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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종위기 동식물 7종 청도 운문산 서식

    가장 오랜 기간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 경북 청도군 운문산에 1400여종의 생물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영남대에 따르면 이 대학 생물학과 박선주 교수팀이 지난해부터 운문산 휴식년제 실시 지역에서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태계의 보고’를 통해 밝혔다. 운문산 휴식년제 실시 지역은 10.3㎢에 이르고, 이번에 조사 지역은 이를 포함해 11.6㎢다. 휴식년제는 1991년부터 올 연말까지 실시된다. 운문산 일대에 육상곤충 756종, 육상식물 414종, 포유류 20종, 조류 63종, 어류 8종,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실지렁이·애반딧불이) 140종 등 모두 142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멸종위기 1급인 수달과 2급인 산작약, 삵, 담비, 새홀리기, 벌매, 쌍꼬리부전나비 등 멸종위기의 야생 동식물 7종도 포함됐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나 환경오염 때문에 그 수가 감소하고 있는 희귀종 애반딧불이와 천연기념물 원앙과 붉은배새매, 두견, 큰소쩍새, 솔부엉이 등 조류 6종도 발견됐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北 처녀가 애를 뱄을때

    北 처녀가 애를 뱄을때

    연애나 결혼은 커녕「데이트」한 번 하는데도 당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북한(北韓).눈 한 번 잘못 맞았다가는 본인들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도 신세가 망하는 판국이다. 최근 자유를 찾아 월남해 온 박모(39) 김모(34) 부부가 말하는 북한의 남자와 여자의 생활-. 「 데이트」도 남몰래 숨어서 “자아비판” 에 최고는 사형 북한에서는 일에 대해서만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 남녀 구별이 없이 누구나 일을 해야 하고 일한 성적에 따라 배급이 나온다. 주로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일터에서 남녀가 같이 일을 하다보면「로맨스」가 꽃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서로 눈이 맞았다고 해서 섣불리 연애를 한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오직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데이트」니 연애니 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 비록 한 직장에서 일을 할 망정 절대로 서로 넘보지 말라는 당의 명령이다. 그러니까 어쩌다 남녀가「데이트」를 할 기회가 생겨도 마땅한 장소가 있을 턱이 없다. 고작해야 강변이나 거닐기 마련. 평양의 경우에는 모란봉 근처나 대동강변 아니면 극장에 가는 게 고작이다. 다방이나 음식점, 또는 오락장 같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극장의「프로」는 한결같은 공산당 선전영화. 따분한 영화에 싫증이 나서 같이 간 옆자리의 아가씨 손목이라도 슬쩍 만졌다가는 큰 일 난다. 사상이 썩었다는 증거라는 것. 따라서「데이트」란 말 자체가 이곳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재미가 있을 턱이 없다. 일에만 취미를 가지고 일에서만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일 이외의 것에서 즐거움을 가질 수는 없는 일. 그런데 북한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5가지의 춤과 노래를 안다. 군중 무용이라는 이름의 춤과 노래. 당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것인 이것을 할 줄 알아야만 비로소 소위 천리마작업반원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감시의 눈을 피해서 몰래 사랑을 속삭이다 들키면 자아비판을 받아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회의장에서「데이트」했던 사실을 그대로 보고해야 한다. 자아비판을 받은 젊은이들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하다가 임신이라도 하는 날이면 큰 일. 피임약이 있을 턱이 없는 데다가 병원이라곤 오직 작업능률을 올리는 데 한해서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를 뱄다하면 도리 없이 낳아야 한다. 다행히 남자와 여자의 출신성분이 의심스럽지가 않다면 결혼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결혼도 못하고 망신만 당한 후 강제 이별을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지주의 후예거나 월남 가족이 있다면 절대로 결혼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만약 당의 명령을 어기고 결혼할 경우에는 양쪽 집안이 모두 풍비박산이 되고 만다. 여자편력이 3명 이상일 때는 5년의 징역, 7명 이상일때는 사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우두머리들은 비밀의 장막속에서 여자들을 끼고 놀아나고 있다. 북한에는 여러가지「운동」이 많다.「샛별보기 운동」「이고 지고 달리기 운동」「책 들고 다니기 운동」등이 그것. 소위「천리마 운동」이라고 해서 쉴새 없이 노동에 시달리며 한편으로는 김일성을 우상화시킨 책을 강제로 외어야 하는 고역을 치르고 있는 것. 「60청춘」구호 내세워 노인들까지 혹사 공산당에서 만든 영화 중에「60에 청춘 90에 환갑」이란 것이 있다. 60살을 넘어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72살난 할머니와 75살난 할아버지가 등장해서 달밤에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영락 없이 허수아비가 달밤에 체조하는 형상. 북한에서 가장 활개칠 수 있는 직업은 군인이다. 당에 의해 선발된 극소수의 대학진학자도 군대에 갔다 와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취직을 하려해도 우선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군대에 갈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총을 잘 쏜다고 해도 군대 근처에 얼씬할 수 없다. 박씨 부부가 월남한 것은 67년 8월. 북괴군 대위로 철원지방 휴전선 부근에 근무했던 박씨는 당에서 신임을 받던 장교였다. 치안유지 책임자로 휴전선 근방 마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날 당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왔다. 박씨의 책임구역 안에 있는 나이 어린 소년 6명의 사상이 불순하다면서 처벌하라는 것. 2년 전부터도 대한민국 방송을 들으면서 공산당에 대해 회의(懷疑)를 느껴 오던 터에 이런 명령을 받고 보니 더욱 더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겹쳤다. 『고민을 하다가 결심했읍니다. 이 사람(부인)을 데리고 밤중에 탈출을 한 거죠. 마침 휴전선 근방에 대한 지리는 환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읍니다』 자유의 품에 안겨 모 운수회사에 다니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 부부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한마디로 보통 상식으로는 상상이 되어지지 않는 세상이랍니다』 <영(英)> [선데이서울 72년 2월 6일호 제5권 6호 통권 제 174호]
  • 성남 산업단지 ‘첨단의 새옷’ 입는다

    경기 성남시가 자족도시로의 성장동력을 다지기 위한 산업단지 중장기 마스터플랜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한다. 도시관광형 모노레일도 포함돼 관심을 끈다. 성남시는 18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성남산업단지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최종 보고회를 산·학·연·관의 58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경제성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 성남산업단지 내 입주기업들의 경쟁력 향상 및 일자리 창출 등을 강화하는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시는 이번 보고회에서 기업하기 좋은 첨단산업단지로의 변신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할 방침이다. 용역 주관기관인 한국경제조사연구원은 단기사업으로 2011년까지 대중교통 셔틀확보, 주차장 2곳 건립, 도로의 인도 확보 및 일부 도로 확장, 도시 전체 이미지 통일 및 테마설정 계획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2020년까지 남한산성과 연계를 통한 교통난 해소는 물론 관광용으로도 이용 가능한 도시관광형 모노레일 사업 등도 마련했다. 컨벤션센터 등 대규모 사업도 포함됐다. 사업투자비는 모두 1650억원에 이르며,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5700여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21일 문연다

