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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헤어진 원인은? 입장보니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헤어진 원인은? 입장보니

    12일 한 매체는 영화 관계자들의 말은 이용해 “배두나 짐 스터게스가 최근 결별했다”며 “여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듯 이들의 결별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13일 다른 매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측근의 말을 빌려 “자세한 결별 이유는 모르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이유를 전했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는 지난 2012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 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국적 초월’ 할리우드 커플 결별 이유 보니..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국적 초월’ 할리우드 커플 결별 이유 보니..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국적초월’ 할리우드 커플 결별 이유 보니..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배우 배두나와 영국 출신 배우 짐 스터게스의 결별 소식이 전해졌다. 12일 한 매체는 영화 관계자들의 말은 이용해 “배두나 짐 스터게스가 최근 결별했다”며 “여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듯 이들의 결별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을 보도했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는 지난 2012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 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포착되며 여러 번의 열애설이 불거졌고 배두나 짐 스터게스 측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다 지난해 5월 국내외 언론을 통해 연인임을 공식 인정한 바 있다. 네티즌들은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안타깝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잘 어울렸는데”,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결혼까지 하는 줄 알았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정은 현지지도 수행의 정치학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 소식을 전할 때 빠지지 않고 전하는 것이 바로 주요 수행자 명단이다. 이는 외부에서 볼 때 현지지도에 누가 수행원이 되고 누구 빠졌는지 혹은 누가 가장 많이 수행했는지에 따라 최측근 혹은 권력 서열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지도 수행은 권력 측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정은 동지께서 동해안 신도방어중대를 시찰했다”며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이 동행했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김여정을 제외한 다른 동행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 이번 군부대 시찰에는 남매만 공표됐다. 김 부부장에 대해서는 최근 김 제1위원장 현지지도 수행이 부쩍 늘면서 그녀의 위상이 강화되고 김 제1위원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김 제1위원장의 해외 국빈 방문 등 부재시 북한을 대리 통치할 인물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게 속설이다. 아울러 북한 내에서 김여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녀의 권력구도를 둘러싼 변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과거 수많은 현지지도를 다녔다. 하지만 꼭 측근만 수행하게 하지는 않았다. 권력자들의 속성상 믿는 자도 동행하지만 곁에 두고 꼭 지켜봐야만 안심할 수 있는 자도 필히 동행시키기 때문이다. 김 주석에게 있어서는 동생 김영주 부총리가, 김 국방위원장에게는 여동생인 김경희 당 비서가 그랬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여느 커플처럼 자연스러운 수순..”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여느 커플처럼 자연스러운 수순..”

    12일 한 매체는 영화 관계자들의 말은 이용해 “배두나 짐 스터게스가 최근 결별했다”며 “여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듯 이들의 결별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보도했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는 지난 2012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 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한 바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은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은 원폭 피해 1세를 위한 전문 요양시설이다. 국내에서 유일하다. 1990년 한·일 간 ‘재한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한 협약’ 체결에 따라 일본 정부 기금에 국고보조금을 합쳐 건립됐다. 부지 5439㎡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1995년 4월 착공, 1996년 10월 개관했다. 80명 수용 규모였으나 2009년 증축, 110명으로 늘어났다. 2, 3층에 16개씩 방이 있다. 방마다 2~5명이 생활한다. 현재 남자 32명과 여자 73명이 있다. 형제나 자매, 남매 입주자도 있다. 연령은 71~94세로 평균 80.4세다. 고령이다 보니 매년 5~10명이 세상을 떠난다. 시설을 증축했지만 입주 대기자는 180명이나 된다. 입주자들은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요양보호사 등이 24시간 보살핀다. 건강체조나 미술·원예치료, 노래교실을 비롯해 생신잔치, 봄·가을 야유회 등 연간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여가·취미 활동을 한다. 16년째 근무하는 김광혜(58) 요양복지과장은 “원폭 피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처음 오실 때는 어색해 하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금방 적응해 편안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아름다웠던 모습’ 헤어진 원인은 무엇?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아름다웠던 모습’ 헤어진 원인은 무엇?

    12일 한 매체는 영화 관계자들의 말은 이용해 “배두나 짐 스터게스가 최근 결별했다”며 “여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듯 이들의 결별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13일 다른 매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측근의 말을 빌려 “자세한 결별 이유는 모르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결별 이유를 전했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는 지난 2012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 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이별의 원인은 대체 무엇?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이별의 원인은 대체 무엇?

