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편 은퇴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순창군수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 가전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바이오 산업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 구속영장
    2026-04-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41
  • [토요영화]

    [토요영화]

    ●디 아더스(MBC 밤 12시) 1940년대 영국의 외딴 대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포 스릴러. 마지막 10분의 반전이 압권이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하고 전남편 톰 크루즈가 기획에 참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오픈 유어 아이즈’의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첫번째 영어권 영화로, 연출뿐 아니라 음악·각본도 맡았다. 니콜 키드먼과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호평 받았으며 미술과 무대세트, 음향효과 등도 수준급. 제목에서 보듯 내가 아닌, 집안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리하는 묘미가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1년 전 남편이 전쟁에 참전한 뒤 소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레이스(니콜 키드먼 분)는 아픈 두 아이를 데리고 영국 남부해안의 아름다운 저택으로 이사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은 하루종일 어두운 집안에서 살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 저택을 찾아온 밀즈 부인 일행을 하인으로 고용한 뒤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피아노가 저절로 연주되는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딸이 누군가가 집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하면서 그레이스는 집안에 자신들 외에 다른 존재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모든 것이 밝혀지는 전율의 마지막 10분, 걷잡을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2001년,104분. ●어쌔신(SBS 오후 11시55분) 은퇴를 결심한 최고의 베테랑 암살자와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그를 노리는 젊은 살인자, 이들 사이에 끼어든 해커의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다룬 액션 스릴러. 형사 액션물의 대가인 리처드 도너 감독이 암살자들의 한판 게임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렸다. 택시안의 결투장면 등 액션이 볼거리이지만 단순히 액션에 머무르지 않고 인물의 내면세계를 통해 암살자의 고독을 그려낸다. 인터넷과 해커, 카체이스 등 현대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투입되지만 ‘대부’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회상장면 등이 과거와 조화를 이룬다. 암살계 1인자 래스(실베스터 스텔론 분)는 ‘죽음의 게임’에서 손을 떼고 싶다. 프리랜서들이 날뛰고 책임감과 법칙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 야심만만한 암살자 베인(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은 죽음의 게임에 대한 탐욕을 키운다. 자신이 암살자 전통의 후계자라고 믿으며, 래스를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정보세계의 도둑 엘렉트라(줄리안 무어 분)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다가 래스와 만나 재생의 기회를 잡는다. 래스와 엘렉트라가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때 베인은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이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래스는 호락호락하지 않는데….1995년,132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두산그룹 (1)-박용곤 명예회장 형제

    박용만(50) 두산그룹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친인 박두병 초대 회장의 가르침을 예로 들며 “두산에는 파벌이 딱 하나 있는 데 그게 두산파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계기로 가진 만남이었지만 박 부회장의 ‘집안 자랑’은 가풍과 장자를 중심으로 한 단결력, 비즈니스 패밀리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가족간의 인화가 두산이 109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도 두산가(家)를 우애깊은 형제지간으로 꼽는다.‘돈 앞에 추한 꼴’을 적잖이 보인 재계 가문이 많았던 탓인지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이라는 두산가만의 독특한 가풍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이 그렇게 자랑했던 화목한 집안이 요즘은 쪼개져 살벌하다. 차남 박용오 회장의 퇴진과 3남 박용성 회장의 추대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동생들의 쿠데타’와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으로 각각 주장되며, 양측의 진실공방 싸움이 한창이다. 수년간 쌓여온 형제간 갈등이 이제야 곪아 터졌다는 것이 두산가 안팎의 지적이다. 피붙이가 등을 돌리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비리를 저지른 동생과 조카를 잡아가라.”와 “가문에서 빼버리겠다.”로 상징되는 이번 분쟁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로 귀결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09년 전통의 두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오너가의 집단 사법처리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행보에 큰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하던 두산으로서는 호사다마가 아닐 수 없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우연히 그룹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마주쳤지만, 급히 자리를 떴다.6개월 전 당당했던 그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어제의 두산과 오늘의 두산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보여줬다. ●‘박승직상점’이 그룹의 모태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인 두산이 1일 창립 109돌을 맞았다. 보름 전만 해도 ‘잔치’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쏙 들어갔다. 두산 창업주 고 박승직씨는 1896년 서울 종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승직상점’을 열고, 두산그룹의 기초를 닦았다. 등짐 장사와 면포상, 보부상 등 밑바닥 생활 15년 만에 마련한 가게였다. 이후 박 창업주는 포목상으로 대성공,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 불렸다.1906년에는 중추원 의관과 정3품에 승서되는 등 이미 거상으로서 황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박 창업주는 1905년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인 광장을,1907년에는 국내 최초의 무역회사인 공익사 설립에 참여했다.33년에는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와 함께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 두산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소화기린맥주는 일본 기린맥주의 국내 생산공장이다. 박 창업주는 해방 후 새롭게 출발하는 수송사업을 위해 장남인 두병의 이름 첫 자인 말두(斗)자와 묏산(山)자를 붙여 ‘두산’이란 새 상호를 짓는다.‘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올려 재화가 산같이 커져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박가분과 정정숙 여사 여느 재벌가와 마찬가지로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도 바깥 활동이 잦지 않다. 내조와 자녀교육이 최우선 순위다. 이는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며느리 고르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남인 용곤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박 초대 회장의 안테나에 맏딸 용언씨의 친구인 이응숙(작고)씨가 잡혔다. 다소곳하고 참해 마음이 끌렸다. 박 초대 회장은 지프를 타고 한동안 이씨를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낙점했다고 한다. 가족간 인화에 며느리가 중요하다는 박 초대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초대 회장의 모친인 정정숙 여사와 그의 아내 명계춘(92) 여사는 내조뿐 아니라 남편들 못지 않은 사업수완을 발휘, 여장부로 통했다. 국내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朴家粉)’은 사실상 정 여사의 작품이다. 정 여사는 1915년 부업 삼아 분기술자 3명을 고용, 재래식 화장분을 근대적으로 포장 판매했다. 처음엔 면포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던 미끼 상품이었다가 여성 반응이 의외로 좋아 박승직상점의 어엿한 거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정 여사는 국내 최초로 화장품 신문 광고를 하기도 했다. 박가분 광고 내용은 이렇다 “죽은 깨와 여드름이 없어지며, 얼굴에 잔티가 없이 피부가 윤택하고, 고아지게 하는 박가분” 박두병 두산 초대 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도 중고 미제 승용차와 일제 트럭 등을 구입해 한때 운수업을 벌였다.‘남자는 보다 큰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신 떠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훗날 두산상회의 토대가 됐다. ●귀하게 얻은 늦둥이 박 창업주는 1910년 딸만 여섯을 두다가 첫 아들을 얻었다. 박두병 초대 두산 회장이다. 박 창업주의 나이 46세로 늦게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후에 우병과 기병, 규병 등이 태어났지만 우병을 빼고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래서 그런지 박 창업주의 자식 교육은 별났다고 한다. 두산가에서 인화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박 창업주가 장남에게 들려준 ‘지붕에 소 올리기’다. 가장의 터무니없는 지시도 가족이 믿고 따라야 집안이 화목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은 4대째 내려오는 두산가의 좌우명이다. 박 초대 회장은 경성중을 거쳐 1932년 경성고상을 졸업한 뒤,1931년 대지주인 명태순의 딸 계춘씨와 결혼했다. 이어 조선은행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박승직상점에서 본격적인 2세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는 해방 후 동양맥주를 인수해 두산그룹의 토대를 쌓았다.60년대 들어 한양식품(코카콜라·환타 제조)과 윤한공업사(현 두산메카텍), 동산토건(현 두산산업개발) 등을 설립했으며, 한국병유리(현 두산테크팩)를 인수하며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대했다. ●두산 1번은 용곤 명예회장 두산가의 위계질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장유유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장자인 박용곤(73) 명예회장은 여전히 ‘두산의 1번’이다. 전화번호도 ‘1∼2번’을 쓴다. 이어 용오(68) 전 회장(3∼4번), 용성(65) 회장(5∼6번), 용만(50) 부회장(7∼8번) 순이다. 그래서 이번 ‘형제의 난’은 다른 그룹의 경영권 분쟁보다 상처가 유난히 깊어 보인다.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우애가 좋던 형제가 어쩌다가….”라며 허탈해 했다. 두산가는 사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까지 재계에서 형제간 최고의 화음을 자랑했다. 이는 박 초대 회장의 철저한 자식 교육에서 비롯됐다. 박 초대 회장은 형제간 말썽이 나면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장자를 혼냈다고 한다. 동생들을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자를 중심으로 형제들이 자연스럽게 뭉칠 수 있도록 했다. 인화와 관련된 박 초대 회장의 이야기는 지금도 입에 오른다.“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 그러자면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고, 지아비는 화하고, 지어미는 순해야 한다. 이럴 때 한 푼의 재산이 없어도 그 가정은 언제나 평화스럽다.” 박 부회장의 설명이다.“부친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미풍양속 차원에서 권장할 일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만들어지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거죠.” 두산가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을 갖는다. 명계춘 여사를 중심으로 3대(3∼5세)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친목과 화합을 다진다. ●“남의 눈치밥 먹어봐야….” 두산가는 기업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자녀 교육도 독특한 전통이 있다. 박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이 들려준 부친의 자식 교육은 이렇다.“우선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은행 근무를 적극 권했습니다. 또 최강대국인 미국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꼭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용곤 명예회장이 일본을 강조해 일본어 공부가 추가로 들어갔죠.” 이같은 방침에 따라 용곤 회장은 한국은행, 용성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용만 부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각각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6형제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두산가는 경영수업도 다른 재벌가와 차이가 있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모든 계열사를 거치게 한다. 또 30대 초반에 계열사에 배치해 평균 1∼2년에 한번씩 승진시킨다. 4세도 예외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4세 중 장자인 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4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일본 기린맥주에서, 차남인 박지원(40)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미국 매켄에릭슨에서 근무했다. 용오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원(41) ㈜전신전자 대표는 미국 코닥에서, 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용현(62)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인 박태원(36) ㈜네오플럭스 상무는 효성에서 시작했다. ●“정략 결혼은 피하라”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두산가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정·관계 집안과 직접적인 사돈 관계가 없다. 대부분 평범한 집안과 통혼했으며, 간혹 재계 집안이 눈에 띈다.“자녀 혼사에 정략 관계를 두지 마라.”는 박 창업주의 당부를 후손들이 잘 지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박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구자철 한성 회장의 딸 원희(26)씨 결혼은 두산가에서 눈길을 끌 만한 혼사였다. 구 회장은 범 LG가로 구태회 LS 명예회장의 4남이자,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이 때문에 박 부회장은 집안의 첫 경사였지만 ‘재벌가 정략 결혼’이라는 시선 탓에 다소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부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기생으로 양가가 예전부터 서로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원씨와 원희씨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미국에서 공부하다 관계가 급진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모두 6남1녀를 뒀다. 장녀 용언(72)씨는 당시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7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변호사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검 검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차남 용오 회장은 1962년 미국에서 만난 최금숙(작고)씨와 결혼했으며,3남 용성 회장은 66년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인 영희(62)씨와 혼례를 올렸다.4남인 박용현 서울의대 교수는 68년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작고)씨와 인연을 맺었다. 5남 용만 부회장은 바깥에 잘 알려진 집안으로 장가갔다. 당시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그의 장인이다. 박 부회장은 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신애(50)씨와 혼례를 치렀다. 그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생으로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6남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딸인 상의(45)씨와 인연을 맺었다. golders@seoul.co.kr ■ 박두병 초대회장등 3명 상의 회장 역임 두산그룹과 대한상의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두산이 재계에서 최고(最古)의 기업이라면 상의도 경제5단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단체(1884년 한성상업회의소 설립)다. 두산그룹 회장은 묘하게도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54년 공식 출범한 이후 배출한 회장은 12명. 이 가운데 두산그룹 회장 출신은 무려 3명이나 된다. 고 박두병 초대 두산그룹 회장이 1967∼73년 상의의 회장을 맡았다. 전문경영인 가운데 재계 최초로 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수창 전 두산 회장도 1980년부터 88년까지 상의 수장을 역임했다. 박용성 현 두산 회장도 2000년 이후 상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상의의 반백년 역사 가운데 총 20년을 두산측에서 집권한 셈이다. 특히 대(代)를 이어 경제단체의 수장을 맡은 곳은 두산 박씨가(家)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4세에서도 상의 회장이 나올지 주목된다.30년간 상의에서 근무한 전 임원은 박두병-용성 부자에 대해 “성격 급하고, 타성에 젖은 일들을 뒤집어 버리는 게 꼭 붕어빵”이라고 했다. 사실 두산과 상의의 인연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가 1906년부터 5년간 상의의 전신인 경성상업회의소 상의원으로 활동했다. 무려 3대가 상의와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용성 현 회장은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역대 회장 가운데 상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으로 출근한 첫 날 기자들에게 던진 첫 말이 이렇다고 한다.“예산 규모나 회원사 수, 단체의 역사로 보면 상의가 국내 경제5단체 중 맨 앞인데 왜 항상 전경련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이냐. 앞으로 경제단체를 소개할 때는 상의를 맨 앞에 써라. 가나다 순으로 해도 상의가 전경련보다 앞이 아니냐, 또 우리는 법에 의한 단체고 나머지는 임의 단체로 사단법인으로 해서 승인 받은 데가 아니냐.”고. 그러나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으로 박 회장의 향후 행보가 그다지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golders@seoul.co.kr ■ 3·4세 MBA출신 많아… 며느리는 ‘이화의 딸’ ‘가방 끈’이 긴 두산가문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는 당연히 따야 할 자격증처럼 보인다. 없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다. 오너 집안인 데다 미국 유학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만큼 3세 ‘용’자 돌림과 4세 ‘원’자 돌림 대부분은 경영학을 전공했다.3세 가운데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다만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뉴욕대를 나왔다. 3세 가운데 MBA 학위를 딴 사람은 3남인 박용성 두산 회장과 5남 박용만 그룹 부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박 부회장은 보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4세로 넘어가면 MBA는 그야말로 흔하디 흔하다.‘원’자 돌림 15명 가운데 박용곤 회장의 장녀인 박혜원 ㈜두산 잡지BU 상무를 뺀 9명이 MBA 학위를 갖고 있다. 또 박 부회장의 장남 박서원씨 등 학업중인 4세가 5명이나 돼 앞으로 MBA 학위 소지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집안에 MBA 출신이 많다 보니 동문들도 적지 않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숙부인 박용만 부회장은 보스턴대 MBA 출신이다. 또 박 회장과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박석원 두산중공업 차장, 박용현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장남 박태원 네오플럭스 상무 등 6명은 모두 뉴욕대 MBA 동문들이다. 이밖에 박 교수의 차남인 박형원 ㈜두산 식품BG 차장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이며, 박인원 ㈜두산 전자BG 과장은 하버드대 MBA 학위를 땄다. 반면 며느리들은 ‘이화의 딸’들이 많다. 서미경(박경원 전신전자 대표 부인·고대 신문방송학과)씨와 이상의(박용욱 이생 회장 부인·한양대 기악과)씨를 빼면 대부분 이대 동문들이다. 맏며느리인 고 이응숙씨를 비롯해 김영희(셋째 며느리), 고 엄명자(넷째 며느리), 김소영(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부인), 서지원(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 부인), 정윤주(박중원 전 두산산업개발 상무 부인)씨 등 두산가의 3,4세 며느리들은 이대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박지원 부사장과 부인은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안방극장 ‘미시 파워’ 살아날까