    작가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주무대로 삼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태백산맥 문학관’이 지어졌다. 이 대하소설의 완간 20주년을 맞아 21일 문을 여는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와 취재수첩 등 작가와 작품에 관련된 623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제 1전시실에는 소설의 탄생 과정과 출간 이후 언론보도 등이 전시되고, 제 2전시실에는 작가의 방·문학사랑방·작가집필실이 들어서는 등 모두 마당으로 꾸며진다. 개관식에는 프랑스어판 번역자인 조르주 지겔메이어를 비롯해 문학, 건축, 출판, 미술, 언론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전북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 작가 조씨를 기리는 두 번째 문학관이다.‘태백산맥’이 관통하는 시대정신인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북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문학관 벽면에는 백두대간·지리산·독도 등 역사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 국토를 형상화한, 길이 81m 높이 8m의 국내 최대 규모 자연석 벽화가 제작돼 눈길을 끌게 된다. 1983년 9월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989년 10월 완간된 ‘태백산맥’은 해방 직후 혼란기 속에 남한 단정 수립 직후 발생한 제주도 4·3항쟁, 여순사건으로부터 한국전쟁과 휴전, 빨치산 활동까지 5~6년 사이를 다룬 작품이다. 격동의 역사 속에 얽혀 있는 개개 인물들의 구체성에 눈 돌리지 않는 치열함과 분단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역사적 고찰 등 시대에 대한 긴 호흡이 담겨지며 전후 분단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700만부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개성공단 등 사실상 방북 불가능

    군사분계선(MDL)을 통한 육로통행엔 개성공단 관련 통행을 비롯해 경의선 화물열차·개성관광·금강산관련 통행 등이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에다 일부 남북 경협사업자간 물자 왕래를 합쳐 지난달에는 육로를 통해 편도 기준으로 1만 8216회에 2만 2839명이 북한 지역으로 들어갔다.2만 3298명이 북에서 남한 지역으로 들어왔다. 같은 달 총 물동량은 3만 2733t이 반출됐고,5953t이 반입됐다. 이들 육로통행 전부 혹은 일부가 북한군부 조치에 영향을 받겠지만, 현재로선 어디까지 대상이 될지 불분명하다. 개성공단의 경우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단위로 18차례(남→북 11회, 북→남 7회) 통행이 이뤄지고 있다. 12일 현재 남측 상주인원은 1657명이다. 지난달 방문객은 1만 4297명(하루 평균 약 550명)이었다. 인원과 화물을 나른 방문 차량은 8364대(하루 평균 322대)로 집계됐다. 경의선 화물열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한 차례 운행된다. 지난달에는 42회(편도 기준) 오가며 개성공단 의류 완제품 등 화물 13.5t을 운송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97) 가도의 동강진 무너지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97) 가도의 동강진 무너지다

    청은 병자호란을 통해 여러 가지를 얻었다. 우선 자신들을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았던 조선을 굴복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다른 측면의 소득도 짭짤했다. 망해가고 있던 명에게 조선은 가장 충성스러운 번국(藩國)이었다. 그런데 청이 조선마저 제압함으로써 명은 이제 고립무원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청은 또한 조선을 끌어들여 명을 공략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조선의 군사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수군과 화기수들은 만만치 않았다. 청은 조선 수군과 화기수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 첫 결과가 가도( 島)의 함락으로 나타났다. ●조선, 명 배신 위기에 처해 전세가 기울어 청에게 항복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을 때에도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오는 것만은 피하려 했었다. 하지만 인조는 결국 출성하여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런데 항복한 이후에도 인조나 조선 조정이 끝까지 피하려 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이 군사를 내어 청군을 원조하고, 명을 공격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1637년 2월3일, 용골대와 마부대는 창경궁으로 인조를 찾아왔다. 그들은 조선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가도 정벌에 협조하고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 당시 인조나 조정은 서슬퍼런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조선은 당장 황해도의 병선 100척과 수군 3000여명을 징발했다. 징발 과정에서 민폐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평안병사 유림(柳琳)을 주장으로,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을 부장으로 삼아 병력을 이끌고 철산 앞바다로 진격하도록 했다. 청군의 수군 지휘관은 이신 공유덕과 경중명이었다.1633년 명에서 선단을 이끌고 귀순해온 두 사람은 청군 가운데는 드물게 바다와 해전을 아는 장수들이었다. 홍타이지의 두 사람에 대한 총애는 각별했다. 선단을 이끌고 귀순해온 것에 감격하여 공유덕 휘하의 병력을 천우병(天佑兵), 경중명 휘하의 병력을 천조병(天助兵)이라 불렀다. 두 사람을 위해 심양에 거대한 저택도 새로 지어주었다.‘천우’,‘천조’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홍타이지에게 두 사람은 ‘하늘이 청을 돕기 위해 보내준 장수들’이었다. 바야흐로 천우군과 천조군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찾아왔다. 홍타이지는 조선에서 철수하면서 두 사람을 조선에 남겨 수군 전력을 정비하도록 했다. 용산과 강화도 일대에서 함선을 새로 건조하거나 수선하고, 조선 수군의 협조를 얻어내는 임무를 맡겼다. 조선을 굴복시킨 여세를 몰아 가도의 동강진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1622년 모문룡이 처음 들어가 동강진을 설치한 이후 가도는 청의 서진(西進)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지척에서 빤히 바라보면서도 수군이 없고 해전에 익숙하지 못하여 발만 동동 굴렀던 지난 15년이었다. 그런데 이제 동강진을 쳐 없앨 절호의 기회가 왔다. 공유덕과 경중명의 역량은 물론, 해전에 뛰어난 조선 수군까지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홍타이지는 ‘가도 함락’이라는 승전보를 기대하면서 철수 길에 올랐다. 조선은 ‘오랑캐’에게 붙어 명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았다. ●明 도독 심세괴의 순국 청군은 가도를 곧바로 함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사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형이 험하여 전함의 접근이 어려운 데다 명군이 섬 주위에 화포를 배치하여 청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도에는 도독 심세괴(沈世魁)가 군민 5만여명을 이끌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조·청 연합군은 1637년 4월9일, 철산 앞바다를 출발하여 총공격을 개시했다. 선단을 셋으로 나눠 상륙을 시도했지만 험한 지형과 명군의 사격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공략이 여의치 않자 청군 지휘관 마부대 등은 임경업 등에게 묘안이 있는지를 물었다. 애초부터 내키지 않는 싸움에 동참하게 된 임경업 등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마부대 등은 회유와 협박을 반복했다. 임경업은 협박에 밀려 결국 묘안을 제시했다.‘지형이 험한 북쪽 해안을 버리고 남쪽 해안으로 우회하여 공격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마부대는 임경업의 계책에 따라 자신과 공유덕 등이 이끄는 청 수군을 남쪽으로 우회시켜 동강진을 배후에서 공격토록 하고, 조선군은 의연히 북쪽 해안에서 동강진의 정면을 돌파하는 작전을 썼다. 당시 명군은 철산 등 육지를 마주보고 있는 북쪽 해안의 방어에 주력하여 남쪽 해안에는 병력을 거의 배치하지 않았다. 청군은 결국 별 어려움 없이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여 동강진의 배후를 기습했고, 그와 동시에 조선군이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남과 북에서 협공을 받은 명군은 완강하게 저항했으나 전세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상태에서 심세괴는 잔여 병력을 이끌고 소달금(小達金)이라는 봉우리로 퇴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청군의 철기(鐵騎)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마부대는 소달금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는 한편, 섬 안에서 대대적인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다. 청군에게 떠밀려 들어온 조선군은 고민에 빠졌다. 청군과 함께 살육과 약탈에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옛정을 생각하여 시늉만 할 것인가? 조선군은 애초 섬에 도착했을 때, 배에서 내리는 것도 미적거렸었다. 그런데 나만갑은 ‘병자록’에서 조선군이 청군보다 더 심하게 한인들을 죽이고 약탈을 자행했다고 적었다. 작전권이 청군 지휘부에게 있고 그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이상 조선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심세괴는 항복을 권유받았지만,‘대명(大明)의 신하가 개돼지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며 청군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휘하 병력 1만명가량도 목숨을 잃었다. 조선군의 공격에 놀란 일부 한인들은 ‘명이 조선에 무슨 잘못이 있기에 우리를 배반하고 적에게 붙어 우리를 참혹하게 죽이느냐?’며 절규했다. 가도 함락 소식이 서울로 전해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한 시대의 종언 심세괴의 죽음과 함께 가도의 동강진은 결국 무너졌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명나라의 군진(軍鎭)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조선과 명, 그리고 후금이 뒤얽혀 있던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인조대 내내 가도는 ‘뜨거운 감자’였다. 모문룡을 비롯한 가도의 역대 지휘관들은 조선을 몹시 괴롭혔다. 수시로 군량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가 하면, 가도의 한인들은 무시로 청북 지역에 출몰하여 조선을 곤혹스럽게 했다. 정묘호란 이후에는 조선을 오가는 후금 사신들을 체포하려 드는가 하면,‘조선이 명을 배신하고 오랑캐에게 붙었다.’고 북경 조정에 참소했던 것도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명을 ‘상국’이자 ‘부모국’으로 섬기던 조선은 싫은 내색 없이 그들에게 군량을 제공하고 편의를 봐주었다. 가도의 교란 작전과, 그것을 용인하는 조선의 태도에 후금은 격앙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데는 가도의 존재도 분명 한 몫을 했다. 그런데 가도가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은 철저하게 명이 자멸(自滅)해 가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애초 모문룡은 가도에 들어가 ‘요동을 수복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안주하면서 막대한 부를 챙기고, 안일에 빠져들었다. 자연히 후금(청)과 맞서겠다는 본래 목표는 실종되었다. 명 조정은 그것도 모르고 엄청난 군자금과 물자를 가도에 퍼부었다. 목표는 사라지고 부만 늘어나면서 자연히 파벌 다툼이 잦아졌고, 그 와중에 수차례 반란이 일어났다. 이제 가도는 청의 서진을 견제하는 거점은커녕,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날로 역량이 커진 청이 가도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가도의 붕괴는 조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명의 분신’이자 ‘충성의 대상’이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가도에 상륙한 조선군이 살육과 약탈에 가담했던 것은 기존 조·명관계의 파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조선이 ‘새로운 상국’ 청에게 서서히 길들여져 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경기 내년 예산 13조·인천 6조

