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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숲]남산공원

    숲여행 참가자 홍지승(11)양은 “식물에 대한 설명 뿐만 아니라 남산과 관련된 역사 등이 자세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남산식물원에서 서울타워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산책로다.제법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지만 15분 정도 걸어가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팔각정에 도달한다.하지만 1·3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남산 숲 여행’에서는 이 구간이 2시간의 대장정으로 훌쩍 늘어난다.늘상 보던 나무와 풀도 숲 해설가의 입을 거치면 생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숲해설가 이희교(62)씨는 “기록에 따르면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조선 태종때 경기도 장병 3000여명이 20일동안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1991∼1997년 ‘남산제모습찾기’ 사업을 통해 소나무 1만 8357그루를 심었으며 남산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이른다.남산은 동서 길이가 2.7㎞ 남북은 2.1㎞이며 면적은 약 90만평이다.이씨는 또 “열매가 까만 쉬나무는 호롱불에 쓰이는 기름을 짤 수 있다.”면서 “남산에 책을 많이 읽는 선비들이 다수 살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산에는 식물 361종과 나무 191종 등 모두 85과 280속 552종이 모여있다.대표적인 수종으로는 소나무,잣나무,신갈,아까시,팥배,산벚나무 등이 있으며 활엽수종이 77%,침엽수종이 23%를 차지하고 있다.풀종류는 남산제비꽃,고사리류,단풍취,억새,맥문동 등이 자라고 있다.최근 외래초본인 서양등골나물이 급속도로 번식,고유 수종의 보존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씨는 “흔히 아카시아라고 불리는 아까시는 꿀을 생산하는 밀원식물로 남산의 대표적인 수종”이라면서 “하지만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뿌리가 무덤을 파헤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 여행이 중반을 넘어 잠시 지루해지자 이씨는 나뭇잎 하나를 따서 씹어볼 것을 권유했다.시민들이 쓰다고 답하자 이씨는 “‘사랑의 쓴 맛’이라는 꽃말을 가진 라일락”이라면서 “한 외국인이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개량종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덧붙였다. 숲여행 참가자 홍지승(11)양은 “지난해 서오릉 숲 여행에도 가봤는데 맨발걷기 등이 있어서 좋았다.”면서 “식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남산과 관련된 역사 등이 자세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돼 참가했다는 윤정금(35·여)씨는 “아이들 교육에 그만”이라고 추천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조성완의 생생러브]잠 못드는 밤

    남산타워나 63빌딩에서 바라보면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빽빽한 고층 건물들의 불빛들도 멋져 보이고,한강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들도 낭만 있어 보인다.간간이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도 단풍나무 낙엽들처럼 색의 조화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낮에 보이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들쑥날쑥한 고층빌딩들은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고,강변도로를 따라 늘어선 차들은 시원하게 달리지 못하고 교통체증에 짜증만 나며,심지어 교회 십자가들도 동네마다 너무 많아 보이기도 한다.이처럼 밤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밤의 신비는 경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어려서 대소변 가리기를 배우면서 조금 자주 소변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2∼3시간마다 꼭꼭 화장실을 다니는 성인들이라도 밤에 잠을 자면 6∼7시간 동안 한번도 깨지 않을 수 있다.이는 잠자는 동안 소변을 적게 만들어 주는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며,잠 잘 자라고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런데,여러 이유로 소변이 마려워 자다가도 몇 번씩 깨는 증상을 ‘야간뇨’라고 하며,더불어 낮에도 소변을 자주 보고 급박뇨(소변이 마려우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아 참지 못하는 증상)가 심한 증상과 동반된다면 ‘과민성방광’이라고 한다.이러한 증상은 호르몬의 대사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보통 남자는 전립선 이상,여자는 방광 자체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생기는 방광의 이차변화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잠자다 말고 2∼3번 이상 깨게 되면 깊게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에도 피로를 느끼게 되며,여러 날 계속 반복되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짜증을 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야간뇨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인질환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므로,소변이 마려운 상태로 병원을 찾아 남성은 전립선검사를, 여성은 방광기능검사를 받아 보아야 한다.전립선 질환은 약물치료나 수술치료로 나아지고,방광기능이상은 약물치료나 대증요법으로 호전된다. 그리고 원인과 상관없이 도움이 되는 비결이 있는데,초저녁에 물이나 과일 등을 삼가고,낮잠은 피하며 여건이 된다면 반신욕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명동이윤수비뇨기과 공동원장˝
  • [부고]

    ●李珠雨(㈜동진소수력 회장)씨 별세 世寬(개인사업)宰寬(〃)海璟(한국화가)씨 부친상 李東植(LG칼텍스정유 부장)昌秀(전 아시아나항공 상무)씨 빙부상 6일 오후 10시40분 경희의료원,발인 9일 오전 6시30분 (02)958-9547 ●장주석(경운대 부총장)씨 모친상 6일 경북대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53)420-6147 ●朴陽春(전 경북대사회과학대학장)彦吉(자영업)昭春(한국산업단지공단 조사연구실장)曉春(삼진정기 해외영업부장)瑞春(부산남광종합사회복지관장)씨 모친상 金康男(자영업)씨 빙모상 6일 남산동 침례병원,발인 9일 오전 9시 (051)580-2000 ●林相采(동서울 집중국 특수계)吉采(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씨 부친상 崔演六(종로경찰서 경리계장)씨 빙부상 6일 오후 9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10시 (02)3010-2293 ●崔点相(㈜종합건축사사무소 한국조형 대표이사)씨 별세 이수만(자영업)하혜성(수협)金成燁(보령세무서)씨 빙부상 6일 오후 5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94 ●李光鎬(전 서울신문 공무국장)씨 빙모상 6일 적십자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32)817-9760 ●金相賢(조흥은행 대기업고객 부장)亨根(SK텔레콤 모바일디바이스 본부장)映兌(조흥은행 인재원 조사역)씨 모친상 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 8일 오전 5시30분 (02)760-2022 ●鄭然辰(자영업)然吉(자영업)然模(중소기업진흥공단 팀장)씨 부친상 辛相權(서울 서대문도서관 관리과장)씨 빙부상 7일 오전 2시 고양시 일산병원,발인 9일 오전 6시 (031)908-1599 ●김종호(전 도양중 교장)씨 상배 철(전 세계일보 조사부장)씨 모친상 7일 낮 12시50분 현대병원,발인 9일 오전 10시 (061)370-4406 ●趙泰源(사업)泰浩(〃)씨 모친상 盧喆鎬(국정홍보처기획과장)朴淵道(대원엔지니어링이사)씨 빙모상 6일 오후 3시 삼성서울병원,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1 ●金鍾寬(APP DUBAI지사장)鍾仁(브이아이컨설팅 대표)씨 부친상 崔秉瑄(건설산업연구원 원장)洪一杓(에이블모터스㈜)씨 빙부상 5일 오후 5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8일 오전 8시30분 (02)590-2538 ●李命奎(전 한진중공업 상무)씨 별세 6일 오전 9시3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410-6918 ●尹泓重(현대산업개발㈜ 과장)美姬(메디팜 평화약국 대표)씨 부친상 李範洙(타셋㈜ 이사)丁明鎭(동부정보 ㈜상무)씨 빙부상 7일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5시30분 (02)3010-2236 ●권한준(상호저축은행중앙회 팀장)씨 부친상 7일 을지병원,발인 9일 오전 9시30분 (02)972-6099 ●추장한(부산 연제구 선거관리위원회 관리계장)씨 별세 6일 부산 남천성당,발인 8일 오전 8시 011-1755-7131 ●柳基豊(유기풍 세무사 대표)씨 별세 準錫(자영업)씨 부친상 朴炅良(티엠시 대표이사)公在弘(㈜보헴 이사)씨 빙부상 7일 오후 1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10시30분 (02)3010-2260 ●金顯起(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예산과장)成起(프라임모터 차장)씨 부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8시 (02)3010-2237 ●琴武煥(LG후로링 대표이사)泰煥(변호사)씨 모친상 朴眞淑(방송작가)씨 시모상 6일 오후 10시52분 포항의료원,발인 9일 오전 9시 (054)249-1699 ●魏得雨(전 초대의왕시의회의장)씨 별세 晶植(SKC&CIT컨설팅팀부장)源植(㈜자이덱 대표이사)씨 부친상 5일 오후 11시40분 한림대성심병원,발인 9일 오전 6시 (031)386-2345 ●이익성(전 국회도서관 입법분석실장)씨 모친상 6일 오전 10시 보라매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835-6899 ●한춘성(자영업)씨 모친상 이상근(현대중공업 기원)한선범(㈜동방 태안지사 노조분회장)최민석(서울신문 문화사업부 과장)씨 빙모상 6일 오후 9시 성빈센트병원,발인 8일 오전 8시 (031)249-8849 ●申忠浩(국세청 공보관실)起浩(대한지적공사)씨 부친상 柳承均(자영업)金宣圭(한전기공 부장)씨 빙부상 7일 오후 3시4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64˝
