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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초기 「1국2통화」 바람직”/IMF 첫「한반도 통일」보고서

    ◎경제안정­비용절감에 도움 【워싱턴 연합】 국제통화기금(IMF)은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통일이 급속히 진행될 경우 통일한국은 독일의 경우처럼 당장 통화통합을 단행하기 보다는 일정기간의 과도기적 1국2통화(일국이통화)체제를 거쳐 단일통화체제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는 남북통일과 관련한 최초의 보고서에서 남북이 각각 다른 통화를 먼저 사용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병행실시하면 충격을 완화하고 초기 통일비용을 경감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통화통합의 경험과 한반도통일을 위한 교훈」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의뢰로 IMF 옛소련지역담당 연구원 권구훈씨가 작성했다. 보고서는 과도기적 1국2통화제도가 초기통일비용의 감소와 함께 남한의 거시경제 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북한화폐 가치의 신축적 변동을 통해 북한기업의 경쟁력을 보장하고 북쪽의 과도기적 일자리 및 생산고 손실폭을 줄일수 있다고 말했다.
  • 한보 청문회의 교훈/문용린 서울대 교수·교개위 상임위원(시론)

    어느 사이엔가 청문회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도 아주 흔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내로라 했던 사람들이 위축된 모습으로 앉아서,서슬이 퍼런 국회의원들의 불호령을 들으며 겁난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면서 청문회의 위력을 많은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 대체로 청문회의 진행과 그 내용을 보면서 두 가지 시각이 교차되고 있는 것 같다.하나는 『절망을 확인했다』는 시각인 바,앞뒤가 안 맞는 진술,후안무치한 태도,뉘우침과 죄의식이 결여된 자세,그리고 무대 뒤에서 벌어졌을 것으로 연상되는 정경유착의 냄새 등에 주목하면서 『과연 이 나라가 가능성이 있겠는가』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국민들의 시각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 다른 하나의 시각은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는 시각인 바,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비롯해서 현정권하에서 최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을 청문회장에 끌어낼 수 있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권위주의를 벗어나서,새로운 민주화의 어려운 첫걸음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애써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국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절망·위안 두가지 시각교차 물론 이 두 시각은 양립 불가능한 관점은 아니다.두 입장을 동시에 교차시켜서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어느 한쪽의 시각만으로 보기에는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가망없다고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청문회의 증인에게도 실망하고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도 실망하지만 『이젠 정말 가망 없다』라고 결론 내려서 어쩔 것인가?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계속 존재해야 하고 어쨌거나 국가가 있는한 정치는 존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청문회가 그 자체로 하나의 민주주의 발전 척도로 간주될 수는 있지만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미심쩍고 불안하다.따라서 이번의 청문회로 불거진 사태를 민주 발전의 한 징표로만 간주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그래서 이번의 청문회를 절망 상태에 이른 쇠퇴의 징표로 볼 것인가,권위주의의 굳은 껍질이 깨지고 탈각하는 고통의 징표로 볼 것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그 양극의 중간 어디쯤에서 청문회가 암시하는 역사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다시 말하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느낀 대한민국의 절망적 상태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권위주의의 오래되고 두꺼운 껍질을 벗고,민주주의를 싹틔우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가장 절실한 희망은 가장 절망스러울때 생겨나는 법이 아니던가? ○황장엽씨 어떻게 느꼈을까 얼마 전에 망명한 황장엽씨는 과연 이번의 청문회를 보면서 어떤 시각을 갖게 되었을지 궁금하다.이른바 절망의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아니면 『역시 대한민국은 다르다』는 시각을 갖게 되었을까? 청문회를 통해서 드러난 부패구조와 정경유착의 실상을 보면서 그가 북한에 있으면서 북한체제에 대하여 느꼈던 한계를 다시금 남한체제에 대해서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사상가이기 때문에 조금은 보는 시각이 복잡하고 균형적이 아닐까 생각한다.청문회를 통해서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런 잘못된 일을 드러나게 하고 시선을 끌게 하고 손가락질받게 하는 원천적인 힘이 어느 한 권력자에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을 그는 이미 꿰뚫어 보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대통령도 국민의 힘 앞에서는 자기 자식을 법앞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청문회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것이라 생각한다.
  • “황 리스트 조사 착수 안해”/권 안기부장 밝혀

    권영해 국가안전기획부장은 26일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고 현재까지 황장엽씨를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조사에 본격 착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권부장은 이날 상오 63빌딩에서 열린 국회정보위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황장엽리스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신문과정에서 황씨가 남한내 친북세력을 알고 있는지를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권부장은 우선은 황씨가 「조선논문」에서 밝힌 북한의 핵보유 실태와 전쟁준비 상황 등에 대한 진위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하고 당장 「황장엽리스트」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 냉방 시스템 석빙고 원리 실용화 가능

