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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로명 주일대사(주요 신임대사의 면모)

    ◎한·소 관계개선에 크게 공헌 남북핵통제공동위 위원장,고위급회담 대변인,정치분과위원장,외교안보연구원장 등 화려한 이력때문에 새정부 조각때 외무부장관 또는 안기부장 기용설이 꾸준히 나돌았다. 초대 주소대사직을 맡아 고르바초프의 방한등 한소 관계개선에 크게 공헌했다. 한명숙씨(58)와의 사이에 2남. ▲전남 장성·61세 ▲서울대법대 ▲아주국장 ▲주소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 3·1운동을 김일성가 우상화 도구로(오늘의 북한)

    ◎74돌 기념일 계기로 본 왜곡실태/“김형직이 키운 애국청년회가 주도” 각색/대미적개심 고취·통일투쟁 강화에 악용/“평양서 발원” 주장… 33인 배신자로 매도 북한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2월28일 평양에서 이른바 「3·1인민봉기기념보고회」를 열고 김일성가계의 항일투쟁업적을 부각시키는 한편 대한·대미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종래의 책동을 되풀이했다.북한은 3·1독립운동의 발발과정,민족대표성,평가및 영향 등에 있어 우리와 큰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3·1독립운동의 주동세력을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의 지도·육성을 받은 평양의 「애국청년학생」으로 규정하고 있다.즉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1일 평양에서 김형직선생께서 몸소 키우신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을 선두로 하여 10여만 각계각층 군중이 대중적인 반일시위에 떨쳐 나선 것을 시발로 전국 각지에 퍼진 항일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1독립운동이 당시 서울의 파고다공원에서 손병희선생을 비롯한 33인의 민족지도자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을 계기로 확산된 전국적인 독립운동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1독립운동의 발원지를 서울이 아닌 평양으로,33인의 역할을 김형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33인의 민족지도자들을 격렬히 비난하고 있다.북한은 이들을 친미사대주의자,무저항·비폭력주의자,타협적인 독립청원운동및 위임통치운동을 벌인 기회주의자 등으로 매도하면서 33인 어느 누구에게도 포상을 하지 않고 있다.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오직 김형직을 3·1운동의 유일한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3·1독립운동이 실패한 인민봉기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북한은 실패 원인을 인민대중을 이끌만한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3·1운동후 지도자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받들어 김일성이 민족앞에 나서게 됐다』고 선전하고 있다.김일성이 「위대한 수령」으로 탄생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엉뚱하게도 3·1운동의 실패에서 찾아내 이를 체제옹호 논리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들어 이같은 「김일성출현의 불가피성」에 그치지 않고 김정일 등장에도 3·1운동을 연결시켜 왜곡하고 있다.북한은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에게도 충성,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0년 3·1독립운동 72주에 즈음,북한선전기관들은 『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가는 김정일에게 조선인민의 열화와 같은 흠모와 다함없는 충성의 한마음을 담아…』 운운하며 충성을 호소했었다. 북한은 3·1독립운동 실패의 또다른 이유로 혁명역량의 미숙성을 들고 있다.당시에는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농민도 혁명적으로 동원하는데 불충분했기 때문에 3·1독립운동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북한은 이같은 3·1독립운동에 관한 역사인식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해 「조선전사」(72년)와 「근대조선역사」(84년)같은 역사기술서를 통해 이 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변조·기술하고 있다.예컨대 「조선전사」는 33인 민족대표에 대해 『무저항주의적 배신행위의 굴욕적 행동을 했다』면서 이들을 「배신자」로 비난하고 이 운동의 발원지조차 평양으로 변조·기술하고 있다.이들 역사기술서들은 김일성유일지배체제가 확립된 이후에 쓰여진 것들이서 한결같이 사회주의 혁명의 틀속에 복종하고 기여해야 된다는 역사인식과 김일성의 혁명정통성을 미화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또 3·1독립운동의 의의를 인용,대남·대미비난을 계속 하고 있다.3·1독립운동이 일어난지 어언 74년이 흘렀지만 민족독립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이는 미제의 강점으로 남한이 식민지적 예속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3·1독립운동의 뜻을 받들어 미제의 식민투쟁을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특히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시기가 3·1절을 끼고 있는 점에 착안,한미 양측이 이 훈련을 실시한 후부터는 이를 3·1절과 결부시켜 비난해 오고 있다. 지난 91년의 경우 북한의 신문·방송들은 3·1독립운동의 뜻을 받들어 『남한에서 미제의 식민통치를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면서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삼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던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한 책임전가와 함께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한 합리화선전을 적극 전개했었다. 북한은 3·1독립운동외에도 6·10만세사건 등 일제때의 모든 항일독립투쟁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도 모조리 김일성가계의 혁명전통차원으로 변조·각색해 놓고 있다.
  • 남북통일/“21세기초에 이뤄진다” 97%

    ◎KBS,남북관계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정상회담,2∼3년내 성사” 59% 응답/“북 5년내 핵개발” 64.3%로 크게 우려/“방송교류… 남한 우선개방후 북 유도” 의견 지배적 남북통일은 최소한 21세 기초까지는 이뤄질 것이며 남북정상회담도 2∼3년내에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이는 KBS남북방송협력국이 공사창립 20주년을 맞아 학계및 언론계에 종사하는 남북관계 전문가 1백6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남북관계와 통일전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제기된 것. 조사에 따르면 우선 통일의 시기에 대해서는 5∼10년내에 이뤄지리라는 응답이 72%,「20년내」라는 의견이 25%를 차지해 21세기초엔 통일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의 경우,새대통령의 임기중에 가능하다는 응답이 64%였으며 그 시기는 집권 2∼3년내가 59%로 가장 많았고 4∼5년내에 성사될 것이라는 대답도 38%로 나타나 전체의 97%가 적어도 5년이내에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낙관적인 견해는 올해의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대한 전망에서도 드러나 응답자 모두가 「더욱 활성화될 것」(47.2%)혹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52.8%)이란 반응을 보였다.그러나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북한의 핵사찰과 관련해서는 핵문제 해결이전에 경제협력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50.5%로 해결전이라도 무방하다는 입장(49.5%)과 팽팽히 맞서 대조적이었다.또 북한이 5년내에 핵개발을 할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는 64.3%인 반면 아직 핵개발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응답은 16.9%로 나타나 북한의 핵개발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대북정책추진에 있어서 새정부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사항으로는 ▲일관성있는 대북자세 견지(46.3%) ▲내치안정및 국력신장(45.4%)등을 제시해 외형적 성과보다는 내실있는 대북정책을 견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현재의 방안을 수정 보완하면 된다(81.9%)는 의견을 보였으며 통일문제와 관련해 새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사항으로는 ▲북한 핵문제(36.9%) ▲물자교역및 경제협력문제(29.2%) ▲이산가족문제(20.8%)등을 들어 역시 북한핵이 커다란 관심사임을 입증했다.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 대부문은 군사쿠데타(14.3%)나 민중봉기(7.6%)보다는 집권층의 주도하에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77.1%)으로 보았으며 그 시기는 김일성주석의 사후로 예측하는 응답자가 69.5%로 가장 많았다.또한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중 가장 큰 문제로는 「악화되는 경제사정」이라는 의견이 79.2%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은 14.2%를 차지한 핵개발 포기압력이었다.특히 북한의 향후 개방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이 극히 제한된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할 것(81%)이라는 입장을 보였으며 중국식 개방정책을 모방할 것(11.3%)이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올해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자세는 대체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것(72.6%)이라는 견해가 가장많았고 남북상호핵사찰 협상의 진전여부는 대부분이 ▲타결을 보기 어려우며(40.6%)따라서 ▲유엔안보리등에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49%)는 입장을 보였다. 이밖에 남북방송교류에관해서는 ▲타부문의 교류를 고려해 남한 우선 개방­북한개방 유도(48.1%) ▲남북한 동시개방(21.7%) ▲남한 먼저 즉각 개방(18.9%)순으로 나타나 대체로 우리가 선도적으로 방송을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북핵 특별사찰 호응/북,한국에 중단촉구