  • 9일 한국·베트남 8개월만에 벼랑끝 승부

    ‘8개월을 기다렸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9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복병’ 베트남과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7조 3차전을 갖는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오만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4위인 베트남에 0-1로 덜미를 잡힌 바 있다.이번 경기는 당시 치욕을 되갚기 위해 8개월 만에 마련된 기회인 셈.또 이기는 것만이 목적은 아닌,부활의 날갯짓을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갈림길이기도 하다. 지난 5일 터키와의 친선경기 2차전에서 2-1로 역전승한 한국축구는 오랜 부진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지난 3월31일 몰디브 졸전에서 시작된 무득점 사슬도 시원하게 끊었다.올시즌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3승2무1패를 기록 중이다. 박성화(49) 감독 대행은 포지션 안배 때문에 김영광(21·전남) 조재진(23·수원) 박용호(23) 김치곤(21·이상 FC 서울)을 제외했다.그렇지만 대체로 ‘올드 보이’와 ‘젊은 피’를 한데 섞어 베스트11을 구성했다.터키전 역전골의 주인공 ‘샤프’ 김은중(25·FC 서울)과 안정환(28·요코하마 마리노스)이 다시 짝을 이뤄 베트남산 벌집수비를 뚫는다. 미드필드는 ‘월드컵 전사’ 김남일(27·전남)과 ‘해외파’ 박지성(23·PSV 에인트호벤) ‘철인’ 김동진(22·FC 서울) 등 신·구 조화를 통해 베트남을 압박하게 된다. ‘맏형’ 유상철(33·요코하마 마리노스)과 ‘포스트 홍명보’ 조병국(23·수원) 등 수비진 또한 한마음으로 역습을 차단한다. 박 감독 대행은 “월드컵 멤버들을 주축으로 삼겠지만 컨디션이 나쁜 선수들은 제외하겠다.”면서 “대신 올림픽호의 젊은 피를 과감히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브라질 출신 에드손 아우잔로 타바레스(48)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7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결전지인 대전으로 직행했다. 베트남도 다시 한번 ‘따이한 기적’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아시아 2차예선 7조에서 한국(1승1무)에 이어 2위(1승1패)를 달리고 있고 이번 원정에서 승리하면 조1위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베트남은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대표선수들의 외출을 전면 금지한 채 하노이 국립트레이닝센터(NTC)에서 맹훈련을 해왔다. 지난해 한국에 충격의 1골을 안긴 ‘신예’ 팜 반 쿠엔(20)이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지난 2월 몰디브전에서 2골을 몰아친 공격형 미드필더 판 반 타이 엠(22)을 앞세워 선수비 후역습에 나설 계획이다. 타바레스 감독은 “한국은 강팀이기 때문에 많은 준비를 했다.”면서 “한국의 모든 선수를 철저히 분석했으며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李珠雨(㈜동진소수력 회장)씨 별세 世寬(개인사업)宰寬(〃)海璟(한국화가)씨 부친상 李東植(LG칼텍스정유 부장)昌秀(전 아시아나항공 상무)씨 빙부상 6일 오후 10시40분 경희의료원,발인 9일 오전 6시30분 (02)958-9547 ●장주석(경운대 부총장)씨 모친상 6일 경북대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53)420-6147 ●朴陽春(전 경북대사회과학대학장)彦吉(자영업)昭春(한국산업단지공단 조사연구실장)曉春(삼진정기 해외영업부장)瑞春(부산남광종합사회복지관장)씨 모친상 金康男(자영업)씨 빙모상 6일 남산동 침례병원,발인 9일 오전 9시 (051)580-2000 ●林相采(동서울 집중국 특수계)吉采(서울시지하철건설본부)씨 부친상 崔演六(종로경찰서 경리계장)씨 빙부상 6일 오후 9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10시 (02)3010-2293 ●崔点相(㈜종합건축사사무소 한국조형 대표이사)씨 별세 이수만(자영업)하혜성(수협)金成燁(보령세무서)씨 빙부상 6일 오후 5시5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94 ●李光鎬(전 서울신문 공무국장)씨 빙모상 6일 적십자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32)817-9760 ●金相賢(조흥은행 대기업고객 부장)亨根(SK텔레콤 모바일디바이스 본부장)映兌(조흥은행 인재원 조사역)씨 모친상 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 8일 오전 5시30분 (02)760-2022 ●鄭然辰(자영업)然吉(자영업)然模(중소기업진흥공단 팀장)씨 부친상 辛相權(서울 서대문도서관 관리과장)씨 빙부상 7일 오전 2시 고양시 일산병원,발인 9일 오전 6시 (031)908-1599 ●김종호(전 도양중 교장)씨 상배 철(전 세계일보 조사부장)씨 모친상 7일 낮 12시50분 현대병원,발인 9일 오전 10시 (061)370-4406 ●趙泰源(사업)泰浩(〃)씨 모친상 盧喆鎬(국정홍보처기획과장)朴淵道(대원엔지니어링이사)씨 빙모상 6일 오후 3시 삼성서울병원,발인 8일 오전 8시 (02)3410-6911 ●金鍾寬(APP DUBAI지사장)鍾仁(브이아이컨설팅 대표)씨 부친상 崔秉瑄(건설산업연구원 원장)洪一杓(에이블모터스㈜)씨 빙부상 5일 오후 5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8일 오전 8시30분 (02)590-2538 ●李命奎(전 한진중공업 상무)씨 별세 6일 오전 9시35분 삼성서울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410-6918 ●尹泓重(현대산업개발㈜ 과장)美姬(메디팜 평화약국 대표)씨 부친상 李範洙(타셋㈜ 이사)丁明鎭(동부정보 ㈜상무)씨 빙부상 7일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5시30분 (02)3010-2236 ●권한준(상호저축은행중앙회 팀장)씨 부친상 7일 을지병원,발인 9일 오전 9시30분 (02)972-6099 ●추장한(부산 연제구 선거관리위원회 관리계장)씨 별세 6일 부산 남천성당,발인 8일 오전 8시 011-1755-7131 ●柳基豊(유기풍 세무사 대표)씨 별세 準錫(자영업)씨 부친상 朴炅良(티엠시 대표이사)公在弘(㈜보헴 이사)씨 빙부상 7일 오후 1시47분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10시30분 (02)3010-2260 ●金顯起(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예산과장)成起(프라임모터 차장)씨 부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8시 (02)3010-2237 ●琴武煥(LG후로링 대표이사)泰煥(변호사)씨 모친상 朴眞淑(방송작가)씨 시모상 6일 오후 10시52분 포항의료원,발인 9일 오전 9시 (054)249-1699 ●魏得雨(전 초대의왕시의회의장)씨 별세 晶植(SKC&CIT컨설팅팀부장)源植(㈜자이덱 대표이사)씨 부친상 5일 오후 11시40분 한림대성심병원,발인 9일 오전 6시 (031)386-2345 ●이익성(전 국회도서관 입법분석실장)씨 모친상 6일 오전 10시 보라매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835-6899 ●한춘성(자영업)씨 모친상 이상근(현대중공업 기원)한선범(㈜동방 태안지사 노조분회장)최민석(서울신문 문화사업부 과장)씨 빙모상 6일 오후 9시 성빈센트병원,발인 8일 오전 8시 (031)249-8849 ●申忠浩(국세청 공보관실)起浩(대한지적공사)씨 부친상 柳承均(자영업)金宣圭(한전기공 부장)씨 빙부상 7일 오후 3시4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64
  • [정보뱅크]쪽지통신

    ●간디청소년학교(제천)는 10일(목)부터 선착순으로 ‘2004년 제천 간디여름계절학교·가족캠프’ 참가자를 모집한다.e메일(whan730@hanmail.net)로만 신청을 받는다.이름과 학년,성별,참여희망기간,전화번호,주소,e메일 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을 반드시 적어야 한다.계절학교는 초등 4∼6학년 대상으로 55명을 모집한다.7월26∼31일까지 5박6일 동안 진행된다.참가비 22만원.가족캠프는 8월2∼5일 3박4일동안 만 6세 이상의 자녀와 함께 하는 부모가 참여할 수 있다.모집인원 60명.참가비 어른(중학생 이상) 12만원,어린이 10만원.(043)653-5791∼2. ●서울시 대안교육센터는 12일(토) 오후 3∼10시 서울 영등포동 하자센터 야외무대 등에서 ‘2004 에코 네트워크(ECO NETWORK) 페스티벌’을 연다.대안학교와 아름다운 가게 등이 친환경적 아이디어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벼룩시장과 비누아트숍,티셔츠에 그림 그리기,유기농 음식잔치,페이스 페인팅,별자리(손금) 봐주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생활 폐기물을 재활용한 악기를 연주하는 ‘허법 공연’과 하자 청소년 예술단의 공연도 선보인다.(02)2677-9200(내선 247). ●서울 강남도서관은 지난 1일부터 8월31일까지 3개월 과정의 ‘지역주민을 위한 민법공개강좌’를 개설,운영하고 있다.강의는 매주 금요일 오후 5∼7시,토요일 오전 10∼낮 12시까지,우보합동법률사무소 신병섭 변호사가 맡는다.무료.전화신청으로 30명 선착순 마감.(02)3448-4744.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제9회 여성주간 보육축제’에 전시할 공모물을 모집한다.‘보육아동 활동 사진전’에서는 재미있는 아이들의 모습을,‘따뜻한 놀잇감전’에서는 부모가 직접 만든 놀잇감을 전시한다.사진전에 참가하려면 홈페이지(www.gong dong.or.kr)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뒤 아이의 사진을 A3크기로 찍어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02)772-9817.놀잇감전에 참가하려면 전화로 참가를 신청한 뒤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면 된다.(02)772-9815.접수마감은 12일(토)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5-1 서울시 보육정보센터. ●남산도서관은 서울남산청년회의소와 공동으로 13일(일) 오후 1∼6시 남산공원 내 백범광장에서 초·중·고생과 일반인 1500여명이 참가하는 ‘제6회 목월문화제’를 연다.백일장은 산문부와 운문부로 나뉘어 실시되며,식전행사로 시 낭송과 특별공연이 마련됐다.학생은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일반인은 당일 현장에서 접수를 받는다.준비물은 필기도구,책받침,지우개,도시락,야외용 돗자리.원고지는 무료.(02)754-7579.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6)충담(忠談),백성을 사랑하는 노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6)충담(忠談),백성을 사랑하는 노래

