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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3차 핵실험 강행] 보수·진보 시민단체 “北 핵실험 규탄” 한목소리

    [北 3차 핵실험 강행] 보수·진보 시민단체 “北 핵실험 규탄” 한목소리

    북한이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시민사회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경찰은 즉각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보수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북, 결국 7000만 국민과 세계인의 평화 기대를 배신했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핵무기를 등에 업고 막무가내인 북한에는 채찍도 당근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면서 “여야가 합의한 대로 초당적 협력을 통해 단결하고, 국제사회의 뜻을 모아 강력히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자유총연맹도 “북한이 도발로 얻을 것은 파멸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도록 유엔과 국제사회가 단호한 자세로 대북제재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 핵없는세상, 환경운동연합 등 29개 진보 진영 단체도 공동성명을 내고 “핵실험 강행으로 방사능 피폭 등 방사능 오염이 불가피해졌다”면서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화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실련통일협회는 “1992년 체결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행 등을 통해 북한은 다시 대화와 협상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평화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심각한 위협”(소설가 이외수), “남한 사회의 분열을 예상한 전략”(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 우려와 비판이 이어졌다.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경찰은 이날 낮 12시 30분 전국 경찰에 ‘경계강화’ 지침을 내리고 전국의 국가 중요시설과 해안도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등 주요 요인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또 공항·항만에서 보안활동을 벌이는 한편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비상근무를 격상하기로 했다. 소방방재청도 오후 1시를 기해 18개 소방본부 등 전 직원에게 특별경계근무를 지시하고 출동 대비를 마쳤다. 또 민방위 사태에 대비해 경보망을 점검하고, 소방헬기와 구조구급대 등도 상시 출동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상처로 얼룩진 ‘공동체의 민낯’…이야기해라, 견딜 수 있으니까

    상처로 얼룩진 ‘공동체의 민낯’…이야기해라, 견딜 수 있으니까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그게 무당의, 예술의 탄생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얘기들을 쏟아내도록 해 줌으로써 때론 나의 것일 수도, 때론 너의 것일 수도 있는 억울함이 풀리리라 믿은 것이니까. 오는 3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선보이는 제시 존스 개인전은 소설가 김연수가 한나 아렌트를, 아렌트가 한 덴마크 작가를 인용한, 이야기와 견뎌냄을 다루는 전시다. 전시장에는 두 개의 영상작품 ‘공동체의 이기적 행위’(The Selfish Act of Community)와 ‘또 다른 북’(The Other North)이 있다.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은 현대 도시 문명의 익명성과 폭력성에 전율을 느낀, 기댈 데 없는 외로운 이들에겐 기대감을 부풀리는 일종의 기대심리에서 나온다. 예로부터 ‘대동사회’란 말이 존재하고 또 멋 좀 부릴 줄 안다는 사람들이 ‘코뮌’(Commune)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슨 대단한 대안이 못 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지독한 폭력성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생각해 보면 옆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 다 아는 고향이 답답하다며, 보다 넓은 세상을 보겠노라 그렇게나 열심히들 도시로 뛰쳐나오지 않았던가. 이우환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다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영문 표기를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대신 다이얼로그(Dialogue)라 한 이유도 거기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하나의 공동체, 폐쇄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공동체로서의 코뮌 아래에 딸린 단어라 싫다는 것이다. 다이얼로그라고 해야 이야기가 조금 더 개방적이고 자유롭다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다. 자유란 정체성의 구획에 얽히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가 건드리는 것도 바로 이 공동체, 그리고 이야기다. 공동체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 1970년대 전후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진행한 집단심리치료 기록을 발견했다. 작가는 “그가 여성, 흑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비주류 인물들이 겪었던 일들을 많이 다뤘다”면서 “집단 간 정체성에 따른 폭력이나 갈등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을 골라내 작업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대화 내용을 현재 상황에 맞게 적당하게 수정한 뒤 배우들을 뽑아 연극무대처럼 연기하도록 하고 이를 고스란히 촬영했다. 가운데 설치된 카메라는 대화 내용이나 발언 순서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360도 빙빙 돌아갈 뿐이다. 작가는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노렸다고 했다. 작게는 가족, 크게는 종교·민족·인종 등 자신의 정체성이 가져다 준 상처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다 보니 그 안의 대사들이 만만치 않다. ‘공동체의 이기적 행위’에서 “풍만한 여성이 가슴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도 반박하지 못하는 로잘린, 남편과 아이들과 유대관계가 끊어진 채 오직 고양이하고만 노는 쓸쓸한 베스, 실컷 남들과 잘 놀다가도 “항상 먼저 흑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칼린 등이 등장한다. ‘또 다른 북’은 조금 더 심각하다. 북아일랜드 문제를 다뤘는데, 여기다 한국의 남북문제를 겹쳐 뒀다. 대화 내용이나 등장인물은 모두 북아일랜드인데, 그 배역을 맡은 배우는 한국사람이고 대사도 한국말이라서다. 원래 대화는 1970년대 초 북아일랜드 분쟁이 가장 격렬할 때 주민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이뤄졌다. 종교, 직업, 계급에 따른 공동체의 정체성 아래 진행되는 대화에서 언뜻 한국이 드러난다. 아일랜드 출신인 작가는 “아일랜드 남쪽에서 안전하게 자랐기 때문에 북아일랜드 상황에 대한 어떤 죄의식 같은 것이 있었고, 이걸 얘기하다 보니 남한 사람들도 그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제작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품 하나당 상영시간이 1시간쯤 된다. 5000원. (02)733-8945.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커버스토리] 학교도 병원도 직장도 없는디… 자식들이 섬 생활 허겄소

