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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통령 취임 2주년] 한·미 찰떡공조…남북정상회담 변수

    “올해로 외교통상부 근무 30년째인데, 요즘처럼 한·미 관계가 좋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22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서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서울에 온 한덕수 주미대사도 지난 11일 브리핑에서 “현재 한·미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게 워싱턴의 평가”라고 했다. 이달 초 서울을 찾았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한·미 관계에 관한 기자들 질문에 “지금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같은 ‘한·미 관계 온난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중 간 견제와 미·일 갈등이라는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으로 한국의 중요성이 부각된 데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국력이 커진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감성외교’도 한몫 했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신 차관은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한 성공담을 솔직히 털어놓는 이 대통령의 화법에 정상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중·일 순방 직후 “한국 방문이 가장 좋았다.”고 밝힌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한·미 간 ‘찰떡 공조’를 북한은 대남 위협과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고전적 수법으로 이간(離間)하려 들지만 별무소용인 상황이다. 북핵 문제에 있어 근본적 해결을 추구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비(非) 정치적 해법을 지향하는 한국 정부의 ‘궁합’은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처럼 오락가락하지 않고 ‘핵추구=제재, 핵포기=지원’이라는 일관된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비핵·개방 3000’이라는 단순한 원칙으로 북한의 현란한 도발에 맞서고 있다. 경제난으로 다급해진 북한은 미국을 향해 제재 해제를, 남한에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와 남북정상회담 등을 각각 요구하는 ‘통미통남’ 전술까지 동원하고 있다. 전에 볼 수 없던 신(新) 기술이다.하지만 아직까지 한·미 간 보조는 가지런하다. “6자회담 재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북한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당국자들의 차분한 자세는 지금 남북문제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취임 직후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과 2차 북핵 실험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듯 했던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옳은 결단이었다는 분석이 점증하고 있다. 문제는 임기 중반에 접어드는 올해가 남북정상회담의 적기(適期)로 꼽힌다는 점이다. 북한이 ‘개과천선’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6자회담 이 재개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난제다. 지금까지의 전략대로 북한의 투항을 인내심 있게 기다릴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견인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지가 이 대통령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날개 비롯한 한국 시·소설도 번역해 볼래요”

    “날개 비롯한 한국 시·소설도 번역해 볼래요”

    “이란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기도 하고 남녀와 친척관계 등 사회적 풍습이 비슷하지요.” 주한 이란대사관에 근무하는 모르데자 솔탄푸르(49) 참사관이 이란 동화를 한국어로 처음 번역 출간해 화제다. 이란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화리데 칼라트바리의 ‘블루 피플’(큰나 펴냄)로, 샤갈의 그림을 바탕으로 소녀의 외로움과 소통의 중요성을 다룬 작품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지내면서 외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 반대로 한국어로 번역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한남동 주한 이란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출판사 대표와 우연히 만나 (‘블루피플’을)정하게 됐다.”면서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슬퍼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몇가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란과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큰 부담은 없었다고 부연했다. ●북한 유학… 남한서 한국문학 석사학위 모국 이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문화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는 1986년 한국어 전문가를 육성하려는 이란정부의 지원으로 김일성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고 졸업 후에는 이란 외무부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의 주한 이란대사관으로 옮겼다. 평소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는 한국의 식민지 소설 등을 틈틈이 접하면서 재미에 흠뻑 빠졌다. 내친김에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2001년 ‘한국사회의 역사적 변동과 한국 근대소설의 흐름’이란 쉽지 않은 논문주제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연세대 최유찬 교수의 권유와 지도역할도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이란은 물론이고 한국에 머무는 이란인 중에서도 한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며 웃는다. “20세기 초부터 한국문학의 흐름을 꿰보는 일이지요. 일제 때의 항일문학, 1970년대의 노동운동,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입니다.” ●“박경리 토지·이광수 흙 관심있게 읽어” 그는 이상의 ‘날개’, 박경리의 ‘토지’, 이광수의 ‘흙’을 관심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날개’를 비롯, 한국의 시와 소설을 번역하는 일에 역점을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은 어린이가 커서도 페르시아문학을 이해하듯이 이란동화를 번역하는 일도 틈틈이 해보겠다고 말했다. 슬하에 딸 셋을 두었으며 큰딸(22)은 평양, 둘째는 이란, 셋째(10)는 서울에서 태어나 출생지가 3개국이다. 이들도 한국어를 조금씩 구사할 줄 알며 부인 역시 한국문화를 깊이 이해하려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김문 부국장 km@seoul.co.kr
  • 해군, P-3CK 해상초계기 인수

