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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풍 재판’ 조용히 지켜보자(사설)

    ‘판문점 총격공작사건’으로 구속기소된 韓成基 피고인이 지난해 12월 북한쪽 인사를 만나러 베이징에 가기 직전과 갔다온 직후 이 사건 관련사항을 李會昌 후보측에게 서면으로 보고한 사실이 지난 30일 재판정에서 밝혀져,‘총풍사건’이 또다시 정국을 흔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검찰은 李會昌 총재와 동생 會晟씨의 관련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고,한나라당은 韓씨의 증언을 전혀 근거없는 사실무근의 낭설로 규정하고 “검찰이 날조된 사실로 또다시 李총재 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회는 법정처리 시한이 임박한 예산안과 경제청문회를 놓고 여야간에 첨예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그런 판국에 뜻밖의 뇌관 하나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韓씨의 증언이 한나라당에 주었을 충격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한나라당은 李총재에 대한 검찰의 조사방침에 항의해서 어제 있을 예정이던 총무회담을 거부했다.사태가 자칫 잘못 굴러가면 예산안이나 경제청문회가 여권 단독으로 처리될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그래서 우리는‘총풍재판’과 국정현안을 한데 뒤섞지 말것을 정치권에 당부한다.‘판문점 총격유도사건’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내통’도 서슴지 않는 반국가적 범죄행위다.북한이 韓씨등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기 망정이지,만에 하나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어 대선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불측(不測)의 사태가 벌어졌으면 어떻게 했겠는가.게다가 남한의 대통령선거판이 오죽 저질이면 그따위 조무래기들이 감히 그런 엄청난 일을 꾸몄겠는가.그러므로 ‘총풍재판’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서 책임을 묻는 사법적절차다.따라서 정치적 시각이나 판단이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韓씨의 증언’에 대해 국민회의는 “재판결과를 예의 주시하겠다”는 태도이며 자민련은 李총재의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李총재가 韓씨로부터 총격요청 사실을 직접 보고받았는지 여부도 당장은 명확치 않다.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李총재에 대한 조사에 있어 야당 총재의 명예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임했으면 한다.그런 방식이라면 李총재도 조사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그 스스로가 법의 정의 구현에 평생을 바쳐온 법조인이기 때문이다.한가지 덧붙일 것은 언론도 이 사건 보도에 있어 앞으로는 주관적인 해석을 달지말고 진전되는 상황만 객관적으로 보도했으면 한다.국민들이 아무런 편견없이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치권은 이제 ‘총풍’은 법원에 맡겨두고 국정현안에 전념하기 바란다.
  • 실향민 北서 가족상봉/남북당국 승인… 9월 訪北

    남한에 살고 있는 한 이산가족이 남북 당국의 승인아래 지난 9월 방북,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난 사실이 1일 뒤늦게 밝혀졌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1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나,실향민 李모씨가 지난 9월 북쪽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낸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허가했었다”면서 “이후 李씨는 북한에서 가족을 상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이산가족 상봉 목적을 밝힌뒤 남북 당국 양쪽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방북,북한의 이산가족과 상봉에 성공한 첫 사례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85년 1차 고향방문단 교환 이후 제3국에서 이뤄지거나,남북경협 등 다른 목적으로 방북했을 때 간헐적으로 이뤄져왔다.
  • 金 대통령,블래터 FIFA 회장 접견

    ◎“월드컵 남북분산개최 반대안해” 金大中 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조셉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접견하고 “남북한 사이에 정치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2002년 월드컵의 남북 공동개최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블래터회장이 내년 가을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고 “남한의 관중이 평양으로 올라가고 북한의 관중이 남한으로 내려온다면 한반도 평화와 FIFA의 상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같은 방침을 천명했다. 이에 앞서 블래터 회장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과 북한이 정치적으로 해결점을 찾을 경우,오는 2002년 월드컵을 남북분산 개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남북 ‘민족의 사표’ 학술교류를(金三雄 칼럼)

    어린이는 싸우면서 자라고 분단국가는 싸우면서 통일하는가. 판문점을 통해 기업인이 평양을 다녀오고 동해에는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는데 훼방꾼처럼 서해에 간첩선이 나타나 파고를 일으킨다. ‘싸우면서 공존하고 공존하면서 싸우는’역설의 논리가 남북관계다. 지난 정권때까지 남북정책의 기조는 냉풍정책이었다. 또 사안에 따라,풍향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들면서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 결과 남북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적대와 이질성만이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다행히 새정부가 많은 비판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햇볕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함으로써 판문점 육로와 동해 뱃길이 트이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비즈니스나 관광차원의 방문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정체성을 공유하기 위한 학술 문화의 교류로 한단계 발전해야 한다. 그동안 남북한은 체제와 사상의 상이에서 오는 이질성이 각 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도 동질적인 부문이 많이 남아있다. ○민족 동질성 회복의 원천 그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에서 공통으로 평가받는 근·현대사의 인물에 대해 공동연구 또는 학술세미나를 열어 민족적 일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일이다. 다행히 남북이 모두 높이 평가하는 역사 인물이 있고 이들은 통일조국의 사표(師表)로 삼는데 별로 손색이 없는 분들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학계는 각기 다른 사관으로 역사를 기술해왔기 때문에 같을 인물,같은 사건을 놓고도 큰 차이를 보여 왔다. 남한에서는 민족주의사관을 비롯,실증사관 민중사관 등 다양한 사관이 공존해 왔지만, 북한에서는 초기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사적유물사관에서 근래에는 주체사관에 따른 역사평가가 중심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남북한의 역사인물 평가에는 차이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몇해 전 남한의 한 계간지가 북한의 각종 역사연구논문과 평가동향을 전반적으로 점검한 결과 정약용, 전봉준, 홍범도, 신채호를 ‘통일조국의 사표,남북한이 모두 평가하는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남한에서 존경받는 손병희·김구·박은식 등이 빠진것이 다소 의외이지만 남북한의 역사인물로 네 분을 선정한데는 그 나름대로 평가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들을 민족동질성 회복의 한 준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정약용은 봉건사회 해체기에 민본적 실학운동의 개혁사상가, 전봉준은 반제 반봉건투쟁의 민중혁명지도자, 홍범도는 중원대륙과 삭풍(朔風)의 황야를 무대로 항일 무장투쟁을 지도한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항일 구국투쟁과 언론활동, 역사연구의 민족주의자라는 분석이 남북한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통일조국의 사표 전쟁과 적대감으로 얼룩진 남북한에서 함께 존경받는 인물이 있다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남북 역사학계는 비록 이념과 사관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들에 대해 공동연구나 공동저술 또는 공동발표를 통해 학문적 교류의 길을 터야 한다. 그리하여 분단사학을 뛰어넘어 통일사학을 새로쓰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지금 세계사는 국제화와 민족화가 원심력과 구심력이 되어 역학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대한 세계사적 변화의 물결에 우리만 언제까지 낡은 이념의틀속에 갇혀 적대와 반목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북한 역사학자들이 서울과 평양,또는 판문점이나 금강산 관광선상에서 국민(인민)이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토론하고, 이것이 양쪽 신문과 TV에 보도 방영되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일이 왜 불가능하겠는가.역사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
  • 금강산은 완벽한 생태계 寶庫/환경보전 남북협력 절실

