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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국제사회 복귀 포용정책이 촉진

    북한의 국제사회 복귀를 향한 외교적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북한이 이렇듯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는데는 우리 정부의 ‘포용정책’이 큰 배경이 되고 있다.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로 북한의 개방·개혁 물살이 더욱 급류를 탈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개방의 길로 들어서면서 한반도 주변정세도 급변하고 있다.지금의한반도 냉전해체 작업은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느낌이다.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과 유럽국가 등도 나름대로 국익을 위해 남북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북한은 5월 중 미국,일본,영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각각의 쌍무협의를 갖는다.호주와는 곧 15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공식발표한다. 조심스럽게 주변상황을 관망하던 북한이 과감하게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고,해당국들이 전에 없이 호의적으로 북측이 내민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것은북한의 국제사회 복귀에 대한 국제적 분위기 성숙 때문이다.이같은 국제적분위기는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이에 대해 미국,일본,중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의정부’는 전 정권처럼 남북관계 정상화를 조건으로 내세우며 우방국들의 대북 관계정상화 노력을 방해하지 않았다.“미국 등 우방들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한반도 안정과 남북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포용정책의 주요 전제며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개최결정은 북한의 경제실리외교와 국제사회 복귀노력에 힘을 더하고 있다.이같은 분위기는 미사일·핵 등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앞세우며 벼랑끝 외교를 펼치던 북한을 적극적으로 실리추구를 향한 대화의 장으로 나서게 하고 있다. 북한은 이 과정 속에서 대외적 안보위협을 줄이고 경제적 실익,대외적 위상제고라는 ‘대가’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함께 중국,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전략적 동반자관계’의 회복을 통해 대외 관계의 균형을 찾고 주변 국가들을 경쟁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북한은 앞으로 한반도 냉전해체의 물결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국제사회를 향한 ‘전방위 외교’를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swlee@. *北 개방외교 누가 이끄나. 북한 외교의 큰 틀은 김용순(金容淳)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백남순(白南淳)외무상,강석주(姜錫柱)외무성 제1부상에 의해 결정된다. 당이 주도하지만 최근 대외관계가 활발해지면서 외무성의 활동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다.철저한 역할분담 속에 백남순 외무상이 공식외교활동의 전면에나서며 세계각국을 누비고 있다. 대일관계와 미수교국과의 막후 접촉은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는 김용순의 몫이다.정치적 중량급인 김비서는 전체적인 전략수립에 관여한다.‘조일우호 친선협회’고문직도 맡으면서 거물급답게 막후에서 일본 정치인들을 움직여 북·일관계개선을 진척시키고 있다.지난해 무라야마 전총리 등 일본정치인들의 방북도 그의 막후작품이다.개인적으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술자리도 함께 하는 최측근이다.한편 대미관계는 강석주(姜錫柱)외무성제1부상이 핵심역할을 한다. 93·94년 ‘핵위기’ 때부터 북·미고위급회담대표를 맡아왔다.다른 문제와 달리 대미관계를 직접 챙기는 김정일에게 주요사항은 직보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91년 9월 유엔총회에서 유엔가입 수락연설도 그가 했다. 실무자급으로는 김계관(金桂寬)부상이 대표적이다.찰스 카트먼 미국무성 한반도평화회담 특사와 소위 k-k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대일관계는 정태화 북한외무성 순회대사가 지난 4월 초 평양서 열린 북·일국교정상화회담에 대표로 나서며 대리인역할을 하고 있다.정대사는 엘리트 외교관출신으로 92년에 차관급인 부상을 지내고 순회대사로 근무해왔다.지난해 인도에서 발생한 파키스탄행 선적의 북한제 미사일부품 선적 의혹사건 처리를 위해 인도에 파견되기도 했다. 이석우기자
  • 로마 北·美회담 전망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로마 북·미회담은 북한의 향후 대외전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듯하다. 지난 3월 뉴욕 북·미 예비회담 이후 정상회담 성사 등 엄청난 변화의 와중에서 처음으로 북·미가 대좌한다는데 의미가 있다.북측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테러지정국 해제가 무산된 직후여서 북측의 대응도 주목된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미국이 밝힌대로 ‘핵 합의 이행’ 문제다.즉 제네바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이 지연됨에 따라 ‘전력(電力)보상 문제’가 가장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지난 3월 뉴욕 예비회담에서 북한은 오는 2003년까지 완공키로한 경수로 건설공사 약속 불이행에 따른 ‘전력 손실보상’을 강력히 요구했다.이 때문에고위급회담의 의제나 공동선언문 문안 작성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회담에서 중유 추가제공 등 전력 보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놓고 상당한진통이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사일 문제는 이번 회담 의제에서 제외,기존 북미 뉴욕채널을 통해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미 협상이 단순히 전력손실 보상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일각에서 관측하는대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지렛대로북미 관계 개선을 도모할지도 관심거리다. 북한이 현재 진행중인 남·북,북·미,북·일 관계개선의 3개축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서로를 경쟁시킴으로써 실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크다.특히 ‘정상회담 변수’를 활용,난항에 빠진 북·미,북·일 협상에서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술적 측면도 읽혀진다. 회담 장소가 로마로 결정된 것도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지난 1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미국과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서방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상징적으로 알리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국제사회에서 ‘이단자’로 각인된 이미지를 개선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하는 듯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北·美회담 기조 큰변화 없을듯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이 올해에도 미국이 규정한 세계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된 것이 북미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이 1일 발표한 세계테러지원국가 보고서에서 북한이 올해에도 테러지원국가에 포함되자 일부에서는 지난 3월까지 진행돼온 북미고위급회담 전망을어둡게 하고,해빙무드를 타던 북미관계가 다시 얼어붙는 게 아니냐는 피상적이고 성급한 우려가 나왔다.그러나 이는 북한과의 협상을 피상적으로만 바라본 결과라는 게 대부분의 대북협상 당사자들의 지적이다. 단순히 해빙무드만을 근거로 제외 가능성을 점치던 판단과는 달리 정작 북한이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요구만 했지 그에 필요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고 이들은 지적한다.테러에 대한 비난 내지 반대 입장 발표, 지난 6개월간 테러지원 사실이없다는 실적 등 알려진 제외 근거 조건면에서 볼 때에도 제외시킬 수 있는명분이 없었고,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판단인 것이다. 반면미국은 이번 보고서에 “최근 북한에 명단 삭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설명했다”고 ‘이례적’으로 기술,최근 북미회담에서 상호입장 표명과 제외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마이클 시한 반테러조정관이 “북한은 제외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라고 밝힌 점도 이같은 최근의 전향적인 북한 태도를 반영한 것이다.