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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엘 하지 오마르 봉고/진경호 논설위원

    정·관계 인사와 합창단 등 1400여명이 김포공항에 몰려 나갔고, 거리엔 시민과 학생 수십만명이 동원됐다. 경복궁 경회루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정일권 국회의장, 민복기 대법원장, 김종필 국무총리 등 3부 요인 등이 참석한 리셉션이 열렸다. 중앙청 만찬에는 각계 인사 800여명이 참석했다. 그를 영접하려고 정부는 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국빈영접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의 얼굴을 담은 기념우표가 발행됐고 서울대는 그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엘 하지 오마르 봉고 가봉 대통령, 그가 온 것이다. 1975년 여름, 아프리카 서부의 인구 100만명(현재 14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 가봉의 대통령을 맞이하느라 ‘남한’은 야단법석이었다.3박4일간 신문들은 그와 관련한 특집기사로 도배됐고, 그에겐 조선호텔 숙소를 비롯해 최고 수준의 접대가 이어졌다. 정부 기록에는 없지만 적지 않은 향응도 있었다고 한다. 왜 이 난리였던가. 모두가 아프리카 신생독립국, 즉 비동맹국가들을 상대로 북한과 벌인 외교전쟁의 산물이었다.1972년 미·중 수교와 이에 따른 주한 미7군 철수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남북은 유엔에 가입한 25개 비동맹국가들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급기야 북한이 봉고 대통령을 통해 미국에 김일성 주석의 친서를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자, 남측은 북·미 관계개선을 막으려 부랴부랴 봉고 대통령을 초청, 엄청난 환대를 불사했던 것이다. 그를 통한 ‘물귀신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했고, 이후 유엔을 상대로 한 남북간 외교전도 소강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30년이 흘렀건만 69세의 봉고 대통령은 지금도 건재(?)한 모양이다.38년의 장기집권도 모자라 27일 실시된 대선에서도 승리가 확실하다고 한다. 종신집권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쿠바의 카스트로(46년째 집권)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번째 장기집권이다. 그런 그가 최근 ‘제2의 박동선 사건’으로 불리며 미 의회를 뒤흔들고 있는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스캔들에 휘말렸다.2003년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아브라모프에게 900만달러를 쥐어줬다는 것이다. 먼 기억 속 박제로 남아 있던,70년대 우리 외교사의 한 자락이 그로 인해 되살아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양그룹-창업주 故 이양구회장家

