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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최고경영자=②락희(樂喜)「그룹」구자경(具滋暻)씨

    [기획]최고경영자=②락희(樂喜)「그룹」구자경(具滋暻)씨

     「러키6」3대(代)의 우애(友愛)로 뭉친「러키·그룹」  푼돈 아껴쓰고 큰돈은 아낌없이 쓰라는 선대(先代)의 유훈(遺訓)이어  선대인 구인회(具仁會)씨가 6형제, 2대째인 자경(滋暻·54)씨도 6형제, 자경(滋暻)씨 역시 6남매를 두고 있으니 오늘의 락희(樂喜)「그룹」은「러키·6」3대의「러키·그룹」이라고 할만도 하다.  락희(樂喜)화학·금성(金星)사·반도(半島)상사와 호남(湖南)정유·호남(湖南)전력 등「러키」산하 20개 업체의 1년간 외형 거래액 총액은 9백억원. 하지만「러키」의 진짜 자본은 돈 아닌 우애(友愛)라는 것이 자경(滋暻)씨의 얘기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재벌 중 완전하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재벌이 바로「러키·그룹」이다. 70년 1월 창업주이던 1대 총수 연암(蓮庵) 구인회(具仁會)씨가 작고하자 맏아들인 자경(滋暻)씨가 그 뒤를 이어 2대 회장에 취임함으로써「러키」의 세대교체는 창업 23년만에 이루어졌다.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맡기는 맡아야 할텐데 그저 아득하기만 하더군요. 빚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 지 정말 몰랐어요』  자경(滋暻)씨는 제2대 회장에 취임한 뒤 1년 동안을『생애 중 가장 바빴고 1년 동안 정신이 없었던 해』라고 회고했다.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데 공헌한 것이 바로 구(具)씨 일가의 돈독한 우애(友愛)였다는 얘기다. 형님(仁會)은 돌아가셨지만 남은 5형제가 장조카 자경(滋暻)씨를 도와 뿌리 깊고 가지 많은「러키」를 흔들리지 않게 이끌어온 것.  비록 회장직은 장조카인 자경(滋暻)씨에게 넘어왔지만 자경(滋暻)씨의 다섯 삼촌들은「러키」안에 건재하다. 큰 삼촌인 철회(喆會)씨가「러키」운영위원회 의장으로 집안의 어른 겸 사업상 자경(滋暻)씨의 후광이 되어 주고 있으며 3째인 정회(貞會)씨는 금성(金星)전기, 5째 평회(平會)씨는 호남(湖南)정유, 6째 두회(斗會)씨는 범한(汎韓)화재를 맡고 있으며, 4째 태회(泰會)씨는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또 선대때부터 함께 일해 온 허준구(許準九·금성전선 사장)씨 허신구(許愼九·러키화학 사장) 형제와 먼 일가뻘인 하태(河泰·대한유조선 사장)씨, 하종배(河鍾培·국제신보 사장)씨가 있고 경영자로 모셔온 박승찬(朴勝璨·金星 사장) 이보형(李寶衡·汎韓해상화재보험 사장) 윤욱현(尹煜鉉·金星통신 사장)씨가 선대에 이어 계속「러키」의 주춧돌로 일해 오고 있다.  당초 자경(滋暻)씨가「러키」를 이어받을 때 항간에선 다섯 삼촌과 30여명이 넘는 사촌 등 방대한 가계(家系) 때문에 필경은 재산 싸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그러나 이 예상은 3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선대 때보다 더 굳은 단결력을 보임으로써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버님은 늘 가족간의 화목·우애를 제1로 삼으셨죠. 그 다음이 푼돈은 아껴쓰고 큰돈은 아낌없이 쓰라는 거였죠』  「러키」의 첫 출발은 1947년 부산에「러키」화학공업사를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敵産)에 손을 대 돈을 벌었으나 인회(仁會)씨는 적산에 한번도 손댄 일이 없다는 것이 자랑이다.  「러키」가 본격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 중이던 1952년「러키」치약을 생산해 내면서부터 였다. 당시 미제「콜게이트」치약이 판을 치고 있던 국내시장에서「러키」치약은 싼 값으로 동네 구멍가게부터 파고들기 시작, 끝내는「콜게이트」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말았다.  「러키」의 2번째 큰 싸움은 외래품으로 충당해 오던 합성수지에 손을 댄 것. 여러 차례 합작투자의 유혹이 있었지만 이를 물리치고「홍콩」「마카오」등지서 화상(華商)들을 통해 들여오던 외제 합성수지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음이 선풍기·「라디오」등 가전(家電)전기제품.「플래스틱」선풍기의 생산으로 일제 선풍기를 몰아냈고, 4·19 직후「외래품 판매금지법안」통과로 우리나라 각 가정에 금성사(金星社)「라디오」를 보급시키는데 성공했다.  한편 53년에 세워진 반도(半島)상사를 통한 수출입업은 계속되었으며, 62년 세워진 금성(金星)전선이 체신부에 납품된 전기 제품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여력을 몰아 해외에 진출하게 됐다.  한해 1천5백만달러를 차지하는「러키」수출고의 대부분은 금성(金星)전선의 제품. 통신기의 금형(金型)을 서독에 수출하는가 하면「브류셀」에 있는「나토」본부의 자동전자교환대는 모두 금성사(金星社) 제품. 또「프랑크푸르트」「멕시코」공항에는「러키」제품의 ESK자동전자교환대가 설치되어 있다.  67·68년에 세워진 호남(湖南)정유·호남(湖南)전력에 투자하는가 하면 이를 실어나를 대한유조선·범한(汎韓)해상보험도 인수했고 대한(大韓)전선과 합자로 한국(韓國)제련광업을 인수했다.  한편 부산 국제신보와 부산 MBC-TV·「라디오」도 인수, 문화사업에도 손을 댔다. 창업 23년만에 총 산하업체 20여개의「매머드」기업「러키·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50년 처음「러키」화학에 제가 평사원으로 입사했을 땐 종업원이 통틀어 60여명이었습니다. 지금은 2만명 가까운 대식구로 늘어났습니다만. 말단 직원과 함께 섞여 치약을 만들고「플래스틱」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러키」의 총수이지만 자경(滋暻)씨는「러키」입사후 만 12년만인 62년 겨우 전무 자리에 앉은, 지독히도 승진이 늦은 편이었다.  『실무를 알아야 한다는 선친의 뜻이었죠. 회사에선 평사원으로 일하고 가족 사이에 무슨 「트러블」이 생기면 가족대표란 뜻으로 꾸중은 혼자 들으며 자랐읍(습)니다』  자경(滋暻)씨는 경영합리화 과정에 선친과 함께 일해 오던「러키」의 노신(老臣)들을 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제「러키」는 국내시장보다 수출에 눈을 돌릴 겁니다.「플래스틱」제품의 경우 원료인 PVC만 충분하면 수출시장은 얼마든지 열려 있읍(습)니다. 그래서 75년께는 제품 생산만이던「러키」를 원료 생산에도 손대게 할 생각입니다』  자경(滋暻)씨는 또 회장직을 맡으면서부터「러키」총 재산의 40%를 들여 부친의 호를 딴 연암(蓮庵)문화재단을 세웠다.  연암(蓮庵)재단은 매년 서울대·고려대·연세대·부산대 등 4개 대학 공과계통 대학생 1백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대어주는 한편 1년 6백만원의 연구비를 국내 과학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연암(蓮庵)재단은 지난 번 종합감사서 3·1문화재단과 더불어 가장 실적이 우수한 문화재단으로 뽑혔다.  지금까진 한해 4천5백만원의 예산을 써왔으나 올해부턴 7천만원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러키·그룹」은「매머드」기업답게 가족 또한「매머드·그룹」이다. 인회(仁會)씨 6형제 말고도 자경(滋暻)씨대에 벌써 4촌간이 30여명. 3대째 자녀들까지 합치면 1백여명이 넘는다. 이들「매머드」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일년에 단 두번뿐. 5월8일 어머니 날과 8월 초순 모든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때 뿐이다.  어머니 날이면 생존해 계신 자경(滋暻)씨 자당(慈堂)에게 모두 모이며 여름방학 땐 부산 교외 송정리(松汀里)에 있는 여름별장이 모두 모여드는 것.  형제간의 우애 못지않게 효성이 지극한 것도「러키」의 특징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이해타산이 빨라 깊은 맛이 없읍(습)니다. 젊은이에겐 사회 첫발이 가장 중요하고 일단 어느 분야에 투신하면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경(滋暻)씨는「러키」의 젊은 사원들에게 새해부턴 대폭 승진의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예전엔「골프」나 낚시, 사냥을 자주 즐겼지만 지금은 워낙 바빠 전혀 못하는 형편. 그 대신 틈이 나면 젊은 사원들과 어울려 김치, 깍두기에 막걸리를 마시는 소박한 재벌 2세다. <昌> <구자경(具滋暻)씨 약력>  ▲1914년 4월24일=경남 진양군(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 367의 2서 태어남  ▲1944년=진주중학교(5년제) 졸업  ▲1945년=진주사범학교 졸업  ▲1945년=부산공립사범학교 교사  ▲1950년=락희화학공업사 이사  ▲1959년=금성사 이사  ▲1962년=락희화학 전무이사  ▲1963년=부산시교위 위원  ▲1967년=대한상의 특별위원  ▲1968년=금성사 부사장  ▲1970년=락희그룹 제2대 회장,전경련 이사,연암문화재단 이사장,수출유공 동탑산업훈장  ▲1971년=부산문화TV 회장  ▲1972년=한국과학기술재단 이사 [선데이서울 73년 1월14일 제6권 2호 통권 제222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부고]

