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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백억불 수출달성

    ▼아남산업은 지난 해까지 반도체 단일품목으로 총 1백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했다.지난 70년 21만달러를 시작으로 72년 1천만달러,79년 1억3천만달러,89년 10억달러,지난해 17억7천만달러어치를 수출함으로써 23년간의 총 수출액이 1백억달러에 이른 것이다.수출실적이 좋은 것은 지난해 미국의 반도체조립위원회와 영국의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품질은 물론 품질관리의 시스템까지 인정받는 등 품질에서 최고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 김성순 서울시문화관광국장(만나고 싶었습니다)

    ◎옛 정취 되살려 「서울문화」 창조/민간주도로 각 지역문화 개발/시민들 자부심 갖게 「정도사업」/남산 옛모습 살리기·특화된 박물관건립 추진 서울시는 정도 6백년을 1년 앞둔 올해 서울을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한 서울 6백년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여러가지 사업 가운데 「내고향 서울」을 만들기 위한 문화사업은 서울 6백년사업의 요체라 할 수 있다.서울의 인구는 1천3백년대 10만명,45년 해방당시 90여만명이었으나 그뒤 「서울이 비좁다」고 느낄 정도로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어나 현재는 1천1백만명이다.따라서 순수 서울사람은 전체 시민의 5%수준밖에 되지않을 정도로 희귀하다.2백여년동안 3대에 걸쳐 서울에 살고 있어 「서울 토박이」인 시민 조창선씨(53·사업·강남구 역삼동 790의12)가 서울 6백년 문화사업의 사령탑인 김성순 서울시 문화관광국장을 찾아 문화관광정책에 대해 물어봤다. ▲조창선씨=저는 어린 시절을 중림동에서,소년시절을 약수동에서,청년시절을 을지로에서 보냈습니다.남산에서 여우를 잡고 계곡에서 가재를 잡던 어린시절이 눈에 선합니다.말하자면 그야말로 서울이 고향입니다. 서울시에서 내년에 정도 6백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한다는데 6백년사업은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김성순국장=시청 입구에 쓰여 있는 「우리 서울,서울답게」라는 구호가 6백년 사업내용을 집약해 놓은 표현입니다. 6백년 사업은 구석구석에 살아 숨쉬고 있는 서울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현대와 조화를 이루도록 새롭게 탄생시키자는 것입니다. ▲조씨=문화관광분야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서울시민이 인간답게 살수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김국장=맞습니다.루소는 「도시란 가래침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경쟁심 많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을 비꼰 것이겠지요. 우리의 소득수준이 나아지면서 골목마다 거리마다 스포츠·헬스·오락시설은 늘어나도 문화시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문화의 향기야말로 사람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문화도 복지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합니다. 이와함께 묻혀져 있는 우리의 뿌리를 찾기위해 문화재를 발굴해야 합니다.경의궁과 운현궁의 복원·원서등 사적공원 복원·창덕국 순라길 재현등의 사업들이 그것입니다.사적들을 복원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할 작정입니다. ▲조씨=서울말이 표준말이지만 서울사람들은 옛날에 학교를 「핵교」로,자전거를 「재전거」로 불렀고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보터고개」라고 불렀습니다.서울을 포근한 시민들의 공향으로 만들수 있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김국장=저도 18대째 서울서 살고 있는 토박이입니다.경상도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그곳이 경상도 일수도 없으며 전라도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전라도일수는 없습니다.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울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6백년 사업이라고 할수있겠지요. 시민 1백만명당 파리는 40개의 박물관을 갖고 있고 뉴욕은 20.7개,도쿄는 16.2개인데 비해 우리는 고작 2.7개를 갖고 있습니다.특히 시립 박물관은 하나도 없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경희궁터에 박물관이 세워집니다.이곳을 생활박물관 성격으로 하고 근대사박물관등도 세워 분야별로 특화시킬 계획입니다. ▲조씨=같은 토박이가 6백년 문화사업을 추진한다니 반갑습니다.그런데 우리는 과거 「국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문화사업이나 각종 행사가 관주도로 치우칠 경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일과성으로 그친 적이 있는데,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실 방안은 무엇입니까. ▲김국장=문화행사를 일사불란한 획일적이 아니라 민간주도로 송파·용산·답십리등 그 지역문화를 개발하도록 할 것입니다.종합적인 서울시의 문화행사와 각 지역의 문화행사를 접목시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서울 문화」를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서울의 문화는 캠페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시민들이 함께 걱정하고 참여해야 하며 할아버지 학생 주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생각입니다.예를 들면 하교길의 학생들이 지역 문화행사에 가방을 들고 자연스럽게 참여할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조씨=남산의 경관이 훼손되어 가는 모습을 볼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고는 합니다.남산을 살리는 방안은 무엇입니까. ▲김국장=과거에 경험했던 전원도시로서의 서울 모습을 복원할수는 없습니다.남산은 푸르름과 문화공간을 가진 산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이미 남산 지형 복원설계에 들어갔고 전통 정원과 정자및 계류천도 만들어 옛 정취를 되도록 많이 살려 나가겠습니다.전통공방을 만들려던 계획은 예산삭감으로 한옥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축소했습니다.
  • 아남산업(앞서가는 기업)

    ◎각국 외주물량 40% 생산/사상최대 반도체회사로/“품질에 사활” 기술개발 총력/미서 “최고” 인정… 제품 3천여종 넘어/작년 17억5천만불 수출,28% 신장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면 반도체는 산업의 핵이다. 전자산업은 물론 항공·우주산업,군사,의료등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다.요즈음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들은 모두 반도체 강국이다. 일본이나 미국이 오늘날 경제 뿐 아니라 군사분야에서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 분야에서 훨씬 앞섰기 때문이다.반도체 분야의 경쟁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다행히 우리나라는 반도체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 반도체 강국으로 이웃 일본이나 미국과 어깨를 겨룰 정도가 됐다. 아남산업은 반도체 조립분야에서 세계 외주물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이다.미일의 첨단 반도체 회사를 비롯,20여개국 1백90여 반도체 회사에 3천여종의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연간 수출액이 4억5천만달러에 불과하던 지난 68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아남은 그동안 비약적인 수출신장세를 보이며 거듭나기를 계속해 왔다.79년 반도체 단일 품목으로 1억3천만달러의 수출을 기록한 이후 84년 5억2천만달러,91년 13억7천만달러,지난해에는 전년보다 28%가 증가한 17억5천만달러를 수출했다.지난해 국내 수출증가율이 6.8%에 머문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성과이다. 아남이 지금까지 남보다 한 발 앞서온 것은 품질향상과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고부가가치의 첨단기술을 꾸준히 개발했기 때문이다.창업주인 김향수명예회장이 당시로선 불모지였던 반도체 사업에 착수한 것부터가 이를 반증한다.김명예회장이 반도체를 시작할 당시에는 주위에서 모두가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했었다.더욱이 4·19 이후 아남의 기업활동이 활발하지 못해 신규 기계도입에 쓸 외화사용 허가를 얻을 수 없었다.그러나 김명예회장이 당시 부총리겸경제기획원장관이던 박충훈씨와 상공부장관 김정렴씨를 찾아가 설득을 벌인 끝에 허가를 받아내 서울 화양동 허허벌판의 배추밭 곁에 있던 5백30평 규모의 스웨터공장을매입,지금의 공장을 잉태하게 했다. 반도체는 그동안 경이적인 기술혁신과 각종 전자제품의 경박단소화 필요성에 따라 점차 고집적화,고기능화,소형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남도 이러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수요에 부응,지난 23년간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PLCC,SOIC 및 QFP등의 신제품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그 결과 이들 신제품은 현재 전체 수출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조립의 성패는 리드프레임,모울딩 컴파운드등의 원자재를 제품의 특성에 맞게 선택하고 최적의 공정기술을 개발하여 품질을 최상으로 관리하는데 있다. 아남은 품질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삼는 「품질제일」 정책을 택하고 있다.품질우위의 차별화 정책을 기본경영 방침으로 정해 모든 사원들에게 품질의 중요성을 확고히 인식시킴으로써 세계 최고의 품질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품질관리 노력의 결과 지난해 2월 포드자동차가 전 세계에서 공급받는 부품의 품질을 심사한 결과 아남은 2백점 만점에 1백84점이라는 최고의 점수를 따내 TQE(Total Quality Excellence)대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또 지난해 7월에는 미국 SAC(Semiconductor As sembly Council)로부터 반도체 완성업체로는 처음으로 최고의 품질수준을 인정하는 「LEVEL1」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품질관리 업체로 인정받았다. 아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올해에도 과감한 투자계획을 세워 놓았다.김주진 회장은 『올해엔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QFP제품의 생산시설 확장,차세대 주력상품이 될 TSOP,TQFP의 기초 생산능력 확보,기타 BGA,MCM등의 신제품 생산시설을 확보하는데 5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청주 아파트붕괴사고 원인과 문제점