    ◎환경단체 관계자 제언/만물상·해금강 주변 희귀동식물 많아/골프장·스키장 건설땐 하천·고생물대 훼손/여행객 70% “관광사업 계속땐 환경파괴” 지난 18∼22일 금강산을 다녀온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금강산은 과연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였다”면서 “남과 북이 개발에 앞서 천혜의 자연자원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조류협회 宋淳昌 회장과 한국자연보전협회 徐廷洙 사무총장은 금강산관광중 외금강과 만물상 주변에 설악산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우점종(優点種)으로 극상(極狀·식물이 가장 왕성하게 번식한 상태)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워낙 잘 생겨 미인송(美人松)이라고 불리는 소나무와 신갈나무 외에 단풍나무 벚나무 떡갈나무가 많았으며 金日成의 훈시로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었다는 참대(竹)가 엄청나게 많이 눈에 띄었다. 해금강의 식생은 남한의 강원도 고성 바닷가와 비슷했다. 해금강 바닷가에서는 흰뺨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가마우지 물까마귀 논병아리가 자주 눈에 띄었다. 宋 회장은 “4박5일간 남한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관찰되지 않은 솔개를 2마리나 볼 수 있었던 반면 남한에서는 흔한 까치를 2마리밖에 보지 못한 것이 뜻밖”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골프장 스키장 온천 등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면 온정천 등 하천이 오염되고,흙 속에 사는 미생물이 관광객의 발에 밟혀 죽는 등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생물대 연구의 중요한 자산인 삼일포(三日浦)의 오염도 걱정했다. 徐 사무총장은 “북한 주민들은 ‘금강산을 남조선의 설악산처럼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면서 “이들의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 張元 사무총장도 “관광객 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70%가 ‘관광 사업이 더 진행되면 금강산이 파괴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 “北 무력사용 포기해야”

    ◎金 대통령 CNN 회견… 정경분리 원칙 지킬것 金大中 대통령은 23일 하오 미국의 케이블방송인 CNN의 대담프로(Q&A 아시아)에 출연,“남한은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 만큼 북한도 남한에 무력을 행사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하오 11시(한국시간)부터 40여분간 계속된 리즈 칸 앵커와의 대담에서 “남북한이 서로 협력할 경우 북한에 대한 남한의 투자확대를 통해 남북한은 평화공존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완전 중단할 때까지 식량공급을 중단하겠느냐는 질문과 관련,“식량공급은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계속 하겠다”고 답변했다. 金대통령은 이어서 정경분리원칙에 입각,북한과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金대통령은 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갖는 의미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은 북한의 핵시설 의혹에 대해 공동 대처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미 양국은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이번 방문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내는 햇볕정책을 병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경제청문회와 관련,“정부는 미국 등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잘못이 있을 경우 이를 규명할 책임이 있다”고 전제,“과거의 잘못을 규명,장래에 잘못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경제청문회 개최의사를 분명히 했다. 金대통령은 아울러 “5대 재벌개혁문제는 연말까지 마무리짓겠다”면서 “현재 계열사 분리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만 남아 있다”며 개혁의지를 강조했다.
  • ‘탈냉전시대의 평화’ 세미나 주제발표 요약

    ◎남북 안보차원 ‘환경협력’ 필요/한반도의 경제·환경적 고통해소 도움/남북 환경협력과 경협 통합시켜야/통일촉진·평화정착에 기여할 것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20,21일 이틀간 프레스센터에서 ‘탈냉전시대의 평화’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및 한국 정치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에 대한 국제 조류를 탐색했다.‘갈등지역에서의 환경안보:한반도의 경우’를 제목으로 평화에 대한 최근 담론인 ‘환경안보’를 소개한 미국 노트르담대학 라이모 베이리넨 교수의 논문내용을 간추린다. 탈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평화의 개념도 변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안보는 오래전부터 ‘외적으로부터의 국가보호’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있었다.군사적인 차원보다는 사회적인 수준과 그밖의 차원까지 확대되고 있다. 한반도와 같은 갈등지역에서 환경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케케묵은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그러나 전쟁위험이 적다면 폭력보다도 경제적·인도적·환경적 위기로 더욱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은 상당부분 줄었다.주변국 및 관련 이해당사국들이 북한이 붕괴되지 않도록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단적으로 말해 남북한은 멀지않은 장래에,즉 앞으로 5∼10년 안에 통일될 것이다. 안보는 단기간에 중대한 인명손실,생활조건의 중대한 오염,국가 정체성의 파괴 등을 가져올 수 있는 의도적인 위협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안보개념은 행위자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안보 위협은 군사적·경제적·환경적 원인 등 으로부터 나오지만 오직 인간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남한에서 안보쟁점에 대한 시각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GNP에서 국방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고 경제 및 환경쟁점이 안보의제에 오르고 있다.그러나 안보의제에서 비군사적 부문이 차지하는 공간은 여전히 제한돼 있다. 환경문제를 경제문제와 분리시켜서는 안되지만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보다 큰 맥락 안에서 두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환경에 관심을 쏟지 않으면 장시간에 걸쳐 균형잡힌 경제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만약 동북아시아에서 정치적 안정과 협력 안보가 경제성장과 통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환경을 보호할 필요성도 역시 인정해야만 한다.따라서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서 환경상태는 간접적이기는 해도 관련이 있다. 북한의 환경상태는 지극히 불량하다.산림개발 및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지나친 사용은 토양과 수질오염을 일으켰고 산업오염의 결과를 가져왔다.북한의 환경은 정화되어야 한다.북한은 앞으로 이 비용을 외부 참가자들에게 전가시킬 것이다. 북한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환경보전에 대해 약속을 하는 것은 정치·경제적 및 인도적으로도 옳은 일이다.그것은 남북한과 그 지역에서도 안보의제를 변화시키고 협력을 위한 새로운 초점을 만들어갈 것이다.한반도에서의 환경협력은 개혁과 통일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이런 목표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환경협력을 통합시켜야 한다.
  • 만물상 雲霧는 이산가족 한숨인듯/금강산 기행 一報