    해군, P-3CK 해상초계기 인수

    올 연말이면 해군의 해상초계능력이 대폭 향상될 전망이다. 해군은 23일 포항의 제 6항공전단에서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해상초계기 2차 사업의 결과물인 ‘P-3CK’ 인수식을 갖는다. ’P-3CK’ 해상초계기는 현재 해군에서 운용 중인 ‘P-3C’ 해상초계기보다 탐지능력이 더욱 향상된 기체다. ‘잠수함 킬러’로 불리는 P-3C 해상초계기는 강력한 대잠능력 외에 대수상 레이더와 각종 카메라 등을 이용해 다양한 초계작전을 펼칠 수 있어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P-3C 해상초계기가 육상과 떨어진 해상의 목표만을 탐지하는 것에 반해 P-3CK 해상초계기는 항구에 정박 중인 함정이나 육상의 목표물까지 식별할 수 있는 다목적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또 기존에 비해 5배 이상 성능이 향상된 적외선 카메라와 신형의 디지털 음향탐지 및 분석장비도 탑재하고 있다. 여기에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AGM-84L 하픈2’(Harpoon II) 미사일을 결합하면 북한의 장사정 해안포를 직접 공격할 수도 있다. 하픈2 미사일은 원래 수상함을 공격하는 대함미사일이지만 유도능력을 향상시켜 육상의 목표물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에 인수되는 P-3CK 해상초계기는 새로 만든 기체가 아닌 미해군에서 퇴역한 뒤 보관중이던 구형 ‘P-3B’ 해상초계기 중 상태가 양호한 기체를 골라 노후화된 주날개를 교체하고 동체를 보강한 뒤 도입됐다. P-3CK 해상초계기는 이 작업을 통해 새로 만든 기체와 비슷한 향후 20년간 1만 5000시간의 수명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업은 우리나라의 KAI(한국우주항공)와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L-3사에서 실시됐다. 현재 8대의 P-3C 해상초계기를 운용하고 있는 해군은 연말까지 8대의 P-3CK 해상초계기를 인수해 총 16대의 해상초계기를 보유할 예정이다. 해군은 P-3CK 해상초계기가 전력화되면 남한 면적의 3.3배에 이르는 30만 ㎢ 넓이의 작전해역과 해상교통로를 더욱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 = KAI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 이달초 고건위원장 접촉 시도

    원동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최근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고건 위원장과 접촉을 타진했던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접촉 명목은 사회통합위 차원에서의 북한 지역 나무심기 추진을 위한 협의였으나 실제로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타진의 일환이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원 부부장은 북한 산림녹화 사업 논의차 ‘6일 베이징에서 고 위원장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당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우리 당국이 호응하지 않아 ‘고건-원동연’ 회담은 성사되지 않았고, 대신 원 부부장은 6일 베이징에서 남측 민간 인사들만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남북포럼 김규철 대표는 이날 4명의 참사를 대동한 원 부부장이 남측 민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밝힌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원 부부장은 고 위원장과의 회동이 성사되지 않은 데 대해 통일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원 부부장은 “고 위원장과의 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은 통일부의 속도조절 요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 원 부부장은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 간 회동에서 남북정상회담 및 식량지원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지만 통일부의 반대로 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원 부부장은 최근 남한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공론화된 것과 관련, “정상회담은 준비에서부터 보안 속에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 공론화하고 언론이 앞서고, 이런 보도가 나가면 (남한 정부는) 못 하겠다거나 안 하겠다고 발표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환자에게 더 믿음 주고 싶어 공부”

    “환자에게 더 믿음 주고 싶어 공부”

    경기 성남에서 ‘묘향산 한의원’을 운영하는 박수현(44)씨가 탈북자 출신 한의사 가운데 처음으로 박사 학위까지 따는 영예를 얻었다. 16일 경원대에 따르면 박씨는 한약재인 청피(귤껍질)와 지골피(구기자 뿌리의 껍질)가 스트레스 감소에 끼치는 효과를 주제로 한 연구논문을 써 19일 열리는 졸업식에서 박사모를 쓴다. 박씨는 2001년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의사가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에 또 한번 ‘1호’ 기록을 더한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개업해 보통 남한 사람들과 비교해도 부럽지 않은 한의사가 됐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접지 못했다. 박씨는 “한의사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한의학은 믿음의 의학”이라며 “환자가 나를 더 믿고 따를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으니 더 좋은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박사 학위를 따고 보니 오히려 10년 전 개업할 때의 설레던 마음이 생각난다.”면서 “내게 오는 사람들은 다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니 초심을 잃지 않고 이웃같이 따듯하게 대해 주고 싶다.”고 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마냥 기뻐야 할 박씨지만 그에게는 얼마 전 조금 아쉬운 일이 있었다. 4형제 중 둘째인 자기를 따라 한의사가 된 막내동생에 이어 셋째가 한의대를 졸업하고 최근 국가고시를 봤지만 합격을 하지 못한 것이다. 유례없는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의 탄생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성·광·하 통합준비委長 김대진