    ◎부실공사­가스취급 소홀이 빚은 인재/철근 등 적게 사용… 쉽게 무너져/상가로 허가받아 아파트 올려/주변에 고압선 많아 진화어려워 7일 새벽 발생한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화재·붕괴참사는 주방및 난방연료로 보편화된 LP가스의 안전관리 소홀과 소방대책미흡,부실건물등의 원인이 복합된 「예견」된 인재(인재)였다. 사고건물이 아파트와 상가로 쓰이는 복합건물인 점등을 고려할때 화재예방대책이나 가스안전인식은 더더욱 높아야 함에도 불구,평소 입주주민과 상가관리자·소방당국의 안일한 안전대응으로 이같은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지하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뒤 1시간의 시차를 두고 건물이 붕괴됐는데도 비상연락및 대피체계를 갖추지못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불이나자 잠자던 주민 대부분은 불길을 피해 옥상등으로 곧바로 대피했으나 1층에 있는 출구와 비상구 4군데 주변에는 상품과 쓰레기가 쌓여 있어 제때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사각형의 상가아파트 주변에는 고압전선이 많아 출동한 소방서의 고가사다리차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해 건물옥상과 3·4층으로 대피한 주민들을 구조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 당국의 소방대책의 허점을 드러냈다. 이와함께 지하1층과 지상1층에 60여개의 점포가 들어있고 2·3·4층에 59가구 3백9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적지않은 규모의 건물이 어처구니 없이 무너져 내린데 대해 건축물의 강도나 구조 자체에서도 커다란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지하1층,지상3층의 일반 상가건물로 건축허가를 받은 뒤 4차례에 걸쳐 설계를 변경,아파트를 더 올리는등 무리한 공사를 한 사실을 밝혀내고 이 부분에 대해 집중 수사하고 있다. 또 시공당시 지하 지반공사를 하면서 50㎝ 간격으로 설치하게 돼 있는 철제 빔을 공사비 절감등을 이유로 2∼5m 간격으로 수를 줄여 설치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사당시 각 층마다 깔게 돼있는 철근 역시 25㎜ 굵기의 규격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비용절감만을 노려 10㎜의 가는 철근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부실기초공사등으로 건축된 문제의 건물이약한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번 사고의 1차적인 책임은 건물 건축주와 화재예방관리에 소홀했던 상가주민들에게 귀속될 수 밖에 없지만 행정당국의 안일·무사한 소방점검,가스안전관리 전문기관의 단속및 계도소홀등도 간접적인 귀책사유라 할 수 있다. 또 대도시 아파트나 상가건물의 상당수가 그렇듯 화재나 재난예방대책은 거의 무시하고 제멋대로 건물구조를 변경,사용하는 것도 제2·제3의 대형참사를 유도하는 원인이 될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번 사고는 결국 점차 늘고있는 가정용 가스폭발사고 등을 「강건너 불」정도로 여기는 주민들의 그릇된 안전의식과 건물준공검사를 받은뒤 편의위주로 용도변경을 하는 건물주와 상가주민등의 삐뚤어진 이기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는 교훈을 남겼다. □주요 화재·붕괴사고 일지 ▲70년 4월8일=서울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33명 사망,19명 부상. ▲71년 12월25일=서울 대연각호텔 화재.1백65명 사망,67명 부상. ▲72년 8월5일=서울 대왕코너상가 프로판가스폭발.6명 사망,67명 중경상. ▲72년 12월2일=서울시민회관 공연도중 조명장치과열 화재.51명 사망,76명 부상. ▲74년 10월17일=서울 뉴남산호텔 전선합선 화재.일본인 5명등 19명 사망,44명 부상. ▲83년 10월2일=마산 고려호텔 화재.8명 사망,38명 부상. ▲84년 1월14일=부산 대아호텔 4층 헬스클럽화재.38명 사망,80명 중경상. ▲88년 7월30일=수원 경기문예회관 신축공사도중 콘크리트 받침목붕괴.인부 5명 압사,6명 부상. ▲92년 11월18일=서울 국립극장대극장 가설무대 붕괴.연습단원 29명 부상.
  • 신정연휴/도심 한산… 관광지 북적/전국스키장에 사상최대 30만인파

    ◎차량 대혼잡… 숙박업소 동나/수월한 귀경길… 영동고속도만 체증 올해 신정연휴는 어느해보다도 큰사건·사고없이 차분하고 조용했다. 모처럼만의 사흘연휴를 맞아 많은 시민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친지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으며 전국의 스키장과 산·온천장등 유원지도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신정연휴기간동안 강원도 설악산과 경포대·평창군 용평스키장과 고성군 알프스스키장·무주리조트등 관광지에는 30여만명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스키장등 유원지 주변도로는 행락객들이 타고온 차량들로 혼잡을 빚기도 했으며 호텔과 여관방이 동이나 민박을 하기도 했다.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들도 임진각과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찾아 북녘땅을 바라보며 이산의 아픔과 실향의 슬픔을 달래고 조국통일을 기원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가족과 함께 가정에서 조용하게 휴일을 보내거나 가까운 친지들을 찾아 새해인사를 나눴다. 서울도심지는 연휴기간동안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은 가운데 발길이 뜸한 모습이었지만 시내 극장가에는 영화를 보려는 인파가 이른 아침부터 몰려 매진 사태를 빚기도 했다.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남산 팔각정 앞뜰에서는 제2회 통일기원 남산봉수대봉화식이 있었으며 한강고수부지에서는 연날리기대회도 열렸다. 신정연휴 마지막날인 3일 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김포공항등에는 귀경객들이 분산해 상경한 탓으로 큰 혼잡을 빚지는 않았다. 귀경객과 행락인파는 예년에 비해 30%이상 늘었으나 예년과 같은 정체현상은 없었다. 특히 지난해말 양재∼수원구간과 수원∼천원구간등 병목현상을 빚던 길이 1차선씩 확장된 경부고속도로는 더욱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하오 늦게부터는 귀경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고속도로 차량속도가 떨어지고 일부구간에서는 체증을 빚기도 했다. 왕복 2차선인 영동고속도로의 경우는 신갈기점 45㎞지점인 가남휴게소주변이 이날 하오2시부터 심하게 막히는등 다른 도로보다 비교적 교통체증이 심했다.
  • 「공명」이끌어 새 정부 정통성 확보/현승종 중립내각의 성과와 과제

    ◎대선서 관권개입 배제… 새 선거문화 이룩/차질없는 정권인계로 행정공백 막아야 현승종국무총리는 타고난 선비이다. 남산골샌님처럼 강직하고 꼿꼿한 선비정신이 이번 대선을 사상 유례없는 공명선거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총리가 헌정사상 처음있는 현직대통령의 집권당적포기에 따라 출범한 중립선거관리내각을 이끌게 된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실험이었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현총리는 제14대대선을 관권이 철저히 배제된 공명선거로 성공시킴으로써 그동안 혼탁했던 우리의 선거문화를 한차원 높이 끌어올리는 큰 공적을 이룩했다. 현내각의 최대공적은 선거때마다 논란이 되어왔던 정통성시비를 일소,차기정부가 안정된 기반위에서 강력한 국정을 펼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현승종중립내각이 14대 총선을 얼마만큼 잘 치렀느냐는 것은 대선일공고와 함께 국무총리실에 설치된 「정부합동 공명선거관리 상황실」의 선거법위반사범 단속결과를 다시 훑어 보면 분명해진다. 선거가 끝난 시점까지 상황실에 집계된 선거사범단속자 수는 모두 3천1백42명으로 지난 87년 대선때의 1천97명보다 3배가량 많았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관권개입과 관련,단속된 공무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공무원의 관권개입으로 지난 87년 대선에서 18명,금년3월 총선에서 58명이 각각 입건된 점과 비교할 때 엄청난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의 조직·자금·인력을 동원,기업과 정당이 결탁한 형태로 선거를 치러 물의를 빚은 국민당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관권의 중립성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패배한 후보들이 깨끗이 승복한 점등도 공명선거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비록 선거운동기간중 김복동의원파문과 부산지역기관장모임 사건으로 관권개입시비를 불러일으키고 현대중공업 등의 국민당에 대한 정치자금제공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비가 없지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관련,선거가 끝난뒤 실시된 여론조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조사결과마다 선거의 공정성에 대해 「매우 공명」,또는 「대체로 공명」했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이제 현총리에게 남은 과제는 내년 2월25일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국정을 차질없이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6공의 공약사항을 철저히 결산하고 앞으로 계속 추진되어야할 시책을 정리,차기정부에 넘겨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순조로운 정부이양을 위해 대통령당선자가 구성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철저히하고 대통령당선자에게는 취임 첫날부터 국정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국정보고를 충실히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정권의 인수·인계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행정공백을 없애고 민생안정을 이룩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볼수있다.
  • 「새 서울」의 청사진/서울시의 「정도6백년」 기념사업(국정탐방)

