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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개봉 ‘천국의 아이들’

    구멍난 양말 뒤축처럼 남루하기만 한 일상. 그러나 이란의마지드 마지디 감독은 용케도 그 속에서 빛나는 유년의 향수를 길어올렸다.‘천국의 아이들’(Children of Heaven·17일개봉)은 관객에게 한점 흠결없는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재주 많은 영화다. 구두수선공의 무릎 옆에 쪼그려 앉은 사내아이쪽으로 영화는 클로즈업해 들어간다.화면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정서를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어린 여동생의 하나밖에없는 구두를 고쳤지만 얼떨결에 잃어버리고,그때부터 영화는‘돌림노래’를 시작한다.동생 자라는 오전반, 오빠 알리는오후반,신발이라고는 오빠의 꼬질꼬질한 운동화 한켤레뿐. 카메라는 잔재주를 피우지 않는다.초등학교 교실과,운동화를 바꿔신느라 분초를 다퉈 달리는 가난한 남매의 사랑에 거듭 초점을 맞춘다.신기한 것은,그런 건조한 반복 속에서도감동이 덩치를 불려간다는 사실이다.날마다 신발을 바꿔신고등교하는 알리는 지각생으로 퇴학 위기까지 몰리지만, 동생을 한번도 원망하지 않는다.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버지의 잔디깎기 부업을 돕는 것도 동생에게 새 구두를 사주겠다는 일념에서다. ‘순수’를 동경하는 영화의 열망에 가슴 싸해지는 건 마지막 대목쯤이다.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알리의 목표는 처음부터3등이었다. 운동화를 상품으로 타기 위해 애써 늦춰달리는동심이 웃음 뒤로 눈물을 자아올린다. 우화를 연상케 하는 영화는 지난 99년 미국에서 예상외의관객몰이를 했다.덕분에 그해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후보에도 올랐다.잇속 밝기로 소문난 미라맥스가 미국배급을자처하고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에 나선 이유가 감잡힌다. 테헤란 출생으로 올해 42세인 마지드 감독은 ‘하얀 풍선’으로 국내에 알려진 자파르 파나히와 더불어 이란의 3세대 대표감독으로 꼽힌다. 황수정기자
  • 北형님 편지받은 김민하 민주평통 부의장 ‘애통’

    “어머니,성하 형이 편지를 보냈어요.창하 형도 옥희 누나도 살아있대요,어머니!” “…어… 어…” 분단 50년만에 첫 서신교환이 이뤄진 15일 형 성하(成河·75·함경남도 단천시)씨의 편지를 받은 김민하(金玟河·67)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병상의 노모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6개월 전부터 의식불명상태인 어머니 박명란(朴命蘭·100)씨로부터는 반응이 없었다.윤하(潤河·71·전 국회의원)씨 등 5남매가 모두 달려들었지만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김 수석부의장은 둘째형 성하씨의 소식과 함께 한국전쟁이후 소식이 두절된 넷째형 창하(昌河·69)씨와 큰누나 옥희(玉姬·72)씨의 생존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졌던 5남 5녀,10남매 전원이 남과 북에서 각각 살아남은 사실이 확인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창하씨는 전쟁 당시 대구 경북중학교 4학년에 재학중 의용군에 징집됐었다.숙명여자전문대학을 나와 대구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옥희씨는 인민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이번에소식을 전해온 성하씨는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에다니던중 전쟁이 일어나면서 연락이 두절됐다.김 부의장은“성하 형은 유달리 효심이 깊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안부를 몰라서 자다 깨어 가슴 아프게 지내왔는데 오늘 어머니 생존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기쁜 소식을 듣고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50년만에처음으로 어머니께 편지 올리는 가슴은 세차게 뛰고 있습니다”라고 시작된 편지에는 사진 2장이 동봉돼 있었다.사진속에는 누나 옥희씨와 성하씨,성하씨의 아들인 영일씨와 옥희씨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편 이날 경남 사천시 축동면에서는 형 손윤모(孫閏模·68)씨의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 상모(相模·65·경남 사천시 축동면 배춘리)씨가 “제사까지 지내던 형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다니 정말 믿을 수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손씨(당시 19세)는 국군으로 참전,전사 처리됐다가 지난 1월 31일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후보자 명단에 국군포로로는 처음으로 생존이 확인됐었다.동생 재모(在模·59)씨는“지난 1월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에 탈락돼 아쉬웠다”면서“형님의 체취를 느끼게 돼 너무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경하 홍원상기자 lark3@
  • 괌 KAL機사망 인천제일금고 회장 유산 사위가 상속

    지난 97년 8월 대한항공기(KAL) 괌 추락 사고로 부인,딸과함께 숨진 이성철 전 인천제일상호신용금고 회장의 1,000억원대 유산은 사위 몫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법원 제2부(주심 李勇雨 대법관)는 15일 이 전 회장의형제 이모씨 등 7명이 사위 김모씨(36)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상고를 기각,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피상속인과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동시에사망한 경우도 민법상 대습상속(代襲相續·상속인이 상속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상속권을 상실해 직계비속이나 배우자가 재산을 상속하는 것)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상 대습상속에는 직계비속이상속 개시와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포함시켜야 한다”면서 “피상속인인 이 전 회장과 상속인인 딸이사고로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사위에게 상속권이 있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과 형제·남매 사이인 이씨 등은 괌 추락사고로이 전 회장과 부인,자녀 등 사위김씨를 제외한 일가족 7명이 숨지자 이 전 회장의 유산을 놓고 김씨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소송은 이 전 회장의 150여평 자택 소유권에 한정해벌인 ‘시험소송’이어서 나머지 재산도 김씨가 상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살신성인’ 6인의 소방관

