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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자락에 터잡고 재력 키운 류씨 가문… ‘조선판 엘도라도’ 꿈꾸다

    지리산 자락에 터잡고 재력 키운 류씨 가문… ‘조선판 엘도라도’ 꿈꾸다

    1776년 음력 3월, 52년이나 왕위를 누렸던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했다. 양력 3월, 지구 반대편에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했고, 7월에는 미국의 독립선언이 있었다. 정조는 18세기 영정조 문예부흥의 꽃을 피웠고, 국부론은 자본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미국 독립선언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토대를 마련했다. 바로 그 해, 한반도 남쪽에선 한 지방 관료가 지리산 자락에 일생일대의 집을 지었다. 집의 이름은 ‘운조루’(雲鳥樓).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왔다고 하니 세계의 거대한 변화와 다소 동떨어진 소박한 꿈의 실현이었다.●금거북이 진흙에 들어간 ‘금구몰니’ 터에 자리 창건주 류이주(1726~1797)는 대구 태생으로 무과에 급제해 용천부사까지 역임한 고위 관료였다. 영남 양반인 그가 전라도 낙안군수를 지낼 당시 인근 구례 땅에서 명당 터를 발견하고 이곳에 정착할 뜻을 두었다 한다. 그는 소싯적부터 학문보다 사냥을 즐겼고, 관직은 주로 남한산성과 함흥성 공사 등 국영 건설업에 종사했다. 무신의 주임무는 국가 방위지만, 평화 시에는 산성 수축 등 건설 사업을 담당했다. 사냥은 땅을 읽는 능력을 개발하고, 건설업은 건축적 자신감을 키운다. 류이주는 자신의 두 능력을 활용해서 운조루를 창건한 것이다. 운조루가 자리 잡은 곳은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이다. 이 동네에는 3개의 진혈(眞穴) 터가 있다는데,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간 ‘금구몰니’, 지리산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 그리고 다섯 보물이 서로 모여 있는 ‘오보교취’의 땅이다. 운조루 창건 시 땅속에서 거북 모양의 돌이 출토되어 가보로 삼았으니, 금구몰니 혈을 운조루가 차지한 셈이다. 이후 이 집은 대를 더하며 재력을 키운 명문가가 되었으니 오미동은 풍수설을 입증한 대표적인 명당 마을이 됐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조선총독부 보고를 보면 20세기 초에 풍수적 목적으로 오미동에 이주한 가구가 100여호에 달했다.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나머지 두 곳의 진혈을 찾아온 이들이다. 운조루 류씨 가문의 당시 일기에 의하면 금환락지의 땅을 발견하고 집을 지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한 해에도 서넛이 됐다. 그러나 엘도라도의 꿈은 꿈일 뿐 대부분 몇 년 버티지 못하고 가산만 탕진한 채 다시 떠나갔다. 아직도 몇 개의 흔적은 남아 있다. 앞마을 샛뜸정은 둥그런 동네 윤곽을 가지고 있고, 환동 마을의 곡전재는 아예 담장이 동그란 모양이다. 서로 금환락지의 진혈이라 주장하듯, 가락지의 동그란 형태를 따라 집과 마을을 지은 까닭이다.●오미동가도에서 읽는 한옥의 정신 정말 류씨 가문이 쌓았던 막대한 부가 명당 때문이었을까? 가부를 묻지 말자. 풍수설이란 입증 불가능한 패러다임으로서 믿음의 문제이다. 오히려 250년간 이 집을 가꾸어 온 주인들의 성실한 노력에 주목하자. 5대주 류제양은 무려 70년 동안, 7대주 류형업은 40년간 일기를 써서 남겼다. 이들의 철저한 기록 정신은 건축에 대한 여러 도면도 남겨서 그동안의 건축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한옥으로서 이처럼 정확하고 지속적인 건축 기록은 거의 유일하다. 가장 주목할 것은 1800년대 초 작품으로 추정하는 ‘전라구례오미동가도’이다. A1 정도 크기에 초창기 운조루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인데, 건물 몇 칸을 제외하곤 지금의 모습과 놀랄 만큼 일치한다. 심지어 마당의 위성류(버드나무의 일종)까지도 그대로 그렸다. 이 그림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용이다. 집에 대한 주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어서, 이 한 장의 그림만으로 운조루와 조선시대 한옥의 중요한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한 집을 일컫는 ‘초가삼간’은 세 칸짜리 건물 한 채를 의미하며, 그 자체가 한 집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한옥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 여러 건물들이 모여 한 집을 이룬다. 이 그림에는 10채가 넘는 기와집들이 그려져 있다. 한 건물 안에 수십 호의 집이 있는 아파트와는 반대로 한옥이라는 건축은 여러 건물의 집합이다. 특히 건물들이 그려진 방식이 특이하다. 어떤 건물은 옆으로 자빠졌고, 또 어떤 것은 아예 뒤집혀졌다. 이런 그림의 방법을 ‘사면전개도법’이라 부를 수는 있지만, 그 전개되는 뭉텅이가 여럿인 것이 특이하다. 2~4동의 건물들은 하나의 마당을 향해 전개되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이 마당 소속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한옥의 중심은 비어 있는 마당이며, 건물들은 마당을 둘러싸기 위한 시설에 불과하다. 운조루의 경우 바깥사랑마당, 안사랑마당, 안마당, 책방마당, 곳간마당, 사당마당 등 적어도 6개의 마당이 중심을 이룬다. 담장 바깥 뒷산에 울창한 솔숲을 세워서 대문 앞에는 운치 있는 연못을 뒤집어 그렸다. 뒤 솔숲과 앞 연못은 운조루에 속하는 조경시설이라는 의미다. 담장은 소유권의 경계선이 아니라 집안의 마당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에 불과하다. 더 뒤쪽 멀리 지리산 노고단과 형제봉을, 멀리 앞으로는 섬진강과 그 건너 오봉산을 역시 뒤집어 그렸다. 이제 운조루는 뒤로 지리산부터 앞으로 섬진강까지 대자연을 소유하게 된다. 물론 법적 소유가 아니라 심리적 경관적 소유이다. 집 그림은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한옥의 자연관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집이란 결국 사람을 위한 환경물이다. 오미동가도에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서쪽 큰사랑 누마루에 남자 주인을, 동쪽 안사랑 누마루에 여자 주인을 그렸다. 두 인물은 조선시대 한옥이 갖는 내외 구별의 상징인 동시에 건물과 마당과 외부의 자연까지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천인합일의 주인공이다.●방부터 대문까지… 비어 있는 공간 사이 ‘흐름’ 한옥은 온돌과 마루를 한 지붕 아래에 가진 집이다. 따뜻한 온돌과 시원한 마루는 각기 겨울과 여름을 나기 위한 시설이다. 온돌방은 닫혀 있고, 마루 대청은 비어 있다. 또 대청 앞마당도 뒷마당도 대문간도 비어 있다. 이 비어 있는 공간들 사이에는 흐름이 생긴다. 문전옥답인 너른 귀만들부터 집 앞의 연못을 거쳐 개울을 건너 대문을 통하고, 마당과 대청이 서로 연결되고, 그 흐름은 뒤뜰을 거쳐 다시 뒷산으로 이어진다.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고, 건축과 인간이 일체가 된다. 비어 있는 마당은 모든 건축의 중심이며, 운조루 구성의 기본 틀이다. 이 집을 지을 당시 창건주인 류이주는 함흥, 상주, 용천 등 외지의 관직에 있었고, 실질적인 공사는 조카 류덕호가 맡았다. 그러나 류이주는 다년간의 국가 기반시설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운조루를 직접 설계했고, 류덕호는 그 설계를 충실히 따라 감리 역할을 했다. 류이주는 대지의 남쪽과 중앙에 긴 행랑을 직각으로 설계했다. 남쪽 행랑은 집의 안과 밖을 구별하며, 중앙 행랑은 남자와 여자의 영역을 구획한다. 남자 영역은 바깥사랑마당을 중심으로, 여자 영역은 안마당과 안사랑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주인들의 영역 뒤로는 나뭇간과 우물 등 작업 영역이 위치하고, 집의 동쪽 뒤 양지바른 곳에 사당을 두어 조상의 영역을 마련했다. 매우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설계였다. 이 집 곳곳에는 땅 위에 떠있는 누마루를 마련했고, 안채에는 아예 2층 다락인 층루들을 두었다. 이들은 마당을 내려 보고 먼 산의 경관을 바라보는 곳이다. 바깥의 경치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와 내 것으로 만드는, 이른바 ‘차경’을 위한 곳이다. 한옥의 앞마당에 정원을 가꾸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정원을 차경하기 위함이다. ‘오미동가도’ 주인 내외가 각자의 누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도 멀리 앞산의 차경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집 그림과도 같이 실제 운조루의 생활도 그처럼 평화롭고 풍요로웠을 것이다. 오미동의 형국을 하늘에서 떨어진 금가락지 모양이라 한다면, 그 정점에 위치한 운조루는 너른 풍요의 들판과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대부분 가산을 해체당하고, 해방 공간의 빨치산 전쟁으로 장손을 잃는 등 가문의 운세도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집의 문화재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수십 차례 도둑과 강도가 들어 가보를 비롯한 소장품들을 강탈해갔다. 그 중요한 ‘오미동가도’도 절취당해 복사본만 남아 있다. 천혜의 명당도 추악한 역사를 피해갈 수는 없는가. 언젠가 명당과 명가라는 공간의 힘이 현대사라는 시간적 질곡을 치유하고 극복할 날이 오리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붕당정치에 빠진 집권세력의 권력욕…‘사실’과 ‘사초’를 테러하다

