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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드 배치 결정] 北 무수단 발사 성공이 결정타… 韓·美 ‘요격 카드’ 꺼냈다

    [사드 배치 결정] 北 무수단 발사 성공이 결정타… 韓·美 ‘요격 카드’ 꺼냈다

    北 핵·미사일 도발 더이상 방치 못 해 朴대통령 ‘전략적 모호성’ 버리고 결단 한국과 미국이 8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한 직접적 배경은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무기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화 기술을 거의 완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이를 주일 미군기지나 태평양 괌기지,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재 작전 배치된 스커드(사정 300~700㎞)·노동(1300㎞)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면 남한 전역이 핵무기 타격권에 들어간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22일 무수단(화성10) 중거리 탄도미사일(3000㎞ 이상) 발사에 성공한 것이 사드 배치 결정을 앞당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드 배치 배경을 좀더 넓게 보면 중국의 군사적 팽창주의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구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MD에 한국이 편입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 사드는 미국의 핵심 무기가 턱밑에 배치되는 격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사드 배치 결정을 서둘렀다는 관측도 나온다. 남중국해 문제를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둘러싼 발등의 전장(戰場)으로 보고 사드 배치라는 강수(强手)를 뒀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 측 인사들은 “왜 (남중국해에) 만리장성을 쌓아 스스로 고립되려 하느냐”며 중국 측을 매우 강하게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적으로 현 시점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지금이 한·미 양국 정부에 최적의 타이밍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해 말 대선을 통해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이 새로 꾸려지면서 사드 논의를 한·미 양측이 처음부터 다시 다뤄야 하는 측면이 있고, 한국도 내년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에서 시간을 더 끌다가는 논의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의 도발에 관한 한 비타협적 원칙론을 견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안보적 결단이 추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강·돛단배…그 속엔 왕실 그릇 제작소 오롯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한강·돛단배…그 속엔 왕실 그릇 제작소 오롯이

    조선시대 사옹원(司饔院)은 궁중의 먹을거리에 관한 일을 맡았던 관청이었다. 궁궐에서 필요한 그릇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 역시 사옹원에 부여된 역할의 하나였다. 사옹원의 그릇 제작소인 분원(分院)은 땔감을 찾아 경기도 광주 일대를 옮겨 다녔다. 일대에 수백곳의 가마터가 남아 있는 것은 분원이 대략 10년 단위로 옮겨 다닌 결과이다. 땔감 때문이었다. 백자와 같은 경질 사기그릇을 구우려면 가마를 초고온으로 유지해야 했고 땔감은 끝없이 들어갔다. 광주시 곤지암읍 신대리의 경우 15세기와 17세기 두 차례에 걸쳐 왕실도자기 가마가 운영됐다는 발굴조사 결과가 나왔으니 흥미롭다. 15세기 신대리 주변 산림은 땔감 채취로 황폐해졌지만 200년 남짓 세월이 흐르자 가마를 다시 설치해도 될 만큼 복원됐음을 의미한다. ●‘천금을 줘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 낙관 찍어 그런데 분원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산간 지역을 버리고 하천 주변으로 옮겨가게 된다. 도자기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한정된 지역의 산림자원으로 땔감을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분원은 경종 1년(1721) 우천(牛川)변의 금사리에 자리잡는다. 금사리라면 달항아리를 비롯해 매우 질 좋은 백자를 생산한 곳이다. 오늘날에는 경안천이라고 부르는 우천은 순우리말로 소내라고도 한다. 용인에서 발원해 광주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분원은 영조 28년(1752) 오늘날의 분원리로 옮겨간 뒤 고종 21년(1884) 경영권이 민간으로 전환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금사리와 분원리는 지척이다. 하지만 분원리는 수운(水運)을 훨씬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분원이 한강 수운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원자재 공급원도 다양해졌다. 백자의 질을 좌우하는 태토(胎土)는 북한강 상류의 양구, 남한강 상류의 원주는 물론 멀리 경상도 서부 지역의 진주와 곤양의 백토도 세곡선에 실어 가져다 썼다. 땔감은 영조 1년(1725)부터 한강을 오가는 목재상인들로부터 10% 분량을 통행세로 걷어 충당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우천’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면 이해가 쉽다. 겸재는 65세 되던 영조 16년(1740) 양천현령에 임명됐다. 양천현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였다. 지금의 가양지구 복판에 현아(縣衙)가 있었다. 양천은 강 건너 도성이 멀지 않은 데다 물산이 풍부하고 경치도 좋아 현령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영조가 진경산수화풍이 경지에 오른 겸재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을 두고 한강 경치를 마음껏 그려 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겸재는 영조의 기대대로 한강 풍경을 33폭에 담았는데,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 그것이다. ‘경교명승첩’은 겸재와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우정이 낳은 시화첩(詩畵帖)이기도 하다. 한양의 사천이 시를 써 보내면 양천의 겸재가 시제(詩題)에 맞추어 그림을 그린 것이다. 화폭마다 ‘천금을 준다고 해도 남에게 넘기지 말라’는 뜻으로 ‘千金勿傳’(천금물전)이라고 낙관했다. ‘우천’에도 화면의 왼쪽 아래 이 도장이 찍혀 있다. ●정선의 그림 ‘牛川’ 한강 풍경 밀도 있게 재구성 ‘우천’은 영조시대 분원 일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산 중턱에 보이는 큰 기와집은 분원 가마가 위치했던 바로 그곳이다. 물론 조금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기록상 겸재가 ‘우천’을 그릴 당시 분원은 아직 금사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운이 편리한 분원리에는 이미 사옹원과 관련한 어떤 시설이 운영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이 아니라도 겸재의 모든 진경산수화는 눈에 보이는 실제 경치를 화폭에 옮긴 것이 아니다. 게다가 겸재도 왕실 부속기관인 분원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 속 돛단배는 분원에 필요한 원자재를 실어 오거나 완제품을 실어 가는 데 썼을 것이다. 다른 배를 타고 멀리서 바라본 듯한 그림의 구도도 일대 풍경을 압축하여 밀도 있게 재구성한 것으로 실경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dcsuh@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미국의 김정은 ‘인간백정 낙인’에 강력 반발하는 북한의 속내는?

    [문경근의 남북통신]미국의 김정은 ‘인간백정 낙인’에 강력 반발하는 북한의 속내는?

    북한이 지난 8일 미국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인권 유린 혐의로 첫 제재대상으로 올린 것에 대해 ‘선전포고’라고 규정하며 강력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미국의 무시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일국의 지도자를 범죄자 취급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당연히 미국을 향한 ‘성전’, ‘보복’을 결의하는 북한주민들의 ‘군중대회’를 통해 내부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어 대미비난 선전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도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북한 내부의 동요는 또 다른 고민거립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들의 ‘카리스마’에 의해 지탱해왔던 북한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국제사회로부터 조롱과 힐난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존심 문제죠. 특히 그간 강력한 우방이었던 중국의 변심이 더 아픕니다. 중국의 새지도자가 북한이 아닌 남한을 먼저 방문한 것도 문제지만, 중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향해 뚱보 3세라는 의미인 ‘진싼팡즈’라고 조롱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방한테까지 무시당하는 지도자를 보는 주민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과연 존경심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주민들의 존경심이 사라진다는 뜻은 곧, 통치의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도 그랬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권위가 사라진 공간을 메우기 위해 공포를 통한 폭압통치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돌아선 민심을 다잡기가 역부족일 것이라는 게 내외의 판단입니다. 주민들은 생계를 걱정하고, 반면 정권은 권력 연장이 우선이어서 양측 간에는 좁힐수 없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겠죠. 이번 미국의 ‘김정은 범죄자 낙인’도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 스스로가 촉발한 것입니다. 올초 4차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탄도미사일 발사, ‘화성10’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을 감행한 것이 원인입니다. 미국이 ‘김정은 범죄자’란 글자 하나 추가했을 뿐인데 북한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를 드론공격으로 사살한 것처럼 김정은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정은이 발뻣고 숙면취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드 배치 결정 논란] ‘사드’, 어떤 무기인가…고도 150㎞서 미사일 요격