    경기도 성남·광주·하남시 통합과 관련한 최상위 협의·조정기구인 통합준비위원회는 11일 오후 6시 성남시 수정구 옛 시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김대진 성남시의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2~8일 통합시 명칭 공모에서는 한성(195건)이 최다 득표를 얻었고 이어 광남(87건), 한주(69건), 위례(49건), 남한(47건) 순이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트로트 사대천왕(四大天王)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트로트 4인방 하춘화, 주현미, 현숙, 장윤정의 무대를 만나 본다. 고향 땅에서 설날을 맞이하는 동포들을 위해서는 이자연의 흥겨운 무대가 이어지고, 민족의 정서를 노래에 담아 전하는 ‘국보 민요 가수’ 김세레나는 권철호, 김인수 콤비와 함께 추억의 극장쇼를 재연한다. ●마당놀이 이춘풍전(KBS2 오전 9시50분) 경제적으로 무능하면서 주색잡기 등 온갖 방탕한 생활만 일삼는 이춘풍이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몽땅 탕진한 뒤 지혜롭고 당찬 부인의 기지로 가정을 되살린다는 내용의 ‘이춘풍전’.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이 명실상부한 마당놀이 스타로서의 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행복을 배우는 작은 학교들(MBC 오전 7시20분) 지난해 9월 ‘PD수첩’을 통해 방송돼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행복을 배우는 작은 학교들’이 더욱 깊고 다양해진 감수성으로 소개된다. 학교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면서도 공부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 가는 남한산 초등학교 아이들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 공교육의 나아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 ●제중원(SBS 오후 9시55분) 도양은 의생들과 함께 마마에 걸린 환자를 옮기려 하지만 박수무당이 앞길을 가로막자 환자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자들을 치도곤으로 다스리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일본공사로부터 제중원에서 마마치료용으로 쓰고 있는 농포가루를 탈취하라는 명령을 받은 김돈은 농포가루를 옮기던 유희서 일행을 습격한다. ●다큐 10+(EBS 오후 11시10분) 어미 품을 떠나 이제 막 독립한 어린 북극곰. 녀석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홀로 사냥하는 법은 물론, 상황이 좋지 않을 땐 사체를 찾아 배를 채우는 법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두렵기만 한 어린 북극곰이 과연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당당한 성체로 성장해 북극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본 지구2(OBS 오후 10시) 위기에 처한 세계 각지의 숲들을 찾았다. 자연의 신비 제왕나비들은 겨울잠을 잘 멕시코의 숲을 잃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수많은 고유종 동물들을 자랑하는 마다가스카르 역시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이곳에 사는 여우원숭이들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작가 베르트랑이 사라져 가는 숲을 하늘에서 바라본다.
  • 성·광·하 통합시 명칭 ‘한성시’ 잠정집계 1위

    “삼행시?” 성남, 하남, 광주 통합시 명칭공모결과 ‘한성(漢城)시’가 최다 득표를 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그러나 ‘삼행시’와 ‘누리시’, ‘새남시’ 등 톡톡튀는 명칭까지 합쳐 1000여건이 접수돼 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9일 통합시 출범준비단에 따르면 지난 2∼8일 통합시 명칭을 공모한 결과 3개 시를 합쳐 총 1231건이 접수됐다. 통합시 명칭으로는 ‘한성’, ‘광남(廣南)’, ‘한주(漢州)’, ‘위례(慰禮)’, ‘광주(廣州)’가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한성이 유일하게 190건 이상 응모돼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나머지 명칭은 20~78건에 그쳐 한성과의 선호도 격차가 컸다. ‘남한시’, ‘남한산시’, ‘산성시’ 등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성과 관련한 명칭도 많았고, ‘아름시’, ‘누리시’, ‘분당시’, ‘중부시’, ‘온조시’, ‘한백시’, ‘하나시’, ‘삼일시’, ‘새남시‘ 등도 눈에 띄었으나 선호도는 낮았다. 출범준비단은 중복 응모 건수를 걸러내는 등 최종 집계를 하고 나서 통합준비위원회에 안건을 올려 통합시 명칭을 최종적으로 선정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3일까지 창원, 마산, 진해 통합시 명칭 공모에 2만7001명이 응모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것이어서 통합시에 대한 시민의 무관심을 반영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일제 식민통치 도구들 美군정 그대로 대물림

