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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군사실무회담 8일 개최

    남북한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예비)회담을 오는 8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국방부는 1일 “북측이 오늘 오전 인민무력부장 명의의 전통문을 통해 ‘남북고위급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을 오는 8일 개최하자고 다시 수정 제의했다.”면서 “우리 측은 오늘 북측의 제의를 수용한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번 실무회담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령급 단장 외 2명의 실무자가 양측에서 각각 회담에 나서게 된다. 실무회담에서는 남북 고위급 회담의 회담 주체와 날짜, 장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논의하게 될 의제 등을 협의하게 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앞으로 실무회담 준비를 위한 절차가 남아 있다.”면서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0일 ‘1월 중 예비회담, 2월 초 고위급회담’을 내용으로 한 전통문을 우리 측에 보내왔지만 국방부는 엿새 뒤 오는 11일 예비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북측은 지난달 29일 다시 2월 1일 예비회담 개최를 제안했으며 우리 측은 11일을 고수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남북대화 ‘핑퐁게임’ 北 다음 수는?

    “진실의 순간이 왔다.” 남북이 새해 들어 당국 간 회담 개최 등 대화 재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당국자는 11일 현재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이 지난 5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에서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한 뒤 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에 이어 10일 통지문을 보내 당국 간 회담과 적십자회담 날짜까지 제의하자,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 도발 방지 확약,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당국 간 만남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남북이 각각 당국 간 대화의 필요성을 밝혔으나 내용이 전혀 달라 ‘핑퐁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북한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밝힌 당국 간 회담은 장관급회담 또는 금강산관광·개성공단 관련 회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대남기구인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제안할 사안이 아니다.”며 “장관급 등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려면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북측이 적십자·금강산관광 관련 회담을 계속 제의하는 것은 쌀·비료 등 경제지원과 원조를 받기 위한 것”이라며 “북측이 제안한 현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려면 천안함·연평도·비핵화 관련 책임과 진정성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남북공동체 기반조성사업’ 착수보고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천안함·연평도 도발 조치와 비핵화를 협의할 당국 간 만남과 적십자회담 등 인도적 사안에 대한 접근에 대해 “정부는 그것을 두 가지로 분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당국 간 회담의 의제를 구체화해 다시 제안하거나, 우리 측이 제시한 의제를 분리해 대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진의가 곧 드러날 것”이라며 “진정한 대화를 원하면 회담을 열어 모든 것을 협의하자는 식의 절충안을 가지고 나올 수도 있고, 남측을 비난하며 추가 도발로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12일부터 판문점 적십자 채널을 다시 개통하고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단했던 것을 재개하겠다는 것인데, 지난해 5·24조치 이후 경협협의사무소 업무가 없어 인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北 트위터의 허실/구본영 수석논설위원

    1990년대 초반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수행원으로부터 들은 비화다. 그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소속 북측 인사의 뜻밖의 언질에 놀랐다고 한다. “아들이 김책공대 약전(弱電·반도체를 가리키는 북한말)과를 다니는데 통일되면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떠보는 말을 들으면서다. 북측 핵심계층 인사가 체제의 앞날에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면 퍽 충격적이었을 법하다. 아울러 북한도 당시 IT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을 방증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북한이 IT 인력 육성에 전력투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때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우리측 경제인들에게 북측은 개성공단에 소비재 말고 첨단 IT 품목도 들어와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북한의 IT 진흥정책이 엉뚱한 부산물을 낳고 있는 것인가. 북한이 지난 12일 ‘uriminzok(우리민족)’이란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면서 대남 선전·선동 공세를 펴고 있다. 아직 치졸한 수준의 체제선전과 대남 비방에 그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부작용을 우려한 방송통신위원회가 북 트위터 접속 차단에 나섰다. 그러나 북 선전물은 해외에서 리트위트(퍼나르기)하거나, 페이스북을 활용한 우회로를 통해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해킹이나 인터넷, 혹은 트위터를 통한 북한의 대남 교란 역량은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북한의 IT산업 자체는 여전히 유치산업 단계다. 피폐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란 얘기다. 이런 괴리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그 답은 북한의 트위터 개설에 대한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조롱 섞인 환영 논평에서 짐작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당국의 트위터 가입을 환영한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트위터 가입도 허용할 준비가 돼 있느냐?”고 반문했다. 개방과 소통이 핵심인 트위터에 정작 북한주민들은 소외돼 있음을 꼬집은 셈이다. 사실 IT산업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은 쌍방향성과 망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다. 쌍방향성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망외부성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가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용자의 편익과 기업의 이익이 늘어남을 가리킨다. 북한이 정말 IT산업을 진흥시키려면 이같은 특성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북한당국은 진정한 체제 개방을 선택하지 않는 한 죽었다 깨도 IT산업을 진흥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광역단체장 프로필

