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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의 사전 통보 요청에도… 北 황강댐 무단 방류 정황

    정부의 사전 통보 요청에도… 北 황강댐 무단 방류 정황

    북한이 이번 장마철에도 또다시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황강댐 물을 방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북한에 남북 접경지역의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해 댐 방류 때 미리 통보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국 상업위성 업체 ‘플래닛랩스’가 지난 20일 촬영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북한 황강댐이 일부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위성사진에는 물이 댐에서 쏟아지면서 만들어 낸 물거품이 잡혔다. 통일부는 지난달 30일 북측에 댐 방류 시 미리 통보해 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북한이 이에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지난 17일 재차 통지문을 보내 요구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무단으로 댐 물을 방류한 것이다. 북한이 황강댐 물을 방류하면 경기도 연천의 군남댐이 위험하다. 남한의 군남댐보다 5배가 큰 북한의 황강댐의 물이 사전 통보 없이 물을 대량으로 방류할 경우 임진강 하류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 대화·협력 조직 통폐합하며 80명 감축 나선 통일부...“대화 포기 선언”

    대화·협력 조직 통폐합하며 80명 감축 나선 통일부...“대화 포기 선언”

    통일부가 남북 교류협력·대화 담당 조직을 통폐합하면서 정원의 15%인 80여명을 줄이는 조직개편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문승현 통일부 차관은 이날 통일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직개편을 통해 인원 (변화)도 산출됐다”며 “80명이 좀 넘는 선에서 인력 재편(축소)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교류협력국과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출입사무소, 남북회담본부 등 4개 조직을 국장급 1개 조직으로 통폐합을 추진한다.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를 담당하는 부서는 장관 직속으로 신설할 예정이다. 북한 인권과 정세분석 분야에선 외부 인력도 영입하기로 했다. 통일부 실장급 1급 공무원 6명은 사표를 제출했다. 문 차관은 “어느 정도 선에서 사직서를 수리할지는 장관과 잘 상의해 결정해나가겠다”고 했다. 통일부가 지난 4월에 이어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조직 개편에 나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지원부’ 지적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문 차관은 “남북 대화와 교류가 ‘제로’(0)인 상황을 반영해서 조직을 개편해 운영하겠지만 조직의 유연성, 효율성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통폐합하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선 정부조직법상 통일부의 역할인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부정하는 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평화 통일 구현의 책임이 있는 정부가 대화와 교류협력의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어렵다고 선언하는 것은 대화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취임사에서 “‘가치와 원칙’에 입각하여 통일‧대북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것이 한반도 문제를 가장 올바르게 풀어내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변화된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업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 이주, 아주 오래된 인종차별의 역사

    이주, 아주 오래된 인종차별의 역사

    이민, 이주 노동자, 난민은 민감하고 폭발력을 가진 이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정치 지형을 극우로 급격히 재편하는 불쏘시개가 ‘반(反)이민’ 광풍이다. 소설 ‘호모 파버’를 쓴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는 이주 정책 논고에서 ‘우리가 원한 건 일손이었는데 인간들이 왔다’는 표현으로 이주민을 대하는 도구적 관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실 인간은 어떤 포유류보다도 강력한 ‘이주 본능’을 탑재해 오랜 기간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다. 한곳에 ‘정주’(定住)하기 시작한 건 1만 2000년 전이고, 여권이 통용된 건 100여년쯤 됐다. 신간 ‘이주하는 인류’는 이런 이주의 역사를 살피면서 현대의 이주 논쟁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왜곡됐는지 들춘다. 유럽 이주사에 등장하는 영국 선박 ‘윈드러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1948년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처음으로 480명이 넘는 흑인을 본토로 데려온 이 배의 이름을 따 서인도제도의 초기 이주민들은 ‘윈드러시 세대’로 불렸다. 하지만 이 배의 원래 이름이 ‘몬테로사’였고, 1930년대 독일인 수만명을 남미로 실어 나른 이주민 수송선이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50년대 영국은 국외 이주자가 넘쳐났다. 10파운드를 내고 호주와 뉴질랜드로 이주한 영국(백)인 이민자 25만명을 가리키는 ‘텐 파운드폼’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다. 프랑스 역시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온 백인 이주 노동자 규모가 한때 북아프리카 무슬림 이주자보다 더 컸다. 그럼에도 백인 이주의 역사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백인의 ‘이주 기억상실증’으로 명명한다. 잊혀진 백인 이주의 역사 반대편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유색인종 이주사가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밀려든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대륙 횡단철도가 완성됐다. 하지만 철도 건설이 끝나자 중국인 노동자는 백인 이민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혔고, 미국은 1882년 중국인 이민금지법을 만들며 박해했다. 책은 차이나타운을 기존 도시 주거지에서 중국 이민자들을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별의 공간’으로 조명한다. 당시 영화와 TV 드라마에서는 변발 머리에 긴 수염을 가진 ‘푸 만추’라는 가공의 중국인 악당 시리즈가 인기를 끌며 대중에게 아시아 이민자를 잔인하고 교활한 이미지로 덧칠했다. 이주 노동력으로 전후 경제 재건을 한 유럽의 이민자들 역시 1973년 경제침체와 석유파동이 닥치자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주 노동자의 모습에서 왜 백인이 사라지고 저개발국가의 가난하고 피부색 짙은 유색인종만 남게 됐는지를 노예무역과 황색 위협, 유대인, 남북전쟁 등에 얽힌 이야기로 풀어낸다. 앞으로 반세기 동안 이주 현상이 파괴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책은 예고한다. 부자 나라들의 인구 노화로 노동력 부족을 메꾸려면 더 많은 이민자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이주 인구를 극적으로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엔은 지구 온도가 1도 오르면 10억명이 이동하고, 30년간 환경 이주민 규모가 15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인류의 대이동이 써 내려갈 역동적인 세계사는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 교황 “한반도 넘어 전 세계 화합의 미래 기대” 달라이 라마 “남북 평화·번영의 해결책 필요” [정전 70주년]