    ◎꼬불꼬불 1만2천봉 단풍옷 벗고 비경 뽐내/60대 실향민들 “고향이 저긴데” 눈물의 산행/北 안내원 붙임성 있게 인사… 사진찍기는 거부 19일 미명의 금강산 유람선 위에서 첫 대면한 북한 장전항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등진 작은 포구는 정적 속에 누워 있었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해안을 따라 단조롭게 들어선 수채화의 풍경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꼬리를 무는 남한의 여느 작은 항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선 절차를 밟으면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정작 무거운 기분이 얼마간 풀렸다. 감시병의 앳된 얼굴 때문인지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하는 안도감조차 들었다. 현대그룹의 유람선 관광에 동참한 기자의 금강산 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외금강 초입에 들어서자 온갖 상념도 이내 천하절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금강산은 어느새 초겨울이었다. 산봉우리들은 나신을 뽐내고 있었다. 가을의 풍악산에서 이름표를 바꿔 단 개골산의 미학은 기막힌 조화 그 자체였다. 만물상 코스는 유람선 관광일정 중 첫산행길이었다. 금강산의 주요 22개 관광코스 중에서도 손꼽히는 산행로였다. 꼬불꼬불 이어진 106굽이는 줄곧 감탄을 자아내는 비경들이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관음폭포∼육화암∼만상정을 잇는 21㎞ 구간은 관광버스로 달렸다. 현대측이 새로 닦은 도로 양옆에는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철조망 울타리는 금강산 일원이 군사요새임을 말해줬다. 남쪽사람과 북한주민의 접촉을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의지가 읽혀졌다. 마침내 재래식 화장실 하나만 덩그러니 기다리는 만상정 주차장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비경인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까지는 도보였다. 1.5㎞에 이르는 등산로는 60대 이상의 관광객들에겐 힘든 길이었다. 나이든 실향민 다수는 먼발치에서 세명의 신선을 닮았다는 삼선암과 귀신 형상의 귀면암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측 관광가이드들은 천선대에서 채 3분의 1도 못미친 지점에서 고령자들을 돌려세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딸들의 만류를 “이번이 아니면 생전에 고향 가까이갈 수 없다”며 뿌리쳤던 朴유희 할머니(77)도 마침내 눈물을 머금었다. 만물상은 오를수록 장관이었다. 하지만 앞자락의 연봉들과 숨바꼭질하듯 좀처럼 온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마침 내리는 싸락눈 속에 남녀 순찰대원들이 굽이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직 금강산 안내원들이었다. 남쪽에서 온 가이드들에게 자리를 내 준 사람들이었다. 구룡폭포로 통하는 길목의 앙지대에서 만난 금강산 관리원 張英愛씨(28·여)는 붙임성있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기에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금강산을 버리고는 시집 못갑니다. 죽어도 금강산을 베고 죽을 겁니다”라고 억센 북한 사투리로 답했다. 남쪽 기자들의 농을 떨쳐내려는 듯 “저 위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으니 어서 가보시지요”라고 발길을 재촉해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천선대 문턱에서 만난 한 북한 처녀는 길을 묻자 얼굴부터 빨갛게 물들였다. 몇 발자국 더 걷다 문득 張씨의 설명이 떠오르며 천선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놀던 곳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말안장 같은 안심대를 지나 쇠사다리를 곧장 오르니 커다란 바위구멍이 나타났다. 금강산의 여덟 돌문 중 하나인 하늘문이었다. 그제서야 천하절승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에 섰음을 깨달았다. 멀리 옥녀봉과 세존봉,비로봉 등 준봉들이 시립하고 있었다.
  • 韓·美 정상회담­정상회담 무슨 대화 나눴나

    ◎金 대통령­투자협정 조속 체결… 美,대규모 투자를/클린턴 대통령­개혁·구조조정·기후의정서 저지에 감사 金大中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대북 정책,경제·통상 등 양국간 주요 현안을 집중 논의했다. 예정된 30분을 넘어 1시간20분 동안 계속된 단독 정상회담에서 金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금창리의 지하시설 방문 등 대북정책을 집중 조율했다.또 40분간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의 경제·통상 확대와 국제기구에서의 공동 협력방안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다. ▷단독회담◁ 먼저 金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결과를, 클린턴 대통령이 일본 방문 결과를,金대통령이 중국 방문 결과를 차례로 설명했다.이어 金대통령이 우리의 대북정책을 상세히 설명했다. ●클린턴 대통령 金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단지 미국 국내 사정 때문에 신경을 써야겠다.미 국민과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다.한반도정책조정관으로 의회 관계가 좋고 한국문제를 잘알고 있는 페리 박사를 지명했다.그의 조정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제네바합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남북간에 불필요한 긴장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金대통령의 말에 동의한다. 대북정책은 한·미 공조 아래 일관성 있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추진하도록 노력하자.국제적 지지를 얻어야 하며 특히 중국과 일본이 긴밀히 협조해 모두 다 한 목소리로 북한을 설득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든 북한을 고립시키지 말아야 한다.어제 남한 주민이 금강산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감명스러운 광경을 보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안정과 안보를 위해서 지하 의혹시설을 규명하고 미사일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 ●金대통령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써야 한다.제네바합의를 준수하고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지 않아야 하며,인내심을 갖고 일관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 양국간 대북정책이 완전히 일치한다.이러한 정책을 계속 추구하자.예산을 위해 미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므로 현명하고 슬기롭게 풀어 나가자.한반도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金대통령뿐이다.경제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한국의 개혁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재벌 구조조정,무역자유화 확대,한·미 투자협정 체결,철강·쇠고기·의약품 등 경제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미국 제약회사에 차별이나 장애가 없도록 해달라. ▷확대 정상회담◁ ●金대통령 단독 정상회담에서 안보문제를 많이 얘기했으니 경제문제를 얘기하겠다.지난해 말 외환위기때 보내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음으로부터 감사 말씀드린다.경제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은 차질 없이 되어가고 있으며,연말까지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내년부터는 경제가 개선돼 중반부터 플러스 성장을 하고 후년부터는 정상화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투자유치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그것이 우리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므로 모든 노력을 다한다.외국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내년부터 대규모 투자증가가 예상된다.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니 적극 협력바란다.양국간 모든 경제문제는 대화를 통해서 자동차협상때처럼 타결할 수 있다.자동차협상이 경제협상의 모델이 될 것이다.양국 투자협정이 조속히 해결되기 바란다.미국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우리 전문인력이 참여하도록 협조바란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도와야 한다.미얀마관계는 유엔이 결의하고도 방치한다.21세기를 바라보며 민주주의 양심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협력하기 바란다.기후협약에 큰 관심을 갖는다.도쿄의정서에도 서명했다. ●클린턴 대통령 한국의 개혁과 구조조정 노력에 감사한다.일본에서의 노력과 더불어 아시아의 경제회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기후의정서를 지지한 데도 감사한다.경제가 성장하면서 환경을 해치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미국이 먼저 대처하고 다른나라도 동참해야 한다. 오늘 공동 방위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나눠 참으로 감사한다.포용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한다.특히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에 접근해서 조사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한 것도 감사한다.
  • 팔당 1㎞내 음식점 못짓는다/정부 수질대책 확정