    【내외】 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 북측위원장 백남준은 25일 한국측의 93팀스피리트훈련 재개와 대북특별핵사찰 호응에 대해 『북남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무효화시키려는 고의적 책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의 중지를 촉구했다. 백남준은 이날 평양인민문화궁전서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 분과위·공동위 북측위원장들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의 핵문제를 빌미로 93팀스피리트훈련을 재개키로 하고 IAEA의 대북 특별사찰 요구에 「돌격대」로 나섬으로써 남북관계를 극단적 긴장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같이 주장했다.
  • 민주화와 통일의 초석을 놓다/노태우대통령의 퇴임에(사설)

    우리는 지금 우리 헌정사에 대단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 대전환의 순간을 맞고있다.노태우대통령 시대의 퇴장과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역사적 전환의 의미는 실로 장중하다.그것은 하나의 민선정부로부터 다른 하나의 민선정부로의 평화적 이양으로서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이라는 데서 찾을수 있다. ○6·29로 시작된 민주화 도정 노대통령이 이끈 제6공화정의 시대적 소명은 한마디로 탈권위주의의 민주화였다.오랜 권위주의에 억눌렸던 국민의 온갖 욕구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터져 나왔다.어느 정권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6·29선언은 막힌 곳을 터준 물꼬였고 민주화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노대통령 정부의 5년을 평가할때 첫 손을 꼽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6·29선언이다.이 선언은 우리 헌정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아니라 바로 6공화정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그가 대통령후보로서 국내외에 다짐했던 8개항의 민주개혁 선언은 자칫 거꾸로 돌아가려던 민주사의 시계바늘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놓은 쾌거였다. 권위주의 체제와 경직된 사회분위기의 필연적인 귀결은 국론의 분열과 극한 대결 뿐이었다.국제사회로부터는 우려의 대상으로 지적받았고 88올림픽 개최에 대한 의구심마저 유발했다.권위주의체제의 종식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과감히 수용한다는 6·29선언의 기본정신은 여기에 기초하고 있다. 선언 당시 『한국은 미래를 가진 국가이며 한국의 민주발전은 희망적이다』『민주화의 빛이며 신선한 바람이다』『노대통령의 용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이라고 찬양했던 세계의 언론과 석학들은 오늘에 이르러 그 결과를 놓고『아시아에 새 정치의 수범을 보였다』(로버트 마이어 미카네기위 회장)는 평가로 발전했다.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최근 사설에서 노대통령의 민주화및 외교적 업적을 놓고 『그는 아시아 민주주의 또 하나의 승리를 일궈낸 장본인』이라고 쓴바 있다. ○모스크바,북경,평양으로의 길 노태우대통령이 이끈 6공화국 정부가 이룩한 여러 부문의 업적중 특히 외교분야가 가장 두드러진 가운데 괄목할 성과를 냈다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6회에 걸친 한미정상회담을 바탕으로한 한미간 성숙한 동반자관계의 강화,3회에 걸친 한소(러시아)정상회담과 북경입성을 낳게한 한·러,한·중수교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결실은 6공정부가 이룩한 눈부신 업적이다.여기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통일 분야는 어떠한가.노대통령이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찾아간 모스크바·북경은 모두 평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그 자신 명백하게 지적한대로 북방외교의 최종 목표는 평양이었음에 틀림없다. 남북한관계는 7차에 걸친 고위급회담을 통해 민족통일에 접근하기 위한 첫 단계인 남북한평화공존체제 구축을 앞에 두고있다.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그 실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평화공존체제 구축의 발판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외교는 이제 북방외교의 최종 단계인 남북한관계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통일의 실현을 위한 능동적인 통일외교를 전개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있다.실로 그의 역사적 업적이라 할만하다. ○평화적 정권교체,역사에 남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대통령이 결단한 9·18조치는 6·29선언정신의 구체적이고도 집약적인 결실이었다.공명선거와 돈 안쓰는 선거를위해 집권 민자당적을 이탈하고 선거관리 중립내각구성의 결심을 밝힌 것이다.그 결과 사상 유례없는 최상의 공명선거가 이뤄졌고 전국민이 완전무결하게 수용하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례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정권의 정체성과 권력의 정통성이 확립되게 된것이다. 노대통령 집권 5년의 평가는 긍정적 시각도 있고 부정적 시각도 있다.그러나 6공 5년의 정치,경제적 수치는 기록하고 넘어가야한다.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각종 법규의 개폐,관련 제도의 개선,자유와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은 정치적 수치이다.그 5년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3천1백달러에서 6천7백달러로 2배이상 늘었고 경제규모는 세계 19위에서 15위로,순외채 규모는 2백24억 달러에서 1백10억 달러로 조정됐으며 이밖에 수출신장률 10·6%,물가는 87년이후 최저수준인 4·5%를 기록한것은 경제적 수치이다. 역사와 인물은 실적으로 평가되지만은 않는다.그 보다는 어느 때에 그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졌느냐에 보다 큰 의미가 있을 수가 있다.사람들은 그래서 노대통령 자신의 술회대로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고 「북방의 길」을 튼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제 저는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납니다.다시 친애하는 보통사람 여러분 곁으로 돌아가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시민의 도리를 다할 것입니다.통일과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나라와 겨레의 앞날에,그리고 앞으로 5년간 우리를 영광스런 새 역사 창조로 이끌어줄 김영삼 새 대통령과 정부에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며 한 시대의 역사를 일구고 이제 국민의 전송을 받으며 담담히 떠나는 노태우대통령에게 영광을 보낸다.
  • 6공 「북방외교」 화보집 발간/외무부