    광역단체장 프로필

    ■ 오세훈 서울시장 최초의 40대 민선 시장… 창의행정 정평 스타 변호사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다가 16대 국회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환경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원희룡·남경필 의원과 함께 만든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 미래연대 대표를 지내며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정치개혁 입법을 주도했다. 17대 총선 직전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여전했고,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지방자치제 도입 뒤 최초의 40대 민선 시장이 됐다. 어린 시절 달동네인 삼양동 판자촌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 때문에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장기전세주택’(시프트)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시프트는 신청률만 100대1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어 일명 ‘오세훈 아파트’로 불린다. 서울시장 임기 동안 ‘디자인 서울’을 모토로 서울을 국제도시로 만드는 데 주력했다. 창조적인 리더십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허남식 부산시장 市政 30여년 경력 ‘소리없는 불도저’ 행정고시 19회 출신으로 1977년 사무관 시보로 부산시에서 공직의 첫 발을 내디딘 후 30년간 공무원 생활을 부산시청에서만 한 부산시 ‘터줏대감’이다. 온화한 성격에 겸손하면서도 조직을 위해서는 몸을 아끼지 않아 평소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우며 업무에 관한 한 철저하게 챙겨 까다로운 상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4년 6월 고(故) 안상영 시장의 유고로 인한 보궐선거 당시 부산시 정무부시장이었던 그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 행정부시장이었던 당시 오거돈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승리했고 2년여 만에 치른 리턴매치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좌우명은 호시우행(虎視牛行). 판단은 예리하게 하고 행동은 뚝심 있게 하겠다는 각오다. 언론에서 붙여준 ‘소리 없는 불도저’, ‘부지런한 마당발’이란 별명도 평소 그의 스타일을 짐작하게 해 준다. ■ 김범일 대구시장 전문성·친화력 강점인 정통관료형 1972년 행정고시 12회에 합격해 30년 이상을 총무처와 행정자치부 등에서 일했다. 정치인보다는 정통 관료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행정가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행정학 석사를 받는 등 이른바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부처 통폐합 등 구조조정 작업에 관여했다. 산림청장을 지냈으며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이후 대구 정무부시장직을 맡으며 대구로 돌아왔다. 부시장 재임 기간에 전문성과 친화력을 발휘했다는 평을 받았다. 대구 지역 공무원들을 상대로 공무원 특유의 무사안일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대구·경북(TK) 출신 관료들 사이에서 ‘영리한 TK’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민선 4기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 송영길 인천시장 노동현장 경험 풍부 386 대표주자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0년대 학생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386 국회의원이다. 배관용접공에서 건설 노동자, 택시 운전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 인천 지역에서 노동 현장을 경험했다.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에 소속돼 일하면서 노동인권변호사로서 노동현장을 지켰다. 정치에 본격 입문한 것은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계양강화갑 지구당위원장으로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맞붙은 안상수 한나라당 인천시장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이듬해 16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고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에 여러 차례 선정되며 실력을 과시했다. 우직하고 뚝심 있다는 평. ■ 강운태 광주시장 비엔날레 창설 주도한 ‘행정의 달인’ 전남 화순 출신의 강운태 광주시장 당선자는 내무부장관과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1972년 행정고시(11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영남 정권 아래 내무부 세정과장과 지방기획과장, 행정과장 등 20년 넘게 내무관료 생활을 했다. 행정가이면서도 문화행사를 지방자치에 접목시켜 주목받기도 했다. 1994년 관선 광주시장을 지내며 국제문화행사인 광주비엔날레를 창설해 지방문화상품의 세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광주 남구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다 낙선하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재기에 성공한 뒤 다시 광주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 염홍철 대전시장 대전엑스포 성공 주역 관선시장 출신 마지막 관선 대전시장과 민선3기 시장을 마친 뒤 4년 만에 민선 대전시장에 복귀했다. 정치학자 출신으로 베스트셀러 ‘제3세계 종속이론’ 저자이며 경남대·경희대 교수, 경남대 북한대학원장을 역임했다. 1988년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서 관계에 입문해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북한 대표들과 협상을 벌였고 국제의원연맹회의 참석차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93년 관선 대전시장에 취임, 대전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엑스포 시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5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2006년 대전시장에 재도전했지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대전은요?’ 한마디에 판세가 뒤집어지면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직원·시민들과 소주 폭탄주를 돌릴 정도로 소탈한 성품이다. ■ 박맹우 울산시장 세계인명사전 등재된 토박이 행정가 울산시장 3선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박 당선자는 울산 토박이로 울산시 기획실장과 내무국장, 건설교통국장, 울산 동구청장 권한 대행을 연임하며 울산 시정을 훤하게 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정고시 25회 출신으로 경남도에서 공직자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내무부 종합상황실장, 함안군수 등을 역임하며 20여년간을 지역 행정에 힘쏟았다. 행정실무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점은 큰 강점으로 꼽힌다. 공직생활 동안 한건주의식 보고 행태, 복지부동, 고압적인 대민자세 등을 없애는 데 노력했다. 주변으로부터 두터운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는 중평이다. 지난해 자치단체장으로는 드물게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 후’에 등재돼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 김문수 경기지사 노동운동가 출신 한나라당 대권 잠룡 1980년대 중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1971년 서울대 재학 당시 교련반대 시위로 제적당하기도 했다.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초대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내며 노동자 권익 향상에 힘을 기울였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좌파적 노동관’에서 선회했다. 1990년 창당한 민중당 후보로 1992년 14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15대 총선에 다시 도전해 국회에 입성했다. 홍준표 의원 등과 함께 ‘저격수’로 불리며 당내 입지를 넓혀 3선 의원의 경력을 쌓았다. 2006년 경기지사에 당선돼 기민하고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을 과시했다. 합리적이고 기민한 업무 스타일이 이명박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리틀 MB’로도 불린다. 줄곧 한나라당의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꼽히고 있다. ■ 이광재 강원지사 대표적 親盧… 2002대선 일등공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참모 출신이자 ‘386’의 선두주자로 대표적인 ‘친노(親) 인사’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기용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노 전 대통령의 캠프에서 기획팀장으로 맹활약,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 당선됐다.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전략기획위원장 등을 거쳐 18대 총선 때 통합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 4814만원을 선고받은 데 이어 징역 2년이 구형된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7월11일 열릴 예정이다. 