    ◎계명대 공성훈 교수 과학ㅇ의 달 학술대회서 밝혀/돌·흙·잔디·공기 활용… 온도 조절 거의 완벽/빙축열·지중 냉방 튜브시스템의 「원조」 주장 석빙고는 신라시대에서부터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겨울철 하천의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사용한 얼음 저장 창고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같은 석빙고의 장기적인 얼음 저장 원리는 현재 유럽 등지서 새로운 냉방 시스템으로 연구가 활발한 「지중 냉방 튜브시스템」「빙축열 시스템」의 원조라는 주장이 나왔다. 계명대 공대 건축공학과 공성훈교수는 26일 대덕연구단지내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과학의 달 기념 ’97한국전통과학기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논문 「경주 석빙고의 여름철 실내환경 조건에 관한 연구」를 통해 『석빙고는 구조와 기능,효과 면에서 우리 조상의 온·습도 조절기술이 완전 정착단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히고 『이 원리를 이용하면 아직 실용화가 안된 각종 천연 냉방시스템 개발에 새로운 전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수는 이번 연구를 위해 전국(남한 지역)에 남아있는 석빙고 6개의 내외부 구조를 조사하고 경주시 인왕동 반월성 안에 있는 보물 66호 석빙고에 대해서는 온도와 습도의 조건 및 분포,변화상태,온·습도 조건의 상관관계를 측정·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석빙고는 내벽은 열저장 능력(축열능력)이 가장 좋은 돌로 돼 있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으며 태양열로 인한 복사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에 잔디를 심은 구조로 돼 있다.겨울철 얼음은 차게 얼린 석실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얼음을 넣고 빼는 출입구는 작업자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구멍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봉분 형태로 덮었으며 출입구 상단부에는 바위로 턱을 두어 공기유입을 되도록 적게 함으로써 출입구를 통한 열손실을 최소화했다.또한 출입구 양옆에는 날개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겨울철 찬바람이 효과적으로 내부에 유입될 수 있도록 했고 천정에는 내부의 습기와 더운 공기를 배출하는 3개의 통풍구를 두고 있다.또한 바닥은 비탈지게 해 얼음 녹은 물이 밑으로 원활하게 빠지도록 했고 외부 바람에 의한 내부의 공기 유동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봉분 형태는 유선형으로 만들었다. 연구팀이 96년 8월말 실내 온·습도를 4일간 측정한 결과를 보면 실내 온도 조건의 분포 범위가 19.0℃∼20.3℃로 나타났다.이는 최고온도와 최저온도와의 차가 1.3℃에 불과한 것으로 실내 기온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통풍구 실내 온도의 교차범위도 2.7℃로 외기 온도의 교차범위 6.9℃보다 월등히 낮아 얼음의 장기 보관이 가능했음이 입증됐다. 공교수는 『석빙고 구조체의 축열성능과 잔디 식재에 의한 복사열의 효율적인 산란작용 등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히고 『현존하고 있는 6개의 석빙고가 동일한 구조인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일찌기 이 원리에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현재 외국에서는 겨울철의 냉기나 여름철의 온기를 6개월간 땅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하는 계절간 열저장시스템,지하에 열전도성이 좋고 내습성이 양호한 통기관을 매립해 여기에 공기를 통과시킨후 시원해진 공기를 여름철 실내 냉방에 사용하는 쿨링 튜브 시스템,값싼 심야전기를 이용해 얼음을 얼려 지하에 저장했다가 낮시간에 얼음을 통과한 찬공기를 이용하는 빙축열시스템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공교수는 『앞으로 공기유동 현상 해석등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석빙고의 원리를 규명,새로운 냉방 시스템의 실용화에 적용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 북한도 성비 불균형/북 인구센서스 내용

    ◎여 100명에 남 95명… 노인비율 남과 비슷/신생아·영아 사망률 아시아 평균보다 낮아 북한이 지난 94년초 실시한 인구총조사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총 인구◁ 93년말 현재 총인구는 2천1백21만명이며,성비(성비,여자 100명당 남자의 수)는 94.9이다.16∼24세 사이의 성비가 유난히 낮은 것은 이 연령구간에 속하는 남자들이 군복무 중이어서 집계에서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1백25만명으로 추산되는 군인들을 더하면 북한 총인구는 2천2백46만명으로 추정된다. ▷지역별 인구분포◁ 평양 인구는 총인구의 13.4%인 2백74만여명.평양이 전체 도시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8%에 불과하다.북한은 총인구의 61%가 도시에 거주한다. ▷인구동태◁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5.6%로 남한과 비슷하다.연간 인구 1천명당 신생아 출생비율과 사망률은 각각 19.8명과 5.5명으로,아시아국가 평균(출생률 24명,사망률 8명)보다 낮다.영아사망률도 14.1명으로 선진국 평균(11명)보다는 다소 높으나,아시아국가 평균(62명)보다는 훨씬 낮다. ▷노동력구조◁ 16세 이상 전 연령층을 기준으로 한 노동가능인구(군인 제외)는 총인구의 70.5%인 1천4백47만6천여명이다.이 가운데 실제 경제활동인구는 약 1천1백만명으로,완전고용에 가까운 76%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이고 있다.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68.9%)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 북한인구 93년말 2,121만명/군인 제외/보건사회연구원 분석

    ◎경제활동 참가율 76%… 남보다 16%P 높아 93년말 현재 북한의 총인구는 2천1백21만명(군인 제외)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경제활동인구는 1천1백만여명으로 완전고용에 가까운 76%의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을 나타냈다.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8.9%로 남한보다 20% 포인트 가량 높았다. 북한이 94년 1월3∼15일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의 도움으로 실시한 인구총조사 결과를 분석한 내용(노용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93년 말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63.1%가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은 23.5%,사무원은 13.4%로 노동자가 농민보다 약 2.7배 많았다. 산업별로는 공업부문의 노동력 규모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37.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농업(30.7%)교육·문화·보건(7.7%)등의 순이었다. 공업부문 인구의 비율은 93년 남한의 제조업 인구비율 23.5%에 비해 13.9%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노연구원은 『북한이 공업부문에서 인구비율이 높다는 것은 통일 이후 남북한의 산업구조 조정과정에서 북한지역 주민의 대량 실업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북한의 경제활동참가율 76%는 90년 현재 남한의 경제활동참가율 60%는 물론 공산체제가 붕괴되기 전인 85년 옛소련(70.8%),폴란드(70.8%),옛동독(71.8%)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노연구원은 『공장 가동률이 30%도 안되는 상황에서 완전고용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노동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과잉 배치됐거나 불필요한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원일씨 「불의 제전」 18년만에 7권 완결

