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한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서한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740
  • 법원 “새터민, 남한서 재혼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새터민)들이 북한에 두고온 배우자와 이혼하고 남한에서 재혼할 수 있도록 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 가정법원 가사8단독 이헌영 판사는 북한의 배우자에 대한 새터민 13명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였다고 22일 밝혔다. 새터민들의 이혼은 북한을 법률상 관할로 볼 수 있는지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최근 개정되면서 새터민들이 북한의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의 개정 취지와 원고가 북한을 이탈하게 된 경위, 배우자가 남한에 거주하는지 여부가 불명확한 점, 남북이 나뉘어 주민 사이의 왕래나 서신 교환이 자유롭지 못한 현재 상태가 가까운 장래에 해소될 개연성이 크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혼인관계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북한에 두고 온 배우자와의 이혼을 가능케 하는 이번 첫 판결로 4월 말 현재 가정법원에 접수돼 있는 429건의 새터민 이혼 소송 처리가 빨라지게 된 것은 물론 유사한 이혼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박노해 시인의 눈을 통해 본 레바논

    작명자의 권력은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그 대상의 본질을 규정해 버린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가 헤즈볼라를 ‘무장테러조직’이라 부르는 순간, 헤즈볼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평화의 파괴자로 굳어졌다. 레바논인들이 헤즈볼라를 ‘평화와 승리의 상징’으로 여기든, 조직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레바논의 체 게바라’로 평가하든 상관없다. 시인 박노해는 헤즈볼라를 다시 부른다. 헤즈볼라는 35명의 국회의원과 2명의 장관을 배출한 ‘합법정당’이고 ‘레바논 최대의 대중정당’이다. 일자리 창출과 국민 복지를 중시하는 정치가이고,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존경받는 기업의 경영자다. 성숙한 국제감각을 가진 레바논 ‘정부 안의 정부’이자 ‘레바논 유일의 정부’다. 지난해 7월13일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자국 병사 2명을 헤즈볼라가 납치했다는 이유였다. 박노해는 레바논으로 날아갔고, 폐허의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울고 있는 레바논인들의 삶을 기록했다. 박노해의 글과 사진으로 꾸며진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느린걸음 펴냄)엔 한국 언론이 접근하지 못했던 헤즈볼라의 면면이 담겨 있다. 2006년 8월, 박노해가 물었다.“쿠리아가 UN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전투병 파병요청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 나와프 무사위 국제국장이 대답했다.“레바논 땅에서 레바논 민중과 헤즈볼라의 평화의지를 거스르며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그 어떤 군대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2007년 7월19일, 한국은 레바논으로 군대를 파병한다. 한국군 파병에 대한 헤즈볼라 지도부의 답변은 참혹한 회고이자 끔찍한 예견이다. 이라크에서 사망한 김선일씨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윤장호 병장을 회고하게 만들고, 또 다른 김선일과 윤장호를 예견하게 만든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다. 고통과 슬픔은 전쟁 후부터 본격화되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 속에서 매일매일 죽는다. 박노해는 “전쟁은 인간성의 좌표를 드러내고 우리의 인간성을 끊임없이 비춘다.”고 말한다. 레바논의 참혹함을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군대까지 보내는 잔혹한 ‘국가적’ 인간성은 ‘평화유지’란 이름으로 은폐되고 미화된다.“쿠리아 좌누비아?(남한) 쿠리아 샤말리아?(북한)”라 묻는 레바논인들에게, 박노해는 ‘좌누비아’라 답하며 그들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 전쟁은 불평등하고, 폭탄에도 눈이 있다. 박노해는 “이스라엘 폭탄은 참으로 정밀하게 기독교 마을과 부잣집들을 비껴갔다.”면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은 가난한 레바논 남부 무슬림의 집이었다.”고 말한다. 폭탄의 상흔 너머 보이는 부촌의 평화스러운 모습에 박노해는 “이것은 이스라엘의 선별적 자비인가, 레바논의 모순인가.”라며 자문한다. 열 살도 채 안 된 레바논 아이들의 입에서 ‘성전’‘순교’‘영원한 승리’란 말이 한국 아이들이 ‘스타크래프트’ 게임용어 읊듯 무심하게 흘러나오게 하는 전쟁. 박노해는 시로써 외친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1만 3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北, 서해침범 경고

    북한 해군사령부가 21일 ‘제3차 서해해전(교전)’이란 표현을 섞어가며 남한 해군이 북측 영해를 침범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우리 해군은 영해 침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무엇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방북 시점에 맞춰 북측이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해군사령부 대변인은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5월 초부터 남한 해군함정들의 북측 영해 침범행위가 확대돼 6월 중순쯤에는 하루 평균 7∼8차례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3의 서해해전, 나아가 해전의 범위를 벗어난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는 불씨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탈북자 출신 1호 은행원

    “북한은 남한과는 달리 금융시스템이 거의 전무합니다. 북쪽 실정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해 북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제 역할이겠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 특히 금융 공기업은 거의 모든 취업 준비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올해 기업은행 공채에서 새터민(탈북자) 출신이 입행해 화재다. 새터민 은행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드림’의 주인공은 조현성(26)씨. 조씨가 탈북을 감행한 것은 지난 1998년.1년 전 국경을 넘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겨우 18세의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두만강을 건넜다.“아버지는 탈출경로를 알아보겠다고 길을 나섰지만 소식이 끊겼어요. 저 역시 아버지를 따라 국경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체포됐고,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탈출했죠. 다행히 아버지를 만나 이듬해 11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까지 온 가족이 남쪽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3년이나 더 필요했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한국은 ‘따뜻한 남쪽’이 아니었다.“모든 것이 두려웠던” 곳이었다. 탈북 당시 조씨는 고등중학교 2학년(고교 2년). 공부밖에 매달릴 데가 없었다. 다행히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교과과정을 뛰어넘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99년 8월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그해 11월 연세대 경제학과에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조씨는 “살아왔던 곳과 완전히 다른 직업과 환경을 선택하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도전 정신과 열정이 힘이 된다.”면서 “북한 실정에 맞는 상품을 개발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금융인이 되는 게 목표”라며 밝게 웃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인평축구’ 추진

    ‘인천유나이티드FC’가 평양에서 북한 ‘천리마축구단’과 친선경기를 가질 수 있을까.20일 인천유나이티드와 인천시 등에 따르면 시와 시민구단인 인천유나이티드, 남북 민간단체 등이 공동으로 올 하반기 평양에서 평양시체육단 소속의 천리마축구단과 친선 축구대회를 갖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 시합이 성사되면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중단됐던 인천시의 대북교류사업에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또 남한 프로축구단이 북한에서 경기를 치르는 첫 사례가 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지자체 차원의 남북교류를 위해 남북 축구경기를 추진하고 있으나 시합 일정이나 조건 등 구체적 사항에 대해서는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은 2005년 6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안상수 시장이 직항로를 이용해 평양을 방문해 아시안게임 남북한 공동유치를 추진키로 합의하는 등 체육·문화 방면 남북 교류사업을 활발하게 진행시켜 왔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성남시 먹거리 브랜드로