    진실은 언제 어디서나 불편하다. 불편하기에 언제 어디서나 수난을 당한다.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방대한 왕조 실록을 남겼다. 실록 편찬의 기준도 엄정했다. 그 기준을 지키려다 조선 초 김종직은 부관참시를 당했고, 사관 김일손 등은 처형됐다.그렇다고 실록이 사실만을 기록하고 평가가 불편부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양대 왜란과 호란 이후 붕당정치로 빠져들면서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게 사실은 편집되고 평가는 왜곡됐다. 선조, 인조, 숙종, 경종의 실록이 잇따라 수정, 개수, 보정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원본을 남겨 ‘지우개를 쓰지 않은 역사’로 칭송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얼마나 테러를 당했는지 웅변할 따름이다. 국가의 정사인 실록이 그러했으니 민간의 기록에 대한 폭력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경기 광주시 낙생면 백헌 이경석의 묘로 들어가는 좁은 계곡 초입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다. 하나는 멀쩡하지만 다른 하나는 비문을 한 글자도 볼 수 없다(‘백비’). 백비는 조선 영조 30년에 세워졌다가 누군가에 의해 비문이 인멸된 채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0여년 만에 발굴해 다시 세운 것이고, 앞엣것은 1979년에 새로 세운 신도비다. 백헌의 손자 이하성은 1703년(숙종 29년) 결국 서계 박세당에게 할아버지의 신도비에 새길 글을 청했다.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같은 당파(소론)여서 ‘손이 안으로 굽었다’는 지적을 우려해 서계만은 피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노론의 세상에서 그의 청을 들어줄 사람이 달리 없었다.서계는 비문을 짓고 이 글을 자신의 문집인 ‘사변록’에 실었다. 삽시간에 소문이 돌았다. 홍계적 등 노론 유생 180여명이 벌떼처럼 일어나 연명으로 숙종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문자를 거두어 물과 불속에 던져 버리고, 성인을 헐뜯고 현인을 업신여긴 죄로 다스리어 선비의 취향을 바르게 하소서.” 사문난적으로 단죄하라는 것이다. 숙종은 외면할 수 없었다. “박세당이 작성한 이경석 신도문은 물론 박세당의 문집 ‘사변록’까지 모두 없애라.” 신도비 조성 작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맹자’를 인용한 신도문은 과연 서두부터 심상치 않았다. “노성인을 업신여기지 마라.” “상서롭지 못한 보복은 어진 사람을 가리는 법이다.” 마무리는 이러했다. “올빼미는 봉황과 성질이 달라 성내고 꾸짖는다. 불선자가 미워해도 군자가 무엇을 상관하랴.” ‘송자’라 하여 공자·주자를 잇는 성인으로 떠받들던 송시열이었다. 그런 송시열을 ‘올빼미’에 빗댔으니 노론 유생들이 좌시할 리 없었다. ‘올빼미’ 비유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경석은 송시열보다 12살 연장으로 김상헌 문하에서 수학했으니 골수 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서인이지만 인조반정 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산림’(청서파)을 적극적으로 중앙 정계에 천거했다. 송시열은 1633년 최명길의 천거에 의해 경릉 참봉이 됐고, 1649년 효종 즉위 직후 이경석의 추천으로 장령이 됐다. 송시열은 그런 이경석을 존경해 ‘베옷에 짚신을 신고’ 그의 문하를 왕래했다. 그러나 이경석에게 통혼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부터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현종 2년(1661년) 이경석이 남인인 고산 윤선도의 해배를 주장하면서 등을 돌리고 극언을 일삼았다. 이경석이 일흔네 살 때 현종이 궤장을 하사하면서 잔치를 베풀었다. 뜻깊은 자리였던지라 여러 사람이 전례에 따라 축하의 글을 남겼다. 병을 핑계로 참례하지 않았던 송시열도 마지못해 이런 글을 보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 오래 살고 건강하니(壽而康), …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수이강’(壽而康)에는 지독한 경멸이 숨겨져 있었다. 중국 송나라 흠종이 금나라에 붙잡혔을 때 항복 문서를 써 준 손적을 두고 주자가 ‘절의를 버린 대가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壽而康)’고 비꼰 것을 이경석에게 적용한 것이다. 송시열은 현종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그 뜻을 시시콜콜 알렸다. “옛날 손적이 오래 살고 강녕하기는 했지만, 그가 의리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도리어 손적 같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다면, 여러 사람이 얼마나 낮춰 보고 비웃었겠습니까. 지금 신이 당한 경우가 불행하게도 그와 같습니다.” 세론은 송시열에 비판적이었다. ‘양송’이라 하여 당시 서인의 논의를 이끌고, 그와 동문수학을 했던 동춘당 송준길마저 한탄했다. 송시열은 분노했다. “동춘까지도 ‘놀랍고 한탄스럽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사람(이경석)은 대체로 백성을 등치는 토호(향원)의 마음가짐으로 청의 세력을 끼는 것을 일생을 행세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 개도 그 똥을 먹지 않을 것이다.”(‘판서 송규렴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인이 다시 쓴 ‘현종개수실록’마저 그런 송시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인조의 명에 따라 삼전도 비문을 지은 것을 두고 그렇게 송시열이 언급했는데, 말이 너무 박절했으므로 논자들이 병통으로 여겼다.”병자호란이 끝나자 청은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를 세우고, 비문도 조선에서 쓰도록 했다. 예조판서, 대제학 등 조정의 책임 있는 자들은 모두 발을 뺐다. 이경전은 병을 핑계로 칩거했고, 조희일은 거칠게 작성해 퇴짜를 맞았으며, 장유는 일부러 고사를 잘못 인용해 제외됐다. 남은 건 이경석이었다. 왕위가 위태로운 인조는 애가 탔다. “사직의 존망이 여기에 달려 있으니 부디 문자에 구애받지 말라.” 부제학으로 나이로나 직위로나 이경석이 맡을 일은 아니었다. 남한산성 도피 시절 외교 문서 책임자인 예조판서 김상헌이 강화 문서 작성을 거부해 대신 작성해야 했던 최명길의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이경석은 그날의 일을 ‘수치를 등에 지고 백길 어천강에 뛰어들고 싶다’며 글을 배운 것을 후회했다. 비문 작성 후 거듭 사직을 요청했지만, 믿을 사람이 없는 인조는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이후 용렬한 자들이 뒤에서 삼전도비문 운운하며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지만, 자신이 감당할 몫이라고 여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황과 올빼미 비유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신도문 사달이 나고 62년이 흐른 뒤(영조 30년, 1765년)에야 비석에 글이 새겨졌다. 글씨는 당시 완도의 신지도에 유배돼 있었던 원교 이광사가 썼다. 이광사는 이경석의 형 이경직의 고손으로, 동국진체의 완성자였다. 신도비는 그러나 세워지자마자 수난을 당했다. 이번에도 노론 유생들이 비석을 쓰러트리고, 비면을 모조리 깎아 한 글자도 남기지 않았고, 분이 안 풀렸는지 비석을 아예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빛을 본 비석은 전신이 상처다. 글자 하나하나 연마석으로 갈고, 정으로 쪼았으니 성할 리 없었다. 마오쩌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짧다. 다른 총구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조선의 권력자들은 알고 있었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정당성에서 나오고, 그것은 사실(史實)에서 나온다는 것을. 조선 후기 노론이 필사적으로 사실을 장악하려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선 후기 150여년, 나아가 일제 병탄기와 해방 후에도 권세를 계속 누렸다. 민주공화정에서 사초 기록자는 언론이다. 독재 치하에서 필경사 구실이나 하던 족벌 언론은 민주화 이후 스스로 권력이 되기 위해 집요하게 사실에 폭력을 가했다. 요즘엔 사기꾼, 절도범, 부패 공직자, 노름꾼, 앵벌이, 정신질환 의심자까지 동원했다. 최근 1년 사이 UAE 특사 의혹, 드루킹 사건, 이재명 지사 ‘불륜’ 의혹,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 손혜원 투기와 ‘김혜교’ 의혹 등이 그런 방식으로 제작됐다. 택당 이식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면서 권력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나라가 있어도 역사가 없으면 나라가 아니요, 역사가 있어도 공정치 못하면 역사가 아니다.” 권력에 도취한 자들에게 들릴 리 만무다. 사이비 기자까지 동원해 사실과 인격을 테러한 ‘홍가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어도 해당 매체의 더러운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남한산성 한복 입고 가면 입장·주차 ‘무료’

