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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 “산과 함께 산이 되었던 분들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

    문 대통령 “산과 함께 산이 되었던 분들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

    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한국 원정대와 네팔인 셰르파 등 9명이 히말라야 등반 도중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애도와 추모의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04년과 2016년 두 차례나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날 만큼 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구루자히말 남벽 직등, 신 루트 개척 중 사고를 당한 김창호 대장과 이재훈·임일진·유영직·정준모 대원을 추모한다”고 밝혔다. 또 “함께 산을 오른 네팔인 셰르파와 가이드에게도 한국 국민을 대표해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어떻게 오르느냐’는 끊임없이 산을 향하는 산악인의 화두”라며 “자신의 근육만으로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산악인의 정신이야말로 자연을 존중하며 동시에 뛰어넘고자 하는 위대한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영역을 넓히는 일에는 어떤 영역에서도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눈 폭풍이 아홉명의 산악인을 영원히 산속으로 데려갔지만, 신루트를 개척하려 한 그분들의 용기와 투혼은 결코 묻힐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이 계속될 때 산과 함께 산이 되었던 분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라며 “아홉 분을 되도록 빨리 가족과 동료들 곁으로 보내드리고 싶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우리 마음이 모두 담길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유가족의 슬픔에도 함께하겠다”며 “위대한 도전을 되새기며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앞서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은 지난달 28일 신루트 개척을 위해 네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봉우리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이들의 참변 소식은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위해 지난 13일 오전 프랑스 파리로 출발한 직후 국내에 알려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창호 대장 등 시신 9구 모두 수습, 전문가도 “왜 이런 변이”

    김창호 대장 등 시신 9구 모두 수습, 전문가도 “왜 이런 변이”

    그렇게도 산을 깊이 사랑하더니 산으로 영원히 떠났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구르자 히말(해발고도 7193m) 베이스캠프를 덮친 강풍 때문에 협곡 아래로 추락사한 김창호(49) 대장은 늘 산을 새로운 방식, 새로운 루트로 탐험하려고 노력하던 참 산악인이었다. 14일 아침 대형 헬리콥터를 동원해 김 대장과 한국인 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 등 아홉 구의 시신을 모두 수습해 이날까지 수도 카트만두로 운구할 계획이라고 외교부가 밝혔다. 김 대장과 이재훈(25)·유영직(51) 대원, 영화 ‘히말라야’ 제작에도 참여한 다큐 감독 임일진(49)씨,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들른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 등이 네팔인 가이드들과 함께 변을 당했다. 지난 7일 구르자 히말의 남동면 3000m 직벽 아래 해발 3500m 지점에 도착한 원정대는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걸어서 하루 걸리는 구르자카지 마을에 내려가 있던 여섯 번째 한국인 대원이 11일 밤부터 교신이 되지 않아 다음날 올라갔더니 베이스캠프는 온데 간데 없고 대원들은 텐트에 갇힌 채로 추락해 협곡 아래 500m 지점에 시신이 흩어져 있었다. 구르자 히말은 정상을 발 아래 둔 이가 30명에 그치고 1996년 이후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어 8000명 가까이 등정한 에베레스트(해발고도 8848m)보다 더 위험한 산이다. 더욱이 이번 원정대는 직벽 아래 비좁은 지형에 캠프를 설치한 것이 화근이 됐다.시신 수습을 도운 미국의 구조 단체 ‘글로벌 레스큐’의 댄 리처즈는 “베이스캠프가 마치 폭탄에 맞은 것처럼 처참한 몰골”이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고도에서는 이 정도로 심한 강풍이 불지도 않고, 경험 많은 원정대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 판단해 베이스캠프 자리를 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은 세계 최단 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올랐고,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 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국제 산악계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2016년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까지 남벽 직등으로 세계 초등하는 등 늘 고정 로프와 고소 등반 셰르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지향했다. 자금이나 인력을 많이 동원하지 않고 소규모 원정대를 꾸려 자신이 직접 기록하고 정찰해 꼼꼼히 자료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줄였다. 늘 기록을 중시하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등반 기술을 몸으로 전수하고 싶어 했다. 코리안 웨이 원정대원 얼굴이 자주 바뀌는 이유이기도 했다. 생전에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지인이 미국 존 뮤어 트레일을 다녀온다고 하자 자신이 아끼던 침낭을 기꺼이 빌려주는 따듯한 면도 있었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의 긴급 지시에 따라 외교부는 신속대응팀을 구성해 2명이 15일 카트만두로 출발해 시신 운구 및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하게 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히말라야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눈폭풍에 사망

    히말라야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눈폭풍에 사망

    네팔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에서 한국인 5명이 등반 도중 눈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주 네팔 한국대사관은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 구르자 히말 원정 도중 실종됐던 김창호(49) 대장 등 한국인 원정대 5명의 시신을 13일(현지시간) 새벽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해발 35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가 눈사태에 파괴된 채 전날 발견됐다”면서 “이어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의 시신이 오늘 새벽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Koreanway) 구르자 히말 원정대’는 지난 9월 28일 구르자 히말 등반을 떠났다. 이들은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으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원정대는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4·식량·의료 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구성됐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으로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부터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현지 영자 매체인 히말라야타임스가 한국인 사망자 중 1명으로 보도한 정준모는 애초 원정대 명단에 없었다. 원정대는 원래 6명으로 구성됐지만 건강 문제로 1명을 산기슭에 남겨둔 채 남은 5명이 네팔인 가이드 4명과 함께 등반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당초 12일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돼도 이들이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서 잔류했던 동료가 네팔인 가이드 1명을 올려보내 베이스캠프가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베이스캠프는 눈사태가 덮쳐 거의 완전히 파괴돼 있었으며, 캠프 주변에서 원정대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원정대는 12일 밤 해발 3500m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눈폭풍 등 강풍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현지 경찰 대변인 역시 AFP통신을 통해 “우리는 사고가 눈폭풍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구조수색 헬기 조종사가 시신들이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네팔 대사관 관계자도 “이들이 등반 도중 강풍에 휘말리면서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베이스캠프 바로 근처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됐고, 나머지 시신 8구는 계곡 아래에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기상 상황이 13일 오전까지 좋지 않아 현장을 수색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이 머물렀던 캠프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최소 하루 동안 트레킹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현지 경찰관 비르 바하두르 부다마가르는 13일 오전 구조 헬기가 이륙했지만 악천후로 착륙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조헬기 조종사는 AFP 통신에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텐트가 날아갔다”면서 “너무 얼음으로 뒤덮인 상황이라 수색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원정대원들의 시신 수습과 운구를 위해 네팔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본부와 주네팔대사관은 사고신고 접수 즉시 재외국민보호대책반 및 현장대책반을 각각 구성했다”면서 “네팔 경찰 당국과 베이스캠프 운영기관 등을 접촉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시신 수습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시신을 수습하려면 구조 헬리콥터를 띄워야하는데 현지 날씨가 나빠 오늘은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14일 새벽부터 현지 날씨를 고려해 수습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구조 헬리콥터가 투입되더라도 마땅히 착륙할 장소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헬리콥터에서 구조대원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시신을 수습해야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작업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현지에서 소형헬기로 수색한 결과 시신은 발견하였으나, 소형헬기로는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수습장비를 구비한 헬기를 이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신을 수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시신 발견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 등반 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5명 시신 발견