    ●김동식(예비역 육군 대령·전 동아콘크리트 이사)씨 별세 인상(김인상한의원 원장)씨 부친상 양치규(전 방위사업청장·예비역 육군 소장)박범용(서울기독대 교수)씨 장인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30분 (02)3010-2232 ●맹중재(전 국립공업시험원 부이사관)씨 별세 근호(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차장)석호(사업·전 한국무역협회 홍보실 과장)씨 부친상 최종우(사업)씨 장인상 7일 수원아주대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31)219-4116 ●나현철(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지홍(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바로(한창호법률사무소 실장)씨 부친상 이용(내쇼날몰텍 부장)씨 장인상 한승주(국민일보 국제부 차장)최은경(일산 저동초 교사)씨 시부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87 ●박시현(자영업)시경(홍익노무법인 노무사)시춘(아이루브 대표)씨 부친상 배문환(하나은행 본부장)씨 장인상 7일 천안 단국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30분 (041)550-7185 ●김성택(동일기술공사 부장)성근(한길텔레콤 차장)성철(신진유압 과장)씨 부친상 한연석(신진유압 대표)강성수(전남매일 사회부장)씨 장인상 7일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8시 (062)670-0030~1 ●박형규(대우증권 리테일혁신TF팀 차장)형준(아주캐피탈 대리)유민(장덕고 교사)씨 부친상 나은주(은성글로벌상사)정진성(삼성카드)씨 장인상 7일 광주 대산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9시 30분 (062)368-5353 ●박평서(전 아남그룹 사장)씨 모친상 이성종(전 금산여중 교장)씨 장모상 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2258-5957 ●이시홍(청원군청 사격팀 감독·충북사격연맹 전무이사)씨 별세 7일 청주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43)219-8536 ●전정희(농수축산신문 대표이사)씨 부친상 6일 강원 동해산재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33)535-3001 ●김용(전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장)씨 별세 태욱(서울대 대학신문사)씨 부친상 김선필(미국 애틀랜타 한인교회 부목사)씨 장인상 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2227-7547 ●유희주(잠실 동원공인중개사 대표)희창(코스맥스 기술연구원장)희경(우리교육원 대표)씨 모친상 박일혁(ROHM세미컨덕터코리아 부장)씨 장모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2)3010-2295 ●주성남(인천헤럴드 편집인)씨 부친상 6일 상계 백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30분 (02)950-1492 ●이석연(전 전남대 사학과 교수)씨 별세 광혁(영국 셰필드대 교수)경화(전남대 사학과 연구교수)씨 부친상 7일 광주 첨단 보훈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30분 (062)973-9162
  • [늙어가는 대한민국] “아기 울음소리 30여년째 뚝!… 57세가 우리 동네 막내”

    [늙어가는 대한민국] “아기 울음소리 30여년째 뚝!… 57세가 우리 동네 막내”

    지난 3일 오전 팔공산이 올려다보이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운산리. ‘늙은 군위’ 중에도 더 고령화된 마을이다. 한창 모내기철인데도 마을이 적막하다. 논에는 물론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는 사람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00여 가구가 대대로 벼농사를 지었던 이곳에 지금은 겨우 45가구의 주민 55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마저도 남편이나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가구가 절반을 넘는다. 70대 이상 노인이 주민의 93%인 51명이나 된다. 주민들이 “젊은이”라고 부르는 50대와 60대는 2명씩, 달랑 4명뿐이다. 1930년대에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 이곳에 시집왔다는 박정생(85)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5남매를 낳아 한때는 20명에 가까운 4대가 한가족을 이뤘지만 지금은 남편(87)과 단둘이서 살고 있다.”면서 “자식들은 물론 조카들도 모두 도시로 떠났다.”고 했다. 마을은 대구 등 인근 대도시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급속히 쇠잔해졌다. 집집마다 자식들을 도시로 유학 보내거나 공장에 취직시켰다.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에서다. 나이든 노인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등지면서 마을은 비어 갔다. 동네에 남은 노인들이 힘든 농사일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빈집과 논밭이 묵어났다. 이병무(60) 이장은 “마을 농사는 나이가 어린 임철순(57)·이우환(58)씨가 품삯을 받고 도맡아 짓다시피 하고 있다.”면서 “그마저도 일손이 많이 가는 동네 밭 10만여㎡는 그대로 버려진 지 오래”라며 한숨지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아기 울음소리도 끓긴 지 이미 오래다. 이돈식(79) 노인회장은 “동네에서 아기 출산은 30여년 전에 멈췄다.”면서 “그러니 인근에 산부인과 병원이 있을 리 없다.”고 했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이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지만 병원에 간다는 것은 엄두조차 못 낸다. 버스를 타고 30~50㎞ 떨어진 읍소재지나 영천, 대구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던 마을 구판장은 20여년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이장은 “동네가 이 모양인데 무슨 꿈과 희망이 있겠어.”라며 “아마 10년 후쯤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개탄했다. 반면 같은 날 울산 북구의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승용차를 탄 근로자들이 물결을 이루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근 효문공단과 매곡산업단지 등도 출근길 근로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근로자 김석현(38·북구 명촌동)씨는 “하이킹 복장에 자전거로 출근해 회사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근무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1만여명 등 수만명의 직장인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북구의 아침은 어느 지역보다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1997년 7월 신설된 북구는 산업 기반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바탕으로 당시 인구 10만 1067명에서 지금은 17만여명으로 늘었다. 덕분에 북구의 생산 연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72%까지 늘어났다. 반면 고령 인구는 계속 줄면서 5.3%에 불과하다. 자동차와 금속기계, 기계부품 등 국가 기간산업의 공장 933곳이 ‘젊은 북구’를 주도하고 있다. 글 사진 군위 김상화·울산 박정훈기자 shkim@seoul.co.kr
  • 수교 121년만의 첫 한국계 주한 美대사 Sung Kim

