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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셔요] 돌아온 스타 성훈(成薰)과 펄·시스터즈 3남매

    [안녕하셔요] 돌아온 스타 성훈(成薰)과 펄·시스터즈 3남매

    『돌아와보니 나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 「펄 · 시스터즈」의 오빠 성훈(成薰)은 동생들을 가리키며 자못 대견해 못견디겠다는 말투다. 「수출배우 제1호」란 별칭으로 「홍콩」에 갔다가 3년만에 돌아온 그는 자기가 없는 3년동안 동생들이 가요계 정상의 인기를 차지한데 대해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것 같다. 모두가 늘씬한 체구 성훈(29)의 본명은 배용수(裵龍守). 「펄」자매는 인순(仁順·21) 인숙(仁淑·19). 이들 인기 연예인 3남매는 부산에서 통조림 공장을 하고 있는 배경식(裵敬植·59)씨의 6남매(남3·여3)중 세째, 다섯째, 여섯째 자녀다. 한결같이 쭉빠진 늘씬한 체구가 우선 혈통을 과시하는데, 어머니 (현정득(玄正得)·53)와 아버지중 어느쪽을 닮았느냐는 물음에, 『 양친이 모두 늘씬하시다』고 공평한 대답이다. 「매스콤」을 통해 수 없이 소개된 이들 3남매 이외의 비연예인 3남매 역시 『우리들 보다 더 늘씬하다 』는 자랑인데 출가한 맏딸 미령(美玲·33)씨는 소문난 미인이었고, 둘째 용하(龍河·31)씨는 한국수출공단 근무, 그리고 네째 용문(龍文·26)씨는 난방관계 회사를 갖고있는 예비재벌급 사장이라고 소개. 영화배우이든 가수이든 그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즐겁게 해주는 직업이고 보면 이들 성훈과 「펄」자매가 타고난 신체조건은 그야말로 천혜(天惠)라 할 수 있다. 재능을 과시하기 전에 우선 남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천질을 갖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들의 재능 역시 갖가지다. 본업인 노래와 연기를 제하고도 이들은 「스포츠」에 각기 「프로」급의 실력을 갖고 있다. 성훈은 중앙대(中央大) 재학중 축구 「팀」주장이었고 유도 2단, 당수 초단의 실력. 인순양은 중학교때 수영2백m에서 국내1, 2위를 다퉜다는 것. 인숙양은 「스포츠」는 『별로 흥미없다』지만 기성 뺨치는 「발레리너」. 허물없는 친구처럼 운동과 연예에 상통점이 있어서인지 이들 3남매는 오누이관계라기 보다 허물없는 친구사이다. 한국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잔빼기가 이들한텐 전혀 없다. 어디서 든지 함께 뛰고 뒹굴 수 있는 그런 탁 트인 분위기. 소꿉장난할 때의 동심을 이들 장성한 3남매는 그대로 지니고 있다. -셋이 함께 영화에 나간다는 소문이던데? 『 얼마전 그런 부탁을 받았어요. 「첫사랑」등 「펄」의 「히트·송」3편에 함께 출연해 달라는-』 성훈의 이 말에 인순·인숙양은 함께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화기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는 것.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지? 이 물음에 인순양은 『멋진 영화배우가 되고싶다』고 대답했으나 인숙양은 『 오빠와 함께 나가는 것뿐이지 큰 관심은 없다』고 서로 다른 의견이다. 이번에 3남매가 공동 출연할 생각을 내린 것은 이를테면 오빠의 귀국을 기념한 우애의 열매. 뮤지컬 영화 해봤으면 그런데 성훈은 동생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으로 오해될까봐 퍽 난처한 기색이었다. 『어린 동생들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입빠른 사람들의 편견을 두려워 했다. 그는 『 동생들이 이만큼 됐으니 「뮤지컬」영화를 해봤으면 해요. 노래와 연기가 제대로 조화된 본격적인 「뮤지컬」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 우리들 3남매의 「이미지」도 새로운 것이 될거』라고 그나름의 희망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성훈은 인기연예인으로 보다 순수한 여성으로 동생들이 행복해지길 희망했다. 『나는 이렇게 역설해요. 인순이는 72년까지만 노래하고 · 인숙이는 73년에 그만두라고. 여자는 결혼할때가 되면 시집가서 현모양처가 되는게 현명한 일이 아닙니까? 』 이 말에 동생들은 「너무 서두른다」고 똑같이 불만을 표했다. 『이제부터 노래공부도 본격적으로 할참인데- 』라는 게 인순양의 말이고, 『 시집가는 것보다 노래하는게 행복하다』는 게 인숙양의 항변. 귀국 한달이 채못되는 성훈에게는 이미 6, 7편의 작품 청탁이 밀려들었고 그 중 3편쯤은 동생들과 공연할 생각.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얼굴기형 수술 받은 학생9명 특별한 입학잔치

    “이제 크게 웃을 거예요. 이제까지 웃지 못했던 것까지 전부 다 합쳐서요.” 23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이 병원의 ‘밝은 얼굴 찾아주기 캠페인’을 통해 얼굴 기형치료를 받은 저소득층 아이들과 청소년 9명의 초·중·고등학교 입학축하 행사장에서였다. 그동안 선천성 얼굴 기형이나 상처 흉터로 인해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집안 형편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모처럼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민영(7·충남 보령군)양은 목젖과 입천장, 코뼈가 뭉그러진 얼굴로 세상에 태어났다. 이불보에 싸인 민영이의 일그러진 얼굴에 깜짝 놀란 어머니 이현희(31)씨가 생후 100일이 지난 뒤 1차 성형수술을 시켰지만 수술 흔적은 여전했다. 민영이는 매일 유치원에서 코와 입이 이상하다는 놀림에 시달렸다. 이씨는 “한번은 몰래 유치원에 가서 창밖에서 봤더니 따돌림 당해 한쪽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민영이를 보고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코와 입이 기형이다 보니 비장애 아이들보다 말 배우기도 느려 매일 회초리를 맞아가며 읽고 말하기 연습을 따로 해야 했다. 하지만 일용직 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전셋집에서 근근이 꾸려가는 형편 탓에 재수술은 꿈도 꾸지 못하다 지난해 8월에야 한 병원의 도움으로 얼굴이 거의 제 모습을 찾았다.“다음달 들어가는 학교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할 거예요.” 민영이가 책가방을 꼭 부여잡으며 말한다. 강원도 화천에 사는 정세희(9·여)·예찬(7) 남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매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돌출되는 크루존씨병이란 걸 앓았다. 집을 나간 부모 대신 할머니 최혜자(62)씨의 손에서 자란 세희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본다.”며 친구도 없이 혼자만 지냈고 예찬이 역시 누나와 함께 행동했다. 학교까지 가지 못하던 남매는 2005년 7∼8월 잇따라 수술을 받고 다음달 뒤늦게 초등학교 책가방을 메게 됐다. 선천성 소이증(小耳症)으로 왼쪽 귀가 자라지 않은 문대일(17·전남 순천군)군은 평소 다른 사람들이 자꾸 자신의 귀만 바라보는 것 같아 대인 기피증까지 겪었다. 중학교 땐 스포츠 머리인 친구들과 달리 귀를 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렀지만 그것마저 ‘다름’의 증거가 됐다. 문군은 2004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갈비뼈와 사타구니살을 떼어내 귀 모양을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부모님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어요. 귀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진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2004년 4월부터 캠페인을 열어 모두 210명에게 ‘밝은 얼굴’을 찾아준 삼성서울병원 사회사업실 구미현 사회복지사는 “수술 전에는 거울 보기조차 거부하며 침울하게만 지내던 아이들이 수술 뒤 웃음을 되찾으면서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는 입학 이후의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돼 우리도 보람차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공부 대충 하라지만…”

