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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차원 南北 교류 봇물/北韓방문 7월까지 670명…작년의 2배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우리측 인사의 방북은 지난 6개월 동안 분단 이후 어느 때보다 활성화됐다. 새정부 출범 이후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방북자 수는 7월말 기준 670여명을 웃돌아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6월말 현재 124건 843명이었던 민간인 방북 신청은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방북자의 직업도 다양해졌다. 기업인,종교인,언론인은 물론 작가,시민운동 관계자와 예술인 등에 이르기까지 방북 희망자들의 층도 두터워지는 추세다. 이는 총론에서 볼 때 일견 바람직한 현상이다. 어차피 새정부는 남북교류 활성화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는 전략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경협과 인적 교류의 확대가 단기적으로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 여건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그러나 방북 경쟁이 과열상을 보이면서 상당한 부작용도 노출되고 있다. 특히 북한측이 이 과정을 악용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북한이 방북 당사자들에게 뒷돈을 요구하고 있는 일이 대표적이다. 남북 화해와 신뢰회복 차원에서 가능한 민간 교류를 늘리려는 우리의 선의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모방송사의 경우 올들어 방북 기획취재 추진 과정에서 북한측 ‘중개인’으로부터 30만 달러를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방북 기사의 뉴스가치가 떨어지면서 과거 200만달러 수준보다 적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올들어 남한 언론사의 방북 취재는 건수로 5건,연인원으로 3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북측이 건별로 뒷돈을 요구했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주민간 접촉면이 확대되면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의 긍적적 변화가 촉진될 것이라는게 대체적 시각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당국이 금강산 주변에 ‘울타리’를 친다고 해도 관광객들이 금강산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알게 모르게 외부사조가 흘러 들어가게 마련”이라고 귀띔했다.
  • 미술/‘독창적 색깔내기’ 거듭된 변신(한국문화 50년:10)

    ◎영욕의 세월속 대중적 지지는 아직도 먼 얘기 우리의 근현대미술사는 근현대역사만큼이나 숨가쁘게 진행돼 왔다. 동시에 영욕도 누려왔다. 척박한 환경속에서 미술문화의 기초를 세웠는가 하면 최근에는 ‘우리 미술의 세계화’라는 구호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대중적 지지는 아직도 취약하기만 하다. 광복후 미술계 역시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좌우 갈등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건국을 맞았다. 그러나 49년에는 새롭게 우리만의 독자적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창설,지난 81년 폐지될 때까지 신인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이는 파행적 운영으로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피폐한 우리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큰 기여를 했다. 50년대 한국미술가협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창립에 이어 61년에는 대한미술협회와 한국미술가협회가 한국미술협회로 통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60년대 들어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파리비엔날레 등 외국의 유수 미술제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또 독자적인 미술관으로서 역할에 비중을 둔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이 개관됐다. 70년대 들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던 미술계는 한편으로 서울대파와 홍익대파로 갈리는 등 고질적 병폐를 낳기도 했지만 동아 중앙 등 민전(民展)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었다. 이후 81년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전이 30회로 폐지됐다. 그러나 5공이 들어서면서 미술인들에게도 수난시대가 열렸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시대상황에 따라 ‘민족미술인협회’의 창립과 함께 민중미술사건으로 미술인들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던 것이다. 월·납북작가 해금으로 남한의 현대미술사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던 월·납북미술인들이 빛을 보기 시작한 때도 80년대 말이다. 90년대 들어서는 ‘그리운 산하’라는 이름으로 북한미술전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렸고 그동안 핍박을 당했던 민중미술이 ‘민중미술 15년,1980∼1994’란 이름으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또 한국미술의 해외진출이 활발히 이뤄졌고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들어서면서 특별상을 수상,한국미술의 위상을 세계에 높였다. 95년 ‘미술의 해’에 광주비엔날레가 조직돼 97년까지 두차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IMF이후 미술계는 7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 체제동요 우려 대화 기피/北,金 대통령 對北제의 거부 안팎

    ◎김 대통령 비방은 자제 ‘U턴’여지 남겨 북한이 金大中 대통령의 8·15 대북 제의에 변칙적인 첫 반응을 보였다.20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공개질문장’이 그것이다.조평통은 5개항의 질문으로 우리의 통일안보 정책을 맹비난했다. 과거에도 대화 제의시 북측의 반응은 럭비공처럼 종잡기 어려웠다.더욱이 이번의 공개 질문장같은 형식은 흔치 않은 일로 북한당국의 대남 메시지에 여러가지 복선이 깔려 있음을 뜻한다. 우선 “우리측 제의를 직접 거부할 명분이 없는 북측의 곤혹스러움을 반영한다”는(통일부 李浩 정보분석실장) 분석이다.‘대화상설기구 설치’,‘특사파견’등 제의 자체에 대해선 통일지향을 자처하는 북측으로서도 비난키 어렵다는 전제하에서다. 나아가 당국간 대화에 나설 수 없는 북측의 현 상황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있다.최고인민회의와 金正日 주석 옹립 등 큰 정치행사를 앞두고 있는데다,무엇보다 당국간 대화시 파생할 체제동요를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햇볕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이를 말해준다.공개질문장에서 북측은 “햇볕론이란 교류협력을 통해 우리를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려는 새로운 대결론”이라며 개방에 대한 거부정서를 드러냈다. 다만 북측은 金대통령에 대한 거명 비방은 자제했다.한 당국자는 이를 ‘U턴’을 위한 최소한의 포석으로 관측했다.金正日의 주석승계 이후 그들의 입장에서의 대화 ‘수요’에 대비하려는 자세라는 것이다.요컨대 북한은 대화 부재의 책임을 떠넘기면서 남한당국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려는 속셈을 드러낸 셈이다.
  • 팔당호 살리기/오염원 차단해야 ‘死水’ 방지

