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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양건 부장 정상회담 직전 노대통령 만나

    北 김양건 부장 정상회담 직전 노대통령 만나

    북한의 대남(對南)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9월26일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을 극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정상회담 의제를 협의한 것으로 10일 밝혀졌다. 김 부장의 서울 방문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9월15∼16일 의제 협의를 위해 방북했을 때 제의해 이뤄진 것으로, 정상회담 후인 지난해 11월29일 이뤄진 김 부장의 공식 방문은 두 번째 방남인 셈이다. 김 부장은 9월 서울 방문에서 북측의 공동선언 초안을 제시하고 이 초안과 정상회담 의제에 관해 협의했다. 국정원은 최근 이러한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과 내용 등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종전선언 문제와 관련,‘북핵 신고·불능화 종료시 평화포럼 출범→북핵 폐기 개시시 종전선언을 포함한 4자 정상선언→북핵 폐기 실현시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국정원은 김 원장이 대선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18일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 부장과 나눈 대화록도 인수위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수위측은 국정원의 이같은 대외비 보고 문건이 외부로 공개되자 국정원에 보안감사를 요청하는 등 엄중 대처하기로 했다. 한 인수위원은 “문건 내용을 보면 ‘한나라당이 당선되면 오히려 남한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더욱 과감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등 당선인 쪽에 우호적인 발언도 있어 국정원측에서 일부러 흘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남북 정보책임자 대화록 누가 흘렸나

    대선 하루 전 평양에서 만난 김만복 국정원장과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대화록이 통째로 유출돼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문건은 국정원이 16쪽짜리 자료로 만들어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이다. 대화록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점,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이 화해협력 기조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김 원장의 전망을 담고 있다. 또한 “오히려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붙어 있다. 김 원장의 방북은 처음부터 의혹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남북 최고위 정보 책임자 간 대화는 그 내용이 무엇이건 국가 최고 기밀에 속한다. 기밀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특정 언론에 전해져 즉각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라면 은밀한 정보 활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이번 건은 정보당국 간 신뢰를 무너뜨려 남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인수위는 국정원에 보안감사를 요청하고 관련자를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문건을 작성하거나 보고를 받은 관계자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니 감사 결과가 곧 나올 것이다. 문서의 관리소홀인지 누군가의 검은 거래인지 드러나겠지만 기밀을 흘렸다면 그 행위는 중대한 범죄다. 의도를 밝히고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 중 하나가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고된 지 20분 만에 새어 나간 일도 있었다.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기밀 유출 등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입단속을 당부한다.
  • [그린에너지 포럼-정책 좌담] “CDM사업 남북경협 상생의 새 물꼬될 것”

    [그린에너지 포럼-정책 좌담] “CDM사업 남북경협 상생의 새 물꼬될 것”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북한 및 기후변화 대응정책 수립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서울신문과 그린에너지포럼은 8일 ‘한반도 신재생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교토의정서 발효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CDM(청정개발체제) 사업 공간에서 남과 북이 협력할 경우 서로가 윈-윈하는 새로운 남북경협의 모델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대한상공회의소 박영우 지속가능경영원장(지속가능발전위원회 에너지산업분과위원)과 UNEP(국제연합환경계획 한국위원회) 조정관을 역임한 이명균 계명대교수(에너지 환경정책과), 김창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문위원, 이화수 코리아카본뱅크 이사 등이 참석해 난상 토론을 벌였다. ▶기후변화 대응 방안, 즉 CDM사업이 어떻게 새로운 남북 경협이 될 수 있는가. ●박 원장 CDM 사업은 남과 북의 정치·경제 모두가 상생하는 길이다. 그 이유는 사업을 통해서 남한의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북한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남북의 정치·경제적 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남북간의 긴장완화 등을 통해 줄일 수 있다. 남한 경제성장과 외자유치 활성화에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산업구조 전환 시점에서 CDM 사업을 통해서 남한의 산업구조 전환까지 용이하게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저감 압력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이 교수 대의명분이 있는 경제협력사업이다. 양국의 기술협력과 북한 현대화 기여, 남한의 온실가스 배출권 확보, 남북한 평화정착에 기여한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신정권이 내세우는 실용적 대북정책의 상징적 사례가 될 것이다. ●김 위원 세계적으로 탄소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남북이 공동대처한다는 점에서 대표적 남북 상생 사업이다. 그동안 남북경협에 있어서 너무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CDM 사업의 경우 남북 협력사업이기 때문에 신 정권이 추진하기에 적합하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기는 것이기에 신정부로서는 절묘한 정책이 될 수 있다. ▶대북 CDM사업이 향후 남북경협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이 교수 상호이득을 취하는 사업이다. 과거의 퍼주기식 남북경협은 국민적 반발이 적지 않았다. 받는 측에서도 자존심 상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 사업은 상호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향후 남북경협에 있어 적절한 사업이다. ●박 원장 북한과의 CDM 사업은 산업의 전 분야에서 걸쳐 협력이 가능하다. 산림뿐 아니라 북한의 바이오에너지, 축산 등의 가스를 에너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 북한의 국토개발정책과 경제 산업정책과도 연계가 가능하다. 그만큼 북한에 기회가 많다는 의미이며 북한과의 통일 비용을 줄이고 북한의 경제사회적 안정은 남한의 사회경제적 안정과 연계된다. 북한과의 CDM 사업은 백지 위에서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CDM사업이 갖는 국제적 의미는 무엇인가. 또 국제적 지지나 협력이 가능한지. ●박 원장 유엔의 기후변화협약(3조)을 보면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 CDM이 북한의 모든 정책과 연계해서 간다면 북한의 성장 및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개발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남북 CDM 사업이 성공할 경우 국제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교수 가급적 국제기구와 손잡고 가는 게 북한의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한 방법이다. 일이 시작되면 북한 사람들도 잘 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 것이다.CDM 자체는 다른 어떤 경협 사업보다 효과적이다. 특정구역에 묶이는 지역적 제한을 벗어나 북한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 포괄적인 협력체제가 될 것이다. 두 지역 간에 평화정착에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북한의 기후변화 대책이나 CDM사업에 대한 준비나 의지는 어떠한지. ●김 위원 북한은 올 신년사에서 지구 온난화라는 국제사회 공동과제에 북한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해서 남북경협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북한은 CDM 사업을 환경문제로 접근하고 있으며 북한도 참여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 같았으나 CDM과 관련해 국제적인 정보 부족을 호소했다. 북측 인사들은 북한이 환경보호와 환경개선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자긍심이 있다는 점을 표명했다. 따라서 향후 남북경협에서 환경 문제를 거론한다면 상당히 접근이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해당기관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서 국제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체제안정만 보장된다면 개혁개방을 추진 할 수 있다.CDM사업은 체제 위협적인 요소보다 북한의 개선 또는 현대화 사업에 가깝다. ●박 원장 환경부에서 국제협력관 시절 당시 UNEP 사무총장이 북한과 환경 관련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직접 현장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당시 한국도 한 멤버로 참여한 사실이 있다. ●이 교수 1차적으로 UNEP에서 환경과 관련해 북한을 지원한 사례가 많다.2005년 방콕에서 열린 CDM 워크숍에 북측은 관계자 2명을 파견해 한달 동안 연구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준비를 해 온 것 같다. ▶대북 CDM사업이 신정권이 기대하는 대북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박 원장 CDM사업은 기본적으로 환경문제에서 출발하는만큼 북한이 정치·군사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실질적 접근이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성장과 사회적 안정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고 남북의 동시 안정을 추구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특히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고 남측도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 서로가 윈-윈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동독이 독일 통일 후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서 지대한 기여를 한 점에 비춰 온실가스 감축 사업 즉 CDM 사업은 한반도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교수 참여정부의 일방적 대북 지원 정책에서는 CDM은 의미가 없었다. 반면 신정권은 남북간 ‘주고-받는 경협’을 명확하게 했고 이런 의미에서 CDM은 경제·정치적 실용성에서 새로운 트랙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측과 지구 온난화 대처를 위한 CDM 협력사업 분야는. ●이 교수 전 산업에 걸쳐 있다. 예를 들면 노후된 화력발전소 대체나 소수력발전, 풍력발전 등의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는 물론 사회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송배전의 문제도 해당된다. 따라서 대규모 투자를 요하는 방식보다 소규모 전력공급 방식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이외에도 비료공장에서 나오는 N2O(이산화질소)나 북한 탄광이나 폐광 등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를 안정화하거나 조림사업 등에서 CDM 사업이 가능하다. ●박 원장 이 교수가 제시한 사업들은 남북이 쉽게 합의가 가능한 단기 사업이다. 노후한 화력발전소의 업그레이드를 북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기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남북 협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남북이 협의, 협력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궁극적으로 도시개발과 국토개발, 산업발전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 CDM사업이다. ●이 교수 에너지 인프라는 장기 플랜이다. 발전소 하나 지으면 40∼50년이 지속된다. 처음에 계획을 잘 짜야 한다. 골프로 예를 들면 첫 티오프에서 1도만 빗나가도 공이 떨어진 자리는 페어냐 오비냐가 결정된다. ●김 위원 CDM사업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석유문명에서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패러다임 전환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지구촌 공동의 관심사에 북한도 참여한다는 명분이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저발전된 산업시설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대북 CDM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은. ●이 이사 기후변화 사업은 많은 전문인력과 적어도 3∼4년의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나 에너지관리공단 등은 현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남측에서 초기 단계에서 북한에 조언을 주면서 전문 인력을 교육할 필요성이 많다. ●이 교수 북한이 가장 신뢰하는 것이 중국이며 중국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CDM사업을 수행 중이다. 중국도 처음에는 상당한 고민을 했지만 결단을 내려 사업에 뛰어든 이후 전세계 CDM시장을 휩쓸고 있다.2006년 세계 CDM 매출액 45억달러 가운데 35억달러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의 모델을 공부하는 것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사회·정리 오일만 산업전문기자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개발체제) 지구온난화 가스를 감축하여 기후변화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기후변화 협약상의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온실가스 감축 협력사업이다. 선진국은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도국에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여 사업으로 인한 배출 감축량을 자국의 배출감축 실적으로 등록하고 개도국은 친환경 기술 및 자본에 대한 투자를 받게 되어 자국의 지속적인 개발 달성을 유도한다.
  • [홍순영 칼럼] 미국이 지도자 국가가 되는 이유

