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남자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장마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부활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유성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용상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128
  • 무작정 상경한 두 처녀, 탈농촌·도시화의 상처 껴안은 건 용서와 화해

    무작정 상경한 두 처녀, 탈농촌·도시화의 상처 껴안은 건 용서와 화해

    1950년대 농촌서 서울로 도망간 두 여성일확천금 꿈꿨지만 현실은 뒷골목 여인신부 찾아온 두 남자 ‘화해의 손’ 내밀어무작정 상경 경계·분열된 국민감정 통합 김정애 KBS 노래자랑서 눈에 띄어 데뷔경쾌한 노래로 슬픔에도 새 힘 생성시켜젊은이들이 떠나고 아기 울음소리마저 끊긴 농촌의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재홍의 ‘물방아 도는 내력’(1953), 배호의 ‘두메산골’(1963), 나훈아의 ‘강촌에 살고 싶네’(1971),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1973), 그리고 배일호의 ‘신토불이’(1993)까지 농촌을 지키려는 의식이 깃든 노래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농촌 공동화에 따른 부작용을 염려하는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 같은 시골 총각은 남자도 아닌가/ 여자 여자 없소 여자 여자 없소/ 나 좀 장가들게 해 줘’. 필자가 작곡한 이용주의 ‘여자 없소’(2020)도 마찬가지다. 농촌 인구의 대대적인 도시 이동을 예견했던 노래가 있으니 바로 김정애의 ‘앵두나무 처녀’(1956)다. 중장년층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노래는 신세계를 동경하는 당대 사람들의 심리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휴먼 드라마가 담겨 있어 더욱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다.‘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업 본위의 산업 구조를 채 벗어나지 못했던 1950년대. 농촌에서는 일손 하나가 아쉽던 시절이지만, 농업에 기반한 생활은 육체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 늘 고달프기만 했다. 더구나 여성들은 살림과 출산, 육아 및 노동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고, 설거지를 마치면 일꾼들의 새참을 준비해 논밭으로 가야 했다. 일꾼들이 새참을 먹을 동안 여성들은 쉬지도 못하고 잡초나 피를 뽑거나 밭고랑의 김을 맸다. 점심을 나르고 또 새참을 나르고 저녁밥을 지어 올리고 난 후 온 식구들이 잠들어도 일거리는 산적해 있었다. 인두와 다리미로 옷과 동정에 풀을 먹여 다렸고, 물레로 실을 잣고 베틀을 놓아 실을 뽑고 옷감을 짜야 했다. 여성들의 삶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강행군의 연속이었고, 이러한 고된 생활에 진력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농촌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한 마을의 두 처녀가 서울로 도망을 가면서부터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 상황을 그리면서 ‘앵두나무 처녀’는 시작된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라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우물가는 빨래터와 함께 동네 아낙네들의 정보교환장이다. 아낙네들은 우물에서 양동이에 물을 긷는 그 짧은 순간에 간밤에 동네에서 일어난 긴급 뉴스를 죄다 공유한다. 앵두나무가 둘러선 우물가에서 듣자 하니 ‘서울은 온 거리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전기가 들어와 네온불이 현란하게 돌아가며 빌딩이 하늘 끝 간 데까지 맞닿은 별천지’라는 것이다. 농사일에 이골이 나 있던 이쁜이와 금순이는 그 말을 듣고 이내 단봇짐을 꾸려 서울로 내뺐다. 노랫말 중에 나오는 ‘물동이’는 살림을, ‘호미자루’는 농사일을 대표하는 환유법으로 그것들을 내던졌다는 것은 살림과 농사일을 내팽개쳤다는 뜻이다.탈농촌화는 이때부터 서서히 시작돼 1960년대 이후 도시화의 물결이 대대적으로 이뤄진다. 서울에 가면 일확천금과 벼락출세를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안고 가난했던 농촌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쁜이와 금순이를 환영할 도시는 없었으니 이게 문제였다. 도망간 신붓감을 찾으러 서울로 올라간 복돌이와 삼용이는 뒷골목에서 웃음을 파는 ‘에레나’(주점에서 일하는 여성이 사용한 가명)가 된 이쁜이와 금순이를 발견한다. 자신의 신붓감이 뒷골목 여인이 돼 있는 것을 목격한다면 우리는 선뜻 용서해 줄 아량이 있을까. 더구나 이 당시는 여성들에게 정조를 강요하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때다. 그런데 복돌이는 ‘헛고생을 말고서 고향에 가자’며 이쁜이를 달랜다. 자신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준 복돌이의 마음에 이쁜이는 눈물을 쏟는다. 용서를 통해 이쁜이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준 복돌이의 마음에는 6·25전쟁은 물론 멀리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반목하고 분열된 국민 감정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대 정신이 은근하게 녹아 있다. ‘앵두나무 처녀’는 1956년 도미도레코드에서 발표됐다. 작사가 천봉이 가사를, 작곡가 한복남이 곡을 썼다. 경쾌한 스윙 리듬에 실린 김정애의 노래는 봄볕처럼 따뜻하고 해맑다. 김정애의 가수 데뷔는 시작이 사뭇 특이했다. KBS에서 처음으로 노래자랑이 시작돼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전국 각지에서 공개방송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때 대구에 주둔하던 공군에서 비행기를 제공하며 방송을 유치했고 대구 군부대에서 전화 교환 업무를 담당하던 김정애는 노래자랑에 나가게 된다. 김정애는 백설희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을 불렀고 방송 관계자의 눈에 띄어 KBS 전속가수가 된다. 이후 ‘앵두나무 처녀’와 ‘닐니리 맘보’ 등을 발표하면서 스타 반열에 오른다. 30여년간 가수 활동에 전념한 그는 1987년 간경화로 세상을 뜨기 한 달 전까지 무대에 올랐다. 민요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 민족은 시름겨운 일상이나 한을 노래할 때 오히려 경쾌한 리듬에 노래한다. 슬픔을 슬픔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새로운 힘을 생성시키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앵두나무 처녀’도 무작정 상경에 경종을 울리는 골계미, 에레나가 된 두 처녀의 비극미, 그리고 용서와 화해로 막을 내리는 우아미까지 다양한 미의식의 전환을 경쾌한 스윙 리듬을 통해 들려준다. 이 노래는 탈농촌과 도시화 물결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 시대의 단면도로서 유행가의 본령을 보여 준다. 또한 상처를 용서와 화해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교훈을 던진다. 작곡가·문학박사
  •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내 자식이 성소수자일 리 없어”… 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지원 한국언론진흥재단
  •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단독]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해”… ‘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교사들 성 정체성 농담에 ‘마음의 상처’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쇼트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우팅(43.8%) 피해가 컸다.●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 신청은 ‘0’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의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질책했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은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되지 않는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아우팅 우려 때문에 성소수자 학생이 권리 구제 신청을 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트랜스젠더 자녀 회피하는 부모들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없던 일이 됐다. ●굿판 벌인 아버지… 화내고 때리는 어머니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런 이유에서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낳아 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독립하기 전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가스를 사 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세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았고, 가정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온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학업·진로 포기한 아이들 저임금 노동이 현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 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 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 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이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별기획팀 최훈진·김주연·민나리·최영권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트랜스 남성’ 성 정체성 찾은 희원이 학교에 도움 요청했지만 자퇴 종용중고생 학업 중단율 대비 27배 높아 희원(17·가명)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에게 늘 믿음직스러운 맏딸이자 동생에게는 하나뿐인 언니였지만 희원이는 스스로 남자라고 느꼈다. 집 화장실에서는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 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과호흡으로 쓰러진 희원이는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자퇴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단독] “넌 여자냐, 남자냐” 문제아 낙인찍은 학교… 트랜스젠더 청소년 22%, 결국 교문 밖으로