    교황 “한반도 넘어 전 세계 화합의 미래 기대” 달라이 라마 “남북 평화·번영의 해결책 필요” [정전 70주년]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은 27일 종교계에서는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바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전협정 기념이 적대 행위의 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참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 제시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모든 한국인을 격려한다고 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이날 오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참석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대독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이 방북 의지를 여러 경로로 반복해 전했다”면서 “북한의 공식 초청으로 교황이 북한 지역을 방문하게 될 날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7대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 해소와 평화 정착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정전 70년 한반도평화행동’은 이날 오전 10시 70년 전 정전협정 체결 시각에 맞춰 임진각 통일대교 바리케이드 앞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선언’을 발표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달라이 라마는 메시지에서 “남한과 북한의 새로운 세대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달려 있다”면서 “한반도의 모든 주민이 평화와 번영, 안전을 누릴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상호 수용 가능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제리 필레이 총무는 “미국, 일본, 남한, 북한 정부가 이 지역의 대결과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는 발언과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고,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 제리 필레이 WCC 총무 “한반도 평화 위해 기도”

    제리 필레이 WCC 총무 “한반도 평화 위해 기도”

    종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제리 필레이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했다. 필레이 총무는 27일 서한을 통해 “WCC는 갈등과 분열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불의한 세력에 맞서 언제 어디서나 정의를 옹호하고 평화를 이루는 역할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면서 “WCC를 비롯한 국제 에큐메니컬 네트워크가 여러분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지금도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전했다. 지난해 9월 독일 칼루스에서 열린 WCC 제11차 총회에서는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구축에 관한 의정서’가 채택됐다. 이를 통해 WCC는 회원 교회 및 국제기구들과 함께 정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활동에 대해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지난달에는 제69차 WCC 중앙위원회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성명’을 채택해 “전쟁이 중단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남북 관계를 보다 불안정하게 심화시키며 한반도의 현실적 측면에서도 건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레이 총무는 “WCC는 지난 40여년 동안 한반도의 화해와 분단된 한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향한 여정에 동참해 왔으며 도발과 대결이 아닌 대화와 만남,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남과 북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지해 왔다”면서 “여러분과 나누는 오늘의 이야기들 속에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연대의 힘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여러분의 숭고한 정의와 평화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 미력하나마 용기와 힘을 실어 보낸다.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장벽들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뜻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함께 나아가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 ‘정전협정 70주년’ 교황 “정전협정이 화합의 밝은 미래 제시할 것”

    ‘정전협정 70주년’ 교황 “정전협정이 화합의 밝은 미래 제시할 것”

    7대 종교 지도자 “남북 적극적 대화 촉구”달라이 라마 “한반도 평화가 세계의 평화”제리 필레이 “미·일·남·북, 군사적 행동 자제”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은 27일 종교계에서는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바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전협정 기념이 적대 행위의 중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참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화해, 형제애, 항구한 화합의 밝은 미래까지도 제시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모든 한국인을 격려한다고 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이날 오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에 참석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대독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이 방북 의지를 여러 경로로 반복해 전했다”면서 “북한의 공식 초청으로 교황이 북한 지역을 방문하게 될 날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7대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메시지를 통해 “남북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 해소와 평화 정착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행동’은 이날 오전 10시 70년 전 정전협정 체결 시각에 맞춰 임진각 통일대교 바리케이드 앞에서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선언’을 발표하고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달라이 라마는 메시지에서 “남한과 북한의 새로운 세대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이 달려 있다”면서 “한반도의 모든 주민이 평화와 번영, 안전을 누릴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상호 수용 가능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제리 필레이 총무는 “미국, 일본, 남한, 북한 정부가 이 지역의 대결과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는 발언과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고,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 김영호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불발…野 “유튜버로 돌아가라”

    김영호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불발…野 “유튜버로 돌아가라”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최종 불발됐다.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따르면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요청한 재송부 시한인 이날까지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에 대한 각 당의 찬반 입장을 모두 담은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자고 설득했지만, 민주당은 김 후보자의 ‘극우 대북관’, ‘자료 제출 부실’ 등을 이유로 임명 절차에 협조할 수 없다며 보고서 채택을 최종 거부했다. 민주당 외통위원 일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 21일 열린 인사청문회를 통해 부적격 인사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민주당 외통위 위원들은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대통령의 지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위원들은 김 후보자가 본인은 물론 배우자·직계비속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 제출까지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통일부 장관’에 대한 과욕을 버리고 ‘개인 유튜버’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국회가 재송부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도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다. 앞서 야당은 김 후보자가 ‘김정은 정권 타도’, ‘남북관계는 적대관계’ 등을 주장한 점을 들어 극우적 시각의 부적격 인물이라고 공세를 폈고, 여당은 국무위원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며 후보자를 옹호하고 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 북한에 몰래 경유 판매 시도…유류 수출입 업체 대표 구속

    북한에 몰래 경유 판매 시도…유류 수출입 업체 대표 구속

    국내 한 유류 수출입 업체 대표가 정부 허가 없이 북한에 선박용 경유를 몰래 수출하려다 적발됐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형사2부(정현주 부장검사)는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관세법 위반 등 혐의로 A씨를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브로커를 통해 상당한 양의 경유를 북한에 보내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남중국 해상에서 중국 선박과 접선한 뒤 북한 선박으로 이적하는 방식으로 경유를 공급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올해 초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의 연장선이다. 서해해경청 광역수사대는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총 35차례에 걸쳐 경유 1만8000t(시가 180억원 상당)을 북한에 공급한 혐의를 받는 브로커 B씨를 구속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유류 수출입 업체 대표 A씨를 추가로 구속했다. A씨는 경유 대금의 일부로 200만달러(25억원 상당)를 선금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가 받은 선금의 자금 출처 등을 추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 37년 ‘반짝’ 수나라 역사서 ‘수서(隋書)’ 13권 완간, 5년 만에 완역