    동양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동양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이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데다 이관희(76)여사 사이에 딸만 둘을 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창업주의 차녀인 화경(49)씨가 일찍이 경영에 참여해 현재 오리온 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동양의 ‘경영 대권’은 맏사위인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둘째 사위인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에게 돌아갔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만큼 이 창업주가(家)의 혼맥도는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또 이 창업주가 딸들의 통혼을 통해 사돈가(家)의 후광을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유업을 이어갈 사위들의 ‘사람 됨됨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혼맥의 단순함을 더했다. 특히 오리온 담 회장의 집안이 화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설탕왕·시멘트왕’ 이양구 창업주 동양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부친 이교흠(작고)씨와 모친 김성자(작고)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2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면서 서남의 어린 시절은 힘겨운 생활로 점철됐다.15세의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 졸업장을 받은 서남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함흥물산’이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했다. 서남은 훗날 이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다고 밝혔다. 8년간 악착같이 돈을 모은 서남은 1938년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6·25전까지 수차례의 회사를 세우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때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고향에 수십만평의 토지와 1억원에 가까운 거금도 삼팔선과 전쟁으로 잃었다. 그러나 그는 부산에서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이 거꾸로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남은 부산과 마산, 대구 등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서남은 당시 국내 유일하게 설탕을 생산했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 가까운 사이였다. 서남은 1955년 삼성 이 창업주와 풍국제과의 배동환씨 3인의 공동 출자로 동양제당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풍국제과의 경영에도 참여해 오늘날 오리온(옛 동양제과)의 기틀을 다졌다. 또 동양제당이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서남은 자연스럽게 시멘트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서남은 1957년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뒤, 노후시설 교체와 증산을 통해 한때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신규 업체의 대거 진입으로 시멘트가 남아돌았고, 정부의 금융 긴축정책으로 동양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서남이 훗날 ‘운명의 날’이라고 밝혔던 1971년 9월10일 법원에 회사보전신청을 제출해 세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살아났다. 정부의 사채동결조치가 사실상 동양의 구명줄이었으며, 평상시 쌓아온 정직과 신용도 큰 도움이 됐다. ●운명적인 만남 서남과 이관희 여사의 인연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6·25가 이들을 만나게 하고, 또 헤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거제도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했다. 6·25 발발로 3년 5개월만에 공군 소속으로 귀향한 서남은 모친의 부탁에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관희씨는 당시 함흥의 명문인 영생고녀(永生高女)를 나와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군의 전쟁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올리고 생이별을 하게 됐다. 부산으로 내려온 서남은 가족 소식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피란선을 타고 월남해 거제도에 머물던 관희씨와 극적으로 만났다. 이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 이사장으로 남편의 유업을 기리고 있다. 서남과 이 여사는 슬하에 장녀 혜경(53)씨와 차녀 화경씨 등 2녀를 뒀다.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혜경씨는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중이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혜경씨는 현재 전공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선비 가문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그는 고 현 교수의 3남2녀 가운데 셋째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인 현재천(61)씨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는 현재란(49) 의사로 현재 이화의원 원장이다. 현 회장과 이 고문은 ‘정담(28·여)-승담(25·남)-경담(23)-행담(18)’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2세 모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녀 현 회장과 동문이다. 첫째인 정담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한 뒤 지금은 MBA(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장남 승담씨는 컴퓨터 사이언스와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차녀 경담씨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다. 막내딸 행담씨는 스탠퍼드대 교양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다. 서남의 둘째 딸 화경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1980년 뜨거운 열애끝에 담철곤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담 회장의 선친은 대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으며, 타이완 국적으로는 한의원 경영이 쉽지 않아 일찍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화경씨와 담 회장은 슬하에 경선(20)씨와 서원(16·남) 1남1녀를 뒀다. 경선씨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서원군은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서남가(家)의 혼맥은 이처럼 단순하지만 그나마 현 회장 집안을 통해 정·재계에 인연이 이어진다. 현 회장의 조부인 현상윤 전 총장은 6∼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 전 국회법사위 위원장과 사돈지간이다. 김 전 법사위원장은 손경식 CJ 회장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잉꼬 부부 이 고문과 현 회장은 중매로 만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결혼 이후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에 홀로 유학한 현 회장은 이 고문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고, 편지 첫 머리에 늘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적었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서로가 첫 사랑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유학온 담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 이 사장을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이 때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10년 이상 연애했다. 담 회장이 미국 조지워싱턴대로 유학간 4년이 유일하게 떨어진 시간이었다. 이 때도 두 사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싼 국제전화를 하는 탓에 꾸중도 많이 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친구에서 연인, 다시 부부로 인연이 이어지기까지 두 사람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오랜 만남을 지속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결혼때는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담 회장과 이 사장은 국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CEO(최고경영자)’다. 담 회장은 현재 이 사장이 총괄경영을 맡고 있는 오리온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아이디어를 추진한 주역이다. 이 사장은 “나는 다소 감성적인 반면 담 회장은 실용적이어서 상호 보완이 된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이제는 이 세상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시에 더없이 훌륭한 사업 파트너”라고 곧잘 언급한다. ●혹독한 경영 수업 서남은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더 강하게 경영 수업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는 것이 서남의 ‘후계자론’이다. 현 회장은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입문한 뒤 결혼과 함께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재계의 첫 발을 내디뎠고, 초고속 승진을 통해 동양의 후계자로 대내외에 알려졌다. 그러나 후계자의 길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이 창업주는 타계하는 날까지 두 사위와 작은 딸에게 이론과 실전으로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후, 이 창업주로부터 직접 경영수업을 받았다. 낮에는 현장을 같이 누비며 실전과도 같은 수업을 받았고, 밤에는 새벽까지 수십년동안 쌓아온 이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이 창업주의 경영수업은 이틀 정도 잠을 안재우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이화경 사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에서 인턴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담철곤 회장도 유학을 마친 후 동양시멘트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창업주는 ‘경영자가 되려면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며 두 사람 모두 구매부로 발령냈다. 이후 이 사장은 영업부를 제외한 각 부서를 돌며 업무를 익혔다. 특히 마케팅담당 시절엔 획기적이고 신선한 광고로 광고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 광고다. 그는 입사 26년만에 오리온그룹의 외식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을 담당하는 CEO에 올랐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의 여성부호 50인 가운데 8위(1652억원)에 올랐다. 담 회장도 81년부터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구매부장과 사업, 관리, 영업 상무 등을 거치며 89년 동양제과 CEO에 올랐다. ●동양·오리온의 분가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해왔다. 이 때문에 사위간에 기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여기에 동양제과가 영상미디어 분야에 투자와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으로 제한을 많이 받아 계열분리가 빨라졌다. 동양제과는 2001년 9월1일 동양에서 분가했다.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오리온(옛 동양제과)은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함께 사용할 정도로 뿌리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과 오리온의 분가는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위해서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그룹이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지를 펼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 이후 동양은 금융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증권·종금·투신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사로 거듭났으며, 동양생명은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동양은 현재 제조업 6개사, 금융 7개사로 총자산은 15조원 수준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4조 300억원을 기록했다. 오리온그룹은 케이블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해 계열사를 26개사로 늘렸다. 지난해 매출액 1조 5300억원을 올렸다. 특히 미디어플렉스의 극장사업체인 메가박스는 전국에 117개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는 ‘말아톤’과 ‘웰컴투 동막골’,‘가문의 위기’ 등을 잇달아 흥행시켜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여기에 베니건스를 중심으로 한 외식사업과 편의점 사업체인 바이더웨이 등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양·오리온의 대표 CEO 노영인(59) 동양시멘트 사장은 30여년을 시멘트업계에 종사한 산증인이다.98년 동양시멘트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외환위기 한파를 수출로 돌파했다. 그동안 시멘트 수출은 채산성이 안 맞고, 선진국의 품질검사가 까다로워 시늉만 내왔다. 그러나 노 사장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밀어붙여 99년에는 창사이래 최대 물량인 171만t을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579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기나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노 사장은 동양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동양메이저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박중진(54) 동양종합금융증권 부회장은 금융업계에선 신사로 통한다. 친근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 그는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고 있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동양증권과 동양생명, 동양종금을 거치며 10년이상 실전 금융을 익혔다. 윤여헌(57) 동양생명 사장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건설부와 재무부를 거쳐 95년 동양에 합류했다. 윤 사장은 겉치레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내실형’ 스타일이다. 철저한 손익 위주의 경영을 선호한다.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상우(48) 오리온 대표이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대표는 1987년 오리온(옛 동양제과)에 입사한 이후 줄곧 마케팅 분야를 맡았다. 농심이 장악한 국내 스낵시장에 포카칩과 스윙칩 등을 출시해 오리온의 돌풍을 일으켰다. 오일호(53) 스포츠토토 사장은 1987년 오리온 마케팅부 과장으로 입사해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004년엔 스포츠토토 사령탑을 맡아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초기 난관을 극복했다. 특히 가라앉은 ‘토토´를 최근 ‘토토 붐´으로 확산시킨 것은 그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golders@seoul.co.kr ■ 창업주 두딸 이혜경·화경씨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자매.’ 이혜경(53) 동양매직 고문은 국내 ‘재벌가(家)의 딸’들이 그러하듯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공(이화여대 미대)을 살려 동양매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가정에 더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장녀로서 모친인 이관희(서남재단 이사장) 여사를 도와 부친의 뜻을 기리는 서남재단의 이사로서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이다. 반면 이화경(49) 오리온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현 오리온)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밑바닥을 두루 거친 뒤 26년만에 오리온 사장에 올랐다. 약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장은 그동안 ‘경영자의 길’을 걸어왔다. 언니와는 다르게 ‘바깥 일’을 더 중시한다. 이 때문에 자매를 잘 아는 지인들은 보통 언니를 ‘살림꾼’으로, 동생을 ‘여장부’로 부른다. 이 고문은 소박하면서 다정다감하다. 살림을 손수 챙기며,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다. 미술 감각을 살려 실내 장식과 정원 등은 손수 꾸민다. 또 혼자서 곧잘 동대문 시장에 나가 살림 도구나 가족 옷을 산다. 자녀 교육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1남3녀를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대에 진학시킨 것은 이 고문의 노력과 관심 덕분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때 사회활동을 극도로 자제했으며, 수년간 미국에 머물며 자녀 뒷바라지를 했다. 현 회장도 틈틈이 아이들의 영어와 수학을 직접 가르쳤다. 막내딸 행담씨가 올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고문은 건강 관리를 위해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 사장은 경영인, 아내, 엄마의 ‘1인3역’을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홀한 법이 없다. 자녀(1남1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업무 외의 약속은 잡지 않는다. 경영인으로서 이 사장은 어떨까. 호탕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간 현대경영이 2003년 8월 100대 기업 비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세대 여비서들이 모시고 싶은 CEO’에 뽑히기도 했다. 그만큼 업무상의 유연함과 직원 배려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 주요 부서를 거쳐 누구보다 현장 분위기와 실무진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오리온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계열사 직원들은 이 사장을 열정적인 CEO로 평가한다. 이 사장이 전담하는 계열사는 온미디어와 미디어플렉스, 외식 사업부문인 롸이즈온 등 3개사. 일주일을 나눠 각각의 회사에 출근한다. 이 사장은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직원들과 직접 회의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영화사업을 담당하는 CEO로서 때로는 서울 삼성동의 메가박스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사장은 “내가 재밌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golders@seoul.co.kr ■ 두 CEO 경영스타일 비교 ‘외유내강 VS 실용주의’ 사위들이 경영권을 승계하다 보니 현재현(56) 동양 회장과 담철곤(50) 오리온 회장은 곧잘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재계 안팎에선 현 회장을 선 굵은 외유내강형으로, 담 회장을 철저한 실용주의형으로 분류한다. 기업의 성장세로는 담 회장의 오리온이 빠르다.1989년 매출액 1360억원에 불과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지난해 1조 5300억원으로 10배 이상 키운 것은 신규 사업을 진두지휘한 담 회장의 공이 크다. 현 회장은 오리온이 분가한 이후 그룹 구조조정에 매진했다. 금융계열사를 통합, 매각하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 덕분에 10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진입했다. 상대적으로 그룹의 외적 성장은 더디었지만 속은 눈에 띄게 알차졌다. 현 회장은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재계의 ‘스타 CEO’로 떠올랐다.CEO 서밋 의장으로서 각국 CEO(최고경영자)들과 토론 및 기자회견을 깔끔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이처럼 남들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 한 자신의 진면목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외유내강형 CEO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현 회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늘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룹 총수가 화를 내서 임직원들의 기를 꺾으면 차후 일 진행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원칙에 따라 결정된 내용은 남들이 주저해도 과감하게 추진한다.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평가받은 첫 사업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종합금융증권) 인수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대형사고와 부실경영의 대명사로 인식됐던 터라 임직원들의 증권사 인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자본금 20억원에 지점이 덜렁 하나뿐인 일국증권을 불과 5년만에 10대 증권사로 키워냈다. 이를 계기로 동양은 30년간 지속된 시멘트와 제과 사업에서 탈피해 금융업 중심으로 업종 다변화를 일궈냈다. 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 중학교 시절 바둑을 배워 고등학교 때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대학 때는 교내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했다. 장수영 9단에 2점으로 버티는 아마 고수다. 현 회장의 고교·대학 동기들은 그를 ‘티없는 친구’로 기억한다.“품성이 맑고 깨끗하며 원만할 뿐 아니라 일처리까지 깔끔하다.”는 것이다. 담철곤 회장은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는다. 대신 스키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냉혹한 스타일도 아니다. 직원들은 잔정이 많은 CEO라고 얘기한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부장 시절에 기획안을 제출했다가 담 회장으로부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회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왔습니다.‘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는 내용이었죠. 직원의 기를 꺾지 않으려는 회장의 배려였지요.” 담 회장은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90년대 초반에는 20대 중심의 신규 사업팀을 구성한 뒤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사업에 진출해 쓴맛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훗날 오리온의 케이블 TV사업과 극장·외식사업 등으로 진출해 현재의 그룹 규모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잘 엮는다. 국내 제과사들이 90년대 안방시장에 안주하며 저성장의 어려움을 겪을 당시,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오리온의 고성장을 주도했다.2003년엔 남들이 모두 망했다고 평한 체육복표 사업체 스포츠토토를 인수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꿔 놓고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베이징 北식당 ‘인센티브’ 도입후