    [홍순영 칼럼] 미국이 지도자 국가가 되는 이유

    왜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는 것일까. 월남한 한국인이나 탈북 난민이 한반도가 공산화될까봐 겁이 나서 미리 자유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 달리 보통 한국 사람들이 미국 가서 살고 싶다는 동기는 결국 더 행복한 삶을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미국에서는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말하고 처신하면 작은 사업이나 작은 직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규제나 압박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의 연장선에서 미국은 다원화 사회이다. 미국은 큰 용광로이지만 인종도, 직업도, 생각도, 행태도 다양한 다원화 사회이다. 서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토론하고 존중하며 사는 복합사회이다. 자유사회, 다원화 사회, 이것이 미국 사회의 특성이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자유정신의 역사는 길다. 이미 1776년 미국 독립선언에 자유정신이 건국정신으로 선포된 바 있다. 약 100년 후인 1861년에 링컨 대통령에 의한 흑인해방이 있었고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963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워싱턴 행진이 있었다. 링컨에 의한 흑인해방 선언은 마틴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에 준하는 자유화의 금자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흑인해방의 큰 흐름 다음에 여성해방-여권신장의 큰 흐름이 일어났다. 미국은 지금도 자유민주주의의 제 원칙을 지키고 증진하기 위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자유의 가치를 전 지구촌에 전파하는 것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 이 자유민주주의의 힘에 바탕을 두고 미국은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큰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미국은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강대국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 분야에서도 자연과학만이 아니고 인문과학 분야에서, 더 나아가 철학과 종교학에서도 세계 선두에 서 있다. 물질 분야에서뿐 아니라 정신 분야, 도덕윤리 분야의 연구개발에서도 앞서가고 있으므로 미국의 지도자 국가로서의 지위는 그 기초가 매우 견고해 보인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이데올로기 대결이 첨예했던 동서냉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하였고 탈냉전시대에는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평화질서 유지의 큰 책무를 수행하여 왔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이 전쟁은 군사력에 의한 제압뿐 아니라 점령지역 내의 가치관 문제, 서방 문물에 대한 저항, 빈곤과 족벌정치의 문제, 부족간·종파간 갈등의 문제 등 간단히 얘기하면 치안과 행정 즉, 바른 정치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하여야 하는 다원화 전쟁이다. 다시 말하면 군사력·도덕력·행정력을 함께 필요로 하는 전쟁인 것이다. 이 테러와의 전쟁은 초기의 혁명적 공산주의와 벌인 전쟁과 유사하다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말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리고 이란 및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에서 광의의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국제 공동체의 동참과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전쟁의 승부는 국제 공동체의 동참 정도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군하는 시점과 관계없이 미군의 철수가 곧 미국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철수하였던 미국의 행보를 상기한다면 쉽게 이해되리라 본다. 역사의 흐름은 미국이 지향하고 주도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관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의 진로에 관하여 낙관하고 있다. 홍순영 전 외교부·통일부 장관
  •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이른아침 펴냄