법정 공방 과정에서 그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 이시종 충북지사 고학하며 행시 합격한 입신양명파 재선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 당선자는 충북 충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청주고를 거쳐 광부·참외장수·지게꾼 등을 하며 고학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행정고시에 합격, 충청북도 법무관으로 공무원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강원도 기획담당관, 내무부 행정관리담당관, 대통령 비서실,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1989년 충주시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쌓은 행정경험을 토대로 그는 1995년부터 내리 세 차례나 충주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제17대 총선 때 국회로 진출해 정계에 진출한 이 당선자는 18대 총선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국회의원 재임 기간 중 이 후보는 ‘일 잘하는 국회의원 톱 10’과 ‘베스트 국정감사 의원’,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베스트 5’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 안희정 충남지사 공직 맡지 못했던 盧 前대통령 왼팔 노무현 정부 시절 이광재 의원과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지칭될 만큼 노 전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면서도 정치자금과 관련해 사법처리를 받아 참여정부 5년 동안 아무런 공직을 맡지 못했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남대전고등학교 입학 5개월 만에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계엄사에 끌려가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려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1987년에는 고려대 애국학생회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9년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경선 캠프 행정지원팀장, 정무팀 팀장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쌓아 갔다. 지난 4월 18대 총선에서 공천심사위원회의 공천배제 기준에 따라 공천을 받지 못해 지지자들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김완주 전북지사 전주 달동네·한옥마을 정비로 유명 전북 임실 출신의 김완주 전북도지사 당선자는 27세에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관선 고창군수와 남원시장, 민선 2·3기 전주시장 등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유일의 열린우리당 광역단체장인 32대 전북도지사에 당선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학비를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1998년 전주시장 당선과 함께 4000여억원을 투입해 전주 지역의 달동네를 모두 없앴다. 한옥마을 재개발과 전주천 조성으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정부의 새만금 사업 지원에 대해 감사 편지를 청와대에 보냈다가 지역 정치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자 “전북을 잘살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진정성과 순수성을 이해해 달라.”며 정면 돌파하기도 했다. ■ 박준영 전남지사 J프로젝트 등 현안 주도한 DJ맨 박준영 전남지사 당선자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1999년 국민의 정부 공보수석과 2001년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대표적인 ‘DJ맨’이다. 김대중(DJ)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언론비서관(1급)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공보수석으로 발탁돼 2년4개월간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2001년 9월 국정홍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04년 박태영 전남지사의 자살로 그해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한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크게 뒤졌던 열세를 극복하고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이번 당선으로 3선에 성공했다. 도청 이전과 J프로젝트, F1대회, 기업유치 등 6년간 전남 도정을 이끌어 왔으며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2013년 순천국제정원박람회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 김관용 경북지사 포용력 갖춘 빈농출신 親朴도지사 40여년간 공직에 몸담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 빈농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홀로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살 때부터 교사로 근무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영남대를 졸업하고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국립중앙도서관, 병무청, 국세청, 청와대 민정비서실 등에 근무했다. 1994년부터 민선 1~3기 구미시장을 지낸 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4기 경북도지사에 당선됐다. 포용력과 서민적 친화력이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한·미 FTA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에서 시장을 지낸 만큼 친박(親朴)계로 분류된다. ■ 김두관 경남지사 이장출신 행자부 장관 ‘리틀 노무현’ 경남 남해의 이장·군수 출신으로 참여정부 출범 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된 입지전적 인물. 당시 학력과 경력 파괴의 상징으로서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오뚝이 같은 집념,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업무 스타일이 노 전 대통령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년 시절 재야단체인 민통련에서 활동하면서 구속된 전력이 있고 농민회와 민중의 당 활동을 거쳤다. 1995년 36세로 남해군수에 당선돼 전국 최연소 기초단체장이란 기록도 세웠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하동·남해 후보로 나섰으나 거푸 고배를 마셨다.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진입한 2006년에는 지역주의 타파와 지방분권을 주창하며 전국 정당화에 앞장섰다. ■ 우근민 제주지사 관·민선 통틀어 다섯번째 지사 기록 우근민 당선자는 6·2지방선거 승리로 관·민선 다섯 번째 제주지사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그는 지난 1991~1993년(27~28대)부터 1998년(32대)과 2002(33대)년까지 8년3개월 동안 제주지사를 역임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일찍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고학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친화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선 지사 시절 제주도개발특별법제정 갈등을 무난하게 극복했고 민선 임기 동안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드는 데 이바지해 도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2004년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했고 2006년 성희롱 파문으로 도지사 재임 중 다시 하차함으로써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지난 3월 제주지사 출마를 위해 민주당으로 복당했으나 여론의 반응이 악화돼 당 공천에서 배제됐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 황장엽 암살지시·천안함 침몰 배후설 北정찰총국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며 2명의 공작원을 남파한 곳으로 알려진 북한의 정찰총국은 대남·해외 공작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다. 특히 지난 6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 중인 북 관계자가 천안함 사건은 정찰총국의 작품이라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정찰총국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했다. ●軍정찰국·당35호실·작전부 통합 21일 안보 당국에 따르면 정찰총국은 지난해 2월 공작원 호송과 안내의 임무를 지닌 노동당 작전부, 대남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노동당 35호실,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산하의 군 정찰국 등 3개기관이 통폐합되면서 탄생했다. 인민무력부 산하 조직 형태이며, 대남 공작의 총본부로 불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보하는 체제로 운영된다. 산하 조직은 간첩 양성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1국, 암살·폭파·납치 등을 담당하는 2국, 공작장비 개발이 주 임무인 3국, 대남 및 해외정보 수집 등을 맡은 5국 등 모두 6개국으로 이뤄져 있다. ●간첩양성·암살 등 6개국 정찰총국의 책임자는 김 국방위원장의 3남 정은의 최측근이자 대남통으로 알려진 김영철 상장(우리 군의 중장급)이다. 당국에 따르면 그는 이번 황장엽 암살 계획 지령을 남파 공작원들에게 직접 하달했다. 김 상장은 지난 1990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의 북측 대표로 참석했으며 2006~2007년에는 남북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을 맡아 “북방한계선(NLL)은 강도가 그은 선”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정은 최측근 김영철 총책임자 정찰총국의 모태인 인민무력부 정찰국은 과거 잠수함정을 이용한 대남 침투 임무 등을 주로 수행하는 등 대남 공작을 일삼아 왔다. 정찰국 소속으로는 4개의 저격여단과 5개 정찰대대, 국군 월북자들로 구성된 907부대나 북한군 유일의 여군 특수 공작조가 편성돼 있는 38항공육전여단 등이 있다. 2006년 7월 방글라데시→태국→필리핀 등으로 국적 세탁을 하며 입국했다가 체포된 간첩 정경학의 경우 정찰총국 전신인 35호실 출신이었으며 ‘무하마드 깐수’로 유명한 위장간첩 정수일 사건도 35호실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6월 속초 유고급 잠수함 침투와 같은 해 12월 여수 반잠수정 침투, 1996년 9월 강릉 상어급 잠수함 침투,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1983년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 등도 정찰총국의 대표적인 대남 도발 행위로 꼽힌다. 때문에 이런 조직들을 하나로 거머쥔 김영철 상장 등은 지난달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직후부터 용의선상에 올랐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南, 대북관계 적극개선 필요”