    남한산성 한복 입고 가면 입장·주차 ‘무료’

    한복을 입고 남한산성을 방문하면 행궁 무료입장에 이어 주차장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경기도는 세계유산 남한산성 활용안의 일환으로 오는 2월 1일부터 ‘한복 입으면 남한산성 행궁, 주차장 무료’ 운영을 실시한다고 27일 밝혔다. 도는 그동안 한복을 입은 입장객에 한해 행궁 입장료를 면제했는데 2월부터는 주차시설 사용료까지 면제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행궁입장료는 2000원이며 주차시설은 평일 3000원ㆍ주말 5000원이다. 주차시설 사용료 면제의 경우 차량 내 한복 착용자가 1인 이상인 경우 가능하고, 두루마기만 걸쳐선 안 되며 상·하의 모두 한복일 때 인정된다. 이는 문화재청의 경복궁 한복 착용자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다. 최병길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소장은 “경복궁이나 전주 한옥마을처럼 남한산성에서도 한복을 입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며 “남한산성 세계유산을 활용한 문화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 시책을 꾸준히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신동헌 광주시장 읍면동 방문 현장 행정

    신동헌 광주시장 읍면동 방문 현장 행정

    경기 광주시는 신동헌 시장이 새해를 맞아 23일 관내 읍·면·동을 방문, 시정 현안에 대해 업무보고를 받고 지역주민과의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신 시장은 오포읍과 광남동, 초월읍을 차례로 방문해 민선 7기 주요시정 정책인 ‘시민 중심, 생활밀착형 현장 행정’을 펼쳤다. 신 시장은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신 시장은 “이번 새해 방문을 통해 지역의 현안사항 및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처리할 수 있는 시민 중심의 책임 행정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올해는 민선 7기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한 중요한 시점인 만큼 주요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신 시장은 24일 도척면, 곤지암읍, 경안동 25일 퇴촌면, 남종면, 남한산성면, 송정동 순으로 새해 읍·면·동 방문을 진행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광주시 관광캐릭터 ‘깡두리’ 개발

    광주시 관광캐릭터 ‘깡두리’ 개발

    경기 광주시가 대표 관광지인 남한산성을 소재로 한 캐릭터 ‘깡두리’를 개발해 공개했다. 시는 광주의 친근한 발음을 따라 관광캐릭터 이름으로 ‘깡두리’라는 네이밍을 붙였으며 기본형 캐릭터 이외에도 응용형 캐릭터, 엠블럼, 시그니쳐 등 100여종의 이미지를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깡두리의 기본형 캐릭터는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성곽 모양의 머리와 배에는 성문 모양을 형상화해 아이템 주머니, 블랙스크린 역할 등을 한다. 시는 2019년 캐릭터 홍보사업으로 캐릭터 조형물 설치, 관광기념품 제작 등 홍모매체를 통해 대내외 홍보에 나서며 광주시를 대표하는 관광캐릭터로 자리매김 시킬 예정이다. 또한, 상표·특허 등록을 추진해 광주시 관광캐릭터로서의 독점적 권리를 부여받을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이번 관광캐릭터 개발을 통해 지역관광 활성화를 기대한다”며 “외부 관광객들의 유입을 도모해 타 지역과의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남한산성에서 해를 보라… 황금돼지 복을 품어라

    농악단 길놀이·한시 낭독·민속공연 떡국 3000인분 장만 ‘행복한 충만’ 경기 광주시는 ‘제1회 남한산성 수어장대 해맞이 한마당’을 새해 1월 1일 마련한다고 26일 밝혔다. 남한산성 해맞이추진위원회와 성남민족예술인총연합이 공동 주최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를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 지금까진 광주 지역이면서도 성남 민간단체가 일출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신동헌 광주시장과 은수미 성남시장도 참석한다. 참가자들은 전통공원에 집결한 후 광지원농악단 길놀이 장단에 맞춰 행사장으로 이동한다. 1부 수어장대 공연에선 한시 낭독, 성악·가요 공연 등 새벽 동틀녘 분위기에 맞게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해오름을 감상하고 희망을 담은 구호를 함께 외친다. 2부 전통공원 행사에선 사물놀이, 판소리, 버꾸놀이 등 흥겨운 민속공연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남한산성 상인회와 산성리 마을주민 등이 떡국 3000인분과 지역 특산 막걸리 등 음식도 장만한다. 이 밖에 ‘소원지 작성 부스’와 ‘황금돼지 포토존’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해 추억을 선물한다. 신 시장은 “세계문화유산이자 호국 성지인 남한산성을 널리 알리고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하는 수도권 대표 해맞이 행사로 발전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인 1624년 남한산성과 함께 지은 2층 목조건물로 수어청 장군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4개가 있었으며 이곳만 남아 있다. 수어청은 어영청 훈련도감 금위영 총융청과 함께 임금이 계신 한양을 방어하는 중앙 5대 군영(軍營)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3기 신도시 입지 살펴보니

