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침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세수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7
  • [사설] 역사교과서, 국사편찬위 수정지침 존중해야

    좌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6종의 고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정지침을 제시했다. 국편은 ‘한국 근현대사 검토 및 서술방향’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정통성있는 국가이며 북한과 관련해서는 유일체제의 문제점 등을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로 지적됐던 표현에 대해 구체적인 팩트의 잘잘못을 언급하기보다는 서술방향의 큰 틀을 제시했다. 국편이 제시한 수정지침은 개관 12개항, 단원별 서술방향 37개항 등 모두 49개항이다. 보수와 진보가 갈등을 빚는 핵심사항인 광복 이후의 현대사 부분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을 계승한 정통성있는 국가’‘이승만정부가 정부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북한의 주체사상 및 수령유일 체제의 문제점’‘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 등등의 서술방향을 제시했다. 대체로 옳은 방향설정이라고 본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를 달리하는 사안이 많고, 이미 검증을 통과한 내용을 국가기관이 조목조목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의 다양성과 학문의 개방 차원에서 서로 다른 시각에서 서술한 책을 교과서로 채택하는 검인정교과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편의 지침을 바탕으로 교과서 수정안을 마련하되 지나친 밀어붙이기는 삼갈 것을 권고한다.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우편향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 [시론] 건국 60주년, 생존을 넘어 조화로/김승채 고려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시론] 건국 60주년, 생존을 넘어 조화로/김승채 고려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당태종은 중국정치에서 한나라 이래 500년 동안 혼란을 거듭하던 중국을 통일하고 중화문화의 기초를 닦은 걸출한 대정치가다. 태종은 ‘창업’보다는 선대의 법을 이어받아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히 하는 ‘수문’이 더 어렵다고 하였다. 난세에 여러 군웅을 격파하여 승리를 만들어 냈으니 창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창업 후 군주가 교만하고 방종하면 국가가 쇠잔하고 국민은 더욱 고통받기 때문에 수문이 더 어렵다고 하였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되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장수와 새 삶을 일컫는 환갑을 맞이했다. 국민주권을 보장한 근대국가 성립이라는 문명사적 의미를 갖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60년이 된 것이다. 일제에 항거하고 연합국의 신탁통치에 반대하여,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해방공간에서 극심한 좌우의 대립을 거쳐 우리 민족은 진정한 독립과 자주를 외쳐 비록 절반이었지만 한반도 유일합법 정부인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대한민국의 창업도 말 그대로 온갖 역경을 딛고 이룩한 것이다. 만사일생(萬死一生)으로 창업된 대한민국의 그후 60년은 생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6·25 남침에서 얼마나 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던가.10만㎢의 작고 척박한 땅덩이를 풍요와 부유의 옥토로 만들기 위하여 또 얼마나 많은 날들을 추위와 굶주림 속에 지내왔던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혈투로 맞서 오지 않았던가. 강대국 중심의 냉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빠졌던 분단의 동토를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게 하기 위해 숱한 업신여김을 이겨내 오지 않았던가. 이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고 풍요를 보장받으며 정의와 진실만이 승리한다는 고귀한 생존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지난 60년 동안 선대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이제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을 제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 가장 성공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건국 60년 만에 국민소득 2만 45달러, 세계 13위의 경제대국, 가장 모범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당당한 나라가 된 것이다. 우리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문턱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이제는 창업보다 어렵다는 수문과 수성에 힘써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미국적 발전모델로 불리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능가하는 한국적 가치와 제도에 기초한 신생국의 발전모델, 성공사례가 될 수 있는 서울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 조화를 통한 발전이 이를 실현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 친북과 친미의 등식화로 변질된 진보와 보수, 그리고 자주의 이름으로 분절된 국제관계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분명한 원칙에 입각하여 조화와 공존의 가치를 추구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국회는 올바른 민심을 결집하여 소통의 역할에 충실하며, 시민사회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하여야 한다. 단, 이 모든 일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후대들에게 남겨주어야 한다는 상생과 발전의 미래를 전제하여야 할 것이다. 김승채 고려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씨줄날줄] 제2의 애치슨 라인/김인철 논설위원