    여행자의 낙원으로 꼽히는 중국 남부 고원 윈난(雲南)에서 시리게 눈부신 엽서가 날아왔다.‘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이른아침 펴냄)는 박노해 시인을 비롯한 7인의 발자국이 꾹꾹 눌러 새겨진 땀내 나는 여행기이다. 남한 면적의 4배나 되는 윈난은 사계절이 공존하는 땅이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발길을 옮기면 우거진 야자수, 하늘에 닿은 설산(雪山)이 장관을 연출하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정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공존하고 있는 건 그러나 계절만이 아니다. 중국 전체 소수민족의 절반이 공존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어김없이 시인의 시선은 소수의 좌표에 오래 머물렀다. 윈난의 이름없는 산마을에서 박노해 시인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나눔문화 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지인에게 긴 편지를 띄웠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밭에서 힘겨운 노동의 나날을 보내는 주민들 모습에 시인은 문득 가난과 분쟁에 얼룩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생각났다. 사진가 이상엽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동료 사진가에게 가슴에 묻어둔 해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속살 같은 고백에 실어 띄우는 윈난의 농촌풍경이 아름답고도 스산하다. 7명의 작가들은 윈난 구석구석의 주름진 풍경들을 뒤지며 소수민족의 치열한 삶의 장면장면을 포착했다. 때로는 지극히 사변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감상에만 기댄 게으른 여행기록으로 마침표를 찍진 않았다. 이 대목에서 책은 힘이 세진다. 사진가 이갑철·정일호, 카피라이터 이희인, 직장인 황문주 등이 함께 썼다.1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지자체 ‘대운하 시대’맞이 잰걸음

    지자체 ‘대운하 시대’맞이 잰걸음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대운하가 속도를 내자 전국이 요동치고 있다. 운하사업에 편승해 지역 발전을 꾀하려는 지자체들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환경 재앙과 식수원 오염, 비효율성 등을 들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린벨트 풀어 조성… 경북 등 전담팀 구성 부산시는 경부운하 건설을 기회로, 아름다운 운하도시로 만들어 아시아의 베니스를 꿈꾼다. 강서구 일대 개발제한구역(3300만여㎡)을 푼 뒤 경부운하의 기·종점인 명지지구에 운하 핵심도시를 만든다는 복안이다. 물론 배후에는 복합물류단지와 첨단산업단지로 꾸민다. 대구시는 8월까지 용역이 나오는 대로 대구지역 낙동강 운하개발 기본계획을 마친다. 한강과 낙동강 수계의 연결, 대구지역 낙동강 연안 산업단지 개발, 부두·여객·화물터미널 구축 등이 골자다. 앞서 시는 국가산업단지 공업용수 확보, 낙동강 치수 종합대책 등을 검토 중이다. 대운하 건설·관리를 담당할 ‘운하청’을 대구로 유치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대운하 전담팀을 구성하고 3월까지 낙동강 프로젝트를 마무리,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낙동강 프로젝트는 생태관광, 유교 문화교육, 고대 문화보전 등 6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것이다. 도는 대운하가 당초 물류 중심에서 생태·관광·레포츠 개념을 포용하는 의미로 확대·보완된 점을 주목한다. 경남도도 남해안시대 프로젝트를 운하사업과 연계한다. 되풀이되는 낙동강 주변 홍수 피해를 줄이는 치수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밀양·남지·합천 터미널에 크루즈 전용 부두를 설치, 부산·마산항 등에 입항하는 국제 크루즈와 묶어 내륙관광사업을 밀어붙인다. 신공항 건설지인 밀양을 항만·항공 운송의 거점으로 개발한다. 낙동강 지류인 남강과 황강의 준설과 생태환경 복원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한다. 강원도는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에 경부운하 원주 터미널을 세운다. 이곳을 횡성과 연계해 산업물류·관광·레저의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도는 취수원을 강변 지하수로 바꿀 경우 팔당 상류지역인 강원도 영서지역의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에 따른 발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친다. 충북 충주시 관계자는 “경부운하가 개발되면 2011년 완공 목표로 올해 착공한 충주호 아래 조절지댐인 탄금호변의 유엔평화공원이나 세계무술테마파크 사업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남, 영산강프로젝트 조기 완성 촉매 기대 전남도는 영산강 프로젝트를 조기에 완성할 수 있는 호남운하 계획을 아주 반긴다. 영산강 뱃길 복원(폭 75m, 수심 6.1m)과 수질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가 만만찮아 전남도로서는 해묵은 숙제였다. 도는 영산호 배수갑문 철거나 통선문 설치, 강바닥 준설과 준설토 처리, 선박이 통과하는 다리의 높이 등 걸림돌을 체계적으로 정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영산강 운하는 영산강 강변도로 개설, 나주에 건설 중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해남·영암 관광레저기업도시,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권 개발계획 등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산강 운하의 최대 수혜자가 될 나주시는 이달 안으로 운하 태스크포스팀을 꾸린다. 신정훈 나주시장은 “영산강 뱃길 복원과 생태계 복원은 인근 8개 시·군의 물류·관광·소득사업과 직결돼 있으나 막대한 사업비 마련이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충남도는 호남 운하보다 서해안을 거쳐 경인운하로 들어가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반응이다. 충남 부여군 관계자는 “금강 주변 자치단체들은 백제 때처럼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금강을 거쳐 서천·부여·공주까지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오염·경제성 등 들어 반대 목청 높여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대운하 계획을 성토하고 있다.180여개 환경운동단체들로 구성된 경부운하저지국민행동은 대운하 건설 전에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영산강 운하를 물류가 없고 물이 없고 경제성이 없는 3무 운하”라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운하의 부당성을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전국종합·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北, 경협 지속 메시지