    [커버스토리] 학교도 병원도 직장도 없는디… 자식들이 섬 생활 허겄소

    전남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20여㎞쯤 떨어진 신안군 증도면 소기점도와 소악도·진섬(병풍3구)엔 12가구 20여명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 각기 섬은 다르지만 썰물 때는 서로 이어지는 한 마을이다. 주민 조범석(60)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 토박이다. 조씨는 삼남매를 두고 있으나 이들은 모두 서울, 목포 등 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아내(58)와 단둘이 김 양식과 농사일을 번갈아 하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씨는 자녀들이 섬에 들어와 김 양식 등의 가업을 잇도록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대 안 된다”며 “뼈 빠지게 고생만 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30년 전만 해도 32가구 100여명이 갯일과 농사일을 하며 살았으나 지금은 3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그나마 대부분이 70~80대 고령자로, 낙지잡이나 해조류 채취 등 거친 바다 일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차를 싣고 목포에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리고 선비가 왕복 3만원에 이른다”며 “생활 불편과 소득원 감소가 섬사람들을 뭍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과 이웃한 대기점도(병풍 2구)에도 25가구 40여명이 벼, 마늘, 고추 농사를 조금씩 지으며 살고 있다. 인구는 20년 전의 절반 수준이며 연령대는 대부분 70~80대로 이들이 세상을 뜨면 ‘텅 빈 섬’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 마을 이장 오영춘(59)씨는 “이곳은 본섬인 병풍도와 노두길(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길)로 연결된 만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들이 머물 수 있는 편의시설이 전무하다”면서 “유일한 상점인 농협마트가 있으나 이마저도 주말에는 문을 닫아 생수 한 병 구입할 데가 없을 정도”라고 열악한 섬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교육, 의료, 소득원 등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도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더욱이 주민의 고령화까지 겹쳐 미래는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 섬에는 증도초교 기점분교가 있었으나 5년 전에 폐교됐다. 인근 소악도에서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김모(9·초등 2년)군 한 명이 다니는 소악분교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 감소는 초등학교 입학생 단절과 폐교로 이어진다.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은 전남 지역의 학교 공동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올 3월 개학을 앞두고 완도 보길초등학교 등 본교 5곳과 여수 화태초교 여도분교 등 분교 31곳의 신입생이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엔 45개 학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고 2011년에는 33개교가 입학식을 치르지 못했다. 매년 평균 10여개의 본교와 분교가 통폐합되고 있으며 이에 포함된 학교는 대부분 조그만 섬에 위치하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교육 환경은 젊은 층의 이도를 부추기는 첫째 이유로 꼽힌다. 신안군 흑산면 소사리 박모(44)씨는 매년 겨울철 멸치잡이로 짭짤한 소득을 올린다. 그럼에도 섬에 정착하지 않고 몇 년 전 광주에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그는 매년 1~3월 멸치잡이철에만 고향에 내려와 생활한다. 나머지 기간엔 도시에서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꾸린다. 박씨는 “네 자녀의 교육 때문에 철마다 가족이 헤어져 사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도군 임회면 오모(50)씨는 가족과 떨어져 산 지 10년이 넘었다. 서울에 전셋집을 얻어 아내(47)와 딸(22)을 내보냈다. 자녀의 진로를 고려해서다. 아내는 식당 등에 취업해 딸의 학비를 보태고 있다. 그는 겨울철 농한기 때 잠시 서울에 올라가 가족과 함께 보낸 뒤 농사철이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전국 섬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어획량 감소 등으로 줄어드는 소득을 메우기 위해 도시로 나가 허드렛일을 마다않고 있는 실정이다. 신안 지도읍 어의리 2구 이장 장일랑(80)씨는 “소포작도, 대포작도 등 6개 섬으로 구성된 20여명의 주민이 앞바다에서 낙지 등을 잡아 생계를 꾸렸으나 최근 갯벌이 오염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며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이라 농사도, 바다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만큼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고기잡이 등 연근해 어업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남획과 연안 어장 오염, 인구 노령화 탓이다. 어선 감척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남에서는 1994~2011년 5084척의 연근해 및 국제 어선이 감축됐다.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는 모두 1만 7307척이 사라졌다. 이는 곧 섬 주민 등의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섬을 낀 자치단체들은 이에 따라 ‘돌아오는 섬’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완도, 통영 등 일부 섬 지역은 활발한 어패류 양식 등을 통해 젊은 층 유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내몰리는 어민도 속출하고 있다. 정부와 해당 지자체는 도서개발촉진법 등을 근거로 수십년간 어민 소득 향상과 교량, 항만 등 생활 불편 해소를 위한 노력에 힘써 왔으나 역부족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한정된 재원 탓에 작은 섬마을의 경노당 건립, 상수도 보급 등의 각종 민원을 다 들어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이농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도가 늘면서 무인도 수도 덩달아 늘고 있다. 섬을 낀 전국 지자체와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1990년대 초 남한 지역의 섬은 유인도 517개, 무인도 2684개 등 모두 3201개에 이르렀다. 5년쯤 후인 1990년대 중반엔 유인도 447개, 무인도 2748개로 유인도가 줄어든 만큼 무인도가 늘어났다. 섬을 등지는 사람들의 추세가 뚜렷하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섬이 분포한 전남의 경우 2011년 현재 유인도 296개, 무인도 1923개 등 모두 2219개의 섬이 서남해안에 널려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최근 관측 장비의 발달로 섬이 새로 발견되는 등 섬 개수가 늘면서 통계 자료를 통한 인구의 증감을 정확이 비교하긴 힘들지만 과거 10년 단위로 20~30여개의 유인도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도는 이에 따라 2005~2017년 12개 시·군 217개 섬을 대상으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관광자원화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모두 2조 2800여억원을 들여 테마 섬을 개발하고 주민 지원 사업을 펴고 있으나 국비 확보가 여의치 않아 ‘찔끔 예산 배정’에 머물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951억원을 들여 70개 섬을 대상으로 연도·연육 사업, 관광지 도로 개설 등 110건의 관광·소득 기반 사업을 추진한다. 섬을 낀 다른 지자체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각종 섬 개발 사업을 펴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한 형편이다. 신안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서울광장] ‘신냉전’ 동북아가 가야할 길/박정현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냉전’ 동북아가 가야할 길/박정현 논설위원

    그들은 평화보다는 긴장으로 먹고 산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그랬고,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승계했으며, 손자 김정은 국방위 1부위원장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참이다. 슈퍼파워 미국을 상대로 하는 핵게임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지 21년째 3대에 걸쳐 진행 중이다. 핵게임 무대의 뒤에서 북·중 간에 또 다른 게임이 보이지 않게 진행 중이다. 미국에 다가서려는 북한을 중국은 으르고 달래 왔다. 중국은 북한이 빠진 한반도에서 미국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고, 그래서 북한에 원유와 식량을 대주고 있다. 이런 중국의 속내를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다’는 김정일의 유훈은 중국을 믿지 말라는 당부다. 북한이 가장 믿고 의지할 것 같은 형제국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은 북한을 실제로 움직이는 중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을 이용한 게임에 북한은 아주 능숙해 보인다. 김정은이 물려받은 벼랑 끝 전술이 가장 잘 먹힐 때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가 동시에 바뀌면 어김없이 주변 정세가 불안하고 긴박하게 전개된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교훈이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미국에서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갓 출범했고, 남한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로 교체되는 중이다. 김정은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김정은은 이미 정해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긴장감을 단계적으로 높여 왔다. 유엔이 그들에게 제재를 결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2시간 뒤에 외무성 성명을 내 물리적 대응조치를 예고했고, 다음 날에는 국방위 명의의 성명에서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예고했다. 이제 김정은이 핵실험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 선택만 남아 있다.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북한군은 핵실험의 마무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핵실험은 즉각적으로 한반도의 위기지수를 급상승시킬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에 나설 테고, 제재 수위는 북한 핵실험의 폭발력에 정비례할 전망이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폭발력 15㏏의 절반수준인 8㏏을 넘어서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체감할 위기감과 제재 수위는 증폭될 것이다. 1차 때는 0.4~0.5㏏, 2차 때는 4㏏으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북한 핵실험이 한반도 정세를 급격하게 얼어붙게 만들면 한반도는 신냉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벌써부터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목줄 죄기로는 북한의 핵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북핵 대응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엔 헌장 7장 42조(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행위에 관한 조치)에 근거한 군사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섬뜩하게 들린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결의하면 북한이 다시 반발하는 수순은 정해진 레퍼토리다. 6자회담은 유명무실해졌고, 그 대체제는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면 북한의 비타협성은 커지고, 미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북한이 게임을 할 여지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을 함께 엮어 힘의 균형을 이뤄내는 이니셔티브를 기대해볼 법하고, 그것은 한국만이 가질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참해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내면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동북아의 신냉전 기류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또 다른 화약고인 센카쿠열도에서는 중·일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간신히 넘겨온 센카쿠에서 두 나라 간 갈등이 언제 분출할지 모를 판이다. 2차대전 이후 불안이 지속되던 유럽에 평화를 가져다 준 것은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아니었던가. 동북아에도 신냉전을 몰아내고 평화를 가져다줄 안보협력체의 태동을 기대해 본다. jhpark@seoul.co.kr
  • 나비야 어딨니… 남한서식 30종 멸종위기