    서울 홍제동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은 평소에도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업무에 충실했던 모범 소방관이며 가장이었다.이들은 4일 화재에서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인명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김철홍(金喆洪·36)소방교는 결혼도 미룬 채 서울 은평구응암동에서 75세 된 홀어머니를 모셔온 소문난 효자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사고가 난 날 아침에도 “지난해 10월 뇌출혈로 쓰러진 노모를 며칠전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요양차 내려보냈는데 마음이 걸린다”고 말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순직 소방관 가운데 유일하게 미혼으로 5남3녀 가운데 막내다. ■박동규(朴東奎·45)소방장은 중부소방서에서 근무하다 85년 서부소방서로 발령받아 1,500여 차례나 화재현장에 출동,50여명의 인명을 구해낸 모범대원이었다.가정에서도 헌신적이어서 지난해 ‘자랑스런 소방관 아버지’에 뽑힐 만큼 성실한 가장이었다.순직 소방관 가운데 가장 직위가 높다. 남동생 정용씨(39·중랑소방서)와 6촌 동생도 소방관인 ‘소방관 가족’.동생 정용씨는 “형이 소방관 생활을 정성을 다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형의 길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장석찬(34)소방사는 특전사 출신으로 소방구조대에 특채돼산악 구조의 베테랑으로 일해 왔다.슬하에 남매를 뒀다.한동료는 “농사를 짓는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할 뿐 아니라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애도했다.지난해 연말아버지가 미끄러지면서 엉덩이를 다쳐 20일동안 수술을 받을때 바쁜 와중에도 매일 병원에 들러 간호할 정도로 효성이지극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김기석(金紀錫·43)소방교는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도 교사의 길을 뿌리치고 37세때 뒤늦게 소방관으로 뛰어들었다. 76년 포항 동지상고를 졸업한 뒤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가정형편으로 못다한 공부를 하기 위해 원광대 행정학과를 거쳐94년 방송통신대에서 국문학을 전공,석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였다.구조대 부대장으로 현장 대원들을 성실하게 이끌어왔다. ■박상옥(朴相玉·33)소방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딸(2)을 둔 신혼이다.부인김신옥씨(28)는 “어제 오후 10시쯤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딸은 잘 있느냐’고 했는데…”라며울다 실신했다. 김씨는 “남편은 하루에도 꼭 5차례씩,아무리 바빠도 2∼3차례는 집으로 전화를 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라면서“서부소방서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한 남편이 전에는 부상한번 입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냐”며 통곡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납북아들 둔 김삼례할머니 상봉 이어 편지교환 행운

    “이제 아들하고 편지까지 교환할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남북 이산가족 2차상봉에서 87년 납북된 아들강희근씨(49)를 만나고 돌아온 김삼례(金三禮·76·경기도강화군 교동면 난정리) 할머니는 편지교환 대상자로 또다시선정되자 엄청난 행운을 잡은 듯 기뻐했다. 김 할머니는 “살아서는 못볼 것으로 여겨졌던 아들을 보고온 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면서 “모진 목숨을이어온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아들이 납북된 뒤 며느리마저 집을 나가자 품팔이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손자인 현문군(16·교동종합고 1년) 남매를 키워왔다.70세를 훨씬 넘긴 지금도 비가 오면 물이 새는 단칸방 집에 살면서 논밭 일을 해 손자의 학비를 대고 있다. 3살때 아버지가 고깃배를 타고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하다납북된 이후 13년간 절절한 그리움을 간직해온 현문군은 “아버지,어머니가 모두 모여 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문군은 지난해 6월 열린 남북적십자회담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됐었다. 김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잡으며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어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 하는지…”라며 말을 잇지못했다. 강화 김학준기자 kimhj@
  • 서울보건대학 교수된 전 호텔주방장 유택용씨

    고교 졸업후 14년동안 영세 일식집과 호텔 주방장을 거치며학구열을 불태워 온 전 서울 리츠칼튼호텔 일식전문 주방장유택용(劉澤庸·34)씨가 경기도 성남시 서울보건대학 조리예술과 교수(전임강사)로 임명돼 화제다. 유씨는 85년 서울 용산공고 토목과를 졸업,곧바로 요리학원에 들어가 요리와 인연을 맺었으며 1년뒤 서울 잠실 소재 모일식집 주방장으로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부에 대한 꿈을 잊을 수 없었던 유씨는 92년 한 유스호스텔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에 진학해학구열을 불태우기 시작했으며 94년 전북산업대(현 호원대학교)에 편입학,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이듬해 리츠칼튼호텔 일식부로 근무처를 옮긴 뒤 경기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거머쥐었다. 25대 1의 교수공채지원 경쟁을 뚫고 교수가 된 유씨는 대학졸업 7년여만인 오는 5일 꿈에 그리던 모교 강단에 서게 된다. 6남매 중 넷째로 줄곧 집안에서 어머니 일을 돕다 요리에관심을 가지게됐다는 그는 “대학교수가 된 것은 초등학교교사였던 아버지와큰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기회가 된다면 일식점을 경영하며 강의와 연구를 병행해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3차 이산상봉/ 시댁식구와 ‘덤 상봉’ 행운