    안방극장 ‘미시 파워’ 살아날까

    ‘미시 바람 다시 거세지나.’ 요즘 안방 극장은 노처녀 한 사람으로 천하통일됐다.MBC 수목 미니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이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 초 드라마 흐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미시 파워’는 한풀 꺾였지만, 하희라가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여자 연기자에게 결혼과 출산은 인기 하락 또는 은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다. 결혼 후 더욱 인기 몰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이른 나이에 과감히 결혼을 선택하는 이도 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SBS ‘불량주부’의 신애라와 ‘봄날’의 고현정,KBS ‘부모님 전상서’의 김희애와 ‘해신’의 채시라 등이 안방 극장을 차례차례 점령하며 ‘미시 연기자의 힘’을 과시했다. 최근 들어 SBS ‘패션70s’의 이요원과 ‘돌아온 싱글’의 김지호,KBS ‘슬픔이여 안녕’의 오연수,MBC ‘변호사들’의 정혜영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여세를 몰아갈 듯했으나, 메가톤급 ‘김삼순 태풍’에 휩쓸려 주춤한 상태. 결혼 이후 3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김지호는 ‘김삼순’과의 맞대결에서 가장 쓰라린 경험을 맛봤다.‘돌아온 싱글’의 시청률이 한자릿수를 맴돌고 있고,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조기종영된다. 또 억척스러운 이혼녀라는 다소 코믹한 연기 변신이 ‘오버’라는 혹평이 나올 정도로 타격이 크다. ‘김삼순’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요원이 가장 선전하고 있고, 오연수와 정혜영의 새로운 연기 도전도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해 ‘두번째 프러포즈’로 변신에 성공한 오연수는 이번에는 노처녀 커리어우먼이자 로맨티스트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임신 상태에서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정혜영도 이전의 깍쟁이 스타일에서 벗어나 연착륙하고 있다. 하희라가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해 나선다. 15일부터 시작하는 SBS 금요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에 출연한다.2년 반 만의 연속극 복귀다. 대부분 미시 연기자 복귀 작품이 그랬듯, 그도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예정이어서 기대된다. 그동안 하희라가 맡았던 캐릭터는 사랑에 울거나,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게 대부분. 이번 역은 결혼 10년차 주부 명해강. 못된 인물은 아니지만, 과장되게 표현하면 남편을 손에 쥐고 흔드는 도도한 모습을 지닌다. 지성과 능력, 빼어난 외모에다 재벌가 외동딸이라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아내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드라마 설정상 코믹 연기도 곁들여진다. 드라마 주 시청자라고 하는 30∼40대 주부들에게 통쾌함을 던져줄 수도 있다. 반면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요즘 일부 여자들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는 성준기 프로듀서의 말처럼, 일부에서는 반발을 살 수 있음직하다. 하희라는 “처음에는 내게 맡는 역이 아닌 것 같아 거절했다.”면서 “이번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이 수긍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게 숙제”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당신, 이야기(베트콩 습격으로 한진직원 5명 사망) 들었소? 내 두말도 안하겠소! 우리 운전수들 군인 출신이오. 방어용으로만 할 테니 M16을 지급해 주시오.”(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너 미쳤냐? 어떻게 민간인에게 군대 소총을 나눠주라는 거야.”(찰스 마이어 꾸이년지구 사령관) “돈 벌러 와서 죽을 수는 없지, 우리도 방어는 해야 할 거 아냐.”(조 전 부회장) “미스터 조, 이건 사이공 사령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과 나만 아는 일이오, 알겠소?그리고 절대 먼저 쏘지 마시오.”(마이어 사령관)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자서전에서 밝힌 이 대화는 한진이 사지인 베트남 정글에서 어떻게 달러를 벌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해방둥이’ 한진이 ‘수송보국’의 길을 걸은 지 60년. 이런 피와 땀들이 모여 오늘날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상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라잡이’에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서있었다. 길이 있는 곳에 ‘한(韓)민족의 전진(進)’, 한진이 있다며 전장으로, 바다로, 하늘로, 수송 외길을 걸어온 고 조 회장.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23개 계열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5대양 6대주에서 한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전장에서 성장한 한진 “형님이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갈 때입니다. 돈 될 만한 사업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중훈 형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꾸이년지역의 풍경에서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냈습니다. 항만을 보니, 화물이 꽉 찬 배가 50척이 몰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것만 본 것이 아니라 배들이 짐을 실은 채 마냥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형님은 갑자기 창문에서 휙 돌아앉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고 합디다. 다른 사장들이 쳐다볼까 싶어 큰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조 전 부회장은 한진의 베트남사업 첫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의 화물수송사업은 전후방이 없었던 베트남에서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빗발치는 전장을 오가며, 뚝심과 오기로 밀어붙였다. 베트콩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직원들이 공포에 떨 때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직접 수송 차량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런 고생끝에 주어진 과실은 너무나 달콤했다. 한진이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무려 1억 5000만달러.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한 가용외화가 5000만달러 남짓이었으니, 한진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진은 베트남 특수로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고 조 회장은 67년 7월 자본금 2억원으로 대진해운을 설립했고, 그해 9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동양화재를 5억 7000만원에 인수했다. 또 68년 2월에는 한국공항,8월에는 건설회사인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을 세웠다. 이어 인하대학교도 인수했다. ●부실기업 대한항공공사 인수 고 조 회장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이자 도전을 맞이한다. 다름아닌 항공사업이었다. “청와대로부터 호출이 왔었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내용이었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비서실장,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만년 적자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독촉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형한테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도 불안해서 저도 형님과 같이 청와대에 따라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게 소망이라는데 형님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조 전 부회장) 고 조 회장은 결국 69년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항공공사는 당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했지만, 전체 좌석수는 점보기 1대보다 적었다. 또 27억원의 부채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은 ‘베트남에서 목숨 걸고 번 돈을 부실 항공사에 모두 쏟아붓게 됐다.’며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국제선 개척으로 이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36년 후 대한항공은 화물수송 세계 1위, 보유 항공기 113대, 매출 7조 2000억원(지난해)이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에겐 은퇴란 없다” 트럭 한 대로 국내 최대의 운수그룹을 일군 고 조 회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지 않고, 현장을 챙길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정열적인 경영자였다. 그가 모언론 인터뷰에서 “창업주에게 은퇴란 없다.”고 한 말은 그의 성격과 일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 조 회장은 또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문어발식’ 확장도 자제했다.‘낚싯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업을 하기보다 수송 전문화에 더 집중했다. 주변에서 ‘돈 버는’ 무역회사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고 조 회장은 그때마다 “우리가 무역회사를 하면 많은 무역회사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텐데 그들이 우리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화물을 맡기겠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1920년 부친 조명희옹과 모친 태천즙 여사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뚝딱거리고 어질러 놓기를 좋아했던 둘째아들에게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 조 회장은 45년 광복 직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설립, 수송 외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만 고만하던 한진상사가 두각을 낸 것은 56년 미군부대 화물 수송을 맡으면서다. 이때 맺은 미군과의 인연은 한진 성장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찰리 조, 보따리 좀 싸봐” 조중건(영어명 찰리) 전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의 동생이라기보다 사업 동반자이자, 유능한 참모였다. 조 전 부회장은 통역과 포병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수송학을 전공했다. 59년에 귀국한 그는 바로 한진에 합류했다. 조 전 부회장의 본격적인 활약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휘됐다. 고 조 회장이 1965년 베트남을 시찰한 뒤, 조 전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니가 가서 보따리 좀 싸봐.”이 말은 한번 기획을 잘 해서 사업으로 만들어 보라는 ‘조 브러더스(중훈·중건 형제)’의 은어였다. 조 전 부회장은 미군 인맥을 활용해 중장비 조달 등의 악조건을 뚫고 베트남 꾸이년항의 미군 용역과 수송작업을 따냈다. 계약금액은 790만달러. 조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베트남 수송사업을 돌아볼 때 그것은 참으로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업이었다.” 조 전 부회장은 또 고 조 회장을 도와 70∼80년대 대한항공의 성장사를 주도했다. 국제노선 개척을 위해 당시 소련과 중국 등 적국까지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하늘을 넓혀 놓았다. 항공노선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토막.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선수단 수송을 위한 부정기 항공 노선을 뚫기 위해 혈혈단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구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사장과 항공청 장관, 체육부 장관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조 전 부회장을 한 궁전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사우나탕과 보드카로 조 전 부회장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 수십번 반복된 행동으로 조 전 부회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력으로 계속 버티며, 협상을 주도해 나갔다. 