    내년 하반기부터 팔당 특별대책지역 내 수변(水邊)구역에서는 일반주택을 제외한 음식점,숙박업소,축사,공장 등을 신·증축할 수 없다. 그러나 특별대책지역 밖의 수변구역에서는 방류수 수질을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10ppm 이하로 개선하면 음식점,숙박시설 등을 지을 수 있다. 정부는 20일 金鍾泌 국무총리 주재로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팔당호로 흘러드는 남·북한강 및 경안천 유역을 수변구역으로 지정해 오염원(源)이 들어서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의 ‘팔당호 등 한강수계 수질관리 특별종합대책’을 확정했다. 대책에 따르면 남·북한강 및 경안천의 특별대책지역 내 양안(兩岸) 1㎞가 수변구역으로 지정된다. 특별대책지역 밖은 북한강의 의암댐,남한강의 충주 조정지댐까지 양안 500m가 수변구역에 포함된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구룡폭포 물줄기 하늘서 쏟아지는 듯”/북,관광객 점심식사 장소 제공/3개조 나눠 코스별 등반/민간인 첫 통화 1분37초 ●금강산 관광 첫날인 19일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로 당초 예상보다 따뜻했다.오후들어 기온은 영상 6∼7도로 오르며 관광하기에 안성마춤인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18일 오후 5시30분 동해항을 출발한 금강산 관광선은 19일 오전 7시30분쯤 장전항의 임시계류장에 무사히 정박.오전 9시부터 30여분간 입북 수속을 마친 관광객들은 구룡연,만물상,해금강 등 3개 관광코스로 나뉘어 버스에 타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버스는 현대가 미리 북한에 보낸 것으로 이날 35대가 운행됐다. 관광객들의 점심은 코스별로 마련된 식당에서 현대측이 준비한 보온도시락(반찬 4가지)으로 해결.북한측은 구룡폭포코스는 목란관,만물상코스는 금강산호텔,해금강코스는 단풍관을 식사장소로 제공하고 물과 국을 나눠줬다. 만물상코스에서 일부 연로한 관광객들은 등산을 포기,버스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도.관광을 마친관광객을 태운 첫 버스가 오후 4시30분쯤 유람선에 도착해 오후 6시에 모든 관광객들이 승선을 완료. ●소설가 이문열씨는 구룡폭포를 다녀온 뒤 전화로 ‘역시 절경이었다”며 “설악산이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소감을 피력. 그는 또 아홉마리 용이 서로 싸우다가 쫓겨가 숨었다는 전설이 담긴 이 폭포는 “두개의 커다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면서 “좌우로 붙어있는 얼음과 함께 장관을 이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강호로 돌아오는 길 양 옆에 있는 철조망과 군복차림의 사람들은 낯선 이국땅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고 지적. ○정 명예회장 북 인사 접촉 안해 ●북한측 고위인사의 재접촉 가능성 때문에 언론의 촉각을 곤두세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관광을 가지 않고 금강산 초대소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장전항 도착 이후 가장 먼저 하선한 정 명예회장이 조선아태평화재단 황철 감사관의 영접을 받았으며 다른 북한측 인사와는 접촉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고 전언. ●금강산관광 첫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친 현대측은 북측과 실무회의를 갖고 관광불편사항을 점검.이날 만물상으로 가는 도로가 일부 얼었다는 지적에 따라 19일 밤 북한과 현대 양쪽 근로자들이 투입돼 모래 등을 뿌렸다. ●순수한 관광을 조건으로 내건 북한측은 우리쪽의 일부 취재진이 점심을 먹다 식당봉사원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즉각 제지.기자들은 이후 관광코스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북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접촉하려 했으나 번번이 북한지도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북 주민과 접촉 제지 ●북한의 입국거부자 숫자를 놓고 현대그룹의 PR사업본부와 대북사업단이 집계한 숫자와 거부경위가 서로 틀리는 등 오락가락해 한동안 혼선. PR사업본부측은 금강호에는 24명이 남아있으며 KBS기자 15명,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 관계자 4명이라고 밝혔다.또 KBS기자 15명 가운데 4명이 배에서 무단하선,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받고 있으며 이들의 거취는 아직 알수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현대 대북사업단은 입국거부자로 분류돼 배에 잔류해 있는 인원이 20명이며 KBS기자 4명은 거부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아 관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최종 확인. ●금강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총 25명으로 확인.이 가운데 애초부터 하선이 금지된 금강호 호텔지배인과 러시아 여성무용수 4명 등 5명을 제외한 언론사관련자는 20명.승선이 거부된 KBS관계자 11명 가운데는 ‘사랑의 리퀘스트’팀 5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중에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도 있어 눈길. 현대측에 따르면 송씨는 북한측에 제출한 신청서의 직장난에 KBS라고 기재,억울한 잔류자가 됐다고. ○20일 671명 떠나기로 ●관광객들은 북측 영해에 들어서기 전까지 선내에 마련된 공중전화 4대를 이용,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장전항 입항부터는 4개 회선의 국제전화를 통해 남쪽 가족과 통화. 처음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화를 한 관광객은 黃규연씨(68·동아수산회장·서울 송파구 문정2동)로 밝혀졌다.黃씨는 19일 오전 8시58분쯤 장전항에 정박 중인 금강호에서 온세통신 교환원을 통해 서울에 사는 아들 黃인성씨(49·동아수산사장)와 1분37초 동안 통화.이날 통화는 분단이후 50여년만에 민간인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 ●20일 출항하는 현대봉래호의 승선인원은 관광객 671명,관광안내원 34명,승무원 288명 등 모두 1,011명.봉래호에 승선할 내·외신 취재진은 88명으로 주로 잡지·지방지 기자로 구성됐다.입북거부 소동을 빚고 있는 조선일보는 출판국 기자 4명이 들어갈 예정이며 KBS는 신청하지 않았다.
  • “금강산 바람 셌지만 포근”

    ◎조선일보·KBS 기자 등 20명 하선못해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주민들의 대규모 금강산 관광이 19일 시작됐다. 현대 금강호를 타고 이날 오전 북한 장전항에 도착한 관광객과 승무원 1,356명은 입북 수속을 마친 뒤 3조로 나뉘어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및 해금강 지역을 관광했다. 현지에 도착한 현대 직원들은 이날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 정도로 예상보다 따뜻했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고 전해왔다. 금강호는 이날 새벽 2시25분쯤 남북간 해상분계선을 지나 제1도선 지점인 장전항 17마일 밖 해상에 새벽 4시쯤 도착했다. 금강호는 오전 6시50분쯤 제2 도선지점인 장전항 5마일 밖에서 북한 도선사를 만나 7시30분쯤 장전항 임시계류장에 정박했다. 승객들은 장전항 부두까지 이용하게 될 부속선에 8시30분부터 타기 시작해 오전 10시쯤 장전항 선착장을 밟았다. 그러나 통일부 직원 4명,KBS 보도진 15명,조선일보 기자 4명 등 24명은 북한측의 입북 거부로 금강호와 입국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현대측은 金潤圭 현대건설사장 등이 이들의 입북문제를 북한측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측은 이날 금강호 승선자는 관광객 826명,승무원 419명,안내원 47명,안전요원 51명,오락담당자 13명 등이라고 밝혔다. 현대측은 또 금강호 출항에 이어 봉래호가 1,011명을 태우고 20일 하오 5시 동해항에서 두번째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다고 발표했다.
  • 이제야 가는 금강산(朴康文 코너)

