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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무단유출, 납품업체로부터 뇌물받은 국가기록원 직원구속

    공공 기록물을 무단 유출하고 납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국가기록물 역사기록관 공무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뇌물,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역사기록관 공무원 A씨(48·6급)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또 뇌물 공여 등 혐의로 납품업체 대표 B(44) 등 업체 5곳의 대표를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서 기록물 보존 업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17년 2월 B씨 등과 스캐너 등 각종 장비 가격을 시세보다 2∼4배 부풀려 납품계약을 맺은 뒤 8000여만원을 리베이트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또 같은해 3월쯤 역사기록관에 보관 중인 남한지역 지적원도 스캔 파일을 B씨 업체에 유출하는 대가로 1900만원 상당 금품을 받은 혐의도 받는다. 앞서 지자체와 지적원도 스캔 파일을 제공하기로 용역계약을 맺은 B씨는 A씨에게서 무상으로 받은 스캔 파일을 지자체에 넘긴 뒤 용역비 일부를 A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장비 납품 절차를 엄격히 관리하고 공공기록물 유출을 방지하는 개선방안 마련을 부산기록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경기도, 12개 관광유망축제 선정…최대 5000만원 지원

    경기도, 12개 관광유망축제 선정…최대 5000만원 지원

    경기도는 최근 지역축제심의위원회를 열고 고양행주문화제 등 12개 축제를 올해 ‘경기관광유망축제’로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경기관광유망축제는 도내 31개 시·군 중 ‘경기도 대표축제’에 선정되지 못한 16개 시·군 지역축제를 대상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고 특색 있는 축제를 선정, 지원하는 제도다. 선정된 12개 유망축제는 고양 행주문화제, 포천 산정호수 명성산 억새꽃축제, 과천축제, 남양주 2019 정약용문화제, 양주 천만송이 천일홍 축제, 의정부 블랙뮤직페스티벌, 의왕철도축제, 하남 이성산성문화제, 김포 아라마린페스티벌, 구리 코스모스 축제,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 용인 정암문화제이다. 이중 고양행주문회제는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 승전을 기념하고 권율장군과 순국선열의 정신을 기억하기위해 시작된 문화제이다. 또 용인 정암문화제는 용인의 역사적 인물인 정암 조광조 선생을 재조명하기위해 해마다 심곡서원에서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이 즐길수 있는 축제를 열고 있다. 도는 이들 축제에 축제 별로 3000만∼5000만원의 도비, 경기도 후원명칭 사용, 홍보마케팅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도는 앞서 지난해 12월 15개의 ‘2019년 경기관광대표축제’를 선정한 바 있다. 당시 선정된 도 대표축제는 ▲이천쌀문화축제 ▲여주오곡나루축제 ▲시흥갯골축제 ▲연천구석기축제 ▲안성맞춤남사당바우덕이축제 ▲수원화성문화제 ▲파주장단콩축제 ▲화성뱃놀이축제 ▲부천국제만화축제 ▲군포철쭉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오산독산성문화제 ▲광주남한산성문화제 ▲양평용문산산나물축제 ▲동두천락페스티벌 등이다. 오후석 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특정 축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보다는 31개 시·군별로 경쟁력 있는 축제를 균형 있게 지원하자는 것이 경기유망축제 선정 취지”라며 “경기유망축제가 시·군의 특색있는 축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황성기 칼럼] 북미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다

    [황성기 칼럼] 북미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다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다. 북한의 비핵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청산 약속이 진짜냐 가짜냐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올해 말로 예상했던 시한은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과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의 날 선 공방으로 바싹 앞당겨지게 됐다. 강 대 강 대치가 길어지면 북미가 비핵화와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미국 조야의 대북 회의론이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고, 북한 정권 내부에서도 트럼프 회피론이 비등할 것이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은 관전자들에겐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톱다운 방식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미의 리얼한 담판에 흥분했고, 협상 카드를 다 들여다봤다. 테이블에 깔린 양쪽 카드의 값어치를 계산해 보는 재미도 누렸다. 카드가 공개돼 협상의 폭이 줄어든 반면 마지노선이 드러남으로써 협상을 촉진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지금의 상황은 쪽박 깨지기 직전이다. 볼턴이 예사롭지 않다. 초강경 매파를 내세운 트럼프의 속셈이 북한을 압박하려는 데 국한된 건지 의심이 든다. 볼턴은 전형적인 일괄타결론자다. 미 행정부에 주된 기류로 자리잡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총대도 메고 있다. 트럼프가 채찍을 든 볼턴을 대북 교섭의 악역으로 내세운 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세팅될 때까지인지, 협상을 깨는 책임을 북한에 돌리기 위한 수순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북한이다. 행동 대 행동의 단계적 해결을 ‘술책’이라고 모욕하는 볼턴을 피해 갈 방책이 없다. 북한 방식을 받아들일 때까지 ‘전략적 인내’를 미국에 써볼 수 있겠으나 최선희의 3월 15일 기자회견으로 그 카드는 버렸다. 영변 하나만으로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벽을 넘을 수 없어졌다. 미국으로부터 ‘똑같은 조랑말’이란 조롱을 당하지 않으려면 영변, 핵·미사일 실험발사의 영구 중단 약속 외에도 굵직한 하나를 더 내놔야 한다. 워싱턴도 마찬가지다. 리용호 외무상이 읽어내린 ‘2016년 이후 5개 유엔 제재의 민생 부문 선 해제’는 김정은의 마지노선이다. ‘최고존엄’이 설정한 마지노선을 물리는 일은 어렵다. 미국이 민생 부문 해제조차 내놓지 못하겠다면 판을 걷어차인다. 자력갱생의 ‘새로운 길’은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예고된 상태다. 최선희의 3·15 발언을 두고 ‘트럼프·김정은이 사이 좋다 했으니 판은 안 깰 것’이라 낙관하는 것은 희망고문이다. 미국이 더 물러설 데 없는 북한을 몰아 세우다가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수 있다. 5개 제재 해제에 대해 트럼프는 “제재의 전부”라고 했다. 트럼프식 무지다. 4차 핵실험 직후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 등이 북한을 옥죄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5개 제재는 종횡으로 촘촘한 미국 단독의 제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남한의 대북 제재인 5ㆍ24 조치를 풀어도, 유엔 제재가 있어 경협이 불가능하듯, 유엔 제재를 풀어도 미국 제재가 버티고 있어 북한 경제를 돌리는 마지막 족쇄로 작용한다. 북한 경제가 국제사회로 나오는 첫걸음인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은 유엔 제재와 관계없이 미국 법인 브렌트우즈협정법에 의해 원천봉쇄되는 것을 트럼프는 모르는 듯하다. 북한은 미국 제재를 꿰뚫고 있다. 리용호가 ‘제재의 일부’라 항변한 것은 사실에 가깝다. 부시 대통령 때부터 대북 정책에 관여해 온 볼턴이 그 사실을 모른다면 거짓말이다. 거짓말의 의도는 장사도 모르는 ‘북한식 계산법’으로 몰기 위한 게 아닐까. 최선희가 영변의 가치를 후려치는 ‘미국식 계산법’ 운운한 데 대한 치졸한 복수로 보인다. ‘간 보기’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다. ‘하노이 교훈’은 자명하다. 미국은 북한의 살라미식 판매에 구매의욕을 못 느꼈다. 북한도 ‘도 아니면 모’의 미국식 빅딜에 신뢰 부족을 이유로 주춤했다. 다시 만나자 기약한 트럼프와 김정은이다.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고 싶은 김정은, 잘사는 나라의 기회를 주겠다는 트럼프의 의기투합이 깨지기 전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2020년 말 비핵화 달성이란 북미 공통의 목표는 확인됐다. 빅딜과 스몰딜을 절충하는 길 말고는 없다. 비핵화 로드맵을 그려 놓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식이다.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교묘히 테이블을 엎어도 누구 책임인지 분별할 만큼 관전자들은 똑똑하다. 동창리를 폐기 못 하면 조용히라도 있으면 한다. 로켓 발사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처럼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돌린다. 슬슬 만나자고 서로가 손 내밀 때다.
  • 고농도 초미세먼지 발생 중국 영향이 50%