    ◎한국전 발발전후 시대상·후방 참상/사실주의 바탕 50년 1∼10월 민중의 삶 그려/「좌익의 길」 걸었던 작가의 선친도 등장시켜 한국전쟁이 끝난지 반세기만에 사실주의적 시각에서 민족사를 소설화한 작품이 출간돼 문단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원일씨(45)의 장편소설 「불의 제전」.「태백산맥」에 이어 분단과 통일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지난 80년 「문학과 사상」지에 연재를 시작해 18년만에 7권으로 완결했다. 방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과 달리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의 기간만을 시간적 무대로 택했고 공간적 배경도 서울과 경남의 작은 도시 진영만으로 한정해 작품의 사실주의적 성과를 높이려 했다.또 과거회상과 현재형이 반복되던 연재시절과는 달리 주요 날짜별로 진행과정을 현재형으로 서술해 역사적 현장감을 높이고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데 주력했다. 특히 이 소설은 1백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통해 전쟁전 남한의 농지개혁과정·소작농의 집단항쟁·전쟁중 후방에서 겪는 참상 등을 진솔하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시대관과 이념관을 철저하게 객관화하려고 노력하고 좌·우 이념의 편가르기식 구분을 지양했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이 운동권적 시각이 팽배하기 시작하던 80년에 집필을 시작해 90년대 들어 세계곳곳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잇달아 몰락하는 격동의 시절을 거쳐 소설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50년 그때 그대로의 시대상과 삶을 재현하려는 「아집」이 작품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해방이후와 한국전쟁이란 공간은 어떤 인간도 예외없이 가장 진솔하고 감동적인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준다.그런 의미에서 「사실주의 소설미학을 신뢰하며 그 시대를 다양하게 파헤쳐 우리 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작가적 욕심이 현실참여가 우선된 작품들과는 또다른 맛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지주가 소작인에게 살해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닭싸움으로 끝나는 10개월동안의 민중의 삶이 3인칭 시점으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도 이 소설이 갖는 특징이다. 이 점에서 「불의…」는본격 분단문학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조정래씨의 「태백산맥」과는 다른 차원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조민세」가 당시의 많은 지식인들처럼 좌익의 길을 걸었던 작가 자신의 선친을 그린 것이라는 점도 이 소설의 사실성과 재미를 더해준다.
  • “북한 전쟁준비 먼저 밝히겠다”/황장엽씨

    서울생활 3일째인 황장엽씨는 22일 『현시점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북한의 전쟁준비 상태 등에 대해 밝힘으로써 남한 당국이 이에 대처하는데 조그만 힘이나마 도움이 되겠다』고 말한 것으로 관계당국이 밝혔다. 황씨는 또 정밀 건강진단을 실시한 결과 매우 양호한 상태로 나타났으며 심리적으로도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은 23일부터 황씨에 대해 북한 전쟁준비 상황을 비롯한 북한실상 등 관심사안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 북 파탄직면…체제붕괴 속단은 금물/황장엽 논문 「조선문제」 요약

    ◎남한 불바다·초토화 무력 보유/첩보공작 착근… 운동권 등 조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지난해 8월23일 작성한 「조선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22일 국가안전기획부가 공개했다.이 논문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민족을 통일하는데서 두측이 협력해야 하지만 남측이 주동이 돼야 한다.북측체제는 지금 파탄에 직면해 있다.그러나 북측체제가 쉽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첫째로,북한에는 강력한 무력이 있다.군대가 양적으로 남측을 2배이상 릉가하며 핵무기,화학무기,로케트 무기를 동원해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고 초토화할 수 있다.둘째로,북측은 남조선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기 위한 첩보공작에 다년간 힘을 기울여왔으며,남조선 땅에 깊이 뿌리를 뻗쳤다.지금 남조선 청년학생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들은 례외없이 다 북측 지하조직이 조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만일 미국이 남조선에서 군대를 철거하고 조선의 통일문제를 남북내부문제로 내맡긴다면 북측이 무력으로 남측을 제압하고 쉽게 통일할수 있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북측도 평화통일에 대해 말로는 떠들지만 철두철미 전쟁의 방법에 의거하려 하고 있다.북측은 전쟁을 하면 꼭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본토까지는 몰라도 일본까지는 초토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전격적으로 밀고 나가 남조선을 차지한 다음에 미국이 개입하면 일본을 초토화한다고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소요가 일어나는 것은 숨어있는 적들의 작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특히 군대와 경찰기관들과 국가기관들에 잠입해 있는 적대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면밀한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먼저 강력한 치안과,안보체제부터 확립해놓고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군대를 존중히 여기는 사회적 기풍을 세우고,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며 전쟁준비를 잘하여 불패의 태세를 만들어야 한다.우방의 지원에만 의거하는 것은 위험하다.북측이 핵무기,로케트무기,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만큼 이에 대처할 자체준비를 해야한다.미군주둔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한편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일본과남측은 국방의 면에서 완전히 공통적인 리해관계를 가진다. 북측이 지금 개혁개방으로 나가면 오히려 큰 우환거리로 될 수 있다.개혁개방을 하면 북의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고 인민생활도 정상화되어 정치적 기반이 공고화되고 군사력도 강화될 수 있다.북측 경제를 계속 약화시키고 그 결과 전쟁능력도 약화시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측이 군국주의 로선을 견지하도록 부추겨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측은 북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해 식량을 비롯해 소비품을 원조로 주고 중공업 발전에 필요한 전략물자공급을 저지시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북측의 경제적 자립성과 군수공업을 약화시키기 위한 경제 봉쇄정책을 계속 실시하는 동시에 북측 인민을 구원하기 위한 식량원조와 의약품을 비롯한 간절한 생활필수품 원조를 주는 것이 여러 모로 보아 좋을 것이다. 북측의 농업개혁을 될수록 지연시키고 남측에 대한 식량의존도를 높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그는 지금 자기 수중에 있는 무력을 동원해 우리 민족 력사상 최대의 비극을 연출하고 천추의 악명을 남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 황장엽씨 향후 역할(서울에 온 주체사상:하)