    12일 한 매체는 영화 관계자들의 말은 이용해 “배두나 짐 스터게스가 최근 결별했다”며 “여느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듯 이들의 결별 역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을 보도했다. 이어 13일 다른 매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측근의 말을 빌려 “자세한 결별 이유는 모르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배두나 짐 스터게스 결별 이유를 전했다. 배두나 짐 스터게스는 지난 2012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 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통해 인연을 맺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초등 교과서 떼고 싶은 아흔 살의 꿈

    초등 교과서 떼고 싶은 아흔 살의 꿈

    아흔 살 김연심 할머니는 올해 경기 안양시민대학의 지혜반에 진급했다. 지혜반은 초등학력 인정 반으로,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통과하면 김 할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김 할머니가 안양시민대학에 입학한 것은 2006년. 한글 받침을 배우는 병아리반에 들어온 지 10년째다. 글을 모르는 60~70대가 평균 3년쯤 걸리는 초등 과정을 김 할머니는 10년 동안 다닌 셈이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지병인 혈압 탓에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공부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1925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6·25전쟁이 터지고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 마흔셋에 남편을 사별하고 포목 장사와 하숙, 숙박업을 하면서 세 남매를 길러야 했다. 늘그막에 꿈이 생겨났다. 죽기 전에 공부를 하고 싶어 2006년 안양시민대학을 찾게 됐다. 김 할머니는 “밤에 일하면서 잠을 못 자고 학교에 오더라도, 공부를 하면 너무 재밌어서 힘이 막 난다”며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초등학교 졸업장을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 입학했을 때 ‘왕언니’로 통했다. 입학도 늦었고, 진도도 남들보다 느리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은 주변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 할머니의 담임인 박순옥 교사는 “연세에 비해 활달하시고 총기가 있으셔서 가끔 할머니의 나이를 잊곤 한다”며 “고령에도 계속 도전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11일 김 할머니처럼 늦은 나이에 학력인정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이들이 올해 53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올해 204개 기관이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육부가 2006년 1만 4668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문해학습 수혜자가 지난해까지 누적 19만 50명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졸업장을 받는 학력인정 과정을 모두 마친 이들은 2539명이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문화마당] 마음 통역사/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마음 통역사/김재원 KBS 아나운서

    겨울 끝에 서울 청담동 작은 갤러리에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작은 비정부기구(NGO) 엠트리가 마련한 전시회에는 아프리카 케냐 아이들의 해맑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엠트리 최영환 대표가 디아스포라 한인 청년 전문가들을 데리고 아프리카에 들어가 재능 기부를 이끌어 낸 결과물이다. 학교에서도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듣고, 자연을 보고 그린 아이들의 그림은 우리 아이들의 그림과 달랐다. 특정한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이 아이들의 마음은 엠트리의 재능 기부라는 통역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전시회는 먼저 맨해튼에서 큰 울림을 일으켰고, 우리나라까지 들어온 것이다. 지구촌 아이들의 마음을 통역해 주는 겨자나무, 엠트리가 참 고맙다. 얼마 전 지구촌 사랑 나눔 대표를 인터뷰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30년 동안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 온 김해성 목사를 만났다. 생명 앞에 불법은 없다는 마음으로 한 생명의 소중함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중국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의 아버지다. 2년 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에 불을 지른 중국동포를 찾아가 용서의 말을 전하고, 결국 세상을 떠난 그의 아이들을 찾아 잘 자라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가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진주 삼남매에게도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픔과 공백을 대신 메워 주기 위해 피 안 섞인 부모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 땅의 다문화 아이들의 마음을 통역해 주는 지구촌 사랑 나눔이 참 고맙다. 나는 인도 출신 재미 작가 줌파 라히리를 좋아한다. 그녀가 나와 생년월일이 같다는 우연을 넘어 그녀의 책 속에 담긴 타향살이 이민자의 애달픈 삶이 왠지 모르게 좋다. 차분한 그녀의 이야기 전개는 마치 우리의 지루한 일상에서 찾아내는 네 잎 클로버 같은 행운 보석을 발견하게 한다. 그녀의 단편소설 ‘질병통역사’는 병원에서 인도 소수민족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일을 맡은 카하시의 이야기이다. 주말에는 관광통역사로 일하는 그는 자신의 직업에 관심을 가져 주는 다스 부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질병통역사를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다스 부인은 자신이 오랫동안 숨겨 온 비밀을 카하시에게 이야기한다. 환자의 아픔을 통역하는 카하시가 자신의 아픈 마음을 이해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단지 언어뿐 아니라 마음의 아픔과 죄책감이라는 것을 잘 그려 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안타깝게도 통역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단순히 언어가 안 통해서 통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지 못해서 오는 아픔 때문이다. 학원 대신에 마음껏 뛰놀고 싶은 어린이들의 아픔도, 참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꿈꾸기 바라는 청소년들의 아픔도, 직장을 찾아 헤매는 청춘들의 아픔도, 결혼과 출산을 미루어야 하는 미생들의 아픔도,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중년들의 아픔도,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힘들어하는 농민들의 아픔도, 뒷방으로 밀려난 느낌을 받는 노년들의 아픔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다문화 가정의 아픔도 분명 누군가 통역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통역이야말로 모두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소통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중년의 아나운서는 이제 마음 통역사가 되고 싶다. 우리 각자의 위치에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통역해 주는 질병통역사가 되면 어떨까? 그들의 아픔은 누가 알아주기만 해도 쉽게 치유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 겨울왕국 OST 메들리 연주하는 남매 영상 화제