겉으로 드러난 표현이야 어떻든 북미 양국은 상호근본적입장에서 대체적 공감대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시기가 문제이지 테러명단 제외나 고위급회담의 의지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북한이 “테러지원국이란 꼬리표를 달고서는 고위급 인사가 미국에 갈 수 없다”며 마치 명단 제외가 회담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언급했지만 이는 회담 전략에 불과하며 구속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는 대북한 국제금융기관 원조의 전제조건으로 비중이크지만 북한은 현재 남북정상회담을 진행중이다.북한으로서는 진정한 한국측협조 의사를 확인한 이상 회담의 ‘실현이익’ 차원이나 우선순위에서 남북회담이 고위급회담이나 테러회담에 앞서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1)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대한매일은 1945년 분단 이후 현재까지 중요한 남북관계 일화와 사건들을 특별기획으로 연재한다.이번 특집은 남과 북의양측 당국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고,또 어떤 이유로 그같은 노력이 좌절됐는가를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92년 2월 19일 오전 10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 남북한의 TV와 라디오가 생방송하는 가운데 정원식(鄭元植)국무총리를 비롯한 남측대표와 연형묵(延亨默)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행사를 시작했다. [민족사적 의미] 수행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발효절차를 마친 정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감격을 표시했다.연 총리도 “최근 시베리아 고기압은 낮아지고 우리민족의 통일열기는 높아진다”고 시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이날로 남과 북은 분단 반세기만에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음 날남측 언론은 기본합의서 발효사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북측은 남북의 공동발표문과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만 간략히 보도했다.그리고 기본합의서 발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남측에서도 북한의핵 개발의혹이 점차 실체적인 위협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역사적 배경] 1990년을 전후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했다.동·서독의 통일,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등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이어졌다.세계적인 대변혁의 물결은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밀려왔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급변속에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이와함께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체제붕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적·폐쇄적 노선을 포기하고 개방·개혁의 실용주의노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측도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다.88년2월 취임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4월21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임기중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이룩할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천명한 뒤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가 잇따랐고,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으며 한-러,한-중 수교도 이뤄졌다.그 시점에 남은 것은 남과 북 두 당사자간의 관계개선 뿐이었다. [추진 과정] 1988년 12월28일 강영훈(姜英勳)국무총리가 북한의 연형묵(延亨默)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총리회담을 제의했다.이에 대해 연 총리는 다음해1월16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남북은 90년 9월부터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이어갔다.91년 12월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돼 양측총리가 서명했다. 92년 2월18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다. [내용상 함축]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서문에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본문에는 남북화해를 위한 실천과제와 불가침 약속,군축문제가 담겨있다.군축대상인 대량살상무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와 핵무기도 포함하는 것으로남북간에 합의됐다. 또 경제교류와 협력,인적 왕래,교통로와 우편·통신의 재연결,통신교류의비밀보장과 관련한 규정도 담겨있다.남과 북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류 방안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북측의 불이행] 북한은 1992년 11월 5일부터 개최키로 합의한 분야별 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을 거부한 이래 기본합의서 이행과 당국간 대화를기피했다.93년 1월 북한 핵 문제가 터지면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은 물론 남북관계 전체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입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측 이행노력]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을 임기중 시행할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와 8·15 경축사 등여러 계기를 통해 북한측에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위해 분야별 공동위원회 가동과 특사교환을 제의한 바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기본합의서 법적 성격…민족 특수관계 규율 문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율하는 문서이다.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따라서 국가간의 조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만 서문과 조문의 배열,발효의 절차,권리와 의무에 관한 규정,정부대표가 서명한 점 등은국가간 조약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기본합의서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합의서의 국회동의 필요 여부,국내법과의 저촉 등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2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뒤 국회에 인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국가간 문서가 아니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명후 최고인민회의 동의를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8년 7월26일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李根雄 부장판사)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사항에 대한 체결 주체의 준수·이행을 명백히 요구하고 있다.단순한 정치선언이나 강령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의지를갖고 실천하면 ‘민족의 장전(章典)’이 될 수 있다. 이도운기자. [기고] 남북정상회담과 '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1992.2.19)된지 8년 4개월만에 그 정치적 실천을 담보하는 정상회의가 6월 12∼14일 평양에서 열린다. 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교류·협력,불가침 이행을 약속한 현상확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남북정상회담은 현상확인적 요소와 함께 현상변경적 요소도 담아야 한다. 남한의 역대정부(노태우,김영삼,최근 김대중)들이 내놓은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국가연합적 성격을 가진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둔 점이다.그 이유는 동서독과 달리 상호 무력충돌을 가졌고,50년이상 장기간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와 깊은 상호 불신 때문이다. 