    ◎정보 보따리 풀면 북한사 「수술」 불가피/북 이념·권력투쟁사 파악 「고리」 기대/자문역 등 맡겨 활동여건 조성 필요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파악해온 북한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황장엽씨가 북경에서 망명신청을 한 직후 정부 당국자가 말한 이 한마디는 황씨의 정보가치를 단적으로 말해준다.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 사회의 폐쇄적 성격과 관련한 그의 지위에 주목하고 있다. 황씨는 우선 지금까지 남으로 넘어온 북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최고위때 권력서열 13위)이다.59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65년 김일성대 총장,70년 당중앙위원,72∼86년까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3차례 역임했고 85년 이후엔 국제담당비서를 맡아왔다.그의 인생 역정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북한 정권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특히 북한정권의 격변기에 이데올로기 정립을 주도,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는 북한의 이념 및 권력투쟁사를 파악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황씨는 또한 김정일의 스승이었고 김정일가의 숨겨진 이면사를 꿰고 있을수 있으며 특히 지금도 풀리지 않은 김일성의 사인을 포함해 김일성사후 2년7개월간의 권력 동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와 같은 구체적인 명단을 갖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입을 통해 남한내 친북세력이 규명된다면 남과 북을 함께 뒤흔들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연 그가 자신의 머리속에만 꼭꼭 간직한 정보의 보따리를 얼마나 풀 것인가이다. 정부는 일단 황씨가 『민족을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해 남의 인사들과 협의하고자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힌 망명동기에서 희망적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자신의 정보를 희망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춰주면 자발적 정보제공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황씨에게 정부의 대북정책 자문역이나 연구분석역 등을 맡기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는 월북한 최덕신 전외무장관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혀 융숭한 대접과 함께 선전에 이용한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이용의 배제라는 차원에서 공직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황장엽씨의 전쟁위험 경고/황병선 논설위원(서울논단)

    나라의 사정을 비교적 합리적으로 냉정하게 파악하려 애쓰는 사람에게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좀처럼 종잡기가 힘들다.곰곰 생각해보면 대단히 불안하고 우려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불안케 하는 것은 북한 권력서열 20위권에 있던 황장엽 비서의 남침위협에 대비하라는 절박한 전쟁경고다.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의 경고를 우리 국민 대부분이 철저할 정도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여기에 불안감을 더 가중시키는 것은 정부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안보상황의 실상이나 우리의 대비책을 명쾌하게 설명해 불안을 해소시켜주려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점이다. 당국의 침묵은 소위 「황풍」,안보위기론으로 한보 회오리의 국면전환을 꾀하려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지 않겠다는 인내인지 모른다.조용히 군사적 대응태세만 갖추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고 보았음직한 일이다. 하지만 안보문제는 과장도 안되지만 추호도 허점이 용인될 수 없다는 점에서 「최악의 가능성」을 전제로 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또 군사력 만으로 안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최악의 가능성을 포함한 모든 실상을 알려주고 그 바탕위에 국민적 컨센서스를 얻어낼 때 진정한 안보태세가 갖춰진다. ○국민에 실상 바로알려야 서울땅을 밟으며 황비서는 『전쟁을 막기위해 남으로 왔다』고 거듭 강조했다.그는 지난 8월 망명을 준비하며 작성한 논문에서 북이 무력적화통일 전략에 따라 기습전으로 남한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화학·로켓무기 등 막강한 군사력을 갖춰놓고 있다고 경고했다.또 식량·경제위기에 처한 북한이 설마 전쟁을 도발하랴고 생각한다면 부유하고 안일한 상황에 젖어 과거도 잊고 현실도 볼줄 모르는 머저리라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가 전하는 북의 실상이 미국·일본 등 우방들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 및 판단과 정확히 일치한다는데 있다.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은 21일 한미우호협회 포럼에서 북한 주민이 경제·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과 무관하게 북은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마지막 선택」으로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했다.북한의 붕괴 조짐과 도발 가능성은 최근 방한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샐리 캐슈빌리 합참의장 등 미국의 고위 국방관계자들도 계속 피력했던 내용이다. 코언 장관은 미국상원에 계류중인 화학무기금지협약 비준과 관련,북한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미 국방대학은 연례보고서에서 국제적으로 북한이 1천t가량 보유한 것으로 공인된 화학무기를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선택」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끔찍스런 경고를 했다. 지난 10일 코언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의 오판,또는 자포자기에 의한 도발에 대비하여 한미연합방위태세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한보태풍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코언 장관 등의 방한 의미가 패트리어트 미사일 세일즈용으로 격하되기도 한 실정이다. 아무리 보아도 북의 선택은 많지 않다.식량·경제난으로 그대로 주저 앉느냐,체제붕괴의 위험을 감수하고 개혁·개방으로 활로를 찾아 보느냐,아니면 그나마 남아있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최후의 모험을 해보느냐정도일 것이다.시간적 여유도 없어 보인다. ○민족비극 재발방지 노력 우리의 대책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북한이 도발에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개혁·개방으로 나가게 인도해야 한다.북이 오판과 도발 유혹을 피하게 하는 길은 우리의 철저한 대비뿐이다. 한보비리 척결을 소홀히 하자는게 아니다.경제살리기도 우리에겐 절박한 과제다.냄비끓듯 전 국민이 한가지 일에만 몰입하는 단세포 체질을 버리자는 것이다.국력 수준으로 보나 민주주의 체제의 특성상 세가지 일 정도는 함께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한보문제도 철저히 다루고 또 경제인은 경제에 전념하고 군이나 당국자는 안보문제에 매달려야 한다.한보든 안보든 공개할 것은 모두 밝혀 국민의 관심과 합의를 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국민들도 시야를 넓혀 세가지 일 모두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논의를 통해 풀어야할 문제는 그때그때 풀어버리고 필요한 대비책을 갖추도록 밀고가야 한다.이것이 황비서의 「머저리」면박을 피할뿐 아니라 또한번의 민족적 비극을 막는 길일 것이다.
  • “황씨 조사 남북관계 손상없게”/정부/미의 직접신문도 허용키로

