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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만에 개방된 지리산 칠선계곡

    10년만에 개방된 지리산 칠선계곡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히는 칠선계곡. 지리산의 계곡 중 가장 길고 험해 ‘죽음의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이 계곡은 1999년 안전사고와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돼 왔다.11일 오후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환경스페셜’은 지난달 자연휴식년제를 끝내고 10년만에 개방된 ‘마지막 원시림’ 칠선계곡을 찾아간다. 칠선계곡은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기점으로 지리산 북사면으로 9.7㎞에 걸쳐 이어진다. 칠선계곡 숲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거의 훼손되지 않은데다 험한 산세 덕분에 인적이 뜸해 남한 유일의 천연 침엽수림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무려 10년의 자연휴식년제를 거친 칠선계곡 숲은 옛 모습 그대로의 평화를 되찾았다. 계곡에서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최근 한반도에서도 발견하기 힘들었던 얼룩새코 미꾸리가 발견됐다. 남한 최대로 꼽히는 500년 묵은 주목나무가 위용을 자랑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고유 수종인 구상나무 숲의 밀도는 지난 10년간 단위면적당 약 15%나 증가했다. 칠선계곡 숲은 말 그대로 ‘희귀 수종 백화점’. 전국의 심산에서도 속수무책으로 줄어들고 있어 안타까웠던 땃두릅나무, 돌단풍 같은 고유종들과 만병초, 백작약, 자주솜대 등 희귀·멸종위기종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계곡의 보존가치는 더한다. 한편, 칠선계곡이 10년만에 일반에 빗장을 열면서 덩달아 바빠진 이들이 있다. 계곡 출입 금지 논란이 있기 한참 전부터 계곡 기슭에 자리잡고 살아온 두지마을 주민들이다. 흙집을 짓고, 약초를 캐며 칠선계곡 한편에 오랫동안 둥지를 틀어온 이들은 최근 계곡의 일반인 개방에 즈음해 새로운 ‘특명’을 받았다.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탐방객을 1년에 4개월 동안만 제한해 출입시키는 이른바 ‘생태예약 탐방제’가 도입된 가운데 그들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게 된 것. 칠선계곡의 빗장이 풀리면서 조심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 산을 위협하는 정복자가 아니라, 산에 기대어 공존하는 겸허한 우리들의 모습을 이젠 기대해봐도 좋을까.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건국 60주년] 국정철학으로 본 대한민국 약사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국정철학으로 내걸고 출범했다. 실용을 바탕에 깔고 200여개 국정과제를 수립했고, 향후 5년간 이 기조에 의해 과제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들은 어떤 좌표를 내세워 국정을 운영했을까. 역대 정부들이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국정철학과 비전, 그에 따른 정책 추진과 간략한 평가는 곧 대한민국 정부 약사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초대 정부는 해방 이후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좌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어렵게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성공한 이승만은 ‘반공’ 및 ‘시장자유주의’를 내걸었고, 결과적으로 현대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행정부로의 권력집중, 그에 따른 독재와 장기집권은 부패로 이어졌고 결국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에 의해 수명을 다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를 국정좌표로 내세웠다.1963년 5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근대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박 대통령은 4회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해 고속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소득격차 심화, 지역개발의 불균형, 물가 폭등 등 부작용이 불거졌고, 특히 대통령 권한 극대화에 따라 정치와 경제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는 문제점을 도출했다. 전두환 정부도 경제정책면에서 ‘경제 제일주의’ 원칙을 세웠다. 다만 박정희 정권 때의 부작용을 의식한 탓인지 ‘복지’와 ‘안정’에도 초점을 맞추었으며, 실제 상당부분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그러나 군사쿠데타 주모자라는 태생적 한계에다 민주화운동 탄압, 장영자·이철희사건 등 권력형 부정사건의 빈번한 발생 등으로 ‘독재·부패정권’이란 오명을 얻었다.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권위주의 청산을 국정목표로 내세움으로써 5공과 같은 뿌리의 정권이라는 부담을 털어 내려고 한 것. 실제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행정부 견제기능이 활발해졌고,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도 향상됐다. 그러나 심각한 노사분규와 학원사태 등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수천억원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이 드러나면서 5공과 마찬가지로 ‘부패정권’이란 낙인을 면치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7공화국 대신 ‘문민정부’로 스스로를 지칭하고,‘개혁과 변화를 통한 신한국창조’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취임 초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등록제 도입, 하나회 해체 및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단죄 등 거침없는 개혁을 통해 90%라는 놀라운 국민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측근 비리와 한보사태 등이 이어지고,IMF구제금융 사태까지 닥치면서 초기 개혁작업은 상당부분 퇴색됐다. 김대중 정부는 50년 만에 처음 이뤄진 여야간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 주권재민 정치를 구현한다는 취지로 ‘국민의 정부’로 정부 성격을 규정했다. 이 시기에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고, 시민의 기본권도 상당히 신장됐다. 또 IMF사태 극복을 위해 경제문제에 국정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 성격을 진정한 국민·시민주권이라는 취지에서 ‘참여정부’로 규정했다. 노 대통령의 취임사 제목인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는 참여정부의 5년 방향타였다.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에 방점을 두는 한편 동북아 번영·평화의 공동체 구현 등 ‘동북아시대’를 강조했다. 그러나 부동산값 폭등과 경제 침체, 소득 불평등 등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이 바닥으로 치달은 상태에서 정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건국 60주년] 한국 60년 신화를 다시 쓴다

    [건국 60주년] 한국 60년 신화를 다시 쓴다

    광복의 기쁨과 극심한 좌우 대립 등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1948년 8월15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과 4·19혁명,5·16군사쿠데타,5·18민주항쟁, 외환위기 등 숱한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2008년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반면 분단국가로서의 한계와 개발독재, 민주화운동 탄압 등 현대사의 한쪽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년을 ‘대한민국 성공신화’로 규정했다. 서울신문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향후 비전을 모색해 보는 기획시리즈 ‘대한민국 건국 60년, 미래로 세계로’를 6일부터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또 세계 1등 도약을 이끄는 해외 한국인 등 국내외에서 ‘초강국 대한민국’을 일구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을 밀착 취재해 소개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충북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中原)지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지리적 요충으로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장미산성을 쌓은 한성백제가 물러난 뒤 고구려는 국원성을 설치하고 5세기 중원고구려비를 남겼다. 신라의 진흥왕은 557년 국원성을 빼앗아 국원소경을 두었고,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은 742년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중원경을 이곳에 설치했다. ●삼국시대 유적 반경 2㎞에 몰려 있어 특히 충주시 가금면에는 반경 2㎞도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장미산성과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중원경의 존재와 연결지을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7층석탑인 중앙탑이 한데 몰려 있다. 따라서 학계는 국원성과 국원소경, 중원경의 행정·군사적인 중심지인 치소(治所)도 현재의 충주 시가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학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중원경 등의 치소를 찾는 작업이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출범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원문화재연구소는 삼국시대 이후 지방행정 치소를 밝히는 것을 포함한 ‘고대 중원경 종합학술연구’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연구소는 당장 가을부터 고구려의 국원성과 통일신라의 중원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 주변을 각각 시굴조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 지역 2만 6000㎡를 대상으로 지하에 유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물리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중앙탑 북쪽의 탑평리에서는 5칸 이상의 대형 건물터를 비롯한 인공 구조물의 하부구조가 대규모로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냈다. 