    한국인 등반가 5명이 히말라야 구르자 히말에서 눈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주 네팔 한국대사관은 김창호 대장 등 한국인 원정대 5명의 시신을 13일(현지시간) 새벽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해발 35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가 눈사태에 파괴된 채 전날 발견됐다”면서 “이어 한국인 원정대원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의 시신이 오늘 새벽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Koreanway) 구르자 히말 원정대’는 지난 9월 28일 구르자 히말 등반을 떠났다. 이들은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으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구르자 히말은 네팔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 산군에 있는 해발 7193m의 산봉우리다. 원정대는 김창호 대장을 포함해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4·식량·의료 담당), 임일진(49·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구성됐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베테랑 산악인으로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부터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현지 영자 매체인 히말라야 타임스가 한국인 사망자 중 1명으로 보도한 정준모는 애초 원정대 명단에 없었다. 원정대는 원래 6명으로 구성됐지만 건강 문제로 1명을 산기슭에 남겨둔 채 남은 5명이 네팔인 가이드 4명과 함께 등반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당초 12일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돼도 이들이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서 잔류했던 동료가 네팔인 가이드 1명을 올려보내 베이스캠프가 파괴된 것을 발견했다. 베이스캠프는 눈사태가 덮쳐 거의 완전히 파괴돼 있었으며, 캠프 주변에서 원정대의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경찰 대변인 역시 AFP통신을 통해 구조수색 헬기 조종사가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8명이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기상 상황이 13일 오전까지 좋지 않아 현장을 수색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이 머물렀던 캠프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최소 하루 동안 트레킹을 해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현지 경찰관 비르 바하두르 부다마가르는 13일 오전 구조 헬기가 이륙했지만 악천후로 착륙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조헬기 조종사는 AFP 통신에 “모든 것이 사라졌고 모든 텐트가 날아갔다”면서 “너무 얼음으로 뒤덮인 상황이라 수색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원정대원들의 시신 수습과 운구를 위해 네팔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본부와 주네팔대사관은 사고신고 접수 즉시 재외국민보호대책반 및 현장대책반을 각각 구성했다”면서 “네팔 경찰 당국과 베이스캠프 운영기관 등을 접촉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시신 수습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현지에서 소형헬기로 수색한 결과 시신은 발견하였으나, 소형헬기로는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수습장비를 구비한 헬기를 이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신을 수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 김창호! 네팔에서 눈폭풍 캠프 덮쳐 대원 8명과 함께 산화

    아 김창호! 네팔에서 눈폭풍 캠프 덮쳐 대원 8명과 함께 산화

    젊은 산악인들과 함께 미답봉을 오르겠다는 김창호(49) 대장이 스러졌다. 김 대장과 대원 등 한국인 5명을 비롯해 네팔인 가이드와 세르파 4명 등 적어도 9명이 12일(이하 현지시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라울리기리산 근처 구르자 히말에서 눈폭풍이 베이스캠프를 덮쳐 모두 세상을 등졌다고 현지 히말라야 타임스가 전했다. 김 대장은 이재훈, 유영직, 정준모 대원, 다큐 감독 임일진 등과 함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해발고도 6000~7000m대 봉우리들을 새로운 루트로 오르는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한산악연맹에 따르면 정준모 대원은 원래 김 대장 일행이 아니었는데 어떤 경위로 합류해 함께 변을 당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국 BBC는 소형 헬기가 13일 김 대장 등 대원 8명의 시신을 육안으로 확인했지만 나머지 한 구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전했지만 네팔 주재 한국 대사관은 한 구의 시신은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발견됐다고 엇갈리게 전했다. 현지 경찰 구조대는 시신을 수습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다른 헬기를 투입해 시신을 수습하고 우리 대사관은 유족들의 네팔 방문과 시신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히말라야 타임스에 따르면 ‘트레킹 캠프 네팔’의 왕추 셰르파 상무이사는 이날 저녁 거대한 눈사태로 라울라기리산 남향 중턱에 있는 구르자 베이스캠프가 파묻히면서 이들이 급경사면으로 추락해 숨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더 높은 캠프로 등반을 계속하기 위해 날씨가 양호해질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는데 강한 눈폭풍이 덮치면서 산사태가 일어나 해발 3500m에 있는 베이스캠프를 덮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까지 남벽 직등으로 세계 초등해 ‘마이 드림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에 첫발을 뗐다. 그는 세계 최단 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오른 인물이다.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국제 산악계에서도 인정받았다. 화려한 등반 업적이나 수상 실적보다 더 중요한 건 알파인 스타일로 한국 등반사의 새 지평을 계속 열었다. 2007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했다가 박영석 원정대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2013년 재도전하면서 해발고도 0m에서 카약과 사이클, 캐러밴, 8848m의 정상 도전까지 모두 무산소로 해낸 게 출발점이었다. 2016년에는 자전거로 유라시아를 횡단했다. 남들이 깔아놓은 캠프와 고정 로프, 고소 등반 셰르파 없이 대원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지향한다. 강가푸르나 원정에 들인 돈은 3600만원으로 기존 방식의 절반에도 밑돈다. 모두 공평하게 짐을 들고 대장이 식사 당번을 맡기도 한다. 한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가 여섯이나 되지만 남이 깔아놓은 루트로 오른 봉우리 숫자만 헤아린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도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는 등정의 의미를 제대로 찾자는 게 알파인 스타일의 요체다. 김 대장은 지난해 2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전의 고산 등반은 글이나 강연으로만 전수됐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말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경험하고 노하우를 익혀 다음에 같은 정신으로 다른 후배들을 이끌고 새로운 코리안 웨이를 개척하는, 이른바 ‘새끼 치기’를 해 나가는 식”이라고 강조했다. 5년쯤 뒤에는 ‘유어 드림 프로젝트’를 꾀한다. 김 대장은 “평생 히말라야에 도전했는데 잘 안 된 분의 꿈을 이뤄 주거나 산악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과 함께 어느 봉우리를 오른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족으로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로 서울숲 조경 설계에도 참여한 부인과 세 살 딸 단아가 있다. 생전에 고인은 “단아가 다섯 살쯤 되면 가족 셋이서 캐나다 유콘강에 카약을 타러 가려고 적금을 붓고 있다”고 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포스트잇도 접착제 실패서 나와”…첫 ‘실패박람회’ 연다

