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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유엔·멕시코 순방 결산 기자간담 내용

    ◎“북한도 정상회담 필요성 절감할것”/「연방제 통일 방안 수용」 보도는 과민한 해석/“북의 핵무장 저지” 한·미 공동인식/핵사찰 거부 계속땐 안보리 결의 추진 가능/한·멕시코의 중남미·동북아 교차진출에 상조 가능성 확인 ▷한미정상회담◁ ­이번 미국의 핵정책 변화와 관련해 부시 미대통령으로부터 두번 친서를 받았는데요. ▲그만큼 미국이 우리의 입장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지요.친서는 나와 부시 미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과 신뢰관계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오늘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국민과 함께 보람을 느낄 수도있겠지요. ­부시대통령과의 뉴욕 정상회담에서는 무슨 말씀이 계셨습니까. ▲핵과 관련해 깊은 논의가 있었습니다.부시대통령으로서는 그간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과 협조가 잘 돼 왔는데 쿠데타와 각 공화국의 독립으로 통제권한이 약해졌고 그러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부시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중점을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두었지만 내면에 깔린 것은 이같은 소련의 상황과 핵개발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을 걱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과거 양극체제 하에서는 타협하면서 해 나올 수 있었는데 이제 미국이 주도해야하는 마당인 만큼 스스로 판단해 뭔가를 해야겠지요.미국으로서는 세계안보와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데 수범을 보이고 앞장을 서야 했던 것입니다.여러 나라의 공감을 얻으면서 위험한 국가들의 핵개발을 사전 예방하고….부시대통령이 나에게 보낸 친서도 그런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나도 핵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했고 궁극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유엔에서 연설한 바 있습니다.특히 북한의 핵개발 위험성을 지적하고 모든 외교수단을 동원,저지해야 한다고 한 것이지요.결국 부시대통령과 내 의도는 같은 맥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안보◁ ­한반도에 전술핵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정부당국이 지금까지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만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술핵이 철수돼도 한국은 계속 미국의 핵우산속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미국의 핵우산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부시대통령은 대륙간탄도탄(ICBM)중에서 다탄두는 없애고 단탄두체제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그리고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에는 하등의 변화가 없습니다.지난 23일 뉴욕에서 가졌던 정상회담에서도 부시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이 철석같이 굳다고 다짐했습니다. ­남북군축협상에도 좋은 전망이 있을 것 같습니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북한의 핵개발과 미국의 핵철수 정책과는 연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북한은 엄청난 위험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다해도 이를 막아야 합니다. ­미국이 즉각 철수한다고 했는데 그 시기는 언제로 보십니까. ▲부시대통령의 발표가운데 「소련등 다른 나라들이 상응한 조치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대목에 착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핵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도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했는데 남북한간의 군축조치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군비통제문제도 구상단계를 지난 실천하자는데 와 있습니다.지금까지 준비해 온 것 다시 챙기기도 하고 북한의 의심을 씻기위해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면서 구체적으로 준비해 가야겠습니다. ▷북한의 태도◁ ­미국의 새 핵정책으로 북한이 어떤 변화를 보일 것 같습니까. ▲처음에는 쉽게 응하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 변화과정을 보면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유엔가입만 해도 「민족분단의 영구화」니 하면서 전혀 타협점을 보이지 않다가 결국 가입하지 않았습니까.역사는 명분이 큰 쪽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핵무기의 개발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지 불행을 가져다줄지는 너무나 분명한일 아닙니까. ­다음달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는데 핵문제가 거론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겠지요(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에게 확인하듯이) 맞지요? (김보좌관 「그렇다」고 응답). ▷통일방안원칙◁ ­유엔연설후 주미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시사를 해 과거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론에서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더군요.원칙은 달라진게 하나도 없습니다.우리가 내놓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여러단계 즉 정상회담,각료회담,국회회담등을 거쳐 통일헌법이 만들어지고 그를 기조로 해서 정치적 통합을 이뤄나가는 것이지요.우리는 「단일국가 단일체제」인데 북한은 「단일국가 2개체제 2개정부」안을 내놓고 중간단계의 일부분으로서 국가연합을 하자는게 고려연방제의 뜻이지요. 정상회담이든 뭐든 서로간에 대화를 하자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주장중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조정할 것은 조정할 수 있다,고려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말했는데 너무 과민하게 해석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우리 통일방안의 원칙을 수정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보고가 있었습니까. ▲북한 내부에서도 이제는 세계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세력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수구적인 보수세력 즉 김일성 주체사상을 고집하는 세력간의 상당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부분적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분석단계는 아직 아니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남북한 유엔가입과 부시 미대통령의 전술핵 철수발표등으로 한반도 주변정세에 일련의 변화가 이어지고있습니다.이것이 국내에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핵에 대한 두려움을 국민들이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핵전쟁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그러나 부시대통령등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에게는 핵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가공스런 핵무기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가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우리도 이제는 이런 문제를 놓고 미국의 진지한 협의대상이 됐다는 점에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될 문제이며 또한 우리의 유엔가입으로 그만큼 국제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는 것을 부시 미대통령과 핵문제를 협의하면서 실감했습니다.특히 한반도에는 1백70만명이나 되는 병력이 대치하고 있고 가공할 화력이 이만큼 밀도있게 배치된 지역이 세계 어느곳에 있겠습니까.더구나 우리의 안보의식이 무디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제일 큰 관심사인 것입니다.왜냐하면 이제 충돌이 빚어진다면 그것은 6·25와는 비교가 안될 엄청난 민족적 희생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이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수출이 좀 더 되고 덜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그래서 남북한의 정상끼리 만나서 대화하자는 것이 아닙니까.저쪽(북한)에서도 아마도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국내정치도 이제는 여야간에 작은 문제를 놓고 아옹다옹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과 그 시기에 대해서는 어떤 전망을 하십니까. ▲다음달에 있을 남북총리회담에서 가능성여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판단될 때 오히려 저 사람들은(북한)단기적으로 강하게 나오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그들의 전술이란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북이 핵개발 포기를 거부하면 유엔안보리등에서 강제 사찰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좋은 착안을 하고 있군요,그런 가능성을 배제못하죠. ▷총선일정 구상◁ ­다음총선 일정에 대해 구상이 있으신지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언제할 것인가에 대해 구상을 세부적으로 해보지 않았습니다.급할게 있겠습니까.법의 테두리 내에서 선거일정을 결정할 것입니다.지난번 지방의회선거때도 시기를 놓고 왈가왈부했지만 내각과 국민들의얘기 들어서 선거날짜를 정해 잘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 김대중공동대표가 이번 소련 유엔 방문기간동안 정부와 야당간의 협조문제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앞으로 여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까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이번에 유엔에 같이 가자고 한 것은 유엔가입이 우리국민의 오랜 숙원이었고 이를 이룬 보람을 여야가 같이 나누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보기도 좋고 협력관계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소련사정이 매우 복잡하지 않습니까.심지어 독일의 콜총리도 한시간이상 기다려야 했고 그런일이 수두룩 하지 않습니까.나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다리게 하지 않았습니까.이해 해야지요.그분도 당초 예정대로 소련지도자들을 만났으면 좋았을텐데,서운하겠지요.김민주대표의 본심이 그렇겠습니까. ­뉴욕에서 한미정상회담때 부시대통령에게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소개시킨 것을 두고 국내에서 여러가지 정치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여당대표와 동행했는데 누구라도 소개시켜주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일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순방성과◁ ­유엔총회연설과 멕시코 방문의 소감과 성과를 말씀해 주십시오. ▲소련과 동구는 냉전이 종식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해 나가고 있는데 아직 한반도에는 냉전이 종식 안된 상태입니다. 이번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한반도에도 냉전이 종식될 것이란 신호라고 할수 있습니다. 유엔가입으로 타율에 의해 결정될 국제문제에 우리가 따라가던 것도 종식됐고 우리가 세계질서에 앞장서 나가는 주역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편되는 세계질서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이제 다른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 있어 지금처럼 보람과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던 적은 없었습니다. 미국이 믿을수 있는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부시대통령의 의지에 나도 지지를 표했습니다. 한반도의 안보전략개념에도 완전한 일치를 봤고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은 더욱 확고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멕시코대통령과는 상호투자협력문제와 미국,멕시코,캐나다의 자유무역지대 형성에 있어 협력할 분야가 많음을 확인했습니다. 살라나스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도가 높고 능력도 크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도 아주 좋아 앞으로 멕시코는 우리의 중남미진출,우리는 멕시코의 동북아진출을 위해 서로가 교두보의 역할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남북한 군축 구체안 준비”/노 대통령