    ‘남한산성 닭죽’과 ‘여수동 갈매기살’이 성남시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브랜드화된다. 성남시는 18일 향토음식업자와 대학교수, 시의원, 관계 공무원 등 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특화 브랜드음식 상표개발 보고회’를 갖고 갈매기살과 닭죽 브랜드화를 위한 중간 용역결과를 발표했다. 용역결과 이들 음식에 대한 브랜드화를 위해서는 네이밍과 기본디자인, 캐릭터, 현수막 등을 음식특성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제시됐다. 시는 이들 음식에 대한 상표를 우선 확정한 뒤 업소 밀집지역 인근 가로등과 펜스, 아치 등에 갈매기살과 닭죽의 이미지를 표현할 예정이다. 식품에 대한 표준화작업도 병행,20일에는 한국식품연구원에 연구 의뢰한 닭죽과 갈매기살의 표준화와 다양한 요리 및 즉석식품 개발 등과 관련해 세미나를 개최한다. 성남을 대표하는 갈매기살 단지는 시 태동시기인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여수동 일대에 자리잡아 명성을 이어왔고 남한산성의 명물인 닭죽촌도 성남 구시가지를 관통하는 지하철8호선 산성역 인근에 자리잡아 30여년간 전통을 지켜 오고 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아코디언으로 제2의 인생 즐기는 이계익 전 교통장관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아코디언으로 제2의 인생 즐기는 이계익 전 교통장관

    # 취미:누드 크로키, 아코디언 연주 # 별명:도깨비 # 특이사항:매년 마라톤 풀코스 2∼3회 완주(최고 기록 3시간40분), 지난 4월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이끌고 해발 5400m까지 오름. # 희망:실버 아코디언연주단 창단, 실버 마라톤클럽 조직.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음. 사회활동에서 떠난 후에는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나 고민하는 매우 중요한 인생의 화두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잘 안 나오거든 다음을 주목해 보자. #문제:현역 시절을 ‘국영수’로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는? #답:‘예체능’이다. 맞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철조망을 통과하기 위해 국어, 영어, 수학이 필요했겠지만 은퇴 후에는 예체능으로 재무장해야 인생을 90세까지 건강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여유있고 괜찮게 늙어가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 한 사람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바로 이계익(70) 전 교통부장관.1993년 8월 우리나라 고속철 차량 선정 때 최종 도장을 찍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 만나는 사람에게 “장관될 때까지 정말이지 ‘국영수’로 많은 관문을 통과했다.”면서 “이제는 예체능이야.”를 항상 강조한다.어느날 문득 그에게 준비하지 못한 ‘은퇴’가 찾아왔지만 곧바로 ‘국영수’를 버리고 ‘예체능’을 택했다. 적어도 비참하게 늙지는 않을 방법이라고 자신한다.그도 그럴 것이 아코디언 연주를 배우고 누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하는 노랫말을 중얼거리며 뛰었다. 또 일주일에 한번씩 젊은 여인의 누드를 보면서 스케치북에 정성껏 옮기다보니 개인전을 두어번은 열 수 있을 정도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들이 쌓였다. 정신·신체가 10년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가 맑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또 다리가 튼실하니 충분히 그럴만도 할 터. 지난주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 이 전 장관의 자택을 찾았을 때에도 그는 아코디언으로 ‘눈물젖은 두만강’을 연주하고 있었다.“악보도 없이….”라고 말을 건네자 “운전할 때 브레이크를 쳐다보고 밟느냐. 운전하다 보면 엔진도 보이고 하는 것이지….”라며 웃는다. 근황을 묻자, 소문대로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 반포동 화실에 나가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를 감상한다고 답했다. 회원이 15명으로 홍익대 미대 출신 전문가들과 자신처럼 아마추어도 몇명 포함돼 있단다.또 매주 토요일 아침 9시에 친구들과 함께 인천 강화도나, 경기 양평·장호원 등으로 풍경화를 캔버스에 담으러 떠난다. 아울러 일주일에 2,3회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마련한 아코디언 연주공간에 가서 무료로 아코디언을 가르쳐 준다. 교통부장관을 그만둔 직후 독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악기점에서 아코디언을 구입, 독학으로 배운 실력이 어느새 강사 수준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강사 노릇도 했다. 아코디언 연주시범을 보이며 “혼자 할 수 있는 유일한 오케스트라가 바로 아코디언”이라는 예찬론을 폈다. 그는 은퇴하면서 몇 가지 생활신조를 정했다. 남한테 욕 안 하기, 일주일에 서점 세번 들르기, 지하철 타면 서서 가기, 외출할 때 수염 깎고 넥타이 매기, 걸어서 가기 등이다. “양보하고 즐겁게 천천히 사는 방법을 터득했지요.나이들면 대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게 되지요. 다 허깨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는 현역시절 선생, 관료, 기자 등 안 해본 것이 없다면서 ‘그때’를 잊고 앞으로 90세까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중요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지나온 시절이 문득 떠올랐을까.6·25때 아픈 기억을 회고한다. 그러니까 배재중학 1학년때 6·25를 만나 천안집에서 가족과 함께 피란을 준비 중이었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 아버지를 보자 총을 겨눴다. 마침 비오는 날이어서 아버지는 군용 우의를 입고 있었다. 군인들은 이런 차림의 아버지를 인민군으로 오인, 어린 이계익 등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을 두발 발사했다. 이를 본 여동생은 충격을 받아 실신했고,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1951년 3월 어머니는 동생 하나를 더 낳았는데 몇 개월 안돼 굶어 죽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집을 훌쩍 떠나버렸다. 중학 1년생인 이계익이 동생 둘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다. 다행히 먼 친척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천안시내 한복판에 좌판을 깔고 달러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 의정부 25사단 위병소까지 갔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고 미군들이 자꾸 쫓아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처없이 걷다가 소양강가에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이때 강가에 떠 있는 배 한 척을 문득 봤다.20인승 전마선, 주인은 70대 노인이었다.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뱃사공을 하다 보면 어머니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인한테 통사정을 했다. 이후 하루 종일 강을 건너는 ‘노젓는 뱃사공’이 됐다. 뱃삯으로 미군한테는 왕복 1달러, 민간인은 담배 1갑을 받았다. 사공 이계익은 전쟁의 포화 속에 ‘백마강 달밤에∼’를 부르며 피곤을 달랬다. 그러기를 3개월여, 이번에는 어머니가 어느 산골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소문 끝에 어머니와 상봉했으나 새 살림을 차린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그때가 1952년 겨울. 이후 천안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양정중학 3학년에 편입한 뒤 양정고를 졸업하면서 새로운 인생길을 걷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실버가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버 아코디언 악단, 또 실버 마라톤클럽을 만들 생각입니다.인간의 DNA는 꾀가 많거든요. 열심히 하는 주인한테 그 DNA는 꼼짝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라톤도 해보니까 되고, 그림과 아코디언도 해보니까 다 됩디다.노인들이 방안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라콤파르시타를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에 좋습니까.”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경기도 평택 출생 ▲56년 양정고 졸업 ▲61년 서울대문리대 철학과 졸업 ▲63∼75년 동아일보기자 ▲78∼81년 럭키금성그룹 이사 ▲81년 KBS해설주간 ▲86∼89년 한국관광공사 사장 ▲93년 교통부장관 ▲99년 문화일보 부사장 ▲2000년 디지털타임스 사장 ▲현재 호서대 객원교수 #주요 저서=소양강의 뱃사공(정우사,1978년), 이계익의 3분경제(한국방송공사,1985년), 세계화에 속고 달러에 울고(정우사,1998년)
  • [사설] 북의 ‘2·13 합의’ 이행 착수 주목한다