    37년 ‘반짝’ 수나라 역사서 ‘수서(隋書)’ 13권 완간, 5년 만에 완역

    당나라 명재상 위징(魏徵)과 사학자 영호덕분(令狐德棻),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 등이 공동 저술한 ‘수서(隋書)’를 완역하는 작업이 5년 만에 마무리됐다. ‘수서’는 제기(帝紀) 5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50권 등 모두 85권으로 원고지 1만 4189매, 책으로 5944쪽에 이른다. 지식을만드는지식(대표 박영률)이 25일 13권째인 ‘수서 율력지(隋書 律曆志)’를 끝으로 완역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수서 완역 작업은 ‘사기’와 ‘한서’, ‘삼국지’에 이어 중국 정사 국내 번역 작업으로 네 번째다. 위진남북조 시대를 통일해 중국 고대사에 한 획을 그은 수나라, 특히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우리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나라의 역사서가 지어진 지 거의 1400년 만에 우리글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서’는 난세의 통일과 대제국 형성, 전쟁과 민란 등 왕조의 영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제기’는 편년체(編年體)로 쓰인 수나라 제왕들의 기록이다. ‘지’는 천문지, 율력지, 음악지, 지리지 등 정사에서 기록할 수 없는 부분을 담았다. 가장 분량이 많은 ‘열전’은 황제의 일가친척, 신하와 관련된 기록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행적과 성취를 다룬다. 특히 ‘고려전’을 들추면 수나라 조정의 고구려에 대한 입장과 인식,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 고구려·수 전쟁의 전개 양상, 전쟁 후의 상황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고구려 ·수 전쟁에서 중립을 천명한 신라의 외교정책도 눈길을 끈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등 고구려와 네 차례 맞붙은 전쟁 이야기 속에서 폭군으로 이름난 수 양제의 면모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드러나며 치세에 관한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운하 건설과 천문학 발전, 음악, 도량형, 예법 등 통일제국의 뼈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럼에도 수나라는 주변국과의 외교 실패, 양제의 오만과 독선에 기반한 치세, 고구려와의 무리한 전쟁 등 내우외환에 시달려 결국 패망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견줘 시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13권째 ‘수서 율력지’ 번역 작업은 특히 힘들었다. 일월식 시각, 동지 때 태양의 정확한 위치, 24절기의 해그림자 측정, 태양과 달 및 다섯 행성의 운동 등 고대 천문과 역법 관련 용어와 난해한 계산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소개로 역사 천문학을 연구하는 춘천교육대 과학교육과 이면우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오류를 수정하고 상세한 주석을 달았지만 여전히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남았다고 했다. 번역자 권용호 박사는 후학들의 질정에 맡긴다고 했다. 이번에 완역 작업을 마친 ‘수서’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교점본 중 ‘수서’와 한어대사전출판사본(漢語大詞典出版社本) ‘이십사사전역(二十四史全譯)’ 중 ‘수서’를 텍스트로 삼았다.한편 지만지는 ‘수서’ 완역 마무리에 발맞춰 권 박사가 집필한 ‘고구려와 수의 전쟁’을 함께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수서를 통해 보는 동북아 최대의 전쟁 이야기’라고 붙여져 있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612년의 2차 고구려·수 전쟁은 그 규모에서 동북아시아 최대의 전쟁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권 박사는 “수서를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고구려·수 전쟁 관련 사료를 틈틈이 모아 저술했다”고 말했다. 전쟁의 배경, 준비 과정과 진행 양상, 전쟁 이후의 상황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역사적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과 사실 묘사로 고구려·수 전쟁과 수나라의 흥망성쇠 요인을 상세히 짚어볼 수 있다고 지만지는 소개했다.
  • 역사 왜곡 논란 전라도천년사 정면 돌파한다

    역사 왜곡 논란 전라도천년사 정면 돌파한다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전라도 천년사’가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제작될 전망이다. 전라도천년사 편찬위원회는 27일 그간 접수된 공람 의견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공개 학술토론회를 거쳐 천년사 제작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라도 천년사 폐지 요구에 도민들의 판단을 얻어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편찬위에 따르면 지난 4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이의 신청을 받은 결과, 157건(73명)이 접수됐다. 접수된 의견은 대부분 마한 존속 시기와 가야사 관련 지명 사용 등 고대사에 집중됐다. 편찬위는 집필자의 답변을 정리해 내달 중 개별적으로 회신할 예정이다.특히, 편찬위는 접수된 의견 가운데 논란의 핵심 주제에 대해 공개 토론회를 열고 그 결과를 반영해 전라도 천년사 제작을 진행할 방침이다. 논란을 빚고 있는 분야는 백제와 마한, 백제와 가야, 동학농민운동 등이다. 토론회는 광주, 전북, 전남 등 3곳에서 공개 학술토론회를 개최한다. 1차 토론회는 오는 8월 3일 전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편찬위는 의견을 제출한 사람들이 이번 공개 토론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밟고 있다. 편찬위 관계자는 “공개 토론회를 진행하는 이유는 전라도 천년사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도민들에게 판단을 맡긴다는 취지”라며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학문적 토론에 기반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하고 의견 내용 중 공통된 주제를 중심으로 건전한 학문적 토론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바른역사시민연대·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광복회 광주지부 등은 지난 26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민사관이 녹아 있는 ‘전라도 천년사’ 34권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위탁사업을 한 편찬위원회는 국민과 호남인에게 사과하고 해산해야 한다”며 “발간 주체인 광주시·전남도·전북도는 해당 도서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라도 천년사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를 한반도 남부 경상도와 전라도에 있었다고 하거나 백제를 소국으로 만들고 백제의 담로(지방행정구역)였던 4∼5세기 야마토왜를 독립 국가로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편찬위위원회는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라도천년사는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아 2018년부터 5년 동안 광주시와 전라남북도가 213명의 집필진을 모아 34권으로 편찬한 역사책이다.
  • 서울과기대, ‘AI·Robot ICC 협의체 업무협약 확대 체결식’

