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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창간 96돌/ 50년 독자 서울 나경준씨

    “맏형처럼 듬직한 대한매일은 나에게 50년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습니다” 대한매일의 50년 독자인 나경준(羅景俊·62·서울 관악구 봉천2동)씨가 운영하는 아담한 세탁소에는 누렇게 변해버린 서울신문과 2년전 새롭게 태어난대한매일이 어우러져 있다. 나씨가 대한매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50년대 초.10대 소년이었던 나씨는 춘천시의회 의원을 지낸 아버지가 당시 서울신문을 구독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지난 80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나씨는 대를 이어 서울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나씨는 대한매일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대한매일이 7남매의 맏이인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비판을 위한 비판만 해놓고 아무런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신문, 상업주의적 시각으로만 세상사를 다루는 신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예전에 서울신문을 읽는다면 친구들이 비웃기도 했어요.물론 논조가 맘에 안들 때도 많았지요.그러나 서울신문의 긍정적인 시각과 대안 제시는 다른신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씨는 2년전대한매일로 재창간 될 때 혹시 다른 신문처럼 대안없는 비판과 상업주의에 물들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우였다.나씨는 “어떤 신문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겸허한 자기반성을 지면에 싣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공익정론으로 태어나려는 몸부림이 믿음직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씨는 예전에는 주로 정치면을 탐독했었다.하지만 요즘 대한매일에서 즐겨읽는 분야는 ‘외언내언’‘굄돌’ 등으로 바뀌었다.나씨는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깨닫지 못한 삶의 지혜와 철학이 이 칼럼들에 담겨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평안북도 성천군 수인면에서 8살 때 부모를 따라 월남한 나씨는 “요즘 대한매일이 통일문제에 관한한 가장 앞서 나간다”고 평가했다. 나씨는 대한매일을 영어학습 교재로도 이용한다.기사나 광고 등에 실린 시사영어 단어를 매일 빠짐없이 정리해 나간다.나씨는 “기억력 감퇴를 막는데단어 암기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친구인 대한매일이 좀더 책임있는 신문,서민을 생각하는 신문으로더욱 발전하길 바란다”며 대한매일 창간 96주년을 축하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이산가족 상봉 확인 사연들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아나운서 이지연(李知娟·52)씨도 이날 북한에 있던 오빠의 생존을 확인한 뒤 “이산가족찾기 방송 당시 남한에서도 헤어져 있는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 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도 못 꺼냈다” 며 “죽은 줄 알았던 오빠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똑같이 친형,친오빠를 북에 두고 있는 부부중 남편은 형으로부터 상봉희망 연락이 왔지만,아내는 오빠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해 희비가 엇갈렸다.8·15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 명단이 발표되면서한가족이면서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사람은 양문열(6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정인혜씨(60·여) 부부.남편 양씨는 17일 북측 명단에서 6.25때 헤어진 둘째형 원렬씨(70)를 확인,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아내 정씨는오빠 용준씨(71)로부터 아무런 기별을 받지 못해 침통해 했다. 김경운 전영우 전주 조승진기자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탈북 최세웅·신영희 부부

    “남한 TV에서 ‘아바이 동무’라는 표현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북한에서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동무’나 ‘동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아바이’에게 ‘동무’자를 붙이지는 않습니다.그랬다가는 버릇없다고 몰매를 맞을겁니다.이런 프로를 보면서 북한사람들을 희화화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지난 95년 말 탈북한 최세웅·신영희씨(39) 부부는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을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가 상대방을 깎아내리려 하기보다는 현실을 있는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이념과 사상을 가급적 배제한 채 같은 민족이라는 점을 최대한 앞세워야 한다는 얘기다.‘코미디를 보다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서로를 상품화해서는 안될 것같다는 지적이다. 최씨는 요즘 인터넷 사업을 한다.최씨가 작성하는 문서는 부하직원이 일일이 한국 스타일로 고쳐쓴다.남한 생활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언어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낙지를 보내달라면 북한은 오징어를 보내줍니다.그만큼 언어의이질화가 심각합니다.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통일 후에도 분쟁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북한음식점을 운영하는 신씨는 한국에서 외래어를 많이 쓰는 점도 언어 적응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화장품 스포츠용어 간판 등이 특히 심하다고 한다. 사유재산이나 노동에 대한 개념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장기간에 걸쳐 서로가 자주 드나들면서 교류와 관광 등을 통해 서로의 풍습과 생활양식을 익혀야 합니다.한국 내의 지역특색을 이해하듯이 말이죠.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이들은 북에 두고온 부모·친척들을 수년 내에 만난다면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다.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뒤라면 장담할 수만은 없단다. 동질성 회복을 위한 각 분야의 노력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될 것같다. 김주혁기자 jhkm@
  • 구국의 뜻 되새기자/ 대한매일의 내일

    ‘이제는 통일을 본격 논의할 때’ 2004년 7월18일 창간 100주년을 맞은 대한매일의 1면을 장식한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특별 인터뷰 헤드라인이다.2000년 6월15일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 및 협력 분위기가 조성된 뒤 경제·문화 등에서는 교류가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나, 통일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다른 분야에비해 진전이 더뎠던 것이 사실.그런 면에서 통일에 관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최초로 공식 언급한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또 남한 신문들의 거듭된인터뷰 요청을 거절해 온 김 위원장이 인터뷰에 응한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다.공정하고 객관적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고,민족 동질성 회복 및 교류를선도해 온 대한매일이 북한 주민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매일은 21세기 들어 독립·공익 언론으로 다시 태어났다.소유구조 개편을 통해 서울신문 때부터 이어져 온 정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언제든지,어떤 사안에 관해서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진정한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권력 뿐 아니라 자본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소유구조 때문에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다.사주(社主)나 특정 주주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한 족벌언론과 재벌언론과 확연히 구별되는 언론의 새로운전형(典型)으로 재탄생한 것이다.내용에서도 다양한 정보와 재미있는 읽을거리,미래에 대한 명쾌한 비전,그리고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분석과 무게있는 칼럼 등 지면이 20세기의 그것과 비교해 혁명적으로 달라졌다.소유구조 상의 문제 때문에 과거 부도덕한 정권들을 거치면서독자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했으나,이제는 근대화 초기 영국인 베델이 발행하던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압제에 맞서 주창했던 독립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국내 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창간 100년을 맞는 대한매일이 창간 당시의 초심(初心)으로 완전히 되돌아 온 것이다.그리고 이처럼 달라진 모습은 독자들로부터 이미 검증을 받은 상태.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매일을 봐야 한다는 ‘대한사람 대한매일’이라는 표어는 독자들에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됐다. 대한매일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남한의 여러 언론 매체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다.북한 주민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통일을 거부하는 논조를 고수하는 반통일적 수구(守舊)언론,북한 시장 석권을 염두에 둔 재벌의 입장을대변하는 다른 신문은 믿지 않아도 대한매일만은 신뢰한다. 그래서 대한매일평양지사에는 북한 주민들의 제보 및 격려 전화가 줄을 잇는다. 대한매일은 디지털시대에 어울리는 ‘비주얼 페이퍼(visual paper)’라 더욱 인기가 높다.대한매일이 스포츠서울과 공동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뉴스넷도 서버 용량이 부족할 정도로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한다.특히 신문 지면 전체를 다운로드(download·내려받기)할 수 있는 PDF서비스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집이나 직장에서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신문에 난 1단 짜리 기사까지 모두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호영기자 alibaba@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동질성 회복 어떻게