    정부가 ‘9·13 종합부동산 대책’을 통해 예고했던 3기 신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각각의 입지와 장단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이번에 신규 지정된 경기도 남양주와 하남, 과천, 인천 계양 등에 대해 알아봤다. 먼저 신도시의 면적은 경기도 남양주가 1134만㎡, 하남은 649만㎡, 인천 계양은 335만㎡ 순이고, 경기도 과천이 155만㎡ 규모로 가장 작다. 이번에 선정된 3기 대규모 신도시 택지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서울과 거리가 약 2㎞로 인접해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6만 6000가구가 공급되는 남양주 왕숙에 국토부는 대심도광역철도(GTX) B노선 역사를 건설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자족용지 약 140만㎡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판교 제1테크노밸리의 2배 수준이다. 자족용지에는 도시첨단산단, 기업지원허브를 조성해 기업을 유치한다. 폭 130m 왕숙천과 연계해 수변복합문화마을, 에너지자족마을을 조성한다. 또 문화예술마을, 청년문화공간도 추가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6만 6000가구라는 공급이 부담스럽지만, GTX와 별내선 연장 등은 호재”라면서 “장기적으로보면 다산신도시도 교통인프라가 개선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분석했다. 하남 교산(649만㎡)에는 3만2000가구가 공급되며 자족용지 내 기업지원허브, 청년창업주택 등이 배치된다. 국토부는 중부고속도로로 인해 단절된 남북생활권을 만남의 광장 입체 복합개발을 통해 효율적 도시공간을 창출할 계획이다. 남한산성 등 문화재와 연계한 한옥마을과 백제문화박물관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1만7000가구가 공급되는 인천계양 테크노 밸리(335만㎡)는 가용면적의 절반이 자족용지로 조성된다. 가족용지 3분의 2를 도시첨단산단으로 중복 지정하고 기업지원허보 스타트업캠퍼스, 창업지원주택 등을 통해 기업을 유치할 방침이다. 7000가구가 들어서는 과천은 서울대공원 등과 연계한 복합쇼핑테마파크가 지어진다. 또 GTX-C 노선의 착공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번에 선정된 지역들이 대부분 동쪽에 위치해 서울 강남의 수요를 분산하는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늘어난 도심권 수요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사 관계자는 “남양주 왕숙이 강북에 있지만, 도심 출퇴근이 쉽지 않은 위� 굡窄庸� “오히려 서울 동쪽의 잠실이나 강남 접근성이 좋아 도심 수요보다 강남 수요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회 서대문(안산 아랫동네)편이 지난 15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영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대문역 8번 출구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통술집~석교교회~영천시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서대문역사공원에서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해설을 통해 엄혹했던 경성교도소(서대문형무소) 시절 행해졌던 옥살이와 옥바라지의 고통을 되새겼다. 자락길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 안산 아랫동네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내려다봤다.서대문(돈의문)은 행정적으로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하는 성 밖 십리지역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행정지리학적으로 사대문 안 새문안과 진배없는 특수지역이기도 했다. 서울~개성~평양~의주를 오가는 조선 제1대로인 의주대로와 영은문·모화관 그리고 경기감영의 존재가 조선 수도 한성부 서대문 도시 공간의 핵심 코드이다. 서대문은 1915년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궤도 부설로 말미암아 강제 철거될 때까지 종각~남대문 간 남북대로와 함께 동대문~서대문 간 동서대로의 종착점이었다. 의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조선 초(1393년)부터 수원으로 옮겨간 1896년까지 경기감영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1번 국도는 중국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연행로(燕行路) 혹은 사행로(使行路)라는 별칭이 따랐다. 조선 제일의 무역로이기도 했다.영천시장 앞 석교교회 앞은 말 그대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6개의 다리 중 북쪽에서 첫 번째 다리가 석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1967년 복개 이전까지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를 잇는 의주로를 끼고 무악천이 철철 흘렀다. 다리의 남쪽은 교남동, 북쪽은 교북동이었다. 무악천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욱천(旭川)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으면서 본명을 잃었고 지금은 만초천이라고 불린다. 기봉·기산·봉우재·봉화뚝·모악산·무악재 같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졌던 무악산 또한 길마재의 한자표기인 안산(鞍山)으로 개명됐다. 무악은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움푹하므로 길마(소에 짐을 실을 때 그 등에 얹는 기구)와 같다 해 길마재라고 불렸다. 안산이란 말의 안장같이 생긴 산이란 뜻이다. 무악(毋岳)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는 풍수지리상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달래려고 ‘어미의 산’이란 뜻에서 모악(母岳)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악이라는 신령스런 지명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나라를 잃은 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어쨌거나 안산에 오르려면 지하철 무악재역에서 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지명현실이다.무악과 인왕산은 북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唐)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라면서 외침 때마다 지키지도 못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는 왕조를 비판했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은 오늘의 인천처럼 서울을 드나드는 제일 관문이었다. 반송방은 고려 남경 때부터 소반처럼 생긴 반송(盤松)이 많아서 붙은 지명이다. 서지(西池)라는 학교운동장만 한 큰 연못이 지금의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를 반송지, 반송정, 천연정이라고도 지칭했다. 정조는 국도팔영(國都八詠), 서거정은 한성십경(漢城十景)에 속하는 명소로 꼽았다. 도성대지도,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서대문 밖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1407년 태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고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다. 연못 자리에는 개화기 일본 공사관(청수관)과 죽첨공립소학교(동명여중)가 들어섰다. 하필이면 경기감영을 한성부 관할 지역인 반송방에 뒀을까. 경기감영의 설치 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기도를 다스리는 경기관찰사는 반송방에 본영, 영평(포천)에 신영을 두고 왕래하면서 업무를 봤다. 지금도 수원에 경기도청, 의정부에 경기 제2청(경기북부청)을 따로 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수도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으므로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때문이다. 김종서 장군의 집이 서대문 밖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행이 일흔 살 노장군의 집에서 철퇴를 휘둘러 즉사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다. 왕에게 반역을 고하려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기감영과 사대문을 장악한 한명회의 수하들이 서대문과 남대문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수양은 다음날 새벽 자객을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방원에 의해 척살당한 정도전의 수송동 집이 마구간으로 변한 것처럼 김종서의 서대문 집은 여행객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고마청으로 둔갑했다. 역사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지만 김종서의 집이 사대문 안에 있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노릇이다.경기감영 터는 1896년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903년 한성부 청사, 죽첨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을 거쳐 경성적십자병원(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는 독특한 장소 변화를 겪었다. 또 서부 경찰분서, 경성감옥 분감, 경성측후소(서울기상청) 등도 들어서 이후 변화상을 예감케 한다. 사대주의의 상징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어내는 대신 독립관과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본의 자본과 부추김에 의해 세워진 독립문과 독립관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현저동이란 말 그대로 고개(峴) 아래(底) 동네를 말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이 이어지는 무악재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1975년 대통령령에 따라 현저동 절반이 종로구로 편입돼 의주로 동쪽 인왕산 자락은 무악동으로 바뀌었다. 의주로를 중심으로 안산 쪽은 서대문구, 인왕산 쪽은 종로구로 각각 나뉜 것이다. 서대문 밖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점유주체가 바뀌면서 공간의 이력도 덩달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이 많았던 인왕산 아래 대로변 평동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빈민층이 스며들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전차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가지고 수첩을 꺼내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박경리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파는 일…”이라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린 영천시장을 그렸다. 현저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현저동 달동네의 각박한 삶이 절절히 펼쳐진다. “여기가 서울이야?” 나의 한 섞인 물음에 엄마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서울의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가 이담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우리도 그때 가선 버젓이 문안에 살아 보자꾸나.”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일시: 12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집결장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일자리·교통 갖춘 ‘자족도시’로… 1·2기 신도시 단점 보완