    ◎러­중국 등 수교배경·성과 수록/노 대통령 유엔연설 등 컬러로 제6공화국의 「역작」북방외교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은 컬러화보집이 발간됐다. 외무부는 23일 「북방외교」라는 제목의 40페이지짜리 화보집을 펴냈다. 「전방위 외교시대를 여는」이란 부제가 붙은 이 화보집은 북방외교의 배경,북방국가와의 수교,북방외교의 성과등 3부분에 걸쳐 역사적인 장면의 컬러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과 일지를 곁들이고 있다. 우선 「북방외교의 배경」편에서는 북방외교의 시발이 된 88년 노대통령의 7·7선언과 유엔총회 연설,동서화합의 계기가 된 서울올림픽의 역사적인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 「북방국가와의 수교」편에서는 89년 2월 헝가리를 시작으로 연속된 중·동유럽 국가와의 수교를 비롯해 북방외교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지난해 12월 베트남과의 수교까지 정상및 외무부장관사이의 수교협정 서명식과 회담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마지막 「북방외교의 성과」편에서는 유엔본부앞에 나란히 게양된 태극기와 인공기를 필두로 남북고위급회담등 북방외교의 결실을 한반도에 이식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활발한 북방국가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들어 있다. 지난 1월초 이상옥외무장관의 지시로 제작에 착수해 50여일만에 빛을 본 이 화보집에는 북방외교를 직접 주도한 노대통령이 28번,6공화국 후반기 북방외교의 마무리에 정성을 쏟은 이장관이 17번 등장해 이들이 북방의 높은 벽을 뚫는데 기울인 엄청난 노력을 실감케 한다. 이 화보집은 91년 8월 알바니아와의 수교때의 현장 사진을 구하지 못해 알바니아 국회의사당과 관공서들이 밀집한 수도 티라나의 거리 풍경으로 대신한 것이 옥의 티로 지적되고 있지만 노대통령과 제작을 지휘한 이장관까지도 짜임새 있는 편집과 알찬 내용이라는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 북,제2의 이라크가 돼서는 안된다(사설)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이 발효된지 1년이 됐다.분단 47년만인 지난해 2월19일 남북한은 기본합의서를 발효시킴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관계로 이끌어 나갈 토대를 구축했던 것이다.실로 값진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북대화는 결빙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핵문제는 점점 악화일로의 길로 치닫고 있다.특히 북한의 핵개발의혹은 결국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면서 민족문제를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에서 벗어날 우려마저 낳고 있다.우리는 그러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남북대화의 단절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당국의 일방적인 거부에서 비롯됐다.북측은 지난해 11월3일 우리측의 연례적인 후방지역 방어훈련인 「화랑」「독수리」훈련을 트집잡아 분야별 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 불참할 것을 선언했고 이어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합의 이행과 우리측 남북적십자회담 재개 제의를 묵살했었다.또한 북측은 남북간 합의한 핵상호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로 고위급회담 마저 무산시켰다.특히 북한당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임시사찰을 받으면서도 의심받는 두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거부해 국제적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으며 마침내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의한 군사적 제재를 받게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북측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이는 남북합의서의 정신인 남북간 대결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민족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민족의 문제가 그 지역,그 민족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국제적인 문제로 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다국적군에 의한 응징을 받았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우리는 북한이 제2의 이라크가 되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그렇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민족의자존을 지켜 나갈 수 없다.그리되면 우리 민족의 장래운명은 또 다시 주변 열강들의 손에 맡기는 비운을 맞게될 것이다.북한은 핵개발의 미련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남북대화를 외면할 경우 지금과 같은 국제적 고립과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며 군사적 응징을 받게된다는 것을 지금 당장 깨달아야 한다.남북기본합의서의 성실한 실천이 있기를 거듭 촉구한다.
  • 남북합의서 1년 유감/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지난해 2월19일,남북한은 평양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공식 발효시켰다. 당시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은 지난 47년간 대결과 불신으로 점철되어온 남북한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내외의 큰 관심을 모았었다.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의 사정은 어떠한가.남북간에 깊어지리라 기대했던 신뢰는 아예 종적을 감췄으며 불신의 골은 되레 더 심화되고 말았다.상호비방과 중상행위는 물론 상대방체제 파괴·전복활동의 중지를 다짐했던 약속도 이제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만 느낌이다. 오히려 지금 한반도는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것으로 기대했던 기본합의서 발효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둘러싼 공방으로 대화는 대화대로,교류는 교류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를 짚어보면 오직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일이 이렇게 꼬인게 모두 북측의 「수작」때문이기에 더욱 그렇다.북한은평양인민문화궁전에서 합의서발효기념 축배를 들면서 종래의 대남도발자세 청산은 꿈도 꾸지 않았던게 분명하다.이를 웅변한게 바로 비무장지대 무장침투조의 도발,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이었다. 또 북한은 요사이 핵개발과 관련,만신창이가 된채 국제사회의 의혹앞에 서있다.핵도 비핵화공동선언대로라면 북한은 개발해서도,가져서도 안되도록 되어 있다.그런데도 그들은 숨어서 「핵공포」를 빚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말살한 채 이웃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공포와 무력의 시대는 구소련의 몰락으로 막내린지 이미 오래다.그럼에도 여전히 「폭력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게 바로 북한이다. 미국의 WP지는 북한의 핵의혹과 관련,『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나라에 대해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외지의 지적에 맞장구를 쳐대며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을 고소해 할 우리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터이다. 그보다는 같은 핏줄을 나눠 가진 북한이 국제사회의 떳떳한 성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시대착오적인 무력통치와 기만극을 끝냇으면 하는 소망을 지녔으면 지녔지…. 1년이 10년같이 지루하게 느껴지는건 정녕 어인 까닭인가.
  • 6공화국 5년간의 부문별 발자취(민주­화합의 시대 열다:4)

