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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백두산의 꽃 (2)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백두산의 꽃 (2)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 한반도 최고봉, 한반도 산줄기의 근간인 백두대간의 종조(宗祖)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한반도 최고의 명산이다. 남북분단으로 찾아갈 수 없는 산이지만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솟아 있어 중국 쪽 백두산을 찾아 그 면모의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중국 쪽 백두산은 한반도의 북쪽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식물들을 만날 수 있어 북녘땅 식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장소로서도 가치가 높다. 백두산의 보석처럼 귀한 면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식물들에서도 잘 드러난다.1500여 종류의 고등식물이 자라고 있어, 다양성이 매우 풍부하다. 남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멸종위기종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백두산 식물의 특징이다. 지난 7월말 한국생물과학협회가 주최한 백두산 식물탐사에 참가해 남한의 법정보호종 13종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350여 종류의 식물 가운데 64종은 정부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64종의 멸종위기야생식물 중에는 남한에서는 설악산, 한라산 등 고산에만 매우 드물게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법률로서 보호하고 있는 이런 북방계 식물로는 한라산 정상에만 분포하는 암매를 비롯하여, 깽깽이풀, 한계령풀, 개병풍, 산작약, 황기, 홍월귤, 노랑만병초, 선제비꽃, 왕제비꽃, 기생꽃, 가시오갈피나무, 조름나물, 독미나리, 솔나리, 층층둥굴레, 털개불알꽃 등 17종류다. 올 여름 찾아간 중국 쪽 백두산에서 우리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한 희귀식물 가운데 암매, 층층둥굴레, 선제비꽃, 왕제비꽃을 제외한 13종류의 생육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두산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이들 멸종위기식물은 대부분의 경우에 매우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어, 멸종위기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백두산 남쪽 지역의 계곡에서 발견한 개병풍은 계곡을 따라서 넓은 지역에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었다. 지름 60∼80㎝에 이르는 큰 잎을 가진 세계적인 식물로 때마침 흰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독미나리는 백두산 자락과 두만강의 도로변 습지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남한에서 단 한 곳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 이토록 흔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황기는 남한에서는 재배하는 것만 있을 뿐 자생 개체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식물인데, 두만강변 길가에서 야생 상태로 흔하게 자라고 있었다. 홍월귤, 노랑만병초, 털개불알꽃은 해발 2000m 이상의 백두산 고산초원지대에서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었다. 솔나리는 백두산 자락과 두만강변에 흔하였고, 가시오갈피나무는 백두산 중턱 이하에 지천이었다.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남한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식물들도 대거 분포하고 있었는데,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분홍바늘꽃, 손바닥난초, 닻꽃, 비로용담, 장백제비꽃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분홍바늘꽃은 대관령 등 몇몇 곳에서만 생육하고 있으며, 손바닥난초는 한라산 고지대에만, 비로용담은 대암산에만, 그리고 닻꽃은 한라산 등 몇몇 고산에서만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많은 식물이 백두산 등 북쪽지방을 고향으로 둔 식물임을 인식하게 되면, 북방계식물들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는 한반도 중부와 남부지방에서 이들을 더욱 철저히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떤 식물의 분포영역에서 가장 바깥쪽에서 살고 있는 것들을 잘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고, 변방에서 생육하는 개체들을 잘 보전해야 그 종의 보전을 확고히 할 수 있다. 백두산 식물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북방계식물로서 남한이 분포의 가장자리가 되고 있는 멸종위기식물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선교戰’이 사태불러

    ‘복음 전파야말로 예수의 가장 중요한 명령.’‘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선교는 의무이자 당위이다. 그런 만큼 ‘세계 두번째의 선교강국’‘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열정’ 같은 말들은 한국 개신교 교회와 신자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자 명예이다. 그러나 이같은 칭찬(?)은 한국 개신교의 고질을 가린 ‘아주 위험한 수사’임을 이번 피랍사태는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세계 기독교계가 주목하는 한국 교회의 ‘사상 유례없는 교세확장’과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선교열정’의 끝을 가리키는 증거가 된 셈이다. 한국 개신교 교회들이 앞다투어 해외선교에 나선 것은 80년대말 사회주의권 붕괴와 90년대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하면서부터. 북한에 대한 남한체제의 우월감에 더해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를 기독교의 승리로 여기는, 이른바 ‘한국 기독교 선교의 정복주의적 경향’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28개국에 1만6616명 선교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한국교회가 파송한 해외 선교사는 228개국에 1만 6616명. 영국의 2배이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 무려 9000여명이 나가 있다.‘지구촌 어디에서도 한국 선교사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다. 문제는 선교의 열정만 앞세운 각 교단과 교회의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선교 무한경쟁’으로 인한 비극이다. 지난 4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선교활동 중이던 이모(42) 목사는 괴한들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2004년 4월에는 한국인 목사 7명이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라크에 들어갔다 무장세력에 납치되었다. 이번 사태만 해도 정부가 탈레반이 수감 동료 석방을 위해 한국인 납치를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아프간 입국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소송불사로 맞선 봉사단원들이 참극을 맞은 것이다. 교계에서 선교사를 얼마나 위험한 곳에 많이 파견했는지가 교회와 신자들의 ‘독실한 신앙심’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통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위험지 파견정도가 신앙심 척도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그나마 활동 영역과 내용이 비교적 잘 파악되고 있는 편. 이에 비해 개별 교회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봉사 명분의 ‘단기선교’는 그 실태조차 집계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들의 선교가 거리낌없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선교’로 치우칠 수밖에 없고 위험성도 그만큼 커지는 이유이다. 이번 피랍된 샘물교회 봉사단원이 출국전 ‘유서를 써놓았다.’는 이야기도 그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번 탈레반 납치단체도 인질 석방 협상과정에서 “분당샘물교회 단원들이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선교단체임을 알고 있다.”고 살해협박을 거듭했다. 이처럼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교회들은 선교를 놓고 ‘전도’보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리에 충실한 인도주의적 봉사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순수한 봉사활동까지 선교와 전도로 보는 데 대해 크게 반발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인질 석방결정 직후 “인질 석방을 위한 합의사항 중 아프간 선교중지의 큰 뜻을 존중, 정부의 방침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기본적으로 선교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개신교 교회들은 이번 피랍사태 이후 잇따랐던 이슬람권을 비롯한 위험지역에서의 해외선교, 특히 ‘공격적 선교’에 대한 비판과 정부 당국의 법적 조치로 일단 해외선교를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총,KNCC 등 양대 교단연합체와 세계선교협의회(KWMA)가 30일 오전 한기총 회의실에서 아프간 사태 이후의 한국교회의 역할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 그러나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그동안 교단 연합체와는 별도로 움직여 왔고 해외선교와 봉사활동에 대한 한기총과 KNCC, 선교단체의 입장 차가 적지 않은 현실. 해외선교와 봉사를 일괄적으로 통제하거나 아우르는 대책 마련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남북정상회담,정쟁의 대상 아니다/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남북정상회담,정쟁의 대상 아니다/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을 차기정권으로 연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정상회담 개최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선 승리를 눈 앞에 뒀다고 생각하는 이명박 후보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정상회담이 대선정국을 뒤흔들 변수로 작용할까 우려하는 듯하다. 이 후보의 기우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의제가 대선과 관련해 정파적 이해관계로 판단되고 정치적 쟁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한나라당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정세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분단과 6·25전쟁 휴전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한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대사급 수교를 하는 문제를 협상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한반도 질서의 새판짜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남북정상회담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남북이 한반도 정세 변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민족의 장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 위해 남북정상이 만나야 한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핵포기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 공동의 노력을 국제사회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조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남한 정부와의 대화를 기피하고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 매달리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 정상회담은 고사하고 북한과 당국간 대화를 재개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남한 정부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조건으로 상당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에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한나라당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했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북한이 식량 등 남쪽으로부터 얻는 대북지원 때문에 남한정부와 관계를 장기간 단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역시 오판이다.‘2·13 합의’에 따라 핵불능화 조치를 하면 중유 95만t에 해당하는 원조를 얻을 수 있다. 남한 정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해주어야 한다. 북한이 굳이 남한 정부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고 미국에 더욱 매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에 주도권 행사는 고사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입장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실용주의적 중도우파로의 개혁은 대북정책의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 한나라당이 올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나 또 집권 후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이 절실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국민들이 느낀다면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주저할 것이다.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통일문제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복병이 될 수 있다.‘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씨줄날줄] 아리랑 공연/황성기 논설위원