    ◎고단위 수질처방 배경/주변에 유흥업소 등 급증 하수처리는 절반에 그쳐/작년에 이미 4급수 전락 규제 더 늦으면 회복 불능 환경부가 내놓은 팔당 상수원 보호를 위한 고단위 처방은 팔당호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상수원 오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될 것이라는 위기에 따른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4월 팔당댐∼잠실수중보 5개 측정지점의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은 도곡 구의 잠실이 3.6ppm,구리 3.4ppm,암사 3.1ppm 등 모두 3급수(3∼6ppm)를 기록했다.또 팔당호는 화학적산소요구량(CO)이 3.9ppm으로 조사됐고,부(富)영양화 단계를 나타내는 총인(燐) 농도가 호소(湖沼)수질기준으로 96년 3급수(0.031∼0.05ppm)인 0.035ppm에서 지난 해 4급수(0.051∼0.1ppm)로 떨어졌다. 지류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구리시를 통과해 팔당댐∼잠실수중보로 유입되는 왕숙천은 지난해 BOD가 10.0ppm에서 올 들어 1월 25.7ppm, 2월 19.5ppm을 기록했다. 또 여주군 점동면 장안리 청미천은 BOD가 96년 2.7ppm에서 지난해 3.2ppm으로 나빠진 데 이어 올 들어지난 2월 7.5ppm을 기록하는 등 4월까지 평균 6.0ppm으로 4급수로 떨어질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는 팔당 상수원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때문이다. 94년 이전에는 개발용도 토지가 15.6%에 불과했으나 94년 이후 57.3%로 크게 증가했다. 특별대책지역내 음식점 숙박업소는 90년 2,585곳에서 94년 이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나 97년 8,956곳으로 증가했다. 공장 등 산업시설은 90년 143곳에서 97년 510곳으로 3.6배,축산농가의 소 돼지는 90년 27만2,000여마리에서 97년 37만8,000여마리로 1.4배로 늘었다. 그러나 하수처리율은 북한강 12%,남한강 33%,팔당댐∼잠실수중보 94%,임진강 20% 등 평균 50%를 겨우 웃돈다. 결국 이같은 총체적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기존 오염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각종 오염행위를 사전에 강력하게 차단하는 근본적 대책마련이 불가피했다. ◎수질개선대책 주요내용/한강수계 양안 300m내 녹지대 조성/시­군별로 오염물질 배출 총량규제/하수처리장 증설… 농약사용 등 제한/준사법적 환경감시대 24시간 가동 환경부의 팔당 상수원 수질 개선책은 팔당호 및 팔당호로 흘러드는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뿐 아니라 한강수계의 모든 지류,나아가 임진강 수계까지 망라하고 있다. 주요 대책 내용을 간추린다. ▷오염원 규제◁ 팔당호 특별대책지역 내 남·북한강 및 경안천 양안(兩岸) 1㎞ 이내를 수변구역으로 지정,음식점 숙박시설 공장 등의 신설을 금지하고 새로 가축을 사육하는 행위를 제한한다. 기존 음식점 숙박시설의 오수 배출기준을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20ppm 이하에서 10ppm 이하로 강화한다. 양안 300m 이내의 토지를 사들여 초목지대 인공습지 유수지 등을 조성한다. 특별대책지역 밖의 경우 북한강은 의암댐까지,남한강은 충주댐까지 양안 500m 이내를 수변구역으로 지정한다. 팔당호,남·북한강 본류,경안천 및 모든 지천 발원지의 양안 5㎞ 이내 국·공유림을 보안림으로 지정한다. 배수구역별,시·군별로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의 총량을 할당한다. 팔당댐∼잠실수중보 구간 가운데 경기도 관할 수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한다. 왕숙천 수계와 하남시 주변을 유해물질 배출시설 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한다. ▷오염 삭감◁ 2005년까지 2조6,385억원을 들여 하수처리장 109곳,마을하수도 79곳,분뇨처리장 41곳,합병정화조 1,471곳을 신·증설하고 하수관 3,341㎞를 신설한다. 산업폐수 및 축산폐수 처리장 각 6곳을 건설한다. 방류수 수질기준을 하수처리장의 경우 BOD와 부유물질(SS)은 20ppm에서 10ppm,총질소는 60ppm에서 20ppm,총인(燐)은 8ppm에서 2ppm으로 각각 강화한다. 분뇨처리장의 BOD와 SS는 30ppm으로 유지하되 총질소는 120ppm에서 60ppm,총인은 16ppm에서 8ppm으로 각각 낮춘다. 제방이 없는 하천부지에서는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의 사용을 제한한다.호소 내 가두리양식장을 모두 철거한다. ▷상류지역 지원◁ 2005년까지 팔당호 상류지역에 주민지원사업비 5,000억원,환경기초시설 설치 및 운영비 4,681억원,상수원지역 토지매수비 5,000억원 등 모두 1조4,681억원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팔당호,팔당호∼잠실 수중보에서 취수하는 원수(源水)에 t당 약 50원씩 부담금을 부과해 매년 2,000억원 가량의 재원을 마련한다. 서울의 경우 가구당 월 평균 수도요금이 6,600원에서 7,600원으로 17% 가량 늘어난다. ▷임진강 수계 정화◁ 임진강 수계중 오염이 심한 신천 포천천 영평천 및 한탄강 상류의 철원군을 특별 대책지역으로 지정,산업단지 이외에서는 공장의 신규 허가를 제한한다. 또 기존 공장가운데 이전조건부로 가동중인 공장은 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집단화단지 등으로 이전하지 않을 경우 폐쇄하거나 강제 철거한다. ▷단속 강화◁ 한강환경감시대를 지도·단속 외에 행정처분권 및 수사권을 동시에 갖는 준사법적 전담기구로 재편한다. 소(小)유역별로 10개 지대를 배치,오염업소를 24시간 상주 감시하도록 한다. ◎韓銀 발표 97 지출 추계/작년 환경오염방지에 8조 썼다/수질부문에 4조3천억 투입 우리나라가 지난 한햇동안 환경오염 방지에 쓴 돈은 모두 8조5,040억원이다. 이는 96년(7조2,394억원)보다 17.5% 는 규모.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96년1.86%에서 97년 2.02%로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97년중 환경오염방지 지출 추계’에 따르면 각 경제주체별 비용은 정부가 4조3,369억원으로 전체의 51.0%를 차지했고,기업은 3조4,627억원(40.7%),가계는 7,044억원(8.3%)이었다. 오염매체별로는 △수질부문 4조3,463억원 △폐기물처리 2조4,984억원 △대기부문 1조3,982억원 △기타 2,611억원 등이었다. ◎전문기 기고/李基太 경희대 교수·생물학/기존시설 예외 인정 말아야 환경부가 20일 발표한 팔당 상수원의 수질 개선책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발표됐던 기존의 대책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행정규제의 강화와 예산확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종전까지의 대책은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실행 및 관리에 있어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우리나라의 지형이 안고 있는 독특하고 거대하며 복잡한 집수역(Watershed)에 관한 문제를 보다 구체화하려 했고 좀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물 문제를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호감을 준다. 팔당호로 흘러드는 대부분의 물은 수계의 중간 중간에 소위 ‘숨을 쉴 수 있는’ 지역이 필요하다. ○곳곳에 自淨구간 필요 수 조원의 자금을 풀어 몇가지 수질 항목의 수치를 즉각적으로 내리려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 형국이다. 자연은 자연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가꾸어야 한다. 수계를 따라 중간 중간에 형성된 ‘숨 쉴 수 있는 곳’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경제적이며 또한 반영구적인 자연의 자정 작용의 장(場)이다. 이를 위해 팔당호 주변 특별대책지역에 오염원의 신설을 금지토록 한 것은 확실하게 관리되어야 하며,기존의 시설에 대한 오염물질 배출 규제 강화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수계 양안 300m 이내의 토지를 사들인다는 방안은 예산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다. 이보다는 기존 소유자들의 시설물 사용에 대한 설득과 단속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초목지대 설치 등의 토지이용계획보다 생태림 조성을 유도하고 이에 따른 이득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대책 지역 밖의 북한강과 남한강 유역에도 앞에서 지적한 대로 물이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구간을 설정,음식점 및 숙박시설의 신설을 금지해야 한다. 수계별로 수원함양림을 조성한다는 구상은 훌륭하다. 초본 대신 목본이 군락을 이루면 방류되는 유기·무기물질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은 궁극적으로 숲을 통하여 정제된다. 이미 유원지로 변한 시설물,하천 구역의 오염행위는 예외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기득권 및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들 시설을 환경친화적 위락시설로 탈바꿈시켜 볼거리와 함께 가족단위의 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시행하는 업주에게는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하면 될 것이다. ○오염원 규제 실천이 문제 시·군별 오염물질의 할당,공공오수처리시설 초기 건설비의 지원 등은 행정적으로는 가능하며 단기적 견제에서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충실히 이행할 지가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일단 발표된 물 관련 정책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적 통일을 이루어 꾸준히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민 홍보의 강화도 중요하다.
  • 팔당상류 음식점·공장 금지/환경부 수질개선대책

    ◎한강유역관리청 신설키로/남·북한강변 1㎞이내 水邊구역 지정 수도권 2,000만여명의 상수원인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팔당호와 남·북한강,경안천 및 그 지류는 물론 한강수계의 모든 발원지까지 주변의 토지 이용이 제한된다. 또 수질 개선에 드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빠르면 내년 1월부터 서울의 수돗물 값이 17% 가량 오른다. 환경부는 20일 이같은 내용의 ‘팔당 상수원 수질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앞으로 공청회(8월25일)와 관련 부처 및 광역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물관리정책 조정위원회에서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된다. 이번 대책은 현재 2급수 수준인 팔당호 수질을 2005년까지 1급수로 개선한다는 목표 아래 구체적인 실천조치들을 담고 있는데 어느 정도 수질개선 효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대책에 따르면 현재 11개 중앙행정부처 및 5개 광역자치단체 등 16개 기관으로 분산돼 있는 팔당호 관리를 일원화하기 위해 한강유역 관리청이 신설되거나 한강환경관리청이 1급 기관으로 격상된다. 환경부는 적어도 1급 이상이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팔당호 특별대책지역 내 남·북한강 및 경안천 양안(兩岸) 1㎞ 이내가 수변(水邊)구역으로 지정돼 음식점 숙박시설 공장 신설이 금지되고 가축의 신규 사육이 제한된다. 또 수변구역 내 양안 300m에는 초목지대 인공습지 유수지 등 녹지대가 조성되고,기존 음식점과 숙박시설의 오수 배출기준이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20ppm 이하에서 10ppm 이하로 강화된다.또 특별대책지역 내 시·군별,배수구역별로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 총량이 할당된다. 특별대책지역 밖은 북한강은 의암댐까지,남한강은 충주댐까지 양안 500m 이내가 수변구역으로 지정되고,팔당호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및 이에 접속되는 강원도 정선·인제,충북 보은·괴산 등 1차 지천의 발원지까지 양안 5㎞ 이내가 보안림으로 지정된다. 현재 52%에 불과한 하수처리율을 2005년 81.6%로 끌어올리기 위해 하수처리장 109개,마을하수도 79개,분뇨처리장 41개,합병정화조 1,471개가 신·증설되고 하수관 3,341㎞가 신설된다. 상류지역 주민들이 겪는 불편을 덜기 위해 2005년까지 상류지역에 주민지원사업비 5,000억원,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 설치 및 운영비 4,681억원, 상수원지역 토지매수비 5,000억원 등 모두 1조4,681억원이 지원된다. 이를 위해 팔당호 및 팔당댐∼잠실수중보에서 취수되는 원수(源水)에 t당 약 50원의 부담금이 새로 부과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 주민이 내야 하는 수도요금은 가구당 평균 6,600원에서 7,600원으로 1,000원 가량 늘어난다. 한강수계 뿐 아니라 임진강수계 중 오염이 심한 신천 포천천 영평천,한탄강수계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돼 산업단지밖에서는 공장의 신규 허가가 제한된다.
  • 동서 분열의 해소/李孝成 성균관대 교수·언론학(서울광장)