    비록 비자주적 독립이었지만, 이후 건국과 정부 수립만이라도 우리 힘으로 이뤄냈다면 훗날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해방 이후 진행된 미 군정 3년은 이후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 군정은 일제가 효과적인 식민통치 도구로 삼았던 법과 제도 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또한 친일관료, 일본군·만주군 출신, 경찰 조직 등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이들이 고스란히 재등용되며 미 군정의 그늘 아래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게 됐다. 언어생활, 법령, 교육, 학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일본의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게 된 배경이다. 미 군정은 1945년 9월7일 선포됐고, 1948년 8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이르는 2년 11개월 동안 실시됐다. 미 군정청은 우선 전국적 치안권의 확립을 위하여 9월14일 군정 장관의 성명으로 일인 경찰관을 포함한 이전의 일제 경찰관을 그대로 존속시켜 치안유지의 책임을 맡겼다. 그때까지 자생적으로 치안 임무 등을 부분적으로 수행하던 건국준비위원회의 치안대 등은 경찰권 행사가 금지됐다. 그 근거는 조선 백성들이 독립의 보증수표로만 믿었던 포츠담 회담이었다. 1945년 7월26일 포츠담회담의 밀약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설정,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점령하자는 것이었다. 독립의 보장이 아니라 민족 분단의 첫 단추였다. 그해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나온 미·소의 남북 신탁통치 결의 역시 분단을 부채질하는 촉매가 됐다. 반면 건국준비위원회는 우파와 좌파 합작의 형태를 띠며 자체적인 국가 건설을 준비했지만 오히려 미국의 의구심을 자극하며 미 군정에 의해 부정됐다. 또한 환국을 서두르던 충칭 임시정부 요인들 역시 미 군정에 의해 입국이 지연됐고, 나중에야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하도록 허용됐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이렇게 미국에 의해 부정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지역발전을 위한 제언/박현갑 사회2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지역발전을 위한 제언/박현갑 사회2부 부장급

    #1. 미국 와이오밍 주 텐슬립 마을의 캐서린 햄튼은 현지 초등학교 교사다. 그는 마을 초등학교 수업을 끝내고 오후 5시가 되면 한국의 강화 초등학교 학생들과 만난다. 원격 화상수업이다. 캐서린 교사처럼 원격 화상수업을 맡고 있는 와이오밍 주의 전·현직 교원은 340여명. 원격화상 수업에 따른 수입이 좋아 현지 학교생활을 그만두고 화상수업만 전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태평양 건너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게 된 것은 데이브 프루덴탈 주지사의 노력 덕분이다. 와이오밍 주는 땅 크기가 남한의 3배지만 주민수는 50만명에 불과하다. 데이브 주지사는 농업과 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고 주민 숫자를 늘리기 위해 고민하던 중 대한민국의 영어 열풍에 착안, 한국 등 아시아를 겨냥한 원격 화상수업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주 정부 예산으로 교사자격증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화상수업 지도교사를 선발하고 화상교육 훈련도 시켰다. 교사 보수는 수업을 듣는 광주나 인천교육청에서 준다. 화상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인근 다코다 주나 몬태나 주에서 와이오밍 주로 교사들이 몰리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한몫 하고 있다. #2. 대구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대구사과를 타이완에 수출했다. 충남 예산시, 경북 영주시도 마찬가지다. 과수농가를 돕고 지역 브랜드도 키우려는 전략이다. 서울 구로구는 구로 디지털단지 노하우를 미국 네바다 주의 헨더슨 시에 수출하는 협약을 맺었다. 디지털단지 입주업체들의 미국 현지 진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경기 이천시와 전남 완도군은 이천쌀과 완도김을 활용한 김밥사업 아이디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봄이면 서울과 분당에서 두 농수산물을 활용한 김밥이 선보인다. 지자체 간 윈윈 전략의 하나다.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내 고장 발전을 위한 노력이 뜨겁다. 1995년 민선 지자체 도입 이래 가속화하고 있는 현상이다. 단체장들이 저녁마다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주민들을 만나는 것도 이같은 지역발전을 위한 고민의 모습일 게다. 물론 부정적 모습도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35명의 단체장이 부정비리 등의 혐의로 직을 잃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중앙정부는 이같은 폐해를 최소화하고 지방자치를 성숙시키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 도입에 따른 폐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민선자치제를 유지한다면 행정의 비효율은 ‘큰집’에서 막아줘야 한다. 의욕적으로 수출전략을 구상 중인 기초자치단체들이 있다. 영주시, 예산시에서는 지역농가에서 재배한 품질 좋은 사과를 타이완에 수출하고 있다. 과잉 생산량을 수출로써 해소하고 가격 상승 유도를 통해 농가소득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자체 간 협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잔류농약 검사 등 갖은 검역절차 끝에 판매하면서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2001년 중단했던 사과 수출을 재개한 예산군 관계자는 “시중에서는 10㎏ 한 박스를 5만~6만원에 판매하는데 수출가는 고작 2만원”이라면서 “하지만 지자체 간 협의는 없다.”고 했다. 영주시 관계자도 “지자체 간 협의가 된다면 전체적으로 과당경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나 지자체 간 협의회에서 지역별 물량 조절이나 판로 확대 등 좀 더 세밀한 지원전략을 수립할 때다. 유권자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오는 6월2일은 지방선거일이다. 국회의원, 광역시장은 물론 기초단체장들도 뽑는다. 선거를 앞두고 내 고장 발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전·현직 관료에 지방의회 의원, 지역 상공인 등 저마다 당선을 꿈꾸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단체장이 하기에 따라서는 지역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두 눈 부릅뜨고 제대로 된 후보를 꼼꼼히 살펴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agleduo@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분단 떠안은 광복… 날선 이념대립이 전쟁 불러