    ◎화합·융성의 통일수도 가꾼다/열림 등 4주제로 전통과 미래 융합/남산골 전통공방·박물관 등 건립 서울시는 요즈음 서울6백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냉전체제를 극복하고 민족의 화합과 융성을 일구는 통일시대의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고 동북아의 거점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은 근대사의 역경과 지난 한세대동안 숨가쁜 성장을 겪어오면서 고도로서의 뿌리와 대도시로서의 문화적 향기를 잃어가고 있고 성숙된 시민의식과 「서울 고향」의식을 일구어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21세기로 향하는 문턱에서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은 절호의 기회를 한번 놓쳤다. 88서울올림픽이 그것이다. ○모든 행정력을 집중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국론분열로 민족적 저력을 한데 모으는데 실패한 정치권의 잘못이 크다.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는 그릇된 길로 접어든 정치의 영향을 받아 뒷걸음질만 거듭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그 힘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일본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선진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실하게 증명했고 뒤이어 1970년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통해 국제사회에 완전히 동참했다. 그만큼 일본은 올림픽을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반면 우리는 유사이래 가장 성대한 올림픽을 치르고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이를 경험한 서울시는 조선 태조 이성주가 1394년 한양을 도읍지로 결정(8월13일)하고 환도(10월28일)한지 6백년이 되는 1994년을 앞두고 서울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서울,새로운 탄생」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수립한 「서울600년기념사업」이다. 이 사업은 역사도시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다시보는 서울」과 인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노린 「새로나는 서울」,문화도시로와 세계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신명나는 서울」,「열려 있는 서울」등 4가지 주제별로 시민 스스로 하는 「시민사업」과 서울 6백년을 경축하는 「기념사업,21세기를 준비하는 「계기사업」등 3가지유형으로 모두 12개의 사업군,41개 세부사업을 이루고 있다. 이 12개의 사업군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체계화해 상승적인 효과를 내도록 했다.즉 ▲회고와 반성을 바탕으로 ▲주변부터 정돈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잔치를 통해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위한 설계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새롭게 태어나자는 것이다. ○대부분 내년에 시작 이 사업들 가운데 서울가까이 운동과 남산 제모습가꾸기 등 일부는 이미 시작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대전엑스포가 열리는 내년에 시작해 95년까지 3년동안 펼쳐진다. 사업의 계획은 서울시에서 공청회 등을 거쳐 입안한 시안을 바탕으로 지난 6월15일 발족한 각계 53인의 시민위원회(위원장 김원용·70)에서 종합적으로 심의,재검토해 10월27일 확정했다. 당초 경축문화예술행사 중심으로 접근되었으나 시민위원회 등의 심의과정을 통해 도시발전의 실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실천적인 사업으로 꾸몄다. 주요사업으로는 서울 6백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의 근세사와 생활풍속사,자연지리,도서·지도 등 각종 자료를 망라한 서울 6백년전이 내년부터 94년까지 열린다. 또 자연제와 역사제,시민축제,도시예술제 등의 대동제가 94년에 한강·서울거리·북악산·남산·관악산 등에서 펼쳐진다. 서울과 세계도시들을 잇는 서울∼세계도시축제와 서울의 자연경관과 공간구조의 골격을 이루는 육경축과 한강 수경축의 만남을 상징하는 서울랜드마크도 만들어진다. 뿌리를 되찾기 위해 시립박물관 건립과 남산골 전통공방촌및 역사탐방로등을 만들고 서울의 성장사를 증명하는 「서울학 사료탐사」를 통해 흩어져 있는 사진·문서·지도 등 각종 시사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수집·목록화하고 특히 일제강점기의 자료를 일본 등에서 집중 수집한다. 서울의 자연과 역사·지리·문화·환경·도시계획 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서울총서와 문화지도·영상 등의 서울미디어도 만들 계획이다. 서울을 인간도시·시민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다양하게 전개된다. 우선 여의도광장을 친밀한 공간으로 재구성해 서울의 명소인 시민의 마당으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광장지하에 공공주차장과 문화 편익시설을 갖춰 광장이용을 활성화하고 단절된 동서지역및 한강공원을 연결한다. ○여의도광장 재구성 이어 21세기 준공목표로 시청사건립계획을 구체화하고 지난달 14년동안 서울시민의 쓰레기받이로서의 역할을 다한 난지도를 생태공원 등으로 가꾼다. 서울시는 특히 미래서울의 중심적 핵이 될 시청사 건립과 텔레포트 및 국제컨벤션센터 건설,그리고 여의도 지하권개발을 역점사업으로 선정,광범한 여론수렴과 전문가들에 의한 철저한 연구·검토를 거쳐 추진하기로 했다. 도시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사업으로는 문화창달의 지원기구인 서울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지역과 기업문화의 육성·개발을 목표로 한 서울문화경진 등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는 미래서울의 모습을 시민 모두가 같이 그려보자는 취지로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이는 자기 집을 개조하는데 주인이 참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논지이며 생일 잔칫날 자기집 짓는 문제를 온 식구가 같이 의논하는 것만큼 신나는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외국수도의 축제/시청사신축 등 르네상스 추구/도쿄 4백년/EC통합 대비… 정보기능 강화/파리 2백년/건축전 등 열어 도시미관 개선/베를린 7백50년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중요한 계기를 맞아 발전을 한다. 오는 94년은 서울의 정도 6백년을 맞는 해이다.사람으로 치면 10번째 희갑을 맞는 셈이다. 서울시는 6백년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얼굴인 서울이 재도약을 할수 있는 각종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외국의 도시도 최근들어 「생일」을 맞아 대대적인 르네상스를 꾀하고 있다. 도쿄 4백년,프랑스 혁명 2백년,몬트리올 3백50년,베를린 7백50년 행사등이 도시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도쿄4백년◁ 지난 90년 에도(강호)에 도읍을 정한지 4백년을 맞아 89년부터 96년까지 3단계로 도쿄 르네상스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1단계(89∼90년)는 각종 4백주년 기념사업을 폈고 2단계(91∼93년)는 도쿄 예술문화회관 건립,시청사 신축등의 사업을,3단계(94∼96년)는 도쿄세계도시 박람회 개최등을 계획하고있다. 이같은 사업은 경제대국의 수도에 걸맞는 세계 초일류도시로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때문에 도쿄 심포지엄·에도도쿄자유대학·자치구의 문화행사등을 통해 문화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또 최첨단 정보단지(Teleport)를 조성,동북아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파리◁ 프랑스 혁명 1백주년을 기념해 1889년 세계적인 에펠탑을 건립한바 있다. 이제 2백주년을 계기로 유럽공동체(EC)가 통합될 경우 EC의 수도가 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파리는 89년 신개선문을 만드는등 세계적 문화의 중심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경쟁도시인 런던·베를린등과 차별화시키고 있다. 아울러 첨단정보기능등을 강화하고 있다. ▷베를린 7백50년◁ 베를린은 동서독 통합전인 87년 7백50년을 맞아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축물을 보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제 건축전을 열어 도시미관을 개선했다. 또 파리를 의식,연극·영화행사·학술회의를 개최하는등 정치·문화적으로 유럽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몬트리올 3백50년◁ 캐나다의 몬트리올은 올해 3백50주년을 맞아 주체성있는 문화사업과 이민사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몬트리올 독창성에 관한 심포지엄」·미국음악 잔치·샹송축제·국제영화제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문화로부터 문화적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살맛나는 환경조성 계기로”/새 도시 향한 「문화혁명」 준비/사업실무총책임자 강홍빈 시정연구관(인터뷰) 서울시청에는 항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방이 있다. 또 그 방에는 웬만한 대학교수의 연구실같은 책들로 가득차 있다. 시청내의 「이방지대」인 그 방의 주인은 강홍빈시정연구관(2급). 올해 47세인 그는 바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 6백년사업」의 실무 총책임자이다. 강연구관은 『6백년사업은 서울을 시민들이 애착과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롭게 탄생시키자는 것』이라며 6백년 사업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일제치하·급속한 경제성장등을 겪으면서 단절된 6백년의 뿌리를 찾고 이와 함께 앞날에 대한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방향이라는 얘기다. 강연구관은 또 『민족문화의 얼굴을 가진 서울을 만들고 국제화시대에 발맞춰 세계성을 가진 국제도시로 만들어 21세기의 동북아,나아가 세계의 중심도시로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의 문화와 환경을 사람의 몸과 마음에 비유했다.조직적인 문화와 일상적인 환경이 조화를 이뤄야 「사람 사는 맛」이 날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도시계획은 곧 종합예술」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강연구관은 『「문화혁명」을 통해 서울을 새롭게 꾸미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그는 문화야말로 새로운 이미지 사업이고 이미지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북돋울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디자인을 통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관광사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올림픽공원 조성을 맡기도 했던 그는 미국 하버드대 석사,MIT공대 박사출신으로 3공말기 신수도행정 건설에 깊숙히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MIT공대에서 「예술·건축·환경학 박사 1호」인 그는 「강박사」로 더 유명하다. 주택공사 산하 주택연구소장으로 재직하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박세직씨의 추천으로 지난 90년 6월 서울시로 옮긴 강연구관은 『월급도 연구실도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일하는 재미로 더 즐겁다』고 말했다. 강연구관은 『6백년 사업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라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민이 한마음이 돼 참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 대구서도 40명 난투