    일자리·교통 갖춘 ‘자족도시’로… 1·2기 신도시 단점 보완

    3기 4곳 택지 면적 위례신도시의 3.4배 1기는 집값 잡았지만 ‘베드타운’ 꼬리표 2기는 극심한 교통난에 미분양 부작용 인프라·교통 등 고질적 문제 해결 위해 정부·지자체 입안 단계부터 함께 설계 도시첨단산단·벤처기업시설 등 들어서정부가 3기 신도시 입지로 선정한 경기 남양주와 하남, 인천 계양 등은 서울과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사이에 있다. 정부는 3기 신도시 입주에 불편이 없도록 조기에 광역교통망을 마련하는 한편 각종 인프라 시설을 설치해 ‘베드타운’이 아닌 ‘자족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국토교통부가 19일 발표한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 방안’에 따르면 100만㎡ 이상 4곳과 중소규모 37곳 등 총 41곳의 택지에서 주택 15만 5000가구가 공급된다. 남양주(1134만㎡)와 하남(649㎡), 인천 계양(335만㎡), 과천(155만㎡) 등에서 공급되는 규모는 12만 2000가구다. 이들 4곳의 면적을 합치면 위례신도시의 3.4배(2273만㎡)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신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2기 신도시를 지정한 이후 15년 만이다. 분당, 일산 등에 조성된 1기 신도시는 집값 잡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업무시설과 인프라가 부족해 ‘베드타운’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김포, 파주, 판교, 위례 등에 지어진 2기 신도시는 광역교통망이 미흡해 극심한 교통난에 시달렸다. 또 서울과 멀어 입지가 좋지 않은 일부 지역은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정부는 서울 경계로부터 3기 신도시까지의 거리가 2㎞라는 점에서 1기 신도시(서울과 5㎞)나 2기 신도시(10㎞)보다 접근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또 교통 환경 개선과 일자리 창출, 보육 등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 방침이다. 3기 신도시마저 ‘베드타운’으로 전락하지 않게 자족 기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동안 대규모 택지개발의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됐던 교통과 일자리, 육아·문화 인프라 등의 계획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입안 단계부터 함께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벤처기업시설이나 도시형공장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도시지원시설용지를 기존보다 2배 이상 높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택용지의 3분의2 수준에 자족기능을 위한 벤처기업시설, 소프트웨어진흥시설, 도시형공장 등이 들어선다. 또 임대료가 시세의 20~60% 수준인 기업지원허브를 조성해 스타트업 등을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유치원을 100% 국공립으로 설치하고 도서관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강화한다. 우선 남양주 진접·진건읍, 양정동 일대에 조성되는 남양주 왕숙지구에는 도시첨단산단(29㎡), 기업지원허브가 들어선다. 이를 위해 판교 제1테크노밸리의 2배에 달하는 자족용지(140만㎡)를 확보하고 입주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준다. 하남 천현동, 교산동 등지에 조성되는 하남 교산지구에도 기업지원허브, 청년창업주택 등을 배치한다. 남한산성 등 문화재와 연계한 한옥마을과 백제문화박물관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인천 신도시 위치는 계양구 귤현동·동양동 일대로 스타트업캠퍼스, 창업지원주택 등이 조성된다. 과천에서는 과천동·주암동 일대 과천지구가 택지로 지정됐으며 서울대공원 등과 연계한 복합쇼핑테마파크가 지어진다. 국토부는 이들 택지 후보지가 대부분 훼손되거나 보존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토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3기 신도시 지구지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2021년에는 주택 공급을 시작하는데, 이때까지 교통망이 개선돼 있지 않으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신도시 후보지는 대부분 서울외곽고속도에 걸쳐 있거나 외곽에 있다. 이에 국토부는 지구지정 제안 단계부터 광역교통대책을 수립해 교통대책 추진을 2년 앞당길 방침이다. 대·중규모 택지는 주민공람을 시작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심의를 거쳐 내년 하반기에 지구지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9·13 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총 30만호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9월 21일 3만 5000호 공급 계획을 제시했다. 이날 15만 5000호 입지를 발표한 데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남은 11만호의 추가 공급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 장관은 “2차 공급계획에 포함된 지역 가운데 과열이 발생하거나 확산될 우려가 있는 곳은 규제지역으로 신속히 지정해 대출, 세제, 전매제한 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무능·교활한 사대부의 폭력, 여인들을 권력 유지의 제물로 삼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무능·교활한 사대부의 폭력, 여인들을 권력 유지의 제물로 삼다