    북한이 그제 국제원자력기구(IAEA)실무대표단 초청의사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방코델타아시아(BDA)내에 묶여있던 북한자금의 송금이 완료되는 시점에 임박해 나온 발표다. 북한이 ‘2·13합의’ 실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갈 뜻을 내비친 것으로 환영한다. 아울러 이번 발표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비핵화 의무를 신속하게 이행하는 진정한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정부 당국자의 지적처럼 북한의 이번 발표가 2·13합의 실천의 착수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BDA해결 시점에 맞춰 비핵화 의무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투명하고, 성의있는 자세가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IAEA감시단 초청, 영변원자로 가동 중단, 폐쇄, 봉인 등 초기이행 절차를 착실하게 진행하길 당부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제공하기로 한 중유 5만t 실무 협의나 쌀 지원 등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또 초기조치 이행과 더불어 6자회담 재개와 핵시설 불능화 조치 논의 등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북의 우라늄 농축문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삭제, 적성국 교역법 적용해제 등 까다로운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남·북이나 6자회담국간 최선을 다하면 진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번 발표 시점에 평양에서 열린 6·15 민족대단합대회가 북측의 억지 주장으로 파행을 겪은 것은 유감이다. 북측은 한나라당 의원은 행사장 주석단에 앉지 못하게 하고, 취재 방해 등 행사취지를 무색케 하는 행태를 보였다. 남북관계개선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남한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북핵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은 수레의 두바퀴처럼 함께 가야 할 민족 문제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한나라 두 캠프 ‘대운하 공방’ 2라운드

    한나라 두 캠프 ‘대운하 공방’ 2라운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는 17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언론인을 상대로 자신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까지 하고 나선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검증 공세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 후보 측은 또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대운하와 관련한 오해에 대해 수동적인 방어만 해왔으나 이제부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대운하가 건설되면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흐르는 자연물길이 이어지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수변생태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운하 건설에 따른 ▲수자원 확보 ▲물류비 절감과 대기오염 훼손 방지 ▲내륙항구 도시 개발 ▲관광·레저단지 개발 ▲일자리 70만개 창출 등의 5대 효과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후보는 대운하를 반대하는 측을 겨냥해 “국지적이고 아주 작은 문제를 놓고 BC비율(비용편익분석 비율,benefit-cost)이 어떻느니, 생태를 파괴하느니 하면서 사실과 다르고 매우 마이크로한 문제를 갖고 고민한다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없다.”며 “국민은 동의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너무 강하다.”고 반박했다. 수질오염 논란과 식수공급 대책에 대해 이 후보는 “대운하가 건설되면 수량이 풍부해지고 수질이 개선되면서 선진국형 취수 방식인 강변여과수, 인공함양수 방식 등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朴“경제효과 여전히 의문”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경선후보 캠프의 유승민 의원은 17일 이명박 후보 기자회견 2시간 만에 대운하의 허실을 짚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의원은 “이 후보측에서 수질관리 대책을 보강한 것은 운하와 수질오염의 필연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하지만 식수원 오염사고 대책에 대해서는 계속 묵묵부답이고, 바지선 기름유출 오염사고 등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측이 새롭게 제시한 강변여과수 이용 문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수치를 이용해 반박했다. 유 의원은 “현재 수도권의 1일 급수량 1300만t을 팔당과 잠실수중보 지역에서 사용하는데, 이는 북한강보다 남한강의 수량이 더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전체 취수원의 87%를 하천수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 많은 양을 강변여과수로 대체하려면 시설을 몇 개나 건설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운하를 굳이 이용할 화주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운하 건설에 따른 경제효과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운하 관련 검증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했던 그는 이날 이 후보의 기자회견에 오히려 더 자신감을 얻은 듯했다. 유 의원은 “행정복합도시특별법 때문에 당이 분열될 위기에 처했는데, 지금 이명박 후보 캠프에 속해서 경부운하의 인질이 된 의원들께 말씀드린다.”면서 “운하는 정책적인 사항으로 국민의 안전과 환경을 생각해 결정하실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말을 끝맺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씨줄날줄] 이인모/이목희 논설위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오랜 야당 생활에도 불구, 타고난 보수파였다. 그런 그가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폭탄선언을 했다.“어떤 동맹도 민족을 우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민정부 첫 통일부총리였던 한완상씨와 교육문화수석 김정남씨의 합작품이었다. 민족우선론은 지금 북한이 강력하게 내세우는 주장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보다 한발 나아간 대북 화해론이었다. YS는 집권초 비전향장기수의 대표격인 이인모씨의 전격 북송으로 민족우선론을 실천했다. 이씨를 돌려받은 북한이 평화쪽으로 한발만 움직였어도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본다.DJ와 달리 YS는 화끈했고, 이념적 덧칠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행보가 자유로웠다.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6·15 공동선언을 넘어서는 조치가 YS때 벌써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다음의 DJ 집권 때는 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것이다. 북한은 이씨 송환이란 호의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뭉개 버렸다. 열 받은 YS는 친북좌파 비난에 시달리던 한완상·김정남씨를 경질했다. 이어 김일성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마저 무산되자 YS의 대북 불신은 극에 달했다. 입만 열면 “고장난 비행기인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남측 보수파와 북한의 악연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할 뜻을 공식 천명했다. 하지만 북한에 한나라당은 여전히 상종못할 세력이다. 이번에는 평양 6·15축전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귀빈석에 앉지 못하게 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측 보수파와 잘 지내려는 제스처만 써도 전체 분위기가 바뀔 텐데, 얻을 것 없는 남남(南南) 갈등에 집착하는 북측 전략이 개탄스럽다. 이인모씨가 그제 굴곡많은 생을 마감했다. 이씨 사망을 계기로 북측이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친북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남한내 보수파와 대화하고 이해를 넓히는 게 북측에 이익이 될 것이다. 평양 당국은 YS정권의 마음을 잡을 기회를 놓쳐 남북관계를 5년 이상 후퇴시킨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서울광장] 아직도 ‘타는 목마름’ 인가/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직도 ‘타는 목마름’ 인가/구본영 논설위원

