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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대권 민주당후보로 떠오른 클린턴

    ◎32세에 최연소 주지사 당선관록/교수·아칸소주 검찰청장등 역임/혼외정사·병역기피설에 곤욕도 10일에 있은 「슈퍼화요일」대회전을 통해 미차기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현대통령에 맞설 민주당후보로 부상한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는 우선 나이가 46세로 부시대통령보다 22살이나 젊다. 대통령후보지명전에 나서기전에는 워싱턴중앙정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6명이 난립한 민주당후보들 가운데 돋보여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아칸소주 출신인 클린턴은 명문 조지타운대을 졸업하고 예일대법학대학원을 거쳐 아칸소대교수,주검찰청장을 지냈다.지난 78년 32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아칸소주지사에 당선됐으며 81년선거에서만 낙선했을뿐 83년부터 연승해 주지사직을 고수해왔다. 용모가 준수해 취재기자들 사이에 「엘비스프레슬리」로 불리는 그는 예비선거 돌입 직전 혼외정사스캔들과 병역기피설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예비선거 첫 관문인 뉴햄프셔투표에서 폴 송거스후보에게 큰차로 뒤졌으나 3번째 예비선거에선 선두자리에올라섰다.그후부터 저력을 발휘,「슈퍼화요일」예비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부인 힐라리여사는 예일대 동문으로,미전국 1백인 유명변호사에 두번이나 랭크될 만큼 똑똑한 여성으로 소문나 있으며 남편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도 「동정에 호소하지 않는」확신에 찬 태도를 보여 큰 호감을 샀었다.
  • 생활고 러시아(움직이는 세계:특파원코너)

    ◎국경 넘나드는 보따리장수 급증/파·독등에 가전품 팔고 생필품 사와/“한탕하면 겨울난다” 1천만명 여행/가격자유화한뒤 주부들 부업으로 번져 구 소련의 경제가 파경을 맞고 있는 가운데 가혹한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 식품과 생필품을 구입하려는 구 소련 시민들의 해외 보따리장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그들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쁘지 않은 폴란드 등 구 동구권국가로 몰리고 있으며 일부는 독일의 베를린이나 포츠담·드레스덴으로까지 구매여행을 하고있어 보부상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구 소련인 보부상은 올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가격자유화 조치를 취해 물가가 상승하자 더욱 크게 늘어나고 있다. 루드밀라 바실예프 여인은 오른손에 우산을,왼손에는 우비를 들고 그녀가 팔기 위해 내놓은 낡은 전기밥통과 토스터를 가리고 있었지만 보잘것 없는 가전제품은 이미 비에 젖어있었다. 흑해연안의 소치라는 조그마한 도시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바실예프 여인(46)은 그래도 고향에서는 형편이 괜찮은 편이어서 한달 6백루블(약 4천6백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는 비행기로,다음에는 버스로 3천여㎞ 떨어진 동부 폴란드 국경까지와 3일을 기다린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광장의 시장에서 이들 가전제품을 팔아 필요한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가려 한다. 그녀를 태우고 국경을 넘은 버스는 이틀후 다시 국경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바실예프 여인은 그때까지 가지고 온 물건을 모두 팔고 돌아가는 길에 폴란드의 지들체에서 카셋녹음기와 두툼한 웃옷을 사갈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가 산 물건을 자기나라에서 팔면 5천루블(50달러)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남편과 애들 등 한가족이 이번 겨울을 굶지 않고 날수 있다는 계산이다. 루드밀라 여인은 이번겨울 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그루지야 등지에서 동구권으로 와 물건을 팔고 이윤이 남는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구 소련인 보부상들이 몰리자 폴란드 국경도시에는 시장이 크게 번창하고 있다. 구 소련인 상가에서는 서구상품들이 폴란드제품에 비해 값이 무척 비싸며 그렇다고 값싼 폴란드상품이 넉넉히 공급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값싸고 물량이 풍부한 동구 각국 상품들이 이들 시장에 진열되고 활발하게 거래된다. 어린이신발·차·양말 등이 가장 잘 팔리며 플라스틱제품 장난감·커튼·촛대·캐비어 등도 인기가 높고 심지어 코카시아지방의 염소와 양까지 팔리고 있다. 구 소련인들은 이들 가축들에게 술을 먹여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해 포대 등에 넣어 국경 통과시 세관원들의 검색을 피하는 수법을 흔히 쓴다. 보드카는 큰돈을 남길수 있어 전에는 소련인들이 독일로 많이 가지고와 팔았지만 최근 세관검사가 강화돼 국경통과가 힘들다. 지난해 구 소련인들이 장사를 하기위해 출국한 사람은 1천여만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독일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한 수는 1백20만명이나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있는 전통적인 조그마한 도시 플체미슬역은 서쪽으로 가는 승객들로 초만원을 이루어 일반 여객들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초만원이다. 출국한 구 소련인들 중에는 얼마나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를 정확히 알수도 없다. 폴란드 이민국은 단지 소련인여행객중 25만여명이 폴란드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도 외국인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도난차량이 급증하고 도난당한 차량은 번개처럼 국경너머로 보내진다. 외국인이 비싼 차를 타고 폴란드를 방문해 잠깐 차를 비운 사이에 차량을 도난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도난차량은 통제가 안되는 소련군용기에 실려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폴란드 경찰은 차량범죄조직을 적발하기 위해 합동수사를 하지만 이들 조직은 전광석화처럼 범행을 하기 때문에 일단 도난당한 차량을 되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거대한 소련시장으로 변한 바르샤바 체육관에서 자리를 얻으려면 소련 마피아에 자리세를 내야되는 것은 일반화 된지 오래며 모처럼 폴란드까지 와서 가진돈을 동족의 범죄조직에게 빼앗긴 소련사람들이 폴란드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구 소련인 여행객들은 독일과 폴란드에서 취업이 금지되어 있으나 일부 소련인들은 노동을 해 돈을 벌기도. 특히 젊은이들은 암노동시장에서 건축노무자로 일하고 있다. 폴란드의 경기가 침체하고 있지만 민주화이후 건설붐이 일어나 도처에 빌라가 들어서고 있으며 많은 구 소련인 일당 노동자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닥불을 피우며 건축현장에서 새우잠을 자며 일하고 있다. 루드밀라 바실예프는 『독일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게 대해줘 마음에 든다』며 옐친 대통령이 이미 시장경제의 실천에 들어갔기 때문에 러시아도 언젠가는 폴란드수준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이혼요구 부인 찔러/중풍 남편 음독자살