    수교 121년만의 첫 한국계 주한 美대사 Sung Kim

    서재필이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얻은 때가 1890년 6월 19일이다. 이로써 서재필은 첫 한국계 미국인이 됐다. 그로부터 121년 만에 한국계 미국인이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차기 주한 미국대사에 성김(51)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를 내정하고 한국 정부에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요청한 것으로 지난 3일 확인됐다. 성김은 1970년대 중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1980년 미국 시민권을 얻은 재미교포 1.5세다. 성김이 한국 정부의 임명동의에 이어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해 8월쯤 22대 주한 미대사로 부임할 경우 1882년 양국 수교 이후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미국대사가 서울에 오는 셈이다. 성김의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다. 1960년생인 그는 부촌인 서울 성북동에 살면서 은석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고,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1994년 미국에서 작고한 그의 아버지 김재권씨는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 중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재권씨가 당시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성김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간 것도 이 사건의 여파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납치사건의 핵심인물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자서전을 통해 김재권씨가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성김이 6자회담 특사로 임명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 진영에서는 내부적으로 적절성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대통령 자서전을 정리한 유시춘씨는 2009년 한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 “성김이 당시 (납치)사건에 관여했던 김재권(일명 김기완) 주일공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물론 미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련 내용을 자서전에 몇 줄 담을까 생각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성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과거 아버지 얘기를 거론하는 것은 교포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유씨는 밝혔다. 충북 음성 출신의 김재권씨는 1958년 부산발 서울행 경비행기에 탔다가 탑승자 30여명과 함께 괴한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된 뒤 20여 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는 얘기도 있다. 성김은 또 방송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인기를 모은 가수 임재범씨와 사촌지간으로 알려졌다. 성김의 어머니 임현자씨가 임재범씨의 아버지 임택근(79) 전 MBC 전무와 남매지간이라는 것이다. 성김에겐 임재범이 외사촌 동생이고, 임재범에겐 성김이 고종사촌형인 셈이다.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과는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성김 내정자가 어린 시절 성북동에 살 때부터 친구로 지냈고 그가 미국으로 간 뒤에도 꾸준히 교분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성김이 결혼할 때는 부인과 어학연수원을 함께 다닌 정 수석이 함을 지기도 했다고 한다. 성김은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 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으로 전직했다. 그는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 6자회담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북한을 10차례 이상 방문했다. 2006년 주한 미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에 의해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전시전작통제권 전환, 북핵문제, 한국 대선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2008년 상원 인준을 거쳐 ‘대사’(ambassador) 직함을 얻은 이후 6자회담 특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을 통해 한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졌다. 그는 윗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성의 소유자다. 성격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발언을 절제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등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성김이 조지 W 부시 정부 에 이어 오바마 정부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는 것은 이 같은 장점 때문이다. 물론 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전문성도 신임을 받는 주요한 이유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성김에게 의존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그를 “성”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성김은 한국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원어민만큼의 완벽한 어휘는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 등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를 쓴다. 그는 “한국말을 할 때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긴장이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는 2남 3녀 중 넷째다. 어머니는 LA에 살고 형제들도 모두 미국에서 변호사 등으로 활동한다. 성김은 이화여대 미대 출신 한국 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성김은 누구] ▲1960년 서울 출생 ▲1975년 미국으로 이민 ▲펜실베이니아대, 로욜라 로스쿨 졸업 ▲로스앤젤레스 검사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미 국무부 대사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
  • 실력파 무용수들의 1인 배틀 ‘2011 한팩 솔로이스트’

    실력파 무용수들의 1인 배틀 ‘2011 한팩 솔로이스트’

    “춤의 극치를 보여주겠다.” 오는 10~11일, 17~1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2011 한팩 솔로이스트’가 이를 악물고 내건 목표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무용수 한 명의 춤 동작 그 자체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도다. 그래서 대부분 ‘독무대’(솔로 공연)로 꾸몄고, 안무와 무용도 철저히 구분했다. 통상 창작물은 무용수가 안무와 무용을 겸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용수의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무와 춤을 아예 분리해버린 것이다. 다만, 여러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양념은 준비했다. ●실력파 안무가와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우선 호흡이 척척 맞는 현대무용이 있다. 예효승(무용수)-알랭 프라텔(벨기에 안무가)은 ‘발자국’을 선보인다. 두 사람은 21세기 최고 현대무용단 중 하나로 꼽히는 벨기에 세드라베무용단 소속이다. 세드라베무용단은 월드투어 공연 중이다. 이번 솔로이스트 무대를 위해 예효승만 특별히 월드투어에서 제외했다. 프라텔 감독은 예효승과의 ‘전화 안무’를 통해 작품을 계속 가다듬고 있다. 이미 2002년 프랑스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는 이경은(무용수)-안드레야 왐바(세네갈 안무가) 팀의 ‘다카르-서울 어크로스 더 스트리트’도 눈길을 끈다.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힘이 어떻게 어우러질지 관심이다. 2004년 이경은이 안무한 춤을 왐바가 춘 적 있으니 이번엔 역할이 뒤바뀐 셈이다. 장르를 섞어버린 팀도 있다. 김용걸과 김보람이 만난 ‘그 무엇을 위하여’이다. 김용걸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약하다가 귀국한 정통 발레리노다. 김보람은 방송 백댄서에서 출발, 강렬한 현대무용을 선보이는 안무가다. 둘의 색깔이 어떻게 섞여들지 궁금증이 쏠린다. 한국무용을 추는 김은희와 현대무용 안무가인 류석훈이 만난 ‘다시 길을 걷다’도 관심거리다. ●가족끼리 선보이는 듀엣공연도 기대 연이은 솔로 무대로 인한 관객의 ‘부담감’을 감안해 듀엣 공연도 준비했다. 가족이 출동하는 팀이 많아 이채롭다. 김재덕(현대무용)·재윤(발레) 형제는 ‘미러 룸’을, 이루다(발레)·루마(현대무용) 자매는 ‘비 트윈’을, 성현주(한국무용)·한철(현대무용) 남매는 ‘뷰 포인트’, 조연진(한국무용)·인호(한국무용) 남매는 ‘우린 잘 살고 있어요’를 각각 선보인다. (02)3668-000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야 청문보고서 채택 입장