    6월에 6·25전쟁을 떠올린다면 12월엔 병자호란을 기억하자. 자진한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염하(강화도와 김포반도 사이를 흐르는 한강 하구)를 하얗게 덮었다는 그 겨울,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저희의 아내요 어머니요 딸인 이 땅의 여인들을 주검으로 내몬 저 사대부 권력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교활과 폭력을 돌아보자.강화도는 무능한 권력자들에게 천혜의 도피처였다. 13세기 고려말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무신정권은 강화도에서 38년간 간 피란살이를 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인조는 강화도에 콕 박혀 40일 가까이 버텼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판단 잘못으로 남한산성으로 도주했지만, 도착한 다음날 새벽 강화도로 탈출을 시도했다. 12월 14, 15일의 일이었다. 인조보다 한나절 빨리 나선 탓에 강화도로 갈 수 있었던 세자빈과 왕실 가족 행렬 뒤로는 수많은 권세가의 가족들이 줄을 이었다. 영의정 김류는 아들(경징)을 안찰사로 삼아 왕실을 호종하면서 처첩, 며느리, 손녀 등을 딸려 보냈다. 강화 유수 장신은 우의정 장유의 동생이었다. 척화 및 주전론을 이끈 김상헌의 형 김상용도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들어갔다. 그러나 무능 앞에선 천혜의 요새도 무용지물이었다. 1월 22일 새벽 청군은 특별한 저항 없이 갑곶 등에 상륙했고 불과 반나절 만에 강화성을 함락했다. 김경징과 장신은 사직과 왕실을 내팽개치고 나룻배로 도망쳤다. 함락된 강화도 여인들의 운명은 참혹했다. 적의 칼에 찔려 죽으면 다행이었다. 지아비나 아들로부터 자결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엔 참상의 일부가 나온다. 윤선거 아내는 스스로 목을 맸다. 이돈오의 아내 김씨는 시어머니 동서와 함께 목을 찔렀다. 이호선의 아내는 토굴에 숨어 있다가 불을 질러도 나오지 않고 그대로 불에 타 죽었다. 유인립의 아내는 끝까지 버티다 꼿꼿하게 선 채로 죽었다…. 김경징이 도망간 뒤 남겨진 여인들은 남자들의 강요로 자살했다고 한다. 정선흥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아내를 꾸짖어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자결토록 했다. ‘연려실기술’은 이렇게 부연했다. “염하엔 빠져 죽은 여인들의 머릿수건이 마치 연못물에 떠 있는 낙엽이 바람을 따라 떠다니는 것 같았다고 사람들은 애도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인 잔혹사의 시작일 뿐이었다. 병자호란 때 청의 수도 심양으로 끌려간 피로인은 추정치로 대략 50만~60만명. 당시 조선 인구가 1000만여명이었으니, ‘온 나라 백성 중 태반이 연루돼 있’었다. 여인은 20만여명.청은 인질로 끌고 왔지만 너무 많아 부담스러웠다. 청 태종은 이듬해 속환을 지시했다. 사대부 권력자들이 사람을 놓아 흥정했다. 좌의정 이성구는 아들의 속환가로 1500냥을 내놓았고, 영의정 김류는 첩과 딸 속환가로 1000냥을 내놓았다. 조선인 몸값은 수십, 수백 배 뛰었다. 정묘호란 당시 속환가는 남자 닷 냥, 여자 석 냥 정도였다. 아무리 지체가 높은 양반이라도 열 냥을 넘지 않았다. 서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인질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심양일기’에 이런 이야기를 실었다. ‘한 어머니가 딸을 속환하려고 200냥까지는 어찌어찌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청나라 사람은 300냥을 불렀고, 다시 250냥으로 낮췄지만 그다음부터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아는 딸은 자신의 몸값으로 말미암아 부모님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고는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했다.’ 보다 못해 최명길이 심양으로 가 청 태종과 담판을 했다. 돌아올 때는 3만여명의 조선인이 그와 함께 귀향했다. 그즈음 조정에서는 해괴한 논의가 벌어졌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인조편 1938년 3월 11일자. 봉림대군의 장인 장유와 전 승지 한이겸이 상소문을 동시에 올렸다. 장유는 “며느리가 속환되어 왔는데 조상의 제사를 차마 받들 수 없으니 외아들이 이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고 한이겸은 “딸이 어렵사리 속환되어 왔는데 사위가 딸을 버리겠다고 하니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조정의 논의는 “이미 정절을 잃어 대의가 끊겼으니 억지로 결합하게 할 수 없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최명길이 나섰다. “나라가 힘이 있었던들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었으리까. 만약 이혼해도 된다는 명이 있게 되면 허다한 부녀자들은 영원히 이역의 귀신이 될 것입니다.”임진왜란 때도 있었던 논란이었다. 선조는 이항복 등 중신의 뜻에 따라 전쟁 중 인질로 붙들려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부인들을 내쫓지 못하게 했다. 인조는 최명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물러설 사대부가 아니었다. 실록 5월 1일자. 부제학 이경여, 교리 심동구·성이성, 수찬 최유해가 상소문을 올렸다. “어찌 강제로 다시 결합하게 하여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비록 일제히 이혼하게 하는 것은 불가하더라도 재취하거나 그대로 데리고 살거나 하는 것은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이 자유의사지 실은 한 가정의 며느리요 아내요 어미를 멋대로 내치는 것을 합법화하라는 것이었다. 패륜이 ‘사대부의 가풍’이었다. 인조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경연 자리에서 특진관 조문수가 다시 꺼냈다. “돌아온 여자들은 남편의 집안과 대의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어찌 다시 억지로 합해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조선을 동방패륜지국으로 만들면서도, 입술엔 동방예의지국을 올렸다. 6월 13일 사헌부와 예조가 문제를 제기했다. “정절을 잃은 부인에게 어찌 부모를 섬기고 제사를 받들며 대를 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성구가 이들을 거들었고, 최명길이 반론을 펴자 우의정 신경진이 반박했다. 인조는 잘라 말했다. “선조 때의 사례에 따르도록 하라.” 이른바 ‘대의’와 ‘절의’는 주전파 사대부가 전쟁으로 나라를 거덜 내고도 권력을 쥘 수 있는 유일한 핑계. 1640년 9월 22일 회심의 카드를 내밀었다. 장유의 부인이 낸 상소문이었다. “(내 며느리가) 타고난 성질이 못되어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또 편치 않은 사정이 있으니, 이혼시켜 주기를 청합니다.” 인조는 흔들렸다. 자신의 안사돈(봉림대군의 장모)이 칠거지악까지 들고 나온 데다 주변엔 최명길 같은 신하도 없었다. “특별히 그의 소청만 윤허하니 이 일을 관례로 삼지 말라.” 장유의 아들에게만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대부들은 돌아온 부인과 며느리를 버리기 시작했다. 병자호란 이후 10년간 돌아온 여인은 2만 5000여명에서 5만여명(추정치). 사대부들의 생떼가 빗발치자 인조는 인질이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홍제천을 회절강으로 삼았다. 환향녀가 그곳에서 몸을 씻으면 정절을 되찾은 것으로 간주해 내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회절강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1649년 ‘북벌’의 기치와 함께 주전파를 중용한 효종이 즉위했다. 효종은 즉시 환향녀 소박을 자유화했다. 평민 가정에서도 며느리를 내치기 시작했다. 환향녀에 대한 손가락질은 집안에서 시작돼 동네로 번졌다. 환향녀의 이에 빨간 칠, 까만 칠을 해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없도록 한 마을도 있었다. 집안의 환향녀는 들보에 목을 매거나, 칼로 손목을 그었다. 내쳐진 여인들은 회절강에 몸을 던졌다. 홍제천 모래내엔 여인들의 주검이 하얗게 널려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간 여인이 1만여명에 이르렀다나? 죽지 못한 이들은 서대문 밖에서 술과 몸을 팔았다. 청국 사람들과 심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도 있었다. ‘환향녀’의 참극은 사대부 주전론자들의 행운이었다. 전쟁 책임론을 덮고, 대의명분 논쟁의 주도권과 함께 권력도 쥘 수 있었다. 그 손끝에서 나온 실록의 ‘역사’는 예컨대 이러했다. “아, 백년 동안 내려온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리고, 삼한을 들어 오랑캐로 만든 자가 최명길이다. 통분을 금할 수 있겠는가.” “(장유는) 조정에서는 명신이었고, 임금의 장인이었으며, 공훈은 마원과 등애를 능가하고 문장은 한유와 구양수를 앞질렀다.” 흑백을 바꿨다. 대명천지에. 논설고문 kbc@seoul.co.kr
  • 100억대 대작은 ‘쓴맛’… 신선한 발상은 ‘단맛’

    100억대 대작은 ‘쓴맛’… 신선한 발상은 ‘단맛’

    올해 영화계는 ‘반전’이라는 키워드가 수놓은 한 해였다. 100억원이 훌쩍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한국 대작 영화들이 기대와 달리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쓴맛을 봤다. 반면 신선한 아이디어와 의외의 화제성으로 깜짝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도 눈에 띄었다.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의 반짝이는 작품들이 국내외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 해 동안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영화계를 돌아본다.●내년에도 계속되는 할리우드 영화 공습 올해도 시리즈물이 단연 강세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통계에 따르면 ‘신과 함께-인과 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신과 함께-죄와 벌’, ‘쥬라기월드: 폴른 킹덤’, ‘앤트맨과 와스프, ‘블랙 팬서’ 등 올해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시리즈 영화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승원 CGV 리서치센터장은 “외화의 경우 지난 11월 기준 프랜차이즈물의 비중이 2013년 38%에서 올해 62%로 크게 증가했다”면서 “한국에서 지난 10년간 마블 영화를 본 누적 관객 수가 지난 7월 1억명을 돌파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시리즈 영화에서 흥행 공식을 찾는 흐름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은 내년 라인업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드래곤 길들이기3’,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킹스맨3’, ‘맨 인 블랙4’, ‘토이스토리4’, ‘겨울왕국2’ 등이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투자·제작사 입장에서 시리즈물을 선호하는 것은 인기가 입증된 작품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작품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안정을 추구한 만큼 전체적인 영화 시장이 확대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11월 말 기준, 작년에 비해 올해 누적 관객수가 155만여명 정도 부족한데 딱 영화 1편 관객수에 해당하는 수치”라면서 “매달 한 편 이상씩 보는 헤비 유저들이 한 번씩 더 볼만한 영화와 1년에 4편 정도 보는 라이트 유저들을 한 번 더 극장으로 불러들일 만한 작품이 없었던 까닭에 시장이 확장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흥행 패턴 바꾼 ‘보헤미안 랩소디’ 입소문의 힘은 역시 컸다. 대표적으로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 ‘퀸치광이’, ‘퀸뽕 맞았다’ 등의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전국을 ‘퀸’ 열풍으로 물들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꼽을 수 있다. 지난 10월 31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처음엔 40~50대로부터 호응을 얻더니 점점 20~30대로 번지며 영화 시장에 이례적인 활기를 불어넣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 인기와 여러 번 관람하는 N차 관람 문화를 이끌며 누적 관객수 700만명을 돌파했다. 국내 역대 음악영화 흥행 1위 기록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민자와 성소수자라는 이중의 약자였던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공감한 관객들이 큰 위로를 얻었던 영화”라면서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예매율 상위권을 기록 중인 데다 장기 상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영화의 흥행 패턴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서치’는 기발한 기획으로 관객 295만여명을 불러들이며 깜짝 흥행했다. 실종된 딸을 찾아나선 아버지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컴퓨터 화면과 폐쇄회로(CC)TV, 휴대전화 화면으로만 이어 가는 독특한 설정으로 눈길을 모았다. 식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커플들이 전화, 문자, 이메일 등 휴대전화 내용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완벽한 타인’(이재규 감독) 역시 522만명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정신병원으로 공포체험을 떠난 7인의 이야기를 그린 정범식 감독의 공포영화 ‘곤지암’(267만명)은 10~20대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역대 공포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별로 없더라 추석 극장가에 나란히 등판했던 120억~200억원대 대작 영화들은 쓴맛을 봤다. ‘물괴’, ‘명당’, ‘안시성’, ‘협상’이 같은 시기에 개봉하면서 극장가를 찾은 관객수는 증가했으나 한정된 관객수를 나눠 가진 탓에 내실을 챙기지 못했다. ‘안시성’만 관객 543만 8066명을 불러 모으며 손익분기점(541만명)을 간신히 넘었다. 김 분석가는 대작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게 큰 돈을 한번에 쓴 경험이 영화계에서 많지 않았다”면서 “단순히 흥행에 실패했다기보다 투자배급사들이 영화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고 외화에 경쟁력 있게 맞설 수 있는 경험치를 쌓았던 기회”라고 평가했다. ●대작 사이에서 빛난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 올해는 신인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지난 3월 개봉한 전고운 감독의 데뷔작 ‘소공녀’는 집은 없지만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이솜)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6만여명을 불러 모으며 독립영화로서는 큰 흥행을 거뒀다.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 차성덕 감독의 ‘영주’ 역시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은 이 영화의 마니아층을 가리키는 ‘쓰백러’들의 남다른 애정으로 시선을 모았다.●해외에서 호평받은 한국 영화의 힘 이창동 감독이 ‘시’(2010)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주목받은 ‘버닝’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화제를 모았다. 본상 수상은 실패했지만 칸영화제 기술 부문 최고상에 해당하는 벌칸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았다. ‘남한산성’의 김지용 촬영감독은 세계 유일의 촬영감독 대상 영화제인 ‘에너가 카메리마주’에서 최고상인 황금개구리상을 수상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박찬욱 감독이 영국 BBC 6부작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것을 비롯해 올해는 한국 영화계의 문화적 잠재력과 가능성이 크게 돋보였던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광주 남한산성문화제 경기관광 대표축제로 선정