    1일 발표된 북한의 신년사 격인 노동신문 등 3개 신문의 공동사설 내용을 보면 북한은 그동안 활발히 전개됐던 남북관계의 시계를 되돌리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남한의 새 정부에 대한 비난도 하지 않았다.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남북, 경협에 다른 목소리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군보, 청년보를 통해 신년사 격인 공동사설을 발표하면서 남북 간에는 경제협력을, 북한 내부적으로는 경제건설을 우선 과제로 각각 나누어 제시했다. 북한은 특히 “북남 경제협력을 공리공영,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다방면으로 추진해 나가자.”고 밝혔다. 공동사설은 대선 이후 나온 북측의 첫 공식 반응으로 남북 경협의 지속적인 추진을 제의하는 등 남측의 새 정부를 향한 메시지로 분석된다. 그러나 인수위는 현재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안의 이행 여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보여 향후 남북 경협은 상당기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 자문위원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정상회담의 경협 합의사안은 예산 등을 따져 이행 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 교수는 “개성관광 등과 같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행되겠지만 수천억원의 예산이 드는 경의선 개보수 문제 등은 북핵문제와 연계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은 또 이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 방침을 의식한 듯 “친미사대와 매국배족 행위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밝혔다.●核문제·李당선인 언급 없어 공동사설에서는 핵이나 대미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현재 북핵문제가 핵프로그램 신고 지연으로 다소 불안한 상태이지만 북·미관계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희망하는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의 대화 국면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당선인에 대해서도 비난 등의 언급이 없이 차분한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북한 신년사에 단골로 등장했던 반한나라당, 반보수 대연합과 같은 비판이 사라진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북한이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현실로 공식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주 대변인은 “북측의 유연한 반응에 대해 적극적인 공감을 표현함과 동시에 북한이 핵 불능화와 성실한 신고를 조속히 이행해 새 정부에서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최광숙 김상연기자 bori@seoul.co.kr
  • [대운하] 교수 75%·기업인 25% 반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찬성보다는 반대의견이 더 많았다. 반대가 찬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모르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당선자는 낙동강, 남한강, 금강, 영산강에 총 550㎞인 경부운하와 호남운하를 건설한다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계획’을 밝혔었다. 한반도 대운하를 통한 물류비 감소, 건설경기 부양 등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의 조사결과 경제전문가의 39%는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했다. 찬성은 15%였다.46%는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교수·금융인·연구원에서 반대입장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설문에 답변을 한 교수의 75%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했다. 교수의 찬성률을 17%였다. 금융인중에는 52%가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했다. 금융인중 찬성은 12%였다. 연구원들의 43%도 반대했다. 연구원중 43%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한 연구원은 14.3%였다. 기업인중에는 25%만 반대를 보여 찬성(18%)과 차이가 가장 적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정부수립 60년] 해방·분단·산업화·민주화…도전과 극복의 60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정권들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양대 축과 맞물려 국가를 운영해왔다. 민중혁명과 군부 쿠데타 등 진통속에서도 민주화의 여정을 꾸준히 밟았으며, 결국 문민정부가 확고히 자리잡게 됐다. 또 끊임 없는 정치적 혼란과 한국전쟁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지난 60년간 역대 정권들이 역점을 두었던 핵심정책들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던 주요 이슈들을 살펴본다. ■ 역대정부 핵심정책 이승만 정부(1948년 7월∼1960년 5월)는 한국전쟁 수행과 복구로 인해 정체를 빚다가 토지개혁을 통해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 원조에 의존하면서 소비재산업의 육성을 꾀했다. 박정희 정부(1963년 12월∼1979년 10월)는 3권을 총괄하는 제왕적 위치에서 강력한 행정을 폈다. 공업화·산업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재건·단합, 농·공병진, 수출입국, 새마을운동을 통해 국민의식을 일깨우는 정책을 추진했다. 전두환 정부(1980년 10월∼1988년 2월)는 70년대 후반 심각한 노사분규, 산업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당면과제였다. 이에 따라 정부재정을 축소하는 등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수차례 좌절됐던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노태우 정부(1988년 2월∼1993년 2월)는 광범위한 민주화정책을 추진했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16년만에 부활하고 청문회제도를 도입했다.5·16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를 되살렸으며, 개헌을 통해 표현의 권리와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했다. 전국민 의료보험, 국민연금, 최저임금제 도입 등 굵직한 사회복지정책이 이때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1993년 2월∼1998년 2월)는 30여년만에 들어선 문민정부로서 사회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금융실명제를 도입, 부패 고리 차단과 과세 형평 확보에 나섰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부동산실명제를 단행했다. 그러나 금융개방에 대한 대응체제 미비로 IMF 구제금융이라는 미증유의 환란을 초래했다. 김대중 정부(1998년 2월∼2003년 2월)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외환위기 극복에 정책의 기조를 뒀다.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동해선 연결, 금강산 관광 등 남북 화해·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노무현 정부(2003년 2월∼현재)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뒀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복합중심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에 나섰고, 지방분권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또 한·미 FTA를 타결해 글로벌경제체제에 본격 진입시키는 한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정권별 이슈 (1) 제1·2공화국 1948년 국제연합(유엔)의 감시하에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 같은해 7월20일 국회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돼 8월15일 제1공화국이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1953년 초대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철폐한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3선 당선에 성공했으나, 장기독재에 반대하는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밀려났다.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제2공화국을 물려받았지만 이듬해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로 1년만에 정권을 내줬다.1950년 한국전쟁으로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조인하기까지 수십만명이 숨지고 남북이 60년 넘게 분단되는 결과를 낳았다. (2) 제3·4공화국 5·16쿠데타로 정권을 접수한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에 취임,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1972년 10월 국회를 해산하고 12월 유신헌법을 공포한 데 이어 74년 긴급조치를 선포했다.79년 10월26일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1970년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개통, 물류의 대동맥을 이었다.1977년에는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1970년 청계천 봉제공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71년에는 국가보안법이 국회를 통과했다.1965년에는 베트남전쟁 파병이 결정됐고 74년 육영수 여사가 피살당했다. (3) 제5·6공화국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12·12사태로 1980년 8월 전두환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에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전두환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5월18일부터 열흘동안 광주시민 6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1980년에는 언론기관 통폐합이 이뤄졌다.1980년 처음으로 컬러 텔레비전이 시판됐고 82년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87년 대학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하자 전두환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통령직선제를 선언한 노태우가 제6공화국을 물려받았다. 정부는 87년 11월 발생한 KAL기 폭파사건 배후에 북한공작원 김현희가 있다고 발표했다.88년 아시아에서 2번째로 열린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고 92년 중국과 수교했다. (4) 문민정부 3당 합당을 이룬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1992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30여년만에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96년에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이 비리를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94년 금융실명제 실시를 통해 금융거래의 투명화를 이뤘다.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으나 이듬해인 97년 연쇄부도 사태와 외환보유고 부족 등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94년 성수대교 붕괴,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등으로 수백명이 참사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5)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은 그동안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에서 탈피,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불린 온화정책으로 바꿨다.2000년 남북분단 이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됐고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다. 그해 김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5년간 846억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달성 IMF 구제금융기간을 7년에서 4년으로 앞당겨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됐고 한국이 4강에 올라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6) 참여정부 2004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으로 대한민국 초유의 대통령탄핵사태를 맞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은 기각됐고, 열린우리당은 4월 총선에서 압승했다.11월 임기를 4개월여 앞두고 정부부처의 기사송고실을 3개로 통폐합하는 이른바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추진, 임기말까지 언론과 대립각을 세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기고] 아차산에서 고구려 해맞이를/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너른 벌판 위를 달리던 한줄기 바람이 갑작스레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곳. 백두대간의 광주산맥 끝을 이루고 남쪽을 향해 우뚝 솟아 아차(峨嵯)라고 불리는 곳.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함께 고구려인의 기상과 숨결이 가득한 그 곳이 아차산이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250여년 동안 각축을 벌이다 고구려가 160년간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다. 고구려의 군사보루인 홍련봉을 비롯해 17개의 보루 유적(사적 455호)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호), 아차산 봉수대지(서울시 기념물 15호), 신라 의상대사가 문무왕 12년에 창건한 영화사와 천연 암굴 등 유적이 많다. 현재는 평일 5000여명, 휴일 1만여명의 등산객들에게 휴식과 활력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에 내려 오솔길을 따라 약 15분만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아차산에서는 해마다 새해 첫 태양을 바라보며 한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해맞이를 위해 등산로를 오르다 만난 약수터에서 샘물 한 모금을 마시면 묵었던 고단함이 씻겨지고 정갈한 마음이 든다. 무자년 첫날 오전 7시47분이면 해맞이 광장에서 첫 태양을 볼 수 있다. 아리수를 붉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태양이 떠오르면 한해의 소망을 빌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우렁찬 환호성이 1500년 전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한 고구려의 함성이 되어 울려 퍼진다. 대북타고와 2008개의 풍선이 두둥실 떠올라 해맞이 인파의 꿈과 희망을 싣고 날아오른다. 아차산 정상에서 사방 아래를 둘러보면 길게 누운 용처럼 한강이 흐른다. 경기도 남양주 일대와 서울 강남·송파의 너른 벌판, 남한산이 막힘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곳이다. 팔각정에서 아차산성길로 접어들면 1500년 전 삼국의 흥망성쇠 역사를 간직한 아차산성을 볼 수 있다. 아차산 입구 맞은편에는 홍련봉 1·2보루가 있다.2004년 고려대 매장문화연구소가 발굴한 홍련봉은 남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구려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등 문화재가 출토된 곳이다. 아차산에는 17개 보루 가운데 9개의 보루가 광진구에 있다. 이 한반도 남단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인 아차산에 고구려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아차산 기슭에 그동안 발굴된 유물과 새로 출토될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할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북한, 중국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의 재현 및 온달장군, 평강공주 고분, 강서대묘 고분과 평양성도 재현할 계획이다. 아차산 고구려 역사공원은 단순한 지역사회 문화시설이 아니다.‘미래를 꿈꾸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에 박물관 건립 촉구 범시민서명운동에 1만여명의 시민이 동참했다.10만명의 의지를 모으는 것이 목표다. 이와 함께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민간기구인 사단법인 ‘아차산고구려역사공원조성추진회’를 발족해 민간 차원의 박물관 지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사공원은 송파구에 건립 중인 ‘한성백제박물관’과 강동구의 ‘선사유적지’를 연계한 트라이앵글의 ‘역사·문화·관광벨트’를 구축,1200만명 외국인관광객 시대를 여는 서울 브랜드 마케팅의 충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 쥐띠 해의 첫날, 해돋이를 보러 교통대란을 겪으며 굳이 먼 지방까지 갈 필요 없다. 새해 첫 새벽에 지하철을 타고 가족, 이웃과 함께 손 맞잡고 출발하자.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선조인 고구려인이 올랐던 길을 따라 아차산에 올라보자. 서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일출의 감동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자. 희망찬 새해 첫날 아차산에서 모든 이들의 건강과 행복, 화합과 번영을 기원한다. 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 [수도권 규제 이대로 좋은가] (중) 상수원 보호 멍에