    “남북이 하루빨리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과거 남북한의 화해나 통일을 말할 때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전제를 내놓곤 했다.분단 55년만에 남북한은 다시 만나 함께 살기 힘들 만큼 이질적이 된 것일까.그러나‘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이 북한동포들에게 느끼던 이질감은 조금씩동질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남북 사이 문화적 이질화의 실체는 어떤 것이고,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TV로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솜씨에 감탄했던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그리고는 다음 순간 김위원장의 말씨가 우리 이웃에 사는 북한 출신 실향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적지않게 놀라기도 했다. 분단 이후 남북 사이의 언어가 심각하게 이질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곧’을 북한에서는 ‘인차’라고 한다든지,‘몸무게를 줄여야지’를 ‘살을 깎아야지’라고 하는 등 다른 표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렇다해도 서울 토박이와 경남·전남 토박이가 서로 만났을 때보다 결코 이해가 어렵지않다는 것을 김위원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다양해진 언어생활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특히 북한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우리말로 고쳐쓰고 있는 것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표현하는 등 어색한 점도 없지않다지만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을 ‘돌간흙무덤’으로 부르는 등 일부 북한의 우리말고고학 용어들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남쪽학계에 수용되는 추세다. 남북의 다양성은 예술분야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남북예술교류가 시작되면 무용계 사람들은 북한 전통예술인들의 춤사위가 동구의 영향이 진하게느껴지는 데 놀랐다. 반대로 북한쪽에서는 남한의 춤사위에서 서구전통의 개입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냉전 시대라면 ‘이질감의 심화’로 비쳤을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바람직스러운 다양성’으로 해석된다. 생활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최근 북한의 가정을 방문했던 사람들에따르면 저녁식사를 할 때 아버지와 큰아들이 겸상을 하고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다른 상에 모여앉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오히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남쪽보다 북쪽이 더 큰 것 같았다고 전한다. 관혼상제에서도 제사 등의 형식은 달랐지만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민족 고유의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식생활에서도 이른바 밥공장을 이용해야하는 협동농장의 상황이 조금 다르고,남쪽에 조미료를 사용한 짙은 양념에 입맛이 길든 반면 북쪽은 순수 담백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교육면에서 북한은 1945년부터 2년의 유치원 교육과 4년의 인민학교,6년의고등중학교 등 12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100% 문맹퇴치를 1990년에 달성했다.12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하거나,공장·농장에서 일하거나,군대에 입대하는 3개의 길이 열려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 이상 일하면 공장이나 농장에에서 일하는 사람도 직장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북한의 문맹퇴치율은 오히려 남한보다도높다.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남한과 북한의 높은 학력은 통일 이후동질성 회복에 큰 자산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화적 이질감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 혹은 통합과정에서 그렇게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대신 어떤 종류이든 ‘균열’양상이 보인다면 그것은 이질감 보다는 남한 주민들의 북한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도 통일 이후 동독주민들은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설움과 열등감을 맛보았다.서독주민들은 동독 출신과 이웃에 살게 됐을 때 공포심마저느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서독 주민의 긴밀한 교류가 오히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장수현 부산외국어대교수는 “조선족과 북한난민에 대한 남한주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경제적·사회문화적 격차가 심각한 남북주민들이 만날 때 독일보다 훨씬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빚어질 것”이라면서 “따라서 단순한 문화의 이질감 극복이라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분야별 과제·극복 방안