중앙탑 주변에서는 1992∼1993년 한국교원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도 규모가 큰 건물터가 여럿 확인되었고,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기와조각도 상당수 나왔다. 실제로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용전리에서 중앙탑이 있는 탑평리에 이르는 남북 2.1㎞, 동서 1.6㎞의 남한강 주변을 돌아보면 탑평(塔坪)이라는 땅이름처럼 반듯하고 넓은 지역으로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들어서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누암리·하구암리서 신라 양식 무덤 확인 연구소는 특히 탑평의 뒷산에 해당하는 누암리와 하구암리 일대에서 신라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대규모로 확인된 것은 상당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을 중원경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누암리고분군에서는 1989∼1991년 발굴조사에서 모두 38기의 신라고분이 발견된 데 이어 후속 지표조사에서는 봉토 직경이 11m 안팎인 대형 무덤 40기를 포함하여 모두 271기의 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웃한 하구암리고분군에도 400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축조연대를 비롯하여 무덤의 양식과 유물의 출토양상이 모두 누암리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창수 중원문화재연구소장은 4일 “중원경 등의 치소를 확인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은 물론 지역의 최고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의 존재를 하루빨리 밝혀내지 못한다면 자칫 개발의 삽날에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출범 6개월 맞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中原문화’ 정체성 확립 주도적 역할 기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와 부여, 가야(창원), 나주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5번째 지역 연구소로 지난해 12월11일 출범했다. 중원연구소는 이른바 중원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활용가치를 창출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지역에서는 ‘지역문화’ 차원에서 연구되었던 중원문화가 국가차원에서 조사·발굴·연구된다는 점에서 연구소의 출범을 누구보다 크게 반겼다. 이에 부응하듯 중원연구소는 중원경의 치소(治所)를 찾는 시굴조사와 고분군 정밀실태조사,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조사를 비롯한 학술 연구의 기반 조성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올해 ‘중원의 산성’을 발간하고, 중원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별 학술총서도 연차적으로 발간하는 등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장과 학예연구실장 등 2명의 학예연구관과 2명의 학예연구사 등 정원이 9명에 불과해 의욕만큼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실관계 잘못 기술된 것만 40여곳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본문 내용 중 수십 곳에서 사실관계가 잘못 기술됐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주진오(상명대)·박찬승(한양대)·홍석률(성신여대)·이신철(성균관대) 교수가 발견한 오류만 40여곳에 이른다. ‘한국 근·현대사’는 ‘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로 망명한 후 일본 정부가 그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겨 오가사하라 섬으로 유폐했다.’고 적고 있지만 일본이 그를 섬으로 보낸 것은 김옥균이 ‘오사카 사건’이라고 불린 일본 대외 강경파들의 조선침공 작전에 가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진오 교수의 설명이다.또 이준 열사가 1895년에 독립협회에 가담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독립협회의 창립연도는 1896년이며 이준이 협회에 참여했다는 근거도 없다는 지적이다. 최익현이 1868년 대원군의 실정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됐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그가 상소를 올린 것은 1863년이라고 반박한다. 홍석률 교수는 ▲1978년 미·중 국교 정상화를 1972년으로 적은 점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은 별도의 조직임에도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관동군 장교’로 표기한 점 ▲1973년 남북대화 단절 후 1992년까지 공식 접촉이 없었다고 기술해 1985년의 이산가족 상봉과 1990년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을 역사에서 삭제한 점 등을 대표적인 ‘팩트’ 오류로 꼽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북한 부문을 검토한 이신철 교수도 ‘북한에서는 의회나 법원도 김정일과 노동당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며 지시를 거부할 때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거나 ‘대부분의 탈북자는 자유로운 남한 사회에서 나름대로 꿈을 실현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등의 표현도 과장되고 왜곡된 서술이며 탈북자들의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라고 밝혔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월드컵 亞3차예선 중간점검

    한국 축구대표팀이 썩 미더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2010년 6월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난하기만 하다.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티켓은 4.5장.20개국이 참가해 5개조로 진행되는 아시아 3차 예선에서 조별로 2개팀을 추려낸다.10개 팀은 또다시 2개조로 나뉘어 내년 10월 최종 예선을 갖는다. 조별 1,2위가 티켓을 얻고, 각조 3위 중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팀이 오세아니아주 1위팀과 남은 1장의 주인공을 가린다. 아시아 3차예선이 3일 반환점을 돌아선 가운데 호주, 바레인, 우즈베키스탄은 편안하게 남은 일정을 운용하는 반면, 한국이 속한 3조와 5조 팀들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1조에서는 예상대로 호주가 2승1무로 1위다. 카타르(1승1무1패)와 중국(3무)이 뒤를 잇는 가운데 지난해 아시안컵 우승팀 이라크가 1무2패로 충격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2조에서는 확실한 우위가 점쳐진 바레인(3승)과 일본(2승1패)이 이변없이 앞서고 있는 가운데 오만(1승2패), 태국(3패)이 처져 있다. 한국이 속한 3조는 혼전 양상이다. 남한, 북한이 모두 1승2무로 승점 5점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요르단(1승1무1패)과 투르크메니스탄(1무2패)이 가능성을 넘보고 있다.4조에서는 압도적 경기력의 우세 속에 우즈베키스탄(3승)과 사우디아라비아(2승1패)가 싱가포르(1승2패), 레바논(3패)을 압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특히 중동의 강호들이 두루 포진한 ‘죽음의 조’ 5조는 완벽한 안개 속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시리아(이상 1승2무)가 한 걸음 앞서나가고 있지만 이란(3무)과 쿠웨이트(1무2패)도 최종예선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며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조정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복원할지, 그것과 관련하여 사신을 보낼지를 놓고 격심한 논란이 빚어졌다. 척화파는 명분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절교가 불가피하다고 했고, 주화파는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전쟁을 벌이는 것의 위험성을 들어 끝까지 청을 기미(羈)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람들은 대체로 척화파의 논의가 높고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높고 깨끗한 논의’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쟁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준비 없이 갈림길에 서다 당시 ‘명분’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던 조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명 감군 황손무(黃孫茂)였다. 그가 귀국 길에 보낸 서한이 10월24일 조정에 도착했다. 그는 청천강과 압록강, 그리고 평안도의 험준한 지형은 하늘이 준 것이니 병사들을 조련하고 화약과 총포 등을 제대로 갖추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신료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야유했다.‘경학(經學)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經濟)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소. 뜻도 모르고 웅얼거리고 의관(衣冠)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국도(國都)를 건설하고 군현(郡縣)을 구획하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세금을 경리하는 것은 과연 누가 담당한단 말이오?’ 황손무의 비판은 신랄했고 진단은 냉정했다.