    북한이 자랑하는 아리랑 공연은 올해로 세 번째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시작됐다. 남한에 쏠리는 세계의 이목을 평양에 붙들어 오자는 속셈이 있었겠지만 월드컵 열기에 댈 바가 아니었다.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남한의 월드컵 개최 성과를 깎아내리긴 역부족이었다.2005년 광복 60돌과 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재공연했다. 지난해에는 수해로 건너뛰었다. ‘아리랑’은 카드섹션 2만명,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5만명에 공연을 돕는 인원을 합쳐 10만명이 참가하는 공연이다. 지난 15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세계 기네스북 대표가 북한측에 ‘세계 최대 규모의 매스게임’ 인증서를 전달했다.2000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을 받고 아리랑과 비슷한 규모의 집단체조를 관람했다. 현장에서의 “놀랍다.”는 발언이 미국 보수파들로부터 공격받자 귀국 직후 “매우 불편한 자리였다.”고 말을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 십수년 만에 최악이라는 수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리랑 공연을 계속 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예정대로라면 10월10일 끝난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연기한 마당에 공연을 취소하지 않는 이유나 배경을 놓고 추측이 난무한다.1000만달러를 남기는 외화벌이를 포기할 리가 없다, 피해가 알려진 것보다 적은 것 아니냐, 공연을 할 정도면 정상회담도 가능할 텐데 연기한 것은 역시 대선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음모론적 시각을 배제한다면 북한 체제에서 고도의 정치성을 띠는 아리랑 공연을 2년 연속 수해 때문에 취소하긴 어려울 수 있다. 지금은 핵문제 같은 체제의 진로를 좌우할 중대 현안을 결단할 시기다. 동요를 막고 체제와 주민을 통합하는 국가적 행사를 북 지도부가 미루는 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의 성황을 재현할지는 의문이다. 복구가 한창인 때 관중 동원이 쉬울 리 없다. 외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일본 내 ‘아리랑 관광’의 총판격인 중외여행사는 어제 고작 2명을 북한에 보냈다고 한다. 체제단속, 외화벌이, 대외과시도 좋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듯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5·끝)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5·끝)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한국 천주교는 이 땅의 사람들이 스스로 일으킨 ‘자생 신앙’이란 자부심을 갖는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생신앙 한국천주교의 태동지가 바로 천진암(天眞菴·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산500)이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이면서 불교와 유교를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유불천(儒佛天)의 합류지 천진암. 이 천주교 발상지에서는 지금 천주교 선조들의 정신을 오롯이 되살려내기 위한 독특한 성역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난 1984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 순교성인 103위의 시성(諡聖·천주교에서 성인품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절차)식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강론을 남겼다. “한국의 저 평신도들, 즉 한국의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모임인 한 단체는 중대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당시 베이징천주교회와의 접촉을 과감히 시도하였고 특히 새로운 교리서적들을 읽고 그들 스스로가 알기 시작한 신앙에 관하여 자기들을 밝혀줄 수 있을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나섰습니다. 남녀 이 평신도들은 마땅히 한국천주교회 창립자들이라고 해야 하며…(중략)…1779년부터 1835년까지 56년간이나 저들은 사제들의 도움 없이 자기들의 조국에 복음의 씨를 뿌렸으며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성직자 없이 자기들끼리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켰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 시성식장에서 로마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이 한국 천주교의 자생신앙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그런데 교황이 강론 첫머리에 세세하게 강조한 ‘한국천주교회 창립자들’이란 누구일까. 바로 천진암에 모여 천주교를 공부했던 이벽(1754~1785)·이승훈(1756~1801)·권일신(1742~1791)·권철신(1736~1801)·정약종(1760~1801), 그러니까 천주교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5인의 성조(聖祖)’이다. 천진이란 산제사나 당산제, 산신제 등을 지낼 때 모셨던 단군의 영정(影幀).195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선 이 천진을 모시고 제를 지내던 천진각이나 천진당이라는 작은 초가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료들을 들여다보면 천진암은 원래 천진당이 있던 자리였다. 불교의 천진암(天眞庵)이 들어섰다가 폐찰이 되었고 한때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였으며 나중에는 대궐의 음식 장만하는 일을 관장하던 사옹원의 관리를 받기도 했다. “천진암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 요사체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네.”(1779년경 정약용)/“천진암은 오래된 헌 절인데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사옹원에서 관리하고 있다.”(1797년 홍경모의 ‘남한지’)/“젊은 선비들과 함께 이벽 성조께서 강학을 하던 곳은 쓰지 않는 폐찰이었다.”(1850년 다블뤼 주교) 이벽을 중심으로 이른바 5인의 ‘성조’들이 모여 공부할 무렵의 천진암은 거의 허물어져 가는 초라한 폐찰이었다. 당시 일반 집과 서당, 사찰에서 생소한 천주교 책을 읽고 토론하기란 아주 어려웠을 터. 이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외딴 곳을 물색, 바로 천진암을 공부방으로 삼았던 것이다.1779년 이곳에서 강학회를 결성한 뒤 약 5년간 천주교리 연구와 강의, 공동신앙생활을 하며 천주교회를 창립했다. 교회라야 이 5명과 이들의 뜻에 동참한 정약전, 정약용, 권상학, 김원성, 이총억, 그리고 그 가족들이 전부. 대부분 당대의 명망 높은 남인(南人)계열 집안의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진암을 자주 찾아 천진암에 얽힌 시를 90여 편이나 남긴 정약용이 대부분의 시에서 천진암의 ‘암’자를 ‘庵’이 아닌, 남인 학자들의 호 돌림자 ‘菴’으로 썼던 것일까. ‘5인의 성조’와 동지들은 학문을 연마하던 강학회를 종교신앙의 수련회로 발전시켰고 신·구약 성경 내용을 서사시 형태로 집약한 ‘성교요지’며 ‘천주공경가’를 지어 부르며 허술하나마 교회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쟁쟁한 유가의 10∼20대 선비들이 불교 암자에서 천주학을 공부하고 실천했으니 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함께 공부했던 강학자 이승훈을 베이징으로 보내 영세받도록 했으며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은 귀국후 이벽에게 영세를 주었다. 천진암은 이렇듯 중요한 한국천주교의 성지이지만 1980년 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한국의 천주교회가 교회사 정리를 하면서 외국 선교사들의 문헌에만 의존했던 탓에 이 선교사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천진암이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것이다. 그러던 참에 천주교 수원교구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변기영 몬시뇰이 1975년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1981년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성역화위원회’를 구성, 이곳에 한국천주교 200년 기념 ‘천진암대성당’을 세우기 위한 큰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벽을 포함한 ‘5인의 성조’는 모두 박해를 받아 모진 매질 끝에 옥사하거나 참수당해 순교했다.‘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터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왼편에 ‘한국천주교 창립 성현 5인묘역’이라 쓴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천주교를 창립한 성조 5인의 유해를 옮겨 이장한 곳이다. 반대쪽엔 그 가족묘역이 조성되었다. 묘역 초입에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터’라 쓴 비석을 올려다보며 산길을 오르면 ‘강학회터’라 새긴 표석이 눈에 든다. 천주교리를 공부하고 교회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 덩그맣게 표석 하나만 남았지만 젊은 선비, 아니 천주교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혈기를 나누던 현장에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5인의 묘를 봉안한 곳이 바로 옛 천진암 터. 가운데 ‘세자 요한 광암 이벽’이라 새긴 이벽의 묘를 중심으로 왼쪽에 정약종·이승훈, 오른쪽에 권철신·권일신의 묘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훨씬 전 앞서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연구하고 교회로 발전시키다가 순교한 한국천주교의 선구들. 목숨을 던져 신앙을 창시하고 지키다 희생한 선조들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옛 신앙 터만 소리없이 지키고 있다. kimus@seoul.co.kr ■천진암대성당 어떻게 짓나 천진암성역화 작업의 핵심은 아무래도 ‘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 이름 그대로 한국 천주교 발상지에 100년에 걸쳐 기념 성당을 우뚝 세워 놓겠다는 것이다. 천진암의 성격에 맞춰 지붕은 사찰 대웅전의 처마형태를 갖춘 기와 지붕, 외벽은 유교 서원의 골격, 내부는 천주교 성당 양식을 택해 그야말로 ‘유불천’의 조화를 이룬다. 99만㎡ 넓이의 성지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조성되는 광장이 16만 5000㎡, 성당 터만 해도 2만 6000㎡(좌석수 3만석). 성당의 높이는 기단∼2층 50m에 지붕부분 35m를 포함하면 전체 85m. 길이도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95m에 달한다. 성당 넓이는 1층 2만 6800㎡,2층 1만 8600㎡. 기둥만 해도 42개가 세워진다. 벽과 기둥, 기단에는 사방 1m 크기의 한국산 화강암 10만개가 쓰이며 모든 돌에는 돌값을 봉헌한 사람의 이름과 봉헌번호, 봉헌연도가 새겨진다. 제대는 중앙 제대를 포함해 1,2층에 걸쳐 모두 55개. 지금은 지반 등 성당 터닦이 공사만 마쳐 휑한 모습. 성당 터 맨 위쪽에 1994년 축성식때 마련한 86t짜리 중앙 제대석이 놓였고 그 앞에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복문을 직접 써 안치한 대성당 머릿돌(초석)이 있다. 5년 내에 철골·지붕공사를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그때부터는 미사도 진행할 수 있다. 임시 성당격인 성모경당을 대성당 터 위에 지어 놓았으며 대성당 완공 때까지 이곳에서 미사를 진행한다. 외벽과 장식까지 포함해 20여년 안엔 모든 공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게 변기영 몬시뇰의 귀띔이다. 예상 공사비는 골조공사 500억원, 조적공사 500억원 등 총 1000억원.100년간 연평균 1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다.
  • [박찬구 기자의 정국 View] 한반도 프레임과 대선 지형