    겨울왕국 OST 메들리 연주하는 남매 영상 화제

    남매의 환상적인 호흡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Frozen)’ OST 메들리 연주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메트로는 미국 유타주(州) 솔트레이크시티에 사는 한 남매가 티격태격하면서도 멋진 겨울왕국 OST 연주를 선보이는 영상을 공개, 누리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영상을 보면, 피아노 앞에 앉은 한 소녀가 겨울왕국의 OST ‘사랑은 열린 문(Love is an Open Door)’을 연주한다. 그러자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던 오빠도 어느새 옆자리를 꿰차더니 여동생과 함께 멋진 듀엣 연주를 펼쳐보인다. 잠시 후 오빠는 여동생을 무참히 밀어내고는 홀로 ‘태어나서 처음으로(For The First Time In Forever)’라는 곡을 연주한다. 이에 여동생은 남동생을 불러와 장난감 총을 쏘게 하며 오빠에게 귀여운 복수를 한다. 그리고 여동생은 오빠를 밀어내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는 등 뒤로 손을 뻗어 ‘같이 눈사람 만들래?(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연주를 이어나간다. ‘안나’가 언니 ‘엘사’에게 함께 놀자며 부른 노래여서일까? 여동생 옆자리에 슬그머니 앉은 오빠는 똑같이 뒤로 손을 뻗어 여동생과 사이좋게 화해의 듀엣연주를 펼친다. 손을 교차하는 등 묘기에 가까운 멋진 연주를 펼치던 남매는 ‘렛 잇 고(Let It Go)’로 메들리 연주를 완성한다. 지난 9일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해당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개개인의 피아노 연주 실력도 매우 놀랍지만 서로 호흡을 맞춰가는 남매의 모습이 아름답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사진·영상=Jason Lyle Black/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내연남 몰래 낳은 영아 2명 암매장… 비정한 엄마

    남편과 별거 중인 30대 주부가 내연남과 낳은 자녀 2명을 생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가 붙잡혔다. 충남 아산경찰서는 9일 이모(39)씨를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2013년 4월 생후 1주일쯤 된 친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아산시 염치읍 자신의 집 뒷산에 묻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8월에도 아들을 낳은 뒤 방치해 숨지게 한 뒤 같은 야산에 암매장했다. 당시 이씨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고, 두 아이는 내연남 사이에서 낳은 남매였다. 이씨가 2006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뒤 친정어머니 등과 함께 살아 남편은 아내의 임신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친정어머니는 병원에서 낳은 첫째 아이의 출산 사실은 알았으나 둘째 아이는 집 주변 창고에서 낳아 출산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친정어머니가 첫째 아이의 행방을 묻자 “딸을 입양시켰다”고 속였고, 둘째 아이 임신 때는 복대 등을 차 숨겼다. 내연남은 이씨가 임신이나 출산한 사실조차 모른 상태였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씨는 경찰에서 “생활이 너무 어려운 데다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점 때문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뒤 친정어머니,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 3명과 함께 지냈으나 수입이 전혀 없어 친정어머니에게 지급되는 정부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았다. 이씨는 지인의 신고로 범행이 들통났다. 경찰은 최근 살해된 둘째 아이의 사체를 발견했으나, 첫째 여자 아이의 사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씨가 첫째 아이를 암매장한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사체가 작아 찾기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 내연남 등의 범행 가담 여부를 캐는 한편 이씨를 상대로 또 다른 범행이 없는지 조사하고 있다. 아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디자이너 꿈 찾은 ‘28세 탈북 새내기’

    디자이너 꿈 찾은 ‘28세 탈북 새내기’