    서울과기대, ‘AI·Robot ICC 협의체 업무협약 확대 체결식’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지난 13일 강원대, 경상국립대, 인천대, 연암공과대와 함께 라한셀렉트 경주호텔 컨벤션홀에서 ‘AI・Robot ICC 협의체(A·R·T) 업무협약 확대 체결식’을 개최했다고 27일 밝혔다. A·R·T(AI·Robot Technetsity)는 서울과기대를 비롯해 경상국립대, 인천대, 연암공대가 AI·Robot 분야 ICC를 중심으로 스타기업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체계 구축을 위해 지난 1월 출범했다.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글로벌 교육・연구 모델인 F1Tenth 프로그램, 지산학 연계 유료 재직자 교육 모델인 AI・Robot 전문가 유료 재직자 교육, 대학 간의 공동연구 모델인 대학연합형 산학공동기술개발과제 등을 운영했다. A·R·T는 일반대학(기술혁신형·수요맞춤형·기반구축형)-전문대학(수요맞춤형)이 참여하는 다각화된 공유·협업 모델로 주목받아 왔으며, 강원대의 참여를 통해 대한민국을 동(강원도), 서(인천), 남(경상남도), 북(서울·경기 북부)으로 연결하는 특화 분야 중심 전국적인 협력벨트를 구축하게 됐다. 특히, 서울 TP-서울과기대, 인천 TP-인천대, 강원 TP-강원대의 지리적 이점과 글로컬 예비지정대학인 강원대, 경상국립대, LG가 설립하고 지원하는 연암공대와의 공유·협업을 기반으로 지산학 공유·협업 생태계를 선도해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5개 대학은 지역혁신중심 산학협력체계의 핵심인 ‘지·산·학 협력 통합정보시스템 공동 구축 및 운영’, ‘스타기업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지산학 오픈 이노베이션 체계 구축 및 지원’ 등 7개 분야에 대해 상호협력하기로 했다. 박근 서울과기대 LINC 3.0 사업단장은 “이번 강원대의 합류는 A·R·T가 전국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AI·Robot 분야 지산학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신호탄이라고 여긴다”며 “5개의 지역별 대표 대학과의 공유협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신산업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 21일 동안 649㎜… 가장 센 장마였다

    충청 이남 지역에 기록적 폭우를 쏟아 낸 올여름 장마가 26일 끝났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렸고, 강수일수를 감안하면 가장 많은 비를 퍼부은 장마였다. 장마가 끝나면서 당분간 폭염과 소나기가 이어지겠다. 기상청은 지난 25일 제주도, 26일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끝났다고 밝혔다. 제주와 남부지방은 지난달 25일, 중부지방은 지난달 26일부터 장마가 시작된 뒤 약 31일 만이다. 다만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은 재분석을 거쳐 바뀔 수 있다. 비가 온 날에는 유독 거센 장맛비가 내린 게 올해 장마의 특징이다. 전날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648.7㎜로 집계됐다. 전국에 기상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역대 세 번째로 많았다. 1위인 2006년(706.0㎜)과 2위인 2020년(701.4㎜)의 ‘강수일수 대비 강수량’과 비교하면 올해가 30.6㎜로 더 많이 내렸다. 2006년과 2020년은 각각 26.1㎜와 24.4㎜였다. 올해 강수일수는 21.2일로 2006년 27.0일, 2020년 28.7일 대비 7일가량 적다. 지역별로는 남북으로 폭이 좁고 동서로 긴 정체전선이 오래 머무른 충청 이남 지역에서 타격이 컸다. 전라권은 강수량이 831.4㎜로 역대 가장 많은 장맛비가 내렸다. 경상권(613.5㎜)과 충청권(766.9㎜)은 각각 역대 두 번째, 세 번째로 많았다. 지난 13~18일 6일 동안 충북(390.5㎜), 충남(425.1㎜), 전북(429.3㎜)에는 1년 강수량의 30% 이상이 쏟아졌다. 기상청은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북서쪽으로 강하게 확장해 고온다습한 공기가 강하게 유입됐다”면서 “엘니뇨로 동태평양 수온이 높고 지구온난화로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까지 올라 대기에 열과 수증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날이 맑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기온이 상승하겠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름철 폭우가 끝난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끝난 8월 8일에 서울 곳곳이 침수 피해를 봤다. 당장 28일까지 일부 지역에는 호우특보가 내려질 만큼 강한 소나기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 ‘역대 세번째’ 장마 오늘 끝…찜통더위 시작

    ‘역대 세번째’ 장마 오늘 끝…찜통더위 시작

    충청 이남 지역에 기록적 폭우를 쏟아낸 올여름 장마가 26일 끝났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렸고, 강수일수를 감안하면 가장 많은 비를 퍼부은 장마였다. 장마가 끝나면서 당분간 폭염과 소나기가 이어지겠다. 기상청은 지난 25일 제주도, 26일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끝났다고 밝혔다. 제주와 남부지방은 지난달 25일, 중부지방은 지난달 26일부터 장마가 시작한 뒤 약 31일 만이다. 다만 장마 시작일과 종료일은 재분석을 거쳐 바뀔 수 있다. 비가 온 날에는 유독 거센 장맛비가 내린 게 올해 장마의 특징이다. 전날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648.7㎜로 집계됐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역대 세 번째로 많다. 1위인 2006년(706.0㎜)과 2위인 2020년(701.4㎜)의 ‘강수일수 대비 강수량’을 비교하면 올해가 30.6㎜으로 더 많이 내렸다. 2006년과 2020년은 각각 26.1㎜과 24.4㎜였다. 올해 강수일수는 21.2일로 2006년 27.0일, 2020년 28.7일 대비 7일가량 적다. 지역별로는 남북으로 폭이 좁고 동서로 긴 정체전선이 오래 머무른 충청 이남 지역에서 타격이 컸다. 전라권은 강수량이 831.4㎜로 역대 가장 많은 장맛비가 내렸다. 경상권(613.5㎜)과 충청권(766.9㎜)은 각각 역대 두 번째, 세 번째로 많았다. 지난 13~18일 6일 동안 충북(390.5㎜), 충남(425.1㎜), 전북(429.3㎜)에는 1년 강수량의 30% 이상 쏟아졌다. 기상청은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북서쪽으로 강하게 확장해 고온다습한 공기가 강하게 유입됐다”면서 “엘니뇨로 동태평양 수온이 높고 지구온난화로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까지 올라 대기에 열과 수증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당분간 날이 맑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기온이 상승하겠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름철 폭우가 끝난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끝난 8월 8일에 서울 곳곳이 침수 피해를 봤다. 당장 28일까지 일부 지역은 호우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강한 소나기가 예상된다.
  • 70년 전 비무장의 선 그은 ‘세 공간’… 남북 대치 최전선에 서다[정전협정 70주년]

    70년 전 비무장의 선 그은 ‘세 공간’… 남북 대치 최전선에 서다[정전협정 70주년]