    [사드 배치 결정 논란] ‘사드’, 어떤 무기인가…고도 150㎞서 미사일 요격

    사드 1개 포대, 요격미사일 48발 장착 조기경보용, 사격통제용 레이다 탑재...한반도 3분의2 방어 가능 주한미군에 배치될 미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는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종말 단계 고고도에서 요격하는 무기체계다. 미 육군 무기인 사드는 지상에서 40~150㎞ 상공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동원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구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MD체계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드 1개 포대는 ‘종말 모드’로 불리는 TPY-2 TM 레이다 1대와 발사기 6기, 요격미사일 48발로 구성된다. TPY-2 TM 레이더는 120도 전방 250㎞의 모든 공중물체를 탐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드 포대는 6개의 발사대를 레이다에서 400∼500m 떨어진 전방에 부채꼴로 배치하게 된다. 1개의 발사대는 유도탄 8발을 장착하며 30분 안으로 재장전이 가능하다. 요격미사일은 1단 고체연료 추진 방식으로 적외선 탐색기를 장착하고 있다. 사드 1개 포대의 가격은 약 1조 5000억원이며 요격미사일 1발은 약 110억원에 달한다.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한국 측이 부지와 시설을 제공하고 미국 측은 전개, 운용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TPY-2 TM 레이다는 조기경보용(FMB)과 사격통제용(TM)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하드웨어는 같고 통신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다르다. 한국에는 TM 레이다가 들어온다. TM 레이다는 적 탄도미사일이 하강하는 종말 단계에서 요격미사일을 정확하게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소프트웨어를 탑재한다. 중국이 주한미군에 배치될 것을 우려하는 FMB 레이다는 ‘전방배치 모드’로, 적 탄도미사일을 상승 단계부터 조기에 탐지해내는 것이 목표다. 이 때문에 탐지거리를 최대한 늘리고자 레이다 빔 발사각을 낮게 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격고도가 40~150㎞이기 때문에 중국에서 미국을 향해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없다고 군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핵이나 생화학 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40㎞ 이상 고도에서 직격(hit-to-kill) 방식으로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우리 군이 보유한 패트리엇(PAC-2) 미사일이 ‘거점 방어’(Point Defense) 무기인 것과는 달리 사드는 ‘지역 방어’(Area Defense) 무기이기 때문에 방어 영역이 훨씬 넓다. 사드 1개 포대가 주한미군에 배치되면 남한 면적의 2분의1에서 3분의2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사드를 중부지역에서 운용하더라도 북방한계선(NLL) 이북지역까지 레이더가 커버할 수 있어 북한에 NLL 이북지역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더라도 요격할 수 있다고 군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비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이 남쪽으로 쏜 미사일을 사드로 요격할 경우 누가 요격명령을 내리느냐는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질의에 “(사드는) 주한 미 7공군과 우리 공군이 협조해서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하남 벨리체’ 선호도 높은 중소형 구성으로 조합원 모집

    ‘하남 벨리체’ 선호도 높은 중소형 구성으로 조합원 모집

    중소형 지역주택조합아파트가 주목 받고 있다. 일반 분양 아파트 보다 10~20% 낮은 가격으로 내집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쌍용건설이 시공 예정인 ‘하남 벨리체’가 편리한 교통, 풍부한 개발호재로 조합원 모집 중이다. 미사강변도시, 하남강일지구, 풍산지구 조성 등으로 신주거벨트가 형성되는 하남시의 중심 지역인 하남시 덕풍동 537-4번지 일원에 공급 예정이다. 하남 벨리체는 지하4층~ 지상29층 7개동 총 904세대로 전용면적 59㎡는 3가지 타입 724세대, 전용면적 74㎡는 94세대, 전용면적 84㎡ 86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59㎡형에는 부부욕실, 샤워부스가 설치되고 전용면적 대비 넓은 공간의 드레스룸이 배치된다. 또 확장 시 아일랜드 식탁을 고려한 주방배치가 계획되어 있으며 A타입의 경우 ‘맘스데스크’ 설치가 계획되어 있다. 전용면적대비 약 50%의 발코니를 설치와 넓은 현관계획을 통해 수납을 극대화 한 특징이 있다. 74㎡, 84㎡형은 주방펜트리를 계획해 최대한의 수납 공간을 확보했고 59㎡형과 마찬가지로 확장 시 아일랜드 식탁 배치를 고려한 주방과 넓은 현관 계획을 통한 수납공간이 계획되어 있다. 법정 주차대수 118% 이상에 달하는 1,071대가 주차 가능하도록 계획되어 있어 여유로운 주차가 가능하다. 전 세대 남향으로 배치가 계획되어 있으며 조망을 위한 난간 없는 입면분할창이 도입되고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2등급을 통한 에너지절약형 아파트로도 자리잡는다는 계획이다. 서울과 인접한 위치로 하남IC(8분) 상일IC(10분) 덕풍역(2018년 예정) 등을 이용해 수도권 광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남 벨리체 단지 주변으로 동부초, 동부중, 남한고, 한국애니메이션고 등 다수의 학군이 형성되어 있다. 단지 앞에 위치한 덕풍1동주민센터를 비롯 해 하남SD병원, 하남시청, 홈플러스, GS슈퍼마켓, 이마트, 스타필드 하남 등이 위치해 생활 편의성을 높였으며 인근 하남미사 강변도시와 고덕상업업무복합단지에 코스트코, 이케아도 입점 예정이다. 조합설립인가 신청일 현재 서울시·인천시·경기도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이거나 소형주택(전용85㎡이하 1채) 소유자면 조합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택 청약 통장으로 인한 경쟁이 없고 일반 분양 대비 10~20% 가량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동, 호수 선택을 할 수 있다. 한편 하남 벨리체 홍보관은 6월 24일 오픈 이후 성황리에 운영중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북한도 거부할 수 없는 늪, 사교육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자녀들을 외국이나 평양 등지의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한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일 최근 중국에서 만난 50대 평양 주민이 “요즘 북한 학부모들의 목표는 자녀들을 외국이나 평양의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라며 “그들 속에서는 ‘보내자, 외국으로!’, ‘보내자, 평양으로!’라는 구호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이 주민은 “사교육 열풍은 평양과 지방이 비슷한 수준”이라며 “평양에서 수학·물리와 같은 기초학 과목에 대한 교육비는 매달 100위안(약 1만 7000원) 정도이고, 컴퓨터와 같은 전문기술 과목에 대해서는 200~500위안(약 3만 4000~8만 7000원)까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극성 부모의 경우 자녀에게 한 가지 이상 악기와 체육을 시켜야 한다면서 피아노와 태권도 등 예체능 과목에도 돈을 투자하고 있다며 특권층은 매달 1000위안(약 17만 3000원)까지 쓴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면서 “사교육을 시키기 위해 정규 수업이나 사회노동에서 제외해야 해서 학교 교장과 담임선생에게 뇌물을 건네야 한다”고 덧붙였다.  달아오른 사교육 시장에 전직 또는 현직 대학교수, 중학교 교원, 과학기술분야 종사자들이 뛰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교육 당국은 날로 기승을 부리는 사교육을 막기 위해 사교육 종사자들과 학부모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하지만 개별 지도를 받는 학생들 대부분이 간부 자식이어서 사교육 근절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윤아, 슬립부터 파자마까지..파격 란제리 화보