    “확실히 정상회담은 어려워.” 18일 남북정상회담이 연기된 직후 청와대 관계자의 첫 반응이다.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무산되고,2000년 6월 첫 회담이 대북송금 지연으로 우여곡절을 겪은 전례를 언급했다. 회담 연기의 배경을 놓고 각 정파와 전문가는 미묘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시각의 편차가 객관적인 정보와 합리적인 분석에 따른 것이라면 사회 공론(公論)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파적 이해관계나 검증되지 않은 불신감으로 남북 문제를 바라본다면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난감해 보인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디딤돌로 여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1차 회담이 상징과 선언이었다면, 이번 회담은 실질적인 변화와 실천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와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의 생존권을 우리 스스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최근 참모들 사이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집필 중인 저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인식에 따른 것이다. 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제성장의 요인이 자립보다는 개방과 수출을 선택한 경제정책에 있으며, 이는 일본지향적인 박 전 대통령이 일본식 경제모델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이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전략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이어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북방경제로 활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시각은 달랐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올해 남북정상회담은 대선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정상회담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한나라당이 ‘햇볕정책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의 정상회담 의도가 6자회담과 북·미 관계에서 적절히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남한을 병참기지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현 정부와 범여권으로서는 대선 환경이 어려워 분위기 전환을 노리는 것이고, 북한은 자기들과 말이 통하는 세력이 차기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호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초 대선 표심(票心)을 의식,‘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가 당내 반발로 폐기하고, 정상회담 성사와 연기 발표 이후 계속 ‘정치적 노림수’를 부각시킨 점은 이 전 총재의 시각과 맥이 닿아 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대북(對北)정책의 궤도 수정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다. 누가 본선 후보가 되든 이념적 정체성과 지지세 확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범여권은 남북정상회담의 ‘대선 2개월 전’개최를 호재로 여길 법하다. 하지만 대선 지형은 만만치 않다. 민주당 후보가 10% 안팎의 지지율을 확보한다면, 대통합민주신당은 막판 불가피한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의 ‘50대50’지분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민주노동당 후보의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을 넘어선다면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범여권, 특히 열린우리당 출신 후보들은 정상회담의 수혜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각과 비전으로 범여권 통합을 일궈내고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다. ckpark@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연기] 의제 ‘하향 조정’ 불가피