    한반도는 남북 뿐만 아니라 동서로도 갈려 있다.남북의 갈림은 한 나라 한민족을 적대적인 두 체제와 나라로 만들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또 상호대결 속에서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낭비하게 하고 있고,가족 이산의 고통을 비롯하여 많은 비극을 낳고 있다.이 갈림은 극렬한 대립을 낳고는 있지만 통일을 계기로 일거에 거의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동서의 갈림은 남북의 갈림과 같이 가시적인 국경·체제의 갈림도 아니고,어떤 계기를 통해 일거에 해소될 수 있는 갈림도 아니다.동서의 갈림은 朴正熙 정권 이래로 오랫동안 영남정권이 집권을 하면서 호남과 충청을 차별하고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한데서 비롯되었다.그런 지역차별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악용하곤 함으로써 이제 지역감정의 골을 넓고 깊게 만들어 쉽게 치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동서간의 갈림은 이와같이 지역차별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이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그러나 동서갈림이 얼마나 뚜렷하게 굳어진 현실인가는 선거 때마다 입증된다.그리고 그것은 남북의 갈림 못지않게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국민통합 최대 걸림돌 동서간의 갈림의 기반인 지역감정은 양측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맹목적인 경멸과 증오를 부채질해 지역주민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또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책대신 지역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정치의 질을 떨어뜨린다.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서의 갈림이 눈에 보이는 남북의 갈림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더욱더 고약한 것은 동서의 갈림은 남북의 갈림과는 달리 어떤 한 계기에 의해 일시에 해소될 수 없는 그런 고질적인 갈림이라는 점이다. 지역감정은 개혁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은 국민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역차별이라고 시비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집권여당으로서 지역차별을 해온 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이 걸핏하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그들은 비리를 저지른 인사에 대한 정당한 처벌도,부실한기업과 은행의 당연한 퇴출도 지역차별로 몰아붙이는 억지논리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그때문에 국민정부의 행위가 사사건건 영남지역에서는 호남정권의 영남에 대한 지역차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지역감정에 호소하여 동서의 골을 더욱더 깊게 하고 국민간의 반목과 불신을 조장하여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이런 저열하고 추악한 정치행태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반목·불신 조작 중단을 동서의 갈림이 이렇듯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시급히 해소되어야 한다.여야간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지금 그리고 외환위기를 한 고비 넘긴 지금 한국정치의 최대의 과제는 동서갈림의 해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동서간의 지역감정이나 그에 기반을 둔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정부가 무엇을 해도 어느 한 지역에서는 그것이 냉소와 불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남한내의 동서주민간의 통합도 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북간의 통일을 달성하며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이제 정치권과 정부는 선거법을 개정하여 선거에서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언행을 엄격히 금하고,각 정당마다 전국에서 고루 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방식의 투표제를 도입하고,영호남간에 지역발전과 인사에서 균형을 취하는 등으로 지역감정과 동서의 갈림을 해소하는 일에 가능한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것이다.
  • “北 反민주실상보며 고국 그리웠다”/범청학련 5명 일문일답

    ◎北 분열만 부추길뿐 진지한 통일노력 외면/귀국허용 소식듣고 진정한 민주화 깨달아 朴聖熙씨 등 범청학련 관련자 5명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시종 반성하는 표정으로 귀국 배경과 심경변화의 동기 등에 관해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특히 북한의 실상을 체험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북한과 한총련에 대한 비판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기자회견을 갖게된 경위는. ▲都鍾華=독일 베를린의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한총련과 북한의 여러가지 모습을 접했다.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관료주의적 이고 반민주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유의 품이 그리웠다. ­한총련에 대한 소감은. ▲崔晶南=한총련은 통일문제에 대한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 균형적이고 현실에 입각한 통일관을 가져야 한다.한총련의 노골적인 친북 입장은 통일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으며,바람직한 학생운동의 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에 체류하면서 많은 북한당국자들과 학생들을 만났을텐데 지금 시점에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都鍾華=북한은 결코 통일사회의 대안이 아니다.오히려 남한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을 뿐 전 민족을 상대로 진정한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 ­독일에 지내면서 어려웠던 점은. ▲朴聖熙=망명자 생활자금을 받느라고 2주에 한번씩 관청을 들락거리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아무런 장애없이 한국으로 돌아갈때 내 처지를 비관,며칠동안 우울한 심경에 빠졌다. ­기자회견이 진보운동세력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 봤나. ▲柳世洪=한총련의 운동행태에 대해 많은 진보세력들이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북의 실상 등을 경험한 우리가 얘기를 꺼내는 것이 오히려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현 정부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은. ▲成墉乘=귀국이 허용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민주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학교에 복학할 수 있다면 평범한 대학생으로 지내고 싶다. ◎범청학련 5명 행적/91.8­박성희·성용승씨 2차 범민족대회에/94,95­최정남씨 김일성 100일제 행사참석/96.8­도종화·유세홍씨 7차대회 개막식에 범청학련 공동사무국 남측대표를 지낸 朴聖熙씨(29)는 경희대 작곡과에 재학 중이던 91년 8월5일 전대협 대표로 건국대 행정학과에 다니던 成墉乘씨(29)와 함께 밀입북,10월28일까지 체류했다.두사람은 8월15일 판문점에서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개최한 ‘제2차 범민족대회’에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 윤기복 등과 함께 참석했다. 베를린에 체류하던 두사람은 92년 8월15일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연방제방식 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채택한 이적단체 범청학련을 결성했다. 崔晶南씨(29)는 94년과 95년 두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북,범청학련 북측본부로부터 단군릉개건 준공식과 김일성주석 서거 100일제 행사에 참석했다. 연대 기계공학과 재학중이던 都鍾華씨(24)와 조선대 치의대 본과에 다니던 柳世洪씨(27)는 96년 8월10일에 밀입북해 14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7차 범민족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97년 12월 베를린의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을 자진 폐쇄했다.
  • 정부 대책/일시적 지원보다 자립능력 육성(탈북 그 이후:7·끝)