    1950년 1월12일 당시 딘 G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깜짝 연설을 했다. 소련과 중국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은 “알래스카 알류샨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결과 남한은 ‘애치슨 라인’으로 불리는, 미 방위선에서 제외됐다. 그 6개월 전인 1949년 6월30일 주한미군이 철수한 데 이어 나온 조치였다. 그리고 5개월여 뒤인 6월25일 한국전이 발발했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협조 아래 남침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지만, 애치슨 라인은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오판을 낳기에 충분했다. 미국이 김일성에게 남침을 감행토록 빌미를 주었다는 주장이 지금도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전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존 리치 전 미 NBC 방송 부사장은 지난 25일 정전 55주년을 맞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가진 강연에서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커다란 실수(Great Mistake)였다.”고 회고했다. 미 정부는 자국의 지명위원회(BGN)가 최근 한국령 독도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원상회복 조치를 요구하자 지록위마(指鹿爲馬)식의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곤살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미 정부의 입장과 관련이 없으며, 미 정부의 입장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역시 “전문가들이 정치적 고려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수십년간 사용해온 한국령 표기를 주권 미지정으로, 리앙크루 바위섬의 변형된 표현의 순서를 다케시마-독도로 바꿔놓고서 ‘미국은 중립’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에게 한국민들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보이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눈 길 어지러이 가지마라/오늘 내가 지난 발자국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조선 후기의 선비 이양연이 남긴 야설(野雪)이 새삼스럽게 기억나는 아침이다. 오늘의 갈지(之)자 행보가 일본의 독도 야욕을 부추기는 ‘제2의 애치슨 라인’이 되었다는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미국의 현명한 조치를 당부한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문화마당] 국적 있는 역사교육/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국문과 교수

    [문화마당] 국적 있는 역사교육/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국문과 교수

    여고 3학년 학생이 6·25동란을 만나, 동생들을 데리고 피란생활을 해야 하는 일시적 ‘소녀가장’이 되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생명들이 속절없이 죽어 넘어지는 현장에서 ‘보랏빛 가지’로 연명하며 숨죽이고 숨어 살았다. 수복된 서울로 돌아온 이후, 노년에 이르도록 일생을 두고 그 전란의 기억을 무슨 형벌처럼 안고 살아야 했다. 그는 6·25가 명백한 전면적 남침이었고 도발의 일차적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의 생생한 목격자였다. 지난 6월25일자로 발간된 재미 수필가 정옥희 선생의 수필집 ‘보랏빛 가지에 내 生을 걸고’에 실린 이야기이다. 팔만 리 시퍼런 태평양 너머 저쪽, 미국 캘리포니아의 미주한국문인협회 전 이사장으로서 미주 문인들의 글쓰기와 세상살이에 올곧은 사표(師表)가 되어온 그의 네 번째 수필집이다. 거기 동족상잔의 전쟁을 온 몸으로 감당한 처절한 체험담과 남북 간 민족사의 공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기록하는 보기 드문 용기가 숨어 있었다. 이 글은, 그러기에 지나간 과거의 추억담이나 반성적 성찰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를 향한 경계와 교훈을 담고 있는, 한 원로 문인의 값있는 조국 사랑을 대변한다. 무지개의 마지막 빛깔 보라색은 그 의미가 ‘사랑’인 점도 눈여겨보아 둘 만하다. 오늘날과 같이 남북 간의 관계가 급전직하로 변화하고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시대에,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략적이고 탄력성이 있어야 마땅할 터이나 더 중요한 것은 명료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절절한 체험기의 저자가 글을 쓴 목적이었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백성에게 미래의 꿈이 있을 리 없다. 근자에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전국 중·고교생 1000여명을 대상으로 ‘안보 안전의식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6·25동란이 언제 일어났는지 물었더니 1950년이라고 정확히 응답한 학생은 43%, 절반 이상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질문에는 48%만이 북한이라고 응답했고 일본과 미국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를 앞세워 국사 가르치기를 소홀히 하는 교육 시스템은 하루속히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를 세운 지 불과 230여년밖에 안 되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것은 건국정신의 근본과 관련이 있고, 지금껏 미국의 학교들은 그 짧은 역사 가르치기에 강력한 중점을 두고 있다. 북한 핵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시비 등이 우리 역사의 실체적 진실 위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임은 불을 보듯 밝은 일이다. 이 현실 인식의 올곧은 근본주의를 훼파할 수 있는 자격이나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한 레토릭을 빌려 오자면,“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올바른 국가관을 갖고 후세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치라.”라고 해야 할 판이다. 우리는 1년을 내다보고 농사를 짓고 10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내다보고 사람을 기른다.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이 지정학적으로 세계열강 가운데 놓여 여러모로 불리한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무역국가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가진 무형의 재산과 그 효용성을 극대화한 덕분이었다. 그 ‘사람’을,‘국적 있는 역사교육’을 통해 참으로 민족적 명운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양육하는 책임이 우리 세대에 있다. 온갖 세월의 풍상을 다 견딘 한 원로 문필가가, 전쟁 체험 세대로서 후대에 전하는 의로운 정신과 자기 개시(開示)의 민족애를 감동적으로 읽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국문과 교수