    ‘보통’ 수준선 30%… 국외 유입 11~4월 높아 생성 과정 규명 장치 ‘스모그 챔버’ 구축 한반도에서 고농도 초미세먼지(PM2.5)가 발생했을 때 중국 영향이 5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세먼지의 변화를 추적·관찰해 과학적으로 출처를 규명할 수 있는 중형급 연구시설(스모그 챔버)도 구축했다. 미세먼지 범부처 프로젝트 사업단은 20일 서울 LW컨벤션에서 ‘추진 경과 공유회’를 열고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012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초미세먼지 농도별 중국 영향을 분석한 결과 초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인 20㎍/㎥ 이하에선 30%인데 비해 ‘나쁨’ 단계인 50㎍ 이상에서는 50%에 달했다. 국외 유입은 11~4월에 높았고, 6~8월엔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영향은 남한 전체 기준으로 0.5㎍/㎥, 중부 지방에서는 1㎍으로 추산됐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의 생성 과정을 규명할 수 있는 실험 장치인 중형급(27㎥) 스모그 챔버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설치됐다. 기존에는 7㎥ 미만 소형급만 있었다. 스모그 챔버는 미세먼지가 생성·성장하는 화학 반응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연구시설로 중국발 오염물질 유입 등을 추적·확인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배출 저감기술도 공개됐다. 미세먼지 생성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을 낮은 온도에서 90% 이상 제거할 수 있는 촉매와 황산화물 제거 성능이 90%에 달하는 다공성 탈황제가 국내에서 개발됐다. 단기 예보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지상·원격·위성 관측자료를 통합한 플랫폼과 국내 특성을 대기질 모델에 반영할 수 있는 편집기 개발 등도 가시화되고 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의열단장 김원봉, 무장투쟁 ‘공’vs 北정권 참여 ‘과’… 엇갈린 평가

    의열단장 김원봉, 무장투쟁 ‘공’vs 北정권 참여 ‘과’… 엇갈린 평가

    올해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았지만 약산 김원봉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여전히 극명하게 갈린다. 의열단을 조직해 무장투쟁에 앞장선 ‘공’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북한 정권에 참여한 ‘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놓고도 김원봉은 뜨거운 감자다. 독립운동가는 맞지만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는 애꿎은 현실이 70년 분단 역사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과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원봉은 현행 법 체계에서는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 김원봉이 단순히 사회주의 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4월 보훈처는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수 있도록 선정 기준을 완화했지만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인물이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당시 보훈처가 집계한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737명에 김원봉도 포함돼 있지만, 최근 재심사 대상에서 제외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지난 1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로 활동한 보훈혁신위원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독립운동을 했다면 독립유공자로 봐야 한다”고 보훈처에 권고했다. 보훈혁신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한 정부만 정통성을 가지고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면서 “6·25전쟁 때 전범 수준의 책임이 없다면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김원봉은 1948년 북한 국가검열상을 거쳐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1958년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훈처는 보훈혁신위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헌법 가치와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하고, 국민들의 종합적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립운동가는 반드시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아야 하는가”라면서 “불필요한 좌우 대립의 논란만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을 독립운동 공적만 가지고 할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해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광주시 ‘해공 민주평화상’ 만든다

    광주시 ‘해공 민주평화상’ 만든다

    경기 광주시는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해공 민주평화상’ 제정하여 신익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로 했다. 광주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장과 외교부장, 법무총장 등을 지내고 광복 후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7월 ‘해공 민주평화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경기 광주 출신인 해공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지속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광복 후에도 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대한민국 근현대 정치사에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시는 해공 기념사업을 새로운 지역문화 역사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해 해공 민주평화상을 제정한다는 방침이며 해공 민주평화상 제정과 운영에 관한 사항을 추진 중이다. 시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태어난 매년 7월 민주평화에 대한 기여와 의지가 확고하고 존경을 받는 이에게 해공 민주평화상을 수여할 계획이며 해공 선생을 기념하는 관련 행사도 마련한다. 이와 함께 올해 처음으로 7월 8일부터 7월 14일까지 해공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해공민주평화상 시상을 포함해 해공 선생 사상과 업적을 고찰하는 포럼과 세미나, 학술대회 등을 마련한다. 학생을 위한 해공 사진전시회, 토크쇼 등이 열리고 창작 뮤지컬 ‘해공 신익희’를 공연할 계획이다. 또한, 해공 민주평화상 제정과 함께 시내에서 퇴촌면과 팔당호 등으로 연결되는 경안천 둘레길 탐방 코스에 초월읍에 소재한 해공 생가를 포함, 지역 명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시는 남한산성~팔당호~퇴촌 자연휴양림~해공 생가 등을 잇는 ‘문화벨트’ 구축할 방침이다. 문화벨트에는 이 지역 출신인 여배우 최은희를 기념하는 영화제 계획도 포함된다. 신동헌 시장은 “해공 선생은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고 대한민국 건국과 민주화를 선도한 인물”이라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나오는 5월경 해공 민주평화상 제정과 운영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19년 3·1 운동 직후부터 26년간 해외를 돌며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선생은 이승만 정권에 맞서 장면·조병옥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으며 1956년 3대 대통령 후보로까지 출마했으나 선거를 열흘 앞둔 5월 5일 지방 유세를 가던 열차 안에서 돌연사 했다. 후보가 사망한 상태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은 해공 선생에게 185만표를 투표했다. 글·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씨줄날줄] 치킨호크/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치킨호크/박록삼 논설위원

