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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새달 北송환 앞두고 급부상

    북한이 비전향장기수들의 9월 송환 때 남한의 가족을 데려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그러나 실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정부에서 신중하지만,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활발한 의견조율이 진행될것으로 전망된다. ●북측 입장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광복절인 15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인터뷰에서 “일부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능하면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갈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오든,혼자서 오든 다 뜨겁게 맞이할 것”이라고말했다고 평양방송이 전했다.북한이 비전향장기수의 가족까지 수용할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변인은 이어 “인생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려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소망이자 온 겨레의 환영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서 “과거가 어떻든 관계없이 공화국으로 올 것을 희망하는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받을 것이며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대변인의 말을 인용,“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부모 처자를 가진 인간의 초보적인예의 도덕으로 너무도 응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 입장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아직은 부정쪽에 가깝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 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9월초 북송을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키겠다”면서도 “그밖의 문제(비전향 장기수 가족 북송 등)는 다시 협상을 할 문제”라고 원론적인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전향 장기수 가족의 북송문제를 이산가족문제의 범주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송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더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산가족문제 해법이궁극적으로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재결합하는 방향이어서 시기가 문제이지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간에 이산가족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경우 우선적으로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전향장기수 북송추진위원회(공동대표 권오헌)에 따르면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6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가족과 함께 북송을 원하는 사람은 신인영씨(72)와이경구씨(71) 등 모두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9월초 北송환 金東起씨. “북에 가면 이산가족들의 한을 알리고 이를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보탬이 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9월초 북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金東起·68)씨는 요즘TV를 통해 방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애써 외면하고있다. 20여일 후면 자신도 똑같이 겪어야 할 일이기에 가슴이 저며오고 그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핏얼핏 비춰지는 상봉장면을 보면 깊은 회한에 휩싸인다고 한다.“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그는 “혈육을 갈라놓은 채 50여년동안남남으로살게 한 정치인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남 그 자체에는 ‘통일’‘민족화합’등의 어휘가 구차하게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요즘 며칠후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간다는 희망과 함께 그동안 정들었던 남쪽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느라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옥중생활 등을 담은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내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이산가족들이 북한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며 편지와 전화안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하는 광주시 북구 두암동 ‘통일의 집’에는 최근 하루 3∼4통의 편지가답지하고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린다. 여류시인 서영숙씨(58)는 자신의 시집을 6·25때 월북한 아버지에게 전달해 달라며 보내왔고,인천에 사는 권영숙씨(78·여)의 딸은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북에 있는 오빠를 너무나 보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보내오기도 했다. 김씨는 “제2의 고향인 광주에서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가슴아픈데 이들의 한맺힌 사연을 접할 때마다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일일이 챙기고 전화로 전해오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낱낱이 메모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이를 꼭 전하겠다고다짐했다. 김씨는 66년 대남공작 요원으로 남파돼 검거된 뒤 33년동안 옥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2월 석방됐으며,현재 다른 비전향 장기수 3명과함께 통일의 집에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108살 동갑의 부모와 부인(64),돌을 갓 지난 뒤 헤어졌던 아들(36),누나 3명 등이 있으며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南, 감격끝에 실신 속출…北, 상봉후 곧 냉정

    ‘8·15 남북 방문단’은 16일에도 이산가족들과 개별 상봉을 갖는등 혈육의 정을 풀었다.50여년간이나 쌓였던 한(恨)을 ‘씻김’하는 과정이라 남북 방문단 모두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북 방문단이 보인 ‘감성지수’는 다소의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 주위의 전언이다.15일 코엑스 집단상봉을 지켜봤던 한 관계자는 “북측 방문단의 경우 상봉 시작 10분이 지난 후 장내가 정상을 되찾았다”고 전했다.반면 남측 방문단은 집단 상봉 당시 실신자가 속출하는 등 격렬한 감정반응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차이는 우선 남북 대표단 구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남측 대표단은 중류층 주류의 일반시민이 주축이다.반면 북측은 ‘성공한’유명인사를 포함해 북한에서도 중·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원로 국어학자 류렬씨,북한 계관시인 오영재씨,‘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조주경씨,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정창모씨 등 즐비하다.자기절제와 감정처리에 있어서 비교적 원숙한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셈이다.여기에 성비(性比)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남측방문자는 남자 72명,여자 28명으로 대략 7대3의 비율이다.반면 북측은 여자가 7명에 불과하다.감성이 풍부한 여성들이 적은 북측 방문단이 보다 빨리 냉정을 되찾았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 방문단의 평균 나이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남측의 경우 90세 이상이 3명,70∼80대가 85명,60대가 12명이다.반면 북측은 60대가 71명으로 주축을 이뤘고 90대는 한명도 없었다.남은 생명을 상봉의 희망으로 불태운 연로자들의 상봉의 기쁨이 짐작된다. 그렇다고 북측 인사들이 혈육 상봉에 대한 열망과 감격이 모자란다는 것은 아니다.다만 표현에 있어서 보다 자유로운 남한과 달리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하는 집단체제 특수성이 북한 방북단에 체득됐을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일산에 ‘옥류관’들어선다