    ◎자본주의 이해부족 정착금 탕진 잦아/생활양식 적응못해 말한마디에 상처/다양한 적응훈련 프로그램개발 절실 “탈북자들은 우리와 이념과 체제가 다른 곳에서 생활했고 특히 다양한 계층 출신이어서 보호와 관리,정착 지원에 애로가 많습니다” 탈북자 보호·관리를 맡고 있는 한 당국자의 말이다. 귀순한 탈북자들은 일정 기간 통일부 안기부 군 경찰 등의 합동심문 과정을 거친 뒤 통일부에 넘겨져 적응교육을 받고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시민과 똑같이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제약은 있다. 주변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한동안 이들의 안전을 돌봐야 하는 당국의 감시(?)가 바로 그것이다. 95년 귀순한 金모씨는 “강릉 무장간첩 사건 때 한 직장동료가 ‘친구가 왔는데 만나러 가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 친구는 농담 삼아 말했지만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감시를 당한다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또다른 귀순자 金모씨는 “북한에서 잘 살던사람이 남한에서도 대우를 잘 받고 있다”면서 “북한의 고위층은 다 북한 주민들을 착취한 사람들인데 그들에 대한 남한 정부의 대우가 훨씬 좋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탈북자들의 불만은 뒤집어 보면 바로 이들의 보호 및 정착 지원을 맡은 당국의 고민이다. 탈북자들을 일정기간 보호·관리하는 ‘보호경찰관’ 임무를 맡고 있는 朴모경사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부족과 사고방식의 차이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탈북자들을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이한영씨 피살 사건과 동해 잠수정 사건 등이 터지면 탈북자들에 대한 테러위협 때문에 특별보호 지시가 떨어진다”면서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 탈북자들은 2∼3차례씩 정부에서 직업을 알선해줘도 쉽게 그만둬 애를 먹고 있다”면서 “가끔 능력에 맞지 않는 대우를 요구해 곤란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탈북자 대부분이 3D업종을 기피해 직업 알선이 특히 어렵다”면서 “최근에는 북한음식점이 잘된다고 하자 너도 나도 식당을 열려고 해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당국의 고민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다. 정착지원금과 후원금 이외의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당국.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탈북자들과 무엇보다 이들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당국. 직장 알선 등 탈북자들이 원하는 직업을 제 때에 알선해주지 못하는 애로사항 등. 현재 당국의 대책은 이들에 대한 일시적 지원보다는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 개발 및 종합지원센터 설치 등 자립 자활 능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 겉도는 사람들/주위 무관심에 사회적응 어려워(탈북 그 이후:6)

    ◎천신만고끝 밟은 자유의 땅 생각보다 냉랭/막노동 전전하다 한때 밀입북 기도까지 金亨德. 25세. 연세대 경영학부 2년 휴학중. 학년에 비해 나이가 좀 많다싶은 것 빼고는 특이할 것 없는 대한민국 보통 젊은이의 신상명세다. 그러나 이 짤막한 문구 뒤에 감춰진 金씨의 이력(履歷)은 평범한 젊은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재입북하려다 적발된 비운의 탈북자’. 한동안 金씨의 이름앞에는 이같은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지금도 드러내놓고 아는 체하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金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밀입북 시도 당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임대주택과 직장 등 물질적으로는 훨씬 나아졌지만 남한역시 이상적인 민주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가 오더군요. 애써 외면했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도 그만큼 더 커졌구요” 金씨는 자신의 밀입북 기도로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 인식이 나빠진데 대해 후회하면서도 당시 언론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남북한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한 떠돌이’로 몰아붙인 것에 대해서는 섭섭함을 나타냈다. 金씨가 밀입북 혐의로 체포된 것은 96년 2월. 인천에 정박중이던 중국 배에 몰래 숨어들어 밀항을 시도하다 적발됐다. 중국 베트남을 거쳐 목숨을 걸고 귀순한지 17개월만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金씨가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참작해 이례적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내렸다. “그일 이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원래 성격이 낙관적인 편이지만 세상을 좀더 밝은 쪽으로 보기로 작심했지요. 지금은 남한사람보다 더 남한사람 답다고 자부합니다” 74년 북한에서도 살기어렵다는 자강도 희천시에서 출생한 金씨는 평남 속도전 청년돌격대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돼 노동교양소로 압송됐다. 혹독한 구타와 짐승같은 대우에 시달리다 93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金씨는 북경의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도 귀순이 거절된 金씨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홍콩을 거쳐 마침내 한국땅에 발을 디뎠다. 이 과정에서 두번이나 중국 베트남 보안당국에 붙잡혔다가 탈출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끝에 자유의 땅에 닿은 것이다. “탈출하면서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탓에 남들보다 빨리 남한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도 많이 했구요. 그런데 정작 주위에서는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거예요. 정말 미치겠더군요”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를 실망시켰다. 정착금 1,400만원으로 경기도 부천에 방 하나를 얻어 남한 생활을 시작했으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가 없었다. 신문배달,막노동,주유소 기름배달원 등을 전전해야 했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떤 환경이든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이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음 학기에는 복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할 계획이라는 金씨의 얼굴에서는 2년반전에 볼 수 없었던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 귀순자 자립 지원/의무고용제로 직장 보장을(탈북 그 이후:4)

    ◎자격증 등 인정 못받아 단순 직종으로/절반이상이 월수입 100만원 못미쳐/적응교육 강화… 안정된 삶 부축 시급 지난 95년 북한을 탈출한 朴모씨(36)는 하루하루가 힘겹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았지만 낯선 남한 생활에 후두암까지 겹쳐 또다른 죽음의 고비를 맞고 있다. 朴씨는 “한달에 40만∼50만원에 달하는 항암치료비는 고사하고 30만원이 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조차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면서 “처음 귀순할 때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냉담해지는 주변의 시선에 야속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해 94년 귀순한 韓모씨(38)도 버거웠던 지난 4년간의 남한 생활을 털어놨다. 韓씨는 “한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개인 한방병원에 취직했지만 ‘북한자격증을 어디에 쓰느냐’고 면박을 주며 잔심부름만 시켜 그만 두었다”면서 “죄인이나 무능력자 취급받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韓씨는 “한의학 서적을 출간해주겠다고 찾아 온 남자에게 산삼 두 뿌리를 사기당한 적도 있고 한 독지가가 귀순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준 돈을 중간에서 가로 챈 사람도 보았다”면서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마구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념과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꾸려가는 제2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이들은 우리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직장 문제와 생활고를 꼽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고 북한에서의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각과 지적 열등감,언어의 차이,외로움 등으로 수시로 좌절감을 느낀다. 이들은 97년 제정된 ‘북한 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에 따라 귀순 후 통상 6개월간의 관계기관 합동심문과 사회적응 교육절차 등을 거친 뒤 귀순전 북한에서의 지위 등에 따라 3등급으로 나뉘어 정착금 및 주택,보조금 등을 받는다. 가족이나 지위가 없는 경우 받는 지원금은 평균 1,400만원 정도. 하지만 주택 임대보증금과 가재도구 구입비로 거의 다 쓴다. 정부기관의 주선으로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지만 전문직 보다는 단순 노무직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올 초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700여명 가운데 매월 100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314명에 불과하다. 월 50만원 이하로 생계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도 86명이나 되며 병약자나 노약자 등 생계곤란자도 40여명이 넘는다. 또 절반이상이 정부에서 알선한 직장에서 나와 막노동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생활안정과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된 북한이탈주민후원회 金熙辰 사무국장은 “탈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보장받는 것”이라면서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가 요구하는 취업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적응교육과정 및 법정 의무고용제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朴노해씨­사노맹 주역… 전향 자세보여/석방 인사 면면

    ◎金洛中씨­진보적 통일운동가 무기수/張玲子­2차례 수감… 건강 악화로 나와 이번 ‘8·15특사’에는 대형 공안사건 등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각종 사건의 주인공들이 다수 포함됐다. ◇權魯甲 전 의원=국정감사 선처 명목으로 한보그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징역 5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정치적 부담을 우려,지난 3·13 대통령 취임 사면에서는 제외됐었지만 이번에 잔형 면제와 복권조치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1월 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이 악화돼 검찰의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주거지를 제한받고 있었다. ◇朴基平(필명 박노해),白泰雄씨(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자생적 사회주의세력인 사노맹의 양대 주역으로 91년과 92년에 각각 검거돼 무기징역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朴씨는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운동권에서 일약 ‘얼굴 없는 민중 시인’으로 떠오른 인물.수감 중이던 지난해 출간한 수상집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시장경제 옹호론자가 아니지만 결코 사회주의자도 아니다”고 공언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화제를 뿌렸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白씨는 제헌의회(CA)그룹의 좌파 이론가로 활동하면서 운동권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렸다.지난해 ‘사노맹 결성은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全斗煥·盧泰愚정권에 대한 이념적 저항운동’이라며 사노맹 해체 및 재건 포기를 선언,金壽煥 추기경과 재야인사 등 141명이 사면·석방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黃仁五·仁郁 형제,金洛中씨(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북한의 ‘장관급’ 여간첩 李善實과 연계,남한내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주도하다 92년 당국의 수사끝에 실체가 드러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인물들이다. 전 민중당대표인 金씨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55년 월북,북한에 포섭된 뒤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고문 등을 맡으며 진보적 재야인사 및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다 적발돼 무기수로 복역해 왔다.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적발된 黃仁五씨는 사북중 2년 중퇴가학력의 전부로 ,80년4월 사북사태를 주도한 뒤 같은해 6월 부산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장 폭파기도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중부지역당 편집국장으로 적발된 동생 仁郁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아프리카 역사를 전공했으며,87년1월 북한방송 청취내용을 운동권 최초로 교내 대자보로 부착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 운동권 출신. 1심 재판 진행중이던 93년1월 서울대 교수들이 선처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張玲子씨=건강악화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張씨는 82년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에 이어 94년에는 거액의 어음부도 사건을 일으켜 세간을 두번 놀래킨 큰 손.82년 당시 남편 李哲熙씨와 함께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92년 잔형 5년여를 남기고 가석방됐으나 107억여원을 편취하고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2년여만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鄭守一씨(무함마드 깐수)=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암약한 고정간첩으로 96년 검거돼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번에 감형됐다.
  • 통계로 본 ‘대한민국 50년 경제 사회상’