    북·미 양자 대화가 이달 말쯤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많은 대북 전문가들은 북·미간 본격적 대화국면을 기회로 우리 정부도 좀더 적극적인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9일 “정부는 북핵 문제가 남북 당국간 회담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밝혔고, 북핵 해결 방안으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을 제시했기 때문에 6자회담에서 이방인이 아닌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이를 위해선 남북간 당국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간 고위급 회담, 6자회담 재개 수순으로 가야 하며 북·미 대화 이후 6자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남북은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북핵 문제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일단 북·미 양자대화가 실시되면 북핵 문제는 일부 요철이 생기더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간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6자회담에서 주도권을 쥐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북·미 대화 분위기에 떠밀려 정부가 구색 맞추기식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미 대화 분위기를 고려해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의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에 북·미 대화가 두 차례 이상 지속돼서는 곤란하다는 우리측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현대-北 5개항 합의] 南과 대화재개 원하는 北… 백두산·금강산 카드 활용

    [현대-北 5개항 합의] 南과 대화재개 원하는 北… 백두산·금강산 카드 활용

    현대그룹과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다섯 가지 교류사업에 합의한 것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물꼬가 될 수 있다. 합의 내용은 ▲비로봉 관광 개시를 포함한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이중 육로통행 및 체류 관련 제한 해제는 북측이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북측은 지난해 소위 ‘12·1조치’를 통해 남측 인사들이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육로통행하는 것을 제한했다. 체류도 쉽지 않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은 북측 당국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안들은 북측 당국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민간인 신분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개성관광이나 금강산 관광, 백두산 관광은 현대그룹 측과 관계가 있지만 남북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현대 측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안이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도 그렇고 현 회장도 17일 오후 귀환 회견을 통해 합의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후속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금강산 관광만 하더라도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된 이후 정부가 금강산 관광 중단을 선언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대와 북측의 합의만으론 해결될 수 없다. 북측이 당국 차원에서 논의했어야 할 사항들을 현대그룹과 합의한 것을 두고 모양새가 매우 어색하다는 평가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국간 합의가 필요한 영역까지 현대 측과 합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남북 현안 문제를 놓고 남한 정부와 당국간 대화 의사가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공을 우리 정부에 넘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남북 당국 간 합의가 필요한 사안을 현대와 합의한 것은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현대와 아·태평화위가 합의한 5개항의 내용을 보면 당장의 이행 여부보다는 양측이 해당 현안에 대해 해결의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 강조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공동보도문을 통해 발표된 남북 교류사업 관련 5개의 합의사안을 이행하려면 남북 당국 간 대화는 필수”라면서 “곧 남북 고위급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이 당국 간의 협의 사안을 경협 파트너인 현대 측과 합의한 것은 남측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북측이 현대와 합의한 내용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한 나머지 안들은 우리 정부에 대화 재개를 압박하는 성격이 있으며 이산가족 상봉 재개안은 남측이 북측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남북 당국 간의 대화 채널이 가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김 위원장은 현정은 회장이 남북 당국 간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면서 “당국 간에 협의해야 할 사안에 대해 권한이 없는 현대그룹과 합의한 것은 이들 내용에 대해 남측 정부와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전진? 후퇴? 한반도 새 기류 갈림길/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2009년 3월 한반도 지형이 변하고 있다. 북한 내부의 변화에서부터 동북아시아 국제관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새판 짜기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 출범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와 곧 구성될 북한의 김정일 3기 체제가 있다. 조만간 일본의 내각에도 변화가 예상되며 중국 역시 개방 이후 최대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 중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2년차를 맞아 통일부, 국가정보원 등의 수장을 교체하면서 심기일전 새로운 한반도 질서 개편에 대비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표류와 미사일 발사 움직임, 그리고 북쪽의 일방적인 기본합의서 파기와 남북관계 전면대결상태 선언 등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은 북한의 선택 여하에 따라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국의 신임 대북정책 고위대표인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가 중국, 일본, 한국을 순방 중에 있다. 보즈워스 특사의 직함이 말해 주듯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과감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중단된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고 검증문제를 포함하여 3단계 북핵폐기를 위한 본격적인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성 김 북핵특사가 새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서 핵문제 해결에 전념하는 한편 보즈워스 특사는 미사일문제를 비롯해 미국관계 정상화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의 전반적 개선을 위한 미국 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총괄 조정하게 된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간 고위급회담도 예상되고 있으며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등 포괄적인 해법이 제시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스마트파워 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채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미사일 발사 등 도발적인 위협을 지속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즈워스 특사의 행보를 보더라도 북한의 강경 모험주의 정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모든 남북간 합의 이행을 존중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북한의 선(先)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북한은 8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통해 김정일 3기체제를 출범시키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의 정지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즐겨 사용했지만 실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극적으로 정책 변화를 시도한 적이 많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심의 이반현상을 선군정치나 대남 적대시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광명성 2호 인공위성 발사체로 선전하는 은하 2호 로켓 발사 역시 주변국의 우려만 고조시킬 뿐 내부결속이나 체제정당성 확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2009년 봄 한반도에 새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반도 지형 변화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 냉전시대식 반목과 대결로 회귀할 것인지는 북한 지도부 선택에 달려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北 ‘核고집’에 기로선 6자회담