    베이징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은 한두 번쯤 ‘해당화’나 ‘유경식당’‘평양관’ 등의 북한 식당을 찾게 마련이다. 평양냉면·온반 등 북한 특유의 요리를 맛볼 수 있고 20대 초반의 북한 여성 종업원들의 감칠맛 나는 서비스도 일품이다. 해당화나 옥류관 등 몇몇 식당은 아예 한국 단체 관광객들의 관광코스로 포함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베이징내 일부 북한 식당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 차원에서 요식업의 중국 진출을 적극 독려해 왔다. 지난해 초 베이징을 포함, 중국 전역에 북한 식당 수가 40개에 육박했지만 과당 경쟁으로 일부가 철수했다. 베이징 뉘런제(女人街) 부근에 위치한 유경식당의 경우 매상을 많이 올리는 여성 종업원들에게 월급보다 20∼30?나 많은 ‘격려금’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식당 여성 종업원간의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일부 종업원들은 손님들에게 한국돈으로 3만원이 넘는 ‘백두산 들쭉술’ 등 고급술을 권하고 손님들이 주는 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용을 곁들인 공연으로 분위기를 살리는가 하면 남한 손님들이 던지는 짓궂은 농담도 감칠맛 나게 받아준다. 베이징의 한 북한 소식통은 “유경식당의 인센티브 제도가 성과가 좋으면 다른 식당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식당들의 인센티브 제도 도입은 지난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와 무관치 않다. 다른 소식통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놀고 먹는 건달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내에서 다양한 성과급 제도가 도입되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북한 식당에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변화는 노동당 창건 60주년인 올해 자본주의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도약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이란 해석을 낳고 있다.oilman@seoul.co.kr
  • ‘北광물 확보’ 韓·中 힘겨루기

    남한보다 무려 24배의 가치를 지닌 북한 광물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주도권 확보 경쟁’이 시작됐다. 지금은 중국이 다소 유리한 입장이지만, 우리나라도 추격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24일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북한의 주요 광물자원 잠재가치는 약 2287조 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남한의 95조원에 비해 24배 많은 것이다. 또 북한에 있는 200여종의 광물 가운데 43종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텅스텐과 마그네사이트 등 주요 유용광물의 매장량 규모가 각각 세계 1위,4위에 이를 만큼 개발 여력이 풍부하다. 박양수 광진공 사장은 “최근 확인 결과, 북측이 중국의 ‘동방천우투자유한공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면서 “이에 따라 텅스텐과 마그네사이트, 몰리브덴 등 주요 5개 광물에 대한 조사·개발·판매권을 위임받아 독점적인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경우 광물자원이 모두 국가 소유이다. 이 때문에 북한 광물에 눈독을 들여왔던 우리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현재 우리나라가 북한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광물은 흑연이 유일하다. 비료의 원료인 인회석 광산 개발에 대해서도 협의를 하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박 사장은 “북한은 도로나 항만 등 광산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가 열악하고, 기술·설비도 낙후된 만큼 북측에 우리의 우수한 기술력을 적극 알릴 방침”이라면서 “주요 광물의 경우 적어도 중국과 공동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측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에 따라 광진공은 국내기업과의 컨소시엄을 구성, 함경남도 단천시 대흥 마그네사이트광산과 검덕 아연광산을 공동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매장량은 대흥 마그네사이트광산의 경우 36억t(연간 생산량 300만t), 검덕 아연광산은 3억t(연간 생산량 68만t)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앞서 광진공은 매장량 20억t의 무산 철광석광산을 공동개발, 매년 10만t씩 국내로 들여오는 방안을 북측에 제안한 상태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한국·남베트남 역사가 주는 교훈

    ‘제3세계’. 참 낯설다면 낯선 단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나든다는 우리에게 제3세계란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지구상 저 어디쯤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은 식민시대·압축성장·민주화 투쟁을 걸어온 전형적인 제3세계 국가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의 현대사를 평가하기 위한 비교연구대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구 선진국보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제3세계 국가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남한과 남베트남을 비교분석한 연구서가 나왔다. 한성대 전쟁과평화연구소 윤충로 연구원이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선인 펴냄)를 냈다.“베트남의 역사는 세계에서 한국 역사와 가장 비슷합니다. 식민지경험과 광복, 분단과 경찰독재국가의 성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거의 똑같습니다.”그런데 제대로 된 연구가 없다. 그가 남한과 남베트남 비교연구에 베트남 현지생활 1년을 포함해 7년여의 시간을 들인 이유다. 비교사회학자로서 윤 연구원의 관심은 두가지다.1945년 이후 왜 이승만·응오딘지엠 정권으로 상징되는 반공독재국가가 남한과 남베트남에 들어섰는가. 그리고 왜 남한은 성공하고 남베트남은 실패했는가.●일제식 강압적 통치기구가 남한의 기반 윤 연구원은 ▲지방통제능력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회경제적 측면 등 3가지 원인을 꼽았다. 일제는 억압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의 중앙집권화를 꾀했고 이는 미군정과 반공우익 정부에 그대로 계승됐다는 것. 반면 베트남은 마을 단위의 자치권이 강하다 보니 장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베트남에 미국은 프랑스에 이은 제국주의세력이었지만 한국에 미국은 맥아더 동상철거 논란에서 보듯 해방군의 성격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남베트남이 외친 반공은 민족주의 바람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문에 ‘반공’이 절대 가치로 떠올랐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국가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 제압을 통한 국가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 바로 각종 ‘폭동’과 ‘양민학살’ 사건들이다.●역사를 결과론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설명은 얼마 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일치한다. 강 교수 주장의 배경으로 꼽혔던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사관과 역사추상형 접근법에 대해 물었다.“역사추상법이 그 사건에서 지나치게 확대됐습니다. 역사에서 어떤 단면을 잘라두고 ‘만약’이라고 가정해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서구에서도 ‘가설적 가정법’이라는 방법을 씁니다.”수정주의 비판도 반박했다.“외려 수정주의를 너무 일찍 버린 것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개입과 그 효과입니다.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수정주의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하는 ‘건국과 부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역사를 보지 말자는 것.“지금 와서 보니 옳은 것이니 그것은 처음부터 정당했고 당시의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외려 다른 방향을 모색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외면하고 평가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참전군인들 목소리 생생히 남길 터 윤 연구원은 앞으로 베트남전을 더 파고 들 예정이다.“베트남전에는 8년여에 걸쳐 30여만명의 한국인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크게는 남한이 본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본 남한을 그려볼 생각입니다.”연구방향이 이렇게 정해지다보니 아무래도 앞으로의 연구는 문헌연구보다 구술연구쪽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연구원은 한국내 작업을 마무리짓는 대로 다시 베트남으로 떠날 예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씨줄날줄] 3대세습?/진경호 논설위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본관은 전주다. 시조인 문장공 김태서의 33대손이라고 한다.2000년 남북정상회담때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전주 이씨)에게 “이제야 한가족이 만났다.”라며 의기투합(?)했고,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들에게는 “남쪽에 가면 시조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말한 시조 김태서의 묘는 전북 완주 모악산 중턱에 있다. 풍수사들이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는 곳이다. 정좌계향(동북향)의 갈마음수형, 즉 ‘목 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으로, 자손들이 부귀하고 크게 흥할 자리라고 한다. 특히 조산(祖山)인 고덕산이 멀리 있어 먼 후손이 묘터의 운세를 이어받는다니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이 해당되는 모양이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차남 정철(24)이 급부상하고 있다. 둘째부인 고 고영희의 아들로, 스위스 국제학교에서 유학했고,NBA의 열렬한 팬이며 온건한 성향으로 알려졌다. 엊그제 독일 슈피겔지가 정철이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 만찬 때 정철이 배석했고, 이것이 후계자 지명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부자의 권력세습은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져 왔다.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부친에 이어 2003년 취임했다. 지난해 취임한 싱가포르 3대 총리 리셴룽도 초대총리 리콴유의 아들이다. 인도에서는 네루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 또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잇따라 총리를 맡기도 했다. 이집트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야, 몰도바 등에서도 권력세습 움직임이 한창이다. 대부분 절대권력자의 국가들이다. 다만 3대 세습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들 나라보다 한 수 위라 하겠다. 권력세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반대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데다 중국과의 관계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시조 묏자리도 변수가 될지 모르겠다. 한 지역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시조묘가 마주한 고덕산의 정기가 김 위원장에게서 끝난다는 것이, 이 곳을 꼼꼼히 살핀 전북지역의 유명한 향토풍수사의 주장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권력 세습에 앞서 김 위원장이 직접 내려와 시조 묏자리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열린세상] 연방제가 북한에 유리한가?/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간 매카시즘의 광기가 우리사회를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극단적 반공주의가 여전히 이 나라의 국시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사회 일부 언론과 국민들의 사고는 여전히 6·25전쟁 직후의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십년간 굳어진 고정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정관념에서 이탈한 생각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못하다. 북한의 입장과 주장에 조금이라도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동조하면,‘빨갱이’로 덧칠해지고 ‘이적행위’의 굴레가 씌워진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연방제 통일론이다. 우리사회에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북한에 동조하는 대표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는 당연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중대한 ‘이적행위’였다. 북한이 연방제에 의한 ‘고려민주공화국 창립방안’을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한나라당의 모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열고 연방제 통일을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는 유언비어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의 이면에는 연방제가 북한의 주장이고 북한에 유리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과연 현 시점에서 연방제 통일이 북한에 유리할까? 북한이 과거 연방제 통일을 주장했던 것은 북한의 국력이 남쪽을 압도한다는 전제에서였다. 북한이 연방제 통일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1960,1970년대는 북한의 국력이 남한을 압도하던 시기였다. 연방제 통일은 국력이 우세한 쪽에 유리하고, 국력이 열세한 쪽이 우세한 쪽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한의 상황은 크게 변했고, 남북한의 국력은 역전되었다. 국력의 차이가 30배 이상인 상황에서 남북한의 연방제 통일은 사실상 북한의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의미할 뿐이다. 국력차이가 심해질수록 북한은 오히려 남북한 당국이 가능한 한 자율권을 많이 누리면서 독자적인 권한을 유지하는 통일방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1991년 김일성 주석이 신년사에서 밝힌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는 이런 북한의 고민과 고육지책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은 ‘6·15 공동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연방제안을 우리쪽에서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정치·군사·외교권 등 현존의 남북 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서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안”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 왔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사실상 남한이 주장해온 국가연합제를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군사·외교권을 그대로 둔 채로 통합한다는 것은 ‘국가연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남한이 북한의 연방제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남한이 주장해온 국가연합제를 과도기 단계로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방제건 연합제건 두 체제가 공존하는 중간단계를 현실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남북한 모두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주장과 고정관념들이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졌다. 그만큼 한반도 상황은 크게 변했고, 남북관계는 역전됐다. 거기에 걸맞게 이제 우리의 생각도 바꾸고 유연해져야 한다. 굳어진 우리의 머리를 풀자.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 어느 가정부의 인생 이력서