    경기도는 10일 2009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4.6% 늘어난 12조 9588억원으로 편성했다. 일반회계 10조141억원, 특별회계 2조 9447억원으로 편성된 도의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 12조 3841억원보다 5747억원이 늘어난 규모다.11일 도의회에 상정돼 심의를 받는다. 주요 세출내역을 보면 버스환승 할인 등 대중교통 개선사업에 2230억원, 팔당호 수질개선사업 549억원,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에 150억원을 각각 배정했다. 또 중소기업 자금 및 기술지원에 350억원, 전략기술 개발 R&D 지원에 447억원, 외국기업 투자유치 활성화 및 투자환경 개선에 134억원을 투입한다. 문화예술·체육활성화 부문에는 1조 9273억원을 반영한 가운데 남한산성 등 도내 문화재 복원 정비사업에 328억원, 생활체육공원 조성과 운동장·체육관 건립 등 체육시설 확충 및 소외계층 체육 진흥에 623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자연생태보호 및 환경협력 강화,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 기반 마련, 자원순환형 폐기물 관리체계 구축 등 환경 분야에 1386억원을 책정했다. 한석규 도 기획조정실장은 “도세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부동산 거래세 감소로 내년도 재정여건이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 교통체계 개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살리기 등에 역점을 두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인천시의 내년도 예산안이 올해 예산 5조 5109억원보다 19% 늘어난 6조 5583억원으로 편성됐다. 이에 따라 시민 1인당 세 부담액은 87만 380원으로, 올해 76만 6220원보다 13.5% 증가했다.김병철 김학준기자 kbchu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WBA 세계 여자 페더급 챔피언 탈북소녀 최현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WBA 세계 여자 페더급 챔피언 탈북소녀 최현미