    ◎새달 총리회담서 핵문제 거론/“미 핵철수 한반도 긴장완화에 큰 도움/북한 핵개발 강행 명분 상실” 【호놀룰루=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미국 해외배치 전술핵의 「즉각 철수」 시기문제와 관련,『소련등 다른 나라도 상응한 조치를 해주기를 미국이 바라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실질적인 철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소요될 것임을 시사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한국시간 29일 새벽)숙소인 하와이 카할라 힐튼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하고 미국의 해외배치 전술핵이 철수되더라도 한국에 대한 핵우산보호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이번 전술핵 철수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한 군축에 여러가지로 좋은 여건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과 이같은 미국의 전술핵의 철수는 별개이며 결코 연계해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이번 조치로 북한은 어떤 명분으로도 핵개발을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유엔안보리의결의등을 통해 강제 핵사찰을 실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10월 제4차 평양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핵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핵정책 전환에 따른 우리의 「필요한 조처」에 대해 『남북한 군비통제도 구상단계를 지나 실천단계에 와 있는 만큼 이를 실질적으로 빨리 촉진시키기 위해 구체적 방안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북한 내부문제에 언급,『현재 세계조류에 긍정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세력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고집하는 수구적 세력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부분적인 첩보가 있다』고 밝히고 소련사태 직후 신의주에서 반금일성시위가 있었다는 외신보도에 대해 『있긴 있는 것 같으나 아직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 상태같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북한 연방제통일안 일부 수용시사발언과 관련,『통일의 중간단계로서 국가연합 차원에서 북한의 고려연방제 뜻을 수용,서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조정할 것은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지 우리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수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한반도 새 군축안 마련/핵 사찰 북한 수용 재촉구키로

    ◎총리 주재 대책회의 정부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전술핵 일방폐기 선언과 관련,28일 상오 삼청동 안보회의실에서 정원식국무총리주재로 관계부처장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한반도 핵문제등 앞으로의 대북한관계와 동북아시아정세변화 등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번 부시 미대통령의 모든 지상및 해상 단거리핵무기 일방폐기조치가 한반도와 소련·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지역의 긴장완화,특히 남북한간의 군비감축협상으로 직결될 수 있도록 새로운 한반도 군축방안등을 마련하는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요구에 대한 거부구실로 내세운 남한의 핵배치문제가 자연해소되게 됨에 따라 북한도 핵무기개발을 즉각 포기하고 핵사찰에 응하도록 남북고위급회담등 여러경로를 통해 촉구키로 했다.
  • 노 대통령 유엔 연설 심층분석/대담(유엔코리아)

    ◎“세계평화 능동 참여”… 새 외교지평 열다/군축·교류등 남북관계 개선 방향 제시/공산권 지원 촉구는 높아진 위상 반영/고위급회담서 불가침협정 매듭지면 가입의 첫 열매될듯 노태우대통령의 24일 유엔총회연설은 당당한 유엔회원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선언한 역사적인 기회였다.특히 노대통령의 평화통일 3개실천방안 천명은 남북한관계의 급진전은 물론 통일의 시기를 앞당기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최종기교수(서울대)와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긴급대담을 통해 노대통령의 연설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분석해 본다. ▲최종기교수=무엇보다도 그동안 우리가 유엔의 옵서버국에서 정식회원국으로 탈바꿈한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원수가 유엔회원국가임을 알리는 선언적 효과가 크다고 보겠습니다. ▲서병철교수=정부수립 때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유엔에서 정회원국의 국가원수 자격으로 연설한 것은 드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비춰볼때 다른 회원국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유엔을 무대로 펼치는외교활동에 있어서도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교수=특히 국제정치측면에서 냉전체제의 유산으로 남북이 분단됐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정책등 냉전체제가 종식되는 과정에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겠지요.남북이 함께 유엔 의석을 갖는 시점에서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유엔연설은 독립주권국가의 긍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대통령의 연설을 구체적으로 살펴 볼까요. ▲서교수=우선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중요하다고 봅니다.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영구분단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으나 동서독의 예를 볼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특히 세계평화의 정착은 물론 한반도의 평화구축문제를 강력하게 언급한 대목은 미소간의 군축협상이 진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평화협정 제의 주목 ▲최교수=지금까지 북한이 유엔동시가입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것은 분단이 영구화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유엔동시가입후 통일에 이른 선례등은 북한이 원칙만을 고집할 수 없게 만들었지요.따라서 남북유엔동시가입은 통일의 중간단계로서 환영해 마지않을 일입니다.특히 노대통령의 유엔연설 내용중 관심을 끄는것은 남북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겠다는 대목입니다.현재 남북에서 1백70만의 군대가 비생산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해소하고 군비축소문제를 강조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특히 남북군축실현을 위해 상주감시단을 파견하자는 획기적인 제안은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을것이며 북한도 호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서교수=남북간의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정착내지는 통일문제를 추진하면서 유엔에서의 지지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왔습니다.더욱이 노대통령은 이번에 인적·물적교류의 활성화등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내용을 다시한번 강조함으로써 유엔정신에 입각한 남북문제해결의지를 천명했습니다.또 세계교역량 13위,GNP 15위를 못박아 얘기한것은 우리의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최교수=우리가 놓여진 환경,우리의 실력과 능력에 알맞는 국제사회에의 협력을 다짐한데도 의의가 있습니다.소련의 어려움을 돕는 등 우리의 능력을 동원해 국제사회에 협력하겠다는 것은 한소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중국과의 관계정상화 기틀마련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서교수=유엔가입이 한반도문제해결의 중간단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도 민족자존의 남북통일만이 궁극적 목표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거듭 천명한 것입니다.그리고 탈이념문제를 언급하면서 전세계적 관심의 대상인 공산권의 대변혁문제를 짚고 넘어간것은 평화애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강조함과 동시에 서방진영의 대공산권 경제지원을 촉구한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독일통일 당시 서독이 대소경제지원을 통해 소련의 동의를 얻어낸 점을 상기할때 남북통일을 이뤄내야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입니다. 즉 유엔회원국으로서 공산권에 대한 지원은 의무사항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지요. ○대북 동반관계 강조 ▲최교수=노대통령의 연설은 88년 7·7선언에 바탕한 통일로 향한 의지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습니다.북한의 유엔가입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같은 형제임을 강조한것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동반자로서 평화적 협조를 통해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비단 정치·경제뿐아니라 문화·인적교류를 통해 점진적인 신뢰를 구축해 냉전시대의 유산인 증오와 불신을 해소하자는 정신입니다. ▲서교수=한반도 주변환경의 변화를 지적한 대목도 눈여겨볼만 합니다.북한이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고위급회담에 응한것도 따지고 보면 주변 환경변화에 굴복한 것이고 쿠데타기도가 실패한 소련사태에 대한 노대통령의 언급도 주변환경의 변화를 중시하는 정부입장을 밝힌 것입니다.독일통일이 주변환경의 변화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변환경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봅니다.바꿔말하면 유엔가입을 계기로 주변환경의 변화를 위한 각오를 새롭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엔과 협력을 다짐 ▲최교수=국제사회의 분쟁과 마찰해소에 대한 유엔의 역할이 부상되는 시점에서 우리의 유엔가입은 유엔의 집단안보체제에 우리도 능력껏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집니다.노대통령이 한국과 유엔의 협력을 강조한 것은 국제사회의 평화에 한국도 노력할 것이며 만약의 불상사에도 회원국과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지요. ▲서교수=세계경제에 대한언급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서방진영의 경제지원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서방진영내에서의 경제마찰을 피하고 상호의존성과 협력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자고 역설했기 때문입니다.동서간의 협력은 물론 서방국가간의 실질적인 교류증진을 강조한 것입니다. ▲최교수=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공산당이 몰락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이념이 퇴색했다는 것입니다.이같은 국제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 노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것은 우리의 민주화과정도 전망이 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우리도 주권국가로서 지구촌의 차원에서 세계의 민주화와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로도 볼수 있습니다.특히 세계의 초강대국인 소련의 어려움에 대해 국제적 지원을 호소한 것은 세계의 항구적 평화와 인류복지증진에 대한 국가원수의 소신을 밝힌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서교수=새롭게 유엔회원국이 된 한국에 대한 여타 회원국들의 기대가 클 수 밖에 없고 특히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눈치가 완연합니다.바로 이때 노대통령이 유엔헌장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다른 회원국들에게도 고무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최교수=세계는 부시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전략무기감축협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남북도 좋으나 싫으나 국제추세인 군비축소에 동참함으로써 상호불신을 해소해야 합니다.남북이 효율적으로 성심껏 군축노력을 기울일 경우 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봅니다.아무쪼록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불가침협정을 매듭,우리의 유엔가입의 첫 선물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서교수=노대통령의 이번 유엔연설은 우리 정부의확고한 정책을 표현한 것인만큼 앞으로 남북관계에도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물론 북한의 태도가 변수이기는 하나 과거와 같이 국제기구에서의 볼썽사나운 경쟁·대립외교는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생각됩니다.남북한이 이념은 달라도 같은 역사를 지녀왔기 때문에 유엔주재 남북대사간에 사안별로 의견을 같이 하는 분야도 점차 많아지리라 봅니다.이렇게 될 때 남북간에는 고위급회담 뿐만 아니라 문화·체육 등 각 분야별로 대화가 진척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평화통일 3개 실천방안 천명