    친자매를 만나러 남에 온 북측 상봉단의 서희숙씨(69)가 예정에도 없던 시댁 식구를 만나는 기쁨을 누린 것으로 밝혀졌다. 서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롯데월드호텔 개별상봉에서 이미사망한 남편 조남식씨(92년 사망)의 동생 남희씨(66) 등과감격적인 첫 인사를 나눴다.중학교 3학년때인 50년 친구를따라 월북한 희숙씨는 의용군으로 홀로 월북해온 조씨와 61년 결혼,세 남매를 두었다. 언니 혜석(72),여동생 정석씨(63) 등 친자매를 만나러 온희숙씨는 상봉 첫날인 26일 친정 식구들에게 “남편의 가족을 찾아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희숙씨가 시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동생의 이름과 남편의 고향 주소(충북 옥천군 동이면 남죽리)뿐이었지만 수소문 끝에 이날 밤 남희씨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남희씨는 형이 죽은 줄 알고 10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오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2차 이산가족 상봉때 신청하기도 했지만 탈락했던 터라 얼굴도 보도 못한 형수와 극적으로 상봉하는 ‘행운’을 잡았다. “어머니는 형이 행방불명된 뒤 화병으로 54년 돌아가시고아버지(88년 사망)는 형의 사진을 앞에 놓고 울다 목에서 피를 토하기도 했다”는 시동생에게 희숙씨는 남편의 독사진등을 건넸고 남희씨는 족보 등을 형수에게 전해줬다. 홍원상기자 wshong@
  • 3차 이산상봉/””어머니 두달만 더 사셨다면 막내딸 소식 들으셨을텐데””

    “두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난 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정경숙(鄭敬淑·55)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오빠 현수(賢洙·70)씨는 기쁨도잠시, 지난해 12월5일 노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김금자(金錦子·당시 91세)씨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눈물지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현수씨는 “어머니는 납북된 막내딸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여든다섯살까지 25년 동안 하루도거르지 않고 새벽기도를 다니셨다”면서 “두달만 더 사셨으면 막내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텐데…”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숙씨 가족은 해방 뒤 아버지가 소련군에 억류돼 6남매 가운데 현수씨 등 4명만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이후 어머니김씨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웠다. 현수씨는 “경희처럼 경숙이도 납북 당일에 다른 사람 대신근무한 것”이라면서 “납북 한달 전 어머니 환갑 때 ‘오래오래 사시라’면서 어머니께 이불을 선물하며 활짝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여동생에대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경숙씨는 165㎝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키였음에도 스스로정장을 지어 입을 정도로 손재주도 빼어났다.창덕여고 졸업뒤 연세대 도서관학과에 다니면서 장학금까지 받아 15년 손위 오빠를 기쁘게 하던 귀여운 여동생이었다.유난히도 활달하고 씩씩했지만 여승무원이 된 뒤에는 하루도 결근이 없을정도로 성실했다. 막내동생을 잊을 수 없었던 현수씨는 이미 몇 년 전에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냈지만 소식이없어 최근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현수씨는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김책공과대 교수와 결혼도 해 잘 살고 있다니 마음이 놓인다”면서 “하루빨리 경숙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빛바랜 막내여동생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전영우 최여경기자 anselmus@
  • 3차 이산상봉/ 납북 KAL기장 생존소식들은 남측 아내

    “정말 그이가 살아있는가요,정말 살아 있대요?” 32년 만에 납북된 남편 유병하(柳炳夏·69·당시 KAL 기장)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 엄영희(嚴永喜·67)씨는“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남편의 소식을 알아보았지만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서 믿어지지 않는 듯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던 엄씨는 “남편이 납북된 뒤 2남1녀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세월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성품이 워낙 강직해 걱정했는데 그래도 공군에서 일한다니 다행”이라고 말하다가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치는 듯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남편 유씨는 지난 53년 공군 조종간부 1기로 임관,13년 동안 F-86 등 전투기 조종사로 일하다가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조종간부로 전투기 조종교육을 받을 때는 비행실력이 뛰어나동기생들 가운데 1등으로 조종훈련 과정을 마쳤다. 유씨가 소위 때 만나 열렬한 연애 끝에 사천공군기지 근처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는 부인 엄씨는 “처음에 납북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다”면서 “처음 5년 동안은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이불도 덮고 자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러나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엄마만 바라보는 3남매가 있었기 때문이다.엄씨는 대한항공에서 받은얼마 안되는 보상금을 밑천으로 해 김포공항에 작은 스낵코너를 열었다.그 작은 가게에서 밤이나 낮이나 일에 매달렸다. 그래서 딸 혜연(惠燕·43)씨와 아들 한민(漢旻·42)·종민(鍾旻·40)씨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었다.그러나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면 닥쳐오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어쩔 수가 없었다.엄씨는 “남편 생각이 날 때마다 밤을 새며 기도했다”면서 “아이들이 창밖에 대고 ‘아버지’하고부를 때면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지난 세월의 설움을털어놨다. 엄씨는 “이렇게 3남매와 늙으신 어머니만 남기고 떠난 남편이 밉기도 했지만 요즘도 남편을 위해 꼭 기도한다”면서“이제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편지라도 교환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다시 한번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전영우 이송하기자 anselmus@
  • 3차 이산상봉/ 이모저모