    윤아, 슬립부터 파자마까지..파격 란제리 화보

    소녀시대 멤버 윤아가 눈부신 고혹미를 발산했다. 윤아는 7일 발간하는 스타 스타일 매거진 ‘하이컷’ 화보를 통해 성숙미를 한껏 드러냈다. 이번 화보에는 고혹과 청순을 넘나드는 윤아의 여성스러운 매력이 가득 담겼다. 특히 파자마 팬츠와 로브 가운, 레이스 캐미솔, 슬립 드레스, 시스루 톱 등 패션계 최신 트렌드인 란제리 룩을 섹시하면서도 여성스럽게 소화해 눈길을 끈다. 윤아는 화보 촬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중국 내 폭발적인 인기 요인을 묻는 말에 “잘 모르겠지만, 원래 소녀시대로도 많이 알아봐주신 데다가 현지 드라마에도 출연해서 더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현지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중국어로 열심히 말해보려는 걸 예쁘게 봐주신다는 말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아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무신조자룡’은 중국 현지에서 최근 누적 조회수 100억 뷰를 돌파했다. 이에 대해 윤아는 “상상도 못했던 숫자다. 100억 뷰라는 수치는 처음 경험한 거라 초반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며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감격을 표했다. 윤아는 최근 충무로 데뷔작인 영화 ‘공조’ 촬영을 모두 마쳤다. 영화 속에서 윤아는 남한으로 파견된 북한 형사인 임철령(현빈)을 좋아하는 민영 역할을 맡았다. 윤아는 “유해진 선배님의 처제이자 장영남 선배님의 동생이고, 현빈 오빠를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윤아는 “주로 현빈 유해진 장영남 선배님과 함께 연기를 했다. 영화도 처음이고, 선배님들과 만난 것도 새로웠다. 선배님들이 워낙 연기력이 좋으시니까 저의 부족함을 다 채워주셨고, 에너지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윤아의 화보는 오는 7일 발행하는 하이컷 177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또 12일 발행하는 ‘디지털 하이컷’을 통해 지면에선 볼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화보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하이컷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태양의 후예, 北에서도 인기

    태양의 후예, 北에서도 인기

     특전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북한에서도 인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당국이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는 4일 “태양의 후예와 같은 한국 드라마를 몰래 시청하는 북한 주민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이 매체에 “최근 젊은 청년들 속에서 태양의 후예라는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시청하고 있다”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드라마를) 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다가가 ‘아랫동네’(한국)것이 없느냐’고 슬쩍 말을 건네면 대뜸 태양의 후예를 소개한다”며 “새 드라마 원본(CD)은 5만원(한국 돈 7000원)에 판매되고, 복사본은 그 절반 값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200일 전투의 피로를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가요를 감상하면서 해소한다”며 “한류의 확산으로 볼거리가 없는 조선중앙TV를 외면하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매체는 북한당국이 중국산 노트텔(EVD 플레이어)을 남한 드라마 시청의 주요 수단으로 지목하면서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탈북민이 먹어 보니…“필동면옥은 옥류관 쌍둥이” “을밀대는 ‘외도’하는 맛”

    탈북민이 먹어 보니…“필동면옥은 옥류관 쌍둥이” “을밀대는 ‘외도’하는 맛”

    서울에서도 인기가 많은 평양냉면을 정작 탈북민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남한으로 건너와 대학교 겸임교수, 일간지 기자, 초등학교 방과후 교사 등으로 재직하는 탈북민 3명의 평가를 소개한다. 이들은 남한의 평양냉면 집들이 실향민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정통 평양냉면의 맛을 거의 재연하고 있다며 후한 점수를 줬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평양냉면 집으로 손꼽히는 을지면옥, 필동면옥, 평남면옥, 평래옥, 우래옥, 봉피양, 을밀대 등은 평양의 옥류관, 청류관 등과 비교해도 맛에 손색이 없지만 집집마다 색다른 식감이 느껴진다는 게 탈북민들의 중론이다. 자칭 ‘냉면 전문가’ 정민혁(33)씨는 대학생 때 먹던 옥류관 냉면과 필동면옥이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필동면옥 냉면 육수의 심심한 맛이 평양에서 먹던 맛과 똑같아 놀랐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오다가다 먹었던 청류관, 청춘관 냉면 맛을 1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는 박혁철(41)씨는 “평양냉면의 정수는 심심한 맛에 기호에 맞게 간장과 식초, 겨자와 고춧가루를 골고루 섞어 먹는 것”이라면서 “그런 기준이라면 을지면옥이 남한에서 맛본 냉면 중 으뜸”이라고 치켜세웠다. 마포의 을밀대처럼 ‘정통’보다는 ‘외도’를 한 냉면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탈북민도 있다. 필동, 을지면옥 등 정통 냉면집과는 달리 을밀대 냉면은 함흥냉면처럼 냉면 면발의 질감을 높이기 위해 감자녹말과 백반(명반)가루를 적당히 섞었다. 함경북도 청진 태생인 윤형선(45)씨는 평양냉면도 좋아하지만 고향에서 즐겨 먹던 함흥냉면과 유사한 식감을 가진 을밀대 냉면에 대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두 가지 맛을 모두 즐길 수 있어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씨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고향에 돌아가 냉면을 실컷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요즘은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어 마음이 무겁다”며 말끝을 흐렸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동무, 랭면 맛 제대로 알고 먹는 겁네까”

    “동무, 랭면 맛 제대로 알고 먹는 겁네까”