    꿈, 그대처럼 강렬하고 가슴 뭉클해지는 말이 어디 있을까. 문득 영화 한편 떠올려보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절망에서 희망의 꿈을 엮어나가는 감동 드라마다. 여기에 나오는 명대사가 생각난다.‘자신만이 볼 수 있는 꿈, 바로 그 때문에 모든 걸 거는 거야!’ 이런 영화처럼 시작된 흔치 않은 인생이 있다.‘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고 하면 되겠다. 특히 ‘나 태어나 이 강산에서’의 꿈과 한을 간직한 외로운 ‘탈북소녀’이기에 흥행요소는 더욱 갖춰진다. 북한에서 권투선수를 하다가 2004년 7월 한국으로 온 최현미(18·염광고3)양이 주인공이다. 그의 꿈은 북한에서나 한국에서나 오로지 세계 최고의 복서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그는 첫번째 꿈을 이루었다. 세계복싱협회(WBA) 세계 여자페더급 57㎏챔피언 결정전에서 중국의 쉬춘옌을 판정으로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자 국내보다는 오히려 세계의 매스컴들이 더욱 주목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한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묘사하며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했다. 인터넷판에는 사진 7장과 함께 전면에 배치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 앞에서 훈련하던 최현미는 남한에서 힙합 뮤직을 들으며 훈련하고 있다.”면서 “자기 체급의 모든 타이틀을 따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또 독일TV-ARD와 뉴욕타임스, 영국의 BBC 등에서도 집중 인터뷰를 가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에 앞서 AP통신도 최양을 ‘한국의 밀리언∼’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가 진정으로 주목받는 까닭이 뭘까.‘세계챔프의 탈북소녀’라는 제목도 그럴듯하겠지만 한창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지낼 나이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꿈을 향해 고독하고도 거침없이 달려가는 앳된 10대 소녀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에 있을 땐 대동강변에서, 한국에서는 한강변을 거의 매일 20㎞씩 달리는 모습만 상상하더라도 말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한남체육관’에서 열심히 권투연습 중인 최양을 만났다. 그는 감기몸살 기운이 약간 있어서 그런지 컨디션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밝게 웃는 모습, 순수한 말투는 평범한 여고3년생이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 견디기 힘든 혹독한 훈련 때문인지 가끔 글썽이는 눈물을 몰래 감추려는 모습을 볼 때 약간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세계 챔피언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글쎄요. 별로 없어요. 매스컴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아진 것 외에는….” ▶지난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주먹으로 맞았을 때 많이 아프지 않았나요. “몇대 안 맞은 것 같은데, 나중에 얼굴을 보니 퉁퉁 부었더라고요. 저는 2,3일이면 부은 것이 금방 가라앉아요.” ▶하루 운동량은 어느 정도 되나요. “오후 2시까지는 학교에 있다가 그 후부터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해요. 줄넘기와 섀도복싱, 스파링파트너 오빠들과 연습경기도 하고요. 집에 가면 밤 11시쯤 돼요. 시합이 임박할 경우 한강에서 20㎞, 남산에서 8㎞ 정도 거의 매일 뛰면서 체력을 집중적으로 키웁니다. 아마추어 땐 3회전을 뛰었는데 프로경기는 10회전이잖아요.” ▶주무기는 어떤 것인가요. “잽과 스트레이트라고 생각해요.” ▶복싱은 서로 때리고 맞는, 아주 힘든 운동인데 어떻게 해서 시작했나요. “4년제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고등중학교에 입학할 때였지요.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빠르고 체격조건도 좋으니 권투를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여자복싱종목이 생길 것을 예상해서 복싱 유망주를 발굴했나봐요. 그렇게 해서 2001년 9월부터 북한 체육회의 특별관리를 받았고 2003년 김철주 사범대학 복싱양성반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지요.” 그는 1990년 평양 대동강변에서 태어났다. 한때 아버지는 복싱선수, 어머니는 배구선수를 했을 정도로 타고난 체격조건(키170㎝)을 이어받았다. 북한에서 동료 선수들과 시합을 해도 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탈북한 것은 2004년 2월. 이때 아버지 최철수씨는 중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했다. 중국여권을 가진 터라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어려움이 없었다. 하루는 가족여행을 떠나자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어머니와 오빠도 동행했다. 중국의 운남성을 거쳐 베트남에 왔을 때에야 비로소 아버지한테 “우리는 한국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 캄보디아와 태국을 거쳐 가족들과 한국에 도착한 그는 이듬해부터 복싱글러브를 다시 꼈다. 아마추어 무대에 뛰어들자마자 5개 대회를 석권하는 등 2007년 9월 프로로 전향하기 전까지 아마추어 전적은 16승1패. 이 가운데 14승이 프로의 TKO와 같은 RSC승이다. 한때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했던 탄탄한 기본기가 있어서인지 그는 프로전향 후 두 경기 만에 세계챔피언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 직후 트로피를 들고 부모님 앞에서 하염없이 울어버렸다. 아마 고된 훈련을 이겨내면서 탈북 후 첫 꿈을 이룬 감격의 눈물이었을 터이다.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지낼까. “노원구에 있는 월세 25평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가 얼마 전까지 식당일을 틈틈이 했는데 지금은 허리가 아파서 쉬고 계세요. 원래 어머니는 저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허리가 안 좋아요. 오빠는 연세대 2학년에 재학 중이고요.” 아버지도 현재 직업이 없다. 집안살림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정착금으로)월세 내고 휴대전화 요금 내면 끝난다.”고 했다. ▶고3인데 대학진학은 어떻게 되는지. “지난번 챔피언 결정전 시합이 수시일정과 맞물려 원서를 넣지 못했습니다. 체육특기자로 가려고 하는데 대부분 구기종목만 뽑아요. 복싱 특기자로 뽑는 대학이 별로 없어 억울해요. 정말 불공평해요. 재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 이르자 고개를 떨구더니 “대학에는 꼭 가야 하는데….”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눈가가 약간 젖어 있었다. ▶장래의 꿈은 무엇인가요. “복싱으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우선 WBA와 WBC 등 세계 통합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나이들어 복싱을 그만두게 되면 연예계로 진출하고 싶어요. 씨름선수였던 강호동과 이만기 아저씨처럼 연예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어요. 노래와 춤에는 어느 정도 자신있거든요.” ▶복싱을 시작한 후 후회는 한번도 없었나요. “훈련을 참기 힘들어 울면서 뛴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친구와 부모님 얘기가 많이 도움이 됐어요.‘너는 반드시 이길 거야, 너는 해낼 거야.’라는….” 학교공부 중 가장 재미있는 과목은 역사라고 했다. 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며 친구들과 영화관에도 자주 간다고 했다. 영화는 ‘밀리언∼’와 ‘1번가의 기적’을 감동있게 봤다면서 ‘밀리언∼’의 경우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끝부분에는 마음에 안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온갖 고생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행복해지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단다. 어쩌면 그의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것처럼,‘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최현미는 누구 ▲1990년 평양 출생. ▲2001년 9월 복싱선수 발탁. ▲03년 김철주 사범대학 복싱양성소 입소훈련. ▲04년 2월 탈북,7월 한국도착. ▲05년 3월 AP통신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 소개. ▲05∼07년 9월 아마추어전적 16승1패(14RSC승). ▲07년 9월 프로전향. ▲08년 10월 중국 쉬춘옌 3대0승, 세계복싱협회(WBA) 여자페더급 챔피언 등극.
  • [내 책을 말한다] 잊혀지고 끊긴 우리 옛길

    [내 책을 말한다] 잊혀지고 끊긴 우리 옛길

    내가 조선시대의 9대로를 걷기 시작한 것은 20여년간 나라 곳곳과 수많은 산길을 걷고 남한의 8대강을 도보 답사로 마친 뒤였다. 해남에서 부산, 서 서울의 남대문까지 이어진 삼남대로를 나눠서 걷고 영남대로 열나흘길은 한꺼번에 걸었다. 곧바로 관동대로를 걷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들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너무 늦으면 안 되지, 이러다가 못 걸을지도 몰라.” 조바심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가 우리 땅 걷기 회원들과 대장정에 오른 것이 2008년 10월이었다. 김정호가 지은 ‘대동지지’에 ‘동남지평해삼대로(東南至平海三大路)’라고 실려 있는 ‘관동대로(關東大路)’는 동대문에서 대관령을 넘어 울진 평해까지 이어졌던 길이다. 관동대로는 남한강 길을 따라 이어지기도 했고 구둔재, 문재, 여우고개 전재 등 아름다운 고개와 옛길을 지나 대관령 넘어 울진 평해로 이어졌다.5만분의1 지도만 의지해서 넘는 길, 그 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길을 걸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길을 걸을 때는 참담함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옛길은 세월 속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둔재를 넘어 양동면으로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한 20여년 전만 해도 그 고개를 넘어서 양동장에 갔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고 넘어가기도 했고,“벌써 옛날이지요. 어린 시절에 사람들이 말 타고 고개를 넘어 가는 것을 보았어요.”라는 말을 들으며 세월의 무상함에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서울에서 나귀를 타고 오면 이레가 걸렸던 대관령 길을 우리들은 여드레째 되던 날 넘었는데, 그날은 매운 바람결에 바람이 몹시도 불어 매우 추운 날이었다. 누가 시켜서 걸은 것도 아니고, 옛길이 우리를 오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가는 옛길들을 보고 싶은 열망 하나로 걸었기 때문에 아무도 힘들다 말하지 않았다. 그런 고통을 한번에 달아나 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며 옛 모습을 보여 주는 고즈넉한 옛길이었다. 용화 해수욕장 부근 마을에서 황희 정승의 자취가 남아 있는 소공대를 지나 호산리로 가는 길은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하늘과 산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즉석에서 한국의 ‘차마고도’라고 명명한 그곳에는 그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바람결로 남아서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있었다. “봄바람에 석장 짚고 관동으로 향해 가다. 십년 동안 잘 다녀서 두 신짝이 닳았는데, 만 리 넓은 천지 속에 전대가 텅 비었네.” 조선 시대에 관동대로를 지나던 김시습의 글이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관동대로를 비롯한 옛길들이 제대로 복원돼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며 잃어버린 자아와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휴머니스트 펴냄)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
  • ‘득남’ 김지영, 1월1일 복귀…노유정ㆍ황보 대타진행