동이 틀 무렵 조 전 부회장은 그들의 수장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고 조 회장의 막내동생인 조중식(70) 전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한진에 입사했다. 당시 새로운 건축공법인 H-빔 공법으로 서울 소공동 KAL빌딩 설계 및 시공을 했으며, 중동 특수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많은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조씨가, 명망가로 사통팔달 한진 조씨가의 혼맥은 명망가 집안이 두루 포함돼 있다. 관·재·학·법조계 등으로 폭넓게 뻗어있다. 또 연애 결혼보다 유난히 중매 결혼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82) 여사와 결혼했지만, 그의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의 유력 인사의 자녀를 배필로 맞았다. 고 조 회장과 김 여사는 슬하에 4남 1녀(현숙·양호·남호·수호·정호)를 뒀다. 장녀인 조현숙(60)씨는 68년 숙부인 조 전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엘리트 법조인인 이태희(65·현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 변호사는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냈던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인 명희(5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 고 조 회장과 이 전 차관이 한 모임에서 아들·딸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인연이 돼 사돈간이 됐다. 조 회장 얘기다.“양가에서 혼담이 오가던 중에 장모님이 예비 사위 얼굴을 보기 위해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사진을 보고 흡족하셨던 모양입니다. 군제대 후에 바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당시 양가의 통혼은 운수기업과 주무부처인 교통부의 고위층 집안이 맺어졌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76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하대와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 인사로 활약했다.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영혜(54)씨와 우연히 테니스코트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조양호 회장은 “다른 형제는 해외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안에서 혼사를 챙겼지만 둘째는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다 보니,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애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수호(51) 한진해운 회장은 조씨가가 국내 재벌가와 혈연으로 얽혀지는 첫번째 다리를 놨다. 조 회장의 처가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집안이기 때문이다. 부인인 최은영(43)씨의 모친이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여사다. 신 여사의 남편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은 87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인 명진(41)씨와 혼인했다. 이 결혼으로 한진 조씨가는 재계 혼맥의 주류로 편입된다. 장인인 구 회장이 LG 구씨가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 이씨가와도 바로 연결된다. 구 회장의 부인인 이숙희 여사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차녀다. ●방계 혼맥도 장관 사돈 많아 고 조 회장의 형제자매 혼맥도 전직 장관 가문부터 평범한 집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영학(68)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장남인 진호(43)씨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장녀인 경아(3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장녀인 윤정(41)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정훈(4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쌍둥이인 주은(38)씨는 미혼, 주연(38)씨는 김태효(38)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했다. 조씨 가문의 장자인 고 조중렬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최학희(80) 여사와 결혼,2남 1녀를 뒀다. 장손인 조지호(57) 한양대 교수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 숙희(56)씨와 혼례를 올렸다. 차남 건호(53)씨는 재미동포인 윤주덕 내과의사의 딸 영태(51)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인숙(59)씨는 문영호(66) 전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과 혼인했다. 영호씨의 부친은 제일은행 이사를 지낸 문재관씨다. 고 조 회장의 첫째 여동생인 조정옥(82) 여사는 전윤진(89) 전 동양화재 감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둘째 여동생 조정원(80) 여사는 박두진(78)씨와 혼례를 치렀다. 셋째인 조도원(77) 여사는 박태원(79) 전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막내인 조경숙(75) 여사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회(78)씨에게 시집갔다. 고 조 회장의 막내 남동생인 조중식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복수(68)씨를 아내로 맞았다. golders@seoul.co.kr ■ “떠날때는 ‘쿨’ 하게” ‘2인자’ 조중건, 조카 경영권승계 앞두고 야인으로 역사적으로 2인자의 삶은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1인자를 향한 욕심이 화(禍)를 불러들인 탓이었다. 반면 드물게 성공한 2인자는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런 점에서 성공한 2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1996년 조카들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시점에 미련없이 대한항공을 나와 야인으로 돌아갔다. 오너가(家)의 일원이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행동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았던 것이다. 1인자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조 전 부회장이 한때 하와이에 머무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형제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또 조 전 부회장이 일정 기간 대한항공의 ‘수장’을 맡다가 장조카인 조양호 대한항공 사장(현 회장)에게 물려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받을 것으로 판단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세간의 예측과 달리 조 전 부회장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하와이로 떠났다. 조 전 부회장은 훗날 이같이 전했다.“형제간이라도 언젠가 헤어질 거면 기분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조카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보기가 안 좋았다. 또 한국에 있으면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형(고 조중훈 회장)에게 누를 끼칠까봐 신경이 쓰였다.”시쳇말로 어차피 헤어질 거면 ‘쿨하게’ 떠나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96년 초 작은아버지께서 물러나시기를 원하셨다.”면서 “선친도 그동안 숙부께서 고생하셨던 것을 잘 아셨던 만큼 섭섭지 않게 해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럼 조 전 부회장이 생각한 2인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형이 대한항공의 ‘선장’이었다면, 나는 ‘일등항해사’였다. 선장은 모름지기 새로운 곳을 향한 모험심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일등항해사다.2인자는 항상 해결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성공확률은 거의 50% 이하였다.” 그는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이 2인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회장은 고 조 회장이 정부로부터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형에게 수없이 대들었다.“형, 하지 마시오.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그러나 조 전 부회장도 끝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최단 기간에 부실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고 조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 전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전면에 나선 총수가 그저 ‘이러 저러하니, 알아서 만들어봐.’라고 화두만 획 던질 뿐일 경우가 많다. 물론 1인자에게는 1인자의 고뇌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일 하나 때문에 며칠을 헤매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그럼에도 2인자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했다.“2인자들은 1인자가 꾸는 꿈에 덩달아 취해 열정을 다해 일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형은 육·해·공의 종합물류 기업이라는 꿈을 내게 보여줬다.” golders@seoul.co.kr ■ 역대 정권과의 인연 1999년 4월2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다. 민간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이같은 조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빌미를 제공한 것은 대한항공. 대한항공기의 잇단 사고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국적항공사의 항공 사고는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정권과의 갈등이었다. 한진 조씨가와 역대 정권과의 인연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가 우호적 관계였다면, 김대중 정권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고 조 회장은 국적항공사 대표라는 신분과 특유의 사교성, 부지런함 덕분에 역대 정권의 핵심 인사와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사업상 ‘손해본 장사’도 많았다. 고 조 회장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도 정권이 요청한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비롯해 대한선주(현 한진해운과 합병), 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를 떠안았다. 동시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인맥을 활용, 민간 차원의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30여년간 한진그룹의 ‘2인자’였던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도 과거 군경력을 바탕으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대목이다. “1953년부터 2년간 미국 포병학교 교관 생활로 400여명의 기간 장교들과 많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중략)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친근한 관계였고 나를 친아우처럼 아껴주셨고, 가끔 당시 혁명 주체들이 내 형(조중훈 회장) 집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이권과 청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나 형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98년 DJ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씨가는 서서히 ‘쓴맛’을 보기 시작한다. 대통령 전세기의 경쟁 입찰제 도입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어 국세청 조사인력 240여명이 동원된 3개월간의 한진그룹 세무조사는 조씨가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DJ정권이 대한항공에 대해 강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이유는 뭘까.1차적으로 DJ정권 출범 이후 크고 작은 대한항공측의 사고 탓이었다.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훼손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과거 조씨가가 보인 ‘반DJ 행보’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세무조사 이후 대한항공은 노선권 배분 차별 등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법보다 감정을 앞세운 정부의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 사법부는 대한항공이 잇따라 제기한 노선 배분 소송에서 정부 결정을 뒤엎는 판결을 속속 내렸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사람] ‘문화의 오역’ 펴낸 이재호교수