    평양사람들의 유별난 ‘냉면 부심’ 평양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뭘까. 질문에 대한 ‘보기’는 없다. 주관식이다. 보통 이런 문제를 내면 대게 질문 속에 ‘함정’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 선뜻 답을 내기를 저어한다. 하지만 전주비빔밥·개성탕반과 함께 조선 삼미(三味)로 일컫는 ‘평양냉면’을 꼽으면 대개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고개를 끄떡인다. 냉면이야말로 평양 최고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수수하고 담백한데다 꿩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을 삶은 육수를 시원한 동치미와 섞어 내놓는 게 일품이다. 평양냉면이 주는 감동은 비단 맛과 멋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국토에 대한 회한과 미련 때문에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랭치랭(以冷治冷)… 사계절 선호식품 ‘이랭치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평양사람들의 냉면사랑은 유별나다. 평안도, 강원도, 황해도 등 한반도 북단의 비교적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메밀은 평양사람들에게는 사계절 선호식품이다. 평양의 옥류관, 청류관 등 냉면집으로 유명한 식당 앞에서는 한겨울에도 손님들로 붐빈다. 겨울날 식당을 찾아 시원한 듯 들이켜고 나온 냉면 때문에 턱이 덜덜 떨리고 손발이 시려 오지만, 그래도 ‘냉면은 이 맛에 먹는다’며 호기를 부리는 평양사람들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선주후면’(先酒後麵·먼저 술을 마시고 나중에 면을 먹는다)처럼 소주를 곁들여 먹는 냉면문화도 생겼다. 사실 냉면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맞는 음식이다. 추운 지역에서 냉기를 머금고 알알이 여문 ‘메밀’은 한여름에 몸 안의 더위를 쫓는 특별한 음식이다. 이렇듯 평양에서 사랑받는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 중에는 어떤 유명한 식당들이 있을까. 평양에서 살다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민들에 따르면 평양 냉면집 평가는 ‘2강 3중’이라고 한다. ●평양냉면 영원한 맞수… 옥류관 vs 청류관 북한에서는 대표적인 전통음식 평양냉면의 최고 맛집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가 발간한 월간지 ‘조국’ 4월호는 ‘특집’ 코너에서 평양의 양대 고급 음식점인 ‘옥류관’과 ‘청류관’을 소개하며 두 식당의 경쟁 구도를 부각시켰다. 두 식당은 이름도 같은 ‘류관’ 돌림이어서 마치 쌍둥이 같지만, 주민들이 즐겨 먹는 평양냉면의 최고 맛집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고 있다. 옥류관은 1961년 평양 대동강 기슭에 문을 연 대표적인 고급 음식점으로 평양냉면만 요리하는 냉면 전문점이다. 과거 남한과 해외의 방북자들이 으레 들르던 곳이어서 남쪽에도 많이 알려졌다. 2층짜리 한옥 건물로 본관만 2250석 규모다. 2005년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던 한 기자는 “옥류관에서 근무하던 여종업원의 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면서 “냉면 먹는 방법을 알려주며 따라 하지 않으면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반면 옥류관보다 비교적 늦게(1982년) 개관한 청류관은 보통강변에 위치한 식당으로 1000석 규모다. 상대적으로 역사나 인지도는 옥류관이 청류관에 앞서지만, 서양요리와 중국요리 등 메뉴의 다양성에서는 청류관이 옥류관을 압도한다. 청류관은 평양에서도 경치 좋은 보통강변에 자리해 연회장소로도 유명하다. 2014년 가을 평양에서 개최된 ‘국수(냉면)경연’에서 평양시내 냉면 전문점 10여 곳이 참가한 가운데 옥류관이 1위를, 청류관이 2위를 차지해 면 요리 분야 ‘맞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가장 맛있는 식당은 남이 사주는 냉면집” 월간지는 “옥류관이 민족적인 고전미를 풍긴다면 청류관은 세계적인 현대미를 갖췄다”며 옥류관을 물 위의 ‘정자’에, 청류관은 ‘유람선’에 비유해 각각 다른 개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평양 시민 사이에 ‘옥류관이 낫다느니 청류관이 낫다느니’라는 논쟁이 자주 벌어진다. 2010년 탈북한 강영모(43)씨는 “평양에서 옥류관과 청류관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극명하게 엇갈린다”면서 “때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말다툼을 벌여 사이가 어색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냉면을 담아 내오는 그릇이 쟁반모양(옥류관)이냐, 놋사발모양(청류관)이냐에 따라 선호도가 갈린다. 또 주민들의 거주지와 식당과의 거리 등도 관계돼 있다. 냉면을 주문한 뒤 얼마나 빨리 음식이 나오는 것도 다툼거리다. 하지만 두 식당 모두를 경험한 탈북민들은 옥류관과 청류관의 냉면 맛은 ‘대동소이’하다고 말한다. 평양에서 버스 운전기사를 하다가 2013년 탈북한 강성민(38)씨는 “평양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 냉면은 ‘남이 사주는 냉면’이고, 두 번째로 맛있는 냉면은 ‘집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의 냉면’”이라면서 “먹다 보면 (옥류관과 청류관) 두 식당 냉면 모두 별 차이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저도 있어요”… 평남면옥, 청춘관 등도 ‘인기’ 평양에는 옥류관, 청류관만 있는 게 아니다. 냉면의 본고장인 만큼 각기 맛과 멋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평양 시민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인지라 시내 곳곳에 나름대로 ‘자랑’이자 ‘명물’인 식당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평남면옥’과 ‘평천각’, ‘청춘관’ 등이다. 이들 식당들도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맛집들이다. 평남면옥은 평양시내에 우뚝 선 모란봉 기슭에 위치한 대표적인 냉면 집으로 옥류관에 부럽지 않은 유명한 냉면집이다. 옥류관처럼 쟁반을 사용하며, 점심 시간 때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인근 도로를 점령할 정도다. 청춘관은 김일성의 고향인 만경대구역에 있다. 1관, 2관으로 나뉜 식당에서는 청류관과 마찬가지로 냉면을 주메뉴로 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하고 있다. 평양시 평천구역에 위치한 평천각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지만 맛만큼은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남한강 차지하는 자 한반도를 가지리라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남한강 차지하는 자 한반도를 가지리라

    조세제도를 확립하고 나면 지방에서 걷은 세곡(稅穀)을 수도로 나르는 조운 제도를 구비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배를 건조하고, 세곡을 운반해 배에 실을 수 있는 조창을 세워야 했다. 전국적으로 고려시대에는 13곳, 조선시대에는 12곳의 조창을 운영했다. ●영남 북부 세곡 남한강 조창 통해 운반 그런데 충청·호남 지역과 영남 서부에는 조창을 두었지만, 영남 북부에 조창이 없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 지역 세곡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한강의 수운은 지금 팔당댐과 4대강 사업에 따른 보(洑)에 막혀 두절된 상태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덕흥창, 조선시대에는 가흥창이라고 불린 남한강 상류 충주에 설치된 조창이 있었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잇는 조령은 그저 영남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을 오가던 작은 길이 아니었다. 영남 북부 지역 세곡은 달구지에 실린 채 조령을 넘어 충주 조창으로 운반됐다. 충주에서 조운선에 실린 영남 세곡은 2~3일이면 한양이나 개경에 닿았다. 강원도 지역 세곡도 마찬가지였다. 원주 흥원창은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내륙 수운의 요지에 자리잡았다. 흥원창이 있었던 원주 부론면이라면 고려시대 거찰(巨刹) 법천사를 떠올리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법천사터에 있던 지광국사현묘탑은 우려곡절 끝에 경복궁 마당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해체 수리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법천사와 지척의 거돈사, 섬강 상류의 흥법사, 그리고 남한강을 조금 내려간 여주의 고달사는 모두 고려시대 국사(國師)나 왕사(王師) 반열에 올랐던 고승들이 은퇴하고 머무는 하안소(下安所)로 지정됐다. 유사시에는 뱃길로 빠르게 개경을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다. 충주 목계나루는 남한강 수운의 역사를 1973년 팔당댐 건설 이전까지 이었다. ‘목계장터’에도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라는 대목이 보인다. 장돌뱅이들을 태운 나룻배가 아니라 화급을 다투는 군선(軍船)이라면 아차산 아래 광나루에 닿는 시간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중원’ 충주, 삼국 각축 벌이던 요충지 고려·조선 시대 남한강 수운의 양상을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삼국시대에도 결코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흔히 중원(中原)으로 불리는 충주 일대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결국 진흥왕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경영했고, 그것은 삼국을 통일하는 중요한 동력의 하나였다. 중원이란 매우 상징적인 표현이다.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차지한다’는 표현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지금은 사업가들도 흔히 입에 올린다. 최근까지도 충북에 중원군(中原郡)이라는 행정구역이 남아있었던 것은 진흥왕이 이곳에 설치한 국원경(國原京)을 경덕왕이 중원경(中原京)이라 개칭한 역사의 연장선상이다. 신라는 통일을 이룬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에서 중원이라는 개념을 세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원, 즉 충주 일대를 차지한 신라가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다. ●충주 지배 세력 한강 유역 일대도 장악 삼국시대 중원의 주인과 서울 일대의 주인은 대부분의 기간이 일치했다. 충주를 지키고 있으면 한강 유역까지 쉽게 차지하고 지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반대로 충주를 잃으면 한강 하류 방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성백제가 한강 하류에서 명맥을 유지한 기간도 충주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기간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백제가 서울을 버리고 공주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결정적으로 고구려가 충주 일대 지배권마저 확보함에 따라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고 싶다. 충주 고구려비는 건립 당시 중원 일대가 신라 영토이기는 했지만, 고구려군이 주둔해 사실상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정황을 알려준다. 같은 차원에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통일에 이르기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충주를 손아귀에 넣었기 때문이다. 충주에 병력과 군수품을 집결시킨 세력은 뱃길로 빠르면 하루에 보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세력은 병력과 군수품 조달 속도에서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남한강 수로가 가진 역사적 중요성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 역사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dcsuh@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北 조평통은 천수답(天水畓)