    [수도권 규제 이대로 좋은가] (중) 상수원 보호 멍에

    최근 경기도의원이 ‘탈 수도권’을 선언해 큰 파장이 일었다. 여주 출신 김기수 도의원은 도의회 임시회에서 “각종 규제로 지역경제는 희망이 없다. 규제가 덜한 강원도로 편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중복되는 각종 규제를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군은 전지역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돼 있고 이 가운데 41%인 249㎞는 팔당상수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으로 묶여 있다. 또 10개 읍·면 가운데 9개 읍·면이 한강수변·상수원보호·군사시설보호 구역 등으로 토지이용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여주군과 이웃한 강원도 원주시는 같은 수계지만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1485만㎡ 규모의 한솔오크밸리 관광단지가 조성됐고,347만㎡의 혁신도시와 330만㎡의 기업도시가 각각 건설되고 있다. 강원도 편입을 요구하는 여주 주민들의 심정이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여주뿐 아니라 북한강 수계인 가평·양평·남양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상수원보호와 관련한 규제 외에도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받지만 같은 수계인 강원도 춘천, 화천 등은 규제가 없다. 남한강 수계인 광주·양평·이천 등도 엮시 중복 규제를 받지만 충북 음성·충주·제천·단양, 강원도 원주 등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행정구역에 의한 획일적 규제가 빚어낸 모순이다. 특히 자연보전권역에 속한 지역의 재정자립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인구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자연보전권역 1㎢당 인구밀도는 가평 66명, 양평 97명, 여주 173명 등으로 전국 평균(491명)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재정자립도 역시 양평 17.4%, 가평 21.9%, 여주 38.1% 등 전국 평균(56.2%)에도 못미친다. 경기도는 이에 따라 지역경제 회생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의 폐지나 합리적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최근에는 수정법 적용 대상지역 중 일부를 ‘정비발전지구’로 지정,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수정법 개정안이 수도권 의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 지정 범위를 둘러싼 지자체간 이견과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로 개정안은 처리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경기 동북부 자연보전권역은 수정법에서 제외시켜 중첩규제를 풀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정비발전지구에 접경지역과 자연보전권역의 낙후지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개발연구원 황금회 박사는 “수정법의 가장 큰 문제는 권역 지정 자체가 너무 획일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라며 “과밀억제권역이라도 자연을 보전해야 할 지역이 있고 자연보전권역도 개발이 가능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조건없는 규제 대신 합리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정비발전지구 정비발전지구는 수도권 관련 규제를 예외적으로 완화해주는 지역으로, 광역단체장이 대상지역을 신청하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 위치·규모·지정기간·규제 특례의 허용범위를 정해 건교부장관이 지정하게 된다. 현재 수정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 남북 3100㎞ 물길잇기 이렇게

    남북 3100㎞ 물길잇기 이렇게

    첨예한 논란을 빚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내년 초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빠르게 실행에 옮겨질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당 안팎의 반대를 맞아 “(대운하 건설을)국민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던 이명박 당선자의 후보 시절 입장은 대선이 끝난 뒤 ‘강력 추진’으로 급선회했다. 당선 확정 직후인 21일에 이미 대운하 특별법 제정 추진 방침을 밝혔을 정도다. 한반도 대운하는 남북한 총 연장 3100㎞의 강을 하나로 잇는 범국가적 물길 잇기 프로젝트다.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등 남한쪽 12개 노선 2100㎞를 먼저 연결한 뒤 통일 이후 대동강·청천강 등 북한쪽 5개 노선 1000㎞를 합친다는 구상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강∼낙동강 물길잇기는 한반도 대운하의 간선(幹線)으로 가장 먼저 추진되는 ‘경부 운하’ 프로젝트다. 경부 운하는 한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양쪽을 가로막고 있는 조령(충북 충주∼경북 문경)에 터널을 뚫어 완성된다. 강줄기의 해발고도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 보(洑·물길을 막아 상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강 중간에 설치하는 구조물)와 갑문(閘門·보의 상류와 하류 사이에 생기는 수위차를 조절하기 위한 여닫이 장치)이 각각 16개,19개 설치된다. 수심 6m 이상, 폭 200∼300m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강바닥 준설 작업도 이뤄진다. 전체적으로는 계단식 인공하천의 모양을 띠게 된다. 운항선박의 규모는 2500t급과 5000t급 컨테이너선 두 종류다. 공기(工期)는 4년이다. 예상 비용은 15조원이다. 이 중 60%는 준설을 통해 얻은 8억㎥의 골재를 팔아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자유치를 통해 국민 세금을 들이지 않고 사업을 벌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당선자측은 경부 운하가 완공되면 2020년까지 경부축 컨테이너 물동량의 22%를 담당해 육상물류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운하건설 기간 동안 최대 70만명의 고용이 창출되고 한반도의 생태계가 복원되며 무수한 관광자원이 생겨날 것으로도 기대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희망을 본 사람들] (2) 소년원 출신 대학 합격 김선영양