    남북한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은 26일 서울과 평양에서반세기 만에 감격적인 혈육 상봉을 했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검은 머리가 하얗게 세 반백이됐어도 이산가족들은 피붙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헤어짐을강요당한 분단의 역사에 대한 원망과 만남의 기쁨이 뒤섞여눈물바다를 이뤘다. ■ 북측 방문단과 서울 표정. ■집단 상봉 “어머니,불효자식이 50년만에야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애비 노릇도 못한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다오” 오후 4시부터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단체상봉은 이산가족의 한을 한순간에 녹였다. 원산 경제대학 교수인 조원영(68)씨는 남측 어머니 김서운(87)씨가 “나이가 들었는데도 머리가 검구나”라며 머리를쓰다듬자 “하얀 머리로 오면 어머니 기분이 상할 것 같아일부러 젊게 하고 왔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남의 어머니 어문례(90)씨를 만난 북의 리승용(69)씨는 큰소리로 “엄마,나 건강하지”라며 ‘재롱’을 피며 반세기의간격을 좁히려 애를 썼다.김풍기(72)씨의 남측 가족들은 73년과 84년 각각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정을 놓고 대화를 나눠 주위를 숙연케 했다. ■기록에 애쓰는 이산가족 1,2차 상봉과 달리 남북 가족들은 가족 목소리와 상봉 순간을 담기 위해 녹음기와 캠코더,즉석 사진기까지 동원해 재회의 기쁨을 기록했다. ■휠체어 상봉 중풍과 병마도 반세기만의 만남을 막지 못했다.휠체어에 의지해 충남 부여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온 강항구(80·충남 부여)씨는 북의 동생 서구(69)씨를 만났다.중풍으로 말못하는 그는 준비한 꽃다발을 동생에게 힘겹게 건네며 눈시울을 적셨다.어머니 모기술(84)씨를 만난 북측 최경석(67)씨는 “어머니,저 만났으니 오늘부터 식사 많이 하시고 건강하세요”라며 동생들과 함께 휠체어에 탄 어머니 주위를 돌면서 북한 노래 ‘사향가’를 불러 기쁨을 대신했다. ■ 남측 방문단과 평양 표정. ■집단상봉 남측 이산가족은 오후 4시부터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상봉을 시작했다. 최고령자인 이제배(94)씨는 북에 두고 온 아내 김복여(79)씨와 아들 창환(63),딸 명실(56),순옥(53)씨를 만나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울먹였고 임재화(85)씨는 1·4후퇴 때 헤어진 큰딸 효선(62)씨 등 4남매를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말자”며 끌어 안았다.치매 증세의 손사정(90)씨와 중풍을앓고 있는 이후성(84)씨 등 거동이 불편한 방북단 4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리운 가족들과 상봉했다. 51년 헤어진 남편 이기천(76·전남 나주)씨를 만난 림보비(71)씨는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뜯어보니까 남편인 줄 알아보겠다”며 한동안 남편 얼굴만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세월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환영 만찬 이날 저녁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선 남북 모두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강조했다. 장재언 위원장 등 북적 관계자들은 환담 도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남한에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사람들이 있느냐”며 회고록을 둘러싼 남한 내부의 논란을적극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평양 공동취재단·최여경 이송하기자 kid@
  •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 새단장

    학교가 모두 쉬는 일요일 오전 KBS ‘학교’는 문을 연다. 매주 일요일 오후7시10분 1TV를 통해 방송돼온 KBS 청소년드라마 ‘학교’시리즈가 오는 4월8일부터 2TV 일요일 오전8시50분으로 터를 옮긴다.99년 개교이래 벌써 ‘학교Ⅳ’(가제, 문은하 극본 정해용·황의경 연출)가 됐다. 미니시리즈 호응을 발판으로 고정프로 티켓을 따낸뒤부터 ‘학교’가 겪어온 우여곡절은 우리 방송가 ‘마이너리티 프로’의 현실을 몸으로 보여준 셈.소재고갈 시청률 등을 이유로몇차례나 올랐던 폐지의 도마에서 꺼내준 건 3사 통틀어 유일한 ‘청소년드라마’에 쏟아진 불같은 네티즌 성원.또하나는 KBS 뒷덜미를 채온 ‘공영성’이란 화두다. 터전 이전을 계기로 학교의 콘텐츠도 싹 물갈이될 예정.기존의 일반고등학교가 예술학교로 바뀜과 동시에 교사 학생들도전원 교체된다. 홈드라마시간대 온가족을 흡인하기 위해 그간 들러리같았던 교사·학부모들도 한층 볼륨높여 자기발언을 하고 로맨스도 펼친다. ‘학생선발’을 위해 제작진은 지난 1월부터 비공개 오디션을 진행해왔다.250여명 응시자 가운데 1차 오디션에서 40여명을 걸러냈고 17일 최종 테스트를 마쳤다.드라마 ‘6남매’의 장남이었던 오태경급 정도의 풋풋한 연기경력자들과 신참들이 함께 교실을 메운다.정해용 PD는 “‘학교’를 신인육성의 장으로 세팅하는 게 회사 취지이기 때문에 선도가 떨어지는 인물을 유명세만으로 캐스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기실 ‘학교’시리즈는 무명의 배두나 안재모 장혁 김래원 고호경 김민희 하지원 등을 단련시킨 스타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주말극 ‘태양은 가득히’의 고영탁 PD,KBS 일일극 ‘해뜨고 달뜨고’의 김지우 작가-박찬홍 PD 등이 거쳐갔다. 당초 예술학교와 대안학교 사이에서 저울추가 예술학교 쪽으로 기운 데는 “엘리트 학생들의 자기수련쪽으로 무게중심을옮겨보려는” 조심스런 의도가 깔려있단다. 비틀린 교육현실을 고발하는 학생들 육성은 이왕의 ‘‘학교’에만도 충분히담아온 만큼, 조금 일찍 진로를 결정한 또래들의 경쟁과 우정 등을 보여주며 또다른 청소년 미래설계에도 보탬을 주고싶다는 것이다.손정숙기자 jssohn@
  • “살아있다니 이제 여한없어”