    조국의 해방은 절실했고, 침략적 제국주의는 대를 이었다. 이념으로 재편된 국제 정세는 조국을 더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떠밀었다. 제국 간의 다툼과 이해관계의 공존 속에서 한민족의 평화에 대한 갈망은 깊어만 갈 뿐 아니라 요원하기까지 했다. 1945년 8월15일 오전 종로 거리 등 서울 곳곳에는 ‘정오에 중대한 방송이 있으니 국민들은 반드시 들어라.’라는 내용의 방이 붙었다. 그리고 낮 12시. 라디오 앞에 모여든 흰 옷 입은 백성들은 지직거리는 기계음 속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선언, 즉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다는 느릿하고 기운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훗날 시인 서정주가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한 변명처럼 “못 가도 100년은 가리라고 생각했던” 일본은 그렇게 패망했다. 8월6일과 9일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두 발은 수십만명의 일본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일본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했다. ‘각의’, ‘황족회의’, ‘어전회의’ 등을 거친 끝에 일왕은 직접 무조건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14일 밤 11시40분 항복선언 발표를 녹음했다. ●질곡의 씨앗이 된 비(非) 자주적 독립 광복(光復)이었다. 식민의 설움을 겪던 백성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은 8월15일 그날은 감격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제히 광장으로, 거리로,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독립에 ‘스스로’ ‘자주’가 빠져 있었다. 충칭 임시정부의 결정으로 광복군특공대가 1년 남짓 동안 준비해왔던 국내 진공작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자력이 아닌 상태로 일본의 항복이 나왔다는 점에서 독립은 ‘비자주적’인 측면이 강했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훈련하다가 일본의 항복선언을 듣고 무산된 계획에 오히려 땅을 치며 통곡한 특공대원들의 모습은 한반도에 드리워진 또 다른 불안한 미래를 상징했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접한 김구는 “이번 전쟁에 우리가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국제적 발언권이 약해질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반도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의 손에 맡겨지게 됐다. 오로지 평화와 독립만을 간절히 바랐던 한반도의 백성들은 순진했고, 침략의 이해관계와 앙상한 이념의 대립을 앞세운 제국주의에게 약소국 백성들의 순수한 열정은 안중에 없었다. 갇힌 독립투사들의 석방, 강제 징용·징병으로 끌려간 청년들의 귀환, 임시정부가 아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의 수립 등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분단(分斷)이라는 업보만 덤으로 떠안겨졌다. 강대국들의 협상 결과 아프리카 대륙의 여느 나라들처럼 한반도에도 뜬금없는 38선이 직선으로 그어졌고, 그해 9월 남쪽에는 미 군정이, 북쪽에는 8월 말 소련의 군정이 들어섰다. 1948년 8월 비록 단독 정부였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모양과 주체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식민의 시간은 연장됐다. ●남북으로 갈라져 연장된 식민통치 국제연합(UN)은 공식적으로 남북 총선거를 결의했다. 그러나 1948년 1월 UN 한국위원단의 입북을 소련이 거부하면서 UN은 2월 남한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도록 다시 결의했다. 김구·김규식 등 단독 선거, 단독 정부를 반대한 정치인들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UN 한국위원회에 남북협상을 제안하고, 북쪽에도 남북 요인회담을 제안했다. 그 결과 그해 4월19일 김구와 김규식은 삼팔선을 베고 쓰러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방북을 감행하고 남북 제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 남북요인 15인회담, 이른바 ‘4김’(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회담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며 이러한 안간힘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날 선 이념의 대립으로 민족이 서로 적대하는 속에서 한국 전쟁의 발발은 필연이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동키부대 활약상

    동키부대 활약상

    미군 측은 1·4후퇴 이후 재북진 작전을 구상하면서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유격전과 첩보망을 매우 중요시 여겨 동키부대원들을 북한으로 속속 보내게 된다. 동키부대의 첫 임무는 1951년 3월 6일 부여됐다. 대원 26명이 적진에 침투해 근거지를 확보하고 반공 동조자를 규합한 뒤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교량·철도 및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이었다. 이후 장산반도에 파견된 대원들은 주로 육도·월래도·마합도·초도와 장산곶 등에 근거지를 두고 첩보활동을 했다. 내륙으로 들어간 대원들은 박석산 등 산악지대 동굴에 은거하면서 주변의 반공청년들과 연대해 크고 작은 유격전을 펼쳤다. 하지만 전투장비와 식량, 의복 등 모든 것이 부족해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동키부대원들의 초기 복장은 북한 탈출 시 착용했던 인민군 방한복이거나 다양한 민간복 차림이었고 제대로 된 신발도 없어 고향 난민들이 만들어준 짚신을 신곤 했다.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한 남한 빨치산도 이와 같은 복장을 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1년 정도 지난 후에야 미군 측이 대원들에게 군복과 군화 등을 지급했다. 당시 황해도 일대에서 전개된 유격전은 현지 주민들의 도움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유엔군 재수복을 믿은 주민들은 인민군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유격대원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 대원들의 활약도 적지 않았다. 장산반도에서 주로 활동한 여성 대원들은 정보와 의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장산반도 앞 육도(陸島)를 근거지로 해서 내륙까지 수시로 침투, 현지 주민을 가장해 적정을 효과적으로 살펴 유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백령도에 파견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이들을 에이전트로 활용할 정도였다. 동키부대원들이 이처럼 황해도 연안의 크고 작은 섬을 사실상 지배했기에 휴전협정 당시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등 서해5도가 휴전선 남방으로 책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북방한계선(NLL)은 명예도 보상도 없이 죽어간 무명의 동키부대원들이 만들어낸 ‘눈물의 선’인 것이다. 백령도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1·4후퇴에도 백령도 사수 ‘군번없는 유격대’