    “학교에 들어가면 화려한 옷을 마음껏 만들어 볼 거예요. 환상적인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녀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 그곳의 삶은 비참했다. 그래도 그녀는 인형을 좋아했고, 인형 옷처럼 예쁜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20여년이 흘러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혜지(28·가명)씨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는 16일 서울 동숭동에 있는 한국패션디자인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 1995년 여덟 살이던 문씨는 3살 터울의 남동생,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아버지가 오래 병을 앓다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우리 남매를 먹여 살리셨어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탈북하겠지만, 저희는 생존을 위해 떠나야만 했어요.” 중국에 와서도 ‘없이 사는 삶’은 이어졌다. 생존을 위해 중국동포 남성과 결혼한 어머니는 문씨 남매를 지린성(吉林省)의 한 교회에 맡겼다. 세 식구가 합친 것은 10여년이 지난 2008년. 그러나 행복은 1년도 지속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어머니가 공안에 끌려가 북송된 것. “통곡을 했죠. 돈이 있었더라면 벌금을 내더라도 ‘옴마’를 변방대(출입국관리소) 가기 전에 구해 낼 수 있었을 텐데….” 문씨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문씨에게도 위기가 닥쳐왔다. 마을 주민의 밀고로 공안에 잡혀간 것. 함께 잡혀 온 탈북민들은 “중국동포 행세를 하라”고 충고했다. 그 말을 듣고는 밤낮 중국말만 했다. 그 덕분일까. 문씨는 보름 만에 기적처럼 풀려났다. “그때 한국행을 결심했어요. 중국에서 14년을 살았지만 한국에 가야 마음 놓고 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해 4월 문씨는 태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왔다. 중국에서 헤어졌던 동생도 2011년 한국에 들어오면서 남매는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됐다. 2012년부터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우리들학교에 다니며 3년 만에 4개 검정고시(초졸·중졸·고입·고졸)를 통과했다. 졸업 즈음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교내 밴드에서 보컬을 맡아 지역 축제에서 공연을 할 만큼 노래를 잘했기 때문.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난 북한 억양을 고치기도 어렵고….” 고민 끝에 어린 시절 꿈을 떠올렸다. “남쪽에 온 뒤로 어깨에 ‘뽕’이 들어간 드레스를 자주 입고 다녔어요. 좋아하는 드레스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어요.” 이론보다 실무를 배우고 싶어 4년제 대학이 아닌 2년제 직업전문학교를 선택했다. 입학을 앞둔 지금 설렘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정부와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지만, 다른 비용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나고 자란 나이 어린 동기들과 지낼 일도 걱정이다. 하지만 “죽을 고비만 수차례 넘겼다”는 문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노래방 18번’이라는 ‘혼자가 아닌 나’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송승헌 윤아, 대통령 표창 인증샷 ‘눈부신 비주얼’ 눈이 호강

    송승헌 윤아, 대통령 표창 인증샷 ‘눈부신 비주얼’ 눈이 호강

    ‘모범납세자 윤아 송승헌’ 배우 송승헌과 소녀시대 윤아가 모범납세자로 선정됐다. 송승헌은 3일 자신의 웨이보에 “윤아와 함께”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블랙 의상을 갖춰 입은 윤아와 송승헌이 나란히 앉아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송승헌 윤아의 훈훈한 비주얼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송승헌 윤아는 이날 제49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모범납세자 윤아 송승헌은 향후 국세청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네티즌들은 “모범납세자 송승헌 윤아 비주얼 대박”, “모범납세자 송승헌 윤아 얼굴도 양심도 훈훈”, “모범납세자 송승헌 윤아 남매 같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송승헌 웨이보(모범납세자 송승헌 윤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北, 키리졸브 연습에 또 미사일 ‘도발’

    北, 키리졸브 연습에 또 미사일 ‘도발’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반발해 ‘키리졸브’ 연습 첫날인 2일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이날 외교 당국 명의의 성명을 통해 전면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군사적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오늘 새벽 6시 32분부터 6시 41분 사이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남포 일대에서 동해로 발사했다”면서 “사거리는 각각 495㎞, 493㎞”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발사된 탄도미사일의 최고 속도가 마하 4.3(시속 약 5260㎞), 최고 고도가 134㎞인 점을 감안해 최대사거리 500㎞의 스커드C 미사일로 추정하고 있다. 서해안에 인접한 남포에서 동북 쪽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은 북한 내륙을 가로질러 원산 호도반도를 지나 갈마반도 남쪽 50㎞ 공해상에 떨어졌다. 북한은 올 들어 지난달 6일과 8일, 20일에도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이날 서해안에서 동해로 발사된 스커드 미사일은 사거리가 가장 길다.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를 활용해 한반도 전역을 핵과 미사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의 도발이 의도적으로 위기를 조성해 남북 관계 악화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고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적 행위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직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적들의 사소한 도발 책동에도 조국통일대전으로 대답할 멸적의 의지에 넘쳐 있다”고 강조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진 이상 자신들이 결코 수세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강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봤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이 끝나는 다음달 말까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포 사격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대남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총탄이 아닌 대포나 미사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해 이를 빌미로 한 도발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길섶에서] 김장 김치의 최후/서동철 논설위원

    김장과 만두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적어도 나의 뇌리에서는 깊은 관계가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선 100포기 이상의 배추로 김장을 담그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참 맛있던 김치가 설이 지나 이맘때에 이르면 신맛이 깊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봄방학을 받아 빈둥거리는 4남매를 불러 모아 만두를 빚었다. 소는 신김치와 두부, 돼지고기를 버무린 것이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것은 잔치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만두는 당연히 맛있었다. 그런데 김장독의 신김치를 한꺼번에 처치하려 수백 개나 만들었으니 며칠 동안은 만두가 주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맛있어도 물릴 지경에 이르곤 했다. 지난해 김장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등재된 공식 이름은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고 한다. 그런데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것은 김장 문화의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 집 김장 문화의 피날레는 이렇듯 김장독을 비워 내고 만두를 빚어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김장을 담그지 않으니 그런 일도 다시 없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잊혀진 3·1절] “물려받은 건 가난뿐… 원망 많았지만 그래도 존경합니다”