    2차 남북정상회담 연기는 향후 회담의 논의 수준과 의제의 강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10월 초가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대선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정상간 합의사항의 이행 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간 논의 내용이 남북 경협과 한반도 평화, 통일 등 굵직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합의 내용에 따라서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의 반발이 예상된다.9월로 예정된 북핵 6자회담 본회담과 6자외무장관 회담과의 조응 관계도 감안해야 한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당초 예상한 정상회담의 논의와 합의 수준, 의제의 강도 등을 일정부분 하향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재검토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시기가 미뤄진다고해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격과 의제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리적으로나 실효적인 측면에서나 10월초 회담은 제약요인이 될 수 있다.”는 고민이 감지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특별히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한 건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상식선에서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시기가 늦춰진 만큼 의제의 강도나 농도 문제도 수준에 맞게 조절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청와대의 기류는 합의사항 이행과 시기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본질과 의미가 희석되어선 안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무엇보다 임기 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노 대통령과 북측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논의나 합의, 선언 등에 양측의 배려가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민감하고 폭발력이 큰 의제에 대해서는 큰 그림과 접근 방식 등에 대해 합의하는 선에 그치고 구체적인 추인절차는 남한의 다음 대통령이 밟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럼에도 정상회담 이후 대선정국에서 양 정상간 합의사항을 비롯한 남북관계가 최대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어서 이를 둘러싼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공방전은 불가피할 듯하다.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인한 내부 출혈을 진정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선용 정상회담’에 공세의 초점을 맞출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北 기록적 폭우… 평양 이달들어 이틀 빼고 날마다 비

    北 기록적 폭우… 평양 이달들어 이틀 빼고 날마다 비

    ‘북녘 하늘이 뚫렸다.’ 북한에 8월 들어 최고 730㎜의 기록적인 비가 쏟아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19일까지 평양에 565.0㎜의 폭우가 쏟아진 것을 비롯해, 함흥 497.0㎜, 사리원 426.2㎜, 남포 385.2㎜, 신의주 371.1㎜, 개성 329.8㎜의 비가 내렸다. 또 황해도 신계군 730.1㎜, 평남 양덕군 616.0㎜의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특히 평양에는 8월 들어 2일과 17일, 단 이틀을 제외하곤 날마다 비가 쏟아졌다. 반면 남한에서는 강원 춘천이 407.0㎜로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으나 다른 지역은 청주 256.5㎜, 서울 206.6㎜ 등 200㎜대에 머물러 북한에 비해 적은 비가 내렸다. 김승배 기상청 통보관은 “북한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해 가장자리에 든 반면 남한은 북태평양 고기압 중심에 있었다.”면서 “확장된 북태평양고기압이 대륙에서 내려온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부딛치며 북한에 많은 비를 뿌렸다.”고 말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5일 대동강 중·상류에 7일부터 11일까지 평균 524㎜에 달하는 비가 내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홍수가 역대 최악의 호우로 기록된 1967년의 472㎜(8월25∼29일)보다 52㎜가 더 많아 기상관측 이래 최다 강수량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북 기상관측기구 사이에는 직접적인 교류가 이뤄지지 않아 실시간으로 기상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측이 중국의 기상관측기구에 기온과 강수량 등 기상데이터를 전달하면, 이를 다시 기상청이 제공받는 상황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남북 접촉시 기상관련 교류를 제안해왔지만 북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간접적으로 데이터를 얻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피해상황은 우리도 보도를 통해 확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백두산의 꽃 (1)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백두산의 꽃 (1)

    높은 산에서 더 이상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높이를 수목한계선이라 한다. 나무는 이 한계선까지만 자랄 수 있는데, 이 고도보다 높은 지역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거세게 불며 겨울이 매우 긴 기후적인 특징을 보여서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기에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목한계선 이상의 고도에서도 만년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키가 큰 나무들만 자라지 못할 뿐이지 몇몇 종류의 풀과 풀처럼 아주 작은 나무들은 생육이 가능하다. 만년설 지역과 수목한계선 사이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는 지역을 고산초원지대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한라산에 조금 발달해 있을 뿐인 고산초원이 백두산에서는 해발 2000m 이상에서 광활하게 펼쳐진다. 특히 1597년,1668년,1702년 등 비교적 근래에 3차례에 걸쳐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고지대의 기존 식물들이 전멸하였던 지질역사가 있기 때문에 백두산에는 고산초원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화산재로 뒤덮였던 백두산 고지대에 새로운 식물이 유입되어 가는 중간 과정에서 고산초원이 크게 발달한 것이다. 실제로 백두산에서는 고산초원지대에 침입하여 자라고 있는 사스래나무, 덤불오리나무 등의 큰키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큰키나무들은 화산폭발 후에 형성된 초원지대에서 큰키나무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개척자 식물이라 할 수 있다. 사스래나무는 초원지대 바로 아래쪽에서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기도 하다. 백두산 식물의 고도에 따른 수직분포를 보면 고산초원 아래쪽으로 사스래나무대, 침엽수림대,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합림대, 활엽수림대 순으로 식물군락이 발달한다. 침엽수림대와 혼합림대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혼합림대에서 사스래나무대나 고산초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풀만 자랄 것 같은 고산초원지대에는 사스래나무 같은 침입자 나무 외에도 키가 아주 작은 떨기나무들이 여러 종류 자라서, 환경조건이 나쁜 고산지역에서도 나무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관상 풀들만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고산초원에 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풀보다 오히려 나무들이 더 넓은 면적에 걸쳐 생육하는 지역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곳에 자라는 나무로는 들쭉나무, 노랑만병초, 곱향나무, 콩버들, 난쟁이버들, 월귤, 담자리꽃나무, 홍월귤, 담자리참꽃나무, 가솔송, 시로미, 좀참꽃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노랑만병초와 들쭉나무 등은 수목한계선 아래쪽의 숲 속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숲 속에 자라는 것들은 키가 훨씬 크게 자란다. 수목한계선 위쪽의 고산초원에는 저지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풀이 많이 자란다. 이들을 전형적인 고산식물이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산석송, 오랑캐장구채, 씨범꼬리, 호범꼬리, 두메양귀비, 두메냉이, 구름꽃다지, 구름범의귀, 하늘매발톱, 너도양지꽃, 등대시호, 산용담, 구름송이풀, 두메투구꽃, 바위구절초, 두메분취, 구름국화, 개감채, 설령골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오직 이 고산초원에서만 자랄 뿐, 수목한계선 아래쪽의 숲 속에서는 생육하지 않는다. 저지대에서 생육하지만 고산초원에서도 사는 풀들도 있는데, 나무와 마찬가지로 고산초원에서 자랄 때 전체가 왜소하게 된다. 나도수영, 산미나리아재비, 톱바위취, 돌꽃, 장백제비꽃, 비로용담, 화살곰취, 껄껄이풀 등이 이런 종류들이다. 고산초원에 사는 풀꽃들은 키는 작지만 뿌리가 발달하여 양분을 잘 흡수하고, 바람도 이겨낼 수 있다. 번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도 고산식물의 특징이다.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씨앗을 잘 맺으려는 적응방법이다. 백두산 고산초원에 사는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은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자라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식물은 남한에서도 볼 수 있다. 남한에서는 설악산, 한라산, 대암산 등 높은 산 고지대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는데, 남한에서도 볼 수 있는 고산초원의 식물로는 노랑만병초, 비로용담, 들쭉나무 같은 나무와 등대시호 같은 풀 등 몇몇에 불과하다. 북한 쪽 백두산의 고산초원에는 어떤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단독]남북정상회담 TV 생중계 우리측 위성중계차량 이용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TV방송은 지난 1차 정상회담 때 북한 중계차를 이용한 것과는 달리 우리측 위성중계차량을 반입해 직접 생중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번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에는 남북 정상의 만남을 안방에서 생생한 고화질(HD)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17일 “지난 16일 통신·보도분야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의 위성 중계차량을 이용한 TV 생중계에 남북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화면은 선명하지 않고 중간중간 끊기곤 했는데 이는 북한 조선중앙TV의 중계차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와 북한의 TV송출 방식이 달라 북한 조선중앙TV 중계차-남한 이동형 송신용 위성지구국(SNG)-무궁화위성-한국통신 광화문 국제텔레비전센터-각 방송사-가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방송과정을 거쳐야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다시 만나는 남북정상] (5) ‘평화체제 구축’ 美입장