    765년 신라 경덕왕 24년 봄이었다.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강압통치를 시작한 지 100년이 되던 760년,경덕왕은 승려 월명(月明)에게 부탁하여 ‘도솔가’를 짓게 했다.국가의 큰 변괴를 막고 화평을 가져오도록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기도의 노래였다. 흔히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력으로 정벌하고 두 나라 백성들을 잔혹하게 짓밟아 복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한 때를 통일신라시대라 부른다.‘통일’이란 말이 지닌 미묘한 정치적 갈등과 인권탄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그래서 늘 긴장과 불화가 삶을 온통 짓이겨 놓은 것을 통일이라는 단어 속에 억지로 가둬버린 사실을 뜻밖에도 경덕왕은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나라를 빼앗긴 지 한 세기가 되도록 끈질기게 저항했다.저항은 때때로 크고 작은 지역민의 반란으로 나타나거나,농사 지은 곡식을 세금으로 내지 않고 항의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거나,신라식 지명 표기를 거부하거나,신라 정부가 내린 명예직 직함을 던져 버리기도 했다.그 점을 경덕왕은 ‘변괴’라고 본 것이다.화평을 하늘에 기원한 것은 지난 한 세기가 얼머나 많은 불화와 피를 부르는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덕왕 대중에 인기있는 충담에게 安民歌 부탁 백제와 고구려 정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경덕왕은 도솔가를 지어 전국에 보급시키면서 통일신라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우고자 했었다.그런데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은 여전히 저항을 계속했다.760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의 모든 지명을 신라 명칭으로 바꾸면서 행정구역까지 바꾸어 유민들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하고,지역의 관습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경주의 신라 정권이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경덕왕은 다시 충담에게 백성을 사랑하고 세상이 편안하게 될 수 있는 안민가(安民歌)를 부탁했다.충담이란 승려는 신라 전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노랫말 작사가였다.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충담의 이름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 것이다. 충담은 왕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지를 노래했다.충담은 백성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정치가 올바르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백성들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즉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백성에게 먹는 문제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백성의 기본적 의식주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면 백성들은 그 나라와 임금을 하늘처럼 여기게 되고,웬만한 환란이 있어도 나라를 버리고 떠나지 않게 되며,이것이 바로 바른 정치라는 유교적 철학을 펼쳐 보였다.실제로 신라에 정복당한 고구려와 백제 땅에서는 신라의 조세정책이 균등하지 않은 점 때문에 배고픈 백성들이 일본이며 중국으로 도망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탈출하여 만주 벌판을 떠도는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하는 옛 역사기록이다.765년 어느 봄날,경덕왕이 승려 충담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삼국유사는 매우 자세하게 그려 놓고 있다. ●봄 가을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에 茶공양 왕이 그 해 삼짇날(3월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라가 있다가 충담을 만난다.그때 충담은 허름한 옷차림이었고 등에는 앵통(櫻筒)을 짊어지고 있었다.벚나무로 짜맞춘 통으로,그 안에다 생활 도구를 넣고 운반하거나 할 때 사용하는 생활 용품이었다.왕이 어디 갔다 오는지를 묻자 충담은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불상에게 차를 끓여 바치고 오는 길이라 대답한다.그러자 왕이 자신에게도 차 한 잔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충담이 앵통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도구를 꺼내어 차를 달여 왕에게 내놓는다.왕은 차를 마신 뒤 그릇에서 좋은 향기가 풍겨나는 것을 감상한다.그런 다음 ‘안민가’를 짓도록 부탁하여 즉석에서 시가 완성되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충담이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두 차례에 걸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불상 앞에 차공양을 해 오고 있다는 대목이다.또한 경덕왕도 차(茶) 마시는 일이 낯설거나 서툴지 않고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신라왕실과 차문화는 이미 선덕왕(632∼647) 때의 기록에 나타나 있고,661년에는 문무왕이 종묘사직에 차를 올리고 있으며,718년에는 신라의 왕자 김교각이 중국 구화산으로 출가하면서 신라의 차종자를 가져가서 심은 것이 오늘날의 금지차(金枝茶)이며,뒤이어 765년 충담의 미륵불 헌다 사실이 이어진다.이 사실은 중국 차문화의 성인(聖人)으로 존경받은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펴낸 760년보다 무려 100년 더 앞서 신라에 차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신라 왕자 김교각 中에 茶종자 전파 더욱 기이한 것은 고려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기록에 통일신라의 대렴이란 자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 종자를 구하여 돌아와 지리산록에 심은 828년을 우리나라 차문화의 기원으로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우습고도 부끄러운 기록이 ‘삼국사기’라는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오늘날 한국의 차문화 연구자는 물론 수많은 차인들이 이 기록을 그대로 믿고 따라간다는 것이다. 선덕왕 때의 차문화 역사로 따져 무려 200여년이나 뒤의 일을 어찌하여 기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충담이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 앞에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씩 헌다했다는 사실은 이미 신라에 삼월삼짇날과 구월구일이면 하늘의 신라 땅의 여러 신들,그리고 부처에게 차를 공양하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그렇다면 충담이 미륵불에게 올린 차는 어디서 난 것일까? 선덕왕은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차문화 생활을 주도하고 있는데,이 때의 차는 또 어디서,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의식은 어디서 근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충담이 경덕왕에게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한 나라의 음식문화의 뿌리와 전통을 사실대로 적고 이해하는 점이다.음식은 인간의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더욱이 차는 음식 중에서도 정신성이 가장 강하고 높은,최고의 음식이어서 차의 기원과 차문화사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민족 문제이기도 하고,문화 종속 문제를 낳고 푸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력이 우려를 넘어서 폐해로까지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 중국산 농산물에 의한 한국 농업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차문화에 대한 중화사대주의가 불러들인 현실적 재앙이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로고 하실지면 백성이 (임금의) 사랑을 알리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주어진 날을 순응하며하루 하루 살아가는 백성은 먹는 일이 가장 절실하나니 백성을 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 (백성이)신라를 버리고 어디 가리이까 나라는 그렇게 유지되어질지이다 아,임금답게,신하답게,백성답게 할지면나라 안이 편안해질 것이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6)충담(忠談),백성을 사랑하는 노래

