 절터가 과거에 경작지였음을 알려주는 근거다. 경내 곳곳에서 새콩,새팥,들콩 같은 콩과 식물이 흥미로운 혼합군락을 이루고 있었다는 학계의 보고도 확인할 수 없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이은복 교수는 『민통선구역이 해제되기 전까지 건봉사 터는 생태계의 재생이 이루어진 상태였다』며 『사찰 신축 공사로 많이 훼손된 것같다』며 아쉬워했다.
  • 북한,대미자세 180도 달라졌다

    ◎올들어 「반미투쟁 월간」 자취 감춰/주적 대상 탈피… 관계개선에 주력 『북한의 대미 자세에 「코페르니크스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 정부당국자는 30일 북한이 올들어 종래 미국을 「주적」으로 삼아왔던 자세에서 급격히 탈피하고 있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했다. 북한의 대미 자세전환의 결정적 징후는 올들어 이른바 「반미 공동투쟁월간」이 슬그머니 사라진 점이다.지난 59년 이래 매년 6월25일부터 7월27일까지 약 한달간 연례적으로 전주민을 총동원해 펼쳐오던 대대적인 반미선전공세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북한은 지난 91년까지는 매년 「반미 공동투쟁 월간」을 지정,북한 전지역에서 반자본주의사상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각종 행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였다.긴장된 동원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내부단합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아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및 정당단체들과 공동으로 「조선 인민과의 연대성행사」를 이 기간 동안 병행해 국제적인 반미,반한투쟁을 선동하기도 했다.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개선 필요성을 절감한 이후인 92년부터는 행사규모 자체를 눈에 띄게 축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해는 6월25일부터 7월27일까지를 「범청학련 반미 평화월간」으로 설정했다.그래서 반미투쟁 선동이 아니라 아예 조·미 기본합의서 이행을 부르짖으며 적대관계 종식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분단이후 북한의 혁명전략의 양대축인 「반미 자주화투쟁」과 「반파쇼 민주화투쟁」중 전자가 사실상 실종된 것을 뜻한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앞당기기 위한 본격적인 정지작업일 것이다.북한이 대미 관계개선과 이를 통한 유·무형의 지원획득이야말로 그들식 표현대로 체제생존을 위한 「중심고리」로 간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도 이 점을 강조했다.즉 『북한을 지탱해온 중요한 수단이었던 대미 적대정책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정책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때문에 이같은 자세전환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대남 적대정책의 강화로 투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김정일의 북한체제가 의도적으로 대남 긴장을 고취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이라는 「주적」이 사라진 마당에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켜 그들의 취약한 정권기반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다.최근 격화되고 있는 북한의 대남 비방도 이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구본영 기자〉
  • “4자회담 전폭 지지”/G7 정상회담 폐막

    【리옹=박정현 특파원】 서방 선진7개국(G7)정상들과 러시아는 한반도 4자회담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지난 29일 22차 연례 회담을 마치면서 채택한 의장(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성명에서 한미 양국이 제안한 4자회담을 비롯해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모든 제안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남한과의 대화 및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북한에게 촉구한다』며 이는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남북대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IMF 출연금 확대/한국,G7 요청 수용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은 한국정부가 주장해온 국제통화기금(IMF) 출연금 증액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외무부가 30일 밝혔다.