    “공부하라는 말보다 공부하지 말라는 얘기를 더 들었죠.” 23일 부경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는 만학도 신임순(66세)씨의 졸업소감이다. 신씨는 지난 2003년 만학도 주부특별전형으로 부경대에 입학,‘최고령 학부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신씨의 대학 4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학기에는 4.5점 만점에 3.95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녀는 “지난 4년간 도서관에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는 젊은이들이 가장 부러웠다.”고 회상했다. 남편이 9남매 중 장남이라 일년에 8번이나 되는 제사를 준비해야 했고 미술협회 소속 작가로서 활동을 하는 등 시간을 쪼개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 부산대 대학원에 진학해 법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여배우 2년에 중국인 여보와

    여배우 2년에 중국인 여보와

    여배우 손방원(孫芳園)양(21·본명 손정선(孫貞善))이 영화계를 은퇴하고 중국인 배우한테 시집갈 뜻을 밝혔다. 신랑감은 얼마전 한·중 합작영화로 한국관객에게 선보인 진준(陳駿)(29)이란 사람. 지난해 11월 『독룡마검(毒龍魔劍)』『용호칠협(龍虎七俠)』이란 합작영화에 공연한 것이 이 한·중 결합의 인연이 되었다는데-. 손방원양의 은퇴·결혼결정은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것 같다. 그녀가 중국 미남배우와 어쩌구 하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게 지난해 12월이고, 그때부터 손양은 다른 작품의 출연교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계를 떠나 결혼할 속셈이 이미 그때부터 있었던 모양. 사실상 이 염문 때문에 그녀는 은퇴를 강요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계 한 소식통은 손양이 중국 배우와 가까워졌을 때 손양의 어머니가 황급히 뛰어올라와 반강제로 그녀를 부산으로 데리고 내려갔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4개월 남짓, 6월 17일 불쑥 나타난 손양은 서울 한복판의 모「호텔」에서 이 은퇴·결혼의 뜻을 밝였다. -그 사람의 어느 점이 좋았던가요? 하필 중국사람이냐는 말로 알아들었는지 그녀는 『이제까지 제일 싫어한 게 중국사람이었다』고 입을 열었다. 『중국사람이라면 무뚝뚝하고 고집센 것 같아 싫었어요. 중국말은 정감이 없어 싫었고 중국음식은 너무 기름져서 싫었고…』- 어려서부터 특히 싫어했기 때문에 『운명이 짓궂게 묶어 놓은 것 같다』면서 사실인즉 그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이런 편견이 모두 사라졌고 반대로 모두가 좋아졌다-. 너무 좋아져서 「오히려 걱정」이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그늘이 없는 명랑파여서 호감을 주었던 청춘「스타」, 21살에 부산태생. 작고한 아버지는 한국의 원양 어업을 처음 개척한 수산업계의 거물이었고, 지금은 6명의 오빠가 부산에서 「천보(天寶)」「보림(寶林)」이란 2개의 극장과 병원 광산등을 경영하고 있다. 8남매중 막내딸. 미인대회에 나가 67연도 「미스·경북」, 준「미스·코리어」 에 뽑혔으니까 하고싶은 일은 대개 할 수 있는 처지다. -영화배우로 성공할 생각은 없었는지? 이 물음에 손양은 조금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막상 그만 둔다니까 작품이 밀려들더군요. 허망해요. 배우 됐다고 뭐 뚜렷한 작품하나 못내놓고…. 생각해 보세요. 배우생활 2년이라지만 항상 기다리기만 했으니…』- 작품기다리다가 제풀에 지쳐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뜻같다. 사실상 20편 출연을 손꼽지만 손양은 뚜렷한 작품이 없다. 그중, 유현목(兪賢穆)감독의 『몽땅 드릴까요』가 가위 대표작. 이 영화에서 그녀는 그녀 특유의 희극적 재능을 나타내 보였다. 깜찍하고 발랄한 용모에서, 그리고 「바바라·스트레이샌드」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코에서 「만약 그녀가 알맞은 작품·감독을 만났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손방원은 남겨 주었다. 알맞은 작품을 얻지 못하고 대개의 유휴(遊休)배우가 그렇듯 불안과 초조감 속에 방황하고 있을 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신랑감 진준씨인 것같다. 그녀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결혼하자는 그분의 첫마디에 가슴이 마구 설레었었다』고 「로맨스」의 초기 심경을 토로했다. 진씨가 합작 영화촬영을 위해 한국에 온 것이 69년10월이고 손양과 둘만의 「데이트」를 즐긴 게 12월 말. 『「크리스머스」직전이었어요. 모교(손양은 한양대 영화과 졸업)에서 초대를 받았는데 그분과 동행했었죠. 돌아오는 길에 B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그 분이 「사랑한다」고 말하더군요』 『독룡마검(毒龍魔劍)』『용호칠협(龍虎七俠)』이라는 두개의 검술 합작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동안 손양은 진씨의 『잘생긴 얼굴과 점잖은 성격』에 은근히 이끌려 있었다고. 그러니까 구애는 저쪽에서 먼저 했지만 이를 받아들일 소지는 손양쪽에 충분히 마련돼 있었던 모양. 『집에서 펄쩍 뛰셨어요. 영화고 뭐고 다 집어치우라고 막 걱정하셨어요』-결혼할 수 없다고 말하자 진씨는 몸소 손양 집으로 청혼행차를 했다. 『절대로 불행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결혼하게 해주시오』 물론 진씨의 이 말은 중국어였고 부산에서 중국요리집을 하는 중국인의 통역으로 전달됐다. 진씨와 손양의 사랑의 대화도 영어와 일본말, 그것이 막히면 한자로 필문필답을 한다는 것. 어쨌든 그토록 반대하던 어머니 오빠들이 진씨의 진지한 구혼에 그만 「오케이」를 했다. 이 깜찍한 청춘 「스타」를 빼앗아(?)가는 중국인 진준씨의 신분은? 손양의 말을 들으면 진씨는 손양 못지않은 양가의 교육받은 귀동자다.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이고 어머니가 현재 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삼촌이 일본에서 손꼽히는 재벌이고, 진씨 자신은 그의 형과 함께 「브러더스·필름」이란 영화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개인소유 「빌딩」이 몇 개-. 한국에 소개된 「스크린」속에서는 주로 검객으로 나오지만 대만(臺灣)에서는 「멜로·드라머」의 주역으로 50편 가량 출연했다. 다만 한·중 합작에 출연키 위해 건너오는 중국배우라면 대개 2~3류의 유휴급이란 통례에서 진준씨가 예외인지는 아직 미확인이지만. 약혼식은 생략하고 결혼은 오는 9월쯤, 장소는 「그분」나라인 대만에서 올릴 예정이란다. [선데이서울 70년 6월 28일호 제3권 26호 통권 제 91호]
  •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수확은 고사하고, 논밭을 갈아엎었다는 상처받은 ‘농심(農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농촌도 이제는 소득원을 다양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단순히 주식시장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고령읍 쾌빈3리 가얏고마을 주민들도 알게 모르게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었다. ●멜론으로 일어선 ‘작은 거인’ 가얏고마을은 주민이래 봐야 41가구 88명이 고작이다. 고령지역의 특화 쌀인 ‘흑미’가 주산물이지만, 그동안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5년 전부터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멜론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멜론은 3∼6월이 수확철로, 멜론 수확이 끝나면 곧장 비닐하우스를 철거한 뒤 벼농사를 다시 짓는다. 이를 통해 1년 열두 달이 농번기로 바뀌었다. 600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을 경우 매출은 150만원에 그친다고 한다. 게다가 농기계 운영비와 비료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반면 같은 규모에서 멜론 재배를 통해 거둬들이는 매출은 1000만원, 순수익은 600만∼700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멜론으로 얻는 수입만 연간 4억∼5억원에 이른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연평균 소득은 2300만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까지 올랐다. 배(쌀)보다 배꼽(멜론)이 더 커진 셈이다. 대다수 농촌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빈집도 가얏고마을에만은 비켜가고 있다. 