    삼전도의 치욕을 앞둔 산성에서도 ‘말의 성찬(盛饌)’은 일상사였나 보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이를 “말(言)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고 표현했다. 백성들은 배를 곯고 있는데, 왕과 중신들은 척화론이니, 주화론이니 끝없는 설전만 벌이지 않았던가. 청 태종 앞에서 인조가 세번 절하고 머리를 땅에 아홉번 찧는 수모를 당하기 직전까지도 말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의 험구(險口)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청와대, 여야가 뒤엉켜 피아조차 가리기 어렵다. 오죽하면 고은 시인이 “입만 있고, 귀는 없다.”고 대선정국을 개탄했을까.‘말 먼지’ 자욱한 난전의 최전선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 있다. 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명박 박근혜 등 야권 주자뿐만 아니라 범여권 주자들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 서슬에 놀란 듯 고건 정운찬 김근태는 벌써 ‘낙마’했다. 100년 정당이 될 거라고 큰소리 치던 열린우리당이 헤쳐모여 방식을 놓고 해체파와 사수파로 나뉘어 막가는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참모들끼리 ‘살생부 공방’을 벌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주자 진영간 설전도 가관이다. 한쪽이 후보검증문제로 여권과의 내통 의혹을 제기하면 다른 쪽에서 “미쳐 날뛴다.”고 치받는다. 정치는 본시 말로 이뤄지는 게 본질적 속성이긴 하다. 문제는 독설과 야유만 난무할 뿐 책임지려는 정치 주체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원광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자리에서 “참여정부 실패론은 중상모략”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민중을 속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참여정부와 국정 책임을 공유해야 할 열린우리당이 여권 지지도가 바닥에 이르자 통합신당을 명분으로 간판을 내리겠단다. 하지만 책임을 피하려는 위장폐업임은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헌신과 희생이 없이 ‘네탓’만 하는 정치에 누가 감동하겠는가.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도 ‘좌파 정권 10년 종식’을 외치지만, 그것만으로 유권자들을 사로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왜 야권이 두 차례나 패배했는지에 대한 성찰, 부패했던 보수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지 않는 한 현 지지율도 거품일 수 있다. 두 주자 모두 지지율이 범여권 주자들의 그것을 합친 것보다 높은 데도 정작 후보캠프에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게 그 방증이다. 혹자는 말한다. 할 말·안 할 말이 마구 분출되는 것, 그 자체가 권위주의가 퇴조한 증좌라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안착 단계”라고 주장한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이미 정착됐고, 문제가 있다면 일부 정치 주체들의 빗나간 정치 행위일 뿐이란 얘기다. 과연 그럴까. 정치무대의 주역들이 책임없는, 비타협적 자기 주장만 하는 한 교과서적 민주주의의 갈 길은 멀다는 생각이다.6월 항쟁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넥타이 부대’를 비롯한 시민이었다. 그 수혜를 입고 기득권자가 된 일부 386세력이 작금의 국정난맥에 대해 언제 ‘내탓이오’를 외쳤던가. 70년대, 시인 김지하는 민주화를 향한 애끓는 갈망을 ‘타는 목마름으로’ 절규했다. 그의 시구에서처럼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도, 돌을 던지면 최루탄으로 막는 독재정권도 이젠 없다. 하지만, 책임정치와 타협의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는 한 이 땅에서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일 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부고] 무용계 원로 송범씨 별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송범 한국무용협회 고문이 15일 오전 4시30분 캐나다 토론토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82세. 충북 청주 태생인 고인은 양정중학교 재학시절 최승희의 춤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무용계에 입문한 이후 기라성 같은 춤꾼들을 키워낸 한국무용계의 원로.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의사의 꿈을 접고 최승희의 제자였던 장추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최승희류의 현대무용·한국무용·발레·남방무용을 두루 섭렵했다. 1948년 데뷔작 ‘습작’을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까지 50여편의 작품을 안무·출연했으며, 전통 춤을 서양식 무대로 옮겨 무대화하는가 하면 전통 연희를 종합해 서양 발레처럼 만드는 대형 무용극(舞踊劇)을 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수호 양성옥 손병우 김향금 이문옥 윤성주를 비롯해 한국무용계를 움직여온 대표적 춤꾼들이 모두 그를 사사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중앙대 교수, 국립무용단장을 지낸 뒤 지난 1983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해왔으며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무용공로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김옥희(75) 여사와 아들 윤상(49), 윤호(47)씨 등 1남1녀가 있다. 장례는 한국무용협회장으로 거행되며 영결식은 23일 오전 10시 경기도 여주 남한강 공원묘지에서 있다. 분향소는 서울 예총회관 1층에 마련됐다.(02)744-8066.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한나라 후보들 안보정책 제시

    한나라 후보들 안보정책 제시

    6·15 7돌을 하루 앞둔 14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잇따라 통일·외교·안보 분야 정책을 발표했다. 이 분야 토론회는 오는 19일 대전에서 열린다. 외교·안보 분야 정책에서는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원희룡·홍준표·고진화 후보에 비해 약간 더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이 후보와 박 후보는 둘 다 한·미동맹 강화를 정책기조로 삼았다. 두 후보는 또 차기정부에서 전시작통권 환수 시기 등에 대해 재협상을 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날 직접 정책발표를 한 이 후보는 ‘MB독트린’이라는 말로 자신의 정책을 요약했다. 이어 ‘한국 외교안보의 창조적 재건을 위한 7대 과제와 원칙’을 제안했다.MB독트린의 핵심은 ‘비핵·개방·3000 구상’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고 북한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 올리겠다는 구상이다.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구상은 ▲북한에 연 300만 달러 이상 수출기업을 100개 육성하고 ▲산업인력 30만명을 양성하고 ▲40조원 규모의 국제협력자금을 조성하고 ▲서울∼신의주간 고속도로를 건설해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집권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5년 안에 3만 달러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하다고 이 후보는 설명했다. 박 후보는 ‘한반도 3단계 평화통일론’을 큰 줄기로 삼았다. 안보·군사동맹을 넘어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신안보선언’을 내세웠다. 박 후보는 이 캠프측 인사로 분류되던 안보통 송영선 의원을 안보통일정책단장으로 영입, 정책에 대한 막판 손질작업을 하고 있다. 3단계 평화통일론은 북핵 완전제거와 군사적 대립구조를 해소하는 평화정착 단계에서 경제통일 단계로 나아간 다음에 3단계로 정치통일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핵 협상의 3원칙도 제시했다. 북측의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완전 폐기, 상호주의에 따른 당근과 채찍의 병행사용,6자회담 당사국들간 철저한 공조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기존 한나라당 입장에 비해 뚜렷한 진보색채를 드러냈다. 홍 후보는 남북경제협력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 정경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는 대북포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정부예산의 1%까지 남북경협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고 후보는 북한과 남한의 접경지역을 공동개발하고 교류를 늘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저기, 눈빛 푸른 그 사람(KBS2 밤 12시45분) 소설 ‘남한산성’으로 다시 한 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소설가 김훈씨가 낭독무대에 선다. 가수 양희은씨도 출연한다. 김씨는 젊었을 때는 양씨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양씨는 김씨가 직접 신청한 ‘한계령’을 들려주고, 두 사람이 ‘자전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일요일 방콕의 한 초등학교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아보겠다는 태국인들이다. 한국에 오기 위해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은 ‘한국어 능력시험’이다. 태국정부는 한국행을 원하는 태국 노동자가 늘고 있으며, 이는 양국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의(EBS 오후 10시50분) 2002년 의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학술상 본상에는 이춘기 교수, 말례재단상에는 이춘성 교수였다. 똑같이 척추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두 사람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친형제이다. 동반자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의 이춘기 교수와 서울아산병원의 이춘성 교수를 만나본다. ●쩐의 전쟁(SBS 오후 9시55분) 춤을 추자며 마동포를 유인한 주희는 마동포가 한껏 기분을 내고는 가보라고 하자 조금만 더 추자고 매달린다. 주희를 밀어낸 마동포는 돈이 잘 있는지 궁금해 비밀창고로 내려가려 하고 문자메시지를 받은 나라는 긴장한다. 금고에서 도장을 발견한 마동포는 돈을 노리는 자가 있음을 알고 몰래카메라를 구입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서경은 진아와 만나던 중 세영과 마주치고, 당황한 진아는 해명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세영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며 차갑게 돌아선다. 건우는 세영에게 5억원을 요구하고, 그 돈만 준다면 각서를 쓰고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한다. 서경은 태현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 시작하자며 매달린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혜경은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은주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상현에 큰 위안을 받고, 제대로 상현을 보지 못했던 예전의 자신도 반성한다. 마음을 결정한 상현이 가족들에게 은주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을 비치자 명자는 은주라면 허락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상현은 은주가 임신했다고 한다.
  • [사설] 6·15 남북화해 정신 되살려야