    ◎65년 1만원짜리 97년엔 22만원으로/소주·담배 소비량 각 4.6배·1.9배 증가/대졸 이상 여성 45년간 0.3%서 13%로/남한 수명 북한보다 평균 3.2세 높아 지난 65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가 21.9배가 올랐다.이에 따라 65년 1만원의 가치는 지난해 4백56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48년 58.6명에서 지난해 35.1명으로 줄었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과밀학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주와 맥주가 약주와 탁주를 누르고 국민들의 주요 술로 자리잡았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대한민국 50년의 경제사회상 변화’에 따르면 48년 정부 수립 이후 50년간 우리 경제와 국민의 생활은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인 면에서도 많이 달라졌다. ▲국민생활=경제성장은 술과 담배를 권하는 사회로 이행되는 것일까. ○약주·탁주 뒷전으로 20세 이상 국민 1인당 연간 소주소비량은 96년 25.2ℓ(2홉들이 소주 70병)로 5일에 평균 1병씩 마신 셈이다.62년 5.5ℓ보다 4.6배나 증가했다. 맥주 역시 62년 0.5ℓ(500㎖짜리 1병)에서 96년 59.9ℓ(119.8병)로 늘었다.1인당 3일에 1병 꼴이다.반면 탁주와 약주는 밀려나 주류 출고량 비중이 지난 34년간 81.6%에서 7.3%로 격감했다. 20세 이상 인구 1인당 담배소비량은 60년 87갑에서 97년 167갑으로 1.9배가 늘었다. ○가족 3.3명으로 줄어 ▲인구와 교육=가구수는 55년 379만에서 95년 1,296만가구로 3.4배 늘었으나 평균 가족수는 5.5명에서 3.3명으로 줄어 핵가족화가 진전됐다. 대졸 이상 여성이 전 인구대비 55년 0.3%에서 95년 13.1%로 급증했다.대졸 남자와 대졸 여자 비율도 같은 기간 8대1에서 2대1로 개선됐다. ○IMF로 GNP 감소 ▲경제지표=경제성장에 힘입어 GNP(국민총생산)규모는 53년 14억달러에서 97년 4,374억달러로 312.4배로 불어났다. 국민 1인당 GNP도 53년 67달러에서 77년 1,000달러를 넘고 95년에는 1만달러를 돌파했다.그러나 경기침체와 외환위기로 인해 지난해에는 9,511달러로 전년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실업률은 63년 8.1%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96년 2.0%까지 하락했다가 지난해에는 2.6%로 다시 높아졌다. ○3차산업 중심 재편 ▲산업=53년에는 농림어업 47.3%,광공업 10.1%,사회간접자본과 기타 서비스업 42.6%로 1차산업 중심이었으나 97년에는 각각 5.7%,25.9%,68.4%로 3차 산업 중심으로 바뀌었다. 자동차생산량은 62년 1,800대에서 지난해에는 281만 8,300대로 급증했다. ○여성 長壽 ‘남북 공통’ ▲남북한 비교=남북한 모두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지만 남한사람들의 수명이 북한보다 평균 3.2년 더 길다. 남자 수명은 남한의 경우 60년 51.1세에서 95년 69.5세로,북한은 46세에서 67세로 높아졌다. 반면 여성은 남한이 53.7세에서 77.4세로,북한은 52.1세에서 73.3세로 각각 높아졌다. ○세계인구의 0.8% 차지 ▲국제비교=남한인구는 97년 현재 세계 총인구의 0.8%로 세계에서 26위.중국은 12억4천만명으로 세계의 21.3%를,인도는 9억6천만명으로 16.4%,미국이 2억7천만명으로 4.6%이며 인도네시아가 2억3천만명으로 3.5%를 차지했다. 자동차 생산은 97년 현재 281만8,000대로 지난 32년간 1만9,986배로 증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미국은 1,208만대,일본은1천97만대를 각각 생산했다. 교역량은 48년에 2억2,000만달러에서 97년 2,808억달러로 세계 11위. 미국은 48년에 208억달러에서 97년에 1조5,877억달러로,일본은 48년에 10억달러에서 97년에 7,596억달러로 증가했다.1인당 GDP는 96년에 1만600달러로 세계 31위 수준.55년에는 미국이 2,431달러로 세계 1위였으나 96년에는 스위스가 4만1천65백32달러로 가장 높았다. 1인당 원유 소비량은 95년에 1,912㎏로 지난 25년간 6.3배로 증가했다. 일본은 1,767㎏,독일이 1,260㎏,영국이 1,405㎏,프랑스가 1,373㎏ 등으로 선진국 대부분이 우리보다 낮은 수준이다.
  • 김영무 두번째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펴내

    ◎어릴적 푸른추억 빌려 병든 지구의 현실 질타 시에서의 향토적 서정은 자칫 한가한 회고 취미로 오해받기 쉽다. 치열한 일상의 현장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무 시인(54·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경우 시의 언어는 곧 삶의 언어다. 첫시집 ‘색동 단풍숲을 노래하라’에 이어 5년만에 그가 두번째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창작과 비평사)를 내놓았다. 누구나처럼 시인 역시 유년의 푸른 시절을 그리워한다. “…개울물소리 헤치고,밤길 따라 헛발 디디다가/논둑길 하나 넘으니,눈부셔라! 개구리 울음소리…”(‘남한산성의 밤’) 그 순수의 시대는 물수제비 뜨듯 지나가버렸다. 첨벙첨벙 별똥 떨어지듯 뛰어드는 개구리도,“풀섶 헤치며 도망치던 흰눈썹망초꽃들”(‘남한산성의 망초꽃들’)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는 지금/십자가에 못박혀” 신음하는 “겨자씨 하나 못 사는 땅”(‘조선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셋째 편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인은 이처럼 병든 지구의 현실을 ‘금강경의 어법’혹은 예수의 목소리를 빌어 질타한다. 그런 면에서 이 시집은 ‘녹색문학’의 정점을 달린다. 삼라만상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갖고 있다. 그 존재의 길은 세계의 숨은 질서를 이룬다. 그것이 곧 자연의 이법(理法)이다. 시인이 새삼 강조하는것 또한 자연의 섭리에 기초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다. 그런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 바로 ‘과학’이란 제목의 시다. “감꽃 필 때는 올콩을 심고/메주콩은 감꽃 질 때 뿌리느니라//밭고랑 두엄 속 그 캄캄한 아랫목에서/금빛 씨앗들이 때를 알아 눈을 뜨나니”
  • 이산가족 문제해결 촉구/韓赤,對北성명 발표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27주년을 맞아 11일 남북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鄭元植 총재 명의의 대북 성명을 발표했다. 鄭총재는 성명에서 “남북 적십자회담이 한 세대에 가까운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동안 많은 이산가족들은 절망과 분노 속에 이산의 한을 품은 채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며 북한측에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한의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 외로움에 시달리는 귀순자(탈북 그 이후:3)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초등학생 자녀 따돌림 심해 기죽어/냉대·소외감 못견뎌 술로 허송세월/“결혼은 귀순보다 큰 모험” 하소연도 96년 중풍에 걸린 남편 金慶鎬씨(63)와 만삭인 막내딸 명순씨(28)등 일가족 16명을 이끌고 북한을 탈출,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崔현실씨(59·여). 일요일인 지난 9일 서울의 한 교회에 간증차 나온 崔씨에게서는 ‘북한 출신’의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약간 남아 있는 북쪽 특유의 억양만이 崔씨가 1년9개월전 사선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다 와서 그런지 탈북자들이 흔히 느끼는 외로움이나 죄책감은 덜한 편입니다. 이웃 주민들과도 허물 없이 지내지요.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야채를 더 얹어주거나 옷을 그냥 가져가라고 해 오히려 난처할 때가 많아요” 누구보다 빠르게 남한생활에 적응한 崔씨이지만 한동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평소에는 잘 어울려 놀던 같은 반 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북한에서 온 주제에…’라면서 따돌리는 바람에 손자들이기가 죽어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는 것. 崔씨는 “딸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몇차례 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면서 “철모르는 아이들끼리의 일이지만 섭섭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700여명이 넘는 탈북자 가운데 崔씨처럼 일가족이 함께 내려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부모 형제를 등지고 혈혈단신 귀순한 탓에 극심한 죄책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지낸다. 탈북자 후원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尹玄 대표는 “가족을 버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결혼을 적극 권유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출신이라는데 대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심한데다 일부는 정착금을 노려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도 해 자칫 돈 잃고 마음만 상하기 쉽다는 것이다. 성공한 탈북자로 알려진 金勇씨(38·연예인)도 “열렬한 연애가 아닌 바에야 귀순자에게 결혼은 귀순보다 더 큰 모험”이라고 토로했다. 주변의 냉대와 소외감을 견디다 못해 술로 허송세월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탈북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5월 6개월된 딸과 함께 자살한 탈북자 아내 崔율리아씨(당시 26세)가 그런 예. 러시아교포 3세인 그녀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일하다 94년 5월 귀순한 남편 崔모씨(40)를 따라 이듬해 한국에 왔으나 주위와 어울리지 못한데 따른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러시아 벌목공 출신인 K씨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판에 박힌 시각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귀순자들을 저개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 동족으로서의 애정은 없다”고 비판했다. 남한사회에 대한 좌절과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면서 찾아온 남한 땅에서 자신이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다는 현실이 자포자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탈북동기나 경로는 서로 다르지만 탈북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정치·사회·통일분야­토론내용(제2의 건국선언 무엇을 담나:Ⅱ)