북한측도 1960년초 부터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지만 1988년 이래 점차적으로통일의 점차적인 완성을 강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남한의 남북연합에 매우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1991년 김일성 신년사는 제도적 국가적 통일을 후 세대에 미룬다고 함으로써 국가연합적 성격의 통일방안을 명백히 하고 있다.이것은 남북한 양통일방안이 상호 수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양 정상들은 남북연합이라는 가시적인 통일 청사진을 합의하여 발표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남북연합의 헌장-통일헌법과의 관계는 3단계 통일방안으로설명이 가능하다.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협력단계의 법적 기초(1단계)라면,남북연합 헌장은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2단계)이고,통일헌법은 1민족 1국가 통일국가의 법적기초(3단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를 강조한다면,남북정상회의는 기본합의서의실천과 동시에 통일에 대한 큰 그림도 합의하는 현상변경적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가 평화에 대한 총론을 규정했다면 남북 정상회의는 평화를 실천하는 보다 구체적인 각론적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한 것은 남북한의 정치적 동기가 공통적으로 강했다.남한은 북방정책의 한건 주의의 일환으로,북한은 동구권 붕괴이후 정치·외교적 체제위기의극복을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남북한의 동기야 어떻든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은 최초로 공식적인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 장전의 문서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그 법적 성격과 실천을 둘러싸고 쌍방간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쌍방 모두 그 동안 그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치적실천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쌍방 당국은 이제 지난 과오를 겸허하게 민족과 양쪽 국민 앞에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은 향후 모든 민족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풀어가겠다는정치적 결단과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조치를 재다짐해야 한다. 한 예로 쌍방은 기본합의서 제15조의 민족내부거래를 세계무역기구(WTO)를포함한 국제기구에서 공인받기 위해 유엔헌장 102조에 따라 유엔 사무처에등록함은 물론,4개 분과위원회와 5개 공동위원회의 조속한 가동에 합의하기를 바란다.이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쌍방은 사문화된 기본합의서의정신 복원과 그 실천성을 살려서 한반도에 평화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할 것이다.그래서 한국전쟁 50년이 되는 2000년 그리고 6·25라는 동족 상쟁의 이미지를 가진 6월이 이제 평화와 희망를 잉태하는 해와 달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
  • 판문점 남북접촉 이모저모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첫 준비접촉은 22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지역‘평화의 집’에서 1시간20여분 동안 열렸다.판문점은 이따금 보슬비가내리는 흐린 날씨였으나 남측지역인 자유의 집과 통일각 사이에 위치한 언덕에는 진달래,산수유 등이 만개해 분위기를 돋웠다.회담장 테이블에는 남북교류·협력을 상징하는 남북공동 제작의‘한마음’담배가 놓여 눈길을 끌었다. ◆남북 대표단 도착=우리측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 등 남측대표단은 22일 오전 9시15분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 도착.양 수석대표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역사적인 회담의 길을 평탄하게 닦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짤막하게 언급.양 수석대표 등 대표단은 평화의 집 도착 직후 회담장옆에 있는 남측대표단 대기실로 직행.양 수석대표는 이어“북측 김령성 단장 등 북측대표단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산출하는 데 관여하는 등 회담 성사에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며“남북이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회담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어 9시48분쯤 북측 대표단장인 김령성 수석대표와 최성익 대표,권민 대표 등 일행이 중립국감시위원회(중감위)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김 수석대표는 하얀 줄무늬가 위아래로 있는 검정색 더블버튼의 양복을 입고 있었고 흰색 와이셔츠에 노란 바탕에 검은 6각 무늬가 있는넥타이를 매 의상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 ◆대표단 상봉=9시53분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난 양측 대표들은 남북 평화 구축의 첫 발을 내딛는 굳은 악수를 교환.김 수석대표가 “반갑습니다”라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자 양 수석대표는“10개월 만에 대표들을 다시 만나 반갑다”면서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만났던 기억을 되새기며 환영의 뜻을표명. 양 수석대표는 인사말을 통해“날씨가 덥지도,쌀쌀하지도 않아 하늘도 이번 준비접촉을 축복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수석대표는“어제 온 비는 곡우비로 농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새 천년 첫 봄은 북남관계의 양천가절”이라고 화답. 한편 회담에 앞선 신임장 교환에서 남측대표단은 박재규 통일부장관 명의의,북측대표단은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명의의 신임장을교환. 김 수석대표는 자유의 집을 통해 평화의 집으로 이동하며“쌀쌀한 날씨가곧 풀어질 겁니다”라며 밝은 미소.그는 준비접촉이 몇차례 진행될 것으로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쌍방의 뜻이 모이면 인차(곧) 타결되겠죠”라고 간단하게 언급. 김 수석대표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말을 아끼며 다소 상기된 표정.그는“북남 최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게 풀릴것”이라며 6월에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회담장 표정=회담장에 마주 앉은 양측 수석대표는 ‘상부의 뜻’을 은근히 강조하며 약간의 신경전을 벌여 눈길.김 수석대표는“4월은 위대한 수령이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김정일 위원장도 민족 대단결 5대 방침을 발표한달”이라고 주장.양 수석대표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언급하며 결실을 볼 수 있는 회담을 강조. 1차 준비접촉이 끝난 후 남측의 양 수석대표와 북측의 김 단장은 웃음 띤얼굴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양측 대표는 악수를 할 때도 웃는 얼굴로“2차회담때 봅시다”라고 말했다.북측대표단은 회담 중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우리 측이 마련한 우산을 쓰고 자유의 집을 통해 북측으로 돌아갔다. ◆회담장 주변=판문점은 남북 당국자들로 완연히 활기를 띠는 분위기.내외신 기자 등 100여명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여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외적으로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음을 반영.통일각과 판문점 중감위 군사정전위 회의실 사이 통로 등엔 북측 경비병들이 양쪽으로 3명씩 배치된 것을 제외하곤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 한편 북측대표단 일행은 수행원과 취재기자단을 포함해 모두 29명.한 기자는“북측 주민의 기대가 크다”며“남측이 잘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말했다.한 관리는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서 ‘정상회담’ 대신 ‘북남 최고급회담’이라고 표현한 것과 관련,“북조선 국가수반은 여전히 김일성 주석”이라며 “김정일 동지는 국가수반이 아니기 때문에 합의서에 겸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방북규모 230명 안팎… 27일 2차 준비접촉