    ‘트랜스 남성’ 성 정체성 찾은 희원이학교에 도움 요청했지만 자퇴 종용중고생 학업 중단율 대비 27배 높아“사내아이는 우는 거 아니야. 얼른 눈물 뚝 그쳐.” 10년 전 유치원 선생님은 울며불며 떼쓰는 남자 아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일곱 살 희원(17·가명)이는 선생님에게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집에선 맏딸, 유치원에선 여자 아이였던 희원이는 그러나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집에선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 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과호흡으로 쓰러진 희원이는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자퇴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단독]‘성별 이분법’ 학교서 버림받는 그들…등돌린 가정서 떠나는 그들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태어났을 때 부여받은 성별(지정 성별)이 그들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들에게 가혹하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바뀌는 신체는 좌절감을 안긴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기조차 힘든 이들도 있다. 가정과 학교는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온전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태어난 대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게 된다. 마음 속 시한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쉽게 분노에 휩싸이고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렇게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홀로 걷는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인 학교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학교란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감옥이다. 남녀 분반, 남녀 학번, 남녀 기숙사, 남녀 교복, 남녀 화장실. 성별 이분법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 속엔 조급함이 싹튼다. “내가 누군지 숨겨야 한다. 하루 빨리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을 받아 법적 성별정정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생존전략이다. 또래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게 느껴지면 ‘이상한 애’라며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한다. 트랜스 남성 박도윤(22·가명)씨도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 전학 간 학교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갔더니 “쟤는 여잔데 왜 저래?”라며 친구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도윤씨는 ‘여성’을 연기했다.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도윤씨는 온라인에서 트랜스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다시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남학생들과 어울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교사는 도윤씨를 농담거리로 삼았다. 숏커트에 바지 교복을 입은 도윤씨에게 고등학교 선생님은 “너 설마 트랜스젠더 아니지?”라고 추궁했다. 자퇴 후 다니던 꿈드림 센터에서 만난 청소년 지도사는 “너 갑자기 커밍아웃하면 안 된다. 선생님, 너무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 정체성을 공격받는 일은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도윤씨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뒤 친한 선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난 신경 안 써.” 첫 반응은 덤덤했다. 얼마 후 대뜸 성소수자를 폭행한 범죄자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보내며 “킹왕짱이지 않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얼굴에 수염이 난 도윤씨가 “남자 화장실은 대변기 칸이 적어 가기가 꺼려진다”고 토로하자, 선배는 “넌 남성기가 없으니까 여자 화장실을 써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이 존중한다는 게 아니라 ‘너가 트랜스젠더인데 뭐 어쩌라고?’라는 뜻이었다. “친구한테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런 일들이 쌓이니 쉽지 않아요. 저도 지쳤고요.” 도윤씨는 말했다. 서울신문 조사에 응한 224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중·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8.8%나 됐다. 직접 언어적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24.1%였다. 그러나 10명 중 8명은 그저 참았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76.7%)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69.8%) 때문이었다. 대응하면 오히려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불안감(67.4%)도 높았다. 동료 학생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경우는 32.6%로 교사에 비해 더 많았다. 특히 언어적 폭력(74.0%)이나 아웃팅(43.8%) 피해가 컸다. 성소수자 학생 권리구제는 ‘0’…기댈곳 없어 학교 스스로 관둬 차별과 혐오를 피해 벽장 속에 숨을수록 우울감은 깊어진다. 여성과 남성 어느쪽으로도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 여성 윤슬(21·가명)씨는 중2 때부터 고2 때까지 기억이 흐릿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성적은 뚝뚝 떨어졌다. 철저히 남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학교가 싫었다. ‘사춘기’를 명분 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나누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숨통이 막힐 때면 머리라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교사들은 슬씨의 머리가 귀를 덮을 길이가 될 즈음이면, 바로 “남자가 그게 뭐냐”며 트집을 잡았다. 신경은 날로 예민해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받으면 “선생님이 수업을 그딴 식으로 하니까 잔다”고 반항했다. 고2 때는 등교 거부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퇴 얘기를 꺼내자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사유조차 묻지 않고 기다렸다는듯 슬씨를 자퇴 처리했다. 학업을 중단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가운데 71.4%는 학업 중단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학교에서 마주하는 차별적 대우’(68.6%),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54.3%) 등을 꼽았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국가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센터 등 외부 기관을 통해 학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버티다 결국 자퇴를 택하는 이유다. 최희원(17·가명)씨는 올 5월 자퇴 결정을 내리기 전 인권위에 진정을 낼까도 생각했지만 포기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해도 언제 권고가 나올지도 모르고 강제성은 없잖아요. 선생님과 관계가 틀어지면 학교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말이 쓰일 수 있다는 걱정도 컸고요.” 희원씨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서울, 경기, 광주 등 몇 안 된다. 그중에서도 조례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정도다. 하형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조사관은 “서울은 다른 지역과 달리 학생인권조례에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지향(성적 끌림)과 성 정체성을 명시했다”면서도 “성소수자 권리구제 신청을 하는 순간 정체성이 원치 않게 공개되기 때문에 여전히 학생들은 상담기관을 찾을 뿐 직접 구제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도윤씨는 잘 살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자퇴를 택했지만, 지금도 졸업식에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검정고시로 졸업했는데 왜 학교에 있지’라고 의구심을 품다가 ‘꿈인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납득한다. “남들은 초·중·고는 그냥 졸업하잖아요. 