    일반 관광객을 태운 금강산행 첫 배가 18일 마침내 떠났다. ‘마침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동안 일이 잘 되느니 안 되느니 곡절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이 고향이 아니어서 그런지,당장 가 보고 싶은 열망까지는 없다. 우선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또,이런저런 제약이 많아 퍽 신경 써야 하는 여행이 될것 같은 것도 내키지 않는 이유다. 시일이 한참 지나면 요금도 내리고 제약도 좀 풀릴 것이니 언젠가는 그 곳 절경을 가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금강산 관광길이 하루라도 일찍 열리기를 바란 것은,남북간의 굳은 장벽이 작은 틈새나마 열리고 앞으로 이 틈새가 점점 넓어지면서 양쪽의 신뢰와 이해가 쌓일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다른 많은 분의 생각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남북 ‘신뢰감 구축’ 희망 싹터 금강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등학교 때 배운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하는 노래 구절이다. 어린 시절 배운 이 노래는 강산을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장성해서 들은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그 각인을 더욱 깊게 했다. 여기까지는 국민적인 공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금강산하면 안춘근이란 분을 생각하게 된다. 몇 년 전에 작고 한 이 분의 고향이 금강산 기슭에 있는 반농반어의 작은 마을이었다. 고서수집가,출판평론가,수필가로 활동한 그는 ‘고향’ ‘언제 고향에 갈수 있을까’ ‘우리들의 자랑 금강산’등 여러 편의 글에 고향 마을과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아호를 출생지인 외금강면 남애리를 따서 남애라고 하면서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금강산 뱃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다. 아마 생존했더라면 이번 첫 배에 꼭 탔을 것이다. 금강산 옛 그림 스무 폭으로 꾸민 병풍과 금강산 흙으로 빚은 불상을 서재에 두고 따뜻한 고향 흙냄새를 맡으려고 했던 그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는 ‘대한팔경’의 “에헤 금강산 일만이천,봉마다 기암이요”하는 구절이 시작되면 어떤 일을 하다가도 일손을 멈추고 듣고,몇 명 모이지 않는 장전 남국민학교 동창회 때는 이노래를 합창한다고 했었다. 고령인데도 이 추운 날씨에 비싼 노자를 들여 금강호에 오른 관광객 가운데는 남애와 같은 심정인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육로도 하루빨리 열렸으면 남북이 분단된 지 반세기.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이들은 고령이 되었다. 많은 이가 이미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세상을 떴다. 금강산 가는 길이 뱃길만 아니라 육로로도 열리고,금강산뿐만 아니라 북의 다른 지역도 통행할 수 있게 되어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하고 염원하는 이들이 고향에 가 볼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일반 관광객에 앞서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것을 보면,우회도로와 철조망으로 북한 주민들과 접촉할 수 없게 해 놓았더라고 하니,이 기원의 실현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누가 알랴. 남한 관광객을 태운 커다란 배가 동해항에서 장전항까지 가게 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듯이,생각보다 빨리 북한의 다른 지역 통행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첫 출항 르포

    ◎금강산에 瑞雪… 민족화합 소망 싣고/수백개 오색풍선 띄워/한·사연 안은채 승선/제수용품 들고 가기도 18일 오후 5시44분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부둣가에 정박해 있던 현대금강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자 수백개의 오색풍선이 날아오르고 수십발의 폭죽이 터지며 동해항의 하늘을 밝혔다. 부둣가에 나와 있던 3,0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호의 불 켜진 창마다,갑판 층층마다에서 탑승자들은 손을 흔들며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 황혼의 어스름을 뚫고 2만8,000여t의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금강호가 바다 저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호는 그렇게 떠나갔다. 배 안에는 승객만 탄 것이 아니었다. 금강호의 첫 출항으로 민족 화합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꿈과 온 국민의 소망이 실려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날 하루는 너무도 길었다. 부둣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성대는 노인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이들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밤 금강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서설(瑞雪)이 아니겠느냐”며 좋아했다. 설레임이 가득한 눈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한(恨)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昇龍할아버지(70)는 “금강산에 올라 고향을 향해 절을 하겠다. 그리고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부모님께 사죄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어 “5남매의 장남으로 홀로 월남한 뒤 50년을 하루같이 남몰래 눈물을 흘려왔다”면서 “이 한을 품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향을 그리다 숨진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평북 희천에서 남편과 함께 월남한 金華洽할머니(71)는 “외아들과 함께 고향땅을 밟게 돼 기쁘다”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權萬希씨(70)는 과일과 술을 마련하고 제수용품을 준비했다. 지방도 정성스레 써놓았다. 생가가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리에 있어 고향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인 魚善龍씨(65)는“남편이 관광 신청을 한 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고 전했다. 금강호가 떠난 뒤에도 삼삼오오 터미널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방송사 헬기가 보내오는 금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공식 첫 출항 전날 이모저모