    ◎“북한 핵 포기땐 군축 용의”/세계 모든 국민 복리 위해 기여할것/3개 실천방안/①휴전체제 평화체제로 전환/②신뢰 바탕 실질적 군비 감축/③자유로운 통행·통신등 보장/노 대통령,유엔가입 연설 【뉴욕=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상오 11시(한국시간 25일 0시)유엔총회에 참석,역사적인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남북한간에 신뢰구축 노력이 진전될 경우 재래식 무력의 감축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핵문제에 대해서도 남북한간의 협의를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공동체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조속한 통일실현을 위한 방안으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군사적 신뢰구축을 바탕으로한 실질적인 군비감축 ▲사람과 물자·정보의 자유로운 교류확대등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한 북한은 모든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국제기구의 사찰에 조건없이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상호간의 군사정보교환,기동훈련·부대이동의 사전통보,상주감시단의 상호파견등으로 군사적 불신제거 조치를 선행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불안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서로에 대한 무력의 사용을 포기하고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정상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대통령은 인적·물적 교류확대를 위해서는 통신·통행·통상을 보장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실질적인 관계를 증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북한과 교역은 물론 관광·지하자원의 공동개발과 합작공장의 건설등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며 오는 10월 평양에서 열릴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이 남북한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남북한이 각각 다른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한 것은 가슴아픈 일이나 이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 단계』라고 말하고 『그러나 남북한의 두 의석이 하나로 되는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세계정세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대소 협력의지를 밝히고 『번영을 누리는 모든 국가들이 과거 통제체제국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선진국들의 대소 지원을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선후진국간의 빈부격차 해소등 남북문제에 언급,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사이의 중간국가로서 개도국에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자본·시장·정보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는 교량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노대통령은 『한국은 화학무기의 전면폐기를 지지하며 국제적인 조약이 체결될경우 조기에 가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밖에 『이 지상의 모든 나라가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개방하고 교류협력의 길을 넓혀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 모든 국민의 복리를 위해 기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통령은 기조연설이 끝난뒤 유엔본부 사무총장실로 케야르사무총장을 면담하고 우리의 유엔가입 기념으로 「월인천강지곡」이 담긴 한국초기 금속활자 모사품등을 기증품으로 전달했다.
  • 남북한 정상회담/김일성,성사 희망/강 외교부부장

    【뉴욕=박정현특파원】 강석주 북한외교부부부장은 17일 『이번 유엔총회기간중 이상옥외무장관과 김영남외교부장간 남북외무장관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부부장은 이날 총회 회의장 2층 인도네시아 라운지에서 한국 및 일본기자들과 만나 『외무장관회담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부부장은 또 『앞으로 유엔내에서 남북대화 및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양측 대표부간 협의될 문제는 통일문제보다는 유엔과 관련한 것이며 단일의석을 이루는 문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강부부장은 『핵사찰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며 『남한내 핵무기를 철수한후 남북이 함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부부장은 이어 『김일성주석은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실질적 합의와 진척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앞서 그는 남북한유엔가입안이 통과된후 수락연설을 통해 『유엔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기대가 날로 커가고 그에따라 이 기구의 역할을 그 어느때보다 높여야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유엔에 가입한 것은 의의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북한 외교관의 귀순을 보고(사설)

    아프리카 콩고주재 북한대사관의 1등서기관으로 있다가 자유를 찾아 귀순한 고영환씨는 지금까지 귀순했던 북한의 현직관리중 가장 높은자리의 사람이며 최초의 외교관이다.그는 또 북한외교부장 김영남의 측근으로 대아프리카 외교정책의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그의 증언은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씨는 지난 13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귀순동기와 경위,북한의 실상등에 관해 비교적 담담한 심경으로 토로했다.그는 이날의 증언에서 북한이 60년대 중반 평북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건설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평북 영변과 황북 평산외에도 2개 지역에 핵관련시설이 더 있음을 폭로했다.그는 또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은 평양이 저지른 것이라고 밝히고 김일성부자의 권력승계는 93년10월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증언은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사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북한의 현직고위관리였던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그가 가진 정보중에는 성질상 공개되지 않은것도 많을 것이다.외교관은 대체로 국제정세와 그자신의 조국현실을 냉철하게 비교,관찰할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씨는 알바니아사태를 지켜보면서 공산주의체제를 비판한 것이 화근이 돼 평양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하자 귀순의 모험을 감행했다고 하는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김일성주석은 최근 『우리는 우리식의 사회주의 구축을 확고하게 지속해 왔기때문에 소련과 동구에서 일어난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주민들의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에도 금이 가고 있음을 현직 고위외교관의 「탈출」에서 감지할수 있다.그의 귀순을 계기로 북한은 외교관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한층 강화할 것이며 「의심이 가는 반동분자」들을 동구유학생들처럼 집단으로 소환하는 강경책을 쓸지도 모른다.그러나 사상통제와 교육의 강화만으로 체제를 수호할수 있다고 믿는것은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고영환씨의 귀순이후 북한이 취할 대남정책을 주시하고 있다.북한은 지난8월 유도선수 이창수씨의 귀순을 트집잡아 예정됐던 남북체육회담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으며 남북고위급회담도 콜레라라는 엉뚱한 핑계를 내세워 오는 10월로 연기시켰다.따라서 고씨의 귀순이 남북고위급회담에도 영향을 주지않을까 우려된다. 북한은 엘리트외교관의 탈출로 큰 충격을 받을수 밖에 없겠지만 이 충격을 슬기롭게 받아들여 폐쇄와 고립의 틀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씨의 귀순은 자유와 민주의 대세는 아무도 막을수 없으며 참담한 물질적인 고통마저 겪으면서 오로지 물리적인 힘에 눌려 사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것에 지나지 않는다.북한은 고씨의 탈출에 분개하기 앞서 천하대세의 흐름과 순리에 따라가는 현명함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10월 남북 총리회담 약관”/평양 77회의 참가 대표단 귀국