    “분명히 살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15일 밤 대한적십자사 직원으로부터 아내(79)와 두 아들(63,58),두 딸(56,53)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제배(李悌培·93) 할아버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함경남도 강천군 용전리가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1·4후퇴때 단신월남했다.미처 가족을 챙길 틈도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밤길을 달려 남행(南行)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죄스럽기도 했다.부산에 뿌리내려 살면서 자갈치시장에서 막노동과장사로 고단한 50년을 지내온 이 할아버지이건만 생전에 아내와 4남매를 만나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월남 후 지금의 아내(72)를 만나 2남1녀를 둔 이 할아버지는 “이제 여한이 없다”고 기뻐했다. “아쉽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데,이제 생사를 확인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이 할아버지는 오는 26일 평양에 가는 100명의 3차 이산가족 방문단에 끼었으면 한다고 마지막 소망을 얘기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희망 2001] 결식아동에‘사랑의 도시락’

    “탈주범 신창원(申昌原)이도 결식아동이었어요.밥을 굶은아이들이 거리를 떠돌지 않도록 돌봐줘야 합니다”.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이상구(李相九·45) 대전·충남지부장은 결식아동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지부장은 소년소녀가장 등 대전지역의 결식아동 250명에게 매일 저녁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사랑의메신저’이다. 가정주부 등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을 오후 6시만 되면 결식아동들의 집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라다 주고 있다. 이 지부장은 사랑이 결여돼 있는 한끼의 밥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영양사가 짠 식단을 토대로 흰쌀밥과4∼5가지의 반찬이 도시락에 들어가며 우유·과일·요구르트 등 보조식도 함께 제공된다. 집에서 어머니가 직접 지어 주는 밥처럼 도시락이 식지 않도록 1시간 이내에 결식아동들에게 전해준다. 충남 부여에서 7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지부장은 “어린시절 흰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이 일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고 말한다. 지금은 SBS와 함께 모금활동을 벌여 모아진 성금 1억5,000만원으로 결식아동들에게 저녁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지만올 5월부터는 독지가·후원자들을 적극 발굴해 이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이 지부장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있는 29개 초등학교에서 결식아동을 추천받은 뒤 자원봉사자들과 3개월간 가정방문 등 실사를 벌이는 치밀함도 보였다.한끼의 밥이 정말로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이 몸무게가 늘고 얼굴이 좋아졌다며흐믓해 하는 이 지부장은 많은 독지가들이 결식아동들에게새 희망을 듬뿍 안겨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전 최용규기자 ykchoi@
  • 北 2차 생사확인 의뢰 최고령 백상기씨 부인

    “도무지 믿어지질 않아요.살아있던 사람이 그동안 왜 연락 한번 주질 않았는지…” 9일 북측 생사 확인 의뢰자 가운데 최고령인 백상기씨(82)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백씨의 부인 임귀례씨(79·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141의5호). 감기몸살로 병원에 입원한 손자(22)의 간병을 하던 임씨는남편의 생존소식에 흘러간 세월을 야속해하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아들 백덕현(白德鉉·53·부동산중개업)씨도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남편과 같은 고향인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서 17살에 결혼,딸 정자(60),아들 덕현씨 남매를 둔 임씨는 아들이 두살 때인 50년 6·25가 터지자 그해 겨울 피란길에 나서 남편과 헤어지고 말았다. 졸지에 가장이 된 임씨는 농사로는 도저히 생계를 꾸리기힘들자 서울로 이주,마포에서 하숙과 장사 등을 하면서 어린 남매를 키웠다. 고향에서는 상기씨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 주위에서 재혼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식을 키우는 일에전념했다. 남편의 생존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결국 68년 사망신고를 했다. 임씨는 “죽은 줄로 알고 제사까지 지냈는데 남편이 정말살아 있냐”고 되묻고는 이내 눈물을 훔쳤다. 한편 아들 덕현씨는 “북쪽에서 보낸 생존자 확인명단에 어머니 이름이 ‘규녀’라고 잘못 적혀 있다”고 말했다. 부천 김학준기자 kimhj@
  • 월북 의열단장 김원봉 여동생 이산가족 상봉신청

    일제때 중국에서 광복운동을 하다 해방후 월북한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의 여동생 학봉(學鳳·69·경남 밀양시 삼문동 140의 10)씨가 북한 거주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낸 것으로 8일 뒤늦게 확인됐다. 고향인 밀양에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50여년을숨죽여 살아오던 학봉씨는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고 올케 최동선씨와 조카 중건(56)·철건(47)형제를 만나기위해 삼문동사무소에 신청서를 냈다. 김원봉은 1898년 밀양에서 태어나 일찌기 중국으로 건너가의열단 단장과 조선의용대장,광복군부사령 등을 지낸 항일무장투쟁의 거물.해방후 월북,노동상을 거쳐 57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까지 올랐으나 다음해 숙청됐다. 지난 32년 아버지 김주익(金周益)·어머니 이경념(李京念)씨의 11남매(9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학봉씨는 큰 오빠의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그녀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46년 2월 이국땅을 떠돌던 오빠가 광복을 맞아 고향을 찾았을때 처음 얼굴을 보았다.다음해 설날 다시 와 제사를 모시고 가면서학용품을 사주고 간것이 남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학봉씨는 “오빠가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며 “서울로 가면서 영어사전과지우개 달린 연필을 사줬다”고 회고했다. 학봉씨는 큰 오빠의 월북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숱한 고초를 겪다 결혼,3남2녀를 두었으나 32살때인 64년 남편과도사별,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세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딸 둘만 데리고 어렵게 살아왔다. 이후 독립운동을 했던 교육계 인사의 보증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았다. 학봉씨는 “오빠가 무장투쟁을 이끈 독립투사였지만 월북했다는 이유로 고향에 남은 가족들은 서럽고 한 많은 생을 살았다”며 “생전에 조카들이라도 만난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밀양 이정규기자 jeong@
  • 한국에 뿌리내린 화교3대의 ‘몸부림’