    “포스트잇도 접착제 실패서 나와”…첫 ‘실패박람회’ 연다

    최재천 강연·소상공인 재창업 상담 등 “실패 공유하며 재도전 응원 분위기 조성”1968년 미국 3M의 스펜서 실버 연구원은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려다 너무도 약한 접착력을 가진 물질을 만들어 좌절했다. 실버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결과를 그대로 회사에 알렸고, 동료들은 되레 실버를 격려했다. 몇 년 뒤 같은 회사의 아트 프라이 연구원은 일반 메모 테이프의 접착력이 너무 강해 접착면을 상하게 한 것을 보며 ‘쉽게 붙였다가 뗄 수 있는 메모지’를 구상했다. 그는 과거 실버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려 제품 연구에 나섰다. 이렇게 개발된 것이 지금 전 세계가 쓰는 ‘포스트잇’이다. 실패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얻은 노하우로 다른 아이디어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실패는 불가피한 것인 만큼 사회적으로 용인할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는 다음달 14~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다양한 실패 사례를 공유해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국내 최초의 ‘실패박람회’를 연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박람회의 슬로건은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다. 행안부는 이날 배우 박호산, 산악인 홍성택, 개그맨 겸 공연기획자 서승만, 나노독성학 연구자 박은정 경희대 교수 등을 실패박람회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20년 넘는 무명 연극배우 생활 끝에 올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수상한 박호산은 “수백 번 넘게 (TV와 영화)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인생에서 실패와 성공은 늘 함께하는 것이며 실패는 성공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 주는 연마제”라고 말했다. 히말라야 로체 남벽 등반에만 5차례 실패했던 아시아 유일의 ‘내셔널지오그래픽 공식 탐험가’ 홍성택도 “실패를 통해 어떻게 두려움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박람회 주요 행사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이 연사로 참여하는 ‘실패문화 콘퍼런스’가 있다. 자연에서도 실패는 발전의 필수 요소인 만큼 실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오히려 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조성되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업해 ‘재도전의 날’이라는 상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과거 실패한 경험이 있는 소상공인에게 업종별 전망을 소개해 준다. 세무·회계 등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을 통해 다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패와 재창업 수기를 공모해 상금도 주는 ‘혁신적 실패 사례 공모전’도 함께 열린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이번 박람회를 통해 취업 경쟁에 힘들어하는 청년들과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재도전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불굴의 산악인 홍성택, 광명시 홍보대사에

    불굴의 산악인 홍성택, 광명시 홍보대사에

    경기 광명시는 불가능했던 히말라야 로체 남벽에 6번째 도전하는 한국원정대 홍성택(52) 대장을 광명시 홍보대사에 위촉했다고 6일 밝혔다. 불굴의 산악인 홍성택 대장은 동식물과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지구촌 5극지를 세계 최초로 정복한 등반가다. 지난해 로체 남벽은 다섯 번째 도전으로 8300m까지 올라갔다가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200m를 남기고 아쉽게 내려왔었다. 홍 대장은 오는 4월 6번째로 로체 남벽에 도전한다. 홍 대장은 국내 산을 다니면서 암벽을 타다가 25년 전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꾸리는 해외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하면서 허영호 대장을 만났다. 21년 전부터 엄홍길·박영석 대장과 함께 등반을 해오다 그들이 은퇴하고 난 후 뒤를 잇고 있다. 이날 위촉패를 받은 홍 대장은 “세계 누구도 오르지 못한 8500m 히말라야 로체남벽을 5번 도전했던 불굴의 의지를 가슴에 품고 대한민국과 광명시를 널리 알리겠다 ”면서 “이번 기회에 반드시 로체남벽을 세계 최초로 꼭 정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끝내 다섯 번째 로체 남벽 초등 포기, 홍성택 대장 용기있는 결단

    끝내 다섯 번째 로체 남벽 초등 포기, 홍성택 대장 용기있는 결단

    홍성택 대장이 끝내 다섯 번째 로체 남벽 세계 초등 도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정대 소식을 전하고 있는 변규보 대원은 24일 새벽 전달한 이메일을 통해 “지난 15일 베이스캠프를 떠나 20일 정상공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다음날 시속 120㎞가 넘는 강풍이 잦아 들지 않아 등정하지 못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정상 부근에 평균 시속 100㎞ 이상의 강풍이 불어대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홍성택 대장은 20일 바람의 세기가 평균 시속 45㎞로 낮아질 기미가 보여 이날을 정상 공격 날짜로 정하고 16일 대원들, 세르파들과 함께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마지막 정상 공격에 필요한 충분한 물자를 모두 배낭에 담아 지고, 피켈과 고정로프로 시속 60㎞을 넘는 강풍을 헤치고 등반을 이어나갔지만 20일 바람은 여전히 120㎞ 이상 강한 제트기류를 생성했다. 이에 안전한 등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홍성택 대장은 철수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강풍에 쓰러지고 찢긴 텐트에서 밤을 지낸 뒤 다음날 아침 모두가 무탈하게 하산을 완료했다. 기류가 약해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정상을 불과 200여m 남겨둔 캠프 4에 등정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남겨둔 채 철수했다. 변규보 대원은 “비교적 빠른 등반 속도에 세계 산악계의 관심과 기대가 컸고 정상까지 마지막 구간 등반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캠프 4에 준비돼 있었던 만큼 아쉬운 철수 결정이었다”며 “시속 120㎞에 가까운 바람이 불고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해발 8000m 고봉에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전원 무사 하산한 것은 홍 대장이 용기있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원정의 등정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 및 평가를 통해 내년 봄에 다시 여섯 번째로 로체 남벽 세계 초등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로체 남벽 초등 나선 홍성택 대장 “정상 공격 여전히 대기”

    로체 남벽 초등 나선 홍성택 대장 “정상 공격 여전히 대기”

    홍성택 대장이 세계 초등에 도전하고 있는 로체 남벽 원정대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1차 정상공격에 나섰으나 예상하지 못한 폭설과 강풍 탓에 등정하지 못하고 다음 정상 공격 기회를 노리고 있다. 원정대 홍보를 맡고 있는 변규보 대원이 10일 보내온 이메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1차 정상 공격 예정일 전날까지 로체 남벽에는 강한 햇살 때문에 눈이 녹아 사라져 쉬운 등반이 점쳐졌으나 앞서 설치했던 루트들의 환경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미리 설치해둔 고정 로프들로는 등반이 불가능했고 일부 고정 로프를 다시 설치해야 했다. 지난달 30일과 이튿날은 예기치 못한 폭설이 내리면서 고정 로프 대부분이 눈에 뒤덮였고, 큰 일교차에 밤새 눈이 얼어붙어 새벽에 등반을 시작할 때는 고정 로프를 둘러싼 얼음을 깨가면서 등반을 해야 했다. 홍성택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과 세르파들의 체력은 급속히 고갈됐으며 캠프 2와 캠프 3에 설치해둔 텐트들은 크게 손상돼 있었고, 미리 보관해둔 식량 및 연료가 유실돼 있었기 때문에 휴식 및 식사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대원 호르헤 에고체아가는 캠프 2로 이동하다 왼발 엄지발가락을 낙석에 맞아 골절상을 입고 지난 1일 먼저 하산했다.홍성택 대장이 지난 1일 캠프 4로 왔을 땐 강풍과 함께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원래 홍 대장은 그날 캠프 5를 설치하고 이튿날 정상 공격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날씨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안전한 등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홍 대장은 2일 일단 하산하기에 이르렀다. 원정대는 9일 현재 베이스캠프에서 유실된 식량과 가스 및 재설치가 필요한 텐트 등의 물자를 준비하고 체력을 보충하면서 다음 등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풍속이 시속 100㎞가 넘는 제트기류가 몰아치는 로체 남벽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변규보 대원은 15일까지 기상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날이 지나야 정상 공격이 가능한 날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홍성택 대장의 다섯 번째 도전이 성공할지 주목되는데 이제 겨울이 다가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홍성택 로체 남벽 원정대 죽을 고비, 그래도 “이달말 재도전”

    홍성택 로체 남벽 원정대 죽을 고비, 그래도 “이달말 재도전”