    【장승포=강원식기자】 5일 상오 8시40분쯤 경남 거제군 연초면 송정리 하송부락 인근 야산에서 이동네 박상곤씨(44·무직)가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 제유순씨(32·회사원)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뒤 달아났다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개월 전부터 중풍을 앓아온 박씨는 지난해 8월 가출했던 부인 제씨가 4일 집으로 와 이혼을 요구하자 말다툼을 벌이다 하오 6시30분쯤 흉기로 제씨의 옆구리를 찔러 부상을 입히고 달아났었다.
  • 감자장수로 변장…들풀로연명/모윤숙씨/명사들의「6·25체험」기록내용

    ◎어린 자녀들과 떨어져 단신 피난길에/유진오씨/온갖 고문·사상교육 받고 겨우 풀려나/복혜숙씨/평양까지 끌려갔으나 미공습때 도주/황신덕씨 「6·25」의 의미가 퇴색해 가고 있다. 불행한 것은 아예 6·25를 모르는 세대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과 탈냉전의 조류속에서 6·25를 거론하면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런 가운데 현민 유진오 박사,여류시인 모윤숙씨,왕년의 대스타 복혜숙씨,당시 서울신문 정치부장 김영상씨등 사회지도층인사들의 소중한 6·25체험기록이 발견돼 관심을 끌고있다. 그들이 겪었던 한계상황와 심경을 반추해보는 것은 오늘날 또다른 의미를 부여해준다. 체험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력에 대한 항의/이건호 고대교수 서울이 함락되고도 집에 숨어있었다. K씨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인민위원회를 열어 소위 반동분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을 뜨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미 한강다리가 폭파됐고 또한 공산군들의 만행이 심각해 피난을 떠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집에 숨어라디오를 들으면서 전황을 파악했다. 두명의 공산군이 어떻게 알고 은신처에 나타났다. 체포될 뻔했으나 그중 한명이 내책으로 공부한 법학도여서 그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진정 살아있나/모윤숙씨 25일 정오 평양방송으르도 서울역에 전화를 했다. 당시 평양방송은 국방군의 북침으로 전쟁이 터졌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는 괴뢰군이 38선을 전면 남침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북괴 내무성 경찰에게 추적을 당하게 됐다. 감자장수로 변장,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들풀과 밭의 곡식으로 연명했다. ○서울에서의 탈출/유진오 박사 50년 6월25일 둘째딸로부터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38선에서 흔히있는 총격사건으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다음날(26일)공무원 훈련원에 강의하러 가는 도중 비로소 진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을 공식 확인했다. 암담한 심정으로 K씨를 만나러 민중서관으로 갔다. 27일 정부가 수원으로 이동했으며 국군의 이동행렬을 보면서 전황이 몹시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집에 돌아와어린 네자녀를 친척집으로 피신시키고 큰아이들과 집사람을 집에 남겨둔채 피난길을 떠났다. ○내려앉은 방공호/황신덕씨 6월28일 아침 서울이 함락된 것을 보고 인민재판에서 사람들이 처형돼 불안해 하던 중 7월25일 낯선 사람들에게 체포됐다. 7월30일 트럭에 실려 평양으로 실려갔다. 도중에 황해도 남천의 인민법정에 수용돼 사상교육을 강제로 받고 개조센터라고 부리는 수용소에 감금됐다. 조사를 받는 동안 안면이 있는 인사 3백여명을 보았다. 10월초 유엔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10일쯤 이름도 모르는 장소로 끌려다녔다. 그러다 어느 굴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집단학살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죽음을 각오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근에 공습이 있어 이때다 싶어 정반대쪽으로 마구 달렸다. ○여배우가 겪었던 일/복혜숙씨 27일 밤 10시쯤 딸과 함께 피난을 떠나기 위해 의사인 남편과 헤어져 한강을 건너던 도중 김인선 검찰총장 가족과 만나 함께 가게 됐다. 안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수원·천안을 거쳐 시댁이 있는 홍성에서 머물던중 김총장은 정부가있는 대구로 떠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친척이 만들어준 위조신분증을 갖고 서울로 향하던중 8월19일 청양에서 체포돼 경찰서에 감금되어 심문을 받게 됐다. 조사관은 김총장이 숨어있는 곳을 대라고 온갖 위협과 고문을 자행했다. 28일 밤9시에 다시 중부내무서로 연행돼 온갖 고문을 받은뒤 특별선전교육을 받도록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로 뒤범벅 된 부상자치마를 입고/박순천씨 6월25일 아침 공산군의 침략소식을 듣고 긴급 소집된 국회에 참석,끝까지 서울을 사수하기로 한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서울에 남아있었다. 7월8일 정치보위부로 옮겨져 심문을 받은뒤 13일 다른 6명과 함께 석방됐다.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피묻은 치마를 입고 변장,숨어 지냈다.
  • 정부와 짜고 남편 방화 살해/불륜 눈치채자 자기집 불지르게

    ◎40대 유치원장·연하운전사 영장 【안산=조덕현기자】 경기도 안산경찰서는 2일 정부와 미리 짜고 집에 불을 질러 잠자고 있는 남편을 살해한 과천시 별양동 N유치원 원장 최화영씨(43·여·시흥시 장하동 산 36의 1)와 최씨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유치원 버스 운전사 윤상로씨(32·안양시 안양7동 121의 15)등 2명을 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협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씨는 지난 7월초순부터 윤씨와 불륜관계를 맺어오는 것을 남편 박진철씨(44)가 의심하자 지난달 23일 상오2시쯤 윤씨가 박씨집에 침입,부인 최씨가 준비해 둔 시너와 석유를 안방에 뿌린 뒤 1회용 라이터로 불을 질러 잠자고 있던 박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불이 나자 최씨는 2층에서 뛰어내려 척추에 부상을 입었으며 두자녀도 미리 대피시켜 놓아 화를 면했다.
  • 작가 외길… 대중성·작품성 조화 추구