    여야 청문보고서 채택 입장

    23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5·6 개각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됐다. 청문경과보고서는 각 상임위를 거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보고서 채택을 앞두고 여야의 입장은 크게 엇갈렸다. 여당은 전반적으로 장관 후보자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에 흠결이 없다고 본 반면, 야당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비리 5남매’의 의혹이 그대로 확인됐다며 부적격을 명시하거나 일부는 보고서 채택을 아예 거부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2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5명의 장관 후보자들이 무난히 청문회를 통과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야당은 자질, 정책 검증이 아니라 의혹 부풀리기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후보자의 쌀 직불금 수령 의혹에는 “농지를 실제 경작한 사실이 맞기 때문에 법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유영숙 환경부장관 후보자의 소망교회 거액 기부 논란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다른 교회를 다닐 때도 십일조를 했다.”고 해명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MB노믹스’ 정책 실패 책임은 “일부 정책이 한나라당과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곤란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유영숙·박재완·이채필(고용노동부)·권도엽(국토해양부) 후보자는 부적격을 명시하고, 서 농림부 장관 후보자는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서 후보자는 채택 불가로 결론 내렸다.”면서 “본인이 설계한 쌀 직불금 제도의 맹점을 악용, 경제적 이득을 취한 양심불량”이라고 비판했다. 유 후보자는 “소망교회 출신이란 것 외에 환경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며 현 정부의 환경정책 인식이 얼마나 낮고 천박한지 보여 준다.”고 꼬집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청문회는 실패한 정책의 변화를 주기 위한 건데 박 후보는 ‘강만수의 복사판’”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청문회를 한 권 후보와 이 후보는 각각 다운계약서·전관예우, 인사청탁·극우적 노동성향 등에서 부적격이라고 평가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50년 ‘인형과 춤을’… 현대인형극회 조용석 대표