    유종하외무차관이 평양에서 열렸던 77그룹 제7차 아주지역 각료회의에 참석한뒤 북경과 홍콩을 거쳐 13일저녁 귀국했다. 유차관은 이날 김포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의에서 남북한은 회의시작전 정치적 문제는 서로 발언하지 않기로 사전합의를 했으며 이를 충실히 지켰다』면서 『남북의 이같은 합의는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서로 비방을 자제할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유차관은 또 『북한측이 오는 10월22일로 예정된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그러한 문제를 토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온 만큼 남북고위급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평양특별시:4·끝(새로 쓰는 북녘 지리지:4)

    ◎도심 통과 철도가 주요 교통수단/인민대학 습당은 최고의 장서 시설을 자랑/평양서 원산·남포간 4차선 고속도로 뚫려 ▷자연·생태◁ 평양시는 대동강과 그 지류에 의하여 조성된 평야와 구릉,이를 둘러싼 낮은 산지(산지)로 되어 있다.룡성 삼석 순안구역 일대를 비롯한 북부및 북동부 지역은 청룡산줄기의 끝부분.여기에는 륭골산(4백m)청운산(3백63m)국사봉(4백48m)등 해발 4백m 안팎의 산들이 솟아있고 남부 대성구역에는 아미산(1백53m)과 대성산(2백70m)이 있다.고적이 많고 동물원 식물원,유희시설등이 갖춰진 대성산은 유원지로 개발되었다. 평야는 력포구역을 중심으로 대동강 남쪽에 펼쳐진 평양언덕벌(준평원 8백50㎦)이 대표적.전형적인 준평원으로서 시의 주요 농업지대가 되고있다. ▷교육·문화시설◁ 평양시에는 많은 대학이 있다.그 가운데 으뜸은 김일성종합대학.북한 유일의 종합대학으로서 14개학부,80개 강좌,6백여 학급에 1만2천여명(야간·통신부 5천여명이 별도로 있음)의 재학생을 거느리고 있다.산하에 10여개의 연구소,50여개의 연구실이 있으며 교직원은 박사 준박사(석사)연구원등 1천2백여명에 이른다.김일성종합대학외에도 시에 자리한 주요 대학으로는 김형직사범대학 김책공업대학 기계대학 의학대학 건설건재대학 철도대학 경공업대학 연극영화대학 체육대학 음악무용대학 김철주사범대학(평양사범대학의 개칭.북한은 1990년 10월31일 김일성 가계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전국의 60개 대학의 이름을 바꾸었다)삼흥대학(전평양교원대학)인쇄공업대학 등이 있다.이밖에 김일성고급당학교 금성정치대학 인민경제대학 국제관계대학등 당과 근로단체 국가경제기관의 일꾼을 양성하는 학교와 혁명유자녀를 정치·군사적으로 육성하는 만경대혁명학원이 있다.또한 전기 기계 화학 방직 공예 건설 의학 체육 예술 농업 통계등 여러 부문의 고등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도 있으며 평양공업대학 평천공업대학 고등기계전문학교등 공장대학및 공장고등전문학교들도 평양시내에 자리잡고 있다.북한 최고의 장서능력을 자랑하는 인민대학습당과 도서관도 평양의 명물. 만수대예술단을 비롯한 전문예술단과 조선예술영화촬영소 2·8예술영화촬영소 조선과학교육명화촬영소 조선기록영화촬영소등도 평양시에 있으며 만수대예술극장 2·8문화회관 청년중앙회관 국제문화회관 평양대극장 동평양대극장 교예극장 인민문화궁전등 다수의 공연시설을 포용하고 있다. 지난 1974년 4월에 개관된 인민문화궁전은 북한이 자랑하는 대표적 공연시설.천리마거리 보통강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인민문화궁전은 부지 8만㎦,건물 6만여㎡ 규모.지상 4층,지하 1층인 이 건물은 소회의실(7백석) 연회장(7백석) 회담장 영화관등이 갖추어져 있다.1990년 10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도 이곳에서 개최됐었다. 체육시설로는 능라도의 5·1경기장을 비롯,양각도경기장 모란봉경기장등 대형 경기장과 건물면적 2만5천㎡에 6천석의 관람석을 가진 빙상관,평양실내체육관등이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의료기관으로는 평양산원이 손꼽히고 있으며 평양의학대학병원 조선적십자병원등 중앙급 병원과 평양제1병원을 비롯한 시급병원,그리고 동의중앙병원과 전문예방병원,구역 군단위 인민병원이 있다. ▷교통·운수◁ 기본은 철도.평양시를 중심으로 평의선(개성∼신의주) 평해선(평양∼해주) 평라선(평양∼라진) 평원선(평양∼원산) 평덕선(평양∼덕천)등이 운행되고 있으며 주요지방과도 철도가 연결된다. 통근열차가 시와 위성도시를 이어주며 평양∼북경,평양∼모스크바간엔 국제열차가 다닌다. 시내버스 시외버스등 자동차운수도 큰 몫을 차지.시를 중심으로 신의주 남포 원산 개성 만포등 여러 방면으로 자동차도로가 뻗어 있다.평양∼원산,평양∼남포 사이에는 4차선 고속도로가 뚫려 있으며 원산∼금강산 사이에는 관광도로가 개설되었다.이밖에도 현재 평양∼개성,평양∼희천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궤도전차와 함께 시내에 건설된 지하철도(2개 노선,총연장 34㎞)가 여객 수송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데 북한은 1990년 이후 궤도전차건설에 열중하고 있다. 1단계 구간(만경대구역 송산∼사동구역 송신)공사에 이어 92년 4월 완공목표로 2단계 구간(문수∼통일거리∼동평양화력발전소,모란봉청년공원∼만경대구역송산)공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는 대동강 연안의 가장 큰 하항(하항)으로 송림 남포 은률 재령 등 여러 지방과 해로로 연계되고 있다.대동강 운수를 돕는 미림 봉화 등에 갑문도 세워졌다.
  • 통일원,남북대화사무국 20돌 기념 세미나

    ◎“남북대화 이젠 통일 차원서 추진을”/“신뢰 회복… 「한겨레인식」 가져야/북한,핵문제 정치카드로 최대 이용할듯” 통일원 산하 남북대화사무국(국장 정시성)창설 20주년 기념토론회에서 서울대의 박태식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남북대화는 이제 정권적 차원의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박교수는 따라서 향후의 남북대화와 접촉은 통일을 상정,정권적 동기나 정권적 차원의 효과만을 노린 도식에서 탈피하여 서로를 껴안는 인식의 대전환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태식교수의 주제발표 요지이다. ▷북한의 태도 전망◁ 북한이 앞으로 전개할 대화에 대한 정책의 기본은 대남기본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다방면적 대화공세를 전개하는 것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내외에 그들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다.북한은 대외적으로 활동(유엔가입을 기해)을 확대하면서 남북대화의 진행이 부진한 것을 남한의 소극적 자세 때문으로 돌리려 할 것이며 대일수교에 이어 대미관계개선에 나설 때까지 핵사찰문제나 6·25전쟁중 행방불명자의 확인등에 성의를 보이면서 일본과 미국에의 접근을 적극화할 것이다. 북한의 대화에 대한 기본자세는 가능한 다방면으로 적극화하되 그것이 북한사회의 개방에는 이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취할 것이다.따라서 대화가 교류로 이어지고 교류가 북한사회의 개방으로 연결되기를 전제로 하는 우리의 대화개념과는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다. 그리고 대화에서 정치적 선전효과가 큰 문제를 택할 것이다.예컨대 유엔에서의 활동과 대남선전활동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한미군철수,한반도 비핵지대화 그리고 군축등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한국의 국내정치에도 충격을 주는 효과를 노릴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 민감한 핵문제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요구를 받아들이더라도 북한의 정치체제에 영향을 주는 문제가 아니다.따라서 핵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대외관계에서 북한은 핵카드 이외에는 국제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지가 없다. 그리고 핵연료 재처리의 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로서도 만전을 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일의 대북한 압력은 물론 소련도 여기에 동참해야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이렇게 되는 경우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문제등 군사문제가 주변열강에 의해 논의될 가능성이 많아진다.이러한 점은 북한도 충분히 이용하려 할것이다. ▷우리측 대화 전략◁ 우리의 대화전략은 대북대화전략과 이와 관련된 대내홍보전략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하겠다.먼저 대북대화전략이다.기본적으로 우리의 기본적 주장을 보다 솔직히 보다 당당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정치이념과 가치관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수립,이를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온것 같다. 북한은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정치군사위주의 대화공세로 나올 것이다.시기적으로는 9월 유엔가입에 맞춰 내외적으로 군사문제,즉 한반도비핵화와 군축문제를 제기할 것이 예상된다.이 문제는 국제사회와 남한내부에도 영향을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따라서 핵문제에서 미국의 불시인 불부인정책에 따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리고 핵사찰문제는 핵불확산조약가맹국으로서 의무라는 법이론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으므로 우방과 협의하여 명백한 태도를 표하는 것이 중요하다.하나의 안으로서는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을 다른면에서 받아 처리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군축 문제이다.이 문제는 일반론으로서는 원칙적으로 군사력관리의 차원에서 수동적인 자세에 놓이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북한도 10만 감군을 수십년 전부터 외치고 있는 선전차원 이상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핵문제처럼 구체적인 대응은 필요없다고 생각된다. 이와관련된 주한미군문제는 미국방부에서 밝히고 있는 3단계구상으로 내외에 대응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고위급회담은 그대로 유지하되 총리접촉의 횟수를 줄이더라도 사안에 따르는 각료급회담을 추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북대화는 이제 정권적 차원의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되는 단계에 왔다고 하겠다.종래까지는 어차피 대화가 통일과 연결지어 질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정권차원에서 이용하더라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그러나 지금부터는 모든 대화와 접촉에서 통일이 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정권적 동기나 정권적 차원의 효과를 노리지 말아야 한다.
  • 서울­평양 「적십자회담」 이후의 발자취