    [문경근의 남북통신]北 조평통은 천수답(天水畓)

    북한이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그간 대남창구 역할을 해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공식적인 ‘국가기구’로 승격시켰습니다. 조평통의 승격을 두고 각 곳에 흩어져 있던 대남 정책 및 남북 대화 관련 조직들이 조평통으로 일원화될 것이란 분석과 함께 공세적인 대남·대외 협상 국면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사실 당 통일전선부 산하 실무조직이었던 조평통은 북한에서 당 기관 중 유일하게 ‘가난’한 조직이었습니다. 당이 모든 정부조직 보다 우위인 북한 체제에서 당의 지도를 받는 산하 기관이 많아야 힘이있고, 권위도 세울수 있습니다. 즉 ‘알짜’ 산하단체를 거느리고 있어야 ‘폼’도 나고, ‘먹을 것도 짭짤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당 통일전선부와 조평통은 ‘빗갈만 좋은 개살구’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양의 어느 소학교 새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반 학생들을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曰 “아버지 뭐하시나?”, 학생 曰 “중앙당에 다니는데요”. 선생님, 앉음새를 고쳐하며 “어디 다니시는 데?”. 학생, “통전부 다니시는데요”. 선생님, “” 물론 서로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권력기관이라고 해도 다 같은게 아닙니다. 당도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등 소위 ‘훅’(HOOK)이 있는 곳은 존경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습니다. 선생님도 학생이 “아버지는 조직부 다니시는데요”했다면 비록 제자지만 존경과 두려움을 가지고 대했을 겁니다. 이렇듯 평양 주민들에게 별 대우를 받지 못하던 통전부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위상이 달라집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전부의 주요 업무인 대남사업이 번성합니다. 남북경협이 활성화 되고, 서로 간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부수적으로 이권이 발생합니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고, 민원이 발생되자 ‘짜잘한 돈’이 ‘짭짤’해지기 시작합니다. 통전부 입장에서는 ‘남한’이라는 ‘대박’ 산하단체가 생긴겁니다. 그러자 과거에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져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계산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거나, 항상 얻어 먹는데 습관돼 있던 통전부 출신들이 때아닌 ‘호기’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통전부 출신이 친구들에게 曰, “얌마, 실컷 먹어. 나 돈 있어”. 친구들, “네가 웬일로 오바냐”. 그가 대답하기를 “나 대남사업 담당하잖어”.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던 통전부도 2008년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남북경협이 중단되고, 지난해에는 개성공단마저 폐쇄되자 아주 ‘죽을 맛’일 겁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수 있는 ‘천수답’(天水畓)처럼 통전부도 남북관계가 다시 활기를 뛰어야 실추된 위상도 다시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몰빵’하는 북한과는 대화할수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통전부의 바람은 요원해 보입니다. 아마도 통전부 출신들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 다시 오게끔하는 방법은 북한 스스로의 ‘변화’일 것입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브렉시트이후 주목받는 부동산시장... 안전자산으로 돈 몰린다?

    브렉시트이후 주목받는 부동산시장... 안전자산으로 돈 몰린다?

    브렉시트이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의 부동산 시장에 자금이 몰릴 수도 있다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불확실한 금융상품보다 부동산은 안전자산 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날로 치솟는 전세값때문에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중소형 평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서울에 인접한 하남시 덕풍동은 인근 아파트 전세가율이 80% 이상에 달해 내집마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하남시 덕풍동 537-4번지 일원에서 쌍용건설이 시공예정인 지역주택조합아파트 ‘하남 벨리체’가 홍보관 오픈 이후 조합원 가입이 진행되고 있다. 하남IC(8분) 상일IC(10분) 덕풍역(2018년 예정) 등 수도권 광역 접근이 가능하다. 단지는 지하4층~ 지상29층 7개동으로 전용면적 59㎡는 3가지 타입으로 724세대, 전용면적 74㎡는 94세대, 전용면적 84㎡ 86세대 총 904세대로 중소형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59㎡형에는 부부욕실, 샤워부스가 설치되고 전용면적 대비 넓은 공간의 드레스룸이 배치된다. 또 확장 시 아일랜드 식탁을 고려한 주방배치가 계획되어 있으며 A타입의 경우 ‘맘스데스크’ 설치가 계획되어 있다. 74㎡, 84㎡형은 주방 펜트리를 계획해 최대한의 수납 공간을 확보했고 59㎡형과 마찬가지로 확장 시 아일랜드 식탁 배치를 고려한 주방과 넓은 현관 계획을 통한 수납공간이 계획되어 있다. 여기에 단지 앞에 위치한 덕풍1동주민센터를 비롯 해 하남SD병원, 하남시청, 홈플러스, GS슈퍼마켓, 이마트 등이 위치해 생활 편의성을 높였으며 인근 하남미사 강변도시와 고덕상업업무복합단지에 코스트코, 이케아도 입점 예정이다. 단지 내에 덕풍공원과 소공원1,2를 연결하는 산책로와 옥상정원이 계획되어 있고 휘트니스 및 골프연습장으로 입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예정이다. 안산, 검단산, 예봉산, 운길산이 조망이 가능하며 덕풍천 조망으로 자연친화적 생활과 숲세권 및 조망권이 풍부하다. 동부초, 동부중, 남한고, 한국애니메이션고 등 다수의 학군도 형성되어 있다. 조합설립인가 신청일 현재 서울시·인천시·경기도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무주택이거나 소형주택(전용85㎡이하 1채) 소유자면 조합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택 청약 통장으로 인한 경쟁이 없고 일반 분양 대비 10~20% 가량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동, 호수 선택을 할 수 있다. 한편 하남 벨리체 홍보관은 6월 24일 오픈 이후 성황리에 운영중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문경근의 남북통신]북한에서 6·25는 ‘反美의 날’…전국서 대대적 맹세모임