    ◎권위주의·관치·개발독재 청산/민족사 비판적 고찰 통해 21세기 대처/가슴에 와닿는 현실적 비전 제시 필요/남북 화해·협력시대 열어야/‘햇볕’ 좋지만 맞고도 주기만하면 곤란/세계적 보편주의·의식·규범 적극 수용 올 8월15일은 정부가 수립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지난 반세기동안 8·15라면 일제로부터의 해방,광복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왔다.자유총선거에 의한 민주공화국이 처음으로 탄생한 건국의 가치는 소홀히 다뤄온 감이 없지 않다.金大中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를 통해 국정 최고 슬로건으로 ‘제2의 건국’을 선언한다.현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명실상부한 민주·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6대 국정운영철학과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을 국민앞에 제시하게 된다.金대통령은 이미 국정운영 기조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세계주의 ▲화해와 통합 ▲지식중심의 산업 ▲안보와 교류·협력의 6대 지표를 천명한 바 있다. 서울신문사는 건국의 참의미와 그 건국정신이 우리 현실에 어떤 의미를 주며,그리고 6대 국정운영 철학의 실천적 방법이 무엇인지를 총론 및 정치·외교부문,경제분야 등 두차례로 나눠 전문가들 집중토론을 통해 조명해봤다.1차로 동국대 白京男 교수와 서울대 朴相燮 교수,연세대 文正仁 교수를 초청,총론과 정치·사회·통일분야를 정리했다. ▲白교수=우리는 19세기 개항을 자주적으로 하지 못해 근대화에 실패했다. 이제 21세기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족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긴요하다.한국의 지성들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20세기의 성찰이 필요하다.제2의 건국 이념은 그런 의미에서 문제의식의 제기다.선진국들은 한 세기 전에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 도약에 성공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1건국시대 개혁의 실패는 권위주의,지역패권,분단이라는 3중의 기득권 구조 때문이었다.바로 개혁의 걸림돌인 것이다.지금까지 국민적 생활에서 법질서 법치국가의 뿌리가 내리지 못했다.일상 생활에서도 땀흘린 대가가 없는 부분도 많았다.준법자가 손해보는 세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요컨대 민주주의 공고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세계경제에의 적응으로과거의 구조적 모순을 청산해야 한다. 구체제를 작동시켜 온 분단과 권위주의 대결,관치·정경유착,개발독재형모델등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효력을 상실했다.50년동안 근대화 산업화를 이룩했던 모델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원활히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朴교수=현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굵고 화려하기만 하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과거 정부와의 차별성을 굳이 보여줄 의욕이라면 겸손한 말로 시작하는 게 좋다.지난 정부든 현 정부든 지금 구조로는 안된다는 절실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그러나 상징이 가진 논리에만 쫓기다 보면 전술·전략의 개념이 없어지고 앞뒤가 뒤바뀔 우려가 있다.현 정부가 5년 동안 할 일이 많은데 시작부터 화려한 수사로 시작해 말잔치로만 기울어선 안된다. ▲文교수=정치는 수사와 상징조작이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다.그러나 제2의 건국은 너무 진부하다.마치 지난 정권의 ‘제2의 개항’을 보는 것 같다. 제2의 건국이란 용어는 헌법을개정하고 사회·정치구조를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개항보다 강력한 뉘앙스이고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가 짙다.가급적 단절의 의미를 지양하고 연속성 위에서 창조성 있는 제2의 건국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또 제2의 건국 목표들이 너무 중장기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다.오늘날 한국의 위기에 대한 절실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8월15일에 제2의 건국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 전과 갑자기 달라질 수는없다.너무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중장기 목표에 너무 치중 ▲白교수=전환기에는 비전이 필요하고 구체적 방법론으로 큰 틀이 필요하다.큰 틀없이 세부적인 방안이 어떻게 나오는가.제2 건국 개념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와 긍지를 이어 받아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결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다.국가 운영을 위해 국민적 동력을 끌어내자는 의미가 크다.특히 사회 모든 요소에서 권위주의를 다 털어버리자는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권위주위에사로잡혀 민주적인 분위기가 없다.모든 운영의 원리를 민주적인 협의식으로 사회질서의 축을 잡아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외교도 진행돼야 한다.외교는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력 있는 국가구조를 갖추고 민주적 성숙국가로 재도약하는 도구라야 된다.제1의 한강기적을 만들어 낸 만큼 제2의 한강의 기적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목표가 외교의 과제여야 한다.기업,실업·도산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외교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무엇보다 우선할 과제로서는 교역을 활성화하고 투자유치를 증대하는 한편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작업이다.이외에도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한민족의 생존 번영의 터를 닦는 목표가 필요하다. ▲朴교수=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어느 사회든 강제적 권위가 아니라 서로 인정되는 권위가 살아 움직일 때 질서가 형성되고 구성원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따르는 데 민주주의의 열쇠가 있다.이러한 권위를 살려내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인데 그 부분은 빠진 것 같다.사회의 권위가 다 깨진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날수 있을지 의문이고 특히 현 정부는 스스로 권위주의를 없앴다고 생각하지만 현 정권 초기에도 과거 정권 초기의 권위주의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文교수=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권위는 민주정치를 움직여가는 동력이다.정통성있는 정부는 권위가 올라가고 정부의 법질서가 존중 받는다.반면 권위주의는 자율이 아니라 강제에 의한 수직적 이익표출의 한 방법이다.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제일 많이 노출되는 부문은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이다. 민주정치 기본은 정당이다.정당내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데 정치권이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는가.또 민주주의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金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면 다원주의적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신봉자인 것도 같다.노사정위원회가 바로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 시책 사례다.지도자가 이처럼 미국식과 서유럽식을 오락가락하면 정치·이념적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한가지 유형을 분명히지향할 필요가 있다. ▲白교수=민주적 정통성을 갖고 있어야 진정한 권위가 나온다.정당을 선진화하고 지역구도 파괴하고 선거법을 개정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체제에서는 미국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옳다고 생각한다.위기를 벗어나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제체제로 가야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특히 노사정위원회는 모든 사회 성원들이 책임을 가지고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하려는 모델이다.노사정 대타협이 없으면 노동자의 파업,재벌 이기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기 극복이 어려워 질 것이다. ○정책방향 일관성 있어야 ▲朴교수=미국식과 구라파식의 두개 모델이 엄격히 갈려지는지,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다.특히 노사정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구라파식이나 미국식은 구체적으로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보다 우리가 닥친 현실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인식을 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현정부의 정책방향은 어느 때엔 다원주의 선호하는 것 같지만 사회민주주의 성격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현상황에서 우리측의 정책 노선의 큰 방향은 어차피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같다.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처한 입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정당제도를 바꾼다고 하지만 그 동안 제도가 나빠 지역구도가 남아 있는 게 아니다.독일식 정당명부제든 무슨 식이든 현재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와 생활 방식 등 움직일 수 없는 패턴이 있다는 점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지방서 세계로 직접 연결 ▲文교수=IMF체제 극복 때까지는 미국식 민주주의,그 이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식의 발상은 문제가 있는 것같다.그리고 중앙집권은 나쁘고 지방분권은 나쁘다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도위험하다.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나아간다는 목표는 자칫 국민들에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소지가 다분하다.과도한 중앙의 권위와 자원을 나눠가져야 할 필요는 있지만 중앙을 무력화시키고 지방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이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얼마전 강연차 내려갔던 전남 장성의 경우 지방재정 자립도가 겨우 20%에 불과했다.이런 상태에서 중앙의 보호와 통합조정 없이 지방정부가 존재할 수는 없다.우리나라는 어차피 연방제 국가도 아니다. 우리의 세계화 패턴도 ‘지방에서 서울로,다시 서울에서 세계로’라는 식이었다.그러나 앞으로는 ‘지방에서 바로 세계로’라는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생력을 길러 세계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白교수=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이 분산되고 지방중심 체제가 되면 자연스레 자원과 권력이 나눠지는 것이다.세계화 시대엔 경제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지방 기업들이다.서울을 통하지 않고 지방에서 해외로 연결돼야한다.지방에서 중앙을 거치지 않고 곧 바로 세계로 나가자는 것이다.민족주의에 집착하면 세계로 갈수 없다.세계적 보편주의,의식·행위규범 등을 우리 것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세계주의는 우리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가치개념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朴교수=지방분권도 좋지만 경제적인 것 중에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상태에서 지방사람들의 불만은 재정자립도 등 경제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한 두시간 생활대인 우리나라에서는 환경 등 중앙에서 관장할 주요 문제가 있는데 지방에 떼어준다고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현재 권력의 핵심은 정보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느냐에 있다.권력의 중심을 지리적인 위치로 놓고 생각하는 것은 19세기적인 발상이다. ▲文교수=민족주의의 기원은 3가지다.민족주의를 현실의 어려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는 ‘도구론적 민족주의’가 그 하나다.그리고 서구에서 볼 수 있는 계급착취와 노동착취를 겨냥한 ‘계급적 민족주의’라는 것도 있다.그런데 한국의 민족주의는 ‘목적적 민족주의’개념이다.같은 곳에 태어나서 한 언어를 쓰고 지리적으로 고립돼 퇴출이 없다는 점에서다.따라서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바로 삶의 양식이다.이것을 부인하고 세계화로 간다는 것은 최근 영어 공용화 논쟁같은 황당한 발상을 가능하게 할 수있다. 그리고 白교수께서 닫힌 민족주의를 지적했는데 열려진,계몽적인 민족주의는 원래 없다.민족주의는 단어상으로도 닫힌 개념으로 하나됨을 의미한다.민족주의라는 삶의 양식이 없으면 누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에 나서겠는가.金大中 대통령의 세계화는 얼핏 민족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를 배격하겠다는 의도로 들린다. 세계화는 두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시장 개방 등 외래 파고에 대처하기 위한 ‘관리적 차원의 세계화’이다.다른 하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화를 삶을 이끌어가는 이념 내지 가치로 쓰려는 ‘자생적 차원’이다.지난 정권의 세계화는 관리적 차원이었지만 현 정권은 자생적 차원의 세계화를 강조하고 있는것 같다. ▲白교수=제2의건국을 남북 관계에 적용할 때 그 기본적 조건은 냉전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북측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해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맞았고 남측은 화려한 도약끝에 IMF위기를 맞은 상태다.남과 북은 제1건국 시대,냉전관계를 성찰하고 차분하게 미래를 서로 이야기 하면서 화해협력의 시대로 가야한다.양쪽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민족의 과제가 아닐수 없다. 북한 핵위기로 우리나라가 전쟁위험 직전에 와 있을 당시 야당에 있던 金대통령이 햇볕론을 제기했다.金日成과 카터 전 미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전쟁위기를 막았다.북한을 코너로 몰지 말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기조다. 햇볕론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여기에 동북아 평화를 심어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것이다.남북관계도 공존공영의 길로 가자는 의미다.이를 위해 무엇보다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바람정책도 필요 ▲朴교수=햇볕정책은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방식과 수단에 불과한데 목적이나 전략속에 집어 넣는 것은 문제다.북한 옷이 때가 절어 벗기려 한다면 따뜻하게도 했다가 벗기려고도 하는 등 여러 방식을 다 사용해야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정책의 옵션을 묶는 것 같아 안타깝다.햇볕이란 용어에만 사로잡힌다면 1∼2년 사이에 발목이 묶여 자가당착이 노정될 수도 있다.金泳三 정권에서도 첫 단추를잘못 꿰 남북정책이 왔다갔다 했다.이번에도 그런 위험이 깔려 있다.특히 화해 정책을 추진하려면 줄 수 있는 햇볕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가 줄 수 있는 햇볕이 썩 많은 것 같지도 않다. 또 화해는 혼자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상대와 같이 해야 한다.그리고 화해정책을 펴더라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때로는 한대 맞으면 한대 때려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칫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도구인 60만 대군을 한 두마디로 아주 무력화시킬 수 있다.특히 정경분리는 우리 정부가 주장할 일이 아니다.정경분리 주장은 득이 되면 정치적으로 살벌해도 경제적으로는 거래하겠다는 것이다.북한의 입장이라면 정경분리가 말이 된다.우리처럼 두들겨 맞으면서도 주겠다는 식의 정경분리는 곤란하다.정경분리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서로가 득을 봐야 하는 것이다.화해정책을 하더라도 확고한 군사력은 유지해야 한다. ▲文교수=기본적으로 햇볕론에 찬성한다.그러나 운용의 묘에 문제가 있다.햇볕론의 기조는 안보와 화해의 병행,정·경 분리이다.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에서 발견되면 소떼 보내기를 미루는 식의 행동은 모든 이슈들을 연계시켜 조치하는 ‘연계적 상호주의’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것은 정·경분리라는 ‘비연계적 상호주의’ 원칙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상호주의란 용어를 엄격히 제한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핵 대치는 일회성 게임이다.최소피해를 위해 그 쪽의 행동이 있으면 즉각 대처해야 한다.그래야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그러나 경협은 연속적 게임이다.즉각 대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정치와 분리해 움직여야 한다. ○남북 경제공동권 형성을 ▲白교수=남북한 지도자 교체는 새로운 남북화해·협력시대의 개막으로 보고싶다.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대북정책의 추진 방향은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진이다.정경분리 원칙과 국가 수호 내지 안보의 병행 추진이다.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을 심화시키면 동질성도 살아날 수 있다.남한의 IMF위기 극복을 위해 남북 경제 공동권을 형성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다.평화교류의 원칙도 필요하다.미국과 일본과의 북한 수교를 도와주고 일관성 있는 화해·협력이 뒤따라야 한다.평화통일의 공감대를 만들려면 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중부 물난리­수도권 水沒 위기 일발