    ◆경제. 남북 경제공동체는 경제적 교류가 완전 자유화된 통일 이전의 경제통합체제라 할 수 있다. 경제공동체의 궁극적인 위상은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과 교류의 장벽이 없는 단일 경제체제다.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경제공동체를 향한 첫발은 이미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완성 단계의 경제공동체를 위해서는 의식과 발상의 전환이 남북간에 서로필요하다는 지적이다.그러나 통일은 알아도 경제공동체에 대해서는 이해가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캠페인과 북한에 대한 교육 개편 등을 통해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선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게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경제공동체는 남북이 상호 이익을 보는 호혜적인 시각을 요구한다.따라서경제적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적인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 계층부터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정·관계에서조차 아직도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나 배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얘기다. 특히 경제인들은 북한을 돈을 벌기 위한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이용하겠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차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 넓혀야 한다.체제의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경제협력과 공동체 건설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일연구원 이우영(李宇榮) 연구위원은 “북한 사람을 여자도 총을 쏘는 무서운 집단으로 보거나 경제수준이 낮다고 해서 깔보는 심리들을 먼저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연철(金鍊鐵) 수석연구원은 “경협은 인도적 지원과는 다른 것”이라면서 “남북공동체 구성을 위해서는 상호주의를 어떤 식으로 정립할 것인지 등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일연구원 최수영(崔壽永) 연구위원은 “경제공동체의 개념과 이익을 국민들에게 잘 알려 동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성급한 여론몰이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북한전문가인 P씨는 아직 임가공 형태의 경협밖에 이뤄지지 않은 초보적인 단계에서 공동체의 이상론만강조하는 것은 이르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과 통합을 위해서는 오랜 남북단절로 빚어진 산적한 과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손성진기자 sonsj@. ◆사회. 지구상에서 ‘아리랑’이나 ‘목포의 눈물’에 대해 가장 친근감있게 느끼는 민족은 아마 남한과 북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보듯 피를 함께 나눈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분단 50여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남과 북은 그 어느때보다 가까워졌다.최근 서울시내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한주민은 우리와 같은 동포’라는 인식이 회담 전에는 49%에 그쳤으나 회담 후에는 73%로 높아졌다.‘북한은 노예처럼 사는 나라’라는 등의 부정적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이처럼 분단과 대결의 구도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그러나 아직 남북간에는 50년 동안의 냉전 이데올로기와 체제 우월적인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본 간극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통일연구원 김용재(金容在)교수는 “초중고생 등 미래의 통일세대들이 서로 만날수 있는 길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면서 “문화,예술 등 비정치적 분야부터 교류를 시작해 하부구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밑바닥부터 다져 나가면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돼 의식차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남북이 체제 우월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서로의 좋은 것을 찾아 칭찬하면서 공통 분모를 확대 재생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전통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북한과 연구협력사업을 한다거나북측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사업을 지원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와 함께 교육도 중요하다.한국교육개발원 한만길(韓萬桔) 연구원은 “북한 사회의 현실과 특수성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남북한이 상호 존중과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통일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정치. 통일시대를 여는 정치적 사고는 ‘발상의전환’이 필요하다.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아날로그적 사고가 부적합하듯 분단시대를 지배했던‘정치 마인드’로는 통일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는 논리다. 55년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 남북 화해와 협력을 열어가는 상생의 정치 마당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냉전의 잔재를 씻어내는 것이다.냉전의 시대적 사고가 해방 이후 우리의 정치·사회·문화를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완상(韓完相) 상지대 총장은 “그동안 냉전대결을 부추겨온 여러 요소들을 제거하지 못할 경우 남북 화해와 통일의 발목을 잡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그동안 남북이 긴장될수록 이를 통해 이익을 보았던 집단들이분명히 존재 해 왔었다”고 전제,“앞으로 냉전 논리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통일 의지를 착근시키는 정치적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략적 발상에서 출발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통일 시대를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다.여야 모두 사사건건 상대방의 발목을 잡아 반사이익을 보려는 ‘네거티브식 정치’가 화해·협력의 시대분위기와는 분명 어울리지 못한다.특히 대북정책이나 한반도 외교에 있어서 여야를 막론한 ‘초당적 정치’는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동서의 분열’도 남북통일의 길목에 놓인 걸림돌이다.지역정서를 기반으로 우리의 정치판이 분할돼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하지만 지역감정역시 분단시대 냉전의 논리를 추종했던 지배세력들의 교묘한 ‘정치적 덫’이다. 여야 정치권도 지역정서에 기대는 얄팍한 술수정치에서 벗어나 대승적 차원에서의 포용정치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남북통일을 위해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동서 화합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북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휴일 물놀이 사고 잇따라

    연휴 첫날인 16일 전국의 강과 바다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19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 오후 6시30분쯤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남한강 이포대교 아래서 물놀이를 하던 성혜림(10·여)·재현군(8)남매와 정민선(11·여)·이지영양(10)등 초등학생 4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 오후 4시50분쯤에는 경남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하천에서 대구 C학원 학생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던 학원교사 구경회씨(26)가 물에 빠져 숨졌고,오후 2시20분쯤엔 경북 경산시 진랑읍 가야리 당당저수지에서 김문섭씨(50)가 낚시를 하다 2m 깊이의 물에 빠져 숨졌다. 이어 오후 1시20분쯤에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 남쪽 20m 해상에서친구들과 고무튜브를 타고 놀던 이동훈씨(25·상업·제주시 노형동)가 바닷물에 빠져 숨졌고,비슷한 시각 경남 고성군 두포리 와도 방파제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던 곽병준씨(26·공무원·울산시 방어진동)도 물에 빠져 숨졌다. 이에 앞서 오전 9시30분쯤에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목골유원지 앞 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대학생 윤상명씨(23)가 수영 미숙으로 수심 3m의 물에 빠져 숨졌고,오전 9시쯤엔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고사리 내린천에서 박무웅씨(57)가 낚시를 하다 강물에 빠져 익사했다. 오후 6시40분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던 박은경양(10·초등2년)이 거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고,오후 3시40분쯤에는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여차마을 앞 해변에서 낚시를 하던 오기환씨(48·부산시사상구 덕포동)가 바다에 빠져 실종됐으며, 전남 광양시 황금동 엄포마을 앞바다에서는 정일권씨(47)가 양식장에서 바지락을 따다 급류에 휘말렸다. 전국종합 연합
  • [굄돌] 남북 통합시대의 사고법

    현기영의 장편소설 가운데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작품이 있다.무엇보다,나는 이 작품이 제주도라는 ‘변방’을 변방이 아닌 또 하나의 ‘중심’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데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스스로 의도했든 안 했든 현기영이라는 훌륭한 작가는 세상에 특별한 ‘중심’이란 없음을,사람 사는 모든 곳이 가치로운 삶의 터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요즘 남북한 간에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조성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와 낙관이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본다. 개인적으로,나는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통합이라는 말을 선호한다.통일이라는말은 낭만적, 감상적이기는 하지만,50년 동안 진행된 ‘이질화’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전제되지 않은 말이라는 생각이다.‘그들’은 ‘우리’와 삶을 공유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저쪽에서 살았고 ‘우리’ 역시 이쪽에서 그렇게 살아왔다.냉정히 생각해 볼 때,‘우리’의 미래는 동질성을 과도히 강조하는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이질성에 대한 고려가동시에 뒤따르는 통합이라는 말에 의해형성되어야 한다. 시대는 앞서 나가는데,‘우리’의 정신적 준비는 충분치 못한 듯하다.남북한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동질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배제가 힘을 발휘하는 ‘단일공동체’적 사고보다는 이질성이 고려되는가운데 협력을 추구하는 ‘혼합공동체’적 사고가 필요하다.내 두려움은 ‘평양’의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서울’중심적인 사고에서헤어나오지 못한 채 통일에 매달릴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갖지 못한 힘이 있기 때문에 그같은 과정은 더욱 위험할수가 있다. 지금 제주도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관광지일 뿐이다.마찬가지로 북한이 남한을 위한 관광지,휴양지,별장지로만,‘그들’이 ‘우리’에게 2급 시민,집단적 하층민으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인간의 삶에 ‘중심’과 ‘변방’이란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 北 후보자 명단…학자·예술인 다수 포함