    어느 가정부의 인생 이력서

    한국 여성의 새로운 직업 시간제 가정부는 그 형태화된 역사가 1년 6개월. 그들은 오늘 어디까지, 어떤 모습에 이른 것일까. 그들이 그려나간 분포도를 가름해본다. 자기 말 가진 마부의 아내, 한때는 집도 장만했으나 마포「아파트」에서 5년 동안 시간제 가정부를 지낸 황완순(41·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가 살아온 발자취는 이러하다. 17세 때 황해도에서 농사꾼에게 시집을 간 황여인은 월남한 뒤 건장한 남편이 몇 필의 말을 끌어 집 한 간을 장만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말이 늙고 나면 개값도 못되는 것이어서 차차 밑바닥 생활까지 처져갔다. 남의 밑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남편도 마음을 고쳐먹고 5년 전에는 마포「아파트」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허리 다친 남편 앓아 눕자, 살아갈 길 찾아 나선 것이 일 나간 지 이틀 만에 허리를 다친 남편이 앓아 눕자 애 다섯을 앞에 놓고 앞이 캄캄했다. 무엇이든 할 용기가 났다. 남편을 마포「아파트」에 소개했던 사람에게 사정을 했다.『막일이라도 좋으니 일당을 받는 일을 해내겠다』고. 마포「아파트」어느 집에 처음 소개된 그 날을 황여인은 못잊는다고 했다. 내 집일 하듯이 해주고 1백원을 받아 든 뒤 보리쌀 한 되, 새끼줄 낀 연탄 1개를 사들고 집을 향하던 5년 전 6월 어느날 저녁을…. 서투른 일 솜씨가 빠르지는 못해도 알뜰하게 밝은 마음가짐으로 일해나갔다. 차차「아파트」안에서 인정을 받아 2백원의 일당을 받게 됐다. 다시 발전해서 하루 걸러 시간제로 일을 하기 시작한 게 2년 전. 한 달에 1천원을 받았다. 지금은 1천 5백원 정도. 남는 시간에는 또 다른 집을 돌고 해서 최고의 수입이 한 달에 9천 2백원을 모은 적도 있다. 세수 한번 하고 쓴 수건도 빨랫감이 되는 미국인 가정은 일이 많은 대신 하루 걸러 시간제로 한 달에 3천원씩 월급이 후해서 외국인 집을 좋아한다. 『「키」를 맡기고 연탄「바이」하는 것도 시키죠』- 이제는 웬만한 외마디 영어도 할 줄 알게 됐다. 미국인들은 한번 믿으면 이사할 때 꼭 다른 집에 소개해주곤 한다는 것. 아침 9시에 직장 마포「아파트」로 출근. 이 집 저 집 연탄 갈 시간, 필요로 하는 시간을「스케줄」짜놓고 한 바퀴 돌고 나면 하루 일이 욕스럽게 여겨지지 않고 저녁 6시쯤이면 끝난다. 그동안 복직이 된 남편도 같은「아파트」에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이 집 저 집 일 도와주고 저녁 6시 퇴근 끝나면 함께 퇴근을 해도 좋은 철저한 맞벌이 부부. 남편의 고정수입 7천 9백원은 고스란히 살림에 쓰고 황여인이 버는 돈은 주로 아이들 기르는데 쓰고 있다. 23세 된 딸은 시집을 보낼 마련도, 국민학교만 졸업한 19세 아들에게는 편물 기술도, 15세 딸은 중학교 3학년, 13세 딸이 국민학교 6학년, 7세 막내아들, 다섯 아이를 부모가 해줘야 될 만큼 뒷바라지도 해주는 생활이 됐다. 황여인과 같은 생활의, 다른 여인은 마포「아파트」만도 5명이 넘는다. 주부가 제일 바쁜 시간이 아침 9시 전과 저녁 6시 후라면 이들 가정주부들은 주부가 해야 될 일만을 남겨놓고 힘든 일만 처리해주는 살림 보조원. 훈련된 믿을만한 시간제 가정부가 각 가정에 골고루 침투될 때 식모가 들고 들어오던 밥상, 식모가 깔던 잠자리는 이래서 서서히 우리 생활에서 멀어지게 될까 싶다. 믿을 수도 없고 훈련도 안된 시간제 가정부라면 사설 소개소에서 잠깐 하루만 빌어 밀렸던 산더미 같은 일을 내맡겨도 되는 사람 정도로 알아온 것이 67년 12월 14일 이전이다. 서울 YWCA에서는 여성들만의 모임에 가장 많은 화제가 되어오고 출석에 지장을 가져오는 큰 문제가 식모 때문에 생기는 것. 우선은 회원들을 위해서 식모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67년 12월 14일 국민학교를 졸업한 신원이 확실한 11명을 모아 10일간 교육을 시켰다. 이들 11명에게 그릇 집약된 식모의 통념을 깨뜨려 주고 새로운 직업의식을 불어 넣는데 고심했다. 믿을 수 있고 훈련된 시간제 가정부는 그 후 지금까지 7회 동안에 139명이 각 가정에 주선됐다. 이들 말고도 각「아파트」단위로 그 나름대로 훈련된 가정부가 괘 많은 수가 됐다. 가정부는 어엿한 직업인, 오히려 고용주 계몽해야 20~50세까지의 이들 가정부는 거의 가정부인이라는 것. 그래서 철저하게 부업처럼 여기면서 일하게 됐다. 이들은 아침 9시에 출근,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면서 일당 250원을 받는 직업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에티케트」에서 위생·요리·아이보기까지 교육받은 이들을 부리는 쪽은 전혀 훈련이 안돼 있다는 것. 앉아서 쉬던 주부는 밥을 먹고, 일을 한 가정부는 라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지나게 하는 등. 이제는 직업인을 고용하는 고용주도 계몽 받을 때가 온 것 같은 느낌. 또 가정부들이 원하는 집은 일하기 편한 집이다. 동선(動線)이 최단거리로 개선된 부엌의 주인은 일하는 주부의 것. 물론「싱크」대, 조리대 등이「딜럭스」한 비싼 부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선반 하나 발판 하나라도 편한 곳에 받쳐 있다는 것. 서울 YWCA에서는 아기보기 전문, 빨래하기 전문, 요리하기 전문 등 분업화해서 여대생을 집단 훈련시킬 계획 중이란다. 남의 가정생활도 몸에 익힐 겸 여대생의「아르바이트」로 권장해도 욕되지 않을 하나의 직업이 됐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4/13 특대호 제2권 15호 통권 제29호 ]
  • 탈북경험 그대로 담아… “이제야 아픔도 탈출”