    70년 전 정전협정은 6·25전쟁 휴전을 위해 남북 간 군사분계선(MDL)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설정했다. 정전협정 당시 뚜렷한 해상경계규정이 없었지만 이후 실질적 경계가 된 북방한계선(NLL)은 DMZ,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함께 70년간 남북 간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이 이어진 가운데 세 공간은 대치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1953년 7월 27일 이후 한반도에서 한국군 4268명과 미군 92명 등 총 4360명이 북한과의 충돌에서 희생됐고, 북측도 못지않은 전사자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은 결코 평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를 되새기게 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전협정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하기로 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바다 경계는 분쟁의 열점이 됐고 DMZ나 한강하구는 본래 기능이 왜곡됐다”며 “임시 방편으로 설정된 세 공간에 누적된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 DMZ도끼만행·목함지뢰 ‘일촉즉발’서판문점 남북미 대화의 장 역할도北 잇단 도발에 9·19 합의 기로에 DMZ는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MDL을 기준으로 남방·북방한계선 사이 폭 4㎞, 길이 155마일인 긴 띠 형태의 지역이다. 정전협정은 DMZ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했지만 휴전 직후부터 대치의 공간이 됐다. 1976년 유엔군사령부 소속 미군장교 2명이 북한에 의해 살해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2015년 목함 지뢰로 한국군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 등 우발적 충돌은 일촉즉발의 긴장을 불러왔다. DMZ 내 판문점은 2018년 1·2차 남북정상회담, 2019년 6·30 남북미 회동 등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화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특히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인 9·19군사합의는 정전협정의 비무장 취지를 되살리려는 취지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효력 정지의 갈림길에 있다. 9·19 합의에서 남북은 지상·해상 완충구역과 공중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고 DMZ 내 감시초소(GP) 200여개 가운데 22개를 철수했다. 그러나 합의 위반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무인기 도발 직후 다시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엔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DMZ 남측 지역은 유엔군사령부가 통제를 맡고 있어 한국 정부의 권한이 일부 제한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던 주한미군이 월북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한강하구 중립수역파주~강화 67㎞ 구간 DMZ 연장선 민간 선박 항행 대신 中불법 조업하노이 노딜에 공동이용 추진 멈춰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DMZ의 연장선으로 경기 파주시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67㎞ 구간이다. 정전협정은 유엔사 허가 없는 군용선박의 출입을 금지하고 무장하지 않은 민간 선박은 유엔사에 등록하도록 했다. 다만 실제 민간선박 항행 사례는 손에 꼽힌다. 오히려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에 나서면서 2016년 군·해경·유엔사가 공동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남북은 9·19 합의에 따라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을 위한 한강·임진강 하구 수로조사에 나섰고 정부는 2019년 초 남북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해도 제작까지 완료했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실제 성과에 이르진 못했다.북방한계선 NLL정전협정서 해상경계 합의 빠져北 지속적 무효 주장하며 선 넘어 천안함·연평도 포격 충돌 불씨로 정전협정은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남측 영토로 포함시켰지만 해상경계엔 합의하지 않으면서 충돌의 불씨가 됐다. NLL은 마크 클라크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서해와 동해상에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당시 북한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1973년에는 항행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등 NLL 무효를 주장해 왔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영해 기준으로 3해리(약 5.5㎞)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다 1970년대부터 12해리(약 22㎞)로 바뀐 것도 한 요인이 됐다. 북한은 1999년 1차 연평해전을 일으킨 직후 NLL 남쪽에 설정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했고 3년 뒤엔 NLL 이남에서 북측 공격으로 우리 군인 6명이 전사한 2차 연평해전이 발생했다. 북한은 2004년 서해 해상 경비계선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 이어졌다. 정부는 NLL이 실질적인 남북 간 경계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이 2020년 서해에서 실종된 공무원을 수색하는 우리 쪽에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무단 침범했다”고 경고하고 올해 4월 북한의 경비정 1척이 서해 NLL을 침범하는 등 긴장은 여전하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전협정은 각자의 영해를 존중하고 ‘공해자유의 원칙’에 따라 바다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으나 충돌이 발생하다 보니 선을 긋고 군사적 작전수역이 되어버렸다”며 “정전협정 취지대로 공동의 수역, 비무장 수역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서울·평양 50년 인연 석학 “한반도 평화, 국제 네트워크 필요”

    서울·평양 50년 인연 석학 “한반도 평화, 국제 네트워크 필요”

    몽골 외교관으로 평양과 서울에서 20여년을 근무하는 등 한반도와 50년 넘는 인연을 이어 온 바산자브 락바(76) 한반도평화통일연대 몽골포럼 사무총장은 25일 “당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지만 정세는 변하기 마련”이라며 통일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락바 사무총장은 몽골국립대를 졸업한 뒤 북한·몽골 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선발돼 김일성종합대에서 1972년부터 2년간 유학했고, 이후 평양의 몽골대사관에서 1982년까지 근무했다. 1997~2004년과 2006~2009년에는 서울의 몽골대사관에서 일했다. 몽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 전략연구원 고문을 지냈고, 2015년 ‘한반도평화통일연대 몽골 포럼’을 창설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은 체제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지니까 통일정책 자체를 포기했다. 한국도 갈수록 통일에 무관심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신냉전 구도와 맞물려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동북아, 나아가 세계평화의 시금석”이라고 밝혔다. 락바 사무총장은 “남북 관계가 경색됐을 때는 민간 교류가 더 중요하다”면서 “남북뿐 아니라 몽골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북은 냉전 종식 때 결정적 기회를 한 번 놓쳤다”면서 “확실한 미래 전략을 갖고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몽골 모두 지정학적으로 취약하다”면서 “특히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의 외교정책은 기민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국익 중심으로 전략을 세우고 정세 변화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단독] 파묻힌 전쟁의 아픔, 끝까지 기억하다[정전협정 70주년]