    ◎대외정책의 성과/북방외교 결실로 통일기반 구축/구소·중국 등 수교… 화해시대 열어/유엔가입도 실현,국제위상 제고 민주화와 더불어 6공화국의 빛나는 업적은 북방외교의 성공이다.이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의 체결 등 남북한관계의 급진전으로 이어졌다.북방외교의 성공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해소하고 통일로 가는 외적 장애를 제거했다는 총체적 평가이다. 이같은 성과는 탈냉전 추세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등 국제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지않게 힘입었다고도 할 수 있다.그러나 정부의 확고한 정책의지와 추진력,그리고 국제환경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자세 등 3박자가 맞았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결실이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교망 크게 확충 노대통령은 국내에서 추구하던 화합의 정치를 국제적으로 추구한 것이 북방정책이었다고 밝혔다.우리와 이념과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적대해온 구소련·중국 등 북방국가와 화해협력하고 폐쇄된 북한을 변화로 유도하여 통일의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였다는 것이다.북방외교와 통일문제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6공외교,북방정책이 거둔 실적은 외교망의 확충만으로도 분명히 나타난다.현재 우리나라의 총 수교국은 1백71개국으로 이는 북한보다 40개국이상 많다.중국과의 수교로 대만과 단교를 했지만 우리나라는 북한·쿠바·짐바브웨·이집트 등 소수 친북한계 국가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외교관계를 갖게 됐다.이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많은 외교공관수를 확보했고 유엔가입으로 모든 국제기구의 가입여부를 독자적 판단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6공은 우리의 외교를 「진영외교」「절반외교」에서 「세계외교」「전방위외교」로 변모시켰다. 이와 비례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도 혁명적으로 격상됐다.우리나라는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22개의 국제기구에서 이사국 또는 임원국으로 선출돼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강화시켜 왔다.특히 총회·안전보장이사회와 함께 유엔의 3대 중추기구인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에 피선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활동영역과 권한의 폭이 확대됐다.이같은 국제지위의 향상이 북한에 우회적 압력으로 작용,통일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전방위외교체제의 구축과 유엔가입은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수교에 기인한 결과다.노대통령은 지난 88년 2월 취임사에서 『우리와 교류가 없던 대륙국가에도 국제협력의 통로를 넓게 하여 북방외교를 활발히 전개하겠으며 이를 통해 통일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비롯된 6공의 프론티어,즉 북방정책은 「우회적 통일」이라는 새롭고 보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의 시발이었다. 레닌의 「동방우회론」에 비교되는 6공의 「북방우회론」은 구소련·중국·동유럽국가들을 이미 경유해 이제는 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다다랐다.사실상 북방정책의 외형적 추진은 거의 완결된 것이다. 그동안 북방과의 교역은 매년 늘어나 지난해말 그 규모가 1백억달러에 이르렀으며 무역흑자는 10억달러에 달했다.북방국가 시장에로의 진출은 제2의 경제 도약을 위한 단단한 기반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미·일등 정통우방과의 관계발전도 지속적으로 추진돼 노대통령은 재임기간동안 7회의 한·미정상회담,6회의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회담 8차례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서울,평양을 오가는 남북고위급회담이 8차례에 걸쳐 개최됐다.또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 당사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대해 러시아·중국의 동의를 받아냄으로써 이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는데 성공했다.남북한이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 가운데 평화적으로 공존공영을 추구하여 통일의 길을 닦아가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급진전되던 남북한관계는 북한의 핵문제에 제동이 걸려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이에따라 남북한 기본합의서에 따라 구체화될 것으로 여겨졌던 이산가족문제,남북경협문제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다만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흐름을 고려할때 새정부가 들어서면 그동안 다져온 남북관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남북한 교류·협력및 통일시대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6공화국이 21세기를 향한 선진외교 기반 구축을 바탕으로 민족통일의 실현을 위한 주도적이고 성숙한 외교를 전개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대미의존일변도 외교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우리 일을 스스로 판단하는 자주외교의 족적을 남겼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북한핵 특별사찰 수용토록 설득/11일 본회의(의정중계)