‘귀국의 인심과 군비(軍備)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장유(奬諭)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십시오.’ 조선을 찬양하고 청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은 황제의 유시문을 들고 왔던 그였다. 조선을 다독여 청과 싸움을 붙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황손무가 본 조선은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청 역시 마지막까지 조선의 본심을 떠보려고 시도했다. 역관 박인범(朴仁範) 등이 들어갔을 때, 용골대는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여 명을 공격하는 데 동참하고, 화친을 배척한 신하를 넘겨주고 왕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박인범 등은 반발했다. 그러자 용골대 등은 왕자와 척화신만 보내주면 청군이 비록 압록강에 이르더라도 침략을 당장 중지하고 두 나라가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제의했다. 박인범 등이 ‘예의의 나라로서 차마 들을 수 없고, 또 전달할 수 없는 말’이라고 거듭 반발하자 용골대 등은 돌아갔다.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침략 결심을 하늘에 고하다 1636년 11월25일 홍타이지는 신료들을 이끌고 환구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를 향해 자신이 조선 정벌에 나서게 된 까닭을 고하는 자리였다. 홍타이지는 축문을 통해 조선이 ‘저지른’ 잘못들을 열거했다.1619년 명을 도와 자신들을 공격하는 데 동참한 것,1621년 이후 자신들이 요동을 차지했을 때 도망하는 한인들을 받아들여 명에 넘긴 것, 정묘년에 맹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누차 그것을 어긴 것, 후금으로 귀순하는 공유덕과 경중명 일행을 공격했던 것, 명에는 병선(兵船)을 제공했으면서도 그것을 빌려 달라는 자신들의 요구는 거부한 것,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에게 유시문을 보내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운운 한 것 등이었다. 조선에 대해 품었던 불만이 모두 나열되었다.‘청의 힘과 역량이 명 못지않게 커졌는데 조선은 명만 편들고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의 요점이었다. 공유덕 등의 귀순을 저지하려 시도하고, 명에만 병선을 제공한 것에 대한 불만이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홍타이지는 곧이어 누르하치의 신주를 모신 태묘(太廟)에도 나아가 자신의 결심을 고했다. 홍타이지는 11월29일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유시문을 내렸다. 조선을 정벌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허물’에 더하여 조선이 청에서 보낸 국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추가했다. 조선 조정이 몽골 버일러들이 내민 편지를 퇴짜놓았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평안감사 홍명구에게도 ‘유시문’을 보냈다.‘조선이 패만하고 무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병’들에게 조선에서의 행동 지침을 하달했다.‘인명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 것, 대군이 통과하는 지역의 사묘(寺廟)를 파괴하지 말 것,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말 것, 항복한 자를 죽이지 말고 치발(髮)할 것, 망명해 오는 자를 받아들여 보호할 것, 사로잡은 백성들의 가족을 서로 이산시키지 말 것, 부녀를 폭행하지 말 것’ 등이 그것이었다. 12월1일 조선 원정에 동참할 몽골 버일러들이 병력을 이끌고 심양에 집합했다. 홍타이지는 이날, 정친왕(鄭親王) 지르가랑(濟爾哈朗)에게 심양에 남아 도성을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아지게(阿濟格)를 우장(牛莊)에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조선을 공격하는 와중에 혹시라도 명군이 배후에서 역습해 오는 상황을 우려한 조처였다. 우장은 압록강과 발해만으로 연결되는 전략 요충이었다. 당시 청은 명이 수군을 이용하여 발해만으로 들어와 내지에 상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명의 위협을 염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월2일 오전 홍타이지는 대군을 출발시키기에 앞서 당자(堂子)에 나아가 삼배구궤두례(三拜九頭禮)를 행했다. 당자는 까치를 신성시하는 만주족 샤머니즘 신앙의 상징물이었다. 이어 팔기의 깃발들을 도열해 놓고 주악을 울리며 다시 배천례(拜天禮)를 행했다. 홍타이지는 이어 도도(多鐸)와 마부대 등에게 병력 1300명을 따로 주었다. 그들 가운데 300명은 상인으로 변장시켰다. 그들을 신속히 서울로 진격시켜 궁궐을 포위하려는 깜냥이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홍타이지의 생각이었다. ●무너진 통신체계 조선 침략에는 만주와 몽골군뿐 아니라 명에서 귀순한 한족 출신 장졸(-漢軍)들도 대거 동참했다.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尙嘉喜)를 비롯하여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등 한군 지휘관들이 그들을 이끌었다. 청은 조선을 공략하기 위해 만몽한(滿蒙漢)의 모든 역량을 사실상 총동원했던 것이다. 한군들은 특히 홍이포(紅夷砲), 대장군포(大將軍砲)를 비롯한 중화기의 운용과 운반을 맡았다. 12월9일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은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몰려오는 상황을 인지했다.‘병자록’에 따르면 이미 12월6일부터 청군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알리는 봉화(烽火)가 여러 차례 올랐지만,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그 상황을 서울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적이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 봉화가 알려질 경우, 서울에서 소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9일 적군이 이미 순안(順安)을 통과하여 안주를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야 김자점은 장계를 올렸다. 청군은 질풍같이 내달렸다. 조선은 청군의 철기(鐵騎)와 야전에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 주로 산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전술을 구상했다. 하지만 청군은 조선군이 대비하고 있는 산성을 공격하여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서울로 돌격하는 전술을 택했다. 사실 의주 부근의 백마산성도, 평양 부근의 자모산성도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로에서 적 기병을 차단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봉화마저 제때 올리지 않았고, 평안도 각지에서 올린 변보(邊報)는 청군 기마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는커녕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은 이렇게 시작부터 음울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노원구, 새터민 지원 ‘SOS’

    노원구, 새터민 지원 ‘SOS’

    노원구가 몰려드는 ‘새터민(북한 이탈주민)’으로 고민에 빠졌다. 새터민을 위한 다양한 복지정책 추진이 빈약한 살림살이(재정자립도 28.8%)로 사실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통일부, 보건복지가족부에 새터민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건의했다. 노원구는 2일 정부와 서울시에 새터민의 지역편중 개선과 새터민의 고용촉진을 위한 지원 건의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노근 구청장은 “새터민의 조기 정착과 자립을 위해 직업 교육과 취업 알선 등을 펼치고 있지만 재원 부족으로 고민”이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호소했다. 자치구별 새터민 거주 현황을 보면 노원구는 1006명으로 양천구(1042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특히 영구 임대아파트와 소형아파트가 밀집한 데다 상계뉴타운, 노원마을, 중계동 일대 개발 등으로 SH공사의 임대주택 거주 대상자인 새터민의 유입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2004년(140명)을 기준으로 해마다 100명 이상의 새터민이 노원구에 둥지를 틀고 있다. ●1006명 유입… 주택지원 등 큰 부담 구는 연초에 이들을 위해 8개 분야 20개 사업을 선정해 ‘토털 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 교육과 직업 훈련, 고용 촉진, 의료, 문화, 인식 개선, 종교단체 결연 등 지원 대책이 총망라됐다. 안정적 거주를 위해 직업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정보화 교육과 한글·외국어 강좌, 취업 상담, 직업 훈련 등이 마련됐다. 특히 당현천 복원 등 20개의 구청사업 현장에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자체 능력만으로 모두 해소하기엔 벅차다는 주장이다. 우선 재정 악화를 꼽는다.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자가 전국 자치구 가운데 1위인 데다 새터민마저 몰리면서 복지비의 지출이 과다하다는 것이다. 구 재정자립도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스물 네번째다. 또 새터민의 집단화로 지역 주민들과의 빈번한 마찰도 부담스럽다. 이들의 재사회화 교육과 주택 문제도 골칫거리다. 구 관계자는 “2개월간의 하나원 교육만으로 남한사회의 적응은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구는 정부에 ‘새터민 집단 자치구에 특별보조금 교부’를 요청했다. 가중되는 복지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또 새터민의 거주지도 SH공사의 공공임대주택에서 탈피해 주공아파트나 민간 소형아파트, 국민임대아파트, 다가구 주택 등에도 입주시킬 것을 건의했다. ●자치구별 분산배치 등 요구 서울시에는 양천·노원·강서구 등 특정 자치구에 새터민을 집중시킬 것이 아니라 재정 자립도가 높은 자치구에도 분산 배치할 것을 요구했다. 재사회화 교육과 관련, 새터민의 교육 단위를 6개월 이상으로 늘릴 것을 주문했다. 또 의무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새터민에겐 기초생활수급 삭감 등의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주민자치과 최낙조 주임은 “심한 북한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국 동포보다 더 어렵다.”면서 “한국어 능력시험을 도입해 언어와 문화 이질감을 우선 해소시켜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강남구 “담배 연기까지 뿌리 뽑는다”