    광주 남한산성문화제 경기관광 대표축제로 선정

    경기 광주시는 7일 ‘광주남한산성문화제’가 2019 경기관광대표 축제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경기관광대표 축제는 시·군에서 주최하는 축제 가운데 관광 상품성이 크고 경쟁력 있는 축제에 대해 경기도를 대표하는 축제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남한산성문화제는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광주의 브랜드를 높이는 광주의 대표축제로 2019 경기관광대표 축제에 선정됨에 따라 도비 지원 6000만원를 지원 받고, 경기도 후원 명칭사용, 축제장 방문객의 휴대전화 사용 분석 등 빅데이터 분석, 홍보마케팅 등 다양한 혜택 받게 된다. 지난 10월 12일부터 3일간 남한산성 도립공원에서 열린 23회 남한산성문화제는 행궁, 연무관, 인화관 등 산성 내 유적지를 활용해 총 6개 마당으로 테마별 행사를 구성했으며 축제 장소를 남한산성 전역으로 확장했다. 또한 남한산성의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를 접목한 신규 역사 킬러 콘텐츠 발굴과 성곽투어마당, 세계체험 마당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통해 프로그램 관람객 만족도를 제고하는데 초점을 맞춰 추진해 2019 경기관광 대표 축제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뤘다. 신동헌 시장은 “광주 남한산성문화제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축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것”이라며 “교통과 안전관리 등 운영상 미비점을 보완해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대우건설, 은행주공 ‘조경특화’로 힐링 단지 조성 밝혀

    대우건설, 은행주공 ‘조경특화’로 힐링 단지 조성 밝혀

    대우건설이 현재 진행 중인 은행주공 재건축을 수주하면서 이 아파트 단지를 조경에 특화된 힐링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대우건설은 은행주공 재건축 아파트에 2.2km의 숲 길 ‘빅 포레스트 웨이’(Big Forest Way)를 비롯해 산성 풍경길에서 남한산성의 정취를 느끼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조경을 특화할 계획이다. 또 너럭바위 계곡 경관을 재현한 남한산 계곡에서 진정한 대자연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다. ‘피카 인 네이쳐 가든’에서는 인피니티 풀을 선보인다. 도심에서 누리는 북유럽 감성은 물론 여유로운 리조트 리빙이 펼쳐질 전망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2.5km 사계절 순환산책로 ‘휘게 엘리’와 시간과 날씨에 상관없는 아이들을 위한 회랑길 ‘키즈 코리도’도 갖출 예정이다. 조경 전문회사 청우개발의 장재원 대표는 “조경이 아파트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차별화 요소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며 “조경이 잘 갖춰진 아파트는 고급 주거단지라는 인식이 있어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고 아파트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은행주공은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일대 15만1803㎡에 자리잡은 단지로 23개동 1900가구 1차, 3개동 110가구 규모 2차 등 총 2010가구 규모다. 조합은 재건축을 통해 이 곳을 지하 3층, 지상 최고 30층, 39개동, 3327가구 규모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시공사 선정은 12월 2일 조합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주시, 오는 4일 수험생을 위한 ‘수능over GO3 스웩 페스타’ 개최

    경기 광주시는 내달 4일 청소년수련관 체육관에서 ‘수능OVER GO3 스웩 페스타’ 행사를 개최한다고 29일 밝혔다. 시와 남한산성취고수악대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수능 수험생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관내 고등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펼치는 ‘랩 배틀 경연대회’와 ‘청소년 동아리 공연’이 포함된 참여형 축제로 꾸며진다. 또한, R&B가수, 힙합가수, 락킹댄스팀 초청공연과 DJ클럽파티가 예정돼 있다. 공연은 수험생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랩 배틀 경연대회 참가는 인터넷(http://c11.kr/4tch)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수험생들의 스트레스가 성적 발표일 전날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오는 4일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며 고등학생들의 문화적 취향을 감안해 힙합을 주제로 기획한 행사인 만큼 많은 수험생들이 보고 듣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가요광장’ 노을 강균성X전우성, 60분 꽉 채운 ‘꿀잼 수다’

    ‘가요광장’ 노을 강균성X전우성, 60분 꽉 채운 ‘꿀잼 수다’