    내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화해·협력은 다짐한 만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북핵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아직 멀어 보인다. 긴장은 남북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선의 해를 맞아 6·15를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세대결 또한 뜨겁다. 남북, 남남 갈등이 모두 해소돼야 한민족의 하나됨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7년 동안 남북간 인적 교류는 그전 7년에 비해 24.6배나 늘어났다. 남북간 직항로가 열렸고,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경협도 3배 가까이 훌쩍 뛰었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남북 경협 확대와 쌀·비료 등 대북 지원이 김정일 정권을 연명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퍼주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했음에도 남한 사회·경제에 큰 영향이 없는 배경에는 6·15 선언이 있다고 본다. 북한 정권이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도록 묶어 두기 위해서는 다소의 ‘평화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6·15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6·15 정신을 이어서 남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좌파 친북이라고 색깔론으로 덧칠하지 말아야 한다. 역으로 남북 화해가 자신의 전유물인 양 주장하며 상대 정파를 ‘전쟁세력’으로 몰아붙여선 안 된다. 국민들은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정치선동에 휘둘려 대선에서 표를 던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 북한은 남남 갈등을 조장해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길 바란다. 특히 6·15 정신을 살려 반드시 핵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2·13 합의 이행을 지연시켜온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은 2·13 합의를 즉시 실천하고 6자회담을 통한 추가 핵폐기 절차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이번 6월은 남북간에도, 또 남측 내부에서도 평화·화해가 앞서는 달이 되어야 한다.
  • [시론] 쌀 지원 중단은 자충수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쌀 지원 중단은 자충수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2·13합의’의 이행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의 송금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때문에 급물살을 탈 듯하던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남북장관급회담은 다음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사실상 결렬된 상태로,‘2·13합의’ 이행과 대북 쌀 지원을 연계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가져온 결과다. 그런데 ‘2·13합의’ 이행과 대북 쌀 지원을 연계한 정부의 단견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는 청와대와 통일외교정책 책임자들의 안일한 정세 인식과 안목 부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우선 쌀 지원을 ‘2·13합의’와 연계하고 있는 정부의 논리와 주장 자체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쌀 지원을 안 한다고 해서,BDA문제가 술술 풀려가고 북한이 굴복해 핵시설들을 폐쇄하고 IAEA의 사찰을 수용한단 말인가.BDA 송금문제의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데는 미국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BDA문제는 미 정부가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풀어야 한다. 미 정부의 전향적 자세와 결단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미 재무부 내 일부 강경파들이 미 국내법을 들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미 정부 스스로 이런 문제 하나 내부적으론 조정하거나 해결하지 못한다면,‘2·13합의’ 이행은 물론 북·미협상과정에서 도출된 보다 중요하고 난해한 합의사항들을 앞으로 어떻게 이행할지 의문이다. 강경파들은 사사건건 국내법체제와 정책상의 원칙을 내세워 합의 이행을 방해할 게 뻔하다. 더구나 ‘쌀 지원 카드’가 북한에 대한 압력수단이 되지 못하고, 정책적 유용성도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때도 쌀지원을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은 물론, 남북관계의 손상과 이산가족상봉 중단을 가져왔을 뿐이다. 이처럼 실패한 카드를 다시 집어든 것은 감정적인 화풀이 수준이거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밖에 안 된다. 또한 쌀 지원과 ‘2·13합의’의 연계는 스스로 손발을 묶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권과 발언권을 상실하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BDA문제의 매듭이 풀린다면, 북·미관계 정상화 협상이 본격화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다. 이런 ‘새판짜기’ 과정에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남북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남북간에 공고한 대화채널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한국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끌려 다닌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굳이 남한과의 대화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다. 미국과의 양자협상에만 진력할 것이다. 게다가 쌀 지원과 같은 인도적 문제를 정치군사문제와 연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요구대로 “남북관계의 진전은 6자회담보다 반 발짝 뒤에서 가야” 하는 게 아니라, 반 발짝 앞서 나가 6자회담을 끌어주어야 한다. 북·미간 적대관계 청산과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약속한 2000년 10월의 ‘북·미공동코뮈니케’는 그보다 앞서 6월에 있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이다.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되면 미국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교훈이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남과 북이 공동으로 복원 불사에 나서 2005년 10월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 놓은 고려 사찰 개성 영통사(개성시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왕씨의 발상지이자,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35년간 주석하며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고려 현종 18년(1027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 융성했으나 16세기쯤 소실되어 이름만 전하던 사찰. 천태종 개창자인 대각국사 비와 당간지주, 그리고 세 개의 탑만 덩그맣게 남아있던 것을 남북이 힘을 모아 29개의 전각을 원 모습대로 세워놓았다.500여년간 불교계에선 그저 ‘꿈의 성지’로 남아있었던 폐사 영통사. 하지만 이젠 웅장한 제 모습을 어엿하게 되찾아 일반 신도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 중기의 기록들에 따르면 고려시대 불교가 한창 성할 무렵 개성 성내에는 300여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만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태조 왕건 자신도 고려를 세운 뒤 궁궐 주변과 송악산 기슭에 25개의 절을 지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 가운데 갓을 쓴 5개의 산 봉우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관산(五冠山) 아래, 영통사가 자리잡은 영통골은 예로부터 절경과 길지로 이름 높았다. ‘큰 골짜기’란 뜻의 마하갑으로 통했던 영통골에서 왕건의 할아버지가 출생했다. 승려가 된 증조 할아버지도 이곳에 작은 절을 짓고 살았는데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절을 중창해 이름을 숭복원이라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왕실은 숭복원을 왕의 원당으로 삼아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 왕륭과 태조 왕건, 문종, 인종, 명종 등 역대 왕의 초상을 모셔놓고 정기적으로 참배했다. 지금 영통사란 이름의 사찰은 고려 현종기인 1027년 그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왕실 사찰의 위상에 더해 영통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1세기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부터. 대각국사 의천은 이곳에서 35년간 주석하며 불교학설을 강의해 남북한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명찰로 키웠다. 1530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영통사의 온전한 모습이 등장하고 있지만 1671년 김창협의 ‘송도유람기’에 적힌 “영통사의 주요건물이 불 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6세기 중반 절이 소실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고려왕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인 1997년부터 북한 조선사회과학원과 일본 다이쇼(大正) 대학이 공동으로 발굴 작업을 벌였다. 이후 남한의 천태종이 50억원 상당의 기와 46만장, 단청 재료, 묘목 등을 제공해 1만 8000여평 부지에 고려양식의 원 사찰을 고스란히 되살려놓은 것이다. 형태는 옛 고려 사찰 그대로이지만 북한군이 상주하며 올려세운 전각들은 한결같이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절 앞에 서면 예사롭지 않은 대찰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주차장에 바로 붙여 조성한 큰 마당 서편에 선 높이 4.7m, 두 돌기둥 사이 폭 72㎝의 거대한 당간지주가 당시 영통사의 사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남한 사찰에선 흔한 일주문은 보이지 않는다. 일주문 격인 남문을 통해 절 안에 들면 거대한 회랑으로 나뉜 3개의 구역에 각각 들어앉은 전각들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서편 끝의 종루와 동편 모서리의 경루가 회랑으로 연결된 정문인 중문에 들어서면 양 옆의 삼층석탑, 가운데에 오층석탑을 거느린 보광원이 우뚝선 채 내려다보고 있다. 전통사찰의 대웅전격 전각으로 영통사에선 중심 건물.2층 구조의 지붕 아래 닫집을 만들어 그 아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모셨다. 보광원 뒤편에는 중각원과 숭복원이 차례로 앉았다. 중각원은 대각국사와 제자들이 공부를 하던 곳.‘고려사’에는 이곳에서 50여차례의 대규모 강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숭복원은 태조 왕건의 원당으로 썼던 곳으로 나중에 사찰을 찾는 왕의 숙소로도 사용되어 행궁이라 불린다. 회랑으로 사방을 막은 것을 볼 때 당시에도 사찰의 다른 공간과 경계를 철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보조원 구역을 들어가려면 동문을 통해야 한다. 동문 앞에는 그 유명한 대각국사비가 우뚝 섰다. 거북 받침과 바닥돌을 1개의 통돌로 만들었는데 비 높이가 4.32m나 된다. 앞면엔 어린 시절부터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의 대각국사 행적을 새겼고 뒷면에는 대각국사 제자 영근화상이 해서체로 쓴 묘실과 비명 내력인 사적기와 문도들의 이름이며 직명을 적은 제자 혜소의 글이 들어 있다. 보조원 뒤편에는 영통사와 관련있는 역대 고려 왕들의 초상을 모신 영영원이 서 있다. 사찰 뒤편 산 중턱엔 대각국사의 화상을 모신 경선원이 사찰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각국사는 이 곳에서 서쪽으로 4㎞ 떨어진 총지사에서 열반했는데 대각국사의 유언을 따른 제자들이 영통사에 잠시 법구를 안장했다가 다비한 다음 사리탑인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경선원 바로 앞에는 그 때 세운 부도가 그대로 서 있다. ‘송도제일루(松都第一樓)’라 쓰인 종루에서 회랑을 통해 동쪽 끝 경루에 올라서면 옛 시인이 쓴 시구가 눈에 든다. ‘오관산하고총림(五冠山下古叢林) 풍만누대녹수음(風滿樓臺綠樹陰) 경절진훤상한적(境絶塵喧常閒寂)’ ‘오관산 아래 총림이 섰으니/바람 가득한 누대에 푸른 나무 숲이 우거졌구나/빼어난 절경에 티끌마저 사라지니 이 얼마나 한가롭고 고요한가’ 남북이 합동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 차로 인해 수차례나 중단될 뻔했던 영통사 복원. 처음부터 수월치 않았지만 마침내 500년 염원을 풀어낸 큰 불사를 예견한 듯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kimus@seoul.co.kr ■ 대각국사 의천은 영통사는 고려 왕조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한 북한의 정책에 따라 500년 만에 복원되었지만 천태종찰을 되찾기 위한 남북한 불교계의 원력으로 되살아났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말할 나위 없이 그 가운데에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있다. 대각국사 의천은 태조 왕건의 4세손인 고려 11대 문종왕의 넷째 아들로 만월대 왕궁에서 태어난 인물. 여러 왕자들을 불러모은 문종이 당시 왕들도 자식을 승려로 만들었던 세태를 따라 “누가 승려가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의천이 서슴없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영통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10살 때 출가해 2년 뒤 승가에서 수여하는 높은 칭호인 ‘우세승통’에 올랐고 송나라의 이름난 사찰을 돌며 선지식인들과 만나 불교를 익혔다. 송나라에서 가져온 불경·경서 1000권 등을 모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 이 곳에서 1000여종 4769권에 달하는 불경을 출판한 게 ‘고려속장경’이다. 고려속장경은 원의 침략으로 1232년 불탔다. 의천은 어머니와 선종이 죽은 뒤 남쪽으로 유람해 합천 해인사에 은거하던 중 의천의 셋째 형인 숙종의 부름을 받아 흥왕사 주지로 있다가 개성 총지사에서 입적했다. 의천이 세운 천태종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전파되었으며 의천은 입적후 대각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대각국사비는 17대 왕 인종의 지시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 북한도 ‘고령화’ 가속