    ◎타계한 정비석씨의 생애와 문학세계/세태 변화 리얼하게 묘사… “이야기꾼”/서울신문 연재 「자유부인」,장안 화제로/“문학은 재미·진실 담아야” 평생 지론 실천 19일 80세로 타계한 소설가 정비석씨(본명 정서죽)는 평생을 글쓰기에 몸바친 문단의 거목. 그는 순수·통속으로 확연히 갈라진 이분법적인 문단풍토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중작가라는 오명을 두려워 해 주저하고 있던 부분에 용기있게 뛰어들어 우리 소설의 새 지평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그는 「성황당」「제신제」등 토속적 삶을 예술성 짙게 표현한 작품에서부터 「자유부인」「노변정담」등 세태를 묘파한 작품들,「연산군」「민비」「명기열전」등의 역사 대하소설에 이르기까지 각기 성격을 달리하는 분야에서 수많은 명편들을 남겼다.또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금강산 기행문 「산정무한」처럼 뛰어난 수필을 쓰기도 했다. 특히 그를 기억되게 하는 것은 세상의 명리를 좇지 않는 그의 후덕한 인품과 문학의 길을 외곬으로 지켜온 치열한 작가정신.그는 문단의인기작가 또는 원로작가로서 어울리는 많은 공직을 마다하고 오직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여 왔다.『작가란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써야지요』라며 7순이 넘기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자세는 지금도 수많은 후배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11년 평북 의주 태생으로 일본대학 문과를 중퇴한 정씨는 36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졸곡제」,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이 당선되면서부터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초기 작품들에서 밀도있고 예술성 짙은 본격문학을 지향했던 그는 해방후부터 대중적인 통속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는 「문학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조화해야 한다」는 그의 문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게 있어 문학이란 진실을 담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대중문학은 문학도 아니라는 편벽된 논의는 하루속히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소의 지론처럼 그는 직접 작품으로써 대중과 엘리트문학인 사이의 벽깨기를 실천했다. 그가 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자유부인」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6·25후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퇴폐풍조를 배경으로 가정을 뛰쳐 나온 대학교수의 부인이 남편의 제자와 일으키는 「춤바람」을 다룬 이 작품은 발표당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정씨를 일약 베스트셀러작가로 부상시켰다.또한 이 작품은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교수,홍순엽변호사,그리고 작가인 정씨 사이에 이른바 「자유부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는데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황교수와 정씨가 이젠 모두 고인이 되고 말았다. 「자유부인」의 대중적 성공은 단순히 애정이나 통속성에 머물지 않고 해방 후 서구 자유주의 물결로 조성된 사치와 허영의 풍속도를 묘파한 세태 풍자에 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는 또 73세 때인 84년에 「소설 손자병법」을 발간,국내 출판사상 첫 1백만부 판매 기록을 세우는 대중적 성공을 다시 한번 거두었다.그의 「소설손자병법」은 책으로선 국내에선 처음으로 TV에 광고되는 기록도 세웠으며 이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고전의 현대적 국역물의 효시가 됐다.문단 일각에선 그의 대중적 성공을 그의작품을 평가하는 증표로 삼기 전에 바른 삶과 지혜를 제시하는 방편으로서의 고전 새로 읽히기의 의미,견실한 전업작가로서의 정씨의 삶에 대해 보다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평소 그와 절친한 교유를 가졌던 시인 구상씨는 정씨를 『붓 하나로 일생을 산 결곡한 분이었다』며 『신문소설의 대가로 시대 풍조를 예민하게 묘파한 작가였다』고 회고한다.
  • 6·25 전상자 임학준씨의 “인간승리”

    ◎전쟁상흔 딛고 “이웃사랑 반평생”/휠체어 타고 재활촌 건립등 앞장/30대에 대학진학,이젠 중견기업가로/장학회 운영… 불우한 이웃에 거금 “선뜻” 『6·25는 내몸을 불구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대로 나와 같은 불우한 전쟁의 희생자를 도우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남겨준 전체적 장애를 딛고 반평생을 동료 상이용사들을 돕는 데 몸바쳐온 전상1급 국가유공자 임학준씨(60)는 6·25 발발 41주년인 25일 이렇게 말했다. 임씨가 부상을 당한 곳은 적군과 아군간의 접전이 한창이던 50년 9월30일 포항 부근 피악산에서였다. 『지프를 타고 이동하다 적군의 포격을 받고 기절했다 깨어보니 소대원 3명은 이미 숨져 있었고 척추와 팔·다리엔 온통 파편투성이었습니다』 아직도 악몽 같은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임씨는 그때 부산 육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 끝내 군문을 나서야 했다. 『불구의 몸으로 세상을 나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한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임씨는 57년 대한상이군경회의 전신인 상이용사회의 업무이사직을 맡으면서 자신과 같은 전쟁희생자를 돕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기도 했다. 처음 손을 댄 것이 상이군인들의 재활용사촌 건립사업. 『제몸 하나 추스리지 못하는 병신(?)이 너무 설친다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8군 한미재단,군부대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며 목재와 불도저 등의 건축장비를 지원받아 64년 관악구 신림동에 32가구,66년 노원구 공릉동에 20가구,67년 강동구 방이동에 30가구의 집을 지었다. 상이용사를 위해 불같이 뛰던 임씨는 32살 때인 63년 건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가난으로 포기해야 했던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내 전미자씨(57)와 조카 윤복씨(47)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임씨를 업고 4년 동안 학교계단을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68년 군경회 서울지회장을 끝으로 군경회를 떠난 그는 그 동안 모은 재산으로 고철수입,건설업 등에 뛰어들었으나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 트럭 20여 대로 시작한 화물운송사업이 번창하면서 그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임씨는 화물운송사업을 기반으로 현재 노원구 중계2동의 한윤교통,화물운송의 일신상운,스포츠용품 수출업체인 선미스포츠 등 3개 회사를 거느린 어엿한 경영자로 발돋움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도 한시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웃을 잊지 않았다. 72년 일신상운의 이름을 따 「일신장학회」를 설립,지금까지 가정환경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 하는 중·고교생 1천7백67명에게 1억5천여 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것을 비롯,83년에는 경기도 용인군 구정면에 고아원을 지어 수도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부인 전씨는 남편에 대해 『사업을 하면서 지나치게 구두쇠 노릇을 해 욕도 많이 먹었다』면서 『그러나 자기보다 어려운 이를 돕는 데는 결코 인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25일 자신의 땀이 배어 있는 서울 노원구 화랑용사촌에서 옛전우를 만난 임씨는 『6·25와 같은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에게보다 높고 멀리 눈을 돌려 나라를 생각하고 조국에 대한 긍지를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 이동훈씨 동양정밀 인수/제일화재 회장… 개인자격으로