    나비야 어딨니… 남한서식 30종 멸종위기

    남한에 서식하는 나비 34종이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큰 폭의 개체수 변화를 보이고, 이 가운데 30종은 멸종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기상청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지리정보시스템(GIS) 공간분석 기법을 적용해 남한에 서식하는 나비 158종의 분포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 조사 대상 158종의 약 18%인 큰주홍부전나비, 대왕팔랑나비, 높은산세줄나비 등 30종은 멸종 위험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기후 변화에 민감한 나비들은 2030년까지 일교차가 커지다가 2050년부터 일교차가 줄어드는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2030년대까지 분포 범위가 남하했다가 2050년대 이후에는 서서히 감소돼 2080년엔 찾아 보기 힘들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기후 변화 모니터링 결과 지난 2년간 식물 개엽 시기도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삼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갈나무를 관찰한 결과, 남부 지역에 위치한 월출산국립공원에서는 2011년에 비해 2012년 첫 개엽 시기가 4일, 중부권의 덕유산에서도 6일 빨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전과 10범 탈북자에 ‘꿈’ 선물한 검·경

    북한의 이른바 ‘꽃제비’ 출신인 김모(28)씨는 2007년 한국 땅을 밟으며 기대에 부풀었다. 초중등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탈북자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다니며 새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탈북 과정에서 다친 코, 눈, 머리뼈 등을 수술하면서 빌렸던 400만원이 발목을 잡았다. 편의점과 식당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가난은 숨막히게 조여 왔다. 결국 2010년 살고 있던 임대아파트 보증금 750만원을 대부업체에 압류당하고, 이듬해 노숙자로 전락했다. 김씨는 2011년 10월 서울 양천구의 PC방에서 요금을 내지 못해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 14일에는 서울 성동구 PC방에서 27시간 이용료 2만 4800원 낼 돈이 없어 다시 수갑을 찼다. 이미 같은 전과가 10개나 더 있던 탓에 구속됐다. 그는 “PC방이 따뜻해서 오래 머물렀다”면서도 “남한테 피해를 끼치기 싫어 음식은 시켜먹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새터민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구직 글을 올리고 며칠 뒤 PC방에서 답글을 확인하며 끊임없이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딱한 사연을 접한 성동경찰서 수사과·보안과는 사방에 수소문해 숙식이 가능한 관내 의류업체에 일자리를 구해줬다. 서울 동부지검 형사4부의 담당검사와 수사관은 수배 해제를 위해 벌금 450만원을 대신 내줬다. 한명관 동부지검장도 사비로 30만원을 내놨다. 동부지검은 31일 검찰심의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김씨의 구속을 취소하고 기소유예처분하기로 결정했다. PC방 주인은 조건 없이 합의서와 탄원서를 썼다. 김씨는 석방됐다. 그는 “한국에서 이런 삶을 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기회를 준다면 창피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벅찬 눈물을 쏟았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홍단씨, 새터민도 의료 혜택 받아요

    홍단씨, 새터민도 의료 혜택 받아요

    “내래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내 걸핏 듣기로 남한에서는 병원에 가면 돈을 아주 많이 내야 한다는데….” 의료비를 고민 중인 가상의 새터민 리홍단씨 앞에 요정 ‘청단이’가 나타난다. 청단이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 법률’에 따라 의료급여 1종으로 각종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리씨가 “내래 고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적용 대상이 안 될 텐데…” 하고 갸웃거리자 청단이는 “소득인정액에 따라 차등 지원받을 수 있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 교육 콘텐츠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은 손경주(33·여)씨의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작품 ‘리홍단씨의 의료서비스 탐방기’의 일부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인 손씨는 소비자 교육 수업을 맡은 교수의 제안에 UCC 제작에 들어갔다. 북한학 전공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인 손씨는 평소 관심 있던 새터민의 의료 이용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손씨는 “새터민들은 12주간의 하나원 교육을 제외하면 남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면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새터민들을 위한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밝게 웃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北 조평통 “남북 비핵화 선언 무효화”

    북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25일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전면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남북 양측의 합의하에 1992년 2월 발효시킨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건 처음이다. 북한은 외무성 성명(23일), 국방위원회 성명(24일)에서 미국을 지칭해 비핵화 합의 포기, 추가 핵실험 위협을 가하다 이번에는 조평통을 통해 남측을 정조준하며 연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 조평통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남한에 대해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재는 곧 전쟁이며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다”라며 “우리는 이미 도발에는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것을 선포했다”고 거듭 위협했다.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2087호’ 결의에는 각 회원국이 무기 개발 전용 품목에 대해 자발적으로 폐기 및 사용불능화 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캐치올’(catch-All) 조항이 포함됐다. 그러나 한국이 이미 대북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의 제재 조치 및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고 있고, 천안함 폭침 사건을 계기로 5·24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의 유엔 제재 불참 주장은 ‘수사적인 대남 공세’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핵실험을 해도 미국 버락 오바마 2기 정부가 대북 무력제재까지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이를 악용, 독자적 핵능력을 키워 북미 협상의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핵실험 시기에 대해 “대내용이자 대외 압박용인 만큼 북한이 내부 정치 일정을 고려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 16일)이나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을 전후한 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등반객·동식물 지키는 설악산 구조대

    등반객·동식물 지키는 설악산 구조대

    23~24일 밤 10시 45분 EBS 극한직업은 ‘설악산을 지키는 사람들’ 편을 방영한다. 해발 1708m의 높이를 자랑하는 설악산은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1년 내내 흰 눈이 덮여 있다 해서 설악이란 이름이 붙은 이 산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대한민국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추운 겨울날에도 눈 내린 설악의 절경을 보려는 탐방객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는 모든 것을 다 얼려버린 상태. 이럴수록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설악산구조대 사람들이다. 정확한 명칭은 설악산국립공원의 재난안전관리과 팀원들. 혹한의 추위가 밀려올수록 일터인 중청대피소까지 3시간에 걸친 출근을 감행한다. 눈보라에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듯하지만 포기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올라가면서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 가며 등반객들을 위한 길을 확보해야 한다. 거기다 요즘은 신종 레포츠로 빙벽타기까지 있다. 안전을 위해 이들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의 기준을 누가 정하겠는가. 이들이 빙벽에 오르기 전 미리 빙벽에 올라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생기는 환자들. 등반객 한 명이 대피소를 찾아온다. 가슴과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는데 이 사람의 상황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산시킬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인다. 구조대 사람들은 등산객뿐 아니라 동식물도 챙겨야 한다.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보니 희귀 동식물들이 제법 있기 때문.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팀은 이들 등산객을 관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산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산양이란 놈은 고약하게도 지형이 험하고 가파른 고산 암벽지대에 산다. 그래서 산양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4대강 부실 철저히 점검해 보강하라