  • [열린세상] 6월을 지운 가슴에 패랭이꽃을 달자/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6월을 지운 가슴에 패랭이꽃을 달자/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겨우 밤마을을 다닐 무렵부터 들은 할머니 성화가 귀에 못이 박혔다는 유복자 손자 나이 벌써 환갑을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삽짝을 지치지도 못하게 손자를 다그쳤던 할머니는 어느덧 아흔아홉 백수(白壽)에 들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어 삽짝을 대문으로 바꾸었지만, 행여 살아 돌아올지도 모를 아들을 기다리느라 여태 빗장 한번을 못 걸었다는 집안 내력이 딱하다. 지난 현충일 낮 어느 공중파방송이 날린 특집 화면으로 만난 이 집안의 가족사에서 전쟁의 비극이 짙게 묻어났다. 전쟁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쪽지를 받고도 아들의 유해 한줌이 반세기가 가깝도록 돌아오지 못했으니, 할머니는 넋을 놓은 지가 오래였다. 요즘은 태산만큼이나 컸던 근심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는 치매를 앓는다. 손자는 물어물어 찾은 아버지의 전우를 따라 격전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우였던 노병의 아물거리는 기억이 끝내는 안타까웠고, 세월의 무게를 실은 산하는 온통 수풀이었다. 그 짙은 숲을 맴도는 뻐꾸기의 처량한 울음이 포연이 가신 격전장 적막을 다시 깨뜨렸는데, 아버지 유해는 어디서 찾으랴. 이날은 철이른 패랭이꽃이 피어도 좋으련만, 아직은 꽃망울이 다 영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장의 공포와 함께 삶마저 마무리한 주검들이 유해로도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가 13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창설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모두 2000여구의 유해를 찾아냈지만,58%가 부분유해라는 사실에서 처절했던 한국전쟁의 흔적이 너무 선명하다. 그러나 이를 끝낼 날을 기약할 수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격전지로 손꼽는 지역 38군데가 휴전선과 북한 땅이고 보면, 그날은 더욱 멀다. 올6월 실종자를 찾는 미국의 한 사령부가 자국의 6·25 전사자를 수색하기 위해 한강 물 속을 뒤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들은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북한 땅에 들어가 전사자 유해를 계속 발굴한다는 것이다.‘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지극히 간결한 표어를 마음 속에 걸어두고…. 그동안 우리는 남북화해를 한껏 자랑으로 내세운 햇볕정책 끝자락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과 국군포로 송환 같은 껄끄러운 문제를 외면해 왔던 것은 분명하다. 한국전쟁이 실제 일어난 6월25일이 지났다. 이 전쟁을 남침이 아닌, 북침으로 주장한 이른바 수정주의론(修正主義論)은 마침내 6·25를 살가운 언어로 윤색한 ‘통일전쟁’으로 몰아붙인 적이 있다. 이런 연유 때문이었을까,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의 기억을 막 지울 참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이른바 자주적으로 세웠다는 혁명사적지를 찾아 그만 감격하는 엘리트 그룹이 박수를 받은 시대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촛불을 들어 여름을 재촉한 이번 6월 광장 시위 인파 속에서 누구 하나 서글픈 사연을 끌어안은 날 하루 잠깐을 연민(憐愍)하는 목례(目禮)조차 보내지 않았다.6월 광화문 한 건물외벽에 대문짝보다 더 크게 걸린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사랑’에는 “당신의 마음을 애틋하게 사랑하듯/우리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밉든 곱든 간에 이 땅을 딛고,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인 채로 공동체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만큼 살 만한 세상을 만들었다. 김용택 시어와 마찬가지로 지금 사는 세상을 사랑하면서,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이를 굳이 다시 말하면, 바로 숙명(宿命)이다. 비록 6월을 잠시 잊었을지라도,6월을 지운 가슴에 혼자서 저절로 자라는 야생화 패랭이꽃을 달자. 오늘쯤은 포연이 지나간 격전장 양지바른 언덕에도 6∼7월 여름꽃 패랭이가 활짝 피었을 것이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씨줄날줄] 잊혀진 전쟁/ 구본영 논설위원

    한국전의 기원과 관련해 이른바 수정주의 사관이 풍미한 적이 있었다.6·25의 책임을 북한이나 소련에서 찾는 게 아니라 미국에 묻는 게 그 핵심이었다. 전통주의 사관이었던, 북한의 남침설을 부인하면서 남침유도설 등을 제기한 게 골자다.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이 들고 나온 학설이다. 지나친 반공교육에 따른 역풍이었을까. 이런 사관은 1980년대 초 우리 대학가에서도 득세했다. 당시 기자에게도 얼마간 솔깃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붕괴로 각종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스탈린 소련 공산당 총서기가 북한 김일성 수상에게 남침을 승인한 사실 등이 속속 공개되면서다. 이로 인해 남침유도설을 주창한 국내외 학자들도 수세에 몰렸다.‘한국전쟁의 기원 1·2’를 쓴 커밍스조차도 “1권을 쓴 뒤에 구소련의 비밀자료를 보고 매우 놀랐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라인에서 한반도를 의도적으로 제외해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 등이 설 자리를 잃게 된 셈이다. 