    [김문이 만난사람] 50년 ‘인형과 춤을’… 현대인형극회 조용석 대표

    인형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언제 어디에서나 군말 없이 옆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마냥 친근하다.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고 귀여워할 수밖에. 그렇다면 인형극은? 어린이만 좋아한다고? 무슨 말씀을…. 무대 위에 엿장수 사회자가 등장한다. 목소리가 특이하다. 사람이 아닌 인형이다. 사회자는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다. 북 치고 장구를 친다. 해금 소리로 애간장을 녹인다. 선녀춤, 부채춤을 우아하게 춘다. 우리 소리와 가락을 따라 가는 인형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사물놀이’로 한바탕 신명을 부르더니 ‘선녀와 나무꾼’으로 변신한다. 이내 여러 가지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무표정의 표정’은 사람의 그것보다 더 진하게 다가온다. 말 없이 방황하는 인형은 외로운 인간의 모습 그 이상이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자 인형이 피리를 꺼내 들더니 구슬프게 불어댄다. ‘인형들의 콘서트’는 그렇게 끝나지만 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한동안 계속된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다. 국악 인형극 ‘덩덩쿵따쿵’에 나오는 장면이다. 조용석(64) 현대인형극회 대표는 그렇게 50년 동안 ‘인형과의 춤’을 추며 살아왔다. ‘국악 인형’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접목시킨 독특한 ‘줄 인형’ 기법으로 해외에서 오히려 더 호평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1974년부터 16년 동안 TV 프로그램 ‘부리부리박사’에서 인형 제작 및 연기 지도를 맡아 인기를 끌었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마스코트 ‘호돌이’ 제작을 비롯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하콘과 크리스틴’ 제작 및 총감독 등을 맡아 ‘인형의 마술사’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국내 인형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조씨는 집안 내력부터 독특하다. 그가 중학교 때 큰형의 권유로 인형극계에 몸을 담을 무렵 둘째형, 셋째형, 누나 등 6남매가 모두 ‘현대인형극회’ 단원으로 가입했다. 지금은 조씨의 부인과 딸도 인형극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 집안은 요즘 아주 각별하고 뜻깊은 해를 맞이하고 있다. 조씨가 인형극 인생 50년이라면 부인은 40년, 딸 윤진씨는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회관 뒤뜰에서 조씨 부녀를 만났다. 그곳을 택한 까닭은 딸 윤진씨가 이날 프로인형극단 대표들을 상대로 워크숍 강의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등을 합하면 전국에 600여 개의 극단이 있다. 먼저 강의 내용을 물었다. 조씨가 딸을 보면서 대답했다. “20여 개 극단 대표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워크숍 행사를 합니다. 우리 딸은 여기에서 ‘장대 인형’을 주제로 강의를 하지요.” 아버지가 가업을 잇는 딸을 대견스럽게 바라본다. 요즘 근황을 물었더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립국악원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국악 인형극 떼루떼루’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면서 관객은 유치원생에서부터 90세 노인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떼루떼루’는 가야금, 대금, 피리 등 국악기를 소재로 한 인형극으로 조씨가 예술감독을, 윤진씨가 연출을 맡고 있다. 이 인형극은 국악기에 대한 친숙함과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윤진씨는 “5월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부산연극제 공연(3, 4일), 하이 서울 페스티벌 공연(7, 8일), 거창 문화센터 공연(11일) 등으로 매우 분주했다.”고 말했다. 윤진씨에게 공연 때 어머니도 함께 움직였느냐고 묻자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인형극 강의를 하느라 멀리는 못 가신다.”고 하면서 “엄마는 2003년 실버 인형 극단을 창단해 실버 인형극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라고 자랑했다. 조씨는 1972년 KBS 인형극회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귀띔했다. 이쯤 해서 조씨에게 인형극과 인연을 맺은 사연을 물었다. “1961년의 일이지요. 당시 큰형이 신문기자셨는데 TV 방송에서 어린이 인형극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인형극단을 만들었고 저는 중1 때부터 극단에 참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극단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셈이지요. 그러다가 KBS에서 생방송으로 인형극을 하게 됐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바가지와 창호지로 인형을 만들곤 했지요. 1968년 녹화 방송이 되면서 장대 인형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6남매 식구가 다 참여하게 됐지요.” 당시 제작해 히트한 작품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짱구박사’와 ‘부리부리박사’ 등이 있다. 30~40대 장년들에게는 추억의 인형극이기도 하다. 조씨는 큰형이 세상을 떠나자 1988년부터 현대인형극회 대표를 맡았고 이때부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라는 성인 인형극장을 만들어 인형극 관객을 어린이에서 남녀노소로 확대시켰다. 2000년에는 부천시민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조용석의 줄 인형 콘서트’를 열어 관객을 어른들로만 꽉 채우는 기록도 세웠다. 소문이 나자 2002년 정동극장에서 초청공연을 하게 됐는데 홈페이지가 다운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때 인형 장치와 줄 장치 등에 대한 특허 작품 15개를 선보여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딸 윤진씨가 얘기한다. “줄 인형은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인형들이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고, 사람처럼 흥에 겨워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드라마를 연출합니다. 저마다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형들의 쇼는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마치 인형의 도시에 놀러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자랑이 이어졌다. 지난해 인형극의 고장이라고 하는 체코에서 최고 연기상을 수상해 동양에서도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했다. 인형극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자랑하는 중국에서 초청 공연을 했을 때는 중국의 당 간부 위주로 객석이 채워졌는데, 중간중간에 많은 박수를 받을 정도였다. 윤진씨는 이어 “우리나라는 잦은 전쟁과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형극의 맥이 끊어져 인형이 소품처럼 취급되곤 했어요.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에서는 인형극을 높은 수준으로 여기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인형을 거칠게 막 흔들어 대면서 수준을 떨어뜨렸지요.”라면서 “줄 인형을 비롯해 장대 인형, 손 인형, 그림자 인형, 탈 인형 등은 아버지의 손에서 계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인형 박물관을 세워 관광 상품화하는데 반해 우리는 전시관조차 변변히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딸의 얘기를 듣던 아버지 조씨도 “우리는 가족 전체가 인형극을 함께 해 왔기 때문에 인형극과 관련된 자료들이 고스란히 이어져 올 수 있었다.”면서 “경기 김포의 한 창고에 수만 점의 인형을 보관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들을 모아 박물관을 짓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인형극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과거에는 TV에서 인형극을 방영했지만 지금은 폭력물이나 오락물에 밀려 거의 없어졌다는 아쉬움도 피력했다. 조씨가 자랑하는 ‘줄 인형 콘서트’만 해도 인형극을 사랑하는 팬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자 작품당 최소 3000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 투자할 만큼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인형들이 입을 의상은 물론 장구 등의 악기까지 특별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씨 가족은 얼마 전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흥미진진한 고난도의 ‘줄 인형극’을 선보여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조씨가 얘기한다. “군대 위문공연도 수차례 갔습니다. 처음에는 군인들이 무슨 인형극이냐고 했지만 나중에는 옆 부대, 또 그 옆 부대의 초청을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물론 교도소에도 여러 번 공연하러 갔다 왔지요. 인형극은 다양한 성인 음악 등을 잘 선택하고 시야를 넓히면 장르 개발이 무궁무진합니다. 수능시험이 끝난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좋아하더군요.” 인터뷰를 마치고 조씨는 딸과 함께 사진 촬영을 위해 동작을 취했다. 연인처럼 다정해 보였다. 윤진씨는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세계 최고의 인형극을 개발할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조용석 대표는…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만든 ‘인형의 마술사’ 1947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61년 중학생 때 현대인형극회에 입단했으며 1967년부터 KBS 인형극 프로그램에서 인형 제작과 연기를 시작했다. 1973년 현대인형극회 제작부장을 겸임하면서 KBS 연속 인형극 ‘짱구박사’(1973~1977), ‘부리부리박사’(1974~1980) 등에서 인형 제작 및 연기 지도를 했다. 또한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1981~1988), EBS ‘딩동댕 유치원’(1983~1996)의 제작 및 연기 총감독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1984년 LA올림픽 마스코트 ‘샘’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제작해 국내외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울러 서울랜드 마스코트인 ‘아롱이 다롱이’(1988)와 로보캅,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 ‘코비’(1992),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하콘과 크리스틴’(1994) 등을 제작했다. 이 밖에 ‘꺼야꺼야 할꺼야’ ‘빨간 모자’ 등의 제작 연출을 맡아 150여 회 전국 순회공연을 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한국방송 대상(1996), 제1회 어린이를 위한 올해의 좋은 공연(2001), ‘상하이 아트 페스티벌 스테이지 디자인과 퍼포먼스 어워드’(2009), 체코 프라하 인형극 축제 최고 연기상(2010), 고양 호수예술 축제 최우수상(2010) 등이다. 현재 ‘현대인형극회’ 대표를 맡고 있다. ■ 딸 윤진씨는… 극회 공연실장 맡아 아버지 이어 연출·강사로 활동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성신여자대학 공예과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과를 수료했다. 1995년 현대인형극회에 입단했다. 이후 인형극 무대 디자인 및 방송 캐릭터 디자인을 주로 했다. 2000년 서울 연극제에서 최초로 인형극을 출품했으며 탈인형 ‘빨간 모자’ 등 다수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또한 정동극장 제1회 공연예술제(2001), 타이완 가오슝 인형 축제 공식 초청 공연(2001), 연강홀 ‘띠용이와 떠나는 환경캠프’ 연출(2002), 국립국악원 ‘엿장수’ ‘사물놀이’ 연출(2002), 정동극장 ‘부르노의 그림일기’, ‘크리스마스 꿈’ 연출(2003), 이스라엘과 일본, 폴란드 인형극 초청 공연(2004) 등을 가졌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수원여대 유아교육과에서 인형극을 강의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 국악당 ‘덩덩쿵따쿵’, ‘피리 인형 떼루떼루’ 상설 인형극 연출을 맡았다. SBS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국악 인형극’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저서로는 ‘장대인형 제작법과 연기론’ ‘탈인형 제작법과 연기론’ 등이 있다. 현재는 현대인형극회 공연실장을 맡고 있으면서 인형극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정치 뉴스라인]

    정두언 “전대 불출마” 한나라당 소장파 당권 주자로 꼽혀 온 정두언 전 최고위원은 22일 “7월 4일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최고위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소장파들이 당권 장악에만 열을 올린다.”는 친이(친이명박)계 구주류의 공격으로 힘이 빠진 쇄신론에 다시 불을 지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4·27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한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불출마하는 것이 책임 정치 구현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전 지도부였던 김무성·홍준표·나경원 의원의 출마 명분을 약화시켜 소장파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야당 따라하지 말고 중심을 갖고 가라.”고 당부한 데 대해 정 전 최고위원은 “우리의 목표는 야당과 달라야 한다는 게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라면서 “전 정권이 하려고 한 것 가운데 좋은 것은 우리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23일부터 인사청문회 국회는 23~26일 박병대 대법관 후보자와 5·6 개각에 따른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 23일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24일 유영숙 환경부 장관 후보자, 25일 박 대법관 후보자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26일 이채필 고용노동부·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예정돼 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22일 “(후보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엄정하게 검증하겠다. 여당이라고 해서 함부로 후보 감싸기를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국무위원 후보자 5명과 관련,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비리 5남매’ 전원을 리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MB·박근혜 이번주 회동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르면 이번 주중으로 회동을 가질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최근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한 박 전 대표가 활동 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이지만 9개월 만에 이뤄지는 회동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쇄신 바람이 일고 있는 당내 문제가 주요 화두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 쇄신 방향과 관련해 계파정치 타파를 통한 당의 화합에 대해 인식을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회동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고, 이러한 기조가 재확인될 것으로 측근 의원들은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역할론’에 더욱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당 안팎에서 박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이 대통령의 몫이라는 게 친박 의원들의 판단이다. 박 전 대표가 앞서 황우여 원내대표와의 만남에서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만큼 이 대통령과도 이러한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 토지보상금 45억 때문에…