    북한이 지난 1∼3일 평양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북·미 회동에서 군부 관계자까지 참석,‘남북 동시 핵사찰’을 거듭 주장하며 북·미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또 90년대 초 이전 ‘과거핵’ 규명에 필요한 핵시설의 검증과 시료(샘플) 채취에 대한 미국측의 요구를 다시 거부하면서 주요 핵시설에 대한 ‘참관’ 수준의 방문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5일 6자회담에 정통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 체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한 것은 북측이 미국측이 제시한 검증 의정서에 합의하려면 남북 동시 사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 이견을 빚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협상에는 군부측 인사인 이찬복(상장)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표도 참석했다. 북한은 지난 7월 베이징 6자 수석대표회의에서도 한·미 등의 핵 검증체제 수립 요구에 남북 동시 사찰로 응수하다가 결국 언론 발표문에 검증 대상으로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서’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하는 데 성공했다. 북측은 또 지난 8월26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남조선과 그 주변에 미국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검증이 우리의 의무이행에 대한 검증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모든 핵시설·핵물질에 대한 접근과 시료 채취는 ‘강제사찰’인 만큼 민감시설을 관리하는 북한 군부가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이번 회동에서 군부가 직접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북측이 남북 동시 사찰을 요구하며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미 등 다른 참가국들의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그동안 군축회담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을 수 차례 요구해 왔다. 하지만 미국측은 군축회담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아니라 불가능하며 평화협정은 비핵화가 이뤄진 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북측 제안을 수용할지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힐 차관보가 지난 5월 북·미 싱가포르 회동에 이어 지난 7월 6자 수석대표회의, 최근 평양 북·미 회동까지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북측에 많은 제안을 했으나 결국 미국내 강경파와 협상파의 갈등만 야기해 6자회담이 북한에 끌려다니게 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향후 6자회담의 성패는 이달 중 이뤄질 북·미간 재접촉 및 6자 수석대표간 회동, 외무장관 등 고위급 협의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김정일 은둔/김인철 논설위원

    16년전인 1992년 2월18∼21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은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회담 3일째인 20일 오후 주석궁에서 열린 남측 대표단과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에서 김 주석의 목 뒤편 큰 혹을 남측 사진기자들이 정면으로 포착한 것.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던 김 주석의 신체적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데 대해 의전 실수가 아닌, 고도의 계산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3박4일간의 평양체류 중 TV방송에선 ‘할아버지 머리위에 흰서리가 내렸네’라는 노래가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김 주석의 노쇠함과 병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등 해석이 구구했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광명성 탄생하여 어느 덧 쉰돐인가…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1992년 2월16일 50회 생일을 맞은 김정일에 대한 ‘송시’의 일부다. 놀라운 것은 지은이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라는 사실이다.80살 고령의 아버지가 50살 아들의 생일에 송시를 지을 만큼 부자세습 구도가 확고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주석은 이듬해 8월 백두산밀영에 있는 이 송시비를 배경으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라고 말할 만큼 권력세습에 적극적이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지 18년이 흐른 1992년 아버지로부터 송시까지 받은 김정일은 그러나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에도 3년 이상이나 공석에 취임하지 않고 유훈통치를 했다. 혈연·부자세습의 공식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14일 군 제1319부대 시찰 이후 46일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후계문제가 관심사다. 김 주석 사망 때 부자세습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면, 이번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이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와 역설적이다. 후계구도와 관련, 세아들인 김정남(37)과 김정철(27)·김정운(25), 매제인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 등 3세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지난한 과정에 비춰볼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씨줄날줄] 김정일 은둔/김인철 논설위원

    16년전인 1992년 2월18∼21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은 깜짝 놀랄 만한 경험을 했다. 회담 3일째인 20일 오후 주석궁에서 열린 남측 대표단과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에서 김 주석의 목 뒤편 큰 혹을 남측 사진기자들이 정면으로 포착한 것.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던 김 주석의 신체적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데 대해 의전 실수가 아닌, 고도의 계산이 있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게다가 3박4일간의 평양체류 중 TV방송에선 ‘할아버지 머리위에 흰서리가 내렸네’라는 노래가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김 주석의 노쇠함과 병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임박했음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등 해석이 구구했다. “백두산 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광명성 탄생하여 어느 덧 쉰돐인가…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1992년 2월16일 50회 생일을 맞은 김정일에 대한 ‘송시’의 일부다. 놀라운 것은 지은이가 바로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이라는 사실이다.80살 고령의 아버지가 50살 아들의 생일에 송시를 지을 만큼 부자세습 구도가 확고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주석은 이듬해 8월 백두산밀영에 있는 이 송시비를 배경으로 강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김정일 동지의 영도를 잘 받들라는 의미라고 말할 만큼 권력세습에 적극적이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지 18년이 흐른 1992년 아버지로부터 송시까지 받은 김정일은 그러나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에도 3년 이상이나 공석에 취임하지 않고 유훈통치를 했다. 혈연·부자세습의 공식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14일 군 제1319부대 시찰 이후 46일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후계문제가 관심사다. 김 주석 사망 때 부자세습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면, 이번엔 후계구도의 불확실성이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와 역설적이다. 후계구도와 관련, 세아들인 김정남(37)과 김정철(27)·김정운(25), 매제인 장성택(62) 노동당 행정부장 등 3세대 세습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지난한 과정에 비춰볼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김인철 논설위원 ickim@seoul.co.kr
  • [부고] 한국인 기자 첫 김일성 주석 인터뷰

