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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이 ‘6월 정상회담 승부수’ 던진 까닭은

    문 대통령이 ‘6월 정상회담 승부수’ 던진 까닭은

    6월 남북회담 ‘회의론’도… 북미 비핵화 이견 여전“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만날지 여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선택입니다.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가능하다면 만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12일 오슬로포럼).” “6월 중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한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남북 간 아주 짧은 기간 연락과 협의로 정상회담이 이뤄진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시기와 장소, 형식을 묻지 않고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기를 선택할지는 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13일 한·노르웨이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지난 4월 4차 남북정상회담 공개 제안 이후 ‘시기’만큼은 열어뒀던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3개국 순방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이번 달 남북정상회담 테이블로 복귀할 것을 사흘째 촉구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양자대화와 다자대화를 가리지 않고 국제사회와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면서 “완전한 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각적 응답’이란 표현을 썼지만,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핵 담판’ 결렬 당시 미국 측에 제시했던 수준을 뛰어넘는 추가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는다면 교착국면에 빠진 북미대화 재개는 요원하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다. 북측으로선 문 대통령의 노르웨이 의회연설 내용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대신 북측에 ‘체제 보장’ 카드를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서로의 체제는 존중돼야 하고 보장받아야 하며, 그것이 평화를 위한 첫 번째며 변할 수 없는 전제”라고 강조했다. 또 “국제사회는 북한이 진정으로 노력하면 즉각적으로 응답할 것이며 제재 해제는 물론이고 북한의 안전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사흘 연속 북한과 김 위원장을 향한 대화에 복귀하도록 손짓을 한 배경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석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교착국면이 길어지면 자칫 대화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오슬로포럼에서 “비록 대화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다 하더라도, 대화하지 않은 기간이 길어지게 된다면 대화 열정이 식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속한 만남 촉구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부터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접어들고, 한국도 총선정국에 빠져드는 만큼 올해 안에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지난해 이뤄놓은 ‘한반도의 봄’이 자칫 물거품이 되거나 상당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북미 관계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이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김 위원장의 친서를 언급하며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한 것 또한 비핵화 대화의 복원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는 근거로 거론된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이달 말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방문 및 29~30일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전까지 톱다운 방식의 남북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운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6월 말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거나, 나아가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빅이벤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지난해 12월 초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고, 실제 성사 직전까지 갔던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6월 4차 남북정상회담’ 촉구 이면에 적어도 북측과의 물밑 접촉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아 청와대가 극도로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6월 남북정상회담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단순한 ‘희망’이라기 보다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면 된다”면서도 “결국은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남북대화에 밝은 정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북한으로부터 어떤 답도 없는 상황이며 북한 체제 속성상 가능성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면서도 “1~3차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 만큼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하려면 미국의 보상도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6월내 남북 정상회담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신중론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하노이 핵담판 결렬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북미 간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는 않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시사한 점 역시 ‘밀당’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잘 될 것”이라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스톡홀름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뉴스분석]文 “평화를 지켜주는건 핵무기 아닌 대화”

    [뉴스분석]文 “평화를 지켜주는건 핵무기 아닌 대화”