    세상에는 형용모순의 말이 꽤 있다. 예컨대 ‘민주적인 독재자’, ‘가난한 부자’, ‘좌파 신자유주의’, ‘친일 독립운동가’, ‘개혁적인 보수’ 등이 대표적이다. 의미와 개념이 서로 충돌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지만, 실제 동서고금의 역사 속 곳곳에 이런 형용모순의 가치와 인물들이 존재해 왔다. 또한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하나 따져 보면 철학적인 측면이나, 정치학·경제학·역사학적 측면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표현들이기도 하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에서는 병역 기피나 면제자인 연방의원의 명단을 담은 ‘제이컵스 리스트’가 등장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A 제이컵스 민주당 하원의원이 베트남전 확전을 주장하는 대다수 강경파 공화당 의원들이 병역 기피자 혹은 면제자임을 폭로한 것이다. 군복무를 기피한 자들이 확전을 주장하며 젊은이들을 베트남 정글로 내몬 사실에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이에 새로운 표현이 만들어져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치킨호크’(Chicken-hawk). ‘치킨’이 겁쟁이를 뜻하고, ‘호크’는 비둘기파에 맞서는 강경한 매파를 일컬으니 우리말로 옮기자면 ‘겁쟁이 매파’쯤 되겠다. 전형적인 형용모순의 언어다. 베트남전 당시 치킨호크의 대표적 인물이 조지 W 부시와 존 볼턴이었다. 둘 모두 베트남전 징집 대상자였지만, 징집되기 전 각각 텍사스주, 메릴랜드주 주방위군에 자원 입대해 베트남전 파병을 피하고 안전한 미국에서 복무했다. 훗날 그들 중 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돼 ‘대량학살무기 보유’라는 거짓 정보를 내세워 이라크 전쟁(2003년)을 일으켰고, 또 한 사람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2000년대 이래 북미 협상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초강경파 네오콘의 핵심 인물이 됐다. 국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성 두드러기’로 군대에 가지 않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4일 “(남한 핵무장은)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접어 놓을 수만도 없는 일”이라며 공공연히 핵무장론의 운을 띄웠다. 연일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가를 전쟁과 대결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는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줄기차게 북진통일을 주장했지만, 전쟁이 터지자 국민들은 피난하건 말건 재빨리 한강다리를 끊고 남쪽으로 도망친 초대 대통령 같은 이도 이 범주에 속할 수 있겠다. 북한 지도부 또한 핵실험,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민족의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 치킨호크에 속한다. 겁쟁이라 손가락질 좀 받으면 어떤가. 역사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애쓴 인물들을 기억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 사실에 주목하길 바랄 뿐이다.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식민지 유산의 올바른 극복을 위하여/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식민지 유산의 올바른 극복을 위하여/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으로 부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발언으로 여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3ㆍ1절 기념사에서 색깔론을 극복하자고 호소한 대통령에 대한 도발이다. 그런데 나 원내대표를 ‘아베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비난한 여당의 대응 또한 퇴행적이다. 안 그래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실패의 범인 찾기가 벌어져 일본 주범론이 범진보 일각에서 회자되던 참이다. 작금의 사태는 한국 범보수의 아킬레스가 여전히 북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척점에서 범진보의 아킬레스가 여전히 일본 인식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런 소모적ㆍ유아적 논쟁 자체가 식민지 유산의 질곡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근대 국제체제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개별 민족국가는 대내적으로 근대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립과 대외적으로 자주적 평등질서의 보장을 불가분 불가결의 기본 요소로 한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전략적으로 근대화와 자주화 동시 달성을 목표로 한다.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의 상승 조합이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이다. 그런데 19세기 조선에서 두 기획은 상쇄 조합의 함정에 빠졌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은 ‘자주의 나라’가 돼 근대 국제체제에 편입됐지만, 이는 ‘근대 없는 자주’였다. 그로부터 30여년, 갑신정변·갑오개혁 등의 주체적 근대화가 좌절되고,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됐다. 그로부터 식민지적 근대가 시작됐지만, 이는 ‘자주 없는 근대’였다. 우리 민족주의는 이 ‘가짜 자주’와 ‘가짜 근대’를 동시에 극복해야 했으며, 우리가 벗어나야 했던 것은 ‘근대화와 자주화의 상쇄 조합’이라는 함정이었다. 해방으로 우리는 자주화와 근대화라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상승 조합으로 이끌어 갈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남한에서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는 다시 분열돼 상쇄 조합에 빠졌다. 근대화 프로젝트가 전략이 되면 자주화의 과제가, 자주화 프로젝트가 과제가 되면 근대화의 과제가 주변으로 밀려나 부정됐다. ‘오직 근대화’와 ‘오직 자주화’의 분열과 대립이 해방 후 한국 민족주의를 다시 상쇄 조합의 함정에 빠뜨렸다. 지리적으로도 분열됐다. 한국에서는 ‘오직 근대화’가 주류를, 북한에서는 ‘오직 자주화’가 국시를 이루는 사회가 됐다. 한국에서 ‘오직 근대화’가 주류를 이룬 계기는 사실은 4ㆍ19혁명으로 등장한 장면 정권에서다. 장면 정권은 이승만의 배일 정책과 민족경제 노선의 실패를 만회하려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일본 자본에 의한 경제 재건을 시도했다. 친일파가 한일 교섭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실은 이 시기였다. 5ㆍ16으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이 인맥을 계승해 장면 정권이 시도했던 경제협력 방침의 국교 정상화를 완성했다. 1980년 신군부를 거치면서 ‘근대화’는 한국에서 일종의 신앙이 됐다. 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자주화 민족주의’로 표출하면 ‘자주화’가 유일 노선으로 정착한 북한에 연계해 ‘빨갱이’ 낙인을 붙여 배제했다. 한국에서 ‘빨갱이’ 낙인은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의 상쇄 조합이라는 함정의 다른 이름이다. ‘빨갱이’로 몰려 사형 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근대화 프로젝트’와 ‘자주화 프로젝트’가 상승 조합을 창출할 기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한일 공동선언로 한일 화해를 이루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에 나선 것이 이를 상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도한 한일ㆍ남북 화해의 병행노선이 실패한 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위기가 중첩·심화된 것이 2017년의 위기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성패는 자주화ㆍ근대화 상승 조합을 창출해 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자주화와 근대화는 민족주의라는 축의 양 끝에 달린 두 수레바퀴 같은 것이라 두 힘이 같은 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민족주의는 전진하며, 반대 방향으로 어긋물려 돌아갈 때 같은 자리에서 맴맴 돈다. 두 힘의 상승 조합을 창출해 한국 민족주의의 질곡에서 빠져나오는 것, 이것이 진정 식민지 유산을 극복하는 길이자 올바른 친일청산이다. 색깔론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의 두 기획을 하나로 엮어 나가자는 데 대통령의 본뜻이 있다고 믿는다.
  • 대북특사 파견 관측 속 文·金 전격 만남 전망도

    “北과 대화 필요” 빠른시일 내 추진될 듯 金 동선·정치적 부담 고려… 판문점 거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1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네 번째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시점과 장소에 관심이 쏠린다. 하노이 회담 불발 이후 비핵화 로드맵을 위한 원포인트 회담이라는 점에서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장소로는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판문점이 거론된다.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동선 등 협의를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 정상회담의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수순을 밟을 경우 지난해 두 차례 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방북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서 국정원장이 지난주 미국 방문 당시 관계자들과 상세한 대화를 나눴다면 빨리 대북 특사로 보내고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현실적 수순”이라고 했다. 반면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설치돼 있는 만큼 특사 파견을 생략하고 전격적으로 만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가급적 빠른 만남으로 북한의 궤도 이탈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북 특사 파견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광주시티투어 버스 달린다

    광주시티투어 버스 달린다

    경기 광주시는 오는 4월 6일부터 남한산성 등 관내 주요 3개 관광지를 하루 코스로 둘러보는 시티투어를 운영한다고 15일 밝혔다. 매주 2차례 운영되는 광주 시티투어는 남한산성, 신익희 생가, 경기도자박물관, 화담 숲 등 관광뿐만 아니라 모노프린트 판화, 콩나물시루 만들기 체험, 고추장 만들기, 감자수확 체험 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광주왕실도자기축제(4월 26일 ∼ 5월 12일)와 퇴촌토마토축제(6월 13일 ∼ 16일) 기간에는 축제장도 방문해 다양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시티투어 버스는 서울시청역과 서울교대역, 경기광주역에서 출발해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관광지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솔자와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한다. 참가비는 성인·아동 구분 없이 1만5000원으로 버스탑승료, 체험비, 입장료 등을 포함한 비용이며 중식비는 별도이다. 아울러 4월 4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에서 진행되는 ‘2019년 내나라 여행박람회’에서 시티투어 참여를 사전신청하면 2000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시티투어 참가자 중 SNS를 통한 참여 후기를 올리는 인증자에게 기념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시티투어 일정은 광주시청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운영업체인 ㈜로망스투어(02-318-1664)로 예약 가능하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나경원 “반민특위가 국론 분열”…역사왜곡 넘어선 ‘극우결집’

    나경원 “반민특위가 국론 분열”…역사왜곡 넘어선 ‘극우결집’