    ◎지역경제협력기구 창설 용의있나/사업성 검토뒤 베트남에 차관 제공 ▷답변◁ ◇현승종총리=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취지는 어느 일방이 사찰대상을 선정하면 다른쪽이 이에 동의해야 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앞으로 핵특별사찰제도를 수용토록 북한측을 적극 설득해 나가겠다.현재로선 핵문제해결 없이는 남북한 관계의 실질적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팀스피리트 훈련비용은 한미간 자국 사용분을 각기 부담하고 있다.탈냉전시대를 맞아 세계적 군축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남 적화야욕에 근본적 변화가 없기 때문에 적정 국방비는 확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통일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키 위해서는 쌍방 정상이 만나 제반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나 북한은 이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우리 정부는 북한이 대내외적 상황으로 보아 언젠가는 정상회담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정상회담을 위한 인위적 여건조성보다는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사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최영철통일원장관=이인모와 전향하지 않은 사상범의 북송은 특정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이산가족의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고정간첩 이선실은 74년초 일본에서 신순녀라는 이름으로 외국인등록,합법적 신분을 얻은 뒤에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을 한 것으로 알고있다.국내의 신순녀 친척들도 간첩사건이 알려지기까지 그녀가 이선실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비밀회동설및 왕래설은 일본교도통신보도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다.다만 삼성그룹등의 고위간부가 북한을 방문,김달현부총리와 경협문제를 협의한 바 있으나 이는 통일원의 사전승인에 의한 것으로 결코 비밀회동이 아니다.정부는 앞으로도 남북교류협력법에 의거,정식절차를 거쳐 남북교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전국연합은 정부에서 특별한 성격으로 규정한 바 없으며 우리나라의 기본법질서를 지키는 한 어떠한 진보세력도 허용하고있다.정부는 통일정책이 민족적 중요과제라고 판단,범정부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 대처하고있다.특히 국가안보관련부처들이 정책수립과정에 참여하고있으며 주무부처인 통일원의 총괄조정기능을 강화,일사불란한 유기적 체제를 갖춰놓고있다.따라서 남북대화사무국도 전적으로 통일원장관의 지휘하에 있다. ◇이상옥외무부장관=일본·독일이 국제적 지위로나 미국 다음으로 유엔에 분담금을 많이 내니까 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유엔창설 50주년이 되는 95년까지 유엔의 합의과정을 거쳐 현 상임이사국 5개국과 유엔총회의 3분의2이상이 찬성하는 유엔헌장이 개정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수교는 경협과 연계된 것이 아니다.그들의 사업계획이 타당하다면 대외경협차관과 수출입은행의 융자를 제공할 방침이다. 지역안보협력과 관련,지난해 아세안 외무장관 회담부터 정치적인 대화가 시작돼 지역안보의 틀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클린턴정부는 주한미군·북한핵문제 등 안보문제는 확고하다.그러나 통상관계는 좀더 적극공세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다소간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OECD가입시기는 제7차5개년계획이 끝나는 96년에 가면 가입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현재 재외공관의 외부인사는 1백39개 공관중 26명 정도이다.직업외교관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유능한 외부인사에게 길을 터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난민구호대책과 관련,구소련 타지크지역한인에 대해 2만여달러어치의 구호품이 전달됐으며 앞으로도 10만달러어치의 구호물자를 보낼 계획이다. 교민청의 신설은 현 단계에서 꼭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다.오히려 관련 부처간 유기적 협조구축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세창국방장관=미국측은 가능한한 조기에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경비책임을 한국군이 전담할 것을 제의해 왔으나 남북간의 안보환경과 유엔군의 상징성을 감안,현행대로 미군이 경비책임을 맡아야 한다는게 우리의 입장이다. 군의 정치중립에 대해서는 현행헌법 5조2항등 법적·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본다. 클린턴 미행정부가 주한미군철수와 방위비분담증액을 연계시킬 경우 95년도까지 주한미군비용의 3분의 1을 한국측이 부담하기로 이미 합의한 범주 안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겠다. ▷질문◁ ◇신기하의원(민주)=남북고위급회담등 각종 남북대화가 중단된 사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북한이 특별사찰에 응하지 않는한 어떠한 경제협력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가.북한이 특별사찰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대응전략은 어떠할 것으로 보는지.금년도 우리의 국방예산은 9조2천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데 남북간에 불가침선언이 된 만큼 군비축소를 통해 국방비의 부담을 줄여서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박정수의원(민자)=대북정책에 일관된 원칙이나 목표가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남북상호핵사찰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며 이 문제를 UN안보리에 제소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다고 보는가.대미 무역흑자국들과 한국을 차별화할 설득논리를 개발하고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통상마찰을 극복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외교체제에 관한 구상이 있는가.일본이 플루토늄을 반입,핵강국으로등장할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정신대문제등 한일간 제반현안을 풀어나가기 위한 총체적 대응책은 무엇인가. ◇정몽준의원(국민)=그동안 정부의 통일정책의 수립및 집행은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일관성을 결여했다.정부는 대북협상 창구를 주무부서인 통일원으로 단일화할 용의는 없는가.안기부 개편문제와 관련하여 안기부를 미CIA와 같이 해외첨단산업 기술정보수집쪽으로 기능전환한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 안기부에 그런 능력이 있겠는가. ◇강신조의원(민자)=우리나라의 지리적 중요성과 분단상황에 따른 안보문제는 물론 경제면에서도 지역경제협력기구의 창설이 요구된다고 보는데 이에대한 구상으로 「황해권 공동시장」 「환동해권 공동시장」 「한일공동시장」등의 지역경제협력기구를 주도적으로 창설할 용의는 없는가. EC단일시장이 우리경제에 미칠 영향과 EC통합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안은 무엇이며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입이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이에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또 미국경제 활성화를목표로 삼은 클린턴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슈퍼 301조를 통해 알수 있는데 이에대한 정책과 대책은. ◇한화갑의원(민주)=외교 안보 통일분야는 국제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이에 관한 정부의 구체적 장기 마스터플랜은 무엇인가. 클린턴 미행정부의 통상압력에 대한 대처방안과 주한미군중 해·공군은 그대로 둔채 지상군의 완전철수와 방위비분담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에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통일원내의 남북회담사무국을 폐지하고 안기부의 남북관계및 통일관련 정책보고는 반드시 통일원장관의 결재를 거치도록 할 용의가 있는가. ◇서수종의원(민자)=지난 대선에서 관권개입은 불식됐으나 금품선거는 아직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금품선거를 완전봉쇄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최근 구소련 타지크 지역의 내전으로 인해 6천여명의 한인난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타지크 지역은 물론 구소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40만명의 한인에대한 정부의 보호대책은 무엇인가.
  • 「기자들이 가본 북한」(화제의 책)

    ◎취재기자가 살펴본 북한의 폐쇄성 90년이후 남북고위급회담,남북체육·예술교류,평양국제의회등을 취재하기위해 북한을 다녀온 각 언론사기자들이 본 북한의 실상. 그동안 각종 명목으로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숫자는 8백여명.그들의 입과 눈을 통해 가려져 있던 북한의 일상생활과 사상등 많은 부분이 외부로 알려져 왔지만 기자들의 방문기는 또다른 가려진 실상을 들춰내고 있다. 물론 자유롭게 북한전역을 취재하지 못하는 제한성이 작용하고 있지만 기자들의 세밀한 눈에 포착된 북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 여타 북한자료와는 다른 의미와 모습을 보여준다.서울신문 김인철기자의 「화해의 길목」등 28명의 방문기가 실려있다. 도서출판 다나 5천5백원.
  • 남북 고위급회담 상설대화 통로로/통일관계장관회의

    정부는 3일 93팀스피리트훈련이 끝난 뒤 남북대화가 재개돼 오는 중반기부터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한 남북교류협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이산가족문제해결 ▲남북직교역확대 ▲시범적 경제협력사업추진 등을 올해의 대북정책 중점추진과제로 선정했다. 정부는 이날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외무·내무·재무·법무 등 17개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8차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정부는 또 앞으로도 남북고위급회담을 당국간 상설대화통로로 유지시켜나간다는 입장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개최해나가면서 남북간 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분야별 공동위를 정상가동시키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 교착 남북대화 조속히 재개를/공 남측대변인 촉구

    남북고위급회담 공로명 남측대변인은 2일 대북성명을 발표,『교착상태에 있는 남북당국간의 모든 대화를 무조건 정상화하라』고 촉구했다. 공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지난달 29일 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명의의 성명을 통해 남측의 「93팀스피리트」훈련재개발표를 비난하며 『남북당국간 모든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 공대변인은 성명에서 『북측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상호핵사찰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핵통제공동위 위원접촉을 속개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상호핵사찰규정에 가서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 행조실/기능·권한 갈수록 중시/창설 20돌 계기로 본 발자취