    감사원이 그제 발표한 ‘4대 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이 사업은 설계·시공·보강·보수는 물론 수질관리에 이르기까지 성한 부분이 없을 만큼 부실투성이다. 그러나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보(洑)의 안전과 기능엔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권 장관은 “다만, 보에서 물이 넘어와 떨어지는 ‘바닥 보호공’이 일부 유실됐지만 보강이 거의 완료된 상태”라고 밝혔다. 감사원과 주무부처의 견해가 이렇듯 다르니 진상을 제대로 모르는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감사원과 국토해양부, 객관적인 전문가들이 다시 공동조사를 벌여서라도 크든 작든 부실 여부를 규명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4대 강 사업은 정부가 2009년부터 4년 동안 22조원을 들여 추진한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국민 사이에선 사업 초기부터 개발과 보전의 찬반 대립이 극심했고, 이 틈바구니에서 정치·이념적인 저항도 적지 않았다. 그런 탓에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나온 감사원의 발표는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감사원은 4대 강에는 대규모 보를 설치해야 함에도 소규모 보를 건설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 보의 내구성이 부족하고 세굴(洗掘·급류에 의한 바닥 침식) 현상이 나타나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수질도 나빠져 16개 보의 화학적산소요구량(COD)과 녹조가 예년 평균보다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소규모 보를 설치한 것은 과거의 설계기준을 적용한 게 맞지만 보강공사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지난해 여름, 4대 강 사업이 시행된 남한강엔 녹조가 없었지만 사업을 하지 않은 북한강에서는 대량 발생한 점도 거론했다. 나아가 보를 설치한 유역의 수질은 오히려 개선 추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토부도 시인한 바닥 보호공 유실 등 일부 부실 시공 정황이 드러난 만큼 문제가 없다고만 우길 게 아니라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하기 바란다. 감사원이 어느 전문가의 소견을 반영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0년 감사원의 1차 감사 때와 이번 감사결과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일부 환경근본주의자들은 차제에 보 철거 등 원상회복을 주장하나, 성급한 견해다. 4대 강 사업에 따른 홍수 방지 및 수질 개선, 수변 레저 공간 활용 등 종합적 효과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새 정부는 부실 여부를 원점에서 재점검해 문제점을 보강함으로써 국민 불안을 씻어내야 한다.
  • “김일성, 4·19직후 통일 기대…남한문제중앙국 등 만들고 남측 진보단체와도 접촉 시도”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60년 4·19혁명 직후 북한 주도의 남북통일이 임박했다고 보고 적극적인 대남 전략을 마련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가 공개됐다. 미국의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는 17일(현지시간) 옛 소련의 평양 주재 대사였던 알렉산더 푸자노프가 1960년 3월부터 12월까지 작성한 20건의 개인기록을 공개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당초 4·19혁명이 노동자, 농민운동의 한계로 진정한 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으로 봤으나 학생운동이 그런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판단, 남측 진보단체와의 접촉을 시도하면서 내부적으로도 관련 대책을 수립했다. 푸자노프는 7월 25일 기록에서 “김일성은 ‘남한 문제에 대한 발빠른 정책결정을 위해 남한문제중앙국(CBSKI)을 설립했다’고 말했다”면서 “이 조직은 남한 내 지하조직을 부활시키고 평화통일을 위한 선전작업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썼다. 김일성은 또 푸자노프에게 남한 출신의 인민군 10만명 가운데 일부를 ‘통일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해 공산대학을 설립했다고 소개했다. 푸자노프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4·19혁명 직후 남북통일과 주한 미군 철수가 임박했다고 전망하면서 당시 북한이 정치·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안정돼 있었기 때문에 북한 주도의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자신했다. 김일성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후임자로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 “이기붕 자유당 의장은 인기가 없고, 장면 민주당 대표는 적합하지 않으며 장택상 반공투쟁위원장은 친일 성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59년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 진보당 위원장에 대해서는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우리도 실수한 게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남북관계 50년전보다 후퇴… 만날 일 있으면 무조건 만나야”

    “남북관계 50년전보다 후퇴… 만날 일 있으면 무조건 만나야”

    “1961년 사상계 3월호에 ‘판문점’을 냈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때하고 비교하면 남북관계가 더 나빠졌다. 50년 전에는 판문점에서 남한의 기자가 이북의 여기자와 남북 체제를 비교하고, 자유에 대해 토론할 수 있었다. 지금은 토론할 기회도 없고, 지적인 대화를 하기에는 북한의 체제가 안 된다.” 분단문학의 대표작이자 이호철에게 각종 문학상을 안겨준 ‘판문점’의 주인공 진수는 ‘30대의 이호철’ 그 자신이었다고 ‘판문점2’에서 커밍아웃했다. 이호철은 1960년 9월 정부 공보과의 최규정에게 애걸복걸해 가짜 통신원 자격을 얻어 판문점에 가고, 거기서 만난 예쁘고 당당한 북한 여기자와의 대화를 기초로 소설을 썼다. 당초 이호철이 판문점에 간 목적은 소설이 아니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이호철은 1951년 1·4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북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판문점2’에서 처음 밝혔듯이 판문점에 가자마자 여기자에게 자신의 가족 중 일본 히도쓰바시(一敎) 상과대를 나온 이종사촌형 남인호가 북한 국가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이고, 외육촌형 박용국이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통보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북한의 군인이 다가와 그의 사진을 찍어 갔으니, 이호철은 자신의 뜻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돌아왔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천만했었는지 ‘판문점2’에서 이호철은 “옛날 70년대와 80년대에 내가 그 뭣이냐, ‘재야 민주화운동’인가 하는 것으로 두 번에 걸쳐 ‘보안사’다, 지금은 ‘기무사’지만, ‘중정’이다, 끌려가서 조사를 받을 때도 나는 나대로 그 옛날의 그때 그 일까지 수사관들이 조사 조목으로 꺼낼까 봐 마음속으로는 조마조마하고(중략)”(17쪽)라고 써 놓았다. 이호철은 1961년 5월 9일 두 번째로 판문점에 갔다. 이때는 그의 소설 ‘판문점’이 소문이 나서 소련 이즈베스차 신문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었다. 정중하게 사양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 사단이 날 뻔했다. “만에 하나 그때 그 제안을 진수가 받아들여서 기사가 모스크바의 이즈베스차 신문에 크게 게재되었더라면, 불과 1주일 뒤 5·16이 일어났을 때에는 어찌 됐을 것인가.(중략) 그냥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했을 터였다.(중략) 일본에서 돌아와 ‘민족일보’를 창간했다가 북쪽 간첩으로 몰려서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던 조용수 사장 꼴이 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22~23쪽). ‘이호철은 “1961년에 소설을 쓸 때는 판문점이 1988년쯤에는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건 27~28년쯤 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 요즘 분위기면 2050년이나 돼야 통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상심한 얼굴로 말했다. “내 나이 14살에 해방이 됐다. 그리고 분단이 됐다. 나는 14살 이전에 부산에서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온 기억과 중국의 장춘과 심양까지 돌아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짧게는 1000년 고려부터 함께 살았던 민족이 이렇게 갈라진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북한 동포들이 식량난으로 겪는 고통을 아프리카 튀니지나 케냐 사람들의 삶을 TV 화면에서 보듯이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5000년을 유구하게 같이 살아온 동족으로, 떨어져 산 지 겨우 68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호철은 “‘국가보안법’이니, ‘반공법’이니, 심지어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기본법인 ‘헌법’ 테두리에서까지도 일단 활딱 벗어나자”(67쪽)고 주장한다. 방법은? 남한에서 엄청 돈을 벌어들인 숱한 월남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싸들고 가 굶어 죽기 직전의 고향 사람들에게 왕창 풀어 주는 것이다. 이호철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당선인을 찍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에게 큰 고초도 받았지만, 앞으로 기대는 크게 하고 있다. 남북도 만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만나야 한다. 남북이 자꾸 한솥밥을 먹어야 한다. 남북이 왔다 갔다 하고, 서로 익숙해져서 물이 차오르면 넘치듯이 통일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월남한 실향민의 수가 8만명에서 7만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실향민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판문점이 박물관이 되고, 고어로 소멸하는 날이 와야 할 텐데….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시 “王都의 경계인 한양도성 먼저” 고양시 “수도방어 연관… 통합등재를”