    [잊혀진 3·1절] “물려받은 건 가난뿐… 원망 많았지만 그래도 존경합니다”

    “무명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이란 게 평탄할 리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항상 자랑스럽습니다.” 3·1절을 앞두고 27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증손자 이범증(71)씨는 “증조부님의 행적이야말로 요즘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겠냐”고 말했다. 석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내각수반)을 지냈다. 경북 안동 유림명문가의 99칸짜리 대저택(임청각·보물 182호)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국운이 기울자 모든 기득권을 버린 채 1911년 만주로 떠났고, 전 재산을 다 바쳐 서간도에 독립군기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학계 평가에 비해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씨는 “증조부를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독립운동의 길은 가족들에게도 험난했다. 이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임청각과 토지 등을 다 팔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안에 한 명이라도 독립운동을 하면 가문이 망한다고 했는데 우리 집안은 삼 대가 했다”며 “광복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난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이 선생의 3형제와 아들, 손자, 조카들까지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7남매 중 막내인 이씨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자녀들을 돌볼 틈이 없었다”면서 “그나마 혼자 대학을 나올 수 있었던 건 제일 늦게 태어난 덕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커녕 대학 시절에도 친구 자취방에서 얹혀 지내며 스스로 학비를 댔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3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다 2007년 퇴직했다. 서울 중앙중 교장을 맡았던 마지막 8년 동안에는 3·1절이 되면 학교 홈페이지에 특별한 훈화글을 남겼다. 이씨는 “‘선열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는 글귀를 매번 썼다”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된 세대인 만큼 학생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비서장 등을 지냈고 1962년 건국훈장을 받은 동암(東岩) 차리석(1881~1945) 선생의 아들 차영조(71)씨의 유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씨는 “아버지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9일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는 그때부터 충무로에서 사과궤짝 위에 양담배를 올려놓고 장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양담배 판매가 불법이었지만 젊은 여자가 자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으니 어머니는 매일 단속을 당해도 다음날 좌판을 벌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차씨는 광복 이후 정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정부는 친일파에게는 거꾸로 면죄부를 주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돈과 먹을 것을 달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게끔 교육이라도 시켜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도움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13세 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진 뒤부터는 ‘아이스께끼’ 장사, 여관 심부름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씨는 병원 갈 돈이 없어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던 때, 처음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배고프게 살면서도 항상 ‘아버지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라고 강조했다”면서도 “유년시절엔 많이 원망했다”고 고백했다. 전력검침원과 건설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그는 1977년부터 홀로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일을 시작했다. 차씨는 “2019년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 그때까지 국내에 임시정부 기념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 26일부터 이상룡·차리석 선생 등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인물 열전 60권을 전시하고 있다. 홍선표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공적이 뚜렷하지만 국민에게 낯선 이름들을 소개하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20대男,바람피운 사람 엄마란 사실 알게되자