    [단독] 파묻힌 전쟁의 아픔, 끝까지 기억하다[정전협정 70주년]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에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35도를 훌쩍 넘는 폭염 속에서 경사가 족히 45도는 넘을 것 같은 가파른 언덕을 넘자 이번엔 피가 거꾸로 쏠릴 것 같은 아찔한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롤러코스터 같은 보급로를 따라 지난 20일 강원 철원군의 820고지 7사단 중대본부에 도착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빽빽한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강원 철원, 화천군 일대를 가로지르는 철책과 점점이 자리잡은 남측 일반전초기지(GOP), 불과 4㎞ 북쪽 울창한 숲에 북쪽 초소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비로소 이곳이 70년 전 최대 격전지인 백암산 전투 현장이고 전쟁의 참상을 담은 국민가곡 ‘비목’(碑木)의 모티브가 됐던 장소란 걸 체감할 수 있었다. 70년째 끝나지 않은 전쟁의 참상과 아득하기만 한 평화를 향한 염원이 축약된 공간이다. “전망이 좋은 곳일수록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열한 전투는 곧 수많은 전사자와 실종자를 의미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안순찬 팀장은 “혹서기에 잠시 중단됐던 백암산 일대 유해발굴사업을 다음달부터 재개한다”면서 “이 부근은 정전협정 체결 직전 사실상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2007년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창설된 국유단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국군전사자 유해 1만 1000여구를 발굴했다. 백암산 전투는 정전협정 조인 직전인 1953년 7월 14~18일 화천군 북쪽 백암산 부근에서 벌어졌다.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한 뼘이라도 더 땅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 공세에 나선 중공군 제60군이 백암산 일대를 점령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육군 제5사단이 반격에 나섰지만 험난한 지형과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이 지체되자 제6사단 7연대가 5사단에 배속돼 백암산을 우회해 북쪽으로 진출한 뒤 정상을 탈환했고 이어 철원군 내성동리와 등대리 방면으로 전진해 금성천~북한강 방어선을 확보했다. 이 방어선이 그대로 군사분계선이 되면서 당시 방어선을 따라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70년째 이어지고 있다.당시 제5사단은 중공군 3761명을 사살했지만 우리 측 570여명이 전사 또는 실종됐다. 수많은 유해가 수십 년 동안 제대로 수습이 안 된 채 방치됐다. 1960년대 백암산 일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한명희 작사가가 ‘비목’의 가사를 쓴 계기 역시 무명용사 무덤에 나무만 세워 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창용 조사담당은 “인근 주민의 증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전쟁 직후 전사자들 시신을 모아 태우는 일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서럽게 울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 할아버지가 증언했던 곳에서 실제 유해를 찾아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해발굴은 한국과 미국, 중국 측 자료를 교차 검증하는 문헌조사에서 시작한다.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 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 당시 지도와 대조하며 현장을 답사하는 현장조사까지 거친 뒤 구체적인 발굴지역을 선정한다. 1년에 8개월가량이 출장인 데다 여비 규정상 출장비 지급기준이 5만원(시도 기준)에 불과해 자비로 밥을 사 먹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건 “선배 전우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유해발굴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안 팀장은 부사관으로 근무할 당시 우연히 유해발굴사업을 알게 된 뒤 “군인으로서 보람 있겠다”는 생각에, 신진욱 조사담당은 대위 전역 뒤 민간기업에서 일하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소명감 때문에 자원했다.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지난해 합류한 ‘막내’ 이 조사담당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할 당시 중국군 유해 송환 버스를 운전했던 인연이 있다. 국유단 관계자들은 “비무장지대(DMZ) 남북공동 유해발굴이 하루빨리 재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DMZ 유해발굴사업은 2018년 남북 9·19군사합의로 2019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실시됐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는 백마고지에서 진행했지만 올 들어 잠정 중단됐다.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현장에서 이끌었던 경험이 있는 안 팀장은 “DMZ에 묻힌 국군 전사자 유해는 1만여구로 추정된다”면서 “DMZ는 인위적인 훼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해발굴에 성과가 더 클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유해가 70년이나 되면서 훼손이 많이 진행됐다. 더 늦기 전에 남과 북, 거기에 미국까지 함께 공동으로 DMZ 유해발굴사업을 해서 유족들 품으로 되돌려 보내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70년 전 비무장의 선 그은 ‘세 공간’...남북 대치 최전선에 서다

    70년 전 비무장의 선 그은 ‘세 공간’...남북 대치 최전선에 서다

    70년 전 정전협정은 6·25전쟁 휴전을 위해 남북 간 군사분계선(MDL)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설정했다. 정전협정 당시 뚜렷한 해상경계규정이 없었지만 이후 실질적 경계가 된 북방한계선(NLL)은 DMZ, 한강하구 중립수역과 함께 70년간 남북 간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이 이어진 가운데 세 공간은 대치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1953년 7월 27일 이후 한반도에서 한국군 4268명과 미군 92명 등 총 4360명이 북한과의 충돌에서 희생됐고, 북측도 못지않은 전사자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은 결코 평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를 되새기게 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전협정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하기로 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바다 경계는 분쟁의 열점이 됐고 DMZ나 한강하구는 본래 기능이 왜곡됐다”며 “임시 방편으로 설정된 세 공간에 누적된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DMZ는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MDL을 기준으로 남방·북방한계선 사이 폭 4㎞, 길이 155마일인 긴 띠 형태의 지역이다. 정전협정은 DMZ에서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했지만 휴전 직후부터 대치의 공간이 됐다. 1976년 유엔군사령부 소속 미군장교 2명이 북한에 의해 살해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2015년 목함 지뢰로 한국군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 등 우발적 충돌은 일촉즉발의 긴장을 불러왔다. DMZ 내 판문점은 2018년 1·2차 남북정상회담, 2019년 6·30 남북미 회동 등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화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특히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인 9·19군사합의는 정전협정의 비무장 취지를 되살리려는 취지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효력 정지의 갈림길에 있다. 9·19 합의에서 남북은 지상·해상 완충구역과 공중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고 DMZ 내 감시초소(GP) 200여개 가운데 22개를 철수했다. 그러나 합의 위반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무인기 도발 직후 다시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엔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DMZ 남측 지역은 정전협정상 유엔군사령부가 통제를 맡고 있어 한국 정부의 권한이 일부 제한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던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이 월북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한강하구 중립수역은 DMZ의 연장선으로 경기 파주시 만우리에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67㎞ 구간이다. 정전협정은 유엔사 허가 없는 군용선박의 출입을 금지하고 무장하지 않은 민간 선박은 유엔사에 등록하도록 했다. 다만 실제 민간선박 항행 사례는 손에 꼽힌다. 오히려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에 나서면서 2016년 군·해경·유엔사가 공동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을 위한 한강·임진강 하구 수로조사에 나섰고 정부는 2019년 초 남북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해도 제작까지 완료했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실제 성과에 이르진 못했다. 정전협정은 백령도 등 서해 5도를 남측 영토로 포함시켰지만 해상경계엔 합의하지 않으면서 충돌의 불씨가 됐다. NLL은 마크 클라크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서해와 동해상에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당시 북한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1973년에는 항행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등 NLL 무효를 주장해 왔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영해 기준으로 3해리(약 5.5㎞)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다 1970년대부터 12해리(약 22㎞)로 바뀐 것도 한 요인이 됐다.북한은 1999년 1차 연평해전을 일으킨 직후 NLL 남쪽에 설정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했고 3년 뒤엔 NLL 이남에서 북측 공격으로 우리 군인 6명이 전사한 2차 연평해전이 발생했다. 북한은 2004년 서해 해상 경비계선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 이어졌다. 정부는 NLL이 실질적인 남북 간 경계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이 2020년 서해에서 실종된 공무원을 수색하는 우리 쪽에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무단 침범했다”고 경고하고 올해 4월 북한의 경비정 1척이 서해 NLL을 침범하는 등 긴장은 여전하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전협정은 각자의 영해를 존중하고 ‘공해자유의 원칙’에 따라 바다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으나 충돌이 발생하다 보니 선을 긋고 군사적 작전수역이 되어버렸다”며 “정전협정 취지대로 공동의 수역, 비무장 수역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정전70주년] ‘비목(碑木)’ 모티브 됐던 6·25 격전지에서 되새기는 오늘, 정전 70주년의 의미를 묻다