    4월 재보선 염두 극우세력 결집 위한 ‘막말화법’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에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잘 됐어야 했지만 (반민특위가) 결국 국론분열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권에 ‘친일 청산’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앞서 나 원내대표는 14일에도 ”해방 뒤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친일 잔재 청산’ 발언에 대한 한국당 측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대표의 발언은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진 역사왜곡이자 망언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반민특위, 친일청산 기치 내걸고 221명 검찰 송치 반민특위는 일제 식민지 시대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고자 1948년 설치한 특별위원회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친일 경찰의 조직적인 방해로 이렇다할 활동 없이 1년여 만에 와해됐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꾸려진 제헌국회는 같은 해 9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8·15 광복 뒤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친일파 척결을 이뤄 내 민족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이 법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전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일제에 협력했거나 항일 독립운동가를 살해·위협한 조선인을 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10월 23일 국회의원들이 추천한 10명의 위원(임기 2년)을 선출했다. 위원장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지낸 김상덕(1891~1956)이, 부위원장에는 훗날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이 되는 김상돈(1901~1986)이 뽑혔다. 반민특위는 국회 안에 특별조사위원회(친일파 조사)와 특별검찰(기소·송치), 특별재판소(재판)를 설치했다. 곧바로 특별경찰대를 꾸려 반민족행위자 7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에 나서 이듬해 1월부터 검거에 들어갔다. 모두 559건(22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282건, 경기 32건, 황해 26건, 충남 25건, 충북 26건, 전남 27건, 전북 35건, 경남 50건, 경북 34건, 강원 19건이다.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로는 일제시대 악질기업가이자 화신백화점 소유주였던 박흥식(1901~1994)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최남선(1890~1957)·이광수(1892~1950), 여제자들에게 정신대 참여를 독려한 김활란(1899~1970) 등이다. ●미 군정·이승만·친일경찰 반발로 1년 만에 유명무실화 그러나 친일청산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우선 1945년 해방 직후 미 군정이 남한 지역을 통치하면서 한국인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반민족행위자를 척결할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 미 군정은 남한에 반공국가를 세워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아내려고 했다. 이들은 친일파의 역할에 주목했다. 민족의식 없이 강자에게 의지해 자신의 삶을 영위해 온 이들이라면 미 군정에도 마찬가지로 충성할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친일파의 청산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일이 돼 버렸다. 또 미 군정은 자신 이외의 어떠한 정부 활동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임정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김구(1876~1949)로 대표되는 임정 세력은 미 군정 규정을 어기고 임정을 사실상의 정부로 간주하려고 해 양측 간 갈등이 컸다. 이 과정에서 미 군정은 일제시대 통치 구조를 부활시키고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다. 1948년 7월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승만(1875~1965) 역시 미 군정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친일파는 이승만 정권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임정 세력은 더욱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정치적 라이벌인 김구 등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자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특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우선 친일경찰의 상징인 노덕술(1899~1968) 등이 독립운동가 겸 살인청부업자 백민태(생몰연대 미상)를 고용해 반민특위 요인들을 암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백민태가 자수해 미수에 그쳤다. 1949년 6월 국회 부의장 김약수(1890~1964)와 노일환(1914~1982), 이문원(1906~1969) 등 진보성향 의원들이 외국군대(미국·소련) 철수와 남북정치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제시했다. 당시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남조선로동당(남로당) 공작원과 접촉해 정국을 혼란시키려 했다”며 김약수 등을 체포했다. 이것이 ‘국회 프락치사건’이다.이 사건 직후 시민단체 ‘국민계몽회’ 회원 수백명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몰려와 “반민특위에서 암약하는 공산당을 숙청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특위에서 서울 중부경찰서에 도움을 청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위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항의하고 시위 배후로 지목된 서울시 사찰과장 최운하(생몰연대 미상) 등을 반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자 경찰이 반격에 나섰다.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원 35명을 체포하고 사무실 서류와 집기도 압수했다. 때맞춰 서울시경 9000여명이 반민특위 간부 교체와 특경대 해산을 요구하며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이승만은 “경찰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명분삼아 반민특위 압박을 강화했다. ●반민특위 실패로 친일파가 대한민국 지배세력으로 군림 이 때부터 반민특위 활동은 빠르게 위축됐다. 1949년 7월 법무부 장관에서 돌아온 이인(1896~1979) 의원이 반민법 공소시효 단축을 골자로 하는 정부개정안(반민법 2차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의원은 독립운동가 출신임에도 “민족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반민특위에 내내 부정적이었다. 결국 김상적 위원장 등 특조위원 전원이 개정안에 반대하며 사임했다.그나마 특조위에서 구심적 역할을 하던 위원들의 사퇴하자 친일 비호세력을 주축으로 새로운 특위가 구성됐다. 이로써 반민특위 활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기소된 친일 인사 가운데 재판을 마무리한 이는 불과 38명으로, 그나마도 전원이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 실제 처벌받은 반민족행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국민적 염원에도 당시 이승만 정부의 조직적 방해 때문에 반민특위 활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2019년까지도 친일세력이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길을 열어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4·3 재보궐 선거 노려 극우세력 결집 의도 반민특위 실패는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나 대표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다분히 정략적인 계산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3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 보수세력의 결집을 노려 ‘트럼프식 막말화법’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선거 승리를 위해 제1야당 원내 대표가 왜곡된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표를 모으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행동이라는 반응이 많다. 민주당은 “나베 경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름에 나경원 원내대표의 이름을 합친 비난) 등으로 나 원내대표를 비난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이날 대전에서 열린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런 망언이 계속되고 있기에 한국당을 극우 반민족당이라고 이야기하고, 나 원내대표 이름이 ‘나베 경원이라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 아니냐”며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나 원내대표가) 괜히 자위대 행사에 참석한 게 아니었다”며 “한국당 국회의원 나경원은 토착왜구란 국민들의 냉소에 스스로 커밍아웃했다”고 했다. 이어 “국민을 분열시킨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친일파들이었다”며 “실패한 반민특위가 나경원과 같은 국적불명의 괴물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의 훼방과 탄압으로 인해 친일부역자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임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한국당이 친일파의 후예임을 고백한 것과 진배 없다”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450년 전 퇴계 이황의 마지막 귀향길은 어땠을까

    450년 전 퇴계 이황의 마지막 귀향길은 어땠을까

    450년 전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새달 9일부터 21일까지 퇴계 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위대한 발자취, 경(敬)으로 따르다’라는 제목의 행사는 선생이 1569년 음력 3월, 한양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당으로 돌아온 귀향길을 따라가며 재현한다. 1568년 6월, 선생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올라가 만년 벼슬살이를 했다. 당시 선조 2년, 임금의 나이는 17세였다. 이후 선생은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의 고위 관직을 받고 경연에서 강의하며 소년 임금을 보좌했다. 그해 12월, 평생의 학문적 공력이 담긴 ‘성학십도’를 편찬해 임금에 올린 선생은 고향에 돌아가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며 만년을 보내고자 했다. 임금과 중신들의 만류가 이어졌으나 몇 달에 걸쳐 사직 상소를 올린 끝에 1569년 3월 4일 선조는 선생에게 일시적인 귀향을 허락했다. 선생의 귀향길에는 조정 중신들이 한강으로 나와 전별하고 기대승, 윤두수 등의 당대 명사들이 시를 지어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때문에 귀향길이 늦어진 선생은 동호의 몽뢰정과 강남의 봉은사에서 유숙했다. 당시 선생은 박순과 기대승에게 화답시를 지어 석별의 정을 표했다. 이후 광나루~미음나루를 지나고 남한강의 한여울, 베개나루(이포)를 거쳐 충주 가흥창까지 관선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임금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충주에서 하산한 선생은 이후 말을 타고 청풍~단양~죽령~풍기~영주~예안 도산의 경로로 돌아왔다. 가는 곳마다 배웅 나온 제자, 영접 나온 관원 및 친구들과 시를 주고 받는 등 13일의 여정에서 상세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행사는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서 선생이 남긴 기록을 근거로 고지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이뤄진다. 선생이 유수갰던 봉은사를 기점으로 육로 250여㎞를 12일에 걸쳐 걷고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옛길 70여㎞는 선박을 이용하는 식이다. 개막 행사로는 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 등의 강연이 열린다. 이어 광나루, 여주 기천서원, 충주 가흥창, 충청 감영, 청풍관아, 단양관아 및 영주 관아 등에서 퇴계학 연구자들이 주관하는 강연이 계속된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을 따라 걸으며 선생이 남긴 삶과 정신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임정, 온전한 조국 독립 꿈꿨는데… 통일이 진정한 광복 완성”

    “임정, 온전한 조국 독립 꿈꿨는데… 통일이 진정한 광복 완성”