    ‘체재보장’ 카드로 완전한 핵폐기 의지 입증 촉구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며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이 진정으로 노력하면 즉각적으로 응답할 것이며 제재 해제는 물론이고 북한 안전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서로의 체제는 존중되어야 하고 보장받아야 한다. 그것이 평화를 위한 첫 번째이며 변할 수 없는 전제”라고 천명했다. 지난 2월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대화테이블에서 물러선 북한에 대해 제재 해제보다 근본적인 체제 보장을 내걸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내놓은 카드보다 진전된 비핵화 조치로 ‘신뢰’를 구축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문 대통령이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전 4차 남북 정상회담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시점에서 북한의 반응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스웨덴을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라는 제목의 의회 연설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북한과 국제사회가 신뢰라는 ‘프로토콜’을 쌓아가는 과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우발적인 충돌과 핵무장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이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양자 대화와 다자대화를 가리지 않고 국제사회와 대화를 계속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 이행을 통해 안으로부터의 평화를 만들어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신뢰와 더불어 ▲대화에 대한 신뢰 ▲남과 북 국민 간의 신뢰 또한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화에 대한 신뢰’에 대해 문 대통령은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대화”라며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도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으로서도 마찬가지”라면서 “남북 간의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비판적인 냉전적 사고에 매몰된 정치권을 비롯한 보수진영 일각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신뢰는 상호적이어야 하며 그것이 대화의 전제”라면서 “한국 국민들도 북한과의 대화를 신뢰해야 하고, 대화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더디게 만든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남북 국민 간의 신뢰’와 관련, 문 대통령은 “대화의 창을 항상 열어두고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해는 줄이고 이해는 넓힐 수 있다”면서 “평범한 평화가 지속적으로 쌓이면 적대는 사라지고 남과 북 국민들 모두 평화를 지지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항구적이고 완전한 평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1~3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 중단, 남북 도로·철도 연결, 서해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작업을 예로 들었다. 지난 12일 ‘국민을 위한 평화’를 주제로 한 노르웨이 오슬로 포럼에서 국민 개개인의 일상을 바꾸는 평화로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문 대통령은 이처럼 남북 간 3가지 신뢰를 제안하면서 스웨덴의 비핵화 경험을 거론했다. 2차 대전 이후 1960년대 구소련이 유럽에서 세력을 팽창하면서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었던 스웨덴은 과학기술 선도국으로서 핵보유국의 기로에 섰다. 찬반양론 속에 여성 외교관 알바 뮈르달(1902~1986) 여사는 핵보유가 득보다 실이 크다는 논리로 조야를 설득했고, 결국 스웨덴은 핵보유를 포기하고 평화국가로 남기로 했다. 문 대통령도 “스웨덴이 어느 국가보다 먼저 핵을 포기할 수 있었던 데는 인류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뢰를 가졌기 때문”이라며 “세계가 궁극적으로 평화를 통한 번영을 선택할 것이라는 신뢰였다”고 평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정확하게 북한을 향해 핵보다는 신뢰를 갖는 게 훨씬 더 평화와 체제 보장에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한 곳은 옛 하원의사당으로 노벨평화상(1982년)을 받은 뮈르달 여사가 처음으로 전 세계 군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 역사적인 장소다. 고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 비전을 천명하는 연설을 했다. 이날 연설에는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 스웨덴 의회 의원 및 정부 주요인사, 스톡홀름 주재 외교단 등이 참석했다. 스톡홀름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서호 통일부 차관 “남북 소장 자주 만나자”…北 “잘 전달하겠다”

    서호 통일부 차관 “남북 소장 자주 만나자”…北 “잘 전달하겠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신임 남측 소장인 서호 통일부 차관이 14일 남북 정상 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연락사무소 기능이 활발히 작동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서 차관은 이날 소장 임명 후 처음으로 연락사무소를 방문한 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북 소장이 자주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장회의는 남북간의 현안 문제를 서로 해결하기 위해서 수시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북측도 거기에 대해 보고하겠다고 이야기한 만큼 나름대로 좋은 앞으로의 만남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 차관을 맞이한 김영철 북측 임시소장대리는 앞으로 소장회의를 자주 개최하자는 서 차관의 말에 “잘 전달하겠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과 북의 연락사무소장은 비상주 직책으로, 남측 소장은 북측 전종수 소장 또는 소장대리와 주 1회 만나 남북관계 사안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북측 전종수 소장은 소장회의에 지난해 1월 25일을 마지막으로 참석하지 않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된 이후 그 여파가 지속되며 소장회의가 16주째 계속 열리지 않고 있다. 서 차관은 ‘향후 북측 소장과의 일정을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왔느냐’는 질문에 “일단 우리 의사를 표현한 만큼 북측의 답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기대를 해 본다”고 답했다. 또 ‘6월 남북정상회담은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느냐’는 질문에는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며 “오늘 방문한 것을 정상회담과 연관 지어 말씀드리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서 차관은 또 “지난 12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김여정 북한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한테 받았던 조의문과 조화는 이희호 여사님 장례위원회에 잘 전달했다는 말씀을 전달해달라고 소장대리한테 전했다”며 “아마 잘 전달 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 차관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과 함께 당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 부부장에게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받는 자리에 참석한 바 있다. 서 차관은 이날 오전 8시 30분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으로 출경한 뒤 업무 현황을 청취하고 유관기관 근무자들과의 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2시를 조금 넘어 남측으로 귀환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이총리 “이희호 여사 꿈꾼 평화통일·국민통합 향해 전진”