    ◎남북회담보좌 등 굵직한 업무 수행/출범때 직원 32명서 이젠 1백54명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이 1일로 창설 20주년을 맞았다. 행조실은 정책입안 및 집행기관은 아니지만 각 부처에 대한 지휘·조정·감독업무를 담당,각부처의 기능을 통합하는 임무를 맡아오며 그동안 서울올림픽 준비지원총괄·14대 대선관리등 굵직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국무총리를 보좌해 왔다. 행조실이 수행한 대표적 업무는 남북고위급회담보좌·새질서새생활실천국민운동지원·정부주요정책평가·대통령지시 및 공약사항관리·한글타자기 표준자판확정등이 꼽힌다. 행정조정실장은 차관급이지만 이같은 행조실의 기능과 위상으로 인해 재임기간중 국정전반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게되고 국정실무에 대한 영향력·재량등을 발휘할수 있다. 과거 행조실장을 거친 인사들중 장관으로 승진하거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진출했던 전례가 많았던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행조실은 지난 73년 2월1일 김종필 국무총리 재임 당시 행정전문성확보 및 정책의 일관성유지등을 위해 총리 비서실에서 분리독립,발족된이래 윤성태현실장을 포함,모두 10명의 실장을 배출하면서 기능과 권한이 계속 확대 강화돼왔다. 출범당시 5개행정조정관실을 합해 32명이던 직원규모가 지금은 소속직원 1백22명과 파견인원32명등 총1백54명의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행조실은 현재 외교안보 및 일반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제1행정조정관,경제담당의 제2,지방 및 사회복지담당의 제3,사정담당의 제4 및 교육문화담당의 제5조정관을 두고있다. 행조실은 행정의 전문화에 따른 부처할거주의 경향과 교통·환경등 새로운 행정수요의 증대,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에 발맞춘 남북고위회담지원등 날로 기능이 증대돼왔다. 창설당시 행조실의 직무는 내각에 대한 지휘·조정·감독외에 서울시 조례의 제정·예산·기채승인등 지방의회기능을 대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비서실 및 기획조정실과 함께 총리보좌관인 3실체제의 하나로 운영되었으며 이런 상태는 5공출범초기인 81년말까지 큰 변화없이 그대로 지속됐다. 5공출범이후 범정부적인 대규모 정부조직 개편단행으로 같은해에 기획조정실과 제5조정담당관이 폐지됐다. 이와함께 기획조정실의 기능중 청소년대책·대통령지시사항관리·국민정신교육·정책자문위원회운영등의 업무가 행조실로 이관,흡수됨으로써 총리보좌기관은 비서실·행조실 양실체제로 운영하게됐다. 그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지난 83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및 서울올림픽대회 지원업무가 명시적으로 행조실 기능에 추가되었다가 88년 체육부로 이관됐다. 또 국민정신교육업무가 당시 문교부로 이관되고 사회정화위원회의 창설로 제4행정조정관이 폐지되는등 5공출범이후 88년까지는 행조실의 기능조정 및 지휘·감독기능이 점차 내실화되어가는 과정이었다. 89년 사회정화위원회가 폐지되면서 내각 사정업무가 추가됐고 민주이념의 교육홍보에 관한 지원업무를 신설하게 됨으로써 행조실은 다시 5개행정조정관체제로 복원됐다. 역대 행조실장은 초대 박승복씨(71·샘표식품회장)에 이어 이명춘씨(70·10대의원) 최창락(62·전경련부회장) 서석준(아웅산에서 순국) 이선기(64·코리아 테크노벤처회장) 손수익(60·국토개발연구위원) 이규성(54·금융통화운영위원) 안치순(작고) 심대평씨(52·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등이다. 윤현실장은 지난해 4월 보사부차관에서 부임해왔다.
  • “대국민공약 이행”국정 현장점검/노 대통령,퇴임 앞두고 바쁜 행보

    ◎고속도로 공사현장 등 순시 독려/4백59건중 98%가 완료·진행중/“동서고속전철 등 미착수 사업도 곧 이루어질것” 노태우대통령의 임기 마무리작업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요즘들어 주요공약사업의 추진상황을 점검·독려하기 위해 공사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있다.새해들어서는 각계 각층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재임기간동안의 협조와 지지에 감사를 표하는 등 퇴임인사를 꾸준히 계속한다. 여기에는 알차면서도 홀가분하게 국정을 매듭짓겠다는 노대통령의 뜻이 담겨있다.임기내에 정리해야할 일들을 차기정부에 넘겨 짐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여전히 의욕적이고 여유가 있다고 비서진들은 전한다.오래전부터 퇴임에 대비,마음을 다져온데다 재임기간동안의 민주화,북방외교등 업적평가에 대한 자신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특히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집념이 노대통령의 퇴임기간을 더욱 바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지난 20일부터 시작한 공약현장순시도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공약이행에 대한 집념은 유별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모든 공약사항을 적은 수첩을 지니고 다니며 국정현장에서 공약별이행여부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임기말에 이르러서는 그동안의 성과를 수치로 제시하며 미이행사항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30일 현재 공약의 이행실적은 총 4백59건가운데 완료 2백8건으로 98% 정도가 완료됐거나 추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대통령은 지난 20일 첫번째로 영동고속도로확장공사와 중앙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순시한 뒤 강원도민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공약사항 가운데 경춘선복선전철,동서고속전철,영동국제공항개발사업공약등 3건을 아직 착수하지 못했지만 이 사업도 시간의 문제일뿐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6일에는 경부고속도로확장공사와 충남 부여박물관 신축공장현장을,29일에는 전북 군산국가공단 매립공사현장을 시찰하며 지역개발을 위한 도민들의 적극적인 성원을 당부했다. 노대통령의 현장순시는 지역단위보다는 국가적 관심사업에 치중하고 있다.또 지역적 안배를 고려한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노대통령은 앞으로 경남의 국영기업체,대구지역의 복지시설을 차례로 순시할 예정이다. 이같은 순시일정을 통해 정권교체기마다 우려되는 공무원의 동요에 따른 행정공백을 예방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올들어 노대통령의 외부인사접견은 지난 5일 김영삼차기대통령과의 활동을 비롯해 정·관계·재야정치인·경제,종교,여성,사회단체등 각계를 망라하고 있다.연말연시를 전후해서는 친·인척을 비롯,육사동기등 친지들과도 자리를 같이했다. 주요 인사들을 보면 지난 4일에는 3부요인,각 정당대표,국회상임위원장과 신년인사 모임을 가졌고 지난14일에는 김대중 전민주당대표내외와 오찬을 함께 했다. 지난7일에는 이민우씨등 재야정치인,13일 전직 3부요인,14일 하오 21세기위원,15일 재향군인회,18일 민화위원,19일에 군출신의원,25일 여성단체장,27일 평통자문위원,28일 전·현남북고위급회담대표 등이다. 지난 25일 하오에 이어 2월1일에도 여야의원들과 고별인사를 겸한 만찬을 가질 예정이다. 모임의 기조는 각계의 성원과 협조로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는데 있다.새정부의 국정운영에 협조해 달라는 당부도 곁들이고 있다.이같은 모임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만찬모임불참을 당론으로 결정한데 대해 청와대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식사라도 함께하며 석별의 정을 나눠보려는 생각에서 계획한 것인데 옹색한 논리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까지 불참키로 한 것은 성숙한 자세가 결코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돌이켜보건대 지금처럼 좋은 여건에서 정권인수·인계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차기정부가 부담을 질 사항이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이 관계자는 노대통령의 순시일정을 비롯,최근의 공공요금인상 등을 「잔무정리」라고 요약했다.새정부가 의욕적으로 큰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바탕을 깨끗하고 굳건히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 임기 1개월을 채 안남겨둔 현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는 것이다.
  • 북,대화재개 거부/고위회담대표 성명