    이런 삶을 살아온 이가 있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이하 임정) 청사 옆에서 도산 안창호(1878~1938) 등의 축하를 받으며 태어났다. 상하이~항저우~난징~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으로 이어지는 중국 대륙을 임정과 함께 풍찬노숙하며 횡단했다. 한국인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김(金)씨 대신 진(陳)씨로 성을 바꿔 학교를 다녔고, 백범 김구(1876~1949)와 김치에 거친 밥을 겸상했다. 석오 이동녕(1869~1940)과 성재 이시영(1869~1953)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던 소년이었다. 1930년대 중국 영화 황제 미남배우 김염(1910~1983)이 드나든 집에서 자란 이 소년은 훙커우공원 폭탄의거의 윤봉길(1908~1932)이 “내 아들과 동갑”이라고 사탕 사주며 예뻐했다. 엄마 손잡고 약산 김원봉(1898~1958)의 부인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박차정(1910~1944)이 폐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 병문안 다니곤 했다.이 소년은 열아홉 되던 해 광복을 맞았다. 올해로 91세인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이야기다.만주군 장교에서 일제 패망 직후 광복군으로 신분을 바꾼 박정희(1917~1979)와 거의 같은 시기 미군 수송선을 타고 임정 식솔과 함께 상하이에서 부산으로 왔다. 귀국 뒤 이승만(1875~1965)에게 세배를 갔고, 결혼식 주례는 해공 신익희(1894~1956)가 섰다. 의용군으로 끌려가다 겨우 도망쳤더니 아버지는 전날 납북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조선일보 수습 1기 기자로 일하며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한 역사적 오보를 바로잡는가 하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뒤 훗날 무죄로 판결난 조용수(1930~1961)와 함께 민족일보 창간멤버로서 진보언론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의 삶 곳곳에는 현대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이 출몰한다. ●모스크바 3상회의 역사적 오보 바로잡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의 한복판에서 부침을 함께한 김 회장. 대한제국 법무대신 등을 지내다 가솔을 이끌고 임정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에 나섰던 동농 김가진(1846~1922)이 그의 할아버지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김의한(1900~1964)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정정화(1900~1991)가 그의 아버지, 어머니다. 2019년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감회는 누구와 비교할 바 아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 충칭 임정 청사를 방문해 당시의 삶과 활동을 설명할 정도로 기력이 좋았지만, 지금은 거동이 좀더 불편해졌고, 청력도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은 또렷했고, 또박또박 짚어내는 임정의 가치와 정신은 청춘처럼 빛났다. -올해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소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임정은 조국의 독립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반쪽짜리 독립은 아니었습니다. 분단은 진짜 독립이 아닙니다. 분단이 있는 한 광복은 미완성입니다. 1946년 제가 귀국할 때만 해도 분단이 이렇게 오래가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70년 동안 분단이 고착됐으니 짧은 시간 내에 통일은 어려울 듯합니다. 일단 남북의 평화로운 공존이 필요하고, 자유롭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모습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임정 100주년의 의미나 혹은 독립운동 자체에 대해 별 감흥이 없는 듯합니다. 그런 반응을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감흥이 없는 게 당연하지요. 그렇다고 젊은 세대를 탓할 것은 아닙니다. 국가와 정치가 하기에 달려 있는 부분이고 그만큼 잘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밝히고 있듯 임정의 법통을 이어 왔습니다. 광복 이후 그 부분을 좀더 정확히 밝히고 임시정부의 목표와 강령을 실천했다면 그렇지 않았겠죠. 정치를 통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교육을 통해 이를 후세와 공유해야 합니다.” -최근 정부가 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려다 사실상 백지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쉽습니다. 한때 건국절 등 논란이 일기도 했던 만큼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시대인 만큼 어쩔 수 없죠. 교육기관 등을 통해 항일투쟁의 역사, 친일 인사들의 행적, 일제의 침략 역사 등을 정확히 배울 수 있게 하고 임정의 가치를 잘 공유하면 됩니다.” ●남북관계 복원 난관… 곧 좋은 소식 있을 것 기대 -통일이 광복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최근 북미 정상회담 흐름 등 한반도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지만 지난달 베트남 회담에서 확인됐듯 여전히 뿌리 깊은 북미 상호 불신을 드러낸 부분 또한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일로고요. “일단 남과 북이 서로를 통일의 주체로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소년 시절 서구에서 유학하는 등 서구문화의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안목 또한 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망쳐 놓은 남북 관계를 복원하는 작업인 만큼 난관이 있더라도 곧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야 우리의 통일에 관심이 없겠지만, 자신의 명망을 높이는 일이거나 미국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니 북미 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를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일본이야 기대할 부분이 별로 없고, 당분간 집권당도 안 바뀔 것 같고…. 훼방하지 않도록만 우리가 잘 관리해야죠. 내 생전에 통일까지는 아니라도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남북의 모습은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 회장은 임정의 정신과 교훈을 얘기하며 평화와 통일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제 임정은 공화주의를 지향한 좌우합작 정부였다. 좌익, 우익, 아나키스트, 유림까지 모두 모인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우익 인사인 백범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평양을 찾은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임정의 정신이 통일 지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음달 11일 열리는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선포식’도 치러질 예정인데 이 기념관 건립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그 선양사업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는 아무개 선생, 아무개 선생 등 개별 후손 중심으로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후대로 넘어갈수록 먹고살기 바쁘고 관심도 시들해져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국가가 체계적으로 독립운동 관련 자료도 한데 모으고 개별 독립운동가들의 뜻과 업적을 기릴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21년 완공 예정인데, 늠름히 서 있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꼭 그러셔야죠. 그런데 조심스럽습니다만, 말씀하신 임정의 진정한 독립 정신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제대로 이어 가지 못한 채 과거 독재정권과 타협하는 일도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어요. 시대가 그랬고, 교육이 그랬으니까요. 또 후손들이라고 아버지, 어머니와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물론 타협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광복회를 만들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권력 주변으로 많이 포섭했습니다. 유공자 서훈도 원칙과 기준 없이 남발하다시피 했고요.” 실제 김 회장의 조부(동농 김가진)는 항일 비밀조직인 조선민족대동단을 결성해 활동했고 망명 뒤 임정 고문, 북로군정서 고문을 맡았으며, 그의 장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장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약산 김원봉 또한 독립유공 서훈이 없다. 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임병직 전 외무부 장관은 가장 높은 서훈인 대한민국장을 받아 원칙과 기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했다. 지난 13일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포상 보류자 2만 4737명에 대해 재심사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투명하면서도 체계적인 서훈이 내려질 것인지 기대를 모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임정 건국강령 21세기 복지국가정책 닮은 꼴 임정이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은 21세기 복지국가들이 표방하는 정책과 다를 바 없다. 1948년 제헌의 내용적 기초가 됐으며 2019년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실천적 과제를 담고 있다. 의료비 면제, 학비 면제, 최저임금제, 노동자 대표 경영관리 참여권 보장, 실업보험, 사형제 폐지, 노동자와 이익을 나누는 이익균점제, 몰수 재산 무산자 이익 위한 국영기관 이전 등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 김 회장과의 얘기가 깊어질수록 100년 전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를 우리가 잘 만들어 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youngtan@seoul.co.kr
  • 격 없이 찾는 광주 열린시장실… “격 높은 주민제안이 정책으로”

    격 없이 찾는 광주 열린시장실… “격 높은 주민제안이 정책으로”

    “찾아가는 열린시장실은 각본이 없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면 해결 못 할 일이 없지요. 현장에 문제가 있고 또 답이 있습니다.” 방송사 PD 출신인 신동헌 광주시장은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주민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요구만 내놓지 않는다. 이들의 세련된 제안들을 보면 정말 우리 광주시민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열린행정·소통행정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찾아가는 열린시장실’이 자리를 잡았다. “현장에 문제도 있고 답이 있다. 현장에 나가보면 정말 생생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고 주민이 좋아하고 반겨준다. 지난 선거 때 열린시장실을 공약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한 차례 혹은 필요 시에 민원현장 등을 직접 찾아간다. 시장과 각 부서 책임자들이 함께 나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수렴한다. 그 자리에서 제기된 민원이나 아이디어들은 카드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퇴촌면 찾아가는 열린시장실에서 한 주민이 토마토축제 기간 중 가장 큰 고민거리는 교통과 주차문제다. 주차장에서 축제장으로 가려면 하천을 돌아가야 하는데, 하천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불법주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건의를 했다. 징검다리 놓는 데는 예산도 적게 들고 큰 공사가 아니라서 공기도 짧다. 그래서 건의를 즉각 받아들였고 4월이면 징검다리 공사가 끝나게 된다. 현장에서 답을 찾은 좋은 사례다.”-현안 처리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4번의 열린시장실을 통해 접수된 민원이나 아이디어는 모두 112건이다. 모두 주민들에게 필요하고 광주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제가 성격이 급해서 손수 하나하나 챙긴다. 그러나 예산이 수반될 경우에는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안을 즉시 처리할 수는 없다. 열린시장실을 통해 접수된 민원이나 아이디어를 ‘즉각조치-추진 중-장기검토-불가사항’ 등 4개 기준을 만들어 데이터화한다. 예산이 들어가지 않거나 저예산으로 가능한 사업의 경우 ‘즉각 조치’를 해서 조기에 완료하고, 행정절차 등이 필요한 사안은 ‘추진 중’으로 관리한다. 또, 면밀한 계획수립이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장기검토’로 분류한다. 장기검토 중인 것도 시장이 데이터를 보고 항시 챙길 것이다.”-가장 기억에 남는 제안은. “우리 광주시 도척면에는 여름에도 시원한 얼음골이라는 명소가 있다. 주민이 얼음골을 관광지로 활성화시켜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얼음골을 관광지로 활성화시켜 달라는 것은 주민 편의보다는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을 고려한 요구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남한산성면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에 400년 이어온 민속놀이인 광지원리 해동화놀이를 활성화시켜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 또한 지역 문화발전을 생각한 세련된 제안이다. 이 제안은 즉각 받아들였고 해동화 놀이는 국비 공모사업인 농촌축제 대상에 선정돼 올해 국비를 지원받아 정월 대보름에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해동화놀이를 즐겼다. 우리 주민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요구만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세련된 제안들을 보면 정말 우리 광주시민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정부와 경기도의 지원이나 도움이 필요한 제안도 있을 것 같은데. “광주지역에 지난해 1만 5000여명의 인구가 늘었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난개발로 인한 교통, 학교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민들이 전철을 연결해달라, 성남으로 가는 터널을 뚫어달라, 그리고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사업 구간에 엄미리 IC를 개설해 달라는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민원들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는 하지만 광주시 노력만으로는 될 수가 없다.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고 경기도와도 협의해야 하는 사안이다. 시장이 직접 뛰며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국토부 장관은 물론 경기지사와 국회의원 등 정치권 관계자들도 만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민원은 어떻게 하나. “수용이 불가능한 민원은 대체로 법적인 근거가 없거나 특정단체 이익과 관련된 것들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사안은 시장으로서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정단체 이익과 관련된 사안은 자칫하면 특혜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에는 무조건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놓는 게 아니라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노력과 의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마을회관을 지어달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마을회관 건립은 지원근거(조례)가 없어서 들어줄 수가 없는데, 경로당과 병행 사용하면 ‘경로당 지원에 관한 조례’가 있기 때문에 신·증축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에는 마을회관은 지원근거가 없어 불가능하지만 대안으로 경로당과 병행 사용할 수 있도록 경로당 증축을 검토하겠다고 답변을 드린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가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면 대부분 주민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흙으로 빚은 도자의 미 …광주 남한산성아트홀서 도자기 전시회