    [문경근의 남북통신]북한에서 6·25는 ‘反美의 날’…전국서 대대적 맹세모임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66주년입니다. 북한은 매년 이날을 ‘반미교양의 날’로 정하고 전국에서 대대적인 반미 교육을 진행합니다. 특히 황해북도 신천박물관에서는 청년동맹, 농근맹, 여맹, 관계부문 일꾼, 청년학생, 농근맹원들과 농업근로자, 여맹원들이 참가해 반미제국주의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맹세모임’이 진행됩니다. 북한은 황해도 신촌군에서 발생한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미군을 지목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목격자들이 전하는 사실은 한국전쟁이라는 혼란 속에서 공산권의 탄압과 거기에 저항하는 세력 간의 대립으로 인해 동족끼리 서로 싸우고 죽인 사건입니다.  신천군에서 살다 해주에서 대학교를 다녔던 한 탈북자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동네 어르신들은 신천에는 미군 전투부대가 주둔한 적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다. 미군 통신소대가 잠시 전화기 등을 개설하기 위해 며칠 머문것 외 미군은 그림자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신천군은 황해도 중부의 곡창지대로 대부분의 농가들이 자급자족했습니다. 또 집집마다 기독교를 숭상해 기독교를 탄압하는 북한 정권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던중 북한이 토지개혁을 빌미로 지주와 부유한 자작농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 세력들을 축출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 중 일부는 남한행을 택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곳에 남아 공산권 치하에서 ‘절치부심’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이 북상하자 신천군에 남아있던 반공세력들이 폭동을 일으킵니다. 신천군당 청사와 보안서 등 주요 관청을 장악하고, 퇴각하던 인민군을 공격했습니다. 또 북상하는 연합군을 맞이함과 동시에 공산권에 부역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총살하는 등 숙청이 시작됩니다. 이후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북한 인민군이 다시 남쪽으로 진군합니다. 신천 지역에서 가족을 잃은 인민군들 또한 미처 후퇴하지 못한 국군 가족들과 치안대 등 남한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합니다. 희생당한 가족에 대한 복수로 말입니다. 이렇게 동족간에 죽고 죽이는 사건이 반복돼 신천군에서만 전투로 사망한 것 보다 훨씬 많은 양민들이 희생됩니다.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신천군에서 당시 전체주민 4분의 1인 3만 5000여명의 양민이 미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쟁상황에서 미군이 아닌 남과 북이 보복과 재보복으로 서로의 가족들을 죽인 숫자를 합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결국 신천군 사건은 북한의 탄압과 공산권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 6·25 전쟁 등의 복합적인 원인이 맞물려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후 우리 사회가 용서하고 치유하며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편 신천에서의 양민학살은 스페인의 유명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년)의 ‘한국에서의 학살’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작가 황석영의 소설 ‘손님’(2001년)도 신천에서의 양민학살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한국전 참전 18개국 국기 꽃밭… 고마움 심은 연천 주민들

    한국전 참전 18개국 국기 꽃밭… 고마움 심은 연천 주민들

    24일 경기 연천군 전동리 망재원에서 주민들이 ‘한국전쟁 유엔 참전국 국기 꽃밭’을 관람하고 있다. 38선 북쪽에 있는 전동리는 6·25 전쟁 전까지는 북한 땅이었지만 치열한 교전 끝에 1953년 정전협정 체결과 함께 남한 땅이 됐다. 주민들은 6·25 전쟁 66주년을 기념해 18개 국가 국기를 형상화한 1000㎡(약 300평) 크기의 꽃밭을 조성, 이날부터 일반에 무료 개방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흐르는 대로 머무는 대로 지금 이대로