    [다시 만나는 남북정상] (5) ‘평화체제 구축’ 美입장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도 남북한 간에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이미 55년이 넘었고, 최근 들어 북한 핵문제도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남북한 실무그룹 구성 관측 미국측은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한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이 평화체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의 결의문까지 발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한 간의 실무그룹의 구성 정도를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보는 미국의 기본적인 시각은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같은 기본적 시각 아래서도 미 정부 안팎의 대북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전술적인 견해차이가 존재한다. 우선 평화체제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온건파와 강경파의 시각이 조금 다르다. 빌 클린턴 및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협상특사를 역임했고 여러 차례 북한도 방문했던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우선적인 주체는 남북한”이라면서 남북한이 먼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뒤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순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평화협정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관계 당사국이 함께 협상해야 할 사안이라는 사실을 미 정부는 동맹국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이 초기단계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北, 비무장지대 병력 철수 필요” 또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은 평화체제 논의를 한·미동맹의 종말,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종결, 궁극적으로는 미군 철수로 정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논의를 늦출 이유는 없지만 남한을 위협하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문제가 먼저 다뤄져야 한다.”면서 “북한이 비무장지대 부근에 집중 배치한 병력과 대포 등 군사장비를 후방으로 빼는 등 신뢰회복 조치들을 먼저 취해야 한다.”고 논의의 ‘전제 조건’도 달았다. 지난해 10월 부시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전향적인 발언을 한 이후 미국 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연구가 정부 안팎에서 이뤄졌다. 동북아시아정책재단의 제임스 굿비 선임연구원은 브루킹스연구소를 통해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란 보고서에서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dawn@seoul.co.kr
  • [단독] “남한쌀 주고 북한 농산물 받고 수입산 대체 윈윈 모델 구축을”

    “쌀·농업기술 주고 북한 농산물 받아 수입산 대체하는 정부차원의 ‘농업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농업계와 농정당국이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한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의 주요 축이 될 ‘남북 농업협력’에 대한 기본입장을 피력했다.‘퍼주기’가 아닌 정기적인 ‘주고받기’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것이 기본 틀이다. 농림부는 16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남북 정상회담 의제 선정을 위한 ‘남북 농업협력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농촌진흥청, 한국농촌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등 정부기관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등 농업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 구호단체 대표자 20여명이 참석했다. 탁명구 한농연 사무총장은 “남북이 각각 ‘과잉’과 ‘부족’으로 상반되는 쌀 등 식량 부문에서 주고받기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정부차원의 ‘공동 농업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남쪽의 골칫거리인 축산분뇨를 비료가 부족한 북한으로 보내고, 북한의 잡곡 등 밭작물을 들여와 수입산 공급을 대체하는 ‘윈-윈’경제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적·정기적인 협력을 위해 ‘남북농업협력위윈회’의 상설화도 제안했다. 전성도 전농 사무처장은 “국내 생산 과잉분과 의무수입물량(MMA)분을 합해 연간 400만t정도 지원하면 쌀 가격 하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기관도 정부차원의 남북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범권 산림청 산림자원팀장은 “북한 산림 황폐화를 막도록 정부가 초기엔 묘목을,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인적 자원을 활용한 양묘장 시설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제시된 제안들을 토대로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수 있는 농업협력 의제를 검토할 방침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더 벌어진 남북 경제격차

    더 벌어진 남북 경제격차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8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농림어업, 토목건설 등의 부진 탓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약 35분의1,1인당 국민소득(GNI)은 17분의1 수준으로 남북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6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은 -1.1%.199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1998년 -1.1%에서 1999년 6.2%로 돌아선 뒤,2005년까지 7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왔었다. ●농업, 건설 부진이 원인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이 뒷걸음질친 것은 기상여건 악화로 농림어업 생산이 전년보다 2.6%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로·철도 건설 등 토목건설이 부진하면서 건설업 전체적으로 11.5%나 감소한 것도 한 몫했다. 한국은행은 “핵 문제 등으로 국제관계가 악화한 데다 에너지 부족 문제가 현실화하면서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광업은 석탄과 비금속광물의 생산이 증가했으나 연, 아연광, 동광 등 금속광물의 생산이 감소하면서 전년(3.5%)보다 성장세가 둔화해 1.9% 성장했다. 제조업도 0.4%만 증가했다. 한은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05년 36만 6000명에서 지난해 26만 5000명으로 대폭 준 것으로 추정했다. ●남북 대외무역 격차도 212배로 확대 북한의 국민총소득(명목 GNI)은 256억달러로 남한(8873억달러)의 약 35분의1(2.9%) 수준이었다.1인당 국민총소득(GNI) 역시 남한(1만 8372달러)의 약 17분의1 수준인 1108달러였다.2005년의 각각 33분의1,16분의1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또한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상품기준)는 전년과 같은 30억달러. 남한(6349억달러)과의 격차가 2005년 182배에서 212배로 확대됐다. 한편 지난해 남북 간 교역 규모는 27.8% 늘어난 13억 5000만달러였다. 남한이 북한으로 반출한 규모는 쌀·비료 등 대북 민간 지원 확대와 개성공단 건설사업 등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한국인이란 자긍심으로 힘든 여정 이겨냈죠”