    인접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이 제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추진되자 “통합 등재해야 한다”는 주장과 “한양도성을 먼저 등재한 후 북한산성은 나중에 확대 등재해야 국익에 유리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전담부서(세계유산팀)를 만들어 2015년까지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우고 사유지를 제외한 전 구간 복원을 사실상 마쳤다. 지난해 4월 문화재청의 잠정목록에 포함됐고, 올해는 우선추진대상에 올려 내년쯤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경기 고양시는 올해 ‘고양 600년’을 맞아 이제야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양시 관계자는 “북한산성과 한양도성은 완전히 붙어 있지 않지만 ‘수도 방어’라는 기능적 목적으로 볼 때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성곽 쌓는 기술이 가장 발달된 숙종 때 험준한 산악지역에 이중으로 6개월 만에 축조됐고, 수원화성처럼 행궁도 그 안에 있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만큼 서울시의 한양도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서울시 측은 “수도 방어 가능으로 보면 두 산성의 연계성이 높지만 한양도성은 외적을 방어하는 기능 보다는 왕도(王都)의 경계 의미로 구축된 ‘도시성곽’이라며 북한산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먼저 한양도성을 등재한 후 북한산성은 나중에 확대 등재하는 게 외국인 관광객 1200만명 시대를 맞아 국익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양시 측은 “지난해까지 북한산성~한양도성~남한산성은 개별 성곽이 아니라 연계 성곽이라며 세계문화유산의 공동 등재를 주장하다가, 문화재청의 중재로 남한산성 단독 등재로 가닥이 잡히자 서울시가 입장을 바꾼 것”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이은만 고양시 전 문화원장은 “북한산성은 임금의 피난에 대비한 측면도 있어 한양도성과는 구체적인 축조 목적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고 넓게 봐서는 연관성이 매우 높은 만큼 가능하다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함께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평상시에는 해당 국가가 문화유산 및 주변환경을 국가차원에서 유지관리하게 되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면 유네스코가 보호에 나선다. 한편 남한산성은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 2월 공개경쟁을 거쳐 13개 국내 잠정목록 중 우선 추진 대상에 선정됐다. 지난 10년간 203억원을 들여 행궁과 성곽 복원도 마쳐, 내년 6월이면 등재가 가능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정부 “북 핵실험 임박 새 정황 없다”

    정부 “북 핵실험 임박 새 정황 없다”

    북한이 곧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일부 관측에 대해 정부 당국의 모니터링에서는 현재로서 핵실험 임박 정황이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일 “어떤 경우에도 북한 핵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무모한 핵실험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3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 24시간 감시 태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갱도를 폐쇄하거나, 차량이 오가는 등의 긴박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북한이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는 갖추고 있다”면서도 “새롭게 포착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과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이 모두 ‘선(先) 미사일 발사-후(後) 핵실험’의 도발 패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전례대로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2009년 핵실험 후 최근까지 추가적으로 갱도를 굴착해 온 만큼 북측의 핵실험 강행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 측 박선규 대변인은 지난 12일 인수위 브리핑에서 “북한 핵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무모한 핵실험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박 당선인의 입장을 전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최후의 카드(핵실험)’를 소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장거리 미사일과 달리 핵의 경우 미국과의 협상용 카드 성격이 짙은 데다 남한의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적 측면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개정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상황에서 강력한 제재를 자초할 수 있는 핵실험을 강행하는 게 소득도 없고 북·미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어렵다”며 “향후 대내외적인 정세 판단에 따라 핵실험 시기가 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박근혜 전향적 대북정책 가능성에 고무”

    3박4일간의 방북 활동을 마친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는 10일 북한이 남북 관계 및 북·미 관계 개선에 강한 희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 등 일행과 함께 이날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한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그들(북한 관리들)은 남한의 새 대통령(당선인)이 최근 한 발언에 매우 고무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는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현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한 북한의 반응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열망’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미국과 북한도 긍정적인 양자 대화를 하기 바란다”며 “미국, 한국, 일본 등에서 새 리더십이 들어선 지금은 대립이 아닌 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탄도미사일 발사와 향후 이뤄질 수 있는 핵실험의 모라토리엄(유예)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문제와 관련, “북한 관리들은 배씨의 건강이 좋은 상태라면서 곧 사법처리 절차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배씨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북측이 배씨 아들의 편지를 받아 주겠다는 약속은 했다고 밝혔다. 슈밋 회장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터넷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개인적 방문이었다”면서 “북한의 (IT)기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감시를 받는 인터넷과 인트라넷이 있다”며 “정부와 군대, 대학에서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일반 대중은 여전히 이용할 수 없다. 정부가 인터넷 개방에 먼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슈밋 회장 등 9명의 대표단은 지난 7일 북한에 도착해 외무성 관리 등을 만나고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컴퓨터센터, 인민대학습당 등을 돌아봤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겨울나라, 강원도 태백을 가다