    “다시 한 번 신께서 보호하고 계심을 느꼈다. 정말 하늘이 날 살렸다.” 지난달부터 네팔 히말라야 로체(해발 고도 8516m)의 남벽 세계 초등에 다섯 번째로 도전하고 있는 홍성택(50) 대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원정대가 23일 알려왔다. 홍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는 당일 8400m 지점에 구축한 캠프 5로 진출하다 비처럼 쏟아지는 낙석과 강한 눈사태로 홍 대장과 대원 한 명, 세르파 4명이 다치고 텐트와 장비를 잃어버리는 횡액을 당했다. 지난 일주일 구름 한 점 없이 말간 하늘과 밝은 햇살이 쏟아져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캠프 3(7800m)와 캠프 4(8250m)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맑은 날씨 때문에 빙벽의 눈들이 녹아내려 ‘스노 샤워’를 넘어 ‘스노 리버’를 이뤘다고 원정대는 전했다. 사람 키만한 바위를 피하던 프루바 세르파 대장이 다른 낙석에 오른쪽 쇄골 타박상을 입었다. 나다 세르파와 다른 프루바 세르파는 허벅지, 락파 세르파는 머리 타박상을 입었다. 세르파들은 전원 서둘러 하산해야 했고, 홍 대장과 성낙종 대원 및 호르헤 에고체아가(스페인) 대원은 캠프 3의 두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또 눈사태가 홍 대장이 쉬던 텐트를 덮쳐 텐트 양쪽이 동시에 찢어지면서 장비와 물품들이 2000m 아래 빙하 속으로 사라졌다. 1분 정도 뒤 눈사태가 그쳤을 때 텐트 안에 남은 건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던 홍 대장뿐이었다.홍 대장은 어깨 양쪽과 등 주변에 타박상을 입었고, 다행히 횡액을 피한 호르헤 대원과 성 대원의 도움으로 몸을 추스르고 이른 아침 하산을 시작했다. 낮시간에 낙석과 눈사태가 가장 심한 캠프 2와 캠프 1 사이의 쿨루아르(눈골짜기) 지대에 도착했을 때는 고정 로프의 피복이 쏟아지는 돌과 얼음덩어리에 벗겨져 손상됐고, 낙석을 동반한 스노 리버가 이미 흘러 내리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로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신경쓰며 쿨루아르를 건너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 대원과 홍 대장은 무사히 건넜으나, 호르헤 대원은 건너던 중 또 낙석에 오른 무릎 타박상을 입었다. 무사히 모두 베이스캠프로 내려왔으나 프루바 세르파 대장은 카트만두 병원으로 이송됐고, 홍 대장과 대원들, 다른 세르파들은 베이스캠프에서 가까운 마을에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고 있다. 홍 대장은 “나의 존재가 자연 앞에서 얼마나 경미하고 무의미한지 깨달았고 나도 모르게 거대한 자연 앞에서 거만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재정비해 로체 남벽에게 다시 우리 원정대를 허락해달라고 구해볼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원정대는 기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보된 닷새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오는 28일 다시 등정에 나설 계획이다. 정상 도전 시점은 오는 31일과 다음달 1일 사이로 잡고 있다고 원정대는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아시아 황금피켈상 다음달 3일 시상, 김창호 2연속 수상할까?

    아시아 황금피켈상 다음달 3일 시상, 김창호 2연속 수상할까?

    올해 아시아 최고의 등반 팀을 가리는 제12회 아시아 황금피켈상(Piolets D‘or Asia) 및 제10회 골든클라이밍슈상 시상식이 다음달 3일 오후 6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다. ‘등산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황금피켈상의 시상 기조는 높은 난이도에 빨리, 최대한 소규모 원정대를 꾸리는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며 후보 대부분이 신루트 개척 내지 초등을 추구한다. 이들은 산소통을 비롯해 고정 로프나 셰르파 등의 인위적 도움을 받아 이룬 결과가 과정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알리며 동시에 상업주의에 물든 등반과 자연을 파괴하는 등반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올해도 아시아 황금피켈상 심사위원회는 이와 같은 기조를 실천한 후보 팀을 아시아산악연맹 가맹국과 아시아 각국 등반전문지로부터 추천 받은 뒤 엄정한 조사를 거쳐 세 팀을 최종 후보로 가렸다. 지난 6월 ‘코리안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도 히마찰프라데시 쿨루 산군의 다람술라 북서벽(6446m)에 신루트를 낸 한국의 김창호·안치영·구교정·이재훈, 8월 중국 스촨성의 샤룰리 산군 북쪽의 고난도 미답봉인 촐라 동봉(6163m)에 신루트를 낸 중국의 가오 준·리우 준푸·젱 샨 샨둥, 8월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 무즈타그의 시스파레 북동벽(7611m)에 신루트를 낸 일본의 하라이데 카주야·나카지마 켄로다. 김창호 대장은 최석문·박정용과 함께 지난해 10월 네팔 강가푸르나 남벽에 신투르틀 개척해 지난해 2월 일본 북알프스 츠루기다케 구로베 계곡의 골든 필라 루트를 초등한 일본의 코지 이토·유스케 사토·키미히로 미야기 등반팀과 공동 수상한 데 이어 2년 연속 수상, 7회 한국 힘중 남서벽팀으로 수상한 데 이어 통산 세 번째 수상을 노린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등반전문지 편집장들과 국내 산악인들로 심사위원회를 따로 꾸려 심사해 다음달 3일 현장에서 수상자가 발표된다. 제10회 ‘골든 클라이밍슈상’ 시상식도 진행되는데 2015년 볼더링 월드컵 종합 1위에 올라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신세대 클라이머 천종원 , 15년 동안 중국 내 어려운 루트 대부분을 등반했고 올해 중국인 최초로 5.14d 난이도 루트를 완등한 중국의 왕청화, 일본 히에이산의 5.14b 호라이즌을 세 번째로 올랐고 미국 로키국립공원의 5.14c ‘검은 늪지대의 생명체(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를 네 번째로 오른 일본의 이치미야 다이스케가 후보에 올랐다. 두 상을 주관하는 월간 ‘사람과 산’의 창간 28주년 기념식도 겸해 열리는데 각종 산악상도 시상한다. 제23회 한국산악문학상 소설 부문은 양진채의 ‘그대 이름 부르리’, 시 부문은 당선자 없고, 제17회 알파인클라이머상은 코리안웨이 인도 원정대, 제17회 스포츠클라이머상은 천종원, 제13회 환경대상은 우두성 사단법인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 대표, 제2회 꿈나무클라이머상은 정지민(온양 신정중 1학년)과 전유빈(충남 거산초 6학년)이 수상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로체 남벽 도전 나선 홍성택 탐사대 이제야 BC 구축하고 루트 개척