    [부고] 한국인 기자 첫 김일성 주석 인터뷰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과 미국에서 5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유에스 아시안뉴스’의 주필인 문명자(줄리 문)씨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78세. 문씨는 지난 1961년 초대 조선일보 주미특파원으로 워싱턴에 부임한 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MBC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다.40년 가까이 백악관을 출입했다. 73년 MBC 특파원 시절 보도통제 중이던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것과 관련, 중앙정보부의 체포를 피해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전두환정권 시절 한국 언론에서 문씨의 이름은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었다. 이후 미국 동료기자들과 함께 통신사인 ‘유에스 아시안뉴스’서비스를 만들어 국제정치담당 주필로 활동해왔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 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서방기자로는 처음으로 옌볜 지방을 취재했다.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방북취재를 시작한 이후 한국 출신 기자로는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서방 기자로는 유일하게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의 장례 전 기간을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취재기를 월간 ‘말’에 기고, 국내에 소개했다. 잦은 방북으로 그는 한때 한국의 정보기관으로부터 ‘친북인사’‘반한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99년 11월 고희를 맞아 출간한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내에 반향이 적지 않았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한 지 26년만에 귀국하기에 앞서 서울신문(당시 대한매일)에 회고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씨에 따르면 문씨는 소설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다. 문씨는 펄벅 여사와 함께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가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돼 펄벅 여사가 문씨의 안내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의 미국이름 줄리 문도 펄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문씨는 미국 여기자협회 회장과 미국 기자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발인은 25일 오후 8시 페어팩스 메모리얼에서 열린다. kmkim@seoul.co.kr
  • 사실관계 잘못 기술된 것만 40여곳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본문 내용 중 수십 곳에서 사실관계가 잘못 기술됐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주진오(상명대)·박찬승(한양대)·홍석률(성신여대)·이신철(성균관대) 교수가 발견한 오류만 40여곳에 이른다. ‘한국 근·현대사’는 ‘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로 망명한 후 일본 정부가 그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겨 오가사하라 섬으로 유폐했다.’고 적고 있지만 일본이 그를 섬으로 보낸 것은 김옥균이 ‘오사카 사건’이라고 불린 일본 대외 강경파들의 조선침공 작전에 가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진오 교수의 설명이다.또 이준 열사가 1895년에 독립협회에 가담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독립협회의 창립연도는 1896년이며 이준이 협회에 참여했다는 근거도 없다는 지적이다. 최익현이 1868년 대원군의 실정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됐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그가 상소를 올린 것은 1863년이라고 반박한다. 홍석률 교수는 ▲1978년 미·중 국교 정상화를 1972년으로 적은 점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은 별도의 조직임에도 만주군 장교 박정희를 ‘관동군 장교’로 표기한 점 ▲1973년 남북대화 단절 후 1992년까지 공식 접촉이 없었다고 기술해 1985년의 이산가족 상봉과 1990년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을 역사에서 삭제한 점 등을 대표적인 ‘팩트’ 오류로 꼽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북한 부문을 검토한 이신철 교수도 ‘북한에서는 의회나 법원도 김정일과 노동당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며 지시를 거부할 때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거나 ‘대부분의 탈북자는 자유로운 남한 사회에서 나름대로 꿈을 실현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등의 표현도 과장되고 왜곡된 서술이며 탈북자들의 현실을 간과한 주장이라고 밝혔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일성이 총리각하라 해 나도 주석각하 호칭”

    강영훈(87) 전 국무총리가 27일 자신의 80평생을 정리한 회고록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동아일보사)를 펴냈다. 평안북도 창성군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외교관이 되고 한 나라의 총리가 되기까지 개인의 성장과정과 1988∼1990년 총리를 지내며 남북고위급회담을 주도했던 뒷이야기 등을 담담한 어조로 되짚었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일화 한토막.“우리 국민감정을 고려해 나는 김 주석에 대한 호칭을 주석 또는 주석님 정도로 하고 각하란 호칭을 안 쓰기로 작심했다. 하지만 대화 도중에 김 주석이 뜻밖에도 내게 ‘강영훈 총리 각하’라고 하는 바람에 나도 ‘주석 각하’라는 호칭을 썼다. 상대가 그렇게 호탕하게 나오는데 나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옹졸한 처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육군사관학교 교장과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영 대사, 주 교황청 대사 등 화려한 경력을 거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담았다. 1987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 교황청 대사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강 전 총리 부부와 사진촬영을 하고 손을 꼭 잡아주던 당시를 그는 “그 손길에서 전해지는 성하의 따뜻하고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또 주영 대사 시절 만났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의친왕의 아들 이우 공의 비 박찬주 여사가 주는 느낌과 흡사해 부드러운 가운데서도 위엄있는 그런 모습이었다.”고 적고 있다. 영변 농업학교 3학년 시절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조선어독본’ 공부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계기로 민족의식을 깨우치고 부모 몰래 일본으로 유학을 감행했던 이야기,1990년 2차 남북고위급회담 마지막날 45년만에 누이동생과 조카를 만났던 감격스러운 순간에 대한 회고 등도 눈길을 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설] 북 연락사무소 거부 유감이다