    겨울나라, 강원도 태백을 가다

    강원도 태백으로 갑니다. 태백산 등 사방을 둘러친 고산준봉들은 물론 마을 길섶이며, 들녘 곳곳이 하얀 눈꽃으로 가득 찬 곳. 그래서 겨울이면 으레 다녀와야 하는 성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태백은 둘러볼 데가 은근히 많습니다. 입소문만 덜 났을 뿐이지요. 이맘때라면 방학 맞은 자녀들과 함께 여러 체험 시설들을 둘러볼 만합니다. 산악도시에 늘어선 맛집들에선 미각을 충전하기 제격일 겁니다. 태백산 눈꽃 트레킹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이 시베리아급 추위에 맞서 겨울산을 오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흰 눈을 딛고 선 주목의 푸른 바늘잎에서 싱싱한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다면 하루의 노고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지 싶습니다. 철쭉과 눈꽃… 한해 두번의 꽃밭 섭씨 영하 22도. 시베리아와 다를 바 없는 온도다. 버프(얼굴 가리개) 틈새로 새나간 입김이 눈썹에 작은 눈꽃을 만든다. 야생동물들도, 사람도 좀처럼 겪어 보지 못했던 맹추위다. 태백산은 ‘태백의 지붕’이다. 최고봉인 장군봉(1567m)과 문수봉(1517m) 등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태백산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정선과 영월을 거쳐 남한강이 되고, 남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낙동강의 원류가 되기도 한다. 태백산은 한 해 두 번 꽃밭이 된다. 초봄 철쭉이 흐드러지게 필 때, 그리고 거센 눈보라가 주목 등 나무에 눈꽃을 피울 때다. 그 가운데 태백산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눈꽃이다. 정기가 강한 태백산을 닮아 겨울의 한복판을 뚫고 눈부신 꽃을 피워 올린다. 이름값은 뜨르르 하지만 오르기는 험하지 않은 편이다. 특히 등산 초반에 거푸 ‘깔딱고개’와 만나는 당골 코스에 견줘 유일사 코스는 한결 수월하다. 2시간이면 천제단에 이르고 하산까지 4~5시간이면 족하다. 유일사 주차장이 들머리다. 고도가 850m쯤 되는 곳이니, 예서 장군봉까지 표고차는 700m쯤 된다. 등산 코스는 유일사 매표소에서 천제단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내려 오는 게 일반적이다. 유일사 매표소에서 천제단까지는 4㎞, 천제단에서 망경사를 거쳐 당골광장까지는 4.4㎞ 거리다. 천제단에서 부쇠봉 가기 전, 주목 군락지를 돌아본 뒤 샛길을 따라 망경사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30분 정도 더 소요되는데 눈 덮인 주목들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들머리에서 1시간쯤 오른 길모퉁이. 기골이 장대한 주목이 산객들을 반긴다. 수령 500년은 족히 넘긴 고목이다. 김상구 문화관광해설사는 이를 “가장 운 좋은 주목”이라고 했다. 바람 없고, 볕 좋은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키 낮고 헐벗은 여느 주목에 견줘, 늘씬하게 잘 빠졌다. 몸매로만 보자면 ‘슈퍼 모델’이다. 유일사를 지나 천제단으로 향하는 8부 능선쯤부터 주목 군락지가 펼쳐진다. 첫눈이 내린 뒤 봄소식이 전해올 때까지, 한 해 6개월 가까이 겨울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다. 여기부터는 대체로 ‘전형적인’ 주목들이 선을 보인다. 온몸으로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 했던 탓에 하나같이 키 작고 헐벗었다. ‘살아서 千年, 죽어서 千年’ 주목 주목은 흔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불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무의 속은 텅 비었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엔 휑하니 바람구멍만 뚫렸다. 도무지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한데 밖의 이파리들은 ‘시베리아급’ 추위가 무색하게 푸른 빛이다. 비었으되, 되레 생명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그 상태로 천년을 살고, 또 천년을 죽어간다. 태백산엔 제단이 세 개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천제단이라 부르는 영봉의 천왕단과 장군봉의 장군단, 부쇠봉 가는 길의 하단 등이다. 천왕단은 하늘에, 장군단은 사람에게, 하단은 땅(자연)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세 제단을 묶어 천제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늘을 받들고 땅을 경외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이 세 제단에 담겨 있다. ‘360도 회전식 전망대’ 천제단 장군봉에 이르면 태백산은 흰옷으로 갈아입는다. 극한의 파란 하늘과 완벽한 무채색. 극명한 대비다. 바람이 매서울수록, 눈꽃도 화려해진다. 하얗게 영근 나무들은 시리고 부신 눈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예서 말잔등처럼 평탄한 능선을 따라 300m쯤 더 가면 영봉이다. 정상엔 천왕단이 비범한 자태로 서 있다. 흔히 천제단이라 불리는, 바로 그 제단이다. 검은 박석을 켜켜이 쌓아 둥글게 울타리를 쳤고, 안에는 ‘한배검’ 비석을 세웠다. 한배검은 단군을 일컫는 존칭이니, 예가 민족의 성지임을 단박에 알겠다. 천제단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그 너머로 백두대간의 고산준령들이 거칠 것 없이 줄달음친다. 360도 회전식 전망대다. 하산길에도 볼거리가 적지 않다. 단종의 위패를 모신 단종비각을 지나면 망경사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망경사의 자랑은 용정이다. 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이라는 우물이다. 개천절에 올리는 천제의 제수로도 쓰인다. 당골광장 진입로의 청원사도 둘러볼 만하다. 절집 안쪽의 용담 또한 한국 명수 100선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태백엔 자녀들과 함께 가볼 만한 전시, 체험시설도 은근히 많다. 최근 문을 연 ‘365세이프타운’은 안전을 주제로, 놀이와 교육을 겸하는 국내 최대의 안전 에듀테인먼트 시설이다. 장성동에서 철암동에 이르는 약 30만평(약 96만㎡)의 부지에 국비 포함, 약 18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됐다. ‘365세이프타운’은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과 챌린지 월드, 강원도 소방학교 등 3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은 시뮬레이터를 타고 3D, 4D의 영상을 통해 산불, 설해, 지진, 풍수해, 대테러 등 재난을 체험할 수 있는 안전체험시설들로 꾸며졌다. 챌린지 월드는 유격장을 연상시키는 트리트랙, 집라인, 조각공원 등 야외체험시설들로 구성됐다. 강원도 소방학교에서는 소방공무원들로 구성된 전문교관들과 함께 심폐소생술, 화재현장 탈출을 위한 농연훈련체험 등 이색 체험 활동을 벌인다. 지구 간 이동은 곤돌라를 이용한다. 입장료가 비싼 것이 흠. 자유이용권의 경우 어른 2만 2000원, 중고생 2만원, 어린이 1만 8000원이다. 카드 할인 등 입장료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해 보인다. 태백시 관광 홈페이지(www.tour.taebaek.go.kr) 참조. 550-3101~5(이하 지역번호 033). 청소년안전체험관 ‘365세이프타운’ 태백산과 함백산 등 고산준령들에 둘러싸인 ‘태백’은 5억년 전(고생대 캄브리아기)엔 얕은 바다였다고 한다. 지금도 삼엽충 등 고생대의 화석들이 태백의 지층 곳곳에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고생대 지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은 구문소(천연기념물 417호) 일대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바로 이 구문소 옆에 들어서 있다. 고생대 삼엽충과 두족류, 공룡 화석 등은 물론 자체 제작한 영상물, 입체 디오라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의 관람동선을 따라가면 지구의 46억년 역사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시기별로 서식했던 다양한 고대생물들의 화석과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해 둔 모형들도 눈길을 끈다. 고생대의 바닷속을 연상케 하는 입체영상실, 지질탐험을 주제로 구성된 체험관, 실제 고생대 지층 위의 화석과 만날 수 있는 야외학습장 등도 갖춰져 있다. 홈페이지(www.paleozoic.go.kr) 참조. 581-8181. 한우부터 닭갈비까지 ‘맛집 순례’ ‘태백체험공원’은 탄광 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파크다. 정부의 석탄합리화정책에 따라 1993년 12월 폐광된 ‘함태탄광’의 건물 일부와 부지를 기부받아 조성했다. ‘촌스러운’ 이름과 달리 안으로 들어갈수록 제법 볼거리가 쏠쏠하다. 함태탄광은 890여 명의 직원들이 연간 378만t의 석탄을 생산하던 탄광이다. 실제 사용하던 사무소를 개조해서 만든 현장학습관, 광부들의 생활상을 복원한 탄광사택촌, 석탄을 채취하던 갱도를 그대로 보존한 체험갱도 등의 시설이 있다. 550-2718. 태백산도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태백석탄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국내 석탄산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태백은 여느 산악도시에 견줘 유난히 맛집이 많다. 전국의 물산이 모이는 교통의 요지도 아니고, 다양한 식재료가 생산되는 건 더더욱 아닌데도 그렇다. 김상구 해설사는 탄광 시절의 영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태백은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1970~1980년대,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들로 북적였다. 돈은 넘쳐났지만, 쓸 곳은 마땅치 않았다. 언제 막장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절박감 속에서 광부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 돈을 썼다. 그 덕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식재료들이 죄다 태백으로 쏠렸다는 거다. 태백에서 분식집 빼고 가장 ‘흔한’ 게 고깃집이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의 박시현 주무관은 “태백에서 한우를 파는 업소만 43개에 달한다”며 “그 가운데 제법 이름 날리는 집은 1년 매출액이 수억원대에 이른다”고 했다. 상장동의 배달실비식당(552-3371), 태백한우골(554-4599) 등이 육즙 풍부한 고기맛으로 이름났다. 태백의 닭갈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 볶음식으로 유명한 춘천과 달리 두툼한 다릿살과 가슴살 등을 철판에 넣은 뒤 육수를 부어 고구마, 떡, 냉이 등과 함께 끓여낸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다. 황지동의 태백닭갈비(553-8119)가 많이 알려져 있다. 연화반점(552-8359)은 탕수육과 짜장면이 맛있는 집이다. 특히 탕수육은 잘 튀긴 돼지고기에 감자전분을 입혀 옛날 탕수육처럼 희게 만든다. 쫄깃한 수타 짜장면과 해산물 듬뿍 얹은 짬뽕(2인분 이상)도 일품이다. 음식은 주문을 받은 후 만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예약을 하는 게 좋다. 통리역 아래 있다. 25일~새달 3일까지 눈축제 강산막국수(552-6680)는 쫄깃한 메밀 막국수와 고소한 수육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매콤한 양념이나 진한 육수로 맛을 지키는 여느 막국수집에 견줘 직접 뽑은 면발과 다소 밍밍한 육수가 자랑이다.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 태백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다. 장성동 중앙병원 인근의 평양냉면(581-0101), 삼수령 가는 길의 초막고갈두(553-7388)도 각각 독특한 맛으로 입소문 난 집이다. 멋진 눈조각과 태백산의 그림 같은 설경을 만날 수 있는 ‘태백산 눈축제’가 25일~2월 3일 태백산도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펼쳐진다. 올해 20회째를 맞는 ‘눈축제의 고전’이다. 축제를 대표하는 초대형 눈조각은 태백산도립공원 당골광장에 들어서는 타이태닉호다. 올해 타이태닉호가 침몰된 지 100년 된 것을 모티브 삼았다. 초대형 눈조각들로 가득 찬 당골광장은 물론, 마장공터 아래광장과 황지연못, 태백역, 오투리조트 등에도 개성 넘치는 눈조각들이 전시된다. 태백산민박촌 앞 솔밭에선 개썰매와 스노모빌 썰매가 운영된다. 아토피 예방과 치료에 좋은 편백나무 족욕체험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글 사진 태백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 국도→영월→태백 순으로 간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550-2085. →잘 곳 오투리조트가 첫손 꼽힌다. 함백산의 불쑥 솟은 구릉에 자리 잡고 있어 해돋이와 마주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선 패스텔이 깔끔하다. 도 호텔과 모텔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황지를 끼고 있는 메르디앙호텔(553-1266)도 깔끔하다.
  • “불법체류자로 숨어살면서 변호사 꿈꿨죠”