    ‘득남’ 김지영, 1월1일 복귀…노유정ㆍ황보 대타진행

    지난 5일 득남한 탤런트 김지영 대신 개그우먼 노유정과 가수 황보가 SBS러브FM ‘김지영 남성진의 좋아좋아’(이하 ‘좋아좋아’)를 맡아 진행한다. 7일 SBS에 따르면 “5일 출산한 김지영이 오는 12월 말까지 출산휴가를 감에 따라 노유정과 황보가 투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평소 ‘좋아좋아’의 3부 게스트를 맡고 있는 노유정은 9일까지 남성진과 호흡을 맞춰 ‘좋아좋아’를 진행했다. 10일부터는 황보가 노유정의 뒤를 잇는다. 황보는 남성진과 절친한 사이로 과거 시트콤을 통해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김지영은 결혼 4년 만에 지난 5일 2.89kg의 아들을 낳았으며 당시 ‘좋아좋아’를 진행 중이던 남편 남성진에게 전화통화를 통해 출산의 기쁨을 전했다. 김지영은 ‘사랑해 보고싶어, 빨리 와’라는 사랑스런 멘트를 전했고 남성진 역시 방송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했다. 한편 김지영은 내년 1월 1일 라디오에 복귀해 청취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사진=SBS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재규 통일산책] 미 대선과 남북관계 복원

    [박재규 통일산책] 미 대선과 남북관계 복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내일로 다가왔다. 초강대국 미국의 대선 결과는 국제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또한 북핵문제가 걸려있는 한국에는 더욱 중요한 정치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 나선 양당 후보의 대한반도 정책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선거결과가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줄 것임을 시사한다. 매케인 후보의 대북정책은 ‘단호함’을 축으로 하고 있다. 공화당은 정강정책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 활동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아울러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CVID)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매케인은 부시 행정부의 6자회담 업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매케인이 당선된다면 전방위적 대북 압박 강화를 모색하면서 대화와 제재,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 북한문제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오바마 후보의 대북정책은 ‘유연함’을 바탕으로 한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 “우리는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가능한 종식을 추구하고, 지금까지 북한이 생산한 모든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를 완전하게 설명하도록 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며 6자회담을 이어나갈 뜻을 밝혔다. 중요한 것은 더 나아가 “직접 외교를 계속할 것”이라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북·미 양자회담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함으로써 북핵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는 작년 7월 “대통령이 되면 집권 첫 해에 북한이나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 지도자들을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선뜻 “만날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다면 북한도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양자회담을 중시하고 협상 파트너로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과 회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한반도 상황의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오바마 측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미국의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에는 평화 유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중·일·러 등 국제정치와 경제의 주(主) 행위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동북아의 평화관리는 미국의 중요한 대외정책 목표인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도래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현재의 남북관계는 안타까움만을 자아낼 뿐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중단됐고, 당국간 대화가 중단되면서 대화 통로마저 차단됐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끝내 기다리던 가족의 소식을 알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 간에 상생과 공영을 통해 상호신뢰 구축과 협력을 토대로 한 평화정착 노력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은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북·미대화가 활발해진다면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남한이 변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어차피 북한도 10·4선언이 모두 한 번에 이행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곧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있다는 점을 북측에 충분히 설득해야 할 것이다. 특사 파견을 포함한 적극적인 대화정책을 통해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만약 남북관계 복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바로 우리 문제인 한반도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한국이 주변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한국 호감도 남아공 수준…38개國 중 32위

    |프랑크푸르트(독일) 오슬로(노르웨이) 류지영특파원|해마다 5200만명이 이용하는 ‘유럽의 대표 관문’ 프랑크푸트 국제공항 제1터미널. 길이가 200m나 되는 초대형 옥외 광고판이 눈길을 잡아끈다. 콜로세움, 파르테논 신전, 네덜란드 풍차 등 유럽의 명소와 도시를 배경으로 위용을 뽐내고 있는 제품은 바로 현대자동차다. 제1터미널 내부에도 유럽 공략을 목표로 만들었다는 해치백 스타일의 기아차 ‘씨드’가 전시돼 있다. 디자인이 예쁘다며 차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프랑크푸르트 중심에 있는 지역 최대 백화점 ‘자일’의 가전매장에 들어서면 마치 한국 가전매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액정표시장치(LCD) TV, 휴대전화, 프린터, 디지털카메라 부스는 삼성과 LG제품이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격도 필립스, 소니, 파나소닉 등 경쟁사 제품과 대동소이하거나 오히려 비싸기도 하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광장에 나란히 걸려 있는 금호타이어와 넥센타이어의 대형 광고판 역시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현대차·삼성이 한국제품? 이제 유럽에서 한국 제품을 발견하고 감격스러워하는 것은 ‘촌스러운’일이 됐다.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저가’ 이미지를 탈피한 우리 제품들의 달라진 위상은 잠시만 머물러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럽인 대부분은 현대차나 삼성, 금호타이어 등의 제품들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잘 모른다. 기업들이 굳이 한국제품이라는 사실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인들은 분단국이라는 것 말고는 한국에 큰 관심이 없다. 북한과 남한을 구별할 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어느 정도 한국을 안다는 이들조차 ‘부정부패, 노사갈등 등으로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있으며, 환경문제나 국제구호 등 돈 안 되는 이슈는 철저히 무시하는 나라’라고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활동 등으로 유럽에서 상당한 호감을 얻고 있는 일본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점심시간이 되자 중앙역 주변에 있는 태국 음식점 앞으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인구 60만명의 작은 도시에서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태국식 볶음면과 볶음밥의 독특한 맛이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오슬로는 세계 최고의 부국답게 일자리를 찾아 각 나라에서 몰려 온 이민자들로 넘쳐난다. 자연스레 이들을 상대하는 음식점 역시 국적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고기와 야채, 소스 등을 잔뜩 넣어 밀가루 전병에 싸서 먹는 터키식 ‘케밥’ 판매점은 우리나라의 중국 음식점 만큼이나 대중적이다. 초밥 등을 파는 일본 음식점은 이미 고급음식이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힌 상태다. 중국 식당과 베트남 음식점 역시 다양한 틈새상품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슬로에도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현지인은 거의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세대 전이나 지금이나 노르웨이에서 한국은 ‘입양의 나라’로 기억된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내용도 공교육 선진국 핀란드와 비교해 ‘엄마들의 욕심이 교육을 망쳐버린 최악의 국가’라는 것들이 많다. 최소한 이곳에서 느끼는 한국의 호감도는 베트남이나 태국에도 뒤지는 듯 보인다. 한류 붐이 한창인 아시아 지역만 벗어나도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교역 규모 11위를 자랑하는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 평가는 냉정하다.“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국가 경제력의 30%에도 못 미쳐 일본(224%)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박재완 청와대 수석의 자성이 결코 엄살이 아니다. ●홍콩·말레이시아처럼 마케팅 나서야 국제적 국가 브랜드 평가기관인 안홀트-GMI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순위는 조사 대상 38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GDP 대비 국가 브랜드 가치는 29%에 불과해 일본(224%), 네덜란드(145%), 미국(143%) 등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2005년 25위,2006년 27위 등 해가 갈수록 평가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비슷하게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우리도 홍콩이나 말레이시아처럼 체계적인 국가브랜드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아시아의 세계도시’‘진정한 아시아’를 모토로 삼는 홍콩과 말레이시아는 최근 미국의 기업자문회사인 동서커뮤니케이션스(East West Communications)가 발표한 ‘국가 브랜드 지수’에서도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할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당시 한국은 28위에 그쳤다. 하지만 단순 이미지 포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규범, 문화, 제도 등을 아우르는 ‘소프트파워’ 자체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이라며 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촉구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한국이 경제력에 걸맞는 국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다른 아시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부족하며 사회구성원 간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superryu@seoul.co.kr
  • 한국 고고학 60년 증언