    765년 신라 경덕왕 24년 봄이었다.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강압통치를 시작한 지 100년이 되던 760년,경덕왕은 승려 월명(月明)에게 부탁하여 ‘도솔가’를 짓게 했다.국가의 큰 변괴를 막고 화평을 가져오도록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기도의 노래였다. 흔히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력으로 정벌하고 두 나라 백성들을 잔혹하게 짓밟아 복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한 때를 통일신라시대라 부른다.‘통일’이란 말이 지닌 미묘한 정치적 갈등과 인권탄압을 그럴싸하게 포장한,그래서 늘 긴장과 불화가 삶을 온통 짓이겨 놓은 것을 통일이라는 단어 속에 억지로 가둬버린 사실을 뜻밖에도 경덕왕은 간접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은 나라를 빼앗긴 지 한 세기가 되도록 끈질기게 저항했다.저항은 때때로 크고 작은 지역민의 반란으로 나타나거나,농사 지은 곡식을 세금으로 내지 않고 항의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거나,신라식 지명 표기를 거부하거나,신라 정부가 내린 명예직 직함을 던져 버리기도 했다.그 점을 경덕왕은 ‘변괴’라고 본 것이다.화평을 하늘에 기원한 것은 지난 한 세기가 얼머나 많은 불화와 피를 부르는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덕왕 대중에 인기있는 충담에게 安民歌 부탁 백제와 고구려 정복 100주년이 되는 해에 경덕왕은 도솔가를 지어 전국에 보급시키면서 통일신라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우고자 했었다.그런데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은 여전히 저항을 계속했다.760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의 모든 지명을 신라 명칭으로 바꾸면서 행정구역까지 바꾸어 유민들의 결속력을 느슨하게 하고,지역의 관습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경주의 신라 정권이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경덕왕은 다시 충담에게 백성을 사랑하고 세상이 편안하게 될 수 있는 안민가(安民歌)를 부탁했다.충담이란 승려는 신라 전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이자 노랫말 작사가였다.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충담의 이름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 것이다. 충담은 왕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릴 수 있는지를 노래했다.충담은 백성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정치가 올바르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백성들은 이식위천(以食爲天) 즉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백성에게 먹는 문제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백성의 기본적 의식주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면 백성들은 그 나라와 임금을 하늘처럼 여기게 되고,웬만한 환란이 있어도 나라를 버리고 떠나지 않게 되며,이것이 바로 바른 정치라는 유교적 철학을 펼쳐 보였다.실제로 신라에 정복당한 고구려와 백제 땅에서는 신라의 조세정책이 균등하지 않은 점 때문에 배고픈 백성들이 일본이며 중국으로 도망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탈출하여 만주 벌판을 떠도는 이들이 많은 사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하는 옛 역사기록이다.765년 어느 봄날,경덕왕이 승려 충담을 만났을 때의 장면을 삼국유사는 매우 자세하게 그려 놓고 있다. ●봄 가을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에 茶공양 왕이 그 해 삼짇날(3월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라가 있다가 충담을 만난다.그때 충담은 허름한 옷차림이었고 등에는 앵통(櫻筒)을 짊어지고 있었다.벚나무로 짜맞춘 통으로,그 안에다 생활 도구를 넣고 운반하거나 할 때 사용하는 생활 용품이었다.왕이 어디 갔다 오는지를 묻자 충담은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불상에게 차를 끓여 바치고 오는 길이라 대답한다.그러자 왕이 자신에게도 차 한 잔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충담이 앵통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도구를 꺼내어 차를 달여 왕에게 내놓는다.왕은 차를 마신 뒤 그릇에서 좋은 향기가 풍겨나는 것을 감상한다.그런 다음 ‘안민가’를 짓도록 부탁하여 즉석에서 시가 완성되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충담이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두 차례에 걸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불상 앞에 차공양을 해 오고 있다는 대목이다.또한 경덕왕도 차(茶) 마시는 일이 낯설거나 서툴지 않고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다. 신라왕실과 차문화는 이미 선덕왕(632∼647) 때의 기록에 나타나 있고,661년에는 문무왕이 종묘사직에 차를 올리고 있으며,718년에는 신라의 왕자 김교각이 중국 구화산으로 출가하면서 신라의 차종자를 가져가서 심은 것이 오늘날의 금지차(金枝茶)이며,뒤이어 765년 충담의 미륵불 헌다 사실이 이어진다.이 사실은 중국 차문화의 성인(聖人)으로 존경받은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펴낸 760년보다 무려 100년 더 앞서 신라에 차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신라 왕자 김교각 中에 茶종자 전파 더욱 기이한 것은 고려 때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기록에 통일신라의 대렴이란 자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차 종자를 구하여 돌아와 지리산록에 심은 828년을 우리나라 차문화의 기원으로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우습고도 부끄러운 기록이 ‘삼국사기’라는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오늘날 한국의 차문화 연구자는 물론 수많은 차인들이 이 기록을 그대로 믿고 따라간다는 것이다. 선덕왕 때의 차문화 역사로 따져 무려 200여년이나 뒤의 일을 어찌하여 기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충담이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불상 앞에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씩 헌다했다는 사실은 이미 신라에 삼월삼짇날과 구월구일이면 하늘의 신라 땅의 여러 신들,그리고 부처에게 차를 공양하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그렇다면 충담이 미륵불에게 올린 차는 어디서 난 것일까? 선덕왕은 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차문화 생활을 주도하고 있는데,이 때의 차는 또 어디서,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의식은 어디서 근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충담이 경덕왕에게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한 나라의 음식문화의 뿌리와 전통을 사실대로 적고 이해하는 점이다.음식은 인간의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더욱이 차는 음식 중에서도 정신성이 가장 강하고 높은,최고의 음식이어서 차의 기원과 차문화사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민족 문제이기도 하고,문화 종속 문제를 낳고 푸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차문화의 영향력이 우려를 넘어서 폐해로까지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면 중국산 농산물에 의한 한국 농업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차문화에 대한 중화사대주의가 불러들인 현실적 재앙이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 백성은 어린아이로고 하실지면 백성이 (임금의) 사랑을 알리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주어진 날을 순응하며하루 하루 살아가는 백성은 먹는 일이 가장 절실하나니 백성을 배불리 먹여 다스린다면 (백성이)신라를 버리고 어디 가리이까 나라는 그렇게 유지되어질지이다 아,임금답게,신하답게,백성답게 할지면나라 안이 편안해질 것이이다. ˝
  • [메디컬 라운지]