    로체 남벽 도전 나선 홍성택 탐사대 이제야 BC 구축하고 루트 개척

    네팔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맞닿은 로체(해발고도 8516m) 남벽 도전에 나선 홍성택(50) 대장이 이제야 베이스캠프 구축을 마쳤다. 로체 남벽은 높이 3300m의 수직 빙벽으로 엄청난 난이도로 악명높다.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을 만한 공간도 없어 바위에 구조물을 설치해 잠을 자야 하고 바람도 심해 사고의 위험도 늘 안고 있다. 로체를 오른 이들은 많지만 남벽으로 오른 이는 아직 없다. 홍 대장은 허영호(62), 엄홍길(56),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서 저세상으로 떠난 박영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셋 모두와 함께 세 차례 이상 등반을 해본 경험이 있는 귀한 산악인이다. 그에게 이번은 다섯 번째 도전이다. 1998년 8월 첫 도전에 실패한 뒤 2007년 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올랐으나 7000m 지점에서 포기했다. 2014년 9월에는 8200m까지 올랐고, 지난해 8월에도 정상을 300m를 남기고 물러섰다. 2011년 안나푸르나로 떠나기 며칠 전 박영석 대장이 “다녀온 뒤 로체 남벽 함께 가자”고 말한 뒤 떠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 대장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홍 대장의 다섯 번째 도전을 이어나간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당초 탐사대는 23일까지 베이스캠프 구축을 끝내고 등반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기상이 계속 나빠 에베레스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루클라 공항 접근조차 어려워지고 루클라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짐들을 실어나를 당나귀와 야크를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28일 알려왔다. 베이스캠프는 26일 구축됐으며 다음날 등반 장비 및 식량 검토와 분류를 마쳤고, 28일 등반을 시작해 캠프 1을 해발고도 5900m 지점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탐사대는 일주일 정도 베이스캠프 구축이 늦어졌지만 다음달 25일 캠프 4와 캠프 5를 구축하고 정상 공격에 나서는 일정에는 커다란 차질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전 등정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길일을 잡아 팡보체의 고승을 모셔 치를 예정인데 아직 일시가 정해지지 않았다. 탐사대는 또 베이스캠프에서 현지 휴대전화도 통하지 않고 있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언론에게 소식을 전하는 변규보 대원이 일주일에 한 번씩 베이스캠프에서 가장 가까운 추쿵 마을까지 내려와 메일을 보내는 식으로 탐사대 소식을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탐사대에는 세계적인 자연 다큐 채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촬영팀이 함께 해 홍 대장 등의 탐사 전체 일정을 카메라에 담을 계획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한라산 남벽 탐방로 내년 3월 재개방 유보

    내년 3월로 예정됐던 한라산 남벽 정상 탐방로 재개방이 사실상 유보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환경단체 등이 제기하는 한라산 정상부 훼손 여부 등에 대한 도민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남벽 정상 탐방로는 한라산 백록담 바로 밑 남벽 분기점에서 동릉 정상까지 이어지는 약 800m 구간이다. 1986년 개설됐지만 이용객 증가로 등반로 일부가 붕괴돼 1994년부터 출입이 금지됐다. 세계유산본부는 최근 용역보고서에서 남벽을 개방해도 암벽 붕괴 등의 위험 요인이 없고 한라산 경관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환경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재개방에 반대해 내년 6월까지 진행 중인 ‘한라산 가치 보전 천년대계’ 용역을 통해 추가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성판악탐방로에 탐방객이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주차난, 교통체증, 환경오염, 오수처리용량 초과 등이 불거져 탐방객 분산을 위해 남벽 정상 탐방로 재개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역 환경단체들은 “제주의 최고 경관지인 한라산의 남벽 정상 탐방로 재개방은 한라산에 대해 보존보다는 이용을 우선하자는 매우 위험한 결정”이라며 “재개방이 아니라 영구 폐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남벽 탐방로 재개방은 탐방객 총량제, 사전 예약제, 탐방로별 휴식년제 등 한라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지역 환경단체 등에서 주장하는 한라산 정상부 암벽 붕괴, 생태계 훼손 등에 대해 추가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쳐 올해 하반기 재개방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한라산 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한라산 적정 탐방객 산정 및 사전 예약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시행 중이다. 한라산 탐방객 수는 2002년 43만명에서 2007년 100만명을 돌파한 후 지난해 120여만명을 기록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라산 남벽 탐방로 24년 만에 재개방

    한라산 남벽 탐방로 24년 만에 재개방

    1994년도부터 출입을 통제한 한라산 남벽 탐방로가 올해 복원공사를 거쳐 내년 3월 재개방된다.제주도는 한라산 성판악 탐방객 쏠림현상으로 인한 주차난과 안전사고, 급속한 자연환경 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이를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남벽 탐방로가 개방되면 한라산 탐방로가 5개 코스로 늘면서 탐방객들이 한라산을 짓밟는 하중도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1986년 개설된 남벽 탐방로는 탐방객 증가로 일부 구간이 붕괴돼 1994년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도는 남벽 기존 탐방로 보수 및 신설 탐방로(남벽~성판악 1800고지 연결 1.3㎞) 개설 방안 등을 마련했다. 기존 탐방로를 최대한 활용하되 정상 진입구간 낙석위험이 없는 곳에 하층식생을 보호할 수 있는 목재 데크 등을 설치해 옛 남벽 탐방로를 일부 구간 우회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김홍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남벽 탐방로가 재개방되면 정상 탐방객 분산으로 환경 훼손이 최소화되고, 침체된 돈내코 탐방로 활성화로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융단처럼 펼쳐진 산철쭉과 털진달래, 서귀포 해안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벽 탐방로 재개방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벽 탐방로 지역은 한라산에서 유일한 너덜지대(많은 돌들이 깔린 산비탈)로 이뤄져 탐방객들이 밟으면 돌덩이들이 쓸려 내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등 복원 자체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정상부 능선 지역은 바닥이 암반이 아닌 토양층이어서 탐방객이 밟으면 다시 훼손된다는 지적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한라산은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온전한 모습으로 더 보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백록담 남벽 탐방로 재개방은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스포츠&스토리] 루트 개척에 올인해 온 삶, 남은 꿈은 다른 이를 위한 산