    ◎부친 이후락씨·동양 박 회장 교분 작용/한화서 독립… 전자·통신분야 본격 참여 재계의 관심을 모아온 동양정밀의 제3자 인수가 제일화재해상보험으로 낙착됐다. 제일화재보험회장이자 고려시스템 사장인 이동훈씨(43)는 9일 개인자격으로 사실상 부도상태에 있는 동양정밀과 계열사인 동양전자통신 등 2개 회사를 인수키로 동양측과 최종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그 동안 동양정밀의 인수를 둘러싸고 벌여온 재벌의 인수 각축전은 제일화재의 막판 뒤집기로 끝났다. 동양정밀은 수출부진 등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지난달 27일 이후 만기가 돼 돌아오는 3백억원 규모의 어음과 회사채를 막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렸었다. 그러나 동양정밀측의 요청으로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이 유예기간을 주고 제3자 인수를 추진토록 해 그 동안 부도사태는 가까스로 피해왔다. 동양정밀의 제3자 인수가 추진되자 정보통신분야로서의 진출을 노리는 포철 선경 현대 코오롱 동부그룹 등이 인수를 적극 추진했으나 동양정밀의 부채문제 등으로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고 한때 동종업체인 아남산업이 인수경쟁자로 부상,아남의 인수가 유력시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육사2기 출신인 동양정밀의 박율선 회장과 이씨의 부친인 전 중앙정보부장 이수락씨와의 면식관계가 작용한 데다 한국화약그룹으로부터 독립,기업을 확장하려는 이씨의 의도가 맞아떨어져 전격적으로 인수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양정밀보다는 첨단통신제품인 전 전자교환기를 생산하는 동양전자통신을 인수하기 위해 이씨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씨는 이후락씨의 둘째 아들이자 한국화약그룹 김승연 회장의 자형(김 회장 누나인 영혜씨의 남편)이다. 이씨는 동양정밀 인수를 계기로 컴퓨터 및 주변기기 메이커인 고려시스템과 연계해 첨단전자와 통신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이씨는 현재 한국화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않았지만 동양정밀과 제일화재,고려시스템을 한 데 묶어 제일화재그룹으로 정식 독립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구설수에 오른 미 전직 대통령가

    ◎레이건가/“낸시,백악관 시절에 시내트라와 밀회”/케네디가/가족별장서 강간사건… “용의자는 조카”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 부부는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던 시절 함께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으며 낸시 여사는 백악관 안주인으로 있을 때 인기가수 프랭크 시내트라와 오랫동안 밀회를 즐긴 것으로 7일 공개된 한 전기에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키티 켈리라는 작가가 집필한 『낸시 레이건,허가받지 않은 전기』라는 책은 자기중심적이고 변명일색이며 도량이 좁은 전직 퍼스트 레이디 낸시의 생활에 관한 비밀스럽고 때로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를 비롯,주요 신문들은 이 전기를 1면에 대서특필했다. 이 책은 또 레이건 전 대통령이 낸시 여사의 임신으로 함정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했으며 결혼 후에도 여배우 크리스틴 라손을 비롯,다른 여성과 계속 사귀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따르면 백악관 안주인 시절 전국적인 마약퇴치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낸시는 한때 알프레드 블루밍데일사가 주최한 어느 파티에서 남편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것이다. 블루밍데일의 전직 임원인 셀던 데이비스는 낸시 여사와 시내트라와의 관계는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년간 지속됐으며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내트라는 자주 뒷문을 통해 백악관을 출입,낸시와 만나 수시간 계속되는 점심을 함께하곤 했을 뿐만 아니라 시내트라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대통령의 호출을 포함 어떤 방해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이 전기는 주장했다. 미국 제1의 정치가문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비롯,끝없이 크고 작은 화제를 뿌리고 있는 케네디가가 이번에는 플로리다에 있는 가족 별장에서 일어난 강간사건으로 또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벽 플로리다주 팜 비치의 케네디가 별장지역에서 새벽 3시30분과 4시30분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는 29세의 한 여인이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문제는 시작됐다. 이 여인은 약간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곧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녀 변호사의 얘기로는 피해자가 이번 사건이 법정에서 진상이 가려지기를 원한다면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들이 밝혀낸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건 발생 전날인 29일 밤 한 나이트클럽에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 의원과 그의 아들 패트릭,조카인 윌리엄 케네디 스미스를 만났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자리를 함께한 이들 세 사람 중 케네디 상원 의원의 누이의 아들인 스미스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을 받고 있다. 올해 30세의 스미스는 조지타운 의과대학의 4학년 학생으로 자신이 용의자로 부각되자 지난 3일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머리카락과 혈액샘플을 경찰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의 친구이자 술집 종업원으로 이 사건의 주요 증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 카손(27)양은 그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케네디 상원 의원 부자를 만났고 혼자 그녀 차로 케네디 별장에 간 뒤 그곳에서 이들 두 사람과 술을 마셨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방글라 새 총리/베굼 지아여사

    ◎남편후광 업고 반체제서 권부로/온화함과 달변으로 국민에 인기 방글라데시 최초의 회교도 여성총리로 지명된 베굼 할레다 지아여사(47)는 지난 77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가 4년뒤 모하메드 에르샤드가 일으킨 또다른 쿠데타에 의해 암살된 지아우르 라만 전 대통령의 미망인이다. 살해된 남편의 후광을 업고 국가최고지도자로 부상했다는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녀를 「방글라데시의 아키노」라고도 부른다. 지아여사는 지난달 27일 실시된 방글라데시 의회선거에 중도파 7개 정당연합을 이끌고 참가해 전체 의석(3백석)의 과반수에 12석이 모자라는 1백39석을 확보,자신이 속한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에 승리를 안겨준 주역이다. 지난해 가을 호세인 모하메드 에르샤드 당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경쟁관계에 있던 아와미연맹당의 하시나총재와 잠정휴전을 맺기도 했던 그녀는 그동안 줄곧 남편의 후광을 업고 반체제 투쟁을 계속해와 대중적 기반도 탄탄한 편이다. 화려한 화장과 보석치장을 즐기는 지아여사는 그 외모와는 달리 특유의온화함과 매끄러운 화술로 국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후 첫번째 민주적인 정권이양을 통해 권좌에 등극한 지아여사는 그러나 부패와 실정에 의해 황폐화된 이 나라 경제재건의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지금은 우리의 승리를 기뻐할 때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시간들에 대비할때』라고 강조한 지아여사가 앞으로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모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사상 최악의 연휴 윤화