    ◎“월남 50년만에 북한땅 간다” 흥분/100발의 폭죽속 전야제 성황/갑작스런 한파에 포기자 생겨 금강산 관광선 첫 공식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관광객들은 기대에 부푼 표정을 지었다. ●현대금강호 승무원들은 16일 저녁 외출과 휴식 등으로 시험운항의 피로를 씻은 뒤 17일 오전부터 배에서 먹고 쓸 음식 및 물품을 싣고 객실을 정리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梁在元 선장(40)은 “첫 출항을 위한 준비는 시험운항을 통해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면서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한 객실 서비스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은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뱃길을 통해 금강산에 가는 역사적 순간의 주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高在鳴씨(67·강원도 춘천시 근화동)는 “월남한 지 50년 만에 다시 북한땅을 밟는다는 생각을 하면 그동안 기다렸던 세월이 아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관광객 중에는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 때문에 막판에 금강산관광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고있다. 고향인 평북 선천에 부모와 아들을 남기고 온 金동선씨(76·경기도 평택시)는 “혹시 가족의 안부를 들을 수 있을까 금강산행을 손꼽아 기다려 왔지만 다리가 불편한 데다 날씨마저 추워 내년 봄에 가기로 했다”며 아쉬워했다. 황해도 개성이 고향인 延정숙씨(80·여)도 추운 날씨에 방한복을 입고 산을 오를 자신이 없어 다음으로 연기했다. ●금강산관광이 지역경제 회생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동해시는 관광선 출항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들뜬 분위기였다. 관광선 취항이 결정된 직후부터 금강산사업지원단을 구성,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동해시 洪璟杓 부시장(59)은 “동해시가 세계적 관광도시로 주목받게 됐다”면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출항 하루 전인 17일 동해항 여객터미널 옆에 대형 무대를 설치,전야제 행사를 가졌다. 전야제에는 가수 조용필 김건모 윤복희 태사자 NRG 현철 설운도,성악가 최현수 김원정,재즈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어린 나이에 흥부가를 완창(完唱)해국악계를 놀라게 했던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등이 출연했다. 100발의 폭죽이 터져 분위기를 고조시킨 데 이어 금강호가 불을 밝히는 것으로 행사는 끝났다. ◎통화 어떤 경로/평양­인텔샛­도쿄 거쳐 서울로 “아범아,여기는 금강산이란다” 금강산 관광객은 18일부터 금강호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어렵게나마 국내 가족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북한측과의 실무협상을 통해 선실 내에 국제전화용 전용회선 4개를 확보,공중전화를 설치한다.배에 인공위성을 통해 무선 통화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이 있지만 북한측의 불허로 무용지물 상태다. 통화는 일반 국제전화(082)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이뤄진다. 이미 가설된 평양과 금강산 온정리 사이의 전화케이블을 이용한다.평양에서는 위성 인텔샛을 통해 일본 동경으로 연결된다. 여기에다 현대 기술진은 북한측의 협조를 얻어 온정리에서 장전항까지 7㎞에 걸쳐 케이블을 연결했다.그러나 부두에 정박한 금강호에까지 케이블을 연결할 수 없는 실정.따라서 장전항 인근에 특별히 전파를 쏠 송신장치(SR장비)를 설치했다. 현대는 당초 6회선을 확보했으나 두 회선은 현대 공사진과 합영사의 전용회선이어서 금강호가 사용할 수 있는 회선은 4개에 그친다.금강호에는 이를 이용한 카드식 공중전화 4대가 설치된다. 목소리가 금강호에서 장전항∼온정리∼평양∼위성∼일본 동경을 거쳐 즉시 서울(또는 지방)로 생생히 전달된다. 보도진의 기사전송과 육성 생방송도 마찬가지다. 전화요금은 비싼 편이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걸때는 1분 통화에 무려 3.79달러로 이를 환산하면 4,927원이나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걸때는 1분에 1,428원이 든다. ◎관광 성사까지/본지 첫 보도… 3차례 위기 끝에 결실 금강산 관광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현대그룹 鄭夢憲 회장은 9개월간 산고의 아픔을 겪었는지 모른다.鄭周永 명예회장에게는 지난 89년 이후 9년여만에 성사시킨 필생의 사업이다. 금강산 관광은 대한매일이 지난 5월 중순 보도한 ‘올 가을 금강산 유람선 뜬다’는 제하의 상자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지난 89년 1월 鄭 명예회장이 처음 북한을 방문할 당시 움을 틔운 금강산관광은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경색으로 인해 잊혀져 왔다.그러던 참에 鄭회장이 올 2월14일 극비리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북한측 아태평화위 고위관계자를 만나고서부터 금강산관광의 줄기가 잡혔다.북한이 지난해 연말 은근히 현대측에 사업의 재개를 타진해 온 터였다.3월에는 북한과의 화물열차 공동생산이 이뤄졌고,4월에는 金潤圭 현대건설 부사장의 북한 방문이 이뤄졌다.마침내 鄭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이 6월16일 이뤄졌다.그것도 금세기 마지막 장관이 된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鄭 명예회장 귀환 하루 전날인 6월22일 동해에서 북한 잠수정이 발견됐다.한달 가까이 현대와 북한의 고위급 접촉 루트가 끊기면서 간간이 베이징에서 실무접촉만이 이어졌다.현대 고위인사는 이 기간을 “아무 것도 못하고 허송세월한 셈”이라고 술회했다. 두번째 위기는 9월25일 첫 출항을 지키지 못한 데서 찾아왔다.요란하게내 걸었던 약속이 결국 ‘잠수정 정국’에 밀려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31일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건이 터졌다.일부 정치권 등 보수층에서 “북한에 준 돈이 미사일되어 돌아온다”며 강력히 반발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鄭 명예회장과 鄭회장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장각서 어떻게/신변안전 걱정 안해도 된다/북서 “보장” 담화 발표/세칙 재협상 장애 안돼 금강산유람선 첫 출항을 하루 앞둔 17일 정부 당국은 적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금강산 관광선 1호인 ‘현대금강호’가 2박3일간의 금강산 관광 시험운항을 무사히 끝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그동안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현대­북한간 신변안전 보장 협의 결과가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북한 백학림 사회안전상의 ‘신변안전보장각서’ 만으로는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나 시험운항 ‘성공’ 이후 일단 유람선관광사업의 전도에 파란불이 켜진 것으로 보고 있다.북측 인사들의 ‘자세’에서 관광사업에 적극적인 의지가 읽혀졌다는 것이다.북한측 사업주체인 아태평화위측도 14일 “우리 관계기관들은 금강산을 참관하는 남조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다만 몇가지 작은 불씨는 남아 있다.북측이 제시한 금강산 관광세칙도 그하나다.현대와 북한은 지난주초부터 관광객에 대한 벌금부과,촬영금지 등 관광세칙에 관한 재협상을 해왔다. 그러나 재협상 결과가 결정적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통일부 黃河守 교류협력국장은 “첫 출항일까지 세칙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적용할 세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양측이 세칙에 합의할 때까지 관광객들은 북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세칙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북측의 관광객 ‘선별’ 소지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그러나 정부측은 북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측의 지난 8월 ‘보장서’를 근거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보장서는 “관광객의 직장·직위를 문제 삼아 관광과 관련,입·출북을 허용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동해시청 沈圭彦씨/“대민행정 지원 아끼지 않을 것”/터미널 도우미 배치/관광객 불편 최소화 “실향민과 남북관계는 물론 동해안지역 경제를 위해 금강산 관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동해시청 금강산관광지원사업소 沈圭彦 소장(43)은 지난 16일 2박3일간의 금강산관광선 시험운항에서 돌아온 뒤 18일의 첫 출항에 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해시는 동해항이 금강산관광선 출항지로 선정된 지 4일만인 지난 8월1일 지원사업단을 구성했다.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대민·행정 지원 등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동해시는 지금까지 건축허가에서부터 선상에서의 영업허가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허가신청을 낸 당일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정도였다. 沈소장이 시험운항에 참가한 것도 관광객의 불편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沈소장은 출국 절차에 불편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여행 터미널에 도우미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숙박시설도 대대적으로 정비키로 했다.배가 밤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동해시에서 묵지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빡빡한 일정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노인들이 출항 하루 전에 동해시를 찾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직접 다녀와보니 출항 당일 동해에 도착해 교육을 받고 오랜 시간 배를 탄 뒤 다음날 새벽 산행을 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강호 등에서 선식(船食)으로 사용되는 동해안 해산물의 납품 과정도 살폈다.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지역 특산품 개발도 구상중이다.금강산관광객을 동해안 관광지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沈소장은 “금강산 관광이 성공하는 지름길은 관광객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라면서 “조금도 불편이 없는 여행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북한은 끼어들지 말라(사설)