  • 주공 김동규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10월께 주택 1백만호 건설 돌파”/엄격한 설계기준·시공사 선정… 부실공사 방지/마이너스옵션제·주부모니터제 “호평”… 미분양 크게 줄어/주택정보·금융업 등 진출… 사업영역 다각화 대한주택공사 직원들은 요즘 한결같이 『일할 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윗사람 눈치 볼 필요없이 자기 권한 안의 일에 충실하고 그에 대한 책임만 분명히 지면 되기 때문이다. 주공의 신나고 보람찬 근무 분위기는 지난 94년 2월 김동규 사장(64)이 부임하면서 부터 싹텄다. 관계와 재계,정계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김사장은 『처음 이곳에 와보니 경영이 너무 중앙집권화돼 사장 한 사람의 지시와 결재에만 움직이는 지극히 보수적인 조직이었다』며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본부조직을 축소하고 지방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조직개편과 함께 사장결재사항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부사장과 본부장들도 모두 자기 결재권의 절반씩을 하부조직에 위임,이제는 실무진의 자발적이고 책임감 있는 근무 틀이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1일로 주공창립 34주년 기념일을 맞은 김사장으로부터 회사현황과 미래비전 등을 들어 보았다. ○고객요구 즉각 시정 ―창립일을 축하합니다.지난 34년간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건설에서 보여준 주공의 역할은 정말 컸습니다. 『주공은 지난 62년 창립이래 주택 1백만호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오는 10월쯤이면 대기록이 달성될 전망입니다.이는 우리나라 총 주택 건설호수의 11%로 국민 주거생활 안정에 주공이 기여한 바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자만하거나 만족하지 않습니다.건설시장의 개방과 본격적인 지방자치제의 실시 등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적극 대처하고 있습니다.21세기의 새로운 생활공간을 창출하는 선도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노력도 계속될 것입니다』 ―21세기의 비전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수립했습니까. 『단순한 주거공간개념의 주택건설에서 탈피하고 풍요로운 생활공간의 창출을 통해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생활방식의 다양화와 삶의 질 추구 등 미래사회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국민 정보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주택정보사업,사업기획·설계·감리 등의 엔지니어링사업,할부금융을 포함하는 주택금융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해 나갈 계획입니다.비전 실천전략으로는 「경영이념」과 「사원정신」을 새로 제정,시행하고 있습니다.기본전략은 21세기를 대비한 사업의 고도화 및 영역확대,고객지향적 마케팅체제 구축,미래지향적 조직과 인사제도 개선,경쟁력 우위의 연구기술력 확보,신바람나는 공동체 실현 등 5가지로 정했습니다』 ―민간 건설업체들은 부실공사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많습니다.그러나 주공이 부실공사를 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는데요. 『부실공사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주공이 지은 집이 튼튼하다는 것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다만 건설대상이 서민주택이고 원가를 절감하려다 보니 좋은 내부 마감재를 못쓰는 점이 아쉽습니다.우리는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설계기준의 엄격한 적용과 구조체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철근 콘크리트아파트의 내구연한은 65년입니다.일본 등선진국 아파트의 수명과 같은 수준으로 설계하고 있지요.시공업체에 대해서는 3번 이상 경고를 받으면 아예 입찰자격을 안줍니다.반면 정기적인 종합평가 결과 우수업체에 대해서는 지명경쟁 입찰권을 부여합니다.특정 업체를 지정해서 입찰권을 주어 수의계약 할 수 있는 혜택을 주지요.이 때문에 업체들도 우수시공업체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분양가 자율화 빨라 ―민간업체들의 주택 품질경쟁이 치열합니다.주공도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는 신경을 써야 할 텐데요.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시대가 됐습니다.주공도 좋은 품질의 집을 짓기 위해 입주자들이 원하는 형태로 설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거실이 넓은 부부용 주택이나 방 숫자가 많은 부모동거형 주택 등 5개 유형을 개발해 기호에 맞는 집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독신자나 자유직업인 등을 위한 원룸주택도 개발했습니다.도배나 싱크대,각종 전열기구 등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마감재는 「마이너스 옵션제」를 도입,입주자가 원한다면 마감재값 만큼 빼주고 기호에 맞는 것을 쓰도록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주부모니터제를 도입해 수요자의 요구사항을 조사하고 불편한 점을 곧바로 시정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분양가 자율화에 대한 주공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분양가 자율화는 시점만 남았습니다.