    이총리 “이희호 여사 꿈꾼 평화통일·국민통합 향해 전진”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우리는 이희호 여사님이 꿈꾼 국민의 행복, 평화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겠다”며 “영호남 상생을 포함해 국민의 통합을 위해서도 꾸준히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신촌 창천교회에 거행된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와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된 추모식에서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이 총리는 이날 오전 신촌 창천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예배에서 조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며 “한국 현대사의 격랑 한복판에서 가장 강인하게 헤쳐온 여사님을 보내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았다”며 “대학 시절 여성 인권에 눈을 떴고 유학을 마치자마자 여성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고인의 생을 기억했다. 이어 “여사님은 아이 둘 가진 홀아버지(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와 결혼했고 결혼 열흘 만에 남편은 정보부에 끌려갔다”며 “남편은 바다에 수장될 위험과 사형 선고 등 5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겪었다”고 덧붙였다.이 총리는 “그러나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고 남편이 감옥에 있거나 망명할 때에도 남편에게 편안함을 권하지 않고,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투쟁하라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고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고, 우리 국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며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 절반은 부인의 몫이라 논평했다. 정권교체의 절반도 여사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은 여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 업적을 만들었다”며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이총리 “한 시대와 이별…정권교체 절반은 이희호 여사의 몫”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에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남은 우리는 평화통일을 기원한 여사님의 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이 총리는 이날 오전 신촌 창천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예배에서 조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다”며 “한국 현대사의 격랑 한복판에서 가장 강인하게 헤쳐온 여사님을 보내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여사님은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보통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았다”며 “대학 시절 여성 인권에 눈을 떴고 유학을 마치자마자 여성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고인의 생을 기억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고 분단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고, 우리 국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며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 절반은 부인의 몫이라 논평했다. 정권교체의 절반도 여사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은 여성평등기본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 여성과 약자를 위해서도 획기적 업적을 만들었다”며 “여사님의 오랜 꿈은 그렇게 남편을 통해 구현됐다”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文대통령 “6월 남북정상회담 물리적으로 가능”

    文대통령 “6월 남북정상회담 물리적으로 가능”

    전문가 “北 전격 회담 수용 배제 못해” 일부 “北 조금씩 입질하는 단계” 신중문재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전인) 6월 중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한지는 저도 알 수 없다”면서도 “(지난해 2차 정상회담처럼) 남북 간 짧은 기간 동안 협의로 회담이 이뤄진 경험도 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노르웨이를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는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돼 있다. 시기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오슬로 포럼에서 밝힌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시기와 장소, 형식을 묻지 않고 언제든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그런 시기를 선택할지는 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았다고 밝힌 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친서에 대해 대강의 내용을 알려 준 바가 있는데 그중 발표하지 않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 이상으로 제가 먼저 말씀드릴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북미 간 접촉 재개 의사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또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전제로 한 제재 해제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프로세스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자 핵심은 북한 비핵화에 있어서 실질적인 진전”이라면서 “남북 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려면 개성공단 재개를 비롯한 여러 경제 협력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제적 경제 제재가 해제돼야 가능하고 해제되려면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도적 교류와 지원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전날에 이어 4차 남북 정상회담의 이달 중 개최를 언급하면서 남북이 물밑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문 대통령이 제한적인 시간을 고려해 김 위원장의 결심을 촉구하고 있다는 신중론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굳이 비유하자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북한이 조금씩 ‘입질’을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미국의 시간 끌기 전략을 흔들기 위해 이달 안에 전격적으로 남북 회담에 나설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이 경우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감시초소(GP) 전면 철수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슬로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경기중부권 7개시 ‘평화열차 DMZ train’ 광명역 출발추진 힘 보탠다