    세계화시대라지만 이민족에 대한 태도는 어디서든 배타적인 게 현실. KBS 2-TV가 5∼9일 오후8시45분 방송할 ‘인간극장화교3대,장씨네이야기’는 완고한 편견을 뚫고 한국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화교3대가 겪었던 신산고난의 세월을 다뤘다. 화교 1세대인 장학맹씨가 고향땅을 등진건 45년.장제스(蔣介石) 휘하군인으로 국민당의 중국 철수 때 피난올 당시만 해도 이곳에 영영 붙박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향이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되면서 눌러앉은 그는 한국전쟁부터 격동의 현대사까지 고스란히 추체험하며 한국사람이 다됐다. 3남1녀를 키워낸 밑천이 된 게 중국요리집.화교 특유의 잡초같은 경제력으로 큰‘성’ 하나보다 작은‘반점’ 두개를 열어 망할 때를 대비하는 ‘유비무환’ 전법으로 17년을 버텼다. 그렇게 키워낸 둘째,세째아들 경덕,경문.한국에서 나고 자라 연희동화교학교 동문이 된 2세대들이다.한국인과 똑같은 말을 쓰고 김치를먹건만 그들의 상실감은 출구가 없기만 하다.화교에 대한 무수한 가시적,비가시적 차별이 발목잡는 것.실제 경덕이네 4남매 제각각의 직업인 중화요리점 운영,한의사,약사,포장업은 화교들에 열려있는 가능성의 전부인 셈이다. 그래서 화교3세대들은 또한번의 역류를 꿈꾼다.죽으나사나 한국땅에동화되려 발버둥쳤던 아버지들과는 다르다.이들은 당당히 뿌리찾기에나서기도 한다. 경덕의 딸 혜영은 대만대학으로 진학한 대표적 사례. 하지만 한국과 타이완 어디에서도 온인간일 수 없는 아이들의 선택역시 반쪽티켓이긴 마찬가지.그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등허리가 휘는건어김없이 2세대들이다. 날마다 한편씩 5부가 방영될 드라마는 1부 장씨네 터전인 종로구 청진동 중화요리집을 배경으로 2∼4부엔 1∼3대 이야기를 각각 한편씩담아낸다.5부는 그들만의 설풍속이다. 3년전만해도 6∼7만명에 달했던 화교인구는 근자에 2만여명으로 3분의1가까이 줄었다.세계에서 유례없이 ‘차이나타운’이 형성안된 나라,각종 법과 제도로 화교들의 상업적 끼가 발휘될수 없도록 옥죄는한국적 현실때문. 제작을 맡은 제3비전의 노흥석PD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민을 원하는인구가 유례없는 급증추세라는데 국경장벽이 무색해지는 현실에서 이민온 자들의 고달픔을 쓰다듬어주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통해 역지사지를 해보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손정숙기자 jssohn@
  • [이사람] 화가 이상원