    담배 없는 청정구역을 만들려는 강남구의 의지가 대단하다. 도로에 함부로 버려지는 ‘꽁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이번에는 담배 연기조차 없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강남구는 4일 오전 10시 지하철 2호선 강남역 7번 출구에서 ‘담배연기 없는 강남거리 만들어요’라는 제목의 행사를 연다. 제13회 환경의 날을 맞아 ‘강남의제21시민실천단’‘강남한의사회’‘서울의료원’ 등이 참여한다. 행사에는 환경시범학교인 휘문중학교 청소년적십자단(RCY)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원하지 않는데, 들이마시는 담배가 싫다는 메시지를 어른들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행사장 주변에는 꽁초 무단투기 단속단 전원이 나와 흡연가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도록 했다. 강남에서는 도로에 꽁초를 함부로 버리면 과태료 5만원을 물게 된다. 결국 꽁초 단속에 이어 이제는 거리에서 내뿜는 담배연기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도록 조심해야 하는 셈이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거리에서 흡연하지 않기 서약식’‘흡연 때 체내에 누적되는 이산화탄소량 체크’‘금연 클리닉’‘금연침 시술’ 등도 열린다. 강남구는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경기고등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금연구역 선포식’을 갖고 지역의 75개 전 초·중·고교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금연구역의 지정으로 청소년인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사들도 담배를 피우려면 운동장을 지나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강남구 관계자는 “싱가포르 등 환경 선진국에서는 도로를 걸으며 흡연하는 행위도 금지하는 만큼 강남이 앞장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中에 대지진 이어 100㎜ 폭우 ‘강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에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쓰촨(四川)성 대지진 피해 복구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폭우가 남부 지방을 강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31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남부지방에 쏟아진 비로 12개 성과 도시에서 93명이 사망하고 43명이 실종됐다.물에 잠긴 농경지가 57만㏊에 이르고 912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가옥 4만채가 붕괴되는 등 직접적인 경제손실만 50억 위안(약 7500억원)으로 추산된다. 비는 구이저우(貴州), 후난(湖南), 장시(江西), 광시(廣西), 광둥(廣東), 저장(浙江), 푸젠(福建),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장수(江蘇), 상하이(上海) 등에 피해를 주고 있다.100㎜ 이상 큰 비가 내린 지역만 남한의 절반 가량인 4만7000㎢에 이르고 50㎜ 이상의 비가 내린 지역은 총 45만㎢에 이른다.가장 피해가 컸던 구이저우에서는 홍수와 산사태로 가옥이 붕괴하면서 43명이 숨지고 27일 밤부터 다시 쏟아진 비로 19개 시·현이 물에 잠겼다. 중앙기상국은 남부지방과 구이저우를 중심으로 앞으로 10일 이상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일단 강수량은 60∼90㎜로 예상되지만 푸젠, 광둥 일부 지역에서는 200㎜ 이상의 폭우에, 태풍급 강풍도 예상된다.이에 푸젠성은 지난 30일 오후5시 황색경보를 발령했으며 광둥성도 폭우 예비경보를 발령하고 저지대 주민들을 긴급대피시키고 있다.국가재난방지대책본부는 비 피해가 확산되자 홍수예방 3급 경계령을 내리고 구이저우, 후난, 장시 등에 재난 대응을 지휘하기 위해 3개 공작조를 파견했다. 이번 비는 쓰촨 지진으로 형성된 자연호수 탕자(唐家)산 언색호의 수위도 733.67m로 높였으며 저수량은 1억 8000㎥로 불어났다.이에 중국 정부는 언색호에 물길을 내기 위해 투입됐던 무장경찰, 인민해방군 등으로 구성된 1000여명의 작업반을 철수시키는 등 방류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이런 가운데 지진 구호작업을 벌이던 군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 헬리콥터는 31일 쓰촨성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진 상공에서 안개와 강한 난기류에 휩싸이면서 추락했다. 탑승자 15명 중 생존자 여부 등 정확한 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중국은 1일 어린이날을 맞으면서 새삼 재해의 비극을 되새겨야 했다. 지진 피해 어린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중국중앙방송(CCTV) 등 전국의 방송사들이 앞다퉈 마련한 어린이 특집행사 등이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jj@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14) 설악산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14) 설악산

    설악산(1708m)은 한반도의 가장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중앙부에 자리잡은 산으로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양양군, 고성군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다. 최고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백두대간을 이루는 북주릉, 귀떼기청봉(1578m)과 안산(1430m)이 솟은 서북릉, 권금성과 화채봉(1320m)을 잇는 화채릉, 가리봉(1519m)을 품은 서릉 등이 뼈대 구실을 하며 그 사이사이에 천불동계곡, 백담계곡, 흑선동계곡, 십이선녀탕계곡 등 깊고 긴 계곡을 빚어내고 있다. 주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인제 쪽을 내설악, 동해 쪽을 외설악, 그리고 오색과 양양 쪽을 남설악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1965년 천연기념물 171호로 지정되었으며,1970년부터는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또한 1982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설악산은 명산다운 경관과 규모에 걸맞게 다양하고 귀한 식물들을 키워내고 있다.1000여 종류의 식물이 생육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는데, 이는 남북한을 합쳐 대략 3500여 종류의 식물이 자라는 것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4분의1쯤에 해당한다. 자생하는 식물의 숫자로만 볼 때는 남한에서 가장 많은 식물이 자라는 제주도가 1800여 종류, 산역이 넓은 지리산이 1500여 종류여서 설악산은 이에 못 미친다. 오히려 오대산이나 치악산과 비슷한 숫자다. 하지만 그 안에 자라고 있는 희귀식물들로 말한다면 한라산에 버금가는 산으로서 설악산을 주저 없이 꼽을 만하다. 설악산에는 그만큼 귀중한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는 셈인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주로 북한에만 있는 식물이 설악산까지 내려와 자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 식물들은 백두산, 금강산 등 북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남한에서는 설악산에만 자라는 것들이다. 이런 북방계식물들은 설악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 되고 있는데, 가는다리장구채, 금강봄맞이, 난쟁이붓꽃, 노랑만병초,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바람꽃, 봉래꼬리풀, 비늘석송, 숲개별꽃, 월귤, 장백제비꽃, 홍월귤 등이 있다. 둘째, 높은 바위봉우리와 능선들은 희귀한 고산식물들이 자라기에 알맞은 자연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발 1708m의 대청봉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지는 북주릉, 서북릉, 화채릉, 서릉 등이 고산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 능선들 곳곳에 솟은 높은 바위봉우리들이 고산식물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능선에는 바위가 노출된 곳이 많으며 어떤 곳은 고산초원지대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런 곳에 많은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기생꽃, 눈향나무, 다북떡쑥, 닻꽃, 댕댕이나무, 들쭉나무, 등대시호, 땃두릅나무, 만병초, 산솜다리, 산쥐손이, 솔체꽃, 애기사철난, 이삭단엽란, 자주솜대, 참바위취, 털진달래 등이 설악산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이다. 설악산 식물의 귀중함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이 많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특산식물 400여 종류 중에서 60여 종류가 자란다. 설악산의 한국특산식물 숫자는 한라산의 70여 종류에 다음가는 것으로, 설악산보다 덩치가 큰 지리산의 40여 종류보다도 많다. 고산구슬붕이, 금강초롱꽃, 금마타리, 만리화, 모데미풀, 요강나물, 왜솜다리, 산앵두나무, 솔나리, 연잎꿩의다리, 참배암차즈기, 털댕강나무, 홀아비바람꽃 등이 설악산에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이다. 이처럼 수많은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설악산은 학자들은 물론이고 식물동호인들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봄과 여름의 중간 시기로서 다른 산에서는 꽃이 핀 식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맘때에도 설악산 능선과 숲 속에서는 고산구슬붕이, 댕댕이나무, 자주솜대 같은 희귀식물들이 꽃을 피운다. 자주솜대는 높은 산의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덕유산, 방태산, 소백산, 지리산, 태백산 등지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설악산에 가장 많다. 