    崔章集 교수 논문을 둘러싼 논란에 북한이 끼어들었다.조선기자동맹중앙위가 12일 최교수를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보는 진보적인 학자’로 규정하고,조선일보가 崔교수의 논문에 대해 사상시비를 거는 것은 ‘낡은 냉전시기 사고방식의 발상’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온 것이다.이에 대해 崔교수는 즉각 반박성명을 냈다.북한의 성명은 “나의 논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고 변조한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하고,“나는 그간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일관된 비판을 견지해왔고 한국전쟁이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에서 비롯된 남침이었다고 누차 밝혀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북한이 崔교수를 옹호하고 조선일보를 공격하며 끼어든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북한은 그동안 다원화된 남한사회 여론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국론을 분열시키는 성명전술을 써왔기 때문이다.이번 성명도 그렇다.崔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은 법원의 가처분 수용판결로 불길이 잡혀가고 있었다.그러던 판에 북한은 사그라지던 불씨에 의도적으로 기름을 끼얹고 나온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우리 사회의 민주·통일운동은 북한이 옹호하고 나오는 바람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북한이 거들고 나오기가 무섭게 독재권력은 “그것 봐라”며 민주·통일운동을 탄압했다.남북 당국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척척 손발이 맞았다.그러나 남한의 민주·통일세력이 친북세력이 아닌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한의 민주·통일세력을 지원하는 듯한 몸짓을 의도적으로 한다.말할 것도 없이 남한의 국론을 최대한 분열시키기 위해서다.남한사회의 국론이 분열되면 될수록 적화통일의 기회가 커진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북한은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입을 열면 여든 야든 좋을 게 없다”는 성명을 냈다.여당을 물고 들어간 것은 남북문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崔교수의 반박 성명에도 불구하고,북한은 이 문제에 끼어든 목적을 이미 충분히 달성했다.남한 극우 보수세력과 민주세력간의 갈등을 극대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한 지배층의 카운터파트인 극우세력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남북 기득권 세력간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성명전술을 버려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다.북한의 그런 얄팍한 이간질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번 논란은 우리 내부에서 헌법정신에 따라 이성적으로 소화해 낼 일이다.
  • 월간조선 販禁 이후­崔章集 교수 특별인터뷰

    ◎“사상공세는 변화거부 반증”/‘인민해방전쟁’ 용어는 北측 주장의 객관적 서술 일뿐/“한국전은 북의 오만·무절제가 빚은 참상” 인식 확고/北 기자동맹 성명 자유민주세력 약화 노린 의도적 행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 교수(정치학)는 13일 “조선일보의 사상공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며,보수 극우세력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崔교수는 또 북한 기자동맹 중앙위의 성명발표와 관련,“남한의 극우그룹과 민주주의 세력간의 논쟁을 격발시켜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저의”라며 “북한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카운터파트’를 지원하는 효과를 충분히 인식한,의도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월간조선의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는데. ○판매·배포 금지판결 당연 ­법원의 판결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은 대외적으로 탈냉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국내적으로 사회평화와 국민통합,민주화를 추진해햐 할 시기다. 이를 이행해 나가는데 이번 사건(사상논쟁)은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법원 판결은 탈냉전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민주화를 다지는 개혁에 있어 장애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조선일보가 나를 공격하는 것은 개인 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개혁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공세는 극우 보수세력의 변화 거부를 보여주는 것이며,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침해에 대한 견해는. ­언론에 의한 인권침해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의 사상공세는 민주화된 상황에서 무제한적 자유를 향유한 언론이 국가권력 이상으로 인권침해를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법원판결은 이러한 인권 침해에 대한 언론의 책임성과 공정성 등을 지적한 사례로 볼수있다. 앞으로 언론에 의한 인권침해나 사상공세 등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기자동맹 중앙위의 성명에 대해서는. ­과거 구여권과 북한의 지도층은 그동안 냉전체제에서 기득이익을 얻어왔다. 북한의 金正日 정권은 북한의 보수 기득세력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남한의 소수 극우와 북한의 기존 지도층은 냉전 기득이익을 유지하려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따라서 북한의 기자동맹이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원,강화시키는 목적이 아니라 남한의 극우그룹과 민주주의 세력간의 논쟁을 격발시켜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그들의 성명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카운터파트’를 지원하는 효과를 충분히 인식한,의도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남북화해 움직임에 찬물 ▲월간조선이 문제 삼고있는 ‘민족해방전쟁’ 등의 학술용어는 어떻게 생각하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것은 북한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 뿐이다. 이 때문에 재판부도 월간조선이 나의 논문을 왜곡하고 좌파적 인물로 묘사할 우려가 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은. ­한국전쟁이 북한권력의 오만과 무절제가 빚은 참상이라는 나의 인식은 시종일관 확고하다. 한국전쟁이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비롯된 남침이었고 이러한 전쟁의 여파로 우리민족이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누차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나는 일련의 저작을 통해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 일관적으로 비판을 견지해 왔다. 북한측이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북한의 이같은 발언은 남북의 화해협력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 얼굴없는 노동자시인 박노해:하(금지문화금지인생이제야말한다:13)