    【대구=김정한기자】 16일 하오 8시45분쯤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선거 유인물이 발견된 한민족사랑회(일명 한사회)사무실이 있는 대구시 중구 동인동 대동은행 동인지점 앞길에서 민자당원 20여명과 민주당원 20여명이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원 백광현씨(27)가 머리를 다쳐 인근 곽병원에 입원,치료중이고 서한수씨(34·민주산악회원)등 민자당원 3명은 대구시 중구 남산동 민주당 시지부당사까지 끌려갔다가 1시간만에 풀려났다.
  • 아남전자 회장 김주채씨

    아남그룹(회장 김주진)은 14일 김주채 그룹부회장겸 아남전자 사장을 그룹부회장 겸 아남전자 회장으로,아남산업 황인길 부사장겸 연구소장을 아남산업 사장으로 임명했다. 또 아남전자 김주연부사장을 아남전자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조영시 아남산업사장은 아남과 기아그룹간에 합작신설된 기아기전의 사장으로 발령했다.
  • 기업인의 자살(외언내언)

    중소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중소기업대상의 김상을 따낸다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다.상이 주는 의미도 크려니와 부수되는 혜택도 적지않다. 부도를 못 막아 죽음을 선택한 한국기체공업의 구천수사장은 김상덕으로 6억원의 은행대출외에 무상으로 2억원 가까운 돈을 타썼다.그뿐 아니다.기술 선진화업체로 선정되어 여러차례나 기술지도도 받고 중소기업체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다 받았다.그런데도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이를 막지못해 남산의 한 소나무에 그의 생을 맡겨야 했다. 어느 재벌그룹회장은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자서전에서 사업의 목표를 성취감에 빗댔다.또다른 재벌회장은 사업의욕을 신바람이라고 표현했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다른 토양에서 자라고 있어서 구사장은 신바람을 느껴보지도 못한 것일까.사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중소기업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중소기업에 있어서 올해는 혹독한 한해인 것 같다. 부도로 도산된 중소기업은 하루에 25개에 이르고 있다.작년보다 2배가 많은 것이다.구사장의 부도를 경영과욕탓으로 돌리는 분석도 없지않다.그러나 34개에 이르는 첨단 자동차부품을 스스로 개발하고 중소기업으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모두 다 받고도 부도가 났다면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의 처지를 알듯도 하다.남산의 소나무가 또다른 중소기업인의 비보를 전해주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 70억부도 중기사장 자살/올 중기대상수상자/정부금융정책 비난 유서