    ◎「황리스트」 없으나 친북세력 규명 정부는 21일 황장엽씨에 대한 조사와 관련,▲단기적으로 4자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고 ▲중장기적으로 우리 체제를 강화하고 통일정책을 보완하는데 중점을 두며 ▲조사한 내용은 대북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한편,원칙적으로 공개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웠다. 권오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황씨의 서울도착 이후 통일원,외무부,안기부 등 관계당국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따라 황씨의 근황과 조사결과는 공개할 예정이지만,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김정일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고위당국자가 말했다. 정부는 황씨를 상대로 김정일의 성향과 권력장악 정도,북한권력 핵심부의 의사결정 과정 등과 함께 권력내 군의 위상,군의 전쟁준비 상황 등에 대해서도 중점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황씨가 20일 「서울도착 인사말씀」을 통해 『민족앞에 큰 죄를 지었으며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공식 사과함에 따라 당분간 황비서의 전향을 강요하지 않고,조사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포기를 유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이 당국자는 밝혔다. 정부는 한국내 친북세력을 의미하는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와 관련,『황씨가 친북세력의 명단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 『그러나 황씨를 상대로 남한내부의 친북세력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황씨에 대한 조사기간중 남북적십자 대표 북경접촉 수용,인도적인 대북 식량지원,경수로사업 조기착공,남북경협확대 및 기업관계자 방북허용조치 등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관계당국의 조사가 끝난뒤 한미 정보 공조차원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이 황비서를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해줄 방침이며,일본측에 대해서는 황비서를 직접 면담시키기 보다는 우리측이 조사한 내용을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황씨 사상문제 정리 어떻게(서울에 온 주체사상:중)

    ◎정부 시간갖고 전향 유도키로/강요 대신 수시 자유토론/적용되면 사상 변화 기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과 관련해 정부 당국자들이 가장 고심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상」문제인 것 같다.황씨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연구한 사회주의자이고,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확립한 이데올로그이다. 황씨는 한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도 사회주의·주체사상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황씨는 20일 서울도착 인사말을 통해 『북한체제는 현대판 봉건주의와 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적 체제』라고 비판했지만,오히려 남한에서 올바른 주체사상에 대한 뜻을 펴고 싶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씨의 사상문제는 이미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자민련은 황씨의 서울도착을 전후해 『주체사상과 6·25전쟁 등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에 황씨에게 사상의 전향을 강요하지 않을 방침이다.올해 74세의 노학자에게 그같은 강요가 먹혀 들어갈 리도 없다.정부로서는 황씨와의사상논쟁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북한권력 깊숙한 곳의 정보를 얻어내 대북정책과 통일의 밑거름으로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정부도 「언젠가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다.아직까지 남아있는 미전향 장기수와의 형평성을 감안할 때도 황씨의 사상문제 정리는 불가피하다고 당국자는 말했다.정부는 공식적으로 황씨를 귀순동포보호법에 따른 귀순자로 규정하고 있다.정부는 그동안 받아들인 870명의 탈북자에 대해서는 「귀순=전향」으로 간주, 사상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귀순자를 조사한뒤 일정한 기간동안 관찰,남한의 체제를 완전히 인정하고 순응하게 되면 호적과 주민등록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정부는 황씨에 대해서도 시간을 갖고 전향을 유도할 방침이다.황씨가 남한체제에 적응해갈수록 사상적으로도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정부는 황씨가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국내학자들과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줄 예정이다.황씨의 사상적 태도에 따라 그의 대외활동 시기와 범위가 정해질 것이라고 당국자는 말했다.그가 대외적으로 기존의 사상을 고집할 경우에는 국내법에 따라 처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당국자는 말했다.
  • 황장엽씨 서울도착을 보며/최평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민주체제 포용력으로 감싸자 한국에 온 칠순의 황장엽 비서를 보는 시각은 통일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우선 황장엽은 그 근본이 철학자이고 그 나름의 민족주의자이며 북한 정권의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권력 소프트웨어 역할 황장엽은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1949년,그의 나이 26세에 모스크바 대학 대학원과 철학과에 입학하여 1년간 러시아어를 배우고 다시 3년간의 각고 끝에 1954년에 철학 준박사를 받고 귀국하면서 바로 김일성 대학 철학과장이 된다.그리고 김일성파·연안파·소련파들이 권력을 분점하고 전쟁복구 사업에 전력하여 북한 수준에서 학문활동공간이 있던 1956년 김일성대학 창립10주년 기념 논문집에서 학위논문 「부정의 부정 법칙」을 공산북한사회에 맞추어 발표하게 된다. 그 내용은 낡은 사회인 봉건사회가 부정된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고,그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모순의 부정이 공산사회이며,공산주의사회 역시 자기부정으로 한단계 높은 자기긍정의 통합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축적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문화와 우수한 생산시설은 그대로 계승된다는 발전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노동자계급을 공산사회주의에서 또 한번의 자기부정을 통해 단순노동자­피착취자가 아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역량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1956년 3월,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후루시초프가 밝힌 스탈린 개인숭배와 1인장기집권 비판 입김은 평양에도 들어온다.따라서 6·25전후복구와 경제발전의 지지부진함을 빌미로 소련파·연안파 제휴세력에게 협공당하던 1956년 제3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자주·경제적으로 자립,군사적으로 자위하는 국가를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자기운명을 개척하고 노동당 주위에 하나로 뭉치자는 주체이론을 정립한다.이 시기로부터 황장엽은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에 이론적 밑받침을 제공하고,이를 계기로 그의 나이 40대에 김일성 대학총장,50대에 최고인민회의 의장,60대에 사상담당비서,70대에 국제담당비서로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다.황장엽은 힘있는 집행부서보다는 사상 또는 국제분석 담당 분야에서권력 소프트웨어로서 일해왔다.러시아·중국,과거 동구 공산국가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는 외무장관,KGB 등 대외부서의 보고서를 종합하는 외교안보의 최고위직이지만 북한에서 그의 당내 권력서열은 20위에 불과하여 김영남 외교부장이나 같은 비서인 계응태,전병호,한성룡 등은 오히려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로서 고뇌 이렇게 황장엽은 권력 핵심부의 분명한 공산주의 사상가이기는 하지만,북한공산주의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올곧은 철학도였으며,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살리려 북한에서 남쪽으로 온 그나름의 민족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그는 6·25전쟁 전인 1949년에 소련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귀국하여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전범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극화논리 극복을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동기가 민족주의자로서 고뇌와 번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주체사상은 출범 초기에는 대내외 자주·자위·자립을 강조하는 정리된 하나의 이념체계였으나 70년대 이후 김일성 개인 우상화의 바이블이 되면서 황장엽은 스스로 이러한 변질된 김일성종교에 거리를 두게 되고,김정일은 아버지의 리더십과 차별화를 노리는 과정에서 스승인 황장엽보다는 신세대 황장엽을 대체하려는 것 같다. 그는 공산독재에 항거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던 북한판 솔제니친은 아니다.그러나 이제 남한에 오는 그를 북한에서 경험하고 본 바 대로 정직한 북한 현대사를 쓰게 하고 남한에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게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여,나머지 여생을 조용히 사색하고 집필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의연함을 보여줄 때이다.그의 망명으로 그의 가족은 물론 12촌 친척까지 숙청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고 보면 우리는 그의 인간적 비애를 이해하고,황장엽 리스트 폭로와 국내정국 타개용 카드 사용 그 자체가 국내정치적 이용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동시에 북한정보 획득같은 기술 접근방식보다는 원로철학가,북한전문가,지각있는 정보분석가들로 하여금 그의 대화 파트너가 되게 하여 본인 스스로가 자연스러운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황장엽을 보는 극우,극좌 논리를 극복한 우리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 “전쟁 막아 민족앞에 속죄”/황씨 자유품에­서울공항 인사말