    [희망을 본 사람들] (2) 소년원 출신 대학 합격 김선영양

    선영(19·여·가명)이는 예쁘다.“소년원에서 생일 세 번 보냈어요. 뭐가 부끄러워요? 이렇게 잘됐잖아요.”라고 말하는 당당함이 매력 포인트다. 김선영양은 내년 봄 ㅇ대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간다.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죽음, 잇단 소년원행으로 점철된 10대의 끝자락에서 따낸 성취이기에 그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선영양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6개월 뒤 가출했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다. 운전기사를 하면서 돈벌이는 곧잘 했지만 사랑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법을 몰라요. 배운 적이 있어야죠.” 운동신경이 좋아 중학교에서 소프트볼을 했다. 신참인데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숏필더로 뛰었다. 그 바람에 텃세에 치여 봉변도 많이 당했다. 없는 형편에 뒷바라지해 준 아버지를 생각하며 참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운동부에서 뛰쳐나와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오토바이도 훔치고, 오락기도 털고 다니다 급기야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사고를 쳤다. 친구 다섯이서 1층 교무실과 2층 교실을 싹쓸이했다. 불우이웃 돕기 모금함에 있던 5만원과 휴대전화 7개가 나왔다. 고작 14살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힘들었어요. 잠은 여자화장실에서 자고, 낮엔 옥상 넘는 게 일이었죠.” 결국 붙들려 16살 때인 2004년 1월 위탁감호 처분(4호)을 받고 강원도의 감호시설에 수용됐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는 바람에 그해 3월 단기소년원 송치처분(6호)을 받고 6개월 동안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옛 안양소년원)에 머무른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2005년 2월 또다시 소년원 송치처분(7호)을 받고 19개월을 지냈다. 방황의 극한에 이르러서야 선영양은 희망을 만난다. 정심학교의 서설(26·여) 선생님이 그 희망이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었어요. 선생님이 대학에 가보라고 권유해서 그게 자연스레 목표가 됐죠.” “날 믿어준 사람을 실망시키긴 싫었다.”는 선영양은 소년원에서 15개월 동안 파워포인트, 한문, 워드, 문서실무사 등 자격증 9개를 땄다. 할머니(71)가 면회 올 때마다 자격증을 하나씩 보여 줬다. 뛸 듯이 기뻐하는 할머니를 보니 욕심이 생겼다. 지난해 4월에는 중·고졸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그때부터 대학에 목숨을 걸었다. 수시 전형으로 응시, 합격 통보를 받은 게 지난달 23일. 기뻐해야 할 날이었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영양은 필기시험을 본 다음날, 방에서 숨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사인(死因)은 당뇨병에 알코올 중독. 선영양은 “그렇게도 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이제는 보고 싶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좀처럼 희망이 끼어들 틈이 없을 것 같은 인생이지만, 선영양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좋은 사람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웃고, 평범하게 잘사는 거요. 나중에 태권도장 차려서 돈 벌려고요.” 글 사진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길섶에서] 사노라면/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오디오 마니아인 친구가 있다. 한국가요에 심취해 있다. LP판만 1만장 넘게 갖고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평, 그의 ‘음악실’을 찾았다. 턴테이블에 곡을 올렸다.‘사노라면 언제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뜨지 않더냐/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내일은 해가뜬다’ 들국화의 명곡 ‘사노라면’이다. 그런데 가수가 달랐다. 이날 ‘사노라면’은 1960년대 자니리가 불렀다.‘뜨거운 안녕’으로 너무나 유명한 가수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고한 길옥윤씨의 작사·작곡이었다.40여년전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니, 충격이었다. 길옥윤은 음유시인이었다. 노랫말이 시였다. 시화전도 가졌다. 이런 가사도 있다.‘흩어지는 꽃잎 시들은 꿈들/진주빛 눈물의 밤이 깊으면/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사람/불꺼진 거리에서’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미국에선 10년전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다. 그의 노랫말을 평가해서다.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도 문학으로 평가받는 날이 올까. 공후인, 황조가 등 고전 시문학도 당시엔 대중가요 가사였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토지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특별전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주요 문화유적의 조사 성과를 망라한 ‘땅에서 찾아낸 역사’특별전을 21일부터 연다. 전국 400곳의 개발사업 예정지 및 7개 시·군에 대한 지표조사와 남한산성 및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문화재 조사 결과가 처음 공개된다. 특히 연천의 호로고루(瓠蘆古壘)를 두 차례 발굴한 성과를 토대로 복원한 고구려 병영과 남한산성의 통일신라시대 건물터에서 출토된 19㎏짜리 초대형 기와도 확인할 수 있다. 토지박물관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국토지공사 사옥 안에 있다.(031)738-7382.
  • [씨줄날줄] 통일신발/황성기 논설위원

    부산이 신발산업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계기는 6·25전쟁이었다. 포화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인 데다 항구가 있어 천연고무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전시 수요를 등에 업고 신발공장이 부산에 자리잡는다. 해방 전 경성고무라는 초기 신발 공장을 갖추었던 군산은 전쟁 이후 생산기지를 부산에 넘긴다.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부산의 신발산업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의 기술과 생산 설비들을 이전받으면서 수출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일본이 경험했던 경쟁력 하락에 따른 퇴출의 길을 한국도 80년대 들어 걷는다.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을 전후로 부산의 대표적인 신발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생산 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겼다.‘신발산업의 메카’라는 부산의 명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회생의 돌파구가 개성공단이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부산의 삼덕통상이 승부수를 던진다. 개성에서 신발을 생산한 것은 2005년 5월. 대부분은 유명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완제품이나 반제품으로 생산되는 것들이다. 딱히 ‘통일신발’이란 브랜드가 있는 게 아니어서 국내에서 개성산 완제품 통일신발을 사 신으려면 이들 OEM 제품을 골라야 한다. 삼덕통상 자체 브랜드로 나가는 신발은 개성산 부품 일부로 제조한 것이다. 수출용 통일신발은 관세문제 때문에 개성산 소재나 반제품을 부산에서 가공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해외로 나간다. 경의선 화물열차가 그제부터 상시로 남북을 오가고 있다. 통일신발 완제품과 반제품이 경기도 의왕역과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컨테이너 화물차가 통일신발을 날랐다. 철도라면 운송비를 20∼3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원가가 줄어 통일신발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냄비에 이어 시계, 신발, 의류 등 개성산 물건이 우리 생활에 자리잡고 있다. 남북경협의 열매가 풍성해지는 만큼 한반도의 평화공존도 단단해질 것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열매가 갈색인 것은 갈대 하얀 것은 억새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열매가 갈색인 것은 갈대 하얀 것은 억새