시장경제원리에 맞게 언젠가는 돼야 하지요.그러나 아직은 물가를 제외하더라도 시장경제에 문제가 많습니다.정부에서 주택가격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실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주공의 입장에서는 질 좋은 서민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적어도 서민들의 주택문제가 거의 해결될 단계까지는 주공주택에 대해서는 자율화를 할 수 없습니다』 ○순환재개발 확대 ―올해의 중점 추진업무는 무엇입니까. 『주공은 매년 6만∼7만호의 주택을 건설·공급함으로써 국민의 주거생활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올해에도 총 6만호의 주택을 전국에 걸쳐 고루 건설하고 있습니다.소요 사업비는 3조4천억원입니다.주택 유형은 공공임대주택 1만5천호,공공분양주택 3만호,근로자주택이 1만5천호입니다.중점 추진업무는 우선 부실시공 근절을 위해 설계는 물론 현장에 반입되는 건설자재의 철저한 품질관리와 시공과정의 감리감독을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또 노후·불량주택이 밀집된 대도시지역의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올해에는 6개지구 6천7백호의 재개발사업을 추진중입니다.환경보존운동에 부응키 위해 환경친화형 주거단지 모델개발 및 생태조경 설계개발 등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연구개발 부문에서도 국제적 규모의 주택종합연구센터 건립을 추진,주택전문기관으로서의 중추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서울 신림지구에 국내 처음으로 순환재개발방식을 도입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어떤 방식입니까. 『재개발구역 인접지 또는 그 구역의 일부에 주택을 건설하거나 사업시행자가 보유중인 임대주택 등을 활용,공사중에 주택이 철거되는 주민들의 임시거처로 제공하면서 재개발구역을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입니다.이는 재개발사업 시행때 주민의 주거가 안정돼 철거민과 세입자의 이주문제등으로 인한 사업지연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습니다.이주대책에 소요되는 제반 경비도 크게 절약되고 공기단축,건설원가절감 등의 효과도 있습니다.내년까지 대도시를 중심으로 10여개의 재개발사업을 벌이는 데 이같은 방식을 확대 추진할 계획입니다』 ―주공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얼마나 됩니까. 『전반적인 부동산경기 침체와 실수요 감소 등으로 주공의 주택 미분양도 많습니다.민간 건설업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지난 연말에는 1만9천6백호나 됐습니다.그러나 정부의 주택시장안정대책 발표와 자체적 분양촉진 노력으로 현재는 9천호로 줄었습니다』 ○북한 연구팀도 가동 ―한양을 인수한 뒤 경영정상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까. 『지난 93년5월 한양의 법정관리 신청당시 중단됐던 아파트 1만8천가구의 입주예정자 보호와 5천여 하도급 및 자재납품업체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 주공이 한양을 인수했습니다.주공은 한양 인수이후 중단된 공사재개와 체불 자재납품대,하도급대,노임문제 해결에 주력했습니다.또 주공의 발주공사 중 매년 3천억∼5천억원의 물량을 한양에 배정하고 운영자금 지원 및 신용장 개설 등 영업활동에 필요한 보증을 섰습니다.지금은 한양 스스로도 외부 수주증가 및 경영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적자폭이 매년 크게 감소되고 있습니다.적자폭이 올해 7백억원으로 줄고 완전한 경영정상화는 2∼3년안에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연구팀을 신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해 최근 북한연구팀을 가동시켰습니다.자료수집에 어려움이 많습니다.북한의 주거상태,소유형태,주택보급률 등을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통일이 되면 주공이 할일이 많을 전망이어서 내부적으로 착실히 준비중입니다』 김사장은 서울대 법대(56년)를 졸업하고 이듬해 고등고시 행정과(8회)에 합격했다.공직생활은 재무부를 거쳐 대부분을 상공부에서 보냈다.상공부 동력국장·기획관리실장·중공업차관보 등을 역임했다.82년 대우로 옮겨 건설담당사장을 2년간 지냈고 정당에 투신,12·13대(서울 강동)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인터뷰=육철수 기자〉 ◎1백만호 건설하기까지/62년말 마포 450가구 첫 입주/미 원조기구 지원… 6층짜리 연탄보일러/75∼78년 잠실단지 세계 10위권 도약 계기 지난 62년 무주택 국민의 주거복지 향상과 공공복리 증진을 목표로 설립된 대한주택공사는 오는 10월 「주택건설 1백만호」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주택 1백만호는 우리나라 총 주택의 11%이며 부산과 대구시의 총 주택수를 합친 것과 맞먹는 물량이다. 한줄로 쌓아 올리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3백5개(2백70만m) 높이에 해당한다.건설에 동원된 연인원은 남한 인구의 5.7배인 2억4천67만명이나 된다. 주공주택 1백만호 건설은 질적인 면에서 국내에 아파트문화를 처음으로 도입,도시민의 주거문화를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위주로 바꾸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임대주택을 민간기업에 앞서 도입,도시 저소득 영세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14만여호를 건설·공급함으로써 공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주공의 첫 사업은 국내 아파트의 효시로 불리는 서울 마포아파트단지.62년12월 4백50가구가 첫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64년까지 총 6백42가구를 건립했다.