    그룹 노을의 강균성, 전우성이 라디오에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과 함께 반전 매력을 선보여 화제다. 노을의 강균성, 전우성이 오늘(21일) 방송된 KBS Cool FM ‘이수지의 가요광장’에 스폐셜 게스트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DJ 이수지와 함께 출연한 가수 나비와 막강한 꿀 케미와 남다른 입담을 자랑하며 60분 동안 쉴 틈 없이 청취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날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된 방송에서 오랜만에 두 사람과 조우한 DJ 이수지는 “신곡 ‘너는 어땠을까’로 돌아온 노을이다”라며, 전우성에게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 동안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는지” 묻자, “딱히 관리를 하는 것 아니지만 아이를 보면 저절로 힘이 난다고” 답했다. 이에 강균성은 “옆에서 봤을 때 그 에너지가 느껴진다”라며 공감을 표했다. 이어 전우성은 신곡 ‘너는 어땠을까’에서 가장 고음 부분인 ‘그 많은 말들과 너의 온기가’의 소절을 불러달라는 요청에 망설이지 않고 사이다 같은 시원한 고음을 뽐내며 좌중들을 감탄케했다. 이수지는 “역시 노을이다”라며 전우성의 고음 부분을 따라하며 노을의 명품 가창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다.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노래 가사를 상황극으로 표현해 제목을 맞추는 ‘가사의 재구성’ 코너에 함께했다. 강균성은 안정된 목소리와 연기톤으로 나비와 함께 가사와 완벽히 일치하는 상황극을 만들어내 청취자의 마음을 빼앗었다. 전우성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로봇연기로 어색하게 상황극을 마치며 “연기가 너무 쉬웠다”라며 셀프 디스를 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노을의 ‘그리워 그리워’로 정답이 밝혀지자 청취자들은 “노을의 ‘그리워 그리워’를 들으며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먹으며 혼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타국 생활을 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한참 울었다”라고 일제히 노래에 대한 사연을 전했다. 이에 강균성은 “’그리워 그리워’는 시련 시즌에 들으면 좋은 노래일 것 같다. ‘미안해 미안해’라는 노래를 내야 할 것 같다”며 노을의 노래를 사랑해주는 청취자에게 감사함을 보내며 강균성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특히 ‘그리워 그리워’를 라이브로 짤막하게 선보이며 명품 가창력을 뽐낸 두 사람은 상황극 때와는 달리 180도 다른 반전매력을 뽐내며 청취자를 사로잡았다. 이어 콘서트 소식을 알린 강균성은 “전국 투어를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4개 도시만 돌게 됐다. 대구를 벌써 다녀왔고 남은 도시도 열심히 준비 중이다. 오는 12월 8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라며 좌중의 기대감을 증폭 시켰다.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은 “오늘 역대급 꿀잼 라디오! 두 멤버 덕분에 점심시간 힐링하고 갑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크게 웃다가 사장님한테 혼이 났다 노을 짱짱!”, “이번 신곡 ‘너는 어땠을까’ 너무 좋다!”, “노을 네 멤버 완전체로 ‘가요광장’ 한 번 더 나와주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전했다. 한편 노을은 오는 12월 8일 저녁 6시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아트홀 대극장에서 전국투어 콘서트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조류도감 ‘성남의 새’ 환경부 우수도서에 선정

    경기 성남시는 조류도감 ‘성남의 새’가 환경부가 뽑는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됐다고 21일 밝혔다.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환경교육 우수자 시상식 및 북 콘서트’에서 성남시는 환경부 장관이 주는 우수환경도서 선정증을 받았다 우수환경도서는 모두 100권이 선정돼 현장에 전시됐다. 지자체 중에서는 성남시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성남의 새’는 1985년부터 2016년까지 학술조사 기록과 환경영향평가서, 신문 기사, 남한산성 생태연구회, 성남시 자연환경 모니터 등을 통해 관찰된 조류 224종을 텃새, 여름 철새, 겨울 철새로 나눠 수록했다. A4 크기의 500쪽 분량이며, 비매품으로 2000부를 출간했다. 시는 전국 도서관, 지자체 등 1404곳에 배부했다. 에코성남 홈페이지(www.eco.seongnam.go.kr)를 통해 전자책(e-book)으로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성남의 새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성남에서 확인된 조류를 수록한 소중한 책”이라며 “자연의 소중함과 지역 생태환경 보호에 관한 인식을 확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성남시 내년도 예산 3조48억원 편성

    경기 성남시는 3조48억원 규모의 2019년도 예산안을 편성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 본예산 3조14억원보다 34억원(0.11%) 늘었다.시는 21일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한다 일반회계는 2조741억원, 특별회계는 9307억원을 편성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아동수당, 무상급식, 성남벤처펀드 조성 등 시민 생활과 경제 활성화에 중점을 둬 편성했다. 분야별로 사회복지 분야에 일반회계의 42.4%인 8801억원을 배정했다. 사회복지 예산이 쓰일 사업은 아동수당 617억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지원 20억원, 산업단지 재직 청년교통비 지원 19억원 등이다. 교육 분야는 802억원 예산을 편성했다. 유치원·초·중·고교생 무상급식비 지원 414억원, 교육환경개선사업비 110억원, 중·고등학생 무상 교복 지원비 35억원 등을 투입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업 분야에는 839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시흥동 판교 제2테크노밸리 내 기업 입주 건물인 성남글로벌ICT융합플래닛 건립비 259억원, 수진동 수정커뮤니티센터 건립비 180억원, 성남벤처펀드 조성비 16억원 등이 포함됐다. 교통 분야는 1799억원을 배정했다. 남한산성 순환도로확장공사 100억원, 이배재로 확장공사 67억원, 백현동 공영주차장 건립비 52억원이 각각 편성됐다. 내년 예산은 다음 달 18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확정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광주시, 찾아가는 열린시장실 성황

    광주시, 찾아가는 열린시장실 성황

    경기 광주시는 7일 남한산성면 검복리 마을회관에서 ‘찾아가는 열린시장실’을 열었다. 열린시장실은 민선7기를 맞아 지역 현안사항 및 주요민원에 대해 시장이 직접 민원현장을 방문해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신동헌 시장은 검복리 주민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경안 공공하수처리장 증설사업 현장, 경기광주시육아종합지원센터, 농산물직거래 장터 등 지역의 주요현장을 방문해 지역주민의 생활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종합적인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신 시장은 “찾아가는 열린시장실 운영을 통해 청취한 다양한 시민 의견들을 모아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하고 검토해 시민과 함께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시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한사랑 심경, 대종상 대리수상의 전말 “미칠 것 같았다”

    한사랑 심경, 대종상 대리수상의 전말 “미칠 것 같았다”

    대종상영화제 대리수상으로 논란이 됐던 가수 한사랑이 심경을 밝혔다. 30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는 제55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대리수상 논란에 휩싸인 배우 겸 가수 한사랑이 출연했다. 이날 한사랑은 “대종상 수상 이후 미칠 거 같더라. 나를 이상한 여자로 몰아가니까.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한 간부가 시상식 당일 연락이 와서 부탁했다”면서 “그래서 ‘제가 해도 괜찮아요?’라고 물으니까 별 일 없이 상만 받고 오면 된다고 부탁한다고 하더라”고 자신이 대리 수상을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지난 22일 한사랑은 대종상 시상식에서 영화 ‘남한산성’ 류이치 사카모토 감독 대신 음악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관계자가 아닌 트로트 가수가 대리 시상을 한 것에 대해 정식 대리 수상자가 아닌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사랑은 또 “상을 받으신 일본 작곡가와 영화 ‘남한산성’인 것도 정확히 몰랐다. 올라가서 소감도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더라. (그런데) 소감을 시켜서 그래서 ‘축하드립니다’라고 말씀 드렸다”고 덧붙였다. 대종상 주최 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측은 후보 당사자에게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제작사 쪽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연합회 산하 각 협회에 문의해 대리수상자를 추천받았다고 설명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미쓰백’ 한지민, ‘런던동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 “25일 개막”

    ‘미쓰백’ 한지민, ‘런던동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 “25일 개막”

    ‘미쓰백’ 한지민이 제4회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소식을 전했다.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은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백상아’가 세상에 내몰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참혹한 세상과 맞서게 되는 감성드라마. 관객들의 뜨거운 입소문 열풍에 힘입어 개봉 3주차 장기 흥행에 돌입한 영화 ‘미쓰백’의 한지민이 제38회 영평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제4회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미쓰백’에서 한지민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파격적인 비주얼과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로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호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언론과 평단, 관객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지민이 한국을 넘어 해외 평단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이목을 집중시킨다. 한지민은 현지 시각으로 25일 열리는 런던 동아시아 화제 개막식에 참석,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다. 또한 현지 시각으로 27일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뷰 시네마 런던에서 저녁 7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현지 관객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다. 2016년 출범한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는 런던 내 주요 극장에서 개최되며, 아시아 거장들의 걸작부터 신진 감독들의 수작까지 두루 갖춘 풍성한 라인업을 선보이며 유럽을 대표하는 아시아 영화제로서 주목받고 있다.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이 초청된 오프닝 갈라 부문은 런던 동아시아 영화제의 포문을 알리는 부문으로, 지난해에는 ‘남한산성’, 2016년에는 ‘밀정’ 등 국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들이 초청된 바 있다. ‘암수살인’은 오는 25일 1,700석 규모의 레스터 스퀘어 오데온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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