    일찍이 역사 속의 화가들은 독학을 한 천재가 많았다. 예술학교에 다니지 않아도,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천부의 재능과각고의 노력으로 보는 이를 감동시켰다.고흐 고갱 박수근 이인성이모두 그랬다. 지금처럼 예술이 엄격한 수련과 정치한 이론,후견으로축조되는 때에도 독학 화가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한국화가 이상원화백(66)은 우리에게 “그렇다”는 대답을 준다.공사판 막일꾼에서 극장간판장이로,상업초상화가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현대회화작가로 우뚝 선 이화백의 삶은 예술지망생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욕망과 좌절로 번뇌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꿈과 야망을 잃지말라,목표가 확실하면 고통도 즐겁다”고 위무한다. 이상원화백은 1935년 강원도춘천시 신북읍유포리에서 7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초등학교4학년때 할아버지 얼굴을 그린게 소문나 동네 노인들의 초상화를 죄다 그릴 정도로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6·25를 만나 공부 때를 놓치고 고교2년 중퇴, 17세때 가출 상경했다. 아무데나 끼여 자며 노동판을 전전했다.공사장에서 쉬던 중우연히그린 스케치 한장 때문에 당시 동양극장 간판부장을 소개받게 됐다. 간판장이가 됐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벤허’‘닥터지바고’‘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닥치는대로 그렸다.프로가 끝나면 흰페인트로 쓱쓱 지워 없어져버리는 화면을 보며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던 차 양씨라는 미8군납품업자가 찾아와 초상화를 권유했다.젊은 사람이 돈도 벌고 학교도 가야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설득했다.데생엔 자신이 있었고 인기가 좋아 하루에 많게는 70장까지 그렸다.이때 그린 미8군 사령관 초상화를 보고 노산 이은상선생이 안중근의사공식 영정을 부탁해 왔다.유명화가가 그려온 것이 마음에 안든다는것이다.70년10월 박정희대통령이 참석한 영정봉안식에서 많은 찬사를 받았고 그때부터 박대통령 부모,부부등 요인 초상화제작 주문이 줄을 이었다.외국까지 소문이 나 험프리부통령등 국가원수급 회담때 공식선물이 될 정도였고 중동건설 특수 때는 왕가의 공주,사위까지 그렸다.돈도 많이 벌었다.노산선생은 순수미술 얘기를 꺼냈다.어느날은 부르더니 ‘후암예술세계(厚岩藝術世界)’란 휘호를 써주며 제갈길을 가라고 당부했다.그리곤 한 달 후 별세했다.그의 뜻대로 진짜 미술을 하기로 했다. 독학을 했다.초상화는 다시 그리지 않았다.국내외 유명작가의 화집을 수집해 연구하고 미술관도 찾아다녔다.당시 유명화가를 찾아가볼까생각도 해 봤지만 마음뿐이었다.학연도 인맥도 없어 존재를 알리는길은 공모전밖에 없었다.74년 마흔의 나이로 국전에 도전해 첫 입선했다.78년엔 민전인 제1회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에서 차석을 차지해 작가로서 당당히 자격인정을 받았다.그러나 세차례의 개인전.국내화단의 반응은 냉랭했다. 작품가치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한 곳은 오히려 해외 화단이었다.98년 연해주 주립미술관을 필두로 중국미술관(98,베이징),프랑스 살페트리에르미술관(99,파리),국립러시아미술관(〃,상페테르부르크),중국상해미술관(2001)등 세계 정상급 미술관서 초대전을 잇달아 열어주며 뜨거운 반응을 보내줬다.작품도 구입해갔다.지난달 30일 끝난 상해전시서는 “감동적인 박애정신”이며 “아시아예술탐색의 앞날을 밝혀주는 작품”이란 평가(미술평론가 水天中)를 받기도 했다. 이젠 국내서도 외톨이가 아니다.지난해엔 국전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한국화부문 심사위원장도 맡았다.국전 대상은 놓쳤지만한국화단의 스승으로 거듭난 것이다. *화가 이상원 인터뷰. ◆화가가 됐다는 느낌은 언제부터 들었는가. 민전에서 두달 새 두번 차석을 하고나서다.두번째 국전 응모때 작품두점을 냈는데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제외돼 실망했다.더구나 입선작을 놓고 평론가들이 대상감인데 아깝게 됐다고 말하는 걸 보고울분이 치솟았다.아끼던 낙선작을 78년 처음 열린 동아미술제에 내봤더니 차석이었다.중앙미술대전에선 대상을 다퉜으나 두 달 전 민전 차석자를 대상으로 뽑을 수 없어 또 다시 차석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자신감이 들었다.그때부터 외곬으로 내 세계를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면 한국화인지 서양화인지,구상화인지 추상화인지 착각이 들 때가 많다.극사실주의 기법을 써 서양화같기도 하고 바퀴자국,마대,밧줄,인물을 세밀히 묘사해구상계열에 속하면서도 화면구성이나형태는 추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내작품은 한국화,구상화라기보다는 ‘현대회화’라는 편이 맞다.엄격한 조형성에 철학적 내용을 추구한다.기법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장지에 유채와 수묵을 혼합처리한 그림은 나밖에 없다.나름대로 기존의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하며 나만의 길을 갈 것이다. ◆독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영향을 준 화가가 있다면. 스승은 없다.밀레와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인상파작품들을 좋아했다. 큰 스케일,과장된 표현은 간판작업서,세밀한 묘사는 초상화작업의 영향일 거다.평론가 신양섭씨는 직선적인 발언으로 많은 자극을 주었다. ◆작가활동은 성공적이었나. 독학의 설움을 많이 받았다.86년 첫개인전을 열었는데 보러 와 주는화가,평론가가 거의 없었다.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다른 작가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이런 구박과 설움에서 내 작품의 힘이 나오는거라고 생각한다.인생의 힘겨운 무게,쓸쓸함,낡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충만한 애정은 나의 자화상이다. ◆작품을 팔지 않는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팔기 위한 그림은 실컷 그렸다.10,000점 이상 그렸고 돈도 많이 모았다.내 작품이 개인창고에 묻히는 건 바라지 않는다.러시아국립미술관 같은 좋은 미술관엔 작품을 기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두운 테마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볼 생각은. 미인도나 아기 그림을 그려보라는 사람이 많다.누드를 하고 싶다.흔한 누드가 아니라 나만의 작품.갯벌현장에서 수십명의 여성이 뒤얽혀 있는 누드군상 어떤가. ◆인사동에 화랑을 갖고 있는데. 그동안 모은 돈으로 건물을 사뒀다가 97년 갤러리로 꾸몄다.나처럼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작품만 좋으면 발표를 할 수 있는 곳이다.전시장 얻기도 쉽지 않았던 내 과거를 생각해 마련했다.두 아들이 내 취지를 잘 살려 운영한다.앞으로 미술재단을 만들어 좋은 일을 하고싶다. 신연숙편집위원
  • MBC 새 아침드라마‘내 마음의 보석상자’

    백화점 식당가에서 한식당을 하는 맹여사.어린시절부터 흠모해온 고향 오빠가 사별하자 전실 자식 둘을 마다않고 그와 결혼한다.소설가인 남편은 더없이 자상한 로맨티시스트,하지만 가장으로는 무능하다. 맹여사는 유독 전처소생 아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으며 4남매를억척으로 키워낸다. 그녀의 친딸 수정은 이런 엄마가 지긋지긋하다.“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며 증오와 복수심을 키우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남자는 애 딸린 이혼남.마음을 다잡고 도리질 쳐보지만 사랑을 막을 수가 없다. 5일 첫방송되는 MBC 새 아침드라마 ‘내 마음의 보석상자’(박지현극본·김정호 연출)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등장한다.혼자서 외동딸을 애지중지 키운 미혼모 집안,이혼한 아들부자와함께 3대가 살고 있는 홀아비 집안 등등. 시청률을 의식해 너무 비정상적인 가족상만을 나열했다는 ‘혐의’에 대해 김정호PD는 “저마다 상처를 묻어둔 채 살아가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풀어나가겠다”고살짝 비켜 선다. 수정역의 정혜영은 이름은 낯설지만 비타민약 ‘레모나’CF로 눈에익은 얼굴이다.올해 28세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앳된 얼굴에 사슴같이 큰 눈망울이 매력포인트.그동안 해온 청순가련형과는 달리 당차고씩씩한 혜영을 소화하기 위해 허리까지 내려오던 생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상대역에는 12살이나 연상인 띠동갑 홍학표가 캐스팅됐고 김영애(맹여사),임채무(소설가 남편),김영란(미혼모),김용건(홀아비) 등 중견탤런트도 대거 가세한다.특히 김영애는 KBS 저녁 일일드라마 ‘우리가 남인가요’에서 이기적이고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변모해 아침,저녁을 넘나들며 얼굴색을 바꿀 예정이다.자신의 본래 모습과 80%쯤 닮은 맹여사가 연기하기엔 한결 편하다는 게 그녀의 귀띔. 그동안 대부분의 아침드라마들이 불륜,삼각관계 등 뒤틀린 소재로 주부 시청 시간대를 도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이번에도 그렇고 그런 드라마겠지’하는 시청자들의 선입견을 깨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가족속에 숨겨진 보석같은 사랑을 제대로 끄집어내 보여줄지 한번 기다려볼 일이다.아침 9시에 방송된다. 허윤주기자 rara@
  • 北가족 소식 들은 3人의 감회