    근대 학문체계로서의 고고학이 국내에 이식된 것은 19세기 말이지만 한국 고고학이 한국인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직후인 1946년의 경주 호우총 발굴조사부터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고고학회가 2년간 기획한 한국 고고학 원로 증언집 ‘일곱 원로에게 듣는 한국 고고학 60년’(사회평론)이 출간됐다. 선정된 원로는 남한 구석기 연구의 문을 연 손보기, 국립박물관에서 모범적인 발굴을 수행한 윤무병, 감은사지를 시작으로 천마총·황남대총 등 우리나라 국가발굴을 이끌어온 발굴왕 김정기,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고고학의 새 지평을 연 윤용진, 삼국시대 유물연구에 전념한 윤세영, 북한 고고학의 성과를 소개하며 남북 고고학을 연계시킨 정한덕, 경주개발계획과 발굴제도 수립을 주도한 정재훈 등이다. 책에는 그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고고학과 인생에 관한 철학과 후학과 학계에 주는 당부 등이 담겨 있다.“지금도 안압지 발굴에 대해 나는 미안한 점이 많아요. 안압지 발굴은 잘 된 게 아니거든요. 그때는 수십 대의 양수기를 사가지고 그 물을 퍼내도 비가 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야(웃음). 지금 발굴하는 것처럼 지붕을 씌웠어야 했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집이 장충체육관이었어요. 그곳에 가보니 기둥을 안 세우고 지붕을 매달았더라고. 건축가 김중업씨한테 기둥 없이 지붕을 어떻게 얹느냐고 자문도 구했지요.”(정재훈)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유물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흙투성이의 작업복을 입은 막노동꾼이나 다름없었지요. 이런 모습을 돌아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하고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풀이하다가 오기 비슷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윤세영)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전단살포계속땐 행동나서” 북한 군부 거듭 경고

    북한 군부는 28일 “남한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살포 등이 계속되면 지난 2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밝힌 대로 단호한 실천행동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남북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같이 말했다. 북한은 지난 2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대북 전단살포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 사업과 개성공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27일의 남북 군사실무책임자접촉에서도 전단살포 중지를 요청했었다. 북측 대표단 대변인은 이날 전단살포, 북한 붕괴설, 급변사태 대비론 등과 함께 지난달 26일 실시된 합동화력운영시범 등을 집중 비난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기고] 21세기 한미동맹의 효용/이상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硏 전문연구원

    [기고] 21세기 한미동맹의 효용/이상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硏 전문연구원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맺은 뒤 한·미동맹은 때론 격랑도 겪으면서 새로운 동맹관계를 모색해 왔다. 현재 한·미동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불확실한 동북아의 역학관계 속에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 존재 의의를 갖는다.‘동북아 역학관계속에서의 안보’란 점에서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의 존재이유는 북한의 위협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두나라의 동맹을 더 큰 지정학적인 규모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동의했다. 그것은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유엔차원에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동맹은 양자관계이지만 한국의 이익만을 위한 차원이 아닌 더 큰 지역적 차원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 국제안보에 있어서 더 큰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 이제 1960년대의 한국이 아니다.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미 양국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 상호 장기적 이익과 안보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앞으로 한·미관계를 결정하는 변수는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이익을 들 수 있다. 또 한국의 국내 여론도 빼놓을 수 없는 핵심변수다. 향후 한·미동맹의 재조정은 구체적으로 정한 게 없지만 정권의 동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구체적인 전시작전권 전환의 시기와 이양의 절차에 대해 재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장 적절한 시점은 한국의 능력이 제고되어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일 것이다. 한·미동맹과 미국의 미래역할의 방향은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견지에서 토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렇지만 향후 미국이 바라는 한국의 역할은 한국이 한반도 지역을 넘어 군사 및 정보능력을 투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미군의 세계전략에 있어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 이제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맡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은 북한정권의 자주성 인정과 정권의 안전보장이다. 여기에다 정치경제적 보상과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이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동북아 지역안보차원을 위한 것이라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측과의 관계는 과거 정권보다 대북지원을 삭감한 상황속에서 다소 불안정하며 경색돼 있다. 일본과의 관계도 미사일발사와 일본인 납치문제 등으로 인해 악화된 상황이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선린 우호관계이지만 핵개발문제로 인해 관계가 다소 소원해져 있다. 러시아와는 새로운 경제관계 형성을 위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한은 핵보유국인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으므로 핵보유국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 이슈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를 거론하며 오히려 핵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핵능력을 보유한 국가로 인정받더라도 북한의 경제는 이미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어 언제 시스템이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은 계속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북한의 운명에 대해 솔직히 토론하고 북한의 미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상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硏 전문연구원
  • [Local] 강원, 산소길 5곳 1200㎞ 조성

    강원도는 27일 자연 속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산소길(O2)’ 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도내 5곳에 1200㎞를 산소길로 조성하기 위한 탐사활동을 벌인 뒤 2011년까지 도로나 등산로 등과 연결해 관광상품으로 만들 예정이다. 산소길로 검토되는 곳은 북한강(인제 미산계곡~내린천~합강~소양강댐~공지천~의암댐)과 남한강(태백 검룡소~선 임계~영월 동강),DMZ(철원 노동당사~평화의댐~제4땅굴~건봉사~통일전망대), 해안가도(삼척~강릉 경포대~양양 낙산사~속초~고성), 백두대간(태백산~오대산~대관령~대청봉~진부령) 등이다. 도는 28일 도청 광장에서 ‘산소길 강원 3천리 탐사대’ 발족식을 갖고 춘천 공지천까지 100대의 자전거로 퍼레이드를 펼칠 예정이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1조원 투입 팔당호 수질 되레 악화