    올해 안에 남북 합영 형태의 평양냉면집 ‘옥류관’이 일산에 세워질 전망이다. 15일 현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최근 북한측과 실무 협의에서 판문점 인근 남쪽 지역인 일산에 평양 ‘옥류관’을 그대로 본뜬 냉면 집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이 냉면 집은 육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관광가는 남한 주민들을 겨냥한 것으로 현대와 북한이 올해 안에 개성 관광 시기를 확정하는 대로설립된다. 현대 관계자는 “개성 관광객이 주 대상이지만 차츰 일반인에게도 개방할 것”이라며 “사업 방식은 남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합영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는 냉면 맛을 살리기 위해 냉면 사리를 북한에서 들여오고 종업원도 북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주병철기자 bcjoo@
  • 한민족 하나로 남북 이산상봉/ 北 류미영 단장의 딸 최순애씨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어머님이 연락을주셨으면 좋겠는데…”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녘 방문단을 이끌고 남쪽을 찾은류미영(柳美英·78·천도교 청우당 중앙지도위원장)단장의 딸 최순애(崔淳愛·49)씨는 주위에서 뭐라든 24년 세월 동안 변함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아버지 고 최덕신(崔德新)전 외무장은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는 등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가 정치적 탄압을 받자 76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86년 4월 북으로 넘어갔다.망명 당시 최씨는 26세였다. 이 때문에 최씨를 포함해 남한에 남아 있던 2남3녀는 10여년 동안정보기관의 감시에 시달리는 등 ‘형언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현재 장남 건국씨(58)가 독일에 있고,차남 인국씨(51)와 세 자매는 한국에 살고 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월북자의 딸’이라는 딱지는 떼어버릴 수 없는 낙인이었다.하지만 최씨 등 형제들은 믿고 존경했던 부모님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을 인정했다고 한다.항상 반듯한 모습,의연히 원칙을 지키는 삶을 보였던 부모님이었기에 변함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믿어지지 않았고그 뒤 정보기관과 주위의 시선으로 겪은 고생은 지긋지긋할 정도였습니다.하지만 원망보다도 큰 믿음과 그리움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고생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할 법도 했지만 최씨의 반응은 의외로 의연했다. 최씨는 “뵐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상봉장으로 달려가 어머니를껴안고 펑펑 울고 싶지만 어머니가 원하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면서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어머니가 연락을 꼭 주셨으면 한다”고 가없는 그리움과 믿음을 털어놓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대한포럼] ‘현대’에 주는 苦言

    엊그제 친구 몇명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처음에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남한 언론사 사장단간의 만남을 얘깃거리로 올렸지만 화제가 곧 현대사태로 바뀌었다.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가 먼저 “현실여건을 감안할 때 그 정도의 자구안(自救案)이면 되는 것 아니냐”며 현대에 다분히 동정적인 투로 운을 뗐다.그러자 증권사에 다니는 친구가 대뜸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이 친구는 “현대가 경제외적 무기를 앞세워서둘러 봉합한 것일 뿐”이라며 “현대문제는 계속 물밑에 잠복되어있다”고 했다.묵묵히 술을 마시던 다른 친구도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현대가 두차례나 시장을 속인 전력(前歷)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자구안 실천여부를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렇다.현대가 자구안을 내놓고 이행방침을 밝혔는데도 여전히 많은사람들은 현대의 ‘공언’을 미덥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실정이다. 시장관계자들도 현대사태가 해결된 것이 아닌 진행형이란 반응을 보인다.현대가 어느덧‘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물론 그 굴레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서울 여의도 증권가에는 지난4월 이후 달마다 ‘월말 괴담설’이 나돌았다. 현대가 늘 진원지였다.현대가 겉포장만 화려한 자구안을 내놓은 채 실천을 미적거리는 바람에 주가가 곤두박질친다는 것이다.현대는 지난 4월27일 현대투신에대한 정부지원 대가로 첫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대투신의부실을 해결할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주식시장을 크게 실망시켰다. 5월31일에는 ‘3부자 동반퇴진’이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함으로써증시를 또 한차례 출렁이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현대의 그동안 약속파기 행적이 시장의 심판을받아 이미 퇴출된 기아·대우와 너무나 닮은 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구노력 이행에 미적거리며 허송세월한 대목은 기아·대우와 그토록 같을 수가 없다.우선 기아의 행적을 살펴보자.97년 6월 표면화된 기아사태는 한마디로 당시 오너의경영실패가 자초한 것이었다.따라서 기업회생을 위해 새 자금을지원해야 하는 금융기관으로서는 최소한 신뢰할 수 없는 경영진을 사퇴시켜야만 했다.그런데 오너가 사퇴를 거부하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1년반만에 12조원에 육박했다.결국 기아는 98년 12월에 부채탕감액 7조원을 국민부담으로 떠넘긴 채 제3자에게 매각됐다.그러나 국민과 정부,채권단,기아 모두 큰 손실을 본 뒤였다.기아와 현대는 모두나쁜 쪽으로 같은 행태를 보였다.우선은 시장에 켜진 빨간 신호등을무시하며 버티기로 허송세월한 점이 그렇다.시장의 신뢰를 구하는 최소한의 확실한 조치,예컨대 부실경영의 핵심인사를 퇴진시켜야 하는데도 이들이 계속 버티고 있는 모양새도 똑같다. 대우는 어떠했는가.대우는 98년 12월 주채권은행과 계열사 축소 및부채비율 감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중공업과 조선부문의 매각을 골자로 하는 추가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급기야 7월 ‘구체적 실천방안’이란 이름의 자구계획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문제는 대우의 구조조정안이 ‘선언’과‘발표’만 있었을 뿐이지실천은 전혀 뒤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간 현대가 보여준 행태와 너무 닮은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사태는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란 사실이다.현대가 이번에도 자구실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기아·대우와똑같은 ‘최후’를 맞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그렇다면 현대 경영진은 당장 기아·대우의 ‘퇴출 일지(日誌)’를 들춰내어 정독해야 할일이다.그래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같은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몰락으로 통하는 길임을 현대 경영진은 알아야 할 것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남북이산상봉/ 南 이산가족 7,667,000명

    ‘한(恨)을 안고 살아가는 남북 이산가족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남북 양측 이산가족 200명이 8·15 광복절을 맞아 서울과 평양에서반세기 만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남에 따라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통일부 등 관계 기관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52세 이상 이산가족 1세대는 모두 123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60세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은 ▲80세 이상 6만여명 ▲70대 19만여명 ▲60대 41만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여기에 이산가족 2·3세대를 포함하면 766만7,000여명으로 추정된다.출신 도별로는 남한과인접한 황해도가 191만6,000여명으로 가장 많고 ▲평남 159만여명 ▲평북 118만3,000여명 ▲함남 169만2,000여명 ▲함북 83만8,000여명등이다. 하지만 이산가족들이 북측의 가족관계 등을 고려,신분을 밝히기를꺼리는 경우가 많아 이산가족 숫자는 추정치보다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최근 방북 언론사 대표단에게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짐에 따라그동안 파악이 되지 않았던 가족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북측의 이산가족 숫자는 미지수다. 정부에서는 북한과 해외의 이산가족을 합칠 경우 1,000만명이 넘을것으로 보고 있다.이산가족 중 90년 이후 제3국을 통한 민간 차원의이산가족 교류는 생사 확인 2,581건,서신 교환 5,858건,상봉 568건에불과했다.그나마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생사 확인이 1,543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강동형기자
  • 남북이산상봉/ 평양만남 이모저모