    올해 중소기업 대상을 수상한 중소기업사장이 정부의 중소기업육성에 대한 정책부재를 비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8일 상오6시45분쯤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 안중근의사동상 옆에서 한국기체공업대표 구천수씨(51·용산구 후암동 30의10)가 소나무에 밧줄로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됐다. 구씨의 양복안주머니에는 『시중에는 돈이 남아돈다고 아우성인데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은 도산위기에 몰려있다.우수한 중소기업을 도산위기에 처하도록 만든 정부의 잘못을 내 한목숨 바쳐 지적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구씨는 지난 5월 국민은행이 시상하는 「올해의 중소기업대상」에서 대상중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그후 자금압박을 받아오다 지난달 2일이후 70억원의 부도가 나자 지금까지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 시인 정현종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사물의 핵심 꿰뚫는 파격적 시어 계발/「도시기질」 집착… 신선한 지적감수성 돋보여/자제된 행동·감정처리… 「침묵의 미」에 눈뜬 사색형/생명있는 모든것 포용할 자세로 시작몰두 「특이한 지적 예리성」과 「황홀하게 축제화된 미적 감동의 세련된 형상화 작업」­. 65년3월 까다롭기로 유명한 시인 박두진씨의 화려한 추천사와 함께 정현종이 문단에 등단했을 때는 그는 당장 젊은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경쾌한 에피큐리안」으로 지칭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빛나며 아름다웠던 추천시 「독무」는 젊은 날의 추억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남겨져 잊을수 없는 명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후 신촌역 부근이나 태평로 순화동 인사동 남산길등 그가 생계를 위한 직장을 전전하던 무렵 그는 서울의 어느 길목에 서있어도 당황하며 망설이는 모습,겨울날 빈들에 홀로선듯 눈가에 외롭고 춥고 공허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을 보고 시인 고은씨는 「수묵같은 눈동자」라 했고 평론가 김현은 「깨끗하고 맑은 눈」이라 했다. 눈끝이 치켜올라간,그러나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속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이 단순하게 「마음의 창」같은 눈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색의 깊이를 짚어볼수 없는 신비감 때문에 그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남에게 나를 드러내보이지 않으려는 겸허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명철의 기색인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지나 여전히 싱싱한 탄력성을 지닌 시들이 「샘처럼 솟아나고 꽃처럼 피어나자」그의 눈빛은 허공 한 끝을 스치는 짧은 허무나 명철의 멋이 아닌 인간과 사물을 향해 직관으로 치닫는 눈빛,그래서 그의 시마저도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의 눈빛에서 빛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형이상학적 초월 추구” 그가 사랑해 마지않고 또 그를 끈질기게 지켰던 김현도 「정현종은 형이상학적 초월을 꿈구는 에피큐리안」이라 했고 이 「에피큐리안」속에는 그의 시적 공간과 구조의 한계를 밝히려는 의혹이 다분히 숨겨져 있었으나 「한 시인이 자기특유의 시적 표현방법을 가지고 시적으로 높은 경지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그런 의미에서 정현종은 「한국 현대시의 표현법과 소재 면에서 큰 충격을 준 시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사막에서도 불 곁에서도/늘 가장 건장한 바람을,한끝은/쓸쓸해 하는 내 귀는 생각하겠지,/생각하겠지 하늘은/곧고 강인한 꿈의 안팎에서/약점으로 내리는 비와 안개,/거듭 동냥 떠나는 새벽거지를,/심술궂기도 익살도 여간 무서운/망자들의 눈초리를 가리기 위해/밤 영창의 해진 구멍으로 가져가는/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을,/…. 「곧고 강인한 꿈」 「약점으로 내리는 비」 「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등등 파격적 시어들은 서정시와 향토시에 익숙해있던 독자들에게 느닷없는 경이를 안겨주면서 「사물에 대한 신선한 감수성과 독특한 서구적 조사법」이란 김현의 호평에 한결같이 공감대를 형성해갔다. 정현종은 전에도 그랬지만 후배들과 그의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지금도 「그의 유년시절을 완강하게 숨기고」그의 시의 고뇌가 주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때 이미 문학에서 「침묵에 가장 가까운 것은 시」이며 「시는말이 배제되지 않는 침묵의 공간」임을 알고 있었거나 「시는 시 자체일뿐」시를 이루는 배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뜻으로 이를 묵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어쨌든 그는 어느 장소에서도 그의 시외엔 다른 말들은 별로 늘어놓지 않으려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경기도 고양군 화전에서 보냈다.대광중때부터 다시 서울에 올라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그이전 10여년을 서울 변두리에서 농촌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골에서 와서 도시에서 세련되어 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에서 보듯 완강하게 도시기질을 고집하는 형이다. 꾸밈없이 깍듯한 예의,낯선사람에 대한 낯가림,그러면서 자신의 할 바를 과장하지 않고 단정하게 해낸다. 집안은 엄격한 가톨릭 가문으로 가톨릭 본명은 알베르토.그러나 대학시절 채풀시간을 자주 걸러 칼바르트와 니버에 관한 리포트를 추가로 제출하여 뒤늦은 정식졸업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중학교 시절에 살았던 만리동고개,카바이트 불을 밝혀놓고 책을 빌려주는 서점에 드나들면서 그는 보들레르의 「여인들의 술」처럼 「달랠길 없는 뜨거운 섬망」의 술대신 왕성한 독서에 빠져 그의 손가락이 넘기는 책장은 「슬기로운 회오리바람의 날개」였으며 그는 그 날개를 타고 「몽상의 천국」을 마음껏 누비는 사춘기를 보냈다. 종로2가 르네상스 음악실에선 바하의 「마태수난곡」에 탄복하여 무릎꿇었고 영화 「로얄발레」를 보고는 「육체가 저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가」란 충격에 그는 「그 충격이 번개처럼 와서 내 자신의 육체에 우뢰로 흐르다가 감동의 전율」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발레에 미쳐 「이사도라 던칸 자서전」서문을 써주는등 춤은 마침내 「꽃의 침묵」이기를 기원하고 있다. ○음악·춤에 심취하기도 그러나 춤이나 음악에 대한 감동은 문학소년시절 누구가 접할수 있는 흔한 경험이겠지만 연대 숲에서의 그의 존재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만은 이 시인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수가 있다. 그는 수줍어하는 성격탓에 결핏하면 혼자서 울창한 숲속을 거닐었고 그날도 우연히 그속에 앉아있다가 돌하나를 집어 숲 저쪽으로무심하게 내던졌다고 한다. 「숲 위쪽에서 던진 돌은 저아래 어디엔가 떨어졌다.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지구무게만한 어떤 느낌이 마치 지진처럼 내속으로 지나가는걸 느꼈다.즉 내가 방금 던진 돌에 의해,나에 의해,여기서 저기로 옮겨진 돌에 의해 우주의 공간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그것이었다.내가 던진 돌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 그 소리는 그의 귀를 「깊이」열어주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아마도 그의 육체가 땅에 떨어질때까지 그 소리를 듣게 되리란 것이다. 그는 부모님 타계후 집에서 나와 신촌에서 혼자서 자취를 했다.이 자취방에서 김현 김치수 김승옥과 어울려 거의 매일이다시피 꽁치안주와 소주에 빠져 그들은 문학을 논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72년 첫시집 「사물의 꿈」을 민음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으로 인해 그는 문단데뷔이후 처음,아니 난생처음으로 말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게 됐다고 자랑한다. ○자아·우주에 대해 사색 이 시집은 김현 김치수와 김병익 김주연 이청준 홍성원 황동규 황인철등 평론가 작가 시인 친구들과 「잿빛먼지 황급하게 불어대는 좌절감의 청량리 부근」에서 밤마다 술잔앞에서 내통해 마지않던 문단선배 고은씨가 돈을 모아서 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은씨는 그가 시를 쓰지않으면 「시 쓰기가 얼마나 힘드는가」를 알면서도 그를 미워할만큼 「우리시대의 언어의 정령」과 만나고 있음을 자축하기 위해 그가 시집내는데 앞장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요즘도 술을 마신다.문지(문학과 지성사)사람들과,또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과 호프집에도 간다. 단지 좋아하는 술을 평생동안 즐겨마시기 위해 폭음,폭주는 삼간다. 또 어느 자리에서나 두드러지지 않으려 든다.처신하는 바를 적절히 자제하고 운신의 폭을 파급시키지 않는다.웃음소리도 말소리끝에 「하,하,하,하」라고 문장을 읽는 것처럼 시늉만 할 뿐이다. 기계에 대해선 도무지 무지하여 다른 작가 교수들은 수년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그는 오래지녀온 만년필 「쉐퍼」로 글을 쓴다.17년쯤 살고있는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신촌까지 운전을 할줄 몰라 버스나 택시를 타고있다.가족은 부인 이유미씨와 그리고 아들 민우(연대4). 이렇게 감정내색을 좀체 하지않는 그도 89년 대학후배이자 제자인 시인 기형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땐 서대문 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남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새벽 2시까지 남아 허공에 잠깐 눈을 돌리는듯한 문단초기의 공허한 그늘을 눈가에 드리워 보였다. 다음해 그의 친구 김현의 죽음은 너무나 허탈하여 도무지 실감할수 없는 듯,「너는 아프냐…너는 아프구나」를 되풀이하더니 이른바, 맥주거품은 늘 왕관모양!/구름모양!부풀어 올랐고/그야 우리는 왕관부터 구름을 마셨으며/…의 김현을 위한 유명한 「황금취기」시리즈를 남기고 있다.김현은 문단의 「별」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문단전체의 통한이었다. 본래 익살스럽거나 짓궂은 구석은 없으나 그는 날이 갈수록 술을 마셔도 말을 줄이고 있다.그는 시인으로 사는동안 「상투적으로 사고하지않고 사물의 핵심을 투철히 바라보는자」 「불가능을 꿈꾸는자」이고자 꿈꾸는지도 모른다.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록을 번역하는 동안 말이 말하고자 하는 한계를 알게되었고 말의 그런 모습에 절망한 나머지 「침묵」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그의 두 눈은 이제 「아는것」으로부터 마음껏 자유로워져 요즘은 인간과 사물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는 인류애의 눈빛,눈빛으로 비쳐오는 시가 아닌,삶에 대한 분노와 파란과 비애의 극복이 담긴,심장을 울리는 뜨거운 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 보 ▲1939년 12월 서울 용산 출생 정재도씨와 방은련여사의 3남1녀중 셋째(차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 「독무」「화음」「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데뷔 ▲66년 「사계」동인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70∼73년 서울신문사 기자 ▲74∼75년 미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 자작시 「고통의 축제」영역 참가 ▲75∼77년 중앙일보기자 ▲77∼82년 서울예전 교수 ▲82년 스웨덴 스톡홀름대·핀란드 헬싱키대 개최 「현대문학 포럼」참가 ▲90년 샌프란시스코 휘트랜드재단주최 「문학회의」참가 ▲82년∼현재 연세대국문과교수 ▲72년첫시집 「사물의 꿈」(민음사),제임스 볼드윈 「또 하나의 나라」번역 출간,로버트 푸르스트·예이츠시선집 번역 ▲74년시선집 「고통의 축제」 ▲75년산문집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78년시집 「나는 별아저씨」(민음사) ▲79년크리슈나무르티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번역 출간(정우사) ▲82년시론집 「숨과 꿈」(문학과 지성사) ▲84년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문학과 지성사) ▲89년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세계사),산문집 「생명의 황홀」(세계사),파블로네루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세계사) ▲92년 시집 「한 꽃송이」(문학과 지성사·이 시집으로 이상 문학상수상)
  • 국립민속박물관/민족긍지 서린 서민문화메카로(국정탐방)