해발 1200m 이상의 숲 속에서 큰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꽃은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 볼 수 있는데, 처음에 필 때는 노란 빛이 도는 녹색이지만 나중에 자주색으로 바뀐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종이며,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설악산의 희귀식물들은 고산능선이라는 악조건에 적응하며 자라온 것들이기 때문에 한 번 훼손되면 인위적인 복원이 결코 불가능하다. 설악산의 희귀식물을 지키는 일, 그것은 설악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짝퉁 김정일’ 금강산 방문에 北 ‘화들짝’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입니다.” 최근 ‘김정일 피살설’이 국내외에 큰 파장을 불러온 가운데 일본 아사히신문이 ‘짝퉁 김정일’ 김영식씨의 금강산 방문기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신문은 “김영식씨를 처음 본 북한안내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과 닮은 모습 때문에 영화에도 출연했던 김영식씨는 지난 22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방문했다. 처음 김영식씨를 본 북한 안내원들은 “감히 위대하신 장군님과 비교하다니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비슷한 외모 덕분에 영화에도 출연했다고 하자 “남한에서는 그런 일도 있냐?”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끝으로 아사히 신문은 “김영식씨가 올해 백두산에도 오를 계획이며 개성관광도 신청했다.”며 “개성을 방문할 때는 위원장과 똑같은 점퍼를 입고 갈 생각”이라는 김영식씨의 계획도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논쟁의 장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논쟁의 장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왜곡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내의 반체제운동을 선도했고, 직접적으로 민중혁명을 촉구하는 북한의 대남전략을 도왔으며, 전후 일본인에게 부정적 한국상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한상일) “‘통신’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저항의 글이다. 박정희 독재와 싸우기 위해 과장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화된 사회가 가능했겠는가.”(지명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통신’)이 마지막 편지를 띄운 지 20년 만에 논쟁의 장에 호명됐다.‘통신’의 필자는 ‘TK生’이다.‘TK生’은 1973년부터 88년까지 15년간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통신’을 연재했다. 국내 언론이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절,‘통신’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의 현실을 일본과 세계로 알리는 창이었다.‘TK生’은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다.‘사상계’ 편집장을 지낸 그는 72년 10월 일본 유학을 떠나 20년간 망명과도 같은 생활을 하며 ‘통신’을 썼고, 올 2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을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최근 한상일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통신’을 비판하는 주장을 담은 책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세카이와 한반도’(기파랑)를 내놓았다. 한 교수는 ‘세카이’ 창간호인 46년 1월호부터 89년 12월호까지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세카이’가 ‘북한-선 남한-악’이란 흑백논리로 당시의 한국사회를 왜곡했다고 결론지었다. 한 교수는 ‘세카이’의 한국 인식에 ‘통신’이 결정적 악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그는 ‘통신’을 “황당무계한 유언비어를 통해 반정부 활동과 민중혁명을 촉구한 글”로 혹평하며,‘통신’이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팩트’의 부정확성을 지적했다.“민주화란 이름으로 거짓 정보, 근거 없는 소문, 반정부 집단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유언비어 등을 진실인 양 전달”해 독자들에게 “추악한 한국의 정권, 그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이란 논리에 몰입하게 했다.”는 것이다.‘통신’과 달리 한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한 민족주의 기획’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한 교수의 주장에 대해 ‘TK生’ 지명관 전 교수는 “논평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맞받았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폭압적 정권에 맞서느라 부정확한 정보가 확대 해석됐을 수 있다.”면서도 “학문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는 별개로 ‘통신’은 긴급조치 하에서 달리 선택할 수 없었던 치열한 싸움의 수단이었다.”고 못 박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한 교수의 긍정적 평가에 대해서도 지 전 교수는 “오로지 ‘경제성장’이란 잣대로만 시대를 논한다면 잔인한 인권침해와 억압적 통치를 간과하게 된다.”면서 “박정희 정권이 계속됐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반박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씨줄날줄] ‘후계자’ 장성택/김인철 논설위원

    이명박 정부의 2인자라는 평을 듣던 이재오 의원이 26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권교체의 수훈갑이라 할 이 의원이 떠나는 표면적인 이유는 단순하다.4·9총선에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선거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국민의 지지가 곧 권력의 출발점인 셈이다. 북한에서의 권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바로 김정일(66) 국방위원장의 의지다.2003년 10월 이후 장성택(62)의 동정이 매체 보도에서 사라졌다. 김일성 사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아 김정일체제 구축에 앞장서 온 그다. 김 위원장이 ‘경희의 말은 나의 말과 같다.’고 할 정도로 아끼는 친동생 김경희(62)의 남편으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던 2인자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로 숙청됐다는 등의 설이 나돌았다.“장 부(부)장이 남조선에서 폭탄주를 너무 먹고 몸을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쉬도록 했다.”2002년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서울, 포항 등지를 둘러보고 갔기에 남한에서도 관심이 컸던 그의 잠적에 대해, 김 위원장이 2005년 6월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설명했다. 그 누구의 부침이든 김 위원장의 의지에 달렸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북한의 권력승계가 5년 안에 이뤄지면 장성택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백승주 국방현안팀장이 작성한 ‘북한 김정일 후계체제의 특성과 대미정책 조정 전망’에서다. 백 팀장은 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작성한 논문에서 북한 권력 내부에서 당장, 또는 향후 5년동안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면 개인적 자질과 정책 입안 능력에서 큰 장점을 지닌 장성택과 김정남(37)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장성택을 2005년 말 당 중앙위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시켰다. 이듬해 3월에는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을 고위 경제관료 등 30여명을 이끌고 둘러보게 했다. 정남이나, 정철(27)·정운(24)에게 이렇다 할 직책을 주지 않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훗날 장성택이 권력의 주체가 될지, 단순 후견인으로 머물지 지켜볼 일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열린세상] 틸팅을 기다리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틸팅을 기다리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할머니는 용케도 궂은 날씨를 미리 알아차렸다.“날이 궂을라나…”라는 할머니 혼잣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캄캄한 밤하늘에서는 이내 비가 내렸다. 신기(神氣)탓은 아니었고, 먼 십리 바깥 철길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기적 소리를 듣고, 날씨를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밤이면, 할딱거리는 증기기관차의 숨찬 소리까지 기적 소리에 묻어와 귓전에 꽂혔다. 명주실밥처럼 가느뎅뎅한 소리였지만, 쾌청한 여느 날과는 달리 아주 또렷했다. 그럴 때면, 마치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더부살이나 하는 듯 철부지 어린 가슴에도 아련한 향수가 피어올랐다. 어디론가 훌쩍 나들이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고향집에서 충북선 철길은 초간(稍間)했다. 말이 십리였지, 오리는 더 보태야 들어맞을 법한 거리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차는 대단한 구경거리였고, 기차를 타는 호사는 쉽게 엄두를 내지도 못했다. 그 알량한 기차 나들이 중에 어머니와 함께 충주에 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충주가 충북선 종착역이었는데, 어디선가 기차에서 내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러고 다시 기차를 탔다. 훗날 지도형(地圖形)퍼즐을 꿰맞추듯 찾아낸 해답은 남한강 지류 달래강을 건넜다는 데까지 미쳤다. 어디를 가나 기차가 들고 나는 정거장 풍경은 신기했다. 지금은 철도 박물관에서나 봄 직한 시그널이며, 이를 멀리서 한번에 움직이는 레버 따위가 다 그랬다. 철길 옆에 납작 엎드린 레버를 젖히면, 멀리서 높다란 시그널이 팔을 훌쩍 들어올리는 시늉으로 기차가 어서 들어오기를 재촉했다. 이를 기다렸던 기차는 냉큼 플랫폼으로 기어들었다. 