    흐르는 대로 머무는 대로 지금 이대로

    도시는 속도가 지배한다. 도시인의 삶에서 성공을 담보하는 요건 또한 빠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슬로시티’란 참 모순적인 단어다. 느림(slow)과 도시(city)라는 두 이질적인 단어가 결합됐으니 말이다. 한국에선 현재 11개 시·군이 ‘느린 마을’을 표방하고 있다. 충북 제천 수산면은 그중 하나다. 청풍호(충주호)와 인접한 시골마을인데, 마을에 들면 저절로 시간이 더디 흐르길 바라게 된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에서 ‘고속사회의 피난처’를 지향하며 시작됐다. 29개국 189개 도시(2014년 기준)가 가입돼 있다. 대개의 ‘느린 마을’들을 엿보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은 걷기다. 한데 수산면(水山面)은 다소 다르다.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국궁 체험은 ‘의병의 고장’ 제천에서 전통문화를 느껴보라는 뜻이고, 카약은 수려한 수산면의 자연을 느릿느릿 즐겨보라는 뜻이다. 측백나무 사이를 거닐며 숲의 향기를 만끽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설렁설렁 노 저으며 청풍호·옥순봉 도는 카야킹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여유작작하면서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청풍호 카야킹이다. 말 그대로 카약을 타고 설렁설렁 노 저어 청풍호 일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수산면 ‘나드리 영농조합’에서 운영을 맡고 있는데, 노 젓는 방법만 알면 초보자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쉽다. 출발지는 옥순대교 남단의 ‘청풍호 카약·카누 체험장’이다. 여기서 가이드를 따라 옥순봉, 촛대바위 등을 돌아 옥순대교까지 다녀오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1985년 청풍호가 조성되기 이전엔 높은 산과 암봉이었을 곳을 조각배로 느릿느릿 돌아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예언이라도 하듯, 물(水)과 산(山)이란 마을이름을 지어낸 선인들의 혜안이 새삼 감탄스럽기도 하다. 청풍호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옥순봉은 퇴계 이황이 지은 이름이다. 곧추선 기상이 비 온 뒤 쑥쑥 자라는 대나무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옥순봉은 유람선을 타고 지나며, 혹은 호수 너머 멀리 떨어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게 보통이다. 한데 카약을 이용하면 코밑까지 다가가 거대한 암봉의 진경을 살필 수 있다. ●“30m 과녁 향해 쏘세요~” 국궁의 재미에 풍덩 국궁 체험도 재밌다. 천천히 활시위를 당겨 멀리 떨어진 과녁을 맞추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옥순봉 생태공원에 국궁장이 조성돼 있다. 간단한 활쏘기 방법을 익힌 후 30m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긴다. 양궁과 달리 국궁은 활시위를 놓을 때 주의해야 한다. 활을 잡은 손목을 바깥 방향으로 살짝 꺾어줘야 활줄이 팔뚝을 때리는 봉변을 피할 수 있다. 국궁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무기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가졌는지 여실히 알게 된다. 옥순봉 국궁장 위는 두무산 측백나무 숲이다. 수령 60년가량의 측백나무 4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측백나무의 크기는 비슷한 수종의 나무에 견줘 크지 않은 편이다. 대신 향기는 어느 나무보다 진하다. 특히 요즘처럼 가지마다 도토리만한 열매가 달릴 무렵엔 향이 더욱 진해진다. 측백나무 숲에 들면 ‘건방진 나무’ 한 그루가 객을 맞는다. ‘건방진 나무’의 수종은 노간주나무다. 측백나무 사촌쯤 되는 녀석인데, 측백나무들이 득세한 곳에 겁 없이 혼자 서 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 측백나무 숲의 길이는 600m 정도다. 두무산 기슭을 따라 지그재그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숲에 들면 꼭 발 아래를 살필 일이다. 측백나무 뿌리 끝마다 어김없이 개미귀신(명주잠자리의 유충)들이 절구 모양의 ‘개미지옥’을 만들어 놨다. 숲엔 허브 식물들이 꽤 많다. 개똥쑥, 산초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잎을 하나 따서 가운데를 자르면 진한 허브향이 퍼져 나온다. 그 어떤 향수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진한 자연의 향기다. 숲 꼭대기까지는 30분이면 족하다. 측백나무 숲 맞은편, 그러니까 반대쪽 산자락을 넘어가면 괴곡리다.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도 멋지지만, 그보다 여태 남아 있는 수 채의 토담집들이 더 정겹고 인상적이다. ●월악산 모노레일·송계계곡서 특별한 만남도 청풍호 일대 두 곳에 모노레일이 조성돼 있다. ‘청풍호 관광모노레일’과 ‘월악산 모노레일’이다. ‘청풍호 관광모노레일’은 익히 알려졌다. 청풍호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비봉산을 오르내린다. 워낙 유명해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에 견줘 ‘월악산 모노레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수면 탄지리 3개 마을 주민이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운영한다. 전체 길이는 2.3㎞쯤. 45도에 달하는 급경사를 덜컹대며 오른다. 전망대까지 다녀오는데 쉬는 시간을 포함해 1시간 30분쯤 걸린다. 월악산 송계계곡에선 독특한 인물과 만난다. 이구영(1920~2006) 선생이다. 이름만으로는 다소 생경할 텐데, 벽초 홍명희의 제자이자 올 초 타계한 경제학자 신영복의 스승이라 설명하면 좀더 무게감이 들겠다. 이구영 선생의 삶도 파란만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출생은 지주의 아들이었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한수면 일대가 죄다 이구영 땅”이라 할 정도로 풍족했다고 한다.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월악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 운동을 벌이던 선생은 1944년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다. 고단했던 그의 삶이 크게 요동친 건 한국전쟁 때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패주하는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선생의 항일 운동 경력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지 싶다. 북한에서 대남 공작원 교육을 받은 선생은 1958년 남파됐다가 곧바로 체포된다. 한데 독특한 건 일제강점기에 선생을 체포한 ‘순사’와 남한에서 간첩 이영구를 체포한 ‘경찰’이 동일 인물이라는 거다. 그 인물이 누구였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한국엔 무명 용사도 많지만, 무명의 반역자들도 참 많다. 덕주산성 남문 현판 ‘월악루’가 바로 선생의 글씨다. 송계계곡 초입의 망폭대(송계 8경) 바로 옆에 있다. 도로에서 보면 새로 조성한 느낌이 역력해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하지만 한 걸음 안쪽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5겹으로 축조했다는 통일신라시대의 성벽과 월악산의 암봉들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졌다. 수산면 소재지는 소박하다. 딱히 명소라 할 만한 곳도 없다. 다만 제비는 많다. 초등학생들이 제비집 매달린 집마다 맥가이버 제비(공구상), 멋제비(이발소) 등의 문패를 붙여뒀다. ●‘제천 관광 마일리지’ 최대 5만원 적립 꿀팁! 팁 하나. ‘제천 관광 마일리지’는 꼭 챙길 것. 제천의 관광지나 체험 여행지에 있는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증하거나 스탬프를 찍으면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제도다. 최소 500원에서 최대 5만원까지 복권 방식으로 마일리지를 적립받을 수 있다. 스탬프 북에 스탬프를 찍으면 5000원에서 1만원까지 현금 기프트 카드를 지급받는다. 적립한 마일리지는 제천 시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글 사진 제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4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청풍호 카약 체험(646-8311)은 어른 1인당 1만원(1시간 기준), 청소년 7000원이다. 수산슬로시티방문자센터(642-8311)에서는 해설사와 함께 걷는 측백나무 숲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옥순정 국궁장(642-8311) 국궁체험은 화살 10발에 3000원이다. 아울러 산야초마을(651-3336)에서는 약초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을, 능강솟대문화공간(653-6160)에서는 솟대만들기 등을 각각 즐길 수 있다. 월악산 모노레일(653-0880)은 1만원, 청풍호 관광모노레일(653-5120)은 8000원이다. →맛집:‘약채락’은 제천시가 인증한 한방 음식브랜드다. 현재 27개 업소가 가입했다. 각 업소마다 고유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되, 주 재료는 제천에서 나는 것들을 쓴다. 제천 시내 바우본가(652-9931)는 약선정식, 수산면 소재지 인근의 가람(651-2264)은 뽕잎돌솥밥으로 이름났다. 청풍면 소재지의 느티나무횟집(647-0089)은 민물매운탕을 잘 한다. →잘 곳:청풍리조트(640-7000)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곳. 객실창 너머로 물안개 핀 청풍호와 월악산 영봉이 넘실댄다. 박달재 인근엔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649-6000)가 있다. 깊은 숲속에서 우아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충주 쪽에선 수안보 한화리조트를 추천할 만하다.
  • 연꽃 유명한 양평 세미원 25일부터 야간 개장

    연꽃 유명한 양평 세미원 25일부터 야간 개장

    연꽃으로 유명한 경기 양평의 세미원이 25일부터 야간에도 개장한다. 세미원 측은 한낮의 분주함과 들뜬 마음을 고즈넉한 저녁 풍경을 통해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도록 오는 11월 30일까지 야간에도 문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야간 개장은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며 휴관일은 없다. 팔괘담 정중앙에 위치한 태극기 형태의 출입문을 통해 입장하면 가장 먼저 장독대분수가 장관이다. 300여개 항아리에서 뿜어 오르는 물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독대분수는 한강물이 더욱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제단을 상징한다. 드넒은 연못에서는 홍련과 백련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으며 진한 물과 풀 향기가 인상적이다.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세족대와 돌빨래판이 깔린 세심로를 지나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생활 중에 제자 이상적 선생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공간에 펼쳐 정원으로 만든 세한정이 나타난다. 세한정 안에 위치한 송백헌(松柏軒)에는 세한도와 함께 추사와 제자의 초상화 그리고 추사 선생의 생애와 삶의 역정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세한정 밖으로 나오면 배다리인 열수주교(烈水舟橋)가 장관이다. 20여억원을 들여 설치한 열수주교는 배를 여럿 이어 만든 나무다리이다. 정조 임금이 부친인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복원한 것이다. 세미원 이훈석 대표이사가 국토교통부를 6년간 쫓아다니며 설득해 만들었다. 열수주교를 건너면 고려판 이동식 정자라 할 수 있는 사륜정과 조선 때 궁중 온실 등이 있는 상춘원을 구경할 수 있다. 끝으로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두물머리(兩水里)가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semiwon.or.kr)를 참고하거나 전화(031-775-1830)로 문의하면 된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인구 증가 1위 ‘힐링 양평’ 뒤엔 건강 농산물 보증서는 군수님