    경기중부권 7개시 ‘평화열차 DMZ train’ 광명역 출발추진 힘 보탠다

    경기 광명시는 12일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제82차 경기중부권행정협의회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7개회원사가 ‘평화열차 DMZ train’ 광명역 출발추진에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박승원 광명시장을 비롯해 최대호 안양, 윤화섭 안산, 김종천 과천, 임병택 시흥, 한대희 군포, 김상돈 의왕시장 7개 회원도시 단체장이 전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토지 보상에 대한 영업권자 감정평가업자 추천’ ▲‘공익 사업에 따른 보상금 지급 시 납세증명서 제출 제도 개선’ ▲평화열차 DMZ train 광명역 출발 추진 공동노력 등 3개 안건에 대해 심의했다. 특히 이날 광명에서 제안한 ‘평화열차 DMZ train 광명역 출발 추진 공동노력’ 안건에 대해 전원이 찬성해 광명역 출발 추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협의회에서 의결된 안건은 경기도와 관련 중앙부처에 건의하기로 합의했다. 이외에도 광명동굴 라스코전시관 특별기획전시 사업과 시흥 시티투어 운영, 군포 산업진흥원 수영장 시범운영 등에 대해 공유하고 홍보활동에 협조하기로 했다. 박 시장은 환영사에서 “광명시는 폐광산이었던 광명동굴과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 자원회수시설 두 개를 접목시켜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을 이끌어 가고 있다”며, “도시재생의 큰 틀 속에서 17만평 광명동굴 주변 개발과 함께 광명동굴 내부도 새롭게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시마다 좋은 모습들을 서로 배우고 협력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회의 후에 단체장들은 광명동굴을 둘러보고 라스코전시관에서 전시중인 ‘빛의 놀이터! 레인보우팩토리’를 관람했다. 시는 지난 5월 14일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고 남북의 평화통일과 KTX광명역의 남북평화철도 출발역 지정을 기원하기 위해 시민들과 KTX광명역~도라산 열차기행을 다녀왔다. 열차기행에 시민들이 만족하고 ‘DMZ train 광명역 출발’ 필요성을 확인한 광명시는 현재 용산역에서 출발하고 있는 ‘평화열차 DMZ train’을 주 2~3회 이상 광명역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정부 “6월 내 남북정상회담 어렵다…北 반응 없어”

    정부 “6월 내 남북정상회담 어렵다…北 반응 없어”

    정부가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전후해 이달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과의 당정협의에서 이런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정부로서는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진행은 없다. 북측의 반응이 없어 이번 달 중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 장관은 당정협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돌이켜보면 (지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모두 6월에 개최됐다. 정부는 현시점이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또 북한이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연락사무소를 통해 조화와 조전을 보내기로 했다는 점도 의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김 장관은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과 관련해서는 “세계식량계획(WFP)이 실무적인 절차, 구체적인 절차를 마무리하고 있어 곧 정부의 지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어려운 식량 상황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선제적 지원을 추진 중”이라며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정치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원칙에 따라 추진해나간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비공개 협의에서 북한 비핵화 논의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합의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들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그런 내용에 대해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본부장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박지원 “김정은, 인간 도의적으로 故 이희호 여사 조문단 보내야”

    박지원 “김정은, 인간 도의적으로 故 이희호 여사 조문단 보내야”

    “이희호 여사, 김정일 사망 때 조문하고 김정은 만나”“북한 검토 중일 것…남북회담 원포인트로라도 열려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조문 사절단을 보내야 한다고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12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정은 위원장이 정치적 의미를 떠나 인간 도의적으로 반드시 조문 사절을 보내야 한다”면서 “이희호 여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북한을 방문해 조문했고, 이 때 아마 한국 최초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사실이 있다. 동양 미덕에, 특히 한국은 관혼상제에 가면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에도 보면 우리가 부고를 보냈을 때 하루? 이틀? 하루 반인가 있다가 답변이 왔다”면서 “어제 아침에 개성연락사무소를 통해 (부고가) 갔기 때문에 아마 지금쯤은 북한에서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원 의원은 “저는 (북한 조문단이) 와야 한다, 올 것이다, 이렇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미 관계, 남북 관계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시간이 없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하려고 하고, 또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계속해서 ‘러브레터’를 보낸다고 하면, 이제 답변은 김정은 위원장이 할 때”라고 했다.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도 6월 중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에 원포인트로라도 열려야 한다”면서 “만약 (6월 중에) 열리지 못하더라도 한미정상회담 후에라도 열려 바로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려면 최소한 금년 여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지원 의원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구를 각각 요청한 국민청원에 ‘정당과 의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평가’라는 취지로 답변한 데 대해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때 청와대 정무수석이 타는 불에 휘발유 끼얹어버리는 발언은 조심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의중을 (가지고) 야당과도 늘 소통해야 할 사람이 저렇게 불 질러 버리면 불이 타지, 꺼지겠는가”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장에 이낙연·장상·권노갑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장에 이낙연·장상·권노갑

    김대중평화센터는 11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이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기존 위원장으로 발표된 장 전 국무총리서리와 권 고문에 이어 이 총리가 위원장 명단에 추가된 것이다.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이 있어 이 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자유한국당 황교안·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여야 5당 대표는 고문으로 참여한다.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특별좌담’에서 “제가 어제 5당 사무총장들에게 연락을 드려서 5당 대표들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의원들은 장례위원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각 당에서도 응해왔다”며 “황교안 대표는 ‘담당할 일이 무엇인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 부위원장은 박지원 의원과 최용준 전 천재교육 회장 등이 맡을 예정이다. 장례위원은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지만 수백명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민주당 의원 128명과 평화당 의원 14명, 정의당 의원 6명이 장례위원에 이름을 올리기로 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무소속 의원들의 참여 여부는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또 여성계 인사도 상당수 장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이날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해 12일 오전 11시 입관 예배를 한다. 14일 오전 6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고인을 운구해 오전 7시 신촌 창천 감리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한다. 창천교회는 고인이 52년간 다닌 교회다. 이후 고인은 동교동 사저에 들른 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합장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정인 “북한, 트럼프 방한 전 결단 내려야”