    “새터민(탈북자)들이 어떤 고생을 하며 남한 땅을 찾았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탈북청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탈북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화제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에 재학중인 양미(18)양과 영상팀 ‘망채’(망둥어의 북한사투리)는 최근 탈북가정의 가족사를 그린 다큐멘터리 ‘기나 긴 여정’을 완성했다. 그간 제3자의 눈을 통해 본 탈북청소년 영상물은 많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얘기를 담아낸 것은 처음이다. 감독과 시나리오, 내레이션을 맡은 양양은 자신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오기까지 힘들었던 여정을 29분짜리 6㎜영상 속에 담아냈다. 현지 영상을 담기 위해 지난 8월 양양은 교장선생님과 중국 지린성(吉林省) 두만강 인근 훈춘(琿春)을 다시 찾았다. 이곳은 2002년 가족이 남한 행을 결심하기 전까지 5년 간 생활했던 곳이다. 현지 공안에 잡힌 횟수만 모두 네 번. 북한을 탈출한 가족에게는 아픔과 회한의 땅이기도 하다. “한번은 아버지와 제가 중국 공안에게 잡혔어요. 동생과 엄마를 남긴 채 북한으로 송환될 위기에서 아버지는 수저머리를 잘라 숨긴 후 숟가락을 그대로 삼켰죠.”복통을 일으키는 아버지를 보고 문제가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공안들은 부녀를 풀어줬다. 다행히도 수저자루는 대변을 통해 아버지 양씨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양양은 영화 속에서 가족이 겪은 이별과 재회 등을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같은 시련이 다시 온다면 이제는 못 견딜 것 같다.”고 회고한다. 양양이 비디오카메라를 든 것은 셋넷학교의 영상제작 수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학교 친구인 김명국(17)군과 유성일(19)군도 촬영과 편집 담당으로 제작에 합류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이 출자해 설립한 다음세대재단의 지원으로 완성된 ‘기나 긴 여정’은 오는 24일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의 개관 기념영상제와 다음달 초 유스보이스(Youth Voice) 페스티벌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부시, 北 우회압박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일 APEC 폐막 직후인 오후 4시25분쯤 경기도 오산 주한미군 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이라크 독재자 몰아내 민주 만끽” 부시 대통령은 5000여명의 장병 앞에서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의 예를 들어 북한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는데, 그 골자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독재자를 몰아낸 지금 이라크 국민은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군에 의한 ‘정권 교체’를 두려워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민감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점퍼 차림으로 부인 로라 부시 여사,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함께 오산기지내 U-2기 격납고를 개조에 만든 행사장에 등장했다.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부시 대통령은 장병들의 열렬한 환호에 고무된 듯 밝은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한반도의 한쪽은 아직도 암흑에 갖혀 있지만 언젠가는 전 한국민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가 전쟁이후 자유선거를 치르는 등 변화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테러 자행은 커다란 실수이며, 미국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北 “美, 강점 큰 수치 얻게될 것” 그러자 다음날인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강점통치를 계속할 경우 더 큰 수치와 죽음만 얻게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앞서 APEC 기간 중 북한은 남한의 APEC 개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 움직임만을 몇차례 보도했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주말탐방-버려진 개] 댕견 “꼬리없어 재수없다”… 보신문화 희생양

    [주말탐방-버려진 개] 댕견 “꼬리없어 재수없다”… 보신문화 희생양

    토종견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7~8종의 토종견 가운데 대표적인 견공을 알아본다. ●댕견 꼬리 없는 개인 댕견은 진돗개·풍산개·삽살개 등과 더불어 우리의 토종견으로 알려져 있다.‘꼬리가 없어 재수 없다.’는 이유로 보신문화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댕견은 지역 사투리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경상도에서는 ‘댕갱이’, 전라도에서는 ‘동개’, 강원도와 경기도에서는 ‘동동개’라고 불린다. ●제주견 제주 지역에만 살고 있다. 중국에서 건너와 3000년 전부터 제주에 정착해 특유의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축산진흥원에 따르면 제주견은 현재 78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에 놓였다.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중이다. ●불개 소백산에 서식하던 늑대가 길들여졌거나 집개와의 교배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혈을 풀어주고 환자의 회복에 특히 좋다는 소문이 퍼져 약용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지금은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진돗개 국내외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의 토종견.1962년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됐다. 세계 최고권위의 축견단체인 영국 켄넬클럽(KC)에 공식 등록됐다. 지난 7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축견연맹(FCI)총회에서 국내 견종 가운데 처음 국제공인을 받았다. ●풍산개 ‘호랑이 잡는 개’로 잘 알려진다.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과 안수면 일대에서 길러지던 북한지방 고유의 사냥개다.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됐으나,1962년 남한에서는 해제됐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 368호로 재지정돼 잘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삽살개 삽사리라고도 한다. 귀신이나 액운(살)을 쫓는(삽) 개라는 뜻. 고유의 특산종이다.1992년 3월7일 ‘경산의 삽살개’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됐다. 삽살개보존회와 보존회육종연구소에서 보존하고 있다.
  • [길섶에서] 은근슬쩍/이상일 논설위원