    [자치단체장 25시] 인구 증가 1위 ‘힐링 양평’ 뒤엔 건강 농산물 보증서는 군수님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날 아침 하얗게 질린 아내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김선교 경기 양평군수는 47세였던 2007년 1월 ‘정치를 해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양서면장(사무관)직을 내던졌다. 지방직 공무원으로는 가장 높은 국장급(서기관)까지 쉽게 오를 수 있었지만 안정적인 평범한 삶보다는 뭔가 큰 뜻을 펼치고 싶었다. 미리 어머니께 알리고 아내와 상의해야 했으나 반대할 게 너무도 뻔해 퇴임식 당일 아침에야 털어놨다.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잘나가던 그였지만 막상 출마를 한다고 하자 현실은 섭섭하리만치 냉혹했다. 넓은 군청 강당이 아닌 초라하고 좁은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퇴임사를 하게 됐다. 오기로 꼭 잡은 마이크에 대고 왜 군수에 출마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힘줘 꼭꼭 눌러 밝히자 청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당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양평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이후 내리 3회 연속 군수에 당선됐다. 김 군수의 하루는 남보다 훨씬 빠른 오전 3시 30분에 시작한다. 지난 16일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로 밀린 결재를 하고 군민과 직원들이 보낸 이메일을 읽고 회신을 하다 보면 5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부지런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김 군수는 지금 사는 옥천면 신복리 후평마을 토박이다. 100여 가구에 이르는 광산 김씨 집성촌이었으나 전원마을로 인기를 끌면서 외지인이 크게 늘어 400가구가 됐다. 그가 군수에 당선됐던 2007년 말 양평군 인구는 8만 7874명에 불과했으나 지난 3월 8일 현재 2만 2146명이 늘어나 11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2013년 시로 승격된 여주시는 2007년 10만 6926명이었으나 같은 기간 4382명 증가하는 데 그쳐 3월 현재 11만 1308명에 불과하다. 양평군의 최근 5년간 인구 증가율은 전국 77개 군 단위 지역에서 1위다. 김 군수는 “수도권 인근이란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그동안 일군 건강·힐링 고장 이미지가 한몫했다”고 말한다. 그는 평소 농촌 비중이 높은 양평군의 살길을 ‘저출산 고령화 극복’으로 진단했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고장, 노인 일자리가 풍부한 지역,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행복공동체 만들기 사업’ 등 다양한 시책에 역점을 두고 군정을 이끌어 왔다. ●10년 싸워 얻은 중부내륙 양평IC 올해 말 개통 남한강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오전 8시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일찌감치 서류상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오전부터 현장을 찾는다. 이날도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상면 병산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나들목(IC) 건설 현장을 둘러봤다. 설계에 없던 나들목이다. 중앙정부를 상대로 10년을 싸운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다. 김 군수는 “국토교통부를 한 50회는 다녀온 것 같다. 그만 오라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올해 말 개통하면 고속도로 이용이 편해져 양평읍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리를 따지는 성격은 군 행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종합운동장은 당초 485억원 이상을 투입해 양평읍 외곽에 1만 2000석 규모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7000석 규모로 축소해도 군민체육대회를 치르기에 충분할 것이란 판단이 들자 규모를 과감히 축소했다. 공사비도 200억원 아꼈다. 여유 부지에는 교육청, 우체국, 경찰서,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유치해 행정타운으로 만들고 호텔 등도 유치하기로 했다. 오전 8시 40분 집무실에서 열린 국·담당관 회의는 전원도시답게 곧 출하하는 수박과 감자 등 친환경 농산물을 어떤 가격에 얼마나 수매할 것인지 등이 주요 안건이다. 오후에는 생산자 단체들과 감자 수매와 관련한 협상도 해야 한다. 김 군수가 양평(지방)공사 김영식 사장을 급히 불렀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금액에 수매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이 얼마인지 물었다. 8100만원이라고 했다. 김 군수가 친환경 인증농가들에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며 특상품 감자 수매가를 농민들이 요구하는 ㎏당 1300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판로가 불투명한 200t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당 1250원 이상은 곤란하다고 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오후 5시 ‘친환경 감자 수매가 심의위원회’ 회의에 나섰지만 감자 생산자 단체들의 입장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김 군수가 수매 후 판매에 책임을 지겠다며 생산자 단체 입장을 전부 수용하자고 김 사장을 설득했다. 김 사장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지난해 양평공사 손익을 겨우 맞췄는데 그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양평군은 2005년 전국 최초 ‘친환경 특구’로 지정돼 쌀·감자·양파·마늘 등 10개 핵심 농산물의 농약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생산한 농산물뿐 아니라 토양에서도 농약이 절대 검출돼서는 안 된다. 친환경농업과 이윤근 과장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는 양평쌀의 경우 포대 표면에 생산자 이름과 친환경 인증번호뿐 아니라 “양평군수가 품질을 보장합니다”라는 글귀를 큰 글자체로 명시했다. 만약 유통한 쌀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김 군수가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농약 및 비료 사용을 엄격히 금하는 대신 양평군이 해당 농산물을 전량 수매한 후 판매를 대행한다. 농민들은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판매에 부담이 없다. 양평군은 면마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10대 품목을 특화 재배하도록 지원한다. 농산물 10대 품목을 수매하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양평군뿐이다. 양평군에 5인 이상 기업은 91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장류·인삼 가공·과자류 생산·산나물 가공 판매업체가 대부분이다. 양평군이 유기농 재배와 농산물 10대 품목 수매의 고육책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을 현안 논의하는 주민대표 회의도 참석 오찬을 끝낸 김 군수가 잠시의 휴식도 없이 국기게양대가 새로 세워진 물안개공원을 찾았다. 일제 치하 때 만세운동이 크게 일었던 양평읍에서는 마을 곳곳에 태극기가 물결치고 있다. 공원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세워진 국기게양대에 박명숙 군의회 의장 등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게양했다. 오빈2리를 비롯해 8개 마을을 돌아보자 오후가 금세 지났다. 저녁 식사 후 퇴근하나 싶었으나 김 군수는 마을별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주민대표들과의 회의가 있다며 백안2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깔끔한 주거 환경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꼭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김 군수가 25일 야간 개장하는 세미원으로 잡아끌었다. 세미원은 양평군이 2004년 5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서면 용담리 두물머리에 만든 자연정화공원이다. 은은한 조명을 받고 막 피어오르는 백련, 홍련이 환상적이다. 이훈석 대표이사가 6년을 쫓아다닌 끝에 국토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설치한 열수주교(배다리)는 그 하나로도 훌륭한 야간 산책로였다. 연인원 175만명이 찾는 세미원은 포천시가 폐석산을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포천아트밸리, 광명시가 폐광을 사들여 세계적인 동굴테마파크로 만든 광명동굴과 더불어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사설] 정부도 민변도 탈북자 신변 보호에 소홀했다

    중국 내 북한 식당에 근무하다 지난 4월 탈북한 여종업원 12명이 자유 의사로 한국을 택한 것인지를 가리는 심리가 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신청한 인신보호구제심사 청구를 법원이 수용해서다. 민변은 국정원이 이들 여성 탈북자를 지나치게 외부와 차단하는 등 수용·관리 방식이 비정상적인 점을 내세워 이들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총선이 임박한 가운데 국정원이 이들의 탈북 사실을 전격 공개해 ‘기획 탈북’이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는 듯하다. 국정원은 이후 민변의 탈북자 접견 신청과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연구자들의 면담 요청을 모두 불허한 상태다. 또 지금까지 고위급이 아닌 탈북자들의 경우 통상적으로 조사 뒤 하나원에 보내 남한 정착 교육을 하던 것과 달리 여종업원들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그대로 남겨 두기로 한 것도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익명의 당국자에 의해 “북한의 선전공세 등을 고려해 신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언급이 나오는 정도다. 국정원의 탈북자 공개와 이후 관리 방식은 분명히 전과 달라 보인다. 총선 닷새 전 공개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신상을 먼저 공개한 점이 특히 그렇다. 신상이 노출된 뒤 북한은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을 내세워 남측에 의한 ‘납치극’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국정원이 오히려 탈북자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협한 셈이 됐다. 한데 이제 와서 가족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접촉을 차단하니 의혹만 더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필요한 정보는 공개함으로써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민변이나 통일연구원의 접견이나 면담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민변의 법적 대응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 경위나 이후의 관리 상황이 이상해 보인다고 이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은 무리다.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종업원들은 법정 진술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민변은 친북 인사들을 통해 북한 탈북자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인신보호구제 심사를 신청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체제하에서 작성된 위임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부 당국과 민변 모두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탈북 관련 의혹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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