    북한이 통보해온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난 유명 학자와 연예인들이 다수 끼여 있다.‘비날론’을 개발한 화학자 이승기박사(96년사망)의 부인 황의분씨(84)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이들의 신상과 활동상을알아본다. ■학계. [류렬] 일제 때 중학교만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참가,북한으로 넘어갔다.경남산청군이 고향으로 현재 평양시 경림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 83년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집필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경북 영양군이 고향으로 서울대문리대를 중퇴한 뒤 지난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영천 전투에 참전,왼팔을 잃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3세부터 교단에 섰다.40여년간 8명의 박사,33명의 학사(석사),12명의 후보학사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를 양성했다.지난91년 남한의 어머니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김영황] 북한 어문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중 한명이다.입북 경위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6·25전쟁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입북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에서도 어문학에꾸준히 매진했으며 지난 60년대 초반 언어학 학사로 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원으로 근무했다. [조용관] 북한 방직부문 기술의 대가이자 공훈과학자이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21일 평양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경공업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북한에서 교수,박사,공훈과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조선지식인대회’를 비롯해 각종 과학부문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등 북한당국으로부터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종합공업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있다.서울 중앙중학교에입학했다가 금전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슴아픈 경험을 갖고있다.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입대해 참전,북한으로 넘어갔다.30여년동안 교편을 잡았으며,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봉회] 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일하고 있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다의용군으로 소집돼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화가로 일한다.인물화,풍경화,화조화,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월북했으며,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조선화학부에서 공부했다.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현재 금수산기념궁전) 기념촬영대에 비치될 ‘비봉폭포의 가을’을성공적으로 완성해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북한 최고의 시인이다.김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50년 의용군으로 월북,김형직사범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20대 중반부터 개성있고 형상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영원히 당과 함께’,노랫말 ‘인민은 우리 당에 영광 드리네’,서사시 ‘인민의 태양’등이 있다.평양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시 ‘오,주체사상탑이여’를 짓기도 했다.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지난 89년 3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가했다. [박 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외국영화를 전문적으로번역하는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처녀리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김 총비서에게 올라가는 외국영화치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성우계의 거봉으로자리잡고 있다.[김점순]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성악지도원이자 고음독창가수로 활동하고있다.6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 땅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의용군에 편입됐다. 6·25 이후북한의 첫 가극인 ‘콩쥐팥쥐’를 비롯해 ‘온달과 공주’‘밝은 태양 아래서’ 등 수많은 가극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60년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 서울연합
  • 이산가족들 눈물겨운 사연

    북한적십자사가 16일 우리측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전달해온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자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형제와 조카의이름을 발견한 남한의 형과 동생,그리고 삼촌 등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만날날을 기다리며 밤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맏형 전덕찬(全悳燦·72)씨의 이름을확인한 영찬(永燦·55·서울 성북구 장위1동·동양고속 전무)씨는 50년 전코흘리개 시절에 봤던 큰 형님의 어렴풋한 얼굴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못했다. 영찬씨는 7남매 중 유독 큰 형님만 소식이 끊긴 것에 애를 태우다 돌아가신부모님이 평소에 “맏이 얼굴을 봐야만 두 눈을 고이 감을 수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6·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 의용군으로 끌려간 동생 주영훈씨(69)가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확인한 주영관씨(71·전 대한매일 논설워원·서울 마포구도화동)는 “죽기 전에 만나고 싶었는데 감개무량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영관씨는 “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다음해인 51년 지병으로 돌아가셨지만,어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생을 그리다 93년 9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면서 “다행히 형제 4명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동생이 서울에 오기만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동생 임재혁씨(66)의 이름을 발견한 형 창혁씨(71·서울 양천구 목동)도 “동생이 죽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창혁씨는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한 바로 그날 이웃들로부터 ‘중학생이던 재혁이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의용군이 모여 있다는 회화국민학교로 찾아갔지만 끝내 동생을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7남매 중 셋째였던 동생과 생이별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창혁씨는 “전쟁이 끝난 뒤 동생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정부의 호적 정리방침에 따라 아버지께서 동사무소에 사망신고를 냈다”면서 “병상에 계신 91세의 노부(老父)께서도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사실을아신다면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생 구재협씨(70)를 8·15 때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형 재락씨(충남서천군 시초면 초현리)는 “6·25 이듬해 여름 20살이었던 재협이가 동네에들어온 인민군으로부터 의용군 입대를 강요받아 전쟁터에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면서 “10여년 전 사망신고를 했으며, 이번에도 동생이 죽은 줄 알고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재락씨는 “재협이와 헤어질 당시 부모님과 5남2녀가 모두 생존해 있었으나,지금은 차남인 나와 큰누나(85),막내(58)만 서울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박종섭씨(68)의 동생 종열씨(충북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는 “전쟁이 터지던 해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형님을 포함한 동네 청년 7명을 끌고 갔다”면서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종열씨는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들에게 저녁도지어 주지 못했다’며 평생 한을 품고 사셨다”면서 “어머니가 조금만 더사셨으면…”하며 눈물을 쏟았다. 김경운 송한수기자 kkwoon@. *북녘남편 5명의 애타는‘望婦歌’. 50여년 전헤어진 남쪽의 아내를 찾는 북쪽의 남편도 5명이나 됐다. 경기도 안양공업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신용대씨(81)는 서울 종로거리의여자옷 상점에서 일했던 아내 리숙인씨(79)와 아들 문제씨(50)를 찾고 있다.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출신의 신씨는 헤어질 당시의 주소를 경기도 안양으로 써냈다.옛 지명으로 강원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661번지가 출생지이자 본적지인 최필순씨(77)는 아내 주정연씨(76)와 이름을 모르는 53세의 맏아들을 찾고 있다.아내와 헤어질 당시 최씨는 동국대에 다녔다. 전북 장수군 변암면 국포리 출생으로 전북 전주시 완산동이 본적지인 조용관씨(78)도 전주시 병원 간호사였던 아내 김부선씨(74)와 52살된 맏아들 경제씨를 찾고 있다.조씨는 헤어질 당시 전북 임실군 섬진강발전소 건설사업소노동자였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 매곡동 미길리 출신의 리복연씨(일명 리승철·73)도 인천시 부평동에서 헤어진 아내 리춘자씨(72)와 장남 지걸(53)·차남 호걸씨(50)를 찾고 있다. 충북 중원군 양성면 능암리 출신 김희영(72)씨는 서울동대문구 이천상사에서 일하다 헤어진 아내 정춘자씨(72)와 아들 상교씨(53)를 애타게 찾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형님이 살아있답니다”