    나는 이번에 갈라진 조국의 북을 떠나 남으로 넘어오게 되었다.나의 청원을 허락하여 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돌려주고 따뜻이 맞이하여 준데 대하여 대한민국정부에 충심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아울러 나를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끌어안아 주고있는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또한 나의 문제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준 중국과 비율빈정부에게도 감사를 드린다.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은 벌써 반세기 이상이나 분열의 고통을 겪고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나의 삶의 터전이었던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지 오래됐다.올바른 생각을 가진자는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으며 오히려견제와 감시속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주의,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적 체제로 변질되었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들어가고 있다.인민들은 기아에 신음하고 있으며 북조선 당국은 드디어 국제사회에 구원의 손을 내밀지않을수 없게 되었다.사회주의 지상락원을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던 나라가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되었다.이같은 사태는 북조선 정권의 그릇된 정책이 빚어낸 후과이다.북조선은 개혁개방을 비사회주의 길이라고 견결히 배격하고 있으며 남조선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무력적 힘의 대결만을 추구하고 있다.오늘 남북간의 대립은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의 대립이 아니라 봉건독재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이며봉건적 군국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제주의의 대립이며,전쟁과 평화의 대립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북조선 당국은 남북간의 대립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남한을 계급적 원수로 간주하면서 남조선 해방의 기치밑에 무력통일 방침을 정당화하려고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북조선 당국이 인민들을 굶어죽는 상태에 두고서도 개혁개방을 기어코 거부하고 전쟁준비에 계속 몰두하고 있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명백하다.이제 북조선은 수십년동안 전력을 다하여 키운 막강한 무력을 사용하는 길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것같다.이 모든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놓고 수십년간 신임받으며 지내온북조선당국의 고위간부로서,내외에 많은 벗을 가지고 있는 학자로서,사랑하는 가족과 많은 친우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생각은 끝없이 복잡하고 고민은비길데 없이 심각하였다.그러나 모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다 합쳐도 7천만 우리민족의 생사운명과 바꿀수 없다는 양심의 명령을 어길수 없었다.출로는 오직 남쪽 형제들과 손잡고 전쟁을 막아보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어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다.이 기회에 나는 북조선 당국이 남조선 혁명로선을 버리고 헐벗고 굶주리는 주민들을 기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줄 것을 진심으로 호소하는 바이다.나는 이미 민족앞에 큰 죄를 지었으며 부끄럽기 그지없다.이 죄는 그 무엇으로써도 보상하기 어려울것이라고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조금이라도 죄를 씻고 죽을수 있겠는지 그것이 걱정이다.그러나 남쪽 동포들이 허락만 해준다면 힘을 합쳐 전쟁도발을 막고 우리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마지막 힘을 다 바침으로써조금이나마 민족 앞에 속죄할 수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처음으로 유서깊은 력사의 도시,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보는 심정은 감개무량하며 그동안 민족의 영예를 떨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하여온 남쪽 형제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감사합니다.황장엽1997년 4월
  • 향후 남북관계 전망(서울에 온 주체사상:상)