    문정인 “북한, 트럼프 방한 전 결단 내려야”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명예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 전에 북한이 북핵 협상과 관련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11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년 특별좌담’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북핵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 수시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인 6월 북한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북한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만약 6월 기회를 놓치게 되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특사 접촉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시급성을 봤을 때는 남북 두 정상이 만나야 한다. 북한에서 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며 “김 위원장과 우리 대통령이 만나야만 둘 사이에 얘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O) 정상회의(28∼29일 개최) 전에 오든 후에 오든, 방한에 맞춰 최소한 일주일 전이라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원포인트로 한 뒤 한미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이어 “그런 다음 잘 되면 판문점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남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라며 “(남북정상회담은) 제가 볼 때 일주일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문희상 “김대중·이희호 위대한 시대 만들어…그 뜻 이어갈 것”

    문희상 “김대중·이희호 위대한 시대 만들어…그 뜻 이어갈 것”

    문희상 국회의장은 11일 고(故) 이희호 여사의 별세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위대한 시대를 함께 만들어왔고, 우리는 계속 그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좌담회’에서 “이 여사가 부디 영원한 동지이자 동행자인 김 전 대통령 곁에서 편히 잠드시길 간절히 기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의장은 “가슴이 자꾸 울컥울컥하려고 해서 실수할까 봐 적어왔다”며 미리 준비한 추모의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문 의장은 “두 분이 함께해온 강인하고 아름답던 시간이 느껴졌다”며 “제가 반평생 동안 지켜본 두 분의 삶은 그 자체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이 여사님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시련과 고난, 역경과 격동의 생을 잘 참고 이겨내셨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여사님께 가슴 부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바치고 싶다”며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정의,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등 세 가지에 생을 바치면서까지 함께 하셨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6·15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의 평화를 향한 신념과 확신이 아니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웠던 민족사적 대사건이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의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의장은 이후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의장은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나 “정신이 없고 울컥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며 “이 여사께서 빨리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만나 아무 슬픔도 아픔도 없는, 빛나고 눈부신 세월을 지내시길 간곡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또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이 여사가 ‘아프고 견디기 힘든 인생을 참으로 잘 참고 견뎌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지금 이 여사께 그 말씀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분이 원하셨던 세상인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의 완성을 위해 우리들의 몫이 시작됐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희호, 文엔 “노벨상”, 朴엔 “여성 대통령”, 안철수는…

    이희호, 文엔 “노벨상”, 朴엔 “여성 대통령”, 안철수는…

    10일 별세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우리 정치계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유력 정치인은 중요한 시기마다 이휘호 여사를 예방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각 당 후보들은 저마다 이 여사를 찾아가 덕담과 지원을 바랐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도 이 여사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예우했다. 이 여사는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현 시국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바람을 전달했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도 잊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로 2번의 대선을 치르면서 이 여사를 예방했다. 이 여사는 2012년 9월 24일, 자신의 아흔 번째 생일을 맞아 찾아온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게 “꼭 당선되야 한다. 당선될 것 같다. 정권교체가 정말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잘해내고 서민경제를 이뤄서 많은 사람들이 다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여사는 지난해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는 “수고했다. 큰 일을 해내셨다. 노벨평화상을 받으시라”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으면 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이 여사를 만났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맞은 이 여사는 “우리나라는 여성 대통령이 없었지 않느냐. 여성 지위가 법적으로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으니 만일 당선된다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비공개 대화에서 이 여사는 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되신다면 여성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이고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덕담한 것으로 전해졌다.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 여사 예방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1월 새해를 맞아 이 여사를 20분간 만났다. 안 전 대표는 당시 신당(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는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한 언론사는 안 전 대표 측 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 여사가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 지난 2012년 대선 때 내가 좋아했는데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마지막에 후보를 내려 놓게 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여사의 아들 김홍걸씨는 보도자료를 내고 “어머님은 안철수 의원 말씀을 듣기만 하고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보도내용에 어이없어 하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안 전 대표 측에서 비공개 면담 녹취록을 이 여사 측 동의 없이 한 월간지에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공개된 녹취에서 이 여사는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안 전 대표 발언에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민의당 측은 “이 여사에게 큰 결례를 범했다며 공개 사과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동교동 사저, 대통령 기념관으로” 이희호 여사의 유언은