    [스포츠&스토리] 루트 개척에 올인해 온 삶, 남은 꿈은 다른 이를 위한 산

    “귀국한 지 석 달을 넘겼는데도 후배들의 몸이 온전히 회복되지 않아 걱정입니다.”지난해 10월 네팔 히말라야의 아샤푸르나(해발고도 7140m) 정상 100m 앞까지 새로운 루트를 개척한 데 이어 강가푸르나(해발고도 7455m)까지 남벽 직등으로 세계 초등해 ‘마이 드림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에 첫발을 뗀 김창호(48·노스페이스) 대장을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1층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그는 세계 최단 기간(7년 10개월 6일) 8000m급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오른 인물이다. 2008년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을 세계 초등하고 아시아 황금피켈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화려한 등반 업적이나 수상 실적보다 더 중요한 건 알파인 스타일로 한국 등반사의 새 지평을 계속 열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했다가 박영석 원정대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2013년 재도전하면서 해발고도 0m에서 카약과 사이클, 캐러밴, 8848m의 정상 도전까지 모두 무산소로 해낸 게 출발점이었다. 지난해에는 자전거로 유라시아를 횡단했다. 강가푸르나 남벽은 3400m 높이의 수직 빙벽으로 1965년 독일 원정대 초등 이후 다섯 루트만 만들어졌으며 지난해까지 스물네 팀이 시도해 여덟 팀만이 등정했을 정도로 어려운 곳이다. 김 대장은 “6박 7일에 걸쳐 올랐는데 사나흘을 굶었다고 보면 된다. (커피점 의자 두 개만 한 공간을 가리키며) 요만한 곳에 셋이 엉덩이 걸치고 앉아 10시간을 잤다. 옛날엔 머리만 대면 잠들었는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자꾸 깨어나 3중화 외피를 벗어 무릎 위에 올리고 이마를 갖다대고 잠을 청했다. 그래도 자꾸 깨자 최석문(43) 대원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했는데 계속 밀려난 박정용(41) 대원이 ‘형, 이러다 저 추락하겠어요’라고 소리를 질러대더군요”라고 되돌아봤다. 최 대원은 나쁜 몸 상태로 고생하고 있고 박 대원은 원기를 회복한다며 많이 먹어대 과체중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남들이 깔아놓은 캠프와 고정 로프, 고소 등반 셰르파 없이 대원들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고산과 거벽을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지향한다. 강가푸르나 원정에 들인 돈은 3600만원으로 기존 방식의 절반에도 밑돈다. 모두 공평하게 짐을 들고 대장이 식사 당번을 맡기도 한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자가 여섯이나 되지만 남이 깔아놓은 루트로 오른 봉우리 숫자만 헤아린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도 스스로의 힘으로 오르는 등정의 의미를 제대로 찾자는 게 알파인 스타일의 요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기존의 등반 방식대로 베이스캠프를 오가며 준비하는 게 아니라 단박에 루트를 올라야 한다는,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두 봉우리를 잇따라 올라야 하는 정신적 압박감이었죠.” 코리안 웨이 1차 원정지로 강가푸르나를 선택한 것은 네 가지 기준을 충족시켰기 때문이었다. 첫째 산까지 접근하는 데 탐험의 의미가 있느냐, 둘째 등반 라인은 자연스럽고 스마트한가, 셋째 알파인 스타일로 높은 난도의 신루트 개척이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원주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산인가였다. 강가푸르나는 인도인들의 정신적 원류인 갠지스강의 여신이란 뜻을 품고 있어 김 대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꼼꼼한 사전 조사와 철저한 기록으로 이름난 그는 “원정의 성패는 그 산과 산 주변을 완벽히 연구했느냐에서 거의 가름 된다”고 말했다. 강가푸르나 원정에 함께 한 대원들은 오는 4월 두 번째 코리안 웨이로 계획하고 있는 인도의 두 봉우리 원정에 함께하지 않는다. 대학 산악부 출신 젊은 대원들로 새롭게 꾸린다. 김 대장은 “예전의 고산 등반은 글이나 강연으로만 전수됐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말로는 안 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경험하고 노하우를 익혀 다음에 같은 정신으로 다른 후배들을 이끌고 새로운 코리안 웨이를 개척하는, 이른바 ‘새끼 치기’를 해 나가는 식”이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과 남미, 유럽 식으로 진행한다. 5년쯤 뒤에는 ‘유어 드림 프로젝트’를 꾀한다. 김 대장은 “평생 히말라야에 도전했는데 잘 안 된 분의 꿈을 이뤄 주거나 산악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가족과 함께 어느 봉우리를 오른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도 많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가 용감하게 프러포즈해 늦장가를 갔다. 조경 설계 일을 하는 아내가 서울에서 원정대에 알려주는 1차 날씨 예보가 정말 큰 도움이 된다며 한 번도 산에 가는 걸 반대해 본 적이 없어 많은 후배들이 부러워한다고 자랑했다. “5개월 된 첫딸 단아가 여섯 살쯤 되면 가족 셋이서 캐나다 유콘강에 카약을 타러 가려고 적금을 붓고 있어요. 다른 산악인들은 자녀가 히말라야 고산 등반을 하겠다고 하면 백이면 백 말릴 것이라는데 전 그렇지 않아요.” 김 대장은 “어릴 때부터 나이에 맞는 산과 방법을 찾으면 60대와 70대 들어서도 암벽과 빙벽 클라이밍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00~2006년 파키스탄에서 생활하며 산을 찾고 지도를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연구했다. 그의 자료는 해외 산악인들이 찾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때부터 앞으로 어떤 산을 어떤 방식으로 오를까를 꽤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라고 봐도 됩니다.” 공중파의 산행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 대장의 얘기는 산 좋아하는 이들의 입에 곧잘 오르내린다. “20대에는 똥오줌 못 가린 채 산에 오르고, 30대에는 겨우 자기 밥숟가락을 뜨고, 40대에는 자기 길을 찾고, 50대에야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은, 무언가 희망을 좇아 대작을 만들 수 있는 나이”라며 “이제야 산에 다니기 딱 좋은 나이를 만났다”고 껄껄댔다. 나아가 “고산 등반하던 선배들도 생업이나 결혼 때문에 등반을 은퇴하곤 했는데 내 경우에는 은퇴란 단어가 없다. 그 나이에 맞는 암벽과 빙벽을 클라이밍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마음자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안나푸르나의 별´ 박영석 대장 기획전 7일부터 연말까지

    ‘안나푸르나의 별´ 박영석 대장 기획전 7일부터 연말까지

     ´안나푸르나의 별´로 스러진 고(故) 박영석 대장의 5주기를 맞아 그의 자취를 기리는 특별한 기회가 마련됐다.    강원 속초시 미시령 넘어 속초한화리조트 못 미처 자리한 국립산악박물관(관장 박종민)이 7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안나푸르나의 별 박영석, 희망을 말하다´를 펼친다. 이번 기획전은 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를 뜻하는 지구 3극점과 7대륙 최고봉,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을 뜻하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 대장의 등반사를 조명하고, 사회 환원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희망, 나눔, 실천의 의미를 조명한다. 박 대장은 5년 전 10월 18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의 코리아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후배 신동민·강기석 대원과 함께 실종됐다. 구조대가 여러 차례 파견돼 수색했지만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번 기획전은 네 부문으로 나뉘는데 프롤로그는 전시 개요와 박영석 연표로 구성되며, 1부는 박 대장의 어린 시절과 대학 산악부 활동을 사진과 산악부 등반계획서 등을 통해 조명한다. 2부는 1993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작으로 K2, 남·북극점 등 주요 등반사를 각종 유물을 통해 소개한다. 3부에선 사진과 발 동판을 활용한 추모공간으로 꾸며진다. 4부에선 희망원정대·가족·동료 등의 자료를 통해 박 대장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선 영원한 산사나이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한다.    관람은 무료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월요일은 휴관. 기타 자세한 사항은 국립산악박물관 학예연구사 이광일(033-638-4462)에게 문의하거나 홈페이지(http://nmm.forest.go.kr) 참조.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창호 대장, 그 어렵다는 강가푸르나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 성공

    김창호 대장, 그 어렵다는 강가푸르나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 성공

     김창호(47) 대장이 이끄는 노스페이스 원정대가 네팔 히말라야의 강가푸르나(해발 7455m) 남벽 직등 루트를 새로 개척했다. 코리안 웨이(Korean-Way)로 명명했다.   강가푸르나는 1965년 독일 원정대의 초등 이후 현재까지 다섯 루트만 만들어졌으며, 지난해까지 스물네 팀이 시도해 여덟 팀만이 등정했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곳이다.  이번 원정대는 지난달 12일 출국해 고소 적응훈련 등을 거쳐 지난 16일 베이스캠프(해발 4034m)를 출발했다. 그 뒤 6박 7일에 걸쳐 고도 차 3400m에 이르는 강가푸르나 남벽을 넘어 직등루트를 올라 20일 낮 12시 45분(현지시간) 등정에 성공했으며 22일 원정대 전원이 무사히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특히 이번 원정대는 김 대장과 최석문(42·노스페이스) 대원, 박정용(40) 대원 등 셋으로만 구성돼 세르파의 도움 없이 최소 인원과 장비, 식량 만으로 등로주의와 알파인 스타일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김창호 대장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대원들의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과 탐험에 대한 열정, 끈끈한 팀워크로 최선을 다해 강가푸르나에 ‘코리안 웨이’를 만들 수 있었다”며 “응원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한국이 세계적인 등반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대장은 세계 최단 기간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7년10개월6일),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투라2봉 세계 초등(2008년), 제7회 아시아황금피켈상 수상(2012년)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체육 발전에 기여하고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 1등급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한라산 정상 등반 관음사 탐방로 10월1일 재개방