    [정전70주년] ‘비목(碑木)’ 모티브 됐던 6·25 격전지에서 되새기는 오늘, 정전 70주년의 의미를 묻다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에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35도를 훌쩍 넘는 폭염 속에서 족히 45도는 넘을 것 같은 가파른 언덕을 넘자 이번엔 피가 거꾸로 쏠릴 것 같은 아찔한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롤러코스터같은 보급로를 따라 지난 20일 강원 철원군의 820고지 7사단 중대본부에 도착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빽빽한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강원 철원, 화천군 일대를 가로지르는 철책과 점점이 자리잡은 남측 일반전초기지(GOP), 불과 4㎞ 북쪽 울창한 숲에 북쪽 초소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곳이 70년 전 최대 격전지인 백암산 전투 현장이고, 전쟁 참상을 담은 국민가곡 ‘비목’(碑木)의 모티브가 됐던 장소란 걸 체감할 수 있었다. 70년째 끝나지 않은 전쟁의 참상과 아득하기만 한 평화를 향한 염원이 축약된 공간이다. “전망이 좋은 곳일수록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열한 전투는 곧 수많은 전사자와 실종자를 의미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안순찬 팀장은 “혹서기에 잠시 중단됐던 백암산 일대 유해발굴사업을 다음달부터 재개한다”면서 “이 부근은 정전협정 체결 직전 사실상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2007년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창설된 국유단은 6·25 전사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국군전사자 약 1만 1000여구를 발굴했다. 백암산 전투는 정전협정 조인 직전인 1953년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강원 화천군 북쪽 백암산 부근에서 벌어졌다.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마지막 공세에 나선 중공군 제60군이 백암산 일대를 점령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육군 제5사단이 반격에 나섰지만 험난한 지형과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공격이 지체되자 제6사단 7연대가 5사단에 배속돼 백암산을 우회해 북쪽으로 진출한 뒤 정상을 탈환했고, 이어 철원군 내성동리와 등대리 방면으로 전진해 금성천-북한강 방어선을 확보했다. 이 방어선이 그대로 군사분계선이 되면서 당시 방어선을 따라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당시 제5사단은 중공군 3761명을 사살했지만 우리 측 570여명이 전사 또는 실종됐다. 수많은 유해가 수십년 동안 제대로 수습이 안된 채 방치됐다. 1960년대 백암산 일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한명희 작사가가 ‘비목’의 가사를 쓴 계기 역시 무명용사 무덤에 이름도 없이 나무만 세워둔 모습이었다고 한다. 신진욱 조사담당은 “인근 주민 증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전쟁 직후 전사자들 시신을 모아 태우는 일을 했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서럽게 울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 할아버지가 증언했던 곳에서 실제 유해를 찾아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해발굴은 한국과 미국, 중국측 자료를 교차검증하는 문헌조사에서 시작한다.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 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전쟁 당시 지도와 대조하며 현장을 답사하는 현장조사까지 거친 뒤 구체적인 발굴지역을 선정한다. 1년에 8개월 가량이 출장인데다 여비규정상 출장비 지급기준이 5만원(시도 기준)에 불과해 자비로 밥을 사먹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들을 움직이는 건 “선배 전우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유해발굴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안 팀장은 부사관으로 근무할 당시 우연히 유해발굴사업을 알게 된 뒤 “군인으로서 보람있겠다”는 생각에, 신 조사담당은 대위 전역 뒤 민간기업에서 일하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소명감 때문”에 자원했다.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지난해 합류한 ‘막내’ 이창용 조사담당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할 당시 중국군 유해 송환 버스를 운전했던 인연이 있다. 국유단 관계자들은 “비무장지대(DMZ) 남북공동 유해발굴이 하루빨리 재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DMZ 유해발굴사업은 2018년 남북 9·19군사합의로 2019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서 실시됐다. 2021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는 백마고지에서 진행했지만 올들어 잠정 중단됐다.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현장에서 이끌었던 경험이 있는 안 팀장은 “DMZ에 묻힌 국군 전사자 유해는 1만여구로 추정된다”면서 “DMZ는 인위적인 훼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해발굴에 성과가 더 클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유해가 70년이나 되면서 훼손이 많이 진행됐다. 더 늦기 전에 남과 북, 거기에 미국까지 함께 공동으로 DMZ 유해발굴사업을 해서 유족들 품으로 되돌려 보내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정전70주년] 남북과 50년 인연 몽골인 석학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의 길

    [정전70주년] 남북과 50년 인연 몽골인 석학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의 길