    “형님이 살아서 나를 찾다니,이게 꿈이오 생시요…” 16일 오후 북한에 있는 형님 김봉회(金鳳會·68·한덕수평양공업대 강좌장)씨가 자신을 찾고 있음을 확인한 규회(奎會·66·서울 서대문구 남가좌2동)씨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동생 영숙(英淑·59)씨의 손을 잡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규회씨는 “형님은 50년 고려대에 합격,입학을 기다리다가 6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아현직업학교에서 인민군으로 징집돼 갔다”면서 “당시 미군의 폭격이 하도 심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라며 감격에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여동생 영숙씨는 “내가 울기라도 하면 큰 오빠는 무릎에 나를 누이고 책을 읽곤 하셨다”고 50년 만에 큰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규회씨와 영숙씨는 “지난 93년 88세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으면 형님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4시에 일어나 형님을 위해 불공을 드리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보경씨는 “할머니는 내가 큰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특히 귀여워해 주셨다”면서 “꿈에서라도 큰 아들을 만나시기를 소원하셨다”고 말했다. 규회씨 형제의 외삼촌은 일제시대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하다가 월북,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의장(남한의 국회의장)과 초대 교육상을 지낸 백남운(白南雲·79년 작고)씨. 달력에서 형님을 만날 8월15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손꼽아 보던 규회씨는 “형님과 고향 전북 고창 임내강에서 잡은 민물새우로 매운탕을 끓여 먹던 때가 엊그제 같다”면서 빛바랜 형님의 사진을 가슴에 쓸어안았다. 전영우기자 ywchun@
  • 이산상봉 북한측 후보자 특징

    16일 북측이 보내온 8·15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200명의 명단을 정부가 전격 공개한 것은 다소 뜻밖이다.생사확인 기간이 촉박해 명단을 부득이 공개했다는 게 정부의 공식 설명이지만,한쪽에서는 정부가 남북화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막판에 방침을 바꾼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명단 특징] 후보자 200명 전원이 남쪽에 고향을 둔 월북자들이다.출신지는도별로 비교적 고른 인원 분포를 보였으나,경남 출신은 8명으로 비교적 적다.경북이 32명으로 가장 많다.일본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살다가 월북한 사람도 1명 있다. 성별로는 남자(183명)가 여자(17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연령별로는 60대가140명인데 반해 70대 56명,80대는 4명에 불과, 고령 이산가족들이 상당수 사망한 것으로 분석된다.우리가 북에 보낸 후보자 200명 중에는 여자가 53명이었고,70세 미만은 38명에 불과했다. 월북 당시 직업으로는 학생이 88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월북 당시 10대와 20대가 주류를 이뤘다는 얘기다.다음으로는 노동자와 농민이 각각 47명과 43명이고,교원과 강사 출신이 7명,간호사와 약국 처방검열원 등 의약계가 4명이며 이밖에 배우나 학교급사 등이 1∼2명 포함돼 있다. [명단 중복] 가능성은 이날 우리가 북에 보낸 200명의 명단과 북이 우리측에통보한 200명의 명단이 겹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통일부는 밝혔다.북측 명단의 경우 전원이 남한이 고향인 월북자들로 구성됐고, 우리 명단은 대부분북이 고향인 월남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초중고 통일교육 ‘北실상 그대로’