자퇴한 데 아쉬움이 남나봐요.” 등 돌린 부모 “너 손목이 왜 그러니. 당장 말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트랜스 남성 송우현(21·가명)씨의 손목에서 상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추궁에 우현씨는 “나는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실토했다. 내심 어머니가 도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른 여자애들하고 성향이 조금 다르다고 네가 남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를 부정했다. 입버릇처럼 ‘나는 진보’라고 자부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나도 여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탐난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은 여성의 자리가 있다.” 우현씨의 우발적 ‘커밍아웃’은 그렇게 없던 일이 됐다. 부모님의 지지를 바랐던 우현씨는 다시 용기를 냈다. “학교에 다니며 성별을 바꾸기 위한 의료적 조치(트랜지션)를 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 7살 터울인 동생이 잠든 뒤에야 부모님은 우현씨를 불렀다. 그때 들은 말 대부분을 애써 기억에서 지웠지만, 아버지의 한 마디는 잊을 수 없다. “애초에 너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말해도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네가 커서 알아서 해라.” 자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대부분 일단 회피한다. 자녀를 위협하면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에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성소수자의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우현씨는 오랫동안 부모를 설득한 끝에 고2 때 학교를 그만두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두어달이 지나자 수염도 났다. 신체에 대한 성별 불일치감은 줄었지만 부모님은 멀어졌다. 어머니는 느닷없이 수도원으로 떠났다. “제가 변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거 같아요. 한달 뒤에 엄마가 돌아오고 저는 집에서 쫓겨났어요. 집에 전화했는데, 지금 들어가면 맞아죽겠다 싶었죠. 아는 사람 집을 1주일씩 전전하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인 ‘띵동’에 도와달라고 했죠.” 폭력에 전환치료 시도까지…가출은 이들의 생존법 대다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부모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논바이너리 트랜스 남성 신동휘(20·가명)씨는 생각한다. “엄마나 아빠랑 친밀하게 지내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요. 낳아준 부모님한테도 솔직하지 못한데, 사회에 나가서 이런 존재인 나를, 이런 성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죠.” 무심코 던진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상처를 주는 건 마찬가지다. 도윤씨는 회상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동성애자가 ‘더럽다’고 해서 겁이 났어요. 살려면 독립하기 전에 말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죠.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버지가 돈까스를 사주겠다며 저를 이상한 절에 데려가서 굿을 벌였어요. 저한테 남자 귀신이 붙었다면서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어머니의 경우는 46.0%, 아버지는 34.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15~18세는 더 드물다. 이들 중 어머니가 당사자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건 31.8%, 아버지가 아는 건 22.7%에 불과했다. 정체성을 알게 된 가족들 대부분 모른 체(55.2%) 하거나 대화를 단절(40.5%)했다. 언어적 혹은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건 44.8%나 됐고, 원하는 성별 표현을 저지당한 경우도 40.5%에 달했다. 전환치료(15.5%)를 강요당하거나, 경제적 지원이 끊긴 경우(13.8%)도 적지 않다. 12.9%는 신체적 폭력에 노출됐다. 트랜스 여성인 대학생 김신엽(22)씨도 어머니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간 그를 만나러 온 어머니는 우연히 ‘김신엽, 여성 인칭대명사(she/her)’라고 쓰인 이름표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거나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잠을 자는 그의 머리를 쥐어박거나 물건을 던질 때도 있었다. 몸을 더듬는 어머니에게 “이건 성추행”이라며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내 아들 몸인데 뭐가 어떠냐”고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신엽씨는 어린 동생에게 가족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학대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작정 가족을 떠나 동아리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탈가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다. 15~18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62.1%는 가출을 고민했고, 실제 12.2%는 가출을 택했다. 성인이 된 후엔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높아졌다. 19~24세 응답자 가운데 75.9%는 가출을 고려했고, 41.7%가 집을 떠났다. 이들은 평균 16살의 나이에 자유(65.5%)를 찾고, 가정 폭력(49.1%)과 정체성에 따른 갈등(45.5%)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미 허물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띵동의 정용림 활동가는 “정신과 상담이나 진단에 대한 부모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청소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탈가정한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생계형 노동자가 된 아이들 집을 떠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다. 생계를 이어나가면서 비급여인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받으려면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거나,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 부담은 더 무겁다. 그래서 불합리한 처우도, 고강도 노동도 이를 악물고 견딘다. 도윤씨는 18살 무렵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문난 ‘악덕 사장’이던 고깃집 주인은 빨리 움직이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한달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6개월을 꼬박 일하자 300만원이 모였다. 가슴 절제술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동휘씨는 17살에 자퇴하면서 어머니에게 ‘트랜스 남성’이라고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집을 떠나 또래 성소수자 친구와 원룸에서 살았다. 남녀로 구분되는 청소년 쉼터 역시 동휘씨에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청소년이라고 잘 뽑아주지도 않는데 트랜스젠더는 성별까지 애매모호해 보이잖아요. 법적 성별이 여성이니까 서비스직이면 ‘여성다움’을 원하고요. 그러니까 힘든 일을 할 수밖에요.” 동휘씨는 당근마켓에 중고 물품 판매자로 위장한 글을 올려 이불을 팔기도 했고, 공장에서 도시락도 만들었다. 고정 알바가 안 구해지면 쿠팡 물류센터나 택배 상하차에서 ‘일용직’을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트랜스 남성 박영(18)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알바를 하다 얼마 전 잘렸다. 대표는 “트랜스젠더여도 이해한다”고 했지만, 가슴 절제술을 받기 위해 잠시 일을 쉰 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 9월 영씨가 성별을 식별할 수 있는 주민등록증을 받은 뒤 일자리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저는 힘을 쓰는 일을 많이 하는데, 산업재해 사고라도 당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의 이름으로 일하다 임금이 떼이면 어떻게 항의하고요.” 청소년 트렌스젠더 모임인 튤립연대의 활동가 A씨는 “학교와 가정, 사회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라’고 말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 ‘마음연결’ 02-745-9191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카카오톡 친구 ‘띵동119’)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단독]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 낙인 찍은 학교 떠났다