    남북한은 22일 오전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위한 첫 준비접촉을 갖고 오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2차 준비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접촉에서 우리측은 고령이산가족의 상봉 등 시급하면서 실현가능한 문제들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3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형식면에서 단독회담이,또 횟수는 복수로개최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면서 “22일 첫 남북 준비접촉에서 양측은이같은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상봉(면담)만 하고,최고위급 회담의 상대는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될 것이라는 일부 예측과 관련,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두 회담이분리된 것이 아니며 북한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해 김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임을 강조했다. 우리측은 또정상회담 준비접촉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남북 연락사무소기능의 조속한 회복도 함께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준비접촉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은 기조발언에서“준비접촉은 남북정상회담의 실무절차뿐 아니라 정상간에 협의할 본질적인 내용들도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측의 김령성 수석대표는 “북과 남이 현안이 많은 만큼 이런 현안을 풀고순조롭게 해결하자면 근본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북남 정상의 평양상봉과 최고위급회담 등을 통해 수많은 현안을 풀고 조국통일을 이루는 획기적인 전기를 이루는 의지를 갖고 왔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복수의 단독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김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 일부가 판문점을 통한 자동차편이 아니라 비행기편으로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북측이 수용할 경우 우리측 대표단을 수행원 130명,취재기자 100명수준에서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첫 남북준비접촉에는남측에서 양영식 차관을 수석대표로 손인교(孫仁敎)남북회담사무국장,서영교(徐永敎)국장,북측에서 김령성 수석대표,최성익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권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등각각 3명씩 참가했다. 판문점 이석우기자 swlee@
  • 南北수석대표 대화 요지

    22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당국자간 첫 준비접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이뤄졌다.분위기 탓인지 양측의 인사말은 20분간 진행됐고,향후 회담에 밝은 빛을 던져주는 덕담도 오갔다.다음은 양측 수석대표 대화 요지. ■양영식(梁榮植) 남측 수석대표 판문점에서 5년9개월 만에 만나서 참으로감개무량하다.한반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산출하는 귀한 만남이 되기를바란다.세분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산출에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대표 두 명도 결실을 보는 남북회담 현장에 있었다.오늘도 차분하게 대화해서 큰 열매를 맺도록 하자. ■김령성 북측 수석대표 이번 준비접촉은 대표단이 서로 3명이어서 회담이잘될 것으로 믿는다.함께 모색하고 노력하자. ■양 수석대표 준비접촉에 북측이 예상보다 빨리 호응해서 온 세계와 겨레가환영했다. 금강산을 함께 개발했듯 판문점도 앞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자.평화의 샘터가 되는 판문점이 되기를 바란다. ■김 수석대표 이번 접촉은 출발부터 잘해서 결실을 보는 과정이 되도록노력하자.날씨는 어떻습니까. ■양 수석대표 어제 단비가 촉촉히 내렸다.농사에도 좋다.남북한에 뜻하지않은 산불피해를 보았는데 어제 단비는 좋은 징후다.오늘은 무덥지도 않고쌀쌀하지도 않고 축복받은 날씨다. ■김 수석대표 곡우가 절기로 사흘전이다.이번 비는 곡우 비로 농사에 약비일 뿐 아니라 우리 접촉을 축하하는 축하 비라고 생각한다.올해 4월은 새 천년의 첫봄인 양춘가절이다.북남관계에서도 양춘가절이다.우리의 소명을 잘수행할 것으로 믿는다. ■양 수석대표 4월은 꽃피는 자연의 계절이다.귀측도 문제를 풀고 우리측도김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지가 담긴 4가지 중요 과제를해결하겠다.남북경협 등 공동으로 도울 것은 돕는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 문제를 북측도 동감하리라 생각한다.오늘 만남을 계기로 남북관계 변화의 결정적 기틀을 마련하는준비회담이 돼야 한다. ■김 수석대표 북남간 여러 현안을 순조롭게 해결하자.북남 평양 상봉과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수많은현안을 풀고 조국통일을 이루는 획기적 전기를이루는 의의를 갖고 있다.중대사를 해결해 첫 대문을 열자.상부의 뜻을 옳게받들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온 민족의 관심인 평양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을성과적으로 하자. ■양 수석대표 남북간 화해와 단합,교류협력,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두분정상의 만남 성사를 생각하는 양측의 공감이 벌써 나왔다고 생각한다.합의할 수 있는 것은 합의를 보고 남북이 55년간 단절됐던 만큼 차이 있는 점을인정을 해서 실타래를 푸는 접근을 하자. ■김 수석대표 좋은 말씀이다.준비접촉은 이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하자.타방 입장을 고려해 앞으로 갑론을박을 없애 이번부터 새롭게 하자. ■양 수석대표 어제 기자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으로 접근하겠다고말했다.(북측 김수석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서로 이해 못할 것이 없다.김선생 말씀에 공감한다.과거 남북대화는 무화과 나무처럼 잎사귀가무성하고 열매가 없어 저절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열매 맺자는 얘기에 공감한다. 판문점 이석우기
  • 남북 대표단 면모

    *남측 대표단 면모. 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단은 남북 현안을 꿰뚫고 있는 ‘대화 전문가’들이다.단순 실무절차뿐 아니라 남북한 현안 전체를 논의·조정,두 정상이 협의해야 할 의제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측 대표는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을 비롯,손인교(孫仁敎)남북회담사무국장,서영교(徐永敎)통일부국장 등 3명으로 짜여졌다. 이들 대표 3명은 지난해 베이징(北京)차관급회담에서도 수석대표와 대표,비공개 접촉자로 함께 일해 팀플레이에 대한 기대가 높다. 양차관은 지난해 6월 베이징 차관급회담때도 수석대표를 맡은 북한통이다.85년 반둥회의,93년 미국버클리대 초청 ‘남북 통일토론회’때도 정부대표로나서 북측을 상대했다. 양차관은 정상회담 준비실무를 총괄하고 회담전략을 수립하는 준비기획단장도 겸하고 있다.72년 통일원에 들어온 뒤 28년 동안 통일부 대변인·정책실장·교육원장·민족통일연구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손인교 남북회담사무국장은 대화업무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회담전문가.92년 판문점에설치됐던 남북연락사무소 초대소장을 맡기도 했다.지난해 베이징 비공개 차관급회담에 참가,6·3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북측과의 회담에 직접 참여한 남북 회담통이다. 남북대화사무국 회담 운영부장·연락부장·기획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4년정상회담 준비때에는 회담협력관으로 실무업무를 맡은 경력이 있어 정상회담의 준비사항에도 정통하다. 서영교 통일부 국장은 98년 베이징에서 열린 차관급회담에 이어 이번에 다시 정부대표단에 뽑혔다.북한 사정에 밝아 역대 회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다. 두둑한 뱃심에 실무에 밝다. 이석우기자. *북측 대표단 면모. 북한측 대표단의 수석대표인 김령성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참사로 차관급.우리에게 낯설지만 90년대초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교류협력분과위에 참여,남북 경제협력에 식견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수석대표 발탁은 다소 의외지만 남북교류협력의 틀을 만드는 데 참여해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교류협력의 틀을 구성하는데 북측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92년 고위급회담 실무접촉 때부터 남북접촉의 실무자로 전면에 나왔다.92년1월 남북 기본합의서 구성ㆍ운영 및 남북연락사무소 설치운영문제 협의를 위한 대표접촉에서 대표를 맡았다. 92년 5월 제7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간중 교류협력분과위원장 접촉때는 수행원으로 참석했다.92년 7∼9월 제6·7차 남북교류협력분위 위원,같은 해 9월제8차 고위급 회담기간중 교류협력분과 위원장간 접촉대표로 활동했다. 98년 3월에는 제5차 식량지원 협의를 위한 남북적십자 대표 베이징 접촉에대표로 참여,매끄럽게 일을 마무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9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소재)에서 열린 ‘코리아평화 통일심포지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사회정치학 연구실장 자격으로 참가한 바 있다. 김참사가 수석대표를 맡은 것은 베를린선언에 따른 남북 당국간 경제협력방안과 이를 위한 기본합의서 이행 문제가 의제로 대두될 것이라는 북측 내부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과 귄민 조선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참사는 대표적인 대남 일꾼.모두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때 박영수 수석대표를 보좌해 대표로 참여했다.최부장은 85년 5월 북한의 예술단·고향방문단을 수행하고 서울을 방문한 바 있고 85년 12월 남북적십자 회담에 참여,서울을 방문했다.남북공동위 위원으로 역시 남북교류협력 분야의 전문가다. 권민 아태평화위 참사는 베이징에서 활동하며 한국기업인 등과도 폭넓은 교분을 갖고 있고 각종 남북회담에 참여한 회담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석우기자