    북한의 총인구가 올해 7월을 기준으로 2330만 1725명이며, 평균 수명은 71.92세에 이른다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추산했다. 올들어 북한의 인구통계 자료가 나온 것은 처음으로, 특히 평균 수명이 기존 자료에 비해 많이 올라 눈길을 끈다. 9일 CIA 홈페이지(www.cia.gov)의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북한의 총인구는 2330만 1725명으로, 지난해(2311만 319명)보다 0.785%의 증가율을 보였다.2003년(2246만 6481명)과 2004년(2269만 7553명),2005년(2291만 2177명)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다. 연령 구조는 15∼64세(68.1%)와 65세 이상(8.5%)이 지난해보다 비중이 높아진 반면 0∼14세(23.3%)는 낮아져 남한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줬다. 통계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04년 기준 북한 총인구는 2270만명이었으며, 이중 65세 이상은 181만 2000명(8.0%)이었다. 평균 수명은 71.92세(남자 69.18세, 여자 74.80세)로,2003년(70.79세),2004년(71.08세),2005년(71.37세),2006년(71.65세)에 이어 상승했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유엔과 통계청,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밝힌 2005∼2010년 북한의 평균 수명인 64.5세(남자 61.7세, 여자 67.5세)보다 7세나 많은 것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맑은 물 밝은 세상] (7) ‘홍수 파수꾼’ 다목적댐