    “우리 문화계에서 오역(誤譯)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공해 수준입니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매체나 거리의 간판, 관광지 안내문까지 오역이 없는 곳이 없어요. 특히 책의 오역은 저자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구요.” 영문학자 이재호(70) 성균관대 명예교수. 학업과 강의를 해오면서도 40년 넘게 오역 문제를 비판하고 연구해온 그의 오역에 대한 칼질은 가차없고 빈틈없다. 그의 칼이 가는 곳은 무명의 번역가나 저술가가 아닌, 이른바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번역물이나 국내 굴지의 출판사들이 펴낸 영한사전들이다. 대가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그의 칼질은 매우 아프다. 그래서 이 교수는 이들에게 기피대상 1호. 이 교수의 서울 평창동 자택을 찾았을 때 거실 탁자엔 메모지와 너덜거리는 사전, 손때 묻은 책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5년 전 대학에서 은퇴한 뒤 오역 연구와 퇴치에 전념하고 있는 작업의 현장이다. 앉자마자 약간은 도발적인 질문부터 던졌다.‘번역이란 게 어차피 우리글을 외국 글로, 아니면 외국글을 우리글로 옮기는 것인데 작은 실수야 나오게 마련 아닌가. 사소한 것까지 잡아내다 보면 어차피 한이 없지 않은가. 오역을 꼭 번역가나 작가의 수준문제로까지 연결시킬 필요가 있는가.’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 교수가 차분히 답한다.“나도 번역 실수는 한다. 문제는 내가 지적한 오역이 구조적이고 치명적이라는 데 있다. 아이들 교과서에 엉뚱하게 번역된 문장이 나오고, 역사적 사실과 문화를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오역이 사소한 실수란 말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해도 당사자들이 반성하는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그가 최근 펴낸 ‘문화의 오역’(동인)에 보면 어처구니 없는 오역의 실상에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이다. 이문열의 소설 ‘시인’을 영역한 책 ‘Poet’에는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란 속담을 ‘A horse with no legs goes a thousand leagues’로 옮겨 놓았다. 발 없는 말(horse)이 어떻게 천리를 달려갈 것인지, 이 책을 읽는 외국인들은 머리 꽤나 아프겠다. 이달 중순 일간지들이 일제히 보도한 ‘일 도요다판 이튼스쿨’에 관한 기사도 마찬가지. 영국에 이튼스쿨은 존재하지 않고 이튼 컬리지(Eton College)가 있을 뿐이다.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의 지혜’(1960 을유문화사) 첫 머리를 보면 ‘위대한 저서는 큰 죄악이다’란 말이 나온다.‘A great book is a great evil’을 번역한 것. 위대한 저서가 죄악이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great’를 오역한 것.‘큰, 두꺼운’으로 번역해야 옳다. 알렉산드리아 시인 칼리마코스가 “두꺼운 책은 귀찮다.”라고 한 것을 이렇게 엉뚱하게 번역한 것이다. 코믹한 것은 30년 뒤 이 책이 다시 출판되면서 이 문장을 ‘위대한 책 치고 악하지 않은 것은 없다.’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국내에서 저명한 번역가이자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가로 평가받는 이윤기씨를 ‘오역의 대가’라고 서슴없이 공격한다.‘그리스·로마신화’,‘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 등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엉터리 신화해석과 수많은 오역, 중요 인명의 그릇된 표기, 신화 왜곡과 문화오역”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수십만의 아이들이 배우는 중3 교과서에 실린 ‘길 잃은 태양마차’에서도 ‘제우스의 아들’이어야 할 것을 ‘오시리스의 아들’이라고 하는 등 교과서에서만 서너군데서 명백한 오류를 지적한다. 이 교수의 오역 찾기 역사는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59년 서울대 영문과 재학시절, 학교신문에 ‘T S엘리어트 오역의 시비’란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양주동 박사의 시 오역을 지적했던 것. 또 문교부편 ‘고등국어 2권’에 실렸던 그의 글 ‘면학의 서’중 오역된 존 키츠의 소네트를 문제삼은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유교적 법도가 엄격하던 시절이라, 이 교수는 ‘찾아뵙고 사과하라.’는 압력도 여러번 받았다. 물론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럴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후 그는 대학원을 거쳐 강단에 서면서 보다 꼼꼼하게 오역 찾기에 나섰다. 영문학이 본업인 그에게 가장 먼저 잡힌 것은 영한사전. 유명 출판사들이 펴낸 영한사전들에서 오역 내지는 충분치 못한 번역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 교수는 “영한사전은 영어공부를 허거나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군인의 총같은 존잽니다. 그런데 잘못된 부분이 계속 눈에 띄는 거예요.‘이것만 잘못됐나.’하고 다른 사전을 들춰보아도 마찬가지였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오역된 단어를 외우며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해지더라구요.” 그는 잘못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쪽지를 붙이고, 제대로 번역한 내용을 빼곡하게 적어넣는 작업을 수십년째 해왔다. 그래서 그의 사전들은 하나같이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 있고, 그가 끼워붙인 쪽지들이 너덜거린다. 물론 이렇게 잘못된 페이지들은 복사해 출판사에 전해줌으로써 오류를 바로잡도록 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물도 이 교수의 눈을 비켜가지 못한다.“예술의전당에 가보니 ‘대영박물관 한국전’이 열리고 있더군요. 그런데 대표적 전시물 중 하나가 ‘푸아비 여왕의 수금’(Queen´s lyre)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여왕이 아니라 ‘왕비’가 맞는데 말예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Queen’만 나오면 남편이 왕인데도 ‘여왕’으로 잘못 번역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전시를 주최한 신문사에 갖다줄 것”이라며 관련 기사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쪽지를 붙여 챙겼다. 5년 전 대학에서 은퇴한 뒤로는 오역연구는 아예 전업이 됐다. 그래서 ‘영한사전 비판’‘문화의 오역’같은 저서도 내게 된 것. 책을 들여다보면 ‘그 많은 책을 언제 읽고, 오류를 찾아 분석해냈을까.’하는 생각에 입이 딱 벌어진다. 남의 오류를 찾는 게 그의 일이다 보니 욕도 많이 먹는다. 이 교수의 부인 임채문(60)씨는 “취지엔 공감하지만 남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이 느껴져 반대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고집과 신념이 이만저만이어야 말이지요. 이젠 포기하고 도와줍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오는 8월 ‘서양문화교양사전’(현암사)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번 책은 오역 비판이 아닌 오역 예방을 위한 것. 그리스·로마신화, 헬레니즘, 성경 등 고대 이후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용어나 지식을 담았다. 오역은 문화를 오염시키지만, 잘된 번역은 문화를 정화시키고 윤기가 흐르게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신조다. 그래서 번역자에게 주는 당부는 한 가지.“문화의 오염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문화의 정화수가 될 것인가.”, 번역에 앞서 한번만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글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주말화제] “인생에 퇴직은 없다”