    ◎남북대화,20년간 2백여차례 열렸다/북방정책등 실효,고위회담만 3차례/“「7·7선언」은 전향적 대북정책” 평가 남북대화사무국이 오늘로 창설 20주년을 맞는다. 남북대화의 기획·대책수립·운영·남북연락및 통신망운영등 남북대화에 관련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남북대화사무국의 전신은 20년전인 1971년 9월1일 발족했던 적십자회담 사무국. 당시 정부는 대한적십자사 최두선총재가 같은해 8월12일 이산가족의 재회를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하자고한 대북제의를 북측이 수락하자 이를 추진하기 위한 실무기구로서 적십자회담사무국을 발족시켰다. 이에따라 같은해 9월20일 역사적인 남북적십자회담 예비회담이 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됐다.분단 26년만에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인 셈. 이후 적십자회담 사무국은 중앙정보부 소속기관으로 있다가 80년10월 통일원 소속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남북대화사무국 20년의 역사는 바로 남북대화 20년의 발자취나 다름없다. 남북은 71년이전인 63년에 도쿄올림픽 단일팀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3차례의 체육회담을 가진바 있으나 성과없는 단발성만남에 그쳤었다. 71년 적십자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된 남북대화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동안 ▲적십자회담 1백3회 ▲조절위원회회의 19회 ▲체육회담 33회 ▲경제회담 5회 ▲국회회담 13회 ▲고위급회담 22회 등 모두 2백9회의 남북간 접촉및 회담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남북대화가 최근에 이르러 남북의 총리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세차례의 공식적인 남북고위급회담을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결실은 한마디로 허리가 끊긴 강토를 하나로 잇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간 남과 북은 모두 2백9회의 회담이나 접촉을 성사시켰으나 각기 남북대화를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이용」,이에 기대를 걸었던 남과 북 모두의 동포들에게 좌절감만 심어주었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지난 88년이후 ▲남북고위급회담개최 ▲탁구및 축구 단일팀구성 등 한단계 진일보한결실을 이끌어냄으로써 남북간 대화에 의한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최근 3년간에 이룩된 남북대화의 빠른 진전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열매를 맺기까지 더 많은 인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46년간 지속돼온 남북단절의 상황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극복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남북간에 지난 20년동안 대화의 채널이 끊기지 않고 유지돼 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남북간 긴장격화의 가능성을 해소함은 물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상대방의 돌발적인 행동을 예측하고 제어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됐음은 부인못할 사실이다. 어쨌든 남과 북은 71년 9월 적십자회담을 통해 공식적인 첫대좌를 한후 이듬해인 72년 7월4일 국내외에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불러있으켰던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직통전화의 설치,그리고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3원칙등의 합의가 주요 골자. 70년대의 남북대화는 그러나 이같은 공동성명발표에도 불구하고 더이상의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하고 끝났다. 남북은 이어 80년대초 북측의 제의에 따라 총리회담을 위한 10여차례의 실무대표접촉,84년 올림픽단일팀구성을 위한 3차례의 체육회담 등을 가졌으나 아무런 대화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84년 여름 남한지역에서 발생한 수해를 계기로 남북대화는 다시 이어져 같은해 9월29일부터 10일간에 걸쳐 북측의 수재물자가 판문점을 통해 남측에 인도됐다. 이어 85년 9월 분단이후 최초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및 예술단의 서울과 평양상호교환이 실현됐다.교환단원의 규모는 비록 각 1백51명에 불과했으나 분단40년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들의 가족 친척상봉이 이뤄졌다는데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경제회담과 국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등이 잇달아 열렸으나 거둔 성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7·7선언」이 발표되면서 남북대화는 한단계 비약됐다. 88년 새로 출범한 6공화국 정부는 대북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동포간의 상호교류추진,남북간 교역문호개방등 전향적인 대북정책 기본방향을 제시한 것. 여기에 덧붙여 북방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지난 3년동안 50여회이상의 각종 남북회담및 접촉이 있었으며 쌍방 총리를 대표로한 고위급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3차례 이어졌다.탁구및 축구단일팀의 세계대회 출전이 있었으며 전통예술단상호교환,통일축구대회교환개최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남북대화일지 ▲71.8.12 남,적십자회담 개최제의 ▲71.9.20 적십자회담 첫예비회담 개최 ▲72.7. 4 7·4 남북공동성명발표 ▲80.2. 6 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접촉 ▲84.9.29 북한수해물자 인수,인도 ▲85.9.20 남북 이산가족고향방문단및 예술단공연 동시 교환 ▲90.9.5∼6,90.10.17∼18,90.12.12∼13 남북고위급회담개최
  •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상 복원해야”/정 총리 「국민과의 대화록」