    ●1년3개월만에 2만 6000㎞ 완주 뇌성마비 1급 중증 장애인 최창현(42)씨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전동 휠체어로 유럽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최씨는 지난 15일 오후 1시(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유럽 32개국 2만 6000㎞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해 5월 그리스에서 여정을 시작한 지 1년3개월만이다. 선천성 뇌성마비로 손과 발이 불편한 최씨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발을 끈으로 묶어 고정하고 전동 휠체어를 입으로 조종해 이동했다. 최씨는 베를린 장벽에서 발표한 평화선언문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지구촌은 한 가족이라고 하지만 남한과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허리가 둘로 나누어진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이런 분단국가의 현실이 장애인과 같다.”면서 “남북한에서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던 것처럼 철조망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최씨는 “장애인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이란 자긍심을 갖고 힘든 여정을 이겨냈다.”면서 “유럽횡단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해준 유럽 교민과 대사관 관계자들의 격려와 성원에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베를린 장벽 잔존 구간인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는 교민과 대사관 직원, 독일 장애인 관련 단체 인사 등 50여명이 최씨를 환영했다. 휠체어 장애인인 일랴 자이페르트 좌파당 의원은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인의 통일 염원을 전 세계에 보여준 최씨의 노력을 치하했다. ●내년 기네스북에 등재될 예정 평균 시속 13㎞로 대장정을 성공시킨 최씨는 내년도 기네스북 중증장애인 전동휠체어 마라톤 부문 세계 최고기록자로 등재될 예정이다. 그는 유럽 대륙 일주에 이어 실크로드를 따라 2만㎞에 달하는 아시아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1999년 대구에서 임진각까지 1500㎞ 국토 종단을 완주했고,2001년에는 112일간 미국 대륙 5500㎞를 횡단했다.2003년에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성공을 염원하는 일본 열도 3400㎞ 종단에 성공한 바 있다. 이재연기자·연합뉴스 oscal@seoul.co.kr
  • [Local] 창원서 경남한의학 박람회

    경남도는 15일 창원 컨벤션센터에서 23∼26일 제2회 경남한의학 박람회를 연다고 밝혔다. 국내 유명 한방제약업체와 의료기기회사를 비롯한 90개 업체가 참가한다. 인간관·자연관·한의학관 등 3개의 테마관으로 운영된다. 인간관에서는 개인의 체질에 맞는 의료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첨단 의료기기와 한방 관련 제품이 전시된다. 또 한방 칵테일 만들기, 피부타입에 맞는 한방비누와 한방화장품 만들기, 한방떡 시식, 한약재 천연염색 등 체험행사가 열린다. 문의는 경남도 국제통상과(055-211-3284)나 경남한의사회 사무국(055-248-1240)으로 하면 된다.
  • ‘희망의 편지’ 옹골차게 띄운다