조무래기들에게 기차 화통은 기관차라는 말보다 정겨웠다. 그 화통 이마에 붙었던 ‘푸러’라는 이름표가 여태 마음 속에 박혀 있다. 드넓은 대초원을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의 낭만이 제법 그럴듯하게 묻어난다. 그러나 충북선같은 지선을 달린 ‘푸러’가 끄는 힘(견인력)은 9t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경사진 철길을 단숨에 올라채기에는 숨이 가빴다. 가끔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시 다잡아 헐떡대고 올라가는 화통 몰골이 어린 마음에 걸렸다. 기차를 바라보는 생각에 주눅이 든 어느날 귀가 번쩍할 따끈한 소식 하나를 거머쥐게 되었다. 소 달구지를 부리는 동네 어른이 경부선 철길 연변의 부강이라는 데를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다시 기차에 힘을 실어주었다. 경부선 기차는 하도 빨라 모퉁이를 돌려면, 한쪽 바퀴를 번쩍 들어올린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나이 몇 살을 더 먹어 허풍이었다는 확신이 섰지만, 어른을 다그쳐 시비를 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허풍으로 치부했던 고향 동네 어른의 말 비슷하게 커브를 돌 때 안쪽으로 기울어져 달리는 열차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솔솔 풍문으로 들리더니만, 이제 호남선 함평과 무안 사이에서 시험 운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형에 하이테크 춤추는 열차 따위로 찬사를 받는 이 열차가 바로 틸팅인데, 안전성 검증이 끝나는 2012년 이후 곡선 구간이 많은 전국 지선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릴 적에 탔던 느림보 기차 대신 틸팅이 충북선에 들어가는 날 ‘말은 느려두, 기차는 빨러유’라고 좋아라 하는 순박한 사람들 틈에 끼어 그 열차를 타고 싶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로케이션 현장이었던 충북선 산골 정거장 근처에는 지금도 여울물 소리가 도란도란하고, 바람은 무척이나 달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굳이 큰돈을 들여 지선에 틸팅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 모양이다. 그럴 순 없다. 경부선 같은 간선철도에서 누리는 철도산업의 서비스는 전국에 골고루 돌아가야 옳지 않겠는가.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21) 나룻배와 강 건너기

    김홍도의 그림 ‘나룻배와 강 건너기’를 보자. 나룻배가 두 척이다. 이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 원래 조선의 배는 바닥이 넓은 평저선이다. 일제시대 이후 평저선이 사라지고 현재 우리가 보는, 바닥이 삼각형인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유원지 같은 곳에서 두세 사람이 타는 작은 배의 바닥을 보면 모두 평평하다. 안정성을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배가 과연 조선 배의 전통을 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지금도 조선 배의 전통에 따라 평저선을 뭇는 장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림에는 나룻배가 둘이다. 위쪽 나룻배에는 사람 열 둘과 소 두 마리가 타고 있다. 소까지 태웠으니, 꽤나 큰 배다.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자. 고물 쪽의 두 사람은 사공인데, 큰 배라 힘이 드는지 둘이 같이 노를 젓는다. 바로 그 앞에 더벅머리 총각 하나와 맨상투의 상한(常漢)이 앉았는데, 마주 앉아 곰방대를 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행이 분명하다. 두 사내 앞에 아이를 동반한 아낙네 한 사람이 있다. 머리에 올린 것은 옷이다. 이런 식으로 머리에 옷을 올리는 장면은 신윤복의 그림에도 나오니, 이 당시 풍습이었던 것이다. 아낙네의 앞에 삿갓을 쓴 사내가 있는데, 아마도 상한일 것이다. 그 뒤에 갓을 쓴 양반이 있다. 양반은 뒤에 길쭉하게 포장한 것을 지고 있는데,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옆에 소 두 마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 있다. 등에 잔뜩 진 것은 땔나무다. 서울의 저자에 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소 사이에 더벅머리 총각이 곰방대를 물고 있고, 왼쪽 소의 왼쪽에 다시 삿갓을 쓴 사람이 있다. 아마도 삿갓을 쓴 두 사내와 총각은 땔나무를 팔러가는 일행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앉아 있고, 또 그 왼쪽에는 갓을 쓴 양반이 장죽을 물고 있다. 아래의 나룻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역시 오른쪽 끝에는 사공이 등을 돌리고 노를 젓고 있고, 그 왼쪽에는 망건 바람의 사내가, 그 오른 쪽에는 갓을 쓴 선비가 있다. 삿갓을 쓴 사내도 셋이 있고, 아이를 업은 아낙도 있다. 맨 왼쪽에는 학자풍의 양반이 점잖게 앉아 강을 보고 있다. 배의 왼편에는 빈 길마를 얹은 소가 한 마리, 말이 한 마리다. 그리고 왼쪽 소의 옆에 검은 물체가 보이는데, 역시 말로 보인다. 어린 총각이 말을 돌보고 있다. 두 척의 나룻배는 조선사회의 상하, 남녀를 모아놓고 있다. 김홍도의 다른 풍속화에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는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26명의 인물은 표정이 없다. 무료해 보인다. 인물들이 너무 작게 그려져 그렇다고. 천만에! 화가는 작은 얼굴일지라도 표정을 드러내 보인다. 아마도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말수가 많은 사람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더구나 여기는 강 한 복판이다. 탁 트인 넓은 공간, 그것도 일상에서 늘 경험하지 못한 공간에 오면 그저 강물을 바라볼 뿐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 속에서 멍해지는 느낌! 이형록(1808∼?)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그림 ‘나룻배’를 보자. 배가 두 척인데, 위쪽의 배는 햇볕을 가리는 포장이 쳐져 있고, 배에 탄 사람은 모두 갓을 쓴 양반들이다. 아래쪽의 배에 탄 사람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토록 다양한 신분의 많은 사람, 그리고 장사꾼과 소와 말까지 태워 동시에 두 척의 배가 강을 건너는 곳이라면 한강의 어느 나루에서 출발한 나룻배일 것이다. 서울의 나루터라면 어디인가. 나는 이것을 밝혀낼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말이 난 김에 한강의 나루터에 대해서 몇 마디 덧보탤까 한다. ●광나루·노량진에 별감 첫 배치 ‘태종실록’ 14년 9월 2일조에 의하면 처음으로 광진(廣津)과 노도(露渡)에 별감을 두었다고 하는데, 곧 지금의 광나루와 노량진이다. 이 기사에서 경기관찰사는 경기도 안의 임진·낙하(洛河)·한강에는 별감을 두고 기찰을 하지만, 금천·노도·광주·광진·용진(龍津)에는 기찰하지 않아 범죄자들이 태연히 드나든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낙하’를 제외하면 지금 서울 사람들이 잘 아는 곳들이다(노도는 노량진, 광진은 광나루, 용진은 용산이다.‘한강’은 지금의 한남동 앞의 강을 말한다).‘연산군일기’ 11년 5월 9일조를 보면 한강·마포·광진·두모포 등의 나루가 보이는데, 마포와 두모포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마포는 지금의 마포고, 두모포는 지금의 옥수동 앞이다. 다시 ‘선조실록’ 26년 10월 3일조를 보면, 한강 나루 중 남쪽 길과 통하는 광진·한강·노량·양화 나루는 모두 대로(大路)지만 그 외의 삼전도·청담·동작은 폐기해도 상관없는 소소한 나루터라고 하고 있다. 나루에도 랭킹이 있었던 것이다. 한강에 이렇게 나루가 많이 생긴 것은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부터이다. 한양이 수도가 되니, 한강은 절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은 충청도와 강원도를 경유하기에 두 지방의 세금을 받아 옮기는 길이었고, 또 전라도 일대의 세금과 물자를 바닷길로 옮겨서 다시 서울로 운송하는 길이었다. 한강은 또 서울을 방어하는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한강은 동시에 길을 끊는 장애물이었다. 자연히 강을 건너기에 편리한 곳, 또는 꼭 건너야 할 곳에 자연스럽게 나루가 생겼다. 국가에서는 또 그런 곳에 나루를 설치해 관리하기도 하였다. 국가가 관리하는 나루터의 사공은 나라로부터 일정한 토지를 지급받아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생활한다. 이런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나룻배를 타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효종 6년의 ‘실록’ 기사에 의하면, 원래 한강의 동작, 노량, 광진, 삼전도, 양화도, 공암 등 나루터에는 병자년 이전에는 모두 위전을 지급하고 나룻배를 책임지고 갖추도록 했는데, 병자호란 뒤 이 위전들을 한강 가에 사는 사대부들이 강제로 점유한 탓에 뱃사공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먹을 것도 안 생기는 일에 열심일 사공은 없다. 배는 만들지도 않고 수리도 않는다. 결과는 뻔하다. 여행객들이 강을 건널 수 없다. 효종은 다시 위전을 찾아서 주고 경기감사에게 나루터의 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명령한다(‘효종실록’ 6년 10월 7일). 그 뒤로도 나루터 관리를 두고 별별 일이 다 벌어졌다. 나루터의 사공은 천민이었다. 나루를 떠날 수 없는 그 직업은 고달팠다. 한밤중에라도 강을 건너는 양반이 있으면 배를 내어야 한다. 예컨대 현종 때는 종실 몇이 궁노를 데리고 한강 너머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가 동작 나루에 와서 나룻배를 빨리 대령하지 않았다고 사공을 마구 구타했다(‘현종실록’ 5년 9월 9일)고 하니, 사공의 괴로움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모든 나루터가 국가 직영인 것은 아니었다. 개인이 돈을 받고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선(私船)도 있었다. 사선은 관선(官船)에 비해 서비스가 좋았던 모양이다. ‘세종실록’ 25년 10월 11일조를 보면, 노도·삼전도·양화도의 관선은 무거워 사람과 말이 쉽게 건널 수 없고, 사선은 가볍고 빨라 쉽게 건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선을 이용하지만 사선은 삯이 비싸 백성들이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한강 이외의 강의 나루에는 보통 근처 마을에서 배를 장만하고 사공을 따로 두었다. 사공은 봄 가을로 삯을 몰아서 받고 따로 뱃삯을 받지는 않았다. 나룻배로 넓은 한강을 건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숙종때 선비 80명 한강서 몰사 숙종 44년에 과거를 치르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비들 80명이 한강 나루를 건너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몰사한 사건이 있었다.“배가 뒤집혀 빠졌을 때 애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강 언덕에 퍼져 차마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숙종실록’ 44년 11월 4일). 나루라고 하면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루를 건너는 것은 먼 길을 떠나는 것이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목계나루’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목계 나루의 구름과 바람과 방물장수는 모두 정주하지 않는, 늘 떠나는 것들이다. 나루라, 어쩐지 서러운 말이로구나.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13) 경기 가평 유명산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13) 경기 가평 유명산