홍석진 이장은 “지난해부터는 도매상인을 거치지 않고, 농협으로 멜론 판로를 일원화한 것도 소득 향상에 기여했다.”면서 “벼농사는 안 지어도 멜론 농사는 반드시 지을 정도”라며 미소지었다. ●“우리는 아직도 배 고프다” 주민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 선정을 계기로 새로운 소득원을 발굴,‘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근 중화저수지에 자연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1차 산업에 치우친 소득기반을 2·3차 산업으로 넓혀 나간다는 구상이다. 홍 이장은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늘면 직거래도 활성화돼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얏고마을 주민들을 위해 이 지역 대학인 가야대도 거들고 나섰다. 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경관을 정비하는 데 필요한 전통가옥 양식을 개발·보급한다는 구상이다. 고령지역에 숙박시설이 부족한 만큼 학교 기숙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원태 가야대 교수는 “마을이 자생력을 가져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을 수 있고, 소득 증대보다 소득 분배가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방문객이 아닌 주민 관점에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마을 주민들의 평균 소득을 오는 2010년까지 4700만원으로 지금보다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사진 고령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촌부들의 희망가 “젊은 사람들 많은 마을 만들고 싶데이”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가얏고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하지만 절실했다. 표현 하나하나에는 자식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이숙희(56·여) 서울 사는 맏딸 진경이, 수원 사는 큰아들 진봉이, 대구 사는 둘째 딸 보경이, 구미 사는 막내아들 덕봉이. 살기 좋도록 만들어준다 카이끼네. 흩어져 가지고 사는 4남매가 마을로 드와서(돌아와서) 다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데이. ●손욱수(55)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5년이나 됐데이. 가구 수는 그대론데, 주민 수는 옛날보다 반도 몬(못) 미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아이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뿌고, 젊은 사람들이 드오는 마을로 만들고 싶데이. ●조인제(50) 나이 50에도 우리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더간다(든다). 아~들(아이들) 통학시키려면 어려움이 많테이. 내 집 고치는 것조차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라카믄 이런 불편을 없애주는기 맞다. ●손봉화(77) 우리야 크게 잘 살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다만 마을 옆에 우륵박물관이 들어서고 나서 드오는 사람 한 명 없던기 마을에 사람들이 드오고 있다.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변추자(51·여) 1979년에 여(이곳에) 시집 왔는데, 지금은 친정보다 좋다. 친정 식구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 낀데, 기사에는 쓰지 마이소. 외지에서 시집온 나도 이제는 마을 사람 다 됐는데, 마을이 좋아지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끼다. ●이일균(59) 나락(쌀) 농사만 지으면 20마지기(논 4000평)가 있어도 자식 교육 몬 시키는 게 농촌 현실이다.4남매 대학까지 보내느라 땅 팔고, 안 빌린 학자금이 없데이.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이야 고향을 등지긴 어렵지만,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라마 소득부터 불라야(늘려야) 한다. ●홍석진(62)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은 어려우이끼네 새로운 소득원도 찾고, 마을 경관도 정비해야 한다. 뭐 할라카마(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뭐든 힘을 모아서 열심히 할 끼다. ●김조자(67·여) 농촌을 발전시킬라꼬 하면서, 뭐 할라카마(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뭔 규제가 많노. 마을 발전이라는 게 별 게 있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이가. ●손용수(67) 농촌이 어렵기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동네는 그동안 살기 좋다는 말은 들어왔다. 이웃끼리 단합도 잘 되고, 마을 일에 너나할 것 없이 거든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든다며 좋은 분위기 뿌사지지 안을랑가 걱정이데이. ●김태선(62·여)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는데 의심부터 든다. 주민들끼리 갈등이나 불만 없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주민들 마음부터 헤아리는 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아이가. 그라믄 뭘 한다고 해도 걱정 없다. ●김종순(55·여) 인생은 육십부터잉께네, 마을을 바꾸마 인자(이제)부터 올키(제대로) 인생을 살끼 아이가. 아직 50대 청춘인데 걱정 안 한다. ●김순자(56·여) 인자는 농촌도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일을 많이 해야 한다. 팔, 다리 아픈데 운동시설도 넣어주고, 목욕탕이라도 하나 있어야 일 마치고 시원하게 풍덩 빠질 수 있는 거 아이가. 그라믄 된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가얏고마을’ 이렇게 변신 ‘관광 안내원’을 자청한 이태근(60) 고령군수를 따라 나섰다.1만 1000여명이 거주하는 고령읍내는 차로 2∼3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고령은 4∼5세기에 번성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였으나, 남아 있는 사료가 충분치 않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읍내 뒷산인 주산 능선을 따라 올록볼록 솟아 있는 200여기의 고분들, 고분에서 발견된 문화재를 모아둔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탔다는 정정골,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양전동 암각화 등 다양한 문화유적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도 지루하지 않다. 이것도 모자라 한창 공사 중인 70만평 규모의 수목원,5만평 규모의 대가야테마파크 등이 올해 안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군수는 “지난해 180만명 정도가 고령을 찾았지만 대부분 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하룻밤 머물지도 않고 그냥 가는 게 현실”이라면서 “도로 하나 덜 내더라도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인 가얏고마을은 읍내 동북쪽에 위치한 정정골이다. 정정이라는 마을 이름도 맑은 가야금 소리에서 유래했다. 마을 양 옆으로는 각각 중화저수지와 우륵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가얏고마을의 변신은 대가야를 대표하는 가야금과 맞물려 있다. 마을 인근에는 현악기전시장과 가야금체험관, 예술인촌 등 ‘하드웨어’가 구축될 예정이다. 국제현악기축제와 농촌체험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마련된다. 전통 현악기의 ‘메카’로 자리매김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국비 34억원, 지방비 38억원, 민자유치 30억원 등 1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군수는 “읍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인프라를 하나로 묶어낼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고령군에서 가야군으로 개칭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폐품 모아 이웃 돕는 ‘설 산타’

    폐품 모아 이웃 돕는 ‘설 산타’