    20대男,바람피운 사람 엄마란 사실 알게되자

    서로에 순정을 바쳤던 10대와 20대 남녀. 하지만 생이별을 해야 했던 두 사람. 이후 또 한 차례 만남과 헤어짐에 울었다가 결국 40대와 50대가 돼서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미 두 사람에게는 혼인으로 묶인 각자의 가족이 있었습니다. 간통으로 쇠고랑을 찬 그들,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을까요? 1970년 겨울에 전해진 기가 막힌 사연, 들어가 보시죠.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7. 가족 있는 몸끼리 ‘무허가 사랑’ 30년 (선데이서울 1970년 12월 6일자) 30년 전 30고개의 유부남에게 순결을 주었던 18세 처녀가 50고개에서 60대를 앞둔 그 첫사랑을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때 차라리 모르는 척 할 것을. 중년 남녀가 다시 불태운 사랑은 결국 가정의 파탄과 차디찬 쇠고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긴 다홍 치마가 미니 스커트로 변모한 세월에 이르기까지 30년을 이어온 이 안타까운 사랑 제3막의 사연은…. 30년 전 아내 있는 사내와 이웃 사는 처녀가 남몰래 [제1막] 해방 되기 1년 전인 1944년 봄, 아내를 둔 청년 차모(28)씨는 한 마을에 사는 10년 연하의 처녀 임모양과 깊은 관계에 빠졌다. 대구의 한 마을에서 청년단장을 맡고 있던 차씨는 중학교를 나와 법원에서 교환원으로 일하던 방년 18세의 임양과 이웃에 살았다. 두 사람은 청년단 일을 이유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정이 들어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10개월 동안 지켜진 둘 사이의 ‘몰래 사랑’은 임양이 19세 되던 해 김모씨에게 시집을 가면서 막을 내렸다. [제2막] 아내의 과거를 알 리 없는 임 여인의 남편 김씨는 6·25 동란 때 군에 입대했다가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임 여인은 김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둘이 살다가 6·25 발발 이듬해인 1951년 지금의 남편 김모씨와 재혼을 했다. 당시 남편의 나이 28세. 임 여인은 전 남편의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은 전실 소생이 없었다. 임 여인은 서울로 집을 옮기면서 남편에 대한 정성이 한결 더해졌고 알뜰한 주부로 생활을 했다. 아들, 딸을 낳고 시간이 흐르기를 만 10년.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지는 운명의 1961년 겨울이 왔다. 그해 12월 어느날 대구의 언니 집에 다니러 온 임 여인은 그 옛날의 남자 차씨와 식당에서 마주쳤다. 운명이란 참으로 우연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16년 만에 만난 그녀는 차씨가 이끄는대로 장소를 옮겨 다방에 갔고 저녁을 같이 한 다음 극장을 거쳐 밤 11시 30분이 되자 자석에 끌린 사람처럼 여관에 함께 발을 들였다. 재회가 빚은 제2막은 이튿날 임 여인이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뜨겁게 불을 뿜었다. [제3막] 그로부터 8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월이 또 흘렀다. 임 여인이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대구로 다시 내려온 지도 몇 년이 지났을 무렵. 무더위가 아스팔트를 녹이는 지난해 8월의 어느날 오후. 버스에 타고 있던 임 여인은 누군가 뒤에서 탁 치는 촉감을 느꼈다. 돌아보니 방긋이 웃으며 서 있는 남자는 그 옛날의 차씨가 아닌가. 나이 54세의 초로의 신사가 된 옛 연인. 두 사람은 버스를 내려 그 길로 한 다방으로 가 지나간 얘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5년 전 아내가 집안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숨진 뒤 지금의 아내(46)와 재혼했다고 차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재혼하기 전 당신을 만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날 두 사람은 제3막째의 1장을 근처 어느 여관에서 갖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정염을 몽땅 불태울 듯 본격화된 제3막째의 50대와 40대 남녀는 이후 꼬박 1년간 대구 근교의 사찰과 유원지 등에서 둘만의 밀회를 즐겼다. 하지만 모든 사실은 전 남편의 소생인 임 여인의 아들(25)이 의붓 아버지에게 ’밀고’를 하면서 들통이 나게 된다. 임 여인은 지난해 12월 차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자신들의 만남 장소인 대구 시내 한 다방 메모판에 꽂아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이때 슬쩍 편지를 뜯어본 아들. 그 다음부터 이를 미끼로 수십차례에 걸쳐 자기 어머니에게 2000~3000원씩을 뜯어냈다. 연서(戀書) 심부름 부탁받은 아들, 내용 뜯어보더니… 별다른 직업 없이 따로 집에 있던 아들은 돈이 궁할 때마다 어머니를 협박했다. 이런 아들에게 임 여인은 짜증이 깊어갔다. 당연히 거절하는 경우도 생겼다. 아들은 어머니가 미워졌다. 결국 지난 7월 아들은 의붓아버지 김씨에게 “어머니에게 딴 남자가 있다”고 일렀다. 이 말을 들은 의붓아버지는 머리에 퍼뜩 짚이는 게 있었다. 밤 늦게 돌아오는 아내의 잦은 외출이 수상쩍던 남편은 그럴싸한 구실로 또 통금시간이 다 돼서 들어오는 아내를 불러 따졌다. 지난 11월 7일이었다. 아내가 부정을 부인할수록 남편의 의심은 더욱 굳어져 갔다. “재혼이라 하지만 내가 저만을 얼마나 사랑해왔는데….”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남편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남편은 빨갛게 불에 단 연탄집게를 임 여인의 얼굴에 들이대고 자백을 강요했다. 임 여인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간의 일을 다 듣고 난 김씨는 4남매를 낳은 아내와 이혼소송과 함께 차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경찰에 냈다. 두 사람은 간통죄로 구속이 됐다. 남편 김씨는 종업원 4명을 데리고 흑판 등 교재도구를 만들어 월 5만원 수입으로 착실하게 살아온 가장이었다. 차씨는 건축업을 하다가 지금은 은행에 다니는 외아들의 수입에 기대 살아가는 처지였다. 차씨는 임 여인을 책임지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임 여인은 ”남편에게 미안하다”고만 할뿐 검사 앞에 머리를 조아린 채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터키 청각장애 청년 울린 삼성의 몰래카메라 영상 화제