    초·중·고 일선 학교의 통일교육이 달라진다.변화된 남북 관계를 반영하고북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게 요체다. 반세기 동안의 잘못된 대북관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둔다. 13일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 주재로 열린 통일교육심의위원회 실무위에서 참석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모았다. ◆교과서 개편 핵심은 교과서 개편이다.교육부는 현재 개발중인 7차 교육과정에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상황변화를 대폭 반영키로 했다.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이해와 관심,실천적 의욕을 갖게 하고 통일후 예상되는 여러 문제점의 해결방안을 모색토록 하는 게 교육목표다. 지금 사용중인 교과서는 부분수정해 쓴다.예를 들어 도덕이나 사회과목에나오는 “북한은 아직까지 (남한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대목은손질이 불가피하다.이런 교과서 기술은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으로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는 쪽으로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7차 교육과정은 2002년까지 연차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정부는 보조자료를통해 교과서를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6차 교육과정에서 도덕·사회에 국한됐던 과목도 국어·윤리·지리·예체능까지 범교과로 확대한다. 교사 연수도 이달부터 시·도 교육청별로 실시된다.당초 금강산 단체연수도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됐으나 예산부족으로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산확보부터 회의에 참석한 관계부처 국장들과 민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내실있는 통일교육을 위한 충분한 예산확보를 역설했다. 한국교육개발원 한만길(韓萬桔)박사는 “남북대화에 앞서 남남간의 대화를통해 북한에 대한 인식과 통일의지를 국민 합의를 통해 도출해야 한다”면서 “이는 통일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예산을 비롯한정책적 지원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통일교육’의 실시방안도 제기됐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한민족선교원 내일 방북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최초로 남한의 이산가족이 남북한 정부의 승인 아래 15일부터 22일까지 북한을 방문,재북 가족과 만난다. 통일부와 기독교대한감리회 한민족통일선교원(이하 한통선)은 13일 한통선의 방북 대표단 5명이 15일 방북,북한에 사는 이산가족과 직접 상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김일준 목사는 평양에서 두 동생을 만나고,특히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두 동생과 상봉했던 주봉택 목사는 고향인 함남 영흥군(현금야군)을 방문한다. 이석우기자
  • [시론] 남북화해 무드와 냉전적 對北인식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재미 언론인 문명자(文明子)씨와 원산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가진 외신회견에서 김위원장은 남북공동선언에 관한 평가와 전망을 비롯,미·일관계 등 주요현안에 대한 견해를 비교적 소상히 피력했다.특히 김위원장은 정상회담은민족 자력으로 성사시킨 통일의 첫 걸음인 만큼 어떤 경우에도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실천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그동안 분단사에서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 다시 대결구도로 후퇴하는 악순환을 경험했던 전례에서 보면 김위원장이 6·15선언에 대한 실천의지를 강하게 다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또 김위원장의 이같은실천의지는 정상회담 이후 실제로 1개월동안 괄목할 만한 북한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휴전선에서 대남체제 비판과 비방방송을 일제히 중단했으며,지난해 교전이벌어졌던 서해상에서 북한어선이 한 척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았다.8·15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문제를 협의했던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보여준북측의 자세도 과거의 부정적 협상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그리고 북한TV,라디오,신문 등 언론매체들이 남측에 대해 과거의 비난일색에서 우호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변화를 가장 잘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북한의 실질적 변화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실천의지에서 나타난 결과로 인식된다.또한 이번 인터뷰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김위원장의 전향적 시각을 확인했다는 점이다.미국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다는 전제하에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민족의 통일을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북한이 6·25한국전쟁 이후 대남 통일전략전술 차원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주한미군 철수주장론에서 보면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주한미군의 존재이유가 전쟁억지력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한반도 평화정착 의지를 엿보게 하는 전략변화로도 이해되며 주한미군이 동북아 안보환경에서‘균형자’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이밖에도 김위원장의 중국방문을 통해 개방확대가 예상되며 현대그룹과의 금강산 경제특구 설정을 통한 남북경협의 활성화도 기대된다.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가시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반도 해빙무드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냉전적 반북(反北) 논란이 일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북한은 최근 남한 모언론사의 보도태도가 반통일적이라며 강한 불만과 함께 해당언론사 기자의 북한입국 금지조치를 취하고 있고,야당총재에 대한 강도높은 비난도 있었다.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개방’이라는 모험을 수용하고 획기적 남북관계 개선에나서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의 반북기류 조성에 대한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감정적 대응은 내정간섭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다원화된 남한사회에서는 언론의 비판이나 정당의 주장은 국민적 권리다.북한은 이같은 다양성을 인식하고 부당한 언행을자제해야 마땅하다.이와함께 일부의 냉전적 대북 적대인식도 불식돼야 한다. 남북화해 분위기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야기되는 대북 냉전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어렵게 마련된 정상회담 성과를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민족분단반세기 동안 만들어진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냉전적 적대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비생산적인 냉전논쟁을 지양하고 북한과 북한주민을 함께 살아갈 반쪽의 동족으로 이해하고 분단사를 종식시키는 실천의지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張 淸 洙 논설위원]csj@
  • 통일교육심의위, 6·15공동선언 교과서 반영

    정부는 13일 통일교육심의위원회 실무위원회를 열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6·15 공동선언을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개편에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실무위는 또 남북 화해·협력시대에 맞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북한 체제의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인터넷을 이용,통일교육을 보조하는 ‘사이버 통일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실무위는 현재 사용중인 교과서중 “북한은 아직까지 (남한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은 당장 수정하기로 했다.현재 개발중인 7차 교육과정의 교과서가 2002년까지 연차적으로적용되는 점을 감안, 보조자료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배포,교육에 활용토록했다. 황성기기자
  • 상수원 보호제도 문제점