    “어려운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게 진정한 명절이지. 쌀집 점원으로 컸으니 쌀로 기부하는 거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설날만이라도 따뜻한 밥 먹고 지냈으면 좋겠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최돈산(81)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설 산타’로 불린다.5년 전부터 매년 설마다 폐지와 고철을 팔아 모은 돈으로 쌀 20㎏짜리 50포대를 구입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설을 이틀 앞둔 16일에도 최 할아버지는 홍제3동 사무소에 어김없이 쌀을 기증했다. ●홍제동 ‘설 산타’ 할아버지 20년째 운영한다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서자 최 할아버지는 넉넉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사연을 묻자 “별 것도 아닌데….”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아침마다 동네에 굴러다니는 폐지와 고철 등을 주워다 팔아 돈을 모았어.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명절 때 어려운 사람들 따뜻한 밥 한끼 해먹으라고 동사무소에 준 것뿐이지.” 그는 쌀 값을 마련하기 위해 1년 내내 아침마다 손수레를 끌고 마을을 돌며 폐지와 고철 등을 모았다. 손수레 한가득 차야 5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지만 하루종일 발품을 팔아도 손수레를 채우기 쉽지 않다. 이렇게 모으는 돈은 매년 200만원을 약간 웃돈다.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들이 좀더 풍성한 명절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기운이 솟는다고 한다. 10년 전 대장암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문득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향민 할아버지의 이웃사랑 “자식들은 제발 허름한 옷 그만 입고 좋은 옷 좀 입고 살라하는데 나는 그냥 이게 편해. 허튼 데 돈쓰는 것도 아깝고 말야.”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1945년 19살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내려와 갖은 힘든 삶을 산 탓에 어려운 이웃에 대한 정이 애틋하다. “내 고향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지. 거기 형님 한분이랑 남동생 두명을 두고 왔는데 지금도 살아계시려나 몰라. 대신 1년에 한번씩 강화도 양산면 바닷가에 가서 멀리서나마 고향땅 봉대산을 바라보곤 해.” 그는 서울에 내려와 마포 나루터에 있는 배 위에서 숙식을 하다 능금밭 파수꾼을 맡았고,50년 결혼하자마자 한국전쟁이 터져 육군 이기자부대 창설 멤버로 입대했다. 양양 전투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제대후 남대문 시장 쌀집 점원으로 취업하면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 쌀집 점원을 하며 어렵게 6남매를 키웠다. 현재 부동산중개업소는 20년 전 친지가 운영하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말이 부동산이지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이정용(55) 홍제3동장은 “최 할아버지는 절약하고 사는 것이 생활화된 분이며, 어려운 이웃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라면서 “기증받은 쌀은 동네 독거노인이나 일시적 실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틈새가정, 경로당 8곳에 등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강아연 손형준기자 arete@seoul.co.kr
  • 축구 남매 ‘올림픽 신화’ 첫 걸음

    한국 남자 올림픽축구대표팀이 예멘을 상대로 6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향한 시동을 건다. 예멘은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1차 예선 2차전에서 팔레스타인과 1-1로 비겼으나 1·2차전 합계 3-2로 2차 예선에 진출, 한국의 첫 상대로 결정됐다.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28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예멘과 아시아 2차 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예멘은 한국과 한 번도 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 베일에 가려진 팀이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3위로 한국(44위)보다 한 수 아래다. 핌 베어벡 감독은 예멘-팔레스타인전 현장을 찾아 전력 분석에 집중했다. 지난 7일 예멘-팔레스타인 1차전을 관전했던 최경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은 “패싱력이 돋보이는 공격형 미드필더 알라 모하마드 아싸씨가 키플레이어”라면서 “오는 5월 해발 2300m 고원에서 치러지는 예멘 원정에서 고전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남자올림픽축구는 새달 14일 UAE와 원정 경기,28일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승자와 홈경기를 갖는다.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남자보다 앞서 17일 사상 첫 본선 진출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인도와 1차예선 A조 1차전을 펼치고,25일 인도 원정을 간다. 인도는 FIFA 랭킹 55위로 한국(23위)보다 뒤져 한국의 승리가 예상된다. 아시아 지역에 걸려 있는 여자축구 올림픽 본선 티켓은 2장. 개최국 중국은 자동 출전하고 북한과 일본은 최종예선에 이미 직행했다. 한국 등 13개팀이 3개 조로 나뉘어 1차 예선을 치른 뒤 각 조 1,2위 팀이 최종예선에 나간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남매 해국장교 안미영·승화씨

    “동·서 영해 방위, 오누이가 책임집니다.” 아버지를 이어 2대째 ‘바다 지킴이’로 나선 남매 장교가 있다.2함대 전투정보관 안미영(29·사관후보생 98기) 대위와 1함대 상황장교 안승화(26·해사 59기) 중위다. 누나가 서해를, 동생이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해병대 출신 아버지 밑에서 바다와 군에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자랐다. 임관은 사관후보생인 누나 미영씨가 2년 빨랐지만 해군과의 인연은 사관학교에 입학한 동생 승화씨가 먼저 맺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사이언스+(YTN 오후 1시40분) 지금 강원도는 다양한 축제의 열기로 매서운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영하의 날씨를 이겨내며 강원도의 마지막 겨울축제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한창 몸만들기를 하고 있는 강원도 특산물이 하나 있다. 바로 황태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강원도 황태를 찾아 떠나본다.   ●한자퀴즈王(EBS 오후 8시) 한자퀴즈왕의 영예를 차지하기 위한 다섯 팀의 질주. 어린 나이지만 발군의 한자 실력을 갖춘 초등학생 형제팀 ‘한자형제’를 비롯해 남매 팀 ‘가온’, 친구 팀 ‘봉수만리’ 등과 경합을 벌인 끝에 선후배 팀 ‘마박이’와 부녀 팀 ‘영쌤’이 2회전에 진출한다. 결정전에 오를 한 팀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50분) 낯선 사람이 쳐다만 봐도 공포에 떠는 4살 혜령이. 옷깃만 스쳐도 대성통곡은 기본,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혜령이에게 괴물취급을 받는다. 낯가림 공주의 놀이상대는 오직 한사람 엄마뿐. 공포심 극복하기와 인형놀이와 함께하는 외출연습. 낯가리는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처방전이 공개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서경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서경임을 확인한 경선은 아직 건우와 서경이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불안해한다. 건우는 서경을 위해 입원 중인 진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세영은 서경이 진아의 뒤에서 서성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다. 한편, 소영은 진아에게 인형을 선물로 보내는데….   ●상상+(KBS2 오후 11시5분) 반듯한 신사 이미지의 김석훈.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그는 사실은 아줌마였다? 이제는 결혼하고 싶은 김석훈의 운명 같은 사랑이야기가 공개된다. 콜라병 몸매의 소유자 김성은.HOT 토니의 팬이었던 그녀의 데뷔 전 비화를 들어본다. 오누이처럼 잘 어울리는 두 남녀. 둘만의 격렬한 러브신 이야기를 들어본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상현을 위한답시고 은주가 내뱉은 말에 혜경은 속 좁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상현을 비난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아 속이 상한 혜경은 홀로 밥을 먹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은하는 지수를 만나 무영과 친구 사이가 확실한지를 확인하고 나중에 딴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 371년 하버드 역사를 새로 쓰다