    [단독]청소년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 낙인 찍은 학교 떠났다

    “사내 아이는 우는 거 아니야. 얼른 눈물 뚝 그쳐.” 유치원 선생님은 울며불며 떼 쓰는 남자 아이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일곱살 희원이(17·가명)는 선생님에게서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희원이는 맏딸이자 여자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원이는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해본 기억이 없다. 집에서 늘 서서 소변을 봤고, 초등학교 때는 남성 호모소셜(동성끼리만 교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가입했다. 사춘기가 되자 희원이의 몸은 낯설게 변했다. 봉긋해진 가슴,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생리. 혼란스러웠다. “몸이 자꾸만 제가 여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했어요.” ‘논바이너리’(남성과 여성 어느 성별로도 정의하지 않는 것) 트랜스 남성. 열다섯살 희원이가 분투 끝에 찾은 성 정체성이다. 학교는 희원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희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막무가내로 “따님은 동성애자”라고 말한 것도 담임 선생님이었다. 교사들은 ‘넌 여자냐, 남자냐’라는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다. 학생들은 떼지어 몰려와 ‘역겹다’고 소리쳤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자 “네가 먼저 불쾌한 행동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학교도 날 지켜주지 않을 줄은 몰랐어요.” 희원이의 불안 증세는 심해졌다. 어느 날엔 수업 중 호흡이 가빠져 숨이 안쉬어졌다. 선생님이 성확정 수술 후 강제 전역 조치된 트랜스 여성 고 변희수 전 하사를 ‘남자 트랜스젠더 군인’으로 언급한 게 뇌관이었다. “제가 죽으면 저를 여자로 기억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희원이는 결국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자퇴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성별을 태어날 때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5명 중 1명꼴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은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지난달 13~17일 리서치 전문회사 엠브레인과 함께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 224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전체 응답자의 21.9%가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18세 청소년 66명 가운데 13.6%는 현재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고등학교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0.8%에 불과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평균에 비해 27배나 높은 것이다.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처한 현실을 조명하기 위해 ‘벼랑 끝, 홀로 선 그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서는 8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특별기획팀 zoomin@seoul.co.kr ※ 서울신문의 ‘벼랑 끝 홀로 선 그들-2021 청소년 트랜스젠더 보고서’ 기획기사는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transyouth/■어떻게 취재했나 서울신문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학교생활, 가족 관계, 노동, 성별정정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3일부터 17일까지 15~24세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조사에는 224명이 참여했다. 15~18세 응답자는 전체의 29.5%인 66명, 19~24세 응답자는 70.5%인 158명이었다. 출생 시 성별이 여성인 응답자는 67.9%인 152명, 남성은 32.1%인 72명으로 집계됐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여성이라는 응답은 21.8%인 47명, 남성은 27.7%인 62명이었다. 남녀 어느 쪽으로도 규정하지 않는다는 ‘논바이너리’는 51.3%인 12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 중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일부는 약 4개월 간격을 두고 2차 인터뷰를 가졌다.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성소수자부모모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해방전선 등의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나우뉴스]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나우뉴스] 죽은 아내 못잊어 냉동인간 만든 남편의 4년 후 선택은

    사망한 아내를 냉동 보존한 남편이 새 인연 앞에서 망설이는 사연이 공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남성 구이쥔민 씨다. 구이 씨는 지난 2017년 중국에서는 최초의 냉동인간이 된 여성 잔원리엔(당시 47세)씨의 남편으로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지난 2015년 폐암 진단 후 약 2년 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17년 5월 –196℃, 2000L 액체질소 탱크에 잠들었다. 계획대로라면 구이 씨의 아내는 냉동인간이 된 지 50년이 지난 오는 2067년 잠에서 깨어난다. 당시 중국에서는 시행된 적 없었던 냉동인간의 첫 사례가 된 잔 씨의 호흡기를 직접 제거한 이도 남편 구이 씨였다. 그렇게 잔 씨는 남편의 동의 하에 현재 산둥성 인펑 생명과학연구소 액체질소관 안에 냉동돼 잠들어 있는 상태다. 당시 아내를 냉동시킨 구이 씨의 사연은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총 300여명의 의료진의 자문과 미국에서 초빙한 인체 냉동분야 전문가 아론 드레이크 박사도 잔 씨 냉동인간 수술에 참여했다. 당시 언론들은 잔 씨의 냉동인간 수술에 대해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독자적인 인체 냉동기관을 가진 국가가 됐다’면서 대대적인 홍보 기사를 이어갔다. 덕분에 남편 구이 씨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때문에 이후 수 년이 지난 최근 그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세간의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반면 구이 씨는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대해 “만약 내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오히려 축하해주고 새 인연을 만들어갈 것을 독려했을 것”이라면서 “나 역시 내가 만약 아내처럼 냉동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처지였다면, 아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움에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이 씨와 만남을 시작한 연인은 10살 연하의 여성이다. 그는 “새 여자친구의 개인 정보와 신상에 대해 누리꾼들이 조사해 공유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면서 “하지만 아내가 잠들어 있는 연구실에도 동행해 아내 허락을 이미 받았다. 오히려 내 새 여자친구는 내 아내와 나의 애틋한 사연을 알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털어놨다. 구이 씨는 미래에 깨어날 냉동 상태의 아내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 일은 그때가서 생각해 결정하면 될 문제다”면서 “누군가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냉동시킨 뒤 그녀가 깨어날 날만은 손꼽아 기다리는 고통을 경험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총격 동영상 있는데도 남편 죽인 남자 체포 안해” 텍사스 여성 절규