    2500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의 수질 개선을 위해 최근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으나 수질은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경기도에 따르면 팔당호의 올 1∼8월 평균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은 1.5㎎/ℓ로 2006년과 지난해 같은 기간의 평균 BOD 1.3㎎/ℓ보다 0.2㎎/ℓ 높아졌다. 유입 하천별로는 남한강의 BOD가 2006년 1.6㎎/ℓ에서 올해 2.1㎎/ℓ로 높아졌고 북한강의 BOD도 같은 기간 1.0㎎/ℓ에서 1.3㎎/ℓ로 높아졌다. 경안천의 BOD만 2006년 4.4㎎/ℓ에서 올해 2.9㎎/ℓ로 낮아졌다. 도는 팔당수질개선종합대책에 따라 2006년부터 올해까지 하수관 정비, 하수처리장 건설, 인공습지 조성, 축산폐수 관리 등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한 각종 사업에 1조 2000억원을 투입했다. 도는 팔당호 수질이 악화된 이유 중 하나로 2006년보다 적은 올해의 강수량을 꼽았다. 비가 적게 오면서 하천의 유수량이 감소, BOD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북한강 상류인 강원도와 남한강 상류인 충북도와의 수질개선사업 공조 어려움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도는 팔당댐에 영향을 미치는 오염물질 배출량의 22.4%를 충북지역에서,50.7%를 강원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고]

    박기철(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씨 부친상 21일 건국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2030-7905 정기택(매일경제신문사 사진부 부국장)씨 상배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후 2시 (02)3410-6917 전상문(제일모직 전자재료사업본부장)씨 별세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16 조민수(이피네트 이사)이철희(대우증권 WM시스템부 팀장)씨 빙부상 2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921-8699 장남수(OBS경인TV 마케팅국장)씨 모친상 20일 강릉의료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33)646-8329 양정문(닥터디자인 대표)유옥(충열여고 교사)정희(동영유치원 원장)씨 부친상 이신철(대원레미콘 상무)정영길(자영업)김광철(원불교 남천교당 교무)김보달(대우증권 진주지점장)씨 빙부상 20일 부산 주례보훈병원, 발인 22일 오전 5시30분 (051)601-6796 이태남(퍼시픽호텔 과장)태종(지질자원연구원 실장)태준(육군 중령)씨 부친상 21일 전북 정읍 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63)530-6704 오길환(전 한라공조 공장장)영(기아차 국내영업본부 상무)대환(사업)일환(〃)제환(캠코 영업부장)씨 모친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95 최금환(대한약국 대표)흥환(충남한의원 원장)윤환(공주 대성상사 대표)장환(공주 대한목장 〃)치환(한국화이자 부장)태환(포즈 대표)씨 모친상 재욱(고려대 의과대 교수)재석(휴온스 연구원)씨 조모상 윤익현(강민 대표)정영일(공주 우신약국 〃)씨 빙모상 20일 공주 계룡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7시 (041)857-5099 박찬혁(초대 KOTRA 북경무역관장·서예가)찬정(청주대 교수)씨 부친상 원우(서울대 교수)이우(JNS테크놀로지 대표)씨 조부상 김시정(전 교사)이위형(미트비지니스컨설팅 소장)이동대(대일이화학 회장)정창근(전 교사)이원환(교사)신호(자영업)씨 빙부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3410-6914 최희암(프로농구 전자랜드 감독)씨 모친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10시 (02)2227-7547 김동경(우리금융그룹 홍보팀 차장)씨 모친상 21일 전북 군산 금강장례식장, 발인 23일 오전 7시 (063)445-4278 장미남(수필가·전 한국문인협회 구리시지부장)씨 별세 홍기민(사업)씨 상배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35 심재오(스프링프레쉬코리아 상무)재곤(융성건업 대표)재훈(씨앤씨리조트개발·스프링프레쉬코리아 〃)씨 모친상 강석하(예비역 육군 장성)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씨 빙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2 이승기(가람동국감정법인 이사)서기(자영업)신기(신한은행 글로벌사업부 조사역)씨 모친상 21일 대구 동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53)250-8143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4) 해가 빛이 없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4) 해가 빛이 없다