    1960년대까지도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던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의 셰넌도어 계곡. 미 컨트리 가수인 올리비아 뉴턴 존의 리메이크 명곡 ‘컨트리 로드’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곳이다. 그 곳에 사는 부유한 백인 농장의 아홉살 소녀는 1957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저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합니다.” 4남매 중 유일한 딸인 소녀에게 어머니는 늘 당부를 했다.“딸아, 너는 남자들의 세계에 살고 있단다. 네가 이 사실을 더 빨리 깨달을수록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단다.” 소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소녀는 자라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에 참가했고 고향인 남부와 남북전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됐다. 어머니의 조언으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뒤 소녀는 ‘창조의 어머니들(Mothers of Invention)’이라는 저서를 펴낸다. 소녀는 자신의 대표작이 된 책 서문에서 “내 할머니와 어머니께 바친다.”면서 “이 분들이 내게 영감을 줬고 어머니의 말씀이 틀린 걸 입증하는 데 미국 사회와 문화가 나를 도왔다.”고 밝혔다. 이 소녀는 11일(현지시간) 371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하버드대학 첫 여성 총장이 된 드루 길핀 파우스트(59) 교수. 임기는 오는 7월1일 시작된다. 그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하버드대의 첫 여성 총장이 아닙니다. 나는 하버드대의 총장입니다.”라며 ‘우리 모두는 인간일 뿐 남녀에겐 어떤 차이도 없다.’는 평생의 신념을 다시 강조했다. 하버드대는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 중 여성 총장을 배출한 4번째 학교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8개의 아이비리그 대학 중 절반이 여성 총장 시대를 맞게 됐다고 전했다. 미 대학계의 여풍(女風)을 주도하는 인물들은 프린스턴대 셜리 털먼, 브라운대 루스 시몬스, 펜실베이니아대 에이미 거트다. 파우스트 신임 총장은 하버드 출신이 아닌 인사로 330여년 만의 두 번째 총장이다. 첫번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1654년 하버드 총장이 된 후 1672년 집무실에서 사망한 2대 찰스 숀시다. 브린모어 여대를 졸업,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역사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후 25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다.2001년 그녀는 하버드대에서 가장 작은 기관인 래드클리프 고등학문 연구원 초대 학장을 맡으며 하버드와 인연을 맺었다. 교내 학보인 하버드대 가제트는 파우스트 학장이 먼저 개혁부터 시작했다고 전했다. 래드클리프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이들을 재교육시켰다.300만달러 규모의 적자에 허덕이던 래드클리프에 2002년에만 493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래드클리프는 그녀의 지휘 아래 현재 미국내 가장 앞서가는 문화연구 학술기관이자 싱크탱크로 탈바꿈했다. 하버드대 이사회가 파우스트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한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진취적인 ‘개혁 정신’과 돋보이는 경영 능력이었다. 결코 그녀가 피도 눈물도 없는 경영가는 아니라는 것이 중평이다. 하버드대 앨리슨 시몬스 철학과 교수의 평가.“파우스트 교수는 진짜 사람입니다.” 인간 의지와 지성을 믿는 균형잡힌 인문학자라는 지적이다. 남편은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의·과학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같은 대학 찰스 로젠버그 교수이며 두 딸이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6) 대전시