    팔당 상수원 주변 지역은 상수원보호구역,특별대책지역 등으로 건축,농·축산업 등에서 각종 규제를 받고 있다.그러나 일선 시·군의 세수(稅收) 증대를 위한 형질 변경 및 허가 남발,준농림지제도의 허점,필지 분할제도 악용등으로 규제가 유명무실한 상태다.최근 문제가 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프라임산업의 18∼22층 아파트 공사도 한 예이다. ◆준(準)농림지제도의 문제점=지난 94년 도입된 준농림지제도의 취지는 원활한 택지 공급.그러나 준농림지제도는 그 취지와 달리 상수원 주변의 난(亂)개발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팔당호 주변 지역의 경우 준농림지가 전체 면적의 34%로 전국 평균(26%)보다 훨씬 높다.그러나 수도권과 인접한데다 경관이 빼어나 오래 전부터 개발압력에 시달려 왔다. 양평군의 경우 97년 10월1일 이후 필지 분할된 토지에는 현지 주민에 한해건축을 허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97년 10월1일∼99년 10월31일 외지인에게총 1,247건(128만 8,688㎡)의 준농림지를 대지로 조성할 수 있도록 산림 형질 변경과 농지 전용을 허가했다.국토이용관리법에는 경관 및 수자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지역을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관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수도권 2,000여만명이 마시는 수돗물을 만드는 팔당호 주변의 3분의 1 이상을 준농림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도 운영 상의 문제점=팔당 상수원 지역은 상수원보호구역,특별대책지역,자연보전권역,수변구역 등으로 중복 규제를 받고 있다.이같은 중복 규제는팔당호 수질 악화를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1등급 수질(BOD 1.0ppm 이하)을보였던 팔당호는 90년 이래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추세를 보였으나,98년과 99년 BOD 1.5ppm로 향상됐다.올해 들어서도 1∼5월의 BOD 1.4ppm의 비교적 양호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이는 토지 이용에 관한 중복 규제 덕분이다.그러나 토지 이용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중복 규제에서 제외된 하수처리구역 내 대규모 건축에 대한 수도권 주민들의 부정적 시각 때문이다.이미 시가화(市街化)가 진행됐거나,도시화가 불가피한 지역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따라서 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능력 범위에서 음식점·여관·아파트 등 어떤 건물의 신축이 가능하다. 건물이 늘면 지방자치단체는 그 건물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처리하기 위한하수종말처리장을 신설하거나 기존 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능력을 높인다.그런데 대개 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능력은 기존 건물에서 발생하는 오·폐수의 양 이상으로 향상된다.따라서 남는 하수 처리능력 만큼 여관·음식점 건물,즉 오염원이 새로 들어선다. 또 다른 문제는 하수종말처리장의 잉여 처리능력이 주민 몫으로 돌아가지않고,외부 유입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고층 아파트 또는 관광호텔 등의 용도로 쓰여진다는 데 있다.현지 주민이 소규모 음식점이나 소득을 늘리기 위한시설을 새로 짓거나 늘리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하수처리구역 바로 밖의 상수원보호구역에서는 축산분뇨를 논밭에 뿌리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현지 주민들이 이른바 ‘가진 사람’들을 위한 대규모 건축을 곱게 볼 리 없다.경기도 광주군 분원리에 있는 지상 9층,지하 1층 K관광호텔의 경우 호텔 부지는하수처리구역이지만 바로 옆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상수원보호구역에 사는 주민들이 상수원보호구역 바로 옆에 10층 짜리 호텔이 들어서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일선 시·군은 기존 건물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처리하기 위해 하수처리구역 확장 및 하수종말처리장 용량 증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논밭 또는 산림을 개발하기 위해 하수처리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환경부에 요청한다.이같은 문제는 광주군 오포면,가평군 설악면 삼회리,양평군 강상·강하면 등에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필지 분할제도 악용=97년 10월1일 이후에 필지 분할된 토지에는 주거 목적의 단독주택만 지을 수 있다.그러나 팔당호 특별대책지역 내 5개 시·군은 1필지 안에 최대 8채까지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산림 형질 변경을 허가했다.감사원이 99년 10월25일∼11월20일 실시한 감사에 따르면 양평군 등 5개 시·군은 97년 10월1일∼99년 10월31일 1명이 2채 이상 집을 지을 수 있는 산림 형질 변경 허가를 무려 325건이나 내주었다. 또 97년 10월1일 이후 필지 분할된토지에는 현지 거주자에 한해 건축을 허가해야 하는데도,97년 10월1일∼99년 10월 말 사이에 양평군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은 205명 중 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서 실제로 거주하지않은 채 주민등록을 위장 전입한 뒤 건축허가를 받은 사람이 12명(66%)으로조사됐다. 문호영기자 alibaba@. *팔당호 난개발 대책. 경기도는 팔당 상수원 주변의 난(亂)개발을 막기 위해 지난 6월16일 주택건설촉진법 규정에 따른 공동주택 등의 사업계획 승인 권한을 일선 시·군으로부터 환수했다. 또 오는 10일 행정자치부로부터 개정된 사무위임규칙 승인을 받은 뒤 특별대책지역 Ⅰ권역 내 20호 이상 단독주택,20세대 이상 공동주택,1만㎡ 이상대지 조성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승인 권한도 회수할 예정이다. 특별대책지역 Ⅰ권역은 팔당호 수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지역으로 연면적500㎡ 이상 건물,폐수를 배출하는 공장,중금속 등 특정 유해물질 배출 시설,골프장 등이 들어설 수 없다. 경기도는 시장·군수가 건축을 허가할 때 도지사로부터 사전승인을받아야하는 대상을 21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에서 3층 이상 연면적 800㎡ 이상으로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건설교통부는 이를 위해 건축법 상의 허가관련 조항을 개정,올 정기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환경·경관·지역계획 등을 종합 심의하는 경기도 지방건축심의위원회에 도 환경관리과장과 한강유역관리청 담당 과장을 참여시켜 환경 오염여부가 제대로 검토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문호영기자. *팔당주변 대규모건축 사례. 최근 팔당호 옆과 팔당호로 유입되는 남한강 주변 7곳에는 대규모 아파트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계획돼 있다.총 2,103세대에 50평이 넘는 대형 아파트만 470세대나 된다.아파트를 짓는 곳은 일반주거지역·준도시지역·취락지역 등 법적인 문제가 없다. ◆프라임산업=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196의 4에 22층 짜리 2동(棟),18층 짜리 1동 123세대(53평형 79세대,81평형 44세대)를 짓고 있다.4월 말 착공했으며,5월 말 현재 52%인 80세대가 분양됐다.프라임산업은 또 바로 옆 용담리 산6의 1에도 아파트 115세대를 지을계획이다.프라임산업은 그러나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난(亂)개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지금까지 건축에 든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 주면 건축을 중단하고,용담리 산6의 1 아파트 건축 계획도 취소하겠다는 입장이다. ◆LG건설=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525번지에 지하 2층,지상 26층의 아파트를지을 계획이다.세대 수는 33평형 104세대,49평형 218세대,53평형 151세대,89평형 26세대 등 499세대.98년 1월14일 양평군에 사업계획서를 냈다. ◆우남주택개발·홍선건설=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573번지에 지하 2층,지상 24층 짜리 아파트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98년 1월14일 사업계획서를 승인받았다.31평형 96세대,44평형 156세대,47평형 160세대,50평형 96세대,63평형 80세대 등 총 588세대다. ◆한국주택진흥=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139번지,병산리 28의 1 및 교평리 396번지,병산리 산1의 2번지 등 3곳에 총 777세대의 아파트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병산리 139번지에는 지하 1층,지상 15층 짜리 319세대,병산리 28의 1 및교평리 396번지에는 지하 1층,지상 15층 짜리188세대를 지을 예정이다. 20평형 60세대,22평형 90세대,29평평 68세대,30평형 180세대,45평형 49세대,46평형 60세대를 짓기로 하고,98년 4월24일 양평군으로부터 사업계획서를 승인받았다.병산리 산1의 2번지에도 270세대를 짓기 위해 준농림지를 준도시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국토이용계획 변경을 승인받았다. 문호영기자.
  • 남북정상회담 한달/ 달라진 對北인식