    흙으로 빚은 도자의 미 …광주 남한산성아트홀서 도자기 전시회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조선백자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로 만든 도자기 전시회가 13일~1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불꽃 흙으로 빚어진 조선미학의 혼’이란 주제로 15인의 광주 도예인이 참여했으며 조선백자인 청화백자운용문호 재현품을 비롯한 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조선백자’의 원료인 백토(白土)가 광주시 역동에 소재한 역세권 부지개발 과정에서 출토돼 이를 재료로 조선의 백자와 분청사기로 재탄생했으며 백자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선보여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전시회 개막식에는 신동헌 시장을 비롯해 소병훈·임종성 국회의원, 박현철 시의회 의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신 시장은 “조선왕실 500년 도자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그 시대의 백토를 사용해 만든 도자기라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크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선백자의 맥을 잇고 도자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클론 강원래 “반려동물과 이별할 때 웃으며 보내주세요”

    클론 강원래 “반려동물과 이별할 때 웃으며 보내주세요”

    2000년 최정상을 달리던 클론의 강원래. 당시 클론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만에서도 그들의 인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부모님 댁에 가던 중, 불법 유턴하던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그 사고로 그는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인이 됐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강씨. 아이를 갖기 위해 여러 번의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이는 아니라고 판단한 강씨가 아내 허락없이 몰래 데려온 반려견 똘똘이. 녀석과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8년간의 동행은 지난 2016년 추운 겨울 막을 내렸다. “똘똘이가 하늘나라로 막 가려는 순간에 ‘똘똘아, 똘똘아, 똘똘아’라고 수 십 번 목 놓아 외쳤던 거 같아요. 근데 정작 똘똘이는 죽는 그 순간에 저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아니, 제가 뭘 잘못이라도 했나요’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요. ‘똘똘아, 너 때문에 우리가 정말 행복했어. 고맙고 사랑해. 잘 가고 또 만나자’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막연히 너무 급한 마음에 ‘똘똘이’만 외쳐 마지막 순간까지 부담을 준 거 같아 너무 미안해요” 그리고 지금도 강아지 키우는 분들 만나면 진심을 담아 꼭 이런 얘기해요. “키우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될 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갈 수 있도록 연습해 놓으세요”라고. 똘똘이가 죽은 그 해는, 8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결혼 10년 만에 아들 선이를 가진 해이기도 했다. 8년간 함께 했던 천사를 보내고 또 다른 ‘천사’를 가족으로 맞이한 강씨의 심정은 어땠을까. “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올 만한 기적과도 같은 얘기죠. 그런 것을 통해 위로의 말도 많이 들었어요. 사람 참 못된 게 선이가 세상에 태어나니깐 똘똘이가 점점 잊혀 가더라고요. 똘똘이 사진과 인형, 같이 놀던 테니스공 같은 걸 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보더라도 ‘안녕, 똘똘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은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선이 태어나고 아내, 선이, 강원래 순으로 서열이 새로 정해지더라고요. 아내가 가끔 ‘조용히 해’ 라고 말하면 숨도 안 쉬고 잘 때도 있어요. 그래도 행복해요” 강씨는 아들 선이를 위해 새로운 반려견을 입양하려고 한다. 그것도 몸집이 제법 큰 걸로 말이다. “선이가 강아지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요. 굉장히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근데 강아지 생명이 너무 짧아요. 선이가 몇 살 정도 됐을 때 키우던 강아지가 떠나겠지 라고 생각하면 맘이 좀 그래요. 그래도 같이 있으면 선이도 배려심이 생기고 좋을 거 같아서 다시 가져볼 생각이에요” 미세먼지가 심한 지난 6일, 라디오 방송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그를 주차장에서 만났다. 얼굴 안색도, 몸 상태도 안 좋아 보였다. 날씨가 짓궂으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 미안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강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와 열정 그리고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고맙고 감사했다. 반려견 똘똘이를 눈물로 보내고 아들, 아내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인생 2막, 짧지만 진지하고 솔직했던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상대적으로 소외된 분들, 몸이 불편한 분들 특히 장애인분들이 많이 듣는 KBS3 라디오 12년째 진행하고 있고 구준엽씨와 클론으로 활동도 계속하고 있어요. 또한 장애인들도 인간이고 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강연도 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Q) 반려견을 원래부터 많이 좋아하셨는지제가 태어나기 전에 형이 셰퍼드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봤으니깐 아마 저도 태어나면서부터 반려견들과 함께 지낸 거 같아요. 아버지도 반려견을 엄청 좋아하셨어요. 덩치가 큰 것들 뿐 아니라 도사견도 키우고 개들이 항상 집에 있었어요. 저도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Q) 8년 동안 함께 했던 반려견 ‘똘똘이’를 어떻게 만났는지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된 이후에 아내와 결혼을 하고 2세를 갖기 위해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자꾸 실패를 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죠. “우리 아이는 아닌 거 같은데 강아지나 한 마리 키워볼까” 그랬더니 아내가 결사코 싫다고 했어요. 그랬는데 제가 무작정 한 마리를 데려왔죠. 그게 웰시코기 똘똘이였어요. 처음엔 털도 많이 빠지고 말도 안 들어서 힘들었는데 아내도 강아지를 좋아하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깐 정이 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에서 살게 된 거죠.(Q) 똘똘이는 어떤 병으로 고생했는지2008년인가 송이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오빠 똘똘이 목 주변에 있던 살들이 암 덩어리야” 저는 “어떻게 개가 암이 걸려 말도 안 돼”라며 믿지 않았죠. 하지만 사실이었죠. 살이 많이 찌긴 했는데 그게 살이 아니었던 거였죠. 의사 선생님이 힘든 과정을 택하겠느냐 아니면 좀 편한 과정을 택하겠느냐고 하시길래 어떻게 해서라도 똘똘이가 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힘든 과정을 택하게 된 거죠. (Q) 두 달 시한부 판정을 받고 어떻게 2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지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정성이 있어서 오래 살고 정성이 없어서 빨리 세상을 떠나고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똘똘이도 운이 좋지 않았나 싶어요. 똘똘이가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게 해주고 먹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 많이 해준 덕에 조금은 활기를 찾게 되고 컨디션도 좋아지다 보니깐 오래 견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병 투병 중에도 두 분을 위해 활발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마음은 어땠는지강아지의 본능인 거 같아요. 나중에 똘똘이가 정말 아플 때였어요. 보통 방 아니면 마루에서 자던 똘똘이가 어느 날 갑자기 신발장 쪽에 있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때까지는 주인을 위해서 또 한 가정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한 거 같아요. 똘똘이가 나한테 와서 꼬리를 막 흔들었던 건 뭔가 기대감을 갖고 “주인님, 나도 좀 힘들어요.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라는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똘똘이를 너무 오라 가라 하면서 괴롭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너무나 힘들 때 투정부리고 남한테 막 억지로 말 걸 때가 많이 있었거든요. (Q) 집에 있는 사진들 대부분이 똘똘이 사진이다.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면똘똘이랑 함께 찍은 사진도 없었고 방송에서 하는 거니깐 기념촬영 한 번 하자고 해서 찍었던 건데 이 사진이 우리 집에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똘똘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저 사진을 볼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찍을 땐 굉장히 재밌었지만 힘들어했죠. 계속 인상 쓰고 무서워하다가 깜짝깜짝 놀라는 게 하는 순간 찍어서 사진은 잘 나왔죠. 아직까지 저 모습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Q) 똘똘이와의 마지막 여행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똘똘이가 제일 신나게 뛰는 모습은 눈 내리는 운동장, 바닷가 해변가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고 똘똘이도 신나게 해주고 싶었죠. 똘똘이 버킷 리스트까지 만들었죠. 똘똘이 부모 만나게 해주기, 똘똘이 맛있는 거 사주기, 똘똘이가 가고 싶은 눈길, 바닷길 등 여러 목록을 만들었는데, 결국 눈길까지는 갔지만 바닷가는 못 가고 세상을 떠났죠. (Q) 똘똘이는 강원래씨 부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천사였던 거죠.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와줬고, 선이를 임신해서 아내와 제가 가장 행복했을 때 우리 곁에서 떠났거든요. 똘똘이가 죽었을 때 정말 슬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천사가 우리를 위해 우리 가정에 와서 행복하게 해줬던 거 같아요. 선이한테 “똘똘이가 너보다 형이야”라고 말하면 선이도 “나중에 우리가 천국가면 똘똘이형 있겠네”라고 말해요. (Q) 혹시 안락사를 생각한 적은 없으신지똘똘이가 힘들어하더라도 우리가 곁에서 잘 보살펴 주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락사보다는 똘똘이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우리 곁에 함께 있다가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는 것을 어떤 책임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처럼 진정한 책임감을 갖고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선이의 탄생으로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선이는 정말로 내가 또다시 태어난 느낌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부모님에 대한 효도이자, 국가에 대한 충성인 셈이죠. 