    ◇ 평양 단체상봉■평양 방문단은 15일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북녘의 가족·친지들과 50여년 만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을 가졌다. 호텔 2·3층에 마련된 상봉장은 남북 가족이 만나는 순간 울음바다를 이뤘다.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2층의 상봉장에는 방북단 60명이,그리고 3층 상봉장에는 40명이 자리했다. ■20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나온김금자(金今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김금도(72)·금년(69)씨를 만났다.금자씨가 “허리는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라고 말하자 이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 어후씨(71)가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듣고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씨(6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누나 상월씨(70)와조카 이예숙씨(50)를 만나 50년 응어리진 한을 풀었다.2남2녀의막내로 태어나 누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님에게 안겨보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남한에서 올라온 아버지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를 만난딸 경애씨(52)는 “결혼식을 앞두고 왼쪽 뺨에 난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점을 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개성 출신의 이윤용씨(82·경기 성남시)는 처남 김홍규씨(63)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홍규씨는“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고 매형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남동생 후열씨를 만난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씨(70·강원 동해시 부곡동)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느냐.평생 너를 가슴에묻고 한에 사무쳐 돌아가셨다”며 울부짖다 땅에 쓰러져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또 평양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정호씨(91·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1·4후퇴 때 눈보라때문에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씨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흘렸다. ■평북 박천 출신의 김사용씨(74·서울 문래동)는 지난 51년 헤어진아내 이옥녀씨(72)와 당시 1년 6개월 된 딸 현실씨(51)를 보자 왈칵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김씨는 지난 51년평양에서 징집돼 전쟁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상황을 되뇌며 “당신이 애(현실) 고사리 손을 쥐어 올리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봉에는 북측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노동신문,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민주조선,평양신문,통일신보,청년전위,조선기록영화촬영소,내나라 비디오,중앙방송,금성청년출판사 등 20여개사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중국의 신화사,인민일보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 외신들도 취재팀을 파견했다. ◇ 인민문화궁전 만찬■오후 8시부터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적십자회 초청 만찬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방북단 일행은 조금전 북쪽 가족들과의 해후에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가족들이 빠지고 북측 안내원들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자 못내 아쉬워하기도했다.저녁식사로는 고기종합보쌈,생선묵과 감자무침,김치,쉬움떡(술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송이구이,버섯완자볶음,수박,과줄,인삼차 등이 나왔다. ■1층 만찬장에는 헤드테이블 1개와 30개의 원탁테이블이 놓였다.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만찬장에는 ‘반갑습니다’‘아리랑’‘나의 살던 고향은’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들이 연주됐다. ■장재언(張在彦)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모두는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가 가족적 범위를 벗어나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화해와 통일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민족사적 대업을 성취해 나가는 데 기여하게 되도록 뜻과 마음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장인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우리적십자 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한명의 이산가족들이라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교환하며 다시 만나 함께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려항공 기내표정■이날 낮 12시쯤 남측의 평양 방문단이 탑승을 시작한 북한 국적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는 장식이나 시설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흘러나오는 등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비행기내 모든 표지는 우리말과 영어가 함께 기재돼 있었는데 이중 ‘안전벨트’를 ‘박띠’로 표기하는 등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도눈에 띄었다. 비행기 이륙후에는 “이제부터 청량제를 봉사하겠습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6명의 승무원들이 룡성맥주,오미자단물,금강산 샘물 등을제공했다.‘가공물고기’란 이름의 명태포도 인기를 끌었다. ◇ 순안공항 도착■방북단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IL62기는 예정보다 5분 빠른 오후 1시4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 곳곳이 젖어있었고,일행이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렸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허해룡 조선적십자회사무총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북측 장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 고려호텔 도착■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는 차분했다.이산가족 방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나 지난 정상회담 때의 시민들의 열광적 환영은 찾아보기힘들었다. 다만 간간이 지나는 시민들이 멈춰서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을 환영했다. 방북단은 지난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취재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평양 시내를 거쳐 오후 3시5분쯤 상봉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고려호텔 정문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호텔 여직원들이 양쪽에 늘어서 ‘환영합니다’라며 박수로 반갑게맞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점심메뉴로는 녹두지짐,평양냉면,김치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 얼음보숭이와 신덕샘물이 마련됐다.식당 중앙뒤편에 마련된 대형TV에서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기쁨만을 드리고 싶어라’등 각종 경쾌한 음악이연주됐다. ◇ 서울 출발■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취재기자단 등 151명으로 이뤄진 우리측평양 방문단은 오전 9시30분 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호텔을 출발,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10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한 방북단은 대합실에서 배웅나온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 속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여객라운지에 모인 방북단 일행은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거듭 살피며 탑승시간을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뒤 만날 북녘 가족들의 옛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고려항공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 활주로를 이륙,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평양으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상봉 첫날 쏟아진 말 말 말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북쪽의 이산가족들은 50여년 동안 쌓여 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가까운 길을 50년 동안 기다려 이렇게 멀리 왔다. 리래성씨가김포공항 도착 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식사 중에서는 갈비찜이 가장 맛있었다.조선사람인데 달리 맛을 느끼겠느냐. 전덕찬씨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마움에 대해 절절이 느낀다. 남측땅이라고 해서 북측땅과 다를 바 없다. 김규설씨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보름만에 서울에 왔는데 올 때마다 통일의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느껴진다 12번째 서울에 온 북측 수행기자 최영화씨가 방문 소감을묻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남한 음식은 약간 달다.다음에는 달지 않게 해달라. 북측 방문단단장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감개무량하다.선물은 비밀이다. 북측 방문단 수행원으로 서울에 온장윤철씨가 서울 방문 소감을 묻자. ●살아계신다고 할 때가 언젠데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느냐.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남측 방문단의 장이윤씨,방북 출발에 앞서 최근 사망했다는 노모에 대한 기억을떠올리며. ●길 막히는데도 흐뭇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봉단과 취재진 때문에 교통이 혼잡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택시기사가.
  • 단양 양방산 절벽에 74m 높이 인공폭포