    [주말화제] “인생에 퇴직은 없다”

    “인생에 정년퇴직이 어디 있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면 저승사자도 왔다가 그냥 가는 법이지.”일흔 가까운 나이에 발명한 수도 밸브로 특허까지 출원한 김예애(74) 할머니는 국내 최고령 벤처기업 사장이다. 인터넷과 이메일도 자유자재로 쓰는 김 할머니는 “몸의 나이는 마음을 따라가는 법”이라고 얘기한다. 나이 70,80에도 현장을 지키는 ‘꿈많은 노년’들이 있어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다니면 도둑)란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대한은퇴자협회가 주 20시간 이상 일하는 노령자들에게 주는 ‘히어로(Hero·영웅)상’의 수상자로 뽑힌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을 만나봤다. ●일흔 넘어 벤처 창업 우수노령히어로상을 받는 김 할머니는 페달을 이용해 발로 수도꼭지를 열고 잠그는 ‘발바리수도’를 발명했다. 어느날 며느리가 물을 틀어놓은 채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다 바쁜 손 대신 발로 수도꼭지를 조정하면 물을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김 할머니는 곧바로 서울 을지로 뒷골목을 찾아가 1년을 헤맨 끝에 마음 맞는 수도기술자를 만나 1999년 제품을 만들었다. 혼자 벤처인증까지 따낸 김 할머니는 2001년부터 ‘발바리수도’를 상품화해 판매하고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해야했던 경험이 노익장의 원동력이다. 김 할머니는 “일을 쉬면 오히려 병이 났다.”면서 “나한테 이제 그만 쉬라는 말은 죽음을 재촉하는 몹쓸 얘기”라고 말했다. ●“승객과 인생이야기가 보람” 같은 상을 받는 배용복(79) 할아버지는 50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서울택시운송조합 소속 최고령 운전기사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하루 12시간씩 택시운전을 한다. 평북 구성 출신인 배 할아버지는 일제 때 하사관학교를 나와 중국 하얼빈에서 군인생활을 했다. 광복 직후 고향에 돌아와 인민군에 입대,6·25전쟁에 참전했지만 전쟁 도중 공산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남한에 투항했다. 이후 미군부대 운전기사로 남한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택시일은 자유롭고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지. 예순일곱이 되던 93년 개인택시 운전을 그만뒀는데 얼마후 택시회사에 다시 입사했어. 손님들에게 인생경험 들려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낙이자 훌륭한 건강 유지법이야.” ●“정년퇴직자는 베테랑 인력” 울산에 있는 조선하청업체 ㈜혁신기업은 정년퇴직자들의 모여 만든 회사로 이번에 노령자 고용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설립자는 20년 동안 현대중공업에서 기능공 관리직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창원(69)씨.2001년 선수·선미 블록조립 부문의 퇴직 기능인들을 모아 회사를 차렸다. 처음에는 “퇴물이 된 사람들이 무슨 창업이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깔끔한 솜씨로 입소문이 나 지금은 연간 1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직원 40여명의 평균연령이 64세인 혁신기업에는 정년퇴직이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 스스로 퇴사하기 전까지는 모두 ‘현역’이다. 김씨는 “우리 직원들 모두 여든까지는 끄떡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히어로상 시상식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칠순 넘어서도 은퇴 모르는 ‘원조 한류열풍’ 한명숙씨

    [어떻게 지내세요] 칠순 넘어서도 은퇴 모르는 ‘원조 한류열풍’ 한명숙씨

    “요즘 가수들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우리 때만 해도 가슴 잔잔히 들려주는 것을 멋으로 알았거든요.” 원로 가수 한명숙(71)씨. 추억의 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로 유명하다. 아직도 40대 이상은 이 노래를 얘기하면 ‘아, 그거’ 하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릴 만큼 여전히 인상 깊다.‘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한씨는 1961년 데뷔곡으로 이 노래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전국을 노란색으로 물들인 것은 물론 일본과 타이완 프랑스 미국 등에까지 번져 한류 열풍의 원조로 가요사에 기록된다. 당시 언론에도 “한명숙의 트위스트 곡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미8군 가수들의 인기 신호탄으로서,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 선거와 4·19혁명 등으로 우울했던 사람들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다. 또 타이완,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요즘 가수들은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기만 해” 현충일인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파주의 ‘필리핀 6·25참전기념탑’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한씨를 만났다. 작곡가로 활동 중인 장남 이일권씨, 어린 손자도 함께 나왔다. 이씨의 대표곡은 ‘내사랑 영아’(이명훈 노래). 먼저 지난해 12월 칠순잔치 때의 사진을 건네준다.6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한씨는 “다들 그래요.”하며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짓는다. 근황을 들려준다. 지난 1일부터 3박4일 동안 전남 완도와 진도 등에 여행을 다녀왔단다.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위원장 박일서)에서 원로 가수 40여명을 초청한 연례행사였다.‘대전부르스’를 부른 안정애씨,‘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서∼’로 시작되는 ‘바닷가에서’의 안다성씨 등 왕년의 스타 가수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앞서 지난달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원로 연예인들을 위한 초청행사에도 참가, 존경하는 작곡가 손석우씨 등을 만나기도 했다. 손씨는 ‘노오란 샤쓰∼’를 작사·작곡했다. “그때(61년) 최희준씨가 손 선생님을 소개해줘 ‘노오란 샤쓰∼’를 만났지요. 이후 ‘우리마을’‘그리운 얼굴’‘사랑의 송가’ 등 300곡 정도를 불렀습니다.” 한씨는 당시 ‘노오란 샤쓰∼’의 영화에 신영균 엄앵란 김희갑씨 등과 함께 출연했으며 이때 신영균씨가 노란셔츠를 입어 유행을 더욱 부추겼다. ●“가수에게 은퇴란 없어… 9일 호주서 교민 위로공연” 한씨는 “가수에게는 은퇴란 없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10여년 동안 외국공연을 20여차례 다녀왔다고 했다.1년전에는 캐나다 밴쿠버 공연을 했고 9일에는 호주 교민회를 방문,‘노오란 샤쓰∼’ 등 히트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씨는 “외국에 갈 때마다 교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꼭 붙잡고 고국생각에 눈물을 흘린다.”고 만난 소감을 전했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저 밝게 웃고 또 노래는 즐거운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평남 진남포 출신인 한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70년)했으며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딸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고(故) 신성모씨의 손자와 결혼, 미국 시애틀에서 산다. 차남 이일준(43)씨는 미 샌디에이고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씨는 경기도 파주에서 장남과 함께 살고 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백년해로 텔레파시

    64년을 해로한 미국의 한 노부부가 지난주 불과 14시간의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떠나 ‘백년해로’를 실감케 하고 있다고 미 CBS방송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화제의 노부부는 지난 1941년 각각 20세와 16세의 나이로 결혼한 뒤 미시간주 알머에서 평생을 살아온 알렉산더(84)와 레올라 밴스(80). 이들 부부는 알렉산더가 현지 회사에서 39년간 일하다 20년 전 은퇴한 뒤 평범한 노후를 보내던 중 남편이 지난 2월 파킨슨병으로 요양원으로 옮겨졌고,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부인마저 이달 초 뇌출혈로 인한 두통을 호소하며 병상에 누웠다. 부부는 요양원에서 지난 15일쯤부터 함께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남편이 먼저 지난 20일 오전 숨을 거뒀으며 그를 추모하는 가족들의 찬송 속에 부인도 당일 자정쯤 남편의 뒤를 따랐다. 아들인 필 밴스는 “부모님은 항상 세상을 함께 떠나고 싶어했으며, 누가 먼저 갈지에 대해 텔레파시가 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연합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美 ‘오디오북’ 열풍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美 ‘오디오북’ 열풍