    경기도 가평과 양평의 경계에 자리잡은 유명산(864m)은 오대산에서 시작되어 남한강과 북한강 사이를 달려 내려온 한강기맥 산줄기가 끝나는 부분에 솟은 산이다. 산림청이 1989년부터 자연휴양림을 조성해 운영함으로써 수도권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한 산이 되고 있다. 유명산은 정상 일대의 억새초원으로 유명한 산이다. 억새가 꽃을 피우고 씨 여무는 가을이면 수만평의 정상초원에 은빛 억새물결이 일렁인다. 여름철에는 수량이 풍부한 입구지계곡 때문에 이 산을 찾는 사람이 많다. 서울 근교에서 보기 드물게 길이 5㎞에 이르는 긴 계곡인 만큼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다. 설악산의 어느 계곡을 이곳으로 옮겨와 축소해 놓은 듯하다. 가을 억새가 좋고, 여름 계곡이 훌륭한 산일 뿐만 아니라, 봄철에 식물 관찰하기에도 좋은 산이다. 수량 많은 계곡과 산자락의 비옥한 토양이 귀한 식물들을 키워내고 있기 때문이다.2002년에 자연휴양림 내에 조성된 유명산자생식물원이 철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을 피워내는 것도 꽃산행객들을 불러들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금강초롱꽃 자생지 유명산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사는 특산식물 금강초롱꽃의 의미 있는 자생지이기도 하다. 금강초롱꽃의 분포영역에서 가장 서남쪽 지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 식물은 금강산을 비롯한 설악산, 오대산 등의 강원도 및 북한지방의 높은 산에 분포한다. 남쪽으로는 치악산 등지에도 분포하지만, 서남쪽으로는 유명산이 분포의 끝 지점으로 추정된다. 남한지역만 볼 때는 서쪽으로도 끝 지점에 해당하지만, 북한지역의 분포를 면밀히 조사하여야만 분포의 서쪽 한계선이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강초롱꽃은 7월 하순부터 10월 중순까지 꽃이 피는데, 유명산에서는 9월 중순에 꽃이 핀다. 초롱처럼 생긴 연한 자주색 꽃이 줄기 끝에서 1∼5송이씩 아래를 향해 핀다. 잎이 줄기 중앙부분에 모여 달리는 특징이 독특하다. 유명산 자생지에는 설악산에서처럼 많은 숫자가 자라고 있지는 않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왕제비꽃 금강초롱꽃이 필 때쯤 유명산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귀한 식물이 왕씀배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북한지방에서 주로 생육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광릉 등 몇몇 곳에서만 관찰되는 희귀식물이다. 금강초롱꽃이나 왕씀배보다 더 귀한 식물도 유명산에 자라고 있는데, 왕제비꽃이다. 제비꽃 종류치고는 이름처럼 키가 아주 크다. 제비꽃과는 달리 줄기가 있는 종류로서 키가 60㎝에 이르며, 잎도 크다.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이곳 유명산을 비롯해 몇몇 곳에서만 매우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흰 꽃이 5월 중순경에 핀다. 유명산에서 봄철에 꽃을 피우는 나무로는 귀룽나무, 산벚나무, 야광나무, 쪽동백나무 등의 큰키나무와 고광나무, 국수나무, 말발도리, 백당나무 같은 떨기나무를 꼽을 수 있다. 풀꽃으로는 고깔제비꽃, 꿩고비, 당개지치, 산민들레, 은방울꽃, 털제비꽃, 큰개별꽃, 풀솜대, 홀아비꽃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맘때 찾아가면 귀룽나무, 당개지치, 말발도리, 물참대, 백당나무, 은방울꽃, 졸방제비꽃, 쪽동백나무, 할미밀망, 함박꽃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맘때 만날 수 있는 백당나무의 꽃은 하나의 꽃차례에 서로 다른 모양의 꽃이 달려서 눈길을 끈다. 꽃차례 가장자리에 한 줄로 달린 꽃들은 큰 꽃잎을 달고 있어서 눈에 잘 띄는 데 비해 안쪽의 꽃들은 꽃잎이 작고 보잘것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바깥쪽 꽃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無性) 꽃이다. 안쪽 꽃은 암술과 수술이 있는 양성(兩性) 꽃으로 나중에 열매로 발달한다. 바깥쪽에 배치된 화려한 무성 꽃들은 꽃가루받이를 시켜줄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 ●휴양림 산책로 따라 봄꽃 관찰해도 좋아 유명산 봄꽃을 관찰하기에 좋은 코스로는 휴양림에서 입구지계곡을 따라 정상에 오른 후 북쪽 능선을 타고 휴양림으로 되돌아오는 길이다. 등산만 한다면 4시간쯤 걸리지만 꽃을 보며 가려면 2시간쯤을 더 잡아야 한다. 이게 힘든 사람들이라면 휴양림의 산책로를 따라가며 봄꽃을 관찰해도 좋다. 휴양림 숙박시설 부근에서 2시간 남짓 산허리를 돌며 꽃을 보는 코스인데, 일반적인 봄꽃을 많이 볼 수 있다. 유명산 꽃산행에서 본 봄꽃만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면 휴양림 내의 자생식물원으로 달려가면 된다. 이맘때 식물원에는 개불알꽃, 도깨비부채, 매발톱꽃, 부채붓꽃, 붓꽃, 자란초, 좀씀바귀 등이 피어나서 봄꽃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시론] 남·북·미 관계와 식량지원 딜레마/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시론] 남·북·미 관계와 식량지원 딜레마/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한국이 또 남·북·미 삼각관계의 딜레마에 빠졌다. 한 민족으로서 우리와 대화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마땅한 북한이 미국만 상대한다. 최근 우리와 전략동맹을 확인한 미국은 북한의 ‘통미봉남’에 호응하듯 북한과 2단계 북핵 조치에 잠정 합의하고 식량지원에 나섰다. 삼각관계에서 남북만 단절된 형국이다. 국내에서 북한과 미국에 대하여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하나, 북한의 거부로 그러지도 못하니 더욱 불편한 심정이다. 북한은 왜 우리의 도움을 거부하는가. 탈냉전기에 들어 국가위기, 체제위기, 정권위기의 복합적 위기에 빠진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을 유일한 탈출구로 본다. 한국의 경제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트로이의 목마’로 보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배제하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된 북한의 우리 신정부 ‘길들이기’도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사실 ‘길들이기’는 남한의 대북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런데 정치·외교·경제 역량, 모든 측면에서 열세한 북한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남한을 어떻게 길들인단 말인가. 북한이 ‘통미봉남’ 전략을 시도하나,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지원과 경협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와 극단적인 대치사태는 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체제생존을 위해 핵개발 프로그램과 한국의 지원이 모두 필요하므로, 대남관계도 대치와 협력의 이중성을 유지할 것이다. 또 탈냉전기 생존전략으로 핵무장, 선군정치를 늦추지 않을 전망이다. 동시에 남북대화, 교류협력 확대, 인도적 지원 수용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확보할 것이다. 북한의 한국 거부 전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희망적으로 보는 배경에는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경제난과 높은 대외의존도가 있다. 북한의 경제와 식량 생산구조는 자생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식량문제만 보더라도 북한은 경제피폐로 인하여 자연통제 능력을 상실한 나머지 매년 가뭄 또는 홍수에 시달리게 되었다. 외부 지원 없이는 식량난 해소가 불가능하다. 북한의 연간 식량수요량은 최저 520만t에서 최대 650만t인데, 올해 공급은 350만t에서 최대 400만t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제사회도 북한에 대한 ‘지원 피로증’으로 지원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50만t 지원도 전년도 홍수로 인한 생산 감소분을 채우기에도 모자란다. 그렇다면 북한 식량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의 대남 비방이 고조되는 가운데 식량지원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다. 굶는 북한주민을 인질로 남한과 정치게임을 벌이는 북한당국과 신경전을 계속할 수도 없는 처지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핵 불능화와 신고 조치가 완료되면 일단 식량지원의 필요조건이 충족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식량 50만t과 비료 40만t을 무조건 지원할 수 없다. 대량지원은 남북대화 정상화, 이산가족상봉 재개, 모니터링 강화와 직간접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 당장 가능한 조치로 식량 10만∼20만t을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방안이 있다.6월초 열릴 6자회담에서 북한 식량사정과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우리가 식량지원 방침을 밝히는 방법도 있다. 우리의 인도적 지원은 국제사회와 북한주민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주민을 인질로 한 북한당국의 대남 ‘길들이기’ 전략은 자신의 비도덕성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세계 3대 녹차 재배지 제주 다원

    세계 3대 녹차 재배지 제주 다원