    [맑은 물 밝은 세상] (7) ‘홍수 파수꾼’ 다목적댐

    기상청은 이달 중순쯤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예보했다. 집중호우로 인한 물난리가 벌써부터 걱정된다. 특히 기상이변으로 인한 돌발·집중호우는 물관리(治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15개 다목적댐이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인해 다목적댐의 홍수조절능력에도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홍수 피해 예방은 다목적댐의 효율적인 물관리에 달려 있다. ●하천유량계수 400대1… 홍수·가뭄 되풀이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만 놓고 보면 홍수나 가뭄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인 데다 강수량이 여름철에 집중돼 수자원관리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전체 강수량의 3분의2 이상이 6∼9월 홍수기에 집중해 내린다. 특히 기상이변에 따른 돌발강우와 특정 지역에 편중된 집중호우로 엄청난 홍수피해를 입고 있다. 하루 강수량이 80㎜이상 되는 호우가 연평균 25회,150㎜이상 내리는 비도 7회가량 된다. 홍수 때 넘쳐나는 물을 관리하는 데 진땀을 빼는 이유다. 국토의 3분의2 이상이 산지이고 대부분의 중소 하천은 급류가 많다. 대부분의 하천 흐름 방향도 남서쪽으로 몰린다. 흙으로 덮인 층이 얇아 가둘 수 있는 물의 양도 한정돼 있다. 때문에 호우 때는 연례행사처럼 물난리를 겪는다. 비가 그치고 나면 전국이 가물어 대지가 타들어가는 가뭄 피해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하천의 물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유량변동계수(최대유량과 최소유량의 비율)로 증명된다. 영국 템스강은 유량변동계수가 8대1이다. 미국 미시시피강은 3대1, 이집트 나일강은 30대1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 하천의 유량계수(댐 수량조절 이전)는 300∼400대1이나 된다. 문태완 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 실장은 “기상예측의 불확실성, 수량의 계절적 편차와 하천 유량 변동폭이 커 수자원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 강우·홍수 피해↑… 다목적댐 중요성↑ 홍수피해도 엄청나다.2002년 8월 집중호우와 태풍 루사의 위력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강릉에는 하루 870.5㎜가 내렸다. 피해는 사망 209명, 실종 37명,6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입었고 8조원이 넘는 복구비를 쏟아부었다.2003년 태풍 매미도 큰 피해를 입혔다.118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실종됐다. 재산피해도 4조 2000억원이나 됐고 복구에 6조 5500억원이 투입됐다. 지난해 7월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도 62명 사망,1조 8000억원의 재산피해를 가져왔고 피해복구에만 3조 5125억원을 들여야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상기후 현상이 점차 증가한다는 데 있다.100년에 한번 내릴 수 있는 시간당 최다 강우량을 최근 10년 동안 6번이나 넘겼다. 피해액도 4.5배 증가했다. 최근의 기후 변화를 감안, 강우확률모델을 변경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도 물관리는 엉망이다. 예방 사업보다 복구비가 많은 비효율적인 투자를 되풀이하고 있다. 치수 관련 예산은 ‘치수사업비)홍수피해(감소추세))복구비’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예산은 ‘치수사업비(홍수피해(증가추세)(복구비’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상강우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정확한 기후 예측과 사전 예방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홍수 피해를 막는 효자는 뭐니뭐니해도 다목적댐이다.4대강 유역에는 15개의 다목적댐이 건설돼 있다. 하지만 다목적댐 건설은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 수몰지역 재산권 행사 등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벽에 부딪치고 있다. 전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치수사업에는 게을리하고 엉뚱하게 피해 복구에만 예산을 쏟아붓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우(愚)를 범하고 있다.”며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만약 충주댐이 없었더라면… 만약 충주댐이 없었더라면…. 지난해 7월 한강수계 다목적댐(소양강댐, 충주댐, 횡성댐)유역의 평균 강우량은 898.8㎜로 예년(322.3㎜)에 비해 3배 가까이 불어났다. 특히 7월10∼22일에 내린 비만 충주댐의 경우 619㎜로 예년대비 3.3배나 많았다.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강우량이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한강 유역은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남한강 여주지역과 한강하류의 범람이 우려됐다. 특히 남한강 충주댐(저수용량 27억 5000만㎥)은 계획홍수위(145m)를 불과 0.1m 남겨두고 있었지만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건설교통부 홍수통제소와 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 직원들 역시 피가 마르기 시작했다.24시간 15개 댐 수위를 분석하고 기상을 예측하느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댐 상류인 충북 단양 주민들은 마을이 물에 잠긴다며 빨리 수문을 열라고 아우성쳤다. 반면 댐 하류인 경기 여주 주민들로부터는 시내가 잠긴다며 수문을 닫으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물관리센터는 그러나 수문을 모두 열지 않았다. 댐 운영 이후 최대인 2만 2650㎥/s가 유입됐지만 40%수준인 9050㎥/s만 조절 방류했다. 결국 충주댐이 여주 시내 범람을 막고 서울 지역 홍수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문을 닫아둘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댐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지역 피해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센터는 잠수교 수위가 점차 내려가고 여주지역도 물이 빠진 것을 확인한 뒤 비로소 댐방류량을 3000㎥/s로 늘렸다. 댐은 곧 계획홍수위에서 0.9m의 여유를 보이면서 위급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충주댐으로 유입된 28억㎥의 물 가운데 13억㎥를 하류로 흘려 보내고,15억㎥를 가둠에 따라 하류 여주지점의 홍수위를 3.05m 낮출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충주댐 하류 하천변 378ha(100만평)의 침수를 막아 2조 1000억원의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정확한 홍수 조절은 수공이 자체 개발한 ‘K-water홍수분석모형’덕분에 가능했다. 댐 방류에 따른 하류 하천 수위와 홍수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자동 분석하는 첨단 기계다. 물관리센터 황필선 팀장은 “댐관리 전문가와 기상전문가, 전산·통계요원 50여명이 24시간 전국 15개 다목적댐과 용수댐을 지켜줘 홍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다목적댐 홍수관리 어떻게 우리나라 홍수관리는 원칙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이뤄진다. 전국 하천의 홍수관리를 총괄하는 곳은 4대강을 중심으로 설립·운영 중인 홍수통제소(Flood control office)다. 다목적댐은 대부분 하천의 상류에 건설되고 담수 용량이 커 홍수조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목적댐의 효과적인 홍수조절을 위해서는 댐 상·하류를 연계한 댐간, 댐∼하천간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에는 모두 15개의 다목적댐과 12개 용수전용댐이 있다. 댐 수량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한국수자원공사의 물관리센터다. 홍수 때 수문을 여닫는 의사 결정은 건설교통부 홍수통제소가 지휘한다. 홍수통제소의 의사결정은 그러나 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의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를 둔다. 물관리센터는 국내외 기상전문기관으로부터 각종 예보 기초자료를 실시간으로 받아 자체적으로 댐유역 국지 기상을 분석, 강우를 예측한다. 자동으로 지역별 댐별 홍수정보를 수집하고, 댐 상·하류 수위를 예측한 뒤 댐 방류 시기와 양을 정한다. 이를 홍수통제소에 보내면 수문을 열게 된다. 모든 자료는 1분 간격으로 생산된다. 주요 하천에 설치된 유량 측정기를 통해 수위 변화가 자동으로 센터로 들어온다. 운영자료는 무궁화2호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수신 처리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세계적 명성얻은 큰무당 김금화씨