    충북 단양에 폭 200m,높이 74m의 대형 인공폭포가 내년도 조성될 전망이다. 충북도와 단양군은 15일 국비 6억5,000만원과 도비 1억9,500만원 등 모두 13억원을 들여 단양읍 양방산 절벽에 인공폭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7,000여평의 부지에 조성될 인공폭포는 넓이 200m 절벽에 높이 74m 물줄기 5개가 조성되며 폭포앞 남한강의 물을 끌어올려폭포수로 사용할 예정이다. 인공폭포는 현재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양방산 활강장과 더불어 단양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군은 겨울철에는 인공폭포를 빙벽타기 코스를 개발,활용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국비지원을 신청,현재 문화관광부에서 예산심의중”이라며 “인공폭포의 규모가 자연폭포와 인공폭포를 포함해 동양 최대”라고 밝혔다. 단양 김동진기자 KDJ@
  • 남북이산상봉/ 첫 서울行 北국적기 고려항공

    북한 유일의 민간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IL-62 특별기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공을 비행한 항공기로 기록되게 됐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151명을 태우고 15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한IL-62기의 뒤쪽 날개에는 인공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동체에는‘고려항공’‘AIR KORYO’라고 표기돼 있다. 조종석 바로 뒤 동체에‘두루미’가 그려져 있는 점도 눈에 띈다.이는 지난 92년 10월‘조선민항’이었던 항공사 명칭을‘고려항공’으로 바꾸면서 채택한 상징 마크.당시 북한 관영 중앙방송은“김정일동지의 따사로운 품을 형상화한 것으로,붉은 색으로 두른 원 안에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두루미의 모습을 그려넣게 됐다”고 보도했다. IL-62 항공기는 러시아의 항공제조업체인 일류신사에서 만든 중형항공기.장거리 운항용으로 개발된 이 항공기는 기본형의 경우 지난 67년부터,서울에 온 IL-62M형의 경우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74년부터취항했다. 93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모두 250여대가 제작돼 동유럽 등에 수출돼 각 국의국내 및 국제노선에서 운항되고 있다. 길이는 53.12m이며 좌석수는 162∼186석(IL-62MK형의 경우 195명까지 탑승가능)이다.평균 운항속도는 시속 820∼850㎞,운항거리는 1만㎞이며 승무원은 5명.러시아 극동항공사가 주 2회 운행하는 서울∼하바로브스크 노선에 투입되고 있어 낯설지 않다. 김경운기자 kkwoon@
  • ‘83년 이산가족찾기’ 아나운서 李知娟씨

    지난 83년 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준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진행했던 이지연(李知娟·여·52))씨도 15일 북에서온 오빠 리래성씨(68)를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언니들과 함께 오빠를 만났으며 어머니가 ‘새언니에게 주라’며 유품으로 남긴 금가락지 5돈을 오빠에게 선물로 줬다.이씨는 “17년전 이산가족 생방송을 하면서 참았던 눈물을 오빠를 만나 흘렸다”고 감동의 순간을 말했다. 이씨는 6.25당시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오빠가 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남산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상봉 신청서에 ‘리점봉’이란 자신의 본명을 적었다. 이씨는 6·25전쟁이 끝난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오빠의 편지가 와 그 주소로 연락을 했으나 ‘그런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은 이후 오빠와 소식이 끊겼다.오빠의 월북 때문에 이씨의 가족들은 60,70년대 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씨는 50년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빠를 기다리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5월 고향인 군산지법에 실종자 처리신고를 했다.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할 때 남한에서 헤어져 있는 다른 분들의 사연이 너무급해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었다는 이씨는 “죽은 줄로알았던 오빠를 만나뵈니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할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북측방문단이 가져온 선물

    그리운 가족을 찾아 50년 만에 남한에 온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들은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만남 그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지만 서울방문단 일행 대부분은 15일같은 크기와 모양의 여행용 가방을 들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가방속에는 남쪽의 가족들에게 줄 가족 사진과 술,인삼,녹용,옷감 등이 담겨 있었다.같은 날 북으로 떠난 평양방문단 일행이 들고 간 선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측 방문단 가운데 북한 최고의 시인 오영재씨(64)는 5형제들에게‘그리움이 가득 담긴 시’라는 선물을 준비했다. 오씨는 이날 공항에서 “선물이 뭐냐”는 질문에 “시”라고 짧게 대답한 뒤 “이제 통일이 가까이 오는 것 같아 통일과 가족을 그리는시를 써서 동생들에게 주겠다”고 말했다.전남 강진 국립농업학교 3학년 재학중이던 지난 50년 혼자 의용군으로 월북한 오씨는 지난 97년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빗대어 동요 ‘따오기’를 구슬피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와 동생 3형제를 만나러 온 무용가 김옥배씨(62·여)는 “어머니께 드릴 옷감과 동생들에게 줄 귀한 약재를 가득 가져왔다”고말했다.김씨는 “동생 유광이가 훌륭한 의사가 됐다는 말을 북에서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과학자라고 소개한 김덕호씨(73)는 동생 4형제들을 위해 “인삼,녹용,약재 등 보약을 가져왔다”며 “이렇게 1시간이면 충분히올 곳을 50년 동안 오가질 못했으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규렬씨(68)는 “누이(김공순·78)가 더 늙기 전에 북에 있는 가족들 사진을 보여주려고 많이 가져왔다”고 말했다.17살때 헤어진 어머니와 상봉한 리동섭씨(65)는 고급술인 백두산 들쭉술과 인삼 넣은 보약을 정성스레 챙겨 왔다. 김경운기자 kkwoon@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6)남만주 독립투사 양세봉 활동지 신빈