    ◎3일간 2천건 발생… 1백22명 사망/부상자도 2천5백여명 설날 연휴인 14·15·16일 사흘동안 전국에서 1천9백91건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로 1백22명이 숨지고 2천5백35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16일 치안본부에 따르면 설날인 15일의 경우 3백18건의 교통사고가 발생,33명이 사망하고 4백80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나 교통사고 1건당 치사율이 평소의 두배에 육박하는 10.3%에 달했다. 이같은 치사율은 지난해 설날의 경우 4백50건 발생에 32명이 사망하고 5백90명이 부상해 7.1%의 치사율을 보였던 것보다 높은 것으로 이번 설날은 교통정체가 심해 사고건수는 줄어든 반면 전국적으로 눈비가 내려 도로사정이 불량,치사율이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설날과 16일 새벽까지 전국에서 29건의 불이 나 6명이 숨졌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46건 발생,2명 사망에 비해 건수는 줄었으나 사망자는 많았다. ▲16일 하오4시30분쯤 전남 담양군 무정면 오례리 호남고속도로 회덕기점 1백93㎞ 지점에서 광주고속 소속 전남5 아7006호 직행버스(운전사 김명광·36)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경남5 가9845호 봉고승합차(운전사 김병언·41·경남 창원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봉고승합차 운전사 김씨와 함께 타고 있던 김현희씨(25·여·부산시 광안2동 146의9),우성군(13),현정양(21) 등 3남매,김성우군(18·전남 여수시),김문희양(19·여수시) 등 6명이 숨졌다. 또 이순심씨(58·여·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서리 1621) 등 버스승객 5명도 경상을 입었다. ▲16일 상오7시30분쯤 충북 제천군 금성면 월굴리 앞 충주호 수몰지구 이설도로를 운행하던 서울4 누3852호 콩코드승용차(운전자 최경숙·34·여·서울 서초구 내곡동 1의293)가 도로변 30m 아래 충주호에 추락,운전자 최씨와 함께 탔던 딸 이은정양(생후 10개월) 등 모녀가 물에 빠져 숨지고 남편 이선재씨(34)는 헤엄쳐 나와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이들 일가족이 이씨의 고향인 제천군 청풍면 황석리에서 설을 지낸뒤 귀가를 위해 사고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가다 커브길에서 운전 부주의로 충주호에 추락,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조사중이다. ▲15일 낮12시30분쯤 충남 논산군 연산면 고양리 고양식당 앞길에서 경북6 다7970호 12인승 소형버스(운전자 유지항·31)가 길가던 권영순씨(45·여·논산군 연산면 표정리)와 권씨의 딸 이성미양(15·연산중 1년),조카 이희원군(10·인천 죽현국교 3년) 등 일가족 4명과 신원을 알 수 없는 50대 여자 1명을 치어 그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 북 공훈배우 김관보씨/의붓 딸 조민희씨 상봉

    평양 민족음악단의 공훈배우 김관보씨(68·여)가 김진명씨(78) 형제에 이어 12일 상오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남편 조영출씨(80·월북시인 문화부부상 역임)의 전처 소생인 딸 조민희씨(45·인천시 청천동 300 삼익아파트)와 사위 주경환씨(46)를 만났다. 이날 상오9시30분 조씨는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건강하시며 현재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김관보씨는 조영출씨의 또 다른 혈육이 남쪽에 살고 있는지와 할머니의 생사여부를 물었다.
  • 잠롱시장식 청백리/송정숙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잠롱 방콕시장이 인기배우처럼 서울을 다녀갔다. 그가 강연을 하러 갔던 대학에서는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든 대학생들이 「잠롱!」을 연호했고,사인공세를 펴는 바람에 진로가 막히는 지경도 이뤘다고 한다. 잠깐 기회를 얻어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인상은,여분의 살이 전혀없는 몸매와 보리빛 살갗,낡은 작업복의 모습에서 수행중인 수도사같은 것이었다. 미담을 많이많이 만들며 성자가 되는 꿈을 꾸는 다소 기인같은 인상도 품고 있었다. 범인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그러나 그는 현직 시장이다. 8백만 시민이 살고 있는 거대한 현대도시의 시장이다. 그는 서울에 초청되어 와서 한국공직자들의 부패상에 대해 준열한 충고도 했다고 한다. 그의 청렴정도라면 그럴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현직 시장이다. 자기도 공직자인 남의나라 시장에게서 그런 충고를 듣는 일은 서글프다. 서울에서 열린 어느 환영잔치에서 그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농담을 하자 청중들이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 대목은 「아마도 동감」을 나타낸 것이었으리라고 풀이한 문필가도 있었다. 문득,만약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민선시장을 뽑게 되었을 때 「잠롱시장」을 흉내내어 위선적 행각를 하는 「가짜 잠롱」이 출현한다면 그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선되어 「잠롱식」 청백사로 인기만을 얻고 시정에는 별 기여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잠롱 방콕시장이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에 관해서는 「미담만을 한없이 만들고 다니는 사람」의 행적만이 알려졌으므로,그가 얼마큼 능력있게 근대도시행정을 수행해 나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잠롱시장의 소문을 처음 외신으로 접했을때,그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행적은 참으로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잠롱시장을 통해서 연상되는 방콕시는 가난은 하지만 깨끗하고 절도있게 살 수 있는 평화롭고 소박한 도시같았다. 사람의 연상작용이란,때로 터무니없이 무책임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것 같다. 지난 여름,한 모임이 그곳에서 열려 처음으로 방콕에 가 보았다. 그 도시에서 1주일쯤 있는 동안,단 한번도 그곳이 잠롱을 시장으로 둔 도시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던 사실을,이번의 「잠롱시장 서울나들이」를 통해서야 상기했다. 「잠롱시장의 방콕」과 「직접 가본 방콕」은 전혀 별개의 도시처럼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매연이 세계에서 몇째 안가도록 심각하고,세계의 차종이란 차종은 다 수입되어 굴러다니는 듯한 도심의 쳇증은,아무리 겸손하게 말해도 서울보다 나을 것이 없다. 무질서한 야시장에 가짜 외제상품이,우리 이태원상가는 『저만큼 가라!』고 할만큼 쌓여있다. 도심 한복판에 적나라한 그림과 실물이 호객을 하는 유흥가가 즐비한데 안에는 옛날 대만에 있던 특수구역과 방불한 연기와 무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실제의 방콕이었다. 일본의 백화점들이 진출하여 금싸라기 같은 요지에 엄청난 쇼핑센터를 지어놓고 성업중이며 온갖 국제상표들이 제휴하여 진출해 있다. 기술이전 문제같은 것으로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싼 노임만을 팔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투자자가 아주 유리해한다고 한다. 우리처럼 부품수가 「10」외 하이테크 산업사회를 지향하여,깨인 머리로 민주화를 지향하는,만만치않고 따지기 좋아하는 시민수준도 아닌 것 같았다. 유니세프 보고에서 『15세 미만 소녀의 매춘이 가장 심각한 도시』로 지목되고 있는 이 도시가,11년째 부부생활도 하지 않고,월급의 대부분을 청소부와 가난한 사람에게 대주며 감동적인 금욕생활을 하고 있는 잠롱시장에게 해결을 고대하고 있는 현실문제는 너무도 많아 보인다. 우리도 부정부패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나는게 사실이다. 민선이든 임명이든,우리가 원하는 서울시장이 부정하고 부패한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시장이 수도사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기왕이면 그렇게 금욕적이고 청결하게 살기를 바라기는 하지만,그것이 도저히 어려울 터인즉 봐주기 위해서라는 뜻이 아니다. 공직자의 역할이 성자같다고 해서 「좋은 공직자」일 것이라는 기대는 온당하지가 않다는 뜻이다. 서울시장쯤 되는 공직자라면 국제적 교양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직위다. 걸맞는 사택과 어울리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시민의 자부심과도 관계가 있다. 하루 한끼만 먹으면서 근검절약하여 일부 가난한 이를 돕는 일보다는 조찬회ㆍ만찬회 등의 외교까지 충분히 하여 시의 위상도 높이고,품위에 적절한 환경에서 좋은 정책을 구상하여 많은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합당한 대우와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좋은 아버지,유능한 남편,멋있는 가장이 될 수 있어야 상식적이고 양식있는 시민생활도 파악하고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개발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이 가슴아파서 도심조성 자체를 유보하는 성직자같은 시장 보다는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어 주변서민대책도 세우고 개발계획도 관철할 수 있는 유능한 공직자가,보다 많은 시민을 위할 수 있다. 더욱이나 다가올 지방자치시대에 표와 연결된 인기를 조성하기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미담행정만 눈독들이는 공직자가 생긴다면 그건 참 곤란한 일일 것 같다. 잠롱시장은 방콕시장이다. 그를 빗대어 서릿발같이 우리 공직자를 질타하는 인사들이 활자매체에도 전파매체에도 수두룩 했었다. 「내 탓이오」 대신 남의 탓에만 서슬이 퍼런듯한 그런 힐책 때문에 건강하게 창의적으로 자기 직분에 임하고 있는 유능한 공직자들까지 참담하게 기운 빠지는 서글픔을 맛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뜻있고 성실하며 유능한 숨은 공직자가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잠롱시장이 배우러왔다는 우리의 『…근면성과 인내심 그리고 단결력으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로 부상한 한국』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잠롱 방콕시장은 분명히 훌륭하다. 그러나 부정부패 안하고 유능한 공직자가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사람들이다.
  • 재벌가 형제들/“상부와 상쟁”… 「숙명의 짐」 나눠진다.