    【내외】 북한은 29일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명의의 성명을 발표,한국정부가 계획적으로 대화를 파탄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일체의 남북당국자간의 대화를 재개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한국정부가 북한의 핵개발의혹을 이유로 93팀스피리트 한미합동군사훈련 실시를 공식발표했다고 지적하면서 그같이 밝혔다고 관영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또 미국에 대해서도 『조선문제 해결의 주인은 조선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주한미군과 미핵무기의 즉각 철수·철거를 요구했다.
  • 북한 핵문제 해결 확신/노 대통령,대화 통해 합의이행 촉구

    노태우대통령은 28일 강영훈 정원식전국무총리등 전·현남북고위급회담 대표단 15명을 청와대로 초청,『최근의 국제정세와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등을 고려하면 결국 북한의 핵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산가족문제와 경제협력문제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나 앞으로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측에 대해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내부적으로는 합의서가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는 한편 통일에 대비한 모든 준비를 착실히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주민을 민족공동체라는 큰 테두리로 감싸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주변환경도 잘 활용해서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관계를 통합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평양은 올해도 「핵카드」 악용한다(오늘의 북한)

    ◎21차례 접촉도 헛일… 「팀」훈련 구실,사찰회피/대외/대미·일 수교의 지렛대로 계속 활용할듯/대내/주민 위기의식 고취… 체제수호 투쟁 독려 지난 20일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이 서명·채택된지 꼭 1년이 지났다.지난해 5월 핵협상이 사실상 결렬됐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으로 핵접촉 창구를 유지해 온 남북한은 지난 한햇동안 13차례의 핵통제공동위와 8차례의 위원접촉을 통해 핵사찰 규정안을 토의해 왔다.그러나 이같은 남북의 「접촉」은 북측이 남북상호핵사찰 실시 자체를 극력 기피함으로써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가운데 지난 25일 핵통제위 위원장 접촉의 결렬로 급기야 장기공전이라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 들게 됐다. 북한은 지난해 한국의 핵부재선언과 팀스피리트훈련의 잠정적 중단,미·북한간 고위급회담 개최 등 많은 대가를 얻어낸 후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했다.그러나 IAEA의 사찰과정에서 녕변의 미신고 핵시설이 발견되는 등 아직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불식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93팀스피리트훈련의 재개가 자신들의 상호핵사찰 회피에 따라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핵사찰의 대상과 방법을 협의키 위한 핵통제공동위에서 훈련결정의 철회를 요구,정치선전장화 함으로써 남북대화를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한국과 국제사회의 핵사찰요구를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정책의 방향이 사회주의 체제수호와 남북의 공산화 통일정책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진의가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지난 1년간 북한이 취해온 내외정책과 핵통제공동위에서의 행태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핵안전협정 서명후 지난해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계기로 대미·일관계에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온 북한은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5월중 사찰규정 마련,6월중 핵사찰 실시」라는 스케줄까지 합의하는 성의를 보였었다.그러나 북한은 그후의 핵통제공동위에서 「동시의심해소원칙」과 「상대방선정,쌍방합의사찰」규정(공동선언 제4장)을 내세워 사실상 남북 상호사찰을 거부,그동안의 합의가 모두 미·일과의 수교촉진을 위한 제스처였음을 드러냈다. 이처럼 핵문제를 대내외 정책추진의 지렛대로 활용해 온 북한이 향후에도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사찰규정마련에 성실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우리식 사회주의」의 옹호 고수와 「민족자주원칙」에 따른 연방제 통일을 새해의 2대 국가적 과제로 제시했다.이에따라 올 상반기중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핵사찰거부 방침을 그대로 견지,주민들에게 핵전쟁의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면서 「우리식 사회주의」완성을 위한 이념적 통합의 호재로 활용하려 들것으로 보인다. 대남전략면에서 북한은 올해 김일성의 통일구상에 따라 고려연방제 실현을 위한 통일전선전술을 그 어느 해보다 더욱 강화해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따라서 북한은 핵사찰 거부의 구실을 팀스피리트 훈련재개문제와 연계,책임을 남한측에 떠넘기는 한편 이를 민족자주원칙을 유린하는 반통일,반민족적 행위로 규탄,선동하면서 통일전선투쟁의 강화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북한은 과도기적 불안정속에서 새롭게 편성되는동북아 정치질서에 편승,올 하반기에 핵정책의 조정기를 거치면서 타협점 모색을 위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현재 한반도 주변 4강간에는 경제협력의 확대 심화와 군비경쟁 등 쌍무적 관계가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미·일,미·중과 일·러시아,일·중간 불편한 관계로 발전할 마찰요인들이 잠재해 있다.그중에서도 특히 인권문제 등 미국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미국 민주당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중관계의 불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북한은 이와같은 4강관계의 불안정한 균형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 외교를 전개해 가면서 사회주의 생존차원에서 핵사찰문제를 전략무기화,미·일과의 수교 및 관계개선을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이같은 전략적 기조 아래 상호핵사찰 압력을 회피해 가면서 미군유해송환,북송 일본인처의 우대와 모국방문 등 여타 현안의 해결과 외교력을 통한 미·일과의 관계정상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이나 큰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김영삼차기대통령과 미·일 등의 상호핵사찰 실현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5차례에 걸친 IAEA 핵사찰 결과의 최종적 판단이 남북한과 미·일 등이 핵정책을 재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 “상호핵사찰 이끌어내기” 대북 압력/「팀스피리트」 재개 의미