    “아직도 책을 읽으시나요?” 책을 ‘읽는’ 대신 ‘듣는’ 미국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에 담긴 내용을 저자나 성우 등이 낭독,CD나 카세트 테이프,mp3 파일로 만들어 판매하는 ‘오디오북’이 늘어나는 세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텍사스주에 사는 셀리 니컬러스는 대표적인 오디오북 마니아다. 그녀는 하루 종일 오디오북을 끼고 살다시피 한다. 니컬러스는 운전할 때 자동차에 내장된 CD 플레이어를 통해 꼭 오디오북을 듣는다. 모르는 길을 가거나 차량 흐름이 복잡해 정신을 집중해야 할 때만 잠시 오디오북을 끈다. 니컬러스는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mp3 플레이어를 통해 오디오북을 듣는다. 밥을 먹으면서 책을 듣는 즐거움이 커서 요즘은 혼자 밥을 먹는 빈도가 더 늘어났다고 한다.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니컬러스는 일하면서도 오디오북을 듣는다. 복잡한 수치 계산이 필요한 도안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디오북이 들어간 CD를 켜놓는다. 집에서 청소나 세차를 할 때, 슈퍼마켓에서 쇼핑할 때도 물론 오디오북을 듣는다. 니컬러스는 또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씩 TV를 켜는 대신 mp3 플레이어를 오디오 기기에 연결시켜 듣는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니컬러스는 “요약본으로 나오는 오디오북은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심혈을 기울여 표현한 문구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오디오북을 듣다가 정말 필요가 없는 부분이 나오면 ‘빨리 돌리기’ 기능을 이용해 건너뛴다. 니컬러스가 처음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다. 당시 직장 상사가 오더블이라는 인터넷 서점에서 150달러만큼의 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상품권을 선물했던 것이다. 이 상품권으로 오디오북을 사기 시작해 벌써 128권의 오디오북을 모았다. 니컬러스는 “이제는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직장 동료로부터 책을 선물받았지만, 그 책을 읽는 대신 오디오북 사이트에서 그 책을 mp3 파일로 구입해 들었다. 버지니아주의 조지 메이슨 대학 로스쿨에 다니는 지나 문(한국 이름 황지나)은 등교 시간에 늘 mp3 플레이어를 먼저 챙긴다. 그녀가 듣는 것은 음악이나 단순한 책이 아니라 법률서적의 오디오북이다. 지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갈 때 20분, 돌아올 때 20분이 걸린다.”면서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나가 듣는 법률 오디오북은 대부분 학교에서 빌린 것이다. 로스쿨에서 법률 관련 자료가 담긴 CD와 카세트 테이프를 학생들에게 대여한다. 지나는 CD와 테이프를 mp3 파일로 바꿔서 듣고 다니는 것이다. 물론 법률 서적만 듣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딱딱한 법률과는 관계없는 ‘재미 있는’ 책들도 듣는다. 그러나 시험이 가까워지면 어쩔 수 없이 학과 관련 오디오북에 손이 간다고 한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사는 페기 베서니에게는 오디오북이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은퇴한 그녀는 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알링턴 공공도서관에서 CD와 카세트 테이프로 된 오디오북을 빌려와 역시 mp3 파일로 전환해 듣는다. 베서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CD와 테이프를 mp3 파일로 바꿔 듣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베서니는 쉽고 편한 소설류를 즐겨 듣지만, 이따금씩 좀더 조용하고 진지한 느낌을 갖기 위해 달라이 라마의 저술도 듣는다고 말했다. 베서니는 자동차와 지하철, 비행기를 탈 때 오디오북을 듣고, 운동할 때도 꼭 mp3 플레이어를 챙긴다. 또 남편이 잠든 후에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면 오디오북을 듣는다. 오디오북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기 위해 불을 켜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옆에서 자는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몸이 불편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베서니에게는 누워서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이 매우 실용적인 셈이다. 베서니는 요즘 일기를 쓰는 대신 블로그에서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오디오북에서 들은 좋은 글귀도 이따금씩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베서니는 “미국인들은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오디오북이 발달한 것 같다.”면서 “한국 등 다른 나라도 교통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오디오북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알링턴도서관 관리자 리자 골드버그 |알링턴(미 버지니아주) 이도운특파원|미국 버지니아주의 알링턴 공공도서관을 방문하면 1층 출입구 왼쪽에 자리잡은 오디오북 열람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디오북 열람실에는 소설과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콤팩트 디스크(CD)나 카세트 테이프 형태로 진열돼 있다. 순수한 오디오북만 5000점이 넘고 영화 DVD, 비디오 등을 합치면 6000점이 넘는 시청각 자료가 이용객을 기다리고 있다. 알링턴 공공도서관의 관리자인 리자 골드버그는 “가장 인기 있는 오디오북은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킬링 타임’ 스타일의 책들”이라고 말했다. 오디오북을 자주 대여해 가는 이용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주로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다. 출·퇴근 때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고, 걷거나 조깅 등 운동을 즐겨하는 사람들도 많이 듣는다. 또 미술가 등 예술인들은 작업을 하면서 듣는다고 한다. 오디오북은 종이로 만든 책의 대체재인가. -대부분은 책을 읽는 대신 오디오북을 듣는다. 그러나 읽었던 책을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는 경우도 있다. 느낌이 좀 다르다고 하더라. 오디오북의 주 독자층은. -연령층이 따로 없다. 우리 도서관에도 어린이를 위한 오디오북 코너가 별도로 설치돼 있다. 어린이용이나 성인용 모두 인기가 좋다. 10년 전과 비교할 때 달라진 점은. -원래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됐다. 그러다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사용층이 확대된 것이다.10년 전만 해도 오디오북은 대부분 카세트 테이프였다. 지금은 거의가 CD 형태로 나온다. 몇몇 도서관에서는 mp3 파일로 다운로드 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또 10년 전에는 오디오북이 대부분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낭독한 요약본이었다. 요즘은 책 전체를 다 읽는 비요약 오디오북이 대세다. 요즘 인기 있는 오디오북은 어떤 것들인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가장 인기 있다. 또 존 그리샴의 작품은 늘 애호가가 많다. 이밖에 스티븐 킹, 패트리샤 콘웰, 폭스 스팍스 등 인기 작가의 오디오북을 도서관 이용자들이 많이 찾는다. ■ 오디오북 사업 현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각종 도서관과 반스 앤드 노블, 보더스 같은 대형 서점을 가보면 오디오북 진열대가 따로 있다. 오디오북 진열대에는 주로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던 서적의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꽂혀 있다. 워싱턴 시내에 자리잡은 ‘보더스’ 매장 관리자는 “CD나 카세트 테이프로 된 오디오북의 구입자는 주로 자가용을 운전하거나 지하철·버스·기차로 통근하는 직장인”이라면서 “이 때문에 시내보다는 이들이 거주하는 교외지역에서 오디오북이 더 많이 팔린다.”고 설명했다. 또 오디오북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낭독하는 것 말고도 필요에 따라 음향효과도 삽입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듣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유발하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와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오디오북은 거래가 많은 상품이다. 최근에는 mp3 플레이어가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인터넷에서 오디오북을 mp3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유료 사이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지난 97년 설립된 오더블(www.audible.com)이다. 오더블은 135개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오디오북을 인터넷에서 판매한다. 요즘 가장 인기있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한 권을 다운로드 받는 가격은 비요약본이 28.91달러(약 2만 9000원), 요약본이 18.17달러(약 1만 9000원)이다. 비요약본의 경우 오디오북의 총 낭독 시간이 15시간53분.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다빈치 코드를 독파할 수 있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 이외에 오더블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오디오북 가운데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 빌 브리슨의 과학서적 ‘거의 모든 것의 간단한 역사’,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던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포함돼 있다. 오디오북이 인기를 끌면서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오디오북 사이트도 생겼다.1990년부터 미국 명문대학의 강의를 CD 등에 담아 판매하던 ‘티칭 컴퍼니’는 최근 일부 강의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추가했다. 스탠퍼드대학 티모시 테일러 교수의 경제학 강의는 20개의 CD가 69.95달러(약 7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dawn@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밀리언달러 베이비

    [영화속 수능잡기] 밀리언달러 베이비

    3년 전쯤 TV에서 ‘성덕 바우만의 결혼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세 살 때 미국에 입양된 바우만씨가 미국 공군사관학교 재학 중 백혈병으로 파일럿의 꿈을 접었다는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결국 그는 1997년 골수를 기증받아 새 삶을 얻었다. 그런 그가 미네소타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다. TV에 비친 바우만씨의 신부 머피씨 몹시 뚱보였다. 평범한 얼굴이었고, 나이도 바우만씨보다 8살이나 많은데다 전 남편 사이에 12살과 10살의 두 딸을 두고 있는 이혼녀였다. 솔직히 TV를 보면서 바우만씨가 ‘왜 저런 여자와 결혼하려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우만씨는 피로연에서 “가족이란 혈연만이 아니라 강한 유대감이자 사랑 자체”라고 말했다. 머피씨의 딸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한가족이다.”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장면은 어떤 영화보다 가슴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바우만씨에 대한 미국의 양부모의 사랑이 어찌나 극진한지 친부모라고 해도 과연 저렇게 두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프랭키는 한때 잘 나가던 권투 트레이너였지만, 소원해진 딸과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늙은 트레이너다. 그는 은퇴 복서인 유일한 친구 스크랩과 낡은 체육관을 운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관에 매기라는 여자 복서 지망생이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매기의 가족들은 매기가 유명선수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녀를 천덕꾸러기로 취급한다. 이런 처지에서 매기는 힘겹게 하루하루 식당일을 하면서 밤에는 샌드백을 두드린다. 샌드백만이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녀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존재는 다름아닌 프랭키와 스크랩이었다. 매기는 뼈를 깎는 노력을 훈련에 바친다. 자신을 버린 부모와 가난에 대한 분노, 그 분노의 에너지로 그녀는 샌드백을 두드린다. 그녀의 노력은 승승장구로 보답을 받는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영원한 승자로 놓아두질 않는다. 훈련의 고통보다 가혹한 시련이 그녀를 기다린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고통의 순간 우리는 버릇처럼 가족을 찾는다. 어려운 순간 내 곁에 있는 존재가 가족이다. 그러나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모두 가족은 아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있고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있지 않은가. 매기의 가족들도 꼭 그런 식이다.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치고받고 피가 튀기는 권투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살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우만씨가 말하는 강한 유대감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애가 있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애가 혈연에 기초한 가족애보다 훨씬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힐러리 스웽크, 클린트 이스트우드, 모건 프리먼 주연.2004년작.
  • [스포츠 라운지] 여자프로농구 ‘겨울여왕’ 우리은행 주장 이종애