    ◎남북한 해빙무드 큰차질 없을듯/우리정부 “정치적 이용 배제” 약속/미·중도 대북관계 급속변화 불원 북한 전 노동당비서 황장엽씨가 탈북,중국 북경과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것은 분단이후 한반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황씨의 서울 도착이 앞으로 남북관계,한국 내부의 사상문제에 미칠 영향과 그가 가진 정보가치 등을 씨리즈로 살펴본다. 전 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씨의 서울 안착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남북이 하기나름』이라고 잘라 말한다.남한과 북한이 「황장엽카드」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조심스레 낙관한다.이들은 낙관의 근거로 황씨 망명사건 이후 전개된 일련의 남북관계와 황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방침을 지적한다. 사실 황씨 망명 이후 급속히 악화될 것같던 남북관계는 오히려 이때부터 물꼬가 트여 우리의 희망대로 나아가고 있다.1년여를 끌어온 4자회담이 성사 단계로 접어들고 있고 중단됐던 남북간 경협이 재개됐으며 답보상태이던 경수로협상도 진전을 보고 있다.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황씨 사건의 악영향을 막기위해 그를 서울로 데려오는 시기를 수차례 연기하는 등 신경을 썼다. 남북관계와 밀접히 연계돼 있는 미북간의 관계도 진전돼 연락사무소 개설이 임박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방침도 그렇지만 황씨 망명 사건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점은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희망이기도 하다.중국은 황씨의 출국 전제조건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우리측에 강력히 요구했었다.남북관계 및 이와 연계된 한중관계에의 악영향을 우려한 것이었다. 북측 역시 황씨의 서울행을 문제삼아 현재 진전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려 하지는 않을 것같다.북한은 황씨의 망명요청 직후 이미 『배신자여,갈테면 가라』며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4자회담에도 전향적 자세를 보였었다. 특히 극심한 식량난이 북한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요인이 되고 있다.북한이 황씨 문제를 빌미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경우 이는 곧 외부로부터의 원조차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식량지원을 걷어차는 도박을 벌일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돌발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한 남북관계는 현 기조를 유지·개선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통일원 당국자는 『정부는 황씨 사건이 남북·한중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신중한 과정을 밟아왔다』면서 『문제는 그의 망명사실이 북한주민에게 널리 알려져 체제 내부의 불안이 높아질 경우에도 북한이 잠자코 있겠느냐는 점』이라고 말했다.
  • 미의 군축요구 계기로 본 북 군사비 분석