  • 판문점 준비접촉 전망

    22일 정상회담 준비접촉에서 남북 당국은 정상회담의 의제 등 남북현안을포괄적으로 논의한다. 회담 절차와 함께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 및 합의사항을 조정·정리하게된다. 남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두 정상의 회담 앞길이 순탄하도록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의제와 절차 두 가지 모두를 준비접촉에서 협의해 결정해야 한다. 준비접촉은 94년 합의된 전례도 있어 어렵잖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제 도출은 남북의 당면 과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의견을 좁히는 자리라는 점에서 더 큰 무게가 실린다. 양차관도 이날 경호·의전·보도·통신 등 실무절차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진행되게 된다고 설명했다.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만남이란 점에서 ‘준비접촉’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남북간에 이례적인 포괄적인 현안논의 회담이다. 냉전종식과 화해협력·교류증진·이산가족상봉 및 인도적 지원 등도 모두포함된다.이처럼 광범위한 현안을 놓고남북 당국 차원에서 협의하기는 92년고위급회담 이후 처음이다.94년 정상회담 준비때도 의제가 비교적 제한됐었다. 양차관도 이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3월 밝힌 베를린선언의 4대 원칙이 중심 의제로 논의될 것임을 밝혔다. 경협 및 경제공동체 건설,적대상태 종식 등 냉전해체,이산가족상봉 실현,당국간 대화통로 상설화 등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비료 등의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양측의 의사타진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신축적인 상호주의로 대화에 임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거리를 조정해 나가자는 것이다.“상호주의의 비등가성·비대칭성·비동시성에 의한 신축적인접근”이란 양차관의 이날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22일 준비접촉은 첫 만남이란 점에서 서로의 입장을 밝히고 수위를 조정하는 자리다.그러나 북측의 적극적인 태도로 보아 의제논의가 상당히 진전될것이란 기대도 높다. 정부도 토요일이지만 북측이 동의한다면 오후에도 회담을 진행하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국민의 정부 對北접촉. 22일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은 5년9개월 만에 이뤄지는한반도 내에서의 당국간 접촉이라는 데서도 의미를 갖는다.94년 7월8일 이후끊겼던 한반도내 당국간 통로가 열렸음을 뜻한다. ‘국민의 정부’들어서는 그동안 두 차례의 당국간 공식 회담이 있었다.지난 98·99년 중국의 베이징(北京)에서 가진 차관급 당국간 대표회담이다. 첫번째 회담은 정부출범 직후인 98년 4월11일부터 17일까지 7일동안 열렸다.대북 비료지원문제 등 상호관심사를 논의했으나 북측의 ‘비료 우선지원’주장으로 결렬됐다.이어 99년 6월22일 회담은 서해교전과 이산가족문제를 의제로 채택할지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중단됐었다. 정부는 98년 회담에선 대북지원과 이산가족문제를 맞바꾸자는 ‘상호주의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99년 만남에선 ‘신축적인 상호주의’로 의견을 접근해 나갔다.6월회담전에 5만t의 비료가 북한에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됐고 회담 시작과 함께10만t이 추가로 전달됐다. 98년 회담에는 정세현(丁世鉉) 당시 통일부차관과 전금철 북한 정무원 참사겸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수석대표로 각각 5명씩의 남북 대표단이 참여했다.또 지난해엔 양영식(梁榮植)통일부 차관과 ‘박영수 내각 책임참사가 각각수석대표로 나왔다. 오일만기자 oilman@
  • 94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뒤 김일성,철도연결 준비 지시

    지난 94년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된 후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은 남북간철도 연결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이같은 사실은 기자가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평양을 방문,북측 인사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또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일정이 발표되자 북한주민들 역시 이를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발표후 북측 안내자인 민족대단결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난 94년 최고위급회담 개최가 합의된 직후 김일성 주석이 ‘남북간 철도를이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발표되던 날 남한기자로는 유일하게 평양에서 취재를하고 있던 기자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평양시민들이 통일에의 열망과 기대로긴장감이 들 정도로 부풀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한편 이번 방북에서는 조선컴퓨터센터·평양프로그램센터 등을 방문,북한의컴퓨터산업·정보화현황 취재와 함께 임시정부 요인 조소앙 선생의 비서를지낸 김흥곤씨(75)로부터 6·25 당시 납북된 애국지사와 제헌의원 등 납북인사들의행적과 최후에 대해서도 확인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남북연락소 추진 안팎

    평양과 서울에 남북 연락사무소가 개설될 수 있을까. 12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6월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평화정착을 논의하기위한 기구설립이나 대화채널 가동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락사무소를 평양,서울에 설치하고 대표부 기능을 갖도록 하는 방안을 제의할 방침이다.지난 92년 고위급회담에서도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제의한 바 있다. 당시 연락사무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 설치됐고 단순 연락 통로로 기능이 제한됐었다.그러나 96년 ‘잠수함침투사건’으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할때까지 남북당국은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핫 라인’으로 이 통로를 이용해 왔다. 남측은 평화의 집에,북측은 판문각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상주인원을 파견했었다.당시 양측이 사용했던 전화선은 지금도 스위치만 내린 상태로 그대로연결돼 있다.언제든지 ‘재개소’가 가능하다. 연락사무소 개설은 상호 신뢰를 상징하고 관계진전 의지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연락사무소 교환이 아니라 판문점 사무소개설이 이뤄지더라도 상설 대화통로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남북은 92년 연락사무소 설치ㆍ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마련했었다. 평양에 남측 연락사무소 설치가 허용된다면 31번째 ‘외국 공관’이 된다. 위치는 평양 대동강 구역에 위치한 외교단지가 유력하다. 정부는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기능을 점차 강화,고위 인사들이 상주하는두 나라의 대표부 성격을 띤 명실상부한 대표기구로 확대해 보겠다는 생각을갖고 있다. 연락사무소의 성격은 관계 진전에 따라 크게 달리할 것이란 점에서 그 진전여부가 주목된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 정상회담/ 청와대의 밑그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청사진이 조금씩 제시되고있다.아직 전체적인 밑그림은 그려지지는 않은 상태이나 큰 골조는 세우기시작한 것 같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민족화합,상호불가침,교류협력의 3대 남북기본합의서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무력대치 상황을 전환할 한반도 평화의 틀을 구축하는 합의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고했다.또 남북 상호연락사무소 설치와 군비·병력 감축,올 시드니 올림픽 단일팀구성 및 2002년 월드컵 분산 개최,문화·예술분야 교류 등이 이뤄질 것임도내비쳤다. 