    “동교동 사저, 대통령 기념관으로” 이희호 여사의 유언은

    고(故)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별세하기 전에 남긴 유언에서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생전에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세 아들의 동의를 받아 이러한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했다고 11일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가 발표문을 통해 공개했다. 이 여사는 또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유언했다. 이 여사는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 여사는 유언의 집행에 대한 책임을 김성재 상임이사에게 부여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 상임이사는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낭독한 발표문에서 “이 여사님의 장례는 유족, 관련단체들과 의논해 김대중평화센터 주관으로 ‘여성지도자 영부인 이희호 여사 사회장’으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면서 성경을 읽어드리고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 여사님도 함께 찬송을 부르시며 편히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이 여사님께서는 평생 어려운 사람들,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늘 함께 하시고,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서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한 일을 계속 하시다가 소천하셨다”고 강조했다.이 여사는 지난 3월 20일 입원해 83일간 병원에 있었다고 김 상임이사는 전했다. 그는 “노환을 조금 회복해 사저로 돌아갈 것을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노환이 아닌 다른 질병 때문에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북한 측의 조문단 파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연락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자유한국당 황교안·바른미래당 손학규·민주평화당 정동영·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5당 대표가 고문으로 참여한다. 김 상임이사는 “5당 대표가 모두 장례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좌담회’에서 “제가 어제 5당 사무총장들에게 연락을 드려서 5당 대표들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의원들은 장례위원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각 당에서도 응해왔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황교안 대표는 ‘담당할 일이 무엇인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민주당, 평화당, 정의당은 대표와 의원이 전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참여 여부는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北 김여정 등 조문단 파견 가능성…이희호 여사 김정일 사망 때 조의

    文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지지 기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97) 여사가 10일 밤 별세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문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북측 조문단을 파견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 여사는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남측 조문단과 함께 평양을 방문해 직접 조의를 표하고 김 위원장에게 위문의 뜻을 표시한 바 있다. 그동안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을 수 차례 강조해왔던 북측이 김 위원장의 조문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비롯한 최측근 인사를 대표로 하는 조문단을 파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 4일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김 위원장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관람 수행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식 석상에 다시 등장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돼온 남북 화해 분위기에 가교 역할을 했던 김 부부장이 북측 조문단을 이끌고 방남할 경우 4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을 비롯한 남북 및 북미 교착상태를 여는 전환점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주요국의 폭넓은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달말 이어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미 대화 재개를 앞두고 또다시 김 부부장을 통한 김 위원장과의 실질적 협의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文대통령 “이희호 여사, 우리 시대 민주주의자… 영면하시길”