    대한소아과학회(이사장 윤용수)는 최근 서울 조선호텔에서 회장단 모임을 갖고 최근의 출생률 격감에 따른 학회의 입장을 정부에 알려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기로 했으며,‘소아과’라는 기존 진료과목을 ‘소아청소년과’로 바꿔 일반인들의 진료과목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로 했다.진료과목 변경 문제는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어 9월중에는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학회 측은 덧붙였다. 학회는 이와 함께 모유 수유 홍보활동을 한층 강화해 올해부터 국가적인 모유수유 권장운동을 펴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모유수유 관련 비디오 제작 배포,모유수유 강좌 및 상담활동을 전개하기로 했으며,학회 홈페이지(www.pediatrics.or.kr)에 모유수유 상담코너도 개설,운영하기로 했다.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소장 윤태기)와 여성 전문병원인 강남 미즈메디병원(원장 노성일)이 국내 불임치료센터로는 처음으로 ISO9001 인증을 나란히 획득했다. 여성의학연구소는 지난 98년 세계 최초로 ‘유리화 난자동결법’에 성공해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이 기술은 특허 취득에도 성공하는 등 불임치료 분야에서 괄목할 실적을 거둬 왔다.또 미즈메디병원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과 함께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으며,국제기준에 따라 의사와 간호사 등 직원들의 업무를 재평가하는 등 의료 및 경영 선진화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과 ㈜옥시 신현우 대표는 최근 옥시의 항균브랜드 데톨(Dettol)을 대한의사협회 공식 제품을 추천하는 협약식을 가졌다.의사협회 창립 이래 최초로 체결한 특정 제품 추천 협약에 따라 데톨의 모든 생활 용품에는 ‘대한의사협회 추천제품’이라는 문구가 삽입되며,국민 위생의식 향상을 위한 캠페인과 연구도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한양대 국제협력병원은 해외 여행자의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치료하기 위해 ‘여행자 클리닉’을 개설,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매주 수요일 오전에 운영되는 여행자 클리닉에서는 해외 여행중에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풍토병 등을 예방,치료하기 위해 접종 및 종합진료를 한다.문의 (02)2290-9573. 대한암학회가 6월 ‘암의 달’을 맞아 ‘癌중모색,희망’ 캠페인의 일환으로 실시한 제1회 암극복수기 공모에서 백경혜(36)씨가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백씨는 임신 중 유방암 선고를 받고도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데 이어 성공적으로 암을 이겨낸 과정을 수기화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시상 일정은 추후 결정되며,응모작은 대한암학회가 수기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서울시 치과의사회가 선정한 올해 건치연예인에 가수 동방신기와 쥬얼리,개그맨 이창명과 아나운서 김현욱씨 등이 선정됐다.의사회는 최근 서울지역 치과의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같이 결정하고,오는 13일 오전 9시 남산 장충단공원에서 열리는 2004치아의 날 행사때 시상할 계획이다.˝
  • 낙산공원의 변신…서울의 ‘몽마르뜨’

    낙산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울시민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열에 아홉은 ‘강원도’ 혹은 ‘동해’라고 답한다.하지만 낙산(洛山) 아닌 낙산(駱山)은 서울에 있다. 서울시가 혜화동 대학로 뒤편에 있는 ‘낙산공원’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몽마르트 언덕처럼 명소로 꾸미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몽마르트는 해발 129m 언덕으로 가난한 화가들이 많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평평한 지형이 대부분인 파리에서 파리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송명호(54)팀장은 “낙산도 해발 125m이고 이곳에 오르면 남산타워·북한산·도봉산 등 서울의 동서남북이 한눈에 보인다.”면서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의 이점을 이용하면 낙산도 몽마르트 못지않은 명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시는 이에 따라 이달부터 지속적으로 ‘낙산공원 새옷 입히기’행사를 개최한다.오는 5일 깃발에 소망을 써서 낙산공원길에 세워두는 ‘내 소망 깃발 세우기’를 시작으로 ‘문화유적 오색 돌쌓기’,‘성벽따라 떠나는 역사 나들이’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다.특히 2.1㎞에 이르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전문가로부터 낙산의 각종 문화유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낙산공원에는 폐위된 단종비 송씨가 생계를 위해 비단에 자주색 물을 들여 팔던 샘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자지동천(紫芝洞泉)’을 비롯,청나라 볼모로 잡혀간 효종이 홍덕이라는 나인이 담가 바치던 김치 맛을 잊지 못해 본국으로 온 뒤 밭을 만들어 이름붙인 ‘홍덕이네 밭’등이 있다. 또한 낙산 정상부근에는 조선 초의 청백리 유관 선생이 비가 오면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 비를 피했다는 데서 유래된 ‘비우당’이 있다. 한편 낙산은 서울의 풍수지리상 서쪽의 인왕산에 대치하는 산으로 그 모양이 낙타(駱駝)등과 비슷해 ‘낙타산’혹은 ‘낙산’이라 불리게 됐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부동산 in]용산 트라팰리스에 ‘돈脈’ 흘러드나

    서울 용산 ‘시티파크’를 앞지르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나온다.서울 용산구 용산동 19번지 일대 용산공원 남측 특별계획구역에 들어설 ‘트라팰리스’주상복합 아파트를 일컫는 말이다.시티파크 앞쪽 용산공원과 붙어 있다.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공동 시공사로 참여한다.지상 34∼40층 6개동 1014가구(아파트 888가구,오피스텔 126실 예정)로 오는 11월쯤 분양될 예정이다. 지명도 높은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는데다 입지여건이 빼어나 시티파크에 이어 다시 한번 청약 광풍이 예상된다. 분양 전까지는 지분(조합원이 갖고 있는 토지에 관한 권리)을 사고팔 수 있어 투자자들의 발길이 꾸준하다.지분 가격이 평당 4000만원을 넘어섰다.연초보다 20∼30% 올랐다. ●조망권,‘시티파크’보다 낫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트라팰리스가 시티파크보다 낫다는 근거로 빼어난 입지를 댄다.조망권,교통여건이 뛰어나다.발전 가능성도 그만이다. 조망권을 보자.이 아파트는 21∼45층짜리 동·남향으로 배치될 예정이다.동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전혀 없다.이 때문에 단지와 붙어 있는 용산공원을 앞마당처럼 내려다볼 수 있다.10층 이상은 남산 조망도 가능하다.남향 30층 이상 아파트는 멀리나마 한강을 볼 수 있다.한강 시민공원 이촌지구를 이용하기 쉽다.트라팰리스가 들어서면 대부분의 시티파크 아파트는 용산공원 조망이 가린다. 교통여건도 빠지지 않는다. 걸어서 5∼6분 거리에 경부고속철도 용산역이 있다.용산역은 경부고속철도 출발역으로 이용된다.지하철 1·4호선을 이용하기도 편리하다.이촌역에서 걸어서 2∼3분 거리다.서울 도심이나 강남 이용도 쉽다.시청까지 승용차로 5분 안팎 거리다.한강대교와 동작대교와 바로 이어진다. 발전 가능성도 크다.용산역을 중심으로 용산 부도심 개발이 진행 중이다.멀지 않아 이 곳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국립박물관이 용산공원안에 들어선다.미군기지 이전이 이뤄지면 주거환경이 쾌적해지고,건축 규제 등이 풀려 부동산값 상승도 기대된다. ●지분 가격 출렁 시티파크 분양 이후 지분 가격이 급등했다.올해 초부터 가격 오름세가 눈에 띄었지만 불을 댕긴 것은 시티파크였다. 올해 초 평당 2500만∼3000만원 했던 재개발 지분 가격은 시티파크 청약 이후 껑충 뛰었다.무려 평당 500만원 이상 올라 평당 35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격이 빠졌다.주택거래신고제 시행 이후 강남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지분 가격이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용산지역도 신고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한껏 달아올랐던 투자열기가 가라앉았다.급매물 위주로 가끔씩 거래될 뿐이다. 20∼30평대 지분의 경우 한때 평당 3700만원까지 거래됐던 땅이 최근 3300만원에 팔렸다.급매물은 3000만∼3200만원 수준으로 약보합세다. ●실수요자 숨 고른 뒤 투자를 조합은 14일까지 희망 입주 평형 신청을 받은 뒤 관리처분을 시작할 방침이다.무상 지분율은 140%로 예상된다. 지분 10∼20평을 갖고 있는 조합원들은 38평형을 배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땅 10평을 사면 아파트 14평형을 무료로 받고 나머지 평형에 해당하는 분양가를 추가로 내면 된다.따라서 14평형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무료로 받고 나머지 24평형에 해당하는 분양가(평당 1500만원 예상) 3억 6000만원을 추가로 내면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장 투자하기보다 한숨 고른 뒤 투자할 것을 권한다.재개발지구 투자 시점을 가르는 기준은 관리처분.조합원이 갖고 있는 땅의 재산가치를 따져 새로 들어설 아파트 입주 평형과 추가 부담금을 결정하는 단계다.이 때문에 관리처분이 시작되면 사업 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 가격이 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용산특별계획구역은 사정이 다르다. 전반적으로 집값이 빠지는 분위기에다 용산구가 신고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지분 시세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현구 거성부동산 사장은 “지분 시세는 당분간 약보합세를 유지할 것 같다.”