    “총격 동영상 있는데도 남편 죽인 남자 체포 안해” 텍사스 여성 절규

    “제발 제발 경찰에게 즉각 움직여달라고 요청드린다. 검찰총장님에게도 행동해주십사 부탁드린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남편 채드 리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나온 제니퍼 리드는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러벅 법원 청사 길건너 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0여명의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울먹이며 말했다고 러벅 어밸랜치저널이 보도했다. 전처와 양육권 다툼을 벌이던 남편을 따라 지난달 5일 남편의 전처가 사는 집을 방문했던 제니퍼는 멀찍이서 카메라로 현장 상황을 담고 있었는데 남편 전처와 함께 사는 남자친구가 방아쇠를 당겨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을 담게 됐다. 그래도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범인의 전 부인이 판사라 그런 것이다 싶었다. 해서 지난달 28일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렇게 또 열흘이 흘렀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채드는 아들을 찾으려고 카일 캐루스의 집에 찾아갔다. 카일은 토지개발 업자로 지방법원 판사인 앤 마리 캐루스의 전 남편이다. 채드와 그의 전 부인이 아들 양육권을 다투던 중 아들이 사라진 것인데 채드는 아들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양육권 합의에 따라 한 시간 전에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캐루스 부부가 데려갔다고 채드는 주장했다. 둘의 언쟁이 격화됐고, 카일이 라이플 소총을 들고 나와 끼어들었다. 옥신각신하다 카일이 채드의 발 아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채드는 화가 잔뜩 나 총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카일이 몇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뒤를 돌아 이번에는 정확히 채드의 몸통을 향해 두 차례 방아쇠를 당겼다. 채드는 바닥에 쓰러졌는데 곧바로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경찰은 목숨을 잃을까봐 방아쇠를 당겼다는 카일의 주장에 동조하는지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카일을 체포하지 않았다. 채드는 무장도 하지 않았고, 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그렇다고 카일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리드 가족의 변호인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있다. 동영상을 보면 카일은 피를 흘리는 채드를 제대로 돕지도 않는다. 그는 “너네 모두 여기 있으면 안됐어. 너보고 떠나라고 했잖아. 난 모든 것을, 이렇게 하고는 싶지 않았다고”라고 말하는 것이 녹음됐다. 변호사는 “미국 전역의 모든 경찰서 원칙은 명백하다. 총격이 있었으며 살인이 있었으면 체포해야 한다. 끝. 그런데 여기에선 어떤 체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러벅 경찰서 간부들은 코멘트를 거부했다. 리드 가족은 텍사스주 검찰이 경위를 조사하는 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대중이 관심을 기울일수록 진실이 제대로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증거를 갖고 있는 이들이 진실을 증언해달라고 촉구했다. “증거를 갖고 있으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걸 갖고 쉽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여러분이 카일 캐루스나 그의 친척들과 주고받은 문자가 있으면 우리에게 제공해달라. 카일 측도 채드에 관한 증거들을 지난달 5일 이전 것을 많이 확보했을 것이다. 우리도 같은 시기 채드에 대해 카일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확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밥 돌 마지막 가는 길에도 농담 “천당에서도 투표 가능할까”

    밥 돌 마지막 가는 길에도 농담 “천당에서도 투표 가능할까”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폐암으로 98세 일생을 접은 밥 돌 전 미국 상원의원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서도 농담을 들려줬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딸 로빈이 10일 워싱턴 국립성당에서 진행된 장례식 도중 큰 소리로 아버지가 남긴 투표 사기 농담을 들려줘 숙연해야 할 식장에 웃음 소리가 터졌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전했다. “난 또 천당이 캔자스주를 많이 빼닮았을 것이란 내 생각이 옳은지 무진장 궁금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가본 다른 이들처럼 여전히 시카고에서 투표가 가능할지 알아봐야겠다.” 세 차례나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 했고 두 차례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던 돌은 삭막한 정치권에서 유머와 위트 넘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도 각인돼 있다. ‘대통령의 위트’란 책을 썼는데 국내에도 김병찬씨 번역으로 나와 꾸준히 팔리고 있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도 농담 하나를 남기고 떠났다. 고인은 막역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스스로에게 바치는 얘기처럼 들리는 조사를 했는데 “용기있고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일생에 하루하루를 끝까지 살아냈다”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25년을 함께 (상원의원으로) 봉직했다. 우리는 의견이 달랐지만 결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난 밥이 원칙과 실용주의, 엄청난 고결함을 지닌 남자란 것을 안다”고 애도했다. 이날 장례식 도중 46년을 해로한 엘리자베스(85) 여사 옆에 의붓딸 로빈이 앉아 남편과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엘리자베스와는 1972년 처음 만났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갈망 등 닮은 점이 많았다. 둘은 3년 뒤 결혼했는데 돌은 두 번째 결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레이건 행정부 때 교통부 장관을 거쳐 결국에는 상원의원의 꿈을 이뤘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로빈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점이 특이하다고 언론들은 전했는데 이날은 함께 했다.
  • 2년 만에 팬들 만난 MAMA…이효리·스우파 빛났다

    2년 만에 팬들 만난 MAMA…이효리·스우파 빛났다

    BTS 불참 속 대상 등 9관왕이효리·스우파 컬래버 ‘대미’2021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2021 MAMA)가 2년 만에 케이팝 팬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났다. 객석을 채운 450여명의 관객들은 화려한 무대에 응원봉을 흔들며 열광했다. 11일 경기 파주시 CJ ENM 스튜디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대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가수’를 비롯해 9관왕에 올랐다. BTS는 4개 대상인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월드와이드 올해의 아이콘’을 거머쥐었다. 대상 등 4개 부문을 차지한 것은 2019년과 2020년에 이어 3년 연속이다. 이밖에 ‘페이보릿 모먼트’, ‘월드와이드 팬스 초이스 톱10’, ‘남자 그룹상’,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그룹’, ‘베스트 뮤직비디오’에도 이름을 올렸다.미국 콘서트를 마치고 자가격리와 휴식에 들어간 BTS는 이날 시상식에는 불참했다. RM은 영상을 통해 “올 한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 분들에게 힘과 위로를 드리고자 음악적으로 시도했고 열심히 달렸다”며 “저희 음악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올해 최고의 신인으로 꼽힌 그룹 에스파는 ‘여자 신인상’과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여자 그룹’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멤버 윈터는 “내년에는 더 멋지고 새로운 에스파만의 퍼포먼스 많이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아이유는 ‘여자 가수상’과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를, 트와이스는 ‘여자 그룹상’과 ‘월드와이드 팬스 초이스 톱10’으로 2관왕에 올랐다. ‘롤린’으로 역주행 신화를 쓴 브레이브걸스는 ‘KTO 브레이크아웃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멤버 민영은 “올해 초 브레이브걸스는 해체 위기였다”며 “많은 분이 우릴 도와준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자 신인상’은 엔하이픈, ‘베스트 밴드 퍼포먼스’는 잔나비,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솔로’는 블랙핑크 로제가 수상했다. ‘베스트 힙합&어반 뮤직’은 애쉬아일랜드, ‘페이보릿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은 에드 시런에게 돌아갔다. 에드 시런은 이날 영상으로 등장해 ‘배드 해비츠’(Bad Habits)와 ‘시버스’(Shivers)의 매시업을 펼쳤다. 3년 만의 재결합으로 주목받은 워너원은 사전 녹화로 무대를 꾸몄다. 대미는 올해 댄스 신드롬을 일으킨 ‘스트릿 우먼 파이터’ 크루들과 첫 여성 호스트로 활약한 이효리가 화려하게 장식했다. 8개 크루가 각자의 색을 살린 댄스 퍼포먼스를 펼친데 이어, 이효리가 각 크루 리더들과 함께 신곡 ‘두 더 댄스’(Do the Dance)에 맞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09년 아시아로 무대를 넓힌 MAMA는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19로 국내에서 열렸으며 올해 2년 만에 현장 관객을 받았다. 다만 코로나19 확산과 해외 활동 등 일정 문제로 일부 가수들이 불참했다.
  • “일본인 자매 넷, 모두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어요”[이슈픽]