    식물을 연구하는 일은 식물들을 구분하여 이름 붙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비슷한 식물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특징이 다름으로 해서 서로 다른 종이 되고, 외관상 서로 달라보여도 그 변이가 연속적으로 변하여 구분할 수 없을 경우에는 같은 종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분류된 식물들에게 이름을 붙이게 되는데, 호적을 까다롭게 관리하는 것처럼, 식물의 학명을 붙일 때도 여러 가지 엄격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학문 분야를 식물분류학이라고 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식물들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묶고 나누고 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을 다른 종으로 나눌 때는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하고, 그 특징은 변이가 생기지 않는 것일수록 좋다. 예를 들어 찔레나무와 냉이는 꽃잎 숫자가 각각 5장,4장이라는 특징에 의해 구분할 수 있는데, 두 식물에서 꽃잎의 숫자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두 식물은 나무와 풀이라는 또 다른 특징으로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들처럼 삼척동자가 보아도 다른 식물임을 쉽게 알 수 있는 특징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서로 엇비슷하여 전문가가 보아도 헷갈리는 식물도 많다. 특별한 식물을 야외조사에서 만났다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비슷한 식물로 착각하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비슷하게 생긴 식물들이라도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한 번 관찰하여 자기 것으로 익힌 이후에는 헷갈리지 않고 정확하게 구분해 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나 식물을 취미 삼아 연구하는 이들에게 식물을 얼마나 많이 관찰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식물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쉽게 구분한다. 열매가 하얀 것은 억새고 갈색인 것은 갈대, 키가 더욱 크고 꽃차례가 여러 번 갈라지면 갈대, 산에서 자라면 억새 등의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두 식물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데, 억새가 많은 경남의 어느 산에서 늦가을에 열리는 야외축제를 아직도 ‘갈대제’라고 부르고 있다. 철쭉나무가 없는 한라산에서 해마다 ‘철쭉제’가 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30년 이상 같은 이름으로 불러온 축제이름을 바꾸는 게 꺼림칙하다는 변명도 있을 법하지만, 생물에 대한 우리사회의 무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인 듯해 씁쓸하다. 억새와 갈대는 서로 다른 속(屬)에 속하는 식물이므로 다른 특징이 많아서 구분하기가 쉽지만, 억새속 내에서 여러 가지 억새 종류들을 구분하거나 갈래속 내의 식물들을 구분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억새와 아주 비슷한 식물로 물억새가 있다. 억새와는 서로 다른 종이므로 이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억새의 꽃과 열매에는 긴 까락이 붙어 있지만 물억새에는 없고, 억새는 여러 줄기가 한꺼번에 뭉쳐서 땅 위로 나오지만 물억새는 줄기가 하나씩 띄엄띄엄 나온다. 하지만 언뜻 보아서는 그게 그거 같다. 자유로를 타고 오가며 보는 한강변의 은빛물결 일렁이는 식물은 억새가 아니라 모두 물억새다. 같은 속에 속하는 형제뻘 식물인 갈대와 달뿌리풀도 구분하기 어렵다. 달뿌리뿔은 땅 위에서 기는줄기가 발달하고, 보통 갈대보다 크기가 조금 작다. 달뿌리풀은 산 속의 계곡 주변에 흔하고, 갈대는 바닷가 습지에서 산다. 남한강변에서 갈대 비슷한 식물을 보았다면 달뿌리풀일 가능성이 높고, 갯벌이 발달한 순천만이나 바다가 가까운 한강 하구에는 갈대가 산다. 식물에서 유래한 축제이름들은 그 식물의 바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게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더욱더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과학세상이 될 터이니까.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씨줄날줄] 납북 친구 이재환/황성기 논설위원

    남한에 침투시킨 간첩이 잇달아 체포되면서 대남 공작이 한계에 이른 북한은 1970년대 후반 일본을 무대로 납치를 감행한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는 77년 하굣길에 납치된다. 공작원을 일본인으로 위장해 남에 침투시킬 요량으로 일본어를 가르칠 교관이 필요했던 것이다.78년 데이트중에 납치된 하스이케 가오루도 교관일을 하다가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직후 일본에 극적으로 생환한 인물 중 한명이다. 80년대 북의 납치는 유럽으로 확대된다. 제3국이라 납치가 쉽고 동구권쪽으로 쉽게 빼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모토 게이코(당시 23세)는 83년 유럽에서 유인돼 북한에 간 사례다. 아리모토는 역시 유럽에서 납치돼 북으로 온 남성과 결혼했으나 88년 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사망했다고 일본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에 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측 통고를 받은 바 있다. 미국 MIT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이재환(당시 25세). 고교 1학년때 필자와 같은 반이었던 그는 세차례 충격적인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한다.87년 7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중이었을 그가 ‘의거 입북’했다고 북한 당국이 밝혔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치라고 직감했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검 차장을 지낸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인을 지망했으나 서울대 영문과를 중퇴하고는 길을 바꿔 경영학 교수를 꿈꾼 그와 북한을 연결시키는 일은 불가능했다.99년. 국정원은 그가 탈북을 시도하다 잡혀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고 발표한다. 가족들이 이산가족 상봉을 그리던 2001년. 북측은 적십자사를 통해 그의 사망을 통보하기에 이른다. 38세에 생을 마감한 이재환의 북녘 생활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낯선 땅에서 남녘 가족을 그렸을 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고교 2,3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가수 이광필이 ‘납북된 나의 친구 이재환 사망날짜, 유해를 송환하라’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수용소에서 세상을 뜬 그의 죽음에 애끓는 가족들에게는 제사를 지낼 기일과 고향땅에 묻을 유해가 간절할 것이다.1000여 납북자·국군포로의 생환과 함께 네번째가 될 그의 마지막 소식을 기다린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일반인 230명 첫 개성 나들이

    신새벽 어둠을 뚫고 달린 지 세 시간여. 버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오른다싶더니 그 유명한 박연폭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살얼음이 낀 탓에, 떨어지는 폭포수의 장엄함은 덜했다. 폭포 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북측 남자 관광안내원이 걸쭉한 육담을 던진다. 연못 한가운데에 큰 돌멩이가 하나 박혀 있는데 그 모양을 두고 천연덕스럽게 진한 비유를 던졌다. 남측 관광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박연’이라는 이름도 이 돌멩이에서 유래됐다. 바가지 모양 같다고 해서다. 박연폭포는 황진이·서경덕과 더불어 송도 3절로 꼽힌다. 고려 475년 도읍지로서의 영광과 조선시대 억압의 역사를 한데 지닌 개성이 5일 남한 관광객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새벽 6시 서울 계동에서 출발한 10대의 관광버스에는 총 230명의 일반 관광객이 나뉘어 탔다. 최고령 관광객인 김윤경(87) 할아버지는 북측 영접단으로부터 꽃다발을 전달받고 “살아 생전 고향 땅 개성을 다시 밟아보다니 꿈만 같다.”며 57년만의 고향방문을 감격스러워했다. ●매일 300명출발·요금 18만원 개성관광은 금강산관광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금강산이 내금강까지 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외진 관광지라면, 개성은 비무장지대쪽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명승지를 구경하다 고개만 들면 담벼락 저편의 출퇴근하는 개성시민들,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들 등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지척에서 느낄 수 있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북한이 (개성 개방이라는)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줬다.”며 “금강산∼백두산∼개성을 잇는 삼각 축이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겨울철인데도 이달 개성관광 예약자 수는 벌써 7000명에 육박한다. 북측 안내원의 해설을 뒤로 하고 통일관으로 이동했다. 그 유명한 13첩 반상기와 개성약밥이 점심 상에 올랐다. 점심식사 뒤 선죽교를 찾았다. 고려의 아픔이 담긴 또 하나의 장소다.‘명성’보다는 규모가 작다. 고려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철퇴에 맞아 피흘리며 죽어간 곳이다. 정몽주의 혈흔이라는 검붉은 자국은 후세 사람들이 그럴 듯하게 보이는 돌을 옮겨다 놓은 것이지만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개성관광은 하루에 300명씩 매일 출발한다. 요금은 18만원이다. 개성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빠알간 해야, 온갖시름 안고가거라