    ◎내년 2월 새 전시장 개관… 대대적 위상변화 모색/어떻게 달라지나/전래의 생활사 연구·자료기능 확충/보여주는 곳에서 체험적 공간으로 보통사람들의 문화 산실을 표방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보통이상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전 개관이 내년 2위로 바짝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에는 직제개편에 따라 중앙박물관에서 분리,독립했다.바야흐로 명실상부하게 우리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국제수준의 민속박물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펼치는 자리는 경복궁 동쪽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모두 1백10억원을 들여 추진중인 건물 내부개조공사의 공정은 현재 1백% 가까이 이루어져 마무리 손질만을 남겨 놓고있다.옛청사에 보관되어있던 유물은 9월28일부터 신청사로 옮기기 시작해 지난달 24일에는 민속박물관답게 터주신에게 무사히 이사를 끝낸것을 감사하는 고사까지 지냈다. ○최근 직제도 개편 경복궁안 한쪽에 그것도 일제가 지어놓은 낡은 옛청사에서 위풍이 당당한 새청사로 옮긴 것이 외형상의 변화였다면 지난 10월29일 단행된 직제개편에 따라 문화부직속기관으로의 독립은 내용적인 변화였다고 할수있다. ○정신사 중심으로 직제개편에 따라 관장은 4급상당의 학예연구관에서 3급상당의 학예연구관으로 격상됐으며 조직도 관리과·전시과의 2개과에서 관리과·전시운영과·민속연구과등 3개과로 확대 개편됐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원이 25명에서 13명의 학예직을 포함한 47명으로 늘어남으로써 연구및 사회교육기능의 확대가 가능해진 것도 내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종철관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의 틀이 갖추어진 만큼 심부름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긴 장정을 시작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속박물관의 변신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첫번째는 지금의 변화가 오래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게될 보이지않는 커다란 치적이라고 반기는 쪽이다.그동안의 박물관정책이 고고미술박물관에만 치우쳤던데 비해 민속박물관의 이같은 위상변화는 물질사중심의 정책에서 정신사쪽으로 옮겨가는 증거로 받아 들여질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민속박물관만이 가질수있는 전문성과 독창성이 발휘되어 비로소 정상적인 역할수행을 기대할수있는 조직적 정책적 기반이 완성됐다는 점도 높이 평가됐다.두번째는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속박물관의 기능이 아직도 크게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다.오늘날 정치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의 하나가 민속박물관이 활발히 기능을 수행하는 것임을 정부나 국민 모두가 아직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다소 불만스런 입장이다. 그러나 얼핏 편차가 큰 것처럼보이는 이 두 시각에서도 「민속박물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이처럼 새 민속박물관이 수행할 역할에 대해서 누구나 큰 기대를 걸고있다. 이에따라 새 민속박물관은 민속에 대한 의미부터 국민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자리잡게 만든다는 것을 당면목표로 삼았다.역사가 대개 왕후장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역사의 행간에 민중의 슬기와근면 장엄함이 숨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찾는 것이 민속학이고 민속박물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새민속박물관을 고리타분한 고대문화의 창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문화 생산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새민속박물관은 유형적인 삶의 문화와 함께 정신적인 풍속을 지켜주는 산실로 가꾸기로 했다.이를테면 농경문화의 전시를 통해 「쌀이 생산되기까지는 여든여덟번 손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되면 「쌀이란 도저히 훔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울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족대이동의 설날등 형태가 없는 체험적 문화적 공간까지 포용하는 방안까지 마련해 놓았다. ○미풍양속 등 발굴 이처럼 새민속박물관은 전시기능외에 연구와 자료관으로서의 역할이 크게 강화된다.이에따라 근·현대생활사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조사 수집해 전산기록화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또 전통적 미풍양속을 계속적으로 발굴,재현하고 기록화해 영구보존할 방침이다. 이렇게 모아진 생활문화및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대학과 연구소 일반국민을위해 무한봉사 제공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족생활문화에 관한한 명실상부한 중심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약사 ▲1946년 남산 왜성대자리에 국립민족박물관 개관. ▲1950년 전쟁으로 폐관. ▲1966년 경복궁내 수정전 자리에서 한국민속관으로 출범. ▲1973년 구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확장 개관. ▲1979년 국민민속박물관으로 개칭,문화재 관리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속변경. ▲1992년5월28일신청사로사무실이전. ▲1992년10월2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독립. ▲1993년2월 이전개관(예정) ◎무엇을 보여주나/선사∼조선시대 서민삶의 모습 재현/서당·회갑연·민속신앙 등 모형 전시/옥외엔 장승·귀틀집·물레방아 설치 문화부산하의 새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공간 및 연구인력이 늘어난 만큼 전시내용도 크게 확충된다.먼저 민속박물관은 구관의 2천9백60평에 비해 크게 늘어난 1만2천8백50평의 부지를 확보함에 따라 불가능하던 대규모 야외기획전시가 가능해졌다.옥내전시공간은 모두 2천2백24평으로 구관의 6백26평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났다.옥내전시공간은 다시 주전시공간과 보조전시공간으로 나뉜다.주전시공간은 3관 15실의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가 가능한 특별전시실로 구분시켰다. 보조전시공간에는 국제민속전시실과 영상실을 겸한 강당,민속사랑방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전시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전시유물도 2천5백11점에서 4천3백23점으로 크게 늘어나게 된다. 민속박물관은 새 전시관을 ▲진실로 강한 민족문화의 환상적 지평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축적된 공간 구성 ▲삶의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마당으로 만듣다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이에따라 기존의 정적 폐쇄적 전시에서 탈피해 체험적 전시가 될수있도록 디오라마 파노라마 입체음향등 특수전시기법을 적극활용해 역동적 입체적 통시적인 전시가 되도록 했다. 이런 원칙아래 전시장은 한국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가 ▲한민족생활사 ▲생활문물과 생산민속 ▲생애의례의 3영역으로 나뉘어 조명된다. 한민족생활사를 담은 전시1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조선시대까지의 생활사 측면을 역사적으로 다루도록 배려했다. 이 전시관에는 단군신화및 삼국건국신화와 함께 최근 발주된 부안격포제사유적을 재현하는등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추적해보는데 중점을 두기도 했다.여기에는 또 가야의 기마인물과 야철공방이 모형으로 재현되고 발해유물이 전시되는 등 민족자존의 회복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진다.전시2관은 생산민속과 생활문물로 꾸며진다.이곳에는 우리의 자연환경과 농경문화 생업 세시풍속 수공업 그리고 전통사회의 의·식·주생활을 선보일 계획이다. 생애의례를 주제로한 전시3관은 출생에서부터 상·제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전시한다.이에따라 선바위에 아들을 비는 풍습에서부터 출산 의례 돌상 서당 향교 관례 및 혼례 회갑연 상청과 상복 제사와 고사 사당등을 모형으로 꾸민다.또 각 통과의례 사이사이에 아이들의 놀이모습과 과거시험장면 주막 놀이기구 문방구와 책 선유락 한약방 굿청등도 역시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된다. 이밖에 박물관 옥외에는 물레방아와 귀틀집 장승등으로 살아 숨쉬는 서민문화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게 될 개관기념전시는 아직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박물관측은 현재 「잊혀져 가는 과거를 조명해주는 거울로서의 전시」계획을 구상중이다.또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투영해 줄수있는 내용으로 가능하면 보고 느끼고 직접 만져볼수 있는 전시」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4∼5개의 시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것 알기」 교육현장 만들터”/“문화마당 넓히는 계기됐으면”/이수정 문화부장관(인터뷰) 이수정문화부장관은 내년 2월로 다가온 국립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을 앞두고 요즘 1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현장을 찾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장관은 이 작업이 『침체된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문화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대로 된 문화공간」확보작업이 성과를 거둔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고 말한다. 『지금과 같이 높아진 국민들의 문화욕구는 경제 형편이 크게 나아지면서 현실화된 것입니다.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문화예술의 마당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민속박물관 이전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관은 그동안 문화공간 자체가 부족했었던데다 국가문화시설은 대부분 위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산의 국립극장이나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경우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건립이 시급한 자연사박물관은 똑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되겠다는 제 소신이기도 합니다.미군이 떠날 용산기지는 이같은 기간문화시설이 들어설 서울의 마지막 공간인셈입니다.다행히 각 당의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이러한 취지에 뜻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반갑습니다』 이장관은 현재 또 하나의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그것은 내년중 완공될 덕수궁 뒤편의 연극 전용극장이다. 『당초 이 땅은 영화진흥공사의 사옥 부지였습니다.그러나 극장을 이곳에 세우고 사옥은 홍릉에 짓도록 했습니다.문화공간은 시민에게 가까이 있어야하지만 사무실은 조금 멀어도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지요』 이장관은 이제 부족한대로 기본적인 문화시설은 어느정도 확보 되고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민속박물관의 이전 개관과 함께 대구와 부여박물관을 신축중이고 김해박물관이 가야유물 중심으로 탈바꿈한다.또 제주박물관도 신축중에 있다. 『그러나 어렵게 세워진 구민회관이나 문예회관이 아직은 문화공간이 아닌 예식장이나 안보교육장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음악인과 극단등은 무대가 없어 아우성입니다.이제는 새롭게 확충된 문화시설을 국민들이 직접 문화를 접할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데도 신경을 써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장관은 이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도 현재의 단순한 전시기능에서 연구기능위주로 탈바꿈시켜 국민교육을 위한 중추적인 국가기관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털어 놓았다.
  • 박진구 전 의원 입건