    ◎“한강물 넘칠까” 시민들 조마조마/홍수주의보·대피령에 이틀간 밤샘/통제소 “비 조금 더 내렸다면 아찔” 뜬 눈으로 밤을 지샌 이틀이었다. 지난 7일 저녁부터 8일 사이 서울·경기북부 지역에 집중호우가 계속되자 수도권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강인도교를 비롯해 중랑천,안양천을 통과하는 다리의 수위도 급격히 상승했다.한강홍수통제소에는 “한강이 넘치는 것 아니냐”는 시민들의 전화가 밤새 빗발쳤다. 중랑천의 월계1교는 8일 하오 5시20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노원 도봉 성북 강북 중랑 동대문 등 주변 6개구 주민들은 긴급대피했다. 하오 5시30분에는 안양천 하류인 서울 양천구 목1,2,6동과 신정 2,7동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떨어졌다.안양천은 이후 계속 수위가 상승,하오 10시에 최고수위인 9.67m를 기록했다가 자정이 돼서야 수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르락 내리락하던 한강수위는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하오 3시부터 6.64m로 높아졌다.한강홍수통제소측은 결국 하오 7시 홍수주의보를 발령했다.하오 9시에는 경계수위 8.5m를 넘긴 8.55m를 기록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러나 정작 새벽까지 통제소 직원들을 괴롭힌 것은 본류가 아닌 한강의 지류였다.하천의 폭이 좁아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범람하기 때문이다. 남한강 지류가 지나는 여주교는 8일 저녁부터 매시간 30㎝ 이상 수위가 높아져 이날 하오 10시 6.82m에 도달,홍수주의보가 발령됐다. 안성천이 지나는 동연교의 수위도 8일 밤 10시부터 계속 상승,범람위기가 높아졌다. 통제소를 방문했던 李廷武 건교부장관은 이날 자정쯤 林昌烈 경기지사의 집으로 급히 연락을 취했다.“한강쪽은 괜찮은데 그쪽이 더 문제이니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동연교의 수위는 계속 높아졌다.9일 상오 4시 8.5m.9.8m 높이인 제방과 불과 1.3m차이였다. 통제소측은 팔당댐측에 방류량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하지만 팔당댐측은 양수리 등 한강 상류지역이 침수할 위험이 있어 무작정 물을 잡아둘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때부터 한강 상류지역에 빗발이 급격히 약해졌다.한강수위도 계속 떨어져 9일 상오부터는 위기에서 벗어났다.金一中 한강홍수통제소장은 “자정 이후 한강 상류지역에 40∼50㎜의 비가 더 왔으면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 쉽지 않은 남녘생활(탈북 그 이후:1)