    [한국체육 뿌리를 다지자] (6) 대전시

    대전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 초등부에서 금메달을 2개밖에 못땄다. 이것도 수영선수 1명이 다 땄다. 이 선수는 다음달 중학교에 진학하면 선수생활을 그만둘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이건표 장학사는 “대도시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한 비인기 종목 기피현상이 더욱 심하다.”면서 “초등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 중·고교 체육과 연계가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전시의 학교 체육이 무너지고 있다. 회생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붕괴 정도가 심각하다. 초·중교 학생이 참가하는 전국소년체전에서 대전은 2004년 8위와 2005년 6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금메달을 18개밖에 따내지 못하면서 갑자기 14위로 성적이 뚝 떨어졌다. 기초종목은 물론 인기종목들도 해체되는 팀들이 잇따르고 있다. 단체종목마저 초·중·고교별로 1개 팀씩 꾸리기도 쉽지 않다. 유성구에 있는 지족고는 올해 세팍타크로팀을 해체했다. 서구 변동 남중학교도 하키팀 해체를 앞두고 있다. 서대전초교 농구팀도 지난해 9월 해체됐다. 이 농구팀은 초등학교에서 유일해 교육청에서 다른 학교가 재창설하는 방안을 학교장과 협의하고 있다. 이 장학사는 “교사들이 기피해 지도교사 지원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선수발굴이 더 어려워지고, 결국은 팀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그는 “초·중교 학교체육이 무너지면서 고교 팀도 맥을 못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전은 전국체전 고등부에서도 2004년 10위,2005년 12위, 지난해 11위 등 줄곧 하위권을 맴돈다. 선수 수급이 어려워 수영과 육상은 100m,400m 등 전체 종목 가운데 출전할 수 있는 종목은 40%에 불과한 실정이다. 신도시인 노은지구는 초등학교가 6곳이 있지만 운동팀은 한 곳도 없다. 고등학교도 지족고 세팍타크로팀이 해체돼 현재로서는 운동팀이 없는 상태다. 이 장학사는 “가끔 학부모로부터 ‘골프팀이 있는 학교는 없냐.’고 묻는 전화만 걸려온다.”고 한탄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카누 염인화(대전여자정보고 2년),10㎞ 단축마라톤 우승자 장유진(대전체고 2년), 양궁 50m,70m에서 체전 타이기록과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정예진(대전체고 1년) 등이 꿈나무로 커가고 있다. 지난해 열린 소년체전과 전국체전 고등부의 금메달이 체조, 펜싱, 육상, 사이클, 사격, 수영, 레슬링 등 기초종목에서 많이 나온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학교체육 예산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2005년 24억여원에서 올 21억여원으로 줄곧 감소 추세다. 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남기호 장학사는 “2002년 시민체전이 폐지되면서 자치단체의 지원이 모두 끊겼고 초·중·고교 운동팀을 후원해주는 사회단체나 독지가도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전시교육청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거점학교에 코치 한명을 배치하고 주변 학교 선수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훈련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초·중 거점학교는 육상 13개교, 수영 7개교, 체조 2개교 등이 있다. 사립체육시설 코치가 선수를 길러 좋은 성적을 내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올해 처음 도입했다. 교육청은 이 예산으로 5000만원을 책정했다. 운동팀 구조조정도 추진하고 있다. 먼저 해체된 팀을 재창단하는 것이다. 지난 7일 보운초교의 다이빙팀과 9일 대청중 양궁팀을 다시 창단했다. 올해 농구, 배구, 롤러 등 총 10개팀을 재창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러 운동팀이 있는 학교는 다른 학교로 분할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학교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농구, 핸드볼, 테니스 등 4개 운동팀을 운영하고 있는 대전중에 한 종목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른 학교들이 맡는다. 남 장학사는 “운동선수들도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등을 모두 받는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제도화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운동선수를 기피하는 현상을 줄여 선수들을 확보하는 방안도 올해부터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우리 마을을 카누명소로… 선수지원 힘나요” “선수들도 좋고, 우리 마을에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카누를 사랑하는 모임(카사모)’의 김선식(44·토목업·대전 유성구 방동) 부회장. 그는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대전에 있는 중·고교 카누팀을 지원하기 위해 카사모를 만든 장본인이다. 카사모는 만년·진잠중학교, 한밭고, 대전여자정보고 등 대전에 자리잡고 있는 중·고교 4개팀 선수단을 지원한다. 이들 선수단은 김씨의 마을 저수지에서 1년 내내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후원모임 창립 김씨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다가 어린 선수들이 카누훈련을 받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물살을 가르면서 나가는 카누행렬을 보고 “아 저걸 관광상품화하면 마을에 관광객이 많이 몰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 하면 ‘박세리’를 떠올리듯 방동 하면 ‘카누’가 금세 연상되도록 한다는 구상이었다. 지난 6일 찾은 방동에서는 남녀 카누 선수들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체력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어 저수지로 옮겨 바지선 위에 보관 중인 카누를 정비하고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몇몇 선수들은 카누를 타보기도 했다. 저수지 옆에 이동식 화장실만 있을 뿐 편의시설은 없다. 씨는 마을 주민, 초등학교 친구 등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 뒤 모임에 끌어들여 지난해 11월 모임을 창립했다. 금세 15명이 뜻을 같이하고 회원이 돼 주었다. 주부, 보험설계사, 농민, 음악인, 자영업자 등으로 직업도 다양하다. 회장은 대전카누팀 초창기 지도교사로 카누 선수 출신인 최민기씨를 추대했다. 김씨는 카누팀의 성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적이 김씨의 모임 만들기를 더 자극했다. 중·고교생 각각 9명씩 모두 18명으로 짜인 이들 카누팀은 중학생들이 지난해 소년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땄다. 같은 해 전국체전 고등부에서도 금메달 2개와 은·동메달 1개씩을 따냈다. 특히 저수지 옆에 사는 염인화(대전여자정보고 2년)·희태(만년중 3년) 남매가 금메달을 따내 관심을 끌었다. 둘은 모두 국가대표 상비군이다. 이들을 포함, 국가대표 상비군이 3명이고 중학생 2명이 꿈나무로 선발됐다. ●간식도 건네고 응원도 하고 카사모는 매달 1인당 1만원씩 회비를 걷어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찬조금을 내는 회원들도 있다. 분기별로 모임을 갖고 지원방안을 논의하기도 한다. 빵과 음료수 등 간식을 건네고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버스를 빌려 응원도 나간다. 오유미(14·진잠중 1년)양은 “아저씨들이 찾아오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심재성 지도교사는 “주민들이 나서 줘 마음이 든든하다.”고 거들었다. 김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웃었다. 카사모는 회비가 더 늘면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에게 포상금도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탈의실, 화장실, 샤워장 등 열악한 시설을 개선하는 데도 앞장을 서고 관련 기관과 협의, 시설 인허가 문제도 해결해줄 생각이다. 카사모는 회원을 100명 이상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카누마을’로 키운다. 김씨는 “좋은 성적을 계속 내고 여럿이 목소리를 내다보면 대전의 대학이나 기업에도 카누팀이 생길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어린 선수들의 진로도 열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카누는 현재 비인기 종목이지만 우리나라가 더 발전하면 생활스포츠로 자리잡을 것”이라면서 “아직 카누를 잘 모르지만 먼저 내 가족부터 함께 즐기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외국인은 “카누를 좀 타자.”고 말하기도 한다. 국내 관광객 중에서도 “좀 태워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이 구상이 헛된 꿈은 아니라고 김씨는 자신했다. 그는 “도시 변두리 작은 마을에서 비인기종목을 키우는 게 쉽지 않지만 방동을 반드시 국내 최고의 ‘카누마을’로 만들겠다.”고 활짝 웃었다. 글 사진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08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미국 이민서비스국은 올 6월부터 이민 관련 서류 수수료를 대폭 인상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한인들의 부담도 커지게 됐다. 시민권 신청비와 영주권 갱신 등 거의 모든 수수료가 두배 가까이 올라 영주권을 접수하는 데만 1000달러 이상이 든다. 변호사 비용까지 합치면 거의 1만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수현이와 동현이 남매. 매일 일과를 챙기고, 과제를 챙기고, 공부 스케줄도 챙겨왔던 엄마 이지은씨. 어느새 아이들은 시켜야만 공부하는 아이들이 된 것만 같아 엄마는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남매에게 맞는 공부법과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 엄마가 알아야 할 점들에 대해 알아본다.   ●외과의사 봉달희(SBS 오후 9시55분) 학회장에서 중근은 신약에 부작용이 있다며 시판을 연기해야 한다고 발표한다. 서교수는 중근을 질책하고 없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반면 건욱은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쳐 이교수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정작 기뻐해야 할 건욱이 어두운 표정을 짓자 달희는 건욱을 위로하다 연애를 하자고 제안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건우는 세영이 내미는 여자 단추를 보고,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단추라고 둘러댄다. 세영은 다시 한번 확인하며 안심한다. 서경은 예쁜 동생을 낳아달라는 우람을 바라보며 착잡해진다. 경선은 세영, 송씨와 양평으로 가던 길에 양평 땅을 원수인 윤춘식이 줬다는 송씨의 말을 듣고 놀란다.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전통 한복뿐 아니라 전통적인 느낌이 나는 무대의상을 만드는 데도 솜씨가 좋은 이효재는 나훈아의 무대의상도 맡아 하고 있다. 이런 이효재의 소문을 듣고 가야금단이 무대의상을 맞추러 찾아왔는데 손님맞이가 예사롭지 않다. 솔잎을 깔아 떡을 장식하는 등 온갖 솜씨를 아끼지 않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옛날부터 혈압이 높다거나 심장병 등의 순환기 질환에 걸리면 오징어나 문어를 푹 고아 먹었다고 구전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40년에 낙지 삶은 국물에서 타우린을 추출하여 의약품을 제조, 심장병 및 결핵치료약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오징어의 효능과 다양한 활용법에 대해 알아본다.
  • [07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업(YTN 오후 1시30분) 민주노총이 새 위원장을 뽑았다. 노동현장에서, 길거리에서 민주노총은 파업과 시위를 주도해 왔다. 이번에 선출된 이석행 위원장은 온건파라고 하는데 그래서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다. 이석행 위원장에게 노사정 불참이유와 코오롱, 대림건설 등의 대형 노조 탈퇴 등 민주노총의 현안과 활동방향을 들어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주부들은 과연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조리시간을 3분의1로 줄이고 영양 파괴를 최소화시켜주는 장점을 지닌 압력솥. 게다가 전기밥솥을 이용할 때보다 전기를 60∼70%나 절약할 수 있다. 압력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잘 살아보세(SBS 오후 6시50분) 월수입이 곧 식비로 쓰이는 화목한 영등포 5남매네.11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아내는 5남매를 돌보다 가계 운영은 뒷전이다. 부부의 천하태평으로 수입은 늘지 않고 빚은 불어나고 아이는 다섯인데 사교육비는 제로다. 미래 계획도 없고, 현재 계획도 없는 마음만 부자인 아빠를 위해 제작팀이 나섰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해미는 식구들에게 다 같이 양평으로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민용은 빠지려고 해보지만 순재가 무조건 가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같이 가기로 한다. 해미는 그런 민용의 모습을 보며 고소해한다. 한편 윤호는 학원에서 찬성이 한 여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구해준다.   ●달자의 봄(KBS2 오후 9시55분) 강태봉은 집을 나가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여자와 함께 지내는 것 같아 점점 신경이 쓰이는데, 할머니 이끝순이 달자와 태봉의 동거 사실을 눈치채고 무섭게 추궁한다. 한편 달자에게 내려진 징계가 풀려 마침내 MD팀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상상도 못한 시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늪이라고 하면 더럽고 질척한 죽음의 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죽어 있는 듯 조용한 습지에는, 놀라운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 습지는 각종 수생식물과 곤충, 어류, 철새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며,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젖줄이다. 푸릇푸릇한 봄내음 풍기는 동화 속 그림 같은 우포늪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본다.
  • ‘러브 스토리’ 주연 라이언 오닐 아들 총격 혐의로 체포