    터키 청각장애 청년 울린 삼성의 몰래카메라 영상 화제

    청각 장애인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수화를 한다면? 최근 삼성전자 터키 법인이 만든 청각장애 청년이 길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 모두가 수화로 말을 걸어오는 몰래카메라 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와 SNS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동영상은 2분 45초의 영상으로 삼성전자 터키 법인이 청각 장애인을 위한 화상 전화상담실 서비스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광고 영상이다. 영상을 보면, 터키 이스탄불 바으즐라르 청각장애 청년 무하렘 야즈안(22)이 친누나와 함께 길을 나선다. 집 앞에서 마주친 노인이 환한 표정을 띤 채 수화로 아침 인사를 건네며 지나간다. 잠시 후, 들른 동네 빵집에선 “따뜻한 시미트(터키 전통 빵)가 있다”는 수화로 야즈안에게 말을 건넨다. 이어 과일 노점상에서 과일을 떨어뜨린 남성을 돕는 무하렘 남매. 남성은 야즈안에게 감사인사로 “사과 하나를 주고 싶다”고 수화로 말한다. 모든 사람이 수화로 말하는 이상함에 야즈안은 누나에게 “저 사람 아는 사람이야?”라 묻고는 “저 사람도 청각 장애인인가?”라며 의아해한다. 곧이어 길모퉁이를 지나는 여성이 야즈안과 부딪힌다. 그녀 역시 수화로 야즈안에게 사과를 전한다. 이번엔 택시에 승차한 야즈안. 택시 기사가 그에게 수화로 “어서 오세요”라 전하자 당황하며 웃음을 짓는다. 택시에서 내린 남매. 누나는 수화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거리 광고판으로 야즈안을 안내한다. 반갑게 야즈안을 맞이하는 여성은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그를 위한 이벤트임을 밝힌다. 제작진 중 한 남성이 야즈안에게 다가와 몰래카메라임을 알리자 야즈안이 사람들의 노력에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훔치는 그에게 모든 이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한편 지난 10일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6만 4300여 건, 11일 페이스북에서는 722만 8100여 건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samsungturkiy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겨울의 끝, 별들과 함께