    ◎소 사태로 북한지도부 인식변화 기대/총리회담 통해 평화통일 새 전기 마련/농산물 수입억제로 농가피해 최소화 ▲정원식국무총리 국정보고=이제까지 6공화국정부가 해온 일에 대해 국민들이 미흡하게 생각하는 점도 없지 않았으나 정부로서는 노태우대통령의 6·29선언으로 큰 물꼬가 트여진 민주·통일·번영이라는 역사적 소명완수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특히 말없는 대다수 국민이 폭력과 혼란을 거부하고 사회안정과 계속된 번영을 희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방의회 선거결과를 통해서 확인됐다. 요즈음은 소련이 74년동안 유지해온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결별을 해 전세계가 놀라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새롭게 인식할 것은 해방이후 남북분단의 비극적인 상황속에서 남쪽의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하여 대한민국을 수립한 것이 매우 다행스럽고 또한 역사적으로 정당하여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자리수 물가안정을 유지한다는 목표아래 통화가 늘어나는 폭을 17∼19%범위에서 억제하고 부동산투기가 조절되도록 토지초과이득세를 올 가을부터 과세하겠다. 이제 정부와 국민은 민족사의 큰 전환기에서 국민적 저력을 한데 모아 한국경제의 제2도약을 제창해야 하며 이를위해 과거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상을 복원해야 한다. ­4차남북고위급회담이 콜레라를 이유로 무산됐다.앞으로의 회담 전망과 이 회담이 통일에 어느정도 기여할 것인지(연천군 의회의장 이상천·45). ▲정총리=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정부는 양측간 화해와 신뢰회복에 역점을 두고 있다.화해와 협력을 통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통일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본틀이 마련될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평화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이룰수 있게 될것이다. ­미군 전지역이 군사시설보호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저촉돼 건물의 신·증·개축과 공업단지 유치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군사지역 보호구역 축소로 지역개발이 요망된다(바르게살기운동 포천군협의회회장 이길세). ▲이종구국방부장관=국방부는 이미 동두천시 일대 3백20만평과연천·전곡등 7개지역 1백20만평을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해제한 바 있다.정부는 앞으로 보호구역을 축소해 나갈 계획이며 방어진지 개념을 수정,경직된 방법에서 탈피해 평소에는 시민들이 생활하고 전시에는 방어진지개념이 도입될수 있는 지역을 늘려 나가겠다. ­수입자유화에 따른 국내 축산농가보호대책에 대해 설명해달라. ▲조경식농림수산부장관=수입 급증으로 농가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대외무역법에 의한 산업피해 구제 제도와 관세제도를 적극 활용,수입을 억제하고 농가피해를 최소화하겠다.또 국내 축산농가보호를 위해 육성시책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소련의 급진개혁이 한반도 통일에 미칠 영향은. ▲송한호통일원차관=단기적으로 북한은 더욱 움츠려 들 것이나 장기적으로 민주화 및 개혁·개방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소련무기 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군사·과학기술차원에서는 소련과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정치·경제적으로는 중국을 모델로 해 제한적인 개방을 시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만약 이번 사태 영향으로 북한 지도층이 인식을 전환하거나 온건·개혁그룹이 부상하게 된다면 남북간의 평화정착은 예상보다 빠를 수도 있다고 본다. ­지방자치제실시에 따른 지방의 재정적 확충방안은(양주군 여성단체협의회장 홍점분·55). ▲최인기내무부차관=지방의 세수확대를 위해 신세원의 발굴및 수수료의 현실화,민자유치,공영개발사업확대등 세외 수입증대를 꾀하고 있으며 지방채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개발금융금고」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의정부∼동두천간의 전철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이에 대한 정부측 입장은(동두천국교교장 심상옥·60). ▲장상현교통부차관=의정부∼동두천간 전철화계획에는 총 1천2백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내년도에 철도청으로 하여금 본격적인 타당성 조사를 실시토록 해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면밀히 검토토록 하겠다. ­양주군 지역에는 1천47개의 중소기업체에서 2만5천여명의 근로자가 있으나 공업계 고등학교가 없어 인력난등 불편을 겪고있다.설립을 허가할 계획은 없는지(양주군 석정국교교장 이주용·62). ▲조규향교육부차관=양주군내에 공고를 설립할 것인지 또는 기존학교를 확대할 것인지를 경기도 교육감으로 하여금 검토토록 하겠다.
  • 남북경제교류 다각 추진/정부

    ◎두만강지역 개발사업등 적극 참여/쌀등 직·간접교역 확대/오는 10월 경협기구설치 제의키로 정부는 최근의 소련사태로 북한의 경제난과 고립화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남북한직교역의 활성화 및 두만강지역 개발사업참여 등을 통해 남북경제교류협력을 다각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소련개혁에 대한 비판으로 북한의 대소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소­북한간의 교역규모의 축소가 불가피,북한이 일본·한국 등 제3국과의 교역을 늘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쌀 등 직교역과 간접교역을 더욱 활성화시켜 나갈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8일 『이번 소련사태로 무역의 50%를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적인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히고 『앞으로 북한은 대소무역거래의 상당분을 일본이나 남한 등지로 돌리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이 대소무역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우선 일본과의 통상확대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남한과의 경협분위기도 성숙돼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이에따라 북한이 지난달 7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UNDP(유엔국제개발계획기구)회의에서 제의한 청진 등 두만강유역의 경제특구 개발계획에 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오는 10월27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고위급회담과 10월중으로 예정된 UNDP2차회의(장소미정)에서 우리측의 참여의사를 전달할 계획이다. 또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모든 교류의 기본이 되는 3통(통행·통신·통상)협정의 체결과 경제분야에 관한 협의를 위한 분과위원회를 발족시키고 경제협력문제만을 다루기 위해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제협력기구의 설치 등을 제의할 방침이다.
  • 남북한 총리회담/10월22일 평양서

    ◎북측 연기제안 받아들여 두달 늦춰 오는 27일 열릴 예정이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오는 10월22∼25일로 연기돼 평양에서 개최된다. 남북한은 23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 책임연락관 접촉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우리측은 이날 접촉에서 당초 남북합의대로 제4차회담을 평양에서 이달 27∼30일 개최할 것을 요구했는데 북측이 「콜레라가 잠잠해진 후인」10월로 연기할 것을 주장해 이를 받아들였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측이 지난 20일 연락관접촉에서부터 남쪽에서 발생한 콜레라를 이유로 회담장소변경을 요구했는데 사실은 장소변경이 아니라 회담연기를 희망했던 것』이라며 『북한은 9월7일의 77그룹평양회의,10월초 있을 유엔개발계획(UNDP)회의및 연형묵총리의 유엔총회연설등이 끝난 10월중순 이후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해 놓고 소련사태의 추이에 따른 대내외적 대응방향을 새로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또 『북한은 10월 고위급회담개최에 앞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협정서명 등 대남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다음 고위급회담에서 우리측의 남북교류와 협력주장에 맞서 불가침협정의 선체결을 강력하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소 반전드라마와 북한 대응

    ◎“기대만큼 허탈”… 희비 엇갈린 평양/총리회담등 대남정책 거듭 번복/「내키지 않는 남북대좌」 자인한셈/당분간 「문단속」강화… 「조정기」 거칠듯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직 복귀로 마무리된 소련의 정변은 엉뚱하게 한반도에 그 여파를 미쳐 남북고위급회담의 연기라는 불똥을 남기었다. 소련 군부강경파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북한은 사태추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반응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기본자세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라는 사실만을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이는 곧 고위급회담이 재개된다해도 생산적인 대화가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회담전망을 낙관하고 있는 일부 정책담당자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교훈이 되고있다. 북한은 지난 19일 「고르비 실각」사실이 외신에 입전된지 불과 6시간여만인 하오 7시이를 중앙방송의 비정규뉴스를 통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함으로써 개혁과 개방을 앞세워 김일성주석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고르비의 축출에 대해 고무된 감정을 솔직히 표출했다. 이어 같은날 하오 9시 방송을 통해 콜레라발생국가 주민의 입북을 제한할 것이라는 보건부대변인의 담화를 보도,일종의 복선을 깔았다. 북한은 소쿠데타 발생 하루뒤인 20일 로동신문을 통해 『사회주의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라며 『그 누구든지 역사발전법칙에 따를 때는 승리하지만 이 흐름에 역행할때는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호언했다.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날 상오10시 판문점에서 있은 제4차 고위급회담 남북책임연락관 접촉에서 「남쪽에서의 콜레라발생」이라는 절묘한 이유를 내세워 27일로 다가온 평양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소사태에 고무된 북한으로 볼때 열악해진 국제적 입지를 반전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탐탁지 않은 남북대화에 임하기보다 좀더 사태가 명료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자는 입장이 분명해진 것이다.북한은 그러나 21일 쿠데타발생 3일이 지나면서 소련전역에서 수십만명의 국민들이 반쿠데타시위를 벌이는등 사태가 역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일체 언급을 회피한채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발표한 「정령」과 모스크바위수사령관의 통금령만을 전하는등 쿠데타주도세력에 대한 기대를 떨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1일과 22일 판문점에서 두차례의 고위급회담 남북책임연락관접촉이 있었으나 북측은 20일 내놓은 「판문점개최」만을 거듭 주장할뿐 제4차 평양회담의 개최반대인지,연기요구인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1일밤 소쿠데타가 실패로 끝났고 이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으나 북한이 이를 보도한 것은 하룻밤이 지난 22일 낮12시 뉴스에서였다.쿠데타 실패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않은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성명을 발표,정상적인 대통령의 직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사실만을 짤막하게 5번째 뉴스로 보도했다. 쿠데타실패뉴스를 접한 김일성주석이 기대만큼이나 큰 허탈감에 빠져 있으리라는 일반적 예측과 달리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곧이어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22일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고르바초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이 역시 이례적으로발빠른 행보였다. 더 나아가 북한은 23일 열린 남북판문점 책임연락관 접촉에서 「판문점개최」를 주장해 온 제4차고위급회담을 오는 10월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남북합의를 이끌어냈다. 김일성주석이 지난달 24일 조·일우호촉진의원연맹대표단과 대좌한 자리에서 밝혔듯 북한이 다시 『세계조류에 맞춰 현실적인(대외)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김주석은 그러나 소련의 격변이 「주체사상」과 같은 위대한 사상이 없는데서 비롯됐다는 말을 내세워 대내적인 결속의 고삐만은 늦추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소 사태 보도태도 일 자 보 도 내 용 19일 고르비 실각,비정규 뉴스로 신속보도. 콜레라 발생국가 주민 입북제한 발표 20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개최 주장 21일 소 국가비상사태위 「정령」만 보도 22일 고르비 직무복귀 간단히 보도 김영남외교부장,고르비지지 표명 23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10월 평양개최 제의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 한­소 우호·경협 더욱 다져질듯/소 쿠데타 실패이후의 양국관계