    1·4후퇴에도 백령도 사수 ‘군번없는 유격대’

    북한이 자주 도발을 일으키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도상으로 볼 때 다른 곳과 달리 서북쪽으로 쭉 올라가 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NLL 아래로 백령·대청·연평도 등 서해5도가 자리잡고 있다. 북한 측에서 보면 이들 섬이 남의 집 안방을 훤히 들여다 보는 형국이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휴전협정 때 이러한 NLL을 이끌어낸 숨은 주인공이 우리나라 최초 유격부대인 ‘동키부대’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이 최근 계속된 포사격에 이어 5일부터 8일까지 백령도 앞바다에 또다시 사격구역으로 선포한 지난 3일, 백령도 진촌3리에 자리 잡은 과거 동키부대 막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조차 이 부대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짧은 기간 동안 ‘특별한’ 활동을 은밀히 펼치다 전설처럼 사라진 비정규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치산’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남한에서 빨치산이 아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힌 것처럼 북한에서는 동키부대가 적을 무수히 괴롭히고 허를 찔러댔다. 동키(DONKEY, 당나귀)부대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중순 북한 출신 청년들로 구성된 유격·첩보부대다. 6·25가 발발하자 이들은 인민군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벌여 왔다. 이중 세력이 가장 왕성했던 황해도 장연군 무장대는 1·4후퇴에도 불구하고 항전을 계속하다 1951년 1월13일 시가전에서 크게 패하자 대원 수백명이 주민들과 함께 백령도로 숨어들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미군이 이들을 주축으로 유격부대를 창설한 것. 적진에 침투해 적을 교란시키고 첩보수집 등의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북한 출신이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동키부대는 장연군 무장대 출신 26명으로 출발했지만 백령도로 피해온 북한 청년들이 잇따라 자원하면서 2000여명으로 늘어나자 10여개 산하 부대를 편성했다. 동키부대는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83차례의 작전을 벌여 ▲적사살 2100여명 ▲생포 105명 ▲반공인사 구출 4500여명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첩보활동이었다. 대원들이 적진에서 얻은 정보는 공중폭격과 함포사격은 물론 연합군이 각종 전투를 수행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됐다. 동키부대에 대한 모든 작전명령은 미군으로부터 하달됐기에 한국군은 거의 알 수가 없었다. 동키부대가 ‘잊혀진 부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동키부대원들은 전사 338명, 부상 406명, 행방불명 340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동키부대의 후방 교란은 인민군 2개 사단의 발을 묶어 놓았다고 전쟁 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동키부대 활동은 휴전협정과 동시에 중단됐다. 전사한 전우의 시체를 북한지역 산골짜기나 해변가 모래밭에 묻어 두고 각각 주둔지에서 철수했다. 1954년 2월 살아남은 대원 중 지휘관 49명은 장교로, 460명은 사병으로 국군에 편입되면서 짧은 기간었지만 파란만장했던 동키부대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대북활동 중에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원들은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 군번조차 없는 비정규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동키부대원이었던 김양모(85·백령도 진촌2리)씨는 “쌀과 무기만 지급받은 채 공산군에 대한 미움 하나로 목숨걸고 싸웠지만 보상은커녕 60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해 서글프다.”고 말했다. 현재 백령도에 살고 있는 동키부대 출신 11명을 비롯한 전우회원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북한과 마주하는 백령도 바닷가에 세워진 동키부대 전적비를 찾아 흔적 없이 죽어간 전우들의 넋을 달래는 충혼제를 지낸다. 백령도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美육군 한반도유사시 투입 지연”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3일(현지시간) 북한의 군사도발 등 한반도 유사시 미 육군의 남한 내 투입이 지연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날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남한)에 신속하게는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kmkim@seoul.co.kr
  • 남한佛子 4000명 새달 금강산 간다