    [이희호 여사 별세] 文대통령 “이희호 여사, 우리 시대 민주주의자… 영면하시길”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 봅니다.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이처럼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다”면서 “(한국에)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란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면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하실 정도로 늘 시민의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면서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고인이 남긴 발자취를 기억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동행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지요”라면서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북유럽 3개국 순방 일정에 나서기 직전에도 고인의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과 통화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당시 문 대통령이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어떠신가요”라고 묻자 김 의장은 “여사님께서 여러 번 고비를 넘기셨으니 이번에도 다시 회복되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계셨으면 좋겠고, 남북관계도 좋아질 수 있으니 그런 모습도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며칠 전 위중하시단 말씀을 듣고 아내(김정숙 여사)가 문병을 가려다 여사님께서 안정을 되찾고 다급한 순간은 넘겼다하여 다녀오지 못했는데 참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곧 순방을 나가야 하는데 나가있는 동안 큰 일이 생기면 거기서라도 조치는 취하겠지만 예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제 안타까운 마음을 잘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지시구요, 여사님 회복되시길 빌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달 25일 김정숙 여사가 비공개로 병문안을 다녀왔었고, 출국 전 다시 한번 병문안을 가려다가 안정을 되찾아 다녀오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헬싱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희호 여사 건강 한때 위독…‘6·15정상회담’ 기념식 취소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10일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현재 가족 측에서 사회장으로 모실 것을 고려해 위원장으로 권노갑 고문,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모시려 한다”고 했다.  이어 “5당 대표를 사회장 장례위 고문으로, 현역의원은 장례위원으로 모시려 한다”며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사무총장은 승낙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사무총장은 대표와 협의해 연락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권양숙 여사가 오늘 다녀가셨다”며 “특히 권 여사가 계시는 동안 이 여사가 눈을 뜨고 무슨 말씀을 하려는 입놀림의 기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97세인 이 여사는 최근 앓고 있던 간암 등이 악화되면서 지난 3월부터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 여사의 건강 악화로 오는 13일 예정된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기념식을 취소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여사를 문병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등이 이 여사를 병문안했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에 “위대한 여성지도자, 김대중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동지…쾌유를 기원한다”고 글을 남겼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美유학파 엘리트女, 반대 딛고 DJ와 결혼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달라” 편지 등 DJ 민주화 투쟁 고비마다 버팀목 역할 석방투쟁·옥중 뒷바라지·가장 역할까지 ‘여가부 전신’ 여성특별위 등 출범에 앞장 퇴임 후엔 더 나은 한반도 평화위해 매진고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전에 여성인권 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큰 별이었다. 이 여사는 일제강점과 해방, 독재와 민주화, 한반도 전쟁과 평화 시대의 개척자였고, DJ의 영원한 동행자이자 동역자였다. 이 여사는 1922년 9월 의사 부친과 한의사 모친 사이에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이용기씨는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국내 의사면허 4호로 전북 남원과 경기 포천의 도립병원장을 지냈다. 모친 이순이씨도 한의사집 가정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 여사는 가톨릭 신자인 DJ와 종교적 화합을 이루는 데도 기여했다. 이 여사는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의 창천교회를, DJ는 동교동 성당을 다녔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로 학교가 문을 닫아 졸업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46년 서울대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영문학 전공이지만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옮겼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칼렛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5월 마흔이던 이 여사, 서른여덟이던 DJ가 종로구 체부동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아들이 딸린 빈털터리 실업자 김대중과 미국 유학까지 하고 돌아온 여성계 엘리트 이희호의 결혼에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이 여사가 몸담았던 YWCA 선후배들이 반대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이어졌다. 이 여사는 남편 DJ의 민주주의 투쟁에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DJ가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에서 주춤거리거나 물러서지 않도록 단단히 매어낸 것도 이 여사다. 1971년 대선 때는 직접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0월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본에 갔던 DJ는 사실상의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여사는 서슬 퍼런 감시망을 피해 DJ에게 편지를 썼는데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적었다. 1973년 5월에는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 달라”는 편지를 썼고, 3개월 뒤 도쿄납치사건이 일어났다. DJ가 지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이 여사였다. DJ도 훗날 아내에 관한 글에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는 글을 썼다. 1977년 ‘3·1 구국선언문’ 사건으로 DJ가 구속되자 이 여사는 석방투쟁으로 1년을 보냈다. 또다시 구속된 남편을 대신해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시달렸다. 당시 이 여사는 몸무게 43㎏까지 야위었다. 이 여사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손에 쥔 채 울었다고 한다.이 여사는 DJ가 옥중에 있을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 아들의 안부 등 일상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남편에 대한 격려 등을 담았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이 청한 책 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책도 한 두 권씩 꼭 전했다. 이 여사가 이때 쓴 편지는 1998년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으로 출판됐다.1987년, 1992년 DJ가 대선에서 잇달아 패하자 이 여사도 상심했다. 하지만 1997년 4수를 결심했을 때 이 여사가 앞장섰다. 1997년 12월 18일 남편이 당선됐다. 이 여사는 훗날 “당선이 확정된 직후에 청와대 경호팀이 우리에게 왔다. 오랜 세월 정보기관의 미행과 감시만 받다가 갑자기 경호를 받게 되니 어색하고 낯설었다”고 했다. 시대를 이끈 여성인권·사회 운동가였던 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씨앗이 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 부부가 동반하는 문화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1999년 발족한 한국여성재단을 탄생시킬 때도 퍼스트레이디가 재단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지 정치적 후유증은 없는지 등을 세심히 살핀 후 명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5월 셋째 아들 홍걸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고 한 달 뒤 둘째 홍업이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여사는 감옥에 있는 아들들에게 “잘못을 회개하라”는 편지를 썼는데 항상 “내 잘못을 회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3년 2월 퇴임을 앞둔 내외는 청와대에서 민주당, 자민련 인사들고 고별 만찬을 했다. 당시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여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남편”이라며 “남편이지만 저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 무렵 대북송금사건이 터졌고 2월 14일에는 DJ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퇴임 후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이 여사는 DJ와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진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던 DJ가 석달 뒤 8월 서거했다. 이 여사는 DJ 장례식 후 2015년까지 매주 두 번씩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주 화요일에는 가족, 동지들과 묘역을 찾았고 매주 금요일에는 혼자 남편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이 여사는 보수 정부 시절 두 차례 북한을 방문, 햇볕정책의 맥을 잇고자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이 여사는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었던 김 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을 신청했다. 육로로 방북한 이 여사는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했고, 김 위원장은 “멀리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당국 차원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고, 이 여사 일행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유족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에만 북측 조문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조문을 허용했다. 북측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이 여사가 머물렀던 백화원초대소 101호를 내어주며 극진하게 예우했다. 막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난 남측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당시 방북의 의미와 상징성은 매우 컸다. 이 여사는 3년 7개월 뒤인 2015년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친서를 보내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하 이뤄진 방북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당시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찾았다. 하지만 3박 4일의 일정 동안 끝내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 여사도 방북 4개월 후인 2015년 12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15주년 기념식에서 ”15년 전처럼 남과 북이 왕래하고 대화하는 시대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다“며 꽉 막힌 남북관계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이 여사는 남편의 정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극적인 순간이었을 평양 6·15 남북정상회담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당시 이 여사가 평양에서 과거 이화여고 재학 당시 수학선생님이었던 김지한씨와 ‘60년만의 해후’를 한 것도 화제가 됐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생을 마감한 이 여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성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텐데...” 안타까움 토해낸 문 대통령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텐데...” 안타까움 토해낸 문 대통령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 봅니다.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이처럼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오늘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다”면서 “(한국에)계신 분들께서 정성을 다해 모셔주시기 바란다”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면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하실 정도로 늘 시민의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면서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셨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하셨다. 민주화운동에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고인이 남긴 발자취를 기억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동행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지요”라면서 “순방을 마치고 바로 뵙겠다.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북유럽 3개국 순방 일정에 나서기 직전에도 고인의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과 통화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출국 2시간여전 이뤄진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어떠신가요”라고 묻자 김 의장은 “여사님께서 여러 번 고비를 넘기셨으니 이번에도 다시 회복되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계셨으면 좋겠고, 남북관계도 좋아질 수 있으니 그런 모습도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며칠 전 위중하시단 말씀을 듣고 아내(김정숙 여사)가 문병을 가려다 여사님께서 안정을 되찾고 다급한 순간은 넘겼다하여 다녀오지 못했는데 참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곧 순방을 나가야 하는데 나가있는 동안 큰 일이 생기면 거기서라도 조치는 취하겠지만 예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제 안타까운 마음을 잘 전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지시구요, 여사님 회복되시길 빌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4월 25일 김정숙 여사가 비공개로 병문안을 다녀왔었고, 출국 전 다시 한번 병문안을 가려다가 안정을 되찾아 다녀오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내일(11일) 오후부터 조문할 수 있고, 김대중도서관 재단에서 절차를 논의 중”이라며 “청와대는 내일 오전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서 조문 등과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헬싱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이희호 여사 별세…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이자 정치적 동지