    ◎경영참여ㆍ분가 등 오늘의 현주소를 알아보면/선대 때 대부분 “영토 분할”… 갈등소지 줄여/삼성 “3남 승계” 특이… 현대는 불화 씻어내/금성,인화바탕 위계 엄격… 불협화 적은 편/경영 소외땐 가족유대 단절등 비극도 재벌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왕조사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창업과정에서는 전집안이 동원돼 부의 성을 쌓지만 일단 성이 완성되면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의미에서 총수의 형제들은 항상 주목받아 왔다. 왕조하에서 대군 또는 군은 견제의 대상이 되며 때로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희생되기도 한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낸 예에서 보듯 이들은 항상 잠재적인 「권력에의 도전자」로 치부됐다. 이래서 현대판 영주인 재벌총수의 형제들은 어쩌면 숙명적인 짐을 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조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영토의 분할 또는 새로운 영토개척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대물릴수록 세포분열 ○…국내의 재벌가 「형제」들은 대부분 총수와 가족적 유대로 뭉쳐 상부상조하며 경영상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위상은 현직 총수가 창업자인지 혹은 2ㆍ3세 승계자인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창업자가 총수로 있는 경우 형제들은 창업공신으로서 그룹내의 주요 직책을 맡거나 일부 계열기업을 넘겨받아 독립하는 등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2ㆍ3세 총수의 형제들은 경영일선에서 도외시되기도 하며 승계다툼이 심했던 경우에는 아예 가족적인 교류마저 끊기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대를 물릴수록 세포분열의 조짐이 나타나 이미 분할을 마친 그룹도 적지 않으며 일부 그룹은 분리과정에 있다. 이 경우 독립하는 형제가 적지 않은 지분을 챙겨 본가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성을 쌓기도 했다. ○정명예회장 절대권한 ○…현대그룹은 그룹규모 못지않게 형제의 수가 많은 것으로도 한 몫을 한다. 창업자이면서 아직도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정주영 명예회장(75)은 6남1녀의 장남이면서 8남1녀의 자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다. 정명예회장의 동생 4명(다섯째 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재직중 62년 사망)은 모두 형을 도와 현대그룹을 키워온 일등공신들. 그러나 그룹의 덩치가 커지면서 3명은 독립,별도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둘째인 인영씨(70)는 만도기계등 8개 계열사를 거느린 한라그룹 회장으로,한라그룹 자체가 국내 48대 재벌에 끼이는 또다른 재벌총수이다. 50년대초부터 형과 사업을 함께 하다 77년 분가했다. 분가 이유로는 중동진출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렸다는 것이 현대나 한라측의 공식 설명이지만 현대양행(현 한국중공업) 설립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분리 이후 이 형제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기피할 정도로 단절된 상태였다가 지난 80년 국보위 시절 인영씨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을 계기로 화해했다. 정회장이 자주 면회를 한 것은 물론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곧 풀려날 수 있었던 것. 인영씨가 지난해 7월 고혈압으로 쓰러지자 정회장은 미국의 병원을 주선,치료받도록 했고 해외출장 때마다 들러 격려하곤 했다. 정명예회장은 『한라그룹이 어려우면 현대에서 도와주라』고 지시할 만큼 요즘은 동생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하고 있다. 셋째 순영씨(68ㆍ현대시멘트 회장),여섯째 상영씨(54ㆍ금강 및 고려화학 회장)도 이 무렵 계열기업을 나눠 받고 독립했다. 지금은 넷째 세영씨(62ㆍ현대그룹 회장)만이 그룹에 남아 형을 돕고 있는데,87년 2월 그룹회장을 맡아 사장단회의등 그룹내 일상사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스스로 밝히듯 시베리아개발 등 그룹의 투자를 결정하는 일은 아직도 정명예회장이 직접 처리한다. ○맹희씨,스스로 물러나 ○…삼성 고 이병철회장의 자녀는 모두 4남6녀. 이 가운데 이건희 현회장(48)을 포함한 3남4녀가 적자로,이회장은 적자태생으로는 막내아들이기도 하다. 71년 후계자로 지목돼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자 대권을 이어받았다. 맏형 맹희씨(59)는 그룹경영에 전혀 개입치 않고 있고 둘째 창희씨(57)는 73년 독립,현재 새한미디어를 경영하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이례적인 말자상속을 한데 대해 고 이병철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은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다가 그룹에 혼란이 생기자 자청해 물러났고 2남은 본인이 알맞은 규모의 회사를 경영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형제간 재산분배는 이미 선대 생존시 이루어져 맹희씨는 안국화재 해상보험,창희씨는 제일합섬,맏누님 인희씨(61ㆍ신라호텔 고문)는 고려병원과 신라호텔,여동생 명희씨(47ㆍ신세계백화점 상무)는 신세계백화점의 대주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부장제적 권위 유지 ○…럭키금성 구자경 회장의 2대 그룹회장직 취임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창업자인 고구인회 회장이 69년 세밑에 급작스레 타계하면서 「누가 그룹을 맡을 것인가」가 세인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에는 구인회 회장의 큰 동생인 철회씨(그때 61세ㆍ낙희화학 사장)등 창업자의 형제 4명이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었고 구자경 현회장은 45세에 금성사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기라성 같은 숙부들을 제치고 창업자의 장남인 자경씨가 회장직에 오를까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을 마친 뒤 처음 열린 회의에서자경씨를 회장으로 전격 추대한 사람은 철회씨였고 「정권교체」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구인회가는 인화와 위계질서를 내세우며 철저한 가부장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어 숙질간이나 형제간에 불협화음이 새어 나오는 일이 없다. 현재는 구자경 회장의 형제 가운데 셋째 자학(60ㆍ금성일렉트론 회장) 넷째 자두(58ㆍ희성산업 부회장),여섯째 자극씨(44ㆍ미주분실 전무) 등이 그룹 일을 보고 있고 다섯째 자일씨(55ㆍ일양전기 회장)만이 독자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선대인 회자 항렬을 포함,자자와 본자 등 3대를 합치면 모두 24명이 그룹경영에 참여중이다. ○덕중씨,81년 학계 복귀 ○…대우 김우중회장(55)은 5형제의 넷째. 둘째 관중씨(60ㆍ예비역준장)는 계열사인 항만업체 대창기업을 맡고 있다가 이를 인수,독립했고 셋째 덕중씨(57ㆍ서강대 교수)는 76년부터 대우실업 사장으로 동생일을 돕다가 81년 학교로 돌아갔다. 막내 성중씨(50)만이 대우자동차 사장으로 그룹 일을 보고 있다. ○…한진그룹 조중훈회장(70)의 형제 3명은그룹의 성장과 영욕을 함께 하면서 1명의 이탈자도 없이 현재도 모두 그룹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보기 드문 케이스. 맏이인 중렬씨(75)는 한일개발 부회장,동생인 중건씨(58)가 대한항공 사장, 막내 중식씨(55)는 한일개발 사장이다. ○3개주 연립정부 비유 ○…이미 실질적인 분할을 마쳤거나 준비중인 그룹도 여럿 있다. 효성그룹은 선대 고 조홍제 회장이 3형제간의 기업배분을 마쳤다. 장남인 조석래 회장(55)이 효성물산등 주요기업 14개를 맡았고 둘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53)이 한국타이어 및 한국전지 등 2개사를,셋째인 조욱래 대전피혁 사장(41)이 7개사를 맡았다. 효성측은 이들의 관계를 「3개주로 구성된 연립정부」에 비유한다. 한국화약그룹도 김승연 회장(38)과 김호연 한양유통사장(35),누나 김영혜씨(42) 등 3남매간에 분리될 전망이다. 호연씨가 현재 사장직을 맡고 있는 한양유통과 19%로 최대 주식을 갖고 있는 빙그레를 갖고,누나인 영혜씨는 남편 이동훈씨(42)가 사장으로 재직중인 고려시스템과 자신이 21.3%의 주식을 보유한 제일화재를 가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쌍용그룹은 장남인 김석원 회장(45)이 석준(37ㆍ쌍용건설 사장) 석동씨(30ㆍ쌍용투자증권 과장) 등 동생들을 이끌며 사이좋게 그룹을 경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그룹의 경우는 최원석 회장(47)의 동생 원영씨(36)가 그룹경영과는 별도로 문화예술 계통의 예음그룹을 이끌고 있다. ◎경영권 타툼에 촉각/코오롱,「대권」 싸고 숙질간 마찰 절정/일정기간 경영 분가… 알력 사전 예방 재벌가의 대권승계 과정에는 많은 다툼이 있었다. 2세 형제간에도 있었고 나이 어린 2세와 공이 큰 숙부사이에도 있었다. 코오롱그룹의 창업자인 이원만씨(87)의 동생 원천씨(작고)와 이동찬 현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창업자들은 흔히 그룹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형제들을 분가시킨다. 현재 주요그룹의 핵심 경영진 가운데 형을 도와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는 현대그룹의 정세영 회장과 한진그룹의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정회장은 현대자동차를,조사장은 대한항공을 현재의 위상으로 키우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정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임명한 뒤 『앞으로 10년은 정세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회장에게 그룹을 「맡기는」 기간이 한시적이며 후계자는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아직 2세 승계가 현안으로 떠오르지 않아 조사장의 분가여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나 재계는 언젠가 이들이 그룹을 떠나야 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때 어느 정도 지분을 인정 받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에게 자신이 키운 현대자동차와 대한항공을 나눠 주는 것이 순리라고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들 기업이 그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막중하다는 시각이다.
  • 군과의 갈등ㆍ정치적 미숙이 “불씨”/부토총리 왜 별안간 실각됐나