    다음달 중 남한 불교신자 4000여명이 3차례에 걸쳐 북한 금강산 신계사를 찾는다. 2008년 7월 ‘박왕자(금강산에서 피격된 관광객) 사건’ 이후 대규모 민간인들이 금강산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금강산 관광 길이 다시 뚫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다소 부정적이다. 지난달 30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온 조계종 총무원 대표단은 3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과 금강산 신계사 성지순례를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한 불자 4000~4500명이 신계사를 순례하고, 합동법회를 갖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조불련은 방북 기간 중 자승 총무원장에게 공식 재방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부장 혜경 스님은 “불교 교류가 남북 경색 국면의 소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조계종에서) 방북신청이 오면 승인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면서 “사견이지만 방북 인원이 너무 많아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美 “北, 핵보유국 지위획득 모색”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2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블레어 국장은 이날 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에서 “북한이 (그동안) 2개의 핵장치를 실험에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레어 국장은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블레어 국장은 “북한은 남한과의 재래식 군사력 차이가 너무 현격히 벌어진 데다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전망이 희박하다는 판단에서 그들 정권을 겨냥한 외부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핵프로그램 개발에 의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레어 국장은 “현 시점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추구하는 것은 (잇단 실험으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종전보다 유리해진 협상지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미 태평양군사령부의 벤저민 믹슨 중장은 2일 국방전문 블로거들과의 전화회견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 군사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kmkim@seoul.co.kr
  • [시론] 서해 시위로 북한이 얻을 건 없다/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시론] 서해 시위로 북한이 얻을 건 없다/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이 해안포사격 훈련으로 서해안을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의 해안포사격 훈련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포사격 훈련은 예년과는 달리 보다 과감하고, 보다 치밀하게 짜여진 것이어서 우리의 각별한 주의를 요하고 있다. 북한은 의도적으로 서해 해상을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필요할 경우 서해 해상을 그들의 군사적 위협시위를 위한 ‘정당화’된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1999년 9월, 북한은 북방한계선(NLL) 남측 지역을 포함하는 ‘조선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는 NLL을 직접적으로 무력화하고자 하는 가시적 조치의 하나로 치부되었다. ‘조선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이 적용될 경우 NLL 남측을 항행하는 남한 함대나 민간선박은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북한은 ‘조선 서해해상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그들의 영해로 주장하면서 이 지역을 항행하는 일체의 남측 선박이나 함대들에 대해서 영해침범으로 비난하면서 군사적 보복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을 가해 왔다. 작년 11월에는 그들의 함정을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케 하여 3차 서해교전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어 12월에는 북한이 갑자기 NLL 남측을 포함하는 ‘평시해상사격구역’을 선포하였으며, 지난달 25일에는 NLL 남북 양측 수역에 걸쳐진 ‘항행금지구역’ 설정을 공표하고 난 이틀 후 바로 해안포 사격훈련을 개시하였다. 북한의 이번 해안포사격 훈련은 군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북한은 NLL을 완전 무시하고 그들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조선 서해해상군사분계선’과 ‘평시해상사격구역’을 실질적으로 적용할 것이며 둘째, ‘평시 해상사격구역’ 내에서 교전 발생 시 해안포 사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군사적 위협의지를 시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러한 군사적 위협으로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먼저 6자회담 복귀를 앞두고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서해 해상의 분쟁 위험성을 조장한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서해 해상의 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크게 오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서해 해상의 분쟁이 북한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장되면 될수록 정전협정체제 유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고 싶다면 대남 군사적 위협이 아닌, 남북한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남북대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그들의 유일한 압력수단인 군사력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당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신중모드’를 유지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경제난 해결을 위해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협력과 지원을 기대하면서 개성공단 활성화와 개성 및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정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이들 사업의 활성화와 재개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이와 같이 남북은 발전적인 관계 변화를 보이기보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오히려 유무형의 각종 군사적 위협을 심화시켜 오고 있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내부적으로 어떠한 사유가 있어서 군사적 수단이 활용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북한 당국은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백령도 주민 90% 기독교인 이유는?

    백령도 주민 90% 기독교인 이유는?

    ‘백령도는 기독교 천국?’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주목을 받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이곳은 주민의 90%가량이 기독교 신자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대략 25%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비율이다. 인구가 4900여명에 불과한 섬이지만 교회는 무려 12개에 이른다. 이(里) 단위의 작은 마을에도 어김없이 교회는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남한 최초의 교회도 이 섬에 있다. ●조선개항전 선교활동 시작 백령도에는 조선 개항(1882년) 훨씬 이전인 1832년에 영국인 칼 귀츨라프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는 처음 들어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조선 왕조의 그리스도교 포교 금지로 본토 입성이 어렵자 황해도 장산반도에서 멀지 않은 백령도를 택한 것. 1898년 포교와 교회 설립 등의 제한이 풀리자 개화파 정치인인 허득은 이듬해인 1899년 백령도 연화리에 ‘중화동교회’를 세웠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건축자재를 공급받았다고 한다. 중화동교회의 초대 당회장은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던 언더우드 목사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백령도에 기독교가 발전하게 된 것은 당연지사. 중화동교회 바로 옆에는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를 보여주는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다. ●전쟁도발 높아 구세관과 생활 부합 백령 주민들의 ‘기독교 몰입’은 지정학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북한을 코앞에 둔 최북단 접경지역에서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적극적인 구세관과 신앙체계를 갖춘 기독교가 부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백령면사무소 최진국(33)씨는 “낙후되고 열악한 삶의 환경과 6·25전쟁 이전부터 남북 간 충돌에 시달려온 주민들이 다른 종교보다 구원관이 강한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신해철 “북한이 적? 효력 상실한 통치방법”