    북한이 그제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고위급 연락사무소 서울·평양 설치 제안을 거부했다. 노동신문은 연락사무소 자체를 “반통일 골동품”이라고 규정했다. 노동당 기관지의 논평은 북한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남북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호기를 외면하는 꼴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북측의 반응은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다. 북측은 북·시리아 핵협력설이 터져나온 와중에도 최근 핵 신고와 관련, 미국 측과 방북 협의에 응했다. 남측 당국자 방북 불허 방침과는 대조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자세다. 노동신문이 ‘정치 몽유병 환자’라는 둥 이 대통령을 원색 비난한 것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 표시의 연상선상에 있는 셈이다. 북측이 연락사무소 거부 논리로 ‘분단 영구화’를 운위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서독은 1974년 상주 대표부라는 상시 대화채널을 확보한 끝에 결국 통일을 이룩했다. 남북이 고위급회담에서 1992년 설치에 합의한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그동안 전화통지문 전달 등 단순 연락 기능을 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남북한 최고지도자와 직접 통할 수 있는 인물을 책임자로 해 상시 대화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제안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질적 체제인 남북간 갈등은 당사자간 상시·정례 대화로 해소하는 게 쌍방에 이롭고 효율적이다. 북측이 통미봉남 전술을 접어야 할 이유다. 어떤 이유로든 대화 단절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청와대는 북측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의연한 자세를 취했다. 우리는 정부가 한발 더 나아가 물밑 대화채널을 가동해서라도 대화 재개의 이니셔티브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북 쌀 지원도 검토할 만한 카드란 얘기다.
  • [서울광장] 새 대북정책, 도그마를 경계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새 대북정책, 도그마를 경계해야/구본영 논설위원

    #장면1 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회담 때. 평양의 고려호텔에 머물던 남측 대표단 간부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억수같이 퍼붓는 소낙비를 맞으며 비옷도 입지 않은 채 북측 청소원이 호텔 앞을 쓸고 있었다. 이 간부가 나중에 북측 카운터파트에게 자신이 본 광경을 전하자 “매우 당성이 강한 동무”라며 표창해야겠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성과는 없더라도 지시가 떨어지면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경직적인 북한사회의 단면도다. #장면2 얼마 전 남북 군사실무회담장. 북측이 남쪽의 문산과 북쪽 봉동을 오가는 화물열차 운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즉 “화물도 없이 오갈 바에야 운행을 줄이는 게 낫다.”는 주장이었다. 이 화물열차 왕복은 남북정상간 10·4선언에 따라 지난해 12월 초 합의했다.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물류비가 적게 드는 차량을 이용하자 12량이나 되는 열차가 거의 매일 텅빈 채로 오가는 형편이었다. 결국 며칠 후 화물량에 따라 열차 수를 조정하기로 했다. 북측이 철도연결이란 상징성에만 집착하는 남측에 외려 한 수 가르쳐준 꼴이다. 시공을 달리하지만, 두 가지 삽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같다. 어떤 과제이든 거기에 너무 경직적으로 매달리면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치기 마련이란 뜻이다. 지난 몇년간의 대북 정책이 북한체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 것도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들이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남측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햇볕”이라며 6조∼9조원으로 비공식 추정되는 돈을 북측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북측이 군사력이란 갑옷을 벗으려는 조짐은 아직 없다. 북한이 핵실험이든 무엇을 하든, 남측이 유화적 자세로 일관하겠다는 데 북한지도부가 굳이 개혁·개방에 나서겠는가.60년 세습체제에서 누적된 온갖 모순이 외부세계란 거울을 통해 북한주민에게 되비칠 게 뻔한데…. 사실 세계사를 통틀어 강풍(채찍) 혹은 햇볕(당근)일변도 정책으로 평화를 일군 사례는 없다. 데탕트(해빙)를 추구하면서도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비 경쟁도 불사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강공이 결국 구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다. 서독도 동독에 대한 갖가지 지원을 했지만, 동독의 인권 개선과 양독 주민의 상호 방문 확대도 끊임없이 요구해 관철시키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정책이 돛을 올릴 참이다. 아직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과 같은 분명한 깃발은 들지 않았지만, 그런 유화일변도 정책과 결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대북 정책의 별칭은 짓지 않겠다지만,‘전략적 상호주의’니 ‘상호주의적 포용정책’이니 하는 수사에서 감지되는 기류다. 새 대북 정책이 성공하려면 기존 정책과 무조건 차별화하려고 들면서 또 다른 도그마에 빠져드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듯싶다. 북핵 실험 등으로 포용정책의 허점이 드러나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교류협력의 확대가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에 가장 유효한 대안의 하나라는 대의마저 부인할 순 없다. 폐기해야 할 것은 포용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지원 일변도로 가면 북한이 핵개발조차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경직된 사고다. 스포츠도 그렇듯이 상대가 있는 게임은 유연해야 한다. 북한을 통일 열차에 합류시키는 데도 강온과 완급의 조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경협 군사보장 합의