    ◎대통령ㆍ군 견제로 개혁의지 실현못해/부패ㆍ종족분규 미해결로 민심도 이탈 지난 88년 12월 파키스탄국민들의 「피플스 파워」에 힘입어 회교국 최초의 여성총리에 취임하면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이끌 새 기수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6일 집권 20개월만에 넘어지고 말았다. 부토총리를 전격해임시킨 굴람 이샤크 칸대통령은 해임원인으로 부토의 족벌정치와 정부의 부정부패,정치적 무능력을 지적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직도 파키스탄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군부와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부토는 88년 군부와 칸대통령사이에 이뤄진 타협아래 총리에 임명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군부가 권력을 공유하는 삼두체제가 이뤄짐으로써 부토정부는 취임초기부터 많은 취약점을 안은 허약한 정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취약점은 부토의 정치적 미숙과 겹쳐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부토는 집권 후 지아 울 하크 전대통령치하에서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았거나 친인척,자신과 친밀했던 측근들을 고위직에 대거 임명,족벌정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것이 『부토정부의 비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지적돼 왔는데 이같은 비효율성은 부토 스스로 야당측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는 부정부패문제. 파키스탄공직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지난 4월 부토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자르다리가 파키스탄 최대의 독직사건이라 할 수 있는 부하리공갈ㆍ사취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게 된 일이다. 이 사건에 자르다리가 관련됐음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파키스탄국민들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취임 한달후인 89년 1월 54%에 달했던 부토총리의 인기도가 이 사건 후인 지난 6월 34%로 급락한 것만봐도 이 사건이 부토의 이미지에 얼마나 큰 타격을 가했는지 알 수 있다. 부토의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부토가 물려받은 해결과제들이 너무 많았던데다 총리의 권한행사를 제한하는 파키스탄의 독특한 2원적 정부체제에기인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내각책임제를 기초로 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총리해임권 및 의회해산권을 부여한 2원적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같은 제한속에 부토의 개혁노력은 사사건건 제동이 걸려 지난 20개월간 부토정부가 한 일이라곤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외엔 야당으로부터의 공격을 막는데 급급해왔다. 부토가 취임전 민주화개혁을 위해 내세웠던 수많은 선거 공약들은 결국 공약으로 그치게 됐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부토정부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됐다. 더욱이 부토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신드주에서 인도출신 모하지르족과 토착 신디족간에 발생한 종족간 대립은 올해에만도 1천1백87명의 사망자와 2천4백91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파키스탄 최대의 위기로 지칭될 만큼 악화되고 있다. 이에 군이 동원돼 질서유지에 나섰지만 군이 「범법자」들을 체포하면 뒷전에선 정치적 압력을 받은 경찰이 이들을 다시 석방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군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때문에 군은 군사재판소를 설치,범법자들에 대한 재판권을 군에 부여할 것을 요구했지만 부토총리는 그럴 경우 사실상의 계엄령상태가 되며 민간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며 이를 거부,군부와의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신드주의 종족간 대립진압에 대한 군의 강경방침과 부토총리의 온건방침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하고 만 것이다. 부토는 취임이후 인도 캐슈미르주의 분리운동을 둘러싸고 매우 공격적인 대인도외교정책을 폄으로써 인도와의 마찰을 계속 증폭시켜왔는데 신드주의 내우에 대인도마찰의 외환까지 겹쳐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군부가 이번 부토축출에 나선 것이다. 칸대통령이 군부의 동의 없이는 부토총리를 해임할 수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르자 아슬람 베그 파키스탄 군참모총장은 군이 권력을 잡을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오는 10월 새 총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앞으로 파키스탄 군부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노력은 한걸음 후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변심 정부와 휘발유 분신사/40대 남자