국내 학자로선 진보적 성향의 박명림 교수가 커밍스를 합리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제는 베이징대 김동길 교수가 러시아의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스탈린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전문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이 전문에서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한국전 시나리오를 짰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며칠 전 이런 학계의 흐름을 무색케 하는 안보의식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고생 절반 이상이 6·25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전쟁 발발 연도를 아는 학생도 드물었다. 이쯤 되면 한국전은 우리 청소년들에겐 이미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E H 카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끊임없이 재해석해 공급돼야겠지만, 그런 역사교육도 좌든 우든 이념이 아니라 정확한 사료를 근거로 해야 할 듯싶다. 과거를 쉬이 잊거나 잘못 해석해 대비를 못하는 민족에게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한국전쟁 개전, 고려인 유성철이 명령”

    6·25전쟁 때 남침을 시작하는 개전 명령은 소련 국적의 고려인이면서 참전한 유성철 북한 인민군 작전국장이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1945년 소련군 장교로 김일성 부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6·25전쟁에 참전한 정상진(90·문학평론가)씨는 24일 카자흐스탄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씨로부터 말을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정씨는 “김일성이 1949년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듬해 4월 다시 소련을 비공식 방문, 끈질긴 설득 끝에 승인을 받아 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파 숙청으로 쫓겨간 정씨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1946년부터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착실히 남침을 준비했고,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공공연하게 무력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승만 도당이 북침해 인민군이 2시간 만에 격퇴한 것으로 선전했다.”고 털어 놨다.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 내야 한다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련군에 자원입대했다는 정씨는 “6·25전쟁 직전에 자신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여단장급)으로 임명돼 참전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1952년 12월초 김일성이 불러 찾아갔더니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선전성 부상에 임명된 직후 고려인 동료인 유 인민군 총부참모장 겸 작전국장(중장)이 평양의 한 술집에서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으며, 내가 6월25일 오전 4시 (공격개시를 위한) 신호탄을 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전후 자신과 유씨를 포함해 소련국적 고려인 428명이 숙청을 당했다.”고 덧붙였다.연합뉴스
  • 청소년 10명중 6명 “6·25 몰라요”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르고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미국을 꼽았다.또 청소년의 80% 이상은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전쟁 등 국가위기시 극복하려는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행정안전부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3일부터 4일간 전국 중·고교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 의식’ 조사결과 23일 밝혀졌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전쟁이 발발한 연도인 1950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은 전체 응답자의 43.2%에 불과했다.10명 중 4명꼴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청소년도 48.7%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2%는 ‘남한’이라고 답했다. 핵개발 등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55.8%가 위협을 느끼면서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선 64.2%가 ‘낮다.’고 답했다. 향후 10년 내 남북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63.1%가 낮게 전망했다. 특히 응답자의 3분의1은 남북 통일에 반대했다. 사회혼란을 일으킨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우리나라 안보에 위협을 주는 나라로는 ‘미국’을 지목했다. 이어 일본(27.7%)과 북한(24.5%)의 순이었다.그러나 안보를 튼실히 하기 위해 손잡아야 하는 협력 국가로도 ‘미국’을 1위(34.6%)로 손꼽아 눈길을 끌었다. 이어 북한과 중국이 각 22.3%,17.7%로 전통 우방인 일본(14.8%)을 제쳤다.반면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위기극복 참여의지’는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냐는 질문에 80.7%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전쟁·대규모 테러 등 국가위기가 발생했을 때 ‘동참하겠다.’는 응답도 85.4%에 달했다.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세계침례교지도자상’ 받아

    김장환 극동방송 사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국 남침례교 총회에서 특별상인 ‘세계침례교지도자상’을 받았다. 김 사장은 2000년 5년 임기의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을 지내며 침례교의 위상을 높였고 세계 선교와 자선 활동에 힘쓴 점을 높이 평가받아 수상했다.