김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특사교환 등 베를린 선언의 4개항을 주 의제로 다룰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렇게 볼때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분단 55년만의 첫 정상회담이라는역사적 의미를 살려 남북현안을 폭넓게 다룰 것임을 알 수 있다.한 관계자도“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김 대통령의확고한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 대통령의 기본 구상은 역시 평화체제로의 전환으로 보인다.한 고위관계자는 “평화체제의 큰 틀은 전쟁의 공포가 해소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상은 당연히 군비감축 논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윈윈정책’인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가 줄 것은 확실히 약속하고,대신 받을 것,즉 핵무기 개발,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하겠다는 의지다. 김 대통령은 이런 방안이 남북에 똑같이 이익이 되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있다.“긴장이 해소되면 IBRD(세계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북한 경제개발에 참여할 것이다.이런 외국인 투자는 우리 기업과의 공동진출 증가로 이어져 남북한 공히 증가할 것”이라는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의 설명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현재 진행중인 북·미 고위급회담과 북·일 수교협상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협상속도가 매우 빨라져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이발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 정상회담/ 올브라이트 美국무 CNN회견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출연,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을 수락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정상회담 자체가역사적으로 중요한 첫걸음으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다음은 주디 우드러프 앵커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일문일답을 간추렸다. □남북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돌파구로 생각하는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남북대화를 권고해왔다.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관건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를 위해 남북한 관계자 및 일본과 논의를 해왔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물밑 노력이 진행돼 왔다는 얘기인데 왜 북한이 이를 수용했다고 보나. 북한은 폐쇄된 사회라 왜 이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때부터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고 본다. □북한이 경제 난관을 타개하고 지원을 더 얻기 위한 하나의 책략으로 정상회담에 동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북한의 경제가 어렵고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식량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은 역사상 중요한 첫걸음으로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북한의 의도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 파악할 수있다고 본다. □수주내로 미국서 북미당국자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선례를 따라 미국에서북미간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고위급 회담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다. □북한이 언젠가는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 개발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북한이 일단 한가지는 실행했다.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영변 핵프로그램도 합의된 틀안에서 동결됐고 금창리 핵사찰 방문도 5월 이뤄질 것이다. □북한을 불투명한 폐쇄사회라고 했는데 김정일(金正日)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우리 모두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나는 그의 인물됨을 김대중 대통령과 실제 정상회담을 할때 알게 될 것으로 본다.그러나 정상회담은 진일보한 것이다.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우리는 협상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왔다.상기할 점은 대북관계를 둘러싸고 한·미·일 삼각공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김 대통령은 늘 우리와 접촉해왔고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과도 긴밀한 협조를 유지해왔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美國의 시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남북정상회담 발표에 즉각 환영 성명을 낸 미국은향후 한반도에서 전개될 상황을 다각도로 계측해보고 있다. 10일 오전 이례적으로 환영의 성명을 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두 정상의만남을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표현하는 등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역시 “한반도 평화정착에 남북정상의 만남은관건이었다”며 그동안 한국정부를 비롯한 일본정부와의 긴밀한 외교 공조노력의 결실로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또 미국이 그동안 추구해온 핵확산 방지와 대량살상 무기개발저지 노력이 미국내 정책테이블 위가 아닌 이념대결로 지구상 가장 뜨거운 한반도 한복판에서 해결의 실타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98년 8월 북한의 신형미사일 발사실험과 11월 금창리지하 핵의혹시설 등 잇따른 의혹에 ‘북한위협감축법안’과 ‘북한미사일 방어망실험법안’을 제출,북한유화정책에 제동을 걸며 강공을 주장해왔던 공화당측에 입막음할 기회를 남북정상회담에서 얻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초부터 일관되게 추진해온 햇볕정책이 주효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로서도 오랫동안 북한에권고해왔다”며 미국측 노력을 은근히 강조한 점도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한반도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성명을 내 클린턴 행정부를 공박하던 벤저민길먼 하원 국제관계위원장(공화·뉴욕주)은 이번에는 아직 아무런 성명도 내지 않고 있다. 분단 이후 이뤄질 사상 첫 정상회담이라는 의미에 주목했던 미국의 시각은곧이어 과연 이번 회담이 어떤 주제를 다뤄 앞으로 미국과 북한의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로 옮겨지고 있다. 단번에 남북관계에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된다는 성급한 기대는 자제하면서도 미국으로서는 일단 상호존중 태도의 확인과 대화유지에 따른 화해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에는 확신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최근 국제사회에 발을 내디디려는 의도를 보였고 한국의 진정한 평화노력의 의도도 인식한 것으로 보여진 만큼 92년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이 다시한번 강조돼 상호신뢰가 더욱 깊어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이와함께 남북경협을 둘러싼 실질적인 화해협력이 최근 미국과 진행되고 있는 경제제재 완화 내지는 더 나아가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과연 남북회담 이후에 요구될 단계는 어떤 것인지도 관심을 갖고 있다. 고위급회담이 테러지원국 명단제외에서 제동이 걸려있는 와중에 북한은 이보다 훨씬 비중있는 남북대화로 단계를 높였기 때문이다. hay@