면서 “관리처분 계획이 진행돼 수익분석을 예상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전경련회장 초청 정책자문포럼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신희석 교수는 오는 5일 저녁 7시 강신호 전경련 회장을 남산클럽 회의실로 초청해 ‘한국경제를 보는 시각과 경제정책추진방향’을 주제로 정책자문포럼을 개최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경주 남산(南山)은 불교설화 탄생의 무대다.화려하고 장엄한 남산의 위용은 산의 높이나 크기 때문이 아니다.높이로 볼 때는 해발 500m가 못되는 산이며,크기도 한국의 이름난 산들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그리하여 신라시대 제향하던 32명산 중에도 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런데도 남산은 신라 귀족의 발생지이자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성역(聖域)으로서 7세기 중엽 무렵부터 산간불교(山間佛敎)가 크게 번창했을 때 신라를 상징하는 불교미술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던 곳이다. 남산에는 지금 106군데의 사지(寺址),61기의 석탑,78체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용장사지(茸長寺址)에는 3층석탑 한 점과 삼륜대여래좌상 한 점이 전해지고 있다.이 곳 용장사지는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까맣게 잊혀 왔다.오늘 필자는 문제의 그 사건 속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경주 남산을 오른다. ●3층석탑 주변 솔숲 산불도 비켜가 사건의 주인공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김시습은 1460년에서 1470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을 용장사에서 살았었다.그가 이곳에 살면서 남긴 유명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였다.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하여 처음 이 산을 올랐던 1986년 겨울과 1987년 봄철에 보았던 금오산(金鰲山) 정상,동서남북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 울창하던 솔 숲은 몇 년 전 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을씨년스러운 상수리나무 몇 가지와 막 꽃이 지고 있는 철쭉 서너 포기가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나그네 앞에서 울음을 참는 듯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 나들목으로 들어설 때 오른쪽 한시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남산은 거북등 같은 바위에 덮여 있다.남산의 주봉을 금오산이라 부르는데,鰲자는 큰 거북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 모양이 거북이나 자라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글자를 넣어 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용장계곡 물소리는 옛 신라 승려들이 합창하는 범패(梵唄) 소리와 용장사 종루에서 푸른 새벽빛을 깨치던 종소리,계곡 물 속에서 눈을 뜬 채 잠들었던 산천의 잠을 깨우는 목탁소리,대지가 깨어나는 기척을 바람보다 먼저 알아채는 산새소리들이 소리로 화석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듯 은은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용장사지 3층석탑에 이르는 산길에는 기적처럼 솔숲이 남아있다.남산을 집어삼켰다던 불길이 용장계곡 능선 조금 못 미친 기슭에서 뚝 멎었단다.소나무들은 모두 철갑을 두르고 있다.용장사지 역사와 남산의 신비를 수호하기 위해 철갑으로 무장한 신장들이다. 3층석탑 안내판은 여기가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필자는 3층석탑 그늘에 기대 앉아 가방 속에 든 자료 묶음을 꺼내어 펼쳤다.일본 공립여자대학(共立女子大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 교수가 보내준 기록이다. 일본에서 편집 정리한 조선왕조실록 중 ‘계미 조선 세조9년(7월)’이라고 인쇄된 부분이다.기타지마 만지 교수는 일본에서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 원로학자이자 임진왜란 연구자로 유명하다. 김시습이 용장사를 크게 수리하여 지낼 때 그를 찾아왔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글은 ‘매월당집’에 들어 있는 그의 시집 제12권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수록되어 있다.‘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與日東僧俊長老話)’,‘섬 오랑캐의 거처(島夷居)’라는 제목의 시 두 편이다.필자는 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비밀을 풀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차문화,즉 다도(茶道)가 지니고 있는 미학의 세계는 조선의 농촌 초가 구조,청빈한 수행승들의 토굴문화,조선의 자연환경을 많이 닮은 데가 있다고 느껴오던 나머지였다. ●조선의 자연 닮은 日다도의 세계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에서는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 일본 관련 글자나 이름,사건 등이 나오는 부분을 일본역사와 비교하면서 다시 읽고 나서 정리를 한다고 한다.그런 뒤 일본 역사 기록에서 확인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관련 부분에 매우 정밀하게 적어 넣어서 읽는다. 필자는 매월당 시집에서 나오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준(俊)’이란 사람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타지마 만지 교수에게 연락을 했었다.기타지마 교수는 필자가 원하는 시기인 1460년에서 1470년 사이에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람 중에서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신으로 이 기록을 보내주었다.필자는 일본 기록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무섭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승려가 일본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한 것은 1463년 7월14일이었다고 했다.이 기록에 나타난 준이라는 자와 김시습의 시 제목에 등장하고 있는 준이라는 자가 동일인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문제였다.필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김시습이 살았던 남산 용장사지를 찾아온 것이다.어떤 영감 같은 것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였다.다행인 것은 평일이어서 등산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요한 시간 속에서 명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뻐꾸기 우는 소리 사이로 꾀꼬리 우는 소리가 고요의 속살을 간질인다.먼저 김시습의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 만하여라 ●日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조선 찾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준’이라는 승려가 그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준을 위하여 질화로에다 물을 끓여 차를 내놓고 있는 점,손님이 찾아 온 시기가 늦은 봄이라는 사실,나그네와 밤새워 이야기했다는 점이다.일본 기록에서 준이라는 자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7월14일이고,김시습을 찾아온 손님이 일본인이었다면 어떻게 두 사람이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김시습이 일본어를 할줄 알았다든지 일본인이 조선말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든지,아니면 통역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세조실록’(세조 10년 2월17일 경자조)의 기록이다. “왜국 사자(使者) 중 준초(俊超) 등이 지난해에 하직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는데,이들이 영등포에 이르러 바람에 막히어 머물러 있었다.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예빈관 소윤 정침을 보내어 이들을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지대(指待)하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하셨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루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만 하여라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上)