    ‘희망의 편지’ 옹골차게 띄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고(故) 강원용 목사의 개인문고가 설치되고 강 목사의 대표적인 수필들을 추린 수상집이 발간된다. 그런가 하면 경동교회의 건축물과 강 목사의 정신을 연결한 이색적인 아트북도 세상에 나온다. ●내일 묘소 참배·추모식전 지난해 8월17일 소천한 강원용 목사의 1주기를 맞아 17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공원묘원의 강 목사 묘소 참배를 시작으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여해강원용목사기념사업회(사업회·이사장 이홍구)가 대부분 주관하는 행사는 ‘여해가 띄우는 희망의 편지’라는 큰 타이틀 아래 “조촐하지만 강 목사의 생전 뜻을 옹골차게 잇자.”는 방향으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우선 17일 묘소 참배에는 경동교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강 목사와 생전 사회활동을 함께했던 지인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오후 7시30분 경동교회 본당에서 각계 인사 2000여명이 자리를 함께하는 추모식은 강 목사의 생애를 촛불 퍼포먼스(이강백 서울예술대교수 연출)와 춤, 합창,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오후 7시 경동갤러리(경동교회 선교기념관)에서는 추모사진전이 개막될 예정. 사진전은 만주 용정의 학창시절부터 해방 직후 좌우합작운동,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 종교간 대화운동, 선종 직전의 모습 등 강 목사 삶의 편린이 가장 잘 담긴 사진 100여점을 추려 보여주게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개인문고 마련 국립중앙도서관의 강목사 개인문고 마련은 비단 경동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계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는 일. 국립중앙도서관측에서 강 목사가 생전 애장한 도서 5173권을 인문과학실 개가자료실에 비치해 ‘강원용 개인문고’ 코너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회측은 “당초 1주기에 맞춰 17일쯤 코너 설치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사정이 생겨 오는 10월16일로 미루어졌다.”고 밝혔다. ●수상집·아트북도 출간 국립중앙도서관의 강 목사 개인문고 설치에 맞춰 수상집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현암사)와 아트북 ‘살아있는 성전’ 출판기념회 겸 유품전시회가 10월 16일 오후6시 국립중앙도서관 인문과학실과 전시실서 열린다. 수상집 ‘중간, 그리고’는 1968년 현암사에서 펴낸 강 목사의 수필집 ‘저 문이 닫히기 전에’‘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벌판에 세운 십자가’ 등 세 권에 실린 138편의 수필중 대표적인 33편을 뽑아 묶은 책.‘살아있는 성전’은 강 목사의 목회정신이며 신앙철학을 경동교회의 건축물 사진과 이 교회에서 벌인 젊은 예술가들의 행위예술 등 예술작업으로 연결해 아티스트 이윰이 만든 독특한 책이다. 남궁명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화육사상이란 신앙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생전 인간화와 대화운동에 천착했던 강 목사가 소천한 지 1주기를 맞았지만 많은 교인과 지인들이 고인을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 추모행사도 조촐하지만 고인과 함께하는 만남의 자리라는 성격에 맞췄다.”고 귀띔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는 28일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 분야 공약은 기본적으로 DJ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원칙 없는 퍼주기로 인한 실패’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때문에 두 후보 모두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강화·발전시켜 ‘힘에 바탕을 둔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 후보는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방한계선(NLL) 양보는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열린 3차 TV토론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양보한다면 차기 정권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 역시 “헌법에 위배되는 통일방안에는 합의하면 안 된다.”면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힘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은 여전히 냉전과 남북대결구도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정전체제 종식과 북·미 간의 대사급 수교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두 후보의 통일분야 공약과 정세 인식은 뭔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면서 “보수적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고 햇볕정책의 성과를 인정할 수도 없는 양 후보의 딜레마가 공약에 그대로 베어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대북 정책의 기본 골자는 ‘경제 줄게, 평화 다오’식의 경제와 평화 교환 전략이다.‘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핵을 제거하고 북한의 경제를 수출 주도형으로 전환해 현재 500달러 수준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뒤 3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 측은 ▲30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30만 산업인력 양성 ▲400억달러 상당 국제협력자금 조성 ▲신경의고속도로 건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지원 등 ‘5대 분야 패키지 지원’을 수단으로 제시한다. 한강 하구의 하중도에 여의도 10배 크기인 900만평 규모의 남북경제협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나들섬’ 구상도 북한에 제시할 당근 중 하나이다. 남측의 기술·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신도시 형태로 해외이탈 중소기업도 유턴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후보의 ‘북한 부흥안’은 통일을 위해 북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 후보의 대북 정책은 한국판 ‘마셜 플랜(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판-“남한에 흡수통일 되지 않으면 불가능”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위해 필요한 북한의 연간 17% 고도성장의 현실성도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점은 남한식의 개발독재형 경제정책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라면서 “이 구상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돼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하면서도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면서 “개발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북한을 경제 식민지화하려 든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측 재반박-협상 테이블 유인책 이 후보 측은 “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한이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당근 내지는 미끼”라면서 “북한에서도 공약 내용에 관심을 보이며 자세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비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대북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핵 폐기 뒤 지원’이라는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박 후보는 ‘북핵 폐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 후보는 ▲평화 정착 ▲경제 통일(작은 통일) ▲정치 통일(큰 통일)이라는 ‘3단계 평화통일론’을 내세운다. 전제조건은 북핵 제거와 군사적 대립구조 해소다. 박 후보 측은 “정치적 통일에 성급하게 매달린다면 혼란을 초래하고 통일 비용만 커질 뿐”이라며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박 후보 측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선민정치로 나와야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면 보상하고, 합의를 깨면 불이익을 주는 ‘변화의 인센티브’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과의 철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시간을 끌 수록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비판-“당근과 채찍 조화 쉽지 않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소신과 힘이 있어 보이지만, 북한이 그 뜻을 전혀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이런 대북정책의 성공을 의심스럽게 한다.”면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부시 행정부의 힘있는 초기 대북정책도 결국 북한의 핵무기 수준만 더 높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박 후보의 공약은 당근과 채찍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 불가 등의 내용에 있어 ‘실패한 부시의 대북정책론’과 거의 같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부시가 결국 북·미 양자 대화와 확실한 인센티브 제시를 통해 2·13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후보측 재반박-행동바탕 신뢰 구축해야 박 후보 측은 “2·13 합의의 핵심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국제사회가 북측의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북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결코 평화공존할 수 없으며, 의구심이 남는 결과는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홍준표·원희룡의 외교·통일 공약 홍준표·원희룡 후보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주장하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달리 ‘햇볕정책 계승’을 외교·안보정책의 큰 틀로 잡고 있다. 홍 후보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통일’을 지향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야 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남북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남북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해 민족동질성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남북 경협에 정부예산 1%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면 북한 경제재건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 후보 모두 ‘실용주의적 노선’을 표방한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난다. 홍 후보는 대미 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원 후보는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 중심의 친미-반미 논쟁을 털고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후보 모두 동북아 중심의 다자적 외교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데는 입장을 같이 한다. 눈에 띄는 공약은 홍 후보의 ‘무장 평화’와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공약이다. 홍 후보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장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는 재외국민의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강화하고, 약 300만명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이다. 재외국민과 동포의 원어민교사 임용 확대도 약속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성 부족’이다. 홍 후보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공약은 추상적이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특구 등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원 후보도 핵 폐기 후의 북한경제 재건 프로그램의 방향이나 규모, 시행 시기 등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창구 유지혜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인질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2명이 희생된 가운데 여성 피랍자 일부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나머지 인질의 석방은 아직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낭보가 들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이대용(83) 전 주월공사를 만났다. 그는 월남 패망 후 공산 베트남 정권에 만 5년간 억류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제3국에서의 ‘최장기 인질’이었다. 그로부터 아프간 인질들을 구해 낼 묘책과 근황을 들어봤다. ●“그들도 탈레반이었다.” 월남이 사실상 패망한 1975년 4월30일. 이 주월 경제공사는 운명처럼 대사관 직원과 교민을 본국으로 안전 귀환시키는 철수 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김영관 당시 주베트남 대사 등 대부분의 공관원과 교민들이 이미 사이공을 떠난 뒤였다. 사이공 공항까지 북베트남군의 포격을 받는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국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베트남 정보공작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에 체포됐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들은 아프간에서 무고한 외국인들을 납치·감금하는 탈레반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그에게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규정한 빈협정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지낼 때도 있었다. 체중이 78㎏에서 42㎏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기 어려운 고통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공사는 “아프간 한인 인질들이 기습적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국가가 구출할 것이라고 믿고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상전향 요구였다. 그는 공산 베트남 측의 ‘가이따우’(인간개조) 공작에 꿋꿋이 버텼다.‘극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거짓 전향은 무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를 알았더라도 전향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세력들로부터 이슬람교로 개종 압박을 받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인 피랍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 전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두 영사가 억류되자 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와 외교 공관망을 총동원해 석방교섭을 펴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베트남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데다 냉전하의 남북관계가 큰 걸림돌이 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통일후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노동당 제3호 청사가 북송 공작에 뛰어든 것이다. ●석방 교섭, 그때와 지금 78년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과 베트남간 비밀 3자회담이 열렸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 전 공사 등의 북송을 최대치 목표로, 여의치 않으면 남한내 수감 간첩과의 교환을 추진하려 한 까닭이었다. 이 전 공사는 “탈레반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들을 맞교환하려는 것과 너무 유사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북측은 “중남미 테러세력들도 자국내 미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수감중인 도시게릴라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억지 사례를 들었다.“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과 간첩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란 남측 주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금언과 함께 석방의 전기는 왔다. 베트남이 미제 및 소련제 무기 등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이 견제에 나서면서다. 중국과 입장을 같이한 북한도 베트남에 캄보디아 철수를 요구하며 틈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정부는 거상 아이젠버그를 활용해 석방교섭을 성공시켰다. 그는 베트남의 외자유치를 도우며 커미션을 챙기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물론 이는 이 공사가 생지옥 같은 긴 수감생활을 견뎠기에 가능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비밀 루트를 개척해 억류 외교관들과 접촉선을 유지하려 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부패한 베트남 관리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탈레반과의 공식 접촉 못지않게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사우디 등의 이슬람기구와 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장사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베트남에도 현지 공장이 있는 한 기업체의 이사로 있다.(주)선진의 장학재단 고문격으로 일선에선 한발 비켜나 있다. 그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과 관련,“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웬반린이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반세기 동안 외세 배격을 부르짖던 원로급들을 예우하면서 은퇴시킨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라고도 했다. 반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선 얼마간 비관적 전망을 했다.“주체사상을 포기,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무너질 판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북한의 웬반린’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는 누구인가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난 이대용 전 주월 공사는 고향의 인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리자 목숨을 걸고 월남했다. 이후 육사 7기로 임관한 뒤 한국전쟁을 맞아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엔군 참전으로 북진이 시작된 이후엔 압록강에 맨 먼저 손을 담근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활약했다. 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의 굴곡 많은 인연이 시작된다.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67년 베트남 대선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이듬해부터 주베트남 대사관 정무공사로 4년간 근무한 것이다.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부공관장격인 경제공사로 부임해 베트남과의 질긴 인연을 확인했지만,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별경찰과 사이공의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전향과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이때 나중에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과도 악연을 맺었다. 박 전 부국장은 억류 중인 그에게 투항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의 정보원이었다. 80년 4월12일 베트남서 풀려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99∼2003년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96년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아 베트남과 이어진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즈엉 찐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와의 인연 이대용 전 주월공사가 베트남 억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던 2002년 초 어느 날. 생지옥 같았던 수감생활의 악몽을 되살릴 일이 생겼다. 그를 치화 형무소로 밀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주한 베트남 대사로. 즈엉 찐 특 제3대 주한 대사.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베트남의 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 요원으로서 이 공사를 신문했던 인물이었다. 이 전 공사는 한국말이 능통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를 ‘튀기’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공사는 걸핏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만나면 죽이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 대사가 이 전 공사가 회장을 역임했던 서울남서로타리클럽의 조찬특강 연사로 나오면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27년 만에 만난 이 전 공사에게 특 대사는 “(신문을 받을 때)‘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선견지명이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미 한-베트남 관계가 북한-베트남 관계보다 더 밀접하게 됐으므로 원한을 누그러뜨리려는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이 전 공사도 “양국이 철천지 원수였던 당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지기처럼 지내며 서로를 돕는 사이가 되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 “제2의 개성공단 건설을”