    토지보상금 45억 때문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토지보상금 45억원. 이 때문에 여섯 식구는 뿔뿔이 갈라섰고, 갈등의 끝은 법원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 손왕석)는 19일 남편 최모(79)씨를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며 부인 김모(77)씨가 낸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2007년 치매 초기 진단을 받고 2010년 5월부터 입원 치료를 받다가 그해 12월 퇴원했다. 그러나 치매가 불행의 시작은 아니었다. 2010년 초, 최씨 명의의 수도권 토지가 신도시에 수용되면서 약 45억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최씨와 장남, 부인 김씨와 나머지 삼 남매가 편을 나눠 대립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씨는 법원에 남편을 한정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청구했다. 한정치산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는 법률행위를 할 수 없다. 현행법상 남편이 한정치산자로 선고되면 부인이 법정대리인을 맡아 재산을 관리한다. 김씨는 ‘남편의 치매 증상이 악화돼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장남이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으로 남편을 퇴원시켜 다른 가족들과의 접촉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남편은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된 심신박약 상태에 있고, 장남이 이를 악용해 재산을 처분함으로써 가족들의 생활을 궁박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여 최씨를 한정치산자로 선고했지만,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심문기일에 출석한 최씨를 심문한 결과 재판장의 질문을 정확히 파악해 답변을 하고, 자신의 재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등 판단 능력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으며, 거동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치매 증상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토지 보상금의 관리·사용에 대해 가족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표면화된 것을 보면 최씨가 심신이 박약하다거나 재산 낭비로 생활을 궁박하게 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화장실 3남매’ 없도록… ‘복지 사각’ 일제 조사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돼 충격을 준 ‘화장실 3남매’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회적 약자를 찾아내 지원하기 위한 전국 일제조사가 실시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달 초 공중화장실에서 생활하는 3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국가가 이런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말한 데 따른 조치다. 보건복지부는 23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보호를 위한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한다고 17일 밝혔다. 조사는 행정기관 직접조사와 시민 신고에 의한 조사가 병행된다. 시민 신고는 서울은 보건복지콜센터(국번 없이 129번), 지방은 각 지자체 신고센터로 하면 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부고] ‘정 트리오’ 어머니 이원숙 여사 별세

    클래식계의 거물 ‘정 트리오’를 키워낸 이원숙 여사가 지난 15일 밤 11시 47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1918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인 고인은 원산 루시여고를 거쳐 배화여고와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정준채씨와 결혼했다. 7남매 가운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명훈(서울시향 예술감독), 첼리스트 명화(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바이올리니스트 경화(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3남매를 세계 정상급 음악인으로 키워냈다. 1990년에는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새싹회 어머니상(1971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1990년), 자랑스러운 이화인상(1995년)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자녀 예술교육 지침서로 꼽히는 ‘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와 ‘너의 꿈을 펼쳐라’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정 트리오 외에 명근(CMI 대표), 명규(재미 의사)씨가 있다. 첫째 사위는 구삼열 서울관광마케팅주식회사 대표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 (02)2258-5951.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정용진·한지희씨 비공개 결혼식…삼엄한 경호속 치러진 ‘로열웨딩’

    정용진·한지희씨 비공개 결혼식…삼엄한 경호속 치러진 ‘로열웨딩’

    정용진(왼쪽·43) 신세계 부회장과 플루트 연주자 한지희(오른쪽·31)씨의 결혼식이 10일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가운데 열렸다. 잔칫집답게 웨스틴 조선호텔은 이날 오전부터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여느 잔칫집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신세계 측은 이른 아침부터 직원들과 수십 명의 보안 요원들을 호텔 주변에 배치시키며 철통 보안 속에 결혼식을 진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삼성 로열패밀리의 결혼식 모습을 담으려는 취재진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를 저지하는 경호원들과 뒤엉켜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과잉 보안으로 취재진과 몸싸움 탤런트 고현정씨와의 이혼 이후 9년 만에 다시 화촉을 밝히는 터라 이번 결혼식에 대한 세인과 언론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신세계 측은 고집스럽게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수십 명의 보안 요원들을 앞세워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결혼식 하객들이 들어가는 호텔 정문에는 관계자와 경호원 20여 명이 지켜 섰다. 이들은 차량 번호판을 확인하고 초청된 하객만 들여보냈다. 하객들의 모습도 철저히 가렸다. 양 옆으로 선 경호원들은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우산으로 차량을 감쌌다. 정문으로 들어간 하객들도 한 차례 더 확인 후 입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007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오후 5시로 예정됐다가 30분가량 늦춰진 결혼식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철문 앞에는 취재진이 대거 몰렸다. 참석자들이 탄 차량이 철문을 통과할 때마다 촬영을 시도하는 카메라 기자와 이를 말리려는 보안 요원, 직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신세계 직원들의 과도한 몸 사리기와 일부 기자들의 과열 취재 경쟁 속에 급기야 한 언론사 기자의 카메라가 깨지고 관계자들 간에 막말이 오가는 등 한때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밖은 시끄러웠지만 결혼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삼성가 삼 남매를 비롯해 역시 사촌지간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 친·인척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주례로 순조롭게 치러졌다. 외삼촌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동계올림픽 행사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정 부회장의 결혼식은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친 호텔 2층에서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호텔은 지난 1월부터 로비 일부 매장과 2층, 3층을 리모델링 중이다. 이날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은 지하 1층을 통해 출입하는 불편을 겪었다. 정 부회장과 한씨는 2007년 한 모임에서 만나 교제해 왔다. 한씨는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고 한상범씨의 딸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성신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참석 안해 신혼여행은 정 부회장의 회사 일 때문에 미뤄졌다고 신세계 측은 밝혔다. 이들은 경기 성남시 판교의 100억원대 저택에 신접살림을 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 부회장이 결혼식을 올린 웨스틴 조선호텔은 친동생인 정유경 상무가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SK핸드볼코리아 리그] 핸드볼 최강 ‘인천 남매’ 무승부 충격

    핸드볼판을 주름잡던 ‘인천남매’가 나란히 일격을 당했다. 무승부였지만 패배만큼 충격이 컸다. 여자부 최강 인천체육회는 8일 인천도원체육관에서 열린 SK핸드볼코리아 리그 1라운드 2차대회에서 부산BISCO와 28-28로 비겼다. 연승행진을 벌이던 인천체육회의 대회 첫 무승부다. 승점 1를 얻었지만 뼈아프다. 전반을 5점 차(13-18)로 뒤진 채 마친 인천체육회는 후반 맹공을 퍼부었지만 끝내 점수 차를 좁히지 못했다. 류은희와 김선화가 5골씩 넣었지만, 부산의 원미나(8골)와 윤아름·심인영(이상 6골)의 불붙은 공격본능을 막지 못했다. 여기에 부산 골키퍼 박소리는 상대슈팅 50개 중 23개를 막아내며 팽팽한 시소게임을 끌고나갔다. 무승부였지만 최우수선수(MVP)도 방어율 46%를 기록한 박소리 몫이었다. 이어진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는 인천도시개발공사가 웰컴론코로사와 22-22로 비겼다. 인천은 강일구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워 리드했지만 경기종료 3초 전, 웰컴론코로사에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이지아, ‘필리핀 9남매’ 수호천사 변신