인간의 본능인 거 같아요. 부모님에 대한 효도보다 아들에게 베푸는 사랑이 더 큰 거 같아요. 그래서 선이는 또 다른 천사죠. (Q) 똘똘이와의 마지막 여행지를 선이랑 다시 갔는데 심정이 어땠는지그 자리에 다시 가면 마음이 아플 줄 알았는데 선이랑 함께 가니깐 그렇지 않더라고요. 왜 있잖아요. 부모님하고 산소에 갈 때 부모님의 눈빛은 슬퍼 보이지만 저를 보시면 기분 좋아지시는 느낌. 저도 그런 마음이었어요. ‘비록 똘똘이가 하늘나라 갔지만 네가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맙다 선이야. 사랑한다’고 속으로 얘기했죠.(Q) 주병진씨 웰시코기 대중소와의 만남을 가진 계기는주병진씨가 키우는 웰시코기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똘똘이를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주병진씨 친구인 임백천씨가 방순국 제 옆 방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 하세요. 임백천씨께 주병진씨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연락처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알려 주셨어요. 바로 전화해서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하니깐 오히려 직접 오시겠다고 해서 만남이 성사된 거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특히 대중소의 ‘대’는 똘똘이를 너무나 닮았더라고요. 가슴이 뭉클했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많은 스텝 분들 앞에서 힘들게 꾹 참았던 기억이 있어요. (Q) 똘똘이를 떠나서 강원래씨에게 반려동물이란아주 좀 나쁜 얘긴데, 내가 위로받기 위한 그런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건 똘똘이를 위해 뭔가를 해준 게 없단 뜻이기도 해요.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요. 처음엔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키웠죠. 전동휠체어 타고 함께 산책하고 똥도 치우고 했는데 점점 내 위주로 변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다시 키운다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Q) 동물학대, 유기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저도 솔직히 그런 적이 있었어요. 댄서시절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안무를 짤 때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말 컸어요. 가수에게는 박수치고 댄서한테는 ‘이리 와, 저리가’란 소리 들으며 천대받았다고 느꼈을 때, 집에 와서 강아지들을 막 때리고 했어요. 가끔 동물학대 영상을 보면 ‘아, 나도 저랬었는데...’ 하면서 너무 미안한 맘이 들어요. 강아지들이 화풀이 대상이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도 저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면 예뻐해 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후회스럽고 반성도 많이 하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경험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아지를 화풀이 대상으로 키우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 같아요. (Q) 반려동물을 키우려고 시작하는 초보 맘들에게어떤 매뉴얼이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최근에 강아지가 자신의 배설물을 먹는다며 바꿔달라고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강아지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봤어요. 똘똘이도 그랬어요. 자기 배설물을 먹고 종이도 찢고. 그런 강아지들은 교육이 필요한 거 같아요. 선이도 태어나서 몸을 뒤집기 시작하고 걸을 때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거든요. 마찬가지로 강아지도 생명체잖아요. 정성을 쏟고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아나간 후 천천히 가족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2015년 모교에서 ‘다시 꾸는 나의 꿈’이란 강연으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본인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뜻하지 않게 장애인이 될 때,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됐을 때 웃을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당연한 거예요. 화나고 짜증나고 심지어 ‘이렇게 살 바에 죽어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해요. 그게 정상인 거예요. 우리 스스로가 조금 더 그런 분들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는 분들도 자기의 힘듦을 자꾸 말해야 돼요. 참 신기한 게 사람들은 누구를 도와줄 줄은 아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힘들어하더라고요. (Q) 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신다면오늘도 아내가 도시락 싸줘서 라디오 방송 잘했어요. 요즘 선이가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 다니는데 아내가 걸어서 직접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해요.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죠. 아내가 그만큼 더 열심히 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제가 또 더 열심히 잘해야겠죠. 우리가 힘들 때 하늘이 주신 천사 선이와 함께 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Q)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교통사고 이후 힘들었던 몇 가지 일들을 직접 시나리오 써서 연극으로 만들고 싶고 그 외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아요.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저 친구 잘 살았네’라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싶어요. 이런 말 있죠.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짜증내지 말고 ‘꿍따리 샤바라’를 외치면서 재미있게 살자고.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클론의 강원래가 되고 싶어요. 응원해 주세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경제적 보상 없는 1992년 선언… 하노이 협상보다 北에 더 불리

    경제적 보상 없는 1992년 선언… 하노이 협상보다 北에 더 불리

    남북, 당시 모든 핵 일괄 폐기에 서명비핵화 정의 뚜렷하고 검증법 구체적北에 강한 압박… 김정은 수용 안할 듯‘비핵화 완료때 제재 해제’ 메시지 해석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북핵 합의의 모델로 새롭게 제시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특징은 1) 완전한 비핵화를 정의하고 2) 구체적 검증과 포괄적 폐기를 포함했으며 3) 미국의 상응 조치는 군사적 유화 조치에 한정됐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항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3항은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이다.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가 북한의 비핵화로 정의된 것이다. 이는 2차 회담 결렬 이후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핵무기,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폐기와 일맥상통한다. 검증의 구체적 방법이 포함된 것도 특징이다. 공동선언에는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비핵화 검증을 위해 상대 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 사찰을 실시하기로 돼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공동선언은 비핵화 범위가 구체적이고 검증 장치와 이행 기구까지 포함돼 있기에 미국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며 “이후 제네바 합의나 9·19 공동성명에는 비핵화 이행과 검증, 감시를 위한 상설 기구의 구성·운영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매력적인 부분은 대북제재 해제 등 경제적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대북제재 해제에 부정적인 미국 내 여론에 부응하면서 동시에 북한에는 ‘당신들이 합의해 서명한 공동선언 아니냐’며 완전한 비핵화를 압박할 명분으로 삼기에 맞춤한 카드일 수 있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000년대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은 전형적인 단계적 접근인데, 미국 내에선 북한이 성과만 가로채고 최종 단계에선 비핵화를 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이런 비판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 철수를 발표하고 한국 정부가 남한 내 핵무기 부재를 선언하면서 체결됐다. 체결 이후에는 한미가 팀스피릿 연습을 중지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이 그때처럼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 군사적 유화 조치는 물론 종전선언까지를 매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어 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를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역으로 ‘1992년 기준으로 하려면 대북제재를 완전히 해제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당시엔 대북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조 전 위원은 “미국은 비핵화 중간 과정에서 대북 제재를 완화·해제하면 되돌리기 어려워 협상 레버리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며 “군사적 유화 조치는 복구가 가능하니 중간 과정에서 이는 내줄 수 있지만, 제재 완화·해제는 비핵화가 많이 진전하거나 완료됐을 때 가능하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최 부원장은 “미국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실질적으로 이행 단계에 들어가면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결국 북한에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가져와라,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라고 압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너무 다른 남북 용어와 표현 곧바로 알려주는 ‘글동무’ 앱 아시나요?