    “북한이 안방으로 들어왔다.” 남북 정상회담은 멀고도 멀었던 북한과 북한 지도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순식간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었다.부정적 이미지 일색이던 북한은 두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동질성을 공유한 한민족으로 바싹 다가서게 됐다. ■달라진 대북관 지난 한달 남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그 속도는 아주 빠르고 폭도 넓다. 6·15 남북 공동선언은 냉전 사고에서 출발한 비뚤어진 ‘북한관’을 바로잡는 척도가 됐다.각 분야에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새로운 교류와 협력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통일은 가까운 시일 안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가까운시일 안에 통일될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각 분야 변화 정치권은 정상회담의 성과와 향후 후속조치에 대해 초당적인협력을 약속하고 있다.한나라당이 ‘남북관계 특위’의 국회 설치를 제안하고 민주당이 수용했다. 헌법개정 논의에도 불을 댕겼다.헌법상 북한을 영토로 하는 조항이 비현실적이라며 개정이 거론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개정·폐지도 가시권에 들어와있다. 한나라당은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정을 조건으로 개정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제계도 대북 경제협력 기대감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공동선언 이후 경제단체 및 기업체의 대북사업 추진과 기업인 방북이 재개되고 경협 활성화 논의도 활발하다. 교육현장도 달라지고 있다.냉전 구조에 입각한 교육에서 통일 교육에 대한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확산될 조짐이다. 광주시,경북도 교육청 등이 새 남북관계를 반영한 ‘통일교육’을 강화키로했다. 군사대치의 상징이던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상호 비방전도 뚝 끊겼다.지난달 15일부터 남북은 비방방송을 공식중지했다.우리 군은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북괴’라는 용어도 전면 폐기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정상회담 한달/ 변화하는 對南자세

    남북 정상회담은 북쪽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남쪽만큼 급속하지않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들이다. ■월경 어선 귀환허용 6월15일 오후 서해 백령도 주변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이 기관 고장으로 북방한계선을 넘었다.북한은 이 어선을 예인해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수리까지 해서 남쪽으로 보내줬다.또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북한 어선은 한 척도 북방한계선을 넘지 않고 있다.1년 전의 연평해전을 떠올리면 급격한 변화다. ■대남 비방 중지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지난달 15일 오후 6시부터 휴전선 155마일 108곳에 설치된 확성기의 대남 체제 비판·비방 방송이 일제히 중단됐다.휴전선 일대 원색적인 비난 구호가 적힌 간판도 바꾸고 있다. ■언론도 대남 비난 자제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물론 조선중앙TV 등 언론매체들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한 관련 기사를 간혹 내보내고 있지만 비난보도는 자제하고 있다.조국통일 3대 헌장 등 북한의 통일방안을 소개하며 남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대신 미국,일본으로비난의 표적을 맞추고 있다. 노동신문도 지난달 14일부터 남한 비방 기사로 채워졌던 5면을 경제·사회·문화 관련 기사로 바꾸는 등 발빠른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용어 변화 북한 언론들은 우리 군을 국군으로 부르는 등 남한을 자극하는용어 사용을 극도로 삼가고 있다.특히 지난달 1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평양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을 ‘괴뢰 통치배’ 또는 ‘김대중 일당’으로 불렀던 것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불렀다.특히 중앙통신은 지난달 16일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이라는 경칭을 처음으로 사용해 북한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이밖에 8·15 이산가족 상봉을위한 금강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이 보여준 협상태도도 과거와 달랐다. 정부 당국자는 “받을 것은 받고 줄 것은 준다는 서구식 협상 태도에 근접해 있었다”고 평가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매체비평] 남북 화해무드 ‘흠집내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상호 이해 그리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적어도 남북의 정권과 민중들의 차원에서는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몇몇 보수 언론과 보수 논객은 이런 결과를 못 마땅해 하고 있다.그래서 그들은 지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과 그로 인한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 무드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그들의 흠집내기의 방식과 문제점을 함께 따져 보기로 한다. 첫째,그들은 남한 당국자나 국민들이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너무 좋게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그들 보수언론과 보수논객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모습을 통해 드러난 김 위원장의 합리적이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연출된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남한의 국민들이 김 위원장의 쇼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주장은 남북정상회담과 대북 협력정책은 북한과김 위원장의 기만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무언의 주장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을 속여온 것은 그들 보수언론과 논객들 아닌가.남북정상회담이 없어서 텔레비전으로 김 위원장의 실제 언행을 접할 수 없었다면국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들 보수언론과 논객에 의해 북한과 김 위원장을너무 나쁘게 보고 대북 협력정책에도 미온적이었을 것이다.그들은 우리가 김위원장에게 속고 있다고 말하기 앞서 우리를 속인데 대하여 사과해야 한다. 둘째,그들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에 대해 국회에서 야당과 합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외교적 교섭이나 회담에서의 합의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고유권한이다.외교교섭에서의 합의사항을 일일이 국회에서 야당과 또다시 합의를 해야 한다면 외교교섭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만일 그래야한다면 외교교섭권을 아예 국회로 이관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현실적으로는 외교교섭은 행정부가 행하고 그 합의사항 가운데 국회에서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관해서만 국회 동의를 위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하면 된다.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야당과 합의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의를 하지 않는 경우 야당의 합의가 없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 결과는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않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합의하려는 경우에는 야당을 통해 그 결과에 흠집을 낼 수 있을 것이다.아주 교활한 남북관계 흠집내기 전략이다. 셋째,그들은 남북정상회담이 내치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이 주장은 김대중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내치의 만병통치약으로 써먹는 경우에만 타당하다.그러나 김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국정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만병통치약으로 써먹을 수도 없고 써먹지도 않았다.그런데도 일부 보수논객은 김 정권이 마치 남북정상회담이나 그 성과를 내치의 만병통치약으로 써먹으려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따라서 이런 주장은 하지도 않은 행위를 공격하는 잘못,즉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악의적인 사실 왜곡이기도 하다.그들은 이런 왜곡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내치에악용되고 있다고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넷째,그들은 김대중 정권이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남북 화해협력의 소요재원을 외면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아직 남북협력 사업이 구체화하지 않아 당연히 재원도 산출할 수 없는 데도 앞질러서 소요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부러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런 억지가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통일에는 엄청난 비용이 드니까 그런 것을 추구하지 말고 현재와 같은 대결과 분단상태를 지탱하는 것이 더 좋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냉전과 분단을 유지하는데소요되는 군사비를 포함하여 엄청난 분단비용이 화해와 협력 비용 또는 통일비용보다 적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효성 성균관대 언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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