    “제2의 개성공단 건설을”

    산업은행은 북핵이 동결되고 폐기를 위한 일련의 절차가 진행될 경우 남북 경협 활성화 차원에서 제 2의 개성공단과 주변에 노동력 공급을 위한 배후도시 건설 등을 제안했다. 또 남북한 합영기업 형태로 시·도 단위의 경공업 공장 건립 및 현대화, 북한 내 송·배전 설비의 개·보수를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평양과 남포지역에 경공업 단지를, 원산·함흥·청진 등에는 중공업 단지의 조성 등을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2권짜리 책자 ‘신(新) 북한의 산업’에서 ‘남북한 3단계 산업협력 추진방안’을 밝혔다. 이 방안은 ▲북핵 상황의 지속(1단계) ▲북핵 동결 및 폐기의 과정(2단계) ▲북핵 폐기 이후(3단계) 등으로 나눠 단계별 경협 방안을 구체화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북한이 핵 동결에 이어 폐기 조치를 밝히고 있는 데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예정된 것을 감안하면 2단계 경협 방안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1단계에서 구상했으나 시행되지 않은 대북 송전 등은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안에 따르면 2단계에서는 개성공단 입주를 완료하고 제 2의 개성공단을 건설, 경공업 제품의 생산기지화를 제시했다. 또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공단 내에 남한의 연구소 등을 활용한 교육훈련을 지원하고 공단 주변에는 근로자의 출·퇴근이 가능한 배후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경영이 합쳐진 합작기업보다는 남측이 투자하고 경영에도 참여하는 합영기업 방식으로 분야별 민간기업의 단독 진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한에서 ‘3D업종’으로 취급받는 금속가공 분야에서 북한의 인력을 활용한 설비 진출과 시·도 단위의 경공업 공장의 현대화 등도 예시했다. 대한석탄공사나 광업진흥공사가 북한과 광물자원 공동채굴 등의 협약을 체결할 것도 제시했다. 예컨대 36억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남 단천·백암 주변의 마그네사이트광과 연간 생산량 20만t 규모의 자강도 장강·함북 김책의 흑연광 등을 개발 후보로 분류했다. 남북한 교통과 물류망을 연계하는 한편 6자회담에서의 합의를 전제로 대북 송전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하고 북한 내 송·배전 설비의 개·보수 지원도 밝혔다. 국내 기업과의 인적교류를 통한 북한의 전문인력 양성도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북핵이 폐기된 이후의 3단계 협력방안으로 북한 최대의 공업지구인 평양과 남포에 3.3㎢(100만평) 규모의 경공업 수출특구를 조성, 남한과 일부 중국 기업을 입주시키는 방안을 마련했다. 경공업 이외에도 전기·전자, 정밀공업, 서비스, 유통업 등을 유치할 것을 덧붙였다. 이어 개성과 인천을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하고 개성 인근의 개풍지역을 남북 공동개발구로 지정, 수출전진기지로 삼을 것을 제시했다. 중공업 부문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원산·함흥·청진·남포 등에 수출용 조선·철강·화학 단지의 구축을 구상했다. 중화학 공업의 투자유망 분야로는 자동차·기계·화학·철도차량·시멘트 등으로 분류했다. 앞서 1단계에서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활성화와 분양 추진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 및 도로 개통 ▲개성·금강산 지역의 송전 ▲평양 등지에서의 위탁 가공교역 확대 ▲섬유·신발·비누 등 생필품 관련 경공업 지원과 지하자원개발의 연계 등을 제시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씨줄날줄] 장마와 우기/육철수 논설위원

    세계의 평균 기온이 1℃ 오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안데스산맥의 작은 빙하가 녹고, 해마다 30만명이 기후변화에 따른 질병으로 사망하며, 지구상 생물의 10%가 멸종한단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물의 성장 한계선이 250㎞ 북상해서 남한 전역에서 귤을 재배할 수 있고, 대구에서는 사과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날씨는 또 어떤가. 개인의 일상을 장악하다시피 하고 기업엔 곧바로 돈벌이로 연결된다. 산업의 70%가 날씨의 직·간접 영향권에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52%가 날씨에 따라 왔다갔다 할 정도다. 특히 변덕이 심한 여름날씨는 이제 우산장수나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들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관심사가 기후변화이고 보면, 변화무쌍한 자연의 지배력은 끝이 없다. 요즘 들어 연일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자연의 조화치고는 어째 좀 이상하다. 기상청이 장마종료를 발표한 게 지난달 29일이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나 하듯 사나흘 땡볕이 반짝하더니 열흘 넘게 게릴라성 폭우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다들 날씨가 미쳤다고들 난리다. 어디까지가 장마철이고, 어디부터 비장마철인지 분간할 수 없어서다.8월 들어 내린 비는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에 의한 장마가 아닌 게 분명하다. 기상청은 1주일 전 타이완 해상에서 소멸한 태풍 ‘우딥’의 영향이라고 한다. 장마 직후 장기 폭우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극히 드문데, 이달 들어 두 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1.5℃ 올라 이런 기상이변이 아열대성 기후로 진입하는 징조라는 주장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기상청과 학계에서는 기후변화를 반영해서 이참에 기상예보 용어로 ‘장마’를 없애고 ‘우기(雨期)’ 개념을 도입할 움직임이란다. 일상생활에 가장 민감한 게 날씨인지라, 용어 도입에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모양이다.‘우기’가 동남아시아의 멀고 더운 나라들의 얘기인 줄 알았더니 급기야 우리한테도 옮겨 붙었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좋은 시절은 이제 영영 사라지는가. 온난화에 무신경한 인류에게 자연은 이렇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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