    【울산=이용호기자】 경남 울산 동부경찰서는 5일 국민당 울산지구당 위원장 박진구씨(58·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광장아파트 3동 703호)와 부위원장 이동석씨(42·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120의 15),울산군 강동면책 박봉수씨(50·강동면 구유리 323) 등 3명을 대통령선거법위반혐의로 입건했다.
  • 「5대더하기운동」 유공자 19명 포상

    절약·저축·생산성·수출·일 등 다섯가지를 10%씩 더하자는 「산업계 5대더하기운동 촉진대회」가 3일 경제5단체 주최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는 김경수대우조선공업(주)사장과 고종진동양맥주(주)대표이사가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동탑산업훈장=변정구(삼신대표) ▲철탑산업훈장=유성우(한국화약그룹이사) ▲산업포장=이경행(금성계전이사) 이희영(한국열처리대표) 윤태호(아남산업선임대리) 유재성(태창철강대표) ▲대통령표창=김순식(동아특수화학대표) 양현태(경남모직부장) 배순철(건설화학공업부장) 황태수(포철사원) 최영호(대한콘크리트공업대표) 박준익(롯데칠성음료대표) 윤순대(중소기업진흥공단과장) 이재중(서울금영이사) 송범석(제일제당사원) 삼성중공업조선해양사업본부 신성델타공업(이상 단체)
  • 대도시 도심 초중교 학생 격감/빈교실 문화공간 활용붐

    ◎서울만 3백98개학급 남아돌아/예식장·실내체육관으로 탈바꿈 대구시 구시가지의 초·중학교 빈 교실이 계속 늘고있다. 이는 정부가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학교수를 늘려온데다 도심에는 빌딩이 들어서고 상당수의 시민들이 비교적 내집장만이 손쉬운 교외로 속속 이주하면서 학생수가 줄어들어 빚어지는 현상이다. 이같은 현상은 서울의 경우 특히 거주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중구·종로·용산·서대문구등 강북지역의 초·중학교에서 4∼5년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요즘에는 한 학교당 평균 3∼5개의 교실이 비어있는 실정이다. 이들 학교에서는 남아도는 교실을 어린이회의실·교원식당 또는 탁아소,소강당 으로 활용하는등 문화공간으로 쓰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국민학교의 경우 모두 2만1천9백70개교실 가운데 2백12개가,중학교는 1만1천1백32개교실중 1백86개가 학생수부족으로 남아 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시교육청은 유휴교실활용을 위해 서부·중부·강남·동작등 4개교육청에 2억원의 특별예산을 지원,학교별·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자체활용방안을 수립,시행토록 하고있다. 현재 인왕국민학교는 4개의 빈 교실을 실내체육·강당·지역주민예식장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의 소강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 교동·남산·신용산등 3개 국민학교는 각각 2개씩의 유휴교실을 어린이회 회의실·학부모등 지역단체의 다목적회의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학동국교는 교실 2개를 생활예절교육장으로,1개를 교원식당및 휴게실로 활용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학생수의 감소로 빈 교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학교별·지역별 특수성을 최대한 살려 과학실·실과실·도서실등 특별교실과 태권도실·생활실등 학생특기실,교원휴게실 또는 연구실등 교원복지시설 등으로 구분,운영토록 28일 각 학교에 지시했다.
  • 옐친/“한·러는 이웃사촌…긴밀협력”/노대통령·옐친정상회담 이모저모

    ◎“기본조약은 우호의 나무키울 뿌리”/국회연설중에 20여차례 박수갈채 ○수행원 40여명 참석 ▷만찬◁ ○…노대통령과 옐친대통령은 19일 하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공식만찬에 참석,우의를 거듭 다지고 민속공연을 관람. 노대통령은 만찬사를 통해 『90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났을때 옐친대통령의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굳은 신념과 불굴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하고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러시아 건설에 선구적 역할을 하시게 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고 찬사. 옐친대통령은 『「클나무는 뿌리부터 돌봐주라」는 현명한 한국속담이 있다』면서 『오늘 서명한 기본조약이 양국과 양국민간 우호협력관계에 생명을 불어 넣어줄 뿌리다』고 강조. 이날 공식만찬에는 우리측에서 3부요인과 3당대표를 비롯해 각계인사 1백30여명과 러시아측에서 수행원등 40여명이 참석했으나 초청된 3당 대표는 다른일정으로 모두 불참. ○모두 기립박수 환영 ▷국회연설◁ ○…이날 하오3시5분쯤 옐친대통령이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옐친대통령을 맞았으며 옐친대통령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는 러시아식인사로 의원들에게 경의를 표시. 연설에 앞서 박준규국회의장은 경청을 위해 박의장부인 조동원여사와 함께 연단앞에 나란히 앉아있던 나이나 옐치나 옐친대통령의 부인을 향해 『영부인께서 따뜻한 환영에 부응하기 위해 잠시 일어나 달라』고 주문하자 나이나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들에게 오른손을 들어 인사했고,이때 의원들도 기립박수로 화답. ○…옐친대통령은 연설 중간중간에 『한국과는 전통적으로 적대적인 적이 없었다』고 강조하고 특히 1919년 우리나라의 3·1 기미독립선언문을 인용하면서 민족의 자유·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해 의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기도. 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이웃사촌」용어를 끄집어내 한·러협조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나가자고 강조. 이날 옐친대통령은 연설이 진행되는동안 의원들로부터 20여차례 박수를 받았으며 의원들은 주로 엘친대통령이 한국관계부분과 세계평화를다짐하는 대목에서 박수갈채. ▷3당대표면담◁ ○…이날 하오2시30분 국회에 도착한 옐친대통령은 이광로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박준규국회의장과 함께 2층의장접견실에 입장,미리 와있던 김종필민자당대표,김대중민주당대표,정주영국민당대표등 3당대표들과 반갑게 악수. 옐친대통령은 자신과 김영삼민자당총재의 단독면담(20일 상오 예정)을 의식한듯 특히 김대중대표에게만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 옐친대통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박의장과 단원제,국회일정,12월 대선등에 관해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특히 우리나라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박의장 설명에 『고생이 많겠다.러시아도 단원제라 힘든 일이 많다』고 조크. 이어 박의장은 『여기에는 각당대표와 대통령후보들이 다 나왔으며 한분 후보자는 국회의원직을 사퇴,참석치 못했다』고 참석자를 소개한뒤 『한국민들은 옐친대통령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치하. 박의장은 또 『러시아는 이제 태평양국가로서 우리나라와의 유대관계가 진심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희망. ○“방문 연기돼서 죄송” ▷청와대회담◁ ○…노태우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으로 나뉘어 1시간30분간 진행. 노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은 먼저 접견실에서 우리측은 김종휘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러시아측에서 유리코프 대통령 보좌관만을 배석시킨 가운데 단독회담에 들어가 최근의 동북아정세와 양국의 경제협력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 지난 90년 12월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때 만난 바 있는 두 정상은 회담에 들어가기 앞서 2년만에 다시 만난 반가움을 표시하며 개인적인 우의를 과시. 노대통령이 먼저 『러시아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된것을 우리국민 모두와 함께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2년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때 처음뵙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다』고 인사. 노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8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진 용감한 모습은 저는 물론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면서 『러시아의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 개혁이라는제2의 러시아 혁명을 주도하는 데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 이에 옐친대통령은 『먼저 지난 9월 방문계획이 연기된데 대해 다시한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뒤 『각하의 모스크바 방문과 저의 이번 서울 방문으로 한국과 러시아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답례.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와 옐친 러시아대통령부인 나이나여사는 양국정상들이 회담을 하는 동안 1층 접견실에서 환담. 김여사는 『러시아 대통령내외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건넸고 나이나 여사는 『어제 저녁 이태원 남산 등을 산책해보니 서울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서울에 대한 인상을 피력. 김여사는 이에 『서울거리를 돌아봤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침에 뵈니 아주 건강해 보여 반갑다』고 친밀감을 표시.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김종휘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회담이 끝난뒤 청와대 춘추관에서 1시간50분동안 계속된 단독정상회담과 10분동안 열린 확대정상회담의 내용에 대해 설명. 김수석은 『양정상이 폭넓고 솔직하게,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회담을 진행했고 특히 한반도문제와 양국관계문제를 중점 논의했다』면서 『특히 비교적 수식어를 생략해 회담을 진행,회담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지만 내용은 광범위하고 많았다』고 소개. ▷경제단체오찬◁ ○…시내 롯데호텔에서 19일 열린 경제4단체장 주최 오찬에 참석한 옐친러시아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한국기업의 대러시아 투자 저해요인이 되고 있는 러시아의 정치·경제 불안에 대한 의심을 불식하는데 주력. 옐친대통령은 『한국기업인들 사이에 러시아와의 통상이나 투자협력이 위험하고 불확실하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시인하고 『그러나 러시아지도부는 확고한 결의를 가지고 경제개혁 추진계획을 수행하고 있고 그 무엇도,그 누구도 우리를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고 단언. ○환영식 간소히 치러 ▷환영행사◁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옐친 대통령 내외를 위한 공식환영식은 우천으로 본관 1층홀에서 간소하게 거행돼 미리 준비됐던 환영사와 답사는 생략. 상오10시 정각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본관 현관에 도착한 옐친 대통령과 부인 나이나 여사는 노태우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은 『반갑습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고 옐친대통령은 『고맙습니다』고 답례.
  • 처용설화/“고려집권층에 대한 경고로 쓴것”