    경주 남산(南山)은 불교설화 탄생의 무대다.화려하고 장엄한 남산의 위용은 산의 높이나 크기 때문이 아니다.높이로 볼 때는 해발 500m가 못되는 산이며,크기도 한국의 이름난 산들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그리하여 신라시대 제향하던 32명산 중에도 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런데도 남산은 신라 귀족의 발생지이자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성역(聖域)으로서 7세기 중엽 무렵부터 산간불교(山間佛敎)가 크게 번창했을 때 신라를 상징하는 불교미술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던 곳이다. 남산에는 지금 106군데의 사지(寺址),61기의 석탑,78체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용장사지(茸長寺址)에는 3층석탑 한 점과 삼륜대여래좌상 한 점이 전해지고 있다.이 곳 용장사지는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까맣게 잊혀 왔다.오늘 필자는 문제의 그 사건 속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경주 남산을 오른다. ●3층석탑 주변 솔숲 산불도 비켜가 사건의 주인공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김시습은 1460년에서 1470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을 용장사에서 살았었다.그가 이곳에 살면서 남긴 유명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였다.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하여 처음 이 산을 올랐던 1986년 겨울과 1987년 봄철에 보았던 금오산(金鰲山) 정상,동서남북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 울창하던 솔 숲은 몇 년 전 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을씨년스러운 상수리나무 몇 가지와 막 꽃이 지고 있는 철쭉 서너 포기가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나그네 앞에서 울음을 참는 듯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 나들목으로 들어설 때 오른쪽 한시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남산은 거북등 같은 바위에 덮여 있다.남산의 주봉을 금오산이라 부르는데,鰲자는 큰 거북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 모양이 거북이나 자라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글자를 넣어 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용장계곡 물소리는 옛 신라 승려들이 합창하는 범패(梵唄) 소리와 용장사 종루에서 푸른 새벽빛을 깨치던 종소리,계곡 물 속에서 눈을 뜬 채 잠들었던 산천의 잠을 깨우는 목탁소리,대지가 깨어나는 기척을 바람보다 먼저 알아채는 산새소리들이 소리로 화석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듯 은은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용장사지 3층석탑에 이르는 산길에는 기적처럼 솔숲이 남아있다.남산을 집어삼켰다던 불길이 용장계곡 능선 조금 못 미친 기슭에서 뚝 멎었단다.소나무들은 모두 철갑을 두르고 있다.용장사지 역사와 남산의 신비를 수호하기 위해 철갑으로 무장한 신장들이다. 3층석탑 안내판은 여기가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한 곳임을 알리고 있다.필자는 3층석탑 그늘에 기대 앉아 가방 속에 든 자료 묶음을 꺼내어 펼쳤다.일본 공립여자대학(共立女子大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 교수가 보내준 기록이다. 일본에서 편집 정리한 조선왕조실록 중 ‘계미 조선 세조9년(7월)’이라고 인쇄된 부분이다.기타지마 만지 교수는 일본에서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 원로학자이자 임진왜란 연구자로 유명하다. 김시습이 용장사를 크게 수리하여 지낼 때 그를 찾아왔던 일본인이 있었다는 글은 ‘매월당집’에 들어 있는 그의 시집 제12권 ‘유금오록(遊金鰲錄)’에 수록되어 있다.‘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與日東僧俊長老話)’,‘섬 오랑캐의 거처(島夷居)’라는 제목의 시 두 편이다.필자는 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비밀을 풀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차문화,즉 다도(茶道)가 지니고 있는 미학의 세계는 조선의 농촌 초가 구조,청빈한 수행승들의 토굴문화,조선의 자연환경을 많이 닮은 데가 있다고 느껴오던 나머지였다. ●조선의 자연 닮은 日다도의 세계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독서모임에서는 먼저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 일본 관련 글자나 이름,사건 등이 나오는 부분을 일본역사와 비교하면서 다시 읽고 나서 정리를 한다고 한다.그런 뒤 일본 역사 기록에서 확인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관련 부분에 매우 정밀하게 적어 넣어서 읽는다. 필자는 매월당 시집에서 나오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준(俊)’이란 사람의 존재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타지마 만지 교수에게 연락을 했었다.기타지마 교수는 필자가 원하는 시기인 1460년에서 1470년 사이에 일본의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람 중에서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려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신으로 이 기록을 보내주었다.필자는 일본 기록을 읽으면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무섭게 한국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준(俊)이란 이름을 가진 승려가 일본 외교관으로서 조선을 방문한 것은 1463년 7월14일이었다고 했다.이 기록에 나타난 준이라는 자와 김시습의 시 제목에 등장하고 있는 준이라는 자가 동일인인지 아닌지가 새로운 문제였다.필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김시습이 살았던 남산 용장사지를 찾아온 것이다.어떤 영감 같은 것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였다.다행인 것은 평일이어서 등산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고요한 시간 속에서 명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뻐꾸기 우는 소리 사이로 꾀꼬리 우는 소리가 고요의 속살을 간질인다.먼저 김시습의 시를 소리내어 읽는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 만하여라 ●日외교사절단 일행으로 조선 찾아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준’이라는 승려가 그의 고향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준을 위하여 질화로에다 물을 끓여 차를 내놓고 있는 점,손님이 찾아 온 시기가 늦은 봄이라는 사실,나그네와 밤새워 이야기했다는 점이다.일본 기록에서 준이라는 자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7월14일이고,김시습을 찾아온 손님이 일본인이었다면 어떻게 두 사람이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인데,김시습이 일본어를 할줄 알았다든지 일본인이 조선말을 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었든지,아니면 통역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세조실록’(세조 10년 2월17일 경자조)의 기록이다. “왜국 사자(使者) 중 준초(俊超) 등이 지난해에 하직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는데,이들이 영등포에 이르러 바람에 막히어 머물러 있었다.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예빈관 소윤 정침을 보내어 이들을 선위하게 하고 이르기를,‘듣건대 너희들이 여러 달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지난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지대(指待)하는 모든 일이 소우했을 것이므로 지금 사람을 보내어 위로하니 나의 뜻을 알도록 하라.’하셨다.” 일동승준 장로와 이야기하며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 꽃 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 쇠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놓고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루네 봄 깊으니 해월(海月)이 쑥대 문에 비치고 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정 모두 아담하나니 밤새 오순도순 이야기 할만 하여라˝
  • “창덕궁·남산 조망 해친다”

    서울시가 최근 도심 5개 재개발지역에서 신축되는 주상복합 건물의 용적률과 건물 높이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기로 하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 등 도시계획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도심에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난립하게 되면 친환경 역사·문화 복원을 주창한 청계천 복원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며 “도심재개발 기본계획변경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 발전계획안’은 도심부의 높이 기준을 90m 이하로 유지하고,도심의 주요 조망축과 사적 보존 및 청계천 수변 경관축 유지를 위해 일부 지역의 높이 기준을 강화토록 한 반면 이번 변경안은 주상복합의 높이를 현재 90m에서 최대 135m까지 지을 수 있도록 완화해 상충된다.”고 덧붙였다. 또 초고층 주상복합이 건립되면 종묘,창덕궁,경복궁 등 사적지와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의 조망이 크게 훼손돼 도심의 본래 기능인 역사·문화ㆍ업무기능 역시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시는 지난 4월 종로 세운상가,중구 장교ㆍ명동ㆍ회현,종로구 도렴 등 도심 5개 재개발구역에 주상복합 건물을 지으면 용적률과 건물 높이를 현행 기준보다 올려 주는 내용의 도시환경정비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용적률은 최고 1000% 범위 내에서 주거비율에 따라 50∼150%까지,건물 높이는 최고 150%까지 올릴 수 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6일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 - ‘뒷전 여성’ 편견 깨는 리더들의 외침