    ◎클린턴 한반도정책 불변 반증/남북관계 경색… 차기 정부에 짐 한미연합 제17차 팀스피리트 야외기동훈련 재개 발표는 정치적·군사적으로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남북고위급회담은 물론 남북핵통제위등 모든 남북대화가 일시적 정지상태에 들어가,탈냉전 이후 동서화해무드와는 달리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처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변화는 미클린턴정부의 출범과 김영삼차기대통령의 새 한국정부 출범을 앞두고 조성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정부의 대동북아 전략이 클린턴 이후에도 그대로 지속되느냐,변화할 것이냐에 대한 가늠자로서 팀스피리트훈련이 평가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대한 답변은 명쾌하다.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전략수정이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오히려 이번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결정은 클린턴행정부의 대북한 강경노선을 확인하는 것이며,한·미·일을 중심축으로 한 대북외교압력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낳게 한다. 26일 공식발표 훨씬이전인 지난8일 미본토의 미육군1군단 예하 병력·장비가 대한반도 발진을 시작,27일 부산항 도착예정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8일은 클린턴이 취임(한국시간 21일 새벽)하기 전이었다. 선발대 발진 당시 정부관계자는 보도보류 요청을 하면서 『클린턴 출범 때까지 남북한 상호핵사찰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있을 경우 93팀스피리트훈련은 중단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부시­클린턴간및 한미간에 긴밀한 협의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셋째는 북한핵문제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임이 다시한번 강조됐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주최 제9차 동북아회의에서 토머스 포글리타 미하원외무위원이 『북한핵문제 해결 이전의 주한미군철수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클린턴행정부가 과거 카터행정부의 성급한 주한미군 철수결정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언급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다시말해 팀스피리트훈련은 북한의 핵응혹이 여전할 경우 주한미군 유지와 함께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의 일관된 방침이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들은 모두 한반도 통일문제에 있어 부정적 요소들로 작용할 것처럼 여겨진다. 현재 팀스피리트훈련과 관련한 남북의 입장 차이는 현격하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의 팀스피리트 재개합의 발표뒤 다섯차례의 핵통제위를 통해 팀스피리트훈련은 한반도비핵화선언에 어긋나는 「핵전쟁 연습」이라며 ▲팀스피리트 재개를 철회할 것 ▲외국의 핵무기와 관련된 장비들이 동원되는 어떠한 군사연습도 실시하지말 것등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이에대해 남한은 팀스피리트 재개여부는 상호핵사찰이 조속히 실시되느냐 여부에 달린 것이라며 ▲팀스피리트훈련은 통상적 방어훈련일 뿐이며 ▲이 훈련의 방어적 성격을 북한 스스로 참관·확인토록 매년 초청해오고 있다는 점을 들어 맞서왔다. 이로써 남북한관계는,원대복귀까지 팀스피리트훈련이 완전히 끝나는 4월말까지는 해빙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전망은 지난해말 북한측이 팀스피리트 재개에 대한 비난과 함께 『앞으로 남북대화는 훈련이 끝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은데서도 확인된다. 이같은 남북관계 악화는 또한 김영삼차기정부에도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남북관계를 정치·외교적으로 풀려하는 노력이 있는 반면,「북한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군사적 시각이 만만챦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남북 방송프로 상호개방 추진/8개 기관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

    ◎UR·다자간무역협상에 적극 대처/정치참여 확대 등 여성역할 극대화 ▷통일원◁ 「본격적인 남북 화해협력시대의 전개」를 위해 남북고위급회담을 지속적으로 추진,당국간 상설 대화통로로 정례화 한다.또 분야별 「남북공동위」를 조속히 가동,남북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실천해 나간다.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판문점 「이산가족 면회소」설치와 「고령이산가족 고향방문단」교환을 우선적 과제로 추진한다. 남북경제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임가공 등을 통한 직교역을 확대하고 경공업분야의 시범적 경제협력사업의 추진,투자사절단 교환,남북협력기금 확충 등의 사업을 펼쳐 나간다. 또 남북 문화·예술·체육·관광분야교류 실현을 위해 남북공동기념일에 문화예술사절단 교환,국제경기대회 남북단일팀 참가,관광객 교류 등을 추진한다.아울러 북한의 정보자료에 대한 개방을 전향적으로 추진,「북한실상 바로 알리기」를 실질화하며 북한정보 자료의 수집·분석기능을 강화해 남북교류협력 본격화에 대비한다. ▷외무부◁공고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면서 90년대 중반 선진국진입과 금세기내 통일을 목표하여 경제·통상·기술등 실리외교를 강화하고 국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다자협력을 확대한다. 이와 관련,미·일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심화시키고 러시아·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북한의 학문제해결,동북아 다자안보대화및 협력모색등을 통해 국가안보를 공고히 하겠다. 남북당사자간 대화및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확보,북한의 정책변화및 개방촉진등을 통해 통일외교를 촉진시키겠다° 우루과이라운드(UR) 다자무역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아시아대평양경제협력체(APEC)등을 통한 지역경제블록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등 통상확대및 통상마찰방지를 위한 외교노력을 강화하겠다. 또 선진과학기술도입에 노력하고 새로운 국제환경규범형성에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는등 경제·통상·기술·환경분야에서 실리외교를 추진하겠다. 유엔의 국제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적극적인 문화외교를 전개하며 재외국민의 지위향상에 노력하겠다. ▷공보처◁ 금년 상반기중 종합유선방송(CATV)사업허가를 위해 구역분할과 채널구성안및 외국프로그램 방영비율등 제반사항을 준비중이다. 오는 95년 위성방송실시를 목표로 위성방송의 채널주체를 선정하고 위성방송지구국 건설을 추진하겠다. 아와함께 TV난시청 해소사업을 추진,금년부터 97년까지 5백가구 이상 밀집지역의 난시청현상을 우선 해소하고 소출력 TV통합중계시설의 건설을 늘러나가겠다. 남북방송개방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TV·라디오방송의 남북상호개방과 교류를 추진해 방송프로를 상호교환하고 남북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무장관제1실국◁ 국무회의·차관회의등 각종 공식회의와 비공식경로를 통해 통치권자의 개혁의지가 확산·전파되도록 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데 행정부가 솔선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등 「신한국」건설에 적극 기여하겠다. 고위당정정책조정회의및 각종 당정협의회의는 주요현안이 있을 때 수시로 개최하고 법률안·정책안등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을때 적극 조정하는등 기존의 당정협조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해 당정협조의 내실화를 기하겠다. 통일시대에 대비,국민단합차원에서 야당과의 관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또 정당법·선거법등 정치관련제도및 정치개혁등을 위한 관련연구에 힘쓰겠다. ▷정무장관제2실◁ 새정부가 지향하는 「신한국」창조에 여성의 역할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여성의 정치·사회참여확대를 지원·촉진하고 불평등 고용관행의 개선등 여성고용확대정책을 강화하겠다. 남녀평등의식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여성복지의 내실화를 기하겠다. 특히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는 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데 역점을 두겠다. ▷비상기획위원회◁ 민주화·지방화시대에 상응한 자율적 비상대비기반을 강화하고 전·평시 공히 적용가능한 비상대비능력을 배양하며 비축물자의 평시활용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하겠다. 또 첨단과학시대에 대비한 비상대비업무체제를 구축하고 군비통제에 대비한 동원체제를 확립하겠다. ▷평통자문회의사무처◁ 전국협의회및 직능분야별 단체를 통한 통일문제간담회·강연회실시등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구축하겠다. 사회주의권 거주동포의 통일지지세력화및 북한사회개방화를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등 통일정책에 대한 해외지지기반을 공고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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