  • 美종교지 “李대통령 신앙이 한국에 좋은 영향”

    美종교지 “李대통령 신앙이 한국에 좋은 영향”

    “이명박 대통령은 종교인…한국의 새 날 밝을 것” 미국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 공식 온라인신문 ‘뱁티스트 프레스’(Baptist Press)가 이명박 대통령을 ‘종교인’으로 소개하며 최근 미국 순방 때도 한국의 목사와 먼저 상의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믿음의 사람으로 본 한국 대통령’(Korean president seen as man of faith)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대통령과 극동방송 사장인 김장환목사의 오랜 친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며 “이들은 지난 3월 29일 청와대에서 만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북한 문제 등을 상의했다.”고 전했다. 또 신문은 “이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된 소망교회에서 꾸준히 주차봉사를 할 정도로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이라는 김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대통령의 종교적인 믿음이 국가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와 관련해 신문은 “지난 11월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새 날이 밝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면서 “특히 한국 기독교계에는 매우 좋은 소식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한편 뱁티스트 프레스는 지난 2005년에 한국의 종교상황에 대해 이틀 동안 특집으로 다루고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당시에는 관련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는 등 한국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 2004년 미국 대선 당시에는 부시 현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편향된 입장을 보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뱁피스트 프레스 보도화면 캡처 (sbcbaptistpress.org)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 서해 미사일 발사] 靑 “확대해석 경계해야”

    북한이 28일 오전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해 청와대는 일단 “통상적인 훈련”이라고 분석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통상적인 훈련으로 보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북한도 남북관계의 경색을 바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 사실을 회의 도중 메모로 보고받았으나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사일 발사와 지난 27일 개성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내 남측 요원 철수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한나라당의 조윤선 대변인은 “북한이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면서 “앞으로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논평했다. 유 대변인은 북과 정부를 동시에 겨냥해 “정부는 대북 화해·협력 기조를 분명히 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해야 한다.”면서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자유선진당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신은경 대변인은 “북한 미사일 발사는 명백한 도발 행위”라면서 “북한이 아직도 남침 야욕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검은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한 원칙과 철학을 정립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고 청와대를 공격했다. 나길회 윤설영기자 kkirina@seoul.co.kr
  • [부고]

    남봉진(전 경기도지사)씨 별세 순철(시그마지오 대표)순호(연세대 의대 교수)순성(이제이텍 대표)은숙(한림대 의대 교수)씨 부친상 이재욱(재미 의사)지정석(화광실업 대표)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3410-6912 김재각(전 홍제초등학교 교장)씨 별세 승회(한전기공 과장)인회(자연과환경 회장)씨 부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010-2231 양시정(용곡중 교사)씨 부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010-2261 김옥현(인천 석남침례교회 목사)병현(신문유통원 감사팀장)씨 모친상 김윤건(전 순천향병원 직원)씨 빙모상 27일 건국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2030-7905 강성목(관악출판사 대표)씨 별세 태구(GS홈쇼핑 EC상품팀장)씨 부친상 장중걸(인도 거주)씨 빙부상 27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29일 오전 5시 (02)3779-2193 이영모(동부화재 법인영업담당역)동모(포천중문의대 교수)씨 부친상 이종근(SDC상사 대표)신춘성(CSK 대표)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9시 (02)3410-6933 정경희(시인)씨 부친상 최준선(성균관대 법대 교수)주영규(고려대 공대 〃)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3410-6902 한영진(전 영일고 교장)씨 별세 대희(서울의대 신경외과 교수)장희(자영업)상희(한상희피부비뇨기과 원장)세희(바이란트치과 〃)씨 부친상 조성순(조이비인후과 원장)김재숙(참소아과 〃)씨 시부상 전병두(한빛로지스 회장)씨 빙부상 한일규(서울대 의대 교수)씨 조부상 27일 서울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 (02)2072-2014 신동규(전 기업은행 영업지원부장)동천(연세대 상경대 교수)씨 모친상 2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2)392-2899 허용주(대전시 공보관실)씨 부친상 신석우(대전CBS 기자)씨 빙부상 27일 충북 옥천장례식장, 발인 29일 오전 8시30분 (043)732-2341 배우성(현대캐피탈 과장)씨 모친상 신성웅(엠로 이사)씨 빙모상 윤예경(전 로이드신갤러리 큐레이터)씨 시모상 2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8일 오전 10시 (02)3010-2235 김종달(전 육군 병참감)씨 별세 남하(대종건관 대표)성하(금양 상무이사)정하(국민대 교수)씨 부친상 이정교(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과장)씨 빙부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9일 오전 7시 (02)3010-2291 이한백(전 기아자동차 부사장)씨 별세 성환(한양대 교수)진환(델파이코리아 부장)씨 부친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10시 (02)3410-6901 손성규(전 전남대 법과대학장)씨 별세 용선(인재아트건설 대표·학교법인 석산학원 이사장)유경(미국 미주리주립대 교수)씨 부친상 국찬표(서강대 교수)이치현(미국 미주리주립대 〃)씨 빙부상 27일 조선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11시30분 (062)231-8902 김영식(약사)선희(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기영(의사)씨 부친상 이종호(연합뉴스 상무)박필성(사업)정광휘(〃)박진혁(의사)씨 빙부상 27일 전남 영암효요양병원, 발인 29일 오전 (061)471-6887 제민호(삼호제강 정비부 차장)씨 부친상 문동진(발레오전장코리아 부장)황태웅(부산일보 사업국 부장)씨 빙부상 27일 동아대병원, 발인 29일 오전 10시 010-2626-6756