    신해철 “북한이 적? 효력 상실한 통치방법”

    가수 신해철이 북한의 로켓 발사를 축하하는 내용의 글과 관련, 검찰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신해철은 1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 신해철닷컴에 ‘무혐의 유감(ㅋ)’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번 사안은 대국민 겁주기 및 길들이기라는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보 현상이다.”고 소신을 밝혔다. 신해철은 지난해 4월 자신의 홈페이지인 신해철닷컴에 ‘미사일 경축’ 등의 내용의 글을 올린 후 보수단체들로부터 검찰에 고발됐고, 지난달 29일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신해철은 먼저 “예상대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에 대해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아쉽다.(ㅋ)”라고 장난스럽게 입을 연 뒤 “염려해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신해철은 진지하고 논리 정연한 어투로 그간의 심경과 미사일 경축발언을 썼던 이유를 설명하고 통일문제, 민주주의 등에 대한 평소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갔다. 신해철은 “이 사안은 표피적으로 보면 단순한 해프닝이다. 일개 가수가 자기 홈페이지에 쓴 글을 극우단체가 고발했고, 검경은 수사 후 무혐의로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뉴스가 된 이유는 현 정권에서 시작 된 대국민 겁주기 및 길들이기라는 민주주의의 명백한 퇴보 현상이 이 해프닝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국민들은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이미 민주주의의 맛을 경험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말조심하지 않으면 잡혀간다’는 사회 분위기를 계속 용납하진 않을 것”이라며 “일시적인 민주주의의 퇴보는 우리 모두에게 오히려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겁줘봤자 역효과다. 광화문에 가득하던 촛불 든 사람들이 겁먹어서 집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신해철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신해철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 증오와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이미 효력이 상실된 통치방법이다. 이미 남한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통해 완전한 우위에 서게 됐다. 남은 것은 이 승리를 악용하여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 패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자리에 함께 앉게 하는 것이다. ‘주적’의 자리엔 ‘동족’을, ‘증오’의 자리엔 ‘화해’가 자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이미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신해철은 문제가 됐던 미사일 경축 발언을 쓴 이유에 대해서도 “증오와 공포의 무한 재생산이라는 방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끊임없이 휘둘러대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과 조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일개 가수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쓸 수 있는 권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목숨을 잃은 대가로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고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로 자신이 생각하고 말 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확고한 뜻을 내비쳤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 포격 전함열세 만회 훈련”

    지난 27일 개시된 북한군의 해안포 발사는 정치적 목적의 위협 차원 외에 남한보다 열세인 해군 전력을 보완하기 위한 실전훈련의 성격도 비중 있게 가미돼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군 소식통은 29일 “북한군이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패퇴 이후 남한 해군력에 대한 우려를 심각하게 갖기 시작했다.”면서 “이번 사격은 전함의 열세를 해안포로 만회하려는 훈련의 성격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전함 대결에서 밀리자 믿을 것은 해안포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실전에 버금가는 훈련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북방한계선(NLL) 쪽으로 포문을 향한 것도 최대한 실전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여러 개의 포가 동시에 수백발을 한 지점에 퍼붓는, 일명 투망식 탄막사격(TOT·Time On Target)을 실시한 것 역시 실전훈련의 성격이 짙다. 소식통은 “단순히 정치적 목적뿐이었다면 드문드문 몇발 씩만 쏴도 된다.”면서 “다양한 포로 화력과 사거리를 시험한 것 같다.”고 했다. 1999년 1차 연평해전과 2002년 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군에 열세를 드러낸 데 이어 지난해 대청해전에서 완패한 것이 북한 해군에 직접적인 위기의식을 안긴 요인으로 꼽힌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30일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서해에 NLL을 그은 이유도 당시 해군력에서 우위에 있던 남측의 북진을 막기 위한 차원이었을 만큼 북한군은 ‘서해 공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우리 군은 해안포 도발에 대비, 백령도와 연평도에 대포병레이더(TPQ)를 고정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이날 김태영 장관과 국회 국방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긴급 간담회에서 이같이 보고했다. 과거 연평도 인근에서 긴장이 고조됐을 때 TPQ가 배치된 적이 있다. TPQ가 고정배치될 경우 군은 해안포 발사지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국방부는 또 현재 서해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은 27일 300여발의 포사격을 개시한 데 이어 28일과 29일까지 50여발을 쏘는 등 3일간 총 35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한 것으로 국방부는 집계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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