    너무 다른 남북 용어와 표현 곧바로 알려주는 ‘글동무’ 앱 아시나요?

    보고들은 게 부족해 남북한 언어를 옮겨주는 어플리케이션 ‘글동무’가 있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 포털 사이트에 세 글자만 입력하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남한생활, 글동무학교에서 함께 해요’라고 설명을 붙인 앱 안내를 볼 수 있었다.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조금 더 쉽고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런 어플리케이션이 나와 있다는 것을 8일(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 방송은 북한 이탈 주민들을 3개월 동안 수용하며 정착금 등을 지원하고 남한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비정부 기구인 ‘Teach North Korean Refugees(TNKR)’은 도착한 지 얼마 안되는 북한 이탈 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더 빨리 적응하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알렸다. 더불어 ‘글동무’를 영어로는 유니보카(Univoca) 서비스로 옮기고, 일상적으로 남한에 살며 맞닥뜨리는 단어나 표현을 카메라에 담으면 이를 자동으로 북한 용어로 옮겨준다고 했다. 물론 북한 용어를 입력하면 남한 표현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남북이 공동으로는 2005년부터 겨레말 큰사전 편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용운 씨에 따르면 남과 북의 사전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21만개의 단어를 통합하는 작업은 물론, 새로운 단어와 표현 10만개까지 포괄하고 있다. 남과 북 사이에 긴장이 팽배할 때 중단된 적은 있지만 남쪽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80% 정도” 이뤄졌으며 앞으로 5년 더 작업하면 마무리가 되며 북쪽 역시 나름대로 진전되고 있다고 한씨는 전했다. BBC는 나아가 우리 겨례의 글 뿌리가 1592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한 뿌리를 두고 있어 통일 논의가 무르익을수록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금요칼럼] 하남 교산 신도시와 1500년 역사도시의 상생/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하남 교산 신도시와 1500년 역사도시의 상생/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하남시는 1989년 출범했지만, ‘BC 18년 백제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도읍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깊다. 학계는 하남 이성산성을 백제성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산성이라는 증거가 잇따랐다.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삼았던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남하했고, 이후 일대를 차지한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은 좀더 안전한 지금의 하남을 치소(治所)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신라는 664년 한산주, 670년 남한주, 757년 한주라 부르며 이 지역을 한강 유역 통치의 근거지로 삼았다. 고려는 940년 땅이름을 광주(廣州)로 바꾸었다. 그러니 옛 ‘경기도 광주땅’의 중심도 하남이었다. 지역의 대표 교육기관인 광주향교도 하남시에 남아 있다. 광주향교가 있는 이성산성 동쪽 교산동은 행정기관 밀집 지역이었다. 인구가 적지 않은 도시였을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 ‘1500년 역사도시’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과거 이 도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이다. 높이 288㎝의 압도적 크기에도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이 철불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규모와 수준의 불상이 조성됐다는 것은 걸맞은 세력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하사창동 철불은 광주향교에서 동남쪽 덕풍천 건너에 있는 천왕사터에서 옮겨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경주 황룡사와 맞먹는 규모로 추정되는 천왕사는 불교국가 신라가 한산주 주도(州都)에 조성한 대표 사찰이었다. 사창동(司倉洞)이라는 땅이름 역시 고려시대 이후 이곳에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광주향교와 천왕사터가 있는 교산동과 춘궁동 일원을 3기 신도시 건설 대상 지역의 하나로 공표했다. 하남 교산 신도시다. 신도시 계획 구역은 신라에서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한주 및 광주의 옛 읍치와 대부분 일치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의 입지를 보는 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구역에서 벌어진 그동안의 소규모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이후 역사의 흔적이 겹겹이 드러나곤 했다. 지역에서는 중요한 역사가 중첩되어 있는 문화유산 밀집 지역에 신도시를 세울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이 비등한다. 신도시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문화재 발굴조사 및 보존 과정에서 계획이 수정되고 입주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개인적으로 교산 신도시 건설을 반대하지 않는다. 지금 현장은 중소공장 및 주택의 난개발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최소한의 문화유산 보존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신도시 개발이 바람직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유구한 역사를 어느 정도는 되살릴 수 있다는 기대도 없지 않다. 정부는 설계를 먼저하고 구제발굴이 이어지는 기존 택지지구 개발 방식을 하남 교산에서는 포기하기 바란다. 지하에 문화재가 있건 말건 이리저리 줄을 그어 도시계획을 세운 뒤 형식적 발굴조사 이후 시늉뿐인 보존을 하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어디를 파도 문화유산이 무더기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교산지구다. 기존의 신도시 건설 방식으로도 입주는 크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예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우선하고 그 결과를 보고 신도시를 설계하는 개발 방식을 권하고 싶다. 발굴조사 결과 문화재 보존이 필요한 면적이 늘어나면 집 지을 땅은 다소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그럴수록 역사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신도시라면 걸맞은 분양가를 흔쾌히 감당할 입주자는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런 정도의 수준 높은 거주 여건을 갖춘 신도시라야 정부가 의도하는 ‘강남 대체’ 효과도 거둘 수 있는 것 아닐까.
  • 북한군 묘지를 관광지로 개발,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한군 묘지를 관광지로 개발, 어떻게 생각하세요

    국방부, 부지 교환 조건 묘역이관 협약 관리권은 파주시로… 토지 규모는 미정 상이군경회 “혈세로 조성… 사과 먼저” 道 “남북화해시대 역사교육의 장으로”경기도와 파주시가 6·25전쟁 전후 수습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공동묘지’를 관광지로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 감정에 맞지 않다’는 지적과 ‘평화와 화해의 시기에 의미 있다’는 반응이 엇갈린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관계자는 6일 “아무리 남북화해시대라지만 우리 부모·형제를 죽인 북한군들의 묘를 혈세를 들여 관광지로 만들려는 것은 국민 감정상 너무 이르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희중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파주지부장도 “북한은 천안함 폭침 등 무려 8만여건의 대남 도발과 50여만건에 달하는 휴전협정을 위반했다”면서 “북한의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군 묘지에는 전후 남한으로 침투했다가 사살된 무장간첩들 묘도 있다”며 목소리 높였다.북한군 묘역 부지와 경기도 부지를 맞교환하기로 한 방식에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있다. 묘지 관리비를 부담하는 데다 교환 부지까지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따르면 북한군 묘역 이관은 국방부에서 먼저 제안했는데 같은 값의 대토를 국방부에 제공하는 것은 ‘불리한 협약’이라는 지적이다. 북한군 묘역은 6099㎡에 이르며 인접한 군부대를 포함해 3만 7000㎡나 돼 수억원대 대토를 넘겨줘야 한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북한군 묘지를 접경지역 발전을 위한 평화와 화해의 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것이며,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법규·규정에 따라 시설 관리전환 및 부지교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이번 북한군 묘지 이관을 통해 평화 협력시대를 주도하는 데 뜻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 관계자는 “국립묘지를 제외한 묘지 관리권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어 유지 관리는 북한군 묘지의 관광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파주시가 하게 될 것”이라면서 “아직 토지 교환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아 정확한 예산은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6·25전쟁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1억원을 들여 오는 8월 ‘북한군 묘지 기념공간 기본계획’을 수립해 안내판 및 화장실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파주 적성면 답곡리에 있는 북한군 묘지는 국방부가 1996년 조성, 관리해 오고 있다. 2014년 중국군 유해 송환 후 최근 북한군 묘지로 이름을 바꿨으며 843구가 매장돼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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