  •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를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교과서포럼’은 23일 기존 역사 서술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기파랑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에 대하여 일본에 의존한 경거망동으로 식민지화 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기존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문벌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근대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로 적극평가를 요구했다. 반면 ‘동학란’ 당시 농민군이 요구했다는 탐관오리 처벌 등의 폐정개혁안은 1940년 출간된 ‘역사소설 동학사’에 수록된 내용일 뿐으로, 실제 봉기는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하여 서민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성격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동학은 혁명아니라 복고운동에 불과” 또 일제 지배체제인 1910∼1945년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로 ‘정치적 차별과 억압을 동반한 야만의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의 지배는 총칼로 한국인의 재산을 빼앗는 전근대적 폭력적 수탈이 아니라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대안교과서’ 편찬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교과서포럼’이 2006년 11월30일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으나,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4·19 관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4·19는 민주혁명,5·16은 쿠데타로 정리했다.10월유신은 정변으로 박정희의 비타협적 귄위주의의 정점이었으며, 정통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2·12는 하극상,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했다.6·25는 남침전쟁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체제이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집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좌익무장 반란” 역사용어의 선택도 파격적이어서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후쇼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로지 경제시장주의와 반공주의로만 설명하려는 것으로 과거 조선총독부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12명이 참여했다. 서동철 이문영기자 dcsuh@seoul.co.kr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서울광장] 노 대통령은 대선에서 물러서야/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서울광장] 노 대통령은 대선에서 물러서야/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얘기만 살펴보자.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당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일주일 전에 남북정상은 북쪽의 해주와 서해 5도, NLL 주변을 공동어로 및 평화수역으로 정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말은 국가원수가 할 성격은 아니다. 이제 곧 열릴 남북 총리 회담이나 국방장관 회담에서 자연스레 논의할 사항이다.1999년의 연평해전이나 2002년의 서해교전 모두 NLL을 영토선으로 여긴 탓에 일어나지 않았는가. 노 대통령의 말은 보수세력은 물론,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여기는 군부의 반발을 불렀다.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은 “(북한에)연평도는 목구멍의 비수요, 백령도는 옆구리의 비수” 같은 우리의 요충지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18일 벤처기업 특강에서는 “보수주의는 정의가 없고…보수주의자들은 성장만 되면 다 해결되고, 세금은 깎고…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한보따리”라며 이명박후보를 비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19일에는 외신기자 간담회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 당시 남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북한은 법적으로 패전 당사자가 아니며, 법적으로 현실성이 없다.”고 말해 다시 논란을 불렀다. 22일 국무회의에서는 “복분자를 따려면 가시에 찔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로 권리나 이익을 얻는 일은 없다.”며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백보 양보해서 ‘취재지원방안’이 선진화된 제도라 하더라도, 기자들이 정부종합청사 로비와 휴게실에서 신문지나 방석을 깔고 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표현해야 했을까.24일에는 충남 태안 기업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대선 후보들에게 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헌재에서)위헌 결정이 나는 바람에 행정수도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됐고, 일부 정부부처가 내려오지 못하게 됐다.…정권을 운영해갈 사람들이 명백히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고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만이라도 제대로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후보는 물론 충청권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이다. 25일에는 “(대통합민주신당이) 후보를 뽑아놓고 당내에서 (범여권 후보들의)단일화 얘기를 하는 것은 승복이 아니다.”라며 정동영 후보를 흔들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짚을 것은 짚고 풀 것은 풀어야…”라고 말해 참여정부 계승 여부에 따라 정 후보에 대한 지지의 강도를 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아마 정책이 아니라 말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말에는 배려가 부족하다. 상대방을 자극해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 자신도 지난달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씨와 자세에서 대통령을 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보수 세력을 비판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진보 진영 후보에게 표를 던질지는 의문이다. 이회창씨 재출마설이 살아나는 것도 그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물러서서 대선 무대를 후보들에게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 황진선 편집국 수석부국장 jshwang@seoul.co.kr
  • [사설] ‘남침 사과’ 포기 대통령이 할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의 조건으로 일부 보수 진영에서 요구하는 북측의 남침 사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대통령은 북한이 법적으로 사과 받을 대상이 아니며, 화해·협력을 하자는 데 상대방의 사과를 요구하기 힘들다는 두가지를 들어 “현실성이 없다.”고 밝혔다.“전쟁을 종식할 때 사과와 배상은 패전국에 부과되는 것으로 북한은 법적으로 패전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흠잡기 어렵다. 북한이 6·25전쟁에 패전한 것도 아니며 지금의 남북 상황은 북한과 유엔군의 휴전협정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침에 의해 시작된 전쟁으로 외세를 불러들이고 민족끼리 살육을 저지르게 한 역사적 책임은 논리만을 앞세울 일이 아니다. 또 “사과를 받기 어렵다고 해서, 받지 못했다고 해서 정전체제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것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이런 말은 북측이 사과할 리 없다는 가정을 깔고 있는 인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아가 평화가 목전에 있는데 사과쯤 포기할 수 있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평화체제로의 여정이 시작된 만큼 민족의 불행을 부른 남침이 잘못이었다는 말을 듣고픈 정서가 국민 일반에게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남침 사과로 평화체제 이행을 지체시키려는 극단적 요구도 문제지만 사과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지레 선을 그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이 말했듯 “도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말았어야 옳았다.