    ◎자본주의 적응못해 탈선 빈번/법·제도 등 잘몰라 자신도 모르게 범법/소외감 달래려 술·도박… 정착금 탕진도/부적응자 재교육·취업알선 등 대책 절실 오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분단 53주년이 되는 날. 지난 50여년 동안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에서 살다 남한으로 탈주한 북한 이탈주민(탈북자)들은 700여명에 이른다. 직업이나 탈출동기가 제각각이듯 남한에서의 삶도 다양하다. 상당수는 우리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사선을 넘을 때 기대했던 것 만큼 순탄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이 되고 싶다는 희망,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등 탈북자들이 겪는 明과 暗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남한 생활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6일 상오 서울 강남경찰서 유치장. 100만원짜리 고액 위조수표 사건과 관련,구속된 탈북자 鄭龍씨(28·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하룻동안의 유치장 생활로 얼굴이 몹시 상기된 鄭씨는 남한 생활 1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유치장 신세를 진다는 것이믿기지 않는 듯 담배를 계속 빼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금만 남한 생활에 익숙했고 법을 알았더라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鄭씨는 지난해 9월 먼저 북한을 탈출한 형 鄭연씨(33)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와 여동생,남동생 등 가족 3명과 함께 북한을 탈출,화제가 됐던 인물. 鄭씨는 “평양에서 비행군관학교를 다니다 92년 유학중 남한으로 귀순한 형 때문에 함북 온성군 탄광지역으로 쫓겨나 종이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생각난다”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다시 먼 곳으로 숙청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때 경찰을 잔뜩 긴장시켰던 100만원짜리 위조수표 사건은 말 그대로 남한 물정에 어두웠던 한 탈북자의 어처구니없는 범죄였다. 지난 6월 鄭씨는 사회적응 훈련을 마치고 형 친구이자 89년 귀순해 냉면 체인점 사업을 하는 全모씨(31)의 회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월급은 불과 50만원이었지만 국가에서 아파트를 제공받아 다른 탈북자에 비해 쉽게 출발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회사 동료 金모씨의 컴퓨터 가방에 들어 있던100만원짜리 위조수표를 몰래 꺼내 은행에 입금하려다 은행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수표는 金씨 등 3명이 회사 사무실에서 컴퓨터 스캐너로 위조한 것이었다. 鄭씨는 “친한 동료의 수표가 사무실에 돌아다니고 있어 입금하려 했을 뿐 범행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및 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뒷면에 인쇄조차 안된 조잡한 수표를 알고도 입금시킨 뒤 신고한 은행원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90년대 이후 탈북 귀순자가 늘어나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이들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순,주변의 지원 속에 풍요롭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전문직업인 연예인 신앙인 등으로 변신,북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꾸려 나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鄭씨처럼 적응에 실패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정착금을 탕진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시베리아 벌목공 출신인 金모씨(35)는 “솔직히 문화적 차이와 소외감 때문에 생활에자신이 없다”면서 “적응을 하지 못해 술과 도박으로 소일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귀순자 朴모씨(42)는 “취직을 해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싫어 그만두는 탈북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탈북자 모임인 ‘숭의동지회’ 관계자는 “북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탈북자들은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서 “상당수가 개인능력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정부는 부적응자들의 재교육 및 취업,장래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종교인 30여명 11일 방북 예정

    8·15 통일 대축전과 때를 맞춰 남한의 개신교와 불교,천주교 등 각 종교단체 저명인사 약 30명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박태호)과 조선종교인협의회(회장 장재철) 등이 지난 7월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인 金蒙恩신부와 개신교계 원로 姜元龍 목사,조계종의 法陀 은해사 주지 등을 초청했으며,정부는 이들의 방북 승인을 긍정 검토하고 있다. 오는 11일부터 18일까지 방북하는 이들 종교인들은 북한 종교단체들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한 뒤 일부는 고향을 방문해 이산가족과도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남한 종교인들을 초청한 것은 14∼15일로 예정된 ‘통일대축전’과 때를 맞춰 남한 종교인들이 동참하는 대규모 종교집회를 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햇볕정책이 나아갈 길/洪承吉 남북문제평론가(기고)

    우리정부의 햇볕정책이 광범한 국민들의 지지속에 운영되어 오다가 북한의 잠수정과 무장간첩 침투사건으로 한때 비판의 여론이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햇볕정책 일변도로 나가서는 안되고 필요할땐 ‘강풍’이나 ‘채찍’도 응당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정부도 북한의 도발사건에 대해 ‘시인·사과,관련자 처벌,재발방지의 요구’와 함께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외교적 압력 행사,무력도발과 관련한 한·미군사협력 강화 등 강풍과 채찍의 방향으로 대응수위를 높였다. ○햇볕론 시비 불씨 여전 그 결과 햇볕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보다 더 정리되었고 비판여론도 어느정도 가라앉았다.그러나 시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로서 어떤 계기가 생기면 또다시 확산될 수 있다. 본래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의 보다 빠른 유도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서,남한의 우세한 힘에 바탕을 둔 ‘맏형’적 자세와 포용적 태도를 그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남북한 관계의 발전추세에 비추어 볼때 당연하고 바람직스러운 정책방향이라 하겠다. ○‘상호주의’ 철저 적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개과정에서 날카로운 시비가 야기되었다.그러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문제점들을 찾아 미리 해결하여 국민적 지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첫번째 문제는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취하는 행동 곧 대남행위에 대해 우리 측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하는 대응행동의 규범이 분명치 않은 점이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상호주의’ 정책을 보다 철저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북한이 우리에게 불순한 행위를 해올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채찍성격의 대응을 하는 것이다.형은 아우를 대할 때 자애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잘못에 대해서는 매로 다스리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두번째 문제는 햇볕정책에 따라 새롭게 취하는 대북정책과 우리의 기본입장인 남북당사자 해결원칙 특히 당국간 대화방침 간에 괴리가 생길 가능성이다.정경분리원칙에 따른 대북경제협력의 무제한적인 허용,미국·북한간 판문점 장성급회담 등은 그 자체로서는 바람직스러우나 남북당국간 대화에 대한 북한의 수요를 오히려 감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남북당사자 해결 원칙 북한은 당국간회담을 거치지 않고서도 대남경제실리 확보와 통일전선책략 전개가 가능하고 대미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그만큼 남북당국간 대화가 성립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이것이 아직까지는 문제점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햇볕과 채찍의 문제보다도 더욱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될 수 있다.따라서 각종 대북관련정책들이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에 귀착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조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번째 문제는 ‘햇볕정책’이란 언표(言表)의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다.햇볕정책이 교조(敎條)화되어 대북정책의 신축성을 제약하고 북한이 역으로 이용할 우려가 있다. 대북관련정책은 다른 분야 정책과는 달리 승패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으로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며 극단적인 시비의 논쟁이 없어야 남북관계는 정상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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