    1983년 10월 아웅산테러사건이 발생하기 1년여 전, 그러니까 1982년 봄 어느날이다. 한 전직 장관(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부인이 지인 소개로 용하다는 무당을 서울에서 만났다. 부인의 남편은 다름아닌 외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라 있었다. 무당은 부인에게 “염려말라. 가만히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요즘 들어 국상(國喪)이 자주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원혼을 풀어야 한다.”는 말을 뱉었다. 며칠 후 무당의 말대로 전직 장관 부인 등을 포함, 몇몇 지인들이 서울시내 모처에 모여 고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원혼을 달래는 굿을 조용히 치렀다.(이때 지난해 작고한 사진작가 김수남씨가 무당옷을 빌려 입고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참석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무당은 전직 장관 부인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장관 지명에서 자신의 남편은 탈락되고 대신 이범석씨가 신임 외무장관이 됐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변명 같지만 전화위복이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위로했다. 해가 바뀌어 1983년 9월. 무당은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생일날(음력 8월18일)에 주위 친한 사람들을 일부 초청, 점을 봤다. 그런데 이날따라 뭔가 이상했다. 무당은 “버마(미얀마) 가면 안 되는데, 버마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한달 뒤인 10월7일 밤, 무당은 대통령이 죽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건 개꿈이야, 개꿈!”하면서 남쪽을 향해 침을 퉤퉤 내뱉었다. 공교롭게도 이튿날 아침 아웅산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위기일발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범석 외무장관을 포함,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인간의 운명을 ‘재천’이라고 할 때 몇 가지 흥미로운 상황이 떠올려진다. 첫째, 당초 전직 장관 부인의 뜻대로 남편이 외무장관에 발탁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무당의 말대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둘째, 무당이 ‘버마’를 운운한 점, 또 ‘대통령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 미얀마가 있는 남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어쨌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운 좋게도 살아 돌아왔다. 운명의 조화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신(神)의 전주곡 같은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이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건일수록 그 뒷얘기는 더욱 신기하게 다가온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살아온 60년 이 시대의 큰무당, 인간문화재 만신 김금화(金錦花·77)는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뿌린다. 작두 타며 신을 만나는 그야말로 이승과 저승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뭔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는 17세 때에 처음 신과 만났으니 올해가 꼭 60년째가 된다. 한때는 혹세무민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이 됐다. 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갈 때마다 단연 ‘인기캡’으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국내에서 서해안풍어제(무형문화재82-2호) 굿판을 벌일 때도 많은 외국팬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는 2년 전 강화도 북쪽 해안가에 30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무속체험장인 ‘금화당’ 간판(글씨는 ‘도올’이 썼다.)을 내걸었다. 서해안풍어제 굿판을 벌이기에도 좋고 고향인 황해도 연백땅을 바라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이문동의 서해안풍어제연구소와 금화당을 오가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신과 가까이에서 ‘경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주 이문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한복차림에 활짝 웃으면서 반긴다.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금화당’ 얘기를 먼저 꺼냈더니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워싱턴·LA 공연을 비롯, 유럽 각지의 해외공연을 수십차례 다니면서 무속 체험장 같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여러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줘 뜻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으로도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세계 연극평론가 70여명, 외국 신문사 기자, 천주교 수녀들이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무속박물관이 내 꿈 아울러 여력이 되면 무속박물관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그는 200여년된 탱화 등 우리 무속사 연구에 가치가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다수 소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의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동생을 본다는 뜻에서 처음에는 ‘넘새’라는 이름을 가졌다. 나이 다섯에 남동생이 태어나자 이름을 ‘금화’라 했다. 그의 신기는 어릴 적부터 신통방통했다. 열살 무렵에는 아이들과 놀면서 시퍼런 낫을 맨발로 타고 올라가 춤을 췄다. 또 어느 집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고, 임신한 사람을 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맞혔다. 열일곱살되던 정월 대보름날 밤이었다. 시름시름 무병을 앓던 그가 달맞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개울을 건너려 하자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져내렸다.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때부터 ‘신의 딸’이 됐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신 어머니가 돼 금화의 허주굿(온갖 잡신을 몰아주는 굿)을 해주었다. 금화는 이어 내림굿을 하면서 작두를 탔다. 열아홉살되던, 즉 6·25직전 어느날었다. 금화는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뚝뚝 떨어지고 달구지가 피묻은 옷가지를 싣고 가는 광경을 보게 된다. 물론 신의 계시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무당을 반동분자로 취급했던 터였다. 나라에 큰 난리가 날 것을 안 금화는 숨어다녔으나 자주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전쟁 초기에는 북한군인들이 찾아와 피란간 사람들의 명단을 대라며 윽박지르더군요. 반동으로 몰리자 마을 원두막에 앉아 혼자 인공기를 만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28수복 직후에는 남한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노릇한 사람의 명단을 대라고 하더군요.‘너는 무당이니 다 알지 않느냐.’고 하면서 목에 총을 들이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지요.” ●올해 일어날 일은 비밀 결국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리 중에 인천으로 피란오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때에는 굿을 할 수가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석, 우수상·공로상·개인상·단체상 등을 싹쓸이하면서 당당한 민속예술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장의 초청공연이 계기가 됐다. 이때 작두 타는 모습 등을 비롯, 한국의 토속 샤머니즘을 선보여 많은 관중을 불러모았고 이후 매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해외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올해 큰 사건은 없느냐고 하자 “그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너무 빠르다. 순리대로 가야 하며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9월 금화당에서 무녀인생 60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큰 굿판을 벌일 예정이니 그때 구경 오라고 당부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황해도 연백 출생. ▲46년 외할머니에게 허침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을 받음. 방수덕·권만신에게 대덕굿, 철물이굿, 배연신굿, 대동굿 등 전수. ▲82년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 문화사절단으로 방미. ▲84년 미국 하와이주 인간학연구위원회 및 하와이대재단 초청공연, ▲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서해안배연신굿·대동굿 기능보유자 지정. ▲95년 김금화대동굿(연강홀) ▲2000년 서해안풍어제보존회 이사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