  • 남북 정상회담/ 북·미회담 전망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곧이어 열릴 북·미 대화에도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미 행정부 주변의 분석이다. 미국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우선 북한이 그동안 한·미·일 3국이 적극적으로 벌여온 포용정책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남북 정상회담에 임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이탈리아를 비롯,필리핀·호주 등의 국가와 수교논의를 진행하는 한편 일본과는 9차례나 가는 수교회담을 진행하는 등 외교적 행동역량을증가시키고 있다.이런 자세 전환 분위기는 북한 내부에서도 한반도 냉전구도해체를 목표로 제시된 ‘페리 프로세스’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미국은 풀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부터 자리가 마련돼 수차례 회담이 진행된 북미회담도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분위기가 급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미국은 특히 한·미·일 3국이 긴밀히 공조해 이뤄온 포괄적 접근방안 구도하에 북한이 미·일 정부에 이어 한국정부와도 ‘긴밀한 대화’를 받아들인만큼 북미회담의 걸림돌이 되는 여러가지 난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지난달 뉴욕에서 성과 없이 헤어진 고위급인사 방미를 위한 절차 논의 재개와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위한 테러반대 성명 등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남북대화 분위기에 맞춰 행동의 제한선을 낮추고 있다는 것을 전망할 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정치권 일부에서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으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우호적 분위기는 던져줄 수 있지만 고위급회담 등 일련의 대미회담 성사를 위해 선뜻 한발 더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여기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남북대화 와중에 북일수교회담·북미고위급회담 등전방향으로 외교력을 쏟아부을 내부 여력이 있는지 아직 미지수”라면서 “일단 남북대화로 대화외교의 시작을 천명한 뒤 이 회담의 결과를 다른 국가와의 대화에도 적용하려 들 것”이라고 분석한다. 북·미 고위급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전제조건에 발이묶인 북한이 “고위급회담에 테러국가 꼬리를 달고 갈 이유가 없다”고 밝혔듯난제에 일단 휴식기를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선 남북 정상회담 자체가 갖는 우호적 의미가 큰 만큼 이를 북미회담이나 다른 회담의 전제요건으로 충족시키려 들 공산도 있다고 전망된다. 이 시점에서 북·미 고위급회담 등 북·미 대화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가제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남북관계 일지

    ▲72년 7월4일=7·4남북공동성명 발표▲72년 8월∼73년 7월=1∼7차 남북적십자회담▲81년 1월12일=전두환 대통령,정상회담 첫 공식 제의▲84년 11월∼85년 11월=1∼5차 남북경제회담▲85년 5월∼12월=8∼10차 남북적십자회담▲88년 2월25일=노태우 대통령,김일성과 대화 용의 표명▲90년 1월1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용의 표명▲90년 1월10일=노태우 대통령,남북한 통행 통신 통상협정 위한 정상회담 촉구▲90년 9월∼92년 9월=1∼8차 남북 고위급회담▲91년 12월13일=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92년 2월19일=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표▲93년 2월25일=김영삼 대통령,취임사에서 정상회담 추진 발표▲93년 5월25일=북한,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 교환 역제의▲94년 6월17일=김일성 주석,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평양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동의▲94년 6월28일=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부총리급 비공개 접촉▲94년 7월8일=김일성 주석 사망▲98년 2월25일=김대중 대통령,취임사에서 남북 최고 당국자간 회담 개최 제의▲98년 4월=1∼4차 남북당국 대표회담▲98년 8월31일=북한,대포동미사일 발사▲98년 11월18일=금광산관광 첫 출항▲99년 2월3일=북한,남북 고위급정치회담 제의▲99년 6월15일=서해교전▲99년 6∼7월=남북 차관급회의▲2000년 3월10일=김대중 대통령,베를린선언▲4월8일=남북 특사,베이징 접촉 통해 정상회담을 위한 합의서 서명▲4월10일=남북 정상회담 발표
  • 北홍성남 내각총리 “南北정상회담 전폭적 지지”

    북한의 홍성남 내각총리는 10일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데 대해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고 조선중앙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홍총리는 이날 김일성 주석 88회 생일행사로 열린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개막식에서 “지금 우리 인민들은 지난 4월 8일 북과 남 사이에 최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한데 대한 합의서를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고 있으며 수령님(김 주석)의 조국통일 유훈을 하루빨리 앞당겨 나갈 뜨거운 일념으로 불타고있다”고 밝혔다. 행사장에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각국 예술단,북한주재각국 외교관들이 참석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박재규 통일부장관, 판문점 방문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이 31일 판문점을 방문,돌아오지 않는 다리앞에서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방문은 지난해 12월 장관취임후첫 순시 성격을 띠고 있지만 총선후 남북관계에 커다란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기대속에서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박장관은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던 평화의 집 회담장을 둘러보고 당시 자리 배치,회담 진행상황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또 남북회담사무국 관계자가 남북적십자연락관 전화를 통해 북한에 직접 전화를 거는 모습도 지켜봤다.군사정전위 회담장,제3초소 등에선 북측지역을 바라보며 군관계자들로부터 “지난해 9월 북방한계선 무효선언이후 장성급 회담도 중단한 상태지만 북한군의 움직임은 예전과 다름없이 일상적”이란 설명도 들었다. 이날 판문점 방문에는 이우정·박종화 통일고문,강문규 민화협상임의장,송병준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장·홍성호 사무총장,한양수 민통 중앙협의회 의장,나종억 평통위원,이성림 한국예술문화단체 회장 등이 함께 참가했다. 판문점 이석우기자 swlee@
  • 새달 SOFA개정협의 재개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와 형사재판권 관련조항 개선 등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위한 협의를 다음달 말 서울에서 재개하기로 합의했다.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과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지난 18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회담에서 미국 고위급대표단이 4월말쯤 서울을방문,SOFA 개정 협상을 재개하는 등 두 나라는 수개월 안에 만족스러운 결론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 국방장관은 특히 서해 남북교전 1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보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한의 군사도발시 한·미 양국은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두 장관은 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베를린선언’,북·미 고위급회담과 북·일 수교교섭회담 추진 등 일부 긍정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고 보고 확고한 한·미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해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노주석기자 joo@
  • “北 잇단 외교행보 고립탈피 신호”