    “일본인 자매 넷, 모두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어요”[이슈픽]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네 자매의 사연 일본인 자매 넷이 모두 한국 남자와 결혼한 사연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1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매가 전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일본인 네 자매’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유튜브 영상이 올라왔다. 사연의 주인공들은 일본인 유튜버 ‘네 자매’다. 현재 이들 네 자매는 결혼 후 한국에 거주 중이다.네 자매는 유튜브 Q&A 영상에서 모두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된 배경으로 맏언니가 가장 먼저 한국인과 결혼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첫째는 캐나다 여행 중 남편과 만났고, 둘째는 맏언니의 결혼 생활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셋째 역시 한국에 놀러 왔다가 만난 한국인 남성과 웨딩마치를 올렸고, 넷째는 언니들의 결혼생활에 감명을 받아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마음먹고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결국 셋째 형부가 소개한 남성과 결혼에 골인했다. 특히 넷째의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넷째는 “첫째 언니가 결혼했을 때 내가 중3이었다. 당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엄청난 인기였다. 겨울연가를 3번이나 봤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때 (첫째 언니)형부를 딱 만났는데 욘사마였다”며 “언니한테 하는 태도, 엄마한테 하는 태도, 나에게 하는 태도가 모두 욘사마였다”고 털어놨다. ‘욘사마’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연 배우 배용준의 애칭이다. 배용준의 용을 ‘욘’으로 발음하고, 존칭 ‘사마’를 붙여 ‘욘사마’라고 한다.한국 남자와 결혼한 이유?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 네 자매는 한국 남성들이 사랑 표현을 잘하고, 자신감 있는 점 등이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런 부분들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 같다고 이유를 말했다. 첫째는 “남편의 장점은 ‘자신감’이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예전에 엄마가 한국으로 놀러 왔을 때 집에서 남편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며 “난 당황에서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남편은 ‘네. 알겠습니다’하고 노래를 부르더라”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 당당한 모습에 ‘아. 이 사람이면 따라 갈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다른 자매들은 “한국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다”고 첫째 언니 말에 공감했다. 자매 네 명 모두 한국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자매들은 “셋째까지는 그냥 갔는데 사실 막내 때는 엄마가 계속 일본이 좋다고 말하셨다”며 “막내는 좀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4명 다 멀리 보낸다는 게 외로우셨던 거 같다”고 답했다.한편 일본 최대 온라인 결혼 정보 서비스 업체 IBJ 대표 이시자카 시게루는 “일본에서 국제결혼 수는 연간 약 2만 건이다. 아내가 일본인, 남편이 외국인인 경우 한국인의 비중이 25%다”고 밝혔다. 이시자카 대표는 일본 여성·한국 남성 커플이 많은 이유에 대해 “한국의 젊은 사람은 일본의 만화와 문화에 관심이 있고, 일본 여성은 K-POP이나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화적으로도 가깝고 국가도 가까워서 앞으로 한국인 남자와 일본인 여성 커플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매달 ‘2014만원’ 입금받는 조송화, 기업은행과 어떤 결말 낼까

    매달 ‘2014만원’ 입금받는 조송화, 기업은행과 어떤 결말 낼까

    연봉 2억 5000만원을 12달로 나누면 약 2083만원이다. 법에 따라 3.3%(소득세 3%+지방소득세 0.3%)의 세금을 원천징수하면 그 선수의 통장에는 2014만원 정도가 들어온다. 이는 조송화가 매달 21일 구단으로부터 지급받는 월급 추정치다. 여자배구에 큰 파문을 일으킨 조송화와 IBK기업은행의 분쟁이 ‘머니 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10일 열린 상벌위원회에서 책임지는 대신 발을 빼기로 결정하면서 두 당사자의 분쟁이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구단은 “조송화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고 조송화는 “무단이탈이 아니다.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며 맞서는 상태다. 이날 상벌위에 출석한 조송화가 반성 대신 반격을 택하면서 기업은행과 조송화는 계약 해지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 분쟁에서 핵심은 잔여 연봉 지급이다. 구단은 잔여 연봉 지급 없이 조송화와 결별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고, 조송화는 매달 2014만원씩 받으며 자유계약선수(FA)로 차기 행선지를 모색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송화는 2020~21시즌을 앞두고 기업은행과 3년, 연봉 2억 5000만원, 옵션 2000만원의 조건에 계약했다. 선수의 연봉은 7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를 1년 단위로 매달 지급되는데 구단에 귀책사유가 발생하면 구단은 내년 연봉은 물론 이번 시즌 잔여 연봉까지 4억원에 가까운 돈을 내줘야 한다. 조송화에게 귀책사유가 발생하면 잔여 연봉 지급은 없다.기업은행과 조송화는 ‘표준계약서’에 따라 소송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은행은 계약서 제3조 선수의 의무 1항(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성실히 선수활동을 하여야 한다)과 2항(선수는 연맹의 규약과 제 규정 및 구단의 내부 규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등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송화는 부상으로 빠진 것이고 무단이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표준계약서 제4조 구단의 의무 2항(구단은 선수의 인권을 존중하고, 선수가 선수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여야 한다)과 6항(구단은 선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신의에 좇아 행동하여야 한다) 등이 조송화가 근거로 들 수 있는 조항이다. KOVO 규정 및 표준계약서상에도 선수의 휴가 관련 규정이 없는 만큼 이 부분이 어떻게 해석될지도 다툼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날 기업은행 관계자는 “조송화와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잔여 연봉 문제 등 향후 발생할 여러 문제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진행되는 대로 공개적으로 알려 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질문 세례를 받은 조송화 역시 “아직은 구단 소속”이라며 말을 아꼈다.다만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조송화가 선수로 배구 코트에 돌아올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조송화 측 변호인이 법적인 부분을 대비하는 사이, 잔여 연봉보다 더 중요한 팬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다.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선수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학교폭력 논란’의 당사자 이재영과 이다영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현재도 남자배구에서는 데이트 폭력 논란에도 코트로 복귀한 정지석(대한항공)에 대한 팬들의 항의가 거센 상황이다. 분쟁이 파국으로 치달아 팬심도 싸늘하게 식는다면 ‘트럭 시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팬들이 조송화의 퇴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
  • 남극서 출생한 사람이 있다?…치열했던 아르헨-칠레의 출산 경쟁