    국방장관회담 마지막 날인 29일 남북은 실무대표 접촉과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교류협력사업의 조속한 군사보장대책 수립,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가동,3차 국방장관회담 내년 개최 등 7조 21개항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최대 현안이었던 공동어로구역 위치에 대해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장성급회담에서 추후 협의키로 했다. 경협 군사보장과 관련, 양측은 다음달 11일 시작되는 문산∼봉동 철도화물 수송을 군사적으로 보장키로 합의하고,3통(통행·통신·통관) 해결을 위한 군사보장 합의서를 12월 초 실무회담에서 협의·채택하기로 했다. 북측 민간선박의 해주직항을 위한 통항절차·항로대 설정에 대해서도 후속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 직항로 개설을 위한 군사보장을 완결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해공동어로·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나머지 사업들에 대한 군사보장 문제는 별도의 실무회담으로 공을 넘겼다. 한편 군사당국간 협의채널로 차관급이 참여하는 군사공동위원회 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장성급을 정점으로 진행돼온 군사회담의 격이 한 단계 높아지게 됐다. 군사공동위는 지난 1992년 고위급회담에서 운영을 위한 부속합의서까지 채택됐지만 남북 관계가 냉각되면서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군사공동위가 가동되면 북측이 요구하는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문제와 함께 ▲대규모 부대이동·군사연습의 통보·통제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등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1992년 합의에서와 달리 북측이 이번엔 개최 주기 확정을 거부해 정례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어로구역 합의 실패로 2008년 6월까지 공동어로사업에 착수하겠다던 총리회담 합의는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은 “북측의 자세가 예상과 달리 소극적이었다.”면서 “남측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NLL 묵인이나 군사공동기구 상설화 같은 ‘유력카드’를 서둘러 소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평양 공동취재단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남북 총리회담] 김영일 “이장관과 손잡고 왔다”

    [남북 총리회담] 김영일 “이장관과 손잡고 왔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16년 전 고위급회담이 열렸던 곳이라 오늘 총리회담이 여기서 열리는 것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한덕수 국무총리) “이렇게 혈육의 정으로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김영일 북한 내각총리) 14일 남과 북의 총리가 월커힐 호텔, 같은 장소에서 16년 만에 만났다.1차 남북총리회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은 1991년 제5차 고위급회담이 열렸던 곳이다.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와 북측의 연형묵 총리가 ‘남북한 화해와 상호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을 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낮 12시쯤 호텔에 도착한 김 총리와 북측 대표 40여명은 한 총리의 환영을 받고 5분여간 환담을 나눴다. 건장한 체구의 김 총리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환담을 리드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장관 잡은 손 아직도 뜨거워” 앞서 김 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북측대표단 43명은 이날 오전 10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 직항로를 이용해 오전 11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차석대표 자격으로 공항에서 북측 대표단을 영접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이후 40여일 만에 그와 재회의 인사를 나눴다. 김 총리는 “북쪽에서 수뇌자회담을 하며 서너 번 만나고 비행장에서 보니 친척보다 더 가까운 혈육의 정을 느꼈다.”면서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차안에서 계속 이 장관의 손을 잡고 왔는데 얼마나 뜨거운지 아직도 안 식었다.”고 호감을 나타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진행된 대표단 전체회의에서는 이재정 장관의 파워포인트 브리핑이 화제가 됐다. 이 장관은 양측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이 끝난 후 약 10분 동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다섯 가지 분야에 대한 기본구상과 방향에 대해 파워포인트로 직접 설명을 했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아마 이제까지 560회가 넘는 남북간의 회담 가운데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자료를 설명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면서 “북측에 처음 소개된 내용이라 북측에서 어떤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16일 환송오찬 계획 환영 만찬에서도 남북 참석자들 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헤드테이블에 앉은 대통합민주신당 박병석 의원이 김영일 총리를 향해 “사진보다 젊어 보인다.”고 하자 한 총리가 “실제로 젊으시다.”고 거들어 한때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워커힐호텔 지하 2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는 내신 200여명, 외신 100여명의 기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취재경쟁을 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남북총리회담을 위해 방한 중인 김 내각총리를 청와대로 초청, 환송 오찬을 베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밝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남북 총리회담 14일 서울서

    남북 총리회담이 14일 서울에서 2박3일 일정으로 개막된다. 이번 회담은 지난 1992년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15년 만에 열리는 총리회담이자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이후 첫 총리회담이다. 이번 회담은 정상회담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 로드맵 수립을 위해 마련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남측 대표단과 김영일 내각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북측 대표단은 회담 첫날인 14일 오후 회담장인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간다.북측 대표단은 이날 오전 10시쯤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을 출발, 오전 11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에는 군 인사들이 빠짐으로써 경협 부문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남북은 회담에 앞서 열린 3차례의 예비접촉에서 핵심 의제로 다룬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선협력단지 건설 ▲철도·도로 개보수 ▲개성공단 활성화 ▲자원개발·환경보호·농업·보건협력 등 5개 분야를 놓고 이번 회담에서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새달 남북총리회담 어떻게

    [2007 남북정상선언] 새달 남북총리회담 어떻게

    남북 정상이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통해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하기로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은 선언문에 담긴 합의 이행을 점검하고, 보완하기 위한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총리가 머리를 맞대는 것은 1992년 8차고위급 회담이후 16년만이다. 그러나 과거 고위급회담이 남북정상의 대리회담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총리회담은 실무회담으로 장관급회담을 격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총리회담과 관련,“선언에 대한 실무적·구체적인 이행단계의 다양한 의제들이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경제특구 건설과 백두산 관광 실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주요 사항에 대해 관계부처 차원에서 논의된 사항을 매듭짓거나, 미진한 점에 대해 보완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회담 대표는 남측에선 한덕수 총리가, 북측에선 김영일 내각총리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경제정책 전문가라는 점이 이채롭다. 김영일 내각총리는 지난 2일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북한 핵심실세들 중 맨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맞았던 인물이다. 북한의 경제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이미 알려진 대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정부는 빠르면 5일 대책회의를 열어 이번 선언에 대한 범정부차원의 후속조치 및 점검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특히 선언과 관련,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제21조)에 따라 ‘합의서 체결 비준’에 관한 법적인 절차를 추진하고, 후속조치 중 중장기 사업은 같은 법률 제13조에 따른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에 반영해 국회에 보고한 후 추진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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