    “후배가 한 미술관 일자리에 지원한 후에 이야기를 같이 했지요. 그런데 정작 후배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한 갤러리 실장이 겉과 속이 다른 한국사람의 행동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몇년 외국 있다가 돌아오니 전에는 못 느끼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자신의 목표와 입장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한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희망 등을 떠들고 다니는 외국 사람과 두드러진 차이다. “어느 화가는 고객이 자신의 그림에 관심있는지 물어봐달라고 하면서 ‘은근슬쩍’떠보라는 거예요.”그는 “어떻게 해야 은근슬쩍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테이블 밑에서 거래하거나 이야기할 수도 없고…”라며 웃었다. 그가 또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중 하나는 “당신만 알고 있으라. 남한테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 그 실장은 “나만 알고 있으라고 할 정도의 비밀이야기라면 당신이 혼자 알고 있거나 아예 이야기하지 말라고 일부러 강하게 되받아준다.”고 전했다. 일본 사람들은 속과 겉이 다르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한국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그래서 세상 살기가 여전히 복잡한 걸까.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주말을 이용해 23회에 걸쳐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백두대간으로부터 배운 것을 용산구 발전을 위해 풀어내야죠.” 산을 좋아하는 서울 용산구청 직원 5명이 지난해 3월부터 2년에 걸쳐 백두대간 남한 쪽 전구간 734.65km를 밟았다. 지리산 성삼재에서부터 진부령까지다. 이들은 아마추어들이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전문 산악인처럼 바뀌었다. 용산구의 대표 ‘산(山)사람’이 된 이들은 “통일이 되면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를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입을 모았다.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 용산구청 주민자치과 박승일(41)씨를 대장으로 김명선(40·원효로 제1동)·서오성(37·총무과)·신성철(34·총무과)·윤일영(52·재난안전관리과)씨 등 5명의 초보 산악인들은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 위한 팀 이름을 ‘마루금’이라고 정했다.‘마루금’은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평소 산을 좋아하는 박승일씨가 2003년 용산구 직원 전체가 참여한 가을산행 뒤풀이 자리에서 몇몇 친한 사람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제의한 것이 ‘마루금’탄생의 시작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단지 ‘한 번 해보자.’는 강한 의지만 있을 뿐이었다. 박승일 대장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2년 가까이 종주를 하면서 위험한 순간이나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동료의식으로 잘 견뎠다.”고 말했다. ●첫 등반때 과태료 물기도 ‘마루금’의 첫 등반은 지난해 3월12일 지리산에서 시작됐다.‘소구간 종주법’(구간을 작게 나눠 종주하는 방법)을 이용해 종주노선은 ‘시남종북형’(始南終北形·남쪽 지리산에서 시작해 북쪽 진부령에서 마치는 유형)을 택했다. 첫 등반부터 ‘마루금’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당시 지리산은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이었기 때문에 산행할 수 없었지만,‘마루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산행을 감행했다. 결국 공무원이 또 다른 공무원인 지리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을 부과받은 것이다. 김명선씨는 “서울 용산구청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면서 “공무원은 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루금’은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설악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굽이굽이 총 734.65km 구간을 23회 산행, 총 42일간의 일정으로 종주에 성공했다. 그동안 오른 산이 지리산·덕유산·속리산·소백산·태백산·오대산·점봉산·설악산 등 이다. 산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용산구청 직원들의 응원은 계속 늘어갔다. 박승일 대장은 “중간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자꾸 늘어만 가는 구청직원들의 응원과 관심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결국 용산구청 전체의 힘”이라고 말했다. ‘마루금’의 또 다른 대원인 서오성씨는 “마지막 등반일이었던 10월22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새벽 미시령에서 맞은 하얀 첫눈과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설경은 백두대간 종주 완성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루금’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벌써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우리나라 13정맥(남한 9정맥·북한에 4정맥)을 모조리 오르는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의 기쁨을 원동력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남한쪽 9정맥을 등반할 계획이다. 또 통일이 되면 나머지 대간과 북한 지역의 4정맥도 올라 반드시 백두대간 13정맥을 넘겠다는 야무진 포부도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일지 (1)성삼재∼만복대∼정령치∼여원재 ▲2004년 3월12일(금)∼3월13(토) ▲백두대간 첫 번째 산행.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에 산행을 했기 때문에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 부과받음. (2)여원재∼고남산∼치재∼봉화산∼중재 ▲2004년 4월9일(금)∼4월11일(일) (3)중재∼백운산∼영취산∼육십령 ▲2004년 5월7일(금)∼5월8일(토) (4)중산리∼지리산∼성삼재 ▲2004년 5월23일(일)∼5월25일(화) (5)육십령∼덕유산∼빼재∼삼봉산∼소사고개∼대덕산∼덕산재 ▲2004년 6월10일(목)∼6월13일(일) ▲산장에서 식수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고생. 야박한 식당 주인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한 곳. (6)덕산재∼부항령∼삼도봉∼밀목재∼화주봉∼우두령 ▲2004년 7월16일(금)∼7월18일(일)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산행을 감행.(7)우두령∼황학산∼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금산∼작점고개 ▲2004년 7월23일(금)∼7월25일(일) (8)작점고개∼용문산∼큰재∼백학산∼지기재∼신의터재 ▲2004년 8월13일(금)∼8월15일(일) (9)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비재∼형제봉∼속리산∼밤티재 ▲2004년 9월10일(금)∼9월12일(일) (10)밤티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버리미기재 ▲2004년 10월8일(금)∼10월10일(일) (11)버리미기재∼희양산∼이화령∼조령산∼조령3관문 ▲2004년 10월22일(금)∼10월25일(월) ▲고도차가 심한 곳이어서 산행이 힘들었지만 가을 단풍의 전경이 힘든 것을 모두 보상해 줬다. (12)조령3관문∼포암산∼대미산∼차갓재 ▲2004년 11월12일(금)∼11월14일(월) (13)차갓재∼황장산∼벌재∼저수재∼도솔봉∼죽령 ▲2004년 12월11일(토)∼12월12일(일) (14)죽령∼소백산∼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 ▲2005년 1월 22일(토)∼1월23일(일)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산행했지만 설경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는 곳. (15)늦은목이∼선달산∼구룡산∼태백산∼화방재 ▲2005년 3월25일(금)∼3월27일(일) 16화방재∼함백산∼매봉산∼피재∼건의령∼덕항산∼황장산∼댓재 ▲4월15일(금)∼4월17일(일) 17댓재∼두타산∼청옥산∼백봉령 ▲2005년 5월27일(금)∼5월29일(일) 18백봉령∼석병산∼삽당령∼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2005년 6월10일(금)∼6월12일(일) 19대관령∼선자령∼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2005년 7월15일(금)∼7월16일(토) ▲대관령 드넓은 목초지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 백두대간의 보너스 구간이란 말이 실감난다. 20진고개∼동대산∼두로봉∼약수산∼구룡령 ▲2005년 8월13일(토)∼8월15일(월) 21한계령∼점봉산∼단목령∼조침령∼쇠나드리∼갈전곡봉∼구룡령 ▲2005년 9월23일(금)∼9월25일(일) 22미시령∼공룡능선∼희운각∼대청봉∼한계령 ▲2005년 10월13일(목)∼10월15일(토) 23미시령∼상봉∼신선봉∼병풍바위∼마산∼진부령 ▲2005년 10월21일(금)∼10월23일(일)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北도 ‘미녀마케팅’

    北도 ‘미녀마케팅’

    북한의 기업들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홍보에 이용하는 ‘미녀 마케팅’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부강무역회사는 이효리와 함께 광고촬영을 해 남한에서도 인기 있는 북한 최고 무용수 조명애를 인터넷 홈페이지(www.pugangtrade.com)에 등장시켰다. 홈페이지에는 투피스를 차려입은 조명애씨가 이 회사의 제품과 함께 등장한다. 또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황치령 샘물’을 홍보하는 화면에도 미모의 여성 얼굴을 등장시켰다. 부강무역회사의 계열회사인 조선부강제약회사도 이 회사의 제품 사진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의 사진을 함께 배열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1979년 7월3일 창립된 부강회사는 자본금이 북한 돈으로 30억원(미화 2000만달러), 연평균 거래액이 225억원(1억5000만달러)으로 북한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한 대기업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인간시대] 한강 사랑 김성구 서울시 의원