    ‘방관자인가 주체인가.’ 주체로서의 여성은 당연한 명제지만 우리 삶의 실상은 그렇지 못했고,그 주체적이지 못한 위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최근 우리사회에 팽배한 ‘뒷전 여성’의 인식을 깨고 철저하게 ‘리더’로서의 입장을 다짐하는 대규모 국제 여성행사가 잇따라 열려 주목된다.27∼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되는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와 새달 27일∼7월5일 김포 중앙승가대학에서 열리는 세계여성불자대회.여성지도자회의가 지구촌의 여성 리더들이 모여 경제적 측면에서의 리더십을 확인,연대하는 자리라면, 여성불자대회는 종교를 근간으로 여성으로서의 삶의 주체를 확인하는 흔치않은 모임이다. 지구촌의 정·재계,민간기구단체 여성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2004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 2004)’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27∼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세계 84개국 860명이 등록을 마쳐 대회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국제회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루이자 디오고 모잠비크 총리,트롱 마이 호아 베트남 부통령·이사투 은지에 사이디 감비아 부통령을 포함,에이린 캐럴 캐나다 국제협력부 장관·야스미나 바도 모로코 고용사회연대부 장관 등 장관급 이상 여성지도자만 50명이 온다.조셋 샤이너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도 참석하며,싱가포르의 리엔 시아오 시 휼렛 패커드 아시아 수석 부사장,노르웨이의 시브 헬렌 노르딕 투자은행 부회장 등 재계의 거물들도 대거 방한한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비영리단체 ‘글로브 위민(GlobeWomen)’이 주최하는 세계여성지도자회의(회장 아이린 나티비다드)는 일명 ‘여성을 위한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여성 글로벌 리더들의 협의체.1990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해 2년에 한번씩 열리다 97년 미국 마이애미 행사 때부터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처음에는 여성정치인 중심으로 출발했지만 98년 영국 런던 대회부터 ‘여성의 경제력 증진이 여성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판단에 따라 여성경제인 중심 회의로 바뀌었다. 서울 회의는 11회째.이번 행사에서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뤘던 이전과 달리 ‘리더십,테크놀로지,성장’을 주제로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췄다.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27일 열리는 장관급 원탁회의다.지은희 여성부 장관 등이 주재하는 원탁회의에서는 여성들의 과학기술 접근을 통한 경쟁력 제고방안과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민·관협력사례,효과적인 여성장관직 수행전략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룬다.한국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주 (주)성주인터내셔널 사장은 “한국이 IT 강국인 만큼 여성들이 정보기술 인프라로 무장,21세기 경제도약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여성들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의 의미를 깨닫고,세계 여성지도자들과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그가 강조하는 이 시대의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곧 섬김의 리더십이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처음으로 여성기업박람회(WEXPO)가 열린다는 점이다.국내외 여성 최고경영자 50명이 참가해 제품 전시와 상담을 벌이며,남아프리카공화국·캐나다·스페인·아이슬란드 등에서는 여성기업인으로 구성된 무역사절단이 참석해 활발한 기업간 교류가 이뤄질 전망이다.최근 포천지가 선정한 ‘국제 파워 50인’에 선정된 여성기업인들과의 대담도 마련된다.이번 행사가 무엇보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서울 행사의 행정지원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황인자 서울시 복지·여성정책보좌관은 “당초 60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던 행사에 800명이 훨씬 넘는 여성지도자들이 등록을 했다.”며 서울 행사가 어느 때보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의사소통의 장,여성기업의 국제무대 진출 교두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여성지도자상’이 처음 제정돼 관심을 모은다.이와 관련,서울 행사의 운영위원장을 맡은 변도윤 재단법인 서울여성 상임이사는 “이 상은 여성권익 향상에 기여하고 국제활동을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증진시킨 여성지도자에게 주어질 것”이라며 “수상자는 한국인 한 명을 포함해 세 명”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해 6월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10회 대회에서 서울 개최가 결정된 이래 이명박 서울시장을 정점으로 한국조직위원회를 결성,행사를 준비해 왔다.한국조직위원회에는 현재 여성 및 경제단체,미디어,학계,교육,문화 등 분야에 10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1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대회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남산 한옥마을에서 문화의 밤 행사를 열어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체험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 경주 남산 새단장 한다 탐방로 13㎞등 신설키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 남산(慶州 南山)에 대한 종합정비사업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23일 경주시에 따르면 올해 4억원을 들여 4개 노선 13㎞의 남산 탐방로와 문화재 위치 및 탐방로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35곳을 정비 또는 신설키로 했다. 또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삼릉∼상선암 탐방로에 얇은돌 깔기를 비롯해 계곡내 징검다리 설치 등을 완료할 계획이다.이밖에 지난해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남산 기슭의 삼릉숲 보호를 위해 950m에 달하는 인도를 조성키로 했다. 시 관계자는 “남산 정비사업으로 이미 차량 300대를 동시에 주차하는 서남산 주차장과 화장실 등을 조성 중이다.”며 “앞으로 남산에 흩어진 폐탑과 불상을 복원하고,남산 전시관 건립과 유적관리 모니터링 사업 등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
  • [눈에 띄네~ 이 얼굴]‘킬빌 시리즈’ 우마 서먼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우마 서먼(34)이란 여배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냉소를 질근질근 씹어뱉는 듯 건조한 그녀만의 표정연기가 없었다면 ‘킬빌’시리즈는 어땠을까.겨자 빠진 초밥 맛이 아니었을까. ‘킬빌1’에 이어 ‘킬빌2’에서도 서먼은 복수의 칼을 가는 냉혈킬러다.2편에서 그는,자신을 살해하려 한 보스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불철주야 쿵후와 검술을 연마한다. 극중 임신부가 되어 배가 남산만 해도,꾸밈없이 노란 이소룡 트레이닝복만 입고 있어도 멋지기만 했던 1편에서의 이미지와 이번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자신을 위협하는 암살단원 엘(대릴 한나)과의 결투장면은 압권.엘의 눈알을 뽑아 발가락으로 우지끈 짓밟으면서도 무심한 표정연기는 가히 ‘충격’이다. 금발을 휘날리며 호권(호랑이 권법),사권(뱀의 권법) 등을 구사할 때는 “역시,서먼!”이란 감탄사가 절로 터질만하다. 하지만 2편의 복수혈전에는 한결 사람냄새가 난다.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딸과 뜻밖에 조우한 장면들에서는 애잔한 모성애까지 풍긴다. 타란티노 감독이 “서먼이 아니면 안 된다.”며 그녀의 출산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크랭크인한 건 이미 소문난 사실.최근 칸국제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4년전 내 서른번째 생일에 만난 타란티노가 ‘당신을 위해 각본을 썼다.’고 출연제의를 해왔다.”며 “나처럼 빼빼 마른 금발여자가 이런 액션영화를 찍게 될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다.”고 즐거워 했다. 독특한 이름 ‘우마’는 힌두어로 ‘은총을 내리는 여신’이라는 뜻.게리 올드먼,에단 호크와 한때 한이불을 덮고잔 사이였다.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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