    여성운동가로서 독자적 업적…여성 정치 확대에 기여김대중 전 대통령 별세 뒤에도 남북 평화 위해 헌신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날 “이희호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 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최근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22년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교편을 잡는 한편 대한YWCA 한국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국내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로 활동했다. 상처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과 1962년 결혼한 뒤에는 인생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로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영광을 함께 겪어왔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과 납치 사건,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수감,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이어진 감시와 탄압을 함께 겪으며 이겨냈다.특히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사형 선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등 국제적인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70대를 넘어선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로서 활발한 내조 활동에 나섰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사회봉사 단체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재단’을 직접 설립해, 마지막까지 고문직을 맡는 등 아동과 여성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이들의 권리 신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 전 대통령 재임 때 여성의 공직 진출 확대를 비롯해 여성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의 문호를 넓힌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미경 한국국제협력재단 이사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김 전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 전 대통령과 동행해 영부인으로서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그러나 김 전 대통령 재직 시절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까지 잇달아 구속되는 등 시련도 겪어야 했다.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심을 잡아 왔다. 마지막까지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남북 관계가 교착 상황에 빠졌을 때에도 남북 평화를 위한 조언과 행동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교회여성연합외 ‘용감한 여성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 무궁화대훈장, 펄벅 인터내셔널 ‘올해의 여성상’ 등 인권과 여성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02-2227-7550) 발인은 14일이며,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는 가족 측의 의사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위원회가 구성된 가운데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와 평화당 권노갑 고문이 위원장을 맡고, 5당 대표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는 참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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