    남극서 출생한 사람이 있다?…치열했던 아르헨-칠레의 출산 경쟁

    남극이 고향이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원주민이 없는 불모의 대륙 남극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남미의 2개 국가가 벌인 '영토전쟁'으로 인해 남극이 고향인 사람은 최소한 11명에 달한다. 황당한 전쟁(?)을 벌인 두 나라는 남극과 접해 있는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는 1970~80년대 '남극 태생' 늘리기 경쟁을 벌였다. 주민만 있으면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원시적 생각을 가진 나라가 많을 때 벌어진 남극 원정출산 경쟁이었다. 아르헨티나 일간 노티페는 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벌인 원정출산 경쟁에 대한 기록을 소개했다. 남극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경쟁에 불을 붙인 건 아르헨티나였다. 1977년 아르헨티나는 남극기지에 임신 7개월째인 임산부를 남극기지로 파견했다. 당시 현직 대위의 부인이었던 이 여자는 1978년 1월 7일 남극기지에서 건강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공식적으로는 남극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기다. 남극 태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극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만들어낸 '글로벌 1호' 남극 태생이었다. 남극과 접해 있는 또 다른 남미국가 칠레는 이에 질세라 곧바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칠레는 1979년 남녀 커플을 기지에 파견해 남극에서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이루도록 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잉태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칠레를 조바심 나게 했다. 두 사람 사이에선 5년 뒤인 1984년 11월 21일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프레이 몬탈바 남극기지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칠레 국적을 가진 1호 남극 태생이 됐다. 당시 칠레에선 "아르헨티나의 남극 태생 1호 아기는 대륙에서 잉태돼 남극에서 태어났을 뿐이지만 칠레 1호는 현지에서 잉태된 '순수 남극 혈통'"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남극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남극 태생을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임산부를 남극기지로 파견했다. 이렇게 양국 간 원정출산 경쟁으로 남극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11명. 1970~80년대 남극에서 태어난 11명은 아르헨티나와 칠레 양국에 모두 건강하게 생존해 있다. 남극 태생이 많을수록 남극에 대한 지분 권리를 주장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 정책적 경쟁이었지만 21세기 들어서도 남극은 여전히 주인 없는 땅으로 남아 있다. 남극 태생을 불리기 위한 원정출산 전쟁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난 셈이다.
  • 매독 환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일본...도쿄에서만 60% 증가

    매독 환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일본...도쿄에서만 60% 증가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일본내 매독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매독은 주로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대표적인 성병이다. 2013년 1000명을 넘어섰던 일본의 매독 감염자는 올해에는 7000명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권에 집중됐던 감염이 최근에는 지방 중소도시로도 퍼지고 있다. 10일 닛칸겐다이에 따르면 일본에서 올들어 10월까지 발생한 매독 감염자는 639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782명에 비해 34%나 증가했다. 이미 지난해 전체 감염자 수(5784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현 추세대로라면 7000명대 중반 이상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수도 도쿄도의 경우 지난해 1~10월에는 감염자가 1312명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2085명으로 59%나 증가했다. 그동안에는 감염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지방 도시에서도 확진 사례가 늘고 있다. 오이타현의 경우 2014년의 경우 1년간 총 5명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지난달 중순까지 44명으로 뛰었다. 20~40대가 32명(남자 25명, 여성 7명)으로 70%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의 매독 환자는 패전 직후의 혼란기인 1948년에 연간 22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감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나 항생제 페니실린이 보급되면서 안정되기 시작, 1967년 1만 2000명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1997년에는 500명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2011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추세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그동안 일본에서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면서 외국인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 SNS나 매칭앱 등을 통한 남녀간 교제 방식의 다양화 등의 원인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성관계를 매개로 하는 매독의 특성상 성풍속 산업의 이용자와 종업원간의 접촉이 주요 감염통로라는 데는 대체로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 올해의 감염자 급증도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극도로 제한됐던 유흥업소 이용이 올들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뚜렷하게 확인된 것은 없다.
  • ‘고교생 제자와 성관계’ 담임 여교사, 2심서 징역 5년 구형

    ‘고교생 제자와 성관계’ 담임 여교사, 2심서 징역 5년 구형

    고교생 남자 제자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된 담임 여교사에게 검찰이 항소심에서 중형을 구형했다. 인천지법 형사항소3부(한대균 부장판사) 심리로 10일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복지시설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가중처벌 혐의로 기소한 40대 전직 여교사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A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취업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담임교사로서 20살 넘게 많은 성인”이라며 “성적 가치관이나 판단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피해자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회복될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피해자의 부모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중한 형을 선고해 달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누구보다 반성하며 진지하게 후회하고 있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최대한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A씨도 이날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죄송하다”며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울먹였다. 앞서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올해 4월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9∼2020년 인천 모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당시 제자 B군과 여러 차례 성관계를 해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재 직업이 없는 A씨는 범행 당시에는 B군의 담임 교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 [여기는 중국] 여자는 목화처럼 순백이어야?…中 성교육 강의 논란