    1970년대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던 영화 ‘러브 스토리’의 스타 라이언 오닐(65)이 지난 3일 새벽(현지시간) 아들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4일 “캘리포니아주 말리부 오닐의 집에 출동할 당시 오닐은 아들 그리핀(42)에게 총을 발사한 뒤였다.”면서 살상무기에 의한 폭행 혐의와 부주의한 총기 사용 혐의가 그에게 적용됐다고 밝혔다. 그리핀은 다치지 않았으나, 부자간 싸움을 말리던 그리핀의 여자친구 조앤 베리(22)가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경찰에 따르면 총격의 이유는 ‘가족간 갈등’이었으며, 오닐은 즉시 체포돼 5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5만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오닐이 권총을 몇 발이나 발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오닐의 매너저와 출판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고 있어 정확한 총격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핀은 오닐과 첫 부인 조앤 무어 사이의 아들로 여배우 테이텀 오닐과 남매이다.80년,90년대 B급 영화 수편에 출연한 그리핀은 아버지의 명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범죄피해 구조금 3000만원 검토”

    “힘들지만 용기를 잃지 마세요. 저희가 항상 함께하겠습니다.”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살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인 모 중학생 남매의 집을 찾았다.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기본계획 시행 첫해를 맞아 범죄피해자 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원에서 피해자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간 범죄 피의자 인권에 많은 신경을 써왔지만 이제는 피해자들의 인권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자기의 잘못도 없고 마냥 억울한 범죄피해자들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한살터울인 이들 남매가 아버지를 잃고 소년·소녀 가장이 된 것은 2005년 5월.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던 아버지가 취객털이범들에 의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현장에서 숨지면서부터다. 결국 이들 남매는 주위의 소개로 ‘한국범죄피해자 지원중앙센터’를 찾았다.2004년 12월 설립된 이곳은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자율의 비영리 사단법인. 이곳에서 남매는 유족구조금 긴급지원금 1000만원을 비롯해 6개월간 매달 20만원씩 지원받았고, 장학금도 100만원을 받았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월 40만원씩 받고 있는 게 고작이다. 생활비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집세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법무부는 이들 남매처럼 범죄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구조금 지급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5개년 기본계획’을 지난달 발표하고 올해부터 2011년까지 1차 기본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들 남매처럼 어려움을 겪는 범죄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면서 “앞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구조요건을 완화하고 현재 1000만원인 구조금도 3000만원까지 늘리는 방안(서울신문 1월17일자 6면 참조)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한글 깨치니 새 세상 열려”