    ‘歷史名城 前淸故里’(역사명성 전청고리)라고 쓴 현판을 단 높다란 채색관문이 차창위로 휙 스쳐 지나갔다.현판은 이곳이 청태조 누루하치의 고향이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뜻이었다.마침내남만주의 오지인 신빈현(新賓縣:항일전쟁 시기 지명은 興京縣)에 들어선 것이다.심양(審陽)에서부터 4시간 반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차가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신빈은 요녕성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만주족 자치현으로 길림성의 통화현과 닿아 있다. 양세봉(梁世鳳·1896∼1932)장군은 유해가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모셔져 있는 탓으로 남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투쟁의 명장이다. 남한에서는 김좌진이,북간도에서는 홍범도가 항일영웅으로 인구에 회자되듯이 심양과 남만주 일대의 동포들에게는 양세봉의 이름이 전설속에 칭송되고 있다.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 깃발아래 싸운 부대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양세봉이 소년시절의 김일성을 도와주었고 김일성이 막 항일투쟁을 시작한 무렵 교류한 적이 있다.그러나 양세봉은처음부터 반공성향이 강했고,조선혁명군도 1920년대말 국민부 산하의무장조직으로 창건되어 1937년 해체될 때까지 민족주의 이념을 굳게지킨 독립군이었다. 양세봉은 서봉(瑞鳳)이라는 이름도 썼다.평북 철산 출신으로 스무살이 넘어 만주땅으로 건너가 중국인 점산호(占産戶.지주)의 소작농이됐다.기미년 4월 만세시위가 남만주 일대까지 퍼져 왔다.그는 시위에앞장섰고 그때부터 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됐다. 천마산대에 입대해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무명 소졸로 투쟁하다가,참의부 중대장을 거쳐 1926년에는 남만주의 새로운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에 들어갔고,1929년말 국민부 산하조직으로 조선혁명군이 창건되자 부사령(副司令)을 맡았다. 1932년 봄,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은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위기를맞았다.양세봉은 총사령으로 추대되고 즉각 왕청문(旺淸門)에서 무장봉기를 단행,지휘부를 왕청문에 두고 500명의 대원을 이끌고 무순(撫順)까지 진공해 일본군을 격퇴했다. 당시에는 흥경현의 일부,지금은 신빈현의 일부로 행정상 현(縣)보다작은 진(鎭)에 해당된다.양세봉은 흥경현의 쌍협하(雙峽河)에서 또다시 적을 격퇴하고 이름을 드날렸다.그는 영릉가(永陵街)에서 중국 의용군과 합세해 대대적으로 진공해온 일본군을 패퇴시켰다.그리고 흥경성에서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 공격을 받아 혈전을 치르고 사수했다.그 뒤에도 2차 영릉가전투,청원(淸原)전투,영릉가의 석인구(石仁溝)전투에서 승리했다.중국인 의용군과 연합한 전투도 있지만 조선혁명군의 단독전투가 더 많았다.양세봉은 한편으로 끊임없이 소규모 인원을 보내 국내 진공을 펼쳤다.기록을 보면 1932년 16차례에 걸쳐 100여 명이,이듬해는 10차에 걸쳐 14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가 일본군진지와 파출소,우체국 등을 기습했다. 일제는 남만주의 영웅 양세봉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짰다.1934년9월,일제의 지령을 받은 밀정 박창해(朴昌海)는 중국인 지주 왕가(王哥)를 통해 마적 두목 아동양(亞東洋)을 매수했다.아동양은 양세봉에게 중국인 항일부대와의 연합을 협의하자고 속여 환인현(桓仁縣) 소황구(小荒溝) 골짜기로 유인해 저격했다.온 몸에 집중사격을 받은 양세봉은 동포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동포들은일제의 손길을 피하려고 가까운 고려성(高麗城)에 평장했으나 통화현(通化縣)의 일본 경찰은 이를 탐지해 시신을 꺼내 목을 잘라 성루에걸었다. 취재팀은 시내로 들어가 조선족 원로들을 찾다가 운좋게도 최선주(崔善柱)선생(66)과 조만선(趙萬善)·김순화(金順化)·김순자(金順子)선생 등 원로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현(縣) 인민위원회 부서기 등 고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은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결성,조선족 사회의 발전과 모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1995년 조선혁명군의 주둔지 왕청문에 양세봉 장군 기념비를 세운 주인공들이다.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대낮이었으나 원로들은 취재팀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우리는 흥경성전투 현장부터 돌아보았다.네 분원로가 손을 들어 이곳 저곳을 가리켜 보였다. “일만(日滿)연합군은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동쪽에서는 중국의용군이춘윤부대가 맞섰지요.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남쪽에서 협공했지요.대도회(大刀會)는 뒤에서 냅다 함성을 질렀구요.병력이야 이춘윤부대가 많았지만 적을 무너뜨린 건 양세봉부대였지요.참 대단했다 그래요.혼쭐나서 달아나는 왜놈들을 양장군은 무순까지 쫓아가며족쳤대요” 길목이나 구릉이 있어 실감은 났지만 이제는 모두가 시가지로 변해당시의 진지나 망루 따위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필자가 김순화 선생에게 물었다. “대도회는 뭡니까?” “2,000명쯤 되는 비무장 예비대였지요.배에다 부적을 뻘겋게 붙이고 죽창을 꼬나들고 함성을 올리며 돌진했지요.흥경성 2차전투에서많이들 죽었어요.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몇분이 있었는데 이젠안 계세요” 흥경성 2차전투는 양세봉이 조선혁명군의 주력을 이끌고 청원현에가 있을 때 적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혈전을 벌이던 중 일본군 비행기가 기총사격을 가했고 이춘윤부대는 속수무책으로 퇴각했다.대도회는 거의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취재팀은 그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왕청문진으로 향했다. 남만주 항일전쟁의 영웅 양세봉은 조선혁명군의 지휘부가 있었던 화흥(化興)중학교 안에 장려한 화강암 흉상으로 우뚝 서 있었다.6미터쯤 되는 높은 기단에 흉상은 1m65㎝,전면에는 ‘抗日名將 梁瑞鳳 將軍(항일명장양서봉 장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혁명군의 사령부이자 간부 양성소로 썼던 화흥중학교는 옛 자취는 사라지고 1960년대에 지었다는 교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조선족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양세봉의 죽음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일본경찰은 그의무덤에서 시신을 파내 김도선(金道善)이라는 조선족 농부에게 작두로 목을 자르라고 윽박질렀다.김도선은 ‘양세봉은 우리 조선민족의사령이다.내가 조선사람으로서 어찌 우리민족 사령의 목을 자른단 말인가’라며 거부하자 일경은 그 자리에서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양세봉 암살계략을 짠 조선인 밀정 박창해와 그의 시신의 목을 자르기를 거부하고 총살당한 농부 김도선.충성과 배반의 양극이다. 양세봉의 아내와 아들은 1946년 김일성의 각별한 배려속에 평양으로귀국했다. 북한당국은 그의 유해를 1961년에 모셔가 일단 평양 교외에 안장했다가 1986년 애국열사릉에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양세봉이 두 차례 대승을 거둔 영릉가를 돌아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분단모순 때문에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 않은 항일전쟁의영웅을 취재했다는 보람에 가슴이 뿌듯해진 채로 심양을 향해 차를달렸다. 신빈(중국 요녕성)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남북언론 ‘따뜻한 시각’ 전환