    북한이 잇따라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북한은 최근 이탈리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데 이어 일본과 호주,필리핀 및 유럽연합(EU)과도 수교를 위해 적극적인 접촉을 갖고 있다.오는 4월로 예정된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위한 마무리 협상도 진행중이다.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북한이 변하는 징조로 볼수 있을까.미국과 중국,일본,EU 등 관련국들의 반응과 입장을 진단해 본다. ◆미국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행정부는 최근 북한이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보이는 점을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고 조심스럽게 환영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금년들어 두드러진 북한의 변화조짐이 평양정권이 국제적 고립탈피 의지의 신호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은 유럽국가로서는 스웨덴,포르투갈,덴마크 및 오스트리아 다음의 다섯번째이자 서방 선진 7개국 그룹(G-7) 회원국으로서는 처음인 이탈리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데 이어 일본,호주,필리핀 및 유럽연합(EU)과의 수교를 추진중이다. 스탠리 로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지난 1월 “미국은 북한이 이탈리아 수교를 계기로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환영했다.최근 하원의 한 청문회에서는 러스트 데밍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직무대행이 “북한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아시아지역포럼(ARF)에 참가시키는 것이 매우 교육적이고 건설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는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및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에 토대를 둔 것이다. hay@◆일본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최근 북한의 변화 움직임을 긍정적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일본은 특히 북한의 이런 조짐을 한·미·일 3국간 긴밀한 대북 공조의 산물이라는 점을 평가하고 있다.일본은 북한의 국제사회 접근이 다음달 약 7년반만에 재개되는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일본은 그러나 앞으로 북한의 태도가 돌변할돌변할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고 있다.일본은 13일 베이징(北京)에서 제2차 적십자사 회담을 갖고 다음달 평양에서 국교정상화 본회담을 갖기로 했다.일본은 적지않은 변수를 안고 있는 수교 협상이 어느 정도 진척될 수 있을지는 북한이 어느 선까지 변화와 개방을 수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의 ‘대화와 억제’라는 대북 노선의 틀을 견지하면서한미 양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협상의 완급과 강약을 조절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사이키 아키다카(齊木昭隆) 내각 부대변인도 10일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한미일 3국이 공조해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도믿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 연합] 북한 외무상 백남순이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중국을 방문한다.백남순의 방중은 지난해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방중때 수행한데 이어 두번째이지만 최근 양국 관계가 비교적 가까워지는 가운데 나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1년도 안 돼 두번째로 이뤄지는 외무상의 방중에 앞서 북한 노동당 김정일 총비서가 극히 이례적으로 5일밤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것도 주목받았다.김정일의 대사관 방문은 2천년 새해를 맞이해 평양주재 중국대사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발표됐으나진정한 의도는 아직 정확하게 분석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브뤼셀 연합] 북한은 EU회원국 중 올해초 수교한 이탈리아를 포함해 6개국과 외교 관계를 갖고 있으나 나머지 9개국 및 EU와는 아직국교가 없다.EU와 북한은 그러나 지난 98년부터 수교를 염두에 둔 예비접촉으로 정치 대화를 시작해 두번의 대화를 가졌으며 식량등의 인도적 원조와농업기술 지원을 매개로 한 실무접촉을 확대하고 있다. EU는 원조 물품의 배분을 감독하고 농업기술 등을 지원할 소수의 요원들을평양에 상주시키고 있다.98년 말에는 유럽의회 대표단의 첫 북한 방문이 이뤄지고 이어 EU와 북한의 연락사무소 상호 교환 설치를 촉구하는 결의가 채택되기도 하는 등 유럽 의회와의 관계도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외교적 의미가 큰 EU와의 수교를 통해 고립을 벗어나고 원조 수혜확대를 노리며 수교를 적극 추구해왔다.EU는 북한에 대해 ▲인권 존중 ▲핵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중지 ▲ 남북한 관계 개선을 강력히 종용하고 있다.EU는 이같은 요구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을 확고히 갖고있다.북한과 EU 국가들과의 관계개선도 아직은 탐색차원이라고 할수있다.
  • [기고] 베를린 선언과 통일문제

    김대중 대통령이 9일 발표한 ‘베를린 선언’에 북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시되고 있다.남한뿐 아니라 한반도의 냉전구도 해체를 원하는 거의 모든나라들이 북의 긍정적인 수용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북한이 당면한 최우선과제는 안전보장과 파탄된 경제회복이며 나아가 민족의 지상과제인 평화통일이다.이 모든 것이 남측의 협조없이는 원활히 이뤄질 수 없다.북의 국가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에 있어 한국정부와의 관계증진이 필수 전제조건이다.북의 경제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 북·일수교와 이에 따른 경제적 보상도 한국의 적극적 참여와 대일 촉구없이는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 한국정부가 주장한 당사국인 한국정부를 앞지르거나 제외한 양국 관계의 진전을 반대해온 소위 ‘병행과 조화의 원칙’의 부정적 기능이 이를 잘보여주고 있다.물론 지금까지 북의 주장과 원칙으로 보아 이번 선언이 미흡한 점이 없지않다.선언은 ‘경제규모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크고 부유한 서독이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아직도 어려움이 있는데,그에 비해 한국경제는 북한을 떠안을 능력이 없다….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둔채 통일을 서두른다는 것은 무리이며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정책은 당장 통일을 추구하기 보다는 한반도에 상존하고 있는 상호위협을 해소하고 남북한이 화해·협력하며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것으로,통일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했다. 한편 북은 그동안 ‘남북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의 근본원인이 분단에 있고,분단상태가 종식되지 않는한 전쟁의 위협은 상존하며,국력의 낭비를 막고국제사회에서 떳떳이 역할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최 급선무’라고 주장해왔다.그리고 두개의 상이한 체제공존의 성공적인 예로 중국과 홍콩을 들었다.알려진 바와 같이,중국 본토와 홍콩 사이에는 이전과 다름없는 격리 경계구조가 그대로 있고 그 출입은 사증에 의하여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통일비용문제는 쌍방의 가능한 능력범위 내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자존심 강한 북이 통일 제안에 있어 낙후한 경제나 사회간접자본 비용을 남측이 부담해야 한다든지,단시일내로 남측과 동등한 생활수준으로 해줄 것을 요구한다든지 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있다. 김대통령은 95년 국가연합,연방,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론’을 발표하였다.그동안 예기치 않던 북의 가뭄,홍수,남의 IMF 사태 등이 있었다.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통일을 이루었다.신라의 통일이 그렇고,왕건의 고려통일이 그랬다.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있을 때 탁월한 지도자가 통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구체화하고 단결된 국민들을 분기시켜 민족의 역사적 소명을 달성할 것을 국민은믿고 기대한다. 지금은 국제화시대다.숙명적으로 가까운 이웃으로 싫든좋든 영원히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일본과 대등하게 교류한다는 것은 현재의 분단상태로는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면에서 기대하기 어렵다.편협한 국수 배타적인 민족주의가아니라 인구팽창,식량,자원부족 등의 준렬한 환경아래 타국에 의존하지 않고,떳떳이 살기 위해 통일은 기필코 달성되어야 한다.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했고 백남순 외무상의 중국방문이 18일로 예정돼있으며,가까운 시일내에 김 총비서의 중국방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북미고위급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이 뉴욕에서 진행되고 있으며,북일수교회담이 다음달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다.북한은 이탈리아와 수교했고,유럽연합,호주,필리핀,캐나다 등 서방국가와 외교 다변화,러시아와 관계회복 등 외교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는 무수한 외침에 저항한 끈질긴 투쟁의 역사이다.우리 조상들은 소의 꼬리로 안주하기 보다 작더라도 닭의 머리로 남기를 결심했다.정치는 타협이다.다소 미흡하더라도 대승적인 입장에서 북이 베를린선언을 수용하기 바란다.한반도 운명 개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타국이 아닌 우리 민족자체이기 때문이다. 손장래 前말레이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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