  • 盧대통령 “北 남침사과 주장, 법적 현실성 없어”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놓고 대통령에게 강제한 것도 대통령 책임이고, 또 대통령이 하자고 하는 것을 국회에서 반대해서 못하게 된 것도 대통령 책임”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가진 남북정상회담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차이를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최근 반값아파트 책임 논란과 민생·개혁 법안의 국회 계류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어 “자기들끼리 선거에서 경쟁하면서 대통령을 때리는 것을 전략으로 생각하는데, 대통령은 선거판의 바깥에 있으니까 반론할 기회도 없다.”면서 “내각제에서는 선거에서 이길지도 모르니까 레임덕이라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전 당시 남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북한은 법적으로 패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이)도발의 책임을 져야 하며 사과 요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상대방에게 이를 강요할 수 있겠느냐, 현실적으로 화해와 협력의 전제로서 요구할 수 있겠느냐, 그런 불일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통일비용 문제와 관련,“북한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고, 흡수통일도 없을 것”이라면서 “독일통일의 경험과 90년대 중반 북한붕괴론을 기반으로 통일비용론이 대두됐는데, 이미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 없어졌는데도 그 개념이 쓰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생명의 편지/ 권기호 옮김

    얼핏 천적관계처럼 보이는 목사에게 과학자가 편지를 썼다. 내용은 “과학과 종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힘이니 둘이 손을 잡으면 창조물을 구할 수 있다.”는 진중한 것이고, 문체는 정중하다. 편지를 띄운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유명한 생물학자로 1929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태어났다. 개미에 관한 연구에 있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며,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쓴 ‘생명의 편지(권기호 옮김·사이언스 북스 펴냄)’는 남침례교 목사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형식이다.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앨라배마주 숲을 탐험하던 소년에서 세계 곳곳의 오지와 밀림을 누비며 위대한 생물학자로 성장한 한 지성의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곳곳에 녹아 있다. 윌슨은 지구상 동식물 종의 절반이 금세기 말이면 때 이른 멸종을 맞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동식물 종의 4분의 1은 기후 변화만으로도 50년 이내에 멸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멸종 속도는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의 100배에 해당한다. 다음 수십년 안에 그 속도는 최소 1000배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다른 신앙을 가진 모든 종교인이 공유할 수 있는 도덕적 계율이 있다면 “자신과 후세를 위해 아름답고 풍성하고 건강한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가 제안하는 여러 대안들 역시 참신하다. 지구상 생물의 모든 종을 기록해서 어디서든 쉽게 접속해 이용할 수 있는 전자 생물 백과사전 구축,24시간 안에 한 장소에서 최다의 종을 찾아내는 생물번개 등이다. 이러한 제안이 실현되려면 시민 과학자가 제공하는 정보가 필수적이다. 윌슨은 지금까지 1500만∼1800만개의 생물종이 기술되어 왔고, 앞으로도 최소 1000만종이 발견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지식의 대통합을 꿈꾸며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의 통섭(統攝)을 말하던 윌슨이 종교계에 던지는 절박한 제안은 창조물에 대한 사랑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을 10m 남짓 남겨두고 승용차에서 내려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에선 “여기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거죠.”라며 웃음 짓던 조금 전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역사적 순간’의 감격을 다스리기란 산전수전 다 겪은 노 대통령으로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듯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 다녀올 것”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환송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노 대통령은 몸을 돌려 ‘금단의 선’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평상시 아무런 표지도 없는 군사분계선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도보 월경’을 앞두고 50㎝ 폭의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는 듯하더니 성큼 노란 선을 넘어섰다. 노 대통령이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한 개성공단산 시계의 시침은 정확히 9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역사적 순간은 CNN 등 외신의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타전됐다. 이날 노 대통령의 도보 월경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정부측 평가다. ●방북길은 한국전 당시 남침·북진로 노 대통령 일행이 군사분계선을 거쳐 평양으로 가기 위해 이용한 경의선 남북연결 도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로이자 유엔군의 북진로이기도 했던 이 길은 지뢰제거 작업 등을 거쳐 2002년 9월에 착공,2003년 10월 개통됐다. 이후 도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뿐 아니라 각종 민간교류의 물류 통로로 활용되면서, 대립의 상징물에서 화해와 협력의 소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이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면서 38선을 넘을 때도 이 육로를 이용했다. 한편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것을 기념해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우리측 제2통문 앞에 3.6m 높이의 표지석을 세웠다. 표면에는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2007년 10월2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김정석 청와대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지어 친필로 기록했다고 전했다. ●“욕심 안 부리겠지만 몸 사리지도 않을 것”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대국민 인사를 통해 회담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역사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푸른 빛 넥타이에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도 비교적 밝았다. 