    8·15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을 전후한 남북 언론의 보도태도가 상당히 바뀌고 있다.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실질적인 평화 공존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85년 9월20일부터 23일까지 실시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 언론매체의 논조는 대남 비방전 일색이었다. 당시 북한의 언론 매체들은 “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남북간에 자유로운 내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측의 반통일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특히 “남한 당국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은 원탁에 ‘안내’라는 표쪽을단 요원들을 앉혀놓고 방문단 성원들과 그들의 가족 친척들이 서로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했다”고 보도했다. 기념품도 시빗거리가 됐다.노동신문은 “남측 방문단 일부가 ‘승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셔츠를 선물하고,안내원에게 반공과 관련된글이 실린 잡지를 건넨 것은 정치적 목적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보는 북한 언론의 논조는 비난은자제한채 우호적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낮 12시50분쯤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채택된합의서에 따라 서울에 가는 우리측의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이 평양을 출발했다”고 신속하게 보도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북측에 비해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남측 언론의 보도태도도 달라졌다.85년 당시에는 ‘만나도 먼 남북’,‘세뇌됐구나’는 등 남북의이질감이 주로 기사화됐다. 이번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의 아픔과해법을 찾는 쪽으로 보도가 모아지고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KBS·MBC 특집다큐 풍성…북한에선 여름휴가 어디로 갈까

    한층 가깝게 다가온 북한 사람들,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사람살이와는 얼마나 다를까.KBS와 MBC는 그 해답을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준다. MBC가 16일 준비한 다큐는 ‘북한 2000,사람 사는 이야기’(낮12시30분)와 ‘평양 50년’(오후7시25분) 등 두편이다.‘북한 2000…’에서는 귀순자 김순영씨와 그의 어머니 최금란씨,98년 북한을 방문했던김승규씨, 얼마전 북한에서 누이를 만나고 돌아온 남보원씨 등이 출연한다.이들은 북한의 휴가,음식,연애방식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북한에서는 여름철 피서를 위해 휴가를 내거나 해수욕을 즐기려 바닷가를 찾는 일이 드물다.휴양소는 차관급 이상만 사용할 수 있고 일반 노동자들은 주말에 대동강 등 가까운 곳으로 나가 음식을 해먹고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다.‘귀신을 믿지 말라’는 당의 방침에 따라 TV에서는 여름철 납량물을 찾을 수 없다.또 여자들은 절대 바지를 입을 수 없다.연애풍습을 보면 비교적 개방적인 평양에서는 남녀가 손을 잡고 다닐 수 있다고 한다. ‘평양 50년’에서는 대중문화를 만날 수 있다. 북한에도 여성들의쌍꺼풀 수술과 피부 맛사지가 있다.더 놀라운 것은 쌍꺼풀 수술이 무료라는 점이다.‘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황성옛터’ 등 남한 가요도 큰 인기를 끌었다.또 복권도 발매된다.한장에 1원이고 1등 당첨금은 2,000원에 이른다.아울러 북한에 불고 있는 영어교육바람 등도소개된다. KBS 1TV가 조선중앙TV와 함께 만들어 15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북녘 땅 고향은 지금’(밤10시10분)은 16일 사리원을 소개한다.중요무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된 봉산탈춤을 황해북도 예술단풍물패의 공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또 길이 12㎞의 정방산성이 있는 정방산을 찾아간다.옥토로 이름났던 사리원시 미곡리 마을을 찾아가 이곳 토박이인김복심 할머니에게서 고향에 얽힌 이야기도 들어본다. 전경하기자 lark3@
  • 남북이산상봉/ ‘한반도 드라마’ 세계언론 주목