    ◎시베리아개발등 투자사업 박차/대북·유엔정책 수행에 자신감/북한,혼란 가중… 폐쇄노선 설땅 잃어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남으로써 한소우호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같다. 노태우대통령도 22일 언론발표를 통해 이 점을 강조했 듯이 이번 사태는 한소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부로서는 30억달러의 대소경협과 관련,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로부터 성급하다는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소경제원조에 난색을 표시했던 서방국가들도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속적인 개혁정책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때 오히려 한국의 선도적인 대소협력자세는 새삼 평가될 만한 것이다. 정부는 대소경협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한소어업협정 등 각종 협정체결과 시베리아개발 등 투자사업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쿠데타실패가 남북한관계,특히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하고 쿠데타세력을 고무·찬양하는 태도로 나왔다가 「실패」이후에는 사실보도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북한이 지금 노선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뜻한다.이번 사태는 또 폐쇄정책을 고수하며 부자세습체제로 권력이양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제 소련이 군부등 보수강경파를 배제하고 서방국들의 지원하에 개혁·개방정책을 가속화시켜나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대한 개방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그같은 징후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소련에 쿠데타가 나자 돌연 오는 27일의 제4차평양남북고위급회담을 남쪽의 콜레라발생을 이유로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자는등 대화거부자세를 취했으나 조만간 태도변화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총회에서 한반도문제가 다뤄질 경우 소련은 종전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번 소련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우리의 대유엔외교,대북정책은 확실한 자신감 속에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 소 사태 언론발표 전문 나는 소련이 불행한 사태를 큰 유혈없이 단기간에 극복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한 것을 환영합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귀환하여 합헌적인 통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소련의 갑작스런 사태에 우리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수 없었습니다.세계에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한소관계를 정상화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안위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했습니다. 세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세계의 평화에 관해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은 나로서 지난3일간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련의 사태가 비단 소련 국내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의 장래는 물론 우리와도 직결된 문제임을 실감했습니다. 오늘의 사태진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소련국민의 결의와 용기의 위대한 승리입니다.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소련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지도력이 그것을 이끌어냈습니다.나는 이에 대해 소련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소련사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단합되고 효율적인 행동은 소련사태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되었습니다.세계는 이 조류를 더욱 진전시켜 평화롭고 화해로운 하나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협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계 각국이 소련이 현재 맞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을 진전시키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소련사태의 정상화를 전기로 한소우호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것으로 믿습니다.
  • 소 쿠데타 실패와 그 이후(사설)

    역시 역사의 대세는 거스를수가 없는 것이었다.삼일천하로 끝나고만 소련의 공산보수파 쿠데타시도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그것은 반력사적 봉기였으며 그 실패야말로 역사의 순리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온 세계를 풍미하며 도도히 흐르는 공산주의 독재의 몰락과 민주개혁및 개방의 역사적 물결은 온갖 도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제갈길을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우울한 한반도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과 용기를 갖게된다. 쿠데타를 주도한 소련공산주의 보수강경파가 내세운 명분은 경제적 파탄과 연방붕괴의 저지였다.그러나 그것은 길게보면 고르바초프 개혁의 산물만인 것은 아니다.따지고 보면 그것은 소련 공산주의 70년의 과오와 그것이 낳은 온갖 비리와 부조리의 복합적 산물이며 그것이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으로 일시에 노출된 결과일 뿐인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혼돈과 좌절속에서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따라 느리긴 하지만 시정과 개선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70년의적폐가 아무런 갈등없이 하루아침에 질서있게 시정되고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참고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순리요,도리였으며 역사의 요구였을 것이다. ○반역사적봉기의 실패 쿠데타주도의 보수파도 그 점을 몰랐을 리는 없다.그러나 그들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오랜 공산독재의 사고로 굳어진 그들의 눈엔 민주개혁의 진통이 혼돈과 국가붕괴의 위기로만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그런 그들을 자극하고 부추긴 보다 큰 숨겨진 동기는 기득권의 상실에 대한 불안심리였을 것이다.공산당의 분열·약화·지리멸렬에 그들은 절망하고 분노했으며 마침내 최후수단의 무력봉기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그것은 역사에의 저항이었으며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그들의 시도는 단기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었을 뿐아니라 새로운 비전도 계획도 없는 충동적인 것이었으며 오늘의 소련이 안고있는 문제는 오직 민주개혁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보수파 쿠데타와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세계가 경악하고 분노하며 좌절감을 느꼈던 것은 그것이 반역사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소련과 세계의 역사를 되돌려 놓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크게 후퇴시킬 수는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단기간일망정 성공했더라면 그들의 계속적인 개혁추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보다 심각한 혼돈은 불가피 했을 것이며 그것이 세계에 미칠 충격 또한 심각한 것이었을 것이다.소련은 물론 세계의 혼돈,그리고 냉전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세계적인 화해와 공존시대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쿠데타의 삼일천하 실패에 세계가 이토록 안도하고 환영을 보이는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민주시민들의 용기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소동을 보면서 특별히 인상적이고 감명적인 것은 옐친을 비롯한 민주개혁파 지도자들과 자유민주화 경험이 6년밖에 안되는 소련의 민주시민들이 보여준 용감한 저항정신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단호한 대응이었으며 우리는 거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자유민주주의의 보람찬 가치를 깨닫고 신봉하게 된 민주시민의 용기있고 질서있는 대응을 우리는 보았다.구심점이 된 옐친의 용기도 돋보이지만 그를 뒷받침한 그 많은 무명민주시민의 봉기에서 우리는 소련민주개혁의 전도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부시대통령과 콜총리등 서방세계의 신속하고도 단호한 대응 또한 훌륭한 것이었으며 오늘의 세계가 하나이며 지구촌적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으로 평가할만한 것이었다. 아무튼 역사는 다시 순리로 돌아갔으며 방향을 바로 잡았다.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여전히 전도험란한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소련은 물론 세계를 위해서도 전화위복의 역사적인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이 승리를 확고히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소련국민의 보다 큰 인내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이번 사태가 응분의 지원을 하지못한 결과라는 비판도 받고 있는 세계도 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이번 사태는 소련의 실패가 몰아올 수 있는 불길한 결과를 온 세계가 음미할 수 있게 해준 훌륭한 계기이기도 한 셈이다. ○대세에 북도 순응해야 이제 다시 또 우리는 한반도의 우울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역사의 흐름을 완강히 거역하고 있는 북한을 생각하게 된다.보수쿠데타로 북한은 크게 고무받는 듯 했다.외부사건은 언제나 늦게 해설을 달아 국민에게 알리던 그들도 이번에는 이례적인 신속성을 보였다.어처구니 없는 콜레라핑계로 월말 평양개최예정의 남북고위급회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솔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소련의 반역사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북한이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걸프사태에서 고무와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던 것처럼 소련의 쿠데타소동에서도 북한은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는다.역사의 방향은 뚜렷하다.언젠가 결국은 따라야할 이 역사의 대세에 북한은 하루속히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소련사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소 쿠데타 실패… 그후의 세계정세/긴급대담