    “불법체류자로 숨어살면서 변호사 꿈꿨죠”

    “북한에서 공개 처형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됐죠. 통일 후에 헌법이나 민법 등을 북한에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방안을 찾고 싶습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올해 3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하는 이삼신(33·가명)씨는 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국에서 이루게 된 법조인의 꿈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다음 달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는 이씨는 지난해 전북대 로스쿨에 지원해 12월 6일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이씨는 사망한 아버지와 군대에 나간 형들을 대신해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려고 14세인 고등중학교 4학년 때부터 장사를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1998년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다. 이씨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면서 탈북자를 변호해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02년 한국에 입국한 이씨는 이듬해 남한 출신 여성 김모(38)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선교단체 간사로 중국에 단기 선교여행을 갔다가 이씨를 만났다. 현재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씨는 전자 회사와 유통 회사에서 근무하며 가정을 부양했다. 하지만 그는 배움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공부해 2007년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008년 한국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이씨는 마지막 학기에 전 과목 A+를 받는 등 평균 학점이 4.0을 넘었다.이씨는 “일단 검찰 쪽에서 실무를 익히며 공직생활을 하거나 법제처에서 법률 제정 작업에도 참여하고 싶다”면서 “법률에 대한 지식이 없어 사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국내 정착 탈북자 등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법조인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시대를 말하다(상) 고은