    반세기 만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15일 세계 언론은 일제히 한반도를 주목했다. 미국의 CNN과 영국 BBC,일본의 NHK 그리고 AFP,AP,로이터 등 서울의가족상봉 현장에 기자단을 특파, 관련 기사를 보도해온 세계 방송과신문,통신사들은 오후 서울 코엑스상봉장에서의 혈육 상봉의 감동을생생하게 전세계로 내보냈다. BBC 방송은 이날 ‘남북한의 가족들’이란 제목으로 이산가족 상봉모습을 BBC 뉴스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그대로 내보냈으며 하루앞서부터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생방송 서비스한다는 안내코너를 개설했다.또 ‘한반도 통일 카운트다운’특집 기사를 통해 극적인이산가족 상봉 모습과 준비상황, 그리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조목조목소개했다. “짐승들도 고향을 그리는 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상봉의 기대에 꼬박 잠을 새웠다는 한 이산가족의 혈육을 찾는 절절한 심정을 소개했다. 북한 가족의 서울 도착 모습에서부터 상봉장면 등을 내보낸 CNN은이날 극적인 상봉장면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또 인터넷 웹사이트를통해 ‘북한 개방,진지한 것으로 봐도 되는가’를 주제로 한 즉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응답자 60%가 ‘그렇다’고 답했고 40%는 ‘아니다’고 응답했다. 세계 언론들은 이날 남북한 화해및 통일의 시작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관심있게 다뤘다.AFP가투병생활을 하며 가족상봉의 희망으로 살아가다 결국 상봉 전날 사망한 박원길씨 사연을 소개했다. ‘55주년 종전기념일’을 맞은 일본의 아사히(朝日),요미우리(讀賣)등 주요 신문, 방송들도 한국의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다루며 큰 관심을 보였다.상주 특파원 외에 한국에 대거 취재진을 파견한 일본 언론들은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6·15 남북공동선언이 구체화된 사례로정상회담후 남북 화해·협력 무드를 상징하는 행사”라고 일제히 보도했다.공영방송인 NHK는 매시간 일본의 ‘종전기념일’ 행사와 함께한국의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주요기사로 다뤘다. 중국 베이징방송도 남북 이산가족상봉소식을 자세히 보도했다.베이징방송은 분단 55년만에 북한 민영항공여객기가 처음으로 남한으로들어갔으며 이번 이산가족방문이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새 사업으로그 의의가 크다고 전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사설] ‘한반도시대’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한반도시대‘라는 비전을 제시해 주목을 끈다.과거 한반도는 열강의 제국주의적 패권경쟁의소용돌이에 휘말려 침탈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분단이 초래되었다.그러나 남북한이 손을 잡아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 대도약을 이루어내면 한반도가 세계의 한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반도시대 비전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새천년 첫 광복절에 밝힌 김대통령의 이 비전이 민족의 미래에 대한 실현가능한 청사진이라고 본다. 김대통령은 한반도가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고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아가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또 “아시아 대륙의 동쪽끝에 있는 주변국가가 당당히 세계의 한 중심국가가되는 한반도시대가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한반도시대를 위한 과제로 첫째 지식정보강국을 만들고,둘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해 장차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야 할것 등을 들었다.다시 말해 경제분야에서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이 합쳐진다면 지식정보강국으로 경제 도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남북이 손을 잡으면 한반도 전체로 무대가 확대될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게다가 끊어진 경의선과경원선을 연결한 뒤 해저터널을 통해 일본까지 이를 연장하면 ‘철의실크로드’가 완성된다. 이 실크로드는 남쪽에는 경제적 파급효과가막대한 유통혁명을 가져오고 북쪽에는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한마디로 한반도시대 비전은 그동안 분단으로 초래된 숙명론적 패배론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매우긍정적이다. 우리는 민족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북돋우는 이런 시각이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다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이런 비전이외교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구한말 한반도는 제국주의적인 열강의 이권쟁탈로 시달려왔다.얼마전까지만 해도 냉전에 따른 4강 세력간의 팽팽한 긴장이 한반도에 조성됐다.현재 역시 열강의 이해관계가 한반도에 복잡하게 교차돼 미국, 일본, 러시아와 중국간에갈등여지도 적지 않다.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이 북한을 빌미삼아 러시아의 미사일을 무력화시키려 한다고 러시아와 중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강력한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내심 경계하고 있으며 미국 의회는 클린턴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다. 4강 외교의 중요성을 정부도 강조하고 있긴 하나 통일을 위해 특히미묘한 열강의 이해관계에 신경써야 한다.과거 서독이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당시 소련 등 인접국에 유연하게 대처한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 외교적 뒷받침만 받으면 ‘한반도 시대’는 분명 열릴 것이다.
  • 남북이산상봉/ 北국적기 남한영공 첫 통과 순간

    “여기는 평양,Hand off(관제를 넘겨받아라)”“여기는 대구,OK.Roger(알았다)” 15일 오전 10시5분 평양 순안공항을 이륙한 북한 고려항공 IL-62 특별기는 오전 10시26분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하면서 대구 항로교통관제소(ACC)와 교신했다.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국적기가 한국 영공을 넘는 순간이었다. 특별기는 북측 서해상을 일직선으로 진행하다 서해 공해상 북위 38도48분,동경 124도15분 지점에서 기수를 남으로 돌려 북위 38도,동경124도20분 지점에서 NLL을 통과했다.이어 우리측 영해인 우도에서 일직선으로 만나는 북위 37도12분46초,동경 124도24분47초 지점에서 기수를 인천방향으로 꺾는 ‘ㄷ’자 코스로 비행했다. 특별기가 남측 비행정보구역(FIR)에 들어온 10시26분부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에 따라 항공기에 대한 관제는 대구 ACC가 맡았다.이때부터 대구 ACC를 비롯,김포관제소·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공군작전사령부는 비상태세에 돌입,감시장비를 동원해 북측이 통보한 비행 항로를 실시간으로 정밀체크했다. 군당국은 지난 6월의 정상회담 때와 달리 공군 전투기 편대를 동원한 원거리 초계비행을 하지 않았다.다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공군기지에 HH-60 헬기 등 탐색 구조전력을 비상 대기시켰다.특별기는 이륙 54분만인 10시59분 서울 김포공항에 안착했다. 한편 오는 18일 3박4일동안의 일정을 끝마친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의 귀환은 대한항공 특별기편을 통해 이뤄진다. 귀환용 특별기는 에어버스가 제작한 중형 여객기로 258석 규모의 A330-200 신형 기종.조종은 1만3,000여시간의 비행시간 기록을 보유한베테랑 김홍순(金鴻順·51) 기장이 맡는다. 노주석기자 joo@
  • 남북離散 상봉/ 방북단 이색인물 이색사연