    ◎입원실서 불 질러… 환자 5명도 화상 21일 하오2시15분쯤 서울 구로구 개봉동 353 도영병원 313호 입원실에서 이근호씨(42ㆍ중국음식점 경영ㆍ구로구 오류2동 97)가 이 병원에 입원중이던 내연의 처 박길자씨(35)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함께 숨지고 같은 병실에 입원중이던 이재범씨(71ㆍ여ㆍ구로구 개봉1동) 등 5명이 화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이씨 등 3명은 중태다. 이 병실에 있던 한문순씨(45ㆍ여ㆍ구로구 고척2동)는 『이씨가 플라스틱 휘발유통을 들고 병실로 들어와 갑자기 병상에 누워있던 박씨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지른뒤 박씨의 몸을 부둥켜 안았으며 순식간에 병실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불은 313호 병실내부를 모두 태운뒤 30여분만에 꺼졌다. 불이나자 소방차 5대가 출동,진화작업을 벌였으며 이 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와 병원직원 등 1백여명이 긴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인천의 모스탠드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박씨와 알게돼 지난해 12월부터동거해 왔으며 박씨는 이씨의 잦은 주벽에 불만을 품고 지난7일 가출했다가 14일 낮 구로구 개봉동 N여관에서 이씨와 다시 만나 『함께 다시 살자』는 이씨의 강요를 피해 3층객실에서 뛰어내리다 전치 8주의 부상을 입고 이 병원에 입원했었다.
  • “산디니스타 정권타도”미 지원 결실/장기간 내전에 국민도 변화선택

    투표전날까지도 산디니스타의 패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자신하던 오르테가에게 패배를 안겨준 차모로 후보의 승리는 그녀의 완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난 8년간 우익콘트라 반군을 통해 산디니스타 정권 타도를 시도해온 미국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선거기간중 야당세력들을 집중 지원,오르테가 거세를 통한 니카라과의 친미세력화를 기도했다. 또 유엔ㆍ미주기구(OAS)ㆍ카터 전 미대통령이 이끄는 대규모 국제선거 참관단이 니카라과 현지에서 선거 감시활동에 나선 것도 산디니스타정부의 선거부정을 봉쇄,결과적으로 야당측이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번 차모로 후보가 거둔 승리의 보다 큰 의미는 장기간의 내전과 경제난에 지친 니카라과 국민들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지난 79년 독재자 소모사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산디니스타 정권은 사회주의 이념을 내걸고 토지개혁을 통한 부의 균배등 사회개혁을 단행,초기에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미국은 니카라과의「제2의 쿠바」화를 저지하기 위해 82년부터 콘트라 반군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와함께 대니카라과 경제봉쇄 정책까지 단행,니카라과는 장기 내전으로 인한 각종 폐해와 함께 경제사정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지난 8년간 계속된 대콘트라전서 공식 사망자수는 3만명을 넘어섰고 지난 한햇동안 연1천7백%의 인플레와 실업률25%를 기록했으며 78년 이후 국민들의 실질임금이 90%가 감소하는등 니카라과의 경제는 최악의 상태였다. 오르테가 정권은 최근 국민들의 이러한 불만을 인식해 사회주의 노선을 완화시킨 혼합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약속하고 사유재산 몰수금지와 정치범 석방조치 등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화정책은 타이밍을 놓쳐 등을 돌린 민심을 회유하는데 실패했다. 앞으로 차모로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역시 장기 내전으로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것과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 차모로 정권은 이미 공약한대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르테가 현대통령이 선거결과에 승복할 뜻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정부 이양작업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냐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산디니스타 정권에 철저히 복종해온 군경조직 내부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정부의 협조와 여론의 압력,미국의 경제제재조치 해제등 적극적인 경제부흥 방안이 마련될 경우 정권이양기의 혼란은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의 결과로 79년 이후 미소 두강대국의 대리전화한 니카라과 내전의 명분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 셈이다. 앞으로 미국이 니카라과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본격화하고 내전종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경제문제의 악순환으로 대변돼온 중남미문제 전체가 탈이념화의 새 전기를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차모로는 누구/반체제 남편 피살뒤에 정계 등장/중산층 지지 두터운 「민주화 여인」 25일 실시된 니카라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바리오스 드 차모로(60)후보는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좌익 산디니스타 통치에 반기를 든 중산층 저항세력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상한 인물. 지난 78년 암살을 당함으로써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주도의 니카라과 혁명의 영웅이 된 라 프렌사지의 전편집장 고페드로 요아킴 차모로의 미망인으로 니카라과인들의 존경을 받아온 그녀는 지지자들로부터 「민주주의의 여인」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79년 니카라과 혁명후 산디니스타 군사혁명 정권에 참여했으나 신 정부노선이 너무나 좌익으로 경도돼 있다고 판단,18개월만에 FSLN을 떠난 차모로 여사는 정치적 무경험이 흠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과거의 정적들이 뒤섞여 있는 니카라과 야당세력을 단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평가되어 알력이 심한 13개 야당연합세력인 니카라과 전국야당연합도 지난 9월 그녀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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