    올해로 96회를 맞는 전국동계체육대회에는 겨울 스포츠 간판스타와 이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관심을 끌고 있다. 동계체전은 25일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서울, 인천, 울산, 전북 일원에서 나흘간 열전에 돌입한다. 고장의 명예를 걸고 나선 17개 시·도 2600여명 선수와 1100여명 임원 등은 빙상, 아이스하키, 스키, 바이애슬론, 컬링 등 5개 정식종목과 스키점프, 프리스타일(모굴) 등 2개 시범종목에 걸쳐 기량을 겨룬다. 피겨스케이팅의 박소연(서울)과 김해진(경기),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과 이승훈(이상 제주), 쇼트트랙의 이한빈(경기)과 김아랑(전북) 등 한국 겨울 스포츠의 간판스타들도 대부분 참가해 열기에 힘을 보탠다. 특히 부산 대표로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에 출전하는 김마그너스(부산체고)는 대회 첫 5관왕에 도전한다.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의 김마그너스는 지난해 4관왕에 그친 아쉬움을 달랜다는 각오다. 대구 대표로 나선 삼남매도 눈길을 끈다. 이재준(대진중)과 이은솔(대진고), 이하은(경북대) 남매는 스키 알파인 남중, 여고, 여자일반부에 각각 출전해 메달을 벼른다. 알파인 남자일반부의 대구 대표 권용정(63·대구체육회)은 대회 최고령 선수로 등록됐다. 또 쇼트트랙 여중부 광주 대표인 손모아(상무중)는 아버지 손재홍(광주빙상경기연맹)과 선수와 코치로 뭉쳐 메달에 도전한다. 아이스하키 남중부 강원 대표 최무겸과 최무근(이상 리틀하이원), 크로스컨트리 남자초등부 강원 대표 강환건, 강환일(이상 진부초교)은 모두 쌍둥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만난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은 의외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그래서 서로를 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처럼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상위 1%와 절대빈곤층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탈리아 명품 수입업체 ‘에트로’ 대표인 이충희(60)씨는 자수성가해 상위 1%로 도약한 사업가다. 그는 6·25 전쟁 직후 태어나 가난한 윤리 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8남매가 자란 탓에 배를 주린 날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특급호텔 면세점장을 거쳐 1993년 명품 수입업을 시작해 성공한 그는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신인 김동민(45)씨는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해 노숙과 쪽방 생활을 하며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생활을 전전했다. 현재 서울의 한 매입임대빌라에서 살면서 한 달 수입이라고는 열흘 정도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해 버는 80만~90만원이 전부인 전형적 절대빈곤층이다. 두 사람이 지난 16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상연 특별기획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공감과 이견 사이를 오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 평소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김동민(이하 김) 없는 사람은 너무 없고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나 같은 서민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빈곤층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올라갈 가능성은 없고 현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이충희(이하 이) 빈부 격차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있는 문제다. 특히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빈부 격차는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결국 빈부 격차를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노력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만약 노력을 통해 현 세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다음 세대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나도 어릴 때 배급쌀을 받아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교사였던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을 내 주신 덕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김 노력해서 돈을 벌고 적금도 넣고 재산을 불리면 좋다. 그런데 열심히 돈을 벌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버리니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예를 들어 담뱃값만 보자. 이 대표님은 담배를 태우시나. -이 피우지 않는다. -김 나는 피운다. 담배는 서민의 기호식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격이 하루아침에 2500원이나 오르니 힘들다. 서민들은 “안 오르는 건 내 월급밖에 없다”고 한다. 조금씩 저금해서 돈을 모으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가 저축한 효과가 없어진다. -이 4000원 하는 커피값을 30년간 모아 복리이율을 적용하면 2억 1400만원이 된다. 4500원 하는 담뱃값을 모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2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통장에 있는 800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최대한 돈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출장 갈 때는 코펠을 갖고 다니며 라면을 끓여 먹고 중국집에 가도 백반 시켜 자차이(중국식 채소 반찬)와 함께 먹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10년을 안 쓰니까 돈이 모이더라. 버는 건 내 마음대로 안 될 수 있지만 쓰는 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 -김 나도 ‘담뱃값을 모아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 쓰는 노동을 하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공사장에서 힘들 때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 게 유일한 낙이다. 막노동하고 오면 너무 힘드니까 저녁에 술 한잔 하게 되고 그러면 아침에 술이 깨지 않아 일을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태껏 모아 둔 돈이 없다. 노후를 생각하면 저축해야 하는데 저축하는 습관도 안 돼 있고 월세,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교육비가 워낙 많이 들어 빈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인데. -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다들 어려웠다. 그래서 누구든 조금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 형편이 전체적으로 좋아졌고 경쟁이 심해졌다. 있는 집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해외연수를 보낸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없는 사람이 부자 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교육밖에 없다. 공부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독서와 어학 공부는 자기 노력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나이가 올해 환갑인데 요즘도 오전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7시면 출근한다. 사무실 책상과 집, 차에 각각 돋보기를 두고 한 달에 책 2~3권씩은 읽는다. 독서는 내가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정부에서 복지를 강조한다고 해도 결국 밥 굶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수준일 뿐이다. 결국 내가 부지런해야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 -김 가난한 사람이 학력까지 떨어지면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나처럼 배운 게 없으면 공사장에서 막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다. 그마저도 꾸준히 일감이 있는 게 아니다. 겨울철에는 공사는 없는데 일하려는 사람은 많아서 일주일에 1~2일밖에 일하지 못한다. 한 달에 10번 일하면 많이 한 건데 수입은 8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김 한참 부족하다. 최근 지적장애인 언니를 혼자 돌보며 어렵게 살던 20대 여성이 자살한 사건도 있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가 서민 정책을 펴겠다고 했는데 담뱃값 올리는 것만 봐도 더 이상 못 믿겠다. 없는 사람은 없어서 세금을 못 낸다.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서 없는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 기본적으로 복지는 확충해야 한다. 문제는 재정이 어느 정도 받쳐 줄 수 있느냐다. 없는 사람에게 복지 혜택이 집중돼야지 모두에게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을 하면 실제 필요한 사람의 몫은 줄어든다.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 내 딸이 아기가 3명인데 매달 국가에서 보육료를 받는다고 한다. 왜 우리 딸처럼 살 만한 사람에게까지 돈을 주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을 두고 ‘게으르다’고 하거나 부자에게 ‘운이 좋다’고 하는 등 부정적 고정관념도 있는데. -김 ‘게으르니까 가난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이 대표님이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막노동하는 사람 중에도 새벽 2~3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 일감 구하러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거나 폐지를 주워야 하니까. 열심히 하면 대가가 따라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민은 계속 서민일 뿐이다. 부자는 그만큼 노력해서 부를 쌓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자가 그냥 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도 있지만 고생 끝에 부를 쌓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 줬으면 한다. 부자를 보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배우려고 할 필요가 있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부유층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부를 자녀에게 상속해 주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긴 하지만 재산의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부유층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점점 더 퍼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일례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4년 전엔 40~50명뿐이었는데 지금은 700명을 넘어섰다. -김 일부 공감한다. 그런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부유층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 ‘땅콩회항’ 등 갑질 횡포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고소득층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부자들에게 과세해서 나눠 쓰자는 얘기에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아무리 부자여도 자기 돈의 5%도 못 쓰고 죽으니까. 한 끼 먹는 데 드는 비용은 다르겠지만 김 선생님이나 나나 세 끼 밥 먹는 건 똑같다. 문제는 지나친 과세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김 기업 운영하시는 분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저소득층도 공과금이 밀리면 통장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지급정지시켜 못 쓰게 한다. 많이 버는 분들이 세금을 더 냈으면 좋겠다. →오늘 대담을 통해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이 김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가난을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없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적지만 100만원이라도 벌면 반의 반 정도는 저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근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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