    “배우지 못한 서러움이 너무 컸습니다. 상점 간판도, 버스 간판도 제대로 읽지 못해 언제나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30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지하 강당. 국내 최초의 성인대상 학력인정 초등학교인 이곳에서는 할머니 초등학생들의 ‘나의 주장 발표 대회’ 본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옥자(62) 할머니는 단상에 올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공부의 중요성을 웅변했다. 의자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에 귀기울이는 200여명의 재학생들 대부분은 50∼80대 할머니들. 소복이 눈 내린 듯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하지만,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 가슴속 열정을 쏟아놓았다. 이 할머니는 8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뒤늦게 학교에 입학해서 한글도 배우고 웹서핑도 배워서 딴 세상에 사는 기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한 학기에 8개월씩 모두 4년 12학기로 구성돼 있는 양원초등학교는 2005년 3월 개교해 2009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현재 2개 학년 16개반 총 550여명의 학생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신나는 겨울놀이와 추억의 먹거리들이 마련된 겨울축제의 현장, 포천으로 떠난다. 포천에서 열리고 있는 동장군 축제를 찾아 논밭 얼음에서 즐기는 얼음썰매와 백운계곡 산비탈 눈썰매장에서 짜릿한 눈썰매도 타본다. 나무를 톱질하며 산촌체험도 해보고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산골짜기도 유람해 본다.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9시30분)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라며 반복되는 일상. 미운 오리새끼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200년 전 안데르센의 동화를 현대의 일터에 탁월하게 적용한 ‘미운 오리새끼의 출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자.   ●그것이 알고 싶다(SBS 오후 11시5분)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53.5%가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종교 국가인 관계로 종교 간의 갈등이 적지 않다. 특히 제사나 혼례를 둘러싼 가족간의 종교 갈등은 가족화목을 저해하고, 이혼·가출 등 가정파탄을 부르기도 한다. 설날을 앞두고 종교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경찰서에 가서 미리 사채업자를 고소했던 승주는 혁주와 함께 공원에서 사채업자를 만난다. 주변 눈치를 살핀 사채업자는 의심스러운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승주 남매를 비웃는다. 건우가 학교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수아는 학과장에게 가서 왜 돈 보고 학원으로 옮긴 작자에게 다시 강의를 주냐며 따진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점점 더 다가선다. 준호는 죄책감도 없이 지연 몰래 하영과의 만남을 즐기기 시작한다. 태섭은 종민의 부탁으로 어머니의 목걸이를 사러 나갔다가 지연을 만난다. 태섭은 지연의 추천대로 목걸이를 구입하지만, 망가진 목걸이라는 것을 알고 화가 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 방콕.1782년 라마1세 국왕 때 세워진 방콕은 차오프라야강 기슭에 위치해 발달한 도시다.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늘어선 수상가옥과 도로의 체증을 피해 이용할 수 있는 수상버스는 태국의 명물로 손꼽힌다. 미소를 품은 물의 나라, 태국 방콕으로 떠나본다.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어머니 앞으론 저를 장군님이라 불러주세요.”천신만고의 경쟁 끝에 별을 단 아들이 감격에 겨워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라고 한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신분은 장관급 장교가 된다. 별을 달기 전보다 대우가 몇십가지는 달라진다고도 한다. 김록권(53) 중장. 별이 세개인 의무사령관이다. 지난해 12월1일 의무병과에서는 최초로 3성 장군에 올라 관심을 끈 인물.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사건 등 줄이은 군의료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뒤라 3성장군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군의무 개선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그는 군 안팎에서 철저한 업무는 물론 독특한 개인적 소신과 실천으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육군 수도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소문대로 그가 왜 창군 이래 의무병과로는 첫 3성장군이 됐는가를 웅변했다. 그의 요즘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군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군의관 직의 매력을 전하는 ‘군의관 전도사’. 또하나는 사생활 측면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한 종교적 전도사다. 먼저 군의관 관련 질문부터 해보았다. -현재 군 의료인력은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단기 군의관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병사들이 거의 실습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단기 군의관이라고 해도 의사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직업적으로 일하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군의관 중 3%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정원의 25%밖에 채우고 있질 못합니다. 국·공립 병원의 58% 수준에 머물고 있는 보수체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급인력을 군에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군의무발전추진계획’에 따라 대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올해 ‘군의관 임용 등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서 2008년까지는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높이겠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 선점을 위해 국방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 의학대학원에 정원 외 40명을 더 뽑아 미래의 군의관으로 위탁교육한다는 데 합의가 돼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사로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할 뿐이지 일반사회에 못지 않은 지위와 명예,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군에서는 장군으로 승진할 수도 있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데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합니다.” 군의관이라고 누구나 다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현재도 정원의 75%가 부족한데 무슨 큰 걱정이냐.”며 내년부터는 의무병과의 장군 숫자가 현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돼 문호는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정색을 한다. 사실 김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계급만 3성장군이 된 것이 아니다.‘군의무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앞으로 의무사령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의무사령관은 16개 군병원을 관장하는 ‘의료원장’격에 불과했다. 반면 병사들의 의료 불만이 주로 발생하는 야전은 각 군에 속해 의무사령관의 소관 밖에 있었다. 이번 승급은 다원화된 의무지휘 체계를 단일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의무사령관이 국방부 의무본부장이 돼 육·해·공군 의무를 통합 관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무병과 장군 숫자도 6명 늘게 됐다. -전반적인 군 감축추세와 안맞는 것 아닙니까. 저항도 있을텐데요. “일단 군의무를 단일화하는 것은 미국만 예외지 세계적 추세입니다. 또한 의무 강화는 국민적 요구입니다. 국가가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고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 병사의 건강에는 소홀하다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병과가 커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 역풍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김 사령관은 이 대목에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군의무발전계획’의 핵심은 병사의 의료접근권 보장인데 언론은 3성장군 배출이나, 국방의학대학원 신설 등 조직적 측면만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군 의무체계가 단일화되면 2500명의 군의관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1차의료를 자유롭게 받고, 후송체계를 통해 군병원에서 고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의료접근권 보장도 명기하도록 했다. 과도기 대책으로 민간서비스 연계, 군야간병원 운영 등도 시행에 들어갔다.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은 올해부터 7년간 총 1조 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첫해 예산 1200억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올해는 제도 개선과 장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 병원의 기초진단 및 검사장비 보강, 중형 구급차 및 환자수송 전용버스 구매, 전역전 건강 검진물자확보, 전방사단 의무시설 환경개선 등이 우선 착수됩니다. 의무발전계획은 어떻게든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군병원에 대해 신임평가를 받겠습니다. 민간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 주관의 병원평가를 받는 겁니다.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지만 잘 나오면 잘나오는 대로, 못나오면 못나오는 대로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이야기는 사적인 주제라 공개적으로 거론할 부분은 못된다. 그러나 김사령관의 경우 군 투신 자체가 선교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기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군생활 중 종교를 갖게 됐다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의대 졸업하고 결혼한 뒤 5년 동안 아내를 시집살이 시켰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면서 처음 살림을 나갔는데 그동안 고생을 보상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싶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장기 군의관으로 눌러앉게 된 종교적 개인체험은 공개하기 뭣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 후 군과 가정생활을 끌어가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 주민들과 옥수수를 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때나 승진에 누락돼 낙심했을 때, 이런 신념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강북에 살며 사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자녀들이 바르게 커준 것도 이런 실천적 삶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내는 지금껏 매달 월급날이면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한달 동안 수고하셨다며 절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함께 인사를 한다. 김 사령관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며 주말에도 골프모임보다는 가족을 선택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렇게 자란 장남이 지금 신학대학 4학년생이다. 김 사령관은 주변을 밝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의 삶을 말한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힘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의 걱정을 가시게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yshin@seoul.co.kr ■ 김록권이 걸어온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6남매 중 다섯째로 대식구였지만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부친은 전당포를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다. 의대생일 때 형과 누나까지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었다. 부친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여기저기 보증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덕분에 본과 1학년 때부터 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입대해 7년을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의무 복무기간을 지난 후엔 전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 군의관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군복무 중 갖게 된 신앙 때문이었다. 군 선교를 필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1990년 국군 현리병원 원장을 시작으로 창동, 부산, 서울지구, 대전 등 전국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는 근무지마다 화장실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주말엔 무의촌 진료, 여름휴가 땐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다. 국군군의학교장, 육군본부 의무감을 거쳐 2005년 11월 의무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다. 사령관 취임 다음해인 2006년 1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 12월1일 중장으로 진급을 거듭했다. 진급속도도 초고속이었지만, 의무병과 사상 최초의 3성 장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얼핏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잘나가는 보직을 벗어나 갑자기 외곽으로 돌려졌고, 동기생보다 진급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장성 진급이 2년이나 늦어 이젠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까지 몰렸다. 갈등하기도 했지만 ‘소명의식’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군 최초로 ‘군의무비전 2015’를 입안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군의무비전 2020’을 세웠고,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끓을 때 의무사령관에 올라 ‘군의무발전 추진계획’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 [강학중 가족클리닉] 시어머니만 챙기는 남편 야속해요

    Q4남매 중 막내 외아들로 태어난 우리 남편이 매주 시댁을 찾아가 시어머니와 자고 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자식을 키워온 시어머니는 그렇게 끔찍이 챙기면서 장인, 장모는 나몰라라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별 문제가 없는데 시어머니 얘기만 하면 버럭 화를 내고 싸웠다하면 1주일 내내 말도 안 합니다.8살,6살된 우리 아이들은 아빠만 찾는데 아빠 역할도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남편은 도대체 누구랑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문혜숙·가명 33세)- A한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의 아빠와 한 여성의 남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분화’가 안 되고 지나치게 어머니와 밀착이 되어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군요. 더러는 이런 남편을 둘도 없는 효자라고 칭찬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문제로 아내와의 갈등을 일으키고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소홀하다면 바람직한 효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효도는 우리가 계속 계승해 나가야 할 덕목이긴 하지만 아랫사람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일방적인 효도가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효도의 의미를 재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4남매를 혼자서 키워 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안쓰러움, 의무감, 죄책감 등 남편이 시어머니에 대해서 느끼는 복잡한 심정을 먼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주 시댁에 가는 것이 지나치다면 격주나 한 달에 한 번씩으로 횟수를 조절해 보십시오. 또한 매번 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 그날 갔다 그날 돌아오는 것으로 조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홀로 사시는 어머님에 대한 도리는 아들만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니만큼 누나들과 분담하는 것도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시어머니가 서운해 하시기도 하고 며느리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시겠지만 시어머니를 조금도 서운하게 하지 않고 문제를 푸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결혼 전의,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도 아들이 결혼한 후에는 조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로서의 도리만 지나치게 챙기는 남편 때문에 다툼도 많았으리라고 보는데 본인의 서운함과 불만을 어떻게 표현하셨는지도 되돌아 보십시오. 자기 나름대로 효도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을 비난하거나 공격한 적은 없는지, 그리고 남편 또한 며느리로서의 도리도 안 하는 못된 여자로 아내를 몰아세운 적은 없는지 대화를 통해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했던 방법들이 비효과적이거나 잘못되었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문제가 더 커지기만 할 뿐입니다. 아내가 못 다한 도리를 나라도 더 잘 해야지 하는 마음에 남편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남편이 요구하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어머니께 전화도 드리고 찾아뵐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그리고 친정 부모님께 소홀한 남편에게 나의 서운한 감정을 부드럽게 전하고 기분 좋게 요청해 보십시오. 내 부모님께 잘 하는 아내를 위해 처가에 좀 더 잘 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두 분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다니 조금만 노력하신다면 지금의 갈등이 오히려 더 큰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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