    ◎군사비 5%만 줄여도 식량난 해결/3억달러 전용 190만t 구입가능/비축 군량 절반 풀어도 기근면해 북한당국은 미국이 지난 15일 식량난 타개책으로 군비감축을 촉구하고 나오자 찔끔했을 것이다.수많은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자조·자구노력은 하지않고 외국에 도움의 손길만 요청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기 때문이다.군축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온 미국측의 논리는 한마디로 「식량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해 체제가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는데 1백만 군대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이 이번에 북한에 촉구한 군축은 탈냉전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막대한 예산을 들여 군사력을 계속 증강해온 북한이 남북한 상호감군과 불가침협정체결 등을 통해 군비를 줄여나간다면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우선 간단히 계산해서 군사비를 5%만 줄이더라도 이 자금으로 부족한 곡물을 수입하면 북한 주민전체가 1년간 굶주리지 않고 지낼수 있게 된다.북한의 군사예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있으나 96년말 현재 60억달러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지난해 11월 통일원이 내놓은 남북한 경제사회 비교 자료에 따르면 지난 94년의 북한 군사비는 국민총생산(GNP)의 27.2%인 57억6천만달러였다.북한은 남한의 GNP에 대한 군사비 비중이 3% 수준인데 반해 무려 그 9배에 이르는 막대한 군사비를 투입,전차 3천8백대,야포 1만1천문,전투함 4백30척,잠수함 35척,전투기 8백40대의 전력에 1백5만5천명의 병력으로 이뤄진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군사비를 5% 줄일 경우 여기서 전용 가능한 재원은 3억달러에 이른다.지난 19일 현재 국제곡물시세에 의해 이 자금으로 구입가능한 곡물량을 곡종별로 보면 ▲쌀의 경우 미국산 72만t,태국산은 95만t ▲옥수수 2백36만t ▲밀 1백77만t이다.쌀과 잡곡을 3대7의 비율로 섞어먹든가 쌀과 밀가루를 3대7의 비율로 먹는다면 1백90만t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식량이 어느정도 부족하느냐는 것이다.북한은 외국의 원조를 더 많이 얻어내기 위해 부족량을 부풀리고 있지만 관계당국은2백만t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 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3자설명회 후속회의에서 북한측은 올해말까지 2백50만t의 식량이 필요하다면서 1백만t은 자체조달이 가능하나 나머지 1백50만t은 국제사회로 부터 원조를 받아야한다고 말해 식량부족량이 1백50만t 안팎임을 시사했다.그렇다면 군사비를 줄여 마련되는 자금만으로도 식량난 해결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북한 군이 비축하고 있는 군량미를 절반만이라도 풀면 추수기까지는 북한 주민들이 견뎌나갈수 있을 것으로 우리 군당국은 보고 있다.현재 관계당국이 추정하고 있는 비축 군량비는 약 1백만t.지난해 12월 김정일이 군량미도 바닥이 났다고한 것은 곡물모으기를 독려한 것일뿐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최악의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은 현재 먹는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무너질 위기에 처해있다.외부로부터의 침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부요인에 의한 붕괴인 것이다.북한 지도부는 북한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주적으로 삼고 있는 남한이 아니라 식량난이라는 점을명심해 더 늦기전에 군비삭감과 군량비 전용으로 북한주민들의 굶주림을 막는 자조·자구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 황 비서 도착 즉시 사과해야/김종필 총재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18일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는 북한의 6·25 남침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으로서 남한에 도착하는 즉시 국민앞에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날 마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그가 사회주의 실패를 인정했지만 동족동족상잔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며 『그를 영웅시해서는 안되며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다 털어놓은뒤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최종판결과 관련,그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사면 운운하려면 뭐하러 재판을 했느냐』면서 『결자해지라지만 국민의 뜻을 바탕으로 사면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식량지원 북 주민이 알게하자/김주영 작가(서울광장)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익히 알고 있었다.몇년전 소설쓰기의 답사를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나 중류의 국경선 일대를 수차에 걸쳐 다녀본 적이 있었다.그 답사 경험에 의하면 북한은 95년과 96년의 치명적이었던 수해이전 92년이나 93년경부터 식량부족 사태가 심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중국의 집안과 북한의 만포가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 한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하나있다.그 섬은 북한의 영토인데,배를 타고 그 섬을 관찰해 보았을때는 섬 전체가 옥수수밭이었다.그런데 수확기였던 그때 옥수수밭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보이지 않았다.식량부족을 겪고있던 그들은 옥수수대에서 옥수수 싹이 나오는대로 꺾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수확기에는 수확할 옥수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집안에 살고있는 중국인들의 말이었으니까 그건 확실하고 또 그런 정상이 94년 이전의 일이기도 하였다.그것은 북한이 식량부족사태를 맞게된 것이 2년에 걸친 수해의 타격뿐만 아니라,그들의 농업정책에 구조적 함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여름이 되면 양쪽 강안에 많은 주민들이 나와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고있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되는데,가까이 다가가서 보노라면 북한주민들의 헐벗은 모습이란 가슴이 찡할 정도다.그리고 담배 피는 사람조차 볼수 없다.중국인들이 탄 배가 다가가면 손짓으로 담배를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흔히 보게된다.그리고 그것이 거절당했을때 보여주었던 아이들의 전투적인 행위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굶주린 모습 가슴 아파 이유야 어쨌든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에 우리들은 너나 할것없이 가슴아파하고 있고,그들의 굶주림을 덜게 만들 방법들을 찾고 있다.굶주린다는 일차적인 문제와 마주치게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겁하게 된다.그런데 그것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또한 안쓰럽기 짝이 없다. 민간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그들에게 식량을 원조하자는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그러한 과정에서 남한의 곡식을 사서 보내자는 여론도 있고,혹은 연변의 옥수수를 사서 손쉬운 경로로 보내자는 주장도 있고,또는 종교인들이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그 곡식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혹은 그들의 군량미를 푼다면 주민들의 아사사태를 막을 수도 있다는 진단결과도 있다.이러한 여러 갈래의 주장과 진단들이 저마다 어떤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식량원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그리고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여러 측면의 부정적인 요소들 때문에 발벗고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고 있을 수도 없는 곤경에 처해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몇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첫번째 일로는 남한의 곡식을 구입하여 선박편으로 실어보내든 연변의 옥수수를 대량 구입하여 보내든 그 방법에 구애받지는 않더라도 그 곡식을 받아야할 북한 주민들이 그것이 남한의 주민들이 보낸 곡식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에는 생색 이상의 무엇이 있다.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것을 막아오고 있다. ○원조창구 단일화해야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제지하고 있다.그런데 북한 당국의 그런 단호한 태도에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선 국민들은 굶어죽어도 좋다는 배타적인 논리에서 나온 살의가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북한은 이 시점까지 배급이라는 식량운영제도를 가지고 그들의 국민들을 통솔하고 다스려왔다.그렇기 때문에 구호식량 문제,특히 남한에서 왔다는 식량을 국민들이 알았을때 보여줄 불신과 괴리감을 북한 당국은 두려워하는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우리들이 갖고 있는 순수성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식량을 원조하려는 사회단체 혹은 종교단체들이 중구난방식의 주장이 난무해서는 우리들에게 정서적 혼란을 야기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통일된 주장의 유지가 필요하다.
  • 탈북자들 동포애가 그립다(사설)

    오는 30일이면 여만철씨 일가족 5명이 동토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도착한 지 3년이 된다.이들은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너무 배가 고파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다』고 일성을 터뜨려 그때 이미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실감케 했다. 이렇게 사선을 넘어 내려온 여씨 가족과 부모·형제를 모두 남겨둔 채 단신월남한 김형덕군이 16일 밤 서울 명동성당 민족화해학교에 초청연사로 나와 서울에서 지낸 지난 3년 동안의 생활상을 털어놨다.그동안의 생활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나름대로 통일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무엇보다 먼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서로 사랑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가장 큰 고통은 아직까지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점이다..여씨 부부만 해도 처음 1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북에서 왔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취직이 되지 않았다.여씨는 여섯 번이나 퇴짜를 맞은 끝에 천주교 신부의 도움으로 겨우 지금의 일자리를 구했다.그러나 북한에서 유치원원장까지 지낸 부인 이옥금씨는 끝내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신문광고를 통해 「미화원」자리를 얻어 일하고 있다.아이들 역시 사뭇 다른 교육제도로 인한 스트레스도 컸지만 친구를 사귈수 없었던 고통은 더 참을수 없었다. 도대체 다섯 식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통일후 그 많은 북한동포들을 어떻게 맞을지 걱정이라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여씨 가족은 그래도 함께 넘어와 외로움을 달랠수 있지만 김군 등 단신 월남한 탈북자들은 달리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한 핏줄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는 비단 이들만의 소망은 아니라고 본다. 차제에 당국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책프로그램을 개발해 차질없이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민간차원의 민족 동질성 확인작업과 병행해 민족 재결합을 위한 정책개발에 나서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통일에 대비해 서둘러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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