    [여기는 중국] 여자는 목화처럼 순백이어야?…中 성교육 강의 논란

    중국 중학교 성교육 강의에 여학생이라면 목화처럼 순백이어야 하고 처녀는 반드시 자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발언이 등장해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9일 베이징 하이뎬취 소재의 한 실험중학교에서 진행한 성교육 특강 현장에서 강사로 초빙된 강사 쑤 모 씨는 “처녀라면 반드시 자중자애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팔다리와 배꼽을 드러낸 옷차림은 남성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날 특강은 ‘더 나은 내가 되기’라는 주제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문제의 발언을 이어갔던 쑤 씨는 논란이 된 강의 종료 후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원 강의 소감문을 제출하도록 강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2학년 성교육 시간에 등장한 이 발언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통해 곧장 SNS에 공유됐다. 이 발언이 공개된 직후 현지 누리꾼들은 ‘봉건적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발언’이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한 상태다. 논란이 확산되자 하이뎬취 교육위원회 측은 곧장 문제의 학교와 접촉해 해당 발언이 있게 된 경위와 취지에 대해서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할 교육위의 입장 공고 이후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당시 이 같은 발언을 쏟아냈던 쑤 씨가 “짧은 치마를 입고 팔과 다리, 배꼽을 드러내고 거리에 나가면 남자들이 주목한다”면서 “이때 누군가 이 여성의 옷차림을 보고 나쁜 짓을 저지른다면 누가 책임지느냐, 이 여성은 스스로를 학대한 게 된다”고 발언한 사실이 추가로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여자라면 자신의 몸을 옥처럼 지켜야 한다”면서 “마음이 깨끗하면 몸도 깨끗해진다”는 등의 성차별적 발언을 계속해서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현지 누리꾼들은 “21세기에도 이런 봉건적 생각을 가진 고리타분한 강사가 활개를 치고 있다니 믿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남자 또는 여자로 분할해 서로의 성역할을 하며 살아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한편, 논란된 하이뎬취 실험중학교에서는 지난 2019년 초중등학생을 대상의 특강에서 ‘예쁜 여학생의 성장’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당시 특강을 담당했던 강사 역시 이번에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지탄을 받은 쑤 씨와 동일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특강에서도 “솜처럼 하얗고 예쁜 여자가 따뜻하다”는 등의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 신록, 세계역도선수권 남자 61㎏급 종합 우승

    신록, 세계역도선수권 남자 61㎏급 종합 우승

    한국 역도의 기대주 신록(19·고양시청)이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차지했다. 신록은 9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21 세계역도선수권 남자 61㎏급 경기에서 인상 132㎏, 용상 156㎏, 합계 288㎏으로 3개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한국 역도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한 건 2017년 69㎏급 원정식 이후 4년 만이다. 이날 신록은 인상에서 1차 127㎏, 2차 130㎏, 3차 시기 132㎏를 연이어 성공했다. 신록이 기록한 132㎏은 이 체급 인상 한국기록이다. 신록은 1차 시기에서 156㎏을 놓쳤지만 2차 시기에서 156㎏을 성공했다. 3차 시기에서 164㎏을 실패했지만 미슈벨리제가 160㎏을 놓치면서 신록이 우승을 차지했다. 신록은 2019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유소년역도선수권대회 61㎏급에서 합계 267㎏으로 2위에 오르며 스타로 떠올랐다. 여자 55㎏급 함은지(24·원주시청)는 용상에서 은메달을 땄다. 함은지는 인상에서 80㎏에 그쳐 16위로 처졌지만, 용상에서는 114㎏을 들어 2위를 차지했다. 인상에서의 부진으로 합계(194㎏)에서는 6위에 머물렀다.
  • “한국여성 35% 성매매”…혐한 발언 ‘가짜사나이’ 가브리엘

    “한국여성 35% 성매매”…혐한 발언 ‘가짜사나이’ 가브리엘

    한국 떠난 ‘가짜사나이’ 출연자 주장“한국여성 35% 성매매80%이상은 성형수술” 유튜브 채널 ‘가짜사나이’를 통해 얼굴을 알린 게임 스트리밍 유튜버 가브리엘이 한국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최근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가브리엘로 추정되는 네티즌이 올린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게시한 아이디는 지난해 가브리엘이 ‘가짜사나이’를 운영한 이근 대위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아이디와 동일하다. “한국은 사회적으로 아직 석기시대” 해당 글에는 “누가 더 나이가 많은지에 기반을 두는 사회”라며 “사회적으로 아직 석기시대”라는 등 한국을 비난하는 글이 담겨 있다. 그는 한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과 함께 “한국 여성의 약 35%가 금전적 보상을 대가로 성관계를 한다”며 “그들 중 80% 이상이 성형수술을 받는다”고도 적혀 있다. 이어 가브리엘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선 성매매가 일상화돼 있다. CEO가 분기별 보너스로 우리에게 성매매 여성을 사줬다”며 “당신이 외국 남성이라면, 많은 여성이 한 번쯤은 말 그대로 성매매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쏟아냈다. 또 “누군가는 괜찮겠지만 난 그러지 않다”며 “난 성매매와 성매매 종사자들이 혐오스럽다고 생각하기에 그 업계와 관련돼 있는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앞서 가브리엘은 ‘가짜사나이’ 1기 교육생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이근 대위에 대해 “남자로서 허세를 부린다”고 비난했다. 가브리엘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돈 벌려고 미국 갑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 [길섶에서] ‘워킹대디’/전경하 논설위원

    [길섶에서] ‘워킹대디’/전경하 논설위원

    대선을 앞두고 정당의 인재 영입전이 벌어지고 대기업 임원 인사철까지 겹치면서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종종 언급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도 성공적으로 했다는 걸 드러내려 했겠지만 반갑지만은 않았다. ‘워킹대디’라는 표현은 잘 안 쓰면서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는 남자 후배들을 만나면 쌍둥이 아들을 키운 워킹맘의 육아와 가사노동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경우를 본다. 워킹대디도 고단하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양가 부모 등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출산과 양육은 국가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지만 국가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겨 왔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만 초점을 두다가 최근에서야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사회’로 목표를 바꿨지만 수십년 동안 지속된 헛발질은 여전하다. ‘인구절벽’이라고 경고하면 알아서 아이를 낳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차라리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라는 말이 반갑다. 남녀 차별적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워킹맘’도, ‘워킹대디’도 아닌 ‘부모’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히 고단함이 드러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