    한라산 정상 등반 관음사 탐방로 10월1일 재개방

    한라산 백록담 정상등반 코스인 관음사 탐방로가 다음 달 1일 다시 개방된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5월 해발 1600m 삼각봉에서 낙석이 발생해 삼각봉~정상 2.7km 구간의 출입을 통제해왔는데, 최근 복구작업을 완료, 10월1일 정상등반을 허용한다고 29일 밝혔다. 그동안 붕괴한 삼각봉~정상 구간에 대해 대한산업안전협회의 정밀안진단용역을 실시, 낙석 등의 원인을 파악하는 한편, 산악협회 관계자 또는 외부전문가의 의견 등을 수렴해 낙석방지망, 목재데크 설치 등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이에따라 그동안 성판악 정상코스에 일시적으로 몰렸던 정상등반 탐방객 분산 효과와 함께 성판악 주차난 문제도 다소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유산본부는 남벽분기점에서 정상탐방로 개방도 검토하기로 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성판악코스, 관음사코스에 이어 남벽분기점에서 정상을 탐방할 수 있도록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남벽 분기점이 개방되면 어리목, 성판악, 관음사, 영실 돈내코 등 어느 코스에서나 한라산 백록담 정상탐방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아차산성서 고구려 유물 ‘연화문와당’ 발견

    아차산성서 고구려 유물 ‘연화문와당’ 발견

    서울 광진구에 있는 삼국시대 주요 산성인 아차산성 발굴조사단은 7일 처음으로 고구려 유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적 제234호인 아차산성의 남벽, 배수구와 망대지 일대에서 진행 중인 발굴조사 현장에서 연화문와당이 발견됐다. 이번에 아차산성에서 나온 연화문와당은 아차산성 인근 고구려 유적지인 홍련봉 1보루에서 출토된 와당과 같은 형태다. 발굴지점 주변에는 동물 뼈도 있었다. 발굴조사단은 취약한 성벽 보호를 위한 의례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했다. 그동안 신라 유물만 나왔던 아차산성에서 고구려 유물이 발견된 것은 신라가 성을 축조하기 전에 고구려 세력이 이 지역에서 시설물을 설치하고 운영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아차산성 남벽 90m 외벽에서는 전형적인 신라의 외벽보축시설과 출수구 3곳, 내벽에서는 입수구 2곳이 발견됐다. 특히 이곳에선 서울, 경기 지역의 삼국시대 산성에서 처음으로 입수구에 사용된 수문석이 확인됐다. 성 안의 평탄한 지역에서는 입수구와 연결된 도수로, 계단을 갖춘 석축시설, 공방 추정지, 구들 등의 다양한 유구가 조사됐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문화와 생태 자원이 어우러진 아차산에 있는 유적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로체 남벽, 영석이형과의 약속”