    이지아, ‘필리핀 9남매’ 수호천사 변신

    최근 가수 서태지와의 결혼 및 이혼 사실이 알려져 이슈의 중심에 섰던 탤런트 이지아가 필리핀의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사랑의 전령사로 떴다.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는 4일 오후 7시에 방송되는 ‘서울신문STV 스페셜 러브’에서 이지아가 출연한 필리핀 말라본 편을 공개한다. 이 프로그램은 캠페인 참여 의사를 밝힌 스타가 직접 현장을 체험하며, 해당 국가 어린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자선 다큐멘터리다. 국내 최고의 스타들이 전 세계에 나눔의 손길을 전파하는 사랑의 메신저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4일 방송분은 이번 파문이 터지기 전인 지난해 말 이지아가 필리핀의 4대 빈민 지역 중 하나인 말라본을 직접 방문한 영상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이지아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인근 항구 도시 말라본에 거주 중인 메리(8·여)네 가족의 수호천사가 되어 그들을 돕기 위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지아는 다 부서져 가는 판잣집을 비바람에도 끄떡없도록 수리해 주고, 새로 고친 판잣집에 정성들여 벽화를 그려 준다. 또한 어린이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 위해 떡볶이를 만들어 파티를 열어주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메리네 아홉 남매와 함께 마닐라 시내에 들러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제작진은 “이지아가 여배우의 이름을 내려놓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나눔의 손길을 전하는 영상을 생생히 담았다.”면서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계층에 대한 자선의 손길을 확대시키는 긍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불행의 씨앗?” 360억 복권에 남매 ‘법정싸움’

    복권 당첨은 행운일까 불행의 씨앗일까. 캐나다에서 3200만 달러(359억 7000만원)의 대박복권 당첨을 두고 친남매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캐나다 지역신문 오타와 시티즌(The Ottawa Citizen)에 따르면 오타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레일라 나하스는 2008년 6월 복권에 당첨된 친오빠 샘 해더드(57)가 “약속 대로 당첨금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나하스에 따르면 해더드가 그녀의 편의점에서 복권을 구입할 당시 “복권에 당첨되면 돈을 나눠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나하스는 이를 믿고 복권번호를 쪽지에 적어 지갑에 넣고 다녔지만 당첨되자 오빠가 입을 싹 닦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사실 이 복권은 해더드가 유일한 당첨자가 아니다. 구입당시 해더드는 함께 복권을 산 30년 넘는 단골 이발사 마이크 디토레(70)와 복권을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가져 우정을 지켰다. 하지만 3년 만에 동생이 소유권을 주장, 돈을 처음부터 다시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해더드는 “동생이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부정하며 나하스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남매는 변호인을 앞세운 치열한 법정 공방으로 남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셈이다. 해더드는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는데 동생이 돈에 눈이 멀었다.”며 소송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세 남매 꿈·모험 담은 ‘제2의 해리포터’

    새로운 판타지 소설의 등장이다. 판타지를 한참 헤매고나니 현실의 문제가 더욱 또렷해진다. ‘에메랄드 아틀라스’(존 스티븐스 지음, 정회성 옮김, 비룡소 펴냄)는 ‘시원의 책’(The Books of beginning) 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도책 ‘아틀라스’로 통칭되는 책을 둘러싼 모험의 기록이다. 소설은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넘나들고, 마법사, 난쟁이족 등과 만나 모험을 벌이는 등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 등 앞서 판타지 소설이 이뤄낸 성공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덕분일까. ‘에메랄드’는 지난해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원고가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을 흥분시켰다.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었고, 실제로 1년 가까운 기다림 끝에 지난 5일 35개국 언어로 동시 번역, 출간됐다. 방송작가로 활동해온 존 스티븐스의 소설 데뷔작품에 불과했지만 초판만 25만부를 찍었고, 출간되자마자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벌써부터 ‘제2의 해리포터’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화화 제안이 쇄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메랄드’가 더욱 주목받아야할 지점은 따로 있다. 소설은 가족과 엄마에게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림받은 세 남매(케이트, 마이클, 엠마)의 이야기다. 이들이 겪는 환상적인 모험을 주된 서사로 깔고 있지만, 기실 그것은 상실과 상처에 대한 치유 과정이다. 두 동생과 함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케이트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끝없이 스스로-혹은 독자들에게-질문을 던진다. “당신 삶에 가장 중요한 의문 한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전까지 당신은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일 거예요. 내 경우엔 ‘엄마 아빠가 정말 우리를 사랑했을까? 그랬다면 어떻게 우리를 버릴 수 있었을까?’ 하는 게 중요한 의문이었어요.”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꿈과 희망, 모험 등 판타지 소설이 줄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외에도 ‘책에 대한 오마주’를 오롯이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판타지에 시큰둥한 독자라도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다큐 ‘사랑’ 출연 주인공들 뒷이야기

    다큐 ‘사랑’ 출연 주인공들 뒷이야기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쏟게 했던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에 출연했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MBC는 29일 밤 11시 5분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 프롤로그-스물세번의 사랑’을 방송한다. 제작진은 창사 50주년을 맞아 지난 5년간 방송된 23편의 ‘사랑’ 제작과정과 뒷이야기를 연출자와 명사 내레이터들의 인터뷰를 통해 돌아보고 출연자들의 근황을 전한다. 2006년부터 해마다 가정의 달 5월에 방송된 ‘휴먼 다큐 사랑’은 평균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29일 방송에서는 역대 내레이터인 방송인 허수경, 가수 윤도현, 배우 김승우·채시라 인터뷰와 ‘휴먼 다큐 사랑’을 처음 기획하고 ‘돌시인과 어머니’를 연출한 윤미현 피디가 나온다. ‘풀빵엄마’의 유해진 피디, ‘내게 남은 5%’의 김현기 피디, ‘엄마의 약속’의 김새별 피디의 인터뷰도 마련돼 있다. 지나간 사연 중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위암 말기 엄마의 사연을 다룬 ‘풀빵엄마’다. 두 자녀가 20살이 될 때까지 꼭 살고 싶다던 ‘풀빵엄마’ 최정미씨는 방송이 나가고 두달 뒤인 2009년 7월 세상을 떴다. 방송 후 2년, 당시 같은 싱글맘 처지였기 때문인지 내레이션 중 펑펑 울어 수차례 녹음을 중단해야 했던 허수경이 담당 연출자였던 유해진 피디와 함께 엄마를 떠나 보낸 오누이의 이야기를 전한다.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하고 동생 홍현이를 목욕까지 시키던 은서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홍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남매가 같은 학교에 다녀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곤 한다. 최근 ‘풀빵엄마’와 같은 위암 진단을 받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밤을 보냈다는 록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둔 아빠로서 ‘풀빵엄마’의 사연이 마음에 남는다고 말한다. 1990년대 틴틴 파이브의 멤버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희귀병으로 시력 상실은 물론 치료방법조차 없다는 진단을 받은 이동우의 이야기를 다룬 ‘내게 남은 5%’ 등도 방영된다. 한편 가수 이승환은 이 휴먼 다큐의 ‘너는 내 운명’과 ‘안녕, 아빠’ 편을 보고 9집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와 10집의 ‘디어 선’(Dear Son)을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승환은 “기타 치는 친구와 작곡가 친구랑 작정하고 같이 봤다. 보고 나서 작곡하는 친구한테 ‘이 감정으로 곡을 한번 써 보자’ 해서 20분쯤 작업을 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멜로디 대부분을 썼다.”고 전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대장금 이영애 내세운 김치 출시, 세계시장 공략