    빠알간 해야, 온갖시름 안고가거라

    어느덧 2007년의 끝자락. 각 종 일정들로 빼곡했던 달력도 이제 한 장 남았다.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야 할 때다. 올 1월 1일 오전 7시 26분 경상북도 독도에서 떠오른 2007년의 해는 31일 오후 5시37분 전라남도 흑산도의 바다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1년동안 동고동락했던 정해년의 붉은 해가 펼치는 마지막 빛의 축제에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빈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도 함께 한다. 송구영신의 의식을 치르기 적합한 장소들을 모았다. ●수도권 해넘이 명소 ▲유명산 설매재휴양림 해넘이의 붉은 기운이 스며든 억새꽃 너머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한강의 자태가 퍽 인상적인 곳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본 사람이라면 중첩된 산봉우리들을 배경 삼아 너른 억새밭에 고고하게 서 있던 소나무를 기억할 듯. 산자락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위로 지는 해가 일품이다. 영화에서야 멀리 도시 풍경까지 담을 수 없었겠지만, 실제로 보면 양평 등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와 주변 산자락들이 감동적이라 할 만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트레킹삼아 천천히 걸어가면 입구부터 정상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사유지여서 출입에 제한이 따른다는 것이 흠. 설매재자연휴양림(031-774-6959)에 사전양해를 얻어 오를 수 있다. ▲수종사 경기 남양주시 운길산 수종사는 서울 근교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절집으로 꼽힌다. 뜰 아래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풍광이 빼어나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이 ‘해동 제일의 전망´이라고 상찬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약수가 맛있기로도 소문난 곳.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도 자주 찾아 차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무료 다실인 삼정헌(三鼎軒)에서 향긋한 차를 즐기며 두물머리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운길산 아래서 수종사 주차장까지는 2㎞ 거리. 길이 좁고 가팔라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많다.(031)576-8411. ▲강화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여름철과 달리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장화리 낙조´가 유명하다. 동막리에서 장화리로 이어지는 강화도 남단의 해안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낙조를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화도면 적석사는 개펄위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이 인상적이다. 마니산 남쪽의 동막해변, 석모도의 보문사, 민머루 해수욕장 해넘이도 놓치기 아깝다. 강화군청 (032)932-5464. ▲기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시 용유도 을왕리해수욕장도 유명 낙조 포인트. 연말연시 일출, 일몰여행을 떠났다가 자칫 길거리에서 보낼 낭패를 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해안은 해질녘 항구로 들어오는 고깃배사이로 떨어지는 해넘이가 장관을 이룬다. 충북 충주시 동쪽 계명산 자락은 충주호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충주호를 끼고 달리는 도로변이나 고갯마루 등에서도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tour.cj100.net, (043)850-5344. ●낙조감상 1번지 서해안 일몰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그럴싸한 배경과 어우러지며 운치있게 넘어가는 해넘이를 보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서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인 데다 섬이 많아 일몰명소가 흔하다. 특히 천혜의 절경을 곳곳에 품고 있는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와 고창 등에는 낙조감상 포인트가 산재해 있다. ▲부안 변산반도의 절경은 30번 국도변에 모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100㎞에 달하는 해안도로는 동해안 7번 국도에 뒤지지 않는 드라이브 코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가다 차를 세우면 그곳이 일몰명소다. 서해 3대 낙조명소 중 하나인 채석강은 그중 첫손꼽히는 곳. 수만 권의 고서적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절벽 너머로 지는 해가 일품이다. 변산반도와 서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낙조대 일몰도 빼놓을 수 없는 장관. 붉은 기운이 추운 겨울 바다를 녹여버릴 듯하다. 내변산 자락의 월명암 뒤편으로 오른다. 상록해수욕장 앞 솔섬도 여행자의 눈길을 붙잡는 곳이다. 몸을 외로 꼰 솔섬의 소나무들과 먼바다로 가라앉는 해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든다.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208. ▲고창 호사가들은 전북의 명찰 선운사 낙조대의 일몰을 ‘장엄한 붉은 융단´이라 표현하곤 한다.‘선운사 골짜기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지만, 동백꽃보다 붉은 꽃이 바다속으로 떨어지는 장엄한 광경이 아쉬움을 녹이고도 남을 듯하다. 황금빛 햇살이 아쉬움으로 속살거리며 붉게 물드는 구시포해수욕장과 수백년된 노송과 어우러진 동호해수욕장의 일몰도 숨막히게 아름답다. ▲기타 전남 진도군 세방리는 ‘세방낙조´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이름을 떨치던 곳. 다도해 섬들이 점점이 이어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넘이가 한 폭의 그림이다. 나리-전두-인지-세방리-운림산방-고군회동까지 이어지는 1시간30분짜리 드라이브코스 곳곳에서 낙조를 볼 수 있다. 해남군 땅끝마을, 순천만 등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 충남권에서는 서천군 서면 마량리와 서산시 부석면 간월암, 꽃지해수욕장 등을 품고 있는 안면도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해돋이와 해넘이 동시에 ▲왜목마을(충남 당진) 서해의 대표적 일출과 일몰 감상지다.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도 볼 수 있다. 석문산 정상에 오르면 장고항 용무치와 화성시 국화도 사이에서 아침해가 떠오른다. 묵은 해는 당진군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로 사라진다. ▲마량포구(충남 서천) 천연기념물 마량동백나무숲이 유명한 곳. 낙화하는 동백꽃을 보듯,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일품이다. ▲해제반도 도리포(전남 무안) 고려말 청자를 빚던 도공들의 혼과 더불어 은빛 숭어가 노니는 도리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해넘이와 해돋이 장소. 동쪽에 넓은 함평만을 끼고 있어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다. ▲금산 보리암(경남 남해) 활짝 갠 날씨보다는 연무와 구름이 살짝 드리워진 하늘에 황금빛 태양이 물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금산 정상 부근의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해와 바다 그리고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kao.re.kr)에 가고자 하는 지역의 일출 일몰 시간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글 사진 양평·부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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