     “높이 3300m의 수직 빙벽 앞에 서면 실로 압도되는 느낌이 대단합니다. 베이스캠프에서 곧바로 달라붙어 캠프1부터 캠프5까지 설치한 뒤 다시 내려와 하루에 한 캠프씩 올라가 엿새째 정상을 공략하고 다시 닷새 걸려 내려옵니다. 두 발을 동시에 붙이고 서 있을 만한 틈도 없어요. 낙석도 많고 강풍도 불고 정말 힘든 곳입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남동쪽에 붙어 있는 로체(8516m)를 발아래 둔 이는 많다. 하지만 남벽을 통해 정상을 밟은 이는 아직 없다. 러시아 군인팀과 일본 등반대가 올랐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 인증을 받지 못했다.  다음달 중순 출국해 ‘4전5기’에 나서는 홍성택(50) 대장을 지난 20일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만나 ‘이제 그만 가라’는 소리를 듣는데도 한사코 도전에 나서는 이유를 들어봤다. 그는 허영호(62), 엄홍길(56),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서 저세상으로 떠난 박영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셋 모두와 함께 세 차례 이상 등반을 한 귀하디 귀한 존재다. 로체 남벽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세계 두 번째로, 그것도 아홉 봉우리에 새 루트를 내고 4곳은 동계에 올랐던 예지 쿠쿠츠카(폴란드)가 1989년 10월 24일 추락사한 곳이다. 1979년 로체 정상을 밟았던 쿠쿠츠카는 14좌 완등 2년 뒤 다시 이곳 직벽에 도전했다가 8300m 지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홍 대장은 “첫 14좌 완등자 라인홀트 메스너(72·이탈리아)가 ‘21세기에나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포기한 것은 이곳을 오르는 게 14좌 완등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네 차례 도전해 쓰라리지만 값진 교훈을 쌓았다. 1999년 8월 첫 원정 때 7000m밖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멋모르고 덤볐던 것 같다. 원정 비용을 미처 다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다가 철수하면서 장비들을 팔아 대원들 밥을 먹일 정도였다. 빚을 갚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받은 월급을 아내 몰래 빼돌려 갚았다”고 돌아봤다.  홍 대장은 8년 뒤인 2007년 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 원정대를 꾸렸다. 엄 대장은 로체샤르(8400m)로 진행해 후배들 시신을 화장하는 끔찍한 충격을 견뎌내며 ‘16좌 완등’에 성공했으나 로체 남벽으로 향하던 홍 대장은 또 물러나야 했다. 소수 정예 원정대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2014년 9월 세 번째 도전 때는 캠프4(8200m)까지 올랐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70일의 등반 기간이 지나 또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네 번째 도전. 3억 5000만원을 들여 21명으로 원정대를 꾸려 캠프4에서 정상 공략에 나섰지만 시속 150㎞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 정상을 300m 남기고 내려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전에는 셰르파들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지난 6월 7일 출국해 한 달 동안 네팔에 머무르며 셰르파들을 훈련시키고 정찰을 마쳤습니다. 현재 대원 둘은 알프스에서, 셰르파 둘은 K2에서 고소 적응 중입니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100%는 아니지만 성공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해외 등반가들도 성공할 것이라고 응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GC)이 원정 비용 일부를 부담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도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믿는다는 방증이다. 로체 남벽의 세계 초등은 산악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된다. 해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산악인에게 주어지는 황금피켈상도 한국인 최초로 그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 이런 흔들림 없는 도전, 집착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제가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 ‘세컨드 스텝’을 개척한 것을 보고 박 대장이 ‘너 참 대단하다.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지나가듯 얘기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박 대장이 마지막 산행을) 떠나기 사흘 전 ‘안나푸르나 다녀오면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를 산에서 극지로, 탐험가의 길로 이끈 것도 박 대장이었다. 홍 대장은 1992년 카자흐스탄 칸뎅그리(7110m)를 오른 것을 시작으로 5극지(1993년 에베레스트, 1994년 남극, 2005년 북극, 2011년 그린란드, 2012년 베링해)를 세계 최초로 모두 밟았다. 2013년에 그 경험을 책 ‘아무도 밟지 않은 땅 5극지’에 녹였는데 산악계 원로 중의 원로인 김영도 선생이 이끄는 ‘산서회’에 불려나가 분에 넘치는 찬사를 들었다. 산에 가면 볼펜을 쓰지만 영하 35도면 “아 따듯하네”라고 말하는 극지에서는 고추장과 된장만 빼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연필로 쓴다. 로체 남벽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20년의 경험을 오롯이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그에게 탐험이란 무엇일까. “사실 14좌 완등은 이미 2000년대 들어 세계 산악계의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형들이 다 올랐고. 극지야말로 내게 도전과 시련,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련으로 여겨졌습니다. 베링해 횡단에 한 차례 실패했던 영석 형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는데 우리가 무사히 횡단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극지에서의 위험과 산에서의 그것은 비교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등반보다 탐험이 훨씬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우리 시대 탐험가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우에무라 나오미(1984년 사망)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더니 그는 “아뇨, 그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낸 우에무라와 대원들을 데리고 한 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로체 남벽이란 거대한 도전을 마치고 나면 허탈감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해서 조심스레 그 다음 행보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홍 대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청소년들을 모아 북위 66도 33분을 가상의 원으로 연결한 ‘아틱 서클’을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NGC에도 얘기해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산에 가거나 탐험을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고 하는데 한 나라와 민족이 성장하기 위해선 먼저 도전정신이 활짝 피어나야 합니다. 모든 나라의 성장에 탐험이 선행됐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광화문에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도 일본은 히말라야 원정대를 보냈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우고 싶습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지면에 미처 옮기지 못한 홍성택 대장의 삶 얘기를 온라인에만 공개한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도를 했다. 용인대 85학번인데 2학년 말 상대 선수와 연습하다 상대 선수가 다쳐 유도복을 벗었다. 보리 팔아 유도 시키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집안 반대가 말할 수 없었다. 괴로움을 떨쳐 내려고 산으로 향했는데 잘 맞았다.  형(허영호, 엄홍길, 박영석)들의 눈에 든 것이 타고난 체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형들이 그냥 서 있으라고 하면 서 있는 등 뭐든 시키는 대로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덕분에 유도만 했더라면 체육관을 운영하며 애들만 상대했을텐데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느껴 후회는 털끝만큼도 없다.  등반가와 탐험가의 길 가운데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1992년 러시아 칸뎅그리(7010m)에 갔을 때일 것 같다. 눈사태가 텐트를 덮쳐 옆의 후배 둘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가위눌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눈더미에 눌린 텐트 천장이 얼굴을 덮쳐 누르고 있었다. 정말 조금씩 미세하게 손을 움직여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텐트를 찢었는데 칼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나중에 보니 손에 피범벅이었다. 그렇게 텐트를 째서 숨쉴 틈을 만들자 로프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벼랑을 올라온 후배들이 손으로 눈을 파내고 있었다. 이틀을 굶은 채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1996년 다울라기리(8167m)에 이어 오른 시샤팡마(8026m)도 잊을 수 없다. 엄홍길, 박영석 대장과 셋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뭉친 산행이었다. 캠프 2를 출발했는데 카메라 필름을 빠뜨린 것을 깨닫고 형들에게 혼날까봐 얘기도 못한 채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챙긴 뒤 다시 캠프 2로 향하다 크레바스에 빠지고 말았다. 50m쯤 되는 아가리 입구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들릴 리 없었다. 어쩌다 천신만고로 빠져나와 합류했더니 온갖 상소리와 함께 “젊은 놈이 빠져 가지고 형들에게 저녁 짓게 하고 어디서 놀다 온다”고 혼났다. 2005년인가 영석 형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왜 이제야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더라.  베링해 횡단이 가장 힘들고 무서웠다. 북극해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유빙을 타고 넘어야 한다. 그 속도가 대단해 정말 위협적이다. 유빙끼리 충돌하며 내는 굉음도 소름끼친다. 그 유빙 위에서 어느 순간 1m 이상 높은 곳으로 개썰매를 들어 올리고 뛰어 올라야 한다. 동상은 기본이고. 그렇게 베링해를 건넜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대단한 미치광이들이 왔다며 반겼다. 시애틀 한인회 분들이 그곳까지 비행기로 날아와 환영해주시고 현지 방송과 인터뷰도 주선해주셨는데 서둘러 귀국하고 말았다. 한인회 분들은 “출연하면 미국 전역에도 방영돼 어렵게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는데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빈다고 말하고 싶다. 로체 남벽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박영석 대장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1995년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박 대장 인솔 하에 한왕용(50·세계 13번째 14좌 완등자), 나관주(37) 등과 올랐는데 한국 산악의 미래를 이끌 주역들이 뭉쳤다고 해 화제가 됐다. 내가 세컨드 스텝의 30m 직벽을 개척한 것을 보고 영석 형이 “너 참 대단하다. 나중에 나랑 함께 로체 남벽 가자”고 했다. 당시는 스쳐 지나가듯 말해 그저 그런가 했다.  2011년 영석 형이 안나푸르나 남벽으로 떠나기 사흘 전 신동민과 술 먹다가 느닷없이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무작정 함께 가자고 했다. 난 당시 베링해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형이 안나 성공하고, 내가 베링해 횡단 끝내면 뭉치자고 해 그러자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박 대장, 강기석과 함께 운명한 동민이가 유독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가 목사셔서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다. 산이나 극지에서도 곧잘 기도를 올린다. 유치할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기도다. 살려달라고,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환청을 자주 듣는 편인데 라틴어를 들은 적도 있다. 그때마다 멈추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 그렇게 해서 신기하게 목숨을 구한 적도 여러 번이다.  칸뎅그리 등반에서 돌아와 빚으로 남은 원정 비용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비서실 아가씨와 눈이 맞아 1996년 결혼했다. 프로포즈도 하지 않고 으레 결혼해야지 하면서 식을 올렸다. 형들에게 결혼한다며 아내 사진을 보여줬더니 농담하지 마라, 이런 미인이 너랑 결혼할 리가 있느냐고 했다. 나중에 직접 신부를 만난 영석 형이 자꾸 너 같은 게 무슨 결혼이냐고 하지 말라고 했다. 신혼 집들이라며 2박3일 내내 술을 마셔대 아내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다. 내가 산에서 생을 마쳐도 혼자서 자식들 건사하고 키워낼 수 있는 여자여야 결혼한다고 생각했다. 늘 내가 없더라도 잘 살라고 얘기한다.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로체 남벽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산에 가면 이 훌륭한 음식을 그때 한숟갈이라도 더 먹을걸 하고 생각날 때가 있다. (큰 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라고 물을 때가 있다. 여기 있으면 산이 그립고, 산에 있으면 여기와 가족이 그립고. 가족이 결국은 원동력 아니겠는가. 갈 때와 올 때가 똑같아야 한다. 사고로 죽거나 대원들이 다치면 정상을 밟아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홍성택이 걸어온 길 ▲1966년 3월 13일 ▲경북 구미 출생 ▲구미 고아초-구미 현일중·고-용인대 유도학과-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석사 ▲1992년 칸뎅그리 등정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 1994년 남극점 스키·도보 탐험 1999년 로체 남벽 1차 도전 2005년 북극점 스키·도보 탐험 2007년 로체 남벽 2차 도전 2011년 그린란드 북극권 종단 2012년 베링해 도보 횡단 탐험 2014년 로체 남벽 3차 도전 2015년 로체 남벽 4차 도전 2016년 로체 남벽 5차 도전 예정 ▲1994년 대한민국 체육포장, 2011년 한국 탐험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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