    #제주 못잖은 전국의 차밭 ▲보성차밭(전남 보성군) 국내 차밭 여행 1번지. 연녹색 차나무의 파도와 찻잎을 따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풍경을 펼쳐낸다.(061)852-2593. ▲월출산다원(전남 강진군) 남한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있다. 월출산다원 여행은 산행과 문화유적 여행을 아우르는 것이 좋다. 영암군 천황사에서 출발해 도갑사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가 일반적.(061)432-5500. ▲하동 야생차밭(경남 하동)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차가 재배된 시배지(始培地)다. 천년차나무도 보존돼 있다. 보성차밭 등이 잘 정돈된 정원같다면 하동차밭은 지리산 자락을 에둘러 돌아가며 소박한 풍경을 자랑한다.21∼25일 하동 야생차문화 축제(festival.hadong.go.kr)도 연다. 한라산 자락의 ‘꺼멍한’(검은) ‘작지왓’(자갈밭)이 연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그 끝간데 없이 펼쳐진 푸르름에 마음마저 초록빛으로 물드는 듯하다. 차밭치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단아하게 펼쳐진 초록 계단,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잎들은 보는 이의 마음에서 날 선 긴장을 몰아내고 입 끝에 잔잔한 미소를 걸어준다. 회색도시에 갇혀 여태 봄이 주는 신록의 향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제라도 차밭의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볼 일이다. #도순다원의 초록빛에 물들다. 제주도가 일본의 후지산, 중국의 황산과 더불어 ‘세계 3대 녹차 재배지역’으로 꼽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화산 토양이어서 배수가 잘되는 데다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 따뜻한 기후 등 차를 재배하기 알맞은 자연환경을 갖춘 까닭이다. 한라산 자락 주변으로 너른 차밭이 셋 있다. 서광다원, 도순다원, 한남다원이다. 모두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한다. 세 곳을 합한 면적은 국내 전체 재배 면적의 4.9%에 불과하나, 생산량은 전체의 24%를 차지한다. 크기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서광다원이 맏형격. 하지만 차밭 특유의 은근한 아름다움으로 치자면 도순다원에 한 수 양보해야 한다. 서광다원 절반 크기의 도순다원은 추사 김정희가 유배됐던 곳과 인접해 있다. 그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글씨처럼 굽어진 차밭 샛길을 따라 다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기대이상의 풍경과 만나게 된다. 팔을 뻗으면 한라산 부악이 한 손에 잡힐 듯하고, 멀리 발 아래로는 옥색의 서귀포 앞바다가 두 눈에 가득 찬다. 도순다원은 빼어난 풍경 위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암반수 강정천이 차밭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것. 청량한 물줄기가 찻잎의 성장을 도와 차맛을 뛰어나게 만든다. 연초록 물결 중간중간 둘러쳐진 검은 차광망도 이채롭다. 빛을 차단하는 차광재배를 위해서다. 유주 장원설록차 책임연구원은 “차광재배를 통해 첫째 떫은 맛을 내는 타닌 성분을 억제하는 한편, 약간 단맛을 내는 아미노산의 분해를 지연시키고, 둘째 잎의 녹색도를 높이며, 셋째 찻잎을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향긋한 차 한 잔에 입을 헹구고 제주의 차밭은 전남 보성 등 뭍과 다른 점이 많다. 우선 뭍의 차들이 여러 종자가 섞인 재래종인 반면 제주차는 모두 단일 품종이다. 같은 품종끼리는 수정이 잘되지 않는 차의 특성상 삽목을 통해 수정시킨다. 따라서 시간과 경비가 많이 소요된다. 장점도 있다. 재래종이 해마다 차의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반면 단일종은 인위적인 조절이 가능하다. 고객들의 꾀까다로운 입맛에 맞출 수 있다는 뜻이다. 차의 맛에 대해서도 봄차를 최고로 치는 뭍의 생각과 다소 차이가 있다. 유 연구원은 “한 가지에서 잎이 3장 났을 때 가장 맛있다.”며 “초봄에 올라오는 어린 잎은 부드러우나 맛과 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아무러면 어떤가. 깊은 산은 깊은 물을 만들고, 이 맑은 물로 목마름을 달랜 찻잎은 사람의 입을 청량하게 헹군다. 온통 곡선을 그어놓은 듯 푸른 차밭의 아름다움. 잠시 머물 것만 같았던 차밭에서의 시간들은 오늘을 더욱 잊을 수 없는 하루로 만든다. #내 손으로 찻잎 따고 덖고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서광다원은 단일 재배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도순다원에 비하면 초록의 지평선을 볼 수 있을 만큼 광활하다. 관광지로도 이미 적잖게 이름을 얻고 있다. 서광다원 내 녹차박물관 ‘오 설록(o’sulloc)’은 잊지 말고 들러볼 곳.‘차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다. 녹차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전망대에 오르면 한라산의 당당한 풍모와 서광다원의 서정적인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서광다원은 새 달 1일까지 주말과 공휴일에 ‘2008 설록 페스티벌’ 행사를 연다. 올해 2회째. 직접 찻잎을 따서 무쇠솥에서 덖고 비벼 내 손으로 녹차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무료버스를 타고 52만m1/3(약 15만 7000평)에 이르는 푸른 녹차 밭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눈 가리고 설록차 맛 알아내기, 녹차 잎 카드 만들기 등 부대행사도 충실하게 준비했다. 원래 무료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행사기간 중에만 입장료를 받는다.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3000원.4인가족권 1만원. 제주행 아시아나항공 보딩패스 및 할인쿠폰 지참 시 50% 할인.sulloc.co.kr (064)794-5312. 글 사진 서귀포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열린세상]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은 6·25 전쟁의 비극을 겪고 난 이후 ‘불안정’한 평화상태(정전상태)를 유지해 오면서, 전쟁과 폭력의 부재(不在)라는 소극적 평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남북한 갈등의 민주적 조정과 남북한 간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고 활성화하는 적극적 평화를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특히 한국은 새로운 협정, 즉 남북한의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이전까지는 정전협정이 잘 준수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반면 북한은 ‘평화=탈(脫)미제국주의’ 공식을 변함없이 추구하였다. 북한은 “평화는 제국주의자들을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김일성 저작집)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은 휴전협정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를 요구하였다. 북한의 평화 관련 주장들은 ‘미제국주의’에 대한 철저한 타도와 승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는 어떠한 평화노력(‘부르주아 평화주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념을 깔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 평화협정 제의에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북·미 평화협정 요구로 변화시켜 오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근본적인 ‘평화전략’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평화협정이든 북·미평화협정이든 북한 당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평화협상 시작→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 변화→북·미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 목표 달성을 그들 고유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비된다. 남한은 현상유지(정전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평화프로세스를 선호하면서 북한의 현상타파(정전협정체제를 북·미평화협정체제로) 노력을 억제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적(혹은 북·미간) 문제로 등장하면서 그들은 이를 북·미 직접협상 지렛대로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향후 북한의 핵문제는 다자간 협상(6자회담) 틀 내에서 해결과정을 걷게 될 것이고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자연히 포함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6자 다자틀의 핵심은 역시 미국과 북한의 직접회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그동안 한·미동맹관계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문제를 판단해 왔으며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한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 미국의 중요한 외교적 사안으로 등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화될 수 있는 우려가 상존한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이 어떻게 진전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지난 4월8일 북·미 양국의 싱가포르 회동에서 핵 신고에 대한 잠정 합의안이 도출된 이후 북핵 협상이 급물살을 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 합의안은 미국의 유연한 접근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북핵문제 관련 핵심 사안은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HEU), 대 시리아 핵협력 의혹 등이다. 미국은 풀루토늄 관련 신고와 검증이 자세하고도 철저하게 이루어지도록 요구하면서도 HEU와 시리아 핵 협력과 같은 핵확산 문제는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것이며 여기에서 핵합의 이행차원의 북·미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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