    ◎암울한 ‘불의 시대’ 지나 이제는 감싸고 흐르는 ‘물의 시대’ 같은 느낌/약한자들 고통과 슬픔 외면못해 뛰어든 노동운동/이념에 갇혔던 ‘사노맹’ 합리적 진보운동 밑거름 기대/정직한 성찰과 반성만이 희망의 미래 열어갈것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핵심간부로 활동하다 91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지난 8·15특사로 석방된 박노해씨(40·본명 朴基平).시골출신의 노동자로 시작해 급진 이데올로기의 핵으로 활약하다 사형구형까지 받아 7년간 격리된 뒤 준법서약서를 쓰고 다시 햇빛을 보게 된 인물이다.출감직후부터 줄곧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강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노해씨를 만나 보았다. ­91년 구속될 때와 요즘 분위기의 차이는. ▲당시가 어두운 시절 불덩어리처럼 자기 몸을 던지는 ‘불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열정을 내면화시켜 물처럼 흘러가는 ‘물의 시대’같은 느낌이 든다. ­처녀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글들은 언제 쓴 것인가. ▲선린상고 야간 시절 체험한 공장의 불쌍한 삶과 군제대 후 함께 부대끼던 공장과 버스회사 동료들의 짓눌린 모습들을 가식없이 담은 것들이다.작업장과 기숙사 구석에서 작업장 일지 등에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을 자평한다면. ▲시대적 서정과 비전이 문학적 형태로 충분히 제시됐다고 본다.사회의 모순들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현장 분위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어린시절 작가가 꿈이었다는데 노동운동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는.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그러나 서울에 온 후 공장에 다니면서 계속되는 특근·철야잔업에서 동료들이 손을 잘리는 급박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이때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기로 했다.노동운동 아닌 노동운동부터 시작한 셈이다. -얼굴없는 시인으로 집필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나만의 책상,나만의 펜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단 한순간도 편안히 앉아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원고 전달때도 항상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85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에 가입한뒤엔 급진 노동운동가로 바뀌고 노동해방문학에선 정치적인 색채까지 보이는데… ▲주는대로 받고 시키는대로 일하는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날 때였다.모순은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분신과 구속 시위 등 항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사람이 불에타 죽는 상황에서 시만 쓴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명을 부인하다 신동아 90년 12월호에 자전수기를 보내 신원을 밝힌 이유는. ▲86년 5·3인천사태로 구속된 金모씨가 조사과정에서 내 본명을 실토했다.수사기관에서 전담반까지 구성해 추적하는 상황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박노해로 몰려 희생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수사기관에서 이미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데다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판단,이름을 밝혔다. ­사노맹의 핵심사상은 무엇이었나. ▲사노맹은 80년 당시 군사독재하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그리고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노동해방을 온몸을 다바쳐서 밀고 나갔던 80년대 시대 정신의 절정이었고 시대의 최전선에서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사노맹의 실패 원인은. ▲시대변화에 너무 늦었고 실천과정에서 너무 조급한 게 한계였다.급진 사회주의에 갖혀 당시 정권을 여전히 군사독재로 규정한 채 변화를 보지 못했다. ­지금 사노맹에 대한 생각은. ▲사노맹 사건은 500명이 구속되고 형량도 2,000년이 넘는 가혹한 희생을 치렀다.그동안 침묵 절필 삭발정진을 통해 책임을 지려했다.사노맹 관련자들 이 삶의 모범을 통해 극좌이념에 치우친 후배들을 진정하고 합리적인 진보운동으로 이끌어 가는 훌륭한 일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93년 옥중시집 ‘참된 시작’은 어떻게 나왔나. ▲91년도 대법원 상고 이유서를 쓸때 이미 창비(창작과비평사)에 원고가 넘어가 있었다.진보운동 쪽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늦춘 것이다. 극우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모두 돌멩이를 맞았다.합리적 진보쪽에선 올바른 변화라는 평을 얻었다. ­‘참된 시작’에서 사상 갈등과 자기반성이 두드러지는데 그 배경은. ▲분단과 군사독재라는 절대폭압의 조건 속에선 작은 권리 하나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붙든 게 사회주의였다.70∼80년대 짐승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살려내기 위해 야수처럼 싸웠다.그러나 사회주의 붕괴를 정직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93년 6월호 ‘사회평론’지에 낸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평에선 진보진영의 반성을 주장했는데… ▲철저하고 정직한 자기성찰과 책임 없이는 미래의 민주개혁과 진보적 운동이 불가능하다.새로운 진보이념과 비전,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목숨걸고 참구(參究)해 나가자고 한 것이다. ­계획된 작품은. ▲내년 여름쯤 이 시대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산문집을 낼 계획이다.올 겨울엔 6년만에 세번째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동양사상과 서구사상,사회적 실천과 내적 영성(靈性) 등 양극대립을 모두 담을 생각이다. ◎격별의 글들/“그래 결국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처절한 노동현장 ‘시다의 꿈’/강렬한 저항·분노 ‘노동의 새벽’/격랑뒤의 깨달음 ‘사람만이…’ ‘시다의 꿈’(83년 시동인지 ‘시와경제’에 발표)에서 ‘사람만이 살길이다’(97년 해냄刊)까지­.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활동하다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박노해씨의 글들은 험난했던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언들이다. 박노해란 이름을 처음 알린 ‘시다의 꿈’은 노동현장의 비극성을 그나마 우회적으로 들이민 처녀시였다.“…/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아직은 시다/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하나로 연결하고 싶은/시다의 꿈으로/…”. 박노해를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80년대 최고의 문제작가’로 자리매김한 시집 ‘노동의 새벽’은 훨씬 거칠어진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칠은 땀방울 피눈물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쓰린 가슴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노동의 새벽)“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잡고/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모두 열악한 작업조건과 억눌린 사람들의 직설적인 고발이다. 그러나 옥중시 ‘참된 시작’과 지난해 발표한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살길이다’에선 사상의 갈등과 반성,그리고 새 생활에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감마저 갖게 된다.“뜻과 주장은 좋으나 나타나는건 앙상하고/노동해방 계급투쟁 당파성 혁명적 관점…/거 제껴두자니 아깝고 먹자니 뼈만 걸리는/꼭 닭갈비와 같은 존재/지금 우리 마치 닭갈비 같은 처지는 아닌가/…”(참된시작중 닭갈비)“희망찬 사람은 그자신이 희망이다/길찾는 사람은 그자신이 새길이다/참좋은 사람은 그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사람만이 희망이다중 다시) 감옥에서 500여편의 작품을 구상했다는 박씨.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에서 이젠 만날수 있는 시인으로 바뀌어 새 작품을 구상중이다.80년대 노동계와 시단을 뒤흔들었던 박씨의 새 작품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北 찬양’ 인터넷 사이트 적발

    ◎‘北 사랑 사람…’ 국내인 개설은 처음/김정일 활동상 등 소개… 검찰 폐쇄 조치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4일 북한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남한을 비웃는 듯한 내용의 홈페이지가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개설된 사실을 확인,내사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라는 제목의 이 홈페이지는 지난 달 30일 ‘김준석’이라는 제작자가 개설했으며 지금까지 4,000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은 북한의 인공기가 크게 나타나고 그 아래 검은색 바탕에 4괘 가운데 일부가 악마의 상징인 ‘666’이라는 글자로 훼손된 태극기가 나타나는 등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조롱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특히 빨간 바지를 입은 소년이 태극기에 오줌을 누는 애니메이션도 있어 국기 모독까지 저질렀다. 또 김정일의 사진과 함께 약력과 활동경력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이밖에 지난 달 5일 개정된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전문과 개정 과정에 대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내용도 담겨있다. 외국인이 만든 북한 찬양홈페이지는 있었으나 제작자가 남한 사람임을 분명히 밝힌 홈페이지가 국내 사이트에 개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명백한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이라며 “이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과 이 사이트에 들어가 북한을 고무찬양하는 내용의 글을 실은 사람들에 대해 내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공안당국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정보통신부의 협조를 얻어 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 言改連,‘崔章集 교수’ 건국사관 관련 토론회 요지

    ◎“남북대결·보수세력 비판 ‘친북 좌익’ 운운은 어불성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저술을 둘러싼 월간조선의 보도와 관련,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이사장 金重培)는 2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 한국언론연구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계명대 사회학과 李鍾旿 교수의 ‘학문·사상의 자유와 崔章集 교수 현대사연구 왜곡보도사건­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조선 11월호 기획기사로 한국사회는 다시한번 ‘사상논쟁’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식인에 대한 공안사건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인의 지적 작업에 대한 공안적 접근의 주체가 국가기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 정부는 대북,통일 정책에서 과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이다. 이는 남북의 내부에 다같이 존재하는 냉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政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몰이’와 금강산관광 역시 이런 변화를 예감케 한다. 남북의 수구세력은 이런 변화를 비판하며 분단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햇볕론에 대응하는 남북의 보수대연합이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崔교수의 논저가 이른바 ‘친북 좌익’ 기조에 서 있지 않음은 일일이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의 논저는 남북의 냉전세력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본질은 남한의 보수세력이 한국 정부의 개혁정책과 탈냉전 평화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도전을 개시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로 자신의 입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세력의 얼토당토않은 사상논쟁이며 기존의 냉전체제,남북대결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다. 실제 崔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전쟁의 해석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 할애했다. 문제가 된 저서명이 ‘한국민주주의의 이론’,‘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의 민주주의관이나 노동운동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고 몇가지 어구와 문장을 차출해 보수 진영을 감정적으로 자극,선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논쟁이 그랬듯이 혀재의 사상논쟁도 토론이 아니라 선동으로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의거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다원성이 허용된다. 진보와 보수가 다같이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진보나 보수만의 배타적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를 다시한번 이념적 독재 혹은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崔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가 문명으로 갈 것이냐 혹은 야만으로 남을 것이냐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한국의 집권세력,지식인,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상정,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위해를 가져오는 극단세력에 단호하게 대응 다수의 대중이 극우의 선동에 포로가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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