    ◎“미국주도 동·서 협력관계 강화된다”/개혁·민주화는 이젠 역류할 수 없는 대세/북한,「핵사찰 수용」등 남북대화 나설 것/부시,대소경협에 박차… 고르비 입지 제고 시켜야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을 전세계인에게 일깨워 주었다.이제 세계는 종전보다 더욱 굳건한 협력과 공존의 바탕위에서 평화시대를 구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우려됐던 남북한관계도 국제적 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대화와 교류를 가속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이용필서울대교수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쿠데타실패의 배경과 소련정국의 향배,국제질서및 동북아정세,남북한관계의 전망등을 진단해 본다. ▲이용필교수=소련의 쿠데타가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련정치체제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소련에 있어 정권교체는 평화적인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권력투쟁이라는 노골적 행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권력의 계승과 교체가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번의 쿠데타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다는 점을 구체적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쿠데타 실패의 원인을 서너가지 요소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우선 쿠데타주동세력들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만한 명분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그들은 거사후 발표한 성명에서 어떻게 소련을 이끌어가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둘째로 쿠데타 주동세력들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실패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그동안 보도에서도 나왔습니다만 혁명결행 몇시간 후에야 군이 투입됐다는 사실등이 이를 반영합니다.셋째로는 옐 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용감하고도 단호한 저항의지와 모스크바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의 쿠데타에 대한 비난과 옐친등 개혁지도자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태도도 중요한 실패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병철교수=이미 시작된 민주화나 평화정착의 큰 흐름이 일부 강경보수세력에 의해서 쉽게 저지될 수 없었다는 데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의 대국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소련내부의 엄청난 변화,즉 역사의 큰 흐름을 억지로 막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보면 정확하겠지요. 물론 쿠데타추진세력등 강경보수세력이 준비를 허술하게 한 점도 실패의 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즉 옐친등 개혁세력을 그대로 둔 채 형식적 쿠데타를 시도한 것 자체가 안이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소련 국민들이 개혁및 평화정착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지만 쿠데타세력엔 전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교수=이와함께 쿠데타의 주도세력들이 모든 통신망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한 점을 꼽아야할 것입니다.그만큼 소련의 통신시설이 방대했던 것이죠.주요 매체들은 장악됐지만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외부세계에 그대로 전해졌고,외부세계의 반응이 역으로 전파됐던 것입니다.쿠데타 주도세력들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서방의 압력이 전해졌음에도 불구,이에 대응할 만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스스로 경제적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교수=이번 쿠데타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남에 따라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고르비는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진 만큼 이제는 급진파와 보수파의 가운데에서 추진해온 개혁정책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도 기왕의 높은 국민적 지지에다 반쿠데타투쟁의 선봉에 나서 탱크 위에서 대중연설을 하는등 커다란 용기를 보여줘 고르바초프를 능가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즉시 권력투쟁을 개시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오히려 개혁추진이라는 같은배를 탄 두사람이 힘을 합치면 지지부진했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교수=고르바초프가 즉시 착수해야할문제는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이 됐던 신연방조약의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여기에는 독립을 선언한 발틱연안의 3개 공화국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가 우선적인 관심사항입니다.적정 수준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와해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어려운 문제들은 산적해 있습니다.식량난등 경제적 위기를 쉽게 극복할수는 없을 것입니다.서방의 지원에 의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지만 말입니다.비록 거사에는 실패했지만 특권적 위치에서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의 반발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느냐도 숙제입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군과 KGB등 쿠데타관련 세력들을 일시에 도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주요인물들은 물론 거세하겠지요.반대세력들의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그들을 자기편으로 부분흡수하는 식으로 세력을 약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소련권력 속성상 최고권력자가 주변에 자기사람을 포진시키기 위해서는 10년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브레즈네프가 대표적인 경우죠.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그럴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동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이제 고르바초프가 시련을 극복하고 권좌에 복귀할 경우 동서 화해무드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지난해 11월 체결된 재래식무기감축협정이라든가 금년초에 본격협상에 들어가 7월말 조인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이행하는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쿠데타에 의해 고르바초프가 한때 실각 위기에 빠졌을 때 서방진영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를 좀더 도와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제는 고르바초프의 국내적 위치가 불안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일본및 일부 서방국가들도 적극적으로 고르바초프를 도와서 대소경협을 강화하리라 예상됩니다. ▲이교수=이번 소련사태에 직면해 미국과 유럽선진국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강도높은 조치들을 취했습니다.특히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축으로해서 구축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미소간의 우호관계도 더욱 돈독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소련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개방·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한때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고르비가 건재하고 있는 동안 국교수립 등 대소접근의 기본틀이 마련된데 대해 안도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북방정책을 통해 설정해 놓은 우리 외교노선에 일단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교수=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미묘하게 변화됐을 것입니다.우선적으로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 촉진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에게는 쿠데타의 실패가 큰 경종이 됐을 것입니다.북한의 기자들이 쿠데타주역들의 비상위원회 회견장에 대거 몰려갔다는 보도등에 비추어 볼 때 대세역전에 따른 북한의 곤혹스런 입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서교수=이제 고르바초프가 더욱 힘을 갖고 재등장했으므로 북한은 좋든 싫든 과거보다 개방화에 더욱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북측이 당장 태도를 바꿔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자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기를 봐가며 남북대화와 핵사찰수용문제 등에 있어 보다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이용필 ▷약력◁ ▲1933년생 ▲미국 시카고대(정치학박사) ▲자유아카데미 교수부장 ▲서울대교수(현) 서병철 ▷약력◁ ▲1939년생 ▲독일 본대학교(정치학박사) ▲한독사회과학회 회장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현)
  • 소 쿠데타 실패와 김일성(사설)

    고르바초프 소련방대통령이 지난 19일 군부쿠데타에 의해 실각되는듯하자 북한방송은 이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북한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국가에서 모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 사태의 추이를 분석한뒤 뒤늦게 그들 나름의 시각을 곁들여 보도하는 것이 관례이다.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처형과 중국의 천안문사태에 관한 보도 등이 그 좋은 예이다.그런데도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에 그날 하오에 즉각 보도한 것은 김일성주석이 소련사태에서 크게 고무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모스크바의 정변이 소련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냉전종식으로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던질 것인지,또 소련의 쿠데타가 성공할 것인지,실패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채 사실 자체만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그 자체가 김일성주석에게는 지극히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사태를 피상적으로만 관찰하면 그로서는 입지를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고 판단할 수도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은 그로 하여금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체제의 당위성을 인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고 그 기회가 그의 발언권을 대내외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는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소련의 강경보수파와 군부가 설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켰다고 해도 페레스트로이카의 거대한 불길이 사그라들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이미 자유와 개방의 참뜻을 체득하고 있는 소련국민들은 스탈린과 브레즈네프식의 탄압정책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쿠데타가 실패할 것이란 징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었다.따라서 김일성주석은 소련사태에 고무될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반역하는 극단적인 폐쇄주의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주석은 남북관계를 냉각시키는 어리석은 작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남북체육회담을 거부한데 이어 오는 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고위급회담도 엉뚱한 트집을 내세워 무산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가 남북고위급회담을 기피하고 있는 이유가 콜레라 때문이라면 누구나 웃을 일이다.그의 속셈은 소련의 사태를 지켜본뒤 대남및 대외정책을 재조정해 보겠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문제는 탈냉전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소련사태를 바라보는 김일성주석의 인식이 어느 정도의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그는 최근 『우리도 지구의 한 나라인 이상 지구의 움직임과 함께 행동해 나가겠다』고 언급했으며 우리는 그의 이같은 현실판단을 환영한바 있다.그런데도 소련에서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돌발사태」가 일어난 것을 기화로 폐쇄의 사슬을 더 죄고 남북관계를 냉각시킨다면 그에게나 7천만겨레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김일성주석이 「남조선해방」이라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남북관계도 개선시켜나가는 슬기로운 자세를 보여주었으면한다.그는 소련의 정변이 결국 민주화된 국면의 힘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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