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주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 아파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처음에는 수세식화장실,중앙집중난방방식,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0층 아파트로 구상됐다.그러나 미국 원조기구(USOM)측이 공사비가 비싼 철근 콘크리트아파트의 건설을 반대하고 국내의 전력과 연료사정 등을 고려,6층 연탄보일러 아파트로 변경 시공됐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마포아파트는 번화가인 명동을 옮겨놓은 듯했고 이를 소재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는 91년 재건축의 물결에 휩쓸려 숱한 영광을 뒤로 한 채 재건축사업 1호로 철거됐다. 지난 94년 11월 「폭파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철거된 남산 외인아파트도 주공이 70년대 초에 지은 것이다. 71년부터 79년까지 26만6천평 대지에 7천9백6가구가 건설된 반포아파트단지는 과학적인 종합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또 다른 주공의 자랑거리로 꼽히고 있다. 또 75년부터 78년까지34만4천평에 1만9천1백80가구를 건설,10만여명의 인구를 수용한 잠실단지는 주공을 당시 세계 10위권 주택업체의 대열에 올려 놓기도 했다.
  • “통일 20년뒤 「G5」 된다”/통일비용 총 2천조원

    ◎대외경제연 「2000년 통일」 전제로 전망 오는 2000년에 통일이 되고 통일의 부정적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오는 2020년에는 한국이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독일식의 경제통합이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통일비용은 최소 6천억달러에서 최고 2조5천억달러에 달해 남한경제의 안정을 위협할 정도의 엄청난 부담이 될것으로 우려됐다. 28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개최한 「남북한 통일의 국제경제적 의의」 세미나에서 황의각 고려대 교수는 「통일 이후 세계경제에서의 한국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2000년에 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경우 남북한 1인당 소득격차 1만3천9백87달러를 해소하는데 동원돼야 할 투자재원은 1조2천40억달러에 달하며 여기에 정치적,사회적,심리적 비용을 포함한다면 전체 통일비용은 2조5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기업구조,재산권,기업경영구조 등의 변화에 따라 대기업·중소기업간,산업부문간,사회계층간 불균형이 해소되고 이를 통해 남북한간 분업체제가 이뤄져 자동차,항공기,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물론 의복,기계공구,가구등 경공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산업발전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황교수는 이같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체제 확립에 성공하면 2020년에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경제조사연구소(ERI)의 만프레트 베르그너박사는 「독일통일 6주년의 회고­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남북한이 독일식의 경제통합을 이룰 경우 통일후 5년간에 걸쳐 남한경제가 북한경제에 모두 6천1백억달러를 지원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김주혁 기자〉
  • 「현대 한국정치 재성찰」 정치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 요지

    ◎특정지도자 중심 정당운영 탈피해야/경선통한 세대교체로 당내민주화 확립 시급/대북경협 민족경제공동체 기반형성 계기로 한국정치학회(회장 신정현)는 27일부터 2박3일동안 부산 파라다이스비치호텔에서 「현대 한국정치의 재성찰­전근대성,근대성,탈근대성」이라는 주제로 96년도 하계학술대회를 갖고 있다.다음은 이번 대회에서 발표될 논문 요지. ◇15대 총선과 한국정당정치의 과제(정용대 여의도연구소연구위원)=정당 운영과정이 비민주적이거나 인물중심적일 때 정당과두화,선거과정의 독점화,정당의 자기특권화 현상이 나타난다.새로운 정당정치 운영을 위해서는 우선 정당의 활동과 결정이 특정지도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독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개인이 아니라 정당이 핵심적인 정치단위가 될때 비로소 정당정치가 가능하다.중요한 것은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적절한 견제가 이뤄지도록 제도권내 민주화 의지를 높이고 의회내 정당의 정치적 의지가 수렴되도록 당내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일이다.세대교체와 당내 경선을 통한 인물 교체로운영의 효율성과 체제의 정당성을 보강해야 한다. ◇한국 원내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이정희 한국외국어대 부교수)=한국의회정치가 안정적 구도하에서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가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원내정치세력의 불안정성을 들 수 있다. 