    [스포츠 라운지] 여자프로농구 ‘겨울여왕’ 우리은행 주장 이종애

    ‘스무고개’를 해 보자. 첫째 한국농구의 간판 센터, 둘째 통산 경기당 2.0블록슛 7.3리바운드. 이쯤이면 농구팬들은 서장훈(삼성)이나 김주성(TG삼보)의 이름을 댈 테지만, 천만에 말씀이다.2005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우리은행의 우승을 엮어낸 ‘블록슛 여왕’ 이종애(30)의 기록이다. 여자 센터 중에서 블록슛에 관한한 이종애는 독보적인 존재다. 통산 492블록슛을 쌓아 평균치만 놓고 보면 김주성(2.2블록슛)에 약간 못 미치는 놀라운 기록이다. 또 다른 센터의 척도인 리바운드에서도 최초로 개인통산 1800리바운드를 넘어섰다. ●3회우승 주역… 상복은 없어 프로에서 단 2차례를 빼곤 블록슛왕의 자리를 넘겨준 적이 없는 ‘골밑의 여제’이지만 유독 MVP와는 인연이 없었다. 첫 통합우승을 일궈냈던 2003겨울리그 때는 ‘맏언니’인 조혜진(32)에게 정규리그 MVP를 양보해야 했다. 우리은행이 3번째 우승을 확정지은 16일 장충체육관. 축포가 터지고 오색 꽃가루가 날렸지만, 이번에도 MVP는 ‘총알낭자’ 김영옥(31) 몫이었다.2002년부터 4년째 주장을 맡아 기둥 역할을 하며 3번의 우승을 엮은 그였기에 섭섭할 법도 했다. 하지만 워낙에 낙천적인 그는 “모든 선수들의 꿈이 MVP인데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라면서도 “운이 안되나 봅니다.”라면서 웃어넘겼다. 하지만 이종애에 대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혹독한 조련으로 악명(?)높은 박명수 감독조차 “아픈 몸으로 묵묵히 뛰면서 감독과 어린 선수들의 가교역할을 해줘 너무 고맙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움직이는 종합병원… 은퇴시기 고민중 그가 처음 농구공을 잡은 것은 인천 인성여고 1학년때. 중학교 3학년까지는 줄곧 높이뛰기 선수로 활약하면서 전국무대를 평정했지만 고교 입학 뒤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큰 키(당시 176㎝)를 유심히 본 고 심욱규 감독이 부모님을 설득했기 때문이다.1년동안은 공식경기에 거의 뛰지 못 했지만 타고난 재능에다 ‘백지상태’였기에 흡수는 더욱 빨랐다. 체계적인 훈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쑥쑥 자란 이종애는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10년여 동안 줄곧 대표생활을 하면서 부동의 센터로 활약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순탄치만은 않았다.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부터 급성신우신장염에 빈혈까지…. 은퇴를 결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움직이는 종합병원’ 이종애가 지금까지 계속 뛸 수 있었던 것은 남편 김태현씨의 외조 덕분.2003겨울리그 직후 디스크가 악화돼 고개조차 가눌 수가 없었던 이종애는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그만두면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김씨의 다독거림에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현재 딴 살림(?)을 차린 상태다. 남편이 태국 푸껫에서 프로젝트를 맡아 장기체류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는 26일 한·일 여자농구 왕중왕전을 마친 뒤 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순간 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종애는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다. 몸도 워낙 안 좋지만,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예쁜 2세도 낳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에서는 이종애의 공백을 메워줄 후배들이 클 때까지 계속 뛰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이종애는 “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은퇴 뒤엔 작은 농구교실을 열어 꼬마들에게 ‘즐기는 농구’를 가르치고도 싶고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팬들은 여름리그에서 상대의 레이업슛을 찍어내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이종애는 ●1975년 3월18일 인천생 ●이원(61)·김광숙(54)씨의 1남3녀중 둘째 ●용현초-신흥여중-신명여고-인성여고-선경증권-상업은행(현 우리은행·98년~) ●186㎝ 60㎏ ●만화책·드라마보기(취미) ●뼈다귀 한새 쫑(별명) ●98아시안게임 동메달,2000시드니올림픽 4강,2002세계선수권 4강,2002아시안게임 은메달
  • [18일 TV 하이라이트]

    ●인물현대사(KBS1 오후 10시) 5·16 쿠데타 세력은 1963년 민주공화당을 창당한다. 초대 총재로 선출된 사람은 쿠데타 세력이 아닌 67세의 정치 신인 정구영이었다. 그로부터 공화당 창당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3선 개헌’파동부터 공화당 탈당, 정계 은퇴까지의 과정 등을 생생한 육성으로 들어본다. ●사랑공감(SBS 오후 9시55분) 동우는 아내 희수와 친분이 있는 치영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며 치영 부부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 치영은 단지 동우 회사와 한 배를 탄 입장이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저녁식사가 마련된 이유를 몰랐던 지숙은 희수 때문에 치영이 도와줬을 거란 느낌에 마음이 착잡하다. ●언론과의 대화(YTN 오후 3시15분)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경찰까지 나섰지만, 현실적으로 학교 안에서 쉬는 시간이나 등·하교 시간 등 사각권에서 이뤄지는 각종 폭력을 제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찰청 이금형 여성청소년 과장과 현직 교사인 김대유씨가 패널로 출연, 학교폭력 근절방안을 모색해 본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시달리는 현대인의 고민 스트레스.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한국인의 병’ 화병의 증상인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초조할 때, 또 머리가 무겁고 우울하거나 신경쇠약,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지압법을 배운다. 또 평소 자주 눌러주면 좋은 건강경혈도 알아본다. ●오아시스(MBC 오후 11시10분)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창시자인 강제규 감독을 만난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감독으로서의 고민, 집에서의 생활과 스캔들 의혹에 대한 그의 생각를 들어본다. 이밖에 그의 부인이 본 남편 강제규와 아이들이 본 아빠 강제규의 이야기도 준비되어 있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정혜심 경위는 이제 생활안전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구대에서처럼 직접 사건을 처리하는 대신 각 지구대를 총괄해 관리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일이다. 각 지구대 소장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며 업무에 열중한 그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상사로부터 칭찬까지 받는다.
  • “동네탁구 부활하면 선수층 두터워질것”