    1637년(인조 15) 음력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항복했다. 일찍부터 여진족을 ‘오랑캐’이자 ‘발가락 사이의 무좀(疥癬)’ 정도로 멸시해 왔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그것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기막힌 장면이었다. 인조와 신료들은 ‘오랑캐 추장’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가장 치욕스런 항복 의식이었다. 그것으로 ‘춥고 배고픈’ 산성에서의 고통은 일단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조와 신료들, 조선 백성들 앞에는 몇 배나 더 아프고 처절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색 융의를 입고 서문으로 나오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가 항복하기로 결정한 뒤, 항복 의식을 어느 수준에서 행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다. 1월28일, 김신국, 최명길, 홍서봉 등이 청군 진영에 갔을 때 전체적인 대강이 확정되었다. 용골대 등은 조선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제 1등 절목(節目)은 면제해 준다고 했다. 그것은 이른바 함벽여츤(銜璧輿)을 면제해 준다는 뜻이었다. 함벽여츤이란 손이 뒤로 묶인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메고 나아가 항복하는 의식을 가리킨다. 관을 메는 것은 항복하는 사람이 자신을 죽이더라도 이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좌전(左傳)’에 보면 미자(微子)가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함벽여츤을 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선왕의 제기(祭器)까지 모두 바쳐 완전히 신하가 되어 복속하겠다는 것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함벽여츤’은 면제되었지만 청 측이 요구한 의식 내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1월28일, 홍타이지의 칙서를 갖고 왔던 용골대는 조선 신료들과 항복 의식을 논의했다. 하지만 ‘논의’라기보다는 ‘통고’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용골대는 먼저 과거 조선이 명 황제의 칙서를 받을 때 어떤 의례(儀禮)를 따랐는지 물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조선 신료들을 떠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당시 청 진영에는 범문정(范文程)을 비롯하여 한족 출신 이신(貳臣)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명과 조선 사이의 외교 전례(典禮)에 밝았고, 그 내용을 홍타이지는 물론 만주족 관인들에게 훈수하고 있었다. 홍서봉이 ‘칙서를 가져온 명 사신이 남향으로 서고, 조선 배신(陪臣)은 꿇어앉아 칙서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홍서봉이 조선과 명의 전례를 ‘실토’하자 용골대는 자신이 남향하여 서서 과거 명 사신이 하던 방식대로 칙서 전달 의식을 재현했다. 칙서 전달을 마친 뒤 용골대는 동쪽에 앉고 홍서봉 등은 서쪽에 앉았다. 이 같은 좌차(座次) 또한 과거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했던 관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조선의 상국(上國)이 명에서 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례 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용골대는 삼전도(三田渡)에 수항단(受降壇)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과 1월30일을 항복 의식을 행하는 날로 정했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그는 또한 항복하는 인조가 용포(龍袍)를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정문인 남문으로는 나올 수 없다는 것도 통고했다. 용골대는 인조가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수행원은 500명을 넘을 수 없고, 호위하는 군사나 의장대를 거느릴 수도 없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적어도 홍타이지를 황제로 받들고 신속(臣屬)을 맹세하러 나오는 이상, 인조는 철저히 신례(臣禮)를 행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홍서봉 등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용골대의 기세를 꺾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인조,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다 항례(降禮)를 행하는 절차까지 정해지고 난 뒤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일부 신료들은 ‘전하는 항복하시더라도 명에서 받은 옥새를 청 측에 넘겨서는 안 되고, 그들을 도와 명을 치는데 필요한 군사를 원조해서도 안 된다.’고 눈물로 간언했다. 일각에서는 각 관아의 문서들을 모아다가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평소 각사(各司)끼리 주고받던 문서에서 청인들을 가리켜 ‘적(賊)’, 또는 ‘노적(奴賊)’이라 적어 놓은 것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1월30일이 밝았다. 산성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나만갑은 이 날의 일들을 기록하면서 맨 앞에 ‘해가 빛이 없다(日色無光).’고 적었다. 자신의 주군(主君) 앞에 닥친 치욕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일찍부터 용골대와 마부대가 나타나 인조의 출성을 재촉했다.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색 융의(戎衣) 차림으로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섰다. 인조의 뒤에 선 신료들 가운데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청군이 양철평까지 들이닥치고, 강화도로 가는 피란길이 끊어졌다는 소식에 놀라 황망하게 산성으로 들어온 지 꼭 46일째 되는 날이었다. 홍타이지는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진영에서 나와 군기를 앞세우고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삼전도를 향해 한강을 건넜다. 삼전도에는 아홉 단으로 높다랗게 쌓은 수항단과 크고 작은 황색 장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인조가 50여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산성 밖 5리쯤까지 왔을 때 용골대 등이 영접을 나왔다. 용골대 일행이 앞장서고 인조는 삼 정승과 판서, 승지와 사관(史官)만을 거느리고 삼전도를 향해 걸어서 나아갔다. 군사를 도열시켜 놓고 장막에서 기다리던 홍타이지는 인조 일행이 도착하자, 그와 함께 배천(拜天) 의식을 행했다. 청의 입장에서 ‘조선이 한 집안이 되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의식이었다. 배천 의식을 마치고 홍타이지가 수항단에 오르자 인조는 그 아래 무릎을 꿇었다. 인조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개과천선하겠다고 다짐한 뒤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이끌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었다. 예를 행한 뒤, 용골대 등이 인조를 인도하여 홍타이지 아래에 마련된 자리로 안내했다.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뒤 홍타이지는 ‘이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다.’며 조선 신료들에게 활을 쏘아보라고 했다. 조선 신료들이 쭈뼛거리는 와중에 청나라 왕자와 장수들은 떠들썩하게 어울려 활을 쏘면서 놀았다. 이윽고 주찬(酒饌)이 나오고 음악이 울려 퍼졌다. 세 차례 술잔이 돌고 잔치가 파할 무렵, 청나라 사람이 개를 끌고 나오자 홍타이지는 직접 고기를 베어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조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모습이었다. 인조는 이런저런 치욕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이시여,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잔치가 파하자 강화도에서 끌려온 강빈을 비롯한 왕실과 대신들의 처자들이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곧 이어 용골대가 홍타이지의 선물이라며 초구(貂, 짐승 가죽으로 만든 방한복)를 가지고 와서 인조 이하에게 주었다. 인조는 그것을 입고 홍타이지 앞에 나아가 사례했다. 다시 두 번 무릎을 꿇고 여섯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이어 강화도에서 사로잡은 포로들과의 상면을 허락했다. 서로 만난 왕실과 대신들의 가족들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삼전도는 순식간에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홍타이지가 신시(申時, 오후 3~5시) 무렵 자리를 뜬 뒤에도 인조는 밭 가운데 앉아 그들의 지시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에야 도성으로 돌아가라는 통고가 내려졌다. 인조는, 인질이 되어 심양으로 가게 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부와 이별한 채 귀경 길에 올랐다. 송파 나루에서 배에 오를 때, 신료들이 다투어 먼저 건너려고 인조의 어의(御衣)를 잡아당기기까지 하는 소란이 빚어졌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인조가 청군 병력의 호위 속에 도성으로 돌아올 때, 수많은 포로들이 인조를 향해 울면서 절규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인조는 그 절규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밤 10시 무렵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인조의 생애에서 가장 길고도 처참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말뿐인 사법부 과거 반성] “팔순 노모 눈 감으시기 전에 간첩 누명 제발 벗고 싶어요”

    [말뿐인 사법부 과거 반성] “팔순 노모 눈 감으시기 전에 간첩 누명 제발 벗고 싶어요”

    ‘나는 형사법정에 서는 날을 학수고대한다.27년 전 고문이 두려워 거짓 자백을 했다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귀를 막았던 법원이지만, 그래도 그곳만이 간첩 누명을 벗겨줄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심을 청구했는데도 1년 반이나 대답 없는 법원을 지켜보니 자꾸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무죄래요.’라고 말씀 드려야 하는데 혹시 그때 그 법원처럼 또 우리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면 어쩌나 하고.’ 81년 3월7일 새벽 6시 박동운(당시 36세)씨는 안기부 수사관 3명에 끌려 남산 지하실로 갔다. 그들은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간첩으로 돌아와 간첩 지령을 했다고 자백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얼굴도 모른다고 하자 끔찍한 고문이 시작됐다. 발가벗겨 공중에 매달아 때리고 얼굴에 고춧가루 물을 부어댔다. 실토하지 않으면 어머니와 아내도 똑같은 고문을 받을 것이라 협박했다. 결국 71년 10월 월북해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허위 진술서를 작성했다. 농협 진도군지부 예금계장이 24년간 암약한 간첩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이수례(당시 57세)씨와 동생 근홍(당시 34세)씨, 숙부 경준(당시 48세)씨, 고모부 허현(당시 43세)씨도 그곳에서 박씨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 법정에 섰다. 박씨 가족은 법원만이 희망이라 믿었다. 첫 재판부터 몸에 남은 상처와 멍 자국을 보여주며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체감정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류로 법대를 두드리며 “안기부에서 시인해 놓고 왜 여기서 부인하느냐.”고 오히려 야단쳤다. 그는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94년 광주교도소 교도관을 통해 ‘재심´이란 절차를 처음 알게 된 뒤 그는 법전을 읽으며 다시 희망을 키웠다.98년 8월15일 18년 만에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월북했다고 인정된 71년 10월3~24일, 그가 남한에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다녔다.10월14일 직장을 대구에서 진도로 옮기며 박씨가 직접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표를 퇴거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안기부의 협박 때문에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동료들의 진술도 나왔다. 지난해 4월 새로운 증언과 증거를 첨부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해 10월 국가정보원(옛 안기부) 진실위에서도 안기부가 박씨 가족을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원은 오늘까지 묵묵부답이다. 박씨의 기다림이 간절한 것은, 스물여덟에 남편을 잃고 삼형제를 키우다 고문까지 받은 어머니,4년간 옥살이한 뒤 두 아들의 옥바라지까지 한 어머니, 손가락질하는 동네 사람을 피해 절에 숨어 사신 그 여든 네살 노인이, 이제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입원 치료를 받고 있어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재판은 어찌 돼가냐?’ 묻는데….” 그는 끝내 목이 멨다.“어머니 가슴에 얹혀져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고 저 세상에 가실 수 있도록 간첩 누명을 풀어주길 부탁한다.” 그는 신속한 재판 진행을 바라며 어머니의 건강진단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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