    50년만에 북에 있는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할 남측 방북단 중에는 눈에 띄는 이색인물들이 많다.고령자들은 ‘죽기 전에 가족을만나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쁜 일정을 묵묵히 소화했다. ◆최종 방북자 명단에 100번째로 턱걸이해 고향인 평양에서 동생 김창협씨(62)와 여동생 경숙씨(55)를 만날 행운을 안은 준섭(俊燮·67)씨는 “꿈에 그리던 동생들을 만나게 되다니 새가 돼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어제 밤새 뒤척이다가 1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지난 50년 평양제2중 졸업식장에서 징집돼 가족과 헤어진 김씨는 “400명에서 200명,다시 100명으로 명단이 줄 때마다 천길 벼랑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월남한 뒤 재혼해 부부가 함께 방북길에 올라 각각 전 부인과 그자녀들,전 남편의 자녀들을 만날 이선행(李善行·80),이송자(李松子·82)씨 부부는 “둘 다 어제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대통령께서 주최한 오찬에서 졸뻔했다”면서 “부부가 각각 북에 있을 때의 가족을만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기구한 운명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 이씨 부부는 “이번에 못가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대통령께서 ‘앞으로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곧 많은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방북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평양 출신 김정호(金貞鎬·91)씨는 “너무 좋아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환갑을 맞은 아들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할지 뭐라 몰라 손목시계와 금반지를 준비했는데 아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 먼저말을 걸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아들이 먼저 ‘아버지’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51년 1·4후퇴 때 피난길에서 지친 부인과 아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가족과 헤어지게 된 평북 영변 출신 강기주(姜基周·91)씨는 방북의 감격을 가누지 못한듯 “그저 기쁠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귀가 어두운데다 걸음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쇠약해진 강씨는 “50년만에 만났는데 귀가 어두워 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함남 함흥 출신 장정희(張貞姬·71·여)씨는 “남편(金學九·82·평양 출신)과 함께 방북 신청을 했으나 나만 가게 돼 미안할 뿐”이라면서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는 남편이 아침에 심란한 표정으로 배웅해 마음이 더욱 아팠다”고 털어놨다.장씨는 “북에 있는 여동생에게 결핵약을 선물하려 했는데 의약분업으로 구하기가 힘들었다”면서 “동생이 오랫동안 사탕맛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단음식을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전영우기자 ywchun@
  • 새천년 첫 광복절 김대통령 경축사/ 남북 주요 현안별 입장 분석

    *이산가족. 700만 이산가족의 염원이 남북 두 정상의 의지로 머지않아 실현될것 같다.8·15 남북 방문단 교환에 그칠 것 같던 이산가족 문제는 ‘재결합’ 논의로까지 급진전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과가진 오찬을 통해 “이산가족 방북단 교환은 새로운 남북관계로의 진입을 위한 상징적 사업이 될 것”이라며 “상봉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이산가족이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지난 12일 남측 언론사 사장단에게 “올해는 9,10월 매달 한번씩 하고 내년에 종합 검토해 사업을 해 나가자”며 “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이 집에까지 갈 수 있게 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이산가족 방문단의 지속적 교환과 가정방문 허용을 제안했다면 김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산가족의 재결합 및 정착까지 추가해 화답(和答)한 셈이다. 9월 초로 예정된 남북 적십자회담에서는 9,10월의 이산가족 교환방문이,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에서는 보다 큰 틀의 이산가족 남북합의가도출될 전망이다. *남북관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7월 말 서울 장관급회담에 이어 8월 말 평양 장관급 회담,9월 초 남북 적십자회담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후속조치는 남북이 장관급회담을 계속진행시켜 나가기로 함에 따라 가시적 성과가 하나둘씩 나올 것으로예상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언급한대로 군사직통전화 개설,국방장관급 회담 등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 등이 보다 구체성을 띠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언론사 방북단에게 노동당 규약 개정의사를 밝히는 등 새로운 남북관계에 맞는 변화에 적극적인 태도다.8월말 평양 장관급회담에서는 군사,경제,사회·문화 3개분야별로 남북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문제가 본격 거론될 전망이다. 체육부문의 남북 단일팀 구성,임진강 공동수방사업,투자보장·이중과세 협정 등도 논의된다. 최대 관심사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김대통령에게 빚을졌다”며 서울 답방의 원칙적 실현을 밝혔다.최측근인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의 9월 서울 방문은 김 위원장의 답방 등을 협의하기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협력. 경제협력에 관한 한 남북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남한의 기술과 자본,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이 합쳐지면 민족경제의 균형발전과대도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지난 12일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에서 “북남 인구가 1억도 안된다”면서 “남쪽 경제 기술과 북쪽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된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자는 두 정상의 기본시각은 같다. 따라서 남북 당국간회담을 통해 투자보장 및 이중과세방지 협정이 체결되면 북에 대한 남의 투자진출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현대의 개성 관광·공업단지 건설,2005년의 금강산·설악산 연계관광,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등 관광부문은 물론 본격적인 경협이 추진된다. 남북 양측이 추석(9월12일) 전후로 기공식을 갖기로 한 경의선은 경협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인프라 구축의 시발이다.김 국방위원장이 제안한 개성 관광단지 건설에 따른 판문점∼개성간 새 도로 건설이나남북 공동영화제작 등도 당장 실현 가능한 경협의 하나다. 황성기기자 marry01@. *통일방안. 남북은 통일 방안을 둘러싼 55년간의 반목과 대립을 종식하고 극적인 접점을 찾아냈다.6·15 선언을 통해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추진한다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남북 모두가 경계했던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의 공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평화통일의 1단계인 ‘평화공존’의 시대에 진입했다는 의미가크다.향후 남북 교류의 질과 양적 성장을 통해 통일의 앞날까지 점쳐지는 대목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몰아내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교류,민족 상생(相生)의 시대를 이룩하자”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은 6·15 공동선언 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장관급 회담을 통해군사,경제,사회·문화의 3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남북한군사직통전화 설치,국방장관급 회담 등 긴장완화 조치도 지속적으로추진한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의지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언론사 방북단에게 “체제유지를 위해 양측 정부 모두가 통일문제를 이용해 왔다”고 시인함으로써 새로운 ‘통일 패러다임’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외정책.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모두 활발한 대외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남은 한반도 냉전해체와 평화정착을 목표로,북은 체제유지와 경제회생의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 모두 한반도 4강 외교에 전력투구 중이다.남한은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주축으로 친중·친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한반도 냉전해체를 위해 주변 4강의 절대적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대미,대일 관계 정상화와 대중·대러 관계복원의 두 축으로움직인다.북·중,북·러 정상회담은 한·미·일 3국 견제와 북·중·러 3국 접근 속도에 탄력을 주었다. 반면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정상화는 아직도 첩첩산중이다.하지만최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미국이 테러 지원국의 고깔을벗겨내면 곧바로 수교하겠다”고 밝혀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남한도 ‘포용정책’의 기조 위에서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정상화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특히 7월말 방콕에서의 사상 첫 남북외무장관회담은 국제사회에서의 남북협력 시대를 활짝 열었다. 오일만기자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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