    “지금까지는 바빠서 사회체육에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탁구의 저변인구를 늘리려면 동네 탁구부터 도와야지요.” ‘탁구부부’ 김석만(34), 현정화(35)씨가 주부와 노인 등 동네사람들을 위한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3년 6월 서울 용산구 한남2동으로 이사온 이들은 최근 동사무소 관계자들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동사무소 2층 탁구장에는 화·목·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이들 부부가 선생님인 탁구교실이 열린다. 이들은 “탁구는 노인이나 주부 등이 격하게 운동하지 않으면서 작은 공간을 차지해 좋다.”면서 “‘재미’를 느끼며 연마한 기술이 득점과 연결되면 쾌감을 느낀다.”고 탁구예찬론을 폈다. 현씨는 “아테네올림픽에서 유승민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계기로 ‘탁구 붐’을 기대했으나 팀이 몇개 창단됐을 뿐”이라면서 “전에 비해 PC방이나 노래방 등 놀이문화가 많아져 그만큼 탁구인구도 줄었다.”고 비인기 종목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역시 국가대표 탁구선수였던 김씨는 “유럽은 스포츠의 클럽문화가 정착돼 강압적이지 않고 재미있게 운동을 배운다.”면서 “우리나라도 클럽문화로 바뀌어야 하며 탁구 등 비인기 종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체육의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탁구퀸’에서 한국마사회 탁구팀 코치로 변신한 현씨는 실력있는 탁구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중도에 포기하는 어린선수들이 있지만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0살때부터 탁구만 보며 27년째 해왔지만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후회는 없으며 은퇴 뒤에도 보람이 있다.”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비로소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탁구교실은 남편 김씨가 주로 운영하며 여자탁구팀 코치로 바쁜 현씨는 틈이 날 때마다 돕고 있다. 김씨는 “현재 22명이 수강하는데 모두 의욕이 많아 고급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서 “기초부터 3개월정도 배우면 아마추어 탁구를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쉬어가기˙˙˙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35·스웨덴)이 남편 데이비드 에시(36)와 이혼에 합의했다고. 미국의 골프 주간지 ‘골프위크’는 16일 소렌스탐이 이달 초 미국 오렌지카운티순회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소렌스탐은 97년 에시와 결혼 뒤 각종 상을 휩쓸며 ‘여제’로 군림해 왔다. 몇년 전부터 아이를 낳으려고 은퇴할 것이라는 소식이 퍼지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 삼성월드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에시가 소렌스탐의 투어 활동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불화설이 불거져 나왔다.
  • 美정치판 ‘대물림’ 성행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이번 달 처음으로 의회에 등원한 일리노이주의 대니얼 리핀스키(민주) 하원의원은 “아버지 덕분에 공짜로 당선됐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아버지는 윌리엄 리핀스키 전 하원의원. 윌리엄은 지난해 11월 2일 선거가 치러지기 직전 은퇴를 발표한 뒤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해 버렸다. 민주당으로서는 예비선거를 치를 시간적 여유가 없어 대니얼을 그대로 후보로 냈다. 일리노이주는 민주당의 아성이어서 다니엘은 손쉽게 당선됐다. 미 상원 외교위에서 동아태담당 소위원장을 맡아 한반도 정책에도 발언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리자 머코스키(공화·알래스카)는 프랭크 머코스키 알래스카 주지사의 딸이다. 상원이었던 프랭크도 지난해 11월 주지사에 출마하면서 20년 동안 아성을 구축했던 지역구를 딸에게 넘겨 줬다. 이처럼 가문의 후광을 업고 손쉽게 의원에 당선되거나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는 이른바 ‘블루 블러드(명문가)’의 고위직 세습에 대한 비판이 미국에서도 확산돼 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 재선 취임식을 가진 조지 W 부시 대통령 본인이 대통령의 아들이자 상원의원의 손자로 동생 젭(플로리다 주지사)과 조카(조지 P 부시)가 대권후보군에 올라 이같은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00명의 상원의원 가운데 18명이 ‘집안의 후원’을 받아 당선됐다. 뉴햄프셔 출신의 존 스누누 상원의원은 아버지가 주지사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 또 아칸소의 마크 프라이어(민주), 유타주의 로버트 베넷(공화), 코네티컷의 크리스토퍼 도드(민주) 상원의원 등 6명은 아버지가 의원이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매트 블런트 미주리 주지사도 하원의 공화당 원내총무인 로이 블런트 의원의 아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국의 경우 토니 블레어 총리가 600개가 넘는 세습 의원 자리를 철폐한 점을 지목하며 “워싱턴은 21세기에 프랑스 루이 14세 당시의 궁정정치를 재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출신의 로버트 마쓰이 하원의원이 사망하자 나흘 뒤 그의 부인 도리스가 보궐선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미국 여성정치센터에 따르면 미 의회에서 사망한 남편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당선된 여성은 모두 45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 가운데 한 명인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은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직 중에 선거에 나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빌 클린턴과 96년 대선에서 격돌했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의 아내 엘리자베스도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이다. 또 메인주에서 주지사를 지낸 존 매커난의 아내 올림피아 스노도 같은 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되는 의원직과 달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 고위직에 명문가의 자제가 들어가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더욱 크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유명 정치가문들 덕분에 집권한 뒤 후원자의 자식들에게 보상을 해줬다고 비판했다. 부시 대통령 재임중 딕 체니 부통령의 딸과 사위가 국무부와 법무부에서 요직을 얻었으며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아들 마이클은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 됐다. 또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딸은 보건부 감사 책임자에,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의 아들은 노동부의 최고위직 가운데 한 자리에 각각 임명됐다. 노동장관 일레인 차오는 켄터키 출신의 공화당 중진인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의 부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주 감사인 캐럴 키튼 스트레이혼의 두 아들을 백악관 공보비서와 의료보험 담당국장으로 임명했다. daw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열린세상] 무엇이 복지인가?/김민숙 소설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내가 나이든 증거인지 이번 여행 중에는 이상하게 이곳 노인들의 삶과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잦다. 뉴욕에서 내가 머문 친구의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은퇴한 노인 전용 아파트가 있어서 가며오며 휠체어를 타고 현관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 노인들을 보게 되었다. 불편한 거동에 비해 그들의 표정이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고 미국의 복지정책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 아파트 앞에는 소리도 요란하게 구급차가 와서 섰고 사람들을 실어나갔다. 한밤중에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차디찬 창에 얼굴을 붙이고 서서 저 구급차를 타고 자기 아파트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그런데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8순이 된 사촌올케를 방문하게 되었다. 올케는 자식을 위해 이민와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남쪽의 작은 마을 노인아파트에 살고 있다. 근처에 아들과 딸이 살고 있어서 자주 들여다보고 있는지라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조카의 차에 실려서 연분홍 국화화분을 사들고 먼저 사촌오빠의 묘소를 찾았다. 넓고 깨끗하고 전망 좋고 양지 바른 장소였다. 더할 나위 없는 묘지였지만 영어로 씌어진 사랑 받는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는 그 묘비가 이상하게 아팠다. 올케가 사는 노인아파트는 정말 이름 그대로 젊은이도 어린이도 없는 아파트였다. 하얗게 머리가 센 올케가 불편한 자세로 문가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휠체어가 보였다. 관절염이 심각했지만 당뇨가 심해서 수술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누추하다며 부끄러워하는 올케 옆에서 하룻밤 자고 그 불편한 몸으로 해주는 밥을 먹고 헤어지는데 그 복잡한 심정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미국의 노인복지 정책이 세계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평생 번 돈에서 얼마나 연금을 붓고, 세금을 냈는가에 따라 연금의 액수는 천차만별이지만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에게도(아무런 재산이나 수입이 없다면) 65세가 넘으면 노인아파트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고 최저한의 생계비와 의료비는 지급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조카는 지금 제 어머니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외로움이 문제라고 털어놓았다. 함께 살자고 해도 당신 스스로 거절한다니 그간의 복잡한 사정이야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곧 젊은이 한명이 노인 한명을 부양해야 하는 심각한 결과가 나왔다는 걸 읽고 가슴이 철렁해서 젊은이한테 짐이 안 되려면 빨리 죽어야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자료를 보니 이 인구의 고령화는 이미 전 세계의 문제다. 일본도 노인연금 수령나이를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서서히 늦추고 은퇴 시기도 조정하고 있고, 미국 역시 60년 이후 출생자부터 은퇴 연령을 67세로 늦추었다. 복지로 유명한 스웨덴 역시 은퇴시기를 늦추고 노인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정책으로 과도한 노인연금과 공공의료비를 줄여가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부은 연금도 아리송하고 극빈자에게 주어지는 최저생계비의 액수마저 복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단지 정부예산에 두드려 맞춘 것에 불과한 우리는 어떤가. 조기은퇴 장려금을 붙여서 이름도 이상한 명예퇴직이라며 내보내는 것만이 합리적인 구조조정인가. 어차피 복지가 노인을 최소한의 비참한 상황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라면, 은퇴를 늦추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김민숙 소설가
  • 2년만에 ‘오네긴’으로 고국찾은 발레리나 강수진

    2년만에 ‘오네긴’으로 고국찾은 발레리나 강수진

    “고국 무대는 언제나 설레요. 다른 어느 나라에서 할 때보다 더 좋은 공연을 보여 드리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도 하고요. 이번엔 가장 사랑하는 작품 ‘오네긴’으로 인사를 드리게 돼 더 기쁩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발레리나 강수진(37)이 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25·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오네긴’의 주역 타티아나로 고국 팬들을 만난다. 빠듯한 일정 탓에 공연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에서야 기자들을 만난 그는 “순진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타티아나는 내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네긴’은 안무가 존 크랑코가 푸슈킨의 동명 시극을 바탕으로 1965년 초연한 작품. 강수진은 95년 발레단 시즌 개막작으로 타티아나를 처음 연기한 이래 지난 10년간 타티아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무용가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카멜리아의 여인’ 등 비극성이 강한 드라마틱 발레에서 두각을 드러내온 그지만 의외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코믹한 역할에도 매력을 느낀단다. 그는 “97년 레이드 앤더슨 예술감독이 주인공 ‘카탈리나’를 맡겼을 때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나도 몰랐던 코믹한 모습들이 나오더라.”면서 “다음 한국 공연 때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나이에서 오는 부담은 없을까.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아직도 무대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닌다.”는 그는 “발레리나로서 이해력이나 유연성은 오히려 좋아졌다. 육체적으로 한계가 오는 시기가 되면 후회없이 은퇴하고 싶다.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강수진’하면 일그러진 발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는 “남편이 장난삼아 찍은 사진인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못생겨졌다. 갈수록 기형이 돼간다.”며 활짝 웃었다.2년 전 동료 무용수이자 매니저인 툰치 쇼크만과 결혼한 그는 집안 일 잘 도와주고, 요리 잘하는 남편 덕에 아주 행복하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발레리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테크닉보다는 인내심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은퇴 이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8년만에 브라운관 복귀 최수지

    8년만에 브라운관 복귀 최수지

    “결혼한 뒤 몇년이 지나도 친정은 변함없이 편하잖아요.마찬가지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는데 전혀 낯설지 않네요.(웃음)” 9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 최수지(36)가 8년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지난 87년 데뷔작인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상큼한 여대생으로,대하드라마 토지에서는 ‘서희’역으로 열연하며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녀는 97년 SBS 드라마 ‘부자유친’을 끝으로 연예계를 떠났다.당시 그녀는 미군 군의관 백진범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지난 2002년부터는 남편이 한국 근무를 자원하면서 귀국,현재 대구에서 일곱살 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4일 첫 전파를 탈 MBC 소설극장 ‘빙점(극본 조희,연출 강병문)’.이미 국내에서 드라마와 영화로도 소개된 미우라 아야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그녀는 이 작품에서 병원장의 아내 윤희역을 맡았다.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사이 어린 딸이 유괴돼 살해당한다.이후 남편이 복수심에 불타 유괴범의 딸을 입양,함께 키우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는 아이를 증오하고 구박하는 비극적인 여인이다. “연기가 제 천직이란 생각을 하루도 버린 적이 없어요.연기자는 영원히 연기자예요.은퇴가 있을 수 없죠.”연기자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릴 때 떠났지만,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에 아쉬움이 있을 수 없단다.그녀는 “지금 나이에도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어 행복하다.”며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드라마 출연을 다시 결심한 데는 남편의 배려가 큰 힘이 됐다.“미국에 있을 때는 물론 귀국한 뒤에도 수차례 출연 제의가 있었지만,아이와 남편을 위해 포기했죠.남편이 감동을 받았나 봐요.이번 ‘빙점’은 남편이 먼저 나서서 ‘해보고 싶으면 꼭 해보라.’며 적극 지지하더라고요.”남편과 어린 딸 생각에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마자 고속철을 타고 대구로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 승부를 걸자는 욕심은 없어요.먼 훗날 ‘내가 이 역을 잘해냈구나.’라는 느낌이 들면 되는 것이지요.눈가의 주름살은 어쩔 수 없지만,영원히 여러분들 곁에 친숙한 연기자로 남고 싶어요.”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