권 여사는 자주색 정장을 입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역사는 단번에 열 걸음 나아가기가 어렵다.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회담에 응하는 소감을 밝힌 뒤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고 6자회담 진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잘 맞춰줘야 하는 때”라며 회담의 배경을 설명했다.10여분 간의 간담회를 마친 노 대통령은 본관 앞에 준비된 연단에 올라 5분간 방북에 앞선 ‘대국민 인사’를 발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태극기와 봉황 문장 깃발이 달린 전용차에 올라 7시55분쯤 청와대를 나섰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길을 지나 시청앞∼서소문∼마포∼강변북로∼자유로 코스로 방북길에 올랐다. ●시민들 차분… 보수단체 반대성명도 서울시민들은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는 노 대통령 일행을 차분한 기대 속에 환송했다. 방북단을 태운 차량 행렬이 도라산 남북 출입사무소(CIQ)로 향하는 연도에는 출근길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고 가정이나 직장에 있는 시민들도 TV를 통해 출발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아침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앞 인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을 환송하기 위해 ‘참여정부 평가포럼’ 회원과 시민 등 수백명이 몰렸다. 이들은 오전 7시쯤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5천만개의 마음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을 걸고 회원과 시민들에게 한반도기와 색색의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반면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 소속 50여명은 이날 노 대통령 차량 행렬이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정부중앙청사 앞 네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북핵폐기 없이 평화 없다’,‘서해북방한계선 그대로 유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적 합의와 진정한 화해정신에 입각해 진행되지 않고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대선에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産 로만손 시계 착용 눈길 노 대통령이 이날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했다는 손목시계도 눈길을 끌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국산 로만손 시계로 시중에서 19만 8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산 제품을 일부러 선택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귀띔했다.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착용한 것과 같은 ‘TM7238L’ 모델을 9세트 더 구입해 김정일 위원장 등 북측 회담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담의 공식수행원 13명 전원은 방북 기간 왼쪽 가슴에 회담을 위해 특별 제작한 휘장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 무궁화 모양으로 흰색 바탕 위에 왼쪽에 태극기, 오른쪽에는 한반도기를 배치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 [노대통령 기자·경제인 간담] “참여정부가 6자 분위기 편승”

    한나라당은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긴급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연루 의혹’ 사건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명박 대선 후보는 청와대가 이날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특별한 반응없이 그저 웃어 넘겼다고 박형준 대변인이 전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을지로 대한민국헌정회를 방문,“대통령도 헌법 아래에 있고 누구도 헌법에 도전할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철승 헌정회장에게 국가 정체성 등에 대한 우려를 듣고 “지난 10년 동안의 혼돈 속에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이 흔들렸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이어 이 후보는 “건국 60주년인 2008년에 열릴 새로운 시대에는 헌법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발언에 대해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 대통령 특유의 억지와 적반하장식 논리다. 헌법과 법 위에 있었던 사람은 바로 노 대통령이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 대변인은 또 “신정아, 정윤재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기다린다며 시간을 벌 게 아니라, 지금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정권의 도덕성은 충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즉각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노 대통령이 경제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후보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데 대해서는 박형준 대변인이 역공세를 취했다. 박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억지비판”이라면서 “핵폐기를 전제로 한 경제협력과 신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상 등이 포함된 이른바 ‘MB독트린’은 이 후보가 지난 2월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책이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북핵폐기라는 원칙을 지킨다는 점에서 이 후보의 기본관점은 노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면서 “오히려 참여정부 정책이 6자회담 분위기에 편승해 나온 것”이라고 쏘아 붙였다. 한편 이날 이철승 헌정회장은 “핵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 재래식 무기나 6·25 남침 사과문제 등도 있어 인기몰이 정책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며 노 대통령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 후보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이 후보는 “남북관계에 대해 심려의 말씀을 하셨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저의 정체성은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