    [인간시대] 한강 사랑 김성구 서울시 의원

    “한강은 우리민족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입니다. 민족의 생명수 역할을 하는 한강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후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한강 사랑에 푹빠진 김성구 서울시의원(한나라당·은평3)이 또다시 늦바람이 났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강을 돋보이게 하는 정책들을 주창하던 그가 최근 광개토대왕비문을 분석한 연구서 출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한강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60대 후반의 초선 시의원에게는 또다른 ‘외도’로 비쳐진다. 그에게는 회기가 따로 없다. 연중 무휴로 의원연구실을 찾아 밤늦도록 연구활동에 전념한다. ●광개토대왕 비문 연구서 출간 몰두 특히 최근에는 한강의 역사성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의원 연구실을 나선다. 바로 광개토대왕비문에 나타난 ‘아리(阿利)’가 생겨나게 된 배경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일제의 역사왜곡을 청산하지 못했다.”며 “적어도 후손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강, 서울 등과 관련된 잘못된 사실만이라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난 여름부터 광개토대왕비문과 한강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수집과 고증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갔다.“연말쯤에는 한강의 역사성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며 기대에 차 있다. ●‘아리´는 일본이 역사 날조 위해 만든 단어 아리수 논쟁은 서울시가 지난해 2월부터 패트병 수돗물을 생산하면서 ‘아리수’라는 상표를 사용하자 김의원이 “아리라는 말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지명이며 비속어의 뜻이 있다.”며 사용 중단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김 의원은 제151회 임시회 시정질의 등 기회있을 때마다 ‘아리수’ 상표의 사용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측은 “국어, 역사학계 등의 고증을 거친 것으로 문제 없다.”며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생각은 확고하다.“아리(阿利)라는 말은 일본서기, 일본상고사 등에 언급되고 있는 데 이는 신공왕후가 삼한을 정벌했다고 기술한 사실을 날조하기 위해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하면서 생겨난 단어”라 믿고 있다. 그는 “일제가 왜곡한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아리수를 광개토대왕비문의 기록이라며 서울 수돗물의 브랜드로 홍보하는 것은 우리역사를 앞장서 왜곡하는 꼴이 된다.”며 분개하고 있다. ●수돗물 수질 개선 첨병 지난 4월부터 서울시가 각 가정의 노후 옥내 배수관 교체에 따른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김 의원이 의정활동을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이끌어낸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 의원은 수돗물 오염의 상당 부분이 옥내 배수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개선을 위해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서울지역 각 가정의 옥내 배수관 가운데 90%는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꾸준히 집행부에 알려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 것이다. 특히 그는 서울, 수도권 2500여만 주민의 식수원인 한강의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준설밖에 없다.”며 서울시와 정부측에 한강 준설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그는 먹는 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 안양천 등을 관할하는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충북 등 수도권 5개 시·도의 공동 관리·운영 대책이 절실하다.”며 관련 자치단체와 정부의 조속한 결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 처럼 그의 의정활동은 서울의 수돗물과 수자원 관리분야에 집중돼 “수도행정은 모름지기 오염된 물을 시민이 먹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으로 감시의 끈을 조이고 있다. ●가장 왕성한 의정활동… 노익장 과시 그는 서울시의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의정활동 우수 의원’이다. 비록 순위를 정하는 상훈은 의회 내에 존재하지 않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통한다. 특히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전문가다운 의원’으로 대접한다. 바로 한강, 수돗물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다. 서울시의 거대한 상수도행정을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으로 감시·감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그의 의정활동 경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5년동안 줄곧 서울시 수돗물 수질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의회 수질개선조사소위원회 위원장 등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활동에 주력해왔다. 최근에는 간도협약문제를 제기하는 등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남다른 열정으로 맞서고 있다. 김 의원은 “시의원의 임기가 끝날지라도 한강과 먹는 물을 지키겠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며 굳은 각오를 보이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김 의원의 발자취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 ▲녹색서울시민위원회 4∼5기 위원 ▲제9∼11기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명예시민증 수여 심사위원회 위원 ▲지방세연구소 운영위원 ▲서울시의회 윤리특위 위원장 ▲서울시의회 운영위원 ▲서울시의회 수도이전반대 추진 본부장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6대) ▲서울 은평구 3대의원 ▲은평구 환경보존협의회 위원장 ▲서울시 수돗물 수질평가위원(전) ▲수질개선조사소위원회 위원장(전)
  •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서울 근교에도 훌륭한 여행지가 많다. 특히 경기도 양평 주변에는 넉넉한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운길산 수종사, 아이들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서울종합촬영소, 우리의 영 원한 학자인 다산 정약용 생가, 물고기 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경기도 민물고기연구소와 각종 갤러리 등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가을 끝자락을 붙잡는 수종사·여유당 ●일찍 일어나야 더 멋진 여행을∼ 일단 양평일대는 차량 정체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당일 여행의 경우 무조건 아침 일찍 출발해야한다. 그래야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동네에서 파는 1000원짜리 김밥이라도 좋다. 김밥 6줄과 음료수, 과자 등을 사서 출발, 차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시간을 절약함과 동시에 돈도 아낄 수 있다. 북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제일 먼저 들를 곳이 다산 정약용생가. ●학자의 숨결을 느끼며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없고 한적해서 좋았다.“아빠, 이게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썼던 거중기예요.”라는 아이. 역시 어젯밤에 여행을 위한 사전공부의 효과가 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자리잡은 다산 생가는 정약용이 태어나 유년시절과 말년을 보낸 곳이다. 생가로 가는 길가에선 목민심서 글귀를 새긴 나무기둥과 수원화성 축조에 쓰인 거중기와 녹로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다산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이 눈에 들어온다.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선이 아름다운 여유당의 어울림은 은은한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홍수에 떠내려갔던 여유당을 1975년 복원했다.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생가는 ㅁ자의 전통 한옥으로 고풍스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40여평 규모의 다산전시관에는 목민심서·흠흠신서 등 다산의 저서와 서화, 수원화성을 쌓을 때 이용한 거중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다산 생가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의자에 앉아 따뜻한 캔커피를 한잔 하며 여행의 여유를 즐겨도 좋다. 주차장·입장료 무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월요일 휴무.(031)576-9300. 30∼40분 정도 돌아보고 떠나자. 정약용의 묘역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방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사찰 수종사로. ●동방의 아름다운 사찰 다산 생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운길산 수종사가 있다.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아이들과 걸어 간다면 1시간은 더 걸린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일반 승용차로 갈 수는 있지만 순탄치않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하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길에 차를 세워놓아 운전하기도 쉽지않다. 하지만 차로 오르다 보면 길가에 주차할 만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어린 아이를 업고 올라가느라 힘들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올라가야한다. 오전 10시쯤 차를 중턱에 세워놓고 5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걸었다. 정말 이젠 가을의 끝이다. 파란 하늘과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걸었다.10분을 걷자 “아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업고 가.”라며 아이가 주저앉는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업었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생각보다 힘들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을 따라 걸으니 수종사 입구가 나온다. 단풍이 좋다는 산이나 사찰에 많이 가보았지만 이렇게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다. 옅은 파스텔처럼 번지는 단풍의 아름다움, 저 멀리 보이는 북한강, 고즈넉한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사찰 역시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동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칭송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조선시대 세조가 북한강 뱃길로 한양으로 향하다가 맑고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운길산을 뒤졌으나 절은 안 보이고 작은 암굴에 모셔진 16나한을 발견한다. 그때 세조가 들은 종소리는 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소리의 울림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절을 지을 것을 명하니 바로 수종사(水鐘寺)다. 이런 전설을 가진 수종사에는 유명한 것이 두개 있다. 첫번째가 물(水)이다. 입구에 있는 석간수 샘은 이래저래 수종사 최고의 보물이다. 물 맛을 알아본 다산 정약용이 시인묵객들을 모아 수종사에 머무르며 석간수로 우린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찻물로 이름이 높다. 대웅전 마당에 있는 다실‘삼정헌’에서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차를 나누어준다. 북한강의 장쾌한 경치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맛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수종사 쌍은행나무다. 세조가 절을 짓고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는 525년 되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위세가 당당하며 긴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다 겪었지만 아직도 위태로운 벼랑끝에 꼿꼿하게 버티고 서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과 남한강을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불자 은행나무 비가 내린다. 황홀감이 느껴졌다. 파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가지 밑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수많은 은행잎이 떨어져 만든 그림이다. 은행을 찾아 줍는 이,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이, 디카를 꺼내 연신 연인의 표정을 담는 사람들…. 오르기가 힘들어 중간에 포기했으면 정말 아쉬웠겠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은 편하다. 서 있어도 자동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비탈이기 때문이다. ●양수리의 맛집 오전 10시에 수종사에 올라갔다 오니 12시가 지났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의 ‘죽여주는 동치미국수’로 갔다. 얼음이 버적버적 얼큰한 동치미 국물에 쫄깃한 국수를 말아준다. 별로 맵지 않아 초등학생 정도면 먹는 데 지장이 없다. 함께 나오는 동치미 국물에 씻은 배추김치 같은 김치도 맛이 그만이다. 어른 둘, 아이 둘이면 국수 셋에 녹두전 하나면 OK. 국수 5000원, 녹두전 1만원.(031)576-4070. 빨리 먹고 오후 1시까지 서울종합촬영소로 가자.‘월컴투동막골’을 무료로 볼 수 있다. ■ 내친김에 들러보는 서울종합촬영소·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 ●신난다, 재미있다 10분 거리에 한국영화의 메카인 서울종합촬영소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모두 1만원.(031)579-0605.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오후 1시쯤 도착했다면 바로 매표소 옆에 있는 시네극장으로 가자. 오후 1시부터 영화가 무료로 상영된다.11월은 ‘웰컴투 동막골´이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1시·3시 두번, 평일에는 오후 1시30분에 한번 상영한다. 영화를 보았으면 무조건 영상지원관 2층으로 가자. 제일 재미있는 곳이 영상체험관. 유료시설로 입장료와 별도로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아이들이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와 영상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고층 빌딩 안 영화제작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스튜디오X-prees’부터 청색스크린 앞에서 촬영한 후 암벽이나 다리 같은 배경화면을 합성하는 ‘매직박스’, 타임터널 등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매시 15분마다 입장할 수 있다. 그다음 미니어처 체험전시관으로 가자. 무료. 매시 정각과 30분에 입체영화를 상영한다.‘원더풀데이즈’라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어 특수안경을 쓰고 본다.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영상에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허공을 휘젓는다. 스케일은 작지만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오후 4시면 야외 세트장이나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내친김에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로 가자. ●팔뚝만한 잉어를 맨손으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031-772-3480)는 무료이며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다. 서울종합촬영소에서 빨리 움직여야한다. 학습관 1층 수족관에 들어 있는 황쏘가리, 어름치 등의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쉬리와 각시붕어 등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들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공짜’라는데…. 살아 있는 물고기들로 가득찬 1층 전시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시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물고기를 판박이 할 수 있는 ‘내가 만든 물고기’, 박제 물고기에 낚싯바늘을 대면 물고기 이름이 나오는 ‘낚시체험’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야외에서는 좁은 수로의 야외수족관에 잉어, 붕어, 피라미 등을 풀어 놓아 누구나 잡을 수 있게 만든 ‘터치 풀’이 인기.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팔을 걷어 붙이지만 피라미나 붕어 등 작은 물고기는 도저히 잡을 수 없고 가장 큰 잉어를 노렸다. 족히 60㎝이상 될 크기의 잉어들의 몸놀림도 예사롭지않다. 결국 아빠들 몇 명이 마음을 합했다. 두 사람은 물고기를 몰고 한 사람은 구석에서 기다렸다. 몇 번을 허탕 친 끝에 간신히 잡았다.“우와∼.”아이들의 탄성에 아빠들도 힘이 난다. 가을이 아쉬워 떠난 여행, 이렇게 하루가 아쉽게, 그러나 재미있게 지나갔다.
  • “남북한 사람 90% 똑같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 사람이나 남한 사람이나 90%는 똑같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알렉산더 보론소프 박사는 15일(현지시간) 열린 동북아정책 강연회에서 남북한 사람들을 접해본 경험을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 출신인 보론소프 박사는 1979년부터 80년까지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했고,2000년에는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90년대에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방문교수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한 경험도 있다. 이날 강연은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남과 북이 처한 현실을 비교 분석하는 자리였다. 보론소프 박사는 남북한 사람의 대표적인 공통점은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그룹 짓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대학 학생들도 여럿이 모여서 토론하는 것을 즐겼고, 남한의 대학생들은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몇명씩 몰려 다닌다고 보론소프 박사는 지적했다. 보론소프 박사는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차이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50년간의 분단 때문에 언어가 다르다.”고 답변했다. 북한은 고유언어를 보존, 유지하려 하는 반면 남한의 말에는 외래어가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보론소프 박사는 “이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화에서도 언어적 차이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보론소프 박사는 북한에서의 ‘반미 감정’과 관련,“잘 조직된 반미주의가 있다.”면서 “그러나 지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던 시기에는 반미감정이 완전히 바뀌어 미국에 친근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모든 것이 원위치했다.”고 전했다.dawn@seoul.co.kr
  • [열린세상] 기업가가 희망이다/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청년들의 직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하반기 신입행원 공개채용은 30여명 모집에 9000명 이상이 지원하여 30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공인 영어시험 고득점자와 석사학위 이상 보유자도 1200명을 초과해 이들만으로도 40대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청년실업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채용 경쟁률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임시로 만든 일자리는 통계상 고용지표는 분칠할 수 있겠지만 청년들이 평생직장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임시적인 일거리에 매달려 있다가 적정 연령을 넘기면 영구적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든 기업가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일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정 회장은 놀라운 통찰력과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건설, 조선, 자동차, 전자, 금융 등 광범위한 사업활동을 펼쳤다. 얼마전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학특강에서 자신이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16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말하자 학생들로부터 “와∼”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취업부적격자로 분류됐던 이 시장을 채용했던 사람이 바로 정 회장이었고 일자리 창출 공로도 정 회장에게 돌리는 것이 순리다. 정 회장은 유엔군 묘지에 겨울보리심기와 서산간척지 유조선 공법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뛰어난 임기응변적 통찰력뿐만 아니라 풍부한 경영지식도 겸비했었다. 필자는 25년전 현재 KTB 네트웍의 전신인 종합기술금융에 재무책임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정 회장이 비상임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다. 종합기술금융은 과학기술처가 주관해 특별법으로 설립하여 기술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는데, 기술채권을 정부가 지급보증해 주도록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이사회에 기술채권발행에 관한 의안이 제출됐을 때 정 회장이 국회의 보증동의를 받았는지 질문했다. 당시 회사는 특별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별도의 보증동의가 필요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다른 이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예산지출수반법률의 경우 예산소요가 이미 법률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국회가 매년 심의 의결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국회의 보증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동의가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법제처에 자문한 결과 국회동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기업가에게 법률, 회계전문가들이 혼쭐이 났던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당장의 문제해결능력도 뛰어났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혜안도 지니고 있었다. 남북긴장관계가 첨예했고 북한의 기아사태가 심각했던 긴박한 시점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소떼몰이 방북을 감행했다. 소떼는 당장의 식량보다는 키워서 번식시키는 지속가능한 먹을거리였던 것이다. 현대그룹의 대북지원이 없었다면 북한경제는 더욱 궁핍해졌을 것이고 남북긴장사태는 더욱 악화됐을 것이며, 이는 남한의 기업활동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결국 정 회장의 대북지원은 남한의 기업활동에 대한 위험요인을 완화시켜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기업가들이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업가의 사소한 잘못까지 가혹하게 들추면서 고용을 통한 사회공헌에 대한 평가에는 너무 인색하다. 정주영 회장과 같이 자기 몸을 내던지며 기업활동에 나서는 기업가가 계속 나타나야만 청년실업의 참상이 해결될 수 있다. 청년실업 해결에 있어서는 기업가가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 “인권기구 방북 허용해야”