원내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의 특징은 첫째,정치지도자가 원내정치세력을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양태를 달리한다는 것이다.둘째,보스중심 정당운영,계파정치,당내 정책결정의 비민주성,정당간 이념과 차별성 부재도 정당정치의 파행과 직결돼 있다.셋째,이합집산은 잠재적 일탈과 통합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된 결과이다.넷째,이합집산은 특정 정치인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다섯째,13대 국회의 3당합당은 여야의 통합을 이룬 것이어서 이합집산의 범위와 가능성을 넓혀 놓았다.앞으로 원내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은 대폭적으로 자주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한국 지역감정의 역사적 배경­호남 포비아(Phobia)를 중심으로(신복용 건국대교수)=우리가 겪는 지역감정 문제는 호남 포비아(배격)를의미한다.지역감정의 핵심은 호남의 소외이다.이는 체제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된 소산이다.호남포비아의 이론적 공급처가 된 왕건의 훈요십조등은 호남에 대해 신라 유민들이 가지고 있던 적대감의 표현이었지 과학적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호남포비아는 천형이 아니라 인재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정구역을 개편해야 한다.도를 없애고 고려시대나 일본처럼 광역 군현제도로 바꿔야 한다.도를 없애면 지역감정이나 이로인한 포비아가 어느정도 극복된다.균형있는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이는 호남선의 복선화 같은 물질적 투자뿐만 아니라 능력위주의 인재등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남북대화의 과거·현재,그리고 미래(이창헌 조선대교수)=정부 일각에서 미·북,일·북 관계개선이 남북관계 개선과 별개로 급속히 진전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나 그럴 필요는 없다.이들 국가와 북한간 관계개선이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촉매가 되는 한편 한반도에서 북한의 우발적 행동을 억제시키는 견제장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대화전략은 시기별로 목표를 설정,장기적인 차원에서의 통일과 중기적인 차원에서의 평화체제 구축,그리고 단기적인 차원에서의 긴장완화를 정책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특구정책과 외자유치(남궁영 민족통일연구원연구위원)=북한은 나진·선봉지역을 경제특구로 분리운영,외국자본과 기술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향유하는 한편 소위 「자본주의적 오염」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외자유치가 북한체제에 미치는 제반 파급효과를 막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특히 북한은 중국에 비해 경제규모가 매우 작아 나진·선봉경제특구의 경제활동이 북한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에 비해 매우 클 것이다.한국은 대북 경협및 두만강 지역개발계획을 경제발전이외에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경제공동체 기반형성의 계기로서 활용한다는 견지에서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와 정치발전­지방자치의 문제점과 의회활동을 중심으로(이영 전부산광역시의회 운영위원장)=지방자치의 근본정신에 걸맞게 자치사무의 확대가 필요하다.자치사무의 예시건수를 늘리고 개별법에 의한 제한규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이 필요하다.지방자치기능과 밀접한 국가사무를 중점 조사,이양과 위임대상 사무를 발굴해 관련법의 개정을 통해 지방이양을 확대해야 한다.〈정리=박찬구 기자〉
  • 철기시대 집터 발굴 토기등 수십점 수습/단양 수양개 유적지

    충북대 박물관(관장 이융조)은 지난 7일부터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서기 1∼2세기쯤의 것으로 보이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 9기와 불땐 자리 1기를 확인,25일 공개했다. 수양개 유적지는 지난 83년부터 발굴조사를 통해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을 비롯해 신석기·청동기시대 유물이 광범위하게 확인된 지역으로 지난해에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 15기와 유물이 처음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철기시대 집터가 발견된 지역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2백m 지역에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집터는 밀집된 채로 확인됐고 집터의 형태는 모죽임 네모꼴(말각방형)을 띠어 집터에서 모두 불탄 흔적이 발견됐다. 이가운데 남북 8백45㎝,동서 6백30㎝ 크기의 집터에서는 가운데에 진흙띠로 돌려 만든 타원형 불땐 자리 흔적이 확인됐고 그 주변에서 토기단지등 토기류 7점,화살촉,그물추,옥구슬,불탄 밀,보리등이 수습됐다.〈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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