    “프랑코가 곧 죽을 모양이다. 사르트르가 그자를 ‘라틴의 돼지’라고 부르고 그놈이 어서 죽기만 기다리노라고 말한 것이 통쾌하다. 거리의 사람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 의병의 역사, 봉기의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의 분출 자체가 타자 의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저항보다 순응과 피동의 역사가 더 길다. 혁명, 영구혁명은 관념인가.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 1975년 11월 15일 고은(당시 42세)은 청소년기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독재를 견디어내는 이 인내의 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다’는 대목에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1974년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로서 ‘문학인 101선언’을 주도했던 침묵을 깨야 한다는 결단이 느껴진다. ‘창조는 어떤 경우도 혁명적이지 않으면 창조가 아니다’에는 문학이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는 철학이 강하게 배어 있다. 함박눈이 쏟아진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에서 만난 고은은 책으로 벽을 쌓아 지은 고분 같은 서재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서재는 어두운 듯하면서 환했다. 미닫이문을 터서 만든 10평 안팎의 장방형 서재는 시인에게 어머니 자궁 같은 안온함을 준다고 했다. 짙은 감색 셔츠에 같은 색 실크 머플러를 목에 두른 고은은 고요했다. 전설처럼 떠돌던 술에 전 낭만의 시인이나, 열정의 시인, 독재에 저항하는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팔순의 성찰하는 고은이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본래의 고은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고흐를 열망한 내 소년기를 부쉈다 ‘한국의 고흐’가 되고 싶었던 17살 예술지상주의자였던 소년의 운명을 맨처음 뒤틀어 놓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외삼촌 집에서 본 고흐의 화보집을 보며 꿈을 키우던 고은에게 한국전쟁은 감당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좌익이 점령했을 때는 우익이 죽었고, 우익이 돌아오자 좌익이 죽었죠. 내 고향에서만도 이 죽음의 재앙이 세 번 되풀이됐다. 군인들이 와 시체를 파내서 옮기라고 했는데, 그 작업을 하고 나면 보름 동안 씻고 또 씻어도 시체 냄새가 몸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 하면 서로 죽이는 행위, 고향 하면 핏줄끼리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싸우는 그런 것만 연상됐다. 죽음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던 10대 어린애가 그것을 만난 것이다. 소년 자체가 부서져버렸다.” 고아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고은은 한국전쟁으로 조상과 끈이 끊겼다고 생각했다. 고향도 무섭고, 핏줄도 무서웠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피에 주려 있는가를 본 소년의 정신은 온전해지지 못했다. 정신착란으로 집을 뛰쳐나갔고,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전쟁통에 군산고를 중퇴했는데, 전쟁 중에 그는 모교인 군산북중학교 국어교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혐오들이 밀려오던 터에 1952년 출가를 했다. 1957년에 전등사 주지를 지냈고, 1958년 ‘불교신문’을 창간해 주필을 맡았던 그는 1962년 환속했다. 등단은 1958년, 26살 때다. 시인협회 조지훈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폐결핵’이 실렸다. 현대시인이 100명 정도에 불과하던 시절이라 그는 현대문학 2세대 정도되는데도 1세대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김동리, 오상순, 김수영 등과 어울리며 살았다. 유미주의자였던 그의 예술관과 삶의 방식을 전복시킨 것은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자살이었다. 잊어버린 과거가 된 전태일의 죽음이 술에 절어 나른했던 시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지금은 서울 무교동에 현란한 고층건물들이 서 있는데, 당시에는 바라크였다. 낮은 건물뿐이었다. 통행금지 시절이었는데, 술을 마시고 돌아갈 수가 없으니 주모에게 사정하고 아첨해서 술집 탁자 같은 데서 자곤 했다.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인데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더라. 묵은 신문이었는데, 사회면과 사설면에 ‘노동자 분신자살!’이라고 써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죽음이 워낙 육친화되어 있다 보니 죽음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지더라. 어, 이것 봐라! 일종의 죽음의 비교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풀빵 10개로 점심을 때우고,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이동 판잣집까지 버스비가 없어 한밤중까지 걸어가고, 그런 인간의 삶이 나오더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게 뭔가. 현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착취와 비인간화,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다락방 지옥의 밀실 같은 곳에서 소녀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고,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민주화 전위? 뒤늦게,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현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그를 두고 사람들이 ‘초개’라고 했는데, 그는 밀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에 각성이 됐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1970년대 봉제공장의 노동현실을 설명하던 그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사람들은 내가 민주화 운동의 전위에 섰다고 하는데, 사실 뒤늦게 뒤꽁댕이를 따라다니면서 한 것이다. 뒤늦게 엉거주춤하게 거기에 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 전태일의 죽음에 나만 충격받은 것이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들도 다 깨쳤다. 나중에 감옥에서 만난 조영래, 장기표, 걔네들도 다 깨쳤더라. 나는 지식인이랄 것도 없고 예술인이었는데 전태일의 죽음의 폭풍이 나까지 몰아세웠다. 그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작가들도 뭔가 해야겠다. 그때 자기 몸을 던지는 행복이 생겼다.” 동료 작가들은 물론 선후배 작가들까지 뭉치도록 앞장서서 나갔다. ‘나를 빼고 몰래 하면 안 된다’는 작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설득하면 다소 보수적인 현대문학 1세대 선배들도 동참했단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간사가 된 배경이다. 당시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주장은 5가지였다. 구속자를 석방하라,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라 등이었다. 당시 세종로에서 시위하고 그와 조해일, 윤흥길, 박태순 등 7명이 연행됐다. 고은의 본격적인 빵살이(감옥살이)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부터 시작됐다. 1977년, 1979년이 자유실천문입협회 건이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됐다. 죽음이 목젖까지 찾아왔던 때다. 1988년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들을 해금하자, 고은은 더 나아가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북한의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과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한다. 이것이 문제가 돼 1989년 다시 투옥됐다. 국가가 달아준 ’별’이 4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될 때 그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1987년)를 맡았다. 국가와의 갈등이 완화된 건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의 나이 60세 때다. 1993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임시여권만 발급됐다. 시인 고은이 ‘세계의 시인 고은’이 된 시점도 그때부터다. 1970년부터 1993년까지 23년간 그는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의 각종 폐해를 해소하고,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의 시인’으로 살았다. 한국전쟁으로 상처받은 그는 이제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독특한 통일 이론이 있다. 다연방 통일제를 주장한다. 북한의 언어는 문화어(표준어)-평양중심의 언어로 통합된다. 남한은 표준어는 서울 종로에 사는 중산층의 언어다. 마포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다. 그런데 표준이나 통합은 말살이다. 시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투리, 지역어는 다 신성한데 다 말살되고 있다. 이것은 나쁜 단일화다. 그래서 나는 사투리와 지역어가 존중될 수 있도록 제주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20여개 연방으로 만들어서, 수상최고회의를 국가최고의사결정기구로 하는 남북한 통일된 국가를 꿈꾼다. 스위스, 말레이시아, 미합중국, 넓게 보면 중국도 다 연방 아니냐.” 그는 100년 안에 아시아에도 유럽연합(EU)과 같은 국가연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구상이 한낱 백일몽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로 80세인 고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태어나 식민지와 1945년 해방과 분단,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50년 한국전쟁, 1960년 4·19민주화혁명, 1961년 5·16군사쿠데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 1980년 서울의 봄과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화운동, 1997년 외환위기와 극복까지. 롤러코스터보다 더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침묵할 수 없던 시대, 그것은 선물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대는 조용할 수 없는 시대였지만, 남들보다 더 격렬하게 부딪치며 살아온 측면이 있다. 시대가 나에게 준 것도 있고, 내가 시대에 준 것도 있다. 이것이 맞물려서 심상치 않은, 비일상적인 삶의 연대기를 갖게 됐다”며 허허롭게 웃은 뒤 “사람들은 나를 ‘풍운아’라고도 부르지만, 돌아보면 시대가 나에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 많다”고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고은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의 유산을 정리해본 적이 없다. 민족끼리 싸우는 삼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고스란히 복제하고 있다. 그런 바보 같은 땅이 어디 있나. 치유되지 않은 삶을 자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판이다. 피의 흔적을 닦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당대의 정당성이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역사라고 할 수도 없다. 길들여져 있는 체제에 의해 쉽게 변경될 수 없는 관행, 제도가 있으니 현안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당대에 손가락질당하고,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온한 꿈을 꾸고 확산해야 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전국 자전거길 통합 안내 인터넷 사이트·앱 서비스

    행정안전부는 4일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지자체가 만든 자전거길, 주변 편의시설 정보를 담은 ‘자전거 행복나눔’ 사이트(www.bike.go.kr)를 개통한다. 사이트는 한강과 남한강, 북한강 등 국토종주 자전거길과 강릉 경포호 산소길과 옹진 덕적도 등 10개 지자체 명품길에 대한 지도와 접근 경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먹거리 명소와 자전거 대여소·수리점, 보관대 등 주변 시설에 대한 정보도 안내한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함께 개발돼 자전거길 관련 정보를 더욱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목적지까지의 길찾기와 과속위험, 추락·낙석·미끄럼주의 구간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기능도 활용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지인이나 구조기관에 위치 정보도 전송할 수 있다. 특히 국토종주 자전거길에 설치된 무인인증센터의 자전거 모양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사이버인증도 할 수 있게 된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동해안·경춘선·섬진강 자전거길의 개통 시기에 맞춰 안내서비스를 업데이트하고 자전거 동호인 등 이용자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수렴해 자전거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정전협정 60주년 맞는 한반도] 김정은, 朴의 유연한 대북정책 기대감

    북한 매체는 지난해 12월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보도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7년 12월 당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취임식 이후인 2008년 3월 초 첫 공식 반응을 내놓았던 것과 대비된다. 북한은 대선 이후 논평 등을 통해 남한의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의 담화에서 “새해 벽두에 나타난 이명박 역적패당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관련해 입장을 천명한다”면서 “대결에 체질화된 반역의 무리들은 살아 숨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어 “오늘 북남관계는 지난 5년처럼 또다시 대결과 전쟁이냐, 아니면 대화와 평화냐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면서 “남조선 당국은 책임있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박근혜 차기 정부에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펼 것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차기 정부와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한 점은 남북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지난해 12월 27일 논평에서 “차기 정부가 북남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리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기대감을 갖고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은 대선 이후 박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에 대한 비난 논평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박 당선인 측의 신뢰 메시지를 압박으로 받아들이거나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을 시험하는 등 새 정부를 길들이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져 경색 국면 해소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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