    ■김민하 평통 부의장. “지난해 정상회담 때 평양에 가서도 형님의 소식을 묻지 못하고 눈물만 펑펑 쏟았는데 이제 그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김민하(金玟河·67)수석부의장은 50년 이산의한을 안고 살면서도 다른 이산가족이 먼저라고 생각하며 형을 찾지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31일 오후 제3차 이산가족방문단 명단에 6·25전쟁 뒤 소식을 몰랐던 둘째 형 성하(成河·75)씨가 포함됐으며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대 총장과 교총 회장을 역임한 김 수석부의장은 “내 가족의 만남은 서신교환,면회소 설치 등이 이뤄진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곧 형님을 뵙게 된다 생각하니 감격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5남5녀중 6·25전쟁 당시 고려대에 다니던 성하 형님이 실종된 데 이어 옥희(73) 누님과 창하(70) 형님도 실종됐다”면서 “성하형님만 북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극한 효자였던 형님이 100세 노모가 평생을 기다리다 이제는 병상에 누워 의식조차 희미해졌다는 사실을 알면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김수조씨 조카 복겸씨. “삼촌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 되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북한 ‘피바다 가극단’의 총단장 김수조(金壽祖·70)씨의 조카 김복겸(53)씨는 51년 행방불명됐던 삼촌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뚝뚝 떨궜다. 김씨는 김수조씨의 다섯형제중 맏형인 김수희(金壽熙·73)씨의 3남매 중 장남. 김씨는 “삼촌은 다섯형제 중 셋째로 6·25가 발발한 당시 경기상고에 재학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삼촌은 아버지가 50년 월북한 뒤 임신하고 있던 어머니를 위해 쌀과 미역을 구해오던 잔정이많으신 분이었다”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었다.김씨는 삼촌이 북한에서 ‘공화국 영웅’ 및 ‘인민예술인’ 칭호를 받았다는 말을 듣자 “큰딸이 미대 진학을 준비 중이고,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혈통이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이봉태씨 동생 은태씨. “공부 잘하던 형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떨려서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은태(李殷泰·55·부산진구 범천2동 1637)씨는 6살 때 헤어진 둘째 형 봉태씨(71)가 북한에 살아 있으며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에 울먹이며 “형을 만나면 그동안 왜 가족을 찾지 않았는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둘째 형은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녔으며 법학과로 전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공부 잘하던 형은 우리 집의자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둘째 형이 전쟁 중 총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지만 병원이 폭격을 당해 죽은 줄로만 알았다”며 “가족 중 가장 키가 크고,둥근 얼굴에 사각모와 교복을 입었던 둘째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기억했다. 이씨의 큰형은 67년 작고했으며 현재 서울에 큰 누나(66)와 셋째 형(63)이 살고 있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소설가 황석영, 어른용 동화 ‘모랫말‘출간

    소설가 황석영이 어른을 위한 동화 ‘모랫말 아이들’(문학동네)을출간했다. 언제부터인가 형식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이되 성인 독자를 더 염두에 두고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는 이같은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이 최신작은 어른을 위한다는 한정어가 있긴 하지만 동화라기엔 담고 있는 인생과 역사의 진실이 너무 무겁다. 다른 작품을 쓸만큼 쓴 베테랑 작가가 모든 걸 다 걸러내고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정같은 인생의 진리를 읊자고 쓴 동화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내 유년 시절을 이야기해주려고 썼다”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의 피치 못한 무거움이 이해된다.보편적 인생이란 추상을수정처럼 갈고닦는 작가의 노력이 아니라 황석영 개인의 구체적 기억이 이 작품의 보석이다. ‘모랫말 아이들’은 1943년생으로 열살 안쪽에 해방과 전쟁을 맞은작가의 문학 이전의 기억이 최대로 복원되어 있다. 작가는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하는 문학적 형상화는 최소로 억제한다. 이처럼 기억에다 쓸데없는 분칠을 삼가지만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은인물과 사건들의 문학적인 효과가 뛰어나다. 한국전쟁 직전·직후에 서울 한강변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연유된 것도 있고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 흔히일어난 비역사적 일들도 있다. 움막집 거지,양공주의 트기 딸,전쟁에서 반편이가 된 상이군인,화교할머니,상둣도가 아저씨,양공주가 어머니인 같은 반 여자동무,곡마단남매, 그리고 주인공을 돌봐주는 식모 누나의 연애와 전쟁으로 인한비극 등. 글쓰는 작가의 여러 얼굴 중 기억의 흙더미에서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아니라 부스러진 기억의 흙 알갱이들을 소중하게 그러모으는 모습이 다가오는 작품이다. 김재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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