    “한국이 명확한 전략과 기민한 전술로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주도하길 바랍니다.” 몽골 외교관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20년 근무하는 등 한반도와 50년 넘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바산자브 락바(76) 전 몽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연구원 고문은 25일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당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세는 변하기 마련”이라며 한국의 적극적인 전략 수립과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락바 전 고문은 1974년부터 1982년까진 주북몽골대사관에서, 1997~2004년과 2006~2009년에는 주한몽골대사관에서 근무했다. 2015년에 ‘한반도평화통일연대 몽골 포럼’을 창설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무엇이었나. “몽골국립대 어문학과를 1970년에 졸업한 뒤 외국학생들에게 몽골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 1972년에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평양에 가게 됐다. 외국에 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호기심으로 지원했다. 사실 몽골과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 진영이라곤 하지만 몽골은 소련에 좀 더 가깝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강조하다보니 교류가 그렇게 활발하진 않았다. 유학생도 몇년에 한번씩 몇명씩만 교류하는 정도였다. 원래대로라면 김일성대에서 4년을 공부해야 했겠지만 당시 몽골 정부에서 ‘언어만 배우면 된다, 주체사상 배울 것 없다’고 해서 2년 과정이 됐다.” -평양에서 근무할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두 번 만나봤다. 조선노동당 당대회에 몽골대표단으로 갔을 때, 몽골대사가 신임장을 받을 때 배석했다. 당대회에선 미리 준비한 연설문도 없이 연설을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신임장 받는 자리에선 몽골 대사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1950년대 몽골에 간 적이 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지요?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고 했다. 당시 몽골 국회의장과 친하다며 안부 전해달라고도 했다.” -평양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일성대 시절엔 말 그대로 공부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외국인 기숙사에서 유학생들끼리만 어울려야 했고 학교밖 외출도 쉽지 않았다. 기숙사에는 ‘동숙생’이라고 북한 학생이 있었는데 맥주를 몇 병씩 사다준다거나 해서 소소하게 챙겨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대사관 근무할 때도 평양 바깥으로 가려면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동반 행사는 많았다. 금강산 묘향산은 지금도 기억난다.” -직접 겪어본 남북을 비교한다면. “남북 일반인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남북 모두 부지런한 것도 그렇고, 같은 민족이라는 건 숨길 수가 없다. 다만 사회체제가 다르니까 격차가 커지는 게 안타깝다. 1970년대만 해도 이북이 더 잘 살았는데 지금은 남북 경제력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가 됐다. 북한이 문을 닫아걸고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가는 게 안타깝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76년에 판문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직전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했다. 1990년대 주한몽골대사관에서 일하면서 판문점 남측 구역도 가봤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한반도 문제는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시금석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진다. 북한은 사실상 통일정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해는 간다. 남북한 경쟁 자체가 안되니까 통일을 하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한국 역시 통일 자체에 무관심한 것 같다. 남북 긴장 악화가 신냉전 구도와 맞물리면서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정세는 언젠가 달라지게 돼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갈 순 없다. 국익을 중심으로 전략을 명확히 세우고 그걸 바탕으로 정세 변화에 맞춰 전술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 남북통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남북은 냉전 종식 당시 결정적인 기회를 한 번 놓쳤다. 만약 확실한 국가 미래전략을 갖고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지정학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몽골은 꽤 유사하다.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작은 나라의 외교정책은 기민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 “정부 간 관계가 경색됐을 때는 민간차원의 교류가 더 중요하다. 남북한 뿐 아니라 몽골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런 토대를 꾸준히 만들어가야만 국제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몽골에서도 중국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 2016년 11월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하자 중국이 몽골에 경제제재를 했는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국이 당한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몽골은 인구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 신자다. 달라이 라마는 사회주의 시절인 1979년 몽골을 처음 찾았고, 2016년은 아홉번째 방문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무역은 물론 인적교류까지 끊어버리는 국경봉쇄로 몽골을 압박했다. 결국 2017년 2월 외교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몽골의 국가전략은. “사회주의 시절엔 사실 소련 따라하기밖에 없었다. 당초 중국공산당이 몽골을 중국 일부로 간주했기 때문에 소련의 지원이 절실했다. 몽골 남부엔 소련군이 주둔했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국가외교전략을 새롭게 정립했다.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몽 관계 역시 2021년에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 美 “北 응답 안해…유엔사 받은 답변은 글쎄…”

    美 “北 응답 안해…유엔사 받은 답변은 글쎄…”

    북한이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23) 이등병 월북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연락에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밝혔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과 어떤 실질적인 소통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킹 이등병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의 안전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북한을 접촉해왔지만,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군사령부(UNC)가 공동경비구역(JSA)에 설치된 소통 라인을 통해 북한군과 대화를 시작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지난주 이후 (북한과) 새로운 연락은 없었던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연락 시도에 응답했느냐는 질문에는 “유엔 측의 경우 북한이 메시지를 받았다고 확인했지만, 그것을 실제 응답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는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다”고 답했다. 미국 측의 접촉 시도에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여러 채널이 있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직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백악관과 국방부, 국무부, 유엔 모두 킹 이등병의 소재와 신변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복수 채널을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현재 공유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킹 이등병의 월북 동기 등을 묻는 말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관련 사실을 수집하고 있으나 공유할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미국 정부의 입장을 종합하면 북한 측은 유엔사의 통신에 ‘알았다’고 밝힌 정도의 응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앤드루 해리슨 유엔사 부사령관은 앞서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JSA를 통해 북한군과 계속해 대화하고 있다”며 UNC가 북한군과 소통하는 직통 전화기, 일명 ‘핑크폰’을 통해 북한군에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핑크폰은 판문점 남측 지역 내 유엔군 사령부 일직장교 사무실에 놓인 연분홍색 전화기로 북측 판문각에 놓인 전화기와 직접 연결된다. 일부에서는 남북 군과 당국 사이에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엔사를 통한 통신선은 연결돼 있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폭행 등으로 두 달 가까이 구금됐던 킹은 지난 17일 추가 징계를 받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달아난 뒤 다음 날 JSA 견학에 참여하던 중 무단으로 월북했다. 미국 ABC 방송은 킹이 지난해 9월에도 복무지를 이탈했으며 소재 파악이 이뤄진 뒤에도 기지로 돌아가거나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 모두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월북하기 전부터 미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을 위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미군 간부들이 너무 호송 과정에 소홀했지 않았느냐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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