    대장금 이영애 내세운 김치 출시, 세계시장 공략

     드라마 ‘대장금’의 이영애를 모델로 한 김치가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출시된다.  중견가수 위일청이 운영 중인 김치업체 ‘일청명가(一淸名家)’는 26일 “대장금과 대장금의 한류스타 이영애를 내세운 김치 ‘애(愛)’가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세계시장에서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업체는 최근 이영애측과 초상권 사용에 관한 계약을 했다.  이 업체가 이영애를 브랜드로 내세운 이유는 “드라마 대장금이 87개국에 방영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최고의 한류코드 중의 하나이고, 대장금에서의 궁중 요리사라는 이미지가 한국 전통식품인 김치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치 ‘애(愛)’는 우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판매되고 이후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해외수출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영애는 최근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자유’라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들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49·가명)씨는 “행동과 생각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었던 북한의 실상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는 겉보기에 평범한 마을같지만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그는 “보위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배고픔과 주민 간의 불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인정한 최장기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인 김씨가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찾아 북한 당국과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상대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개인 자격으로 신고센터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리소 들어가서 처음 본 게 공개총살 → 정치범 수용소는 어떤 곳인가. -내가 있던 곳은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였다. 평양에서 180리쯤 들어간 산골이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은 남한에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14호 관리소, 18호 관리소 이런 식으로 부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민이라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만 2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보위부 사람, 병사들, 관리원, 당 사람들 빼고 나면 1만 7000여명 정도가 이주민이었다. →수용소 하면 감옥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그런가. -관리소는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18호 관리소는 끝에서 끝까지 100리 정도 된다. 마을 주변을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뚫린 곳은 하늘뿐이다. →13살 때부터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1975년 우리 5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수용소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길래 집 나간 줄만 알았지 남조선으로 갔다는 건 알지 못했다. →28년 만에 수용소를 나오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 -13살 때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도 다 죽고 없으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김씨의 아버지는 관리소로 온 직후 보위부에 끌려 갔고, 어머니는 농장일을 하다 1979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0년 넘게 토끼, 닭, 돼지를 길러서 당 일꾼들에게 바치고 ‘모범일꾼’ 평가를 받아 2002년 2월 16일 해제받았다. →수용소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거기서 처음 본 게 공개 총살이었다. 사람 매달아 놓고 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실어 갔다. 개 죽은 걸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가슴이 계속 할랑대고 공포감에 질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굶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다. 배급이란 게 강냉이만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일곱 식구가 한달에 7.5~8㎏을 받았으니…. 강냉이도 다 젖은 걸 줘 놔서 말려놓으면 절반으로 줄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파랗다는 건 모두 뜯어먹고, 한달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입산증을 받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무 잎을 뜯어다 먹곤 했다.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주민끼리 감시 →열악한 상황에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는가. -관리소 주위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르는데 멀리서도 ‘징~’ 하고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원들이 순회하면서 철조망 주위에서 발자국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바로 색출해서 총살한다. 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 봤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나. -주민들끼리 서로 경계하는 것이다. 3세대를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했는데, 서로 말하는 걸 듣고 쪽지에 적어서 한달에 한번씩 담당 지도원 방에 넣어 줘야 했다. ‘어떤 동무가 몇날 며칠에 무슨 말을 했다.’고 아주 자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생활해야 했다. →노동생활은 어땠는가. -학교 졸업하면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무조건 탄광일을 해야 했다. 남자들은 돌 깨고, 여자들은 석탄 캐고…, 마흔 살만 넘으면 진폐증으로 쓰러져들 나갔다. 나도 열 일곱살 때부터 탄광에서 일했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인데, 말이 8시간이지 막장에서 나와 또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막장에 들여놓고 하다 보면 16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수용소 안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뒀는데…. -결혼이라고 자유는 아니다. 남자는 30살, 여자는 28살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잘해야지만 승인을 해줬다. 초급당, 보위부, 관리과장, 행정부서장 이렇게 단계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고, ‘누구누구는 일 잘했으니 결혼 승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공표한다(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 탄광에서 얼어 죽었고, 2명의 자녀는 수용소를 나온 뒤 2003년 수해 때 사망했다). →인권과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 30년 동안 ‘불복종하면 죽인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자유란 말을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자유란 내가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강릉 가고 싶으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청바지보다 군복… 해병가족 代잇고 싶어”

    “청바지보다 군복… 해병가족 代잇고 싶어”

    정예 특전사 중사로 전역한 20대 ‘여전사’(女戰士) 귀신 잡는 해병대에 다시 입대한다. 주인공은 오는 19일 경북 포항 해병교육단에 입소하는 이지현(29·충북 보은군)씨. 이씨는 해병대 부사관이 돼 3년간 의무복무를 마친 뒤 장기복무로 전환해 직업군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 ●고공강하 377회… 무술 9단 ‘철녀’ 대학에서 경호비서학을 전공한 이씨는 2002년 특전사에 입대해 5년간 생활하며 남자들도 견디기 힘든 고강도 훈련을 거뜬히 해낸 ‘철인’이다. 낙하산에 400여 차례(고공강하 377회)나 몸을 실었고, 2005년에는 이라크 아르빌 전투지역에 파견돼 6개월 동안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했다. 태권도, 합기도, 특공무술, 검도 등을 합쳐 무술 9단의 유단자다. 남동생(27)도 누나를 따라 특전사에 입대해 한때 남매가 나란히 검은 베레모를 쓴 적이 있다. 지난 2월에 제대한 남동생도 레바논에서 파병 생활을 한 정예 용사다. 2007년 중사로 전역한 이씨가 4년 만에 다시 해병대 군복을 입게 된 것은 해병(357기) 출신인 아버지 이덕희(52)씨의 영향이 컸다. 이지현씨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씨의 아버지는 자식 가운데 누군가가 해병대에 입대해 해병가족의 대를 이어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빨간 이름표 달 생각에 가슴 설레” 이씨는 “체력적인 부담이 따르겠지만 빨간 이름표를 단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면서 “거울을 봐도 청바지보다 군복이 잘 어울려서 평생 군인으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은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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