    방한 중인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10일 북한내 인권개선을 위한 제안을 담은 ‘인권 6개안’을 발표하고 자신의 방북을 허용해 줄 것을 북한 당국에 거듭 촉구했다. 태국 출라롱코른대학 법학교수 출신인 문타폰 보고관은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지난해 7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임명됐으며 올 4월 유엔인권위와 지난달 3일 개막된 유엔총회에 각각 북한인권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타폰 보고관은 이날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은 각종 국제인권 조약 당사국으로서 인권 조약들을 구체적으로 이행해야 하며 유엔 특별보고관의 유엔총회 보고서에 담긴 권고안을 수용, 주민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자신을 비롯한 유엔내 인권기구들이 북한내 인권상황을 직접 파악하는 한편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개선방안을 권고하고 구체적인 인권개선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방북을 수용해 줄 것을 북한 당국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문타폰 보고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인권 6개안에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계속적인 지원 ▲남북한 당국의 납북자 문제해결 ▲대북한 구호물자 지원 주체에 분배실태에 대한 접근권 보장 ▲북한 당국이 경제개발 계획에 인권적 요소를 포함시킬 것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그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이 자행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건의 남한인사 납치건에 대해 북한 당국의 해명과 평화적인 언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시론] 친일파 재산과 헌법적 정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시론] 친일파 재산과 헌법적 정의/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제, 발자국 함부로 남기지 말자.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 따라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30여년만에 돌아왔을 때, 조국은 이미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점되어 있었다. 이 비탄스럽고 착잡한 현실을 달래며 백범은 자신의 숙소로 찾아와 흔적을 받아 가기를 소망하는 지인들에게 위의 글과 함께 많이 남긴 휘호는 간명하게 쓴 ‘民族正氣’(민족정기)였다. 현재 서울 수유리 통일교육원 한쪽에 돌비로 세워져 있다. 광복 직후 우리 민족의 최대 현안은 ‘친일반민족분자’들에 대한 청산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큰 대륙인 중국만 해도 이 역사적 과업을 철저히 진행하였다. 중국은 직접적 친일행위자뿐만 아니라 ‘친일행위방조자’들마저 혹독한 역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런 과정이 없이는 헌법적(민족적) 정의 구현이 불가능하게 되고, 헌법적 정의의 수립이 없이는 ‘새로운 국가 창건’ 또한 불가능하게 됨은 자명한 일. 백범은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광복 조국의 이곳저곳을 순회하며 “친일파 청산을 통한 민족정기의 수립이야말로 당면한 최대 과제이며, 조국의 분단 저지 운동은 새로운 독립운동이다.”라고 역설하였다. 백범의 ‘민족정기’ 확립의 꿈은 논란은 있지만 남한보다 북한에서 상당부분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를 내세워 민족적 자존감이자 남측에 대한 정신적 우월성으로 강조해오고 있기도 하다. 주변의 역사적 환경이 이러하건만 방성대곡할 일이 친일반민족분자의 후손과 헌법적 정의를 외면하는 ‘일부’ 법관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친일반민족분자의 재산권 반환 청구 소송’과 원고 승소 판결이 그것이다. 대명천지에 이 무슨 후안무치한 소행이란 말인가! 이 모든 일들이 ‘민족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헌정사 뒤안에 남아 있는 부끄럽고 추악한 악취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민족정기’의 소독제로 말끔하게 청산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뒤따라 오는 후손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분자들의 후손들은 ‘공수래공수거’인 소풍 같은 인생길에서 두고 떠날 재물에 눈이 어두워 대를 이어 ‘반민족분자’로 낙인찍히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법부는 후안무치한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하는 소송을 처리함에 있어서 최고 규범인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 때 헌법은 “성문의 헌법 조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정기’에 터잡은 헌법적 정의 구현을 내용으로 하는 ‘실질적 헌법’을 의미한다.”는 국내외 헌법재판의 판례를 명심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의무를 소홀히하여 친일파 후손들의 손을 들어 주는 법관은 마땅히 반헌법, 반민족적 법관으로 간주하여 국회는 ‘탄핵소추’를, 정의로운 국민들은 해당 법관에 대한 ‘범국민 파면청원’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 모두가 명심할 백범의 유언, 귀담아 실천했더라면 민족사의 획기적 전환을 도모할 수 있었을 유언이 있으니 “현실이냐 비현실이냐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관건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홍원식 원광대 통일헌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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