    ◎중대 김경수교수,일연의 「삼국유사」중 「처용낭망해사」 해석/강력한 군주인 헌강왕이 통치한 신라도 패망/“처용은 인질로 잡힌 침략자·부인겁탈자는 부패한 관료” 상징/어지러운 시대상황 우려,“고려도 망할 것” 암시 처용설화는 고려말의 어지러운 시대상황을 우려한 승려 일연이 민족주의적 현실인식에서 당시 집권층에 대한 경고적 의미로 기록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제기됐다.이 설화는 단순한 민속적 설화적 차원에서의 이해보다는 강력한 군주였던 신라말 헌강왕의 치적과 도래인 처용의 언행을 통해 고려집권층에 경고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중앙대 김경수교수(국문학)가 발표한 「처용낭망해사설화의 구조와 그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나왔다.김교수의 이번 연구는 그동안 처용설화에 관해서 발표된 1백40여편의 국내논문중 규명되지 않았던 두번째 단락과 세번째 단락까지를 모두 연계시켜 해석한 것.김교수는 일연의 삼국유사중에 나오는 처용낭망해사를 분석하면서 그동안 첫째단락만 주로 분석의 대상이 돼왔으나 둘째·셋째단락 모두가 첫째단락과 연결되는 하나의 작품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밝혀냈다. 첫번째 단락의 핵심은 헌강왕의 개운포 나들이로 보고 있다.개운포는 오늘날 울산 부근.헌강왕은 태평성대일수록 국방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철의 산지인 그곳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뜻밖에 운무를 만나 망해사를 짓게 되고 또 동해용자인 처용과의 만남도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다.왕은 처용을 서울(경주)로 데려와 급간이라는 벼슬을 주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녀와 장가를 들게 했으나 처용의 밤나들이때 역신이 나타나 처용의 처를 범함으로써 처용가가 나왔다는 것이다. 두번째 단락은 헌강왕 앞에 나타난 신들의 춤을 중심내용으로 하고 있다.남산신·북악신·지신들의 춤을 함께 있던 신하들은 보지 못하고 왕만 볼수 있었다는 사실은 헌강왕의 신통력과 위대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풀이다. 셋째 단락은 어법집에 기록된 내용을 인용 기술한 것으로 신라가 장차 망할 것이라는 운명을 알린 내용이다.이는 작가의 의식을 담은 것으로헌강왕처럼 위대한 성군이 통치한 신라도 결국 망했듯이 고려도 나라통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망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글로 해석했다. 김교수는 여기서 운무는 돌발적 사태,곧 갑작스런 침략행위와 같은 실제적 사건을 상징한 것이고 동해용은 침략자의 우두머리,왕을 위한 춤은 침략에 대한 사과로 보았다.망해사의 창사를 명하자 운무가 걷힌 것은 내침자의 항복이고 창사는 헌강왕의 외침에 대한 대응으로 분석하고 있다. 처용은 내침세력의 핵심인물이기 때문에 인질로 잡아두어 외세의 내침을 예방할수 있었다는 것이 김교수의 견해.그 댓가로 처용에게 미녀 부인이 제공되었고 처용의 부인을 겁간한 역신은 질투를 느낀 당시 집권세력의 불량배를 상징한 것으로 본 그는 처용설화는 결국 도래인과 원주민간의 대립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일연 당시의 고려사회는 왕권이 흔들리고 외세의 발호가 극에 달한 가운데 지방에는 민란,관료의 부패등 사회가 극도로 문란했던 시대.이런 시대상황 속에서 일연은 삼국유사를 집필하게 되었고 처용랑망해사도 그때 기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특히 산신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 신라의 운명을 예언하고 경계토록 했으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쾌락만 추구하므로 신라가 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인들에게 말하려 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 폐업 진양 노조간부/아파트 투신자살

    【부산 】최근 폐업한 부산지역 대형신발제조 업체인 (주)진양의 30대 노조간부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12m 아래 땅바닥에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일 상오10시45분쯤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 럭키아파트 104동 504호 정외숙씨(36·여)집 베란다에서 (주)진양의 노동조합 대의원 정병주씨(32·동래구 연산6동 2130)가 12m아래 땅바닥에 뛰어내려 숨진 것을 동생 병국씨(30)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병국씨에 따르면 아파트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던중 베란다쪽 유리창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와보니 형이 투신,자살했다는 것. 경찰은 정씨가 지난3일 노사 합의로 이 회사가 폐업한뒤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 지급문제 등으로 고민해 왔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이를 비관,자살한 것이 아닌가 보고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중이다.
  • 김장/예년보다 2∼3일 앞당겨야

    ◎추위 성큼… 서울·중부 20일이 적기/광주 등 호남지방 12월1∼10일/부산 등 남부해안지역 새달 20일 올 겨울은 예년보다 추위가 빨리 올 것으로 보여 그만큼 김장담그는 시기도 앞당겨야 할 것 같다. 기상청은 2일 『시베리아와 몽골지방의 찬 대륙성 고기압이 일찍 확장돼 이달 기온이 상·중순은 예년의 4∼11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고 하순은 2∼8도로 예년보다 낮을 것으로 보여 김장시기를 앞당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장적기는 예년보다 2∼3일 빨라 강원산간지방은 오는 10일쯤,서울·대전·춘천·안동·대구 등 중부·영남산간 내륙지방은 20일쯤,서산·군산·전주·광주·진주·포항·강릉 등 중부해안지방과 남부 호남산간지방은 12월1∼10일쯤,목포·완도·여수·충무·부산 등 남부해안지방은 12월20일쯤으로 꼽히고 있다. 제주도지방은 기후가 따뜻해 내년 1월에 김장을 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김장김치는 너무 일찍 담그면 금방 시어져 김치에 있는 비타민A·C 등이 파괴되고 신선도가 떨어지며 시기가 늦어지면 선김치를먹게돼 제맛이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장은 하루 최저기온이 0도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하루평균기온이 4도를 유지할때 담그는 것이 가장 좋다는게 요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요리전문가들은 『담근 김장김치는 온도변화가 적은 상태로 3∼4도를 유지하면서 2주일정도 익히면 제맛을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물가당국의 조사결과 김장김치의 주재료인 2.75㎏짜리 배추 1포기의 소매가격은 지난달초 2천5백원선이었으나 2일 현재 1천원에 거래돼 60%나 폭락했으며 1/5㎏짜리 무는 1개당 6백원으로 10월초에 비해 40%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이들 김장채소의 구입을 앞당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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